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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수정 시각 : 2024-12-11 13:17:01

고징



북제 추존 · 비정통 황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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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제 추존 황제
고징 | 高澄
파일:준성릉.jpg
준성릉 전경.
출생 521년
북위 삭주 회삭진
(現 내몽골 자치구 바오터우시 구양현)
사망 549년 9월 15일 (향년 28세)
동위 북성 동백단
(現 허베이성 한단시 린장현)
능묘 준성릉(峻成陵)
재위기간 동위의 발해왕
547년 8월 4일 ~ 549년 5월 31일
동위의 제왕
549년 5월 31일 ~ 549년 9월 15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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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lbgcolor=#9348d9><colcolor=#ece5b6> 본관 발해 고씨
징(澄)
부모 부황 고조 신무제
모후 신무명황후
형제자매 15남 9녀 중 장남
배우자 문양경황후
자녀 6남 3녀
자혜(子惠)
작호 발해왕(渤海王) → 제왕(齊王)
묘호 세종(世宗)
시호 문양왕(文襄王)
→ 문양황제(文襄皇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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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2. 생애
2.1. 초기 생애2.2. 고환의 후계자가 되다2.3. 아버지 고환의 뒤를 잇다2.4. 황제를 모욕하다2.5. 숙적 서위와의 전쟁2.6. 암살당하다
3. 동생 고양의 사후 처리4. 둘러보기

[clearfix]

1. 개요

동위의 권신이자 북제의 시조인 고환의 장남이었다. 는 자혜(子惠)였으며, 묘호는 세종(世宗), 시호는 문양황제(文襄皇帝)였다.

2. 생애

2.1. 초기 생애

고징은 고환 신무명황후[1] 장남으로 태어났다. 아버지 고환이 북쪽의 평성과 남쪽의 낙양 사이의 공문을 전달하는 일을 맡았을 때 장남 고징이 태어났다. 525년 두낙주(杜洛周)가 반란을 일으키자 고환은 여기에 합류했으나, 두낙주가 인물이 아니라고 생각한 후 위경(尉景), 단영(段榮), 채준(蔡雋) 등과 함께 떠났는데 이때 누씨와 고징은 를 타고 떠났다. 도망칠 때 고징이 계속 소에서 떨어져 고환이 화살을 쏘아 죽일까 생각했지만 단영이 그의 목숨을 여러 번 살려주었다. 531년 고환은 이주영 일족의 신하로 있었는데 이주영이 암살된 후 이주조에게 반란을 일으키고 대항했다. 이때 고환의 먼 친척 뻘인 고오조(高敖曹)가 반대했는데 고환은 장남 고징을 보내 그를 설득했다.

2.2. 고환의 후계자가 되다

532년, 고환이 효무제(孝武帝)를 북위의 제14대 황제로 옹립하자 고징은 11살이어서 비록 실질적인 권한은 없다고 해도 높은 지위로 올라갔다. 534년 고환과 효무제가 파워 게임을 했는데 효무제가 열세였기 때문에 장안의 실력자인 우문태에게로 도망가버렸다. 고환은 돌아올 것을 요청했으나, 무시당하자 효무제의 사촌인 효정제(孝靜帝)를 세웠고 북위는 둘로 나눠졌다. 즉, 장안을 중심으로 우문태가 효무제를 옹립하여 장악한 서위와 낙양을 중심으로 고환이 효정제를 옹립하여 장악한 동위로 나눠졌고, 곧 고환은 동위의 수도를 낙양에서 성으로 옮겼다.

535년, 고징이 고환의 첩 정씨(鄭氏)[2] 간통하자 화가 난 고환은 고징을 폐위시키려 했지만 사마자여가 부인 누씨를 생각해 참으라고 했고 폐위는 없던 일이 되었다. 536년 15살이 된 고징은 고환의 군사적 본거지인 진양에 머물러 있었는데 고환에게 수도인 업성으로 가서 정부의 일을 맡아보겠다고 청했다. 고환은 처음에 거부했지만 손건(孫搴)의 건의를 받아들여 고징을 업성에 보냈다. 고징은 난폭하긴 했지만, 유능한 통치자였는데 법을 엄격히 적용하며, 고환보다 유연한 정책을 유지했다. 그리고 이때까지는 경력으로 승진이 이루어졌지만 이는 부패의 원인이 된다고 하여 능력있는 자들을 우선 승진시켰다. 540년 고징이 효정제의 누이인 빙익공주(馮翊公主)[3]와 결혼하자 효정제가 친히 고징의 집에 가서 축하를 해주었고, 모든 관료들이 축하선물을 주었다.

