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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제 | 百濟 Baekje (Paekche)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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군기[1] |
■ 전성기 이후 통합된 영토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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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원전 18년[3] ~ 서기 660년 9월 1일[4] (677년) | ||
성립 이전 | 멸망 이후 | |
마한 | 신라[5] | |
국호 및 관용 명칭 |
십제(十濟, 건국 초기) → 백제(伯濟 → 百濟) 남부여(南扶餘, 6세기 초)[6] 응준(鷹準), 나투(羅鬪)[7] |
|
위치 |
한반도 서・중부 → 한반도 서남부 → 한반도 중남부[8] |
|
역사 | ||
수도 | 위례성[9] → 웅진성[10] → 사비성[11] | |
인구[12] |
|
|
종족 | 예맥, 한(韓) | |
언어 | 백제어 ( 고대 한국어) | |
문자 | 한자, 구결 | |
종교 | 토착 신앙 → 불교 | |
정치 체제 | 전제군주제 | |
국가원수 | ||
주요 군주 | ||
국성 | 부여(扶餘)[14] | |
현재 국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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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백제(百濟)는 한반도 서남부에 있었던 고대 왕국이다. 건국 초엔 마한에 속한 도시 국가나 연맹 왕국의 거수국 중 하나 정도였을 것으로 추정되며, 이후 마한 연맹에 소속된 다른 거수국들을 흡수하면서 지배력이 강화된 귀족제, 그 다음에는 전제군주제 단계로 나아가 한반도 남서부 일대를 호령했다.특이한 점으로는 한반도 고대 국가 중 백제만 난생 설화 등의 건국 신화가 없다.[15] 그 이유는 백제의 건국신화가 동명신화[16]와 서사적으로 연결되어 있기 때문이다. 《 삼국사기》에는 건국 시기가 기원전 18년으로 기록되어 있고, 문헌상으로는 660년 멸망할 때까지 678년간 31명의 왕이 다스린 걸로 되어 있다. 영토는 주로 경기도, 충청도, 전라도에 걸쳐 있었으며, 전성기인 근초고왕 땐 황해도 중북부까지 진출했고, 황해도와 경기도 일대를 많이 잃은 후기에는 대신 경상남도 서부 일대를 권역에 넣고 있었다.
자료가 가장 부족한 고대 한반도 국가로[17] 그 기록이나 사적 발굴도 고구려, 신라에 비해 미약한 상태이다.[18] 그럼에도 여러 부장품들이 나와, 흔히 고구려는 넓은 영토와 강한 군사력, 신라는 삼국통일과 황금, 가야가 풍부한 철기로 대표된다면, 백제는 삼국 중 가장 섬세하고 세련된 문화를 가지고 있었다고 강조되는 편이다. 실제 일본 등에 선진문화를 전파한 것으로 여겨지며, 백제 해상국가설, 요서경략설 등의 떡밥이 있어 역사 매니아들의 상상력을 자극하기도 한다.
2. 국호
세계의 백제 국호 | ||||
한국어 |
십제(十濟)/백제(百濟)/남부여(南扶餘)/응준(鷹準)[19]/나투(羅鬪)[20]/응유(鷹遊)[21] 최초 건국 당시에는 십제(十濟)였으나 이후 백제(百濟)로 바꾸었다. 이후 성왕 16년인 536년에 남부여로 국호를 잠시 바꿨다. 그 외에 고구려의 광개토대왕릉비에서는 잔(殘), 백잔(百殘)[22]이란 멸칭도 보인다. 백제가 최초로 언급되는 사료인 《 삼국지》에서는 '伯濟國\'으로 표기하였다. |
|||
중국어 | 바이지([ruby(百濟,ruby=Bǎi jì)]) 현대 관화 발음이다.[23] | |||
일본어 |
쿠다라([ruby(百済,ruby=くだら)]) 일본은 백제를 ' 음'이 아니라 '쿠다라'라는 ' 훈'으로 불렀는데 고구려를 '코마([ruby(高麗,ruby=こま)])', '코쿠리([ruby(高句麗,ruby=こうくり)])', 신라를 '시라기([ruby(新羅,ruby=しらぎ)])'라는 음으로 부른 것과는 달랐다. 과거 백제의 금강 나루를 말하는 구드래(큰 나루터)에서 유래했다는 설 그리고 웅진(熊津) 즉, 곰나루와 관계가 있을 것으로 추정하는 설 등이 있다. |
|||
아랍어 | مملكة بايكتشي | |||
라틴 문자 | Paekche, Baekje | |||
베트남어 |
Baekje[24] 베트남의 문자는 로마자를 기반으로 한 쯔꾸옥응으이기에 외래어를 표기할 때 로마자 표기를 그대로 살리므로 KBS World에서는 이에 준하여 표기했다. |
3. 역사
자세한 내용은 백제/역사 문서 참고하십시오.4. 정치
일단 백제의 마한 장악 과정은 비교적 손쉽게 진한을 통합한 신라와는 달리 꽤 지난하고 어려운 과정이었음을 잊으면 안 된다. 신라의 전신인 사로국은 출발 단계부터 진한의 명목상 수장국이었고, 시간이 지나면서 정말로 수장국으로서의 권한을 행사하면서 나머지 소국들을 명분으로도 쉽게 제압할 수 있었다. 그러나 백제국은 사로국과는 달리 어디까지나 마한 목지국 휘하의 일개 거수국들 중 하나로 출발했기에, 한때 마한 목지국을 수장으로 섬겼던 나머지 동료 거수국들에게 권위와 합의를 받아내는 게 그렇게 쉬운 일이 아니었다.일단 지배계층 자체도 문헌사학으로든 고고학으로든 그 기원이 이원적이었음은 부정할 수 없는 기정사실이 되어 있고, 왕통 자체도 초고왕계와 고이왕계가 다른 계통일 개연성이 매우 높은 상태다. 고고학적으로 한성백제의 기원은 고구려 유민으로 보이는 적석총 집단과, 침미다례 세력과 유사한 문화양식을 가진 토돈분구묘제 집단으로 이뤄져 있음이 규명되었기 때문. 백제 건국 설화에서 고구려에서 내려온 온조가 미추홀계 집단과 연합하여 국가를 세운 것은 그것을 반영한 것으로 보인다.
자세한 내용은 한성백제 문서 참고하십시오.
자세한 내용은 백제/역사 문서 참고하십시오.
자세한 내용은 마한 문서 참고하십시오.
마한 자체는 경기도, 충청도, 전라도까지 꽤 넓은 영역에 중첩되어 있었고, 낙랑군, 대방군 등에게 꾸준히 견제받았으며 진한이나 변한 등의 정치적 도전이나 알력이 없진 않았기에 마한의 정치적 통합은 그 난이도가 꽤나 높았다고 해석된다. 이후 대방군은 백제와 고구려의 지속적인 공격으로 이미 오래 전에 소멸했고, 낙랑군은 더욱 약소하여 한반도인을 왕과 지배자들로 섬기고 있었지만 고구려가 낙랑군을 정복하자[25] 고구려와 백제의 영토 대립이 더 심해지게 되었다. 마한의 원래 수장국인 목지국이 상대적으로 짧은 반세기만에 갑자기 부쩍부쩍 힘을 키운 부하 소국 백제국에게 어어하다가 순식간에 타도당한 게 바로 그 증거 중 하나이다. 물론 목지국을 타도한 시점의 백제는 적어도 경기도 전역을 직접 지배 지역으로 거느리고 있었기에 마한 내에선 가장 강력한 국가가 분명했지만, 다른 나머지 마한 소국들의 역량을 다 합친 만큼 강하진 못했음이 분명하다. 때문에 우선은 해로나 육로를 통해 가까운 지역부터 우호 관계 수립, 그 다음은 간접 지배 전환, 그 다음은 직접 지배 전환이란 과정을 거쳐 이전의 각 마한 소국 지배층을 다독여야 했으며, 그 와중에도 주요한 교통로만큼은 장악하면서 말을 듣지 않고 정면도전하는 소국은 직접 손봐줘야 하는 어려운 상황에 처해있었다.
때문에 지방 마한 소국의 이전 지배층은 직접 지배로 전환된 지역이라도 그 나름의 기득권은 보유하고 있었는데 이는 마음대로 원하는만큼 그 지배 지역 인력과 물자를 징발하는 게 보다 쉬웠던 신라에 비해선 상당한 약점으로 작용했다. 문제는 외척의 난맥상이었다. 백제는 왕족 부여씨가 토착 세력 출신인 해씨, 진씨 등의 왕비족 세력에게 휘둘렸다. 이 두 강력한 왕비족은 둘 이상 있었는데, 야당 왕비족 입장에서 권력을 가져오기 위해서는 현 국왕을 죽이고 자기편의 왕비와 결혼한 새 왕을 세워야 했기 때문에 틈만 나면 왕을 갈아치우려 했고 이들 간에 피비린내 나는 권력 다툼으로 인해 대부분의 왕들이 제명에 죽기 전에 반대파 왕비족들에게 살해당했다. 같은 이주민 계통이자 백제 왕족의 근원인 고구려 고씨 계루부가 왕비족을 연나부(=절노부) 하나로만 한정했던 것과 대조된다.
그러나 이것만 갖고 백제의 중앙 정치가 무조건적으로 난맥상이었다고만 보면 안 된다. 고구려나 신라에는 없는 단점만 있었다면, 잠깐 전연에게 망신당했을 망정 태왕호를 자칭하고 막 전성기를 구가하려던 시점의 고국원왕의 고구려에게 일격을 가하고, 가야 일대를 흡수한 데다 고구려[26]의 선진문물을 주체적으로 수용하고 중국과 통교하며 그전과는 완전 다른 존재로 거듭난 6세기 중반 이후의 신라와의 접전에서도 버텨냈을 리 없다.[27] 고구려 같은 경우 중앙집권체제 완비는 백제와 신라보다 200여 년 정도 빠른 편이었으나, 아버지의 최종 관직 및 관등을 장남이 승습하는 매우 좋지 못한 관습이 있었는데 이는 적어도 백제와 신라에는 없었던 악습이었다.[28] 그리고 신라는 관직은 만들어도 골품제의 관습이 워낙 강해 원칙적으로는 고위 관직에 취임할 수 없는 관등이더라도 진골이면 그 자리를 차지하는 악습이 있었는데, 이러한 관행은 김춘추가 반대파를 물리적으로 숙청한 후 아예 그런걸 못하게 금지 규정을 만들기 전까진 제대로 고쳐지지 못했다.[29] 한편 백제는 적어도 그런 악습이 내내 없었다는 점에서 관직 체제의 운용이 조금은 더 기강이 잡혀 있었다고 볼 수 있다.
개로왕 당시 신라군이 지방군보다 먼저 온 건 그 당시 신라가 정예군을 집중적으로 육성하던 곳이 마침 충북-경북 일대 추풍령 일대라서 가장 빨리 올 수 있는 군대라서 먼저 온 것이지, 지방군 동원이 되지 않아서가 아니다. 오히려 개로왕 당시 문제는 개로왕이 지방 호족들을 너무 많이 중앙 정치 무대로 데려온 까닭에 중앙 귀족들이 분개한 데 있었지 지방에 근거를 둔 귀족들의 비협조가 원인은 아니었다. 이는 훗날 의자왕 대에도 마찬가지인데 호남을 백제와 별개로 보는 이상한 인터넷발 낭설과 맞물려 호남 귀족들이 의자왕의 친위 쿠데타에 불만을 품고 나당연합군에 협조를 안했다는 헛소리가 각 사이트에서 만연한 편인데 이는 절대 사실이 아니다. 일단 사료상에 귀족들이 협조하지 않았다는 근거가 없고 백제 조정이 지방군의 도착 이전에 웅진성 성주였던 예식진의 반역으로 항복해서 멸망한 것이다. 지방군은 건재하여 백제부흥운동은 3년 가까이 이어진다. 단지 당군의 상륙에서 예식진의 반역으로 인한 의자왕의 항복까지 고작 9일밖에 안 걸렸고, 파발마가 호남 일대의 귀족들에게 전해져 지방군을 모아 수도를 구원하러 갔을 때는 이미 너무 늦은 시점이었다.
한편 백제를 멸망으로 이끈 원흉 웅진성 성주 예식진이 눈길을 끈다. 그의 형 예군의 묘지명에 의하면 선조가 중화(중국)와 조상을 같이한다고 했고, 서진 말기 영가의 난을 계기로 중국의 산둥반도에서 백제의 웅진 지역으로 이주했다고 나오는 건 흥미로운 부분이다. 또한 예식진의 손자 예인수는 묘지명에다 예씨 가문의 선조가 《 삼국지》에 독설가로 나오는 예형이라고 기록했다. 다만 이걸 갖고 중국계 이주민이 혼자 백제를 다 멸망시켰다고 보는 건 잘못된 분석이다. 애초에 동북아시아 각국의 왕실이나 귀족 가문들이 스스로를 중국계 혈통이라고 주장하는 일은 매우 흔했다. 훨씬 후대에 세워진 고려의 왕실 가문인 개성 왕씨도 자신들이 당나라 황제인 숙종의 후손이라고 주장한 바 있고, 흉노 역시 자신들을 하나라의 마지막 왕인 이계의 후손으로 주장했으며, 조선 시대에는 기자조선에 대한 전설이 널리 퍼지면서 자국을 상나라의 왕족이자 현자인 기자의 자손이라고 주장하는 사례가 생기기도 했다. 고대에는 이런 식으로 자국을 다른 강대국의 군주의 후손이라고 자칭하는 일이 흔했고, 따라서 예식진 가문이 스스로를 예형의 후손으로 자칭한 것은 이런 숭조사업의 흔적일 가능성도 있다. 다만 반론을 제기하자면 예형은 황족이나 귀족 같은 고귀한 혈통과는 거리가 먼 인물이고 삼국지에서도 당대 권력자들(조조, 유표, 황조)에게 악담을 퍼붓다가 죽임을 당한 인물인데 과연 숭조사업을 할 정도의 가치를 지닌 인물은 확실히 아니다. 거기다 당고종은 예식진을 좌위위대장군의 벼슬을 내렸는데 이는 수도를 방위하고 당나라 황제를 경호하는 막중한 실직이었다. 그러니까 백제왕을 팔아넘긴 공적이 있기는 하지만 엄연히 자기 주군을 팔아넘긴 매국노를 당나라 황제는 명예직도 아니고 자신의 경호대장으로 임명하는 실직을 내리는 행동을 보였는데 이는 오히려 예식진이 정말로 중국계라고 볼 수도 있는 증거이기도 하다. 또한 예식진 가문이 조상 때부터 관리한 무령왕릉이 중국 남조 무덤양식을 띠고있다. 신라는 상대적으로 드문 편이긴 하지만 고구려와 백제는 꾸준히 중국 한족 이주민을 받아들이고 있었다. 애초에 백제 자체가 마한 목지국 휘하의 거수국이었던만큼 토착 백제인과 마한인을 따로 구분하는 것도 불가능하다.
5. 경제
애초에 백제는 서울특별시 인근에서 건국되었기 때문에 경제력이 풍부한 편이었다. 인천광역시 일대에 잡은 비류는 얼마 못 가 온조에게 합류했으며, 인천은 바닷가라서 그런지 어업은 굉장히 발달했지만 토지에 염분이 많아 국가의 근간이 되는 농업과 축산업이 부실했다. 반면 서울은 드넓은 강남 평야를 통해 농업과 축산업 등이 풍부하게 발전될 수 있었으며 한강을 끼고 있어서 어업도 어느정도 발달되었기 때문에 여러모로 온조가 비류보다 우월한 조건에서 국가를 다스려 나갈 수 있었다.[30]6. 영역과 행정구역
한성백제 및 웅진 천도 초기에는 담로제(擔魯制)를 시행했다. 이는 사료 《 양서》, 《 북사》 백제조에서 확인할 수 있다.號所治城曰固麻謂邑擔魯, 如中國之言郡縣也. 其國有二十二擔魯, 皆以子弟宗族分據之.
(백제는) 도성을 고마라고 부르며 속읍을 담로라고 부르는데, 이는 중국의 군현제와 같은 것이다. 그 나라에는 22개의 담로가 있는데, 모두 왕의 자제와 종족으로 하여금 다스리게 하였다.
(백제는) 도성을 고마라고 부르며 속읍을 담로라고 부르는데, 이는 중국의 군현제와 같은 것이다. 그 나라에는 22개의 담로가 있는데, 모두 왕의 자제와 종족으로 하여금 다스리게 하였다.
백제는 중앙집권화를 시도한 성왕대에 이르러 수도와 지방을 각각 5부와 5방으로 나누었으며, 각 방에는 방령이라고 하는 지방관을 파견했다. 방령은 달솔(達率)[31]의 관등을 가진 자에게 임명되었으며 아래에 두 명의 방좌(方佐, 차관)를 둘 수 있었다. 사비 천도기 이후로는 5방 체제가 더욱 굳어지고 요새화되어서, 방령이 군정권과 군령권을 행사하는 등 도시의 요새화가 진행되었다. 이 시기에 22담로 역시 일반적인 군으로 바뀐 것으로 보인다.
《삼국사기》에 따르면 백제 멸망 당시에는 전국이 5부(部) 37군(郡) 2백 성(城)에 76만 호(戶)였다고 되어있다. 한편 백제가 멸망한 직후 소정방은 정림사지 오층석탑에 백제를 정복한 일을 기록했는데, 거기서 백제의 행정구역을 5도독부[32] 37주 250현으로 개편한다고 적었다. 이에 따라 부=도독부, 군(대성)=주, 현(소성)=현으로 대응됨을 알 수 있다.
백제는 행정구역이 바로 군사제도와 직결되는 군사•행정 일치제였다. 따라서 행정체제가 곧 군사편제였다고 볼 수 있다. 즉 중앙군은 중앙관리들이 지휘하고, 지방인 방은 방령이 지휘관을 맡았다. 그런데 당대 삼국에는 여기에 봉건제적 요소가 섞여있었기 때문에 중앙정부의 관리 → 방령 체제였는지는 애매한 편이다.
아래는 백제의 성들의 위치. 아래 표는 《삼국사기》에서 확인 가능한 백제 시대의 군이다.
5부(웅진성) | 북방 |
대목악군 | |
가림군 | |
설림군 | |
마시산군 | |
혜군 | |
소부리군 | |
풍달군 | 서방[33] |
황등야산군 | |
우술군 | |
결이군[34]] | |
일모산군 | |
기군 | |
탕정군 | |
완산군 | |
고룡군 | |
대시산군 | |
고사부리군 | 중방 |
진잉을군 | |
덕근군 | 동방 |
시산군 | |
도실군 | |
금마저군 | |
백이군[35]] | |
임실군 | |
무진군 | |
분차군 | |
복홀군 | |
추자혜군 | |
월나군 | |
무시이군 | |
감평군 | |
욕내군 | |
이릉부리군 | |
파부리군 | |
발라군 | |
도무군 | |
물아혜군 | |
인진도군 |
한편 신라는 군현제를 확립해나가게 될 때 여력이 되면 아예 초반부터 군수는 물론 현령까지 중앙에서 파견하여, 중앙의 지배력을 말단 단위까지 철저하게 관철시킬 수 있었다. 한편 백제는 신라와는 달리 군수와 군수 아래 현령 1인까지만 중앙에서 파견하고, 나머지 현령은 현지 호족에게 겸임시켜주어 신라에 비해선 지배력의 강도가 낮은 편이었으나, 그만큼 상대적으로 지방자치를 더욱 보장해주는 편이라 옛 마한 거수국 거수들의 후예기도 한 지방 호족들의 기존 권력을 어느 정도 더욱 보장해줬다고도 할 수 있다.[36]
7. 백제의 문물, 제도, 사회
7.1. 사회와 계급
백제의 형벌은 엄격하여, 반역자, 전쟁터에서 도주한 군사, 살인자는 참수에 처했다. 도둑은 귀양을 보내고 훔친 물건은 2배의 값을 치러서 배상하게 하였다. 관리가 뇌물을 받거나 횡령을 했을 때는 종신형에 처하고, 3배의 값을 치러서 배상하도록 했다.[37]백제의 신분은 크게 지배 신분층, 평민층, 천인층으로 나누어 볼 수 있다. 백제의 최고 지배층은 왕족 부여씨와 대성팔족이라 불리는 7개 왕비족으로 이루어져 있었다. 대성팔족은 왕실과의 혼인이 허락되어 외척이 될 수 있는 왕비족이었다. 당대의 왕비를 배출하면 '길사'라고 했으며, 왕권에 버금가는 세력이 되었다. 왕비를 배출하게 되면 해당 씨족이 관직을 독점했기 때문에 실질적으로 왕권을 능가하는 실권을 행사할 수 있었다. 때문에 왕비족인 대성팔족들은 정권을 잡기 위해 왕들을 시해했고 실제로 백제 왕의 대다수가 암살로 추정되는 죽음을 맞았다. 원래 한성시대에는 해씨, 진씨의 2개 외척 세력이 있었고 근초고왕의 남방정벌에서 활약한 목씨가 신귀족으로 편입된 모양새였으나 웅진으로 급히 피신하여 해당 충청도 토착 세력의 도움을 받아 정권을 유지하는 과정에서 왕비족이 7개로 대거 확대되었다.
