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탁발흘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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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족 · 토욕혼 · 탕창강 · 고창 · 등지 · 만족 · 요족 | |||||||
102권 「서역전(西域傳)」 | |||||||
선선 · 차말 · 우전 · 백정 · 차사국 · 언기 · 쿠처 · 소륵 · 속특 · 파사 · 남천축 · 읍달 | |||||||
103권 「연연등전(蠕蠕等傳)」 | |||||||
연연 · 우문막괴 · 단질육권 · 고차 | |||||||
104권 「자서전(自序傳)」 | |||||||
위수 |
※ 105권 ~ 114권은 志에 해당.
위서 문서 참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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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lbgcolor=#dc143c><colcolor=#fff> 낭야정왕(琅邪貞王) 司馬楚之 | 사마초지 |
|
시호 | 정(貞) |
작위 | 낭야왕(琅邪王) |
성 | 사마(司馬) |
이름 | 초지(楚之) |
자 | 덕수(德秀) |
생몰 | 390년 ~ 464년 |
부친 | 사마영기(司馬榮期) |
[clearfix]
1. 개요
동진의 황족 출신 북위의 관료로 자는 덕수(德秀). 사마팔달이자 사마의의 동생인 사마규의 8대손이며 북위의 낭야왕이다. 아버지는 사마영기(司馬榮期)이다.2. 생애
동진의 황족이지만 동진이 멸망하여 북위로 망명하였다. 본래 양익이주자사(梁益二州刺史) 사마영기의 아들로 태어나 익주에서 성장했지만 아버지가 참군 양승조(楊承祖)의 손에 죽자 단양으로 돌아갔다.이후 유유가 유송을 건국하기 직전 사마초지의 숙부인 사마선기(司馬宣期)와 형 사마정지(司馬貞之)를 비롯한 동진의 사마씨 황족들을 숙청하기 시작하자 살아남은 사마씨들은 달아났고 무리를 모아 복수할 기회를 노렸는데 이들 가운데 사마초지가 있었다. 사마초지는 승려들 사이에 숨어들어 장강을 건넜고 역양(歷陽)에서 서진하여 의양(義陽), 경릉만(竟陵蠻)을 거쳤다. 415년, 형주자사 사마휴지가 유유에게 패배하자, 사마초지는 다시 여영(汝潁)으로 달아났다.
이후 사마초지는 호방하고 선비들을 공손하게 대했으며, 사마순명(司馬順明), 사마도공(司馬道恭) 등과 함께 1만 명이 넘는 세력을 구축해 유유에게 복수하려 했다. 유유는 자객 목겸(沐謙)을 보내지만 사마초지는 오히려 자신을 죽이러 온 자객에게까지 잘해주었다. 목겸은 밤에 꾀병을 부리고 사마초지가 자신을 찾아올 때 사마초지를 죽이려고 생각했지만, 오히려 사마초지는 목겸의 병에 대해 듣고 직접 탕약을 가지고 목겸을 찾아가 목겸을 보살피려고 했다. 목겸은 사마초지의 성심에 감격해서 돗자리 밑에 숨겨두었던 비수를 꺼내고 사마초지에게 자신의 상황을 설명했다.
목겸: 유유가 장군을 꺼리고 두려워하고 있으니, 장군께서는 경솔하게 행동하지 마시고 목숨을 보전하는 것을 우선하십시오.
사마초지: 그대의 말대로라면 대비해도 잃을 것이 없을 것 같소.
사마초지: 그대의 말대로라면 대비해도 잃을 것이 없을 것 같소.
목겸은 이후 사마초지를 따랐다.
이후 북위 명원제 말, 산양공(山陽公) 해근이 하남(河南)을 공략할 때 사마초지는 사자를 보내 북위에 귀순하여, 사지절(使持節)・정남장군(征南將軍)・형주자사(荊州刺史)에 임명되었다. 또한 자신이 이끌었던 유민들을 여남군(汝南郡), 남양군(南陽郡), 남돈군(南頓郡), 신채군(新蔡郡)에 각각 배치하였다. 다음은 사마초지의 표이다.
