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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수정 시각 : 2023-05-28 13:34:44

마성(후한)

운대 28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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馬成
(? ~ 56)
1. 개요2. 생애

1. 개요

양한교체기의 인물로, 자는 군천(君遷). 형주 남양군(南陽郡) 극양현(棘陽縣) 사람이다. 운대 28장 중 한명으로 서열 17위에 속한다.

2. 생애

젊었을 적 현리(縣吏)로 일하던 중 현한의 대사마 유수가 영천군을 공략할 때 그에게 합류하여 안집연(安集掾)이 되었다. 이후 겹(郟)의 현령으로 부임해 지역을 다스리다가 유수가 하북을 공략하기 위해 떠나자 현한의 관직을 버리고 그의 군대를 쫓아 포양(蒲陽)까지 갔다. 유수는 따라온 마성을 기특하게 여겨 그를 기문(期門)으로 삼아 정벌군에 입대시켰다.

건무 원년(25년), 유수가 칭제를 하자 마성은 호군도위(護軍都尉)로 승진하였다.

건무 4년(28년) 8월 10일, 광무제는 마성을 양무장군으로 삼고 주로장군 유륭(劉隆), 진위장군 송등(宋登), 사상교위 왕상 등을 감독해, 회계(會稽), 단양(丹陽), 구강(九江), 육안(六安) 4개의 군에서 병사를 징발하여 여강군 서현(舒縣)의 군벌인 이헌(李憲)을 정벌하도록 했다. 마성은 곧장 군사를 모아 서현을 포위한 뒤, 각 부대에 도랑을 깊이 파고 보루를 높게 올려 이헌의 공격에 대비하라는 명령을 전달했다. 이헌은 수 차례 마성의 포위망을 뚫어보려 노력했지만 마성군의 방어가 단단해 모두 실패하였다. 1년 후, 이헌군의 군량이 바닥나자 마성은 진격해 서현을 함락하고 이헌을 참수하였다. 그리고 도망친 이헌의 잔당들까지 추격해 소탕하니 강회(江淮) 땅이 완전히 평정되었다.

건무 7년(31년) 여름, 이헌을 토벌한 공으로 평서후(平舒侯)에 봉해졌다.

건무 8년(32년), 광무제가 외효를 친히 정벌하러 갈 때 종군하여 공을 세웠다. 외효가 충분히 궁지에 몰렸다 판단한 광무제는 다시 수도 낙양으로 돌아가면서 마성을 천수태수로 삼아 남겨두고 장군직은 이전과 같이 하였다. 그 해 겨울, 광무제는 마성을 수도로 불러들이고 풍이를 천수태수로 임명해 그 자리를 대신하게 하였다.

건무 9년(33년), 외효가 중랑장 내흡에게 몰려 기성(冀城)에 완전히 고립되었을 때 다시 외효 정벌군에 합류하여 여러 장수들과 함께 기성 낙문(落門)을 공격했다. 이윽고 외효가 분사하고 그 뒤를 이은 외효의 아들 외순이 세력을 들어 항복했다.

건무 11년(35년) 6월, 내흡의 지휘 아래 하변(下辨)에서 공손술의 장수 왕원(王元), 환안(環安)과 싸워 대승을 거두었다. 하지만 얼마 지나지 않아 내흡이 공손술의 자객에 의해 암살되었고, 광무제는 조서를 내려 마성을 중랑장으로 삼아 내흡을 대신하게 하였다.[1] 마성은 대장 암살로 혼란에 빠진 군을 수습한 뒤, 무위장군 유상(劉尙)과 함께 하지(河池)를 점령해 무도군(武都郡)을 평정하였다.

일전에 내흡이 강족을 한번 토벌한 적이 있었으나, 내흡이 사망한 틈을 타 선령(先零) 등 강족들이 호미(浩亹)에서 다시 들고 일어나기 시작했다. 마성은 농서태수 마원과 협동하여 난을 진압하고, 항복한 강족들은 쪼개서 천수, 농서, 사예, 삼보 각 지역으로 강제이주시켰다. 조정의 대신들은 오랑캐가 난을 자주 일으키니 양주(凉州) 서쪽 땅을 전부 포기하자 건의했지만, 광무제는 마원의 주청을 받아들여 이들의 요청을 기각하였다. 마원은 유랑민 3천여 명을 모아 농사를 짓게 하고, 저족 강족 우두머리들을 불러 귀부케 하면서 양주는 빠르게 안정을 되찾아갔다. 더이상 토벌군을 주둔시키지 않아도 될 것이라 판단한 광무제는 마성을 낙양으로 불러 군대를 거두어들였다.

