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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수정 시각 : 2024-03-31 14:54:26

명제(남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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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lbgcolor=#3797E8><colcolor=#ece5b6>
남제 제5대 황제
고종 명황제 | 高宗 明皇帝
출생 452년
유송 남난릉군 난릉현
(現 장쑤성 창저우시 우진구)
즉위 494년 12월 22일
남제 단양군 건강현
(現 장쑤성 난징시)
사망 498년 9월 1일 (향년 46세)
남제 단양군 건강현 황궁 경복전
(現 장쑤성 난징시)
능묘 흥안릉(興安陵)
재위기간 남제의 황제
494년 12월 22일 ~ 498년 9월 1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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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lbgcolor=#3797E8><colcolor=#ece5b6> 본관 난릉 소씨
란(鸞)
부모 부황 경황제
모후 경의황후
형제자매 3남 중 2남
배우자 명경황후
자녀 11남 1녀
아명 현도(玄度)
경서(景栖)
작호 서창후(西昌侯) → 선성군공(宣城郡公)
→ 선성왕(宣城王)
묘호 고종(高宗)
시호 명황제(明皇帝)
연호 건무(建武, 494년 ~ 498년)
영태(永泰, 498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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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2. 생애
2.1. 즉위 이전2.2. 황제를 죽이고 실권을 손에 넣다2.3. 황제를 죽이고 찬탈하다2.4. 의심으로 제나라의 명맥을 끊다
3. 둘러보기(계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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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중국 남북조시대 남제(南齊)의 5대 황제. 묘호는 고종(高宗), 시호는 명황제(明皇帝). 휘는 란(鸞). 자는 경서, 아명은 현도(玄度). 재위 5년 동안은 건무(建武), 마지막 1년 동안에는 영태(永泰)라는 연호를 사용했다.

2. 생애

2.1. 즉위 이전

송나라 원가 29년(452년)에 태어났으며, 시안정왕 소도생(蕭道生)[1]과 강씨(江氏)[2] 차남[3]으로 어려서 고아가 되어 숙부 소도성의 보살핌을 받았다. 원래 송나라 시대에 회남군, 선성군 태수에 임명되었고 보국장군 시절에는 재능과 엄격함으로 널리 알려졌다. 소도성이 즉위하자 서창후(西昌侯), 영주 자사(郢州刺史)가 되었으며 사촌형 소색이 즉위하자 시중, 효기 장군이 되었으며 상서좌복야를 거쳤다. 제 무제 소색은 죽기 전에 그를 시중, 상서령에 봉하고 장손 소소업을 보좌하게 했다.

2.2. 황제를 죽이고 실권을 손에 넣다

소소업이 황음무도해서 겉으로는 여러차례 간언을 했지만 적극적으로는 행동하지 않았고 오히려 황제의 향락을 방조하였다. 은근히 야심이 있어서 암군이 즉위한 틈을 타 황제 자리를 노린 것이다. 이에 소소업은 간언이 지겨웠는지, 아니면 소란의 야심을 알아챘는지 그가 딴마음을 품고 있는 것으로 의심해서 토벌하려고 했다.

융창 원년(494년) 7월, 소소업이 망설이는 사이 먼저 선수를 쳐서 군대를 이끌고 입궁하여 황제의 측근인 직각장군 조도강, 중서사인 주륭지 등을 죽이고, 수창전에 들어가 소소업을 죽였다. 소란은 소소업의 아우 소소문을 즉위시키고, 대권을 장악하여 표기대장군, 녹상서사, 양주자사, 선성공이 되었다.

2.3. 황제를 죽이고 찬탈하다

소란은 10월 선성왕으로 승진하였고, 이미 황위를 찬탈하기 위해 친당을 조직했다. 자기 형 소봉의 장남 시안왕 소요광을 남군태수로 봉하고, 그의 아우 소요흔을 연주 자사에 임명했다. 이에 파양왕 소장은 수왕 소자륭과 난을 일으켜 소란을 제거하려고 했으나 실패하고 제거되었으며, 진앙왕 소자무도 난을 일으켰다가 제거되었다. 안륙왕 소가경, 남평왕 소예 등 9명의 종친을 죽이는 골육상잔을 저질렀다.

