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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구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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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구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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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nclude(틀:토론 합의, 토론주소1=NondescriptCapriciousThreateningTray, 합의사항1=한사군과 미소군정을 틀에 존치하는 대신 첨자로 추가설명, 토론주소2=AnUtopianAndLudicrousThrill, 합의사항2=대한민국의 역대 공화국들은 글자 크기를 줄여서 존치, 토론주소3=SelfishFaultyLongingTurkey, 합의사항3=부제에 강조 표현을 삽입하기, 토론주소4=SomberAboundingDamagingLanguage, 합의사항4='구한말(개화기)' 서술을 '개화기'로 서술, 토론주소5=SomberAboundingDamagingLanguage, 합의사항5='남북국시대' 서술은 존치, 토론주소6=SomberAboundingDamagingLanguage, 합의사항6='삼국시대' 시대구분 표 내 칸은 세로 3칸으로 분리하며 '부여'/ '고구려'/ '백제'/ '신라'/ '가야' 중 첫 번째 칸은 '부여'/ '고구려'/ '백제'/ '신라'/ '가야'를 서술 -> 두 번째 칸은 '고구려'/ '백제'/ '신라'/ '가야'를 서술하며 -> 세 번째 칸은 '고구려'/ '백제'/ '신라'만을 서술, 토론주소7=SomberAboundingDamagingLanguage, 합의사항7= '주호'는 삭제하되 -> '탐라' / '우산' 서술은 존치, 토론주소8=SomberAboundingDamagingLanguage, 합의사항8=조선건국준비위원회 서술은 존치하되 -> 남북한 / 임시정부 / 미군정 / 소련군정을 제외한 현대의 단체들의 이름 및 수식어는 모두 삭제한다., 토론주소9=SomberAboundingDamagingLanguage, 합의사항9=세로 열에 height를 모두 동일하게 지정하여 시각적으로 각 칸이 구별될 수 있도록 한다.,토론주소10=SomberAboundingDamagingLanguage, 합의사항10=본 틀 내 가야에 대한 첨자로 '가야는 신라의 복속 이후에도 사료에서 존재가 확인되어 7세기 중엽까지 반독립적 상태로 존속했다는 학설도 있음'을 서술한다., 토론주소11=RealChildlikeExclusiveJewel, 합의사항11=근대시점을 개화기\, 일제강점기로 구분하고 해당 정치체로서 개화기에는 대한제국\, 일제강점기에는 식민지 조선\, 대한민국 임시정부만을 링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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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맥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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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려 | 高麗
Goguryeo (Koguryŏ)
Goryeo (Koryŏ)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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군기[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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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원전 37년[2] ~ 서기 668년 12월 3일[3] (705년)
성립 이전 멸망 이후
고조선 현도군[4]
고구려현

안동도호부[5]
발해[6]
부여 소고구려[7]
고구려부흥운동[8]
예맥계 소국들[9] 통일신라[10]
패서 호족 보덕국
국호 졸본부여[11] → 고구려[12] → 고려[13]
위치 한반도 중 · 북부, 랴오닝성, 지린성, 헤이룽장성, 프리모리예 지방 일대[14]
역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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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원전 37년 건국
3년 국내성 천도
194년 진대법 시행
311년 서안평 점령[15]
313년 낙랑군 정복
314년 대방군 정복[16]
372년 불교 전래
373년 율령 반포
427년 평양성 천도
475년 위례성 점령
494년 부여 병합
545년 추군과 세군의 동란
612년 살수대첩
631년 천리장성 축조
642년 연개소문 집권
645년 안시성 전투
668년 평양성 함락, 고구려 멸망
수도 졸본성[17] 국내성[18] 평양성[19]
삼경 국내성[20] · 평양성 · 한성[21]
종족 예맥[22], 한(韓), 말갈[23], 거란, 실위, 선비
언어 고구려어 ( 고대 한국어)
문자 한자, 구결
종교 토속 종교[24], 불교[25], 도교[26]
정치 체제 제가귀족제 → 전제군주제
국가원수 태왕(太王)
주요 군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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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대 동명성왕
3대 대무신왕
6대 태조대왕
9대 고국천왕
15대 미천왕
17대 소수림왕
19대 광개토대왕
20대 장수왕
23대 안원왕
26대 영양왕
28대 보장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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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2. 상징
2.1. 국호
2.1.1. 명칭2.1.2. 발음
2.2. 군기2.3. 옥새
3. 역사4. 사회5. 문화6. 정치7. 경제8. 군사9. 국력10. 지리
10.1. 영역과 행정구역
11. 외교12. 멸망과 유민13. 역사귀속과 계승인식14. 관련 사료 목록
14.1. 한국14.2. 중국14.3. 일본14.4. 금석문
15. 고구려/문화재16. 연표17. 왕조18. 인물19. 고구려의 대(對)중국 전쟁 목록20. 고구려부흥운동21. 고구려/창작물22. 기타23. 같이 보기24. 둘러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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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고구려() 또는 고려()는 삼국시대 한국의 고대 왕조 중 북쪽에 위치했던 군주제 국가이다.

한반도 북부와 만주 일대를 중심으로 전성기에는 한반도 중·남부에 이르기까지 광활한 영토를 지배했던 나라로서, 삼국 가운데 가장 큰 영토를 점유했다. 만주를 지배했던 고대 국가라는 점에서 고구려를 계승한 한국의 또 다른 왕조인 발해와도 비교되는 경우가 많다.[28] 704년이라는 긴 기간 동안 존속한 장수 왕조다.[29]

2. 상징

2.1. 국호

2.1.1. 명칭

<colbgcolor=#000><colcolor=white> 언어 명칭 및 해설
한국어 고구려(高句麗, Koguryŏ, Goguryeo) / 고려(高麗, Koryŏ, Goryeo)

광개토대왕[30] 또는 장수왕 때부터 '고려'라고 고정하여 불렀지만 현대 한국에서는 왕건 고려와 구분하기 위해 여전히 '고구려'라고 부른다.
중국어 가오거우리(高句丽, Gāogōulí) / 가오리(高丽, Gāolí)[31] 현대 관화 기준이다.

'가오리'가 일반적이며, 굳이 '高句丽'라고 쓸 때는 '句'의 독음이 일반적인 '쥐(jú)'가 아니라 '거우(gōu)'가 된다. 이 독음법은 오로지 고구려라는 단어에만 존재하기 때문에 중국인들도 잘 모르는 경우가 많고 컴퓨터 입력기에도 반영되어 있지 않다. 일부 유사역사학자들이 고구려를 '가우리'라고 불러야 한다고 주장하는데, 그 근거는 결국 중국어 독음인 것. 그러나 이 독음 역시 결국은 현대 중국어의 독음일 뿐이며, 옛 중국어의 한자 발음은 현대 중국어보다는 오히려 한국식 발음과 상대적으로 더 가깝다.[32]

고구려의 경우 한나라에서 사용한 상고한어로는 "kˤaw kˤo rˤe", 당나라에서 사용한 중고한어로는 "kɑu kəu liᴇ"로 발음했다. 고려의 경우 상고한어로는 "kˤaw rˤe", 중고한어로는 "kɑu liᴇ"로 발음했다.
일본어 코쿠리([ruby(高, ruby=こう)][ruby(句, ruby=く)][ruby(麗, ruby=り)], Kōkuri) / 코라이([ruby(高, ruby=こう)][ruby(麗, ruby=らい)], Kōrai) / 코마([ruby(高, ruby=こ)][ruby(麗, ruby=ま)], Koma)[33]

때때로 '高麗', '狛(박)', '駒(구)' 등으로 써 놓고 '코마(こま)'라고 읽는 경우도 있다.
고대 티베트어 케우리(Ke'u-li)[34]
고대 튀르크어 뵈퀼리(𐰋𐰇𐰚𐰠𐰃, Böküli)[35]

고대 튀르크어는 어두에 /m/ 등의 비음이 오는 경우가 드물어 다른 음가로 변화하는 경향이 있었기 때문에, 아래의 산스크리트어 명칭과 비교하면 원래 형태는 뫼퀼리(Möküli)였을 것이다.
중세 그리스어 무크리(Moúkri)[36]
산스크리트어 무쿠리(Mukuri)[37] / 쿠쿠테스바라(Kukutesvara)[38]

'고구려'라는 이름은 중국 후한의 역사가 반고(32~92)가 지은 《 한서》 〈지리지〉에 최초로 등장하며, 한사군 현도군에 속한 현인 '고구려현'(高句驪縣)이라는 지명으로 나온다. 이는 한나라의 지명 조어법과는 상이하므로, '고구려'는 일대의 토착민들이 본래 자신들의 마을 또는 지역을 부르던 고유어 지명으로 추정된다. 현도군 고구려현은 본래 오녀산성 국내성이 있는 압록강 지안시 일대에 있었으나 기원전 75년에 토착민의 강력한 저항으로 흥경( 신빈만주족자치구 일대)으로 이전하였으며, 1세기에 다시 무순( 푸순현 일대)으로 후퇴하였다. 이 과정은 나라로서의 고구려가 성립하는 과정이기도 했는데, 부여계 유민을 중심으로 한 세력이 졸본에 도읍을 세웠으며 이들도 '고구려'라는 지명사를 국호로 사용하게 되었다. 현도군의 '고구려현' 쪽도 계속 이름은 남아 있다가 서기 14년 고구려 유리명왕에게 흡수당했다. 그래서 《삼국사기》에는 고구려가 고구려를 공격하여 복속하는 대목이 나온다.
三十三年 秋八月 王命烏伊 摩離 領兵二萬 西伐梁貊 滅其國 進兵襲取漢高句麗縣
오이(鳥伊)와 마리(摩離)에게 명하여 병사 20,000명을 거느리고 서쪽으로 양맥(梁貊)을 정벌하여 그 나라를 멸망시켰다. 계속 진군하여 한의 고구려현을 습격하여 빼앗도록 하였다.
삼국사기》 권13 〈고구려 본기〉 1 유리왕(琉璃王) 33년 가을 8월

건국 초기에는 국명이 여러 가지로 나타나서 고구려(高駒驪), 구려(句麗), 구려(駒驪), 고리(高離) 등으로 기록되었는데 주로 고구려(高句麗)의 빈도가 가장 높았다. 당연하겠지만 이는 고유어 이름을 한자를 빌려 나타내는 과정에서 여러 표기가 나타났다가 점차 '고구려'로 통일된 것이다. 고구려의 기원과 관련되어 졸본부여나 '맥'(貊)으로 불리기도 했다. 이후 4세기부터는 '고려'(高麗)로 불리기 시작하여, 5세기에 이르러서는 '고구려'라는 이름은 거의 등장하지 않고 '고려'로만 불리게 되었다.

현재 사학계의 정설은 장수왕 때 고구려가 고려(高麗)로 고정되어 멸망할 때까지 사용되었다는 것이다. 그런데 이 사실은 한국사 교과서에도 실리지 않아 한국의 비전문가들 사이에서 잘 알려지지 않은 듣보잡인 경우가 많다. 장수왕 때 고려로 국호를 바꿨다는 증거들은 여럿 있다. 가령 5세기 장수왕 대에 작성된 것으로 추정되는 충주 고구려비에는 고려라는 두 글자가 떡하니 박혀 있고, 장수왕 시기부터 중국 측 문헌에 '고려'라고만 표기되기 시작된다. 전성기를 맞이한 장수왕 재위기에는 수도를 평양으로 옮기는 등 국가의 분위기를 일신하는 여러 정책들이 추진됐는데, 국호 역시 그 일환으로 변경된 것으로 추정된다.

왜 바꾸었는지는 알 수가 없으나, 아무래도 고구려(高句麗)의 고(高)와 구(句)의 발음이 비슷해서 빨리 발음하면 고려(高麗)나 구려(句麗)로 줄어들게 되는데 구려보다는 고려가 한자의 의미를 봤을 때, 물론 어원은 한자의 의미와 무관한 고유어에서 유래했겠지만 더 그럴 듯해 보여서 고려로 변경했을 수도 있다.[39] 고구려라는 명칭이 처음 나타나는 《 한서》 〈지리지〉에서는 현도군의 속현으로 고구려현과 함께 상은태(上殷台)현과 서개마(西蓋馬)현이 소개되는데, 이 둘은 전부 방위어인 상(上)과 서(西)로 시작하므로 고구려 역시 본래 방위어 고(高)와 토착 지명 구려(句麗)의 합성어였을 것으로 보인다.[40] 이렇게 본다면 국호가 '고려'로 변경된 것은 의도하진 않았지만 국명의 본래 형태와 유사하게 돌아온 셈으로 볼 수 있다.

이 '구려(句麗)'의 정확한 어원은 불명이나, 가장 유력한 설은 《 삼국지》 〈동이전〉에 소개된 (城)을 뜻하는 고구려의 고유어 '구루(溝漊)' 및 《 삼국사기》 〈지리지〉에 기록된 고구려 지명에서 역시 성의 의미로 자주 사용된 '홀(忽)'과 연관짓는 것이다.[41]

하지만 이후 동명성왕이 세운 나라를 보장왕 때까지 통째로 고구려, 대조영이 세운 나라를 발해, 궁예가 세운 나라를 후고구려[42], 그리고 왕건이 세운 나라인 고려를 그냥 고려라고 부르는 관례가 생긴다. 이는 우리가 '고려시대'라고 부르는 그 시대 중에 성립된 관습이라고 볼 수 있다. 언급한 네 국가 모두 궁예가 기분 내킬 때마다 바꾼 태봉을 제외하면 다 고려가 정식 국호였다. 자세한 건 후고구려, 발해, 태봉, 고려 문서로.

장수왕 이래로 고구려를 고려라고 불러왔던 탓에, 5대 10국 시대 북송을 거친 이후부터 전근대까지의 중국과 일본에서는 왕건이 세운 고려도 고구려가 거의 그대로 이어지되 왕조만 바뀐 것으로 오해하는 경우가 많았다. 송나라 사신이 쓴 《 고려도경》에서도 중세의 고려를 고씨 고려가 망하고 왕씨가 일어나 세운 고려라 표현했으며, 중국 역사학자들이 종종 이렇게 부르기도 하지만, 대부분은 오늘날 한국에서 쓰듯이 고구려, 발해, 고려 등으로 부른다.

현대에 로마자로 표기할 때는 북한식 표기법을 따른 Koguryŏ와 남한식 표기법을 따른 Goguryeo 두 가지가 쓰인다. 남한 매체가 세계적으로 영향력은 높지만 고구려 자체가 현 북한 지역에서 기반한 왕조였다보니 두 표기법의 저명성은 엇비슷한 편이다.[43] 유네스코 세계유산 등재 신청서에서는 북한과 중국의 세계유산으로 등재했으므로 Koguryŏ로 표기했다.

왕씨 고려 때는 구고려(句高麗)[44], 구려(駒驪)[45]라는 명칭으로 불리기도 했다. 또한 자국을 고구려의 고려에 맞춰 후고려(後高麗)[46]라고 칭하기도 했다. 이규보의 《 동국이상국집》에는 아예 고구려와 고려를 동일시하여 고구려를 우리 고려[我高麗]라고 부르는 축문도 등장한다.[47]

궁예가 처음 세운 나라 이름이 '후고구려'라고 알려져 있지만 실제로는 그냥 '고려'였다가 나중에 마진, 태봉으로 바꾼 것이었다. 왕건이 세운 고려는 궁예의 태봉을 멸망시키고 세웠으며 고구려를 계승했다는걸 표방하기 위해 국호를 고려로 정한 것이다. 일본에서 발견된 외교문서에서는 고구려의 뒤를 이은 발해도 고려라는 이름을 사용했음이 나타난다. 사실 발해라는 국호는 과의 협상에서 어쩔 수 없이 합의된 대외용 국호였고, 어디까지나 공식 국호는 고려였으나 워낙 발해라는 국호 사용 빈도가 평소에도 높다보니 발해인들 스스로도, 적어도 요나라 시대 후기, 금나라 때부터는 본인들이 발해인이기도 하다는 사실을 어쩔 수 없이 인정하게 된다.[48]

장수왕 대의 국호 변경을 대체로 제대로 반영한 사극으로는 태조 왕건이 있다. 고증 등에서 문제 제기가 여럿 있는 사극이긴 하지만, 극중에서 고구려가 장수왕 때 고려로 바꾼 것은 제대로 반영해서 해설했으며, 궁예가 처음 세운 나라의 이름 역시 후고구려가 아닌 고려로 불렀다. 그런데 극중에서 옛 고구려를 언급할 때는 고구려라고 하는 경우가 대부분이었다. 당시 사람들은 옛 고구려도 나중 이름을 써서 고려라고 불렀을 가능성이 높지만 시청자들이 헷갈려 할 가능성이 크기 때문에 그냥 고구려라 한 듯.

같은 이환경 작가가 대본을 쓴 연개소문에서는 고구려로만 표현했다. 태조 왕건과 달리 연개소문은 아예 작중 내내 고구려를 언급해야 하는데 극중에서 계속 고려라고 부르면 시청자들이 혼란을 느낄 게 뻔하니….

이외에도 고구려 유민 고모의 묘지명(高牟墓誌銘)에 따르면 별칭으로 동해지동(東海之東, 동해의 동쪽), 한향(韓鄕)이라 부르기도 했고 삼한=삼국으로 여겨지면서[49] 그 중 마한에서 유래했다고 여겨 그냥 마한이라 불리기도 했다.[50] 근데 보통 고구려는 마한과 동치되긴 했지만 이게 좀 어지러워서 진한이나[51] 변한[52]으로 불리기도 했다.

