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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수정 시각 : 2023-06-01 16:30:57

진준(후한)

운대 28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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陳俊
(? ~ 47)
1. 개요2. 생애

1. 개요

양한교체기의 인물로, 자는 자소(子昭). 형주 남양군(南陽郡) 서악현(西鄂縣) 사람이다. 광무제의 천하통일을 도운 운대 28장 중 한명이다.

2. 생애

젊었을 적부터 군(郡)의 관리로 등용되었다. 경시제 현한 정권이 들어서자 친척인 유가(劉嘉)는 태상장군에 임명되고 한중왕에 봉해졌는데, 진준은 그의 밑으로 들어가 장사(長史)가 되었다. 유수가 경시제의 명령을 받아 하북으로 향할 때, 유가는 자신의 부하인 진준과 가복을 유수에게 천거하였다. 유수는 백인(柏人)에서 그들을 맞아 진준을 안집연(安集掾)에, 가복을 파로장군에 임명하였다. 진준은 이후로 유수를 따라 하북 평정에 종군하였다.

경시 2년(24년), 유수가 동마적을 토벌할 때, 진준은 그를 따라 청양(淸陽)에서 동마적을 격파하고 포양(蒲陽)에서 동마적, 중련거, 고호거 연합군과 용맹히 싸웠다. 포양에서 도적들을 항복시키고 난 후, 유수는 진준의 공로를 치하해 강노장군으로 승진시켰다. 유수는 이어서 안차(安次)에서 오교적(五校賊)을 토벌하였다. 이때 진준은 전투 중에 말에서 내려 손에 단병(短兵)을 들고 적진으로 뛰어들었다. 그는 닥치는대로 적들을 베어가며 바깥에서 20여 리 안쪽까지 들어가 적장의 목을 따고 돌아오니, 멀리서 진준의 싸우는 모습을 구경하던 유수가 감탄하며 말했다.
"전투에서 싸우는 장수들이 모두 이와 같다면 어찌 근심할 수 있겠는가!"
안차에서 패배한 오교적은 북쪽으로 도망쳐 어양(漁陽)으로 들어가 지나는 곳마다 노략질하며 자신들이 쓸 군량과 마초를 모았다. 이를 본 진준이 유수에게 자신의 계책을 말했다.
"마땅히 경기병(騎兵)을 보내 적의 앞길을 막게 하고, 각지의 백성들로 하여금 보루와 성벽에 의지해 굳게 지키게 한다면 도적들은 금새 식량이 고갈되어 싸우지 않고도 이길 수 있을 것입니다."
유수는 이를 옳게 여겨, 진준에게 경기병을 이끌고 선봉에 서도록 하였다. 그리고 보루와 성벽이 있는 마을에는 명령을 내려 굳게 지키게 하고, 들에 있는 곡식들은 모두 거두어 들이도록 했다. 이윽고 취할 것이 없어진 도적들은 식량이 떨어졌고 제 풀에 지쳐 끝내는 해산하였다. 도적들이 사라진 것을 확인한 진준이 경기병대와 온전히 귀환하자 유수가 그를 칭찬해 마지 않았다.
"적로(賊虜)들을 곤경에 빠뜨린 것은 모두 장군의 책략이었소."
얼마 후, 진준은 유수의 명을 받아 경엄, 오한 등 13명의 장수들과 함께 로수(潞水) 동쪽까지 남은 하북의 도적떼들을 추격하였고, 평곡(平谷)에서 두 번 전투를 벌여 1만 3천여 명을 참하였다. 그리고 도망가는 잔당들을 쫓아 무종현(無終)과 토은현(土垠)까지 추격하다가 다시 군사를 돌려 귀환하였다.

건무 원년(25년) 6월, 유수가 군신들의 추대를 받아 칭제하자 열후에 봉해졌다. 그 해 7월에는 표기대장군 경단과 함께 중산(中山)으로 진군해 그곳을 기반으로 할거하던 유무(劉茂)의 항복을 받아냈고, 광무제가 하내군으로 행차할 때 건위대장군 경엄과 함께 오사진(五社津)에 주둔하였다.