같은 달에 소소문을 폐하고 스스로 황제가 되었으며, 11월에는 어의를 시켜 소소문을 시해했다. 12월, 소란이 스스로 즉위하여 인심이 흔들리자 북위가 대규모의 군사를 이끌고 침공해왔다. 그러나 495년 3월, 북위는 수양, 종리에서 패배하고 후퇴했다.

2.4. 의심으로 제나라의 명맥을 끊다

남제 명제 소란은 능력이 있었고, 검소해서 무제 소색과 울림왕 소소업이 백성들에게 수탈한 땅을 돌려주고, 궁궐과 기물을 장식한 금은과 보석을 거두어서 국고에 넣었다. 태관이 바친 음식을 보고 자신이 이걸 다 먹지 못하니 네 조각으로 나눠서 나머지는 저녁에 먹겠다고 하는 등 먹는 음식도 절약했다. 그러나 4년 만에 붕어하게 되었고, 그의 붕어 후 제나라는 4년 만에 망하게 된다.

나름대로 명군의 자질이 있었던 명제 소란이 제나라의 결정적인 멸망의 원인이 된 것은 바로 의심병이었다. 명제 소란은 즉위 이래로 의심이 더욱 많아져 권력을 독점했으며 모든 일을 자기가 직접 보고받고 처리했다. 군현과 조정의 공식적인 행사는 물론, 심지어 지방에까지 심복(주사)을 보내 소씨 황족과 관리들의 동정을 감시하고, 궁전 깊은 곳에서 외부와의 접촉을 줄였다. "여러 주의 일은 주사에게 듣고, 자사에게는 듣지 않는다"라는 말이 나돌 정도로 이례적인 일이었다. 당시의 남조 귀족 사회에서 이런 행보는 결코 좋은 소리를 들을 수 없었다.

이렇게 황족들에 대한 의심병이 심했던 이유는 명제 소란이 계승법상 순서를 받기 힘든 황족이라 정통성이 매우 취약했기 때문이었다. 단순히 그냥 방계였기 때문만은 아니다. 역사적으로 방계로 대를 이었던 왕들은 대부분 바로 이전의 직계가 아닐뿐 몇대 전 왕의 후손이었고, 애초에 방계임에도 즉위를 할 수 있었던 이유가 직계가 대가 끊겼기 때문이었다. 따라서 방계 임금은 남은 방계중 가장 가까운 사람이기에 이런 경우 정통성에 큰 문제가 없었다.[4]

하지만 소란의 경우 남제가 워낙 건국 초기부터 막장이었기 때문에 개국 군주인 고제 소도성의 후손이 아닌 그의 형인 소도생의 후손이었다. 다시 말해 말만 황족이지 사실 소란의 조상 중에는 황제였던 사람이 없었던 것이다. 아무리 방계여도 이는 정통성에 치명적인 결격 사유라고 볼 수 있다.[5] 건국 군주가 자기 위의 6대 조상까지를 추존하긴 하지만, 실제 정통성은 직접 개국한 공이 있는 군주로부터 생겨나는거지 형식상 추존된 조상들[6]로부터 생겨나는게 아니다. 남제의 개국 군주는 고제 소도성이고 그 형제 소도생은 그 과정에서 진나라의 사마사처럼 큰 역할을 한 것도 아니라서 소도성의 혈통이 저절로 끊긴 상황이 아니고서야 소도생의 혈통인 소란은 이어받을 명분이 아예 없었다.[7]

실제로 명제의 즉위 과정을 보면 왕조 교체 시기에 숱하게 일어났던 '황제 폐위 혹은 살해(소소업)→허수아비 황제 옹립(소소문)→선양 혹은 살해 후 즉위' 과정을 그대로 거치고 있다. 이게 보통 성씨가 다른 유력 신하가 선양을 빙자한 찬탈 루트라는걸 생각해보면 명제 소란은 사실상 성씨만 같지 선양받은 것이나 다름없는 것이었다.

