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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수정 시각 : 2023-11-19 10:32:42

요양행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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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양등처행중서성 遼陽等處行中書省

1. 개요2. 역사3. 행정구역
3.1. 요양로(遼陽路)3.2. 광녕부로(廣寧府路)3.3. 대녕로(大寧路)3.4. 동녕로(東寧路)3.5. 심양로(瀋陽路)3.6. 개원로(開元路)
3.6.1. 함평부(咸平府)
3.7. 합란부 수달달등로(合蘭府水達達等路)
4. 역대 재상
4.1. 좌승상4.2. 평장정사4.3. 우승4.4. 좌승4.5. 참지정사

1. 개요

요양등처행중서성, 또는 요양행성은 원나라의 행정구역이다. 10개 행중서성[1]의 하나로 관할 구역은 만주 일대였다.

2. 역사

몽골 제국에서 만주는 동방 삼왕가의 분봉지면서 고려와도 인접한 최전선이었다. 동방 왕가의 지원으로 1260년 즉위한 쿠빌라이 칸은 긴 집권기에 거쳐 각지에 최상위 행정구역인 행중서성을 설치해나갔는데, 만주의 경우도 마찬가지였다. 요양행성은 지원 23년(1286) 7월 잠시 해체되고 북경, 함평 등 3개 선위사로 분할됐다가 같은 해 10월에 다시 설립된다. 이 때 평장정사에 세도칸(薛闍干)과 체릭테무르(闍里帖木兒)[2], 우승에 홍다구(洪茶丘), 좌승에 일리사카(亦兒撒合), 참지정사에 양인풍(楊仁風)과 알 알딘(阿老瓦丁)이 임명됐다. 총관부, 선위사(宣慰司), 행중서성 등의 설치는 만주의 황족들을 자극했고, 이들의 불만은 나얀, 식투르, 카다안의 반란으로 표출된다. 평장정사 세도칸 등은 고려에 침입한 반군을 따라 군사를 이끌고 국경을 넘었고, 반란을 진압했다.

1302년 요양행성에서 원성종 정동행성을 병합하고 관사를 요향행성의 치소인 동경로에 둘 것을 제안한다. 고려 충렬왕은 치소가 요양에 설치되면 경계할 사항이 발생했을 때 중앙에 전달되고 대응에 걸리는 시간이 길어져 유익하지 않다고 하며 통합을 반대하는 표문을 올렸다.

원영종이 즉위한 1320년 대부분 행성과 마찬가지로 승상직이 평장정사로 강등된다.

1371년 요양행성의 마지막 평장정사 유익(劉益)이 명나라에 투항하면서 요양행성은 폐지된다.

3. 행정구역

원사』 지리지에 따르면 요양행성 아래에는 7로(路, 총관부), 1부(府)와 그 아래 12속주, 10속현이 있었다.

3.1. 요양로(遼陽路)

금나라가 요양부(遼陽府)를 설치하고 곧 '동경요양부'로 고쳐 불렀으며 아래에 의주(宜州), 등주(澄州), 복주(復州), 개주(蓋州), 심주(審州), 귀덕주(貴德州), 광녕부(廣寧府), 내원군(來遠軍) 등을 뒀다. 원나라 초에 귀덕주, 등주, 복주, 내원군을 폐지하고 광녕부, 파사부(婆娑府), 의주(懿州), 개주에 로(路)를 설치해 성(省)의 직할지로 예속시켰다. 지원 6년(1269) 동경총관부가 설치되자 광녕을 분리해 예속시켰으며, 지원 15년(1278) 광녕이 분할되고 17년(1280) 파사부, 의주, 개주를 내속시켜 지원 24년(1287) 비로소 행성이 된다. 지원 25년(1288) 동경을 요양로로 개칭했으며 파사부는 폐지되고 순검사(巡檢司)가 된다. 하위 행정구역으로 1현 2주가 있었다.

3.2. 광녕부로(廣寧府路)

금의 광녕부였는데 땅이 멀어 임황으로 치소를 옮겨 총관부를 세운다. 그러나 단독 총관부로 유지하기에는 인구수가 적었고 지원 6년(1269) 동경로총관부의 속군으로 격하된다. 지원 15년(1278) 다시 광녕로로 독립해 나왔다. 하위 행정구역으로 2현이 있었다.

3.3. 대녕로(大寧路)

원래 해부(奚部)로 요나라 때의 중경대정부. 몽골 제국 초기에 북경로총관부를 만들고 산하에 10주를 뒀는데 시간이 흐름에 따라 10주의 구성에 변동이 있었다. 지원 7년(1270) 북경에서 대녕으로 이름을 바꿨다. 25년(1288) 잠시 무평로(武平路)로 이름이 바뀌는데 곧 대녕으로 되돌린다. 연우 4년(1317) 요양행성에 예속됐다. 4월 하위 행정구역으로 1사 7현 9주가 있었다.

