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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수정 시각 : 2022-07-02 09:22:10

스코틀랜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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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cotland | Alb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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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n My Defens God Me Defend
하느님, 내 편에서 나를 보호하소서
상징
국화 엉겅퀴
국가 Flower of Scotland
행정
국가 [[영국|]]
수도 에든버러
하위 행정구역
32개 주 (council area)
인문환경
공용어 영어 (사실상), 스코트어, 스코틀랜드 게일어
면적 77,933㎢
인구 5,463,300명 (2019 추산)
인구 밀도 67.5명/㎢
민족 구성 스코틀랜드인 83.95%, 잉글랜드인 7.88%, 아시아계 2.66%, 폴란드인 1.6%, 아일랜드인 1.02%, 흑인 0.7% (2011)
정치
정치체제 입헌군주제, 단일국가 산하의 자치정부, 의원내각제, 단원제
국가원수 엘리자베스 2세 영국 국왕
행정수반[1] 니콜라 스터전(Nicola Sturgeon)[[스코틀랜드 국민당|
SNP
]][2]
행정부수반[3] 존 스위니(John Swinney)[[스코틀랜드 국민당|[[스코틀랜드 국민당|
SNP
]]]]
ISO 3166-1
SCT, GB-SCT
도메인
.scot
위치
파일:825px-Map_of_Scotland_within_the_United_Kingdom.svg.png

1. 개요2. 상징
2.1. 명칭2.2. 깃발2.3. 노래2.4. 기타
3. 역사
3.1. 고대3.2. 성립3.3. 중세3.4. 독립 전쟁 시기3.5. 근세3.6. 동군연합 시기3.7. 통합3.8. 현대
4. 분리주의5. 정치
5.1. 자치정부와 자치의회5.2. 정당 구도
6. 대외관계
6.1. 파일:영국 국기.svg 영국과의 관계6.2. 파일:아일랜드 국기.svg 아일랜드과의 관계
7. 교육
7.1. 초/중등 교육7.2. 고등 교육
8. 문화
8.1. 킬트8.2. 변경인 문화8.3. 음식8.4. 언어8.5. 종교8.6. 음악8.7. 인종차별에 대한 반감8.8. 스포츠8.9. 기타
9. 행정 구역10. 출신 인물
10.1. 실존 인물10.2. 가상인물
11. 대중 매체에서12. 둘러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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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잉글랜드, 웨일즈, 북아일랜드와 함께 영국을 이루는 네 구성국 중 하나다. 그레이트브리튼 섬의 북쪽을 차지하고 있고 수도 제2의 도시 에든버러(Edinburgh), 최대도시 글래스고(Glasgow)다.

2. 상징

2.1. 명칭

스코틀랜드는 영어 스코트어 이름이다. 스코틀랜드 게일어로는 알라퍼(Alba [ˈal̪ˠapə])라고 한다. 라틴어로는 스코티아(Scotia)[4] 프랑스어로는 '에코스(Écosse)다.

켈트어 계통을 제외하고는 Scotii라는 민족 이름에서 국가 이름의 표기가 나왔는데 본래는 아일랜드에 있던 켈트족 전체 또는 일부 집단을 가리켰던 명칭이었다. 그래서 스코틀랜드를 뜻하는 라틴어 Scotia도 본래는 아일랜드(다른 명칭: Hibernia( 히베르니아))의 다른 이름 중 하나였다고 한다. 하지만 현재의 북아일랜드 지역에 기반했던 달 리아다(Dal Riata 또는 Dal Riada 등) 왕국이 스코틀랜드의 하이랜드 지역에 진출했고 훗날 이들의 후손들을 중심으로 스코틀랜드를 통일함으로써 Scotia는 현재의 스코틀랜드를 가리키는 이름으로 바뀌었다.

스코틀랜드와 관계된 것을 가리키는 영어 형용사는 Scottish[5]와 Scots[6]가 있고, Scotch도 쓰이긴 하지만 현재 영국 영어와 아일랜드 영어에서는 스카치 위스키 등 제한적인 상황에서만 쓰인다. 미국 영어는 Scotch를 Scottish나 Scots와 동의어로 쓰는 경우가 아직도 많으나 스코틀랜드를 포함한 영국에서는 더이상 Scotch를 그런 용도로 쓰지 않으니 영어 사용 시 주의가 필요하다. 물론 연합왕국의 일원이므로 British라고 부를 수도 있지만, 이는 잉글랜드, 웨일즈, 북아일랜드 사람을 모두 지칭하는 단어이다.[7]

스코틀랜드 게일어 명칭인 Alba는 어원이 다른데 고대 로마에서 브리튼 섬을 가리키던 지리적 명칭 중 하나인 Albion(알비온, 앨비언)에서 기원한다. Albion 자체의 의미는 원래 그레이트브리튼 섬 전체를 가리켰다가 Britannia( 로만 브리튼)가 로마가 지배하던 현재의 잉글랜드, 웨일스와 스코틀랜드 남부 일대를 가리키는 말이 되면서 Albion은 그 북쪽에 위치했던 Caledonia( 칼레도니아)[8]를 가리키는 다른 용어로 축소되었고 이 변화가 스코틀랜드 게일어 Alba에 반영된 것이다. 다만 Albion이라는 이름은 '흰색'을 가리키던 말에서 유래하는데( 알프스, 알바니아 등과 어원이 같다) 이것은 잉글랜드 남부 도버 해협과 접한 도버 백악절벽 때문에 붙여진 이름으로 추정된다. 프랑스 쪽에서 바다를 건너 그레이트 브리튼 섬으로 건너가면 처음 보이는 지형이 이것이기 때문에 흰색과 관련된 Albion이 섬 전체의 이름이 되었다. 따라서 Alba를 비롯해서 스코틀랜드를 가리키는 켈트어 명칭들은 스코틀랜드가 아닌 잉글랜드의 지형 때문에 이름이 붙었다. 아무튼 다른 켈트어들도 대부분 스코틀랜드를 Albion에서 기원하는 단어로 지칭한다. 아일랜드어 Albain, 맨어 Nalbin, 웨일스어 Yr Alban, 콘월어 Alban이 여기에 해당된다. 하지만 브르타뉴어의 경우 브르타뉴가 지리적으로 스코틀랜드에서 꽤나 떨어져 있어 프랑스어를 거쳐 스코틀랜드의 존재가 인지되었기 때문인지 Scotia/Écosse와 관련 있는 Bro-Skos라고 부른다.

한자로는 스코틀랜드를 표준중국어 발음을 기준으로 음역한 소격란(蘇格蘭/苏格兰)[9]으로 표기한다.

2.2. 깃발

파일:스코틀랜드 국기.svg

스코틀랜드의 국기는 파란색 바탕에 X자 모양의 백십자 깃발로 '성 안드레아 십자가'라고 불린다. 사도 안드레아스는 스코틀랜드의 수호 성인으로 예수의 12사도 중 하나고 그가 순교할 때 X자형 십자가형을 당해 순교했다는 전승이 있는데 스코틀랜드의 왕인 앵거스가 이끄는 스코틀랜드 군대가 잉글랜드 군대를 상대로 한 전투를 벌이고 있었을 때 하늘에서 X자 모양의 십자가에 못박혀 순교한 성 안드레아가 나타나 승리했다는 832년의 전설로 인해 국기가 되었다.

영국의 연합 국기에서는 중앙에 둘로 끊기게 된 영향 때문에 다소 변형이 되어있고 여기에 잉글랜드의 적십자가 추가되면서 변형이 되어있다. 스코틀랜드 지역에서 통용되는 국기로 월드컵 경기 때는 스코틀랜드 팀이 단독으로 사용한다.

2.3. 노래

스코틀랜드의 실질적 국가 중 하나로 쓰이는 ' Flower of Scotland( 코리스)'의 영어판이다.[10] 현재 각종 국제 스포츠 대회에서 스코틀랜드 대표팀의 국가로 이 곡을 쓴다.
파일:Scotland Rugby team at Murrayfiled 1990.jpg
1990년 머리필드 스타디움에서 스코틀랜드 럭비 유니온 국가대표팀 럭비 경기 전
Flower of Scotland가 스코틀랜드의 비공식 국가(國歌)로 처음 채택된 것은 1990년 스코틀랜드 럭비 유니온 국가대표팀 경기에서 처음으로 사용되었다. 당시 스코틀랜드 럭비 유니온 국가대표팀은 에든버러의 럭비 경기장인 머리필드 스타디움에서 잉글랜드 럭비 유니온 국가대표팀과 Five Nations(現 Six Nations 챔피언십)그랜드 슬램 자리를 놓고 맞붙었으며, 이 경기에서 처음으로 이 곡이 국가로 불렸고 경기는 13-7로 스코틀랜드가 승리하였다. 그 이전에 비공식 국가로 불리던 노래는 ' 용감한 스코틀랜드'(Scotland the Brave), 스코츠 워 헤이(Scots Wha Hae) 등이 있었는데, 현재는 대부분의 스포츠 및 종교 행사에서 '용감한 스코틀랜드' 대신 이 '스코틀랜드의 꽃'이 국가로 불리고 있다. 아직 공식 국가로 채택된 것은 아니지만, 사실상 스코틀랜드 국가로서 기능을 수행하고 있다. 따라서 스코틀랜드의 국가는 사실상 이 '스코틀랜드의 꽃'이라고 할 수 있다. 그리고 스코틀랜드 럭비 유니온 국가대표팀의 엠블럼 역시 스코틀랜드의 국화(國花)인 엉겅퀴를 사용하고 있다.

이에 따라, 스코틀랜드 축구 국가대표팀이 참가한 1998년 FIFA 월드컵 본선에서도 이 노래가 스코틀랜드의 국가로 불렸다. 또한 2010년 코먼웰스 게임부터는 이 노래가 2006년 대회까지 스코틀랜드의 국가로 불리던 '용감한 스코틀랜드'를 대신하여 스코틀랜드의 국가로 불리게 되었다.


스코틀랜드 럭비대표팀의 홈경기장 머리필드 스타디움에서 열린 Six Nations 챔피언십 경기하기 앞서 국가( Flower of Scotland)를 제창하고 있는 스코틀랜드 럭비 유니온 국가대표팀.

2.4. 기타

2014년에 .scot라는 자체 인터넷 최상위 도메인(TLD)이 생겨났다. 2010년대에 인터넷 주소 정책이 바뀌어서 ISO 3166-1 코드가 없는 지역·언어권·민족 집단도 요건만 갖추면 인터넷 관리 기구인 ICANN에 신규 최상위 도메인을 등록할 수 있게 되었는데 이것을 GeoTLD라고 한다. 스코틀랜드의 민간 기업이 ICANN에 .scot GeoTLD를 신청해 공식 출범했다.[11] 본래 스코틀랜드에서는 2005년부터 .sco나 .scot 같은 자체 도메인을 등록해 달라는 운동이 벌어져 왔다. 과거에는 영국의 국가 코드 최상위 도메인(ccTLD)인 .uk 산하에 2단계 도메인으로 .scot.uk를 개설해 달라는 제안이 있었으나 기각되었다.

3. 역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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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06년 12월 31일까지는 스코틀랜드 왕국(Rìoghachd na h-Alba)이었으나 1707년 연합법으로 동군연합 관계인 잉글랜드 왕국과 통합해 연합 왕국을 이루어 그레이트 브리튼 왕국이 되었다. 잉글랜드와는 다른 독자적인 정체성을 가지고 있기도 해서 남쪽 잉글랜드와 사이는 좀 소원한 편이다.

우리가 흔히 쓰는 영국인(English)은 잉글랜드를 가리키기 때문에 스코틀랜드인에게 잉글랜드인(English)이라고 하는 것은 큰 실례일 수 있다. 물론 처음 대화를 나눌 땐 상대방이 몰랐을 거라 생각해 넘어가겠지만 스코틀랜드인임을 안 이후에도 그를 잉글랜드인(English)이라고 하면 큰 실례가 된다. 조금 더 포괄적인 호칭인 British는 인정하는 스코틀랜드인은 많지만 스코틀랜드에서 현재 영국으로부터의 독립에 대한 의견이 나뉘듯 이 British라는 것조차 거부하는 스코틀랜드인도 꽤 있다. 그러나 통합 이후 시간이 많이 흐르면서 스코틀랜드 지역에 거주하면서 잉글랜드 지역 출신의 혈통을 가진 사람들도 적지 않기 때문에 단순하게 볼 수 있는 문제는 아니다.

3.1. 고대

기원전 브리튼 섬에는 스코틀랜드, 잉글랜드, 웨일즈 모두 켈트족이 살고 있었다. 하드리아누스 황제가 세운 하드리아누스 성벽 이하는 브리타니아, 그 북쪽은 칼레도니아라고 불렸다. 이 칼레도니아가 현재의 스코틀랜드 땅이랑 비슷하다. 로마의 여러 황제들이 정복에 나섰으나 실패했다. 칼레도니아의 픽트족들은 자주 방벽을 넘어 요크 일대를 침공했다. 세베루스 황제가 그에 대한 반격에 나서던 중 요크에서 병사하기도 했다. 하드리아누스 방벽 남쪽의 영국섬은 로마 문화의 영향과 나중에 로마의 국교가 된 기독교의 영향을 일찍 받았지만 스코틀랜드 지역은 그런 영향을 받지않고 고대 켈트족의 독자적인 종교와 문화 언어를 오랫동안 유지하며 로마화/기독교화/앵글로섹슨/노르만화한 잉글랜드와 대립하고 교류가 적었던 점이 양 지역간의 문화나 정치 등 많은 차이를 만들었다.

