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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두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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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악 지리산

백두산
| Mountain Paektu
행정구역명 <colbgcolor=#fff,#1f2023>파일:중국 국기.svg 중국 지린성 연변 조선족 자치주 안도현
파일:중국 국기.svg 지린성 바이산시 푸쑹 현
파일:중국 국기.svg 지린성 바이산시 장백 조선족 자치현
파일:북한 국기.svg 북한 량강도 삼지연시
파일:대만 국기.svg 중화민국 안둥성 창바이현·린장현 (명목상)[1]
파일:대만 국기.svg 쑹장성 안투현·화룽현 (명목상)
파일:대한민국 국기.svg 대한민국 함경남도 혜산군 보천면 (명목상)
파일:대한민국 국기.svg 함경북도 무산군 삼장면 (명목상)
높이 2,744m (병사봉) (남한 주장)
2,750m (장군봉) (북한 주장)
분류 활화산
산맥 장백산맥, 마천령산맥
각국 표기
<colbgcolor=#eaeaea,#191919> 한국어 백두산(白頭山)
영어 Mountain Paektu (북한식)
Mountain Baekdu (남한식)[2]
Baekdusan Mountain (남한식)[3]
Mountain Changbai (중국식)
중국어 长白山(중국식)/長白山(대만식)
(Chángbáishān, 창바이산)
만주어 ᡤᠣᠯᠮᡳᠨ ᡧᠠᠩᡤᡳᠶᠠᠨ ᠠᠯᠢᠨ
(golmin šangiyan alin)

1. 개요2. 특징3. 명칭4. 국경선5. 자연과 기후
5.1. 동물상5.2. 천지 괴수
6. 화산
6.1. 946년 백두산 대분화6.2. 오늘날 보이는 활동6.3. 백두산이 폭발한다면?
7. 관광
7.1. 북파 코스(北坡)7.2. 서파 코스(西坡)7.3. 남파 코스(南坡)7.4. 동파 코스(東坡)
8. 여담9. 관련 문서10. 둘러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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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파일:external/chulsa.kr/a553c104e59ce93c6e029ee36a59dbd0.jpg
백두산 천지
파일:attachment/백두산/e0116729_5009ee25bdcbd.jpg
비룡폭포
파일:백두산 남파.jpg
북한에서 바라본 백두산 동쪽

백두산()은 한반도에서 가장 높은 산이다. 북한 중국 국경에 있는 화산으로 화산의 분류 체계에 따르면 성층화산, 활화산, 초화산에 속한다. 한반도에서 모든 산의 '조종산'이다. 봉우리는 총 16개로 최고봉은 해발 2,744m인 병사봉(兵使峰)[4]으로 북한 지역에 있으며,[5] 각 봉우리 정상 사이에 칼데라 호수 천지를 품었다. 압록강, 두만강, 송화강의 발원지이다. 한국에서는 공식적으로는 헌법의 시각을 반영하여 한국지리 교과 등에서 '한국의 산'으로 간주하고 있다. 이는 대만도 비슷하다.

2. 특징

백두산의 높이는 자료마다 조금씩 다르다. 한국 북한 중국 세 나라가 해발고도를 재는 기준이 서로 다르기 때문이기도 하고[6] 과거에 측정한 방식이 현대보다는 부정확하기 때문이기도 하다. 우리나라 사람들이 익히 아는 2,744m는 일제강점기 때 측량한 값이다. 인공위성을 활용하기 전에는 높이가 알려진 곳에서 삼각 측량으로 높이를 쟀기 때문에 현대적 기준에 따른 측량한 결과와 비교하면 오차가 있을 수 있다.

해발고도와 구분되는 기복량(起伏量)이란 개념이 있는데, 일정한 범위 안에서 가장 높은 곳과 가장 낮은 곳의 높이 차를 말한다. 범위를 1km2로 하여 한반도 전역의 기복량을 비교하여 백두산의 기복량은 2,505m라고 밝힌 논문이 있다.[7]

세계에서는 37,473번째로 높은 산이다.[8] 북한 량강도에 속한 삼지연시 중화인민공화국 지린성에 속한 연변 조선족 자치주의 사이에 있다. 대한민국의 명목상 행정구역[9]으로는 함경남도 혜산군 보천면[10] 함경북도 무산군 삼장면에 걸치며, 천지(용왕담) 전역은 혜산군 보천면 관할이다. 중화민국(대만)의 명목상 행정구역으로는 안둥성(安東省) 창바이현(長白縣)과 쑹장성(松江省) 안투현(安圖縣)에 걸친다. 천지는 창바이현 관할.[11]

한민족 영산으로, 지금도 한국 국가 북한 국가에 모두 등장한다. 백두산을 영산으로 중요시함은 상당히 오래되었다. 삼국유사에는 오대산을 설명하며 "이 산은 곧 백두산의 큰 줄기로, 각 대에는 진신이 늘 있는 곳이다."( #)라고 기록한 부분이 있어 이미 신라 때부터 한반도 산줄기의 근본 기준이자 신앙대상으로서 백두산을 꽤나 중시하였음을 알 수 있다.

그러나 고려 왕조 당시에는 말갈/ 여진의 땅이었기 때문에, '아주 멀리 있는 산맥의 기원'이라는 의미 이외에는 크게 주목받지 못하였다. 다만 고려사 묘청열전 인종 9년(1131)조에 묘청이 건의하여 서경( 평양)에 팔성당(八聖堂)을 세웠는데, 거기서 호국 백두악 태백선인 실덕 문수사리보살(護國白頭嶽太白仙人實德文殊師利菩薩)이라는 신격을 모셨다는 기록이 있고, 12세기 중엽 고려 의종 대에 쓰인 편년통록(編年通錄)에 왕건의 조상인 호경이 백두산으로부터 내려왔다는 내용이 있으므로, 한동안 백두산이 자국의 기원과 관련된 중요한 산이라는 인식이 퍼지기도 했다.

조선시대 초에는 태종 14년(1414) 이전 어느 시점부터 제사 지낸 것을 이어받아 중사(中祀)로 제사를 지내기도 했으나( 태종실록 14년 8월 신유), 세종 19년(1437) 자국 영토에 있지 않다고 하여[12] 제사 대상에서 제외했다( 세종실록 19년 3월 계묘). 이후에도 조선은 '백두산 자체는 우리 땅이 아니긴 한데, 백두산 남쪽은 당연히 우리 땅이고 우리나라 산맥은 백두산에서 기원함!'이라는 식으로 의미를 부여했다. 이런 인식을 가장 잘 체계화한 책이 신경준의 산경표인데, 이 책에서부터 ' 백두대간'이라는 말이 확립되었다.

이후 영조 37년(1761)부터 백두산이 조선 산맥의 근본이 된다는 이유로 제사를 지내자는 건의가 올라오기도 했지만, 검토 단계에서 숙종 때 청이 목극등을 보내 확정한 경계가 백두산으로부터 남쪽이라는 이유로 백두산 대신 백두산 맞은 편에서 백두산을 바라보며 제사를 지내기로 하였다( 영조실록 43년[1767] 윤7월 신축).[13] 이후 1880년대부터 이른바 간도 지역을 두고 영유권 분쟁이 벌어지면서 백두산 인근 지역에 대해서도 관심이 높아졌다. 1897년 대한제국이라고 칭제건원하면서 황제국의 전례에 따라 오악(五岳)을 설정할 때에 백두산을 북악으로 지정하여 공식적으로 제사를 지내는 영산으로 삼았다.

현재는 북한과 중국이 절반씩 나눠서 관리한다. 중국에서는 중국5A급여유경구로 지정하였다. 그래서인지 입장료는 125위안으로 비싸다.

3. 명칭

此山乃白頭山之大脉, 各䑓真身常住之地.
이 산[14]은 곧 백두산(白頭山)의 큰 줄기로서 각 대(臺)는 (불보살의) 진신이 항상 머무는 땅이다.
삼국유사 권 제3 제4 탑상(塔像第四) 대산오만진신(臺山五萬眞身)[15]
有名虎景者, 自號聖骨將軍. 自白頭山遊歷, 至扶蘇山左谷, 娶妻家焉, 富而無子.
이름이 호경(虎景)이라는 사람이 있어 스스로 성골장군(聖骨將軍)이라고 불렀다. 백두산(白頭山)에서부터 두루 돌아다니다가 부소산(扶蘇山)[16]의 왼쪽 골짜기에 이르러 장가를 들고 살림을 차렸는데, 집안은 부유하였으나 자식이 없었다.
고려사 권제1 세가1 고려세계[17]
玉龍記云, ‘我國始于白頭, 終于智異, 其勢水根木幹之地, 以黑爲父母, 以靑爲身. 若風俗順土則昌, 逆土則灾.’
『옥룡기(玉龍記)』[18]에서 이르기를, 우리나라(의 지형지세)는 백두산(白頭山)에서 시작하여 지리산(智異山)에서 끝나는데, 그 형세가 물이 뿌리가 되고 나무가 줄기가 되는 땅으로 흑(黑)을 부모로 삼고, 청(靑)을 몸으로 삼는다. 만약 풍속(風俗)이 땅을 따른다면 창성할 것이나, 땅을 거스른다면 재앙이 내릴 것이다.'라고 하였습니다.
고려사 권제72 지 권제26 여복(輿服)1 관복, 공민왕(恭愍王) 6년(1357) 윤9월 사천소감(司天少監) 우흥필(于必興)의 상소에서
慶源府西有長白山, 一名白頭山, 山凡三層, 其頂有大澤南流鶯鴨緑江, 北流爲蘇下江, 東流爲豆漫江.
경원부(慶源府) 서쪽에 장백산이 있는데 일명 백두산이다. 그 정상에 큰 못(大澤)을 길러서 남으로 흘러 압록강, 북으로 흘러 소하강( 송화강), 동으로 흘러 두만강이 된다.
용비어천가 1권 4장의 주석
조선 국경에서 멀지 않은 산림 가운데 태백산, 즉 백두산이 구름 위에 솟아 있습니다. 이 산은 지금 왕좌를 차지하고 있는 청조(淸朝)의 시조인 한왕(汗王 누르하치)의 탄생지이기 때문에 중국에서 유명합니다. 그 산 서쪽 비탈에는 그의 옛 집이 보수되어 보존되는데, 중국인들은 그곳을 종교적 예배의 대상으로 삼습니다. 아주 먼 지방에서 경건한 순례자들이 와서는 이마가 땅에 닿도록 조아립니다.
김대건 안드레아 신부가 페레올 고 요한[19] 주교에게 보낸 편지 中 #

백두산이라는 이름이 등장하는 가장 오래된 문헌은 『 삼국유사』로, 신라 명주 오대산을 백두산의 줄기로 소개하는 기사가 2차례 등장한다. 『 고려사』 세계와 성종 10년(981)에도 기록이 남아있다. 그 이전 기록의 경우 『 삼국사기』, 『삼국유사』, 『 제왕운기』에 여러 차례 등장하는 ' 태백산'을 지금의 백두산을 가리키는 것으로 추정하는 편이다.[20] 단군신화, 부여, 고구려를 설명하면서 '태백산'을 무대로 언급한다. 대체로 10세기 후반부터 백두산이라 불렀다고 추정하지만, 김대건 안드레아 신부의 편지에서 보듯 19세기까지도 태백산이라는 이름이 쓰이기도 한 모양이다.

