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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수정 시각 : 2023-12-20 19:19:14

혜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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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확실하게 부자관계가 아님이 증명됨
백제 국왕 }}}}}}}}}

백제 제28대 국왕
혜왕 | 惠王
파일:2016012117421002.jpg
혜왕릉으로 추정되는 부여 왕릉원 전경.
<colbgcolor=#008080><colcolor=#fbe673> 출생
(음력)
526년~ 535년 추정[1]
백제 사비성
(現 충청남도 부여군 부여읍)
사망
(음력)
599년 (향년 60~70대)
백제 사비성
(現 충청남도 부여군 부여읍)
능묘 능산리 서하총 (추정)
재위기간
(음력)
백제 제28대 국왕
598년 12월 ~ 599년 (1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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계(季) / 계명(季明)[2] / 혜(惠)[3]
부왕 성왕[4] / 위덕왕[5]
자녀 태자 부여선[6][7]
종교 불교
시호 혜왕(惠王)
별호 헌왕(獻王)[8] }}}}}}}}}

1. 개요2. 생애3. 대중매체에서4. 《 삼국사기》 기록5. 둘러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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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백제의 제28대 건길지.

성왕의 차남이자 선대 위덕왕의 동생이다. 위덕왕을 이어 노년에 잠깐 재위했기 때문에 기간이 짧아 군주로서의 기록은 거의 없다. 《 삼국사기》에는 즉위 기사와 사망 기사만 있다.

2. 생애

일본서기》에 따르면 긴메이 덴노 16년(555) 2월 위덕왕이 신라와의 관산성 전투에서 아버지 성왕이 전사했음을 알리기 위해 왜국에 혜왕을 사자로 보낸 기록이 있다. 왜국 측은 아버지를 잃어 얼마나 슬프겠냐 위로했고 이에 혜왕은 왜에서 병기를 지원해준다면 치욕을 씻고 원수를 갚고 싶다며 강한 어조로 뜻을 전했는데 그것이 받아들여졌는지 556년 봄 혜왕이 백제로 귀국할 때 병기와 말을 지원하고 1,000명의 병력을 호위로 붙여주었으며 백제와 일본 열도를 잇는 뱃길을 신라 수군으로부터 지키기 위해 미저(彌弖, 지금의 경상남도 남해도)에 왜군을 주둔시켰다. 백제 주력군이 관산성에서 궤멸당한 상황에서 젊을 적의 혜왕이 1년 동안 왜국에 머무르며 왜왕의 신임을 얻고 담판을 지어 빌려온 왜군은 대신라 방어에 쏠쏠한 도움이 되었을 것이다. 이외의 기록은 없지만 위덕왕과 같은 세대이므로 아버지 성왕 시대부터 고구려가 차지했던 한강 유역 탈환이나 관산성 전투 등 굵직한 사건에 왕자로서 참전했을 가능성이 있어서 젊은 시절의 혜왕은 호전적인 성격이었던 것으로 보인다.

597년 위덕왕의 아들 아좌태자가 왜에 사절로 파견된 후 위덕왕이 몸져 눕게 되어 정사를 돌보지 못하게 되자 권력 공백을 틈타 혜왕이 정권을 장악하게 된다. 1년 후 위덕왕이 승하하고 혜왕이 왕위에 오르게 되는데 이러한 정황을 석연치 않게 보는 시각들이 많다. 다수의 학자들이 아좌태자가 왜에 가 있는 동안 위덕왕을 시해하고 재위에 올랐을 가능성을 유력하게 보고 있다. 위덕왕의 경우 525년생으로 이미 70대의 고령이므로 일단 자연사나 병사의 가능성을 높게 보고 있지만 혜왕이 시해했을 가능성도 배제하지는 않고 있다. 위덕왕은 승하하기 1년 전까지만 해도 직접 정사를 돌보았을 정도로 상태가 괜찮았던 것으로 추정되며 아좌태자를 왜에 사절로 파견하는 등 외교적 노력을 기울이기도 했는데 아좌태자가 왜에 파견된 후 혜왕이 갑작스럽게 정권을 장악하게 된다. 혜왕 입장에서는 일본에 있는 태자가 이 사실을 알아채고 귀국하기 전에 왕위에 올라야 했기 때문에 위덕왕이 자연사할 때까지 마냥 기다릴 수 없었을 것이다. 한편 이러한 정변 법왕이 깊이 관여했을 것이라는 소수의 추측이 있는데 고령의 혜왕보다는 젊은 나이의 법왕이 앞장서서 이러한 일들을 꾸미고 진행했다는 것이다.