2.1.2. 발음

학계 일각에서는 고구려 당대의 국호 발음이 '고구리' 또는 '고리'였을 가능성을 주장한다. 호삼성은 《 자치통감》을 주해하며 37권의 고구려 관련 기사에서 수말당초 학자 육덕명을 인용하여 "려(驪)는 력(力)과 지(支)의 반절로 발음한다[力支翻]"[53]라고 기록했다. 또 《책부원귀(冊府元龜)》에도 "려는 려(驪)라고도 쓰고 리로 발음한다[亦作驪 音離]"라는 주석이 붙어 있다. 즉 중국 당·송 시대에는 통상 麗를 거성으로 발음하여 '려'로 읽었지만, 고구려의 국호에서 麗를 읽을 때는 통상적인 발음과 달리 평성으로 '리'라고 읽어야 했기 때문에 음가 주석을 붙인 것이다.

이는 시간이 꽤 흐른 뒤에도 마찬가지였는데, 여말선초 사람들이 직접 저술한 일부 문헌에서도 고구려의 麗는 '리'로 발음하는 것으로 기록되어 있다. 이를테면 《 용비어천가(1445)》 제6장에 '麗運이 衰ᄒᆞ거든(고려의 운이 쇠하거든)'이라는 표현이 등장하는데, 여기에는 "려(麗)는 리(离)로 발음하고 고려를 말한다[麗音离, 高麗也]"라는 주석이 달려 있다. 한마디로 '고려'로 읽지 말고 '고리'로 읽으라는 소리다. 조선 후기의 성호 이익이나 연암 박지원도 이에 대해 기록을 남겨두었다.

이 연구[54]에 따르면 고구려가 다른 문헌에서 '고리(高離)'로도 나타난다는 것이나, 한국을 제외한 타국에서 부르는 '코아(Korea)'라는 이름, 돌궐에서 뵈퀼,[55] 인도에서 무쿠, 중국에서 가오거우(가오), 일본에서 코우 등으로 불렀던 것을 참고하여 '본디 발음이 고였기 때문이 아닌가' 하고 추정할 수도 있다.

조선 후기의 글인 《 대동지지》에서도 "한나라 현도군에 속한 현에 고구리(高句麗 — 麗[려]자는 离[리]로 읽는다)가 있는데..."라는 대목이 있어 '고구리'라는 음가가 옳다는 인식이 지속되었음을 나타낸다. 《 증보문헌비고》에서도 '리'로 읽으라고 주석하고 있다. 즉 조선 전기에 麗 자의 발음이 일반적으로는 려로 읽히는 음가가 제시되었으나, 국명으로서는 리라는 음가가 옳다는 인식이 학자들 내에서는 계속된 것이다. 그래서 조선 시대에 간행된 자전을 보면 麗자에 '나라 이름 리'라는 훈음이 계속 병기된다.

그러나 麗를 '리'로 발음하라는 해석은 어디까지나 현대 한국 한자음 기준으로 성립할 뿐, 당·송 시대에 쓰인 중고한어 기준으로는 오히려 '례(*lje)'에 가까운 발음으로 재구되기 때문에 엄밀히 따지면 오류가 있는 주장이다. 언어학자 윌리엄 백스터의 재구 체계에 따르면 육덕명이 평성 麗의 독음으로 제시한 '력(力)과 지(支)의 반절'에서 운모에 해당하는 支 자는 *tsye, 《책부원귀》에서 麗의 독음으로 제시한 離 자는 *lje 정도로 읽혔다. # 도리어 麗의 일반적인 독음인 '려'는 중고한어 당시에 '레이(*lej)'로 발음되었다.

아울러 《 삼강행실도언해(1481)》, 《 번역노걸대(1517)》, 《동국신속삼강행실도(1617)》, 《 박통사언해(1677)》, 《오륜행실도(1797)》 등 조선시대에 간행된 다수의 한글 서적에는 고구려와 고려의 발음이 한글로 '고구려', '고려'라고 분명히 적혀 있다. 따라서 조선시대에는 이미 '고구려'를 현재와 같이 발음하였음을 알 수 있다.
容齋以爲高麗之麗字本平聲, 而作側字用之, 誤也.
용재(容齋)가 고려의 '麗'자는 본래 평성인데 측자로 만들어 ( 한시에) 사용한 것을 두고 잘못이라고 하였다.

湖陰曰, 初以山高水麗爲國號, 此何害? 華人精於聲律, 豈容有誤. 容齋嘿然.
호음(湖陰)이 말하였다. "처음 고려가 산고수려(山高水麗)에서 따와 국호를 삼았으니, 이것이 해가 될 것이 있겠는가. 화인(華人)은 성률에 정통하니, 어찌 잘못이 있겠는가." 이에 용재는 말이 없었다.
대동야승 패관잡기 권4, 용재총화 中 (1525)
이에 따르면 호음 정사룡(1491~1570)은 고려의 발음을 [고려]로 인식하고 있었음을 알 수 있다. 산고수려(山高水麗)에서 麗는 곱다는 뜻으로서 거성으로 읽어야 하며, [려]로 발음된다. 물론 산고수려 기원설 자체는 많은 비판을 받은 주장이기는 하지만, 그 진위와는 별개로 조선시대에는 이러한 민간어원에 이끌려 고려의 麗가 [려]로 발음되었던 것이다. 이는 다음 기록들에서도 확인된다.
心溪甞謂惠風曰, 高麗之麗, 中原人雖以離讀, 本國則以厲讀, 則爲詩不從平聲, 未爲不可. 余亦以心溪言爲是.
심계(心溪)가 일찍이 (우리나라의) 풍속을 사랑하여 말하기를, "고려(高麗)의 麗 자를 중국 사람들은 비록 리(離)라는 음으로 읽지만 우리나라의 경우는 려(厲)라는 음으로 읽으니, 시를 짓는 데 있어서는 평성을 따르지 않아도 안 될 것이 없다." 라고 하였다. 도 심계의 말을 옳게 여긴다.
《청장관전서》 제33, 청비록 2 려(麗) 中 (1795)
內史侍郞徐熙語契丹蕭遜寧曰, 我國卽高句麗之舊地故號高麗. 按麗音離, 而東史寶鑑作麗音呂, 是未詳何義也. 今華人猶呼音離, 而韻學等書皆從之, 東人變呼音呂.
내사시랑 서희가 거란의 소손녕에게 말하기를, "우리나라는 곧 고구려의 옛 땅에서 일어났기에 고려라 이름하였다." 라고 하였다. 살피건대 麗의 음은 리(離)이다. 그러나 동사보감은 麗의 음을 려(呂)라 했다. 이것이 무슨 뜻인지 알 수 없다. 오늘날 중국인은 리(離)라고 부르고 음운학 책은 모두 그것을 따르지만, 우리나라 사람은 려(呂)라 바꾸어 부르고 있다.
대동지지》 방여총지(方輿總志) 권4 中 (1861~1866)
정리하자면 고구려 당대에는 국호를 현대 한국 한자음의 '고구리'에 대응되는 형태로 발음했을 가능성이 있으나, 후대에는 평성 麗의 기존 독음이 '려'와 유사하다는 사실과 산고수려 기원설 등의 영향으로 국호 발음이 '고구려'로 정착하여 현재까지 이어진 것으로 추정된다.

한편 일각의 내용을 근거로 '고구리'만이 정당한 발음이라 단정짓고, 나아가 현대에 통용되는 표기까지 바꿔야 한다고 주장하는 것은 부적절한 담론이다. 애시당초 고구려 당시의 한자음 대다수가 현대의 것과 완전히 같지 않아 본래 음가를 현대 국, 한문으로 정확하게 전사하는 것이 불가능하고, 언어학계에서 재구한 당대 발음은 오히려 '고구려'에 가까울 뿐더러 '고구려'와 '고려'라는 발음 역시 상술한 바와 같이 상당한 역사성이 있기 때문이다.

현대에 '고구리', '고리' 등으로 표기를 정정해야 한다고 주장하는 세력 가운데에는 환단고기 추종자( 환빠)로 대표되는 유사역사학자들이 섞여 있는데, 이들이 오늘날에 와서 교과서 등지의 표기 정정을 주장하고 예찬하는 이유는 역사 용어를 주류 사학계에서 쓰이던 명칭에서 분리함으로써 고구려사 전체를 자신들의 이론대로 재인식하게끔 하려는 저의가 깔려 있다. 동시에 '고구려', '고려' 등을 '외세의 영향을 받은 근본없는 독음' 취급하려는 국수주의 사관의 영향도 들어 있다.[56] 환빠의 경우 역사학계의 연구부정행위와 밀접하게 닿아 있어, 단순한 사료 외 주석이나 해설에서도 이러한 명칭을 의도적으로 유지하는 서적이 있다면 저자와 인용출처 등 확인에 주의가 필요하다.

2.2. 군기

파일:고구려 군기.svg
彼師雖多, 皆備數疑兵而已. 其驍勇唯赤旗. 若先破之, 其餘不攻自潰.
고구려 군대가 비록 수는 많으나 모두 수를 채운 가짜 병사입니다. 그 중 날쌔고 용감한 병사는 오직 붉은 깃발의 군대뿐이니, 만일 그들을 먼저 쳐부수면 그 나머지는 치지 않아도 저절로 무너질 것입니다.
삼국사기 권제24 백제본기 제2 근구수왕 원년 11월 첫번째기사

고구려군은 스스로를 상징하는 깃발로 붉은 기를 사용하였다. 초기에는 고구려의 계루부 내지 중앙군만 붉은 기를 사용했던 것으로 추정된다. 다만, 시기가 뒤로 움직이며 고구려군의 깃발은 붉은 깃발로 통일되어 갔다.

5세기 말 쌍영총 연도동벽화 거마행렬도 출처, 한국콘텐츠진흥원 문화콘텐츠닷컴 '고선지 실크로드 개척사-기창을 든 개마갑주무사와 석반부철모' 원전 이미지와 복원 이미지 발췌.

안악 3호분 벽화에서도 기수가 붉은 색 깃발을 들고 있으며, 개마무사 부대가 붉은 깃발을 사용했다는 이야기가 있기 때문에 붉은 색 깃발을 군기(軍旗)로 사용한 것은 명확해 보인다. 다만 근대적인 국기(國旗)의 개념이 없었던 만큼 국가의 상징은 아니었을 것이다.

2.3. 옥새

遂賜姓負鼎氏. 抵利勿林宿, 夜聞金聲. 向明使人尋之, 得金壐·兵物等. 曰, “天賜也.” 拜受之.
동틀 무렵 사람을 시켜 찾아보게 하니, 금새[金壐]와 병장기 등을 얻었다. (왕이) 말하기를, “하늘이 주신 것이다.”라고 하고 절한 다음 받았다.
삼국사기 권제14 고구려본기 제2 대무신왕 4년 12월 첫번째기사

고구려는 금새(金璽)를 하늘에서 받아 사용했다는 기록이 있다. 동양 세계에서 새(璽)라는 단어는 원래 오직 황제의 옥새에만 사용할 수 있었으며 제후는 인(印)을 사용해야 했다. 물론 제후의 의미가 비중화 주변국으로 확장된 뒤로는 그런 거 없고 개나소나 (대중외교 문서를 제외한) 모든 문서에 옥새를 쾅쾅 찍어대긴 했다. 심지어 류큐(...)조차 금인은 구석에 처박아두고 옥새를 마구 휘둘러 썼으니 별 의미 없는 규정.

그런데 고구려의 금새가 여타 제후국의 옥새와 차별화되어 중요한 것은, 고구려는 중원왕조에게 도장을 하사받았다는 기록이 없다는 것이다. 다시 말해서, 다른 제후국들은 중국에 보내는 문서에만 중국이 준 도장을 찍고 자기들의 문서엔 자기들의 옥새를 찍었다면, 고구려는 중국에 보내는 문서에도 자신들의 금새를 찍었을 가능성이 높다. 이후의 고구려와 중국 왕조들의 관계를 본다면 더더욱 그랬을 것이다.

고구려의 금새가 구체적으로 어떻게 생겼는지는 아직 알려져 있지 않아서 정확히 파악하기 힘들다.

3. 역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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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 사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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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 문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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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 정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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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 경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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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 군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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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민족계 국가 중에서는 통일 중국과 총력전을 벌여 승리한 유일한 국가이다.[57] 심지어 수나라는 그 패배가 멸망의 원인 중 하나가 되어 고구려의 기억은 이후 천 여년이나 동아시아 문명에서 한국의 국력을 고평가하게 되는 이유 중 하나가 되었다.[58]

9. 국력

72년(484) 겨울 10월에 사신을 위(魏)나라에 보내 조공하였다. 그때 위나라 사람들은 우리나라가 강하다고 생각하여, 여러 나라 사신의 숙소를 두는데, 제(齊)나라 사신을 첫 번째로, 우리 사신을 그 다음으로 두었다.
《삼국사기》 18권 〈고구려 본기〉 장수왕

영명 7년[59] 에 평남참군 안유명과 용종복사 유사효가 위나라에 사신으로 갔더니 원회에서 고려(고구려) 사신과 나란히 앉게 하였다. 이에 안유명이 위나라 주객랑 배숙명에게 말하였다.

'우리는 중국 임금의 명을 받고 그대 나라에 왔소. 천하에 우리나라와 겨룰 수 있는 나라는 오직 위나라(북위)뿐이거늘…(중략)… 하물며 동이의 조그만 맥국(고구려)은 우리의 신하인데 어찌 감히 우리랑 나란히 선단 말이오'

유사효 역시 위나라 남부상서 이사충에게 '우리는 위나라에 이런 적이 없었소.'라고 하자 사충이 답하였다.

'정사와 부사 모두 전 위에 오르지 못했을 뿐이지 이 자리도 충분히 높은 자리이니 이 정도도 족히 갚음이 될 것이오'[60]
《남제서(南齊書)》 〈동남이열전〉 고구려.

정시 연간[61]에 세종[62] 이 동쪽 당사에서 고구려의 사신 예실불을 인견하니, 실불이 말하였다.

'고려는 하늘과 같은 정성으로…(중략)… 황금은 부여에서 나고, 가[63]는 섭라[64]에서 생산됩니다. 이제 부여는 물길에게 쫓겨났고 섭라는 백제에게 합병되었는데…(중략)…지금 두 가지 물건을 올리지 못하는 것은 사실 두 도적들 때문입니다.'

하자, 세종이 말하였다.

“고려가 대대로 상장(上將)의 직함을 가지고 해외를 마음대로 제어하여 교활한 오랑캐인 9이(九夷)를 모두 정벌하여 왔소, 술병이 비는 것은 술동이의 부끄러움이라고 하니 그것이 누구의 허물이겠소? …(중략)…위압과 회유의 방략을 다하여 못된 무리들을 멸망시키고 동방의 백성들을 편안케 하여, 두 읍을 옛 터로 돌아가게 하고 그 지방의 토산물을 항상 바치는 공물에서 빠짐이 없게 하오.”[65]
《위서》 〈열전〉 고구려
15만 군대가 내달리고 깃발이 30리에 뻗쳤다. 연기와 불꽃이 하늘에 닿은 것이 누런 뱀이 흙먼지를 토하듯 하였고 기병들이 들판을 뒤덮은 것이 마치 붉은 개미떼와 같았다(有徒十五萬, 連旗三十里. 烟火稽天, 若黄虵之吐霧. 彀騎横野, 邁赤蟻之爲羣)[66]
《전당문》

초기의 고구려는 작은 나라였다. 졸본의 성읍 국가였으며, 4세기까지만 해도 한반도 북부와 남만주 일대의 유력 세력에 불과했다. 하지만 미천왕, 소수림왕, 광개토대왕, 장수왕 등 연이은 명군들의 치세를 거치면서 한강 유역을 포함한 한반도 중·북부과 요동, 만주를 아우르는 강력한 대국으로 성장했다.

전성기의 고구려는 백제를 정벌하여 멸망에 준하는 피해를 입히는 한편 백제, 가야, 왜 연합군으로부터 신라를 구원하여 신라를 사실상 속국으로 삼았다. 북으로는 동만주, 연해주 일대의 말갈 세력 대부분과 요서, 내몽골 일대의 거란 세력 일부를 복속시켜 고구려의 세력권에 편입시켰다. 요동을 차지한 후에는 중국 왕조들도 함부로 대하지 못할 정도의 힘을 가지게 된다.

