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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수정 시각 : 2024-03-27 20:58:59

최도고

송서(宋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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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olding [ 본기(本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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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1818,#e5e5e5
1·2·3권 「무제기(武帝紀)」 4권 「소제기(少帝紀)」 5권 「문제기(文帝紀)」
유유(劉裕) 유의부 유의륭
6권 「효무제기(孝武帝紀)」 7권 전폐제기(前廢帝紀)」 8권 「명제기(明帝紀)」
유준(劉駿) 유자업 유욱(劉彧)
9권 「후폐제기(後廢帝紀)」 10권 「순제기(順帝紀)」
유욱(劉昱) 유준(劉準)
※ 11권 ~ 40권은 志에 해당. 송서 문서 참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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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열전(列傳) ]
||<-6><tablewidth=100%><tablebgcolor=#3f51ba> 41권 「후비전(后妃傳)」 ||
조안종 · 소문수 · 장애친 · 장궐 · 사마무영 · 호도안 · 원제규 · 노혜남 · 왕헌원 · 하영완 · 심용희 · 왕정풍 · 진묘등 · 강간규 · 진법용 · 사범경
42권 「유목지등전(劉穆之等傳)」 43권 「서선지등전(徐羨之等傳)」 44권 「사회전(謝晦傳)」
유목지 · 왕홍 서선지 · 부량 · 단도제 사회
45권 「왕진악등전(王鎮惡等傳)」 46권 「조륜지등전(趙倫之等傳)」 47권 「유회숙등전(劉懷肅等傳)」
왕진악 · 단소 · 상정 · 유회신 · 유수 조륜지 · 왕의 · 장소 유회숙 · 맹회옥 , 맹용부, · 유경선 · 단지
48권 「주령석등전(朱齡石等傳)」 49권 「손처등전(孫處等傳)」 50권 「호번등전(胡藩等傳)」
주령석 · 모수지 · 부홍지 손처 · 괴은 · 유종 · 우구진 호번 · 유강조 · 원호지 · 장흥세
51권 「종실전(宗室傳)」
유도린 · 유도규 · 유준고
52권 「유열등전(庾悅等傳)」 53권 「장무도등전(張茂度等傳)」 54권 「공계공등전(孔季恭等傳)」
유열 · 왕탄 · 사경인(1) · 원담 · 저숙도(2) 장무도(3) , 장영, · 유등지 , 유병지, · 사방명 · 강이 공계공 · 양현보 · 심담경
55권 「장도등전(臧燾等傳)」 56권 「사첨등전(謝瞻等傳)」 57권 「채곽전(蔡廓傳)」
장도 · 서광 · 부륭 사첨 · 공림지 채곽
58권 「왕혜등전(王惠等傳)」 59권 「은순등전(殷淳 等傳)」 60권 「범태등전(范泰等傳)」
왕혜 · 사홍미 · 왕구 은순 · 장창 · 하언 · 강지연 범태 · 왕준지 · 왕소지 · 순백자
61권 「무삼왕전(武三王傳)」
유의진 · 유의공 · 유의계
62권 「양흔등전(羊欣等傳)」 63권 「왕화등전(王華等傳)」 64권 「정선지등전(鄭鮮之等傳)」
양흔 · 장부 · 왕미 왕화 · 왕담수 · 은경인 · 심연지 정선지 · 배송지 · 하승천
65권 「길한등전(吉翰等傳)」 66권 「왕경홍등전(王敬弘等傳)」 67권 「사령운전(謝靈運傳)」