3.2. 성립

5세기 중반 브리튼 제도의 민족 분포
파일:Map_Gaels_Brythons_Picts.png
게일인 픽트족
브리튼인
( 로만 브리튼)


로마 제국이 철수한 이후에는 히베르니아에서 건너온 게일인(스코트족)들과 칼레도니아에 남아 있는 픽트족의 세력 다툼이 있었고 초반에는 픽트족이 주도권을 잡았으나 점차적으로 게일인들이 주도권을 쥐게 되어 게일인 위주로 통합 왕국이 형성되었다. 스코트족은 아일랜드 섬 출신 켈트족이므로 스코틀랜드의 건국은 앵글로색슨의 침입과는 관련이 없다. 롤런드 지방 서남쪽에 컴브리아어를 쓰는 브리튼인들이 있었지만 초기에는 스코틀랜드의 영역 밖이었다.

일반적으로 스코틀랜드 왕국의 성립은 843년의 달리아다 왕조(Dalriada)와 알라퍼 왕조(Alba)의 통합으로 보고 있다. 스코틀랜드의 주요 세력이었던 이들이 통합해 스코틀랜드는 스코틀랜드 왕국이 생겨났다.

스코트족 주도하에 통일된 스코틀랜드는 바이킹의 침공을 이겨냈고 데인 인 / 노르만 인의 침공 (8세기 말) 이후 잉글랜드가 혼란에 빠진 틈을 타서 차츰 남하해 로디언 & 노섬벌랜드 & 컴벌랜드 & 웨스트모어랜드 등 잉글랜드 북부의 상당 부분을 점령했다

3.3. 중세

쇼러스 보허넌과 같은 역사가들은 9세기 중반의 왕인 기리크를 대왕이라고 부르며 그가 잉글랜드와 아일랜드의 절반을 정복했다고 기록했는데, 신빙성은 떨어진다. 이유는 기리크에 대한 기록이 잉글랜드 쪽에는 남아있지 않으며, 그의 치세기가 동시대 잉글랜드에선 이교도 대군세 시기였기 때문이다. 당시 잉글랜드의 절반 이상을 정복한 것은 스코트인이 아니라 데인족 바이킹이었다.

11세기 중반 스코틀랜드는 브리튼인 왕국이었던 어스트라드클리드[12]를 합병했다.

11세기 후반에 찬탈자 막 베하드를 무찌르고 왕위에 오른 맬컴 3세는 1068년 윌리엄 1세에게 쫒겨온 참회왕 에드워드의 친척인 에드거 애설링 왕자 일가를 환대했고 그의 여동생인 마가렛과 결혼했다. 이후 맬컴은 브리튼 섬의 통일을 바라면서 군대를 보내 잉글랜드 북부를 공격해 많은 포로들과 함께 귀환했다. 이 시기에 스코틀랜드의 앵글로 색슨족 거주자가 늘어 영어가 유입되기 시작했다. 노르만 인도 스코틀랜드로 이주해 군대의 주력을 맡았고 현재까지 스코틀랜드의 귀족들도 대부분 노르만 혈통을 지니게 되었다.

맬컴 캔모어는 이전까지는 잉글랜드로 간주되던 포스 만의 안토니누스 성벽을 넘어 에든버러까지 진출했고 그곳에 성을 쌓아 이후에 스코틀랜드의 궁정으로 삼았다. 윌리엄 2세와의 전쟁에서도 스코틀랜드는 승패를 주고받으며 대등한 모습을 보였다. 로디언이 이때 강역에 포함되었고 노섬벌랜드까지 위협했다. 하지만 1093년 맬컴 3세가 대군을 이끌고 보더스 지방의 요새 앤윅을 공격했을 때 노르만 귀족 로버트 드 모브레이의 군대에 기습 공격을 받아 대패했고 본인도 장남과 함께 전사하고 말았다.

이후 맬컴의 어린 아들들인 에드거, 알렉산더 1세, 데이비드 1세가 차례로 즉위했다. 데이비드 1세는 천한 출신인 사람의 호소도 경청해 주는 군주였고 억울한 사건이 해결되기 전까지는 다른 일을 하지 않았다. 또한 이 시기에 주교구들을 설립해 교회의 찬사를 받았고 재산을 기부해 홀리루드 수도원, 멜로즈 수도원, 드리버러 수도원, 뉴배틀 수도원, 캠버스케네스 수도원, 제드버러 수도원 등의 수도원들을 건립했다. 한편 그의 치세에 잉글랜드의 헨리 1세가 죽고 나서 벌어진 마틸다 스티븐 간의 왕위 쟁탈전이 일어났고 데이비드 1세는 대군을 소집해 잉글랜드를 침공했으나 깃발 전투에서 패배해 후퇴했다. 다만 이어진 스티븐과의 협상에서 스코틀랜드는 뉴캐슬과 뱀버러의 요새를 제외한 노섬벌랜드, 더럼 지역을 할양받아 영토를 확장했다. 데이비드 1세는 1153년에 사망했고 죽고 나서는 성 데이비드로 추존되었다. 그의 장남인 '관대한 헨리'는 1150년에 요절했고 손자인 맬컴이 즉위했다.

맬컴 4세는 기질이 온순하고 상냥하다고 해서 소녀왕이라 불렸는데 잉글랜드 왕의 가신으로서 점령지들을 통치했고 일부는 반환하기까지 했다. 잉글랜드의 왕 헨리 2세와도 좋은 관계를 유지해 그를 따라 프랑스에서 지원군이 되어 주기도 했다. 그러나 스코틀랜드인들은 프랑스에 있던 그에게 탄원서를 보내 잉글랜드에 의한 지배를 거부했고 맬컴 4세는 에든버러로 돌아와 귀족들과 협의해 관계를 다시 청산했다. 그는 1165년에 제드버러에서 사망했고 12월 24일에 그의 동생인 윌리엄이 즉위해 1174년에 노섬벌랜드를 침공해 다시 대립을 시작했다.

3.4. 독립 전쟁 시기

노르만족이 잉글랜드를 지배하고 나서 스코틀랜드도 침공을 받았다. 스코틀랜드 왕국은 웨일스 공국과 달리 완전히 정복당하지는 않았으나 분쟁이 끊이지 않았다. 처음에는 오히려 공세를 거듭해 13세기경에 이르면 로우랜드 지역을 모두 차지함으로써 오늘날의 스코틀랜드 영토를 확보하게 된다. 그 과정에서 노르만 인을 피해 도망쳐 온 색슨 족인 웨식스 왕국의 유민 집단을 받아들이면서 로우랜드가 새롭게 개발되고 문화적으로도 변화를 겪었다.

그러나 던켈트 왕조의 알렉산더 3세가 후사를 남기지 못하고 죽고 그의 외손녀 마르그레트 에이릭스도티르마저 요절하면서 왕통이 끊어져 버렸다. 스코틀랜드의 귀족들 사이에서는 왕위 쟁탈전이 일어났고 그 사이에 에드워드 1세가 스코틀랜드를 정복하고 잉글랜드의 영토로 편입시켰다.

많은 스코틀랜드인들이 여기에 반발했고 윌리엄 월레스(William Wallace)는 반란군을 일으켜 잉글랜드군을 몇 차례 격퇴하기도 했지만 에드워드 1세의 진압으로 결국 패배했다. 윌리엄 월레스와 그 부하들은 이후에도 지속적인 게릴라전으로 잉글랜드를 압박하는 작전을 세웠으나 결국 사로잡혀 죽었다.

스코틀랜드의 귀족 브루스 가문의 로버트 1세가 윌리엄 월레스의 뒤를 이어 독립 전쟁을 지속했다. 로버트 1세는 한때 패배해 아일랜드로 망명하기도 했으나 결국 배넉번 전투에서 에드워드 2세의 대군을 격파했고 마침내 에드워드 3세 때는 잉글랜드로부터 스코틀랜드 왕국으로 독립했다.

3.5. 근세

인구 규모에서만 봐도 스코틀랜드는 잉글랜드에 비해서 상대가 되지 않았다. 잉글랜드가 계속 스코틀랜드를 노렸으므로 전통적으로 스코틀랜드는 프랑스와 동맹을 맺었는데 이 동맹을 '오래된 동맹'(Auld Alliance)이라고 한다. 하지만 동맹을 맺었다고 프랑스가 스코틀랜드를 적극적으로 도와준 것은 아니어서[13] 잉글랜드의 침공을 스코틀랜드는 자력으로 항상 막아내야 했다.[14] 잉글랜드가 인구는 물론이고 조직력 면에서 압도적인 우위를 자랑하면서 유럽의 군사적, 정치적 발전의 영향도 더 많이 받아 앞서 있었다. 전쟁을 벌일 때는 스코틀랜드는 어느 정도 피해를 감수하고 험한 산악 지방이 많은 스코틀랜드 내륙으로 끌어들여 소모전을 벌이다가 지친 잉글랜드를 상대로 갑작스럽게 보병 돌격을 하는 등으로 대응했다. 이 때문에 잉글랜드는 스코틀랜드가 남하하는 것은 저지해도 근본적으로 복속시키는 것에는 실패했다.

중세 후기부터 17세기의 동군 연합과 국가 통합까지 스코틀랜드는 잉글랜드에 대한 방어에 주력했다. 동시에 왕실의 행정력이 거의 미치지 않아서 맥도널드, 더글러스, 매코넬, 캠벨, 캐머런 등 지방의 강력한 하이랜드의 클랜들이 서로 끊임없이 이권 다툼을 하면서 국가나 다름없는 권력을 행사했던 잉글랜드와의 국경 지대, 서부 해안과 섬들, 하이랜드의 복속도 추구했다. 정복왕 윌리엄 이후 런던을 기반으로 강력한 왕권과 체계적인 지방 행정을 꾸준히 정착시킨 잉글랜드에 비해 스코틀랜드는 기본적으로 켈트계 사회가 더 수평적인 측면도 있고 무엇보다 스코틀랜드 왕국의 성립과 독립 과정에서 하이랜드 클랜 대귀족들의 영향이 지대했기 때문에 중앙 권력의 정착이 어려웠다. 특히 헤브리디스 제도(Outer/Inner Hebrides)를 기반으로 '섬들의 군주' (Lordship of the Isles)라는 직함을 가지고 아일랜드와 스코틀랜드 사이를 갤리선으로 오가면서 아일랜드와 브리튼 섬 간의 중개 무역과 용병업에서 쏠쏠한 재미를 보았던 맥도널드 가문은 한때 스코틀랜드 왕실도 함부로 건드리지 못할 위세를 자랑했고, 왕실의 충신을 자처하면서 주로 국왕의 이름으로 다른 클랜을 공격해 그 땅과 전리품을 차지했던 하이랜드의 최대 클랜이자 스코틀랜드 내에서 왕실 다음으로 강력한 권력을 자랑했던 캠벨 가문 같은 거대 클랜들의 존재는 스코틀랜드 왕실의 방해가 되었다.[15]

오래된 관습과 법제화된 봉신의 권리로 인해 함부로 봉건 귀족의 자치권을 뺏을 수 없었던 상황에서 왕실은 봉건 귀족들의 최고 우두머리로서 전쟁을 통해 왕실의 권위를 유지했다. 스코틀랜드 스튜어트 왕가의 군주들 또한 이 점을 파악하고 스코틀랜드 하이랜드 클랜들을 상대로든 잉글랜드를 상대로든 왕권을 위한 전쟁을 종종 걸고는 했다. 스코틀랜드는 대부분의 남자들이 전부 칼과 활, 나중에는 권총 하나는 차고 다니고 글래스고-에딘버러 밸트 위로 조금만 올라가면 항시 무장한 클랜의 장정들이 서로의 양, 소, 목축지, 노예 등을 빼앗기 위해 사시사철 전쟁에 대비해 살던 사회였다. 전쟁을 통해 군왕이 자신의 권위를 높이려면 중세 기사도와 켈트 전사 집단의 성향에 따라서 최전선에 앞장서서 싸웠다. 제임스 2세는 플랑드르에서 새로 들여 온 공성포를 시험하기 위해 독립 이후에도 잉글랜드가 점령하고 있었던 록스버러 성을 탈환하려고 공성하던 중 야포 근처에 있다가 대포 폭발로 죽었다. 뒤를 이은 제임스 3세는 아들을 필두로 자신의 실정에 반발한 대귀족 연합을 상대로 1488년 스털링 근처에서 벌어진 소키번 (Sauchieburn) 전투[16]에서 죽었고 제임스 4세는 잉글랜드로 친정에 나섰으나 플로든 전투에서 패배하면서 잉글랜드 병사들의 창에 찔려 죽고 또 그 아들인 제임스 5세는 1542년 잉글랜드와 프랑스의 전쟁이 벌어졌을 때 동맹을 위해 잉글랜드로 쳐들어갔으나 솔웨이 모스 전투에서 스코틀랜드군이 패배하자 열병으로 사망했다.

