걸복국인

"내 지혜로는 적을 막지 못하고, 덕으로 백성을 다스리지 못하였소. 칼과 기병이 교전하기도 전에 우리 근본이 이미 무너졌으니, 군중이 분산되는 것을 보니 나의 세력도 더는 유지하기 어렵소. 여러 부족에게로 도망치더라도 그들이 나를 용납하지 않을 것이오. 이제 나는 흉노의 호한야선우(呼韓邪單于)처럼 항복할 수밖에 없구려."

"부견은 과거 석씨(石氏)의 조나라에서 일어난 혼란을 틈타 명호(名號)를 도둑질하고, 무모하게 군사를 일으키고 무력을 남용하며, 여덟 주를 억지로 점령하였다. 이제 국경이 안정되었으니 마땅히 덕으로써 백성을 안정시켜야 할 터인데, 오히려 멀리까지 위세를 펼치려 하니, 백성들이 피폐해지고 중국의 천심을 거스르며 분노하고 있다. 이러하니 어찌 성공할 수 있겠는가? 사물은 극에 달하면 쇠퇴하고, 재앙이 가득 차면 무너지니, 이는 하늘의 이치다. 내 판단으로는 부견은 이번 전쟁에서의 패배를 피하기 어려울 것으로, 나는 그대들과 함께 이 지역에서 우리의 사업을 완성할 것이다!"

"부견은 오래도록 가문의 기반을 지녔음에도, 오합지졸에 의해 몰락하였으니, 이는 곧 하늘의 뜻이라 할 수 있다. 그가 운명을 지키지 못하고, 기회를 보지 못한 것은 모두 그의 잘못이다. 영웅은 기회를 보고 행동하는 법이니, 나는 비록 덕이 얕지만, 대대로 이어진 기반을 바탕으로 이 기회를 그냥 보고만 있을 수는 없다."

"선인(先人)는 사람을 제압하는 마음이 있었으니, 앉아서 그들이 도착하기를 기다리는 것은 옳지 않다. 위세를 억누르고 적을 유인하여, 약한 군세로 적의 방심을 유도해야 한다. 병법에 이르기를 '아군을 분노케 하고, 적을 나태하게 만든다'라 하지 않았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