543년 고징과 그의 심복인 최섬(崔暹) 때문에 장수 고중밀(高仲密)이 반란을 일으켰다. 고중밀은 처음에 최섬의 누이와 결혼을 했지만 그녀를 버렸고, 그로 인해 고중밀과 최섬의 관계가 벌어졌다. 최섬은 고중밀의 잘못을 찾으려고 눈에 불을 켰는데 그러던 와중, 고중밀의 새로운 아내 이창의(李昌儀)가 너무 이뻤기 때문에 고징이 그녀를 겁탈하려고 했다. 이창의는 도망갔고 고중밀이 이 사실을 알게 되었다. 고중밀은 북예주(北豫州)자사를 맡게 되었는데 북예주의 주도 호뢰(虎牢)를 서위로 넘기면서 투항했다. 빡친 고환은 최섬을 죽이려고 했지만 후에는 용서하고 태형에 처했다. 고징도 진원달(陳元達)을 통해 최섬을 처벌하면 자신의 권한이 약해지기 때문에 그를 벌하지 말라고 청했고, 고환도 최섬을 벌하지 않았다. 호뢰와 낙양에서 동위와 서위의 군대가 맞붙었고, 우문태와 고환 모두 거의 죽을 뻔 했다. 이후에 동위가 호뢰를 함락했고, 이창의는 업성으로 보내져 고징의 첩이 되었다.

2.3. 아버지 고환의 뒤를 잇다

546년 고환은 병이 들자 장남 고징을 진양으로 불러 자신의 업무를 맡겼다. 고징은 이때 황하 이남을 다스리고 있는 후경을 의심하고 있었다. 이에 고환은 자신이 믿는 신하들의 명단을 주면서 특히 후경과 싸울 때는 모용소종에게 사령관을 맡기라고 했다. 547년 고환이 죽자 유언대로 고징은 부친의 죽음을 알리지 않고, 수도 업성으로 돌아가 고환이 살아있는 것처럼 행동했다. 547년 후경은 처음에 고환이 죽었는지 아닌지 헷갈렸지만 죽었다고 생각하고 반란을 일으켰다. 후경은 하남 13주를 가지고 서위로 넘어갔다가 이후에 양나라로 갔다. 고징은 처음에 한궤(韓軌)를 보내 후경을 막게 했다. 한궤는 성공적으로 임무를 수행하는 듯 했으나, 후경은 4개 주를 서위에 떼어주며 도움을 요청했고, 서위군이 도착하자 한궤의 부대는 철수했다. 하지만 후경과 서위는 갑자기 틀어졌고 서위군이 철수해 버렸다. 그러는 와중에 양무제 소연은 자신의 조카 소연명을 시켜 후경을 도와주게 하여 군사를 파견했다. 고징은 아버지 고환의 죽음을 공표하고, 모용소종을 사령관으로 삼았다. 그리고 후경에게 사신을 파견하여 항복한다면 그대로 하남의 통치를 맡기겠다고 했으나, 후경은 거절했다.

2.4. 황제를 모욕하다

고징의 재능은 뛰어났으나, 확실히 도덕적으로는 문제가 있었다. 아버지 고환이 살아있을 때 첩과 정을 통하기도 했고, 아버지 사후에는 아버지의 첩들과 또 정을 통했다. 고환은 효무제와 마찰 끝에 효무제가 도망친 것을 안 이후에는 효정제를 존중하여 정사를 먼저 효정제에게 상주하고, 연회가 있을 때는 땅에 절을 한 뒤에 술을 올렸다. 하지만 고징은 전혀 달랐는데 한족 출신의 선비들을 등용하여 지지를 얻었지만 효정제를 완전히 무시했다. 우선 심복 최계서를 시켜 효정제의 일거수일투족을 감시하게 했다.
"어리석은 사람이 다시 어떠할 것 같은가? 어리석은 기색이 조금 차이가 있는가? 응당 마음을 써 자세히 조사하라."
최계서에게 보내는 편지인데 아예 어리석은 자라고 표현할 정도로 효정제를 우습게 봤다. 하루는 효정제가 사냥을 나섰다가 흥이 올라 나는듯이 말을 몰았다. 그러자 그의 수행원인 오나라수공벌(烏那羅受工伐)이 뒤를 따라오며 말했다.
" 천자께서는 말을 달리지 마십시오. 대장군이 성을 냅니다."
효정제는 하다못해 말 달리는 속도마저도 고징의 간섭을 받아야 했던 것이다. 아마도 자기가 한 짓이 있어서 효무제처럼 효정제도 달아날지 모른다는 불안감 때문이었을 것이다.
채널 A 천일야화에서 각색된 고징의 효정제 폭행 사건
[4]