약한 왕의 영향력을 강화하기 위해 시도한 정치적 전쟁은 오히려 스코틀랜드의 정치적 안정에 타격을 주었다. 특히 후계도 똑바로 준비 안된 군주들이 연달아 전사해버려 스코틀랜드의 국내 정세는 혼란해졌다. 이 과정에서 결국 국가의 통치는 캠밸 가문을 필두로 한 연고지는 비록 하이랜드 클랜 출신이지만 로우랜드에서 교육받고 유럽식 왕실 행정에 익숙했던 대귀족들과 연계되었던 도시민과 성직자들을 중심으로 돌아갔다.[17]

종교개혁이 일어났을 때는 스코틀랜드에도 예전부터 강력한 정치적 후원자였고 문화적으로는 유럽의 선진 문물의 창구였고 교역 파트너로서도 깊은 관계를 맺고 있었던 프랑스와 네덜란드 지방을 통해 개신교가 퍼졌다. 16세기 중후반에 여왕이었던 메리 스튜어트는 너무 어리기도 했고 주변 세력에게 휘둘리기도 해서 왕실과 결합했던 가톨릭 교회의 세력도 약해졌다. 그 사이에 잉글랜드에서 유학하고 프랑스에서 감옥에 갇히기도 했던 존 녹스를 필두로 한 로우랜드의 개신교 도시민들과, 동맹을 했던 캠밸 가문을 중심으로 한 개신교로 개종했던 클랜들이 힘을 합쳐 1559년 퍼스의 도미니코회 수도원을 파괴하는 것을 시작으로 왕실과 가톨릭 교회에게 정면으로 도전했다. 메리 스튜어트를 둘러싸고 터진 내전이었던 Marian Civil War는 짧은 전쟁 끝에 개신교 세력이 승리했다. 이후 스코틀랜드 왕국은 왕실과 가톨릭에 반대한 내전 과정에서 핵심적인 역할을 했던 로우랜드 도시들의 평신도 유지들의 모임인 장로회를 근간으로 하는 개신교 중심의 칼뱅교 국가가 되었다. 근세 스코틀랜드에서 장로교회의 부상은 종교적인 문제와 함께 정치적인 이유가 컸고 장로회를 구심점으로 도시민, 귀족, 목사들이 연합해 이전부터 약화되었던 왕실을 무력하게 만들어 버린 혁명적인 사건이었다. 그래서 스코틀랜드는 잉글랜드와 달리 후대에도 종교적 국가 정체성에 더 집착했다.

별개로 스코틀랜드는 문화, 인류학적 구분으로 여전히 로우랜드와 하이랜드로 나뉘어졌다. 로우랜드는 에딘버러, 글래스고 같은 대도시를 필두로 한 도시 문화를 형성하고 늦어도 14세기부터 영어를 받아들였고 종교개혁 장 칼뱅의 신학을 적극적으로 받아들였다. 하이랜드는 19세기 중후반까지 게일어를 유지하고 반유목 수렵 중심의 클랜 씨족 사회가 중심이었고 아일랜드 섬과 깊은 관계를 가지면서 18세기 후반~19세기 초반까지 비교적 가톨릭이나 자코바이트 중심의 성공회가 강했다. 중세 초기부터 하이랜더 클랜의 차기 지도자들은 대부분 세인트 앤드류 대학을 비롯한 로우랜드에서 교육받고 에딘버러 같은 로우랜드의 정계 사회에도 활발하게 진출하면서 두 지방의 관계는 유기적으로 상호 교류하고 서로 섞여 현대 스코틀랜드의 민족 정체성을 형성해 왔다. 에딘버러, 글래스고 등의 스코틀랜드의 대도시는 게일어를 안 쓴지 적어도 700년이었고 좀 멀리 잡으면 1000년이나 되었지만 그렇다고 해서 완전히 켈트족이 아닌 것도 아니었다. 로우랜드를 필두로 한 현대 스코틀랜드인들 다수는 이렇게 켈트계 민족 국가 중 하나이긴 하지만 영어라는 언어적 동질성을 통해 잉글랜드와 함께 영국이란 국가를 형성한 민족 공동체가 되었다.

3.6. 동군연합 시기

잉글랜드의 엘리자베스 1세가 결혼을 하지 않아 자식이 없자 스코틀랜드의 젊은 왕 제임스 6세가 후계자가 되면서 동군연합이 형성되었다. 제임스 6세의 증조할머니 마거릿 튜더가 바로 헨리 8세의 여동생이자 엘리자베스 1세의 고모였다.[18] 엘리자베스 1세의 뒤를 이어 제임스 6세가 잉글랜드 왕 제임스 1세로 즉위하면서 두 왕국은 통합되었지만 당시에는 아직 한 국가는 아니고 별개의 두 국가가 같은 왕을 모시는 동군연합 상태였다.

잉글랜드로 내려간 제임스는 기본적으로 떠나온 고향 스코틀랜드에 대해 유화적인 입장을 취하려고 했으나 종교 문제에 있어서 과거 귀족들과 다시 대립하기 시작했다. 어렸을 때는 존 녹스의 직계 제자이자 당대 최고의 라틴 문필가로 철학자, 정치학자기도 했던 조지 뷰캐넌의 영향을 받아 본인도 강성 장로회파에 속했지만 크면서 왕실의 힘을 키우려 하자 장로회 귀족과 에딘버러 시의회가 권력에 제한을 두려고 했다.[19] 여기에 이제 새로운 조국이 된 잉글랜드의 성공회는 개신교임에도 가톨릭의 전례와 교계 제도 등을 많이 간직하고 있었다. 스코틀랜드에서도 이렇게 잉글랜드와 비슷하게 왕실의 영향력이 교회에 미치는 감독제를 실시하고 주교제를 부활시키려고 하면서 왕실과 스코틀랜드 지방 권력은 서로 대립했다.

1618년 글래스고에 있었던 장로 총회 General Assembly에서 가톨릭식의 무릎을 꿇는 성찬을 부활시키고 반발하는 장로 총회의 문을 닫아 버리고 20년간 다시 열지 못하게 만드는 것을 시작으로 스코틀랜드는 종교 갈등이 다시 생겨났다. 이후 내전기에 자라 하이랜드의 강력한 귀족들과 개인적 연줄이 닿았던 아버지와 달리[20] 스코틀랜드에는 제대로 와 보지도 않아서 그 사정도 잘 몰랐고 비교적 독단적이었던 찰스 1세가 왕이 되면서 정국은 더 악화된다. 아버지는 스코틀랜드에 애향심을 가지고 멀리서도 적극적으로 다스리면서 국정을 추진하더라도 현지의 귀족을 자극하지 않으려고 했지만 찰스는 윌리엄 로드 추기경을 필두로 한 성공회식 전례와 주교제를 스코틀랜드에 강제하려고 들면서 스코틀랜드의 장로회 유력 목사들, 에딘버러와 다른 로우랜드의 시민들, 이들과 동맹이었던 개신교계 클랜들은 1638년 에딘버러의 그레이프라이어[21] 교회에 모여 국민 언약[22]이라는 종교 정치적 동맹을 선포하고 봉기를 일으켜 스코틀랜드 정부를 장악하고 찰스의 권위에 도전했다.

3.7. 통합

당시 잉글랜드는 의회와 국왕이 대립하던 끝에 찰스가 의회를 철폐하고 혼자서 직접 국가를 다스리던 11년 폭정이라 불리던 시절이었다. 스코틀랜드의 언약파 (Covenanter) 반란군은 정부를 장악하고 심지어 자신들의 요구를 관철시키기 위해 다시 한번 잉글랜드로 남진하면서 잉글랜드 내전의 발단이 된 주교 전쟁을 일으켰다. 언약파 반란군이 국경 지대인 뉴번에서 잉글랜드 국왕군을 물리치고 거의 저항없이 잉글랜드 북부의 관문 뉴캐슬어폰타인에 입성하자 찰스는 어쩔 수 없이 의회를 다시 열었다. 그러나 내심 스코틀랜드의 언약파가 국왕군을 박살내면서 왕실을 더 약화시킬 것을 기대했던 잉글랜드 의회는 찰스가 요구한 예산 조달과 군대 소집을 거부하면서 적극적으로 방해했고 찰스의 종교적, 정치적으로 충신 역할을 했던 로드 추기경과 스트래포드 공작을 기소하고 사형시켜 버렸다.

분노한 찰스는 존 핌을 비롯한 당시 잉글랜드 의회에서 왕한테 가장 심하게 반기를 든 의원 다섯 명을 체포하려고 쳐들어가나 이들은 도망치고 만다. 이 사건으로 국왕과 의회 간의 관계는 파탄났고 찰스를 더욱 못 믿게 된 잉글랜드 의회는 독자적인 군사력을 확보하기 위해 왕의 동의 없이 민병대 소집법(The Militia Ordinance)을 통과시켜 버렸다. 찰스도 의회의 비준 없이 혼자서 군열 위임령(Commissions of Arrays)을 선포하면서 양측은 내전 상태로 들어간다. 이렇게 스코틀랜드의 장로회 과격파 청교도들은 잉글랜드보다 3년이나 일찍이었던 1638년에 이미 왕권을 실질적으로 무너뜨리면서 혁명을 이루었고 스코틀랜드가 찰스 1세의 권력을 약화시켜 잉글랜드에서 혁명이 일어나게 되었다.

신정부를 구성했던 스코틀랜드 언약파는 반란을 멈추면 장로회를 공식 국교회로 인정하고 모든 요구를 수용하겠다는 찰스 측과 장로회의 요구를 모두 수용하는 것 뿐만 아니라 잉글랜드에도 장로회를 도입하겠다고까지 했던 의회 측 사이에서 고민하다 1641년 10월 반언약파 근왕파 귀족들의 반란 시도를 분쇄한 이후[23] 결국 1643년 근엄 동맹과 언약 (Solemn League and Covenant)이라는 조약을 통해 의회파와 동맹을 맺으면서 스코틀랜드를 넘어 영국 내전에 뛰어든다. 언약파는 전쟁 시기 내내 스코틀랜드의 정부 역할을 하면서 남쪽으로는 잉글랜드의 국왕군, 북쪽과 서쪽으로는 로우랜드 개신교도들의 통치와 무엇보다 캠밸 가문의 영향력의 확대를 견제했던 하이랜드와 아일랜드의 클랜들이 소집한 근왕군, 바다 건너 아일랜드 얼스터에서는 가톨릭 킬케니 연맹의 반란군을 상대로 전쟁을 치루면서 동시에 안쪽으로는 내분하면서도 올리버 크롬웰에게 정복당할 때까지 독자적인 전시 정부를 꾸린다.

당시 언약파 혁명 정부가 모집한 스코틀랜드 군대는 비상 소집되어 급조되었으나 인적 자원이 대부분 열정적인 종교적 신념으로 인해 한창 30년 전쟁이 벌어지던 유럽 대륙의 북방의 사자 구스타프 아돌프 휘하에서 종군한 용병들과 캠밸 가문을 필두로 했던 언약파 클랜들 휘하 사병들로 구성되어 있었다. 지속적으로 군사 기술이 발전하던 17세기 초중반 대륙의 선진 용병술을 몸으로 배우고 온 전직 용병들이나 일상이 전쟁이고 아직도 성인 남성 개개인에게 '전사'라 할만한 전투력을 사회적 소양으로 요구하던 하이랜더들 모두, 스페인과의 전쟁 이후 40년 가까이 대규모 분쟁에 휘말린 적 없던 잉글랜드에서 평상시 치안 유지용 민병대들을 급조한 의회파, 국왕파 양쪽 모두와 비교해도 병력의 질적으로 우월했고 이것을 기반으로 언약파 정부는 안 그래도 인구도 적으면서도 자체적으로도 내전 상태인 반쪽짜리 스코틀랜드 뿐이지만 크롬웰과 페어펙스가 아예 대륙식으로 첨단 교리와 훈련 체계까지 이식시킨 신군대 (New Model Army)를 도입할 때까지 한쪽에 가세하기만 하면 전쟁의 균형을 완전히 기울일 수 있는 역할을 할 수 있었다.

하지만 이런 숙련되고 강력한 주력은 잉글랜드에서 내전을 도와주느라 비운 사이 초기 언약파 주요 지도자 중 하나였으나 다른 지도자 클랜 캠밸에 대한 원한 관계로 인해 언약파 정부를 통수치고 근왕파로 돌아선 몬트로즈 백작 제임스 그레헴이 클랜 도널과 동맹을 맺고 스코틀랜드 내부에서 일으켰던 내전으로 한때 에딘버러 본진 바로 앞까지 밀릴 만큼 수세에 몰리기도 했다. 언약파 혁명 정부의 군사적 우위도 지속되는 전쟁에서 초기에 대륙에서 군종한 숙련병들을 하나씩 잃으면서 무더져갔던 반면 잉글랜드 의회파에서 페어펙스와 크롬웰의 주도로 군제 개혁을 마쳤다. 원래 합의했던 내용인 장로교회의 잉글랜드 도입에 잉글랜드 측의 반대가 강해지면서 1643년만 하더라도 근엄 동맹을 통해 영국 전역에서 가장 강력한 정치 집단으로 나섰던 스코틀랜드 언약파 정부의 입지도 불안해졌다.

