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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수정 시각 : 2024-10-04 08:21:36

공손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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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후한 과도기 황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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묘호 없음
시호 없음
연호 용흥(龍興, 25 ~ 36)
성씨 공손(公孫)
술(述)
생몰기간 ? ~ 36년
재위기간 25년 ~ 36년
1. 개요2. 생애3. 거병4. 천자(天子) 등극5. 최후6. 정치7. 여담8. 약마9. 둘러보기(계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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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전후한 교체기의 군웅. 자는 자양(子陽)으로 쓰촨성에서 할거했으며, 성(成)의 황제를 칭하였다.

2. 생애

사례 우부풍(右扶風) 무릉현(茂陵縣 섬서성 흥평현) 사람. 젊은 시절 그는 농서 천수군에 현령을 맡았었다. 당시 하남(河南) 도위(都尉)였던 아버지 공손인(公孫仁)은 아들이 너무 젊어서 직무를 감당하지 못할 것을 염려하여 종사(從事) 하나를 딸려보냈지만, 한 달뒤에 종사가 돌아와서 "댁의 공자는 가르침을 받을 필요가 없습니다."라고 말하며 자신의 쓸모없음을 한탄했다.

후일 공손술은 태수로부터 능력을 인정받고 5개의 현(縣)의 정사를 위임받았다. 공손술은 그런 태수를 실망시키지 않고 각 현을 잘 다스렸다. 군(郡)의 사람들은 그를 보고 귀신이 돕고 있다고 여겼다. 왕망이 집권한 천봉 연간에 공손술은 촉군(蜀郡) 태수로 부임하였다.

3. 거병

왕망 말년(서기 23년), 경시제가 거병하자 남양 사람 종성(宗成)은 스스로 호아장군(虝牙將軍)을 칭하고 한중(漢中) 지역을 다스렸다. 상주(商州) 사람인 왕잠(王岑)은 촉에서 병사를 일으켜 정한장군(定漢將軍)이라고 자칭하며 익주목(益州牧)을 죽이고 종성에게 호응하였다. 공손술은 사자를 보내서 이들을 맞아들였으나, 성도(成都)에 들어온 이들이 도적과 다름 없이 굴자 실망했다. 공손술은 자신의 결정을 후회하고 사람들을 모아 종성을 없앨 계책을 모의하였다.

공손술은 출병하려면 명분이 필요하였다. 공손술은 사람을 시켜 경시제의 사자로 분장하고, 보한장군(輔漢將軍) 겸 촉군태수(蜀郡太首), 익주목(益州牧) 인수(印綬)를 위조하였다. 이 권위로 정예병사들을 모아서, 지리적 이점과 인적 우세를 이용하여 큰 힘을 들이지 않고 종성을 격파하였다. 종성의 부하들은 우두머리의 수급을 가지고 공손술에게 투항하였다.

4. 천자(天子) 등극

24년(경시 2년) 가을, 경시제는 장충(張忠)을 진짜 익주 자사(刺史)로 보내 1만 병력과 함께 촉 지방을 평정하고 그 일대에 주둔할 것을 명했다. 당연히 공손술은 경시제가 파견한 익주 자사 장충을 인정할 수 없었다. 공손술은 그의 동생 공손회(公孫恢)를 출병시켜 면죽(綿竹) 일대에서 장충을 크게 이겼다. 이때 공손술의 수하 이웅(李熊)이 공손술에게 칭호를 바꾸자고 주장하자 공손술은 기뻐하며 스스로 촉왕(蜀王)을 자칭하고 성도를 수도로 삼았다.
며칠 뒤, 이웅은 촉 땅의 이점을 들먹이면서 공손술에게 황제를 칭하라고 진언을 올렸다. 공손술은 받아들이지 않았으나 얼마 뒤에 꿈 속에서 '팔사(八厶: 합치면 公)의 자손이, 12년간 하게 될 것이다'라는 말을 듣는다. 꿈에 일어나서 자신의 아내에게 꿈 이야기를 하자 아내는 "공자님이 아침에 도를 알면 저녁에 죽어도 좋다고 하셨는데, 12년이면 어떻습니까?"라며 부추겼다. 그때 당시에, 대전에서 날아오르는 용이 밤에 빛을 낸 일이 있었기에 공손술은 황제가 될 결심을 하였다. 그러나 자신이 제왕감이라는 증거가 부족하다고 생각했는지 그는 인위적으로 그의 손에 '공손제(帝)라는 글자를 썼다.

