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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수정 시각 : 2024-06-11 00:21:01

독발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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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량 초대 군주
독발오고 | 禿髮烏孤
묘호 열조(烈祖)
시호 무왕(武王)
연호 태초(太初, 397년 ~ 399년)
독발(禿髮)
오고(烏孤)
생몰 기간 ? ~ 399년
재위 기간 397년 ~ 399년
부친 독발사복건(禿髮思復鞬)
1. 개요2. 생애3. 둘러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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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오호십육국시대의 16국 중 하나인 남량의 개창자.

독발선비의 제7대 수령으로 먼 조상이 서진에 대항하여 대반란을 일으켰던 독발부의 제3대 수령 독발수기능이지 사촌의 현손, 독발오고의 사후에 추시된 시호는 무왕(武王)이었으며, 묘호는 열조(烈祖)였다.

2. 생애

선비족 독발부 제6대 수령인 독발사복건의 아들로, 아버지가 죽자 뒤를 이어 제7대 수령이 되었다. 독발오고는 웅장한 기세를 갖고 있었고 용맹한데다가 천하를 평정하려는 야망까지 품고 있었다. 그는 저족 여씨의 후량을 도모하고자 대장 분타(紛陁)와 일을 모의했는데, 분타는
"당장은 농사에 힘쓰고 인재를 등용하며 병사를 키운 후에 해야합니다"
라고 조언했다. 독발오고는 그의 말을 옳게 여겨 잠시 후량을 침공할 뜻을 접어두었다.

394년, 후량의 태조 의무제 여광이 조서를 보내 독발오고에게 관군대장군(冠軍大將軍), 하서선비대도통(河西鮮卑大都統)의 관직과 광무현후(廣武縣侯)의 작위를 내렸다. 독발오고는 장수들을 불러모아 이를 받아들여야 할지 의논했다. 모든 독발부의 장수들이 분개하여
"우리의 인마(人馬)가 적지 않거늘 어찌 복속되어야 합니까!"
라고 외쳤지만 석진악류(石眞若留)만이 나서서 말했다.
"아직 우리 세력의 기반이 견고하지 않아 지금은 이치에 따라 마땅히 시세(時勢)에 순응해야만 합니다. 여광의 덕정(德政)과 위형(威刑)은 모두 청명하고 정돈되어 있어 국내에 아무런 우환이 없습니다. 만약 그가 우리를 멸망시키고자 한다면 현격한 힘의 차이로 패망하게 될 텐데 그때 가서 후회해봐야 때는 늦습니다. 일단 벼슬을 받고 천도(天道)를 따르면서 실력을 길러 때를 기다리는 것이 낫습니다."
이에 독발오고는 석진약류의 의견을 받아들여 후량의 벼슬을 받았다.

395년 7월, 선비족 을불부(乙弗部)와 절굴부(折掘部)를 토벌하고, 염천보(廉川堡)를 지어 그곳을 근거지로 삼았다. 염천을 평정한 독발오고가 어느날 염천대산(廉川大山)에 올라 눈물을 흘리며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그를 수행하던 석역간(石亦干)이 말했다.
"신이 듣기로 주상(主上)의 우수(憂愁)는 신하의 수치라 들었습니다. 주상이 모욕을 당하면 신하는 마땅히 죽어야만 합니다. 대왕께서 언짢으신 까닭은 혹 여광 때문이십니까? 여광의 나이는 이미 노쇠했고, 그의 군대는 벌써 여러 차례 패배했습니다. 지금 우리는 인마를 기르며 강성해져서 대천(大川)까지 점령하고 우리의 병사들은 일당백인데 여광을 두려워할 이유가 어디 있습니까."
독발오고는 계속 해서 울며 입을 열었다.
"여광이 노쇠한 것은 내가 아는 바이다. 우리 조상들이 은덕으로 먼 곳의 사람들까지 회유했고, 이에 각지의 부족들은 우리의 위명을 두려워하며 노릉(卢陵), 계한(契汗)까지 10,000리 밖에서 귀순해왔다. 하지만 내가 가업을 잇자 각 부족들이 우리 세력을 배반하고 인근의 백성들이 따르려하지 않으면서 거리가 먼데 왜 너희를 따라야 하느냐며 반발하고 있다. 이것이 내가 눈물을 흘리고 있는 이유이다."
그러자 장수 부혼(苻渾)이 말했다.
"그렇다면 대왕께선 군대를 정돈하고 장병들을 동원해 그들의 죄를 물어 토벌하십시오."
독발오고는 부혼의 말에 따라 군대를 이끌고 선비족 의운(意云)부 등 독발부를 이탈했던 각 부족들을 계속해서 토벌해나갔다. 독발오고의 성장세를 본 후량의 의무제 여광은 그를 광무군공(廣武郡公)에 봉했다.