고징은 자주 황제의 연회에 참석하곤 했는데 한번은 시종에게 가장 큰 술잔을 가져오게 하여 술을 가득 채우더니 효정제에게 주면서(屬) 말했다.[5]
"신(臣) 고징이 폐하께 술을 권합니다."
이는 도저히 신하가 황제에게 술을 올리는 상황이라고 볼 수 없었고, 하도 어이가 없었던 효정제가 화가 나서 한탄했다.
효정제: 옛날부터 망하지 않은 나라가 없었는데 이 이렇게 살아 뭣하겠는가?
고징: 짐(朕)? 짐이라고? 다리[6]짐이냐? (朕,朕,狗脚朕!)
고징은 최계서를 시켜 효정제를 주먹으로 3번 구타하게한 후 옷을 떨치며 나갔다. 다음날 고징은 최계서로 하여금 효정제에게 사죄했고, 효정제는 같이 사과하고 비단 100필을 주고 무마시켰다. 하지만 효정제는 서럽고 분해서 시강(侍講) 순제(荀濟)[7], 사부랑중(祠部郞中)[8] 원근(元瑾)[9], 화산왕(華山王) 원대기(元大器)[10][11] 등과 모의하여 토산을 만든다고 거짓말을 하고 땅굴을 파서 고징을 죽이려고 했다. 하지만 이 계획은 문지기가 지하에서 소리가 나는 것을 듣고 고징에게 보고하여 실패했고, 고징이 화가 나 병사들을 데리고 효정제에게 가서 절도 하지 않고 자리에 앉으면서 따졌다.
"폐하께서는 어찌 뒤엎을 생각을 하십니까? 신 부자의 공로는 사직을 보존하게 하였는데 폐하에게 무슨 죄를 지었단 말입니까? 이는 반드시 좌우의 비빈(妃嬪) 무리들이 한 짓일 것입니다."
고징이 호부인과 이빈을 죽이겠다고 하자 효정제가 정색을 하고 말했다.
"옛날부터 오로지 신하가 군주를 뒤엎었다는 소리는 들었어도 군주가 신하를 뒤엎었다는 소리는 듣지 못하였소. (고징)[12]이 스스로 뒤엎고자 하면서 어째서 나[13]에게 책임을 지우는 것이오! 내가 왕을 살해하면 사직이 안정되고 살해하지 않으면 망해 없어지는 것이 며칠 없으니 내 몸도 아낄 겨를이 없는데 하물며 비와 빈의 경우에야! 반드시 시역하고자 한다면 늦추든가, 빨리 하든가 하는 건 왕에게 달려 있소."
효정제의 말이 이치에 맞았기에 고징은 자리에서 내려와 머리를 조아리고 크게 소리 내어 울면서 사죄한 후에 효정제와 밤늦게까지 취하도록 술을 마셨다. 그러나 3일 뒤에 고징은 효정제를 함장당에 유폐하고, 순제 등 관련된 신하들을 죽였다. 시중 양음(楊愔)이 순제에게 물었다.
"쇠약해진 황혼녘에 무슨 고생으로 다시 이같이 하는가?"
순제가 말했다.
"씩씩한 기력이 있을 뿐이다! 스스로 나이가 들어 꺾이고 무너져도 공로와 이름을 세우지 못하는 것을 마음 아파하였으니, 그러므로 천자를 옆구리에 끼고 권신(權臣)을 주살하고자 하였다."
고징이 순제를 사면하고자 하여 그에게 물었다.
"순공(荀公)은 어찌 반역할 생각을 하였는가?"
순제가 대답했다.
"조서를 받들어 고징을 주살하려고 하였는데 어찌 반역이라 하는가!"
유사는 순제가 늙고 병이 들었다고 하여 녹거에 싣고 동쪽에 있는 저자로 가서 그를 불태웠고, 이 사건에 연루된 이들을 팽형에 처했다.

2.5. 숙적 서위와의 전쟁

548년 모용소종은 한산(寒山) 전투에서 소연명의 양군을 격파하고 소연명을 사로잡았다. 고징은 소연명을 극진히 대접해 주었고, 그를 이용해서 후경과 대결하려고 했다. 모용소종이 후경의 부대를 격파하자 후경은 이에 양나라로 달아나 수양(壽陽)을 근거지로 삼았다. 이후 후경은 결국 대란을 일으켜 양나라의 수도인 건강을 점령했고, 무제 소연이 아사하자 후계자로 간문제를 세우고 꼭두각시로 만들었다. 이때 후경은 고징에게 평화 협정을 제안했지만 이번엔 고징이 무응답이었다. 549년 고징은 서위가 후경으로부터 가져간 지역을 회복하려고, 고악과 모용소종을 보내 장사(長社)를 포위했다. 장사는 서위의 장수 왕사정(王思政)이 지키고 있었는데 쉽게 함락시키지 못했다. 오히려 이 장사 전투에서 서위군이 모용소종과 유풍생(劉豐生)을 죽이자, 고징이 친정을 해서 장사로 갔다. 공성전 끝에 장사를 함락시키고 사로잡힌 왕사정을 잘 대우해주었다. 이후에 서위군은 다른 3개 주에서도 철수했고, 결국 후경에게서 받았던 영토를 모두 동위에게 뱉어냈다.