25년 4월, 마침내 성도( 쓰촨성 청두)에서 황제로 즉위했고 천자(天子)를 자칭했다. 국호를 성(成) 혹은 성가(成家)라 하였는데, 수도가 성도(成都)였기 때문에 국호를 성(成)으로 한 것이다. 연호는 용흥(龍興)이라 했다. 이웅을 대사도(大司徒)로, 두 동생을 대사공(大司工), 대사마(大司馬)로 임명하였다. 당시 광무제 유수는 동쪽을 정벌하느라 정신이 없었기에 광무제에게 망한 군벌들이나 전쟁 피난민들이 촉으로 들어와 공손술에게 큰 힘이 되었다. 그는 안으로는 귀의해온 연잠(延岑)과 전융(田戎)에게 중책을 맡기고, 밖으로는 북쪽 세력을 굳건하게 하기 위해 삼보 지역의 장수 이육과 여유를 포섭했다.

28년, 이육과 여유는 정서장군(征西將軍) 풍이에게 격파당하고 한중으로 퇴각하였다.

30년(용흥 6년), 동전(銅錢)을 폐지하고 철전(鐵錢)을 주조했다. 하지만 이 조치는 인기를 얻지 못했다. 당시 '오수(五銖)의 황소가 하얀 배를 되찾는다.'라는 노래가 백성들 사이에 퍼져 있었다. 황색은 왕망의 정권을, 흰색은 공손술의 정권을 상징했고 오수전은 한무제가 추진한 바 있는 화폐였다. 즉, 공손술이 패하고 천하는 유 씨에게 돌아간다는 말이었다. 그러나 공손술은 춘추와 여기저기 떠돌던 이야기들을 자신에게 유리하게 해석하는 동시에, 칭제하기 전에 자신이 직접 손에다 쓴 글자를 가지고 자신은 하늘에게 선택받았고 유씨는 공손씨에게 제압당한다고 주장한다. 그의 주장이 은근히 설득력이 있었는지 유수는 백성들이 그의 말에 흔들릴 것을 염려하여 그에게 항복을 권유해보지만 공손술은 그것을 무시한다.

31년, 공손술은 전융과 임만(任滿)을 동쪽의 강관(江關)으로 보내 형주의 고을들을 탈취하려 했으나 실패하였다.

전한 말기에 낭관으로 일하였기 때문에 한의 고사를 잘 알았고, 황제가 쓸 물건을 만드는 데도 참고했다는데……. 이때 만든 황제의 물건들은 끝내 싸그리 광무제에게 털린다.

5. 최후

본래 광무제의 부하였으나 광무제를 배신하고 농서에서 할거하는 외효(隗囂)를 지원하여 외효를 왕으로 봉하고 병력을 지원하여 광무제와 대립하였다. 그러자 공손술의 수하 형한(荊邯)은 아직 광무제가 동쪽을 완전히 제압하지 못했으니 지금이 삼보 지역을 얻을 수 있는 기회라고 주장한다. 공손술은 그의 말을 듣고 한중에 대군을 파병하기로 결정한다. 하지만 오주(吳註)와 공손회의 강력한 반박과 촉의 백성들의 두려움 때문에 공손술 또한 마음이 흔들려 그만둔다. 연잠과 전융은 공손술의 마음을 돌려 놓으려고 열심히 설득을 했지만, 공손술의 의심만 사고 실패한다.

외효는 건무 9년에 죽고, 건무 10년 외효의 잔존 세력이 완전히 멸망했다. 공손술은 군대를 파견해서 외효를 도우려 했으나 후한의 정서(征西)대장군 풍이가 이를 격파했다.

