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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수정 시각 : 2024-12-08 01:50:53

반남 박씨


한국의 성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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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록색: 2015년 기준으로 총 인구 100명 미만인 성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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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lbgcolor=#4a2d5b><colcolor=#fbe673> 조선 6대 국반{{{#!wiki style="margin: -15px -10px" <tablealign=center><tablebordercolor=#fbe673> 파일:반남 박씨 종문.png 潘南 朴氏
반남 박씨
}}}
관향 <colbgcolor=#fff,#191919> 전라남도 나주시 반남면
시조 박응주(朴應珠)
집성촌 경기도: 포천시, 화성시
충청남도: 논산시, 금산군, 예산군
경상북도: 상주시, 영주시, 안동시, 봉화군, 예천군
충청북도: 진천군 초평면
경상남도: 산청군
전북특별자치도: 무주군, 진안군, 장수군, 완주군 봉동읍
전라남도: 영암군
황해도: 은율군
인구 160,964명 (2015년)[1][2]
링크 반남박씨 대종중

1. 개요
1.1. 내용
2. 분포 지역3. 파(派)4. 항렬자5. 인물
5.1. 21세손 이전5.2. 22세손5.3. 23세손5.4. 24세손5.5. 25세손5.6. 26세손5.7. 27세손5.8. 28세손5.9. 29세손5.10. 30세손5.11. 31세손5.12. 항렬 미상
6. 홈페이지

[clearfix]

1. 개요

전라남도 나주시[3] 반남면(潘南面)을 본관으로 하는 박씨. 시조는 고려 시대 반남호장(潘南戶長)을 지낸 박응주(朴應珠)이며 선계에 대해서는 불명확하다.[4]

조선 시대 때 조선 좌명공신 평도공 박은(朴訔), 또한 조선조 최고 영예인 문묘 종사 및 종묘배향공신(숙종)인 소론의 영수 박세채(朴世采)를 배출하면서 최고 명문가들인 국반(國班)의 대열에 등극했다.[5] 열하일기를 쓴 연암 박지원(朴趾源), 그 손자로서 종묘배향공신(고종)이자 개화파의 아버지인 우의정 박규수(朴珪壽)가 이 성씨이다. 조선왕조를 통틀어 정승 7명, 대제학 2명, 왕비 2명( 선조 의인왕후, 인종 인성왕후), 후궁 1명( 순조의 어머니 수빈 박씨), 문과 급제자 215명, 무과 급제자 23명, 의과 1명, 음관 176명, 상신(정승) 7명, 청백리 2명, 공신 6명, 장신 3명, 호당(부마) 5명, 사마시 422명을 배출하였다.

조선 중기 노론들이 집권할 때도 중심에 있었고, 후기 세도 정치가 판을 칠 때도 중앙에서 세력을 유지했다. 정조의 후궁이자 왕실의 인척이 된 수빈 박씨의 아들이 즉위하였으니 그가 바로 순조이다.[6]

박세채(朴世采) 등 소론의 거물도 배출했고 당쟁을 거부하는 인물들도 있어 스펙트럼이 다양하다. 글 좀 한다는 대다수 집안이 주자학과 붕당에 치우쳐 있을 때도 반남 박씨는 북학 등 새로운 사조를 연구하는 데에 힘썼다. 결국 박지원(朴趾源), 박규수(朴珪壽) 등이 개화파를 키워낸다.

1.1. 내용

조선 시대에 크게 현달[7]한 가문이다. 시조 박응주가 나주 벌집 명당에 묘를 써 후손들이 '벌떼처럼 일어났다'라는 야사가 있다. 조선 시대 박씨 성을 가진 정승 12명 중 7명이 반남이다.

고려 말 신진사대부였던 박상충(朴尙衷)과 조선 태종 대에 정승(좌의정)을 지낸 박은(朴訔)을 비롯해 특히 조선 후기 문묘에 배향된 대학자 박세채(朴世采) 및 박세당(朴世堂), 박태보(朴泰輔) 등 숙종 대에 활약한 인물과 연암 박지원(朴趾源), 환재 박규수(朴珪壽) 등의 이름난 실학자를 배출한 명문가였다. 정치적으로는 대체로 서인 계열로서 노소론을 가리지 않았다.

을사오적이자 경술국적에 이름을 올린 친일반민족행위자인 박제순(朴齊純)의 손자 박승유(朴勝裕)는 독립운동가였고, 박찬익(朴贊翊)도 독립운동가이자 민족대표 39인중 한 사람이다. 백범 김구 선생을 암살한 안두희를 처단한 박기서도 있다.[8]

태종 대에 박은(朴訔)과 세종의 장인 심온(沈溫) 사이의 악연이 깊어 반남 박씨는 청송 심씨와 서로 통혼하지 않는 관습이 있었던 것으로도 알려져 있다.

2. 분포 지역

전라남도 나주시를 본관으로 하는 집안이지만 의외로 전라남도, 광주에 상대적으로 인구가 적다. 통계청 2015년 인구 자료 기준 전체 인구는 160,964명이며, 2000년 자료를 기준으로 서울 32,775명, 인천 8,886명, 대전 8,461명, 부산 5,897명, 대구 4,579명, 광주 3,298명, 울산 1,824명, 경기 31,462명, 강원 3,100명, 충북 4,684명, 충남 6,896명, 전북 6,209명, 전남 3,501명, 경북 8,936명, 경남 5,000명, 제주 295명으로 전국적으로 고루 분포하고 있지만 상대적으로 경상북도, 전라북도, 충청도, 수도권에 많이 거주하고 있다. 그 중에서도 특히 경북 서북부, 충청 남부, 전북 북부 지역, 경기도 고양시. 서울 토박이 중에서도 반남 박씨 비율이 꽤 높은 편이다.