조선시대 이전부터 백두산 이외에도 장백산을 혼용했다. 용비어천가에서도 장백산이라고 언급하며 '백두산'은 별칭이라 하였다. 조선왕조실록에도 장백산이 백두산보다 훨씬 더 많이 나온다.[21][22]

부연 설명을 하자면, 일연은 < 삼국유사>에서 단군신화를 설명할 때는 환웅이 자리잡은 태백산에 ' 묘향산을 이른다'는 주석을 달았으나, 고구려 건국 신화 부분에서 동부여 왕 금와가 태백산 남쪽 우발수에서 유화를 만난 부분에서는 태백산에 특별한 주석을 달지 않았다. 다만 고구려=졸본부여라 하면서 졸본을 요동 인근으로 비정했는데, 지리적인 상황으로 보아 학계에서는 백두산으로 본다.[23]

반면 이승휴의 <제왕운기>에서는 처음부터 태백산이라고만 적고 별도의 주석을 달지 않았다. 부여, 옥저, 신라[24], 고례(高禮), 예맥이 모두 단군의 자손이라고 보는 동시에, 이승휴 자신이 중국에 사신으로 갈 때 요하 근처의 무덤을 현지인들이 '부여 부마 대왕의 무덤'이라고 증언하는 것과, 요하 인근을 부여의 땅으로 기록하고 부여가 후조선[25]의 후예라고 기록한 가탐의 기록을 실어놓아 요하 일대와 백두산을 부여 영토로 추정하고 있다.

여기서 단군신화의 태백산을 일연이 묘향산이라고 주석을 단 데에는 백두산으로 바로 잡아야 한다는 설(서대석 교수의 주장), 묘향산 불교의 성지라서 그 영향을 받았다는 설,[26] 백두산에 대한 인식이 희박해지면서 백두산 신앙의 요소가 묘향산으로 이동한 것을 반영했다는 설( 최남선 주장), 고조선의 수도가 평양으로 이동하면서 평양 지역에 토착화되면서 변했다는 설 등이 있다. 단군 문서 참고.

북한의 평양 단군릉 발굴 및 개건과 남한 이승만 정권의 단기 사용[27], 대종교의 단군 숭배와 백두산 성역화, 단군 동상 설립 등이 한국인의 단군 숭배를 보여준다.

백두산에 관련된 신화는 한민족뿐만 아니라 만주족, 특히 청나라에서도 나타난다. 만주족의 기원 신화의 중심지 또한 백두산이며 청나라 시절 백두산은 만주족의 영산으로서 매우 특별한 대우를 받았다.[28]

중국에서는 산해경의 기록에선 불함산(不咸山)으로, 이후 위진남북조 시대(221∼589)에는 태백산(太白山), 도태산(徒太山) 등 여러 이명으로 불렸다. 현대에는 '창바이산(長白山)'이라고 통일되었는데, 이는 만주어로 '긴 흰 산', '큰 흰 산'이라는 뜻인 '골민 샹갼 알린(Golmin Šanggiyan Alin)'[29] 번역차용한 것으로, 요나라, 금나라 시기부터 쓴 이름이다. 이러한 명칭은 9개월 가까이 눈이 쌓인 특색 있는 산정의 모습을 잘 반영했다.[30]

즉 현대 중국이 사용하는 '장백산'이라는 표현은 한족(漢族)의 용어가 아니다. '장백산', '백산'은 우리나라가 백두산을 지칭하며 사용한 명칭이기도 하다. 10세기 무렵부터는 중국에서 대부분 장백산, 백산이란 명칭이 많이 사용되었다. 이 시기 고려에서도 장백산이란 명칭으로 많이 불렀고 조선시대에도 이어졌다. 지금의 백두산이란 명칭은 그 전에도 쓰이긴 했지만 조선 말기에나 빈도가 높아진다.

일본 NHK에서 북한 측의 협력을 얻어 백두산 일대의 식생을 50분짜리 자연 다큐멘터리로 담아낸 적이 있는데, 여기서 볼 수 있는 백두산은 그야말로 '희고 긴 산'이다. 한국측 미디어에서 대개 백두산 천지를 그려내는 데 비해 이 다큐는 삼지연 일대의 자연을 담고 있어서 밑에서 올려다보는 백두산의 모습이 보이기 때문.

영어권에서는 백두산이란 이름을 중국식으로 읽어서 'Baitou Mountain'이라고 하기도 한다. 한편 '밝달뫼'라는 명칭으로 주장하기도 하는데 이른바 순우리말 의 이름이라고 도는 이름 가운데 10월이 하늘연달( 개천절 때문)이라는 주장도 있다. 일단 공식 표기는 북한의 표기인 Mt. Paektu.

백두산의 가장 높은 봉우리 이름은 병사봉(兵使峰)이다. 북한에서는 장군봉이라고 하는데, 장군봉이라는 작명을 한 사람은 김정일. 1963년 8월 백두산 방문 때 백두산 최고봉 이름이 병사봉임을 알고 " 수령님 백두산이 낳은 장군님이신데 제일 높은 봉우리가 병사봉일 수는 없다. 장군봉으로 고치게."라고 말했다는 일화가 있다. 항간에는 원래 이름이 장군봉이었는데 일제가 비하할 목적으로 병사봉으로 고쳤다는 설이 있으나, 사실이 아니다. 정작 일제가 붙인 이름은 대정봉(大正峰)이었다.

그런데 백두산의 병사봉은 병사(兵士)가 아니라, 지금의 사단장- 군단장 급에 해당하는 조선시대 마절도(馬節度使)를 줄여 말하는 것이다. 남북한 모두 더 이상 한자를 널리 쓰지 않는 이상 동음이의어 표기의 오해 여지가 있을 수 있기에 아예 명확한 의미인 장군봉으로 바꿨을 수도 있으나, 여기에 김일성의 항일투쟁 우상화를 반영하였으므로 차후 통일되면 표기 변경과 관련하여 고민해 봐야 할 듯하다. #

북한에서 김일성 일가는 백두혈통으로 불리며, 북한의 계급 중 상류층인 핵심계층 중에서도 최고위 계층을 '백두산 줄기'이라고 부른다. 일제강점기 시기에 김일성의 항일무장투쟁에 동참했고, 북한 정부 수립 이후에도 끝까지 숙청되지 않고 함께한 측근 인사들과 그 가족들을 지칭한다. '백두산 줄기'는 백두혈통과는 달리 혈연 관계에 의한 혈족 개념보다는, 김일성의 항일무장투쟁 전통을 함께 공유하고 계승하는 정치사상적 혈통에 가깝다.

한국의 육군 보병 사단 중 제21보병사단백두산 부대라는 별칭이 있다.

4. 국경선

파일:북한 국기.svg 북한 지역 영토관할권 분쟁 지역
백두산 영토주권
백두산
두만강 영토주권
녹둔도
간도 영토주권
간도

파일:백두산북중국경.jpg
파일:백두산국경_남한측.png
중국과 북한이 협약한 국경. 현재 국제법상 표준이다. 대한민국 정부의 명목상·법적 국경.

6.25 전쟁이 끝난 후 북한 중국이 맺은 조중변계조약에 따라 현재 북한과 중국의 국경선은 천지 한가운데를 지난다. 이 국경조약은 북한 방향으로 뻗은 백두산 천지의 54.5%를 북한령으로, 중국 방향으로 뻗은 백두산의 나머지 45.5%를 중국령으로 정한다. 이에 따라 2,500m 이상 백두산 봉우리 16개 중 9개가 북한령, 7개가 중국령이 되었다.

한때 남한에서는 조중변계조약으로 북한이 중국에게 백두산의 절반을 팔아넘겼다는 설이 있었으나, 조선시대인 1712년 천지 동남쪽 4km 지점에 세웠던 백두산정계비와 정계비부터 흑석구까지 정계비와 목책, 석토퇴로 이루어진 경계표지의 위치를 비교하면 조선시대에는 백두산의 절반 넘는 지역이 청나라의 영토였으며 오히려 조중변계조약은 정계비에 비해 조금 더 북한에 유리하게끔 체결되었다고 볼 수 있다. 조약 당시 중국 측 협상 대표였던 저우언라이나, 연변의 주덕해 등이 중국 내부에서 크게 비판받기도 했다. 심지어 대한민국의 법적인 영토와도 영유권을 주장한적 없는 백두산 동쪽 기슭이 북한의 영토가 되어 전체 면적은 큰 차이가 없다. 사실 한국 국토지리정보원의 지도조차 이 지역에 대한 국경 표시가 일관되지 못했으며, 백두산 동쪽은 아예 북한과 중국이 합의한 국경이 유리하므로 그냥 그 국경을 그대로 표기하며 천지를 한국 영토로 표시한 지도도 있다. (출처)

한편 표지물이 두만강이 아닌 송화강 상류의 지류 중 하나로 연결된 이유는 당시 청에서 파견된 오라총관 목극등이 흑석구가 두만강으로 이어진다고 착각했기 때문이었다. 흑석구부터 두만강 발원지인 홍토수까지 이어진 성격이 불분명한 목책이 남아 있는데 이에 대해서는 표지물 공사를 위해 파견된 조선인들이 일방적으로 목극등의 실수를 바로 잡으려 한 흔적이고 조선 정부도 이를 추인했다는 설이 있다.

구체적으로는 1885년 백두산정계비의 내용과 위치를 두고 조선은 청과의 국경이 두만강이 아니라 흑석구-오도백하-송화강으로 이어진다고 주장했다가 2년 뒤에는 철회했으나, 청의 간섭에서 벗어난 1900년대부터 다시 같은 주장을 내세워 1903년부터 1904년까지는 이범윤을 간도관리사로 파견해 두만강 이북과 해란강 이남 지역에 영향력을 행세하기도 했다.