이러한 대성팔족에 의한 지배체제가 공고화되어 있는데 이러한 대귀족들은 고구려나 신라에도 있었던 것으로 애초에 대성팔족 자체에 사비, 웅진 토착 호족들일 개연성이 높은 성씨들이 있었는데, 이걸 갖고 신흥세력이 없었다고 하면 안 된다. 그리고 백제는 지역별 토착세력 같은 경우 신라보다 오히려 꽤 우대하는 편이었다. 대성팔족 중 상당수는 공주와 충남 일대를 본거지로 두는 신진 귀족 세력이었으며 4~5세기 무렵부터 《삼국사기》, 《일본서기》 등에 등장하는 마한계인 사씨, 연씨, 백씨가 있었다. 그리고 그들과 대척점에 있는 남래(南來) 귀족 세력인 해씨(解氏)와 진씨(眞氏) 또한 대성팔족으로, 이들은 시조 온조왕의 십제 시절부터 온조와 동행한 세력으로 추정되며 한강 일대의 경제권을 장악한 호족으로 파악된다. 반면에 신라는 토착 호족들이 촌주급까지만 할 수 있었으나 백제는 현령 같은 경우, 상당 부분 호족들에게 겸임시켜주는 편이었다.[38]
신분제는 관등, 관직제를 규정하기 때문에 신분에 따라 관등, 관직, 복색, 대색에도 구별이 있었다. 왕은 금화로 장식한 오라관(烏羅冠)을 쓰고, 흰 가죽띠를 두르고, 검은색의 비단신을 신었다. 지배 신분층 가운데 좌평 계열과 솔 계열은 자복을 입고, 은화로 장식한 관을 썼다. 덕 계열은 비복을 입었고, 자대에서 황대까지의 띠를 띠었다. 무명 계열은 청복을 입되, 황대에서 백대까지의 띠를 둘렀다. 이를 보건대 백제도 기록 부재일뿐 신라와 거의 동일한 골품제급 신분제도를 유지한 것으로 보는 의견이 강하다.
백제의 귀족층은 중국과 교류가 빨랐으며, 중국 문화를 많이 받아들였다. 이들은 중국의 고전 서적을 즐겨 읽었으며, 한문을 능숙하게 구사했다. 투호와 바둑, 장기 등의 오락을 즐겼다.
7.2. 관직
제1품 | ✿ 좌평(佐平) |
정원 5명(《
북사》) 내신좌평(內臣佐平) 내두좌평(內頭佐平) 내법좌평(內法佐平) 위사좌평(衛士佐平) 조정좌평(朝廷佐平) 병관좌평(兵官佐平) |
제2품 | ✿달솔(達率) |
정원 30명(《
북사》) 솔(率) 계열 |
제3품 | ✿은솔(恩率) | 率 계열 |
제4품 | ✿덕솔(德率) | 率 계열 |
제5품 | ✿한솔(扞率) | 率 계열 |
제6품 | ✿나솔(奈率) | 率 계열 |
제7품 | 장덕(將德) | 德 계열 |
제8품 | 시덕(施德) | 德 계열 |
제9품 | 고덕(固德) | 德 계열 |
제10품 | 계덕(季德) | 德 계열 |
제11품 | 대덕(對德) | 德 계열 |
제12품 | 문독(文督) | 武名 계열 |
제13품 | 무독(武督) | 武名 계열 |
제14품 | 좌군(佐軍) | 武名 계열 |
제15품 | 진무(振武) | 武名 계열 |
제16품 | 극우(克虞) | 武名 계열 |
4색 공복의 색상배치를 그대로 따라서 노란색이 없는 것을 제외하면 신라의 골품별 배색과 동일하다. 진골과 ○솔은 보라색, 6두품과 ○덕은 빨간색, 5두품과 나머지는 파란색.
- 상좌평
- 좌보(左輔): 백제 초기 관직.
- 우보(右輔): 백제 초기 관직. 을음, 해루, 흘우, 진회, 질, 진충이 이 관직을 역임했다. 고이왕 때 폐지되어 좌평으로 전환되었다.
- 북문두(北門頭): 《삼국사기》 〈직관지〉에 언급되는 관직.
- 방령(方領): 백제 지방 행정조직의 행정 및 군사 최고책임자. 6세기 중반에 등장한 것으로 추정된다.[39]
- 방좌(方佐): 방령을 보좌하는 관직.
7.3. 군사
[[대한민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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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lbgcolor=#fff,#191919> 상고· 원삼국시대 | 고조선군 / 부여군 / 삼한군 | ||||
삼국시대 | 고구려군 | 백제군 | 신라군 | 가야군 | ||
남북국시대 | 발해군 | 신라군 | ||||
고려시대 | 고려군 | |||||
조선시대 | 조선군 | |||||
대한제국 | 대한제국군 / 의병 | |||||
일제강점기 | 일본 제국 육군 조선군· 조선보병대 / 독립군 | |||||
분단시대 (건군기) |
미군 해방병단 → 조선해안경비대 남조선국방경비대 → 조선경비대 |
소련군 적위대 → 보안대 철도보안대 → 북조선철도경비대 수상보안대 → 해안경비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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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대 | 대한민국 국군 | 조선인민군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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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제는 행정 구역이 바로 군사 제도인 형태의 군사 행정 제도 체제였다. 따라서 행정 체제가 군사 편제라고 볼 수 있다. 중앙은 달솔이 지휘하고 지방인 방은 방령이 지휘관을 맡았다. 즉 좌평 혹은 지휘관 → 달솔 → 방령 체제였는지는 애매한 편이다.
백제에 싸울아비 - 무절이라는 조직이 있었다는 주장을 하지만, ' 싸울아비'라는 말 자체가 20세기에 튀어나온 용어이며 '무절'이라는 용어도 위서(僞書)의 용어이기에 백제에 고구려와 같은 경당(扃堂) 체제가 있었는지는 불분명하다. 백제도 고대 국가들처럼 기병 - 보병 - 궁수의 병과 체제가 있었고, 주력이자 정예병은 기병이었을 가능성이 크나 상대적으로 영토가 목축 지대가 아닌 지역인 경기 - 충청 - 전라도에 분포해 있었기에 기병보다는 보병이 주력이었을 확률이 매우 크다. 이는 훗날 후백제의 사례에서도 유사하게 볼 수 있다. 백제도 북방에서 내려와서 건국되었기 때문에 찰갑을 보편적으로 이용하는 형태였다. 물론 한반도 남부의 보편화된 갑옷이었던 판갑도 나오며, 고구려와 다르게 혼용으로 운영했던 것으로 보인다. 다만 한성지역 상실과 가야 멸망 이후에는 철을 공급해 줄 주요 동맹 세력이 사라지면서 옻칠한 가죽갑옷을 많이 사용했다.
위 아래 길이가 크게 비대칭인 일본활(유미)과 비슷한 형태의 목궁이 출토되었으며 북방계 민족들의 영향을 받기 전까지 한반도에서도 목궁을 이용했다는 사실이 드러나면서 백제의 활 형태가 일본과의 교류 과정에서 일본 활에 영향을 주지 않았나는 주장도 있지만, 연구가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았다.
백제군의 총 병력은 확인되기 어려우나 최대 30,000명 규모까지 원정에 동원되었던 것으로 보인다. 전성기인 근초고왕 시절과 중흥을 이끈 백제 성왕 시절의 동원 능력을 보면 30,000명 규모를 언급하고 있기 때문이다. 관산성 전투 당시 성왕이 이끌던 병력은 총 30,000명에 좌평 4명이 포함되어 있었다. 대략적으로 계산하면 좌평 4명이서 30,000명이니 30,000 / 4 = 7,500명이므로, 6좌평이 거느린 총 병력은 45,000명이 된다. 물론 이는 어디까지나 추정치일 뿐이며, 좌평들이 모두 동일한 병력을 거느렸을 리도 없고, 예비대도 존재했을 것이므로 백제군의 총 병력이 어느 정도 규모였는지는 정확히 알 수가 없다.
대중들에게는 백제가 "해상 왕국"의 이미지로 각인되어 있는데, 환황해권의 중심지에 위치해 있는 만큼 해상 활동 기반이 잘 마련되어 있었던 것은 사실이다. 중국 여러 왕조와 교역도 활발했으며, 후기 신라와 당이 가까웠던 것 이상으로 바다 건너에 있는 일본과 무척 밀접했고, 심지어 성왕 대의 승려인 겸익은 중국 내륙를 통하지 않고 해로를 통해서만 중인도로 건너가 인도 불승 배달다삼장과 함께 불경을 싣고 오기도 했다. 백제선은 외국에도 알려져, 일본에서도 야마토노아야노아타히아가타(倭漢直縣) 등을 파견해 백제선을 만들게 한 일이 있다.
그러나 수군 또한 융성했는지는 분명치 않다. 백제의 수군 역시 그 규모가 명확하지 않으며, 백제가 강력한 해상 통제력을 발휘했다고 뒷받침할만한 사료는 부족한 편이다. 백제의 수군과 관련된 기록은 아신왕이 관미성을 탈환하려 했다[40]는 기록과 동성왕 시기 북위와의 전투[41], 탐라 정벌계획[42] 등등으로 확인할 수 있지만, 이는 백제에 수군이 존재했다는 근거가 될 뿐 수군이 강력했다는 근거는 되지 못한다. 남은 백제의 전투 기록을 봐도 수전에 대한 기록은 거의 없는 수준이며, 대부분이 육전에 대한 기록이라, 백제군의 주력은 육군이며 수군은 보조적인 역할에 불과했음을 짐작할 수 있다. 이는 고구려에 의해 서해의 해상 통제권의 영향을 받았던 점이나 백제 멸망 때 소정방이 이끄는 당군을 방어하는 역할을 제대로 수행하지 못했던 점을 통해서도 알 수 있다.
한편 북송 시대 왕흠약(王欽若)과 양억(楊億) 등이 편찬한 방대한 백과사전인 《책부원구(冊府元龜)》라는 책에는 "당 태종 이세민이 백제에 사신을 보내 산문갑(山文甲-의전용 갑옷)에 입힐 금칠(金漆, 황칠)을 요청했다"라는 기록이 남아있다. 여기서 금칠이란 정말로 갑옷에 황금을 칠하거나 도금을 했다는 뜻이 아니라, 황금색 칠을 했다는 것이다. 그리고 연구 결과, 백제에서는 황칠(黃漆)나무에서 흘러나오는 황금색을 띈 수액을 갑옷에 발랐던 것으로 밝혀졌다. #
한편 《 삼국사기》 〈백제본기〉에는 다음과 같은 문구가 등장한다. #
"겨울 11월, 한수 남쪽에서 크게 군대를 사열하였다. 모두 황색의 깃발을 사용하였다."
물론 여기서 황색 깃발이 단순 의장기인지 왕실의 상징인지 백제의 국기인지 무엇인지는 정확하게 알 도리가 없다. 한가지 확실한 것은 백제군에서 황색 깃발을 무언가 중요한 용도로 썼다는 것이다.
7.4. 언어
학자들은 일반적으로 초기 고구려계 유이민들의 영향으로 고구려계 언어를 썼을 것이고, 충청도, 전라도까지 영토가 넓어지자 마한어까지 혼용되어 후대로 갈수록 마한계 언어적 성향이 짙어졌을 것으로 추론하고 있다. 일단 6세기 중국의 문헌에는 다음과 같이 기록되어 있다.중국의 사서인 《 주서》에 의하면, 백제의 귀족들은 왕을 '어라하'(於羅瑕)라고 불렀고, 백성들은 ' 건길지(鞬吉支)'라고 불렀다고 한다. 이것을 이유로 백제의 지배층들은 부여계 언어를 사용했고, 백성들은 한(韓)계 언어를 사용했으므로, 백제는 지배층들과 백성들의 언어가 서로 달랐다고 주장하는 학자들이 있다. 하지만 역사학자이자 독립운동가인 김승학은 해당 기록이 거리가 매우 먼 중국 기록이며 또한 중국의 기록에 단 한번 나오고 있어 진위가 의심스럽고 백제의 지배층과 밀접한 관계를 가진 일본 야마토 정권에서는 백제의 왕을 전부 "코니키시"(건길지)로 부르고 있어 백제의 왕족과 지배층들도 자신들을 "건길지"라고 부른 것이 확실하다고 주장하였다. 또한 김승학은 건길지 또한 거서간과 같은 "간"의 호칭이며 신라의 "간"의 경우 일본에서 "간기"라고 불렸기 때문에 건길지는 백제어로 "간"의 발음이 "건"으로 표현된 것으로 보여 백제, 신라 모두 삼한으로서 "간"에서 나온 호칭으로 불렸다고 주장하였다. 또한 조선시대 신하들은 왕을 주상, 전하로 불렀고 백성들은 나랏님, 임금님으로 불렀으므로 왕을 일컫는 어휘만 보고 언어가 다르다고 속단하는 것은 옳지 않다고 주장하는 학자들도 있다.
한편, 백제가 망한 후 일부 왕족들이 일본으로 건너갔는데 자신들의 성씨를 코니키시라고 했다고 한다. 코니키시는 건길지의 일본식 발음으로, 어라하와 건길지의 구분이 그렇게 확연하지 않았거나 후대에 들어 모호해졌을 가능성도 있다.
백제인들의 인명, 백제의 지명을 통해 백제어를 유추하기도 한다, 하지만 지명으로 그 나라의 언어를 연구하는 것에 회의적인 입장을 나타내는 학자들이 많다.[43]
충청남도 부여군에서 백제 목간이 발견되었는데, 서울시립대 국어국문학과 김영욱 교수는 이를 근거로 백제의 향찰이 신라보다도 이른 시기에 형성된 것이라는 주장을 펼치기도 했다. # 서울대 언어학과 이승재 교수는 '목간에 기록된 고대 한국어'라는 서적에서 猪耳라는 목간 기록을 다루며 耳가 음을 빌려 말음을 표기한 것이 아닌 훈독자였을 것으로 보고 '돝귀'라고 재구하는 설을 지지하였다. 다만 확실한 가설은 아니므로 현재 교육과정에는 백제가 신라와는 달리 '말음 표기'를 하지 않았다고 소개한다.
7.5. 연호
백제는 일반적으로 연호를 써서 년도를 표기하던 다른 국가들과 달리 60갑자로 연호를 표기했다. 《한원(翰苑)》에서 인용된 《괄지지(括地志)》에서 "연도를 기록할 때 따로 연호를 쓰지 않고 60갑자로만 차례를 삼는다(其紀年, 無別號, 但數六甲爲次第)"라는 기록이 남아있고 후에 발견된 사택지적비도 "갑인년(甲寅年)"이라 하여 60갑자가 사용되었다.다만 칠지도의 "태화" 연호에 대해 근초고왕 또는 전지왕의 연호가 일시적으로 사용되었다는 설, 동진의 연호라는 설 등 여러 해석이 존재한다.
7.6. 종교, 문화, 역사
해안가에 위치하다보니 고구려처럼 중국의 선진 문물을 받아 유학이 발전하였으며 고흥이 《 서기》를 편찬했다. 또한 《 일본서기》의 기록에 따르면 《 백제기》, 《 백제본기》, 《 백제신찬》 등의 역사책이 있었다는 기록이 있다. 《 일본서기》의 기록이 이 백제삼서를 참고했을 것이라는 설이 있으나, 사서들 자체는 현존하지 않는다. 왕인을 왜에 파견하여 《 천자문》과 《 논어》를 전수했고, 무령왕 대에는 오경박사 단양이(段楊爾)와 고안무(高安茂)를, 성왕 대에는 오경박사 왕유귀(王柳貴)를 왜에 파견하여 왜가 유학에 대한 이해를 높이는데 중심적인 역할을 하였다.백제 불교는 침류왕 시기인 384년에 서역승 마라난타가 남북조의 동진으로부터 들어오면서 시작되었다. 이듬해 침류왕은 한산성에 불사를 이룩해 승려 10명을 거처하게 하였다. 성왕 이후 백제에서는 많은 승려와 예술가들을 일본에 보내 일본의 불교 문화 융성에 크게 기여하였다. 또 불교 사상에 심취한 법왕은 불교 사상에 따라 생물을 죽이지 못하도록 하는 방생을 명령하였다. 민간에서 기르던 매를 야생에 풀어주고, 고기 잡이와 사냥을 하는 도구들을 불태우도록 했다.
백제 불교는 계율 연구가 활발했다. 백제 승려 겸익은 대표적인 계율종 승려였다.
또한 백제에서는 6세기 이후부터 미륵신앙이 널리 퍼져 있었다. 이는 미륵사, 미륵불광사(彌勒佛光寺) 등의 절이 세워졌고, 미륵반가사유상의 제작이 성행했던 것에서 알 수 있다. 미륵선화설화(彌勒仙花說話)에 의하면, 위덕왕 때 신라의 승려 진자(眞慈)가 미륵화신(彌勒化身)을 직접 뵙고자 웅진성의 수원사(水源寺)를 찾아왔다는 기록이 있는데 이는 삼국시대의 미륵신앙이 현 공주시 일대를 중심으로 유행하고 있었을 가능성을 시사한다. 후에 이 미륵신앙은 후삼국시대에 전국적으로 히트를 치게 된다.[44]
도교는 사비 도읍기에 성하여 부여 능산리 사지에서 발견된 백제금동대향로의 상단 뚜껑 쪽에 새겨진 문양은 주제가 신선이 살았다는 봉래산(蓬萊山)을 중심으로 하고 있고, 익산 왕궁면 왕궁리에서 발굴된 원지는 우리 나라 고유의 산악 숭배와 더불어 신선 사상 및 도교 사상의 영향을 보여준다.
7.7. 건축
현재 남아있는 백제의 건축물들은 분묘나 석탑 종류에 불과하다. 백제의 건축은 절터, 탑, 고분[45] 등이 있다.한성시대 고분은 서울 송파구 석촌동의 돌무지 무덤이 대표적이다. 돌무지 무덤은 고구려 초기 고분(졸본 부여 시기)과 유사한 양식이다. 웅진 시대에 만들어진 것으로 추정되는 공주시 송산리에 있는 여러 고분들[46]은 백제 중기를 대표하는 굴식돌방무덤(橫穴式石室墳)이다. 후기의 무령왕릉과 같은 벽돌 무덤은 중국 남조(양나라)의 영향을 받았다. 한성 시기를 대표하는 집 유적지로서는 여·철자형 주거지가 있다.