어디를 가더라도 박씨 중에서 밀양 박씨가 가장 많겠지만, 이름이 박○서(緖), 박찬(贊)○, 박○우(雨)의 형식이면 매우 높은 확률로 반남 박씨이다.[9]

수많은 박씨 중에서도 항렬자를 철저히 지키는 가문으로 유명하며 지금도 반남 박씨 후손 대부분이 항렬을 쓰고 있다.

3. 파(派)


대종중에서 공식 인정하는 소종중은 13세 기준 총 27개이다.

4. 항렬자

항렬자는 27세부터 수교법(數交法)[10]을 사용하며, 26세까지는 일월법(日月法)[11]을 쓴다. 반남 박씨의 모든 파가 동일한 항렬을 따르는 대동항렬 체제이다. 짝수 세손은 항렬자가 이름의 앞에, 홀수 세손은 항렬자가 이름의 뒤에 쓰인다.
21세 ○수(壽)
22세 제(齊)○
23세 ○양(陽)
24세 승(勝)○, 영(泳)○
25세 ○서(緖)
26세 찬(贊)○
27세 ○우(雨), ○하(夏), ○준(雋)
28세 천(天)○, 인(仁)○, 지(持)○
29세 ○춘(春), ○승(承)
30세 헌(憲)○, 영(寧)○
31세 ○오(五), ○오(吾)
32세 장(章)○, 재(宰)○
33세 ○호(虎), ○순(純)
34세 겸(謙)○, 선(善)○
35세 ○욱(旭), ○구(九)
36세 평(平)○, 두(斗)○

5. 인물


5.1. 21세손 이전

5.2. 22세손

5.3. 23세손

5.4. 24세손

5.5. 25세손

5.6. 26세손

5.7. 27세손

5.8. 28세손

5.9. 29세손

5.10. 30세손

5.11. 31세손

5.12. 항렬 미상

6. 홈페이지


[1] 2015년 통계청 조사에 의하면 160,964명이다. [2] 2015년 통계청 자료 기준, 본관별 인구순위 1~5위인 김해 김씨(약 445만 명), 밀양 박씨(약 316만 명), 전주 이씨(약 263만 명), 경주 김씨(약 188만 명), 경주 이씨(약 139만 명)의 인구수를 합하면 약 1,353만 명으로 대한민국 전체 인구 약 5,107만 명의 26.5%를 차지한다. 그러나 반남 박씨는 16만 명으로 전체 인구의 0.323%를 차지하기에 상대적 소수이다. [3] 반남 박씨의 이칭은 금성 박씨, 나주 박씨, 반양 박씨, 금릉 박씨, 반성 박씨, 반천 박씨이다. 그러나 나주 박씨의 경우 본관을 나주로 하는 별개의 가문이 존재한다. 이들은 시조를 박병묵(朴炳黙)으로 삼는 전혀 다른 가문이다. 고려 시대에 (縣)이었던 반남 지역이 조선 대에 나주에 속해지면서 혼동의 여지가 생긴 것이다. 이를 우려하여 숙종 9년인 1683년 제2차 세보 발간 시 반남 박씨의 관향인 나주를 반남으로 바꾸게 된다. 이러한 노력에도 불구하고 여러 매체에 여전히 본관이 반남인 인물을 나주로 표기하는 경우가 있어 열람 시 주의를 요한다. [4] 보통 모든 박씨의 시조는 박혁거세로 취급된다. 그러나 반남 박씨 가문은 경명왕의 8왕자설을 전혀 인정하지 않으며 밀양 박씨와의 직접적인 관련성에 대해서도 부인한다. 사실 성씨가 같은 가문들의 기원을 모두 단 한 명의 시조로 소급시키는 경향은 조선 후기에 세력 있는 가문을 중심으로 출자불명의 본관들이 통폐합되었던 역사가 있었던 게 한몫했다. [5] 여주 이씨, 진성 이씨, 덕수 이씨, 광산 김씨, 은진 송씨가 같은 국반이다. [6] 이때 반남 박씨 장동 김씨, 풍양 조씨 세도 정치를 하였다. 순조의 장인이 장동 김씨 김조순이다. [7] 顯達: 벼슬, 명성 등이 높아서 세상에 알려지다. [8] 의인(義人)으로 여겨지지만 형벌권은 오직 국가만이 가지고 있다. 개인이 사적으로 처단하는 것은 이유 여하를 막론하고 불법이다. 다만 정상 참작이 되었고, 이마저도 얼마 안 가 사면되었다. [9] 박맹우처럼 예외도 있다. [10] 항렬자 안에 숫자에 해당하는 한자가 있다. 수교법 문서를 참조하면 이해가 쉬울 것이다. 참고로 안동 권씨도 역시 이 방법을 쓴다. [11] 항렬자 안에 日과 月이 번갈아가며 나온다. [12] 이후 친일이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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