이 시기 고구려는 아시아 전역을 범위로 잡아도 그 존재감이 뚜렷할 만큼 위상이 높았고 강대국으로 군림하였다. 명실상부 자타가 공인하는 한반도와 요동, 만주 지방의 지역 패권국이었다. 그러나 동아시아 최강국이었던 중국 통일 왕조들의 침략을 70여 년 가량 막아내면서 국력은 지속적으로 소모되었고[67], 진흥왕 이후 급성장해 백제를 밀어내고 고구려와 한반도 패권을 두고 경쟁하게 될 신라와의 외교에 실패함과 동시에 군사 면에서도 신라 방면으로 뚜렷한 성과를 내지 못했다. 특히 660년의 백제 멸망과 663년 백제부흥운동의 좌절로 인해 양면전선의 불리함이 가중되었으며, 여기에 연개소문 사후 그 아들들의 분열이 겹치면서 정치적 소요 사태가 크게 발생했으며 결국 당나라, 신라의 공격을 받아 멸망하였다.
건국 직후 고구려는 인구 3~6만호 남짓한 현도군의 변방, 압록강 상류의 험준한 산지에서 인구를 부양하며 국력을 어렵사리 키워나가는 판국이었다.[68] 그러다가 초기에는 간도를 차지하고 송화강과 요하 일대에 있는 동북 평원과 평안도, 황해도 등의 비옥한 땅을 석권하면서 전성기에 접어들고 높은 생산력을 갖추게 되었고 멸망 당시에는 대전을 치르고도 70만호를 남기는 여력이 구당서 신당서에 기록되어 있다. 동시대 남조 대다수의 국가의 집계 인구가 50~90만호 사이를 왔다갔다 하는 수준의 체급이었다는 것을 생각한다면 고구려가 얼마나 건실하게 국력을 길러왔고 또 그것을 철저하게 관리해왔는지 알 수 있다. [69]
고구려 초기에는 20,000~30,000명의 침공병력조차 버거워서 나라가 휘청였지만 중반기 이후에는 이 정도의 병력은 오히려 고구려가 외지에 여유롭게 투사할 수 있는 병력이 되었다. 또한 일거에 수십만 대군을 동원하고 야전에 투입하는 모습을 보일 정도로 체급 면에서 비약적인 성장을 이루었다. 전성기에 접어들면서 대외적으로 백제와 가야를 굴복시키고 신라를 복속했고 중국으로부터도 한반도와 만주 지역의 패권을 인정받았으며 나아가 만주와 내몽골, 연해주 일대에 말갈, 거란, 실위 등을 두고 요긴하게 활용하거나 공존하고 혹은 그들에게 강력한 패권을 행사하여[70] 일부는 멸망 때까지 고구려와 운명을 같이하고 발해 건국의 초석이 되기도 했다. 후대에 요나라, 금나라, 원나라, 청나라를 생각한다면 이들을 통제한 고구려의 저력이 상당했음을 방증한다. 하지만 이중/삼중 전선의 문제 역시 해결되지 않았기에 고구려는 끝내 백제나 신라를 완전 병탄하여 자력에 의한 한반도 통일을 이룩할 수는 없었다.
초창기 중국의 대 고구려 외교 및 무력 투사는 군현의 태수, 일개 주의 자사 선에서 정리되는 일이었다. 하지만 6세기 이후에는 황제를 위시한 중앙 관료들이 직접 나설 뿐 아니라 세계 최대를 자랑하는 중원의 물자와 인력을 총동원해야 할 정도의 상대가 되었다.[71] 고구려 자신은 유목민족 세력이 아니었음에도 불구하고 오랜 기간 중국의 북쪽 및 북동쪽 유목민족 전반에 대해 강한 지배력을 행사했으며, 대륙 세력들이 치고받는 중심지에서 살짝 비껴난 입지와 착실히 쌓아온 전적까지 더해져서 상당한 대접을 받았다. 특히 고구려의 국왕은 중국 황실에게 동이교위라는 관작을 받았는데, 이는 중국이 고구려 국왕을 동이 지역의 최고 패권국 수장임을 공인한것이다. 유연, 남조를 쥐어패는데는 망설임이 없던 탁발선비의 북위는 고구려에게 압박이나 도발을 받고도 대결을 피했고 오히려 남조와 동등한 의전으로 달랬으며 백제나 탐라(신라), 말갈, 거란 등에 대한 패권을 인정하기도 했다. 북제와 북주, 유연을 굴복시킨 돌궐 제1제국을 상대로는 고구려가 승리하여 이웃 국가로서 대등하게 병존하였다. 그 돌궐을 무너뜨린 수나라는 이러한 병존적인 질서를 뒤엎고 새로이 판을 짜다가 고구려를 상대로 수백만의 대군을 쏟아넣는 등 국력을 고갈하여 멸망하였다. 당나라 역시 고구려가 실질적으로는 신하국이 아님을 자각하고, 중화사상을 배제한 대우를 논의하기도 하였으며 고구려를 상대하다 나라가 휘청였고, 가까스로 멸망시킨 후에도 이를 건사하지 못하고 국방력의 고갈이 현저해진다.[72] 중국에서도 고구려의 인상은 그 뒤로도 깊게 남아있어서 여몽전쟁 당시 몽골 제국 쿠빌라이 고려가 항복하자 당태종도 어찌하지 못한 나라의 항복을 받아냈다며 기뻐했고[73][74]
, 조선 초기에 조준 을지문덕 살수대첩으로 시를 써놓자 명나라 사신이 굴욕을 느낀 적이 있으며, 임진왜란 당시 조선이 명나라에 지원 요청을 하니 명나라 조정에서는 고구려의 후예들이 20여 일 만에 수도를 뺏기고 의주까지 도망쳤을 리가 없다며 진상조사단을 파견하는 해프닝도 있었다.
이렇듯 당시 고구려는 동북아시아의 패권국이었으며 동시에 여러 유목민족을 자기 뜻대로 거느린 국가였다. 고구려는 중국이 여러 난세를 거칠 때도 꿋꿋이 세력을 키웠고 5호 16국 같이 갈기갈기 찢어졌을 때는 후연과 직접 겨루는 등 중국 안쪽으로도 영향력을 끼쳤으며( 광개토 대왕) 중국이 남북조 시대로 개편되자 힘의 차이를 인정하고 적당히 밑으로 들어가면서도 자신들의 힘을 과시 했다.( 장수왕) 중국 통일 왕조가 들어선 후에는 유목민과 연합하여 직접 선제 공격을 하는 등( 영양왕) 동북아시아의 패권국임을 여실히 드러냈다. 종합해보면 중국의 통일왕조가 심혈을 기울여 전쟁을 수행해야 했던 유일한 한민족 국가이며 동아시아 전체로 범위를 넓혀봐도 유사 이래 이정도 국력을 지닌 국가는 중원 왕조를 제외하면 열 군데도 채 되지 않으며,[75], 중국 통일 왕조가 그 시대 최고의 물적, 질적 우위를 지니고 있는 채로 총력전을 벌였음에도 대등하게 싸운 국가로 따지면 다섯 손가락이 채 안된다.[76]

10. 지리

10.1. 영역과 행정구역

파일:천재 고구려.png
파일:비상 고구려 강역.png
전성기 고구려의 강역을 나타내는 검정 역사 교과서의 지도들.
천재교육 역사 교과서의 고구려 영토 지도(좌), 비상 역사 교과서의 고구려 영토 지도(우).

고구려의 영토는 수도와 지방을 각각 5부로 나눴다.[77] 수도 5부의 경우, 고구려의 주요 부족집단이었던 5부(계루부, 연노부, 절노부, 관노부, 순노부)가 고국천왕에 의해 행정구역인 5부로 정리된 것으로, 각각 방위의 이름(동, 서, 남, 북, 중)을 가졌다. 지방 5부의 경우 욕살(褥薩, 지방관)이라고 하는 대표를 두어 다스렸다. 부의 아래에는 대성(大城), 중성(中城), 소성(小城)을 두었는데, 각 성을 다스리는 처려근지(處閭近支, 중국식으로는 '도사')를 두어 넓은 영토를 효율적으로 관리했다. 욕살과 처려근지는 모두 어떤 관직을 뜻하는 순우리말( 고대 한국어, 고구려어)을 한자를 빌려 표기한 것으로, 원음은 알 수 없다.

고구려는 4세기 이전까지는 압록강 북부~함경도에 걸쳐 있던 소국이었으나, 미천왕을 시작으로 광개토대왕, 그리고 장수왕 문자명왕 대에 전성기를 맞이했다. 중국 군현의 터를 몰아내면서 한반도 북부 전역을 지배하고, 서쪽으로는 요동을 차지하고 요하를 건넜으며 남쪽으로는 한강을 포함한 한반도 중부 지방까지 정복했고, 북쪽으로는 송화강 유역의 상당 부분을 차지했다. 그 대략적인 기록은 다음과 같다.
十四年 冬十月 侵樂浪郡 虜獲男女二千餘口
재위 14년 10월, 낙랑군을 공격하여 남녀 2,000명을 사로잡았다.
十六年 春二月 攻破玄菟城 殺獲甚衆
재위 16년 2월, 현도성을 함락시켜 많은 사람을 죽이고 사로잡았다.
《삼국사기》 제17권 〈고구려 본기〉 제5( 미천왕)
冬十月 攻陷百濟關彌城 其城四面峭絶 海水環繞 太王分軍七道 攻擊二十日 乃拔
(재위 원년) 10월, 백제 관미성을 공격해 함락시켰다. 관미성은 사방이 절벽으로 되어 있고 바다로 둘러싸였는데, 태왕이 군대를 일곱 방면으로 나누어 20일만에 빼앗았다.
十一年, 太王遣兵攻宿軍 燕平州刺史慕容歸 棄城走
재위 11년 태왕이 병사로 하여금 숙군을 치게 했다. 연나라의 평주 자사인 모용귀가 성을 버리고 달아났다.
《삼국사기》 제18권 〈고구려 본기〉 제6( 광개토대왕)
九月 太王帥兵三萬 侵百濟 陷王所都漢城 殺其王扶餘慶 虜男女八千而歸
(재위 63년) 9월, 태왕이 친히 군사 30,000명을 거느리고 백제를 공격해 수도 한성을 함락시켰다. 부여경( 개로왕)을 죽이고 남녀 8,000명을 사로잡아 귀환했다.
《삼국사기》 제18권 〈고구려 본기〉 제6( 장수왕)

장수왕에서 문자명왕 대에 고구려는 남으로는 평택 아산만에서 경상북도 일부, 북쪽으로는 북부여에 이르는 영토를 손에 넣고 일대의 말갈 및 실위를, 동쪽으로는 책성을 중심 거점으로 말갈을 지배했고 서쪽으로는 요하를 건넜다. 이 밖에 고구려계 왕족인 고운이 북연의 천왕이 되었고, 변경의 말갈, 두막루와 실위를 군사적 영향권 아래 두었다. 백제는 한성이 함락되자 웅진성으로 수도를 옮겼으며, 신라는 의 침략에 시달려 광개토대왕의 지원군을 받는 등, 고구려는 동아시아의 강대국으로 거듭났다. 이러한 정세는 수나라가 중국을 통일하고 고구려 원정을 시도하기까지 계속된다. 이와 관련한 고고학적 증거로는 지안의 광개토대왕릉비, 충주의 충주 고구려비, 신라 호우총 등이 있다.
"동쪽으로 바다를 건너 신라에 이르고, 서북쪽으로 요수를 건너 영주에 이르며, 남쪽으로 바다를 건너서 백제에 이르고, 북쪽으로 말갈에 이른다. 동서 3,100리이며, 남북 2,000리이다."
구당서
其地後漢時方二千里. 至魏南北漸狹, 纔千餘里. 至隋漸大, 東西六千里.
후한 때에 사방 2,000여 리였다. 대에 이래로 남북이 점점 축소되어 겨우 1,000여 리였으며, 수대 이래로 동서 6,000여 리로 확대되었다.
《통전》 제186권 〈변방〉 2
파일:goguryeo_seong.jpg
고구려의 주요 도성.

고구려는 전성기 이래로 요하~송화강 선을 국경으로 고수하는 것이 아니라 거란, 말갈, 실위, 지두우 등을 복속시키거나 군사적인 영향권 안에 두고 중원 세력과 요서의 지배권을 다투면서 동몽골, 북만주, 요서 등지의 진출을 단행하였다. 그러나 사료의 부족으로 지리를 상고하기 힘들고, 이탈과 복속이 일정치 않아서 구체적인 비정에는 어려움이 따른다.
파일:이인철 고구려의 부여와 말갈 통합 지도.png
한국 역사 교과서(이인철)의 고구려 지도
말갈 영역 상당 부분을 고구려 영토에 포함시킨 지도이다.[78]

고구려의 강역은 성곽을 깔아놓고 조밀하게 통치하는 구역만이 있는 것이 아니라 드문드문 거점을 두고 통치하는 구역, 세력들의 복속을 통한 간접지배를 통해 통치되는 구역도 있다. 이에 대한 해석에 따라 상이한 강역 비정이 나오곤 하는데 이 지도는 후기 부여, 말갈이 위치한 연해주와 동북만주 일대에만 신경을 썼지만 흥안령, 동몽골, 요서 등 다른 지역에도 비슷하게 견해 차이로 강역 비정이 달라지곤 한다.
파일:천리장성.jpeg-231.jpg

고구려의 천리장성 위치만 보더라도 요하강이 있는 곳에 쌓았다는 점. 송화강쪽에는 장성을 쌓지 않았다. 요하강과 송화강 사이에 강이 없는데 결정적으로 거란이 이쪽으로 우회해 쳐들어와 발해가 함락되었다. 4군 6진의 압록강과 두만강처럼 방어하기는 좋지만 국경이 넓어져 여러 문제가 생긴다. 이를 다 해결한다고 해도 후에 만주족(후금)이 청나라까지 세우게 되어 요동을 유지하기는 쉽지 않았을 것으로 보인다. 당대 지도부들도 어쩔 수 없이 이를 포기하고 압록강과 두만강 사이에서 한반도만 지키기로 결정했었다는 것. 진시황때 부터 쌓은 만리장성 조차도 북방유목민족이 넘어와 매번 침략을 당했으니.

차지했던 남만주 지역은 산지 비율이 많다. 그렇기에 사람이 살기 어렵다. 북만주나 요동쪽이 평야 비율이 많다. #
파일:조선력사 고구려 (1960년대).png
파일:조선력사_고구려.jpg
북한 역사 교과서 《조선력사》에 나타난 고구려 강역.
왼쪽은 1960년대, 오른쪽은 비교적 최근의 것이다.

한편, 북한의 경우 당국의 정책에 따라 역사관이 변화하였다. 서울특별시를 아직 명목상의 수도로 정하고 있던 1960년대의 북한은 다른 사회주의 국가가 그렇듯 유물론적 역사관을 채용하여 고대 노예제 국가에 불과한 고구려를 크게 평가하지 않았고, 영토 비정에서도 사료에서 명확히 드러나는 사항외의 추측은 자제하는 것이 관찰된다. 그러나 김일성이 1인 독재 체제를 완전히 굳히고 휴전이 장기화된 70년대 이후 북한에서는 평양을 중심으로 하는 고조선이나 고구려의 존재를 부각시킴으로써 역사적, 민족주의적 정통성을 제고하려는 움직임이 일어났는데, 한 예로 단군 신화가 미신에 불과하다고 여기던 것에서 단군릉을 피라미드 형태로 개축하고 실존 인물임을 인정한 점 등이 있다. 최근의 역사 교과서에서 북한은 "고구려가 차지한 령역은 서북-내몽골 동부, 북-흑룡강 남쪽 류역, 동북-우쑤리강 류역을 넘어 흑룡강 하류, 남-아산만으로부터 청하계선에 이르게 되였다. 즉 동족의 나라 전 령토의 90%를 차지하였다."고 서술하며, 말갈, 거란, 실위 등 북방 민족을 고구려의 영역으로 통합시켜 매우 방대한 영토를 가진 것으로 해석한다. #

아래 표는 《 삼국사기》 권37, 지리지 #에서 확인가능한 압록강 이북의 고구려 시대의 성이다.
명칭 명칭 비고
[ruby(助利,ruby=조리)][ruby(非西,ruby=비서)] [ruby(北,ruby=북)][ruby(扶餘,ruby=부여)][ruby(城,ruby=성)] 끝까지 항복 안 한 11성 중 한 곳
안동도호부 북부여성주(北扶餘城州)?
[ruby(蕪子,ruby=무자)][ruby(忽,ruby=홀)] [ruby(節,ruby=절)][ruby(城,ruby=성)] 끝까지 항복 안 한 11성 중 한 곳
[ruby(肖巴,ruby=초파)][ruby(忽,ruby=홀)] [ruby(豊夫,ruby=풍부)][ruby(城,ruby=성)] 끝까지 항복 안 한 11성 중 한 곳
[ruby(仇次,ruby=구차)][ruby(忽,ruby=홀)] [ruby(新,ruby=신)][ruby(城,ruby=성)]/[ruby(敦,ruby=돈)][ruby(城,ruby=성)] 끝까지 항복 안 한 11성 중 한 곳
안동도호부 신성주(新城州) 도독부
[ruby(波尸,ruby=파시)][ruby(忽,ruby=홀)] [ruby(桃,ruby=도)][ruby(城,ruby=성)] 끝까지 항복 안 한 11성 중 한 곳
[ruby(非,ruby=비)][ruby(達,ruby=달)][ruby(忽,ruby=홀)] [ruby(大豆,ruby=대두)][ruby(山,ruby=산)][ruby(城,ruby=성)] 끝까지 항복 안 한 11성 중 한 곳
[ruby(烏列,ruby=오열)][ruby(忽,ruby=홀)] [ruby(遼,ruby=요)][ruby(東,ruby=동)][ruby(城,ruby=성)] 끝까지 항복 안 한 11성 중 한 곳
안동도호부성주(遼城州) 도독부
屋옥城성 끝까지 항복 안 한 11성 중 한 곳
안동도호부 옥성주(屋城州)
[ruby(白,ruby=백)][ruby(石,ruby=석)][ruby(城,ruby=성)] 백암성(白岩城)?
끝까지 항복 안 한 11성 중 한 곳
[ruby(多,ruby=다)][ruby(伐,ruby=벌)][ruby(嶽,ruby=악)][ruby(城,ruby=성)] 끝까지 항복 안 한 11성 중 한 곳
안동도호부 다벌악주(多伐嶽州)?
[ruby(安十,ruby=안십)][ruby(忽,ruby=홀)]/[ruby(安寸,ruby=안촌)][ruby(忽,ruby=홀)] [ruby(安市,ruby=안시)][ruby(城,ruby=성)]/[ruby(丸,ruby=환)][ruby(都,ruby=도)][ruby(城,ruby=성)] 끝까지 항복 안 한 11성 중 한 곳
안동도호부 안시주(安市州)
양암성 안동도호부 창암주
목저성 안동도호부 목저주
수구성
남소성 안동도호부 남소주
감물이홀 감물주성 안동도호부 가물주도독부
능전곡성
거시압 심악성
불내 國국內내城성/위나암성 안동도호부 국내주(國內州)
초리파리홀 설부루성
골시압 후악성
자목성
내물홀 연성
면악성
개서압홀 아악성
감미홀 취악성
적리홀 적리성 안동도호부 적리주
소시홀 목은성
가시달홀 이산성
甲갑忽홀 穴혈城성 뚫은 3성 중 1곳
折忽절홀 銀은城성 뚫은 3성 중 1곳
소시홀 사성 뚫은 3성 중 1곳

안동도호부는 9도독부+42개 주=51개 주[79]로 구성되어 있지만 32개만 확인되는데, 압록강 이북으로 서술을 한정한 영향으로 보인다. 나머지 19개 주는 확실하지 않지만 압록강 이남 한사군의 현을 그대로 계승했을 가능성이 있다[80]. 또한 발해의 행정구역으로도 족보가 이어진 것으로 추정된다.