언약파 정부는 올리버 크롬웰이 장악한 잉글랜드 의회파 세력이 너무 커지는 것을 견제하려고 결국 찰스 2세와 동맹을 맺고 잉글랜드 의회를 배신했지만 3차 내전과 던바, 우스터 전투에서 대파당하고 크롬웰에게 스코틀랜드가 정복당했다. 왕정복고 시절에 언약파가 아버지의 목이 날아간 전쟁이 일어났던 계기를 마련했다는 것을 잊지 않았던 찰스 2세는 아가일 공작 아치볼드 캠밸, 장로 총회 집사였던 워리스톤의 아치볼드 존스턴 경을 비롯한 지도자들을 반란을 일으켰던 그레이프라이어 교회에서 처형하고 옥사시켜 분쇄했다. 크롬웰은 양국 관계에서 일반적으로 있었던 의심하는 태도로 스코틀랜드를 대했으나 일단 사상적인 면에서 기본적으로 같은 개신교 급진파고 전쟁 막판 전까지는 동맹이었다는 점을 고려해 스코틀랜드를 정복한 이후에 딱히 정치 보복을 가하진 않았다. 수십만 명이라는 당대에는 경이로울 만큼의 희생자가 나온 보복성 학살을 자행했던 아일랜드와 심각하게 대조적인 모습이었으며, 끝까지 크롬웰 시절의 역사적 원한을 잊지 않으면서 근본적인 종교의 차이로 인해 결국 장기적으로 반영국 민족주의가 발달해 독립 국가를 추구하게 된 아일랜드와 달리 스코틀랜드가 비교적 쉽게 연합왕국이란 체제에 자발적으로 편입했던 계기가 되기도 했다.

그러나 언약파가 이루어 놓은 새로운 혁명 정부의 행정적 기틀과 전시 상황에서 구축한 통제력 등은 이후 스코틀랜드 정부가 물려 받았고 장로회 급진파도 스코틀랜드 사회 지배 계급으로 떠오르면서 17세기 말에 다시 한번 왕실과 충돌했다. 명예 혁명이 일어나자 언약파를 계승한 로우랜드의 장로회 측은 새로운 왕실을 받아들이고 마찬가지로 가톨릭/성공회 주류를 계승한 하이랜드의 클랜들은 자코바이트 세력에 가담하면서 다시 한번 내전이 발생했고 결국 진압되었다.

한편 유럽 국가들의 식민지 개척이 진행되면서 스코틀랜드도 17세기 후반에 식민지를 건설할 다리엔 계획(Darién scheme)을 추진하고 있었다. 중앙아메리카 파나마에서 아메리카 대륙의 콜롬비아 사이에 있는 다리엔(Darién)이라는 지방에 스코트인들을 이주시키고 그곳에서 대서양과 태평양을 잇는 무역 거점을 건설하겠다는 것이었다. 그러나 파나마에 있던 스페인인의 공격을 받고 전염병까지 돌아서 거의 실패했고 스코틀랜드의 재정상태에만 피해를 주었다.[24]

여기에 1690년대 전반적으로 '불운한 칠년' (Seven ill years)이라고 불리는 엄청난 가뭄으로 고생했고 자코바이트와의 내전까지 잘 안 풀리면서 스코틀랜드의 유력 귀족 가문과 도시 자치회들은 대부분이 파산하거나 파산 직전에 몰렸다. 이런 스코틀랜드를 다시 수습하는 방안으로 잉글랜드 왕국과의 법적 통합이 제시되었고 결국 스코틀랜드 왕국의 부채를 잉글랜드 측이 떠맡는 과정에서 1707년에 양국을 단순한 동군 연합이 아니라 법적 차원에서 한 국가로 통합하는 통합법 (Act of Union)을 통과시켰다. 이후 스코틀랜드 왕국은 독립 국가에서 그레이트브리튼 왕국( 영국)의 일원이 되었다

3.8. 현대

증기 기관 영국의 발명품 대다수가 스코틀랜드 출신에 의해 이루어졌는데, 막스 베버의 주장대로 금욕적이되 노동을 신성시하는 장로교 윤리가 기술 혁신에 기여했다고 볼 수 있다. 스코틀랜드는 18~19세기 동안 잉글랜드와 함께 발전했고 특히 스코틀랜드는 석탄이 많이 나는 지역으로 석탄을 연료로 하는 산업에서 영국의 연료 보급 기지의 역할을 했다. 1970년대에는 북해에서 석유가 발견되어 석유 산업도 발전하기 시작했고 1980년대 마가렛 대처 정권의 석탄 산업 구조 조정으로 스코틀랜드의 주요 산업은 석탄 산업에서 석유 산업으로 전환되었다.

운명의 돌(기적의 돌) 또는 대관식 돌 (Stone of Scone, Stone of Destiny, Coronation Stone) 이라고 불리는 돌 제단이 있는데 스코틀랜드의 왕권과 정통성을 상징하는 돌. 스코틀랜드의 왕위계승의식을 벌이던 돌로 스코틀랜드인들의 역사의식에 큰 의미가 있는 돌이다. 무게 152 kg의 붉은 사암으로 된 사각형 돌로 1296년 잉글랜드에 빼앗기고 대대로 스코틀랜드 왕을 겸하던 영국의 왕들의 대관식에도 쓰였다. 1950년대에 스코틀랜드로 훔쳐가는 소동도 있었고 현재는 스코틀랜드 왕가의 성이던 에딘버러 성에 반환되었다.

4. 분리주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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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세기 후반의 자치권 논의를 시작으로 마거릿 대처 총리 재임기, 1979년 스코틀랜드 자치의회 부결, 2014년 스코틀랜드 독립투표, 2016년 브렉시트 투표, 2020년 브렉시트 합의를 거치면서 독립운동의 불씨를 키워갔다.

5. 정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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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
영국의 역사, 스코틀랜드의 역사( 스코틀랜드 왕국)
주요 사건
동군연합, 다리엔 계획, 1707 연합법, 영국병, 불만의 겨울, 브렉시트
정치
영국의 정치, 스코틀랜드의 정치( SNP, 녹색당)
외교
영국-스코틀랜드 관계
스코틀랜드 자치운동과 독립운동
관련 인물 알렉스 새먼드, 니콜라 스터전
관련 사건 스코틀랜드 자치운동, 웨스트 로디언 질의, 1979년 자치권 이양 투표, 1997년 자치권 이양 투표, 스코틀랜드 독립운동( 독립 투표, 여론조사), 영국의 자치권 이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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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1. 자치정부와 자치의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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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일:스코틀랜드의회내부.jp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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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국의 자치의회
파일:스코틀랜드 국기.svg 파일:웨일스 국기.svg 파일:북아일랜드 국기.svg (비공식기)
스코틀랜드 자치의회
Scottish Parliament
Pàrlamaid na h-Alba
Scots Pairlament
웨일스 자치의회
Cymru Senedd
Welsh Parliament
북아일랜드 자치의회
Northern Ireland Assembly
Tionól Thuaisceart Éireann
Norlin Airlan Assemblie

파일:스코틀랜드 자치의회 로고.svg
2021년까지 사용한 로고
파일:스코틀랜드 자치의회 신 로고.svg
스코틀랜드 자치의회
명칭 Scottish Parliament ( 영어)
Pàrlamaid na h-Alba ( 스코틀랜드 게일어)
Scots Pairlament ( 스코트어)
의장
Presiding Officer
앨리슨 조스톤
Alison JohnstoneMSP[25] ( 무소속)[26]
주소
영국 EH99 1SP[27] Edinburgh, 에든버러
스코틀랜드 의회 빌딩
Scottish Parliament Building, Holyrood
최근 선거 2021 스코틀랜드 의회 선거
공식 사이트 스코틀랜드 자치의회( 파일:유튜브 아이콘.svg )
[clearfix]
권력 이양(devolution)이란?, 권력 이양 합의

스코틀랜드는 단원제 자치의회(Scottish Parliament)와 그 의회에서 선출된 각료들로 이루어진 자치정부를 가지고 있다. 이는 1998년 영국 의회에서 제정된 스코틀랜드법(Scottish Act 1998)에 의한 것이다.

스코틀랜드 자치의회에는 1978년에도 이미 설립 제안이 있었다. 이 때의 자치의회는 Scottish Assembly라고 하는데 이 법에 따르면 새로 생길 스코틀랜드 의회는 1978년 스코틀랜드법(Scottish Act 1978)에서 명시된 분야에 대해서 입법할 수 있었고 나머지는 영국 의회(중앙정부)의 권한이었다. 따라서 당시 자치의회의 권한은 그리 큰 것이 아니었다. 이 법안은 국회를 통과했으나 스코틀랜드 주민투표에서 총 유권자의 32%만이 찬성하여 무효 처리되었다. 당시 내건 조건은 총 득표율이 아니라 유권자의 40% 이상이 찬성해야 통과가 된다는 조건이 걸려 있었다.[28]

토니 블레어 내각이 1998년에 다시 스코틀랜드법을 제정하면서 새로이 만든 것이 현 자치의회로 현재의 자치의회는 스코틀랜드법에서 명시한 분야 이외의 모든 분야에 대해 입법할 수 있게 되어있다. 해당 법에서는 왕실 관련 분야, 주권, 외교, 전쟁, 검역, 항해, 화폐, 통신 등을 제외한 거의 모든 분야에 대해서 입법권을 갖는다고 명시되어 있으며 2012년과 2016년에 법 개정을 거치면서 입법 가능한 분야가 점차 확대되어왔다. 스코틀랜드법에 중앙정부 권한이라고 명시된 분야가 상당히 세세하게 규정되어 있지만 그래도 어느 정도 한계가 있어서, 가끔씩 어떤 분야에 대해 자치정부 권한인지 중앙정부 권한인지를 두고 법리적 분쟁이 일어나기도 한다.[29]

1998년에 만들어진 자치의회는 단원제로, 현재 총 의석은 129석이며 스코틀랜드 전역에서 소선거구제 권역별 비례대표제를 통해 선출된다. 총선으로 자치의회가 구성되면 영국 국왕이 다수당 당수(혹은 연정의 제1당 당수)를 행정수반(총리)로 임명하고 그가 자치의회 의원 중에서 자치정부의 장관들을 임명하여 정부를 구성한다. 자치의회 의원의 임기는 의회해산이 없다는 가정하에 5년이다.

영국은 성문 헌법이 없고 스코틀랜드의 자치도 고작 법률사항으로 규정되어 있기 때문에 이론적으로는 영국 의회에서 스코틀랜드법을 개정하는 절차만으로도 자치권을 뺏는 것이 가능하다. 물론 실제로 이렇게 하면 스코틀랜드는 진짜로 독립하려 들지도 모른다.

의장은 당적을 가질 수 없으며, 현 의장인 켄 매킨토시는 스코틀랜드 협동당 출신이다.

스코틀랜드 의회는 영국의 웨스터민스터식 다수대표제의 승자독식 구조가 아니다. 1990년 토니 블레어 총리가 선출되었을 때 1998년 “젠킨스 위원회”에서 반(half)비례대표제를 시행하라 권고했었다. 하지만 블레어 수상은 약속한 국민투표를 실시하지 않았고 그것에 반발하여 스코틀랜드 의회와 웨일즈 의회는 웨스터민스터(다수대표제)를 거부하고 비례대표제를 도입하게 된다.

의회의 소재지가 할리루드라서 언론에서는 스코틀랜드 의회(Scottish Parliament)보다는 할리루드(Holyrood)를 더 자주 쓴다.

5.2. 정당 구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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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코틀랜드 자치의회의 원내 구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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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3차 스터전 정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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협동당 (11석) 포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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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소속
0석+1
1. 자치의회 의장은 관행상 무소속. 현직 의장은 스코틀랜드 녹색당 출신.
2. 모든 협동당 소속 정치인은 노동당 복수 당적 보유. 협동당은 독자적인 의정 활동을 하지 않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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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코틀랜드 국민당이 사실상 일당우위제를 하는 곳이다(...).

상당히 오랫동안 노동당의 텃밭으로 인식되어온 지역이다. 1997년 자치정부 수립 이후 2007년까지 노동당과 자유민주당이 줄곧 정권을 독점해왔다. 보수당은 이곳에서 힘을 못 썼다. 토니 블레어가 스코틀랜드 자치를 추진했던 이유 중 하나도 스코틀랜드가 노동당 텃밭이었기 때문이다.

그러다가 스코틀랜드 국민당이 2007년부터 단독으로 정권을 차지하면서 자치정부 첫 총리를 배출했다. 그 뒤로는 줄곧 국민당이 정권을 독식하고 있고, 최근 노동당은 보수당에게조차 지지율이 밀린다.