웅진 사비 시대에 일어난 수많은 정변들을 볼 때 정변에 성공하기 위해서는 반드시 이를 지원하는 귀족 세력( 대성팔족) 또는 외국 세력(왜국)이 배후에 있어야 했다. 혜왕의 정변 때도 그를 지지하는 세력이 있었던 것이 분명한데 이와 관련하여 일각에서는 대성팔족 중 위덕왕의 반대 세력들이 위덕왕과 아좌태자를 시해한 후 곧 죽을 고령의 혜왕을 허수아비 왕으로 내세운 것이 아니냐는 가설도 있다. 왕위에 오른 혜왕은 즉위 후 1년만에 승하했는데 생년이 명확하지 않지만 형 위덕왕이 70대였던 이상 그도 고대 기준으로는 언제 사망해도 이상하지 않을 고령이었을 가능성이 높으므로 노환으로 사망했을 가능성이 높은 편이다. 형과 나이 차이가 많이 나는 동생이라고 쳐도 555년 왜국에 사신으로 간 기록을 봐서 이 때 넉넉히 20살이었다고 쳐도 535년생인데 그러면 왕으로 즉위한 598년 시점에는 이미 환갑을 넘긴 나이다. 다만 즉위 때까지만 해도 멀쩡했던 사람이 1년만에 갑작스레 승하했다는 점에서 정변으로 인해 시해당했거나 누군가에게 암살되었을 가능성도 제기된다. 이와 관련해 그를 이어 왕위에 오른 법왕의 출신이 중요한 관건이 되는데 법왕의 출신에 대해 《삼국사기》는 혜왕의 아들이라고 기록하고 있지만 《 수서》는 위덕왕의 아들이라고 기록하고 있다. 백제 왕사에 대해서는 《삼국사기》보다 《일본서기》가 정확도가 더 높은 편이지만 《일본서기》에서는 이에 대한 언급이 없다는 것이 문제다.

3. 대중매체에서

4. 삼국사기》 기록

삼국사기(三國史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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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국사기》 <혜왕 본기>
一年冬十二月 혜왕이 즉위하다
二年 혜왕이 죽다

워낙 고령에 즉위했기 때문에 즉위 전 일부 기록만 있을뿐 군주로서는 즉위 기록과 사망 기록뿐이다. 왕일 때 무엇을 했는지 알 수가 없다. 다만 즉위할 때 이미 고령인 인물이었기에 별 다른 치적을 남길 새도 없이 병석에 누워있다가 사망했거나 급사했을 가능성도 적지는 않다. 그래도 기록이 적기로 유명한 계왕 사반왕보다는 나을 수 있다.

5. 둘러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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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여사
부여창성
[범례]
실재 혈통 기준
세로선(│) 부자, 부녀, 사위관계
가로선(─) 형제, 자매관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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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태어난 해는 미상이지만 위덕왕의 승하 당시의 보령이 73세였고 525년생인 것으로 보아 혜왕 역시 즉위 당시 노년의 나이었을 가능성이 높고 출생연도는 526년~ 535년 사이에 출생한 것으로 추정된다. [2] 삼국사절요 [3] 일본서기》에서 백제왕 창의 동생이 '혜(惠)'라고 했다. [4] 삼국사기》, 《 일본서기 [5] 삼국유사》, 《 삼국사절요》. 참고로 그냥 아들이 아니라 차남으로 기록되어 있다. [6] 삼국사기》 및 《 일본서기》에는 태자였다는 기록이 없다. 김립지찬 성주사비 기록. [7] 삼국사기》의 기록. 《 수서》에는 위덕왕의 아들로 기록되어 있다. 당대의 백제에 대한 기록은 《 일본서기》를 가장 신뢰하고 있지만 《일본서기》에는 이에 대한 언급이 없다. [8] 《삼국유사》, 김립지찬성주사비 기록. 이쪽이 정식 시호일 가능성이 높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