11. 외교

파일:고구려 군기.svg 고구려의 대외관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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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 멸망과 유민

중원 왕조들과의 피비린내 나는 국가간 총력전부터 시작해서 이남의 신라와 전선을 수십년간 맞대었던 고구려는 멸망 시점인 668년에 인구가 69만 7천여 호(戶)로 급감하게 된다.[81] 그 상태에서 고구려 유민들은 주로 신라, 발해, 등으로 뿔뿔히 흩어졌으며 고토에 잔류하거나 을 탈출해 발해에 합류한 유민들은 훗날 발해 유민의 형태로 고려, 요나라, 금나라 등에 편입되기에 이른다. 더러는 말갈, 돌궐, 왜국 등으로 도피하였지만 수는 위의 세 부류[82]에 비하면 얼마되지 않았다. 이렇듯, 고구려 유민들의 거취는 대규모 망명, 강제 이주, 부흥운동의 여파로 여러 국가에 걸쳐져 있었다.[83] 타향으로 끌려가거나 객지에 머물게 된 고구려 유민들은 시간이 지남에 따라 고구려인으로서의 의식이 희석돼 현지 사회에 동화되는 양상이었다. 그렇기에 최종적으로 고구려의 적통을 잇게 된 건 고구려인으로서의 정체성을 끝까지 보존해 종국에는 고려를 건국한 신라 내의 일파들이다.[84] 이들은 동족인 발해인들의 합류에 힘입어 백제인, 신라인과 더불어 한민족(韓民族)의 원류(原類)를 구성하는 세 축 가운데 하나가 되었으며 나아가 통일신라가 실패했던 세분화된 종족 정체성의 통합을 이루어내게 된다.[85]
첫째로는 신라에 흡수된 일파이다. 신라가 영역화해서 그대로 편입된 인구[86], 멸망 직전 연정토가 바친 고구려 남부의 12성 700호의 주민 3,543명[87], 안승을 따라 신라로 남하해 귀부한 4천여 호[88], 고구려부흥운동 세력[89]의 대다수와 이들하고 연계한 고구려의 반당(反唐) 백성들, 그리고 당나라 영주에서 탈주한 고구려 유민 가운데 발해에 합류하지 않고 패서에 정착한 고구려 유민[90] 등으로 구분할 수 있다. 이렇듯 진흥왕 대부터 고구려 멸망 직후인 검모잠 안승 고구려부흥운동 시기까지 신라에 편입된 고구려인들의 규모는 무시못할 정도로 거대했을 것으로 추정된다.[91][92] 고구려가 멸망하기 직전에 신라가 무탈하게 차지해서 편입시킨 한성(漢城) 일대[93]와 패서(浿西) 지역[94]은 고구려의 심장부이자 내지(內地)로 일컬어지는 인구 밀집지였다. 이러한 이상적인 조건 때문에 고구려 멸망 이후 남부의 부흥운동 세력[95]이 한성과 패서 일대를 근거지로 삼았고, 먼 훗날에는 고구려 유민 출신의 패서 호족들이 태동할 수 있었다. 당나라의 직접 통치를 피해 달아난 반당(反唐) 성향의 고구려인들[96][97], 고구려 부흥운동의 잔당 세력[98], 당나라에서 이탈해 신라로 탈출한 무리들[99]까지 합세하면서 임진강 일대와 그 이북은 사실상 고구려 유민들을 주류로 하는 반자치적인 보금자리 혹은 엔클레이브로 남게된다.[100][101] 한편, 안승 고연무를 위시로 한 고구려 부흥운동 세력의 한 일파는 구 백제의 수도권 지역인 금마저 보덕국을 세우면서 존속하다가 신문왕에 의해 서라벌과 남쪽 변방[102] 등으로 철저하게 사민당한 탓에 고구려인으로서의 정체성을 상실하고 만다.[103] 상술한 두 부류의 고구려 유민들에 비하면 존재감은 낮지만 영동의 고구려계 유민들도 신라에 편입되면서 존속하다가 훗날 고구려계 호족들이 세운 고려에 합류하였다.[104] 종합해보면, 신라에 흡수된 고구려인들 중 보덕국을 구성했던 이들과 전쟁 포로로서 서라벌로 사민된 이들[105] 외의 대다수는 현재의 임진강과 그 이북인 패서 지역에서 통일신라의 구성원으로 살다가 몇백년 뒤 신라가 흔들릴 때 일어나서 후고구려( 태봉)를 세웠다. 그리고 이는 최종적으로 왕건[106]이 세운 고려로 이어지게 된다. 발해가 멸망한 뒤로 고구려의 적통은 사실상 신라에 편입되어 훗날 고려를 건국한 고구려 유민들에 의해서 계승된다.[107][108][109] 이러한 계승 의식은 훗날 직계 후손인 한민족에게로 이어져 고구려가 국내외에서 온전히 한국사로 인정받는 중요한 원천이 되었다.[110][111][112]
둘째로는 발해 건국과 함께 발해인이 된 사람들이다. 다만 발해는 고구려 멸망 이후 30년 뒤에 건국되었고, 발해 건국의 주체들은 한때 당나라 내지로 끌려갔던 고구려 유민들이었다. 고구려를 멸망시켰음에도 결과적으로 당은 서쪽 토번의 위협으로 옛 고구려의 땅인 요동을 계속 장악하는 것에 실패했고, 영주에 사민된 고구려 유민들은 말갈족[113]과 함께 탈출, 동쪽으로 이동해 동만주 일대에 발해를 건국한다. 이후 발해가 초기 영역을 중심으로 확장하면서 요동과 동만주 일대에 머물러 있던 옛 고구려 유민들을 흡수하고 주변 말갈족들을 복속하였다. 그러나 발해는 926년 거란의 침공으로 멸망하게 되는데, 이때 발해인들은 보통 세 갈래로 또다시 갈라져서 운명을 달리하게 된다. 자신들을 정복한 새로운 열강인 요나라에 귀속된 부류, 한반도의 후삼국을 통일한 남방의 또다른 고구려계 왕조인 고려에 대규모로 이주한 부류, 발해 고토에 잔류해 요나라의 지배를 받다가 금나라 건국 이후 말갈의 후신인 여진족에 동화된 부류가 그것이다. 요나라나 금나라에 복속된 발해 유민들은 성향에 따라서 정체성을 유지한 쪽[114] 거란족 혹은 여진족에 협조하면서 동화된 쪽[115][116]으로 또 나뉘게 되는데, 이 과정에서 발해인들의 지속적인 저항이 꾸준히 일어나 내부에 혼란을 초래하기도 하였다. 다만 발해인들이 해당 나라 내에서 전체 인구의 한 축을 담당하고 한인(漢人)들과 더불어 선진 문물의 전수를 통해 요나라의 사회문화적 발전을 주도한 점은 특기할만 한 점이다. 이들의 대다수는 최종적으로 여진족이나 거란족, 그리고 한족 집단으로의 동화를 거치면서 궁극적으로는 융화된다. 한편, 고려에 투화한 발해 유민들은 요나라나 금나라에 복속된 발해인들과는 달리 같은 고구려계로서의 동질감과 고려 태조 대부터 지속적이고 일관된 포용 정책 덕분에 쉽고 빠르게 고려 사회에 적응하였다.[117][118] 규모를 헤아릴 수 없을 만큼 많았던 발해 유민들의 수[119][120][121]에도 불구하고 신라계나 백제계처럼 부흥을 명분으로 한 봉기가 일어나지 않았음을 생각하면 고려 내의 발해인들이 일찍이 주류로 편입되었음을 알 수 있다.[122] 이는 툭하면 현지의 거란족이나 여진족과 갈등을 빚었던 요나라, 금나라의 발해인들과의 가장 결정적인 차이점이다. 일각에서는 고려의 후삼국 통일의 원동력으로 발해 유민들을 꼽기도 하는데, 수뇌부의 다수가 전사하고 왕건 본인이 겨우 목숨만 건져서 돌아온 공산 전투의 궤멸적인 피해에도 불구하고 다시금 태세를 정비할 수 있었음에는 고려에 유입된 압도적인 수의 발해 유민이라는 인적 자원이 있었다는 것이다.[123] 고려에 정착한 발해인들은 주로 북진 정책의 일환으로 다시금 개척된 북방 지역[124]과 패서 지역[125]에 정착했으며 일부는 남쪽 영토[126]에도 대거 자리잡아 훗날 한민족의 원류에 흡수, 현대 한국인들의 조상이 된다.[127][128][129]
셋째로는 당나라 내부로 옮겨진 인구 중 발해에 합류하지 않은 집단으로, 연개소문의 아들들 및 연비 등 그 후손들, 그리고 당나라 군인으로 활동한 고선지 이정기가 여기에 해당한다. 당나라는 나당전쟁으로 갈라선 신라의 삼국통일을 인정하지 않아 725년 당현종의 태산 봉선의식 때까지도 고구려와 백제의 구 왕족을 '고려조선왕'과 '백제대방왕'으로 형식상 존치시켜 당나라 경사(장안)에 거주시키는 등 내신지번으로 삼아 이용했다. 이들은 당에서 대를 거듭하고 8~9세기를 거치면서 당나라 사회에 동화, 중국인 집단으로 스며들었다.[130] 당 내지로 끌려간 고구려인들의 수[131][132]가 수인만큼 당시 고구려인들의 존재는 당 내에서 상당한 파급력을 낳았다. 당나라의 내지 각지로 이주된 고구려 유민들은 새로운 땅을 개척하는데 이용되거나 빈 땅을 채워 주민 사회를 형성하는데 기여한 바가 있어 당나라 황실에서조차 높이 평가했을 정도였다. 당장 고선지나 이정기의 사례에서 알 수 있듯이, 어떤 이들은 당나라를 위해 헌신하며 당의 팽창과 발전에 기여했고, 반대로 자치적인 항거 세력을 구축해 당 조정에 도전하기도 하였으며, 더러는 걸걸중상이나 대조영처럼 상당수가 당에서 이탈해 발해, 신라, 말갈 등에 투화하였다. 그러나 탈주하지 못하고 당나라 내지에 잔류한 고구려 유민 다수는 타국의 피지배층이 된 이민족으로서의 궁핍한 삶을 살아야만 했다.[133] 당장 당나라 조정에 입신양명한 몇 안되는 고구려 유민 출신의 신하였던 왕모중도 처음에는 노비였다. 궁극적으로 당나라 내지의 고구려 유민들은 신라 발해에 편입되었던 고구려인들과 달리 고구려인으로서의, 나아가 고구려의 유예(流裔)로서 최소한의 자각조차 없는 채로 한족에 서서히 동화되었다.
넷째로는 요동 평양, 평안도 지역에 계속 남은 집단인데 여기는 본래 황해도/평안남도와 함께 고구려의 삼경(三京)[134]을 이루는 핵심 지역[135] 중 하나였지만 수나라- 당나라 고구려 부흥군, 신라군이 얽히고 설킨 오랜 전쟁과 혼란으로, 《신당서》에 의하면 나당전쟁까지 끝난 시점의 요동에는 늙고 빈곤한 자만 남겨두고(弱窶者留安東), 나머지는 당나라 내지로 가능한 이주시킨 것으로 되어 있어 이 지역의 고구려계 유민 사회는 크게 위축되었으며, 특히 수도였던 평양성은 황폐화되었다.[136] 당나라로 강제이주 조치된 요동의 유력 민호들은 당나라의 관할에 들어간 항복한 11개의 성(城)에서 나왔을 것으로 추정된다. 한편, 요동과 압록강 이북의 안시성, 요동성, 오골성, 신성 등 항복하지 않은 성(城) 11곳은 고구려부흥운동이 실패한 시점에서 신라에 귀부하거나 당나라에 의해 점거당했을 때 말갈 등으로 탈출하기도 하였다.[137] 요동과 평양성의 고구려 유민들은 거주 인구가 없지는 않았지만 훗날 고려가 복원하기 전까지 비중은 다소 떨어진다. 평안도 일대의 고구려인들은 고려 왕조에 의해 수복되어 한국인의 원류에 합류하였지만 발해 멸망 당시 고려에 귀부하지 않았던 요동의 잔류 고구려계들은 이민족 치하를 거치며 만주, 중국인 집단에 동화되었다.[138]
다섯째로는 몽골 고원 방면 북방 유목민 사회인 돌궐 제국으로 유입된 집단으로 고문간, 고공의 등이 이끌던 집단이 이에 해당한다. 고구려의 강토에서 먼 만큼 그 인구 비중이 낮은 것으로 보이겠지만 후일 고문간과 고공의 모두가 돌궐의 혼란을 틈타 당나라에 망명할 때 규모가 모두 합해서 만여장(萬餘帳)[139]에 달했음을 보면 적어도 일본으로 이주한 무리보다는 압도적으로 많은 숫자라고 볼 수 있다. 또한 이는 돌궐 등의 초원 일대에서 생활하다가 당나라 측에 망명한 고구려 유민의 수만 합산한 경우이기 때문에 당나라에 귀부하지 않고 북방 유목민 사회에 잔류한 고구려인들도 상당수 존재했을 것으로 추정된다. 그러나 어느 쪽이든 당나라에 망명한 부류와 돌궐 등 북방 유목사회에 잔류한 부류 모두 현지에 동화되어 고구려인으로서의 정체성을 상실하게 된다. 몽골 고원 방면으로 이주한 고구려 유민들은 대다수가 고구려의 내지(內地)나 핵심 거점 출신이 아닌 지리적으로 북방과 인접한 북만주 일대 성읍들에서 나왔을 것으로 추정된다. 당장 압록강 이북에 위치한 고구려의 주요 성읍 32곳 가운데 내미홀성(乃勿忽城)처럼 도망한 성읍이 7곳이나 되었으니 상술했다시피 몽골 등지로 이주한 고구려 유민들은 이들 도망한 성읍들을 출신으로 두었을 것으로 추정된다.
여섯째는 일본으로 이주해 간 집단으로, 《 신찬성씨록》에서 52개의 고구려계 씨족이 확인된다. 대부분은 일본인에 동화됐지만 코마 후미야스처럼 일부는 정체성을 유지하고 있다.[140][141] 고마 신사 등이 일본에 귀부한 고구려 유민의 흔적이다. 다만 지리적 여건도 여건이지만 당시의 시대적인 정황상 위아래로 나당 연합군에게 공격당하는 고구려의 상황 때문에 일본으로 이주한 고구려인들은 극소수에 불과하다. 멸망을 전후로 적지 않은 수의 백제인[142]과 가야인[143]이 왜국으로 피신했을 때의 규모와 비교하면 새발의 피 수준이다.