396년, 여광이 후량의 천왕에 올라 독발오고에게 사자를 보내 그를 정남대장군, 양주목 좌현왕에 임명했다. 독발오고는 관직을 거절하며 후량의 사자를 향해 말했다.
"여왕(呂王)은 이전에 친정하여 위세를 얻었으나 익주를 점거하지도, 은덕으로 멀리 있는 부족들을 회유하지도, 자애로 백성을 위로하지도 못했다. 그의 아들들의 탐욕은 끝이 없고, 그의 세 조카는 포학해 백성들은 의지할 데가 없거늘, 내 어찌 천하 사람들의 염원을 어기고 이 불의한 작위를 받을 수 있겠는가! 여광의 흥기(興起)가 오래 갔다고 볼 수 있는가? 무도하면 망하고 덕이 있으면 창성한다. 나는 하늘과 백성의 소망에 부응하여 천하의 주인이 될 것이다."
이후 고취(鼓吹)[1]와 깃털 장식품만 받고, 나머진 모두 사자와 함께 되돌려보냈다.

397년 정월, 독발오고는 스스로 대도독(大都督), 대장군(大將軍), 대선우(大單于), 서평왕(西平王)을 칭하고, 연호를 태초(太初)로 정한 뒤에 남량을 건국하여 독립했다. 이후 광무(廣武)에서 군사를 일으켜 후량의 금성(金城)을 점령했다. 의무제 여광은 장수 두구(竇苟)를 보내 남량을 토벌하게 했으나, 오히려 가정(街亭) 전투에서 독발오고에게 대패를 당하고 물러났다.

그 해(397) 8월, 후량에서 곽논(郭黁)과 양궤(楊軌)가 반란을 일으켰는데 불리해져 남량에 구원을 요청했다. 독발오고는 동생인 표기장군 독발리록고에게 기병 5,000명을 주어 돕도록 했다.

398년 2월, 동생인 거기장군 독발녹단에게 기병 10,000명을 주어 양궤를 돕도록 했다. 독발녹단, 독발리록고와 군사를 합친 양궤는 후량군과 크게 전면전을 벌였다가 패배해 잔당을 이끌고 귀순했다. 황하 이남의 선비족인 토말(吐秣)부 등 12부락도 남량으로 귀순해왔다.

동년(398) 9월, 강족의 양기(梁飢)가 남량의 서평을 치자 서평태수 곽행(郭倖)이 항복하려고 했다. 하지만 서평 사람 전현명(田玄明)은 항복을 거부하고 곽행을 사로잡아 가둔 뒤, 그를 대신해 양기의 침공을 막았다. 독발오고는 전현명을 구원하기 위해 출병하려고 했는데 여러 군신들이 양기의 강성함을 꺼려 출병에 반대했다. 좌사마 조진(趙振)은 서평군이 강족에 넘어가면 좋을 것이 없다며 찬성해, 독발오고는 그를 믿고 출진하여 양기를 대파했다. 양기는 용지보(龍支堡)로 물러나 그곳에서 독발오고와 다시 한번 붙었으나 또 패배해 홀로 말을 타고 요하(澆河)로 도망가 숨었다. 이 용지보 전투로 대다수의 영남 강족 부락들이 남량에 복속되었고, 후량의 낙도(樂都), 황하(湟河), 요하(澆河) 3군이 항복해왔다. 독발오고는 서평을 성공적으로 방어한 전현명을 서평내사에 임명해 서평군을 다스리도록 했다.