현재 천지 인근에는 북한과 중국이 세워 놓은 경계비가 상당수 존재한다. 따라서 중국 쪽 루트로 백두산 천지에 올라 북한과 중국이 설치한 경계비를 지나치면, 대한민국 국민도 북한 땅을 잠시나마 밟아볼 수 있는 것이다! 다만 한국 북한이, 대만 중국이 다른 나라와 체결한 조약을 인정하지 않기 때문에 미래에는 영토 분쟁의 가능성이 있다. 예전에 대한민국 정부는 정부 발행 지도에서 천지 서북방에 위치한 백두산 봉우리 전부를 연결한 선을 한중 양국간의 국경으로 표시하며 백두산의 대부분을 한국령이라고 주장했지만, 한중 양국간의 정상회담이나 여러 나라들이 함께 논의하는 국제정치협상 국제사법재판소 유엔 총회에서 정식으로 영유권 문제를 거론한 사례가 전혀 없었다.

타이완 섬을 다스리는 중화민국 정부도 백두산에 대하여 영유권을 주장하는데, 백두산정계비가 청나라 시절 백두산 동남쪽 기슭에 있다고 간주하며 정계비 근처의 홍단수와 포도하 이남이 한국의 영토라고 간주한다. # 일제와 무관한 입장이다. 예전에 북양정부가 현장시찰로 정밀하게 측량한 백두산 산지의 지도들을 국민정부의 내정부와 국방부가 모두 접수하여 문서보관소와 중앙연구원에 보관했으니, 중화민국 정부가 편찬한 연감에서 한때 백두산 산지는 한반도가 아니라고 언급한 시절도 있었지만, 미수복 지역의 정밀측량 지도들을 써먹을 일이 워낙 없어서 최근에 서둘러 오래 묵은 지도들의 전산화를 완료한 이후로 타이완 지구 이외에는 특별한 언급이 없을 만큼 백두산의 영유권에 대하여 무관심한 형편이다.[31]

그러니까 마주한 쪽인 중국-북한 간에는 어찌어찌 합의를 했는데, 해당 지역에 행정력이 미치지 못하는 쪽에서는 이를 공식적으로는 인정하지 못하고 해당 지역 전체에 대한 영유권을 주장하는 양상이다. 비록 대만의 범록연맹이라든가, 한국의 대북 유화파 등은 이를 인정하는 정치적 시각이 강하지만 아직 영유권을 주장하는 법규까지는 건드리지는 못하고 있다. 만일 남북통일이 된다면 로잔 조약 오데르-나이세 선 독일 재통일의 선례에 따라 현실적인 이유로 조중변계조약을 따를 것으로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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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 사진은 대만이 주장하는 국경선이 빠져있다.

5. 자연과 기후

높은 위도와 고도로 인해 이 산의 정상부는 한반도에서 가장 추운 곳이다. 9월 하순부터 6월 상순까지가 겨울이며, 최한월인 1월 평균 기온은 약 -25℃, 최난월인 7월 평균 기온은 7.8℃로 시베리아와 비슷한 기온 분포를 보이며, 강수량은 1,500mm 정도로 많다. 1943년 1월에 비공식적으로 백두산 정상에서 -47.5℃가 기록된 바 있고, 1997년 1월 2일에는 비공식적으로 무려 -51.0℃가 관측되기도 했으며( #)[32], 비공식이지만 백두산 정상 일원에서 -54.7℃가 기록된 적도 있다.[33] 정상에 한정하면 한반도를 통틀어 유일하게 한대기후 툰드라와 가까운 기온을 보이는 지역이다. 다만 사실 이렇게 고산 지역에서 나타나는 추운 기온대는 고산기후로 분류하는 것이 일반적이다.

백두산의 날씨는 , 구름, 안개, 폭우, 강풍, 혹한 등이 일반적이며, 연중 변화무쌍해서 쾌청한 날씨를 찾아보기 힘들다. 9월 하순부터 다음해 6월까지 겨울이고[34], 6월 중하순~9월 초중순까지 약 3개월 동안만 / 가을이며 여름 없이 추분부터 겨울로 넘어간다. 하루에도 수십 차례 기상이 급변하고 구름에다 안개로 가려져 백두산의 전경을 보기가 어렵다. 그래서 날씨 좋은 타이밍에 맞추어 백두산 천지의 모습을 보는 것은 행운이라 여길 정도다.

여름에도 갑작스럽게 기온이 낮아져 방풍복을 준비해야 한다. 기온은 연 평균 -6~8℃, 아무리 높아도 최고 18~20℃이며, 연중 눈, 비가 내리는 날이 200여 일, 연중 강풍일수는 270일이다. 겨울 날씨가 1년 중 230일이다. 6월 초까지 눈에 덮여있는 백두산 등정은 한여름 장마철보다 6월 말에서 7월 초, 8월 말에서 9월 초가 적당한 시기이다. 실제로 평양 남북정상회담 당시 문재인 대통령과 김정은 위원장 등 일행이 천지를 방문했을 때는 쾌청했으나 늦가을 날씨(!)였으며, 그 다음에 김정은이 10월 중순 천지를 다시 방문했을 때는 블리자드가 몰아치는 사진이 북한 매체에 등장 했다.

백두산이라는 이름답게 정상 부분에 화산재가 퇴적되어 만들어진 용결 응회암층이 있다. 현지 가이드들은 '백 번 올라서 두 번 천지를 보기 어렵다'고 지어졌다는 농담을 한다.[35]

칼데라 호수인 천지가 정상에 있으며, 이 천지의 수량은 20억 톤이라는 양을 자랑한다. 천지의 수량이 이렇게 많다는 건 문제가 되는 게, 화산이 분화할 때 인근 지역에 가장 치명적인 피해를 주는 화산재해 중 하나인 화산이류(라하르)가 발생하기 때문이다.

오늘날 천지는 천여 년 전인 10세기 무렵 폭발로 형성된 것이다.[36] 백두산이 천여 년 전에는 높이 3,500m 정도였고 폭발하면서 오늘날 모습이 되었다는 설이 있지만, 그 폭발은 천여 년 전이 아닌 훨씬 이전에 일어난 일이고 천여 년 전에는 주로 부석을 분출했다. 백두산에 안 가 본 사람들은 백두산이 후지산처럼 봉우리가 우뚝 솟아 있는 형태라고 생각하지만, 백두산은 후지산과 달리 개마고원이 있고 주변에 2,000m가 넘는 봉우리들이 즐비하기 때문에 사람들의 막연한 상상과는 상당히 다르다. 백두산은 옛 분화로 흘러나온 마그마가 사방으로 흘러내려 이룬 용암대지에 있기 때문에, 높이보다는 산의 밑동이 거대하다.

5.1. 동물상

그야말로 한반도 동물상의 정수만을 모아놓은 듯한 화려한 동물상을 자랑한다.

한반도 북쪽에서만 볼 수 있는 동물들이 많이 서식한다. 검은담비, 반달곰, 스라소니, 와피티사슴, 우수리불곰, 붉은여우 등. 조류로는 멧닭, 긴꼬리올빼미, 세가락딱다구리가 서식하고 양서류, 파충류도 북살무사 등 남한에서 찾아볼 수 없는 종류가 많고 곤충 고유종도 풍부하다.

5.2. 천지 괴수

천지에는 괴수가 산다는 소문이 있다. 증언에 따르면 네스호의 괴물을 닮았다고 하고, 머리가 황소를 닮았다는 카더라도 있다. 의외로 오래 전부터 목격담이 존재한다.

산해경 17권에 백두산에 산다는 괴생물 이야기가 나오기는 한다.
大荒之中 有山 名曰不咸 有肅愼氏之國‘ 有蜚蛭 四翼 有蟲 獸首蛇身名曰琴蟲
대황(大荒) 가운데에 산이 있는데 이름을 불함(不咸)이라 한다. 숙신씨(肅愼氏)의 나라에 있다. 비질(蜚蛭)이 있는데 날개가 넷이다. 짐승 머리에 뱀 몸통을 한 것이 있는데 이름을 금충(琴蟲)이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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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의 그림이 백두산에 산다고 산해경에 나오는 괴수 금충(琴蟲). 하지만 중국 위진남북조 시대 사람 곽박(郭璞 276-324)이 산해경에 주석을 달며 금충을 '뱀의 일종'이라고 간단하게 설명했고, 산해경 자체의 서술 또한 흔히들 생각하는 '천지에 서식하는 거대생물'이 확실히 아니다. 머리가 특이하게 생긴 뱀이었을 것이다.

북한 당국이 1960년에 산천어를 천지에 푼 이후 산천어가 번식함을 확인하였다. 천지가 물이 맑고(먹잇감이 없고) 차가워서 산천어를 풀어도 그 안에서 살기 어려우리란 평이 지배적이었으나, 결과를 보면 산천어가 살기 매우 좋은 환경인 듯. 천지에 사는 산천어는 몸집도 다른 곳에 사는 산천어보다 훨씬 크다고 한다. 북한에서는 천지에 사는 괴수란 것이 산천어를 잘못 본 것이라고 주장하는 사람도 있다. 관련기사

천지의 바닥에 있는 부석이 천지 밑에서 뿜어나오는 이산화탄소를 받아 떠올랐다가 가라앉는 모습이 사람들에게 괴수로 보였다고 추정하는 이들도 있다. 그뿐 아니라 백두산 근처에 사는 곰이나 새가 헤엄치는 광경을 괴물이라고 오인했을 가능성도 있다. 아마도 한 가지 이유는 아니고 이 모든 요소가 다 합쳐져서 '천지에 사는 괴물' 이야기가 나온 것 같다.

백두산이 946년에 대폭발했을 뿐만 아니라 조선시대에도 분출한 적이 있으므로, 천지에 거대한 괴물이 산다는 소문은 진지하게 고려할 필요가 없는 헛소문에 불과하다. 천지에 정말로 괴물이 살았다 해도 이런 화산 폭발 때문에 이미 옛날에 죽어버렸을 것이다. 천지에서 물이 밖으로 흐르는 곳은 천지 북쪽에 있는 조그만 협곡 '달문'밖에 없다. 천지의 물은 달문으로 흘러내려 장백폭포와 이도백하를 거쳐 송화강에 도달한다. 사람들이 상상하는 거대한 괴물이 정말로 존재한다면, 946년 대분화가 그치고 백두산이 식은 뒤에 이도백하를 거슬러 올라와 낙차가 68미터나 되는 장백폭포를 뛰어넘어 (먹을 것도 없는) 천지에 터를 잡았다는 뜻이다. 도저히 있을 수가 없는 일이다.