13. 역사귀속과 계승인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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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 관련 사료 목록

고구려 관련 사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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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국사기(三國史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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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소 , 원담 · 원상, · 유표 유언 · 원술 · 여포
76권 「순리열전(循吏列傳)」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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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8권 「환자열전(宦者列傳)」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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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9권 「유림열전(儒林列傳)」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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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0권 「문원열전(文苑列傳)」
두독 · 왕륭 · 하공 · 부의 · 황향 · 유의 · 이우 · 소순 · 유진 · 갈공 · 왕일 · 최기 · 변소 · 장승 · 조일 · 유량 · 변양 · 역염 · 후근 · 고표 · 장초 · 예형
81권 「독행열전(獨行列傳)」
초현 · 이업 · 유무 · 온서 · 팽수 · 삭로방 · 주가 · 범식 · 이선 · 왕돈 · 장무 · 육속 · 대봉 · 이충 · 무융 · 진중 · 뇌의 · 범염 · 대취 · 조포 · 상허 · 양보 · 유익 · 왕열
82권 「방술열전(方術列傳)」
임문공 · 곽헌 · 허양 · 고획 · 왕교 · 사이오 · 양유 · 이남 · 이합 · 단예 · 요부 · 절상 · 번영 · 당단 · 공사목 · 허만 · 조언 · 번지장 · 선양 · 한열 · 동부 · 곽옥 · 화타 · 서등 · 비장방 · 소자훈 · 유근 · 좌자 · 허자훈 · 해노고 · 장초 · 왕진 · 학맹절 · 유화평
83권 「일민열전(逸民列傳)」
상장 · 봉맹 · 주당 · 왕패 · 엄광 · 정단 · 양홍 · 고봉 · 대동 · 한강 · 교신 · 대량 · 법진 · 한음노보 · 진류노보 · 방공
84권 「열녀전(列女傳)」
환소군 · 조아(趙阿) · 반소 · 이목강 · 조아(曹娥) · 여영 · 마륜 · 조아(趙娥) · 순채 · 조원강 · 숙선웅 · 채염
85권 「동이열전(東夷列傳)」 86권 「남만서남이열전(南蠻西南夷列傳)」 87권 「서강전(西羌傳)」
부여국 · 읍루 · 고구려 · 북옥저 · · 남만 · 서남이 서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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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미국 · 우전국 · 서야국 · 자합국 · 덕약국 · 안식국 · 대진국 · 대월지국 · 고부국 · 천축국 · 동리국 · 율과국 · 엄국 · 엄채국 · 사거국 · 소륵국 · 언기국 · 포류국 · 이지국 · 동저미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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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흉노 오환 · 선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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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서(魏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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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권 「무제기(武帝紀)」 2권 「문제기(文帝紀)」
조조 , 조등 왕준, 조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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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권 「후비전(后妃傳)」
무선황후 · 문소황후 · 문덕황후 · 명도황후 · 명원황후
6권 「동이원유전(董二袁劉傳)」 7권 「여포장홍전(呂布臧洪傳)」 8권 「이공손도사장전(二公孫陶四張傳)」
동탁 , 이각 곽사 마등 한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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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손도 , 공손연,
장연 · 장수 · 장로
9권 「제하후조전(諸夏侯曹傳)」 10권 「순욱순유가후전(荀彧荀攸賈詡傳)」
하후돈 , 하후무 한호 사환, · 하후연 , 하후패, · 조인 , 조순, · 조홍 · 조휴 , 조조(肇),
조진 , 조상 이승 환범 하안, · 하후상 , 하후현 이풍 허윤,
순욱 , 순의 예형, · 순유 · 가후
11권 「원장양국전왕병관전(袁張凉國田王邴管傳)」 12권 「최모서하형포사마전(崔毛徐何邢鮑司馬傳)」 13권 「종요화흠왕랑전(鍾繇華歆王朗傳)」
원환 · 장범 , 장승, · 양무 · 국연
전주 · 왕수 · 병원 · 관녕 , 왕렬 장천 호소,
최염 , 공융 허유 누규, · 모개 · 서혁
하기 · 형옹 · 포훈 · 사마지
종요 , 종육, · 화흠 · 왕랑 , 왕숙,
14권 「정곽동류장류전(程郭董劉蔣劉傳)」 15권 「유사마량장온가전(劉司馬梁張溫賈傳)」 16권 「임소두정창전(任蘇杜鄭倉傳)」
정욱 , 정효, · 곽가 · 동소
유엽 , 유도, · 장제 · 유방 , 손자,
유복 , 유정, · 사마랑 · 양습 , 왕사,
장기 , 유초 장집, · 온회 , 맹건, · 가규 , 가충,
임준 · 소칙 · 두기(畿) , 두서 악상,
정혼 , 정태, · 창자 , 안비 영호소,
17권 「장악우장서전(張樂于張徐傳)」 18권 「이이장문여허전이방염전(二李藏文呂許典二龐閻傳)」
장료 · 악진 · 우금 · 장합 · 서황 , 주령, 이전 · 이통 · 장패 , 손관, · 문빙 · 여건 , 왕상,
허저 · 전위 · 방덕 · 방육 , 조아, · 염온
19권 「임성진소왕전(任城陳蕭王傳)」 20권 「무문세왕공전(武文世王公傳)」
조창 · 조식 , 양수 정의 정이, · 조웅 조앙 · 조삭 · 조충 · 조거 · 조우 · 조림(林) · 조곤 · 조현 · 조간 · 조표 · 조정 · 조림(霖)
21권 「왕위이유부전(王衛二劉傳)」 22권 「환이진서위노전(桓二陳徐衛盧傳)」 23권 「화상양두조배전(和常楊杜趙裴傳)」
왕찬 , 진림 완우 유정, · 위기 · 유이 · 유소 · 부하 환계 · 진군 , 진태, · 진교 · 서선 · 위진 · 노육 화흡 · 상림 , 시묘, · 양준 · 두습 · 조엄 · 배잠 , 배수,
24권 「한최고손왕전(韓崔高孫王傳)」 25권 「신비양부고당륭전(辛毗楊阜高堂隆傳)」 26권 「만전견곽전(滿田牽郭傳)」
한기 · 최림 · 고유 · 손례 · 왕관 신비 , 신헌영, · 양부 , 왕이, · 고당륭 , 잔잠, 만총 · 전예 · 견초 · 곽회
27권 「서호이왕전(徐胡二王傳)」 28권 「왕관구제갈등종전(王毌丘諸葛鄧鍾傳)」
서막 · 호질 , 호위, · 왕창 · 왕기 왕릉 , 선고 영호우, · 관구검 , 문흠, · 제갈탄 , 당자, · 등애 , 주태, · 종회 , 장창포 왕필,
29권 「방기전(方技傳)」
화타 · 두기(夔) , 마균, · 주건평 · 주선 · 관로
30권 「오환선비동이전(烏丸鮮卑東夷傳)」
오환 · 선비 , 가비능, · 부여 · 고구려 · · 읍루 · 예맥 · 동옥저 · 마한 · 진한 · 변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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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서(宋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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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3권 「무제기(武帝紀)」 4권 「소제기(少帝紀)」 5권 「문제기(文帝紀)」
유유(劉裕) 유의부 유의륭
6권 「효무제기(孝武帝紀)」 7권 전폐제기(前廢帝紀)」 8권 「명제기(明帝紀)」
유준(劉駿) 유자업 유욱(劉彧)
9권 「후폐제기(後廢帝紀)」 10권 「순제기(順帝紀)」
유욱(劉昱) 유준(劉準)
※ 11권 ~ 40권은 志에 해당. 송서 문서 참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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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열전(列傳) ]
||<-6><tablewidth=100%><tablebgcolor=#3f51ba> 41권 「후비전(后妃傳)」 ||
조안종 · 소문수 · 장애친 · 장궐 · 사마무영 · 호도안 · 원제규 · 노혜남 · 왕헌원 · 하영완 · 심용희 · 왕정풍 · 진묘등 · 강간규 · 진법용 · 사범경
42권 「유목지등전(劉穆之等傳)」 43권 「서선지등전(徐羨之等傳)」 44권 「사회전(謝晦傳)」
유목지 · 왕홍 서선지 · 부량 · 단도제 사회
45권 「왕진악등전(王鎮惡等傳)」 46권 「조륜지등전(趙倫之等傳)」 47권 「유회숙등전(劉懷肅等傳)」
왕진악 · 단소 · 상정 · 유회신 · 유수 조륜지 · 왕의 · 장소 유회숙 · 맹회옥 , 맹용부, · 유경선 · 단지
48권 「주령석등전(朱齡石等傳)」 49권 「손처등전(孫處等傳)」 50권 「호번등전(胡藩等傳)」
주령석 · 모수지 · 부홍지 손처 · 괴은 · 유종 · 우구진 호번 · 유강조 · 원호지 · 장흥세
51권 「종실전(宗室傳)」
유도린 · 유도규 · 유준고
52권 「유열등전(庾悅等傳)」 53권 「장무도등전(張茂度等傳)」 54권 「공계공등전(孔季恭等傳)」
유열 · 왕탄 · 사경인(1) · 원담 · 저숙도(2) 장무도(3) , 장영, · 유등지 , 유병지, · 사방명 · 강이 공계공 · 양현보 · 심담경
55권 「장도등전(臧燾等傳)」 56권 「사첨등전(謝瞻等傳)」 57권 「채곽전(蔡廓傳)」
장도 · 서광 · 부륭 사첨 · 공림지 채곽
58권 「왕혜등전(王惠等傳)」 59권 「은순등전(殷淳 等傳)」 60권 「범태등전(范泰等傳)」
왕혜 · 사홍미 · 왕구 은순 · 장창 · 하언 · 강지연 범태 · 왕준지 · 왕소지 · 순백자
61권 「무삼왕전(武三王傳)」
유의진 · 유의공 · 유의계
62권 「양흔등전(羊欣等傳)」 63권 「왕화등전(王華等傳)」 64권 「정선지등전(鄭鮮之等傳)」
양흔 · 장부 · 왕미 왕화 · 왕담수 · 은경인 · 심연지 정선지 · 배송지 · 하승천
65권 「길한등전(吉翰等傳)」 66권 「왕경홍등전(王敬弘等傳)」 67권 「사령운전(謝靈運傳)」
길한 · 유도산 · 두기 · 신념 왕경홍(4) · 하상지 사령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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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9권 「유담등전(劉湛等傳)」 70권 「원숙전(袁淑傳)」 71권 「서담지등전(徐湛之等傳)」
유담 · 범엽 원숙 서담지 · 강담 · 왕승작
72권 「문구왕전(文九王傳)」
유삭 · 유굉 · 유창 · 유휴인 · 유휴우 · 유휴업 · 유휴천 · 유이부 · 유휴약
73권 「안연지전(顏延之傳)」 74권 「장질등전(臧質等傳)」 75권 「왕승달등전(王僧達等傳)」
안연지 장질 · 노상 · 심유지 왕승달 · 안준
76권 「주수지등전(朱脩之等傳)」 77권 「유원경등전(柳元景等傳)」 78권 「소사화등전(蕭思話等傳)」
주수지 · 종각 · 왕현모 유원경 · 안사백 · 심경지 소사화 · 유연손
79권 「문오왕전(文五王傳)」
유탄 · 유위 · 유혼 · 유휴무 · 유휴범
80권 「효무십사왕전(孝武十四王傳)」
유자상 · 유자훈 · 유자방 · 유자욱 · 유자란 · 유자인 · 유자진 · 유자원 · 유자우 · 유자맹 · 유자운 · 유자사(劉子師) · 유자소 · 유자사(劉子嗣) · 유찬
81권 「유수지등전(劉秀之等傳)」 82권 「주랑등전(周朗等傳)」 83권 「종월등전(宗越等傳)」
유수지 · 고침 · 고기지 주랑 · 심회문 종월 · 오희 · 황회
84권 「등완등전(鄧琬等傳)」 85권 「사장등전(謝莊等傳)」 86권 「은효조등전(殷孝祖等傳)」
등완 · 원의 · 공기(孔覬) 사장 · 왕경문(5) 은효조 · 유면
87권 「소혜개등전(蕭惠開等傳)」 88권 「설안도등전(薛安都等傳)」 89권 「원찬전(袁粲傳)」
소혜개 · 은염 설안도 · 심문수 · 최도고 원찬
90권 「명사왕전(明四王傳)」
유우 · 유홰 · 유숭 · 유희
91권 「효의전(孝義傳)」
공영 · 유유(劉瑜) · 가은 · 곽세도 · 자원평 · 엄세기 · 오규 · 반종 · 장진지 · 왕팽 · 장공 · 서경 · 손법종 · 범숙손 · 복천여 · 허소선 · 여제민 · 손극 · 하자평
92권 「양리전(良吏傳)」
왕진지 · 두혜도 · 서활 · 육휘 · 완장지 · 강병지 · 왕흠지
93권 「은일전(隱逸傳)」
대옹 · 종병 · 주속지 · 왕홍지 · 완만영 · 공순지 · 유응지 · 공기(龚祈) · 적법사 · 도잠 · 종욱지 · 심도건 · 곽희림 · 뇌차종 · 주백년 · 왕소 · 관강지
94권 「은행전(恩倖傳)」
대법흥 · 완전부 · 왕도륭 · 양운장
95권 「삭로전(索虜傳)」 96권 「선비토욕혼(鮮卑吐谷渾)」
삭로 토욕혼
97권 「이만전(夷蠻傳)」
임읍국 · 부남국 · 가라타국 · 가라단국 · 반황국 · 반달국 · 사파파달국 · 사자국 · 가비려국 · 고구려 · 백제국 · 왜국 · 형옹주만 · 예주만
98권 「저호전(氐胡傳)」 99권 「이흉전(二凶傳)」
구지 · 저거몽손 유소(劉劭) · 유준(劉濬)
100권 「자서전(自序傳)」
심약
(1) 본명이 사유(謝裕)로 유유의 휘를 범하여 자인 경인(景仁)으로 표기되었다.
(2)본명이 저유지(褚裕之)로 유유의 휘를 범하여 자인 숙도(叔度)로 표기되었다.
(3) 본명이 장유(張裕)로 유유의 휘를 범하여 자인 무도(茂度)로 표기되었다.
(4) 본명이 왕유지(王裕之)로 유유의 휘를 범하여 자인 경홍(敬弘)으로 표기되었다.
(5) 본명이 왕욱(王彧)으로 유욱의 휘를 범하여 자인 경문(景文)으로 표기되었다.
||<tablealign=center><tablebordercolor=#3f51ba><tablebgcolor=#3f51ba> ||
}}}}}} ||

남제서(南齊書)
{{{#!wiki style="margin: -0px -10px; margin-top: 0.3px; margin-bottom: -6px"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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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olding [ 본기(本紀) ]
{{{#!wiki style="margin: -5px -10px; padding: 7px 10px"
{{{#181818,#e5e5e5
1·2권 「고제기(高帝紀)」 3권 「무제기(武帝紀)」 4권 「전폐제기(前廢帝紀)」
소도성 소색 소소업
5권 「중폐제기(中廢帝紀)」 6권 명제기(明帝紀)」
소소문 소란
7권 「후폐제기(後廢帝紀)」 8권 「화제기(和帝紀)」
소보권 소보융
※ 9권 ~ 19권은 志에 해당. 남제서 문서 참고
}}}}}}}}}}}}
[ 열전(列傳) ]
||<-6><tablewidth=100%><tablebgcolor=#3797e8> 20권 「황후전(皇后傳)」 ||
진도정 · 유지용 · 배혜소 · 왕보명 · 하정영 · 왕소명 · 유혜단 · 저영거 · 왕순화
21권 「문혜태자전(文惠太子傳)」 22권 「예장문헌전(豫章文獻王傳)」 23권 「저연등전(褚淵傳)」
소장무 소억 저연 · 왕검
24권 「유세륭등전(柳世隆等傳)」 25권 「원숭조등전(垣崇祖等傳)」 26권 「왕경칙등전(王敬則等傳)」
유세륭 · 장괴 원숭조 · 장경아 왕경칙 · 진현달
27권 「유회진등전(劉懷珍等傳)」 28권 「최조사등전(崔祖思等傳)」 29권 「여안국등전(呂安國等傳)」
유회진 · 이안민 · 왕현재 최조사 · 유선명 · 소간 · 원영조 여안국 · 주산도 · 주반룡 · 왕광지
30권 「설연등전(薛淵等傳)」 31권 「강밀등전(江謐等傳)」 32권 「왕곤등전(王琨等傳)」
설연 · 대승정 · 환강 · 초도 · 조호 강밀 · 순백옥 왕곤 · 장대 · 저현 · 하집 · 왕연지 · 원도
33권 「왕승건등전(王僧虔等傳)」 34권 「우완지등전(虞玩之等傳)」
왕승건 · 장서 우완지 · 유휴 · 심충 · 유고지 · 왕심
35권 「고조십이왕전(高祖十二王傳)」
소영 · 소황 · 소엽 · 소고 · 소장 · 소삭 · 소감 · 소봉 · 소예 · 소갱 · 소구 · 소현
36권 「사초종등전(謝超宗等傳)」 37권 「도휘등전(到撝等傳)」
사초종 · 유상 도휘 · 유전 · 우종· 호해지
38권 「소경선등전(蕭景先等傳)」 39권 「유환등전(劉瓛等傳)」
소경선 · 소적부 유환 · 육징
40권 「무십칠왕전(武十七王傳)」
소자량 · 소자경(卿) · 소자향 · 소자경(敬) · 소자무 · 소자륭 · 소자진 · 소자명 · 소자한 · 소자륜 · 소자정 · 소자악 · 소자문
소자준 · 소자림 · 소자건 · 소자하
41권 「장융등전(張融等傳)」 42권 「왕안등전(王晏等傳)」 43권 「강효등전(江斅等傳)」
장융 · 주옹 왕안 · 소심 · 소탄지 · 강석 강효 · 하창우 · 사약· 왕사원
44권 「서효사등전(徐孝嗣等傳)」 45권 「종실전(宗室傳)」 46권 「왕수지등전(王秀之等傳)」
서효사 · 심문계 소도도 · 소도생 · 소면 왕수지 · 왕자 · 육혜효 · 소혜기
47권 「왕융등전(王融等傳)」 48권 「원단등전(袁彖等傳)」 49권 「왕환등전(王奐等傳)」
왕융 · 사조 원단 · 공치규 · 유회 왕환 · 장충
50권 「문이왕명칠왕전(文二王·明七王傳)」
소소수 · 소소찬 · 소보의 · 소보현 · 소보원 · 소보인 · 소보유 · 소보숭 · 소보정
51권 「배숙업등전(裴叔業等傳)」
배숙업 · 최혜경 · 장흔태
52권 「문학전(文學傳)」
구영국 · 단초 · 변빈 · 구거원 · 왕지심 · 육궐 · 최위조 · 왕준지 · 조충지 · 가연
53권 「양정전(良政傳)」
부염 · 우원 · 유회위 · 배소명 · 심헌 · 이규지 · 공수지
54권 「고일전(高逸傳)」
저백옥 · 명승소 · 고환 · 장영서 · 하구 · 유규 · 유역 · 종측 · 두경산 · 심유사 · 오포 · 서숙
55권 「효의전(孝義傳)」
최회진 · 공손승원 · 오흔지 · 한계백· 손담 · 화보 · 한영민 · 봉연백 · 오체지 · 왕문수 · 주겸지 · 소예명 · 악이· 강필 · 두서 · 육강
56권 「행신전(倖臣傳)」
기승진 · 유계종 · 여법량 · 여문현· 여문도
57권 「위로전(魏虜傳)」 58권 「만・동남이전(蠻・東南夷傳)」 59권 「유목전(遊牧傳)」
위로 고려· 가라 · 왜국 · 임읍 · 부남국 · 교주 예예로 · 하남지 · 양씨저 · 탕창
60권 「자서전(自序傳)」
소자현
||<tablealign=center><tablebordercolor=#3797e8><tablebgcolor=#3797e8> ||
}}}}}} ||