백제 건축물들의 남은 터로 그 규모를 짐작할 수 있는데 대부분 상당히 장대했을 것으로 보인다. 많은 사찰이 건축된 기록이 있으나 현존하지는 않는다. 주로 백제의 옛 도읍지였던 공주시, 부여군 일대에서 그나마 백제의 옛 흔적을 찾을 수 있다. 무령왕릉이나 미륵사지가 대표적인 유적들이라고 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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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대 일본이 적극적으로 백제의 건축을 도입했었다 보니 일본의 고건축이 백제 양식을 가장 많이 닮아있는 것으로 추측된다. 일본의 나라, 아스카 시기 건축물에 백제의 흔적이 반영된 것으로 여겨진다. 남아있는 백제 건축물이 없으므로 일본의 고건축을 주로 참고하여 복원하고 있으며 때문에 동아시아 고대 건축에 대해 잘 모르는 일반인들 사이에서 왜색 논란이 빚어지기도 한다. 67년 부여박물관 왜색 논란
7.8. 시가
작자·연대가 미상인 백제 노래 〈 정읍사〉가 《 악학궤범》에 전해지며, 능산리 고분 근처에서 발견된 목간에서 작자 미상의 〈 숙세가〉가 발견되었다. # 이외에도 《 고려사》 〈악지〉에 제목만 등장하는 〈지리산가〉, 〈무등산가〉, 〈방등산가〉, 〈선운산가〉 등이 있다.7.9. 예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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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주 복암리 고분군 출토 목간의 태극 문양. | 태극의 디지털 복원 이미지. |
백제 시기의 그림 예술 역시 워낙 오랜 세월이 지난 관계로 남아 있는 것이 얼마 없다. 다행히 백제 역시 고구려와 비슷하게 고분에 벽화를 그리는 풍습이 있었기 때문에[47] 천마도와 나머지 몇몇이 고작인 신라보다 남아있는 회화는 오히려 더 많다. 능산리 고분에는 연화문(연꽃 무늬), 운문(구름 무늬), 사신도를 그린 벽화가 있으며, 송산리 고분이 있다. 백제 시기에 이름이 알려진 화가로는 아좌태자, 하성 등이 있다.
백제의 음악은 어느 정도 수준이 되었던 것으로 보인다. 백제에는 고·각·공후·쟁 등의 악기가 있었다고 하며, 5∼6세기 중국 남북조시대의 유송과 북위의 기록에 백제의 음악이 소개된 것이 있다. 《일본서기》의 기록에 따르면, 백제의 악사가 왜국에서 음악을 가르쳤다고 한다. 7세기 초 백제 사람 미마지가 중국 오나라 음악을 배워서 왜에 전했다는 기록이 유명하다. 참고로 백제 대표 문화재인 금동대향로를 들여다 보면 5인의 악사가 연주하는 모습이 새겨져 있는데 이를 통해 백제시대의 악기 모습을 유추해 볼 수 있다.
서예 작품으로는 사륙변려문으로 쓰여진 사택지적비, 남조 대 전형적 해서체로 쓰여진 무령왕릉 지석 등이 있다.
조경 면에서는 도교식 인공 정원을 당나라로부터 수입하여, 무왕이 궁남지를 만들고, 백제인들이 왜국으로 건너가서 비슷한 것을 만들어준 기록이 있다. 통일신라의 안압지도 여기서 영향 받았을지 모른다.
7.10. 교육
2013년 발견된 백제유민 진법자(615년 ~ 690년) 묘지명에서 국립대학인 태학의 존재가 확인되었다. 정확한 설립시기는 불명이나 진법자의 증조부인 진춘이 태학의 정(正)을 지냈다는 언급으로 보아, 적어도 6세기 무렵에는 존재했던 것으로 추정된다.[50] 중국과 근접성을 이점으로 활용하여 중국 문화와 학문을 수용하였다. 일례로 흑치상지의 묘지석에는 어린 시절부터 중국 고전을 즐겨 읽었다고 언급했고, 막고해는 노자 《 도덕경》의 구절을 인용해서 근구수왕을 설득하기도 했다. 개로왕이 북위에 쓴 상소문을 보면 수많은 중국 고전을 인용하고 있다.[51] 부여 쌍북리에서 《 논어》의 '학이(學而)'편 일부를 필사한 6세기 목간도 출토된 바 있다. #2012년 충청남도 부여군 부여읍 쌍북리에서 출토된 목간을 2016년에 연구해 본 결과 이 목간은 구구표(구구단)인 것으로 밝혀졌다. # 정황상 관청에서 교육 혹은 참고용으로 사용했던 것으로 보인다고 한다.
7.11. 장례
고구려와 마찬가지로, 부모가 죽으면 3년상을 치른 것으로 추정한다. 무령왕릉의 지석에서 발견된 사실에 의하면 무령왕릉은 붕어한 후 3년(만 27개월) 동안 상을 치르고 묘지에 묻힌 것으로 기록되어 있다. 고구려 또한 중국의 사서에 따르면 3년상의 관습이 있었다고 전하고 있다. 장수왕도 부왕인 광개토왕을 위해서 약 3년(만 24개월) 동안 상을 치르고 묘지에 묻은 것으로 파악된다. 자세한 내용은 삼년상, 광개토대왕릉비 문서로.8. 외교
백제의 대외관계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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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1. 고구려와의 관계
자세한 내용은 고구려-백제 관계 문서 참고하십시오.건국의 주체가 고구려에서 남하한 이주민이었던 만큼, 건국 초기부터 백제는 고구려와 깊은 관계를 가졌다. 백제의 전성기 때는 고구려의 왕을 전사시키는 등 전쟁을 하던 원수지간이었지만 신라의 중흥 이후 고구려와 신라 공격이라는 목표가 부합하게 되었고 이는 멸망 때까지 유지되었다.
8.2. 신라와의 관계
자세한 내용은 나제관계 문서 참고하십시오.혈맹과 숙적 관계를 넘나들던 관계였다. 고구려가 중흥할 때는 고구려의 남하를 저지하기 위해 나제동맹을 맺어 손을 잡고 고구려에 대항했다. 그러나 후에 나제동맹이 고구려를 격파하고 한강유역까지 북진을 하게 되고 한강유역을 차지하였다. 하지만 백제는 한강을 유지할 힘이 없어, 스스로 한강 하류를 포기하고 신라가 백제군이 철군한 하류를 차지했다. 자세한 것은 신라의 한강 유역 점령 참조. 양국의 긴장 관계는 이어지다 얼마 안가, 관산성 전투에서 성왕의 전사를 계기로 불구대천의 원수사이가 되었다. 이때부터 나제양국은 치열한 접전을 꾸준히 치렀고 이러한 대립은 백제가 멸망할 때까지 계속되었다.
8.3. 가야와의 관계
자세한 내용은 백제-가야 관계 문서 참고하십시오.백제와 가야는 지리적으로 접해왔던 만큼 지속적인 교류를 유지했다. 다만 백제의 체급이 더 크다보니 영향력은 백제가 더 우위였다.
8.4. 마한과의 관계
백제는 상술했듯 시초부터 마한의 일부였고, 관념적으로나마 성왕 때까지 그러했다. 고이왕 혹은 책계왕 때부터 백제의 군주는 마한왕까지 겸하게 되었으니[52], 때문에 마한과 백제가 일방적인 정복하고 정복당하는 관계였다고 보기는 곤란하다.다만 마한은 진한과 변한과는 달리 수계가 대여섯 개나 되는데다 면적도 인구도 몇 배나 되었기에 통합 난이도는 훨씬 높은 편이었다. 일단 지배력이 미치는 기준으로만 보면 마한 영역 전체에 그 위령이 미친 건 372년도 근초고왕 때부터지만, 마한 영역을 직접 지배화한 기준으로 보면 5세기 초반 무령왕 때다. 게다가 무령왕 때도 사실, 근초고왕 때는 엄연히 직접 지배지이자 옛 마한의 영역 일부였던 충북 일대가 빠져 있었고 경기도 일대도 겨우 수십 년 수복한 끝에 고구려와 신라에게 내주어야 했으니, 한성백제 당시 고이왕 혹은 책계왕이 목지국을 타도했을 때부터 염원했던 마한 전체의 직접 지배화는 결국 이뤄지지 못한 꿈이 되었다고 봐야 한다. 쉽지 않았던 백제의 생존 투쟁과 어려움이 읽히는 대목이다.
8.5. 왜국과의 관계
백제와 왜국(야마토)의 관계는 각별했다. 4세기 이후까지 일본 열도는 아직 통일왕국을 이루지 못한 채 기나이의 야마토 왕권 을 주축으로 하여 호족 연합을 이루고 있었다. 이 시기에 백제가 왜국에 전해준 문물은 건축, 토목, 제철, 목마, 양초, 직조, 양응, 의약, 음악 등 매우 다양했는데, 생활에 필요한 분야가 대부분이었다. 이는 왜국의 사회가 일상생활에 필요하면서도 생산력을 높일 수 있는 문물을 백제로부터 받아들인 것을 보여준다. 이러한 선진문물들을 바탕으로 하여 야마토 정권은 당시 일본 열도에 위치한 타 국가들에 비해서 강대한 국력을 갖추게 되어 당대에 존속해 있던 주변 국가들을 하나 하나 병합시켜 나갈 수 있었고, 서기 7세기 무렵이 되면 규슈에서부터 간토에 이르는 넓은 영역을 야마토로 통합시키는 데 성공을 거둘 수 있었다.
왜국은 또한 국가 운영에 필요한 이념으로 기능하는 유교, 불교, 도교 등을 백제로부터 받아들였다. 백제가 유교를 왜국에 전수해 주었다는 것은 근초고왕이 아직기와 박사 왕인을 왜국에 파견하고 또 한자, 《 천자문》과 《 논어》를 보내주었다는 사실에서 확인된다(372년, 404년). 참고로 근초고왕 때 칠지도 또한 일본에 내려주었다. 이후 백제는 무령왕 때 오경박사 단양이, 고안무 등을 왜국에 파견하여 유교 경전에 대한 이해를 높였다(516년).
불교는 사비 도읍기에 성왕이 왜국에 '노리사치계'를 파견해 전해주었다( 552년). 이후 백제는 많은 승려와 사찰 건립 기술자들을 파견하여 계율을 가르치고, 사찰 건립을 도왔다. 한편 승려 관륵은 승관 조직을 정비하여 교단의 기율을 바로 잡았을 뿐만 아니라 천문지리, 둔갑, 방술 등 도교 사상도 전해주었다. 이러한 사실은 왜국이 유교, 불교, 도교 등을 국가 통치이념으로 확립하는 데 백제의 영향이 매우 컸음을 보여준다.
심지어 스이코 덴노 시절에는 "스이코 왕과 만조백관들이 '백제옷'을 입었으며 구경하는 사람들이 기뻐했다"라는 기록도 나온다. 이는 당시 왜국이 얼마나 적극적으로 백제의 선진 문물들을 전해 받았는지 알 수 있는 중요한 증거[53]이다. 일본 한국 도래인 사실로 인정
백제가 왜국에 선진 문물을 전수하는 방법은 기술자들이 도왜[54]하는 경우가 대다수였다. 이들 도왜인들은 자신의 학문이나 기술 등을 바탕으로 왜국의 지배층에 편입되어 들어갔고, 이들 가운데 일부는 왜국 조정에서 중요한 역할을 하게 되면서 백제와 왜국의 관계에 어느 정도 영향을 끼치기도 하였다. 이렇게 문화 교류가 왕성했기 때문에 야마토 정권에서 백제계 도래인 출신도 많이 활동을 할 수밖에 없었고 이후 왜국에서 정식으로 일본으로 발족한 뒤 일본 황실과도 혈족적 연계를 갖는 수준까지 올라가게 된다. 이는 나중에 모계 혈통적인 입장에서 백제계 2세가 천황이 되는 경우까지도 나올만큼 왜국과 백제의 관계는 매우 돈독했으며 백제 부여씨 왕족들이 왜국에서 활동하기도 했다. 다만 이들이 인질이었는지 아니면 백제와 왜국 간의 외교대사 역할을 수행함과 동시에 조정에서 백제계를 대표하는 존재였는지는 여전히 학계의 논란거리다.
백제 왕자들이 속국의 인질이었다는게 비록 1차 사료인 일본서기에 기록되어 있긴 하지만, 백제가 멸망한 이후에 만들어진《 일본서기》가 자신들의 권위를 높이기 위해 백제와의 관계를 왜곡한 프로파간다적 서술이 많기 때문에 써있는 그대로 신뢰하기는 곤란하다. 물론 일반 왕자도 아닌 왕위계승권 1위인 왕의 장자가 몇 년씩 외국에 거주하는 건 일반적인 외교 관례는 아니다. 통일 중국 상대로도 한반도 국가가 태자나 세자를 직접 사신으로 보낸 사례조차 드물고, 그들이 몇 년씩 중국에 거주한 건 몽골간섭기를 제외하면 한손으로 꼽는 희귀 사례다. 전성기를 맞은 고구려의 공세에 밀리기 시작한 백제에게는 군사 동맹이 절실히 필요했기에, 어떤 형태로든 태자를 왜국에 파견해 우호를 최대한 다질 필요가 있었을 것이다. 백제는 왜의 군사 지원이 필요하고, 왜는 백제의 선진 문물이 필요해서 서로 윈-윈이 되는 관계였을 가능성도 높다. 애초에 그 당시 시점에서 사람을 외국으로 보내는 건 난파되거나 해적과 만나거나 풍토병에 걸리는 등의 위험성을 내포하고 있기 때문에 국내 정적의 위협에서 피한다거나 왜국의 사회적 상황을 시찰하는 등의 목적이 있었으리라고 생각하는 게 맞다.
심지어 비다쓰 덴노와 조메이 덴노 시절에는 아예 왕도에 ‘백제궁(百濟宮)’이라고 호칭하는 왕궁(王宮)을 짓고 살았을 정도였다. 거기다 조메이 덴노는 백제궁(百濟宮)에서 사망하였는데 붕어 후에 ‘백제의 대빈’이라고 부르는 백제 왕실식 장례를 치렀을 정도였다.
冬十月己丑朔丁西, 天皇崩于百濟宮. 丙午, 殯於宮北. 是謂百濟大殯.
겨울 10월 9일에 천황이 백제궁에서 붕어하셨다. 18일에 왕궁 북쪽에 안치하고 빈궁을 만들었다. 이것을 '백제의 대빈(百濟の大殯)'이라고 부른다.
《 일본서기》 권23 조메이 덴노 13년( 641년)
여기서 말하는 '백제의 대빈'이란 백제 본국 왕실의 3년상 '국장의례'를 가리킨다.[55] 어째서 조메이 덴노의 장례를 '백제의 대빈'으로 모셨는지는 분명하게 밝혀진 건 아직 없지만 적어도 조메이 덴노 시절 백제계들의 영향력이 왜국 조정 내에서 매우 컸던 것은 사실로 보인다. 즉, '백제궁'과 '백제의 대빈' 모두 당시 왜국에서 백제계들의 정치적 영향력이 매우 컸음을 알려주는 중요한 증거들이다.겨울 10월 9일에 천황이 백제궁에서 붕어하셨다. 18일에 왕궁 북쪽에 안치하고 빈궁을 만들었다. 이것을 '백제의 대빈(百濟の大殯)'이라고 부른다.
《 일본서기》 권23 조메이 덴노 13년( 641년)
이러한 백제와 왜국의 밀접한 혈맹관계나 다름없는 모습은 신라를 공격할 때 백제에 지원 병력을 파병하여 적극적으로 돕는 모습으로 나타나며 백제 멸망기 때에는 백강 전투처럼 왜국의 국력을 대거 쏟아부어서 백제 부흥 운동을 지원하는 모습을 보여주기도 했다. 실제 백제계 유민들이 나라를 잃고 상당수가 새롭게 정착한 곳도 일본이었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항상 관계가 좋았던 것만은 아닌데, 대표적인 시기가 백제 무왕 초기로, 《 일본서기》 스이코 덴노 16年(608) 6월 조에 따르면 수나라에 갔던 왜국의 사절 오노노 이모코가 ( 수양제가 왜왕에게 보내는) 국서(返書)를 소지하고 귀국하던 도중에 백제에 이를 강탈당했다고 되어 있다. 오노노 이모코가 당에서 보낸 국서를 백제인에게 탈취당함 이를 통해 유추해보면 당시 왜국의 대중국 독자 외교에 대해서 이유야 어찌되었든 당시 백제가 굉장히 못마땅하게 생각했던 것으로 보인다.[56] 실제로 《 일본서기》에서도 602년 10월에서 615년 사이에 약 12년 동안 백제와 왜국의 외교관계 기록이 보이지 않는 등 의외로 백제와 왜국의 외교관계가 좋지 않았던 시기도 있었다고 추정할 수 있다.
또 수나라보다 이전 시대인 438년 유송의 기록 또한 왜와 백제간의 관계를 이해하는 데 도움이 된다. 이때 왜왕 진(珍)이 송에 사신을 보내 자신을 使持節(사지절)都督(도독)倭百濟新羅任那秦韓慕韓(왜, 백제, 신라, 임나, 진한, 모한)六國諸軍事(육국제군사)安東大將軍(안동대장군)倭國王(왜국왕)으로 칭하고 이를 인정해 줄 것을 유송에게 요청한 일이 있다. 이 무렵은 신라나 고구려와의 전쟁에 왜국이 군대를 파견하면서 백제와 한창 우호관계가 돈독하던 사이였음에도, 중국에 사신을 보내면서 왜 자신들이 백제, 신라, 가야 등의 지배자임을 자칭하면서 인정해달라고 요청한 것이다. 만약 한국 민족주의 재야사학자들의 주장처럼 '이 시기의 왜국이 백제의 충견 같은 속국이었다면' 당연히 절대 있을 리가 없는 행동이었다. 최소한 자기들이 백제를 상대로도 주도권을 쥐고 싶어하던 면이 있었다는 것이다. 물론 유송 입장에서는 백제는 이미 자국과 조공-책봉을 맺은 나라이므로 백제에 대한 관작은 인정해주지 않았고 나머지 신라와 가야 등에 대한 관작은 인정해줬다. 백제와는 달리 그 지역들과는 유송이 직접 교류가 없었기에 '난 모르는 땅이니까 뭐 니 권위 세우는 데 써먹든가'하고 인정해준 것이다. 백제 또한 이와 비슷하게 중국에 사신을 보내 신라와 가야가 자신의 속국이라고 주장해 인정받은 적도 있다.[57] 또한 유송은 왜가 요청한 안동대장군이 아니라 더 낮은 관직인 안동장군 직만 인정해줬는데, 이는 유송이 백제에게 이미 인정해준 진동장군보다 낮은 관직이다. 즉 유송이 왜보다는 백제에게 더 외교 의전서열을 높여줬다는 뜻이라, 백제가 왜의 속국이라는 일본 민족주의적 주장을 반박하는 근거가 되어주기도 한다. 양국이 우호관계일 때도 서로 이렇게 신경전이 있었다.
사실 백제에 대한 일본 기록들은 전부 왜국을 우위에 놓고 백제를 속국으로 기술해 놓았으나, 잘 읽어보면 자기들이 압도적인 우위에 있었다는 걸 과장하려다보니 현대인 시각에서는 대놓고 왜곡한 흔적이 많이 보인다. 백제와의 첫 만남부터 근초고왕이 대뜸 바다 건너에 귀한 나라인 일본이 있다는 소문을 듣고 너무너무 섬기고 싶다면서 가야를 통해 소개를 받고 귀한 보물을 잔뜩 가지고 찾아와 조공을 바치며 일본의 속국을 자처했다는 식으로 써놨는데(...), 한창 전성기를 구가하던 나라가 생판 남인 외국에게 갑자기 아무 이유도 없이 벌벌 기면서 찾아와 속국을 자처할 이유가 있겠는가? 현대인 입장에서는 바보가 아닌 다음에야 믿을 이유가 없을 정도로 개연성이 낮다. 자기네가 근초고왕과 그 아들인 근구수왕에게 막대한 영토를 하사했다느니 하는 등등 다른 부분의 신뢰성 또한 마찬가지로 한없이 낮다.
고대 백제어가 일본어에 영향을 주었다는 주장도 있다. 일본에서 태어난 김용운 한양대 명예교수는 《 고사기》, 《 만요슈》 등 고문서 고어를 연구하며 백제인이 전해준 이두가 일본 가나 문자의 원형이 됐다고 주장하기도 한다. 이승재 서울대 언어학과 교수는 고대 일본어는 백제 도래인들의 영향을 받았다는 의견을 내기도 했다.