6. 화산

백두산은 크기가 상당한 칼데라 화산이다. 넓고 두껍게 퇴적된 (조면) 현무암 성분의 순상 화산체 위에 납작한 원뿔대 모양 산체가 발달했고, 산체 정상에는 큼지막한 칼데라 호수(천지)가 있다. 대중에게는 휴화산이라고 알려졌지만, 아직도 뜨거운 물이 콸콸 쏟아지거니와 화산성 지진이 꾸준이 일어나고 1만 년 이내에 활발하게 분화했기 때문에 현대 화산학의 기준에 따르면 의심의 여지가 없이 활화산이다.

동아시아의 대표적인 판내부 화산(intraplate volcano)[37]으로, 산체의 규모, 역사시대의 폭발 기록, 지질학적으로 독특한 위치 때문에 지질학계에서 주목하는 산이다.

잘 알려지지는 않았지만 중국에서는 백두산 부석이 유명하다. 북한도 이를 아는지 헐값에 팔아서 중국 내에서 건축자재로 쓰인다.

백두산이 언젠가 대분출해 큰 피해를 입힐지 모른다는 주장이 21세기 들어 상당히 주목받는다. 역사적으로도 사례가 있었기에 더욱 그렇다. 결국 터지긴 할 텐데 언제 어느 정도 규모일지가 관건. 한국인이 영산으로 긍정적으로 여기는 산임에도 일본 규슈 아소산과 함께 한반도 주변에서 가장 가깝고 위협적인[38] 양대 활화산임은 얄궂은 일이다.



화산학계에서도 한때 미스터리라고 불릴 정도로 영 엉뚱한 위치에 있어서 초유의 관심을 끌었다. 역사에 한 획을 긋는 어마어마한 대분화를 일으킨 화산이건만 기존의 판구조론으로도, 플룸(열점) 이론으로도 설명이 안 되는 사례였던 것. 화산학자들이 달려들어 연구한 끝에 여러 가지 획기적인 발견을 하였다. 동아시아 지역의 지질학에 관심이 있다면 주의 깊게 살펴볼 만한 영상. 이 기사에 백두산의 구조에 대해 설명이 있으니 참조하자.

역사적으로 946년, 1014년, 1124년, 1199년, 1265년, 1373년, 1401년, 1573년, 1597년, 1654년, 1668년, 1673년, 1702년, 1903년, 1925년에 분화기록을 찾을 수 있다. 백두산의 역사시대 분화기록에 대한 화산학적 해석

6.1. 946년 백두산 대분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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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화산의 가장 유명한 분출은 서기 946년 11월 초 있었던 겨울 대분출이다. 유사 이래 가장 강력한 분출인 이 분출은, 과거 연대 측정 값이 약 1000년 내외로 산출되었기에, 일명 '천년 분화(The Millennium Eruption)'라고 불린다. 지속적인 고-분해능 동위 원소 측정 및 고생물학자들의 탐사로 그 범위는 점차 좁혀져 현재는 946년 분출이었다고 추정한다. 또 소분화에 대한 기록은 매우 미비하나, 중국 측에서는 최근 1903년에도 있었으며 그 사이에도 제법 있었다고 주장한다.[39]

천년 분출이 알려진 것은 일본에 있던 상당한 양의 화산재 덕분이었다. 역산 결과 꽤 큰 폭발이 있었어야 했다는 추측이 나와 화산학계가 관심을 보였고, 미국과 일본, 그리고 중국의 학자들이 해당 분출을 연구해 왔다. 천년 분출 분출물의 상당량이 동해에 퇴적되었고, 다양한 이슈 때문에[40] 정확한 규모를 계산하는 데에는 어려움이 있다. 여러 추정이 있었는데, 화산재의 양을 넉넉히 잡아 가정하면 화산폭발지수 7에 해당한다. 이 정도는 서력기원 후 기준으로도 사례가 3번밖에 없는 강력한 규모이다. 여러 정황상으로 단번에 모든 분출물을 터뜨린 게 아니라, 1-2년에 걸쳐 수 차례 분화했을 것 같다는 추측도 있다. 어마어마한 규모에도 불구하고 기록은 무척 적은데, 현전하는 기록 중에는 450km나 떨어진 개성에서도 폭발음이 들렸다고 하고, 1,000km 떨어진 일본에서도 화산재 구름을 목격한 기록이 있다.

천년 분출이 사람들의 관심을 끈 데에는 단순히 역사시대 분출로서 규모가 크다는 것뿐 아니라, 시기가 맞물려 발해 멸망과 관련 있다는 주장도 한 몫 한다. 일본의 마치다 히로시라는 학자는 940년 백두산이 폭발해 발해 멸망의 원인이 되었다는 설을 주장했는데, 요사나 동시대 역사서에 백두산 언급이 없어 분화와 멸망의 인과관계는 인정받지 못했다. 또 바람의 방향에 따라 중국 쪽에는 거의 영향이 없었을 수도 있음이 밝혀졌다.[41] 946년은 발해가 멸망한 지 대략 20년이 지난 시기로 발해멸망과 백두산 폭발과 연관이 있다고 하기에는 무리가 있다. 다만 발해 멸망 이후 진행된 발해부흥운동에 영향을 주었을 수도 있다.

2010년 이후 일본 넷에선 혐한을 중심으로 백두산 분화로 인한 '한국인 교체설'이 유행했다. 백두산 분화로 대부분의 고대 한국인이 멸종하고 만주에서 거주하던 민족이 한반도로 남하했다는 주장이다. (일본 도래인과 관계 있다고 추정하는) 고대 한국인과 현재 한국인은 유전적, 문화적으로 관련이 없다는 말은 일본 재야사학계에서 꾸준히 나오는 주장이다. 상식적으로 그 정도 대폭발이 벌어지면 각국의 역사서에서 크게 다루어질 것이고 지층에도 그만한 흔적이 남겠지만 혐한들에게 그런 건 아무래도 상관없다.

실제로 백두산 주변에서는 전조(前兆) 현상이 나타나고 있다. 2002년 6월 중국 동북부에서는 규모 7.3의 지진이 발생했다. 여기에다 2003년에는 균열·붕괴·산사태가 이어졌다. 2004년 계곡 숲에서는 원인 모르게 말라죽은 나무들이 관찰됐다. 지하 틈새를 통해 지표로 방출된 유독가스 탓으로 추정했다.

2005~2006년까지 이와 비슷한 현상이 종종 일어났지만 2006년 말부터 잠잠해졌다.

영국 스위스, 중국, 프랑스, 네덜란드, 독일, 미국 등 국제 공동 연구팀이 2017년 백두산 화산 폭발 시기를 정확하게 측정해 발표했다. 946년 10월에서 12월 사이.[42] 해당 연구를 리뷰한 블로그

연구팀은 백두산 화산 폭발 당시 뜨거운 용암에 뒤덮여 죽은 낙엽송의 화석을 이용해 백두산 화산 폭발 시기를 산출했다. 백두산 천지에서 북서쪽으로 24km 떨어진 중국 지역에서 발견된 이 나무의 화석은 화산 폭발 당시 수령이 264년 된 나무였다. 나무 화석에 남아 있는 나이테와 방사선 탄소 동위 원소 측정을 동원해 분석한 결과다. 특히 백두산 화산 폭발 시기를 추정할 수 있는 결정적인 증거가 이 나무 화석에서 발견됐다.

낙엽송 화석에서 775년에 만들어진 나이테를 찾아낸 연구팀은 그 나이테를 기준으로 이 나무에 나이테 몇 줄이 추가로 더 만들어졌는지를 산출했다. 결과적으로 775년부터 백두산 화산 폭발로 쇄설물에 덮여 죽게 될 때까지 몇 년을 더 살았는지를 산출한 것이다. 산출 결과 이 낙엽송은 946년 가을에서 겨울 사이에 죽은 것으로 확인됐다. 946년 가을에서 겨울 사이에 백두산 화산 폭발이 있었다는 것이다. 연구팀은 946년 10월에서 12월 사이에 백두산 화산 폭발이 일어난 것으로 결론지었다. 화산 폭발 시기를 이번처럼 오차 범위 3개월 이내로 정확하게 추정한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연구팀은 실제로 백두산 화산 폭발과 같은 시기에 만들어진 그린란드의 빙하코어(ice core)에서 화산 분출물인 황이 유난히 많이 들어 있다는 것을 찾아냈다. 당시 강력한 백두산 화산 폭발로 방출된 황이 전 세계로 퍼졌다는 증거를 발견한 것이다. 지구 기온 변화에서도 나타나지 않았던 백두산 대폭발의 흔적을 빙하에서 찾은 것이다.
是歲天鼓鳴赦.
이 해( 946년) 천고(天鼓)가 울리므로 사면령을 내렸다.
『고려사』 정종 원년 기사

연구팀은 또 한국 역사서인 고려사에서 946년 바로 그 해에 개성 하늘에서 커다란 천둥소리[천고명(天鼓鳴)]가 들렸다는 기록이 있다는 것을 찾아냈다. 연구팀은 이것이 백두산 화산 폭발 소리라고 추정했다. 개성과 백두산은 약 470 km 떨어졌지만[43] 탐보라 화산 폭발 당시 이 거리보다 더 멀리 떨어진 지역까지도 화산 구름으로 뒤덮였다는 사실을 고려하면, 백두산 화산 폭발이 충분히 개성까지도 영향을 주었으리란 주장이다.
十月七日夜白灰散如雪。
10월 7일(양력 11월 3일) 밤 하얀 재가 눈처럼 흩어져 내렸다.
『고후쿠지연대기(興福寺年代記)』 텐교(天慶) 9년 기록 中

연구팀은 일본 나라 지역의 사찰인 고후쿠지(興福寺)의 기록에서도 증거를 찾아냈다. 고후쿠지의 기록에는 946년 11월 3일 '하얀 재가 눈처럼 떨어졌다'는 기록이 있는데, 이 기록이 바로 백두산의 분화로 화산재가 떨어진 것을 기록한 것으로 연구팀은 추정했다. 연구팀이 백두산 화산 폭발을 946년 가을에서 겨울 사이로 추정한 것이 기존의 역사 기록과도 일치한다는 것이다. 해당 기사. 백두산 분출물이 일본 나라 현까지 도착하는 데는 16시간이면 충분하므로, 정확한 화산 폭발 시간은 946년 11월 2일 저녁 무렵일 확률이 높다.
正月十四日庚子,此日空中有声,如雷。
정월 14일 경자, 이 날 하늘에 소리가 울렸는데, 마치 우레와 같았다.
『일본기략(日本紀略)』中

947년 2월 7일에도 일본 교토에 하늘이 요동치는 소리가 울렸다는 기록이 있는데, 이것이 일본 내의 자연현상인지 백두산의 영향인지는 알 수 없다. 플리니식 분화 소음이 교토에까지 들릴 정도였다면 필시 한반도에서도 들렸을 테지만 교차 기록을 찾아볼 수 없기 때문에 일본 내 다른 현상이라고 추정한다. 만에 하나 백두산에서 난 소리라면 앞서 11월 시작한 분화가 이때까지도 계속된 것으로 볼 수도 있다.