스코틀랜드 국민당의 경우 영국 하원 선거나 자치 의회 선거나 득표 규모가 비슷하다.[30]

6. 대외관계

서유럽 외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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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1. 파일:영국 국기.svg 영국과의 관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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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2. 파일:아일랜드 국기.svg 아일랜드과의 관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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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 교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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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치권 덕분에 잉글랜드와 교육 체계가 약간 다르다. 6-5-2-3 학제인 잉글랜드 웨일스와 달리 7-5-1-4 학제이다.

7.1. 초/중등 교육

잉글랜드와 달리 대학 예비과정 때 A-Level 대신 SQA Higher 혹은 Advanced Higher이라는 교육과정 표준화 시험 체계를 따른다.

7.2. 고등 교육

파일:external/upload.wikimedia.org/125px-Lionrampant.png 스코틀랜드 대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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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서기 1600년 이전에 설립된 고대 대학(Ancient University), ⊙: 기타 고등교육기관, 이외 일반 대학
글래스고 대학교 글래스고 스쿨 오브 아트 글래스고 칼레도니안 대학교 던디 대학교 로버트 고든 대학교
세인트 앤드루스 대학교 스코틀랜드 루럴 칼리지 스코틀랜드 왕립음악대학 스털링 대학교 스트라스클라이드 대학교
애버딘 대학교 애버테이 대학교 에든버러 내피어 대학교 에든버러 대학교 웨스트 오브 스코틀랜드 대학교
퀸 마가렛 대학교 하이랜드 앤 아일랜드 대학교 헤리엇-와트 대학교
영국의 대학 }}}}}}}}}

영어권에서 3~6번째로 오래된 대학 세인트 앤드루스 대학교, 글래스고 대학교, 애버딘 대학교, 에든버러 대학교가 있으며, 예술대학으로는 글래스고 스쿨 오브 아트 등이 있다.

8. 문화

8.1. 킬트

스코틀랜드의 상징하면 역시 킬트이다. 이 옷은 팬티를 안 입는 노팬티로 알려져 있는데, 적과 싸울 때 자신의 성기를 꺼내보여 적으로 하여금 당황하게 하거나 혹은 용변 시 빠르고 무리없이 볼 수 있다는 장점이 있었다. 현재 있는 킬트라는 것은 근대에 현재의 모습으로 정립된 물건으로 정작 중세 때는 아예 다른 물건이었고[31] 이후 각 가문별 킬트와 타탄 체크문양이 생겨나면서 마치 중세부터 전통있는 문양인 것으로 알려졌다. 킬트와 함께 타탄 체크도 유명하지만 이 역시 킬트의 유행과 함께 퍼진 것으로 이전에도 이런 체크무늬를 많이 쓰기는 했지만 가문이나 클랜에 따라서 특유의 타탄을 사용하는 것은 킬트 유행에 맞춰 잉글랜드와 스코틀랜드의 직물 상인들이 퍼트린 것이라고 한다.

씨족의 모임인 클랜 체제를 갖추고 있고 주로 하이랜더들이 부족 단위로 생활하던 풍습이 남아 있다. 아직도 스코틀랜드 귀족들 중에서는 부족장(chieftain)이라고 불리는 작위들이 남아있다. 그 외 해기스, 백파이프로도 유명하고 빵모자+ 백파이프+ 킬트 조합은 스코틀랜드를 상징하는 심볼이 되었다. 그리고 대표할 만한 스코틀랜드의 명물로는 스카치 위스키가 있다.

8.2. 변경인 문화

근대 이전만 해도 스코틀랜드 사회는 군사 문화가 강한 지역이었다. 게일어가 통용되었던 하이랜드 지방은 반유목, 목축 생활 중심의 군소 클랜들이 끊임없이 양과 소를 비롯한 가축, 목초지, 왕실의 특혜 등을 두고 서로 반목하며 싸우던 곳이었고 그나마 농사가 어느정도 되던 로우랜드 지방도 약한 중앙 권력과 귀족, 종교 중심의 파벌 문화가 강해서 유럽 대륙이나 아일랜드, 잉글랜드에서 용병으로 진출한 사람들이 굉장히 많았다. 30년 전쟁 당시 구스타프 아돌프 휘하 스웨덴의 개신교 용병으로 온 스코틀랜드인들을 묘사한 판화들을 보면 문명의 오지에서 온 치마 입은 미개인들이 악마 같은 소리를 지르며 돌격하곤 한다라는 식으로 묘사했다. 성인 남성이라면 변경 지방의 군사 문화가 발달한 다른 유럽처럼 평소에 권총 두세정, 단검 한둘에 대검까지 무기를 주렁주렁 달고 다니는 게 상식이자 남자의 품격으로 대우받기도 했고 잉글랜드와 통합 이후 신생 영국 육군의 군사 문화와 편제 창설에 지대한 역할을 했다. 하이랜드 클리어런스 와중에 고향을 잃고 캐나다, 미국 등지로 건너간 이들도 이런 변경 지대의 무장 문화를 가지고 주로 애팔래치아 산맥 지방으로 이주해 그 문화와 사회 분위기를 주도했고 현대 미국의 수정헌법 2조를 비롯한 총기 문화 형성에 상당히 기여한 바가 있다.

미국의 경제학자 토머스 소웰은 이런 스코틀랜드 지역의 국경 문화가 미국 남부의 백인들에게 들어왔고, 이게 다시 미국 흑인들에게 전파되었다고 주장한다. 미국 현대 흑인 하층 사회에서 나타나는 강한 명예 문화와 높은 살인율이 여기에서 비롯되었다는 것.

8.3. 음식

느끼한 맛이 강하다. 특유의 서안 해양성 기후로 인해 채소를 구하기 어려운 탓에 지방 함량이 매우 높은 육식을 주로 하는 편인데, 이 때문에 대장암 발병률이 굉장히 높다. 튀김을 좋아하는데 딥 프라이드 피자라는 음식이 있다.[32] 캐러멜을 튀겨서 초콜릿에 찍어 먹거나 아예 시판되는 초콜릿 바를 튀겨 먹기도 한다.[33] 살면서 한 번쯤 도전해볼 가치는 있으나 후환은 책임 못 지는 괴식이다.

아이언 브루(Irn-bru)라는 스코틀랜드에서만 시판되는 탄산 음료수가 인기있다.[34] 스코틀랜드인들은 일종의 자부심으로 여긴다. 전 세계에서 코카콜라가 탄산음료 판매량 1위가 아닌 국가 중 하나가 스코틀랜드라고 한다.[35] 잉글랜드에서도 큰 마트에 가면 볼 수 있다. 맛과 색상은 환타와 비슷한 느낌이다. 현지인 사이에서도 호불호가 갈리는 음료다. 일반 페트병보다 작은 용량으로도 판매되니 시도해 보고 싶다면 참고해도 좋다. 미국에서도 아마존 등에서 500ml 묶음을 판매하므로 맛보고 싶다면 살 수 있다. 물론 미국 내 현지에서 콜라 등의 탄산음료가 이미 생수보다 싼 수준이기 때문에 병당 몇 달러씩 하고 미국 음료보다 용량도 더 작은[36] 아이언 브루를 굳이 사먹는 사람은 거의 없다.

주류 중에서 너무도 유명한 스카치 위스키는 말할 것도 없지만 스코틀랜드 맥주도 양질의 맥주로 고대부터 만들어온 사랑받는 음료이다. 도수 높고 씁쓸하면서도 고소한 맛이 일품인 Dark Island를 비롯한 양질의 중소규모 지역 양조장들이 많이 있고 테넌트, 이니스&건, 벨헤븐 같은 대표 브랜드 맥주 또한 잘 팔린다. 그리고 Buckfast라고 불리는 저렴한 카페인을 집어넣은 강화 포도주도 싼 값에 세게 취할 수 있다고 많이 마시는데 맛과 후폭풍은 책임 못 진다.[37] 이렇게 여러모로 주류와 음주 문화가 발달해서 영국의 다른 지방에 비해 일인당 주류 섭취량과 알코올 의존증율이 훨씬 높다.

기본적으로 개신교, 그중에서도 장로회처럼 칼뱅주의 교회가 주류인 국가들은 육신의 향략을 배격하고 특히 정신을 흐리게 하는 음주를 안 좋게 보는 경향이 강하다고는 하나 완전 금지는 아닌 데다 날씨 탓도 있고 문화적 요소도 있어서 스코틀랜드는 청교도적 가치관이 굉장히 강한 장로회의 총본산이면서도 음주에 대해서 유독 관대한 경향이 있다.[38] 청교도의 이미지가 미국 청교도의 엄격한 금욕주의가 연상되어 장로회가 국교인 스코틀랜드도 그렇지 않나 하는 편견 때문이 있지만 미국에서 장로회 또한 WASP들이 믿는 주류 교파(Mainline Protestant)인 건 맞지만 상대적으로 다수는 아니었고[39] 소수는 아니지만 제임스 1세 시대부터 찰스 2세 때까지 극심하게 박해받은 재세례파나 왕정복고 이후 크롬웰 일당으로 취급된 청교도 독립파[40](청교도 혁명 때 소수파, 다수는 장로파)나 회중교회, 재세례파, 침례회 교도들이 미국으로 가자 영국과 영국 왕실은 타락해서 망가졌다면서 본래 영국 청교도보다 더한 금욕주의를 추구했기 때문이다. 보통 서양에서도 소설 주홍 글자에 나오는 금욕적이면서 한편으로는 위선적이고 음울한 이미지가 청교도에 대한 관념으로 잡혀 있다.

법적 음주 연령이 만 21세인 미국은 말할 것도 없고 바로 아래 잉글랜드에서도 대낮부터 마시고 취해 있는 건 하류층이나 하는 거라며 경멸하는데 에딘버러 글래스고에서는 부자든 가난뱅이든 남녀노소 대낮부터 주점에서 한 잔씩 들이키고 있는 모습을 흔하게 볼 수 있다. 수업 끝나고 교수랑 학생들끼리 한잔, 사업 관련해서 얘기 한 후 접대로 한잔, 새로 만나서 이것도 인연이니 한잔 하는 식으로 기본적인 사교 생활이 음주 중심으로 돌아가는 경향이 강한 모양이다. 스코틀랜드 자치 정부에서도 이런 비만 음주 문제를 의식하고 적극적으로 고치려고 하고 있지만 여전히 기름진 패스트푸드에 대량 음주를 즐기는 스코트인들이다. 고대 켈트 문화의 영향인지는 몰라도 문화적으로도 개신교 전통이 강했던 국가임에도 불구하고 전통을 중시하는 영국(스코틀랜드도 포함)의 분위기상 스코틀랜드 음주•음식 문화의 변화는 더디기만 하다.

근래에 보기 힘든 모습은 아니다. 전세계적으로 상류층 중심으로 채식에 술담배 안하는 미국 부자식 웰빙 라이프스타일이 퍼지고 있고, 영국에선 더욱 그렇다. 하지만 스코틀랜드에선 애초에 이런 웰빙 라이프 지향하는걸 잉글랜드와 결부시켜 "깔끔떠는 외부인"이라며 문화적 저항감이 만만찮으며, 각종 지표를 봐도 음식, 음주를 비롯한 국민 건강문제 등은 영국 전역에서 스코틀랜드가 가장 높다. 프린지 페스티벌, 메이저 축구나 럭비 경기 같은 이벤트, 현지 축제만 벌어져도 에딘버러 프린스가, 하이스트릿이나 글래스고 세인트뭉고 같은 시내 중심지는 사람들이 조용히 일하고 주거하는 구역과 술먹고 깽판치는 번화가의 경계가 희미해진다. 그리고 사업이나 유학 등으로 잠깐 구경만 하고 오는게 아니라 현지에서 장기 거주하며 인맥을 만들 필요가 있는 한국사람들은 나머지 영미권보다 오히려 머나먼 한국인 정서와 통하는 바가 있는 스코틀랜드 음주문화에 대해 알고 갈 필요가 있다.

8.4. 언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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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코틀랜드 표준 영어 Standard Scottish English
스코트어 (Lowland) Scots
스코틀랜드 게일어 Scottish Gaelic / Highland Scots
이렇게 세 가지 지역 언어가 존재한다.

8.5. 종교

존 녹스(John Knox)가 종교 개혁을 주도해 스코틀랜드에서는 칼뱅주의 개혁교회가 다수를 차지했다. 장로회(presbyterianism)란 명칭 역시 이곳에서 처음 썼다.

특이하게 최대 교파인 'Church of Scotland'[41]는 장로회임에도 잉글랜드, 아일랜드 같으면 성공회 교단에 쓸 법한 명칭('Church of~')을 쓰고 있다. 일반적으로 '스코틀랜드 국교회'란 명칭으로 번역되지만 엄밀히 말하면 국민교회(national church)로 왕실 수장권을 인정하는 국교회(state church)가 아니다.[42] 그리고 당연하게도 이 '스코틀랜드 국(민)교회'로 번역되는 교파는 신학적, 교회 조직상 영국 국교회가 아니라 주교고 교구구 나발이고 없는 오히려 한국 개신교도들에게 익숙한 장로회 교회이다.