길한 · 유도산 · 두기 · 신념 왕경홍(4) · 하상지 사령운
68권 「무이왕전(武二王傳)」
유의강 · 유의선
69권 「유담등전(劉湛等傳)」 70권 「원숙전(袁淑傳)」 71권 「서담지등전(徐湛之等傳)」
유담 · 범엽 원숙 서담지 · 강담 · 왕승작
72권 「문구왕전(文九王傳)」
유삭 · 유굉 · 유창 · 유휴인 · 유휴우 · 유휴업 · 유휴천 · 유이부 · 유휴약
73권 「안연지전(顏延之傳)」 74권 「장질등전(臧質等傳)」 75권 「왕승달등전(王僧達等傳)」
안연지 장질 · 노상 · 심유지 왕승달 · 안준
76권 「주수지등전(朱脩之等傳)」 77권 「유원경등전(柳元景等傳)」 78권 「소사화등전(蕭思話等傳)」
주수지 · 종각 · 왕현모 유원경 · 안사백 · 심경지 소사화 · 유연손
79권 「문오왕전(文五王傳)」
유탄 · 유위 · 유혼 · 유휴무 · 유휴범
80권 「효무십사왕전(孝武十四王傳)」
유자상 · 유자훈 · 유자방 · 유자욱 · 유자란 · 유자인 · 유자진 · 유자원 · 유자우 · 유자맹 · 유자운 · 유자사(劉子師) · 유자소 · 유자사(劉子嗣) · 유찬
81권 「유수지등전(劉秀之等傳)」 82권 「주랑등전(周朗等傳)」 83권 「종월등전(宗越等傳)」
유수지 · 고침 · 고기지 주랑 · 심회문 종월 · 오희 · 황회
84권 「등완등전(鄧琬等傳)」 85권 「사장등전(謝莊等傳)」 86권 「은효조등전(殷孝祖等傳)」
등완 · 원의 · 공기(孔覬) 사장 · 왕경문(5) 은효조 · 유면
87권 「소혜개등전(蕭惠開等傳)」 88권 「설안도등전(薛安都等傳)」 89권 「원찬전(袁粲傳)」
소혜개 · 은염 설안도 · 심문수 · 최도고 원찬
90권 「명사왕전(明四王傳)」
유우 · 유홰 · 유숭 · 유희
91권 「효의전(孝義傳)」
공영 · 유유(劉瑜) · 가은 · 곽세도 · 자원평 · 엄세기 · 오규 · 반종 · 장진지 · 왕팽 · 장공 · 서경 · 손법종 · 범숙손 · 복천여 · 허소선 · 여제민 · 손극 · 하자평
92권 「양리전(良吏傳)」
왕진지 · 두혜도 · 서활 · 육휘 · 완장지 · 강병지 · 왕흠지
93권 「은일전(隱逸傳)」
대옹 · 종병 · 주속지 · 왕홍지 · 완만영 · 공순지 · 유응지 · 공기(龚祈) · 적법사 · 도잠 · 종욱지 · 심도건 · 곽희림 · 뇌차종 · 주백년 · 왕소 · 관강지
94권 「은행전(恩倖傳)」
대법흥 · 완전부 · 왕도륭 · 양운장
95권 「삭로전(索虜傳)」 96권 「선비토욕혼(鮮卑吐谷渾)」
삭로 토욕혼
97권 「이만전(夷蠻傳)」
임읍국 · 부남국 · 가라타국 · 가라단국 · 반황국 · 반달국 · 사파파달국 · 사자국 · 가비려국 · 고구려 · 백제국 · 왜국 · 형옹주만 · 예주만
98권 「저호전(氐胡傳)」 99권 「이흉전(二凶傳)」
구지 · 저거몽손 유소(劉劭) · 유준(劉濬)
100권 「자서전(自序傳)」
심약
(1) 본명이 사유(謝裕)로 유유의 휘를 범하여 자인 경인(景仁)으로 표기되었다.
(2)본명이 저유지(褚裕之)로 유유의 휘를 범하여 자인 숙도(叔度)로 표기되었다.
(3) 본명이 장유(張裕)로 유유의 휘를 범하여 자인 무도(茂度)로 표기되었다.
(4) 본명이 왕유지(王裕之)로 유유의 휘를 범하여 자인 경홍(敬弘)으로 표기되었다.
(5) 본명이 왕욱(王彧)으로 유욱의 휘를 범하여 자인 경문(景文)으로 표기되었다.
||<tablealign=center><tablebordercolor=#3f51ba><tablebgcolor=#3f51ba> ||
}}}}}} ||
<colcolor=#fff>
崔道固
최도고
<colbgcolor=#dc143c> 작호 임치현자(臨淄縣子)
최(崔)
이름 도고(道固)
계견(季堅)
부친 최집(崔輯)
조부 최경(崔瓊)
본관 청하군(淸河郡) 동무성현(東武城縣)
국적 유송(劉宋) → 북위(北魏)