6.2. 오늘날 보이는 활동

20세기 말엽까지 중국의 무관심과 한국의 정세 등이 맞물려 백두산은 화산이라는 인식조차 희미했다. 사실 천 년 전 분출이 제대로 알려진 게 20세기 후반이다. 바야흐로 사람들이 백두산의 활동에 귀 기울이기 시작한 건 2000년대에 이르러 지진계가 하나둘씩 설치되고, 2006년 지진이 극도로 많아진 때 즈음이다. 뉴스인사이드에 따르면 2002년부터 2006년까지 지진 횟수가 전과 비교하여 극단적으로 증가하여 최대일 땐 한 달에 243번 지진이 일어났다고 한다. 백두산 분화에 대한 관심이 높아진 것도 이시기. 하지만 방송에서는 2007년 무렵부터 다시 지진이 예년 정도(월 0~30회 사이)의 횟수로 잦아들었음을 확인할 수 있다. 온천수 온도도 꾸준히 상승하여 2011년 77.7도로 최고점을 기록했다고 한다. 지표면의 상승도 2002~2006년 사이 최고조를 기록했는데, 2005년에는 백두산 정상부의 지표면이 7 cm까지 상승하였다고 한다. 요약하면, 2002~2006년 사이 거의 휴화산이라 여겨졌던 백두산이 활발하게 활동하였고, 현재로서는 다시 다소 잠잠해진 상태라는 것.

백두산은 여러 지점에서 열수 활동이 나타나고, 언급한 대로 지진 활동도 있어 완전히 쉬는 것은 아니다. 언제 폭발해도 이상하지 않다. 2000년대 들어 화산 활동의 세기가 조금씩 강해진다는 주장이 있다.[44] 지구 물리측정의 한계와 모니터링 시설이 아직 미비하고 갓 출범한 단계인지라 백두산의 지하 구조에 대한 많은 추측은 말 그대로 추측일 뿐, 제대로 된 것은 많지 않아 걸러 들을 필요가 있다. 아래는 여러 관측 시도 결과들에 대한 내용이다.

천지 주변의 열 분포를 보면 지열이 지속 상승하고 있으며, 일본의 위성 관측상으로는 천지 주변 지면이 예전보다 2cm 정도 부푼 상태라고 한다. 지표로 나오는 열수의 성분도 조금씩 달라지고 있다는 관측 결과가 있다. 지진 횟수가 일정하지 않으며, 이따금 지진 발생 밀도가 급증하던 때가 있었다. 2010년에는 떼가 출몰했으나 화산의 징조라기보단 대량 방생으로 인한 출몰이라는 견해가 좀 더 우세했고, 실제로 화산 활동에 대한 징조로 보기에는 인과 관계가 매우 부족했다. 또한 대북인권단체는 2010년 12월 김정일이 함경북도 무산을 방문한 자리에서 '2016년에 백두산이 폭발할 가능성이 있으니 백두산 인근 주택들은 철거하고, 철광 생산을 서두르라.'는 지시를 내렸다고 주장했다.

제대로 된 근거가 없기에 화산이 언제 터질지 예측하기는 현재로선 불가능하다. 일각에서는 급한 주장, 예컨대 100년 뒤라는 주장도 하지만, 이 역시 제대로 된 근거는 없고 오히려 이슈를 만들거나 혼란을 가중하는 효과밖에 없다. 학술적 접근은 모니터링 시설의 확충과 과거 분출 기록[45]에 대한 명확한 조사, 백두산 형성의 원리와 활동 양상에 대한 연구가 뒷받침되어야 한다. 현재 중국 측에서는 백두산 연구를 비공개로 활발히 진행하는 중이다. 학자들도 "백두산이 언젠가 폭발하는 것은 확실하다."라고만 할 뿐, 정확한 예측은 현재로서는 불가능하다.

2017년 9월, 6차 핵실험의 여파인지 핵실험장 주변의 땅이 요동치고 있다. 예상보다 상당한 규모의 실험이었기에 백두산에 영향을 주지 않을까 노심초사하고 있다.

분화 조짐이 뚜렷하게 나타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천지가 팽창한다거나, 천지 물에서 이산화탄소가 배출되고 수온이 상승한다거나, 2003~2005년경에 빈번하게 발생한 화산성 지진 등이 대표적인 증거들이다. 따라서 한국지질자원연구원에서는 통일부 등과 함께 대응방안을 논의하기로 했다.

2019년 4월 15일에 국회도서관 소회의실에서 피해 예방 대응책 구축을 논의하는 토론회가 열렸다. #

중국 허페이과학기술대 장하이쟝 교수가 이끄는 연구팀은 백두산 북쪽에 있는 헤이룽장성의 우다롄츠 화산지대에 있는 웨이산 아래에서 거대한 마그마 지대 두 개를 발견했다. #

2018년 8월 4일 SBS 뉴스에 따르면 백두산 천지가 다시 끓기 시작했다고 한다. 이 현상이 단순히 폭염 때문인지 다시 백두산이 활동하기 시작했기 때문인지는 확실하지 않지만, 물 속에 마그마의 주요 휘발성 성분인 이산화탄소 기포가 올라온다고 한다. #

6.3. 백두산이 폭발한다면?

설사 백두산이 분출을 재개한다 할지라도 그 규모가 실제로 어떨지는 예측하기 어렵다. 원래 자연재해라는 것이 한치 앞을 예측하기 힘든 현상이기 때문이다. 아래 내용은 명확한 사실이 아니라 어디까지나 최악의 상황을 가정한 내용일 뿐이다. 실제로는 10세기의 대분화에서 고작 천년밖에 지나지 않았기 때문에 마그마방이 가득 차지는 않은 상태라 초대형 분화를 일으킬 가능성은 그리 높지는 않다고 보여진다.

화산이 폭발하면 경제기반이 취약한 북한 지역에 심각한 문제가 생길 공산이 큰데, 화산 폭발의 영향으로 화산성 지진이 발생할 것이라고 추정한다. 특히 건물들은 부실공사가 대부분이고 내진설계를 안 했기에 상당수가 붕괴될 것이다. 부실공사 현장 두번째 또한 백두산에서 멀지 않은 곳에 있는 북한의 핵 시설도 완전히 초토화될 테니 총체적으로 난국이다.[46]

백두산이 폭발하면 엄청난 화산재가 생기고, 20억 톤에 달하는 천지의 물 때문에 거대한 화산쇄설류가 산 아래를 쓸어버림은 거의 확실하다. 이 때문에 폭발시에는 혜산시, 대홍단군, 회령시 등 백두산 천지 혹은 그 기슭에서 발원하는 압록강, 두만강, 송화강 유역이 화쇄류로 쑥대밭이 될 가능성이 매우 높다.[47] 그리고 폭발하면서 뜨거운 마그마와 접촉하여 증발된 천지의 물이 응결하여 다시 비로 내릴 텐데[48] 예상 강수량이 시간당 800mm[49]로 집이 무너질 수준이라고 한다. 시간당 10mm의 강수도 강한 강우임을 고려하면... #

만일 위와 같은 사태가 발생한다면, 북한의 국가 시스템은 대규모 재난에 효과적으로 대응할 능력이 전무하므로 막대한 피해를 입을 가능성이 명확하다. 남북통일이 돼서 남한이 처리해주지 않는다면 피해를 영원히 복구하지 못할 가능성이 크다. 이러한 재난으로 민심이 뒤흔들리고 경제가 마비되면 북한 정권과 국가가 붕괴할 가능성이 매우 높다.[50] 이 때문에 북한 당국에서도 백두산의 화산 활동에 예민하게 반응하고, 가능한 역량을 동원하여 화산 활동 연구에 매진한다고 한다.

분화로 발생한 화산재는 북한뿐만 아니라 동해를 건너 울릉도, 독도, 일본 홋카이도, 러시아 연해주 사할린 남부까지 영향을 주리라 예측한다. 동아시아와 러시아 연해주의 항공편[51] 상당수가 결항될 것이다.

백두산에 인접한 국가들의 피해 규모는 바람의 방향에 따라 달라질 것이다. 백두산 분화가 아이슬란드 에이야퍄들라이외퀴들(Eyjafjallajökull) 화산 분화와 다른 점은 아이슬란드는 북위 65°, 백두산은 북위 42°에 있다는 점이다. 편서풍과 극동풍은 북위 65° 즈음에서 만나기 때문에 이 즈음에 있는 아이슬란드 화산은 현지 기압 상황에 영향을 많이 받는다. 하지만 이와 달리 계절풍의 영향을 많이 받는 백두산은 폭발한다 해도 여름에는 남동풍을 타고 북한의 북동부와 중국 북동부, 러시아 남동부 지역에 화산재가 향하며 가을~에는 편서풍을 타고 화산재가 한국이나 중국 쪽으로 가지 않고 태평양, 즉 일본 쪽으로 갈 것이다. 특히 겨울철 시베리아에서 강한 북서풍과 편서풍이 불어오기 때문에 이 바람을 타고 화산재가 일본으로 향한다. 한반도 동쪽에 위치한 독도 울릉도 또한 많은 영향을 받는다.[52]

결론적으로 계절에 따라서도 여름에는 동남풍이, 겨울에는 북서풍이 부는 한국은 화산재의 영향을 정통으로 맞지 않을 공산이 크다. 하지만 이렇게 되면 화산재가 동남풍이 부는 여름에는 중국으로, 북서풍이 부는 겨울에는 일본으로 날아갈 것이다.