건무 12년(36년) 12월, 대사공 이통(李通)이 파면당하고 마성이 대사공의 업무를 대행하였는데 그 직무를 훌륭하게 수행하였다.

건무 13년(37년) 3월, 다시 양무장군으로 돌아왔다.

건무 14년(38년) 2월, 표기대장군 두무와 안문태수 곽량(郭涼)의 활약으로 한 차례 격퇴당했던 노방(盧芳)이 흉노의 지원을 받아 다시 북쪽 변방을 어지럽혔다. 광무제는 오한(吳漢), 마성, 마무(馬武)를 추가로 보내 안문군과 상산군의 관리와 백성 6만여 명을 거용관(居庸關)과 상산관(常山關) 동쪽 방면으로 이주시키도록 명했다. 최전방이 텅 비어버리자 흉노의 좌부(左部)가 변방 안쪽까지 들어와 거주하기 시작하였다. 이에 광무제는 변방군을 더욱 늘려 각 군마다 수천 명 단위의 군대를 주둔시켰다.

건무 15년(39년), 두무가 부정을 저질러 파면되고 마성이 그 자리를 대신해 북쪽 변방을 지켰다. 마성은 흉노에 의해 무너진 요새를 고쳐 10리마다 파수꾼 1명을 두었으며, 두무가 고쳐놓고 떠난 봉화대 역시 잘 활용해 고류(高柳)에서 노방(盧芳)을 격파했다. 그가 세워둔 요새는 서하(西河)에서 시작해 위교(渭橋)까지 이르렀고, 어양태수 장감(張堪) 등 변방의 지방관들도 힘을 모아 흉노를 쫓아내니 수 년간 흉노가 감히 범접하지 못했다. 마성이 변방을 지킨지 5~6년이 되던 해에 광무제는 그의 노고를 치하하고 다시 낙양으로 돌아오도록 하였다. 그러나 변방의 백성들이 마성을 부임시켜 달라는 요청을 계속 제기하자 광무제는 그들의 청을 들어주어 마성을 다시 변방에 보냈다. 얼마 후, 광무제는 마성을 중산태수에 임명하고 장군의 인수를 회수했지만 군대는 그대로 거느릴 수 있게 해주었다.[2]

건무 24년(48년) 정월, 흉노가 분열하여 혜락시축제 선우를 칭한 일축왕 비가 오원의 요새에 사람을 파견해 한나라에 번속이 되기를 요청하면서, 울타리 역할을 해 북쪽의 무리들을 막겠다 선언하니, 한나라에서 이를 받아들였다. 흉노의 내분 덕에 북방이 어느정도 안정되었으나 이번에는 무릉만족이 일어나 무릉군 임원(臨沅)을 공격하였다. 광무제는 알자(謁者) 이숭(李嵩)과 중산태수 마성을 보내 토벌하게 하였으나 이기지 못했다. 이에 마성은 태수의 인수를 반납하고 은퇴하였다.

건무 27년(51년), 전초후(全椒侯)로 개봉되어 자신의 영지로 이사갔다.

건무 32년(56년), 자택에서 숨을 거뒀다. 그의 작위는 아들 마위(馬衛)가 이었으며, 후손인 마추(馬醜) 대에 이르러 죄를 짓는 바람에 한환제가 그의 식읍을 몰수하고 봉국을 폐지하였다.


[1] 후한서》 「마성전」에는 내흡 암살 사건이 "건무 9년(33년)"에 발생한 사건이라 나오지만, 「내흡전」 등 다른 열전들에서는 "건무 11년(35년)"에 일어났다 기록되어 있다. 사마광의 《 자치통감》을 비롯한 다른 후대의 역사서들도 「마성전」의 기록은 오류라 판단해 후자를 택했으므로, 본 문서 또한 35년에 발생한 일로 기록하였다. [2] 당시 이미 많은 개국공신들이 대장군 혹은 장군의 인수를 반납하면서 은퇴를 선언하기도 했고 광무제 역시 문치를 문치를 강조했기에 행한 형식적인 조치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