1. 개요2. 생애3. 여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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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남북조시대의 관료로 자는 계견(季堅).

2. 생애

청하군(淸河郡) 동무성현(東武城縣)을 본관으로 하는 청하 최씨 출신이다. 최도고는 태산태수(泰山太守)를 지낸 최집(崔輯)의 아들로 태어났지만 서출로 태어났기 때문에 적출로 태어난 최유지(崔攸之)와 최목련(崔目連)이 최도고를 경멸했다. 최집은 최유지와 최목련을 불러 다음과 같이 말했다.
이 아이의 용모와 식견이라면 혹여 우리 집안을 일으킬 수 있을텐데, 너희들은 어째서 이 아이를 경멸하느냐?

하지만 최유지와 최목련은 최도고를 점점 경멸해서 이들 사이에 우애가 전혀 없었다.

448년, 유송의 무릉왕 유준이 서연2주자사(徐兗二州刺史)로 부임한 뒤 다른 주의 사람들을 대대적으로 벽소하여 종사(從事)로 삼았다. 최집은 이에 최도고에게 사비를 마련하여 서주로 보냈으며, 팽성에 도착한 최도고는 유준의 종사가 되었다. 최도고는 용모가 아름다웠고 행동거지가 고상한데다 궁술과 기마술에 뛰어났고 무예를 좋아해서 유준은 점점 최도고를 칭찬했다.

이후 451년, 유흥조가 청주자사(靑州刺史)로 부임하면서 팽성을 지날 때 유준과 만났는데, 유준은 유흥조에게 다음과 같이 말했다.
최도고는 이런 자태를 지녔는데도 어째서 늙어서까지 미천한 선비 노릇을 한다는 말이오? 하지만 세상 사람들은 최도고가 서출이라는 이유로 더더욱 최도고를 능멸하니 개탄스러운 일이오.

유준의 말을 들은 유흥조는 청주로 부임한 뒤 최도고를 주부(主簿)로 삼았고 치중(治中)으로 전임시켰다.

453년, 문제 유의륭의 태자 유소가 문제를 시해하고 제위에 올랐으나 무릉왕 유준이 거병하여 유소를 토벌하니 이가 제4대 황제인 효무제였다. 효무제로부터 재주를 인정받은 최도고는 태자둔기교위(太子屯騎校尉), 좌군장군(左軍將軍)을 역임하였다.

459년, 제북해2군태수로 전출되었다. 이때 초공(焦恭)이라는 백성이 무덤을 파헤쳐서 옥으로 만든 갑옷을 얻었는데, 최도고는 사실을 조사한 뒤 갑옷을 조정에 바치고 초공을 구류하였다. 이후 입조하여 북중랑장 신안왕(新安王) 유자란의 자의참군(諮議參軍), 좌군장군 영가왕(永嘉王) 유자인(劉子仁)의 사마(司馬)를 역임하였다.

머지 않아, 최도고는 청주로 파견되어 인재를 초빙하였다. 이때 장사(長史) 이하의 관원들이 최도고를 찾아왔는데, 최도고의 형들이 생모를 핍박하여 손님에게 술과 고기를 대접하게 했다. 최도고는 몸을 일으켜 넘겨받았고 손님에게 다음과 같이 말했다.
집에 일손이 없어서 노모께서 직접 나서셨습니다.