한국이 재산피해를 최대 11조 원 이상 입으리라는 예상은 바람이 남쪽으로 부는 특이상황에서 화산폭발지수(VEI) 8단계 중 5단계 이상인 강한 폭발이 일어났음을 가정한 경우이다. # 또한 이러한 예상치를 내놓은 윤성효 부산대 지구과학교육학과 교수에 따르면 마이크로미터 단위의 미세 화산재는 성층권으로 올라간 뒤 동쪽으로 이동해 일본 혼슈 북부와 홋카이도 지역에 떨어지겠지만 대류권까지만 올라가는 화산재는 한국으로 올 것이라고 한다. #

이러한 예상치가 실현되어서 글로벌 경제에 큰 타격을 주어서 9.11테러에 의한 도미노 증시가 터져지고 달러 지수가 급등한 것을 감안한다면 이것 보다 더한 대공황급 사태를 초래할 수 있다.

북한도 차츰 이 백두산 화산 폭발에 관심을 보여 이명박 정부가 들어서기 전에는 남측과 공동연구를 제의하는 등 시도를 한 적도 있다. 일본 쪽에도 의견을 구했는데, 인터뷰 상대였던 일본 지질학자는 북한이 상당히 다급하고 당황한 듯 보였다고 말을 남겼다. 화산이 터지면 그 순간 정권 붕괴가 불을 보듯 뻔하기 때문이다. 더 가관인건 근처에 풍계리 핵실험장이 있어서 분출시에는 화산재에 방사능이 대거 함유될 것이며, 핵실험장이나 백두산 일대는 체르노빌이나 후쿠시마와 다를게 없게 되버린다는 점이다.

북한의 핵 실험으로 마그마 층의 움직임이 더 활발해졌다는 얘기도 있으며, 핵 실험이 폭발을 유발할 것이라는 의견도 있다. 관련 기사

게다가 제주도의 한라산과 울릉도 및 독도의 해저 화산, 추가령 구조곡에 속한 휴화산들 (예: 오리산)과 양산단층, 신갈단층 등 단층지대에서도 연쇄작용이 일어날 수 있다. 그에 따라 한반도 전체가 위험해질 가능성이 존재하며, 지속적인 연쇄 반응으로 불의 고리까지 건드릴 가능성도 있을 것으로 보인다. 이에 관해선 밑의 내용에 상세히 명시되어 있다. 1668년 백두산 분화를 전후해서 한반도에서 큰 지진이 많이 일어났다. 그 중 1643년 울산에서 일어난 지진의 규모는 추정진도 VIII-IX 로 추측될 정도로 큰 지진이었다. 1643년 울산 대지진 문서를 참조.

환태평양 지진대 끝자락에 있는 한반도 동부에서 화산이 분출하여 연쇄 반응으로 주변 다른 불의 고리 축인 타이완 섬 일본, 사할린 섬, 캄차카 반도, 필리핀, 인도네시아, 반대쪽 미 서부와 멕시코 북부에까지 연쇄 작용이 일어날 확률이 있다.[53] 대만에 위치한 양명산은 활화산으로, 타이베이 근교에 있는 무서운 화산이다. 여기가 터지면 일본에서 후지산이 터진 것과 동급 효과가 나타난다. 화산재 및 연무는 최소 오키나와 홍콩, 최대 호주 북부까지 날아간다고 추정한다.

특히 일본과 중국이 큰 영향을 받는데, 일본의 경우 도카이 대지진이 일어날 확률이 더 높아지고 중국의 탄루단층 지역에서도 대지진이 일어날 가능성도 높아진다. 윗 문단에서 선술한 1668년 및 1702년 백두산 분화를 전후해 1643년 동래, 울산 등지에서 일어난 지진에서부터 시작해 1707년 호에이 대지진 및 후지산 분화까지 한중일 3국에서 지진 및 화산 활동이 잦았다는 점을 생각해볼 필요가 있다.

1000년 전 있었던 백두산 폭발은 일본까지 날아가 화산재를 5cm나 쌓은 전례가 있다. 이 것이 얼마나 강한 위력인지 감이 잘 안 온다면, 봄철 황사가 부는 시기를 떠올려 보자. 황사철에는 온 하늘이 뿌옇지만 쌓이는 양은 겨우 0.1mm 정도에 불과하다. 그런데 화산재를 바다 건너 일본까지 넘어가서 5cm나 쌓았다는 것이니 얼마나 엄청난 폭발이었는지 알 수 있다.

백두산 분화보다 화산 지수가 2단계나 낮은 세인트 헬렌스 화산이 1980년에 일어난 세인트 헬렌스 화산 폭발 당시 기록한 에너지 방출량이 350Mt으로 차르 봄바의 7배나 된다.

946년 분화 당시 백두산의 화산 폭발 지수(VEI)는 7 정도로 1815년 탐보라 산의 폭발에 비하면 살짝 약했으나, 그래도 분출물의 양은 100여 ㎢에 달했다. 이는 2010년 4월 있었던 아이슬란드 화산 폭발 분출물의 약 1천배에 달한다.

백두산 폭발 주장 때문에 1998년에 KBS 일요 스페셜 특집으로 참고 자료를 위해 규슈의 화산 분화 현장을 찾아간 적이 있었다. 당시 분화로 인해 굴러떨어진 화산 암괴가 숲에 있는 도로 한복판에 떨어진 바람에 치우기가 여의치 않아 식힌 일이 나온다. 어쨌거나 이 방송에서 백두산 분화 당시 일본에 쌓였던 화산재도 방송되었다.

2011년 국내에서 백두산 폭발시 어떤 결과가 나올지를 예측하고 모의실험한 결과가 공개되었는데, 동아시아의 항공로가 완전히 마비되어 버린다고 한다. #

2011년 3월 북한이 화해 분위기를 조성하며 백두산 화산 관련 연구를 공동 진행하자고 제의를 했다. 남한은 민간 전문가를 파견하여 회의를 가졌으며, 해당 회의에서 북한은 일본 지진을 언급하며 백두산의 위험을 환기, 연구에 협조를 요구했다. 하지만 한국은 천안함 피격 사건부터 연평도 사건까지 쌓인 게 많은 상황이었으므로 미적지근한 태도를 보였고, 북한도 4월부터 현대 아산의 금강산 사업권을 날려 버려 도루묵이 되었다.

2011년 11월 24일 북한이 '지진 화산 피해 방지 및 구조법'을 제정했다는 보도가 나왔다. #

2012년의 연구에 따르면 봄, 가을에는 남한에도 화산재가 유입될 수 있다고 한다. # 게다가 얼마 전까지만 해도 휴화산이었는데 지금은 엄연한 활화산이다. 천지 밑에 마그마방이 서너 개 발견됐기 때문이다.

2016년 4월 국제 연구진이 서울 면적의 2배나 되는 마그마가 백두산 아래 5-10km 지점에 있음을 다시 확인하였다. 이 연구는 북한 학자들과 중국, 그리고 미국과 영국의 서방 학자들이 공동으로 진행하였는데, 북한이 서방 학자들까지 끌어들임은 백두산 분화를 두고 크든 작든 위기의식을 느끼는 탓인 듯하다. #

화산학자들이 세계 여러 화산들을 꾸준히 연구하여 이제는 지진계의 조짐으로 화산 폭발을 짧게는 몇 달, 길게는 몇 년 전부터 예측할 수 있다고 한다. 다만 백두산은 제대로 된 연구가 진행되지 않아 불분명하다.

2016년 12월, 북한과 서방 공동 연구팀의 두 번째 발표가 있었다. 연구 결과에 따르면 백두산 폭발은 유사 이래 최대고 946년 분화하여 분출한 황은 1815년 탐보라 화산 폭발 당시 분출량(28메가톤)보다 훨씬 많은 45메가톤이었다. 기존에 예측했던 바보다 훨씬 강력한 분화였단 뜻이다.

7. 관광

1980년대까지는 해외여행 가기가 힘들었다. 냉전 체제로 인해 북한은 말할 것도 없고, 북한과 함께 적국으로 인식하던 중국을 거쳐 백두산에 가는 것은 꿈 같은 일이었다. 하지만 1980년대 후반부터 해외여행이 자유로워지고, 1988 서울 올림픽을 계기로 중국과 민간 교류를 시작하면서 일부 민간 단체들을 중심으로 제한된 백두산 관광이 시작되었다. 1990년대 초반 냉전이 완전히 끝나고 한국과 중국이 수교하면서 일반인들도 중국을 통해 백두산 관광을 할 수 있게 되었다. 특히 이 시기에 제작된 칠성사이다 CF에서 백두산 비룡폭포, 천지 등의 모습을 보여주면서, 국민들이 백두산에 대한 관심을 많이 가져 백두산 관광 붐이 일어나기도 했다.



백두산은 관광 지역이기 이전에 엄연히 중국과 북한의 국경 지대이다. 방문 빈도가 높은 천지 구역에 대하여 북한은 영유권을 주장하지 않고 있다. 조중변계조약으로 천지의 반절은 중국령으로 되어 있다. 그래서 대한민국 국민이 중국을 통해서 자유로운 관광여행이 가능한 것이다.

국가보안법에는 '국가의 존립·안전이나 자유 민주적 기본 질서를 위태롭게 한다는 점을 알면서 반국가단체의 지배하에 있는 지역으로부터 잠입하거나 그 지역으로 탈출한 자는 10년 이하의 징역에 처한다' 라고 되어 있지만, 북한 실효지배 지역을 거쳐서 등산을 하더라도 국가의 존립·안전이나 자유민주적 기본 질서를 위태롭게 한다고는 볼 수 없기 때문에 이를 기소한 적은 없다.

천지 구역은 북한과 국경으로 정확히 절반으로 갈리기 때문에, 정상 및 천지 부분에서 지정된 경로 및 구역 외에 함부로 이탈을 하는 것은 금지되어 있으며, 정상 부근에 파견 나간 중국 공안들의 통제도 꽤 심하다. 한국인이 백두산 정상 및 천지에서 태극기를 펼치거나 애국가 아리랑 등의 민족적 색채가 짙은 노래를 부르는 행위는 금지되어 있다. 관광지임에도 불구하고 단순한 사진 촬영조차 상당한 통제를 받는데, 중국 당국으로부터 사전에 정식으로 촬영허가를 받은 특수한 경우 말고는 일반적으로 백두산 천지 및 정상의 풍경을 담는 사진 촬영은 인물을 포함하는 기념사진 촬영의 범주에서만 허락되고 있다.