2.6. 암살당하다

기세등등해진 고징은 이제 황제의 자리를 노리고, 심복인 진원강(陳元康), 최계서(崔季舒), 양음(楊愔) 등과 어떻게 황제가 될까 의논했다. 그의 시종 중에 양나라 서주 자사 난흠(蘭欽)의 아들 난경(蘭京)이 있었는데, 전쟁 중에 사로잡은 포로였다. 그의 아버지 난흠이 몸값을 지불할테니 풀어달라는 부탁을 했지만 여러 번 거부했다. 더불어 난경을 구타하면서 욕을 해 이에 원한을 품은 난경은 몰래 아우 난아개(蘭阿改)를 포함한 6명과 고징 암살을 모의했다. 어느 날, 고징이 심복들과 의논하던 중 난경이 음식을 날랐는데 그가 밖에 나갔을 때 고징이 이렇게 말했다.
어젯밤 꿈에 이 노복이 나를 찔렀으니 급히 죽여야만 하겠소.
그래서 고징은 난경에게 들어오지 말라고 했는데, 난경은 이 말을 몰래 듣고 술안주를 담은 쟁반 밑에 을 감추고 술을 마시던 고징에게 갔다. 고징은 들어오지 말라던 난경이 들어오자 화를 냈다.
고징: 내가 아직 먹을 것을 찾지 않았거늘 어찌 서둘러 왔느냐!
난경: 너를 죽이러 왔다!
그러고는 곧장 칼을 휘두르며 고징에게 달려들었고, 고징은 몸을 던지다 다리를 다쳐 평상 밑에 숨었으나 난경이 평상을 치우고 고징을 죽였다. 당시 29세의 젊은 나이였다. 이때 양음은 급하게 도망치다가 신발 하나가 벗겨진 줄도 몰랐고, 최계서는 측간으로 도망쳐 숨었다. 진원강은 고징을 자기의 몸으로 덮고 난경과 다투다 창자가 튀어나올 정도의 중상을 입고 그날 밤 죽었고, 왕굉(王紘)은 맨손으로 난경과 싸웠으며, 흘해사락(紇奚捨樂)이 싸우다 죽었다. 그의 장남 고효유(高孝瑜)는 13살로 어린 탓에 고징의 동생이자 고환의 차남이었던 고양이 뒤를 이었다. 고양이 북제를 건국한 후 형 고징을 세종(世宗) 문양황제(文襄皇帝)로 추존했다.