이 말을 들은 손님들은 모두 최도고의 형이 벌인 짓임을 알고 일어나서 최도고의 모친에게 감사를 표했다. 최도고의 어머니는 최도고에게 다음과 같이 말했다.
내가 미천해서 귀빈에게 보답하지 못하니 네가 답례하는 것이 옳다.

이때 손님들은 최도고 모자를 찬탄해 마지않았고 최도고의 형들을 경멸하였다.

465년, 영삭장군(寧朔將軍), 기주자사(冀州刺史)로 전출되고 역성(歷城)에 진수하였다. 이후 전폐제 유자업이 수적지의 손에 살해당하고 상동왕 유욱이 제위에 오르니 이가 제6대 황제인 명제였다.

466년, 보국장군(輔國將軍)으로 승진했다가 다시 정로장군(征虜將軍)으로 승진했다. 당시 명제의 즉위 이후 유송에서는 진안왕 유자훈을 추대하려는 반란이 벌어졌는데, 여기에 설안도가 가담하였다. 그리고 유자훈의 반란이 진압된 뒤 설안도, 소혜개, 유원호, 필중경, 은부(殷孚), 상진기 등은 건강으로 사자를 보내 항복을 청했다. 명제는 장영과 심유지에게 50,000명의 군사들을 주어 설안도를 맞이하게 했다. 설안도는 의구심이 들어서 북위에 투항했고 조정에서는 최도고를 서주자사로 파견했다. 하지만 최도고는 명제의 명령을 받지 않았고 아들인 최경휘(崔景微)와 주부 최영월(崔靈越)을 설안도에게 보냈다. 최도고는 유송의 군대와 전투를 벌였지만 패배하여 성문을 굳게 닫고 나오지 않았다. 그리고 이때 북위로 사자를 보냈는데, 북위에서는 최도고를 안남장군(安南將軍), 남기주자사(南冀州刺史), 청하공(淸河公)으로 삼았다.

사방이 평정된 뒤 명제는 최도고에게 사자를 보내 최도고를 위로했고 최도고는 명제에게 항복할 뜻을 밝혔다. 이때 설안도가 북위를 끌어들였는데, 최도고는 심문수와 함께 북위군을 막았다가 포위되었다. 북위군은 계속 성을 공격했지만 최도고는 이를 격퇴했다.

467년, 도독기청연유병5주제군사(都督冀青兗幽并五州諸軍事), 전장군(前將軍), 기주자사가 되었고 다시 평북장군(平北將軍)으로 승진하였다. 그리고 역성이 함락된 뒤 최도고는 상건(桑乾)으로 압송되었고 평제군(平齊郡)이 설치된 뒤 그곳의 태수가 되었다. 최도고는 임치현자(臨淄縣子)라는 작위를 받고 영삭장군이 더해졌다. 이후 평제군의 치소를 평성으로부터 남서쪽으로 200여 리 떨어진 곳으로 옮겼는데, 흉작과 기근이 일어나서 최도고가 몇 년 동안 백성들을 위무했는데도 불구하고 원망의 목소리가 그치지 않았다. 최도고는 이후 효문제 연흥(延興) 연간[1]에 죽었다.

3. 여담

최도고는 북위로 압송된 뒤 설안도, 필중경과 같은 객사에 머물렀다. 세 사람은 같은 동료였지만 설안도는 최도고에게 냉담했고 필중경은 최도고에게 친절했다. 최도고는 이때 유휴빈과 방법수에게 다음과 같이 말했다.
옛 사람들이 말하기를 '우리의 동족이 아니라면 그 마음도 틀림없이 다르다'고 했는데 정말로 헛된 말이 아니외다. 설안도는 사람을 냉담하게 보는데, 필중경보다 못하오.


[1] 471년 ~ 476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