주서(周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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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권 「문제기(文帝紀)」 3권 「효민제기(孝閔帝紀)」 4권 「명제기(明帝紀)」
우문태 우문각 우문육
5·6권 「무제기(武帝紀)」 7권 「선제기(宣帝紀)」 8권 「정제기(靜帝紀)」
우문옹 우문윤 우문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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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권 「후비전(后妃傳)」
원씨 · 질노씨 · 원호마 · 독고황후 · 아사나 · 이아자 · 양려화 · 주만월 · 진월의 · 원락상 · 울지치번 · 사마영희
10권 「소혜공호등전(邵惠公顥等傳)」 11권 「진탕공호전(晉蕩公護傳)」 12권 「제양왕헌전(齊煬王憲傳)」
우문호(顥) · 우문련 · 우문낙생 · 우문중 우문호(護) 우문헌
13권 「문민명무선제자전(文閔明武宣諸子傳)」
우문진 · 우문직 · 우문초 · 우문검 · 우문순 · 우문성 · 우문달 · 우문통 · 우문형 · 우문강 · 우문현 · 우문정 · 우문식 · 우문찬 · 우문지 · 우문윤(允) · 우문충 · 우문태(兌) · 우문원 · 우문연(衍) · 우문술
14권 「하발승등전(賀拔勝等傳)」 15권 「구락등전(寇洛等傳)」
하발승 · 염현 구락 · 이필 · 우근
16권 「조귀등전(趙貴等傳)」 17권 「양어등전(梁禦等傳)」
조귀 · 독고신 · 후막진숭 양어 · 약간혜 · 이봉 · 유량 · 왕덕
18권 「왕비등전(王羆等傳)」 19권 「달해무등전(達奚武等傳)」
왕비 · 왕사정 달해무 · 후막진순 · 두로녕 · 우문귀 · 양충 · 왕웅
20권 「왕맹등전(王盟等傳)」 21권 「울지형등전(尉遲迥等傳)」
왕맹 · 하란상 · 울지강 · 질열복귀 · 염경 울지형 · 왕겸 · 사마소난
22권 「주혜달등전(周惠達等傳)」 23권 「소작전(蘇綽傳)」 24권 「노변전(盧辯傳)」
주혜달 · 양관 · 류경 소작 노변
25권 「이현전(李賢傳)」 26권 「장손검등전(長孫儉等傳)」
이현 장손검 · 장손소원 · 곡사징
27권 「혁련달등전(赫連達等傳)」 28권 「사녕등전(史寧等傳)」
혁련달 · 한과 · 채우 · 상선 · 신위 · 사적창 · 전홍 · 양춘 · 양대 · 우문측 사녕 · 육등 · 하약돈 · 권경선
29권 「왕걸등전(王傑等傳)」
왕걸 · 왕용 · 우문규 · 우문성 · 경호 · 고림 · 이화 · 이루목 · 양소 · 왕아 · 달해식 · 유웅 · 후식
30권 「두치등전(竇熾等傳)」 31권 「위효관등전(韋孝寬等傳)」
두치 · 우익 위효관 · 위형 · 양사언
32권 「신휘등전(申徽等傳)」 33권 「사적치등전(厙狄峙等傳)」
신휘 · 육통 · 류민 · 노유 · 당근 사적치 · 양천 · 조강 · 왕경 · 조창 · 왕열 · 배문표
34권 「조선등전(趙善等傳)」 35권 「정효목등전(鄭孝穆等傳)」
조선 · 원정 · 양표 · 배관 · 양부 정효목 · 최겸 · 최유 · 배협 · 설단 · 설선
36권 「정위등전(鄭偉等傳)」 37권 「구준등전(寇儁等傳)」
정위 · 양찬 · 단영 · 왕사량 · 최언목 · 영호정 · 사마예 · 배과 구준 · 한포 · 조숙 · 장궤 · 이언 · 곽언 · 배문거
38권 「소량등전(蘇亮等傳)」 39권 「위진등전(韋瑱等傳)」
소량 · 류규 · 여사례 · 설징 · 설치 · 이창 · 원위 위진 · 양흔 · 황보번 · 신경지 · 왕자직 · 두고
40권 「울지운등전(尉遲運等傳)」 41권 「왕포등전(王襃等傳)」
울지운 · 왕궤 · 우문신거 · 우문효백 · 안지의 왕포 · 유신
42권 「소휘등전(蕭撝等傳)」 43권 「이연손등전(李延孫等傳)」
소휘 · 소세이 · 소원숙 · 소대환 · 종름 · 유번 · 류하 이연손 · 위우 · 한웅 · 진흔 · 위현
44권 「천기등전(泉企等傳)」 45권 「유림전(儒林傳)」
천기 · 이천철 · 양건운 · 부맹 · 양웅 · 석고 · 임과 노탄 · 노광 · 심중 · 번심 · 웅안생 · 악손
46권 「효의전(孝義傳)」
이당 · 류회 · 두숙비 · 형가 · 진족 · 황보하 · 장원
47권 「예술전(藝術傳)」 48권 「소찰전(蕭詧傳)」
기준 · 장승 · 요승원 · 여경희 · 조문심 · 저해 소찰
49·50권 「이역전(異域傳)」
고구려 · 백제 · 만족(蠻) · 요족(獠) · 탕창 · 등지 · 백란 · 저족 · 계호 · 고막해 · 돌궐 · 토욕혼 · 고창 · 선선 · 언기 · 구차 · 우전 · 엽달
속특 · 안식국 · 파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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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서(梁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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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3권 「무제기(武帝紀)」 4권 「간문제기(簡文帝紀)」 5권 「원제기(元帝紀)」 6권 「경제기(敬帝紀)」
소연 소강 소역 소방지
7권 「황후기(皇后紀)」
장상유 · 치휘 · 왕영빈 · 정영광 · 완영영 · 서소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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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열전(列傳) ]
||<-2><tablewidth=100%><tablebgcolor=#00c499> 8권 「소명태자등전(昭明太子等傳)」 ||<-2> 9권 「왕무등전(王茂等傳)」 ||<-2> 10권 「소영달등전(蕭穎達等傳)」 ||
소통 · 소대기 · 소방구 왕무 · 조경종 · 유경원 소영달 · 하후상 · 채도공 · 양공칙 · 등원기
11권 「장홍책등전(張弘策等傳)」 12권 「유담등전(柳惔等傳)」 13권 「범운등전(范雲等傳)」
장홍책 유역 · 정소숙 · 여승진 유담 · 석천문 · 위예 범운 · 심약
14권 「강엄등전(江淹等傳)」 15권 「사비전(謝朏傳)」 16권 「왕량등전(王亮等傳)」
강엄 · 임방 사비 , 사람, 왕량 · 장직 · 왕형
17권 「왕진국등전(王珍國等傳)」 18권 「장혜소등전(張惠紹等傳)」 19권 「종쾌등전(宗夬等傳)」
왕진국 · 마선병 · 장제 장혜소 · 풍도근 · 강현 · 창의지 종쾌 · 유탄 · 악애
20권 「유계련등전(劉季連等傳)」 21권 「왕첨등전(王瞻等傳)」
유계련 · 진백지 왕첨 · 왕지 · 왕준 · 왕간 , 왕훈, · 왕태· 왕빈· 장충· 유운 · 채준· 강천
22권 「태조오왕전(太祖五王傳)」 23권 「소업등전(蕭業等傳)」 24권 「소경전(蕭景傳)」
소굉 · 소수 · 소위 · 소회 · 소담 소업 · 소백유 · 소원간 · 소상 소경 , 소창 소앙 소욱,
25권 「주사등전(周捨等傳)」 26권 「범수등전(范岫等傳)」 27권 「육수등전(陸倕等傳)」
주사 · 서면 범수 · 부소 · 소침 · 육고 육수 · 도흡 · 명산빈· 은균· 육양
28권 「배수등전(裴邃等傳)」 29권 「고조삼왕전(高祖三王傳)」 30권 「배자야등전(裴子野等傳)」
배수 · 하후단 · 위방 소적 · 소속 · 소윤 배자야 · 고협 · 서리 · 포천
31권 「원앙전(袁昻傳)」 32권 「진경지등전(陳慶之等傳)」 33권 「왕승유등전(王僧孺等傳)」
원앙 진경지 · 난흠 왕승유 · 장솔 · 유효작 · 왕균
34권 「장면전(張緬傳)」 35권 「소자각전(蕭子恪傳)」 36권 「공휴원등전(孔休源等傳)」
장면 , 장찬 장관, 소자각 , 소자범 소자현 소자운, 공휴원 · 강혁
37권 「사거등전(謝擧等傳)」 38권 「주이등전(朱異等傳)」
사거 · 하경용 주이 · 하침
39권 「원법승등전(元法僧等傳)」 40권 「사마경등전(司馬褧等傳)」
원법승 , 원수 원원달, · 왕신념 · 양간 · 양아인 사마경 · 도개 · 유현 · 유지린 · 허무
41권 「왕규등전(王規等傳)」
왕규 · 왕승 · 저상 · 소개 · 저구 · 유유 · 유잠 · 은운 · 소기(幾)
42권 「장순등전(臧盾等傳)」 43권 「위찬등전(韋粲等傳)」
장순 · 부기 위찬 · 강자일 · 장승 · 심준(浚) · 유경례
44권 「태종십일왕・세조이자전(太宗十一王・世祖二子傳)」
소대련 · 소대심 · 소대림 · 소대춘 · 소대아 · 소대장 · 소대균 · 소대위 · 소대구 · 소대흔 · 소대지 · 소방등 · 소방제
45권 「왕승변전(王僧辯傳)」 46권 「호승우등전(胡僧祐等傳)」
왕승변 호승우 · 서문성 · 두즉 · 음자춘
47권 「효행전(孝行傳)」
등담공 · 심숭소 · 순장 · 유검루 · 길분 · 견염 · 한회명 · 유담정 · 하형 · 유사미 · 강부 · 유제 · 저수 · 사린
48권 「유림전(儒林傳)」
복만용 · 하동지 · 범진 · 엄식지· 하창 · 사마균 · 변화 · 최령은 · 공첨 · 노광 · 심준(峻) · 태사숙명 · 공자거· 황간
49·50권 「문학전(文學傳)」
도항 · 구지 · 유포 · 원준 · 유어릉 · 유소(昭) · 하손 · 종영 · 주흥사 · 오균 · 유어릉 · 유준 · 유소(沼) · 사기경 · 유협 · 왕적 · 하사징 · 유묘 · 사징 · 장엄 · 복정 · 유중용 · 육운공 · 임효공 · 안협
51권 「처사전(處士傳)」
하점 , 하윤, · 완효서 · 도홍경 · 제갈거 · 심의 · 유혜비 · 범원염 · 유우 · 유효 · 유선 · 장효수 · 유승선
52권 「지족전(止足傳)」 53권 「양리전(良吏傳)」
고헌지 · 도계직 · 소시소 유필 · 심우 · 범술증 · 구중부 · 손겸 · 복환 · 하원
54권 「제이전(諸夷傳)」
임읍 · 부남· 반반국 · 단단국 · 간타리국 · 낭아수국· 파리국 · 중천축국 · 사자국 · 고구려· 백제 · 신라 · · 문신국· 대한국 · 부상국 · 하남왕국 · 고창· 활국 · 주고가국 · 아발단국 · 호밀단국· 백제 · 쿠처 · 우전국· 갈반타국 · 저말국 · 파사국 · 탕창국· 등지 · 무흥국 · 예예국
55권 「소종등전(蕭綜等傳)」
소종 · 소기(紀) · 소정덕 · 소예
56권 「후경전(侯景傳)」
후경 , 왕위,
||<tablealign=center><tablebordercolor=#00c499><tablebgcolor=#00c499>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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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서(魏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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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olding [ 제기(帝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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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권 「서기(序記)」 2권 「태조기(太祖紀)」 3권 「태종기(太宗紀)」
탁발부 · 대나라 탁발규 탁발사
4권 「세조·공종기(世祖恭宗紀)」 5권 「고종기(高宗紀)」 6권 「현조기(顯祖紀)」
탁발도 · 탁발황 탁발준(浚) 탁발홍
7권 「고조기(高祖紀)」 8권 「세종기(世宗紀)」 9권 「숙종기(肅宗紀)」
원굉 원각 원후
10권 「효장제기(孝莊帝紀)」 11권 「폐출삼제기(廢出三帝紀)」 12권 「효정제기(孝靜帝紀)」
원자유 원공 · 원랑 · 원수 원선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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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olding [ 열전(列傳) ]
13권 「황후전(皇后傳)」
신원황후 · 봉황후 · 기황후 · 평문황후 · 소성황후 · 헌명황후 · 도무황후 · 도무선목황후 · 명원소애황후 · 밀황후 · 태무황후 · 경애황후
경목공황후 · 문성문명황후 · 문성원황후 · 헌문사황후 · 효문정황후 · 풍폐후 · 효문유황후 · 효문소황후 · 선무순황후 · 선무황후 · 선무영황후
효명황후 · 효정황후
14권 「신원·평문제제자손전(神元平文諸帝子孫傳)」
탁발흘라 , 탁발제, · 탁발영문 · 탁발육 · 탁발인 · 탁발수낙 · 탁발퇴 · 탁발소연 · 탁발욱 · 탁발목진 · 탁발육수 · 탁발비간 · 탁발여 · 탁발고
탁발돈 · 탁발석 · 탁발위 · 탁발대두 · 탁발제 · 탁발처진 · 탁발니
15권 「소성자손전(昭成子孫傳)」 16권 「도무7왕전(道武七王傳)」
탁발식군 · 탁발한 · 탁발준(遵) · 탁발건(虔) · 탁발순 · 탁발의열
탁발굴돌
탁발소 · 탁발희 · 탁발요 · 탁발수 · 탁발처문 · 탁발연 · 탁발려(黎)
17권 「명원6왕전(明元六王傳)」 18권 「태무5왕전(太武五王傳)」
탁발비 · 탁발미 · 탁발범 · 탁발건(健) · 탁발숭 · 탁발준(俊) 탁발복라 · 탁발한 · 탁발담 · 탁발건(建) · 탁발여(余)
19권 「경목12왕전(敬穆十二王傳)」
탁발신성 · 탁발자추 · 탁발소신성 · 탁발천사 · 탁발만수 · 탁발낙후 · 탁발운 · 탁발정 · 탁발장수 · 탁발태락 · 탁발호아 · 탁발휴
20권 「문성5왕전(文成五王傳)」 21권 「헌문6왕전(獻文六王傳)」
탁발장락 · 탁발략(略) · 탁발간(簡) · 탁발약(若) · 탁발맹 원희 · 원간(幹) · 원우 · 원옹 · 원상 · 원협
22권 「효문5왕전(孝文五王傳)」 23권 「위조등전(衛操等傳)」 24권 「연봉등전(燕鳳等傳)」
원순 · 원유 · 원역 · 원회 · 원열 위조 · 막함 · 유고인 연봉 · 허겸 · 장곤 · 최현백 · 등연
25권 「장손숭등전(長孫嵩等傳)」 26권 「장손비등전(長孫肥等傳)」 27권 「목숭전(穆崇傳)」
장손숭 · 장손도생 장손비 · 울고진 목숭
28권 「화발등전(和跋等傳)」 29권 「해근등전(奚斤等傳)」
화발 · 해목 · 막제 · 유업연 · 하적간 · 이율 · 유결 · 고필 · 장려 해근 · 숙손건
30권 「왕건등전(王建等傳)」
왕건 · 안동 · 누복련 · 구퇴 · 아청 · 유니 · 해권 · 차이락 · 숙석 · 내대천 · 주기 · 두대전 · 주관 · 염대비 · 울발 · 육진 · 여락발
31권 「우율제전(于栗磾傳)」 32권 「고호등전(高湖等傳)」
우율제 고호 · 최영 · 봉의
33권 「송은등전(宋隱等傳)」
송은 · 왕헌 · 굴준 · 장포 · 곡혼 · 공손표 · 장제 · 이선 · 가이 · 설제
34권 「왕낙아등전(王洛兒等傳)」 35권 「최호전(崔浩傳)」 36권 「이순전(李順傳)」
왕낙아 · 거로두 · 노노원 · 진건 · 만안국 최호 이순
37권 「사마휴지등전(司馬休之等傳)」 38권 「조옹등전(刁雍等傳)」 39권 「이보전(李寶傳)」
사마휴지 · 사마초지 · 사마경지 · 사마숙번
사마천조
조옹(刁雍) · 왕혜룡 · 한연지 · 원식 이보
40권 「육사전(陸俟傳)」 41권 「원하전(源賀傳)」 42권 「설변등전(薛辯等傳)」
육사 원하 설변 · 구찬 · 역범 · 한수 · 요훤
43권 「엄릉등전(嚴棱等傳)」 44권 「나결등전(羅結等傳)」
엄릉 · 모수지 · 당화 · 유휴빈 · 방법수 나결 · 이발 · 을괴 · 화기노 · 순퇴 · 설야저 · 우문복 · 비우 · 맹위
45권 「위랑등전(韋閬等傳)」 46권 「두근등전(竇瑾等傳)」 47권 「노현전(盧玄傳)」
위랑 · 두전 · 배준 · 신소선 · 유숭 두근 · 허언 · 이흔 노현
48권 「고윤전(高允傳)」 49권 「이령등전(李靈等傳)」 50권 「울원등전(尉元等傳)」
고윤 이령 · 최감 울원 · 모용백요
51권 「한무등전(韓茂等傳)」
한무 · 피표자 · 봉칙문 · 여나한 · 공백공
52권 「조일등전(趙逸等傳)」
조일 · 호방회 · 호수 · 송요 · 장담 · 종흠 · 단승근 · 감인 · 유병 · 조유 · 색창 · 음중달
53권 「이효백등전(李孝伯等傳)」 54권 「유아등전(游雅等傳)」 55권 「유명근등전(游明根等傳)」
이효백 · 이형 유아 · 고려 유명근 · 유방
56권 「정희등전(鄭羲等傳)」 57권 「고우등전(高祐等傳)」 58권 「양파전(楊播傳)」
정희 · 최변 고우 · 최정 양파
59권 「유창등전(劉昶等傳)」 60권 「한기린등전(韓麒麟等傳)」 61권 「설안도등전(薛安都等傳)」
유창 · 소보인 · 소정표 한기린 · 정준 설안도 · 필중경 · 심문수 · 장당 · 전익종 · 맹표
62권 「이표등전(李彪等傳)」 63권 「왕숙등전(王肅等傳)」 64권 「곽조등전(郭祚等傳)」
이표 · 고도열 왕숙 · 송변 곽조 · 장이
65권 「형만등전(邢巒等傳)」 66권 「이숭등전(李崇等傳)」 67권 「최광전(崔光傳)」
형만 · 이평 이숭 · 최량 최광
68권 「견침등전(甄琛等傳)」 69권 「최휴등전(崔休等傳)」 70권 「유조등전(劉藻等傳)」
견침 · 고총 최휴 · 배정준 · 원번 유조 · 부영 · 부수안 · 이신
71권 「배숙업등전(裴叔業等傳)」 72권 「양니등전(陽尼等傳)」
배숙업 · 하후도천 · 이원호 · 석법우 · 왕세필 · 강열지 · 순우탄 · 이묘 양니 · 가사백 · 이숙호 · 노시경 · 방량 · 조세표 · 반영기 · 주원욱
73권 「해강생등전(奚康生等傳)」 74권 「이주영전(爾朱榮傳)」 75권 「이주조등전(爾朱兆等傳)」
해강생 · 양대안 · 최연백 이주영 이주조 · 이주언백 · 이주도율 · 이주천광
76권 「노동등전(盧同等傳)」 77권 「송번등전(宋翻等傳)」 78권 「손소등전(孫紹等傳)」
노동 · 장열 송번 · 신웅 · 양심 · 양기 · 고숭 손소(孫紹) · 장보혜
79권 「성엄등전(成淹等傳)」 80권 「주서등전(朱瑞等傳)」
성엄 · 범소 · 유도부 · 유도빈 · 동소 · 풍원흥 · 녹여 · 장습 주서 · 질열연경 · 곡사춘 · 가현도 · 번자곡 · 하발승 · 후막진열 · 후연
81권 「기준등전(綦儁等傳)」 82권 「이염지등전(李琰之等傳)」
기준 · 산위 · 유인지 · 우문충지 이염지 · 조영 · 상경
83권 「외척전(外戚傳)」
하눌 · 유나신 · 요황미 · 두초 · 하미 · 여비 · 고조 · 우경 · 호국진 · 이연실
84권 「유림전(儒林傳)」
양월 · 노추 · 장위 · 양조 · 평항 · 진기 · 상상 · 유헌지 · 장오귀 · 유란 · 손혜울 · 서준명 · 동징 · 조충 · 노경유 · 이동궤 · 이흥업
85권 「문원전(文苑傳)」
원요 · 배경헌 · 노관 · 봉숙 · 형장 · 배백무 · 형흔 · 온자승
86권 「효감전(孝感傳)」
조염 · 장손려 · 걸복보 · 손익덕 · 동락생 · 양인 · 염원명 · 오실달 · 왕속생 · 이현달 · 장승 · 창발 · 왕숭 · 곽문공
87권 「절의전(節義傳)」
우십문 · 단진 · 석문덕 · 급고 · 왕현위 · 누제 · 유갈후 · 주장생 · 우제 · 마룡팔 · 문문애 · 조청 · 유후인 · 석조흥 · 소홍철 · 왕영세 · 호소호 · 손도등 · 이궤 · 장안조 · 왕려
88권 「양리전(良吏傳)」
장순 · 녹생 · 장응 · 송세경 · 노옹 · 염경윤 · 명량 · 두찬 · 배타 · 두원 · 양돈 · 소숙
89권 「혹리전(酷吏傳)」
우락후 · 호이 · 이홍지 · 고준 · 장사제 · 양지 · 최섬 · 역도원 · 곡해
90권 「일사전(逸士傳)」
휴과 · 풍량 · 이밀 · 정수
91권 「예술전(藝術傳)」
조숭 · 장연 · 은소 · 왕조 · 경현 · 유영조 · 강식 · 주담 · 이숙 · 서건 · 왕현 · 최욱 · 장소유
92권 「열녀전(列女傳)」
임성국태비
93권 「은행전(恩倖傳)」
왕예 · 왕증흥 · 구맹 · 조수 · 여호 · 조옹(趙邕) · 후강 · 정엄 · 서흘
94권 「엄관전(閹官傳)」
종애 · 구락제 · 단패 · 왕거 · 조묵 · 손소(孫小) · 장종지 · 극붕 · 장우 · 포억 · 왕우 · 부승조 · 왕질 · 이견 · 진송 · 백정 · 유등 · 가찬 · 양범
성궤 · 왕온 · 맹란 · 평계 · 봉진 · 유사일
95권 「유총등전(劉聰等傳)」
유총 · 석륵 · 유하 · 모용외 · 부건 · 요장 · 여광
96권 「사마예등전(司馬叡等傳)」 97권 「환현등전(桓玄等傳)」 98권 「소도성등전(蕭道成等傳)」
사마예 · 이웅 환현 · 풍발 · 유유 소도성 · 소연
99권 「장실등전(張實等傳)」
장실 · 걸복국인 · 독발오고 · 이고 · 저거몽손
100권 「고구려등전(高句麗等傳)」
고구려 · 백제 · 물길 · 실위 · 두막루 · 지두우 · 고막해 · 거란 · 오락후
101권 「저등전(氐等傳)」
저족 · 토욕혼 · 탕창강 · 고창 · 등지 · 만족 · 요족
102권 「서역전(西域傳)」
선선 · 차말 · 우전 · 백정 · 차사국 · 언기 · 쿠처 · 소륵 · 속특 · 파사 · 남천축 · 읍달
103권 「연연등전(蠕蠕等傳)」
연연 · 우문막괴 · 단질육권 · 고차
104권 「자서전(自序傳)」
위수
※ 105권 ~ 114권은 志에 해당. 위서 문서 참고