역사적으로 취업이나 학업을 위해 스코틀랜드로 이주한 잉글랜드인들이 주로 믿었던 스코틀랜드내 성공회는 잉글랜드와 달리, 오히려 미국이나 캐나다와 비슷하게 Scottish Episcopal Church라고 표기한다. 겉에 보이진 않아도 여전히 토착 스코틀랜드인들과 잉글랜드 출신 국내 이민자 커뮤니티간 미묘한 이질감이 존재하는 판에 Anglican이라 지칭하면 영 모양새가 보기 안좋기 때문이다. 성공회나 장로회나 둘 다 폭망해서 급격한 신자수 감소를 겪은 오늘날에는 통합 시도가 있을법도 한데 당장의 현실에도 불구하고 두 개신교 집단간 차이는 스코틀랜드 내부 역사적으론 워낙 중요한 차이라 서로 반목은 없어도 교회 일치 운동도 딱히 호응은 없는 모양.

스코틀랜드의 종교개혁은 잉글랜드와 달리 장 칼뱅 본인이나 그 제자들에게 교육 받은 신학적, 이데올로기적으로 가톨릭에 반발했던 이들이 아예 국가를 뒤집으면서 이룩한 결과니 그만큼 종교적 열성도 뜨거웠고 민족 정체성에도 깊이 뿌리 박혔다. 관련된 스코틀랜드 측의 알렉산더 헨더슨, 데이비드 켈더우드, 아치볼드 존스턴 등의 유력한 목사 겸 외교관, 정치인들이 집필한 1차 사료에 보면 '잉글랜드 성공회는 신자들의 열망이 아니라 국왕의 변덕으로 이루어진 개혁이라 부족한 점이 많다.'는 주장이 많았고 이런 종교적 대립은 결국 잉글랜드 의회와의 동맹이 파탄나고 올리버 크롬웰의 정복이라는 파국으로 치닫는 데 큰 역할을 했다. 현재의 북아일랜드 사태를 만든 장본인들이 바로 이쪽 출신들이었고 19세기까지도 반가톨릭 감정이 상당했다.

한때는 북아일랜드와 거의 비슷한 급으로 가톨릭-장로회 간 갈등이 심했고 알렉스 퍼거슨처럼 가톨릭교도와 결혼했다는 이유로 주변 사람들로부터 눈치를 보는 경우도 꽤 있었다. 유럽 축구판의 훌리건 문화와 더불어 이런 뿌리 깊은 종파, 민족 갈등은 한때 1990년대, 2000년대 초반의 글래스고를 우범 지대로 만들었던 전적도 있었다.

오늘날의 스코틀랜드는 상당히 세속화된 국가다. 역사가 무색하게 20세기 후반부터는 나머지 유럽 국가와 비슷하게 급격한 세속화 과정을 거친 결과 현대의 스코틀랜드 교회는 신자 감소와 재정난을 겪고 있고 잉글랜드처럼 대다수는 무종교인이나[43] 이름뿐인 신자들이다. 똑같이 세속화를 겪었어도 역사적으로 스코틀랜드 사회에선 비주류로 겉돌았던 스코틀랜드 내 가톨릭교회, 성공회는 차라리 아일랜드인, 스코틀랜드내 잉글랜드인이라는 이민자 집단의 중심점 역할을 하면서 그나마 교인 감소가 덜한 편이었던 반면 역사적으로 주류였던 장로교회는 80-90년대를 기점으로 탈종교화가 급격해져서 오늘날 글래스고, 에딘버러 같은 대도시를 걷다보면 연식도 100년 훌쩍 넘은 고풍스러운 교회 건물들이 아무도 사려고 하지 않는 부동산 매물로 나앉아 누군가 사서 문화 센터든, 지역 역사 박물관이든간에 재개발을 기다리며 파리 날리는 모습을 종종 볼 수 있다.

8.6. 음악



'스코틀랜드의 전사들'로 이것도 가사가 붙은 버전이 실질적 국가로 쓰인다. 다른 영국 지역과 달리 미국 문화에 관대한 편이다. 이 때문에 스코틀랜드 출신 뮤지션들은 음악적 실험을 해도 선율이 강조되는 특징을 자주 보인다. 상큼한 챔버 팝 역시 상당히 발달한 편이다. 특히 글래스고를 중심으로 한 C-86 씬은 세계적으로 유명하다. C-86 씬에서 국제적인 스타 밴드로 벨 앤드 세바스찬 틴에이지 팬클럽이 있다. C-86 씬 외의 스코틀랜드 뮤지션은 프로클레이머스]ㅡ, 트래비스, 모과이, 프란츠 퍼디난드가 유명하다. 아래 영상은 강한 스코티시 액센트를 사용하는 프로클레이머스의 I'm gonna be (500 miles)[44]를 live8 공연에서 부르는 모습이다.



아일랜드 포크 음악만큼은 아니지만 스코틀랜드 포크 음악도 나름대로 대중음악 장르 하나로 간주되고 있는데 이 분야에서 독보적인 것은 코리스다. 코리스의 노래 <Flower of Scotland>가 현재 스코틀랜드 국가로 불리고 있다. 세계 그 어떤 국가도 대중 가요를 국가로 부른 국가는 없다. 2014년 분리 독립 찬반 투표에서 스코틀랜드 독립이 확정되고 <Flower of Scotland>가 독립 스코틀랜드의 공식 국가로 결정되면 스코틀랜드는 최초로 대중 가요를 국가로 채택한 국가가 될 것...이었으나 투표 결과 분리 독립은 하지 않게 되었다.

국내에서는 졸업식 노래로 유명한 Auld Lang Syne이 스코틀랜드의 민요다.

또한 스코틀랜드 백파이프가 매우 유명하다.

8.7. 인종차별에 대한 반감

인종차별 문제는 거의 없다. 스코틀랜드를 진심으로 좋아하고 무엇보다도 그냥 시민권만 있으면 스코틀랜드의 후손으로 보는 식이다. 이런 인종 차별에 대한 반감을 증가시킨 건 아일랜드와 대립의 영향이 있다. 19세기 아일랜드 이민자들이 영국, 특히 스코틀랜드에서 현지 노동자들과 대립하고 있었던 역사가 있기 때문에 차별에 대한 반감이 크고 얼마 없지만 혹시라도 인종 차별이 문제가 되는 사건이 터지면 국민들 모두 자각하고 고치려고 하는 실정이다. 아시아계 스코틀랜드인, 아프리카계 스코틀랜드인도 많고 1.5세나 2세 스코틀랜드인들도 증가하는 추세다. 하지만 역시 잉글랜드에 비하면 거의 없는 것이나 마찬가지다. 파키스탄계에 대해서는 지금까지도 반감이 있으나 위에서도 언급했듯이 국민들도 그렇지만 정부에서 고치려고 하는 있다. 그리고 바시르 아마드 같은 유명한 파키스탄계 정치인들도 있었다.[45]

스코틀랜드에도 분명히 뿌리 깊은 차별의 그늘이 있었다. 일단 산업혁명과 더불어 글래스고 중심으로 대규모 이민을 온 가톨릭 아일랜드인들은 오랜 세월 언어적, 문화적 유사점에도 불구하고 제대로 사람 대접 받지 못하고 2등 국민 취급당했다. 이런 면에서 오히려 잉글랜드는 사회적으로 세속화가 비교적 일찍 이루어져 19세기 중후반 쯤이면 가톨릭교도도 어느 정도 사회적 입지와 동등한 권리를 제대로 인정받은 반면 스코틀랜드의 장로회는 일단 교리적, 신학적 개혁의 정도 자체가 훨씬 더 과격했을 뿐만 아니라 비교적 20세기 중후반까지 오랜 세월 사회적 분위기를 주도했기 때문에 반대로 골수 가톨릭인 아일랜드인들을 스코틀랜드 사회가 포용하는 걸 더디게 했다. 실제로 최근까지 총알, 폭탄이 날아다녔던 북아일랜드 분쟁의 역사적 뒷배경에 있는 북대서양 게일 문화권 전체의 종교적 갈등의 역사는 강도는 더 약할지언정 어느 정도 스코틀랜드에도 영향을 발휘했던 셈이다. 그리고 현대에 들어서도 그 강도는 눈에 잘 안 띄고 낮은 편이지만 특히 독립 문제가 고조될수록 잉글랜드에서 이주해 온 사람들은 은연 중의 차별을 호소하곤 한다. 일단 잉글랜드 만큼은 아니어도 분명 아일랜드와의 갈등은 있었다.

스코틀랜드도 인종적인 사회 갈등이 없는 건 아닌데 같은 인종의 이웃 민족들 때문에 유색인종들에게는 관심이 덜 가는 편이다. 사실 잉글랜드와 달리 유색인종이 별로 없는 지역으로 2011년 기준으로 백인이 96%다. 스코틀랜드에서 런던이나 맨체스터 같은 잉글랜드 유수의 대도시들처럼 도시 거리에 전 세계 인종이 쫙 모여서 바쁘게 지나가는 풍경은 산업 도시로서 이민자들을 많이 받아들였던 글래스고와 마찬가지로 대학 도시로서 전 세계 학생들이 몰려 있는 에딘버러 중심가밖에 없다. 이 양대 도시에서 조금만 벗어나도 비백인계 외국인이 상당히 드물다 보니[46] 기본적으로 잉글랜드의 대도시권에서 큰 사회적 이슈이자 담론 주제인 다문화 사회라는 현실 자체가 잘 받아들여지지 않는 셈이다.

코로나 19로 인해 스코틀랜드에서도 동양인을 향한 인종차별이 발생하고 있지만 영국 정부와 다른 방역 대책으로 인한 자부심과 독립 운동 재투표 문제 등으로 인해 인종차별 문제가 가려지고 있다고 한다. #

8.8. 스포츠

스코틀랜드에서 프로 리그로서 가장 인기가 많은 스포츠는 축구인데 평균 관중 15,000명대를 동원한다. 최상위 프로축구 리그로는 스코티시 프리미어십이 있다. # 그런데 정작 국가대표팀 FIFA 월드컵 & UEFA 유로 등의 메이저 대회에서 구경하기가 정말 힘들다. 하지만 친선 경기에서는 비교적 자주 볼 수 있는데 현재 전력이 좋지 않아 진지한 상대로 여겨지지는 않는다. 국대에 관해 더 자세한 건 스코틀랜드 축구 국가대표팀 문서 참조.
프로축구 리그로는 상술했듯스코티시 프리미어십이 있고, 리그컵 대회로 Betfred 컵이 있다. 또한 글래스고를 연고로 하는 두 팀인 셀틱 FC 레인저스 FC 간의 이른바 올드 펌 더비는 세계적인 더비 매치 중 하나로 여겨진다. 글래스고 연고 구단인 셀틱 FC가 1967년 유럽 역사상 처음으로 트레블 우승을 이룩하던 호시절도 있었지만, 요즘은 리그 분위기가 안 좋고 위 두 클럽과 다른 클럽들 간의 수준 차이가 심한 편이다.

럭비 역시 매우 인기가 많다. 프로 리그 경기로는 축구의 스코티시 프리미어십이 더 인기가 많지만, 국제 경기(국가대표팀 경기)로는 럭비의 인기가 오히려 축구를 능가한다. # 특히 럭비는 축구와 더불어 스코틀랜드의 전통 민족주의자들에게 내셔널리즘을 가장 잘 나타내는 스포츠로 여겨지고 있으며, 머리필드 스타디움에서 열리는 스코틀랜드 럭비 국가대표팀 경기는 햄던 파크에서 열리는 스코틀랜드 축구 국가대표팀 경기보다 평균 관중 수에서 압도적으로 앞선다.[47] 허나, Pro 14이라는 프로 럭비 리그에 참가하고 있는 에든버러 럭비 클럽이나 글래스고 워리어스와 같은 럭비 클럽 경기는 축구 스코티시 프리미어십만큼 인기가 있진 않고, 머리필드 스타디움 외에는 이렇다 할 대형 럭비 경기장이 없다.[48][49]

파일:Murrayfield_The Home of Scottish Rugby Union.jpg
스코틀랜드 럭비 유니온 국가대표팀의 홈 경기장으로는 머리필드 스타디움을 사용하고 있다.
스코틀랜드 럭비 유니온 국가대표팀은 해마다 열리는 Six Nations 챔피언십에 참가하고 있으며, 해마다 최다 관중을 끌어 모은다. 또한, 라이벌이자 럭비 강국인 잉글랜드를 상대로 승리를 거두기도 한다. 나머지 영국 구성국들과 함께 4년마다 개최되는 럭비 월드컵에도 꾸준히 참가하고 있지만, 잉글랜드, 웨일스, 아일랜드(아일랜드 공화국과 북아일랜드의 단일팀)팀들에 비해 성적이 좋진 않다. 최고 성적은 1991년 열린 럭비 월드컵에서 차지한 4위다.

한편, 영국 왕실의 앤 공주( 앤 엘리자베스 앨리스 루이즈)는 30년 넘도록 스코틀랜드 럭비 유니온 대표팀을 서포트하는 후원자이기도 하다. 앤 공주는 해마다 열리는 Six Nations 챔피언십 대회의 스코틀랜드 경기에 지속적으로 참관하고 있다. #The Royal Association
그 외에 유명 스포츠인으로는 2000년대 후반부터 남자 테니스계의 Big 4로 불리는 앤디 머레이가 있다.[50] 특히 2013년도 윔블던 남자단식에서 영국인으론 몇십 년만에 우승컵을 들어올렸다. 골프 컬링, 포환던지기의 발상지기도 하다.