심지어 소란의 자식들은 대부분 허약했으며, 그 스스로도 몸에 병이 있었다. 그래서 이미 즉위 전에 9명을 죽인 것이었는데, 즉위 후에도 고제 소도성과 무제 소색의 자손이 아직 10여명이 남아 있었다. 그래서 자신의 황계를 안정시키고 그들의 황권 탈환을 미연에 방지하기 위해 조카 소요광을 시켜 그들을 모조리 죽이게 했다.

죽이는 방법도 상당히 가식적이었다. 고의적으로 황족들의 죄를 만들어 올리게 하고, 붙잡혀 온 황족들을 보며 안타까운 듯이 울고 불며 대성통곡했다. 그러나 짜고치기 형벌을 담당하는 정위가 그들에게 합당한 처리, 즉 사형을 선고하면 미리 준비해둔 독약으로 사약을 만들어 먹여버렸다. 그렇게 미리 만든(!) 관에 넣어서 매장했는데 이는 남녀노소를 가리지 않았다. 미리 관을 만들었다는 점부터 이미 그들을 죽일 의도였다는 것이다. 북위를 격파한 사주자사 소탄은 명제 소란이 자신을 보며 위선 가식의 눈물을 흘리는걸 보고 죽음을 각오했으나, 결국 피하지 못하고 멸족을 당했다. 이렇게 죽은 고제 소도성, 무제 소색의 후손이 20여명이었고 소도성 계보는 전원 멸족을 면치 못했다. 자신의 정통성이 낮다고 개국군주 소도성의 후손을 아예 멸족을 시켰으니 누가 이 황실의 정통성을 인정해주겠는가? 황족의 정통성이란 개국군주, 중흥군주의 위업을 인정해서 그 혈통을 이어받은 사람들을 그렇게 명군의 자질이 없더라도 통치자로 인정해주는 것에서 비롯되기에, 이건 소씨의 국가통치명분 자체를 소란 자기 손으로 완전히 파괴한 자폭행위였다.

이렇게 단 한명이 황실 일가를 전부 도살한 예는 소란이 유일하다.

앞서 서술했듯이 병중에 황위에 올라 비밀에 부치고 정사를 처리하면서 몰래 백어(白魚)를 구해 병을 치료했다. 그러나 비밀은 없는 법이라 병이 심해지는 가운데 백어를 구한다는 것이 외부에 드러났다. 이에 상서 왕안을 의심하여 반역자로 몰아 그를 죽였고, 대사마 겸 회계 태수 왕경칙[8]은 겉으로는 예로서 대우했으나, 마음 속으로는 의심했다. 왕경칙은 두려워하다 반란을 일으켰는데, 승승장구하여 황태자 소보권이 건강을 지키고, 소란은 파천하는 지경이 되었다.

이에 기세등등하여 왕경칙은 '단공[9]이 36계 주위상책(혹은 주위상계)이라고 했으니 너희 부자는 달아나지 않으면 죽을 것이다'라고 외쳤으나, 결국 실패하고 난은 평정되었다.[10] 이것이 "36계(줄행랑)"라는 말이 널리 퍼진 계기가 되었다.

물론 소란이 뻘짓을 안 한 것도 아니다. 소란은 불교와 도교, 특히 귀신을 깊이 믿어서 무당이 후호(後湖)의 물줄기가 수맥이 되어 병이 났다고 하자 태관(太官)에게 도랑을 파라고 명했다. 주위 사람들이 태관은 물이 없으면 성립할 수 없다고 이야기했지만 소란은 오히려 물길을 막고 남쪽에서 회수를 끌어들이려고 했다. 하지만 소란이 죽으면서 이 계획은 결국 무산되었다. 소란은 또한 행차를 나설 때 이해타산에 대해 먼저 점을 친 다음 남쪽으로 갈 때는 서쪽으로, 동쪽으로 갈 때는 북쪽으로 간다고 말하기도 했다. 출입하는 사람을 가려 뽑았고 결국 남교에서 제사를 올린 적이 없었다.