398년 10월에는 후량의 건무장군 이란(李鸞)이 흥성(興城)을 들고 투항했고, 11월에는 전호족(田胡族)의 왕걸기(王乞基)가 수천 호를 이끌고 남량에 귀순했다. 12월에 독발오고는 서평왕에서 무위왕(武威王)으로 칭호를 바꾸었다.

399년 정월, 남량의 수도를 낙도(樂都)로 천도했다. 독발오고는 이민족과 한족들 중 재주가 뛰어난 자가 있으면 발탁해 안으로는 높은 지위에 있게 하고, 밖으로는 군현을 맡겼다. 5월에 후량의 태자 여소와 태원공 여찬이 북량을 공격했다. 북량왕 단업이 남량에 구원을 요청하니, 독발오고는 표기대장군 독발리록고와 양궤를 보냈다. 여소와 여찬은 남량의 구원군이 온다는 소식을 듣고 군대를 후퇴시켰다.

같은 해(399) 6월, 독발리록고를 양주목에 임명해 서평에 주둔하게 하고, 기마대장군 독발녹단을 중앙으로 불러들여 녹부국사로 삼아 국가 대사를 처리하도록 했다. 그리고 2개월 뒤, 독발오고는 술에 취한 채 말을 몰던 중 낙마했다. 그는 갈비뼈가 다쳤음에도 불구하고 얼른 일어나 웃으면서 주위 사람들에게 말했다.
"하마터면 여광 부자(父子)를 크게 기쁘게 할 뻔했구나."
하지만 얼마 지나지 않아 상처가 덧나 병세가 심각해졌다. 죽음을 직감한 독발오고는 신하들을 불러 난세가 평정되지 않았으니 연장자를 왕위에 앉혀야 한다며 어린 아들 대신 동생인 독발리록고를 후계자로 지목하고 승하했다. 묘호와 시호는 열조(烈祖) 무왕(武王)으로 추존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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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량 건국 초대 열조 무왕 독발오고 2대 강왕 독발리록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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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5권 「유총등전(劉聰等傳)」
유총 · 석륵 · 유하 · 모용외 · 부건 · 요장 · 여광
96권 「사마예등전(司馬叡等傳)」 97권 「환현등전(桓玄等傳)」 98권 「소도성등전(蕭道成等傳)」
사마예 · 이웅 환현 · 풍발 · 유유 소도성 · 소연
99권 「장실등전(張實等傳)」
장실 · 걸복국인 · 독발오고 · 이고 · 저거몽손
100권 「고구려등전(高句麗等傳)」
고구려 · 백제 · 물길 · 실위 · 두막루 · 지두우 · 고막해 · 거란 · 오락후
101권 「저등전(氐等傳)」
저족 · 토욕혼 · 탕창강 · 고창 · 등지 · 만족 · 요족
102권 「서역전(西域傳)」
선선 · 차말 · 우전 · 백정 · 차사국 · 언기 · 쿠처 · 소륵 · 속특 · 파사 · 남천축 · 읍달
103권 「연연등전(蠕蠕等傳)」
연연 · 우문막괴 · 단질육권 · 고차
104권 「자서전(自序傳)」
위수
※ 105권 ~ 114권은 志에 해당. 위서 문서 참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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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궁중 의식에서 연주되던 악기. 관악기면서 타악기이다. 한나라 시대때 생겼으며 한국에도 고구려에 전해진 바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