또한 WWE의 탑페이스 프로레슬러인 드류 맥킨타이어가 있다. 그의 기믹도 스코틀랜드의 전통 무기인 클레이모어를 기반으로 한 것이고, 자국에서 월드컵보다도 레슬매니아가 열렸으면 한다며 애향심과 프로레슬링에 대한 열정을 동시에 보이기도 했다.

8.9. 기타

영국이나 유럽에서는 스코틀랜드를 사투리를 사용하는 등 특이하게 생각하는 경향이 두드러진다.
교관: 재미있는 사실 하나! SAS의 구성원 70%는 스코틀랜드인이다!
훈련생도: ??
교관: 진짜다!
훈련생도: (웃음)
(모든 교관이 생도를 쳐다본다)
교관: 우린 강하거든.

내셔널 지오그래픽에서 방영한 SAS 체험 캠프에서 교관들이 했던 말이다. 스스로를 촌뜨기 싸움꾼 취급하면서 참가자들을 다루는 교관들이 나온다.

구두쇠가 많다는 이미지로도 유명하다. 때문에 만화 욕심쟁이 오리아저씨 스크루지 맥덕도 스코틀랜드 출신으로 설정되었다. 구두쇠 스코트인을 소재로 한 농담도 많다. 경제 관념이 철저하기 때문인지 저명한 경제학자도 많다. 국부론 애덤 스미스를 비롯해 세계 최초의 은행인 영란은행(Bank of England)을 설립한 윌리엄 패터슨, 기펜의 역설의 로버트 기펜, 철학자이자 경제학자인 데이비드 흄, 제임스 밀, 프랑스 루이 15세의 재상 존 로 등이 있다.

전쟁터에 있는 남편에게 밭을 갈 일꾼을 살 돈은 어디서 마련하냐는 아내의 질문에 '밭에 화약이랑 무기를 묻었으니 그거 팔아서 일꾼을 사라'는 답장을 보냈고 검열 과정에서 그 편지를 읽은 군인들이 밭을 다 헤집었지만 알고보니 공짜로 밭을 갈려고 한 남자의 함정이었다는 일화도 있다. 레밍스 시리즈, 맨헌트, GTA 시리즈로 유명한 락스타 노스(舊 DMA Design)의 본사도 스코틀랜드에 있다.

왠지 톨킨 풍 판타지에 등장하는 드워프 족의 키(...)를 늘려놓으면, 대략 스코틀랜드인의 이미지와 비슷해진다. 활쏘고 말타고 배타는 것에는 서투르지만 두발로 뛰어가 상대를 토막내는 데는 익숙한 전투종족이라든지, 돈과 술을 각별히 밝히는 반면에, 원한은 반드시 되갚고, 의리를 중시하는, 거칠고 강한 아저씨(...) 이미지.

술꾼, 전투종족 등의 남자답고 거친 이미지가 강하지만, 근대 무렵에는 이른바 스코틀랜드 계몽주의(Scottish Enlightenment)라 불리우는 계몽주의 사조 아래 급격한 학문의 발전을 이룩하기도 했다. 프랑스 계몽주의와 함께 당대 계몽주의의 양대산맥을 이뤘으며, 당시의 스코틀랜드는 유럽에서 가장 문맹률이 낮은 지역이었다고 전해질 정도였다. 특히 경제학 부문에서의 발전이 두드러져 앞서 언급한 애덤 스미스 등의 걸출한 경제학자들을 여럿 배출하기도 했다.

유로 2020에서 잉글랜드가 이탈리아에 패배했을 때 스코틀랜드인들은 환호성을 질렀다.

스코틀랜드는 웨일스, 아일랜드, 북아일랜드, 콘월, 브르타뉴와 함께 켈트 연맹에 가입되어 있다.

우간다의 잔혹한 독재자 이디 아민이 생전 스코틀랜드를 굉장히 좋아했다고 한다, 그래서 이디 아민을 바탕으로 만든 2006년의 영화 제목 또한 ‘스코틀랜드의 마지막 왕’이다.[51] 이디 아민 역을 맡은 포리스트 휘터커가 영화 역사에 남을 명연기를 펼쳐 상을 휩쓸고, 영화 또한 대박이 났다.

9. 행정 구역

파일:영국 국장.svg 파일:영국 국장(스코틀랜드).svg 영국의 전례주
Lieutenancy Counties of the U.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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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 출신 인물

스코트인은 성 앞에 'Mac(맥)'이나 Mac을 줄인 'Mc'이 붙는 경우가 많다. 맥도널드(McDonald), 맥켄지(McKenzie),[52] 매케이(McKay), 매클레인(McLean), 매클라우드(McLeod), 맥밀런(McMillan), 매킨토시(McIntosh), 매케인(McCain), 매코이(McCoy), 맥겐(McGann),[53] 맥아더(McArthur)[54], 맥도넬(Mcdonell) 등이 있다. Mac은 스코트 게일어로 '~의 아들'이란 의미를 지닌다.[55] 지금은 별 의미가 없을 수 있지만 성이 맥이 붙으면 스코트인, 스코트계 아니면 먼 조상이 스코트인이다. 아일랜드도 스코틀랜드와 같은 켈트계기 때문에 아일랜드에서도 Mac Cárthaigh, Mac Dubhghaill, Mac Mathúna, Mac Piarais, Mac Réamainn, Mac Raghnaill 같이 Mac이 들어간 성씨를 쓰기도 한다.

10.1. 실존 인물

10.2. 가상인물

11. 대중 매체에서

어디서 나와도 스코틀랜드 특유의 억양 덕분에 절대 잊어버릴 일이 없는 개성 강한 캐릭터들이 많이 등장한다. 대표적으로 학교 관리인 윌리가 있다. 게일어를 쓰던 하이랜드 병사들은 하이랜더라 불렸고 강병으로 유명했다.

아기공룡 둘리 애니메이션판 중 타임머신에 관한 에피소드에서 둘리 일당이 타임슬립한 배경 중에는 350여 년 전의 스코틀랜드 외딴 시골도 있는데 거기 사는 마녀의 음모에 휘말리기도 한다.

영화 ' 둠스데이'에서는 스코틀랜드에 대한 묘사가 좋지 않아서 모든 사건의 근원인 '리퍼 바이러스'의 시발점과 최대 감염 지점으로 분류되어 육지로는 무인 기관총 시스템이 거치된 거대 장벽으로, 해상으로는 해군을 동원한 24시간 철통 보안을 통해 세계로부터 격리 조치를 당하게 된다. 하지만 리퍼 바이러스에 면역이 생겨서 살아남은 사람들이 있었고 외부와 단절되어버린 탓에 문명 수준이 퇴화해 버렸다. 무기고에는 현대형 무기들이 존재했지만 제대로 보급도 되지 않아서 비상시를 대비해 무기고에 놓아두었다가 일행이 탈출할 때 수류탄을 넣어서 연쇄폭발해 주변이 파괴되어 버린다.

브레이브 하트에서 1200년대 잉글랜드와의 갈등을 배경으로 스코틀랜드의 독립 문제를 다뤘다. 미니어처 게임 인피니티에서는 스코틀랜드 개척민들의 후손이 세운 국가 칼레도니아 하이랜더가 등장한다. 영국 드라마 닥터후/뉴 시즌 5 2화에서는 어떤 여자아이가 지구가 멸망할 때 영국 전체가 우주로 피신했지만 스코틀랜드만 따로 피신했다고 말해준다. 그 말을 들은 에이미 폰드는 그럴 줄 알았다는 반응을 보인다.[66] 해리 포터 시리즈의 주 배경인 호그와트 마법학교는 스코틀랜드에 있다는 설정이다. 재키찬 어드벤처 3시즌에서 마법에 걸린 양을 회수하러가는 배경으로 나온다.

시드 마이어의 문명 시리즈 사상 최초로 문명 6에서 영국(잉글랜드)과 별개의 문명으로 등장했다. 스코틀랜드 계몽주의[67]에서 모티브를 따와 우수한 과학과 생산력[68]으로 과학 승리를 노리는 문명으로 묘사되었다. 참고로 지도자는 스코틀랜드의 독립을 확정지은 배넉번 전투의 주인공 로버트 1세이다. 그래서 지도자의 특성명도 배넉번이다.

맛상의 여주인공인 카메야마 에리(엘리자베스 헨더슨)의 고향이기도 하다.

히어로즈 오브 마이트 앤 매직의 드워프 진영 포트리스(아샨 세계관)가 이 나라로부터 모티브를 따온 걸로 보이는데, 7탄의 영웅 직업과 5탄의 유닛 중 스코틀랜드 식 이름이 붙은 것이 있으며, 작중에서 파이프 악기를 쓴다는 언급이 나오고, 나라도 산악 지대에 위치해 있으며 성품이 대체로 완고하고 보수적이며 자존심이 강하다는 설명이 나온다.

레이싱 게임 아스팔트 9: 레전드의 트랙으로 나온다.