일요일 일요일 밤에 이경규가 간다에서 이경규가 남북통일을 염원하기 위해 한라산 백록담에서 퍼온 물을 백두산 천지에 담기 위해 백두산을 방문한 적이 있는데, 아쉽게도 산행 장면은 방송되지 못하고, 천지에 올라가 백록담 물을 천지에 쏟아 부은 장면만[54] 방송되었다. 이후 1박 2일에서 예능 프로그램 최초로 백두산 촬영허가를 따냈는데, 이를 준비하기 위해 6개월 이상을 소비해야 했을 정도다.[55] KBS가 대한민국을 대표하는 신뢰성 있는 공영 방송 기관임에도 불구하고 이 정도 걸린 것을 보면, 중국 당국에서 상당히 까다롭게 심사를 하는 듯하다. 아무래도 중국 입장에서는 국경 지대로서 보안상 예민하게 관리해야 할 부분도 있을 것이고, 백두산 영토 문제와 관련하여 발생할 주변국과의 역사인식 충돌 및 마찰 등을 사전에 차단하려고 하는 느낌도 강하다. 하지만 현지 유학생 등 개인 관광객의 경우 중국 대도시 관광객과 외관상 별 차이가 없다 보니 그냥 넘어가기도 하는 모양이다.

중국 땅을 거쳐 가는 경우 이런 불편함과 눈칫밥을 감수해야 하다보니, 2000년대 초중반 북한과의 교류가 많았을 때는 북한을 통해 백두산을 가보자는 목소리들도 많이 나왔다. 실제로도 당시 한국 정부에서 북한과 함께 금강산 관광에 이어서 북한 삼지연공항행 항공편을 통한 백두산 관광 사업을 추진하기도 했으나, # 실무적인 문제 및 수익성 검토 등으로 인해 차일피일 미뤄지다가, 금강산 관광을 갔던 관광객을 북한군 초병이 사살하는 박왕자 씨 피살사건으로 논의가 무산됨은 물론 금강산 관광조차 중단되어 버려 결국 북한을 통한 백두산 관광은 구체적으로 거론하지 못했다.[56]

대한적십자사의 헌혈 기준에서 북한 지역 중 유일하게 여행시에도 헌혈이 가능한 지역이다.

2020년 1월 24일 코로나바이러스감염증-19 확산 예방의 일환으로 일시적으로 영업 중단을 한다고 밝혔다. #

7.1. 북파 코스(北坡)

중국 쪽에서 자동차를 타고 올라가는 코스.

가장 먼저 개발된 관광 코스다. 때문에 가장 많은 관광객들이 찾는 코스. 정상 부근 기상대까지 자동차[57]로 오른 후 5분이면 천문봉에 올라 천지를 내려다보는 관광 코스로서, 비룡폭포 좌우로 한정된 부분[58]만 오르는 산행 코스다.

7.2. 서파 코스(西坡)

중국 쪽에서 걸어서 올라가는 코스. 산행을 하려면 이 코스가 좋다.

백두산 서파 시작지점에서 표를 산 후 지프차 또는 버스를 통해 오를 수 있다.

중국에서도 생태여행 코스로 개발하여, 보존된 원시림(금강대협곡)을 볼 수 있다고 한다. 서파 코스는 대체로 완만하여 지프차 또는 버스에서 내려 청석봉 아래 37호 경계비가 있는 천지에 40여분이면 오를 수 있으며[59], 천지에서 청석봉까지 오르는 코스와 북파까지 종주하는 코스가 있다.

서파 코스에는 서파 37호 조중 경계비와 그 주변 경치, 경계선 등 볼 거리가 많다. 이 코스는 한국에서 유일하게 통일부의 허락 없이 한국인들이 북한이 실효지배하는 이북 땅을 밟을 수 있게끔 하는 기회가 주어지는 곳이라고 하는데, 등산객들이 조중경계비인 서파 37호 근방의 몇백 미터 북한 량강도 삼지연 땅을( 이북5도에서는 함경남도 혜산군 보천면) 밟을 수 있다! 즉, 한국 국민으로서 위험하지 않고, 합법적으로 북한 땅을 밟을 수 있는 방도.[60] 하지만 2018년 6월 기준 경계비를 넘어갈 수 없도록 철제 울타리를 설치해 놓은 상태다. 하지만 대개 백두산 여행 상품들은 북한 접경 지대 관광도 포함하고 있기 때문에, 백두산 관광은 북한을 상당히 가까이서 경험할 수 있다는 장점이 있다.

7.3. 남파 코스(南坡)

중국에서 오를 수 있는 코스.

비교적 근래에 홍보되고 있는 코스로, 개마고원을 조망할 수 있다고 한다. 북한과 가장 근접한 코스라서 안전 문제로 개방과 폐쇄가 반복되고 있다. 관광 시설이 부족하지만 북파와 서파에 비해 천지에 가깝게 접하다 보니, 인근 주민들이 선호한다고.

입장료도 북파나 서파에 비해 비싸다.

7.4. 동파 코스(東坡)

북한에서만 오를 수 있는 코스. 그렇기 때문에 대한민국 국민은 2018년 평양 남북정상회담 당시 방북한 이들을 제외하면 아무도 이 코스를 가지 못하고 있다.

백두산 최고봉인 장군봉을 넘어가는 코스로, 북한에서 관광용으로 적극적으로 개발했다. 차량으로 이동 가능한 산 중턱부터 정상쪽인 향도봉(망천후)까지는 지상궤도열차 "향도봉호"가 있고 이후 향도봉에서 천지까지는 케이블카 "천지삭도"가 연결되어 있어서 쉽게 오를 수 있다.

지상궤도열차 향도봉호는 1989년에 설치되어 2km 구간을 운행하고 있다. 케이블카 천지삭도는 오스트리아에서 만든 것으로 1995년에 설치되어 1.3km 구간을 운행하고 있다. 케이블카 하나에 4명이 탑승할 수 있고, 왕복에 7분 정도 소요된다고 한다.

8. 여담

백두산에서는 호랑이가 자취를 감춘지 이미 수십년이 지났다.

9. 관련 문서

10. 둘러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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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인이 좋아하는 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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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04년 한국갤럽이 창립 30주년을 맞이하여, 다양한 분야에서 한국인이 좋아하는 것들에 대해 알아보는 한국인이 좋아하는 조사 시리즈를 기획해 2004년부터 5년 주기로 발표하고 있다.
2004년
※ 2004년 한국갤럽 한국인을 대상으로 실시한 여론조사를 바탕으로 '한국인이 좋아하는 산'을 선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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같이 보기: 한국인이 좋아하는 꽃, 좋아하는 나무, 한국인이 좋아하는 산, 좋아하는 한식 }}}}}}}}}