3. 동생 고양의 사후 처리

고양은 이때 수도 업성에 있었는데 곧바로 군사를 모아 난경과 그 공모자들을 죽였으며, 권력을 장악할 때까지 포커페이스를 유지하며 형 고징의 죽음을 알리지 않았다. 처음에 효정제는 고징이 죽었다는 소문을 듣고, 자신이 권력을 되찾으리라 생각했지만 고양이 호위병 200명을 데리고 왔을 때 그를 다루기가 쉽지 않으리라는 것을 알았다. 결국 550년 고양은 효정제를 협박해 북제를 건국하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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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열전(列傳) ]
||<-4><tablewidth=100%><tablebgcolor=#000000> 13·14권 「후비전(后妃傳)」 ||
신원황후 · 봉황후 · 기황후 · 평문황후 · 소성황후 · 헌명황후 · 도무황후 · 선목황후 · 소애황후 · 명원밀황후 · 태무황후 · 경애황후
울구려황후 · 문명황후 · 문성원황후 · 헌문사황후 · 효문정황후 · 폐후 풍씨 · 효문유황후 · 효문고황후 · 우황후 · 고황후 · 호황후 · 효명황후 · 효무황후 · 문황후 · 도황후 · 우문황후 · 약간황후 · 효정황후 · 누소군 · 원황후 · 이조아 · 원황후 · 호황후 · 곡률황후 · 호황후 · 목야리 · 풍소련 · 원씨 · 질노씨 · 원호마 · 독고황후 · 아사나 · 이아자 · 양려화 · 주만월 · 진월의 · 원락상 · 울지치번 · 사마영희 · 독고가라 · 소황후
15권 「위제종실전(魏諸宗室傳)」
탁발흘나 · 탁발영문 · 탁발육 · 탁발인 · 탁발수낙 · 탁발퇴 · 탁발소연 · 탁발욱 · 탁발목신 · 탁발육수 · 탁발비간 · 탁발여 · 탁발고
탁발돈 · 탁발석 · 탁발위 · 탁발대두 · 탁발제 · 탁발처진 · 탁발니 · 탁발식군 · 탁발한 · 탁발준(遵) · 탁발건(健) · 탁발순 · 탁발의열 · 탁발굴돌
16권 「도무7왕·명원6왕·태무5왕전(道武七王·明元六王·太武五王傳)」
탁발소 · 탁발희 · 탁발요 · 탁발수 · 탁발처문 · 탁발연 · 탁발려(黎) · 탁발비 · 탁발미 · 탁발범 · 탁발건(健) · 탁발숭 · 탁발준(俊) · 탁발복라 · 탁발한 · 탁발담 · 탁발건(建) · 탁발여(余)
17·18권 「경목12왕전(敬穆十二王傳)」
탁발신성 · 탁발자추 · 탁발소신성 · 탁발천사 · 탁발만수 · 탁발낙후 · 탁발운 · 탁발정 · 탁발장수 · 탁발태락 · 탁발호아 · 탁발휴
19권 「문성5왕·헌문6왕·효문6왕전(文成五王·獻文六王·孝文六王傳)」
탁발장락 · 탁발략(略) · 탁발간(簡) · 탁발약(若) · 탁발맹 · 원희 · 원간(幹) · 원우 · 원옹 · 원상 · 원협 · 원순 · 원유 · 원역 · 원회 · 원열
20권 「위조등전(衛操等傳)」
위조 · 막함 · 유고인 · 울고진 · 목숭 · 해근 · 숙손건 · 안동 · 유업연 · 왕건 · 나결 · 누복련 · 염대비 · 해목 · 화발 · 막제 · 하적간 · 이율 · 해권
21권 「연봉등전(燕鳳等傳)」 22권 「장손숭등전(長孫嵩等傳)」
연봉 · 허겸 · 최굉 · 장곤 · 등언해 장손숭 · 장손도생 · 장손비
23권 「우율제전(于栗磾傳)」 24권 「최영등전(崔逞等傳)」
우율제 최영 · 왕헌 · 봉의
25권 「고필등전(古弼等傳)」
고필 · 장려 · 유결 · 구퇴 · 아청 · 이후 · 을괴 · 주기 · 두대전 · 거이락 · 왕낙아 · 거로두 · 노노원 · 진건 · 내대간 · 숙석 · 만안국
주관 · 울발 · 육진 · 여락발 · 설표자 · 울원 · 모용백요 · 화기노 · 순퇴 · 우문복
26권 「송은등전(宋隱等傳)」
송은 · 허언 · 조옹(刁雍) · 신소선 · 위랑 · 두전
27권 「굴준등전(屈遵等傳)」
굴준 · 장포 · 곡혼 · 공손표 · 장제 · 이선 · 가이 · 두근 · 이흔 · 한연지 · 원식 · 모수지 · 당화 · 구찬 · 역범 · 한수 · 요훤 · 유숭
28권 「육사등전(陸俟等傳)」 29권 「사마휴지등전(司馬休之等傳)」
육사 · 원하 · 유니 · 설제 사마휴지 · 유창 · 소보인 · 소정표
28권 「노현등전(盧玄等傳)」 29권 「고윤등전(高允等傳)」
노현 · 노부 고윤 · 고우 · 고덕정 · 고익 · 고앙
32권 「최감등전(崔鑒等傳)」 33권 「이령등전(李靈等傳)」
최감 · 최변 · 최정 이령 · 이순 · 이효백 · 이예 · 이의심
34권 「유아등전(游雅等傳)」