3.4. 동녕로(東寧路)

이전에는 고려 서경으로, 고려인 이연령(李延齡), 최탄(崔坦) 등이 1269년(몽골 지원 6년, 고려 원종 10년) 갖다바쳤다. 지원 8년(1271) 서경에서 동녕부로 고쳐 불렀고, 13년(1276) 동녕로총관부로 승격된다. 실제로 돌아가던 하위 행정구역은 1사(司) 뿐으로, 나머지는 성(城)이 막혀 폐지됐고 설치된 관사(司)도 남아있지 않아 이름만 남아있었다. 고려에 반환된 뒤에도 요양로로 옮겨져 이름은 유지됐다.

3.5. 심양로(瀋陽路)

본래 읍루의 땅으로 발해에서 정리부(定理府)를 설치한 곳, 즉 연해주였는데 오늘날의 심양이 있는 지역으로 옮겨졌다. 고려인 홍복원(洪福源)이 서경에서 반란을 일으켜 그 무리를 이끌고 원에 귀부했는데, 홍복원을 고려군민만호에 제수하고 요양 심주에 옮겨 살게 한다. 중통 2년(1261) '안무고려군민총관부(安撫高麗軍民總管府)'로 개칭되고 질자 왕준이 안무고려군민총관에 임명돼 심주를 다스린다. 원정 2년(1296) '심양등로안무고려군민총관부(瀋陽等路安撫高麗軍民總管府)'로 또 개칭되며 하위에 총관 5인, 천호 24인, 백호 25인이 있었다.

3.6. 개원로(開元路)

숙신의 땅으로 수당시대에는 흑수말갈의 근거지였다. 몽골 제국 아래서 개원만호부(開元萬戶府), 남경만호부(南京萬戶府)가 세워졌으나 지원 4년(1267) 요동로총관부가 설치된다. 23년(1286) 개원로총관부로 개칭하고 하위에 함평부(咸平府)를 뒀는데, 곧 여러 부로 분할돼 요동도선위사(遼東道宣慰司)에 예속된다. 이성계의 조상들이 천호장을 지낸 오동이 바로 이곳 개원로에 속했다.

3.6.1. 함평부(咸平府)

고구려의 땅. 함평이라는 이름은 요나라가 발해를 멸망시키고 그 유민이 거주하도록 한 함주(咸州) 안동군(安東軍) 함평현에서 유래했다. 금나라에서 함평현으로 승격되고 하위에 6현이 있었으나 모두 폐지됐다. 처음에 개원로에 속했던 것은 이 때문이다.

3.7. 합란부 수달달등로(合蘭府水達達等路)


텅 빈 넓은 땅에 사람들은 흩어져 살았다. 처음에는 도온(桃溫), 호리개(胡里改), 알타련(斡朵憐), 탈타련(脫斡憐), 패호강(孛苦江)의 다섯 군민만호부가 관사를 두고 혼동강(混同江, 송화강) 남북을 다스렸다. 주민은 모두 수달달, 여진족으로 구성됐다.

합란부는 동여진이 거주하던 지역으로 고려와의 경계다. 고려 예종 함주성을 쌓았다가 포기하고 여진족에게 반환했다. 지정 16년(1356) 공민왕 쌍성총관부를 공격하고 합란부로 진출해 점거한 이래 고려에 예속됐다.

4. 역대 재상

괄호 속의 연도는 재임기간을 뜻한다.

4.1. 좌승상

4.2. 평장정사

4.3. 우승

4.4. 좌승

4.5. 참지정사


[1] 섬서, 요양, 감숙, 하남강북, 사천, 운남, 호엄, 강절, 강서, 영북. 10행성 외에 정동행성, 안남행성 등 타지에 설치된 행성도 있다. [2] 사리첩목아(闍里帖木兒)는 철리첩목아(徹里帖木兒), 활리첩목아(闊里帖木兒)라고도 한다. [3] 고려에서 귀주, 정원도호부, 정주목으로 불렸다. 오늘날의 평안북도 구성시. [4] 무종 즉위 후 상의요양등처행중서성사(商議遼陽等處行中書省事)에서 잠깐 요양행성평장정사에 임명됐는데, 곧 다시 상의행성사로 돌아갔다. [5] 원사』 권16에 따르면 지원 27년(1290) 12월 홍찰홀(洪察忽)이 요양행성우승으로 있으면서 카다안을 방비하라는 조서를 받는다. 그런데 당시 임명된 우승은 홍차구였으므로 이름 '차르구'를 다르게 음차한 것으로 보인다. [6] 평장정사를 지낸 타추의 아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