운대 28장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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邳彤
(? ~ 30)
1. 개요
양한교체기의 인물로, 자는 위군(偉君). 기주 신도군(信都郡)[1] 신도현(信都縣) 사람이다. 아버지 비길(邳吉)은 전한 시절 요서태수를 지냈다.2. 생애
황위를 찬탈하여 신나라를 건국한 왕망은 대대적인 개편을 시행하였는데, 이때 거록의 일부를 떼어내 화성군(和成郡)[2]으로 재편하고 비동을 그 졸정(卒正)[3]으로 삼았다.경시 원년(23년), 신나라가 멸망하고 경시제 유현(劉玄)이 낙양에 입성하여 현한 정권을 세웠다. 그는 대사마 유수를 하북으로 파견해 여러 군현들을 복속시키도록 하였다. 유수가 하곡양(下曲陽)에 이르자 비동은 화성군을 들어 현한에 투항하고 화성태수가 되었다. 하지만 오래지 않아 왕랑이 한단(邯鄲)에서 거병하여 유수의 목에 거액의 현상금을 걸고 하북의 군현들에게 항복하라는 격문을 뿌렸다. 각지의 군현들은 대부분은 격문을 받고 곧장 투항하였으나 오직 신도태수 임광과 화성태수 비동만이 왕랑에게 저항하였다.
경시 2년(24년), 유수가 계(薊)에서 군대를 잃고 신도군으로 온다는 소식을 들은 비동은 오관연 장만(張萬), 독우 윤수(尹綏)를 대동하여 정예 기병 2천을 거느리고 신도로 가 유수를 만났다. 비록 2군의 도움을 받았으나 유수군의 사기는 형편없이 떨어져 있었다. 회의 자리에 모인 유수의 제장들은 모두 "왕랑의 세력이 워낙 강대하니 신도의 병력을 호송해 서쪽 장안(長安)으로 가 후일을 도모해야 한다" 주장했지만 비동만이 반대 의견을 내비쳤다.
"지금 의논하는 자들의 말은 모두 틀렸습니다. 관리와 백성들이 한(漢)을 그린 지 오래라 경시제가 존호를 들었을 때 천하가 호응해 삼보(三輔)의 궁을 수리하고 영접했던 겁니다. 필부가 창을 들고 호령하니 천리 안의 장수들은 모두 성을 버리고 숨거나 엎드려 항복을 청했는데, 상고(上古) 이래 이처럼 사람들을 감동시킨 사례는 없었습니다. 또, 점쟁이 왕랑이 한나라 황족의 이름을 사칭했더니 오합지졸만으로도 연(燕), 조(趙) 땅을 진동시켰습니다. 왕랑 같은 자도 이럴진데 하물며 명공(明公)께서 2개 군(郡)의 병력들을 떨치게 하시고, 천하가 호응하는 위세를 갖추어서 공격하신다면 어떤 성(城)인들 떨어뜨리지 못하겠습니까! 이제와서 돌아간다면 삼보는 놀라 흔들릴 것이며, 위세는 땅바닥에 떨어질 터이니, 하북을 잃는 것만으로 끝나지 않고 장차 얻고자 하는 것까지 잃게 될 것입니다. 만약 명공께서 다시 일어나 하북을 정벌하고자 하는 뜻이 없으시다면 비록 신도(信都)의 병사라 할지라도 따르리라 기대하긴 어렵습니다. 어째서 그렇겠습니까? 명공께서 서쪽 장안으로 가신다면 과연 한단의 백성들은 부모를 버리고 성주(城主)를 배반하면서까지 천리 길을 따라 호송하려 들지 않을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니 설령 병력을 모은다 하여도 반드시 흩어져 달아나게 될 것입니다. "
유수는 비융의 말을 옳게 여겨 장안으로 돌아가는 안건을 즉시 폐기하고 왕랑과 싸워 그를 타도하기로 결정하였다. 그리고 비융을 후대장군으로 삼아 병력을 징집하게 하고 전투를 할 때면 항상 선봉에 세웠다. 비융의 군대가 당양(堂陽)에 이르렀을 때, 당양은 이미 왕랑에게 투항한 상황이었다. 비융은 장만과 윤수를 먼저 보내 그곳의 관리와 백성들을 설득하게 하였다. 이들은 설득에 성공하여 유수가 밤에 당양에 도착하자 당양의 백성들이 성문을 열고 나와 맞았다. 그렇게 인근 현들을 차례차례 점령해나가는 와중, 중산(中山)에서 도적떼 백사적(白奢賊)이 들끓는 것을 보고 군대를 몰아 도적들을 격파하였다. 그 이후로도 비동은 계속 유수를 따라다니며 공을 세웠다.
유수의 군대가 연전연승하면서 왕랑을 한단성으로 몰아붙이니, 궁지에 몰린 왕랑은 자신의 별장(別將)을 보내 신도를 기습하였다. 신도성 내에는 이충과 비동의 가족들이 있었는데, 신도의 호족 마총(馬寵)이 배반하여 몰래 성문을 열고 왕랑군을 맞아들이자 가족들이 전부 인질로 잡혔다. 왕랑의 장수는 가족들을 협박해 비동에게 당장 돌아오지 않으면 멸족할 것이라는 서신을 쓰게 하였다. 비동은 눈물을 흘리며 답장을 썼다.
"임금을 섬기는 자는 가족을 돌볼 수 없습니다. 이 동(彤)의 가족이 지금까지 신도에서 안주할 수 있었던 것은 모두 유공(劉公)의 은혜입니다. 공이 이제 나랏일을 다투고 계시는데 제가 어찌 사사로이 생각할 수 있겠습니까?"
하지만 때마침 경시제가 보낸 지원군이 신도를 탈환한 덕에 가족들은 전부 구원받을 수 있었다. 한단이 함락되고 왕랑이 주살된 후, 비동은 무의후(武義侯)에 봉해졌다.건무 원년(25년), 유수가 황제를 칭하자 비동은 영수후(靈壽侯)로 개봉되고 대사공(大司空)의 업무를 보았다.
건무 2년(26년), 현한의 좌대사마 주유(朱鮪)가 낙양성을 들어 광무제에게 항복하였다. 광무제는 낙양에 입성해 그곳을 도읍으로 삼고 비동을 태상에 임명했다가 한 달여 만에 소부(小府)로 전임시켰다. 그리고 그 해에 면직되었으나 다시 좌조시중(左曹侍中)으로 관직에 복귀해 항상 광무제가 친정 나설 때마다 종군하였다.
건무 6년(30년), 비동이 세상을 떠나고 그 아들 비탕(邳湯)이 뒤를 이었다. 그리고 13년 뒤, 아들 비탕이 죽고 손자 비모(邳某)가 작위를 이었지만 비모에게 아들이 없어 대가 끊기는 바람에 봉국이 폐지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