유아 · 고려 · 조일 · 호수 · 호방회 · 장담 · 단승근 · 감인 · 유연명 · 조유 · 색창 · 송요 · 강식
35권 「왕혜룡등전(王慧龍等傳)」 36권 「설변등전(薛辯等傳)」
왕혜룡 · 정희 설변 · 설치 · 설징
37권 「한무등전(韓茂等傳)」
한무 · 피표자 · 봉칙문 · 여나한 · 공백공 · 전익종 · 맹표 · 해강생 · 양대안 · 최연백 · 요훤 · 이숙인
38권 「배준등전(裴駿等傳)」 39권 「설안도등전(薛安都等傳)」
배준 · 배연준 · 배타 · 배과 · 배관 · 배협 · 배문거 · 배인기 설안도 · 유휴빈 · 방법수 · 필중경 · 양지
40권 「한기린등전(韓麒麟等傳)」 41권 「양파등전(楊播等傳)」
한기린 · 정준 · 이표 · 고도열 · 견침 · 장찬 · 고총 양파 · 양부 양소
42권 「왕숙등전(王肅等傳)」 43권 「곽조등전(郭祚等傳)」 44권 「최광등전(崔光等傳)」
왕숙 · 유방(劉芳) · 상상 곽조 · 장이 · 형만 · 이숭 최광 · 최량
45권 「배숙업등전(裴叔業等傳)」
배숙업 · 하후도천 · 이원호 · 석법우 · 왕세필 · 강열지 · 순우탄 · 음중달 · 장당 · 이묘 · 유조 · 부영 · 부수안 · 장열 · 이숙표 · 노시경 · 방량
조세표 · 반영기 · 주원욱
46권 「손소등전(孫紹等傳)」
손소(孫紹) · 장보혜 · 성엄 · 범소 · 유도부 · 녹여 · 장요 · 유도빈 · 동소 · 풍원흥
47권 「원번등전(袁翻等傳)」 48권 「이주영전(爾朱榮傳)」
원번 · 양니 · 가사백 · 조영 이주영
49권 「주서등전(朱瑞等傳)」
주서 · 질열연경 · 곡사춘 · 가현도 · 번자곡 · 후심(2) · 하발승 · 후막진열 · 염현 · 양람 · 뇌소 · 모하 · 을불랑
50권 「신웅등전(辛雄等傳)」
신웅 · 양기 · 고도목 · 기준 · 산위 · 우문충지 · 비목 · 맹위
51·52권 「제종실제왕전(齊宗室諸王傳)」
고침 · 고악 · 고성 · 고영락 · 고현국 · 고사종 · 고언귀 · 고령산 · 고준 · 고엄 · 고유 · 고환(高渙) · 고육 · 북제 · 고식 · 고제 · 고응 · 고윤
고흡 · 고효유 · 고효연 · 고효완 · 고장공 · 고연종 · 고소신 · 고소덕 · 고소의 · 고소인 · 고소렴 · 고백년 · 고량 · 고언리 · 고언덕
고언기 · 고언강 · 고언충 · 고작 · 고엄 · 고곽 · 고정 · 고인영 · 고인광 · 고인기 · 고인옹 · 고인검 · 고인아 · 고인직 · 고인겸 · 고각 · 고선덕
고매덕 · 고질전
53권 「묵기보등전(万俟普等傳)」
묵기보 · 가주혼원 · 유풍 · 파륙한상 · 금조 · 유귀 · 채준 · 한현 · 울장명 · 왕회 · 임상 · 막다루대문 · 사적회락 · 사적성 · 장보락
후막진상 · 설고연 · 곡률강거 · 장경 · 요웅 · 송현 · 왕칙 · 모용소종 · 질열평 · 보대한살 · 설유의 · 모용엄 · 반락 · 팽락 · 포현 · 피경화
기연맹 · 원경안 · 독고영업 · 선우세영 · 부복
54권 「손등등전(孫騰等傳)」
손등 · 고융지 · 사마자여 · 두태 · 울경 · 누소 · 사적간 · 한궤 · 단영 · 곡률금
55권 「손건등전(孫搴等傳)」
손건 · 진원강 · 두필 · 두태 · 울경 · 장찬 · 장량 · 장요 · 왕준 · 왕굉 · 경현준 · 평감 · 당옹 · 백건 · 원문요 · 조언심 · 혁련자열 · 풍자종 · 낭기
56권 「위수등전(魏收等傳)」
위수 · 위장현 · 위계경 · 위난근
57권 「주종실전(周宗室傳)」
우문호 · 우문련 · 우문낙생 · 우문중 · 우문측 · 우문신거
58권 「주실제왕전(周室諸王傳)」
우문진 · 우문직 · 우문초 · 우문검 · 우문순 · 우문성 · 우문달 · 우문통 · 우문형 · 우문강 · 우문현 · 우문정 · 우문실 · 우문찬 · 우문지
우문윤(允) · 우문충 · 우문태(兌) · 우문원 · 우문연(衍) · 우문술(術)
59권 「구락등전(寇洛等傳)」 60권 「이필등전(李弼等傳)」
구락 · 조귀 · 이현 · 양어 이필 · 우문귀 · 후막진숭 · 왕웅
61권 「왕맹등전(王盟等傳)」
왕맹 · 독고신 · 두치 · 하란상 · 질열복귀 · 염경 · 사녕 · 권경산
62권 「왕비등전(王羆等傳)」 63권 「주혜달등전(周惠達等傳)」 64권 「위효관등전(韋孝寬等傳)」
왕비 · 왕사정 · 울지형 · 왕궤 주혜달 · 풍경 · 소작 위효관 · 위진 · 류규
65권 「달해무등전(達奚武等傳)」
강자일 · 약간혜 · 이봉 · 유량 · 왕덕 · 혁련달 · 한과 · 채우 · 상선 · 신위 · 사적창 · 양춘 · 양대 · 전홍
66권 「왕걸등전(王傑等傳)」