영태 원년(498년) 7월, 명제 소란은 재위 5년만에 47세의 나이로 경복전에서 숨을 거두고, 8월에 흥안릉에 안장되었으며 그의 뒤를 둘째 아들 황태자 소보권이 이었다. 죽으면서도 "융창(隆昌-폐위당한 울림왕 소소업의 연호)의 고사를 잊지 말거라"라는 유언을 남겼다. 얼핏 듣기에는 잘하라는 이야기지만 소란이 했던 짓을 생각해보자. 고제 소도성의 계보가 다 멸문되었으니 결국 남은 계보인 자기 아들들도 소보권에게 위협이 되면 다 죽이란 이야기였다. 그리고 아들 소보권은 과연 그대로 했으며, 그나마 황제 노릇이라도 잘하라는 충고마저 듣지 않고 왕조의 명맥을 끊었다.

후에 고제 소도성 계보의 제나라 황족은 오직 말을 못하는 명제 소란의 장남 사술공 소보의와 다른 아들 파양왕 소보인, 그리고 동혼후 소보권의 아들로 여겨지는 예장왕 소종[11] 세 명만이 목숨을 건질 수 있었다.

첫째 소보의는 폐질을 앓는 벙어리였다. 그래서 황위에 위협이 되는 계승 대상으로도 여겨지지 않아 목숨을 연명한 것이다. 비록 서른이 못되어 양나라 천감 8년(509년)에 죽었지만 그나마 병 중에도 천수를 누린 편이었다. 소보인은 북위로 망명했으며, 예장왕 소종 역시 친자논란에 대한 의심을 견디지 못하고 망명했는데 그럼에도 양 무제 소연은 그를 칠삭둥이인 자신의 아들로 여겼다. 소란의 계보 역시 골육상쟁과 양 무제 소연의 즉위로 모두 도륙이 났기 때문이다. 못난 아들 소보권에게 대를 잇게 하기 위해 숙부 소도성의 집안을 멸문시킨 결과치고는 참 허무했다. 그리고 소보인과 소종도 북위에 혼란이 일어났을 때에 살아남지 못하여[12] 소란의 자손은 끊겼다.[13]

다만, 소도성의 자손을 모두 멸족시켰다는 것은 사실이 아니다. 소도성의 손자인 소자현이 남아 있었으며 그는 제나라의 역사인 《 남제서》를 썼다. 역사서에 따르면, 소란은 선대 황제들의 아들들은 모두 죽였지만, 선대 황제들의 손자들은 살려주었다고 한다. 소자현과 그 형제들도 그래서 살아남을 수 있었다.

3. 둘러보기(계보)