이리하여 광무제의 마지막 남은 적이 되었다. 광무제는 낙양에 궁궐을 만들면서 집기를 많이 안 두고, (공손술이) 성도에 이미 다 만들어 두었으니 가져오기만 하면 된다라 장담했다.

35년(건무 11년) 후한의 정남대장군 잠팽, 중랑장 내흡, 보위장군 장궁 등이 세 방향으로 촉을 공격했다. 이때, 잠팽은 장수 임만이 이끄는 대군을 대파하였고 내흡 또한 하변에서 장수 왕원과 환안(環安)의 군대를 전멸시켰다. 유수는 공손술에게 이해득실을 따져가며 계속에서 투항을 권유하였다. 그러나 공손술은 유수의 조서를 장륭(張隆)을 비롯한 여러 대신들에게 보였을때, 대신들은 모두 투항하자고 하였으나 공손술은 "흥망성쇠는 모두 운명이 결정하거늘, 어찌 투항하는 천자가 있겠느냐?"하며 처량하게 말을 하였다. 그는 밀고 들어오는 대군에게 끝없이 저항한 끝에 자객들을 풀어 내흡을 찔러 죽이고, 잠팽을 암살한다.

36년(건무 12년) 잠팽을 대신한 대사마(大司馬) 오한은 공손회가 이끄는 대군을 대파시켰다. 믿고 있던 공손회마저 당하자 촉은 두려움에 떨기 시작하고 장수들은 도망가거나 반란을 일으켰다. 그러자 공손술은 반란자들의 일가를 몰살시키는 등 엄하게 다루었으나, 오히려 이러한 조치가 상황을 더 악화시켜버렸다. 유수는 끝없이 공손술에게 내흡, 잠팽을 죽인 일은 묻지 않을 테니 즉각 투항만 하면 공손술 뿐만 아니라 가족들의 목숨까지 보장시켜 주겠다고 하면서 '짐은 식언하지 않는다'고 맹세까지 하였으나, 애초에 공손술은 자신이 하늘에 선택받았다고 생각하여 투항할 생각이 전혀 없었다. 얼마 뒤, 오한이 촉의 군대를 다시 격파하고 성도를 포위했다. 공손술이 연잠에게 어떻게 할 지를 묻자, 연잠이 말하기를
"사내대장부가 죽을 고비를 만났으면 살길을 모색해야지 어찌 앉아서 죽음만 기다리십니까? 재물은 다시 모을 수 있으니까 아까운 게 없지요"
라고 말을 하였다. 이 말을 들은 공손술은 재물을 풀어 5천명의 결사대를 조직하고는 성 꼭대기에서 북을 두드리게 한뒤 허장성세를 부리며 적에게 도전하였다. 동시에 결사대에게 후한 군대의 후방을 습격하도로 하였다. 다 이긴 싸움으로 인식하고 경계를 풀고 있던 군사들은 갑작스런 북소리에 어리둥절하다가 갑작스런 후방 공격을 막아내지 못하고 전군이 혼란에 빠져버렸다. 혼란 속에서 당황한 오한은 물 속에 빠져 목숨을 잃을 뻔했으나 말 꼬리를 붙잡고 있어서 겨우 목숨을 부지하였다. 그렇다고는 하나 군사들의 수 차이가 워낙 심한지라 후한 군대는 피해를 얼마 입지도 않았고 다시 성도를 포위한다.

더 이상 답이 없자, 공손술은 하늘에 점을 쳤는데, 점괘가 '포로를 성 아래에서 죽이라'는 지시가 나오자 공손술은 기뻐하였다. 그러고는 연잠과 병사를 나누어 성 밖에 있는 적을 쳤다. 연잠의 부대는 3전 3승을 거두나, 공손술의 부대는 격전을 벌이느라 병사들이 지쳐버린 사이에 오한이 신예부대를 조직하여 촉의 군대에 맹공격을 펼치고만다. 그때, 공손술은 말에서 떨어져 가까스로 부하의 손에 이끌려 성안에 들어갔다. 그렇게 성안에 들어갔으나, 부상도 부상이지만 공손술 또한 늙었는지라 결국 연잠에게 전쟁을 맡긴 뒤 숨을 거두었다.