왕걸 · 왕용 · 우문규 · 경호 · 고림 · 이화 · 이루목 · 달해식 · 유웅 · 후식 · 이연손 · 위우 · 진흔 · 위현 · 천기 · 이천철 · 양건운 · 부맹 · 양웅 · 석고 · 임과
67권 「최언목등전(崔彥穆等傳)」 68권 「두로녕등전(豆盧寧等傳)」
최언목 · 양찬 · 단영 · 배과 · 당영 · 류민 · 왕사량 두로녕 · 양소(楊紹) · 왕아 , 왕세적 한웅 · 하약돈
69권 「신휘등전(申徽等傳)」
신휘 · 육통 · 사적치 · 양천 · 왕경 · 조강 · 조창 · 왕열 · 조문표 · 양대 · 원정 · 양표
70권 「한포등전(韓襃等傳)」
한포 · 조숙 · 장궤 · 이언 · 곽언 · 양흔 · 황보번 · 신경지 · 왕자직 · 두고 · 여사례 · 서초 · 단저 · 맹신 · 종름 · 유번 · 류하
71권 「수종실제왕전(隋宗室諸王傳)」
양정 · 양찬 · 양상 · 양홍 · 양처강 · 양자숭 · 양용 · 양준 · 양수 · 양량 · 양소(楊昭) · 양간 · 양고
72권 「고경등전(高熲等傳)」
고경 · 우홍 · 이덕림
73권 「양사언등전(梁士彥等傳)」
양사언 · 원해 · 우경칙 · 원주 · 달해장유 · 하루자간 · 사만세 · 유방(劉方) · 두언 · 주요 · 독고개 · 걸복혜 · 장위 · 화홍 · 음수 · 양의신
74권 「유방등전(劉昉等傳)」
유방(劉昉) · 유구 · 황보적 · 곽연 · 장형 · 양왕 · 배온 · 원충 · 이웅
75권 「조경등전(趙煚等傳)」
조경 · 조분 · 왕소 · 원암 · 우문필 · 이누겸 · 이원통 · 곽영 · 방황 · 이안 · 양희상 · 장경 · 소효자 · 원수
76권 「단문진등전(段文振等傳)」
단문진 · 내호아 · 번자개 · 주나후 · 주법상 · 위현 · 유권 · 이경 · 설세웅
77권 「장정화등전(張定和等傳)」
배정 · 이악 · 포굉 · 고구 · 영비 · 육지명 · 양비 · 유욱 · 조작 · 두정
78권 「장정화등전(張定和等傳)」
장정화 · 장윤 · 맥철장 · 권무 · 왕인공 · 토만서 · 동순 · 어구라 · 왕변 · 진릉 · 조재
79권 「우문술등전(宇文述等傳)」
우문술 · 왕세충 · 단달
80권 「외척전(外戚傳)」
하눌 · 요황미 · 두초 · 하미 · 여비 · 풍희 · 이혜 · 고조 · 호국진 · 황보집 · 양등 · 을불회 · 조맹 · 호장인 · 여씨
81·82권 「유림전(儒林傳)」
양월 · 노추 · 장위 · 양조 · 평항 · 진기 · 유헌지 · 장오귀 · 유란 · 손혜울 · 서준명 · 동징 · 마자결 · 이흥업 · 양원의 · 풍위 · 장매노 · 유궤사
포계상 · 형치 · 유주 · 마경덕 · 장경인 · 권회 · 장사백 · 장조무 · 곽준 · 심중 · 번심 · 웅안생 · 악손 · 기준 · 조문심 · 신언지 · 하타 · 소해 · 포개 · 방휘원 · 마광 · 유작 · 유현 · 저휘 · 고표 · 노세달 · 장충 · 왕효적
83권 「문원전(文苑傳)」
온자승 · 순제 · 조홍훈 · 이광 · 번손 · 순사손 · 왕포 · 유신 · 안지추 · 우세기 · 유변 · 허선심 · 이문박 · 명극양 · 유진 · 제갈영 · 왕정 · 우작
왕주 · 유자직 · 반휘 · 상덕지 · 윤식 · 유선경 · 조군언 · 공덕소 · 유빈
84권 「효행전(孝行傳)」
장손려 · 손익덕 · 동락생 · 양인 · 염원명 · 오실달 · 왕속생 · 이현달 · 장승 · 창발 · 왕숭 · 곽문공 · 형가 · 진족 · 영선 · 황보하 · 장원
왕반 · 양경 · 전익 · 유인 · 유사준 · 적보림 · 화추 · 서효숙
85권 「절의전(節義傳)」
우십문 · 단진 · 석문덕 · 급고 · 왕현위 · 누제 · 유갈후 · 주장생 · 마팔룡 · 문문애 · 조청 · 유후인 · 석조흥 · 소홍철 · 왕영세 · 호소호
손도등 · 이궤 · 장안조 · 왕려 · 곽염 · 지용초 · 을속고불보 · 이상 · 두숙비 · 이악 · 유원 · 장수타 · 양선회 · 노초 · 유자익 · 요군소
진효의 · 두송지 · 곽세준 · 낭방귀
86권 「순리전(循吏傳)」
장응 · 노옹 · 염경윤 · 명량 · 두찬 · 두원 · 소숙 · 장화업 · 맹업 · 소경 · 노거병 · 양언광 · 번숙략 · 공손경무 · 신공의 · 유검 · 곽현 · 경숙
유광 · 왕가 · 위덕심
87권 「혹리전(酷吏傳)」
우락후 · 호니 · 이홍지 · 장사제 · 조패 · 최섬 · 저진 · 전식 · 연영 · 원홍사 · 왕문동
88권 「은일전(隐逸傳)」
휴과 · 풍량 · 정수 · 최곽 · 서칙 · 장문후
89·90권 「예술전(藝術傳)」