남제서(南齊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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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권 「고제기(高帝紀)」 3권 「무제기(武帝紀)」 4권 「전폐제기(前廢帝紀)」
소도성 소색 소소업
5권 「중폐제기(中廢帝紀)」 6권 명제기(明帝紀)」
소소문 소란
7권 「후폐제기(後廢帝紀)」 8권 「화제기(和帝紀)」
소보권 소보융
※ 9권 ~ 19권은 志에 해당. 남제서 문서 참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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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열전(列傳)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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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영 · 소황 · 소엽 · 소고 · 소장 · 소삭 · 소감 · 소봉 · 소예 · 소갱 · 소구 · 소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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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영국 · 단초 · 변빈 · 구거원 · 왕지심 · 육궐 · 최위조 · 왕준지 · 조충지 · 가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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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6권 「행신전(倖臣傳)」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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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7권 「위로전(魏虜傳)」 58권 「만・동남이전(蠻・東南夷傳)」 59권 「유목전(遊牧傳)」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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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0권 「자서전(自序傳)」
소자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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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9권 「채곽전(蔡廓傳)」 30권 「하상지전(何尙之傳)」 31권 「장유전(張裕傳)」
채곽 하상지 장유 , 장승,
32권 「장소전(張邵傳)」 33권 「범태등전(范泰等傳)」 34권 「안연지등전(顔延之等傳)」
장소 범태 · 순백자 · 서광 · 정선지 · 배송지 · 하승천 안연지 · 심회문 · 주랑
35권 「유담등전(劉湛等傳)」 36권 「양흔등전(羊欣等傳)」 37권 「심경지등전(沈慶之等傳)」
유담 · 유열 · 고침 · 고기지 양흔 · 양현보 · 심연지 · 강이 · 강병지 심경지 · 종각
38권 「유원경전(柳元景傳)」 39권 「은효조등전(殷孝祖等傳)」 40권 「노상등전(魯爽等傳)」
유원경 은효조 · 유면 노상 · 설안도 · 등완 · 종월 · 오희 · 황회
41권 「제종실전(齊宗室傳)」
소도도 · 소도생 · 소요광 · 소요흔 · 소면 · 소경선 · 소적부 · · 소탄 · 소탄지
42·43권 「제고제제자전(齊高帝諸子傳)」
소억 · 소영 · 소황 · 소엽 · 소고 · 소장 · 소삭 · 소감 · 소봉 · 소예 · 소갱 · 소구 · 소현