||<tablealign=center><tablebordercolor=#dc143c><tablebgcolor=#dc143c> ||
}}}}}}}}} }}} ||

수서(隋書)
{{{#!wiki style="margin: -0px -10px; margin-top: 0.3px; margin-bottom: -6px"
{{{#dedede {{{#!wiki style="display: inline-block; min-width:25%"
{{{#!folding [ 제기(帝紀) ]
{{{#!wiki style="margin: -5px -10px; padding: 7px 10px"
{{{#333333,#cccccc
1·2권 「문제기(文帝紀)」 3·4권 「양제기(煬帝紀)」 5권 「공제기(恭帝紀)」
양견 양광 양유
※ 6권 ~ 35권은 志에 해당. 수서 문서 참고
}}}}}}}}}}}}
[ 열전(列傳) ]
||<-4><tablewidth=100%><tablebgcolor=#7C4B3B> 36권 「후비전(后妃傳)」 ||
독고황후 · 소황후
37권 「이목등전(李穆等傳)」 38권 「유방등전(劉昉等傳)」
이목 · 양예 유방(劉昉) · 정역 · 유구 · 황보적 · 노분
39권 「우의등전(于義等傳)」 40권 「양사언등전(梁士彥等傳)」
우의 · 음수 · 두영정 · 원경산 · 원웅 · 두로적 · 하약의 양사언 · 우문흔 · 왕의 · 원해 · 왕세적 · 우경칙 · 원주
41권 「고경등전(高熲等傳)」 42권 「이덕림전(李德林傳)」
고경 · 소위 이덕림
43권 「하간왕홍등전(河間王弘等傳)」 44권 「등목왕찬등전(滕穆王瓚等傳)」 45권 「문사자전(文四子傳)」
양홍 · 양처강 · 양자숭 · 양웅 양찬 · 양정 · 양상 · 양지적 양용 · 양준 · 양수 · 양량
46권 「조경등전(趙煚等傳)」
조경 · 조분 · 양희상 · 장손평 · 원휘 · 위사 · 양이 · 소효자 · 이웅 · 장경
47권 「위세강등전(韋世康等傳)」 48권 「양소전(楊素傳)」 49권 「우홍전(牛弘傳)」
위세강 · 유기 양소(素) 우홍
50권 「우문경등전(宇文慶等傳)」 51권 「장손람전(長孫覽傳)」 52권 「한금호등전(韓擒虎等傳)」
우문경 · 이예성 · 원효구 · 곽영 · 방황 · 이안 장손람 , 장손치, , 장손성, 한금호 · 하약필
53권 「달해장유등전(達奚長儒等傳)」 54권 「왕장술등전(王長述等傳)」
달해장유 · 하루자간 · 사만세 · 유방(劉方) 왕장술 · 이연 · 이누겸 · 전인공 · 두정 · 이철 · 최팽
55권 「두언등전(杜彥等傳)」
두언 · 고매 · 이주창 · 주요 · 독고개 · 걸복혜 · 장위 · 화홍 · 후막진영
56권 「노개등전(盧愷等傳)」 57권 「노사도등전(盧思道等傳)」
노개 · 영호희 · 설주 · 우문필 · 장형 · 양왕 노사도 · 이효정 · 설도형
58권 「명극양등전(明克讓等傳)」
명극양 · 위담 · 육상 · 두대경 · 신덕원 · 유변 · 허선심 · 이문박
59권 「양제삼남전(煬帝三男傳)」 60권 「최중방등전(崔仲方等傳)」 61권 「우문술전(宇文述等傳)」
양소(楊昭) · 양간 · 양고 최중방 · 우중문 · 단문진 우문술 · 곽연
62권 「왕소등전(王韶等傳)」 63권 「번자개등전(樊子蓋等傳)」
왕소 · 원암 · 유행본 · 양비 · 유욱 · 조작 · 배숙 번자개 · 사상 · 원수 · 양의신 · 위현 · 유권
64권 「이원통등전(李圓通等傳)」
이원통 · 진무 · 장정화 · 장윤 · 맥철장 · 심광 · 내호아 · 어구라 · 진릉 · 왕변
65권 「주나후등전(周羅睺等傳)」
주나후 · 주법상 · 이경 · 모용삼장 · 설세웅 · 왕인공 · 권무 · 토만서 · 동순 · 조재
66권 「이악등전(李諤等傳)」
이악 · 포굉 · 배정 · 유장 · 원사 · 낭무 · 고구 · 장건위 · 영비 · 육지명 · 방언겸
67권 「우세기등전(虞世基等傳)」 68권 「우문개등전(宇文愷等傳)」
우세기 · 배온 · 배구 우문개 · 염비 · 하조
69권 「왕소등전(王劭等傳)」 70권 「양현감등전(楊玄感等傳)」
왕소(王劭) · 원충 양현감 · 이자웅 · 조원숙 · 곡사정 · 유원진 · 이밀 · 배인기
71권 「성절전(誠節傳)」
유홍 · 황보탄 · 유원 · 풍자명 · 장수타 · 양선회 · 독고성 · 원문도 · 노초 · 유자익 · 요군소
72권 「효의전(孝義傳)」
육언사 · 전덕무 · 설준 · 왕반 · 양경 · 곽준 · 전익 · 유회 · 유사준 · 낭방귀 · 적보림 · 이덕요 · 화추 · 서효숙
73권 「순리전(循吏傳)」
양언광 · 번숙략 · 조궤 · 방공의 · 공손경무 · 신공의 · 유검 · 유광 · 왕가 · 위덕심
74권 「혹리전(酷吏傳)」
사적사문 · 전식 · 연영 · 조중경 · 최홍도 · 원홍사 · 왕문동
75권 「유림전(儒林傳)」
원선 · 신언지 · 하타 · 소해 · 포개 · 방휘원 · 마광 · 유작 · 유현 · 저휘 · 고표 · 노세달 · 장충 · 왕효적
76권 「문학전(文學傳)」
유진 · 왕규 · 최표 · 제갈영 · 손만수 · 왕정 · 우작 · 신대덕 · 왕주 · 유자직 · 반휘 · 두정현 · 상득지 · 윤식 · 유선경 · 조군언 · 공덕소
유빈
77권 「은일전(隱逸傳)」
이사겸 · 최곽 · 서칙 · 장문후
78권 「예술전(藝術傳)」
유계재 · 노태익 · 경순 · 위정 · 내화 · 소길 · 양백추 · 임효공 · 유우 · 장주현 · 허지장 · 만보상 · 왕영언
79권 「외척전(外戚傳)」
여씨 · 독고라 · 소규
80권 「열녀전(列女傳)」
난릉공주 · 남양공주 · 초국부인
81권 「동이전(東夷傳)」
고려 · 백제 · 신라 · 말갈 · 유구국 · 왜국
82권 「남만전(南蠻傳)」
임읍 · 적토 · 진랍 · 파리
83권 「서역전(西域傳)」
토욕혼 · 당항 · 고창 · 소그드인 · 강국 · 안국 · 석국 · 여국 · 언기 · 구차 · 소륵 · 우전 · 발한 · 토화란 · 읍달 · 미국 · 사국 · 조국 · 하국 · 오나갈 · 목국 · 파사 · 조국 · 부국
84권 「북적전(北狄傳)」
돌궐 · 서돌궐 · 철륵 · · 거란
85권 「우문화급등전(宇文化及等傳)」
우문화급 , 우문지급, , 사마덕감, , 배건통, 왕충 · 단달
||<tablealign=center><tablebordercolor=#7C4B3B><tablebgcolor=#7C4B3B> ||
}}}}}} ||