백제어와 일본어의 계통에 대해서는 백제어와 일본어는 별 상관없고 언어동조대 이상도, 이하도 아닌 것이란 쪽이 일단 통설이다.《일본서기》에는 '신라 사람이 표류해왔는데 말이 통하지 않아 백제 출신을 데려와 통역했다.'는 기록도 있으며 백제어 목간이 발굴되며 한국어 수사와 같은 계통이란 게 증명되었고[58] 무엇보다도 당장 일본 기록에서 백제어는 통역이 필요한 외국어라고 떡하니 적혀있다.[59]
다만 백제가 왜국에게 준 영향을 과장해서 "일본은 백제의 속국이었으며 일본의 모든 것은 백제의 표절"라고 주장하거나 반대로 축소해서 "백제는 일본에게 중국 문물을 전달해주는 창구 역할을 하던 속국에 불과하다"고 주장하는 양국의 주장은 둘 다 잘못된 시각들이다.[60] 문화, 기술, 정치, 외교에서 앞서 있었던 건 백제가 맞으나 왜국이 대규모 군대를 보내서 한반도로 파병한 사실을 봐도 단순히 백제나 가야의 속국으로 지배받을 정도로 미약했던 수준은 아니다. 이 시기 왜가 일본 열도를 완전히 통일한 안정적인 중앙집권국가를 세우진 못했지만 일본 열도 내에서는 제일 강력한 세력이었다는 걸 추론할 수 있다.[61][62]고구려-신라와 치열한 생존경쟁을 하고 있었고 한성 지역을 뺏긴 후로는 수세를 면하기 힘들었던 백제에 비하면 왜는 훨씬 유리한 조건 하나를 점하고 있었다.
무엇보다 당시의 유물과 사료에서 보이는 백제와 왜국의 행정 시스템 수준을 보면, 바다 건너 먼 외국에 속국이나 식민지라 부를 정도로 강한 영향력을 유지하는 건 서로 불가능했다. 이 시기엔 양국 다 아직 중국의 행정 시스템[63]을 다 받아들이진 못했고, 한반도와 왜의 국가들은 여전히 이념에 입각한 시스템보다는 왕실과 귀족들간의 혈연에 크게 의존한 폐쇄적인 신분 제도로 통치하던 고대국가들이었다. 만약 거리가 너무 먼 지역을 이런 원시적인 시스템으로 통치한다면 처음 1~2대는 지배가 유지될지 몰라도 금방 관계가 멀어지고 통제에서 벗어나기 마련이다.
여담으로 < 예군 묘지명>을 근거로 일본이라는 국호가 생기는데 백제의 영향이 있었다는 가설이 나오기도 했다.
9. 멸망 이후의 백제인들
나당연합군의 백제 정벌 및 부흥운동 진압, 그리고 신라의 승전으로 결판난 나당전쟁의 결과로 백제는 신라에 복속되었으며 당이나 왜국으로 끌려가거나 망명한 극히 일부를 제외한 나머지 절대 다수의 백제인들은 통일신라의 구성원으로 살아가면서 최종적으로 오늘날 현대 한국인, 더 나아가 한민족의 원류(原類)가 되었다. 다만 통일신라 내에서도 백제인들은 서로 거취를 달리하게 되는데, 결론적으로 꽤 많은 수가 신라의 내지(內地)로 사민되기도 했지만 대다수는 고토(古土)에 잔류해 훗날 후백제 건국에 참여하게 된다.- 통일신라 ➪ 후백제
- 왜국
- 당나라 ➪ 발해
10. 역사귀속과 계승인식
자세한 내용은 백제/역사귀속과 계승의식 문서 참고하십시오.11. 왕조
자세한 내용은 백제/왕조 문서 참고하십시오.12. 인물
시대순 정렬. 이름순에 따른 일람은 백제/인물 문서로. |
- 1세기
- 2세기
- 3세기
-
보과 부인(생몰 미상)
책계왕의 왕비. 대방군(帶方郡) 태수의 딸.
- 4세기
-
우복(?~327년)
비류왕의 배다른 동생. 321년에 내신좌평에 임명되었으나 결국 327년 북한산성에서 반란을 일으켰고 토벌되었다. - 목라근자(생몰 미상)
-
막고해(생몰 미상)
371년에 있었던 고구려와의 전투에서 등장. 백제에 패배한 고구려 고국원왕이 도망가자 "뒤쫓지 마시고 여기서 만족하며 돌아가죠"라는 뜻으로 《도덕경》을 인용한다. 백제가 도교가 전파되었던 국가임을 알 수 있는 근거 중 하나. - 고흥(생몰 미상)
-
아직기(생몰 미상)
학자. 일본에 처음 말을 전파하고, 일본 태자의 스승이 된다. 후에 왕인을 추천하여 왕인이 일본으로 오게 된다. - 왕인(생몰 미상)
- 진무(생몰 미상)
- 진고도(생몰 미상)
- 5세기
-
도미(생몰 미상)
도미 부부 설화의 주인공. - 도림(생몰 미상)
-
재증걸루(생몰 미상)
고구려의 장군. 실은 백제 귀족으로, 고구려에 망명을 했다. 장수왕의 명령으로 백제를 침략하여 개로왕을 잡은 뒤 먼저 절을 한 후 다시 얼굴에 침을 뱉고 목을 배었다고 한다. -
고이만년(생몰 미상)
고구려의 장군. 실은 백제 귀족으로, 재증걸루와 같이 행동했다. -
목협만치(생몰 미상)
목례만치라고도 불린다. 《 삼국사기》에 등장하는 것은 개로왕이 죽은 뒤 조미걸취와 함께 태자 문주를 모시고 남쪽으로 피난간다. 그리고는 문주를 문주왕으로 옹립하여 웅진백제 시대를 연다. 그리고는 기록이 없다. -
해구(?~478년)
문신. 병관 좌평.(최고위 관직인 좌평의 하나로, 군사 업무 관장) 해(解)씨는 8개의 힘있는 성씨인 대성팔족 중의 하나. 해구는 그 중에서 눈에 띄는 권력자였다. 왕이었던 문주왕을 살해했을 정도. 이후 삼근왕을 옹립하였고, 훗날 478년에 대두성에서 반란을 일으켰으나 역관광 당해 처형당했다. -
곤지(생몰 미상)
왕족. 문주왕의 동생이며, 내신 좌평(왕명의 출납을 관장)이었지만 해구에게 살해당했다. -
진남(생몰 미상)
좌평. 진로와 함께 해구의 반란을 진압했다. 진로와 함께 대성팔족 하나인 진(眞)씨 출신 귀족. -
진로(?~497년)
병관 좌평. 진남이 왕명으로 군사 2,000명을 거느리고 해구를 진압하려 갔지만 이기지 못하자 진로가 500명으로 해구를 제압한다. 원래 덕솔(4등급)이었으나 해구의 반란을 진압하고 482년에 병관 좌평까지 올라갔다. -
연신(생몰 미상)
은솔(3등급). 대성팔족(大姓八族) 중의 하나인 연(燕)씨. 해구가 문주왕을 살해한 이후부터 쭉 국정을 맡다가 해구와 같이 반란을 일으킨다. 해구가 잡혀 죽자 혼자 고구려로 도망갔지만, 가족들은 잡혀서 웅진 시장에서 처형당했다.
- 6세기
- 7세기
-
선화공주(생몰 미상)
신라 진평왕의 셋째 딸이자 무왕의 왕비인 동시에 서동설화의 주인공. 그러나 미륵사에서 발견된 기록 때문에 실존했다는 것이 의문시되는 상황이다. 실존했다는 설에 의하면 무왕의 첫째 부인이다. -
사택적덕(생몰 미상)
좌평. 사택왕후의 아버지. 미륵사 탑의 기록에서 나온 인물. -
사택왕후(생몰 미상)
사택적덕의 딸로, 무왕의 왕비. 《 일본서기》에는 의자왕의 어머니가 642년에 죽었다는 기록이 있는데, 사택 왕후가 의자왕의 어머니라는 가정을 하면 642년에 죽었다고 추정할 수도 있다. 미륵사 관련 기록 때문에 선화 공주에 이은 두 번째 부인이라는 추정이 있지만.. 진실은 아무도 모른다. 다만 사택 왕후가 실존한 것은 사실이다. 미륵사 탑의 기록에서 나온 인물. -
사택지적(생몰 미상)
대좌평. 642년 일본에 갔다 왔으며, 654년에 은퇴. 642년의 일본 방문이 의자왕이 부여교기를 쫓아낸 것과 관계가 있다는 추측이 존재. 관련링크. 말년에 사택지적비를 세운 인물. -
부여교기(생몰 미상)
의자왕의 동생. 642년에 (누군지는 정확히는 몰라도) 아버지 무왕의 왕비가 죽자 의자왕은 부여교기와 그를 따르던 신하 40여명을 일본으로 추방한다. 일설에 의하면 부흥군의 풍왕이 이 부여교기였다는 말이 있다. -
성충(?~656년)
문신. 상좌평. 성은 부여. 일명 정충. 백제 3충신. -
윤충(생몰 미상)
장군. 642년 신라의 대야성 등을 빼앗음. 김춘추의 사위 김품석과 딸 고타소를 살해. 그가 부여씨이며, 성충의 동생이라는 것과 누명을 쓰고 파직되어 홧병으로 죽었다는 것은 신채호의 《조선상고사》에만 나오는 기록이다. -
아비지(생몰 미상)
건축 엔지니어. 645년에 신라로 건너가서 황룡사 9층 목탑을 건설했다. -
의직(?~660년)
백제의 장군. 의자왕 시기인 647년에 신라를 쳐서 전공을 세우다가 희대의 먼치킨 김유신과 붙어서 패배한다. 이듬해인 648년에 신라를 쳐서 10여 성을 습격하여 빼앗았으나 옥문곡으로 진격하다가 김유신에게 또 걸려서 대패하였다. 김유신이 백제 장수 8명을 사로잡자 김춘추는 이들과 자신의 딸과 사위의 유골을 교환하였다. 훗날 좌평이 되어 660년에 나당 연합군과 기벌포에서 2만명을 이끌고 싸우다가 소정방의 13만에게 패해 전사하였다. 운이 좀 부족했던 인물...(...) -
흥수(생몰 미상)
문신. 성충과 함께 의자왕에게 정신 좀 차리라고 하다가 유배. 백제 3충신. - 계백(612년~660년)
-
예식진(615년~672년)
장군. 의자왕을 당나라에 바친 매국노. - 풍왕(생몰 미상)
-
도침(?~661년)
승려. 부흥군이었으나 복신에게 제거당했다. -
복신(?~663년)
왕족. 성은 부여. 부흥군으로 유명하나, 도침과 반목하다가 도침을 죽인다. 결국은 풍왕까지 제거하려다 역관광당하고 잡혀서 목이 베인다. 의외로 풍왕이 믿고 의지했었는지 복신의 처형을 망설였다는 기록이 있다. -
덕집득(생몰 미상)
달솔. 풍왕을 모시는 부흥군의 한 명. 복신이 풍왕을 죽이려다가 역으로 잡혔는데, 풍왕이 마음이 약해서 복신을 죽일지 망설이자 덕집득이 죽이라고 의견을 제시했다. 그러자 복신이 덕집득에게 침을 뱉고 "이 썩은 개 못난 노예 놈"이라고 욕을 했다는 기록이 《 일본서기》에 있다. - 흑치상지(630년~689년)
-
충상(생몰 미상)
좌평. <김유신 열전>에 처음으로 등장하는 인물로 황산벌에서 계백의 부장으로 출전하여 20여명의 부하와 함께 항복하였다. 후에 백제 부흥 운동이 일어나자 길앞잡이 노릇을 하며 출전하였다가 패배하였고 이로 인해 문책을 받았다. -
융왕(615년~682년)
왕족. 성은 부여. 웅진 도독으로 왕을 자처하나 실패로 끝났다. -
지수신(생몰 미상)
임존성의 부흥군. 배신한 흑치상지 등이 당나라 편에 붙어 공격해오자 포기하고 고구려로 망명갔다. -
사타상여(생몰 미상)
백제 부흥군에 속해 있었으나 흑치상지와 함께 부흥군이 실패로 끝나게 되자 당나라에 붙었다.
13. 백제부흥운동
자세한 내용은 백제부흥운동 문서 참고하십시오.14. 백제/문화재
14.1. 유물
- 공주 의당 금동보살입상
- 무령왕 금귀걸이
- 무령왕 금제 관식
- 무령왕 금제 뒤꽂이
- 무령왕릉 청동거울 일괄
- 무령왕 발받침
- 무령왕비 금귀걸이
- 무령왕비 금목걸이
- 무령왕비 금제 관식
- 무령왕비 베개
- 무령왕비 은팔찌
- 반가사유상[88]
- 백제금동대향로
- 부여 군수리 석조여래좌상
- 부여 규암리 금동관음보살입상
- 부여 능산리사지 석조사리감
- 부여 쌍북리 출토 목간
- 부여 왕흥사지 출토 사리기
- 사택지적비
- 익산 왕궁리 오층석탑 사리장엄구
- 칠지도
- 태안 동문리 마애삼존불입상
14.2. 유적
- 공산성
- 몽촌토성
- 무령왕릉
- 미륵사지
- 백제역사유적지구
- 벽골제
- 부소산성
- 부여 나성
- 부여 왕릉원
- 서울 가락동-방이동 고분군
- 석촌동 고분군
- 송산리 고분군
- 쌍릉
- 왕궁리 유적
- 정림사지
- 풍납토성
- 수촌리 고분군
- 대통사
- 능안골 고분군
- 정지산 유적
14.3. 백제와 관련한 일본의 유물·유적
15. 현대 창작물
- 삼국기[89]
- 계백
- 근초고왕
- 서동요
- 황산벌
- 바람의 나라(게임) ( 백제(바람의 나라))
- 삼천 망국의 꽃
- 제왕의 딸 수백향
- 천년지애
- 역적전[90]
- 비흔[91]
- 천년의 신화
- 천년의 신화 2
- 불새/태양 편[92]
- 백제의 이름을 잇다[93]
- 명농전[94]
- 온새미로
- 한국사 RPG - 난세의 영웅
16. 같이 보기
17. 관련 사서
송서(宋書)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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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3권 「무제기(武帝紀)」 | 4권 「소제기(少帝紀)」 | 5권 「문제기(文帝紀)」 | |
유유(劉裕) | 유의부 | 유의륭 | ||
6권 「효무제기(孝武帝紀)」 | 7권 전폐제기(前廢帝紀)」 | 8권 「명제기(明帝紀)」 | ||
유준(劉駿) | 유자업 | 유욱(劉彧) | ||
9권 「후폐제기(後廢帝紀)」 | 10권 「순제기(順帝紀)」 | |||
유욱(劉昱) | 유준(劉準) | |||
※ 11권 ~ 40권은 志에 해당.
송서 문서 참고
}}}}}}}}}}}} - [ 열전(列傳) ]
- ||<-6><tablewidth=100%><tablebgcolor=#3f51ba> 41권 「후비전(后妃傳)」 ||
조안종 · 소문수 · 장애친 · 장궐 · 사마무영 · 호도안 · 원제규 · 노혜남 · 왕헌원 · 하영완 · 심용희 · 왕정풍 · 진묘등 · 강간규 · 진법용 · 사범경 42권 「유목지등전(劉穆之等傳)」 43권 「서선지등전(徐羨之等傳)」 44권 「사회전(謝晦傳)」 유목지 · 왕홍 서선지 · 부량 · 단도제 사회 45권 「왕진악등전(王鎮惡等傳)」 46권 「조륜지등전(趙倫之等傳)」 47권 「유회숙등전(劉懷肅等傳)」 왕진악 · 단소 · 상정 · 유회신 · 유수 조륜지 · 왕의 · 장소 유회숙 · 맹회옥 , 맹용부, · 유경선 · 단지 48권 「주령석등전(朱齡石等傳)」 49권 「손처등전(孫處等傳)」 50권 「호번등전(胡藩等傳)」 주령석 · 모수지 · 부홍지 손처 · 괴은 · 유종 · 우구진 호번 · 유강조 · 원호지 · 장흥세 51권 「종실전(宗室傳)」 유도린 · 유도규 · 유준고 52권 「유열등전(庾悅等傳)」 53권 「장무도등전(張茂度等傳)」 54권 「공계공등전(孔季恭等傳)」 유열 · 왕탄 · 사경인(1) · 원담 · 저숙도(2) 장무도(3) , 장영, · 유등지 , 유병지, · 사방명 · 강이 공계공 · 양현보 · 심담경 55권 「장도등전(臧燾等傳)」 56권 「사첨등전(謝瞻等傳)」 57권 「채곽전(蔡廓傳)」 장도 · 서광 · 부륭 사첨 · 공림지 채곽 58권 「왕혜등전(王惠等傳)」 59권 「은순등전(殷淳 等傳)」 60권 「범태등전(范泰等傳)」 왕혜 · 사홍미 · 왕구 은순 · 장창 · 하언 · 강지연 범태 · 왕준지 · 왕소지 · 순백자 61권 「무삼왕전(武三王傳)」 유의진 · 유의공 · 유의계 62권 「양흔등전(羊欣等傳)」 63권 「왕화등전(王華等傳)」 64권 「정선지등전(鄭鮮之等傳)」 양흔 · 장부 · 왕미 왕화 · 왕담수 · 은경인 · 심연지 정선지 · 배송지 · 하승천 65권 「길한등전(吉翰等傳)」 66권 「왕경홍등전(王敬弘等傳)」 67권 「사령운전(謝靈運傳)」 길한 · 유도산 · 두기 · 신념 왕경홍(4) · 하상지 사령운 68권 「무이왕전(武二王傳)」 유의강 · 유의선 69권 「유담등전(劉湛等傳)」 70권 「원숙전(袁淑傳)」 71권 「서담지등전(徐湛之等傳)」 유담 · 범엽 원숙 서담지 · 강담 · 왕승작 72권 「문구왕전(文九王傳)」 유삭 · 유굉 · 유창 · 유휴인 · 유휴우 · 유휴업 · 유휴천 · 유이부 · 유휴약 73권 「안연지전(顏延之傳)」 74권 「장질등전(臧質等傳)」 75권 「왕승달등전(王僧達等傳)」 안연지 장질 · 노상 · 심유지 왕승달 · 안준 76권 「주수지등전(朱脩之等傳)」 77권 「유원경등전(柳元景等傳)」 78권 「소사화등전(蕭思話等傳)」 주수지 · 종각 · 왕현모 유원경 · 안사백 · 심경지 소사화 · 유연손 79권 「문오왕전(文五王傳)」 유탄 · 유위 · 유혼 · 유휴무 · 유휴범 80권 「효무십사왕전(孝武十四王傳)」 유자상 · 유자훈 · 유자방 · 유자욱 · 유자란 · 유자인 · 유자진 · 유자원 · 유자우 · 유자맹 · 유자운 · 유자사(劉子師) · 유자소 · 유자사(劉子嗣) · 유찬 81권 「유수지등전(劉秀之等傳)」 82권 「주랑등전(周朗等傳)」 83권 「종월등전(宗越等傳)」 유수지 · 고침 · 고기지 주랑 · 심회문 종월 · 오희 · 황회 84권 「등완등전(鄧琬等傳)」 85권 「사장등전(謝莊等傳)」 86권 「은효조등전(殷孝祖等傳)」 등완 · 원의 · 공기(孔覬) 사장 · 왕경문(5) 은효조 · 유면 87권 「소혜개등전(蕭惠開等傳)」 88권 「설안도등전(薛安都等傳)」 89권 「원찬전(袁粲傳)」 소혜개 · 은염 설안도 · 심문수 · 최도고 원찬 90권 「명사왕전(明四王傳)」 유우 · 유홰 · 유숭 · 유희 91권 「효의전(孝義傳)」 공영 · 유유(劉瑜) · 가은 · 곽세도 · 자원평 · 엄세기 · 오규 · 반종 · 장진지 · 왕팽 · 장공 · 서경 · 손법종 · 범숙손 · 복천여 · 허소선 · 여제민 · 손극 · 하자평 92권 「양리전(良吏傳)」 왕진지 · 두혜도 · 서활 · 육휘 · 완장지 · 강병지 · 왕흠지 93권 「은일전(隱逸傳)」 대옹 · 종병 · 주속지 · 왕홍지 · 완만영 · 공순지 · 유응지 · 공기(龚祈) · 적법사 · 도잠 · 종욱지 · 심도건 · 곽희림 · 뇌차종 · 주백년 · 왕소 · 관강지 94권 「은행전(恩倖傳)」 대법흥 · 완전부 · 왕도륭 · 양운장 95권 「삭로전(索虜傳)」 96권 「선비토욕혼(鮮卑吐谷渾)」 삭로 토욕혼 97권 「이만전(夷蠻傳)」 임읍국 · 부남국 · 가라타국 · 가라단국 · 반황국 · 반달국 · 사파파달국 · 사자국 · 가비려국 · 고구려 · 백제국 · 왜국 · 형옹주만 · 예주만 98권 「저호전(氐胡傳)」 99권 「이흉전(二凶傳)」 구지 · 저거몽손 유소(劉劭) · 유준(劉濬) 100권 「자서전(自序傳)」 심약 (1) 본명이 사유(謝裕)로 유유의 휘를 범하여 자인 경인(景仁)으로 표기되었다.