44권 「제무제제자·제문혜제자·명제제자전(齊高帝諸子·文惠諸子·明帝諸子傳)」
소장무 · 소자량 · 소자경(卿) · 소자향 · 소자경(敬) · 소자무 · 소자륭 · 소자진 · 소자명 · 소자한 · 소자륜 · 소자정 · 소자악 · 소자문
소자준 · 소자림 · 소자건 · 소자하 · 소소수 · 소소찬 · 소보의 · 소보현 · 소보원 · 소보인 · 소보유 · 소보숭 · 소보정
45권 「왕경칙등전(王敬則等傳」 46권 「이안인등전(李安人等傳)」
왕경칙 · 진현달 · 장경아 · 최혜경 이안인 · 대승정 · 환강 · 초도 · 조무 · 여안국 · 주산도 · 주반룡 · 왕광지
47권 「순백옥등전(荀伯玉等傳)」 48권 「육징등전(陸澄等傳)」
순백옥 · 최조사 · 설연 · 우종 · 호해지 · 우완지 · 유휴 · 강석 육징 · 육혜효 · 육궐
49권 「유고지등전(庾杲之等傳)」 50권 「유환등전(劉瓛等傳)」
유고지 · 왕심 · 공규 · 유회진 유환 · 명승소 · 유이 · 유규
51·52권 「양종실전(梁宗室傳)」
소경 , 소매 소발 소앙 소욱, · 소의 · 소부 · 소창 · 소융 · 소굉 , 소정인 소정의 소정덕 소정립, 소수 · 소위 · 소회 · 소담
53권 「양무제자전(梁武帝諸子傳)」
소통 · 소종 · 소적 · 소속 · 소윤 · 소기
54권 「양간문제자·원제제자전(梁簡文帝諸子·元帝諸子傳)」
소대기 · 소대심 · 소대관 · 소대림 · 소대련 · 소대춘 · 소대성 · 소대봉 · 소대아 · 소대장 · 소대균 · 소대위 · 소대훈 · 소대구 · 소대흔 · 소대지 · 소대원 · 소방등 · 소방제 · 소방구 · 소방략
55권 「왕무등전(王茂等傳)」
왕무 · 조경종 · 조의종 · 석천문 · 하후상 · 길사첨 · 채도공 · 양공칙 · 등원기 · 장혜소 · 장징 · 풍도근 · 강현 · 창의지
56권 「장홍책등전(張弘策等傳)」 57권 「심약등전(沈約等傳)」 58권 「위예등전(韋叡等傳)」
장홍책 · 유역 · 정소숙 · 여승진 · 악애 심약 · 범운 위예 · 배수
59권 「강엄등전(江淹等傳)」 60권 「범수등전(范岫等傳)」 61권 「진백지등전(陳伯之等傳)」
강엄 · 임방 · 왕승유 범수 · 부소 · 공휴원 · 강혁 · 서면 · 허무 · 은균 진백지 · 진경지 · 난흠
62권 「하창등전(賀瑒等傳)」 63권 「왕신념등전(王神念等傳)」 64권 「강자일등전( 江子一等傳)」
하창 · 사마경 · 주이 · 고협 · 서리 · 포천 왕신념 · 양간 · 양아인 강자일 · 호승우 · 서문성 · 음자춘 · 두즉 · 왕림 · 장표
65권 「진종실제왕전(陳宗室諸王傳)」
진의 · 진상 · 진혜기 · 진창 · 진담랑 · 진백무 · 진백산 · 진백고 · 진백공 · 진백인 · 진백의 · 진백례 · 진백지 · 진백모
진숙릉 · 진숙영 · 진숙견 · 진숙명 · 진숙경 · 진숙헌 · 진숙제 · 진숙문 · 진숙달 · 진숙탄 · 진숙표 · 진숙웅 · 진숙중 · 진숙엄 · 진숙신 · 진숙우 · 진숙평 · 진숙오 · 진숙흥 · 진숙선 · 진숙목 · 진숙검 · 진숙징 · 진숙소 · 진숙광 · 진숙순 · 진숙모 · 진숙현 · 진숙륭 · 진숙영
진심 · 진장 · 진윤 · 진억 · 진언 · 진경 · 진건 · 진념 · 진지 · 진전 · 진번
66권 「두승명등전(杜僧明等傳)」
두승명 · 주문육 · 후진 · 후안도 · 구양위 · 황법구 · 순우량 · 장소달 · 오명철
67권 「호영등전(胡穎等傳)」
호영 · 서도 · 두릉 · 주철무(1) · 정령세 · 심각 · 육자륭 · 전도집 · 낙문아 · 손창 · 서세보 · 주부 · 순랑 · 주경 · 노실달 · 소마하 · 임충 · 번의
68권 「조지례등전(趙知禮等傳)」
조지례 · 채경력 · 종원요 · 한자고 · 화교 · 유사지 · 사기 · 모희 · 심군리 · 육산재
69권 「심형등전(沈炯等傳)」
심형 · 우려 · 부재 · 고야왕 · 요찰
70권 「순리전(循吏傳)」
길한 · 두기 · 신념 · 두혜도 · 완장지 · 견법숭 · 부염 · 우원 · 왕홍궤 · 심우 · 범술증 · 손겸 · 하원 · 곽조심
71권 「유림전(儒林傳)」
복만용 · 하동지 · 엄식지 · 사마경 · 변화 · 최령은 · 공첨 · 노광 · 심준(峻) · 공자구 · 황간 · 심수 · 척곤 · 정작 · 전완 · 장기 · 고월 · 척곤 · 왕원규
72권 「문학전(文學傳)」