{{{#!wiki style="margin: -0px -10px; margin-top: 0.3px; margin-bottom: -6px"
{{{#ece5b6 {{{#!wiki style="display: inline-block; min-width:25%"
{{{#!folding [ 본기(本紀) ]
{{{#!wiki style="margin: -5px -10px; padding: 7px 10px"
1권 「송본기상(宋本紀上)」 2권 「송본기중(宋本紀中)」 3권 「송본기하(宋本紀下)」
유유(裕) · 유의부 유의륭 · 유준(駿) · 유자업 유욱(彧) · 유욱(昱) · 유준(準)
4권 「제본기상(齊本紀上)」 5권 「제본기하(齊本紀下)」
소도성 · 소색 소소업 · 소소문 · 소란 · 소보권 · 소보융
6·7권 「양본기상·중(梁本紀上·中)」 8권 「양본기하(梁本紀下)」
소연 소강 · 소역 · 소방지
9권 「진본기상(陳本紀上)」 10권 「진본기하(陳本紀下)」
진패선 · 진천 · 진백종 진욱 · 진숙보
}}}}}}}}}
[ 열전(列傳) ]
||<-6><tablewidth=100%><tablebgcolor=#000000> 11·12권 「후비전(后妃傳)」 ||
조안종 · 소문수 · 장애친 · 장궐 · 사마무영 · 호도안 · 원제규 · 노혜남 · 왕헌원 · 은숙의 · 하영완 · 심용희 · 왕정풍 · 진묘등 · 강간규 · 진법용 · 사범경 · 진도정 · 유지용 · 배혜소 · 왕보명 · 하정영 · 왕소명 · 유혜단 · 저영거 · 왕순화 · 장상유 · 치휘 · 왕영빈 · 정영광 · 완영영 · 서소패 · 장요아 · 심묘용 · 왕황후 · 유경언 · 심무화 · 장여화
13·14권 「송종실급제왕전(宋宗室及諸王傳)」
유도린 · 유도규 · 유의경 · 유준고 · 유의진 · 유의강 · 유의공 · 유의선 · 유의계 · 유소 · 유준(濬) · 유삭 · 유굉 · 유탄 · 유위 · 유창 · 유혼 · 유휴인 · 유휴우 · 유휴무 · 유휴업 · 유휴천 · 유이부 · 유휴범 · 유휴약 · 유자상 · 유자훈 · 유자방 · 유자욱 · 유자란 · 유자인 · 유자진 · 유자원 · 유자우 · 유자맹 · 유자운 · 유자사(劉子師) · 유자소 · 유자사(劉子嗣) · 유찬 · 유우 · 유홰 · 유숭 · 유희
15권 「유목지등전(劉穆之等傳)」 16권 「왕진악등전(王鎮惡等傳)」
유목지 · 서선지 · 부량 · 단도제 왕진악 · 주령석 · 모수지 · 부홍지 · 주수지 · 왕현모
17권 「유경선등전(劉敬宣等傳)」
유경선 · 유회숙 · 유수 · 손처 · 괴은 · 상정 · 유종 · 우구진 · 맹회옥 · 호번 · 유강조
18권 「조륜지등전(趙倫之等傳)」 19권 「사회등전(謝晦等傳))」
조륜지 · 소사화 · 장도 사회 · 사유 · 사방명 · 사령운
20권 「사홍미전(謝弘微傳)」 21권 「왕홍전(王弘傳)」 22권 「왕담수전(王曇首傳)」
사홍미 왕홍 왕담수 , 왕훈,
23권 「왕탄등전(王誕等傳)」 24권 「왕유지등전(王裕之等傳)」 25권 「왕의등전(王懿等傳)」
왕탄 · 왕화 · 왕혜 · 왕욱 왕유지 · 왕진지 · 왕소지 · 왕열지 · 왕준지 왕의 · 도언지 · 원호지 · 장흥세
26권 「원담전(袁湛傳)」 27권 「공정등전(孔靖等傳)」 28권 「저유지전(褚裕之傳)」
원담 공정 · 공림지 · 은경인 저유지
29권 「채곽전(蔡廓傳)」 30권 「하상지전(何尙之傳)」 31권 「장유전(張裕傳)」
채곽 하상지 장유 , 장승,
32권 「장소전(張邵傳)」 33권 「범태등전(范泰等傳)」 34권 「안연지등전(顔延之等傳)」
장소 범태 · 순백자 · 서광 · 정선지 · 배송지 · 하승천 안연지 · 심회문 · 주랑
35권 「유담등전(劉湛等傳)」 36권 「양흔등전(羊欣等傳)」 37권 「심경지등전(沈慶之等傳)」
유담 · 유열 · 고침 · 고기지 양흔 · 양현보 · 심연지 · 강이 · 강병지 심경지 · 종각
38권 「유원경전(柳元景傳)」 39권 「은효조등전(殷孝祖等傳)」 40권 「노상등전(魯爽等傳)」
유원경 은효조 · 유면 노상 · 설안도 · 등완 · 종월 · 오희 · 황회
41권 「제종실전(齊宗室傳)」
소도도 · 소도생 · 소요광 · 소요흔 · 소면 · 소경선 · 소적부 · · 소탄 · 소탄지
42·43권 「제고제제자전(齊高帝諸子傳)」
소억 · 소영 · 소황 · 소엽 · 소고 · 소장 · 소삭 · 소감 · 소봉 · 소예 · 소갱 · 소구 · 소현
44권 「제무제제자·제문혜제자·명제제자전(齊高帝諸子·文惠諸子·明帝諸子傳)」
소장무 · 소자량 · 소자경(卿) · 소자향 · 소자경(敬) · 소자무 · 소자륭 · 소자진 · 소자명 · 소자한 · 소자륜 · 소자정 · 소자악 · 소자문
소자준 · 소자림 · 소자건 · 소자하 · 소소수 · 소소찬 · 소보의 · 소보현 · 소보원 · 소보인 · 소보유 · 소보숭 · 소보정
45권 「왕경칙등전(王敬則等傳」 46권 「이안인등전(李安人等傳)」
왕경칙 · 진현달 · 장경아 · 최혜경 이안인 · 대승정 · 환강 · 초도 · 조무 · 여안국 · 주산도 · 주반룡 · 왕광지
47권 「순백옥등전(荀伯玉等傳)」 48권 「육징등전(陸澄等傳)」
순백옥 · 최조사 · 설연 · 우종 · 호해지 · 우완지 · 유휴 · 강석 육징 · 육혜효 · 육궐
49권 「유고지등전(庾杲之等傳)」 50권 「유환등전(劉瓛等傳)」
유고지 · 왕심 · 공규 · 유회진 유환 · 명승소 · 유이 · 유규
51·52권 「양종실전(梁宗室傳)」
소경 , 소매 소발 소앙 소욱, · 소의 · 소부 · 소창 · 소융 · 소굉 , 소정인 소정의 소정덕 소정립, 소수 · 소위 · 소회 · 소담
53권 「양무제자전(梁武帝諸子傳)」
소통 · 소종 · 소적 · 소속 · 소윤 · 소기
54권 「양간문제자·원제제자전(梁簡文帝諸子·元帝諸子傳)」
소대기 · 소대심 · 소대관 · 소대림 · 소대련 · 소대춘 · 소대성 · 소대봉 · 소대아 · 소대장 · 소대균 · 소대위 · 소대훈 · 소대구 · 소대흔 · 소대지 · 소대원 · 소방등 · 소방제 · 소방구 · 소방략
55권 「왕무등전(王茂等傳)」
왕무 · 조경종 · 조의종 · 석천문 · 하후상 · 길사첨 · 채도공 · 양공칙 · 등원기 · 장혜소 · 장징 · 풍도근 · 강현 · 창의지
56권 「장홍책등전(張弘策等傳)」 57권 「심약등전(沈約等傳)」 58권 「위예등전(韋叡等傳)」
장홍책 · 유역 · 정소숙 · 여승진 · 악애 심약 · 범운 위예 · 배수
59권 「강엄등전(江淹等傳)」 60권 「범수등전(范岫等傳)」 61권 「진백지등전(陳伯之等傳)」
강엄 · 임방 · 왕승유 범수 · 부소 · 공휴원 · 강혁 · 서면 · 허무 · 은균 진백지 · 진경지 · 난흠
62권 「하창등전(賀瑒等傳)」 63권 「왕신념등전(王神念等傳)」 64권 「강자일등전( 江子一等傳)」
하창 · 사마경 · 주이 · 고협 · 서리 · 포천 왕신념 · 양간 · 양아인 강자일 · 호승우 · 서문성 · 음자춘 · 두즉 · 왕림 · 장표
65권 「진종실제왕전(陳宗室諸王傳)」
진의 · 진상 · 진혜기 · 진창 · 진담랑 · 진백무 · 진백산 · 진백고 · 진백공 · 진백인 · 진백의 · 진백례 · 진백지 · 진백모
진숙릉 · 진숙영 · 진숙견 · 진숙명 · 진숙경 · 진숙헌 · 진숙제 · 진숙문 · 진숙달 · 진숙탄 · 진숙표 · 진숙웅 · 진숙중 · 진숙엄 · 진숙신 · 진숙우 · 진숙평 · 진숙오 · 진숙흥 · 진숙선 · 진숙목 · 진숙검 · 진숙징 · 진숙소 · 진숙광 · 진숙순 · 진숙모 · 진숙현 · 진숙륭 · 진숙영
진심 · 진장 · 진윤 · 진억 · 진언 · 진경 · 진건 · 진념 · 진지 · 진전 · 진번
66권 「두승명등전(杜僧明等傳)」
두승명 · 주문육 · 후진 · 후안도 · 구양위 · 황법구 · 순우량 · 장소달 · 오명철
67권 「호영등전(胡穎等傳)」
호영 · 서도 · 두릉 · 주철무(1) · 정령세 · 심각 · 육자륭 · 전도집 · 낙문아 · 손창 · 서세보 · 주부 · 순랑 · 주경 · 노실달 · 소마하 · 임충 · 번의
68권 「조지례등전(趙知禮等傳)」
조지례 · 채경력 · 종원요 · 한자고 · 화교 · 유사지 · 사기 · 모희 · 심군리 · 육산재
69권 「심형등전(沈炯等傳)」
심형 · 우려 · 부재 · 고야왕 · 요찰
70권 「순리전(循吏傳)」
길한 · 두기 · 신념 · 두혜도 · 완장지 · 견법숭 · 부염 · 우원 · 왕홍궤 · 심우 · 범술증 · 손겸 · 하원 · 곽조심
71권 「유림전(儒林傳)」
복만용 · 하동지 · 엄식지 · 사마경 · 변화 · 최령은 · 공첨 · 노광 · 심준(峻) · 공자구 · 황간 · 심수 · 척곤 · 정작 · 전완 · 장기 · 고월 · 척곤 · 왕원규
72권 「문학전(文學傳)」
구영국 · 단초 · 변빈 · 구거원 · 왕지심 · 최위조 · 조충지 · 가희경 · 원준 · 유소(昭) · 종영 · 주흥사 · 오균 · 유협 · 하사징 · 임효공 · 안협 · 기소유 · 두지위 · 안황 · 잠지경 · 하지원 · 서백양 · 장정견 · 완탁
73·74권 「효의전(孝義傳)」
공영 · 유유(瑜) · 가은 · 곽세통 · 엄세기 · 오규 · 반종 · 장진지 · 구걸 · 사각수 · 왕팽 · 장공 · 서경 · 손법종 · 범숙손 · 복천여 · 허소선 · 여제인 · 손극 · 하자평 · 최회순 · 왕허지 · 오경지 · 소예명 · 소교처양 · 공손승원 · 오흔지 · 한계백 · 구관선 · 손담 · 화보 · 해숙겸 · 한영민 · 유풍 · 봉연백 · 오달지 · 왕문수 · 악이지 · 손법종 · 유도민 · 등담공 · 도계직 · 심숭소 · 순장 · 길분 · 견염 · 조발호 · 한회명 · 저수 · 장경인 · 도자장 · 성경준 · 이경서 · 사린 · 은불해 · 사마고 · 장소
75·76권 「은일전(隐逸傳)」
도잠 · 종소문 · 심도건 · 공순지 · 주속지 · 대옹 · 적법사 · 뇌차종 · 곽희림 · 유응지 · 공기 · 주백년 · 관강지 · 어부 · 저백옥 · 고환 · 두경산 · 장영서 · 오포 · 서백진 · 심인사 · 완효서 · 등욱 · 도홍경 · 제갈거 · 유혜비 · 범원엽 · 유선 · 장효수 · 유승선
77권 「은행전(恩倖傳)」
대법흥 · 서원 · 완전부 · 기승진 · 유계종 · 여법량 · 여문현 · 여법진 · 주석진 · 육험 · 사마신 · 시문경 · 심객경 · 공범
78·79권 「이맥전(夷貊傳)」
임읍 · 부남 · 중천축국 · 사자국 · 고구려 · 백제국 · 신라 · · 부상국· 하남왕국 · 탕창 등지 · 무흥국 · 형옹주·예주만 · 고창 · 쿠처 · 우전국 · 파사국 · 연연
80권 「적신전(賊臣傳)」
후경 , 왕위, · 웅담랑 · 주적 · 유이 · 진보응
(1) 본명이 주철호(周鐵虎)로 당태조로 추존된 이호(李虎)를 피휘하여 무(武)로 개칭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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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olding [ 본기(本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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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권 「위본기1(魏本紀一)」 2권 「위본기2(魏本紀二)」 3권 「위본기3(魏本紀三)」
탁발규 · 탁발사 탁발도 · 탁발황 · 탁발준(浚) · 탁발홍 원굉
4권 「위본기4(魏本紀四)」 5권 「위본기5(魏本紀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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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권 「제본기상(齊本紀上)」 7권 「제본기중(齊本紀中)」 8권 「제본기하(齊本紀下中)」
고환 · 고징 고양 · 고은 · 고연 고담 · 고위 · 고항
9권 「주본기상(周本紀上)」 10권 「주본기하(周本紀下)」
우문태 · 우문각 · 우문육 우문옹 · 우문윤 · 우문천
11권 「수본기상(隋本紀上)」 12권 「수본기하(隋本紀下)」
양견 양광 · 양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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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열전(列傳) ]
||<-4><tablewidth=100%><tablebgcolor=#000000> 13·14권 「후비전(后妃傳)」 ||
신원황후 · 봉황후 · 기황후 · 평문황후 · 소성황후 · 헌명황후 · 도무황후 · 선목황후 · 소애황후 · 명원밀황후 · 태무황후 · 경애황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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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권 「위제종실전(魏諸宗室傳)」
탁발흘나 · 탁발영문 · 탁발육 · 탁발인 · 탁발수낙 · 탁발퇴 · 탁발소연 · 탁발욱 · 탁발목신 · 탁발육수 · 탁발비간 · 탁발여 · 탁발고
탁발돈 · 탁발석 · 탁발위 · 탁발대두 · 탁발제 · 탁발처진 · 탁발니 · 탁발식군 · 탁발한 · 탁발준(遵) · 탁발건(健) · 탁발순 · 탁발의열 · 탁발굴돌
16권 「도무7왕·명원6왕·태무5왕전(道武七王·明元六王·太武五王傳)」
탁발소 · 탁발희 · 탁발요 · 탁발수 · 탁발처문 · 탁발연 · 탁발려(黎) · 탁발비 · 탁발미 · 탁발범 · 탁발건(健) · 탁발숭 · 탁발준(俊) · 탁발복라 · 탁발한 · 탁발담 · 탁발건(建) · 탁발여(余)
17·18권 「경목12왕전(敬穆十二王傳)」
탁발신성 · 탁발자추 · 탁발소신성 · 탁발천사 · 탁발만수 · 탁발낙후 · 탁발운 · 탁발정 · 탁발장수 · 탁발태락 · 탁발호아 · 탁발휴
19권 「문성5왕·헌문6왕·효문6왕전(文成五王·獻文六王·孝文六王傳)」
탁발장락 · 탁발략(略) · 탁발간(簡) · 탁발약(若) · 탁발맹 · 원희 · 원간(幹) · 원우 · 원옹 · 원상 · 원협 · 원순 · 원유 · 원역 · 원회 · 원열
20권 「위조등전(衛操等傳)」
위조 · 막함 · 유고인 · 울고진 · 목숭 · 해근 · 숙손건 · 안동 · 유업연 · 왕건 · 나결 · 누복련 · 염대비 · 해목 · 화발 · 막제 · 하적간 · 이율 · 해권
21권 「연봉등전(燕鳳等傳)」 22권 「장손숭등전(長孫嵩等傳)」
연봉 · 허겸 · 최굉 · 장곤 · 등언해 장손숭 · 장손도생 · 장손비
23권 「우율제전(于栗磾傳)」 24권 「최영등전(崔逞等傳)」
우율제 최영 · 왕헌 · 봉의
25권 「고필등전(古弼等傳)」
고필 · 장려 · 유결 · 구퇴 · 아청 · 이후 · 을괴 · 주기 · 두대전 · 거이락 · 왕낙아 · 거로두 · 노노원 · 진건 · 내대간 · 숙석 · 만안국
주관 · 울발 · 육진 · 여락발 · 설표자 · 울원 · 모용백요 · 화기노 · 순퇴 · 우문복
26권 「송은등전(宋隱等傳)」
송은 · 허언 · 조옹(刁雍) · 신소선 · 위랑 · 두전
27권 「굴준등전(屈遵等傳)」
굴준 · 장포 · 곡혼 · 공손표 · 장제 · 이선 · 가이 · 두근 · 이흔 · 한연지 · 원식 · 모수지 · 당화 · 구찬 · 역범 · 한수 · 요훤 · 유숭
28권 「육사등전(陸俟等傳)」 29권 「사마휴지등전(司馬休之等傳)」
육사 · 원하 · 유니 · 설제 사마휴지 · 유창 · 소보인 · 소정표
28권 「노현등전(盧玄等傳)」 29권 「고윤등전(高允等傳)」
노현 · 노부 고윤 · 고우 · 고덕정 · 고익 · 고앙
32권 「최감등전(崔鑒等傳)」 33권 「이령등전(李靈等傳)」
최감 · 최변 · 최정 이령 · 이순 · 이효백 · 이예 · 이의심
34권 「유아등전(游雅等傳)」
유아 · 고려 · 조일 · 호수 · 호방회 · 장담 · 단승근 · 감인 · 유연명 · 조유 · 색창 · 송요 · 강식
35권 「왕혜룡등전(王慧龍等傳)」 36권 「설변등전(薛辯等傳)」
왕혜룡 · 정희 설변 · 설치 · 설징
37권 「한무등전(韓茂等傳)」
한무 · 피표자 · 봉칙문 · 여나한 · 공백공 · 전익종 · 맹표 · 해강생 · 양대안 · 최연백 · 요훤 · 이숙인
38권 「배준등전(裴駿等傳)」 39권 「설안도등전(薛安都等傳)」
배준 · 배연준 · 배타 · 배과 · 배관 · 배협 · 배문거 · 배인기 설안도 · 유휴빈 · 방법수 · 필중경 · 양지
40권 「한기린등전(韓麒麟等傳)」 41권 「양파등전(楊播等傳)」
한기린 · 정준 · 이표 · 고도열 · 견침 · 장찬 · 고총 양파 · 양부 양소
42권 「왕숙등전(王肅等傳)」 43권 「곽조등전(郭祚等傳)」 44권 「최광등전(崔光等傳)」
왕숙 · 유방(劉芳) · 상상 곽조 · 장이 · 형만 · 이숭 최광 · 최량
45권 「배숙업등전(裴叔業等傳)」
배숙업 · 하후도천 · 이원호 · 석법우 · 왕세필 · 강열지 · 순우탄 · 음중달 · 장당 · 이묘 · 유조 · 부영 · 부수안 · 장열 · 이숙표 · 노시경 · 방량
조세표 · 반영기 · 주원욱
46권 「손소등전(孫紹等傳)」
손소(孫紹) · 장보혜 · 성엄 · 범소 · 유도부 · 녹여 · 장요 · 유도빈 · 동소 · 풍원흥
47권 「원번등전(袁翻等傳)」 48권 「이주영전(爾朱榮傳)」
원번 · 양니 · 가사백 · 조영 이주영
49권 「주서등전(朱瑞等傳)」
주서 · 질열연경 · 곡사춘 · 가현도 · 번자곡 · 후심(2) · 하발승 · 후막진열 · 염현 · 양람 · 뇌소 · 모하 · 을불랑
50권 「신웅등전(辛雄等傳)」
신웅 · 양기 · 고도목 · 기준 · 산위 · 우문충지 · 비목 · 맹위
51·52권 「제종실제왕전(齊宗室諸王傳)」
고침 · 고악 · 고성 · 고영락 · 고현국 · 고사종 · 고언귀 · 고령산 · 고준 · 고엄 · 고유 · 고환(高渙) · 고육 · 북제 · 고식 · 고제 · 고응 · 고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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