강회(江淮) 이북에서는 조정의 군대가 남쪽으로 향하고 있다는 소식을 듣고 모두 손뼉을 치고 춤을 추며 조정의 덕행과 교화를 받아들이길 기대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적의 침공을 받아 스스로 힘을 다할 방도가 없었습니다. 소신은 백성들의 염원에 부응하여 인의를 흠모하는 사람들을 인도하여 나라의 선구자가 되길 청합니다. 지금은 모두 평민이라 호소할 힘이 없습니다. 만약 소신에게 편비(偏裨)의 이름을 내리시고 천자의 위엄을 빌어 대의를 주창하신다면 모두가 따를 것입니다.
태무제 초, 사마초지는 자신의 처자를 업(鄴)에 살게 했고 평성(平城)으로 소환되어 입조하였다. 한편 유송의 문제 유의륭이 도언지를 파견하여 북위를 침공하자, 북위 조정에서는 사마초지를 사지절・안남대장군(安南大將軍)으로 삼고 낭야왕(琅邪王)으로 봉했으며, 영천(潁川)에 주둔시켜 유송의 침공에 대비하도록 했다. 뒤에 사마초지의 장사가 다음의 표문을 올렸다.
사마초지가 황하를 건넌 뒤 백성들은 옛 덕을 그리위하고 의병들이 모이고 있으며, 여영 남쪽에서는 우리의 평안한 기세를 보고 진심으로 귀순하고 있습니다. 이것은 진정 폐하께서 하늘의 뜻과 민심에 순응하시고 성덕이 널리 퍼진 결과입니다.
태무제는 표문을 보고 기뻐하여 그들을 위로하고 격려하였다.
한편 도언지는 황하 서쪽에 도착하고 부대를 남안에 배치한 뒤 동관으로 직행했다. 그리고 도언지가 퇴각하자, 사마초지는 장사(長社)에서 도언지의 예비부대를 물리쳤다. 또한 관군장군(冠軍將軍) 안힐과 함께 활대(滑臺)를 공격해 함락하고 주수지, 이원덕, 신모를 포함한 만여 명의 포로들을 사로잡았다.
이후 사마초지는 양주(涼州)를 정벌할 때 종군하였다. 그리고 배방명(裴方明)과 호숭지(胡崇之)가 구지를 정벌할 때 사마초지는 가절(假節)이 되어 회양공(淮陽公) 표피자(皮豹子) 등과 함께 관중의 군대를 거느려 산관을 따라 출병하여 배방명을 물리치고 호숭지를 사로잡았고 구지가 평정된 뒤 귀환하였다.
북위에서 유연 제국을 정벌할 때 사마초지는 제음공(濟陰公) 노중산(盧中山) 등과 함께 수송을 맡았다. 이때 진북장군(鎭北將軍) 봉답(封沓)이 유연 제국으로 망명하며 사마초지 등을 공격해서 군량의 수송을 차단하도록 권유했다. 이에 유연 제국에서는 정탐꾼을 보내 나귀의 귀를 자르고 떠났다. 나귀의 귀가 없어졌다는 보고가 올라오자, 장수들은 이를 살피지 못했지만 사마초지는 다음과 같이 말했다.
분명 유연의 정탐꾼이 귀를 잘라서 증거로 삼았을 것이니, 적장이 곧 도착할 것이다.
사마초지는 곧바로 군사들에게 버드나무를 베어 성채를 만들고 물을 부어 얼게 하여 성채를 완성했다. 유연 제국이 성을 공격했지만 얼음이 두껍고 성채의 방비가 두터웠기 때문에 성채를 함락하진 못하고 물러났다.
이후 사마초지는 가절・시중(侍中)・진서대장군(鎭西大將軍)・개부의동삼사(開府儀同三司)・운중진대장(雲中鎭大將)・삭주자사(朔州刺史)가 되었다. 사마초지는 20년 동안 변경에 진수하며 청렴함과 검소함으로 유명했으며, 464년에 죽었다. 문성제는 사마초지의 죽음을 안타까워하여 도독양익진녕4주제군사(都督梁益秦寧四州諸軍事)・정남대장군(征南大將軍) 겸 호서융교위(護西戎校尉)・양주자사(揚州刺史)로 추증하고 정(貞)이라는 시호를 내렸다.
3. 후사
아들로는 사마보윤(司馬寶胤), 사마금룡(司馬金龍), 사마약(司馬躍)이 있다. 이 중 사마금룡의 묘인 사마금룡묘가 후대에 발굴된 바 있다.북사와 위서에 그의 기록이 존재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