구영국 · 단초 · 변빈 · 구거원 · 왕지심 · 최위조 · 조충지 · 가희경 · 원준 · 유소(昭) · 종영 · 주흥사 · 오균 · 유협 · 하사징 · 임효공 · 안협 · 기소유 · 두지위 · 안황 · 잠지경 · 하지원 · 서백양 · 장정견 · 완탁
73·74권 「효의전(孝義傳)」
공영 · 유유(瑜) · 가은 · 곽세통 · 엄세기 · 오규 · 반종 · 장진지 · 구걸 · 사각수 · 왕팽 · 장공 · 서경 · 손법종 · 범숙손 · 복천여 · 허소선 · 여제인 · 손극 · 하자평 · 최회순 · 왕허지 · 오경지 · 소예명 · 소교처양 · 공손승원 · 오흔지 · 한계백 · 구관선 · 손담 · 화보 · 해숙겸 · 한영민 · 유풍 · 봉연백 · 오달지 · 왕문수 · 악이지 · 손법종 · 유도민 · 등담공 · 도계직 · 심숭소 · 순장 · 길분 · 견염 · 조발호 · 한회명 · 저수 · 장경인 · 도자장 · 성경준 · 이경서 · 사린 · 은불해 · 사마고 · 장소
75·76권 「은일전(隐逸傳)」
도잠 · 종소문 · 심도건 · 공순지 · 주속지 · 대옹 · 적법사 · 뇌차종 · 곽희림 · 유응지 · 공기 · 주백년 · 관강지 · 어부 · 저백옥 · 고환 · 두경산 · 장영서 · 오포 · 서백진 · 심인사 · 완효서 · 등욱 · 도홍경 · 제갈거 · 유혜비 · 범원엽 · 유선 · 장효수 · 유승선
77권 「은행전(恩倖傳)」
대법흥 · 서원 · 완전부 · 기승진 · 유계종 · 여법량 · 여문현 · 여법진 · 주석진 · 육험 · 사마신 · 시문경 · 심객경 · 공범
78·79권 「이맥전(夷貊傳)」
임읍 · 부남 · 중천축국 · 사자국 · 고구려 · 백제국 · 신라 · · 부상국· 하남왕국 · 탕창 등지 · 무흥국 · 형옹주·예주만 · 고창 · 쿠처 · 우전국 · 파사국 · 연연
80권 「적신전(賊臣傳)」
후경 , 왕위, · 웅담랑 · 주적 · 유이 · 진보응
(1) 본명이 주철호(周鐵虎)로 당태조로 추존된 이호(李虎)를 피휘하여 무(武)로 개칭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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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고제 소도성의 둘째 형으로 아들이 즉위하자, 경황제(景皇帝)로 추존되고, 묘도 수안릉으로 격상됐다. [2] 의황후(懿皇后)로 추존되었다. [3] 장남인 친형은 소봉이다. [4] 방계 컴플렉스를 가졌을거라고 엉터리 루머가 나도는 조선 선조의 경우도 계승법상 정통성에 아무 문제가 없었다. 선조를 괴롭힌 것은 임진왜란 당시 보여준 추태였지 방계는 전혀 문제가 되지 않았다. [5] 조선으로 치면 이성계의 자손들이 살아있음에도 이성계의 형제인 이화의 아들이 왕위를 찬탈한 꼴이다. [6] 물론 위나라의 조조나 진나라의 사마의처럼 클라스가 다른 추존 황제들은 역사에 존재한다. 1대 황제의 아버지이거나 할아버지인 이들의 후손들은 1대 황제의 자손이 아니라 형제의 후손이더라도 정통성을 가질 수 있다. [7] 이렇게 개국 군주의 형제가 계승한 사례는 프랑스 카페 왕조와 예루살렘의 레펠 왕조가 있는데 둘 다 가문의 첫 군주인 외드 고드푸르아 드 부용이 후손을 남기지 못해 즉위한 것이다. [8] 바로 고제 소도성을 옹립했던 그 왕경칙으로 이때까지 살아 있었다. [9] 송나라 문제 유의륭 때의 명장 단도제. [10] 왕경칙은 무려 73세까지 살았고, 반란으로 인해 사형당했으니 별일 없었으면 더 오래 살았을 것이다. 당시의 일반적인 남성들처럼 40-50대에 죽었으면 이런 비극은 겪지 않았을 터이니 너무 오래 살아서 피를 본 케이스. [11] 공식적으로는 양 무제 소연의 아들로 원래 소보권의 후궁이었던 모친 오씨를 소보권을 죽인 소연이 취했다. 뱃속에서 7개월 만에 태어났는데 소연은 자신의 아들로 여겼지만 주변으로부터는 끝없이 폭군 소보권의 유복자라는 의심을 받았다. 현재는 소보권의 아들일 거라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많다. [12] 소보인은 40대의 나이로 반란을 일으켰다 잡혀 죽었고 소종은 30대라로 병사했다. [13] 다만 소종의 자손은 대를 잇기는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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