(2)본명이 저유지(褚裕之)로 유유의 휘를 범하여 자인 숙도(叔度)로 표기되었다.
(3) 본명이 장유(張裕)로 유유의 휘를 범하여 자인 무도(茂度)로 표기되었다.
(4) 본명이 왕유지(王裕之)로 유유의 휘를 범하여 자인 경홍(敬弘)으로 표기되었다.
(5) 본명이 왕욱(王彧)으로 유욱의 휘를 범하여 자인 경문(景文)으로 표기되었다.||<tablealign=center><tablebordercolor=#3f51ba><tablebgcolor=#3f51ba> ||
주서(周書) | ||||||||||||
{{{#!wiki style="margin: -0px -10px; margin-top: 0.3px; margin-bottom: -6px" {{{#000 {{{#!wiki style="display: inline-block; min-width:25%" {{{#!folding [ 본기(本紀) ] {{{#!wiki style="margin: -5px -10px; padding: 7px 10px" |
1·2권 「문제기(文帝紀)」 | 3권 「효민제기(孝閔帝紀)」 | 4권 「명제기(明帝紀)」 | |||||||||
우문태 | 우문각 | 우문육 | ||||||||||
5·6권 「무제기(武帝紀)」 | 7권 「선제기(宣帝紀)」 | 8권 「정제기(靜帝紀)」 | ||||||||||
우문옹 | 우문윤 | 우문천 | ||||||||||
}}}}}}}}} {{{#!wiki style="display: inline-block; min-width:25%" {{{#!folding [ 열전(列傳) ] |
9권 「후비전(后妃傳)」 | |||||||||||
원씨 · 질노씨 · 원호마 · 독고황후 · 아사나 · 이아자 · 양려화 · 주만월 · 진월의 · 원락상 · 울지치번 · 사마영희 | ||||||||||||
10권 「소혜공호등전(邵惠公顥等傳)」 | 11권 「진탕공호전(晉蕩公護傳)」 | 12권 「제양왕헌전(齊煬王憲傳)」 | ||||||||||
우문호(顥) · 우문련 · 우문낙생 · 우문중 | 우문호(護) | 우문헌 | ||||||||||
13권 「문민명무선제자전(文閔明武宣諸子傳)」 | ||||||||||||
우문진 · 우문직 · 우문초 · 우문검 · 우문순 · 우문성 · 우문달 · 우문통 · 우문형 · 우문강 · 우문현 · 우문정 · 우문식 · 우문찬 · 우문지 · 우문윤(允) · 우문충 · 우문태(兌) · 우문원 · 우문연(衍) · 우문술 | ||||||||||||
14권 「하발승등전(賀拔勝等傳)」 | 15권 「구락등전(寇洛等傳)」 | |||||||||||
하발승 · 염현 | 구락 · 이필 · 우근 | |||||||||||
16권 「조귀등전(趙貴等傳)」 | 17권 「양어등전(梁禦等傳)」 | |||||||||||
조귀 · 독고신 · 후막진숭 | 양어 · 약간혜 · 이봉 · 유량 · 왕덕 | |||||||||||
18권 「왕비등전(王羆等傳)」 | 19권 「달해무등전(達奚武等傳)」 | |||||||||||
왕비 · 왕사정 | 달해무 · 후막진순 · 두로녕 · 우문귀 · 양충 · 왕웅 | |||||||||||
20권 「왕맹등전(王盟等傳)」 | 21권 「울지형등전(尉遲迥等傳)」 | |||||||||||
왕맹 · 하란상 · 울지강 · 질열복귀 · 염경 | 울지형 · 왕겸 · 사마소난 | |||||||||||
22권 「주혜달등전(周惠達等傳)」 | 23권 「소작전(蘇綽傳)」 | 24권 「노변전(盧辯傳)」 | ||||||||||
주혜달 · 양관 · 류경 | 소작 | 노변 | ||||||||||
25권 「이현전(李賢傳)」 | 26권 「장손검등전(長孫儉等傳)」 | |||||||||||
이현 | 장손검 · 장손소원 · 곡사징 | |||||||||||
27권 「혁련달등전(赫連達等傳)」 | 28권 「사녕등전(史寧等傳)」 | |||||||||||
혁련달 · 한과 · 채우 · 상선 · 신위 · 사적창 · 전홍 · 양춘 · 양대 · 우문측 | 사녕 · 육등 · 하약돈 · 권경선 | |||||||||||
29권 「왕걸등전(王傑等傳)」 | ||||||||||||
왕걸 · 왕용 · 우문규 · 우문성 · 경호 · 고림 · 이화 · 이루목 · 양소 · 왕아 · 달해식 · 유웅 · 후식 | ||||||||||||
30권 「두치등전(竇熾等傳)」 | 31권 「위효관등전(韋孝寬等傳)」 | |||||||||||
두치 · 우익 | 위효관 · 위형 · 양사언 | |||||||||||
32권 「신휘등전(申徽等傳)」 | 33권 「사적치등전(厙狄峙等傳)」 | |||||||||||
신휘 · 육통 · 류민 · 노유 · 당근 | 사적치 · 양천 · 조강 · 왕경 · 조창 · 왕열 · 배문표 | |||||||||||
34권 「조선등전(趙善等傳)」 | 35권 「정효목등전(鄭孝穆等傳)」 | |||||||||||
조선 · 원정 · 양표 · 배관 · 양부 | 정효목 · 최겸 · 최유 · 배협 · 설단 · 설선 | |||||||||||
36권 「정위등전(鄭偉等傳)」 | 37권 「구준등전(寇儁等傳)」 | |||||||||||
정위 · 양찬 · 단영 · 왕사량 · 최언목 · 영호정 · 사마예 · 배과 | 구준 · 한포 · 조숙 · 장궤 · 이언 · 곽언 · 배문거 | |||||||||||
38권 「소량등전(蘇亮等傳)」 | 39권 「위진등전(韋瑱等傳)」 | |||||||||||
소량 · 류규 · 여사례 · 설징 · 설치 · 이창 · 원위 | 위진 · 양흔 · 황보번 · 신경지 · 왕자직 · 두고 | |||||||||||
40권 「울지운등전(尉遲運等傳)」 | 41권 「왕포등전(王襃等傳)」 | |||||||||||
울지운 · 왕궤 · 우문신거 · 우문효백 · 안지의 | 왕포 · 유신 | |||||||||||
42권 「소휘등전(蕭撝等傳)」 | 43권 「이연손등전(李延孫等傳)」 | |||||||||||
소휘 · 소세이 · 소원숙 · 소대환 · 종름 · 유번 · 류하 | 이연손 · 위우 · 한웅 · 진흔 · 위현 | |||||||||||
44권 「천기등전(泉企等傳)」 | 45권 「유림전(儒林傳)」 | |||||||||||
천기 · 이천철 · 양건운 · 부맹 · 양웅 · 석고 · 임과 | 노탄 · 노광 · 심중 · 번심 · 웅안생 · 악손 | |||||||||||
46권 「효의전(孝義傳)」 | ||||||||||||
이당 · 류회 · 두숙비 · 형가 · 진족 · 황보하 · 장원 | ||||||||||||
47권 「예술전(藝術傳)」 | 48권 「소찰전(蕭詧傳)」 | |||||||||||
기준 · 장승 · 요승원 · 여경희 · 조문심 · 저해 | 소찰 | |||||||||||
49·50권 「이역전(異域傳)」 | ||||||||||||
고구려 ·
백제 ·
만족(蠻) ·
요족(獠) ·
탕창 ·
등지 ·
백란 ·
저족 ·
계호 ·
고막해 ·
돌궐 ·
토욕혼 ·
고창 ·
선선 ·
언기 ·
구차 ·
우전 ·
엽달 속특 · 안식국 · 파사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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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iki style="margin: -0px -10px; margin-top: 0.3px; margin-bottom: -6px" {{{#fff {{{#!wiki style="display: inline-block; min-width:25%" {{{#!folding [ 본기(本紀) ] {{{#!wiki style="margin-bottom: -15px" |
1·2·3권 「무제기(武帝紀)」 | 4권 「간문제기(簡文帝紀)」 | 5권 「원제기(元帝紀)」 | 6권 「경제기(敬帝紀)」 |
소연 | 소강 | 소역 | 소방지 | |
7권 「황후기(皇后紀)」 | ||||
장상유 · 치휘 · 왕영빈 · 정영광 · 완영영 · 서소패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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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열전(列傳) ]
- ||<-2><tablewidth=100%><tablebgcolor=#00c499> 8권 「소명태자등전(昭明太子等傳)」 ||<-2> 9권 「왕무등전(王茂等傳)」 ||<-2> 10권 「소영달등전(蕭穎達等傳)」 ||
소통 · 소대기 · 소방구 왕무 · 조경종 · 유경원 소영달 · 하후상 · 채도공 · 양공칙 · 등원기 11권 「장홍책등전(張弘策等傳)」 12권 「유담등전(柳惔等傳)」 13권 「범운등전(范雲等傳)」 장홍책 유역 · 정소숙 · 여승진 유담 · 석천문 · 위예 범운 · 심약 14권 「강엄등전(江淹等傳)」 15권 「사비전(謝朏傳)」 16권 「왕량등전(王亮等傳)」 강엄 · 임방 사비 , 사람, 왕량 · 장직 · 왕형 17권 「왕진국등전(王珍國等傳)」 18권 「장혜소등전(張惠紹等傳)」 19권 「종쾌등전(宗夬等傳)」 왕진국 · 마선병 · 장제 장혜소 · 풍도근 · 강현 · 창의지 종쾌 · 유탄 · 악애 20권 「유계련등전(劉季連等傳)」 21권 「왕첨등전(王瞻等傳)」 유계련 · 진백지 왕첨 · 왕지 · 왕준 · 왕간 , 왕훈, · 왕태· 왕빈· 장충· 유운 · 채준· 강천 22권 「태조오왕전(太祖五王傳)」 23권 「소업등전(蕭業等傳)」 24권 「소경전(蕭景傳)」 소굉 · 소수 · 소위 · 소회 · 소담 소업 · 소백유 · 소원간 · 소상 소경 , 소창 소앙 소욱, 25권 「주사등전(周捨等傳)」 26권 「범수등전(范岫等傳)」 27권 「육수등전(陸倕等傳)」 주사 · 서면 범수 · 부소 · 소침 · 육고 육수 · 도흡 · 명산빈· 은균· 육양 28권 「배수등전(裴邃等傳)」 29권 「고조삼왕전(高祖三王傳)」 30권 「배자야등전(裴子野等傳)」 배수 · 하후단 · 위방 소적 · 소속 · 소윤 배자야 · 고협 · 서리 · 포천 31권 「원앙전(袁昻傳)」 32권 「진경지등전(陳慶之等傳)」 33권 「왕승유등전(王僧孺等傳)」 원앙 진경지 · 난흠 왕승유 · 장솔 · 유효작 · 왕균 34권 「장면전(張緬傳)」 35권 「소자각전(蕭子恪傳)」 36권 「공휴원등전(孔休源等傳)」 장면 , 장찬 장관, 소자각 , 소자범 소자현 소자운, 공휴원 · 강혁 37권 「사거등전(謝擧等傳)」 38권 「주이등전(朱異等傳)」 사거 · 하경용 주이 · 하침 39권 「원법승등전(元法僧等傳)」 40권 「사마경등전(司馬褧等傳)」 원법승 , 원수 원원달, · 왕신념 · 양간 · 양아인 사마경 · 도개 · 유현 · 유지린 · 허무 41권 「왕규등전(王規等傳)」 왕규 · 왕승 · 저상 · 소개 · 저구 · 유유 · 유잠 · 은운 · 소기(幾) 42권 「장순등전(臧盾等傳)」 43권 「위찬등전(韋粲等傳)」 장순 · 부기 위찬 · 강자일 · 장승 · 심준(浚) · 유경례 44권 「태종십일왕・세조이자전(太宗十一王・世祖二子傳)」 소대련 · 소대심 · 소대림 · 소대춘 · 소대아 · 소대장 · 소대균 · 소대위 · 소대구 · 소대흔 · 소대지 · 소방등 · 소방제 45권 「왕승변전(王僧辯傳)」 46권 「호승우등전(胡僧祐等傳)」 왕승변 호승우 · 서문성 · 두즉 · 음자춘 47권 「효행전(孝行傳)」 등담공 · 심숭소 · 순장 · 유검루 · 길분 · 견염 · 한회명 · 유담정 · 하형 · 유사미 · 강부 · 유제 · 저수 · 사린 48권 「유림전(儒林傳)」 복만용 · 하동지 · 범진 · 엄식지· 하창 · 사마균 · 변화 · 최령은 · 공첨 · 노광 · 심준(峻) · 태사숙명 · 공자거· 황간 49·50권 「문학전(文學傳)」 도항 · 구지 · 유포 · 원준 · 유어릉 · 유소(昭) · 하손 · 종영 · 주흥사 · 오균 · 유어릉 · 유준 · 유소(沼) · 사기경 · 유협 · 왕적 · 하사징 · 유묘 · 사징 · 장엄 · 복정 · 유중용 · 육운공 · 임효공 · 안협 51권 「처사전(處士傳)」 하점 , 하윤, · 완효서 · 도홍경 · 제갈거 · 심의 · 유혜비 · 범원염 · 유우 · 유효 · 유선 · 장효수 · 유승선 52권 「지족전(止足傳)」 53권 「양리전(良吏傳)」 고헌지 · 도계직 · 소시소 유필 · 심우 · 범술증 · 구중부 · 손겸 · 복환 · 하원 54권 「제이전(諸夷傳)」 임읍 · 부남· 반반국 · 단단국 · 간타리국 · 낭아수국· 파리국 · 중천축국 · 사자국 · 고구려· 백제 · 신라 · 왜 · 문신국· 대한국 · 부상국 · 하남왕국 · 고창· 활국 · 주고가국 · 아발단국 · 호밀단국· 백제 · 쿠처 · 우전국· 갈반타국 · 저말국 · 파사국 · 탕창국· 등지 · 무흥국 · 예예국 55권 「소종등전(蕭綜等傳)」 소종 · 소기(紀) · 소정덕 · 소예 56권 「후경전(侯景傳)」 후경 , 왕위, ||<tablealign=center><tablebordercolor=#00c499><tablebgcolor=#00c499> ||
위서(魏書) | |||||||
{{{#!wiki style="margin: -0px -10px; margin-top: 0.3px; margin-bottom: -6px" {{{#f5cfd6 {{{#!wiki style="display: inline-block; min-width:25%" {{{#!folding [ 제기(帝紀) ] {{{#!wiki style="margin: -5px -10px; padding: 7px 10px" |
1권 「서기(序記)」 | 2권 「태조기(太祖紀)」 | 3권 「태종기(太宗紀)」 | ||||
탁발부 · 대나라 | 탁발규 | 탁발사 | |||||
4권 「세조·공종기(世祖恭宗紀)」 | 5권 「고종기(高宗紀)」 | 6권 「현조기(顯祖紀)」 | |||||
탁발도 · 탁발황 | 탁발준(浚) | 탁발홍 | |||||
7권 「고조기(高祖紀)」 | 8권 「세종기(世宗紀)」 | 9권 「숙종기(肅宗紀)」 | |||||
원굉 | 원각 | 원후 | |||||
10권 「효장제기(孝莊帝紀)」 | 11권 「폐출삼제기(廢出三帝紀)」 | 12권 「효정제기(孝靜帝紀)」 | |||||
원자유 | 원공 · 원랑 · 원수 | 원선견 | |||||
}}}}}}}}} {{{#!wiki style="display: inline-block; min-width:25%" {{{#!folding [ 열전(列傳) ] |
13권 「황후전(皇后傳)」 | ||||||
신원황후 ·
봉황후 ·
기황후 ·
평문황후 ·
소성황후 ·
헌명황후 ·
도무황후 ·
도무선목황후 ·
명원소애황후 ·
밀황후 ·
태무황후 ·
경애황후 경목공황후 · 문성문명황후 · 문성원황후 · 헌문사황후 · 효문정황후 · 풍폐후 · 효문유황후 · 효문소황후 · 선무순황후 · 선무황후 · 선무영황후 효명황후 · 효정황후 |
|||||||
14권 「신원·평문제제자손전(神元平文諸帝子孫傳)」 | |||||||
탁발흘라 ,
탁발제, ·
탁발영문 ·
탁발육 ·
탁발인 ·
탁발수낙 ·
탁발퇴 ·
탁발소연 ·
탁발욱 ·
탁발목진 ·
탁발육수 ·
탁발비간 ·
탁발여 ·
탁발고 탁발돈 · 탁발석 · 탁발위 · 탁발대두 · 탁발제 · 탁발처진 · 탁발니 |
|||||||
15권 「소성자손전(昭成子孫傳)」 | 16권 「도무7왕전(道武七王傳)」 | ||||||
탁발식군 ·
탁발한 ·
탁발준(遵) ·
탁발건(虔) ·
탁발순 ·
탁발의열 탁발굴돌 |
탁발소 · 탁발희 · 탁발요 · 탁발수 · 탁발처문 · 탁발연 · 탁발려(黎) | ||||||
17권 「명원6왕전(明元六王傳)」 | 18권 「태무5왕전(太武五王傳)」 | ||||||
탁발비 · 탁발미 · 탁발범 · 탁발건(健) · 탁발숭 · 탁발준(俊) | 탁발복라 · 탁발한 · 탁발담 · 탁발건(建) · 탁발여(余) | ||||||
19권 「경목12왕전(敬穆十二王傳)」 | |||||||
탁발신성 · 탁발자추 · 탁발소신성 · 탁발천사 · 탁발만수 · 탁발낙후 · 탁발운 · 탁발정 · 탁발장수 · 탁발태락 · 탁발호아 · 탁발휴 | |||||||
20권 「문성5왕전(文成五王傳)」 | 21권 「헌문6왕전(獻文六王傳)」 | ||||||
탁발장락 · 탁발략(略) · 탁발간(簡) · 탁발약(若) · 탁발맹 | 원희 · 원간(幹) · 원우 · 원옹 · 원상 · 원협 | ||||||
22권 「효문5왕전(孝文五王傳)」 | 23권 「위조등전(衛操等傳)」 | 24권 「연봉등전(燕鳳等傳)」 | |||||
원순 · 원유 · 원역 · 원회 · 원열 | 위조 · 막함 · 유고인 | 연봉 · 허겸 · 장곤 · 최현백 · 등연 | |||||
25권 「장손숭등전(長孫嵩等傳)」 | 26권 「장손비등전(長孫肥等傳)」 | 27권 「목숭전(穆崇傳)」 | |||||
장손숭 · 장손도생 | 장손비 · 울고진 | 목숭 | |||||
28권 「화발등전(和跋等傳)」 | 29권 「해근등전(奚斤等傳)」 | ||||||
화발 · 해목 · 막제 · 유업연 · 하적간 · 이율 · 유결 · 고필 · 장려 | 해근 · 숙손건 | ||||||
30권 「왕건등전(王建等傳)」 | |||||||
왕건 · 안동 · 누복련 · 구퇴 · 아청 · 유니 · 해권 · 차이락 · 숙석 · 내대천 · 주기 · 두대전 · 주관 · 염대비 · 울발 · 육진 · 여락발 | |||||||
31권 「우율제전(于栗磾傳)」 | 32권 「고호등전(高湖等傳)」 | ||||||
우율제 | 고호 · 최영 · 봉의 | ||||||
33권 「송은등전(宋隱等傳)」 | |||||||
송은 · 왕헌 · 굴준 · 장포 · 곡혼 · 공손표 · 장제 · 이선 · 가이 · 설제 | |||||||