조숭 · 장심(1) · 은소 · 왕조 · 경현 · 유영조 · 이순흥 · 단특사 · 안악두 · 왕춘 · 신도방 · 송경업 · 허준 · 유준세 · 조보화 · 황보옥 · 해법선 · 허준 · 위녕 · 기모회문 · 장자신 · 육법화 · 장승 · 강련 · 유계재 · 노태익 · 경순 · 내화 · 소길 · 양백추 · 임효공 · 유우 · 장주현 · 주담 · 이수 · 서건 · 왕현 · 마사명 · 요승원 · 저해 · 허지장 · 만보상 · 장소유 · 하조
91권 「열녀전(列女傳)」
난릉공주 · 남양공주 · 초국부인
92권 「은행전(恩倖傳)」
왕예 · 왕중흥 · 조수 · 여호 · 조옹(趙邕) · 후강 · 구락제 · 왕거 · 조묵 · 손소(孫小) · 장종지 · 극붕 · 장우 · 포억 · 왕우 · 부승조 · 왕질 · 이견 · 유등 · 가찬 · 양범 · 성궤 · 왕온 · 맹란 · 평계 · 봉진 · 유사일 · 곽수 · 화사개 · 안토근 · 목제파 · 고아나굉
93권 「참위부용전(僭偽附庸傳)」
혁련발발 · 모용외 · 요장 · 풍발 · 걸복국인 · 저거몽손 · 소찰
94권 「고려등전(高麗等傳)」
고려 · 백제 · 신라 · 물길 · 해족 · 거란 · 실위 · 두막루 · 지두우 · 오락후 · 류구 · 왜국
95권 「만등전(蠻等傳)」
만족(蠻) · 요족(獠) · 임읍 · 적토 · 진랍 · 파리
96권 「저등전(氐等傳)」
저족 · 토욕혼 · 탕창 · 등지국 · 당항 · 부국 · 계호국
97권 「서역전(西域傳)」
선선 · 포산국 · 실거반 · 권우마국 · 차사국 · 우전국 · 고창 · 차미 · 언기 · 구차 · 고묵국 · 온숙국 · 울두국 · 오손국 · 소륵국 · 열반국 · 토호라
소월씨 · 아구강국 · 속특국 · 파사국 · 복로니국 · 색지현 · 가색니국 · 고창 · 차미 · 여국
98권 「연연등전(蠕蠕等傳)」
연연 · 우문막괴 · 단질육권 · 고차
99권 「돌궐등전(突厥等傳)」
돌궐 · 철륵
100권 「자서전(自序傳)」
이연수
(1) 본명이 장연(張淵)으로 당고조 이연(李淵)을 피휘하여 심(深)으로 개칭되었다.
(2) 본명이 후연(侯淵)으로 당고조 이연(李淵)을 피휘하여 심(深)으로 개칭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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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이름은 누소군(婁昭君)으로, 고징의 동생인 문선제 고양에 의해 신무명황후(神武明皇后)로 추존되었다. [2] 이름은 정대차(鄭大車) [3] 이름은 원중화(元中華)로 훗날 정덕황후(靖德皇后)로 추존되었다. [4] 이 영상에서는 연회에서 고징에게 모욕을 당하자, 효정제가 이렇게는 못 산다며 술병을 깨뜨려 그 파편으로 자해소동을 벌이다 고징을 다치게 했다. 고징은 화가 나서 '황제 대접 해 줬더니 버릇이 없어졌다'며 손을 올리나, 손을 다쳐 자신이 직접 황제를 때리지 못해 최계서를 시켜 황제를 폭행했다. [5] 이때 이 촉(屬)이라는 용어는 동렬끼리 술을 권할 때 사용하는 단어이기에 황제에게 술을 올릴 때 쓰는 표현이 아니다. [6] 옆의 한자를 보면 알겠지만 의역이 아니라 직역 맞다(...). [7] 자는 자통(子通)이고, 본관은 영천군이며 순황의 후손이다. 영가의 난 겨레가 강남으로 피난을 가서 대대로 객가인처럼 살았으며 양무제의 벗이었으나 주이의 밀고 때문에 나중에 동위에 투항했다. [8] 사부는 예부의 옛 이름이며 낭중은 참의에 해당한다. 조선시대로 따지면 예조참의이다. [9] 효정제의 11촌 황야(皇爺. 황제의 할아버지뻘 황족)이다. 계보는 세조 태무황제 - 광양간왕(廣陽簡王) 원건(元建, 선비어 이름은 탁발수락진 拓跋樹洛眞) - 광양의렬왕(廣陽懿烈王) 원가(元嘉) - 광양충무왕(廣陽忠武王) 원연(元淵) - 원근이다. [10] 효정제의 19촌 현조부뻘 되는 황족이다. 계보는 도무제의 종조부 고량신무왕(高涼神武王) 원고(元孤) - 고량평양왕(高涼平陽王) 원근(元斤) - 고량양왕(高涼襄王) 원낙진(元樂眞)[14] - 양읍자(襄邑子) 원능(元陵)[15] - 기주자사 원굉(元肱) - 화산무왕(華山武王) 원지(元鷙)[16] - 원대기이다. [11] 동양 사서에선 원래 해당 왕조의 국성은 기본값으로 여겨져 황족이나 왕족은 작위명 뒤에 이름이 올 때 성을 생략하고 이름만 쓰지만 현대어에선 다 있는 편이 알아보기 쉬우므로 전부 기재했다. [12] 발해왕이었다. [13] 원문에 짐(朕)이 아니라 我(나)라고 나와 있다. 아마 고징에게 짐이라고 했다가 얻어 맞은 것 때문에 무서웠던 모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