[1] 행정구역을 고치려면 최종적으로는 법을 고쳐야 하며, 영유권을 포기하려면 헌법까지 뜯어고쳐야 한다. 비록 대만이나 한국이나 모두 중국과 북한의 영토를 인정하는 정치적 시각이 있기는 하지만 이런 행정구역은 법으로 정해져 있으므로 관할을 그냥 포기할 수 없다. 이것은 한국도 마찬가지다. [2] 문화체육관광부 국립민속박물관 영문 페이지 '백두산' 소개 [3] 「공공 용어의 외국어 번역 및 표기 지침」에 따른 표기. [4] 북한에서는 장군봉이라고 바꿔 부른다. 일제가 백두산의 격을 낮추기 위해 '병사봉'으로 명명했다는 루머가 있으나, 아래에서 설명하는 바와 같이 병마절도사에서 유래한 명칭이기 때문에 낭설이다. [5] 이것 때문에 중국 영역을 통해 관광이 가능한 남한 사람들은 백두산 최고봉에 오를 수는 없고 천지 너머에서 바라볼 수만 있다. [6] 인천 앞바다의 평균 해수면을 수준원점으로 삼은 한국 기준으로는 백두산의 높이가 2,744m가 되지만, 원산 앞바다의 평균 해수면을 수준 원점으로 삼은 북한 기준으로는 2,750m, 톈진 앞바다의 평균 해수면을 수준 원점으로 삼은 중국 기준으로는 2,749.2m가 된다. # [7] 출처: 대한지리학회지 제48권(2013) 1호, p.6, <<지형학적 산지의 분포와 공간적 특성에 관한 연구>>, 탁한명 등 3인 [8] 구글 어스 데이터를 기준으로 기복량 300m 이상을 으로 보았을 경우. # [9] 편의상 광복 직후라고 표현하나 현재도 법적으로는 이북5도위원회를 설치하는 등 이 행정구역이 폐지되지 않았다. 대만도 마찬가지다. [10] 백두산의 분화구를 이루는 봉우리에 그 경계가 걸친다. [11] 한반도 면적보다 넓은 만주 전체로 보아도 백두산 보다 높은 산은 없다. 즉, 한반도와 만주 전체에서 가장 높은 산. 그렇기에 만주족의 입장에서도 상징적인 의미를 가진 산이다. [12] 기록 [13] 이때 영조의 발언은 굉장히 정치적이다. 목극등이 지은 경계선 이야기를 다 듣고도 ' 용비어천가 보니까 우리 조상님( 이안사) 집이 경흥에 있었다는데 거기 백두산 근처 아니냐? 야 아무리 봐도 백두산 우리 땅 같은데? 야 그럼 우리나라 땅이니까 제사 지내야지?' 하는 식으로 이야기를 몰아갔다. 물론 두만강 하구에 있는 경흥은 백두산과는 300km 가까이 떨어졌으니 시작부터 뭔가 이상한 소리. 당연히 조선에 청나라에 맞서 이 지역의 영유권을 주장할 의지가 있었다기보다는, 칭제건원 얘기가 나올 정도였던 이 무렵 조선 내부의 고양된 분위기에 맞춰 백두산 남쪽 국경지대의 처우를 높여준 것에 가깝다. 실제로 이 발언과 무관하게 백두산 망제를 지내는 장소는 백두산 남쪽의 녹반치(綠礬峙)로 정했다. [14] 오대산을 말한다. [15] 해당 기록은 8세기경 신라 시대의 승려였다는 보천(寶天)이 입적하기 전에 쓴 기록을 일연이 다시 삼국유사에 옮겨적은 것으로 되어 있다. [16] 지금의 개성시 송악산을 가리킨다. [17] 해당 기록은 김관의(金寬毅)의 『편년통록(編年通錄)』을 인용한 것으로 설명했다. [18] 신라 말기의 승려로 풍수지리로 유명한 도선대사의 저술이라고 전한다. 물론 정말로 도선대사의 저술인지는 의문이 있다. [19] 천주교 서울대교구 제3대 교구장. [20] 기록에 따라 묘향산설, 지금의 태백산설 등 이설이 있다. [21] 게다가 북한 김일성장군의 노래도 첫 소절이 장백산으로 시작한다. [22] 2007 창춘 동계 아시안 게임에서 한국 쇼트트랙 대표팀이 이 사실을 몰랐는지 중국 측 편파판정과 장백산이란 표현에 반발하여 우발적인 세리머니를 하여 중국 측과 마찰을 빚은 적이 있다. 자세한 것은 항목의 이모저모 부분을 참고할 것. [23] 신증동국여지승람에는 평안도에 있다고 나오나, 이는 태백산을 묘향산으로 추정하여 적은 것이기 때문에 부여의 실제 위치인 만주 지역하고는 맞지 않는다. [24] 원문에는 시라(尸羅). [25] 기자조선을 말한다. 하지만 익히 알려진 대로 현재 남북 학계 모두 기자조선의 존재를 부정한다. 그저 단군 왕조에서 다른 토착민 계열 왕조로 바뀌었을 것으로 추정한다. [26] <신증동국여지승람>에 따르면 암자가 무려 360여 곳이 있었다고 한다. [27] 당시 대부분의 책은 단기를 사용했다. 또한, 화폐에서도 연도표기를 단기로 사용했다. [28] 사실 전통적으로 한민족보다 만주족에게 훨씬 더 중요한 산이었다. [29] 한자로는 '果勒敏 珊延 阿林 山(과륵민 산연 아림 산)'. 현대 표준 중국어 발음으로 읽으면 '궈러민 산옌 아린 산(Guǒlèmǐn shānyán ālín shān)'. [30] 만주어 명칭은 조선 영조 때 학자인 식산(息山) 이만부(李萬敷)의 지행록(地行錄)에 '가이민 상견 아린(歌爾民 商堅 我隣)'이란 음차로도 기록되어 있다. 음차일 뿐인데 굳이 한자의 훈을 억지로 끼워 맞춘 해석인 '그곳 백성(爾民)이나 장사꾼(商)이 노래하는(歌) 굳센(堅) 우리(我) 이웃(隣) 산'이란 말이 웹상에 떠돌지만, 이는 지행록 역자의 오류인 듯. 지리지인 성경통지(盛京通志)에도 "'歌爾敏(가이민←골민)'은 '크다(≒길다)'는 뜻이고 '商堅(상견←샹기얀)'은 '희다'는 말이며 '阿隣(아린←알린)'은 '산'을 말하는 만주어"라고 설명했다. [31] 박선영 박사가 동양사학연구( 동양사학회 학회지)를 통해서 출판 논문들(㉠ 중화민국 내정부 지도로 본 백두산 정계비 ㉡ 서간도, 동간도가 명기된 참모본부 지도에 대하여)이 유익한 정보를 제공하고 있다. [32] 당시 평양방송이 발표한 내용에 따르면, 1997년 새해 첫 날인 1월 1일 천지에 도토리만한 우박들과 직경이 1.8cm에 이르는 눈송이들이 퍼부어 적설량 2m를 넘기다가, 이튿날인 1월 2일 눈보라가 그치면서 기온이 급격히 떨어지기 시작해 -51℃를 나타냈다고 한다. [33] 공식적인 한반도 역대 최저 기온은 1933년 1월 13일 평안북도 중강군의 -43.6℃이다. [34] 실제로 9월 상순에 눈이 내린 적도 있다. [35] 근데 틀린 말은 아니다. 고산 지역인 특성 상 구름이 끼거나 하면 보기 매우 힘든데, 아침엔 맑던 것이 정오 지나고 눈이 온다거나 하는 일이 잦다. [36] 시기상으로 따지면 발해가 멸망한 직후다. 발해가 멸망한 원인을 이 화산 폭발에서 찾는 사람들도 있지만, 시기상으로 발해가 망하고 10년 뒤쯤임이 밝혀졌다. 하지만 대폭발 전에 지진 등의 이상현상이 있었다면 민심 혼란이나 왕권 약화 등의 문제는 생길 수 있다. 당시 자연 재해나 이상 현상은 '왕의 부도덕함으로 신이 노했다'라고 생각하였기 때문이다. 국민의 교육이나 생각하는 수준이 상당히 발전한 오늘날에도 무슨 일만 터졌다하면 지도자를 탓하는 마당에 그 당시에는 기상이변이나 자연재해가 났다하면 임금 책임을 하기 때문에 더더욱 그럴 가능성이 있다고 보여진다. [37] 이 경우 맨틀 활동으로 인한 열점이 있어서 화산이 생긴 경우가 대다수이다. 이렇게 생긴 화산들은 말 그대로 지구 내부 열에너지를 빼는 굴뚝 역할을 한다. [38] 서울시와 수도권 기준으론 백두산까지 거리가 약 500 km, 아소산까지 약 620 km로 백두산이 조금 더 가깝지만 큰 차이는 없다. 북한은 백두산이, 남부 지방은 아소산이 가깝다. 특히 부산에서는 아소산이 서울만큼 가깝고, 대구나 전라도 광주 등에서도 평양보다 더 가깝다. [39] 그러나 원 출처를 잘 찾아보면 근거가 불확실하다. 1000년 사이에 몇 차례나 분출이 있었는지는 아직 확실치 않다. [40] 대표적으로 정치적, 즉 북한 문제. [41] 한국지질자원연구원 이윤수 박사는 '백두산 대분출은 946년에 일어났지만, 그 전에 소규모 분출이 이어졌을 가능성이 있고, 실제로도 백두산은 1000년 단위 대분출 주기와 100년 단위 소규모 분출 주기가 함께 도래했기 때문에, 정확한 시기를 예측할 수는 없지만 그로 인해 발해가 멸망했을 가능성이 있다.'고 제기했다. [42] (Oppenheimer et al., 2017). [43] 대략 서울에서 제주 거리 정도이다. [44] 다만 이건 관측량의 증가와 중국의 이슈 메이킹을 모두 고려할 필요가 있다. [45] 문헌 및 퇴적 기록. [46] 더 나아가 핵무기들을 북한 정권이 더 이상 통제할 수 없을 경우 최악의 경우엔 북한제 핵무기들이 국제 암시장으로 유출되어 테러 조직들의 손에 접수되는 대참사가 발생할 수도 있다. [47] 세인트 헬렌스 화산의 분화나 네바도 델 루이스 화산의 예에서 보듯 반경 50km 이내는 거의 쑥대밭이 된다고 보면 된다. [48] 도쿄 대공습 등 소이탄을 사용한 대규모 폭격과 시가지 화재 후에도 이와 비슷한 원리로 폭우가 내렸다. [49] 한국 최다우지인 거제도 제주도 동부 1년치 강수량의 40%, 특히 강수량이 적은 함경도 일대는 1년치 강수량을 넘기도 하는 양이 1시간 동안 내리는 꼴이다. [50] 북한의 붕괴는 기를 쓰고 막는 중국도 이러한 상황에서는 막대한 화산 피해로 인해 개입도 못할 가능성이 크다. [51] 특히 인천, 부산, 홍콩, 타이베이, 도쿄( 나리타· 하네다), 오사카, 베이징( 수도· 다싱), 상하이 등에서 뉴욕, LA 북극항로를 거쳐 북미로 가는 항공편은 100% 백두산 분화 영향반경 안에 포함된다. 아이슬란드 에이야퍄들라이외퀴들 분화가 제트 기류를 타고 유럽 전체까지 경제, 사회까지 마비시켰음을 떠올리면.... 당시 아이슬란드 에이야퍄들라이외퀴들 분화가 유럽쪽 통화들, 특히 유로, 파운드 스털링, 미국 달러 시세에 엄청 타격을 준 것은 엄연한 사실이다. 그래도 화산재를 피하고 북미 쪽으로 운항을 해야 하는 경우 미국 하와이 또는 파리, 런던, 프랑크푸르트, 뮌헨, 이스탄불, 모스크바 등 유럽의 큰 국제공항을 필수로 기착해야 해 항속거리 및 비행시간이 평상시보다 최대 2배 정도 더 길어지는 상황이 올 수 있다. [52] 출처: 화산재 피해 예측 기술 개발 [53] 약간 다른 예이지만 2004년 9월 미국 캘리포니아 주의 샌 앤드리어스 단층이 파열된 것을 시작으로 한 달 후인 10월에 미국의 세인트 헬렌스 화산과 멕시코 콜리마 화산이 폭발하고, 일본에서 니가타 추에쓰 지진이 일어나고, 두 달 후에 인도네시아에서 그 유명한 2004년 남아시아 대지진이 발생한 바가 있다. [54] 관광용 카메라로 촬영되었다. 한라산 등정 때와는 달리 사방이 안개로 자욱해서 산의 모습은 좀처럼 보이지 않는다. [55] 멤버들이 독도, 가거도, 우도, 백령도 바닷물을 가져가서 뿌렸다. [56] 2002년 당시 KBS1에서 태조 왕건의 후속작으로 방영되었던 제국의 아침의 경우 북한측의 협조를 얻어 북한 방면으로 백두산에 올라 천지를 바라보면서 왕요( 최재성 분)와 왕소( 김상중 분) 형제가 대화를 나누는 장면을 촬영할 수 있었다. 두 배우 모두 백두산에서의 촬영에 대한 소회가 남달랐다고 후기를 남겼는데, 촬영 당시 현지가 무려 영하 40도에 강풍도 상당히 불어서 특수방한복으로도 견디기 어려웠으며, 백두산 정상까지 오르기 위해 촬영팀이 눈밭에 방송장비를 짊어진 채 8km를 걷기도 했다. # [57] 기본요금으로는 미니버스( 쌍용 이스타나가 대부분)이고 지불하는 금액에 따라 포드 트랜짓이나 중국제 SUV, 돈을 더 지불한다면 벤츠 스프린터로 올라갈 수 있다. [58] 1박 2일에서 올라간 코스는 비룡 폭포 옆의 계단을 올라가는 곳이었으나, 현재 진입로가 폐쇄되고 폭포 근처까지만 갈 수 있다. [59] 낮고 완만한 경사의 계단 1441개를 올라가야 한다. [60] 다른 방법은 판문점 견학. 휴전선에 걸친 군사 정전 위원회 건물 견학시 북한 쪽 출입문만 폐쇄하고 내부는 자유롭게 돌아다닐 수 있기 때문에 북한 땅을 밟아볼 수 있다. [61] 백두산 편에서 은지원이 언급한 그 괴물이 맞다. 당시 은지원은 백두산에 가서 괴물을 찍어야겠다고 언급을 했다. [62] 애초에 시베리아호랑이는 현재 기준으로 한반도 야생에서 자생하지 않는다. 다만 중국의 보호정책이 확산되면 백두산에 올 가능성은 있다. [63] 실제로 1박2일 백두산 편에서 강호동 일행이 이렇게 해서 백두산에 올라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