34권 「왕낙아등전(王洛兒等傳)」 | 35권 「최호전(崔浩傳)」 | 36권 「이순전(李順傳)」 | |||||
왕낙아 · 거로두 · 노노원 · 진건 · 만안국 | 최호 | 이순 | |||||
37권 「사마휴지등전(司馬休之等傳)」 | 38권 「조옹등전(刁雍等傳)」 | 39권 「이보전(李寶傳)」 | |||||
사마휴지 ·
사마초지 ·
사마경지 ·
사마숙번 사마천조 |
조옹(刁雍) · 왕혜룡 · 한연지 · 원식 | 이보 | |||||
40권 「육사전(陸俟傳)」 | 41권 「원하전(源賀傳)」 | 42권 「설변등전(薛辯等傳)」 | |||||
육사 | 원하 | 설변 · 구찬 · 역범 · 한수 · 요훤 | |||||
43권 「엄릉등전(嚴棱等傳)」 | 44권 「나결등전(羅結等傳)」 | ||||||
엄릉 · 모수지 · 당화 · 유휴빈 · 방법수 | 나결 · 이발 · 을괴 · 화기노 · 순퇴 · 설야저 · 우문복 · 비우 · 맹위 | ||||||
45권 「위랑등전(韋閬等傳)」 | 46권 「두근등전(竇瑾等傳)」 | 47권 「노현전(盧玄傳)」 | |||||
위랑 · 두전 · 배준 · 신소선 · 유숭 | 두근 · 허언 · 이흔 | 노현 | |||||
48권 「고윤전(高允傳)」 | 49권 「이령등전(李靈等傳)」 | 50권 「울원등전(尉元等傳)」 | |||||
고윤 | 이령 · 최감 | 울원 · 모용백요 | |||||
51권 「한무등전(韓茂等傳)」 | |||||||
한무 · 피표자 · 봉칙문 · 여나한 · 공백공 | |||||||
52권 「조일등전(趙逸等傳)」 | |||||||
조일 · 호방회 · 호수 · 송요 · 장담 · 종흠 · 단승근 · 감인 · 유병 · 조유 · 색창 · 음중달 | |||||||
53권 「이효백등전(李孝伯等傳)」 | 54권 「유아등전(游雅等傳)」 | 55권 「유명근등전(游明根等傳)」 | |||||
이효백 · 이형 | 유아 · 고려 | 유명근 · 유방 | |||||
56권 「정희등전(鄭羲等傳)」 | 57권 「고우등전(高祐等傳)」 | 58권 「양파전(楊播傳)」 | |||||
정희 · 최변 | 고우 · 최정 | 양파 | |||||
59권 「유창등전(劉昶等傳)」 | 60권 「한기린등전(韓麒麟等傳)」 | 61권 「설안도등전(薛安都等傳)」 | |||||
유창 · 소보인 · 소정표 | 한기린 · 정준 | 설안도 · 필중경 · 심문수 · 장당 · 전익종 · 맹표 | |||||
62권 「이표등전(李彪等傳)」 | 63권 「왕숙등전(王肅等傳)」 | 64권 「곽조등전(郭祚等傳)」 | |||||
이표 · 고도열 | 왕숙 · 송변 | 곽조 · 장이 | |||||
65권 「형만등전(邢巒等傳)」 | 66권 「이숭등전(李崇等傳)」 | 67권 「최광전(崔光傳)」 | |||||
형만 · 이평 | 이숭 · 최량 | 최광 | |||||
68권 「견침등전(甄琛等傳)」 | 69권 「최휴등전(崔休等傳)」 | 70권 「유조등전(劉藻等傳)」 | |||||
견침 · 고총 | 최휴 · 배정준 · 원번 | 유조 · 부영 · 부수안 · 이신 | |||||
71권 「배숙업등전(裴叔業等傳)」 | 72권 「양니등전(陽尼等傳)」 | ||||||
배숙업 · 하후도천 · 이원호 · 석법우 · 왕세필 · 강열지 · 순우탄 · 이묘 | 양니 · 가사백 · 이숙호 · 노시경 · 방량 · 조세표 · 반영기 · 주원욱 | ||||||
73권 「해강생등전(奚康生等傳)」 | 74권 「이주영전(爾朱榮傳)」 | 75권 「이주조등전(爾朱兆等傳)」 | |||||
해강생 · 양대안 · 최연백 | 이주영 | 이주조 · 이주언백 · 이주도율 · 이주천광 | |||||
76권 「노동등전(盧同等傳)」 | 77권 「송번등전(宋翻等傳)」 | 78권 「손소등전(孫紹等傳)」 | |||||
노동 · 장열 | 송번 · 신웅 · 양심 · 양기 · 고숭 | 손소(孫紹) · 장보혜 | |||||
79권 「성엄등전(成淹等傳)」 | 80권 「주서등전(朱瑞等傳)」 | ||||||
성엄 · 범소 · 유도부 · 유도빈 · 동소 · 풍원흥 · 녹여 · 장습 | 주서 · 질열연경 · 곡사춘 · 가현도 · 번자곡 · 하발승 · 후막진열 · 후연 | ||||||
81권 「기준등전(綦儁等傳)」 | 82권 「이염지등전(李琰之等傳)」 | ||||||
기준 · 산위 · 유인지 · 우문충지 | 이염지 · 조영 · 상경 | ||||||
83권 「외척전(外戚傳)」 | |||||||
하눌 · 유나신 · 요황미 · 두초 · 하미 · 여비 · 고조 · 우경 · 호국진 · 이연실 | |||||||
84권 「유림전(儒林傳)」 | |||||||
양월 · 노추 · 장위 · 양조 · 평항 · 진기 · 상상 · 유헌지 · 장오귀 · 유란 · 손혜울 · 서준명 · 동징 · 조충 · 노경유 · 이동궤 · 이흥업 | |||||||
85권 「문원전(文苑傳)」 | |||||||
원요 · 배경헌 · 노관 · 봉숙 · 형장 · 배백무 · 형흔 · 온자승 | |||||||
86권 「효감전(孝感傳)」 | |||||||
조염 · 장손려 · 걸복보 · 손익덕 · 동락생 · 양인 · 염원명 · 오실달 · 왕속생 · 이현달 · 장승 · 창발 · 왕숭 · 곽문공 | |||||||
87권 「절의전(節義傳)」 | |||||||
우십문 · 단진 · 석문덕 · 급고 · 왕현위 · 누제 · 유갈후 · 주장생 · 우제 · 마룡팔 · 문문애 · 조청 · 유후인 · 석조흥 · 소홍철 · 왕영세 · 호소호 · 손도등 · 이궤 · 장안조 · 왕려 | |||||||
88권 「양리전(良吏傳)」 | |||||||
장순 · 녹생 · 장응 · 송세경 · 노옹 · 염경윤 · 명량 · 두찬 · 배타 · 두원 · 양돈 · 소숙 | |||||||
89권 「혹리전(酷吏傳)」 | |||||||
우락후 · 호이 · 이홍지 · 고준 · 장사제 · 양지 · 최섬 · 역도원 · 곡해 | |||||||
90권 「일사전(逸士傳)」 | |||||||
휴과 · 풍량 · 이밀 · 정수 | |||||||
91권 「예술전(藝術傳)」 | |||||||
조숭 · 장연 · 은소 · 왕조 · 경현 · 유영조 · 강식 · 주담 · 이숙 · 서건 · 왕현 · 최욱 · 장소유 | |||||||
92권 「열녀전(列女傳)」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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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3권 「은행전(恩倖傳)」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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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4권 「엄관전(閹官傳)」 | |||||||
종애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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왕거 ·
조묵 ·
손소(孫小) ·
장종지 ·
극붕 ·
장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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왕질 ·
이견 ·
진송 ·
백정 ·
유등 ·
가찬 ·
양범 성궤 · 왕온 · 맹란 · 평계 · 봉진 · 유사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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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5권 「유총등전(劉聰等傳)」 | |||||||
유총 · 석륵 · 유하 · 모용외 · 부건 · 요장 · 여광 | |||||||
96권 「사마예등전(司馬叡等傳)」 | 97권 「환현등전(桓玄等傳)」 | 98권 「소도성등전(蕭道成等傳)」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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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9권 「장실등전(張實等傳)」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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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0권 「고구려등전(高句麗等傳)」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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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05권 ~ 114권은 志에 해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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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빈77권 「은일전(隱逸傳)」 이사겸 · 최곽 · 서칙 · 장문후 78권 「예술전(藝術傳)」 유계재 · 노태익 · 경순 · 위정 · 내화 · 소길 · 양백추 · 임효공 · 유우 · 장주현 · 허지장 · 만보상 · 왕영언 79권 「외척전(外戚傳)」 여씨 · 독고라 · 소규 80권 「열녀전(列女傳)」 난릉공주 · 남양공주 · 초국부인 81권 「동이전(東夷傳)」 고려 · 백제 · 신라 · 말갈 · 유구국 · 왜국 82권 「남만전(南蠻傳)」 임읍 · 적토 · 진랍 · 파리 83권 「서역전(西域傳)」 토욕혼 · 당항 · 고창 · 소그드인 · 강국 · 안국 · 석국 · 여국 · 언기 · 구차 · 소륵 · 우전 · 발한 · 토화란 · 읍달 · 미국 · 사국 · 조국 · 하국 · 오나갈 · 목국 · 파사 · 조국 · 부국 84권 「북적전(北狄傳)」 돌궐 · 서돌궐 · 철륵 · 해 · 거란 85권 「우문화급등전(宇文化及等傳)」 우문화급 , 우문지급, , 사마덕감, , 배건통, 왕충 · 단달 ||<tablealign=center><tablebordercolor=#7C4B3B><tablebgcolor=#7C4B3B>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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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자준 · 소자림 · 소자건 · 소자하 · 소소수 · 소소찬 · 소보의 · 소보현 · 소보원 · 소보인 · 소보유 · 소보숭 · 소보정45권 「왕경칙등전(王敬則等傳」 46권 「이안인등전(李安人等傳)」 왕경칙 · 진현달 · 장경아 · 최혜경 이안인 · 대승정 · 환강 · 초도 · 조무 · 여안국 · 주산도 · 주반룡 · 왕광지 47권 「순백옥등전(荀伯玉等傳)」 48권 「육징등전(陸澄等傳)」 순백옥 · 최조사 · 설연 · 우종 · 호해지 · 우완지 · 유휴 · 강석 육징 · 육혜효 · 육궐 49권 「유고지등전(庾杲之等傳)」 50권 「유환등전(劉瓛等傳)」 유고지 · 왕심 · 공규 · 유회진 유환 · 명승소 · 유이 · 유규 51·52권 「양종실전(梁宗室傳)」 소경 , 소매 소발 소앙 소욱, · 소의 · 소부 · 소창 · 소융 · 소굉 , 소정인 소정의 소정덕 소정립, 소수 · 소위 · 소회 · 소담 53권 「양무제자전(梁武帝諸子傳)」 소통 · 소종 · 소적 · 소속 · 소윤 · 소기 54권 「양간문제자·원제제자전(梁簡文帝諸子·元帝諸子傳)」 소대기 · 소대심 · 소대관 · 소대림 · 소대련 · 소대춘 · 소대성 · 소대봉 · 소대아 · 소대장 · 소대균 · 소대위 · 소대훈 · 소대구 · 소대흔 · 소대지 · 소대원 · 소방등 · 소방제 · 소방구 · 소방략 55권 「왕무등전(王茂等傳)」 왕무 · 조경종 · 조의종 · 석천문 · 하후상 · 길사첨 · 채도공 · 양공칙 · 등원기 · 장혜소 · 장징 · 풍도근 · 강현 · 창의지 56권 「장홍책등전(張弘策等傳)」 57권 「심약등전(沈約等傳)」 58권 「위예등전(韋叡等傳)」 장홍책 · 유역 · 정소숙 · 여승진 · 악애 심약 · 범운 위예 · 배수 59권 「강엄등전(江淹等傳)」 60권 「범수등전(范岫等傳)」 61권 「진백지등전(陳伯之等傳)」 강엄 · 임방 · 왕승유 범수 · 부소 · 공휴원 · 강혁 · 서면 · 허무 · 은균 진백지 · 진경지 · 난흠 62권 「하창등전(賀瑒等傳)」 63권 「왕신념등전(王神念等傳)」 64권 「강자일등전( 江子一等傳)」 하창 · 사마경 · 주이 · 고협 · 서리 · 포천 왕신념 · 양간 · 양아인 강자일 · 호승우 · 서문성 · 음자춘 · 두즉 · 왕림 · 장표 65권 「진종실제왕전(陳宗室諸王傳)」 진의 · 진상 · 진혜기 · 진창 · 진담랑 · 진백무 · 진백산 · 진백고 · 진백공 · 진백인 · 진백의 · 진백례 · 진백지 · 진백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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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심 · 진장 · 진윤 · 진억 · 진언 · 진경 · 진건 · 진념 · 진지 · 진전 · 진번66권 「두승명등전(杜僧明等傳)」 두승명 · 주문육 · 후진 · 후안도 · 구양위 · 황법구 · 순우량 · 장소달 · 오명철 67권 「호영등전(胡穎等傳)」 호영 · 서도 · 두릉 · 주철무(1) · 정령세 · 심각 · 육자륭 · 전도집 · 낙문아 · 손창 · 서세보 · 주부 · 순랑 · 주경 · 노실달 · 소마하 · 임충 · 번의 68권 「조지례등전(趙知禮等傳)」 조지례 · 채경력 · 종원요 · 한자고 · 화교 · 유사지 · 사기 · 모희 · 심군리 · 육산재 69권 「심형등전(沈炯等傳)」 심형 · 우려 · 부재 · 고야왕 · 요찰 70권 「순리전(循吏傳)」 길한 · 두기 · 신념 · 두혜도 · 완장지 · 견법숭 · 부염 · 우원 · 왕홍궤 · 심우 · 범술증 · 손겸 · 하원 · 곽조심 71권 「유림전(儒林傳)」 복만용 · 하동지 · 엄식지 · 사마경 · 변화 · 최령은 · 공첨 · 노광 · 심준(峻) · 공자구 · 황간 · 심수 · 척곤 · 정작 · 전완 · 장기 · 고월 · 척곤 · 왕원규 72권 「문학전(文學傳)」 구영국 · 단초 · 변빈 · 구거원 · 왕지심 · 최위조 · 조충지 · 가희경 · 원준 · 유소(昭) · 종영 · 주흥사 · 오균 · 유협 · 하사징 · 임효공 · 안협 · 기소유 · 두지위 · 안황 · 잠지경 · 하지원 · 서백양 · 장정견 · 완탁 73·74권 「효의전(孝義傳)」 공영 · 유유(瑜) · 가은 · 곽세통 · 엄세기 · 오규 · 반종 · 장진지 · 구걸 · 사각수 · 왕팽 · 장공 · 서경 · 손법종 · 범숙손 · 복천여 · 허소선 · 여제인 · 손극 · 하자평 · 최회순 · 왕허지 · 오경지 · 소예명 · 소교처양 · 공손승원 · 오흔지 · 한계백 · 구관선 · 손담 · 화보 · 해숙겸 · 한영민 · 유풍 · 봉연백 · 오달지 · 왕문수 · 악이지 · 손법종 · 유도민 · 등담공 · 도계직 · 심숭소 · 순장 · 길분 · 견염 · 조발호 · 한회명 · 저수 · 장경인 · 도자장 · 성경준 · 이경서 · 사린 · 은불해 · 사마고 · 장소 75·76권 「은일전(隐逸傳)」 도잠 · 종소문 · 심도건 · 공순지 · 주속지 · 대옹 · 적법사 · 뇌차종 · 곽희림 · 유응지 · 공기 · 주백년 · 관강지 · 어부 · 저백옥 · 고환 · 두경산 · 장영서 · 오포 · 서백진 · 심인사 · 완효서 · 등욱 · 도홍경 · 제갈거 · 유혜비 · 범원엽 · 유선 · 장효수 · 유승선 77권 「은행전(恩倖傳)」 대법흥 · 서원 · 완전부 · 기승진 · 유계종 · 여법량 · 여문현 · 여법진 · 주석진 · 육험 · 사마신 · 시문경 · 심객경 · 공범 78·79권 「이맥전(夷貊傳)」 임읍 · 부남 · 중천축국 · 사자국 · 고구려 · 백제국 · 신라 · 왜 · 부상국· 하남왕국 · 탕창 등지 · 무흥국 · 형옹주·예주만 · 고창 · 쿠처 · 우전국 · 파사국 · 연연 80권 「적신전(賊臣傳)」 후경 , 왕위, · 웅담랑 · 주적 · 유이 · 진보응 (1) 본명이 주철호(周鐵虎)로 당태조로 추존된 이호(李虎)를 피휘하여 무(武)로 개칭되었다. ||<tablealign=center><tablebordercolor=#000><tablebgcolor=#000> ||
{{{#!wiki style="margin: -0px -10px; margin-top: 0.3px; margin-bottom: -6px" {{{#ece5b6 {{{#!wiki style="display: inline-block; min-width:25%" {{{#!folding [ 본기(本紀) ] {{{#!wiki style="margin: -5px -10px; padding: 7px 10px" |