12. 둘러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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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First Minister [2] 제3차 스터전 정부 [3] Deputy First Minister [4] 영어식 발음은 스코샤. 여기서 유래한 캐나다 노바스코샤 주의 뜻이 라틴어로 새 스코틀랜드다. [5] 스코틀랜드인을 가리키는 명사로도 쓰인다. 단수·복수 모두 가능하다. [6] Scots 자체는 스코트어를 뜻하기도 한다. 그리고 스코틀랜드인을 가리키는 단수 명사로 Scot, 복수 명사로 Scots를 쓸 수 있다. [7] 엄밀히 말해 북아일랜드는 브리튼 섬에 있지 않지만, British는 연합왕국 사람과 소속 물건을 지칭하는 단어로 본다. [8] 현재의 스코틀랜드 대부분이 해당된다. 그래서 현재도 스코틀랜드의 별칭으로 쓴다. [9] 표준 중국어 발음은 Sūgélán(쑤거란)이다. [10] 완전한 영어판 가사는 아니고 가사에 약간의 스코트어가 섞이긴 했다. Tae, Wee 같은 표현이 그 예. [11] # [12] Ystrad Clud. 로마가 멸망하고 형성되기 시작한 브리튼족의 왕국으로, 현재 컴브리아 지역에 위치하고 있었다. [13] 무엇보다 프랑스는 잉글랜드 외에도 다른 유럽 국가들과 전쟁을 한터라 스코틀랜드를 적극적으로 도와줄수 있는 형편이 안되었다. [14] 특히 현대에 스코틀랜드-잉글랜드 국경을 형성하는 베릭-어폰-트위드는 당시 한자동맹의 주요 교역 도시(kontor)기도 했고 천혜의 자연 요새기도 해서 양쪽에서 차지하기 위해 치열한 전쟁을 벌였다. 중세 내내 주인이 양쪽 사이에서 수도 없이 바뀌었던 베릭은 결국 1482년 리처드 3세가 된 글로스터 공작이 공성 끝에 차지해 현대까지 잉글랜드 땅으로 남았다. [15] 제임스 4세도 스코틀랜드 전역에 행정 장관들을 보내는 정책을 시행하다가 지방의 클랜들이 반발해 대규모 반란을 일으켰고 이 반란을 진압하는데 5년이나 걸렸을 정도였다. [16] 스코틀랜드 지명은 주로 Glaschu( 글래스고), Dùn Èideann( 에딘버러), Inbhir Nis( 인버네스) 같이 게일어에서 기원한 것이 영어로 음차된 경우가 많아 현대 영어의 관점에서도 특이한 발음이 많다. 에딘버러 시내의 큰 도로 중 하나인 Cockburn Street만 해도 철자만 보면 특이한 이름이지만 발음은 코번 도로로 읽히고 고명한 귀족의 거대한 궁전으로 유명한 서부의 Culzean이란 마을은 쿨레인이라고 발음된다. [17] 스코틀랜드에서 하이랜드 클랜과 로우랜드 정부의 관계는 이렇게 상호 대립적인 관계기만 하지는 않았다. 나중에는 스코틀랜드의 귀족들은 에든버러에서는 다른 국가의 정치인들처럼 활동하면서도 본거지인 고향의 하이랜드에서는 여전히 반수렵 목축 공동체인 클랜의 사회로 돌아가는 데 상당히 익숙해진 모습을 보인다. [18] 아이러니하게도 엘리자베스 1세는 제임스의 어머니인 메리 스튜어트 여왕을 자신에 대한 반란을 도모했다는 혐의로 참수시켰다. 당시 제임스 6세는 일단 대사를 통해 어머니의 구명을 청했으나 태어나서 어머니를 한 번도 보지 못한 데다가, 그녀가 죽으면 자신이 잉글랜드 왕위 계승자가 되기에 처형을 적극적으로 반대하지도 않았다. [19] 1596년에는 왕의 가장 가까운 친구들이기도 했던 측근 하이랜드 귀족 자문단을 당장 처형하라고 에딘버러 성 바로 앞에서 시위를 하던 장로회 목사 몇 명이 군중들을 선동해 폭동이 벌어지기도 했다. 이때 왕은 에딘버러 궁전에서 대로로 쭉 내려가면 있는 당시에는 새로 지었던 홀리루드 궁전의 사냥터로 도망쳤고, 군중들이 왕을 찾으라고 외치면서 횃불을 들고 궁전 터에서 왕을 잡으려고 밤새도록 뒤지고 다니기도 했다. 그만큼 스코틀랜드에서 왕실의 힘이 약했던 상황이었다. [20] 1596년 에딘버러 폭동만 하더라도 수도에서 도망쳤던 왕이 어릴 때부터 친구이자 측근으로 지냈던 유력 클랜 대귀족들을 부르면서 진압되었다. 반면 이후 언약파 혁명 때도 이들의 쿠데타에 가까운 집권 방식과 핵심 인물 중 하나였던 캠밸 가문의 독주에 반발한 하이랜드 클랜들이 상당한 규모의 근왕군을 일으켜 에딘버러 바로 앞까지 올 정도였으나 이들을 통제하지 못해 제대로 된 구심점을 잡지 못하고 잉글랜드 의회파-스코틀랜드 언약파 동맹에 하나씩 패배했다. [21] Greyfriars, 회색 수도자란 뜻으로 종교개혁 이전에는 프란치스코회 수도원이 있던 자리에 지어진 교회라 붙여진 이름이다. [22] National Covenant. 원래 구약 성서의 유대 민족과 야훼 사이의 계약을 지칭하는 고유 명사로 종교 개혁 이후 스코틀랜드를 비롯한 칼뱅주의 신학의 영향을 받은 국가들은 이렇게 자기 국가를 새로운 예루살렘이라 자칭하면서 구약적 민족주의와 가톨릭 보편주의를 반대하는 성향을 표방하는 경우가 많았다. [23] 찰스는 본인과 전혀 무관한 시키지도 않은 짓을 근왕파 귀족들이 저질렀던 것이라 주장했는데, 몬트로즈 공작을 비롯해 반란을 시도했던 귀족들은 잉글랜드의 정국과 왕에 대한 입장과는 별개로 하이랜드 클랜 이권 분쟁을 통해 언약파 정부의 요직을 주로 차지한 캠밸 가 계열의 귀족들과 뿌리 깊은 원한 관계였기 때문에 전혀 설득력 없는 변명은 아니다. 이후에도 적어도 스코틀랜드 하이랜드에서 벌어진 영국 내전은 근왕과 의회, 급진 칼뱅파와 성공회식 교구파 같은 이념적 지향점과는 별로 상관 없이 주로 친 캠밸 가문이냐 반 캠밸 가문이냐라는 지극히 지역적인 문제를 중심으로 대립 구도가 형성되었다. [24] 다리엔 지역은 현대까지도 극한의 오지 중 하나로 아메리카 대륙 전체를 잇는 팬 아메리칸 하이웨이가 끊어진 유일한 구간이다. 게다가 이곳을 탐험할 때는 여행자 보험도 적용되지 않기도 한다. 당대의 지정학적인 관점에서도 스코틀랜드인들이 어느정도 주거하던 북아메리카가 아닌 적대적인 가톨릭 세력의 수장인 스페인의 신대륙 식민지 본토에 가까운 중앙아메리카 한복판에서 상대적으로 변방에 위치해있고 인구도 적어 국력이 약세한 스코틀랜드가 식민지를 개척한다는 것은 엄청난 실책이었다. 아무리 스페인이 이 당시 국력이 예전같지는 않아졌다고 하나 당시 카를로스 2세의 재위 시절로 스페인 왕위계승전쟁 이전이었기에 아직은 스페인이 그럭저럭 강한 나라였다. 즉 스코틀랜드 정도는 가볍게 상대할 수 있었을 것이다. [25] Member of the Scottish Parliament(스코트어: Memmer o the Scots Pairliament. 스코틀랜드 게일어: Ball Pàrlamaid na h-Alba·BPA). 스코틀랜드 자치의회 의원. [26] 의장이라 현재는 무소속이다. 본래는 스코틀랜드 녹색당 [27] 할리루드(Holyrood)의 우편번호 [28] 당시 유권자 투표율은 1998년 권한 이양 국민투표보다 높았다. 1998년 투표는 대신에 찬성 쪽 득표율(74.29%)이 훨씬 높았다. [29] 연방정부의 권한이 적다고 알려진 벨기에와 비교하면 2021년을 기준으로 밀리지 않는 수준의 자치권을 갖고 있다. 영국으로부터 이양받은 권한 중에서는 벨기에의 지역이나 공동체 정부가 갖고 있지 않는 것도 있다. [30] 2019년 총선에서는 124만 표로 하원 48석을 얻었고 2021년 자치의회 선거에서는 129만 표를 얻었다. [31] 현대 킬트의 원형이 되는 '그레이트 킬트'라는 의복은 있었다. 하위 계층이 많았던 하이랜드인들이 주로 입던 옷이었고 주류 계층인 로우랜드인은 미개인이나 입는 의복으로 보아 천시했다고. [32] 말 그대로 피자를 튀긴 음식. 당연히 칼로리가 높다. [33] 딥 프라이드 마스 바(Deep Fried Mars Bar). '마스바'라는 굉장히 유명한 초콜릿 바를 튀김옷에 입혀 튀겨 먹는데 의외로 맛있다. [34] 런던에서도 쉽게 찾을 수 있다. [35] 당연히 아이언 브루가 판매량 1위다. [36] 미국에서 250ml 캔에 해당하는 것이 12 US fluid oz = 355ml라면 500ml급 소형 페트병에 해당하는 것은 20 US fluid oz = 591ml짜리 페트병이다. 그런데 아이언 브루는 한국처럼 SI 단위를 사용하는 스코틀랜드 수입품이라 그냥 500ml다. 양도 적은 주제에 콜라 591ml 페트보다 몇 배 비싸다. [37] 게다가 원산지는 우습게도 잉글랜드, 그것도 남부 지방의 데본셔의 한 수도원에서 제조하는 술이다. [38] 잉글랜드나 다른 게르만계 서유럽권에 살아본 사람들은 어차피 세속화가 일찍된 지방이니 문화적 영향력도 옅은게 아니냐 반문할 수 있지만, 의외로 스코틀랜드 사회의 세속화는 70-80년대 들어서야 본격적으로 진행되었을 만큼 다른 서유럽과 잉글랜드에 비해서도 10년 가랑 한템포 늦었고, 대신 그만큼 정도도 급격했다. 축구판만 봐도 레인저스-셀틱 대립이 그리 격렬했던 것도 상당히 최근, 1990년대-2000년대 초만 하더라도 전자는 장로교계 토착 스코틀랜드인, 후자는 카톨릭계 아일랜드 이민자들의 팀이라는 민족적, 종교적 대립구도가 확실했기 때문이다. [39] 현재에도 미국 개신교 다수는 침례회와 감리회다. [40] 영국 국교회의 내부 개혁에 미련을 버리고 독자 교회를 설립하려는 운동 [41] 현지 스코트어로 The Kirk 더 커크, (국)교회라 부른다. 스코트어는 스칸디나비아쪽 언어들의 영향력을 짙게 받아 ch를 그냥 k로 대체하여 표기한다. [42] 그러나 매년 열리는 총회(general assembly)에는 여왕(가장 최근에는 2002년도 총회에 직접 참석) 혹은 여왕이 임명한 특사(Lord high commissioner)가 참석하는 관례가 있다. [43] 2011년 조사에 따르면 스코틀랜드의 무종교율은 36.7%에 달한다. [44] 이 곡은 스코틀랜드 축구대표팀의 응원가 역할을 한다. [45] 스코틀랜드 국회에서 2007년에 글래스고 대표로 당선되었다. [46] 양대 도시 다음인 스코틀랜드 3번째 도시인 애버딘은 기본적으로 유전에 의존하는 도시다. 정유 산업 같은 고급 2차 산업은 외국인들이 취업하기도 힘들고 애초에 주중에 내내 해상 정유 플랫폼에서 일하고 주말엔 다른 도시 동네에 있는 가족에게 돌아가는 경우도 많다 보니 애버딘은 스코틀랜드 3번째 도시긴 해도 다문화적인 환경을 느끼긴 힘들다. 그보다 인구 작은 던디, 퍼스, 페이즐리, 리빙스턴 같은 곳은 기껏해봐야 스코틀랜드 내에서나 도시로 쳐주는 수준이고, 세계적, 아니 그냥 영국 내에서 기준으로도 그냥 좀 큰 마을, village보단 좀 크지만 city 소리는 못듣는 town 수준이다. [47] 햄던 파크에서 열리는 스코틀랜드 축구 국가대표팀 경기의 평균 관중 수는 27,000명 이하에 불과하다. # [48] 에든버러 럭비팀(Edinburgh Rugby)은 빅 매치(Big Match) 시에는 머리필드 스타디움을 홈 경기장으로 사용한다. [49] 머리필드 스타디움은 스코틀랜드에서 가장 큰 경기장이지만, 축구에는 셀틱 파크, 아이브록스 스타디움, 햄던 파크( 스코틀랜드 축구 국가대표팀 홈 경기장)와 같은 3개의 대형 경기장이 있다. [50] 나머지 Big 4로 불리는 선수는 스페인 라파엘 나달, 스위스 로저 페더러, 세르비아 노박 조코비치가 있다. [51] 국내에서는 ‘ 라스트 킹’ 이라는 이름으로 알려져 있다. [52] 원래는 Yogh(Ȝ)라고 불리는 스코틀랜드 문자를 사용해 MackenȜie라고 썼고 발음은 '맥켕이'에 가까웠다. 그런데 인쇄술이 도입되던 시절 잉글랜드에서는 Ȝ를 사용하지 않으니 자연스레 해당하는 활자를 제작하지 않았고 스코틀랜드인들은 어쩔 수 없이 Ȝ 자리에 z 활자를 대신해 사용하게 되었다. 그리고 시간이 흘러 Mackenzie가 너무 자연스러워진 나머지 원래의 발음을 잃어버리고 맥켄지로 읽히게 되었다. [53] 이 성씨를 가진 폴 맥겐이라는 배우가 있지만 리버풀 출신이다. [54] 스코틀랜드계 혈통이다. [55] 다른 지역의 작명법도 비슷한데 아일랜드에서는 O'(O'Neill, O'Brien, O'Sullivan 등)나 Ó, 잉글랜드에서는 아들을 뜻하는 son이 접미사로 붙는다.(Thompson, Johnson, Jackson 등) 또 피츠제럴드(Fitzgerald), 피츠존(Fitzjohn), 피츠클래런스(FitzClarence), 피츠로이(Fitzroy)와 같이 라틴어로 아들을 의미하는 '필리우스(Filius)'에서 유래한 '피츠(Fitz)'가 붙은 성씨도 있다. [56] 최초인지 아닌지는 논란의 여지가 있다 [57] 파이 차트, 라인 그래프, 바 차트 등. [58] NCIS의 덕 박사 역. [59] Heughan으로 표기하는데 휴언으로 발음한다 [60] 스코틀랜드 출신임을 강조하려는지 그가 사용하는 슬레지해머와 오른쪽 종아리에 킬트 조각을 묶어놨고 슬레지해머에는 스코틀랜드 전통인 'The Caber'라는 이름을 붙였다. [61] 원래 이스라엘 사람이지만 스코틀랜드 끝자락에 위치한 뮈어 섬의 연구소에서 스코틀랜드 출신 여성 과학자의 관리를 받으면서 인생의 대부분을 보냈다. 덧붙여 뮈어 섬은 가상의 섬이다. [62] 태어난 곳은 인도지만 어머니 쪽 혈통과 실제 국적은 스코틀랜드라서 게일어를 조금 할 줄 안다. [63] 디그릇(DeGroot)이라는 흑인 귀족 가문 출신인 매우 파격적인 설정이다. 다만 데모맨의 목소리를 맡은 성우가 미국인인지라 데모맨의 대사는 스코틀랜드 억양과는 상당한 차이가 있다. [64] 포켓몬 세계에는 스코틀랜드가 없기에 포켓몬 시리즈의 등장인물이 스코틀랜드 출신이 되는 것은 불가능하다. 그러나 우리가 주인공으로 활약하는 포켓몬스터소드·실드의 공간적 배경인 가라르지방은 브리튼 섬의 일부를 본떠서 제작되었고, 스코틀랜드의 일부에 해당하는 지역이 들어가 있기도 하며 우리가 쓰고 다니는 모자가 스코틀랜드식 베레모인 Tam o'shanter기 때문에 우리는 스코틀랜드인일 것이라는 생각이 나타났다. [65] 원작 소설에서는 잉글랜드 출신이었으나 영화화 될 때 숀 코너리가 스코틀랜드 억양을 고치지 않고 그대로 나온 후 설정이 변경되었다. 007 스카이폴에서 본드가 M과 함께 피신한 본드의 옛집도 스코틀랜드에 있다. [66] 참고로 에이미 폰드는 스코틀랜드 출신으로 나오고 실제 에이미 폰드역을 맡았던 카렌 길런도 스코틀랜드 출신이다. [67] 실제 게임에서의 문명 특성 이름이기도 하다 [68] 산업시대에 유명한 스코틀랜드 출신 과학자 및 기술자들이 많은 것을 반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