연잠은 더 이상 저항할 힘이 없어져 후한에게 투항을 했으나 오한은 연잠과 그의 일족을 공손술의 일족과 함께 주살시켰다. 투항자를 죽인 것도 모자라서, 오한은 두 동료인 잠팽과 내흡을 죽인 촉에 대한 원한이 골수에 사무쳐있는지라 필요한 것만 챙긴 뒤 병사를 풀어 성도를 깡그리 불태우고 백성들을 상대로 학살에 가까운 도륙을 저지르고 만다.[1]

6. 정치

공손술은 본래부터 엄하게 다스려 사형을 자주 내렸고, 사소한 일을 끝까지 추궁하고 전체를 내다볼 줄 몰랐다. 또 몸소 격식을 실천함으로써, 궁정을 출입할 때 천자의 예를 모두 갖추도록 했고 위풍을 과시하는 일에 공을 들였다. 또한 두 아들을 왕으로 삼아 봉토를 봉하고 식읍을 내렸다. 대신들은 이에 대해 불만이 많았다. 천하의 승패가 결정되지 않아 군대가 먼 곳에서 고전하고 있는데, 공손술은 봉작과 상을 내리는 일에만 몰두하니 안목이 짧고 속이 없어 보였던 것이기 때문이다. 여기에 공손술은 고집도 쎘다. 그는 대신들의 의견을 무시한 채 공손 씨의 종실들을 대거 기용하여 대신들의 원망을 받았다.

하지만, 승자의 기록인 사서에서 찾아낸 흠이 저 정도였으며, 공손술 치하에서 촉은 경제적으로 번영해 공손술이 패망한 후에도 그 번영기를 그리워한 이들이 있었단 기록도 있는 점을 감안하면, 이 시기 촉의 정치는 그렇게 나쁘지는 않았을 가능성도 있다.

7. 여담

공손술은 서방을 상징하는 백색을 숭상했다. 꿈에서 백제(白帝)를 보고 자신이 12년간 황제 노릇을 하리라는 이야기를 들었고, 장강삼협에 백제를 뜻하는 백제성을 세웠다. 관련기사 훗날 삼국시대의 유비 이릉대전의 패배 이후 이곳에 머물며 영안궁(永安宮)으로 이름을 고쳤고, 여기서 임종하였다.

8. 약마

한 해는 저물고 낮은 짧아지고
歲暮陰陽催短景
하늘 먼 곳 눈과 서리그친 차가운 밤.
天涯霜雪霽寒霄
오경의 북과 호각 소리 비장하고
五更鼓角聲悲壯
삼협 강물에 별 그림자 흔들린다.
三峽星河影動搖
들녘의 곡소리에 집집마다 전쟁소리 들리고
野哭幾家聞戰伐
오랑캐 노래소리는 어부와 나무꾼들이 부르네
夷歌數處起漁樵
와룡도 약마도 한 줌 흙이 되었나니
臥龍躍馬終黃土
세상사 어렴풋해 적막하고 고요함이 가득하네
人事依依漫寂寥
각야(閣夜: 누각에서의 밤), 두보(杜甫)

당나라 시인 두보의 시 ‘각야’에서 에서는 '약마(躍馬)'라 불리며, 와룡 제갈량과 함께 촉의 영웅 중에 하나로 언급된다. 당나라 시대까지 공손술의 사당이 남아 있었다고 한다.

9. 둘러보기(계보)

성의 역대 황제
성 건국 1대 공손술 성 멸망
후한서(後漢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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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이는 훗날 장헌충에 의한 제노사이드 이전까지 촉 지방에서 크나큰 트라우마로 남아있었던 모양이다. 이로부터 200여년이 지난 후 위나라의 등애는 항복한 촉한의 관료들을 모아놓고 "나는 오한과는 달리 입촉 후 살육 행위를 하지 않았다"고 자화자찬하기도 했으며, 성한의 황제 이세 역시 "오한이 공손씨를 멸족한 일을 잊었느냐"는 간언을 받아들여 동진에 항복하기도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