1권 「위본기1(魏本紀一)」 | 2권 「위본기2(魏本紀二)」 | 3권 「위본기3(魏本紀三)」 | |||
탁발규 · 탁발사 | 탁발도 · 탁발황 · 탁발준(浚) · 탁발홍 | 원굉 | ||||
4권 「위본기4(魏本紀四)」 | 5권 「위본기5(魏本紀五)」 | |||||
원각 · 원후 | 원자유 · 원공 · 원랑 · 원수 · 원보거 · 원흠 · 원곽 · 원선견 | |||||
6권 「제본기상(齊本紀上)」 | 7권 「제본기중(齊本紀中)」 | 8권 「제본기하(齊本紀下中)」 | ||||
고환 · 고징 | 고양 · 고은 · 고연 | 고담 · 고위 · 고항 | ||||
9권 「주본기상(周本紀上)」 | 10권 「주본기하(周本紀下)」 | |||||
우문태 · 우문각 · 우문육 | 우문옹 · 우문윤 · 우문천 | |||||
11권 「수본기상(隋本紀上)」 | 12권 「수본기하(隋本紀下)」 | |||||
양견 | 양광 · 양유 | |||||
}}}}}}}}}
- [ 열전(列傳) ]
- ||<-4><tablewidth=100%><tablebgcolor=#000000> 13·14권 「후비전(后妃傳)」 ||
신원황후 · 봉황후 · 기황후 · 평문황후 · 소성황후 · 헌명황후 · 도무황후 · 선목황후 · 소애황후 · 명원밀황후 · 태무황후 · 경애황후
울구려황후 · 문명황후 · 문성원황후 · 헌문사황후 · 효문정황후 · 폐후 풍씨 · 효문유황후 · 효문고황후 · 우황후 · 고황후 · 호황후 · 효명황후 · 효무황후 · 문황후 · 도황후 · 우문황후 · 약간황후 · 효정황후 · 누소군 · 원황후 · 이조아 · 원황후 · 호황후 · 곡률황후 · 호황후 · 목야리 · 풍소련 · 원씨 · 질노씨 · 원호마 · 독고황후 · 아사나 · 이아자 · 양려화 · 주만월 · 진월의 · 원락상 · 울지치번 · 사마영희 · 독고가라 · 소황후15권 「위제종실전(魏諸宗室傳)」 탁발흘나 · 탁발영문 · 탁발육 · 탁발인 · 탁발수낙 · 탁발퇴 · 탁발소연 · 탁발욱 · 탁발목신 · 탁발육수 · 탁발비간 · 탁발여 · 탁발고
탁발돈 · 탁발석 · 탁발위 · 탁발대두 · 탁발제 · 탁발처진 · 탁발니 · 탁발식군 · 탁발한 · 탁발준(遵) · 탁발건(健) · 탁발순 · 탁발의열 · 탁발굴돌16권 「도무7왕·명원6왕·태무5왕전(道武七王·明元六王·太武五王傳)」 탁발소 · 탁발희 · 탁발요 · 탁발수 · 탁발처문 · 탁발연 · 탁발려(黎) · 탁발비 · 탁발미 · 탁발범 · 탁발건(健) · 탁발숭 · 탁발준(俊) · 탁발복라 · 탁발한 · 탁발담 · 탁발건(建) · 탁발여(余) 17·18권 「경목12왕전(敬穆十二王傳)」 탁발신성 · 탁발자추 · 탁발소신성 · 탁발천사 · 탁발만수 · 탁발낙후 · 탁발운 · 탁발정 · 탁발장수 · 탁발태락 · 탁발호아 · 탁발휴 19권 「문성5왕·헌문6왕·효문6왕전(文成五王·獻文六王·孝文六王傳)」 탁발장락 · 탁발략(略) · 탁발간(簡) · 탁발약(若) · 탁발맹 · 원희 · 원간(幹) · 원우 · 원옹 · 원상 · 원협 · 원순 · 원유 · 원역 · 원회 · 원열 20권 「위조등전(衛操等傳)」 위조 · 막함 · 유고인 · 울고진 · 목숭 · 해근 · 숙손건 · 안동 · 유업연 · 왕건 · 나결 · 누복련 · 염대비 · 해목 · 화발 · 막제 · 하적간 · 이율 · 해권 21권 「연봉등전(燕鳳等傳)」 22권 「장손숭등전(長孫嵩等傳)」 연봉 · 허겸 · 최굉 · 장곤 · 등언해 장손숭 · 장손도생 · 장손비 23권 「우율제전(于栗磾傳)」 24권 「최영등전(崔逞等傳)」 우율제 최영 · 왕헌 · 봉의 25권 「고필등전(古弼等傳)」 고필 · 장려 · 유결 · 구퇴 · 아청 · 이후 · 을괴 · 주기 · 두대전 · 거이락 · 왕낙아 · 거로두 · 노노원 · 진건 · 내대간 · 숙석 · 만안국
주관 · 울발 · 육진 · 여락발 · 설표자 · 울원 · 모용백요 · 화기노 · 순퇴 · 우문복26권 「송은등전(宋隱等傳)」 송은 · 허언 · 조옹(刁雍) · 신소선 · 위랑 · 두전 27권 「굴준등전(屈遵等傳)」 굴준 · 장포 · 곡혼 · 공손표 · 장제 · 이선 · 가이 · 두근 · 이흔 · 한연지 · 원식 · 모수지 · 당화 · 구찬 · 역범 · 한수 · 요훤 · 유숭 28권 「육사등전(陸俟等傳)」 29권 「사마휴지등전(司馬休之等傳)」 육사 · 원하 · 유니 · 설제 사마휴지 · 유창 · 소보인 · 소정표 28권 「노현등전(盧玄等傳)」 29권 「고윤등전(高允等傳)」 노현 · 노부 고윤 · 고우 · 고덕정 · 고익 · 고앙 32권 「최감등전(崔鑒等傳)」 33권 「이령등전(李靈等傳)」 최감 · 최변 · 최정 이령 · 이순 · 이효백 · 이예 · 이의심 34권 「유아등전(游雅等傳)」 유아 · 고려 · 조일 · 호수 · 호방회 · 장담 · 단승근 · 감인 · 유연명 · 조유 · 색창 · 송요 · 강식 35권 「왕혜룡등전(王慧龍等傳)」 36권 「설변등전(薛辯等傳)」 왕혜룡 · 정희 설변 · 설치 · 설징 37권 「한무등전(韓茂等傳)」 한무 · 피표자 · 봉칙문 · 여나한 · 공백공 · 전익종 · 맹표 · 해강생 · 양대안 · 최연백 · 요훤 · 이숙인 38권 「배준등전(裴駿等傳)」 39권 「설안도등전(薛安都等傳)」 배준 · 배연준 · 배타 · 배과 · 배관 · 배협 · 배문거 · 배인기 설안도 · 유휴빈 · 방법수 · 필중경 · 양지 40권 「한기린등전(韓麒麟等傳)」 41권 「양파등전(楊播等傳)」 한기린 · 정준 · 이표 · 고도열 · 견침 · 장찬 · 고총 양파 · 양부 양소 42권 「왕숙등전(王肅等傳)」 43권 「곽조등전(郭祚等傳)」 44권 「최광등전(崔光等傳)」 왕숙 · 유방(劉芳) · 상상 곽조 · 장이 · 형만 · 이숭 최광 · 최량 45권 「배숙업등전(裴叔業等傳)」 배숙업 · 하후도천 · 이원호 · 석법우 · 왕세필 · 강열지 · 순우탄 · 음중달 · 장당 · 이묘 · 유조 · 부영 · 부수안 · 장열 · 이숙표 · 노시경 · 방량
조세표 · 반영기 · 주원욱46권 「손소등전(孫紹等傳)」 손소(孫紹) · 장보혜 · 성엄 · 범소 · 유도부 · 녹여 · 장요 · 유도빈 · 동소 · 풍원흥 47권 「원번등전(袁翻等傳)」 48권 「이주영전(爾朱榮傳)」 원번 · 양니 · 가사백 · 조영 이주영 49권 「주서등전(朱瑞等傳)」 주서 · 질열연경 · 곡사춘 · 가현도 · 번자곡 · 후심(2) · 하발승 · 후막진열 · 염현 · 양람 · 뇌소 · 모하 · 을불랑 50권 「신웅등전(辛雄等傳)」 신웅 · 양기 · 고도목 · 기준 · 산위 · 우문충지 · 비목 · 맹위 51·52권 「제종실제왕전(齊宗室諸王傳)」 고침 · 고악 · 고성 · 고영락 · 고현국 · 고사종 · 고언귀 · 고령산 · 고준 · 고엄 · 고유 · 고환(高渙) · 고육 · 북제 · 고식 · 고제 · 고응 · 고윤
고흡 · 고효유 · 고효연 · 고효완 · 고장공 · 고연종 · 고소신 · 고소덕 · 고소의 · 고소인 · 고소렴 · 고백년 · 고량 · 고언리 · 고언덕
고언기 · 고언강 · 고언충 · 고작 · 고엄 · 고곽 · 고정 · 고인영 · 고인광 · 고인기 · 고인옹 · 고인검 · 고인아 · 고인직 · 고인겸 · 고각 · 고선덕
고매덕 · 고질전53권 「묵기보등전(万俟普等傳)」 묵기보 · 가주혼원 · 유풍 · 파륙한상 · 금조 · 유귀 · 채준 · 한현 · 울장명 · 왕회 · 임상 · 막다루대문 · 사적회락 · 사적성 · 장보락
후막진상 · 설고연 · 곡률강거 · 장경 · 요웅 · 송현 · 왕칙 · 모용소종 · 질열평 · 보대한살 · 설유의 · 모용엄 · 반락 · 팽락 · 포현 · 피경화
기연맹 · 원경안 · 독고영업 · 선우세영 · 부복54권 「손등등전(孫騰等傳)」 손등 · 고융지 · 사마자여 · 두태 · 울경 · 누소 · 사적간 · 한궤 · 단영 · 곡률금 55권 「손건등전(孫搴等傳)」 손건 · 진원강 · 두필 · 두태 · 울경 · 장찬 · 장량 · 장요 · 왕준 · 왕굉 · 경현준 · 평감 · 당옹 · 백건 · 원문요 · 조언심 · 혁련자열 · 풍자종 · 낭기 56권 「위수등전(魏收等傳)」 위수 · 위장현 · 위계경 · 위난근 57권 「주종실전(周宗室傳)」 우문호 · 우문련 · 우문낙생 · 우문중 · 우문측 · 우문신거 58권 「주실제왕전(周室諸王傳)」 우문진 · 우문직 · 우문초 · 우문검 · 우문순 · 우문성 · 우문달 · 우문통 · 우문형 · 우문강 · 우문현 · 우문정 · 우문실 · 우문찬 · 우문지
우문윤(允) · 우문충 · 우문태(兌) · 우문원 · 우문연(衍) · 우문술(術)59권 「구락등전(寇洛等傳)」 60권 「이필등전(李弼等傳)」 구락 · 조귀 · 이현 · 양어 이필 · 우문귀 · 후막진숭 · 왕웅 61권 「왕맹등전(王盟等傳)」 왕맹 · 독고신 · 두치 · 하란상 · 질열복귀 · 염경 · 사녕 · 권경산 62권 「왕비등전(王羆等傳)」 63권 「주혜달등전(周惠達等傳)」 64권 「위효관등전(韋孝寬等傳)」 왕비 · 왕사정 · 울지형 · 왕궤 주혜달 · 풍경 · 소작 위효관 · 위진 · 류규 65권 「달해무등전(達奚武等傳)」 강자일 · 약간혜 · 이봉 · 유량 · 왕덕 · 혁련달 · 한과 · 채우 · 상선 · 신위 · 사적창 · 양춘 · 양대 · 전홍 66권 「왕걸등전(王傑等傳)」 왕걸 · 왕용 · 우문규 · 경호 · 고림 · 이화 · 이루목 · 달해식 · 유웅 · 후식 · 이연손 · 위우 · 진흔 · 위현 · 천기 · 이천철 · 양건운 · 부맹 · 양웅 · 석고 · 임과 67권 「최언목등전(崔彥穆等傳)」 68권 「두로녕등전(豆盧寧等傳)」 최언목 · 양찬 · 단영 · 배과 · 당영 · 류민 · 왕사량 두로녕 · 양소(楊紹) · 왕아 , 왕세적,· 한웅 · 하약돈 69권 「신휘등전(申徽等傳)」 신휘 · 육통 · 사적치 · 양천 · 왕경 · 조강 · 조창 · 왕열 · 조문표 · 양대 · 원정 · 양표 70권 「한포등전(韓襃等傳)」 한포 · 조숙 · 장궤 · 이언 · 곽언 · 양흔 · 황보번 · 신경지 · 왕자직 · 두고 · 여사례 · 서초 · 단저 · 맹신 · 종름 · 유번 · 류하 71권 「수종실제왕전(隋宗室諸王傳)」 양정 · 양찬 · 양상 · 양홍 · 양처강 · 양자숭 · 양용 · 양준 · 양수 · 양량 · 양소(楊昭) · 양간 · 양고 72권 「고경등전(高熲等傳)」 고경 · 우홍 · 이덕림 73권 「양사언등전(梁士彥等傳)」 양사언 · 원해 · 우경칙 · 원주 · 달해장유 · 하루자간 · 사만세 · 유방(劉方) · 두언 · 주요 · 독고개 · 걸복혜 · 장위 · 화홍 · 음수 · 양의신 74권 「유방등전(劉昉等傳)」 유방(劉昉) · 유구 · 황보적 · 곽연 · 장형 · 양왕 · 배온 · 원충 · 이웅 75권 「조경등전(趙煚等傳)」 조경 · 조분 · 왕소 · 원암 · 우문필 · 이누겸 · 이원통 · 곽영 · 방황 · 이안 · 양희상 · 장경 · 소효자 · 원수 76권 「단문진등전(段文振等傳)」 단문진 · 내호아 · 번자개 · 주나후 · 주법상 · 위현 · 유권 · 이경 · 설세웅 77권 「장정화등전(張定和等傳)」 배정 · 이악 · 포굉 · 고구 · 영비 · 육지명 · 양비 · 유욱 · 조작 · 두정 78권 「장정화등전(張定和等傳)」 장정화 · 장윤 · 맥철장 · 권무 · 왕인공 · 토만서 · 동순 · 어구라 · 왕변 · 진릉 · 조재 79권 「우문술등전(宇文述等傳)」 우문술 · 왕세충 · 단달 80권 「외척전(外戚傳)」 하눌 · 요황미 · 두초 · 하미 · 여비 · 풍희 · 이혜 · 고조 · 호국진 · 황보집 · 양등 · 을불회 · 조맹 · 호장인 · 여씨 81·82권 「유림전(儒林傳)」 양월 · 노추 · 장위 · 양조 · 평항 · 진기 · 유헌지 · 장오귀 · 유란 · 손혜울 · 서준명 · 동징 · 마자결 · 이흥업 · 양원의 · 풍위 · 장매노 · 유궤사
포계상 · 형치 · 유주 · 마경덕 · 장경인 · 권회 · 장사백 · 장조무 · 곽준 · 심중 · 번심 · 웅안생 · 악손 · 기준 · 조문심 · 신언지 · 하타 · 소해 · 포개 · 방휘원 · 마광 · 유작 · 유현 · 저휘 · 고표 · 노세달 · 장충 · 왕효적83권 「문원전(文苑傳)」 온자승 · 순제 · 조홍훈 · 이광 · 번손 · 순사손 · 왕포 · 유신 · 안지추 · 우세기 · 유변 · 허선심 · 이문박 · 명극양 · 유진 · 제갈영 · 왕정 · 우작
왕주 · 유자직 · 반휘 · 상덕지 · 윤식 · 유선경 · 조군언 · 공덕소 · 유빈84권 「효행전(孝行傳)」 장손려 · 손익덕 · 동락생 · 양인 · 염원명 · 오실달 · 왕속생 · 이현달 · 장승 · 창발 · 왕숭 · 곽문공 · 형가 · 진족 · 영선 · 황보하 · 장원
왕반 · 양경 · 전익 · 유인 · 유사준 · 적보림 · 화추 · 서효숙85권 「절의전(節義傳)」 우십문 · 단진 · 석문덕 · 급고 · 왕현위 · 누제 · 유갈후 · 주장생 · 마팔룡 · 문문애 · 조청 · 유후인 · 석조흥 · 소홍철 · 왕영세 · 호소호
손도등 · 이궤 · 장안조 · 왕려 · 곽염 · 지용초 · 을속고불보 · 이상 · 두숙비 · 이악 · 유원 · 장수타 · 양선회 · 노초 · 유자익 · 요군소
진효의 · 두송지 · 곽세준 · 낭방귀86권 「순리전(循吏傳)」 장응 · 노옹 · 염경윤 · 명량 · 두찬 · 두원 · 소숙 · 장화업 · 맹업 · 소경 · 노거병 · 양언광 · 번숙략 · 공손경무 · 신공의 · 유검 · 곽현 · 경숙
유광 · 왕가 · 위덕심87권 「혹리전(酷吏傳)」 우락후 · 호니 · 이홍지 · 장사제 · 조패 · 최섬 · 저진 · 전식 · 연영 · 원홍사 · 왕문동 88권 「은일전(隐逸傳)」 휴과 · 풍량 · 정수 · 최곽 · 서칙 · 장문후 89·90권 「예술전(藝術傳)」 조숭 · 장심(1) · 은소 · 왕조 · 경현 · 유영조 · 이순흥 · 단특사 · 안악두 · 왕춘 · 신도방 · 송경업 · 허준 · 유준세 · 조보화 · 황보옥 · 해법선 · 허준 · 위녕 · 기모회문 · 장자신 · 육법화 · 장승 · 강련 · 유계재 · 노태익 · 경순 · 내화 · 소길 · 양백추 · 임효공 · 유우 · 장주현 · 주담 · 이수 · 서건 · 왕현 · 마사명 · 요승원 · 저해 · 허지장 · 만보상 · 장소유 · 하조 91권 「열녀전(列女傳)」 난릉공주 · 남양공주 · 초국부인 92권 「은행전(恩倖傳)」 왕예 · 왕중흥 · 조수 · 여호 · 조옹(趙邕) · 후강 · 구락제 · 왕거 · 조묵 · 손소(孫小) · 장종지 · 극붕 · 장우 · 포억 · 왕우 · 부승조 · 왕질 · 이견 · 유등 · 가찬 · 양범 · 성궤 · 왕온 · 맹란 · 평계 · 봉진 · 유사일 · 곽수 · 화사개 · 안토근 · 목제파 · 고아나굉 93권 「참위부용전(僭偽附庸傳)」 혁련발발 · 모용외 · 요장 · 풍발 · 걸복국인 · 저거몽손 · 소찰 94권 「고려등전(高麗等傳)」 고려 · 백제 · 신라 · 물길 · 해족 · 거란 · 실위 · 두막루 · 지두우 · 오락후 · 류구 · 왜국 95권 「만등전(蠻等傳)」 만족(蠻) · 요족(獠) · 임읍 · 적토 · 진랍 · 파리 96권 「저등전(氐等傳)」 저족 · 토욕혼 · 탕창 · 등지국 · 당항 · 부국 · 계호국 97권 「서역전(西域傳)」 선선 · 포산국 · 실거반 · 권우마국 · 차사국 · 우전국 · 고창 · 차미 · 언기 · 구차 · 고묵국 · 온숙국 · 울두국 · 오손국 · 소륵국 · 열반국 · 토호라
소월씨 · 아구강국 · 속특국 · 파사국 · 복로니국 · 색지현 · 가색니국 · 고창 · 차미 · 여국98권 「연연등전(蠕蠕等傳)」 연연 · 우문막괴 · 단질육권 · 고차 99권 「돌궐등전(突厥等傳)」 돌궐 · 철륵 100권 「자서전(自序傳)」 이연수 (1) 본명이 장연(張淵)으로 당고조 이연(李淵)을 피휘하여 심(深)으로 개칭되었다.
(2) 본명이 후연(侯淵)으로 당고조 이연(李淵)을 피휘하여 심(深)으로 개칭되었다.||<tablealign=center><tablebordercolor=#000><tablebgcolor=#000> ||
구당서(舊唐書) | ||||||
{{{#!wiki style="margin: -0px -10px; margin-top: 0.3px; margin-bottom: -6px" {{{#fff {{{#!wiki style="display: inline-block; min-width:25%" {{{#!folding [ 본기(本紀) ] {{{#!wiki style="margin: -5px -10px; padding: 7px 10px" {{{#181818,#e5e5e5 |
1권 「고조기(高祖紀)」 | 2·3권 「태종기(太宗紀)」 | 4·5권 「고종기(高宗紀)」 | |||
이연(李淵) | 이세민 | 이치 | ||||
6권 「측천황후기(則天皇后紀)」 | 7권 「 중종·예종기(中宗睿宗紀)」 | 8·9권 「현종기(玄宗紀)」 | ||||
무조 | 이현(李顯) · 이단 | 이융기 | ||||
10권 「숙종기(肅宗紀)」 | 11권 「대종기(代宗紀)」 | 12·13권 「덕종기(德宗紀)」 | ||||
이형(李亨) | 이예(李豫) | 이괄 | ||||
14·15권 「순종·헌종기(順宗憲宗紀)」 | 16권 「목종기(穆宗紀)」 | 17권 「경종·문종기(敬宗文宗紀)」 | ||||
이송 · 이순(李純) | 이항 | 이심(李湛) · 이앙 | ||||
18권 「무종·선종기(武宗宣宗紀)」 | 19권 「의종·희종기(懿宗僖宗紀)」 | 20권 「소종·애제기(昭宗哀帝紀)」 | ||||
이염(李瀍) · 이침(李忱) | 이최 · 이현(李儇) | 이엽 · 이축 | ||||
※ 21권 ~ 50권은 志에 해당.