건무 2년(26년) 봄, 광적(匡賊)을 공격해 도적들이 점거하고 있던 4개의 현을 빼앗았다. 이에 광무제는 그를 신처후(新處侯)에 봉했다. 진준은 다시 군대를 거느리고 돈구(頓丘)를 공격하여 3개의 성을 함락시키니, 대사마 오한이 광무제를 대리하여 그를 강노대장군에 임명하고 하내군에서 일어난 금문적(金門賊)과 백마적(白馬賊)을 공격하도록 하였다. 진준은 이들을 모두 격파하였다.

건무 3년(27년) 4월, 오한을 따라 경시제가 임명한 양왕 유영(劉永)을 정벌하다가 수양(睢陽)에서 난이 일어났다. 오한의 군대는 광낙(廣樂)에서 유영의 장수 소무(蘇茂)와 싸우고 있었는데, 하는 수 없이 진준을 광낙(廣樂)에 남겨 소무를 상대하게 하고 자신은 호아대장군 갑연과 함께 수양을 포위하러 갔다. 오한이 수양을 함락시키고 유영이 부하의 배신으로 사망하니, 소무는 군을 거두어 물러났다.

건무 4년(28년) 4월, 광무제를 수행하여 업(鄴)으로 갔다. 광무제는 어느새 하북에서 오교적들이 다시 슬금슬금 나오는 것을 보고 오한, 진준, 왕량을 임평(臨平)으로 보내 토벌케 하였다. 진준은 별동대를 거느려 여양(汝陽)과 항(項)에서 도적들을 무찌르고 남무양(南武陽)을 평정하였다. 태산(太山)에서 제왕(齊王)을 자칭하던 장보(張步)의 세력이 점점 강성해지자, 오한이 광무제에게 장보를 진압할 인물로 진준을 추천했다. 이에 광무제는 진준을 태산태수로 삼고 대장군의 업무를 보게 하였다. 장보가 그 소식을 듣고 장수를 보내 진준을 치니, 양군은 영(嬴)에서 크게 싸웠다. 격전 끝에 진준은 대승을 거두고 제남(濟南)까지 적을 추격해 인수(印綬) 90여 개를 취했으며, 장보가 점령하고 있던 태산군의 여러 현들도 전부 병탄하였다.

건무 5년(29년), 팽총의 난이 진압된 후, 건위대장군 경엄이 군대를 이끌고 내려왔다. 진준은 경엄을 영접하고 그와 군사를 합쳐 동쪽으로 진군하였다. 진준은 경엄을 도와 힘껏 싸워, 마침내 장보의 항복을 받아내었다. 이후 낭야태수에 임명되어 부임지인 낭야와 그 주변의 도적떼를 모두 소탕하는 한편, 공유(贛楡)에서 해서왕 동헌(董憲)을 공격하고, 구적(朐賊) 손양(孫陽)도 토벌하였다.

건무 8년(32년), 항복했던 안구후 장보가 다시 난을 일으켜 낭야로 들어오려 하자 진준이 출격해 격파하고는 그를 사로잡아 참수하였다. 광무제는 진준의 공을 치하하며 청주(靑州)와 서주(徐州)를 다스리게 했다. 진준은 지방을 다스리면서 가난하고 약한 자를 도왔으며, 의로운 자를 표창하고, 군사를 엄격히 관리해 분란이 일어나지 않도록 하였다. 그의 엄정한 군율 덕에 군사와 관리가 방종하여 지역에 다툼이 생기는 일은 일체 없었다. 도적들이 사라지고 군사들이 약탈하지 않으니, 서주와 청주의 백성들은 노래하며 즐거워하였다. 진준은 어느정도 동쪽이 안정되었다 생각하여 광무제에게 농(隴)과 촉(蜀) 정벌에 동참하겠노라 청했지만, 광무제는 이를 거절하며 조서를 보내 일렀다.
동주(東州)가 막 평정된 것은 대장군의 공이다. 동주가 등지고 있는 바다에는 대륙을 노리는 교활한 도적들이 출몰하는 지역으로 나라에서 매우 걱정되는 지역 중 하나이니, 그대는 방어와 백성을 달래는 것에 힘쓰도록 하라.

건무 13년(37년), 마침내 천하가 통일되었다. 광무제는 이를 기념하기 위해 공신들의 식읍을 늘려 주었다. 이때 진준은 축아후(祝阿侯)로 개봉되었다.

건무 14년(38년), 봉조청(奉朝請)을 겸하게 되었다.

건무 23년(47년), 사망하고 그의 아들 진부(陳浮)가 작위를 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