구당서 문서 참고
}}}}}}}}}}}} - [ 열전(列傳) ]
- ||<-6><tablewidth=100%><tablebgcolor=#a48252> 51·52권 「후비전(后妃傳)」 ||
태목황후 · 문덕황후 · 서혜 · 왕폐후 · 소양제 · 화사황후 · 위황후 · 상관소용 · 숙명황후 · 소성황후 · 왕폐후 · 정순황후 · 양귀비
원헌황후 · 장황후 · 장경황후 · 예진황후 · 정의황후 · 소덕황후 · 장헌황후 · 의안황후 · 효명황후 · 공희황후 · 정헌황후 · 적선황후53권 「이밀전(李密傳)」 54권 「왕세충등전(王世充等傳)」 이밀 , 선웅신, 왕세충 · 두건덕 55권 「설거등전(薛舉等傳)」 설거 , 설인고,· 이궤 · 유무주 , 원군장, · 고개도 · 유흑달 , 서원랑, 56권 「소선등전(蕭銑等傳)」 소선 · 두복위 · 보공석 , 감릉 왕웅탄, · 심법흥 · 이자통 , 주찬 임사홍 장선안, · 나예 · 양사도 , 유계진 이자화, 57권 「배적등전(裴寂等傳)」 배적 · 유문정 , 이맹상 진행사 유세룡 조문각 장평고 이사행 이고천 허세서 유사립 전구농 번흥 공손무달 방경운 장장경 이안원, 58권 「당검등전(唐儉等傳)」 59권 「굴돌통등전(屈突通等傳)」 당검 · 장손순덕 · 유홍기 · 은개산 · 유정회 · 시소 · 무사확 굴돌통 · 임괴 · 구화 · 허소 · 이습지 · 강모 60권 「종실전(宗室傳)」 이효기 · 이신통 · 이신부 · 이숙량 · 이침(李琛) · 이효공 · 이원(李瑗) · 이도현 · 이도종 · 이박예 61권 「온대아등전(溫大雅等傳)」 62권 「이강등전(李綱等傳)」 63권 「봉륜등전(封倫等傳)」 온대아 · 진숙달 · 두위 이강(李綱) · 정선과 · 양공인 · 황보무일 · 이대량 봉륜 · 소우 , 소예 소균 소관 소업, · 배구 · 우문사급 64권 「고조22자전(高祖二十二子傳)」 이건성 · 이현패 · 이원길 · 이지운 · 이원경(李元景) · 이원창 · 이원형 · 이원방 · 이원례 · 이원가 · 이원칙 · 이원의 · 이원궤 · 이봉(李鳳) · 이원경(李元慶) · 이원유 · 이원명 · 이령기 · 이원상 · 이원효 · 이원영 65권 「고사렴등전(高士廉等傳)」 66권 「방현령등전(房玄齡等傳)」 67권 「이정등전(李靖等傳)」 고사렴 · 장손무기 방현령 · 두여회 이정(李靖) · 이세적 68권 「울지경덕등전(尉遲敬德等傳)」 69권 「후군집등전(侯君集等傳)」 70권 「왕규등전(王珪等傳)」 울지경덕 · 진경 · 정지절 · 단지현 · 장공근 후군집 · 장량 · 설만철 왕규 · 대주 · 잠문본 · 두정륜 71권 「위징전(魏徵傳)」 72권 「우세남등전(虞世南等傳)」 73권 「설수등전(薛收等傳)」 위징 우세남 · 이백약 · 저량 설수 · 요사렴 · 안사고 · 영호덕분 · 공영달 74권 「유계등전(劉洎等傳)」 75권 「소세장등전(蘇世長等傳)」 유계 · 마주 · 최인사 소세장 · 위운기 · 손복가 · 장현소 76권 「태종제자전(太宗諸子傳)」 이승건 · 이관(李寬) · 이각(李恪) · 이태 · 이우(李祐) · 이음 · 이운(李惲) · 이정(李貞) · 이신(李愼) · 이효(李囂) · 이간(李簡) · 이복 · 이명 77권 「위정등전(韋挺等傳)」 78권 「우지녕등전(于志寧等傳)」 위정 · 양찬 · 유덕위 · 염입덕 , 염입본, · 유형 · 최의현 우지녕 · 고계보 · 장행성 79권 「조효손등전(祖孝孫等傳)」 80권 「저수량등전(褚遂良等傳)」 조효손 · 부인균 · 부혁 · 이순풍 · 여재 저수량 · 한원 · 내제 · 상관의 81권 「최돈례등전(崔敦禮等傳)」 최돈례 · 노승경 · 유상도 · 이경현 · 이의염 , 손처약, , 악언위, , 조인본, 82권 「허경종등전(許敬宗等傳)」 83권 「곽효각등전(郭孝恪等傳)」 허경종 · 이의부 곽효각 · 장검 · 소정방 · 설인귀 · 정무정 , 정명진, , 장사귀, , 조도흥, 84권 「유인궤등전(劉仁軌等傳)」 85권 「당림등전(唐臨等傳)」 유인궤 · 학처준 · 배행검 당림 · 장문관 · 서유공 86권 「고종·중종제자전(高宗中宗諸子傳)」 이충(李忠) · 이효(李孝) · 이상금 · 이소절 · 이홍 · 이현(李賢) · 이중윤 · 이중복 · 이중준 · 이중무 87권 「배염등전(裴炎等傳)」 88권 「위사겸등전(韋思謙等傳)」 배염 · 유의지 · 위현동 · 이소덕 위사겸 · 육원방 · 소괴 89권 「적인걸등전(狄仁傑等傳)」 90권 「왕급선등전(王及善等傳)」 적인걸 · 왕방경 · 요숙 왕급선 · 두경검 · 주경칙 · 양재사 · 이회원 · 두로흠망 91권 「환언범등전(桓彥範等傳)」 92권 「위원충등전(魏元忠等傳)」 환언범 · 경휘 · 최현위 · 장간지 · 원서기 위원충 · 위안석 · 소지충 , 종초객 기처눌, 93권 「누사덕등전(婁師德等傳)」 94권 「소미도등전(蘇味道等傳)」 누사덕 · 왕효걸 · 당휴경 · 장인원 · 설눌 · 왕준 소미도 · 이교 · 최융 · 노장용 · 서언백 95권 「예종제자전(睿宗諸子傳)」 이헌 · 이총 · 이범 · 이업 · 이융제 96권 「요숭등전(姚崇等傳)」 97권 「유유구등전(劉幽求等傳)」 요숭 · 송경 유유구 · 종소경 · 곽원진 · 장열 98권 「위지고등전(魏知古等傳)」 99권 「최일용등전(崔日用等傳)」 위지고 · 노회신 · 원건요 · 이원굉 · 두섬 · 한휴 · 배요경 최일용 · 장가정 · 소숭 · 장구령 · 이적지 · 엄정지 100권 「윤사정등전(尹思貞等傳)」 윤사정 · 이걸 · 해완 · 필구 · 소향 · 정유충 · 왕지음 · 노종원 · 이조은 · 배최 · 왕구 101권 「이예등전(李乂等傳)」 102권 「마회소등전(馬懷素等傳)」 이예(李乂) · 설등 · 위주 · 한사복 · 장정규 · 왕구례 · 신체부 마회소 · 저무량 · 유자현 · 서견 · 원행충 · 오긍 · 위술 103권 「곽건관등전(郭虔瓘等傳)」 104권 「고선지등전(高仙芝等傳)」 곽건관 · 곽지운 · 왕군착 · 장수규 · 우선객 · 왕충사 고선지 · 봉상청 · 가서한 105권 「우문융등전(宇文融等傳)」 106권 「이임보등전(李林甫等傳)」 우문융 · 위견 · 양신긍 · 왕홍 이임보 · 양국충 · 장위 · 왕거 · 왕모중 107권 「현종제자전(玄宗諸子傳)」 이종(李琮) · 이영(李瑛) · 이염(李琰) · 이요 · 이완 · 이거(李琚) · 이일(李一) · 이수(李璲) · 이교 · 이민 · 이린(李璘) · 이모 · 이분 · 이기(李琦) · 이환(李環) · 이황 · 이빈 · 이규(李珪) · 이공(李珙) · 이진(李瑱) · 이선(李璿) · 이경(李璥) 108권 「위견소등전(韋見素等傳)」 109권 「풍앙등전(馮盎等傳)」 위견소 · 최원 · 최환 · 두홍점 풍앙 · 아사나사이 · 글필하력 · 흑치상지 · 이다조 · 이사업 · 백효덕 110권 「이광필등전(李光弼等傳)」 111권 「최광원등전(崔光遠等傳)」 이광필 · 왕사례 · 등경산 · 신운경 최광원 · 방관 · 장호 · 고적 · 창최 112권 「이고등전(李暠等傳)」 113권 「묘진경등전(苗晉卿等傳)」 이고(李暠) · 이린(李麟) · 이국정 · 이환(李峘) · 이거(李巨) 묘진경 · 배면 · 배준경 114권 「노경등전(魯炅等傳)」 115권 「최기등전(崔器等傳)」 노경 · 배융 · 내진 · 주지광 최기 · 조국진 · 최관 · 경괄 · 위원보 · 위소유 · 위백옥 · 이승 116권 「숙종·대종제자전(肅宗代宗諸子傳)」 이계(李係) · 이담(李倓) · 이필(李佖) · 이근(李僅) · 이간(李僴) · 이정(李侹) · 이영(李榮) · 이광 · 이수(李倕) · 이사 · 이소(李佋) · 이동(李侗) · 이희 · 이막 · 이하(李遐) · 이술 · 이유(李逾) · 이연(李連) · 이형(李迥) · 이구(李遘) · 이내 · 이신(李迅) · 이선(李選) · 이소(李溯) · 이조 · 이섬 · 이운(李運) · 이우(李遇) · 이휼 · 이통 · 이규(李逵) · 이일(李逸) 117권 「엄무등전(嚴武等傳)」 118권 「원재등전(元載等傳)」 엄무 · 곽영예 · 최녕 · 엄진 · 엄여 원재 , 왕앙, , 이소량, · 왕진 · 양염 · 여간 · 유준 119권 「양관등전(楊綰等傳)」 120권 「곽자의전(郭子儀傳)」 121권 「복고회은등전(僕固懷恩等傳)」 양관 · 최우보 · 상곤 곽자의 복고회은 · 양숭의 · 이회광 122권 「장헌성등전(張獻誠等傳)」 장헌성 · 노사공 · 곡환 · 진한형 · 양조성 · 번택 · 이숙명 · 배주 123권 「유안등전(劉晏等傳)」 124권 「설숭등전(薛嵩等傳)」 125권 「장일등전(張鎰等傳)」 유안 · 제오기 · 반굉 · 왕소 · 이손 설숭 · 영호창 · 전신공 · 후희일 · 이정기 장일 · 유종일 · 소복 · 유혼 126권 「이계등전(李揆等傳)」 127권 「요령언등전(姚令言等傳)」 이계(李揆) · 이함(李涵) · 진소유 · 노악 · 배서 요령언 · 장광성 · 원휴 · 교림 · 장섭 · 장진 · 홍경륜 · 팽언 128권 「단수실등전(段秀實等傳)」 129권 「한황등전(韓滉等傳)」 130권 「왕여등전(王璵等傳)」 단수실 · 안진경 한황 · 장연상 왕여 · 이필 · 최조 · 관파 131권 「이면등전(李勉等傳)」 132권 「이포옥등전(李抱玉等傳)」 이면 · 이고(李皋) 이포옥 · 이포진 · 왕건휴 · 노종사 · 이봉(李芃) · 이징(李澄) 133권 「이성등전(李晟等傳)」 134권 「마수등전(馬燧等傳)」 이성 마수 · 혼감 135권 「노기등전(盧杞等傳)」 노기 · 백지정 · 배연령 · 위거모 · 이제운 · 이실 · 위집의 · 왕숙문 · 정이 · 황보변 136권 「두참등전(竇參等傳)」 두참 · 제영 · 유자 · 노매 · 최손 · 제항 137권 「서호등전(徐浩等傳)」 서호 · 조연 · 유태진 · 이서 · 소설 · 우소 · 최원한 · 우공이 · 여위 · 정운규 · 이익 · 이하(李賀) 138권 「단수실등전(段秀實等傳)」 139권 「육지전(陸贄傳)」 140권 「위고등전(韋臯等傳)」 조경 · 위륜 · 가탐 · 강공보 육지 위고 · 장건봉 · 노군 141권 「전승사등전(田承嗣等傳)」 142권 「이보신등전(李寶臣等傳)」 143권 「이회선등전(李懷仙等傳)」 전승사 · 전홍정 · 장효충 이보신 · 왕무준 · 왕정주 이회선 · 주도 · 유평 · 정일화 · 이전약 144권 「상가고등전(尚可孤等傳)」 상가고 · 이관(李觀) · 대휴안 · 양혜원 · 이원량 · 한유괴 · 가은림 · 두희전 · 울지승 · 형군아 · 양조성 · 장경칙 145권 「유현좌등전(劉玄佐等傳)」 유현좌 · 동진 · 육장원 · 유전량 · 이충신 · 이희열 · 오소성 146권 「설파등전(薛播等傳)」 설파 · 포방 · 이자량 · 이설 · 엄수 · 소흔 · 두아 · 왕위 · 이약초 · 우흔 · 노징 · 양풍 · 정원 · 두겸 · 양조성 · 설비 147권 「두황상등전(杜黃裳等傳)」 148권 「배기등전(裴垍等傳)」 두황상 · 고영 · 두우 배기 · 이보길 · 이번 · 권덕여 149권 「우휴열등전(于休烈等傳)」 우휴열 · 영호환 · 귀숭경 · 유후인 · 해척 · 장천 · 장예 · 유등 · 심전사 150권 「덕종·순종제자전(德宗順宗諸子傳)」 이의(李誼) · 이심(李諶) · 이량 · 이상(李詳) · 이원(李謜) · 이겸 · 이인(李諲) · 이계(李誡) · 이악 · 이함(李諴) · 이경(李經) · 이위(李緯) · 이종(李縱) · 이서(李紓) · 이주(李綢) · 이종(李綜) · 이약 · 이결 · 이상(李緗) · 이구(李絿) · 이기(李綺) · 이현(李絢) · 이훈(李纁) · 이관(李綰) · 이선(李繕) · 이롱 · 이곤 · 이신(李紳) · 이륜 · 이작 · 이집 151권 「고숭문등전(高崇文等傳)」 고숭문 · 이신(伊慎) · 주충량 · 유창예 · 범희조 · 왕악 · 염거원 · 맹원양 · 조창 152권 「마린등전(馬璘等傳)」 마린 · 학정옥 · 왕서요 · 유창 · 이경략 · 장만복 · 고고 · 학자 · 단좌 · 사경봉 153권 「요남중등전(姚南仲等傳)」 154권 「공소부등전(孔巢父等傳)」 요남중 · 유내 · 원고 · 단평중 · 설존성 · 노탄 공소부 · 허맹용 · 여원응 · 유서초 · 장숙 · 웅망 · 백기 155권 「목녕등전(穆寧等傳)」 156권 「우적등전(于頔等傳)」 목녕 · 최빈 · 두군 · 이손 · 설융 우적 · 한홍 · 왕지흥 157권 「왕굉등전(王翃等傳)」 158권 「무원형등전(武元衡等傳)」 왕굉 · 치사미 · 이용(李鄘) · 신비 · 마총 · 위홍경 · 왕언위 무원형 · 정여경 · 위관지 159권 「위차공등전(衛次公等傳)」 160권 「한유등전(韓愈等傳)」 위차공 · 정인 · 위처후 · 최군 · 노수 한유 , 장적 맹교 당구, · 이고(李翱) · 우문적 · 유우석 · 유종원 · 한사 161권 「이광진등전(李光進等傳)」 이광진 · 오중윤 · 왕패 · 이공(李珙) · 이우(李祐) · 동중질 · 양원경 · 유오 · 유면 · 석웅 162권 「반맹양등전(潘孟陽等傳)」 반맹양 · 이소(李翛) · 왕수 · 조화 · 위수 · 정권 · 주지 · 한전의 · 고하우 · 고우 · 최융 · 육선 · 장정보 163권 「맹간등전(孟簡等傳)」 164권 「무원형등전(武元衡等傳)」 맹간 · 호증 · 최원략 · 두원영 · 최홍례 · 이우중 · 왕질 · 노간사 왕파 · 이강(李絳) · 양어릉 165권 「위하경등전(韋夏卿等傳)」 166권 「원진등전(元稹等傳)」 위하경 · 왕정아 · 유공작 · 최현량 · 온조 · 곽승하 · 은유 · 서회 원진 · 백거이 167권 「조종유등전(趙宗儒等傳)」 168권 「위온등전(韋溫等傳)」 조종유 · 두역직 · 이봉길 · 단문창 · 송신석 · 이정(李程) 위온 · 독고울 · 전휘 · 고익 · 풍숙 · 봉오 169권 「이훈등전(李訓等傳)」 170권 「배도전(裴度傳)」 이훈(李訓) · 정주 · 왕애 · 왕번 · 가속 · 서원여 · 곽행여 · 나립언 · 이효본 배도 171권 「이발등전(杜黃裳等傳)」 172권 「영호초등전(令狐楚等傳)」 이발 · 장중방 · 배린 · 이중민 · 이감 · 고원유 · 이한 · 이경검 영호초 · 우승유 · 소면 · 이석 173권 「정담등전(鄭覃等傳)」 174권 「이덕유전(李德裕傳)」 정담 · 진행이 · 이신(李紳) · 오여납 · 이각(李珏) · 이고언 이덕유 175권 「헌종·목종·경종·문종·무종·선종·의종·희종·소종제자전(憲宗穆宗敬宗文宗武宗宣宗懿宗僖宗昭宗諸子傳)」 이녕 · 이운(李惲) · 이종(李悰) · 이흔 · 이오 · 이각(李恪) · 이경(李憬) · 이열 · 이순(李恂) · 이역(李懌) · 이음(李愔) · 이협 · 이담(李憺) · 이충(李㤝) · 이췌(李惴) · 이척(李惕) · 이탄 · 이책 · 이주(李湊) · 이용(李溶) · 이보(李普) · 이휴복 · 이언양 · 이집중 · 이성미 · 이영(李永) · 이종검 · 이준(李峻) · 이현(李峴) · 이기(李岐) · 이역(李嶧) · 이차 · 이한 · 이경(李涇) · 이관(李灌) · 이자(李滋) · 이근(李沂) · 이택 · 이윤 · 이흡 · 이예(李汭) · 이문 · 이옹(李澭) · 이일(李佾) · 이건 · 이길 · 이간(李侃) · 이보(李保) · 이의(李倚) · 이진(李震) · 이승 · 이유(李裕) · 이우(李祤) · 이계(李禊) · 이점 · 이인(李禋) · 이의(李祎) · 이비 · 이기(李祺) · 이동(李同) · 이진(李禛) · 이상(李祥) 176권 「이종민등전(李宗閔等傳)」 이종민 · 유위 · 양우경 · 마식 · 이양이 · 위모 · 주지 · 최귀종 · 정숙 · 노상 177권 「최신유등전(崔慎由等傳)」 최신유 · 최공 · 노균 · 배휴 · 양수 · 위보형 · 노암 · 하후자 · 유첨 · 유전 · 조확 · 필함 · 두심권 · 유업 · 두로전 178권 「조은등전(趙隱等傳)」 조은 · 장석 · 이울 · 최언소 · 정전 · 노휴 · 왕휘 179권 「소구등전(蕭遘等傳)」 소구 · 공위 · 위소도 · 최소위 · 장준 · 주박 · 정계 · 유숭망 · 서언약 · 육의 · 유찬 180권 「주극융등전(朱克融等傳)」 주극융 · 이재의 · 양지성 · 장중무 · 장윤신 · 장공소 · 이가거 · 이전충 181권 「사헌성등전(史憲誠等傳)」 182권 「왕중영등전(王重榮等傳)」 사헌성 · 하진도 · 한윤충 · 악언정 · 나홍신 왕중영 · 왕처존 · 제갈상 · 고병 · 시부 · 주선 183권 「외척전(外戚傳)」 독고회은 · 두덕명 · 장손창 · 무승사 · 위온 · 왕인교 · 오서 · 유성 · 두유 · 왕자안 184권 「환관전(宦官傳)」 양사욱 · 고역사 · 이보국 · 정원진 · 어조은 · 두문장 · 구문진 · 토돌승최 · 왕수징 · 전령자 · 양복광 · 양복공 185권 「양리전(良吏傳)」 위인수 · 장윤제 · 이동객 · 이소립 · 설대정 · 가돈이 · 이군구 · 최지온 · 고지주 · 전인회 · 위기 · 권회은 · 풍원상 · 장엄 · 왕방익 · 설계창 · 배회고 · 장지건 · 양원염 · 예약수 · 이준(李浚) · 양교 · 송경례 · 강사도 · 강순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