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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수정 시각 : 2024-01-05 21:47:00

전투식량/영국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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각국 군대의 전투식량
독일군 러시아군 미군 / MRE / CCAR 영국군 중국군
이탈리아군 자위대 프랑스군 한국군 기타 국가

1. 개요2. 종류
2.1. 2010년 이후 개량형2.2. 2013년 8월 이후 개량형
3. 여담

1. 개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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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50년대 말레이 비상사태[1] 당시 영국령 말라야 연방(현 말레이시아)
쿠알라룸푸르의 공장에서 영국군[2]용 전투식량을 생산하는 모습.
현대 영국의 전투식량인 GP는 이름만 봤을때는 맛없어 보이지만 그래도 사실 영양학적으로 신경을 많이 쓴데다 MRE보다 낫다는 사람도 있을 정도로 맛도 꽤 괜찮은 전투식량이다. 유럽인 기준으로 독일이나 프랑스에 비견할만하다고 말하는 경우도 있다. 그리고 티타임에 맞춰서 홍차 티백이 들어가 있다. 한국인 입장에서야 좀 웃기게 보일 수 있지만, 사실 영국군의 입장에서 보면 자국민들이 많이 먹는 기호식품이므로 자국군의 전투식량에도 당연히 들어가는 게 정상이다.[3] 또한 저런 차나 음료는 깨끗한 물을 구하기 어려운 상황에서 약간이나마 정수 작용을 해주는 역할을 할 수 있기 때문에 실용적인 면을 따져봐도 딱히 이상할 이유는 없다. 마침 영국군의 주력 전차에는 물 끓이는 기계도 내장되어 있다.

사실 영국의 전식은 역사가 꽤 길다. 1899~1902년 사이에도 통조림 형태의 전식이 있었다. 다만 이는 비상식량으로써의 성격이 강했다. 링크

2. 종류

2.1. 2010년 이후 개량형

일선 영국군 장병들의 요구와 미군 MRE 등으로 바뀌는 전투 식량계의 트랜드를 따라잡기 위해 2010년 개량품이 나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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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단 개량형 기준으로 탄수화물 500g, 지방 133g, 단백질 100g, 총 4000㎉의 열량을 자랑하는 24시간용 전투식량의 구성은 본품 3끼, 메인디저트 1끼, 홍차 티백, 사탕, 과일퓨레, 믹스 너트, 스포츠 드링크 분말, 시리얼 바, 건조 과일바, 방수성냥, 양치용 껌 등 부식 및 구성품은 풍성한 편. 아무래도 티타임이 발달한 나라라서 차와 함께 먹을 수 있는 주전부리들이 많다. 영국 신형 전투식량 구성품 중 과일퓨레는 좀 시큼하고 밍밍한 사과죽 맛, 믹스너트는 고소한 맛 없이 씹는 느낌과 함께 단맛만 나며 특히 구성물 중 코코넛은 종이 씹는 맛이 난다. 하지만 그 외 사탕, 건조과일바, 시리얼바 등 부식들은 먹을 만한 편. 아니, 상당히 맛있다. 특히 스포츠음료는 시중에서 파는 것과 별 다른 점이 없을 정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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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번 메뉴 기준으로 돼지고기 소세지&콩, 참치 칠리 파스타, 참치 리가토니 파스타, 레몬 스펀지 케익이 주식으로 들어있다.
주식으로 들어있는 파스타는 대체적으로 약간 기름지고 간이 강한 편이며 먹을만하다. 열량을 높히기 위해 지방을 아낌없이 부은듯한 느낌이지만, 테스코 파스타랑 비교했을 때 전투식량이 더 나은 수준.

그런데 이 개량형 전투식량, 세부적으로 보면 영국산이 아니다. 통밀 비스킷[4]은 영국산이긴 하지만, 스펀지 케익은 뉴질랜드, 핫초코와 이온 음료는 독일산, 파스타는 태국산, 스포츠 음료는 노르웨이산이라는 것을 본다면 영국 전투식량은 영국에서 포장만 한 세계음식 모음집이었다. 대개 전투식량 내용물은 자국에서 생산한 물품이 들어간다는 점을 생각해 보면 이는 이례적인 일. 이는 하술하겠지만 이들 식품들의 가공 시설이 영국 내에 갖춰지지 않아 전투 식량만을 생산하기 위해 생산라인을 가동하는 게 경제적으로 부담이 되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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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투식량의 맛과 질이 일선 장병들의 사기에 영향을 미치기 때문에, 피드백을 받기 위해 상자 내에 맛을 평가하는 설문지가 같이 포함되어 있다. 주기적으로 평가받아 호응이 좋지 못한 메뉴는 교체한다고. 설문지를 반영해서인지 2012년에 다시 한 번 개량형이 등장했다. 주식과 부식이 소소하게 바뀐 것 말고는 큰 차이가 없다.

2.2. 2013년 8월 이후 개량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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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년 8월에 다른 형태의 전투식량이 개발되었다.

아프가니스탄에서 미군과 동일한 형태의 작전을 수행함에 있어 24시간용 전투식량의 무게가 너무 무겁고[5] 대부분 주둔지에서 1끼를 먹고 작전을 수행함에 따라 1끼 분량이 불필요하게 버려지거나 현지인들에게 나누어진다는 점을 개선하기 위해 수색/정찰/매복 작전을 위한 12시간용 전투식량이 새로 개발되었다. 24시간용 전투식량과 비교해보면 끼니수가 1끼니 줄었으며, 점심은 레토르트 팩에 든 샌드위치[6]로 구성되어 있다. 또한, 쓸데없는 구성품들과 잡다한 부식이 줄었으며 매복지에서 음식을 데워먹을 수 있도록 MRE처럼 1회용 히터가 들어있다. 이 전투식량도 역시나 절반 이상이 외국에서 수입해온 물품들이다. 11개 품목 중 영국에서 제조된 품목은 4개 뿐이었다.

영국 전투 식량에 이렇게 외국산 품목들이 많은 가장 큰 이유는 원가 절감 측면과 생산 설비 문제이다. 전투 식량 품목에 요구되는 보존 식품들은 영국 내에 생산 라인이 갖춰져지 않은 경우가 많고 민간에서도 해당 제품들에 대한 수요는 대부분 수입에 의존하고 있다. 때문에 가격을 낮추고 제품의 품질을 보장하기 위해서는 어쩔 수 없이 외산을 쓸 수밖에 없다.

3. 여담


영국남자 영국 쌍둥이 편에서 한국군 장병들이 이걸 맛보는 에피소드가 나왔는데 반응이 영 좋지가 않았다. 특히 안 데우고 먹었을 때 더더욱....영국맛

1차대전기의 이름높은 매커너히 스튜가 영국제다. 고기와 완두콩, 지방 등으로 끓인 스튜가 들어 있는 통조림인데 각종 수기의 공통적인 평가는 "뜨겁게 데워서 먹으면 먹을 만 하지만 차가운 채로는 쥐약같았다/사람 잡는 맛이었다.". 아울러 왜인지 홍찻잎에 설탕을 섞어서 보내와서, 설탕만 쓰려면 일일이 찻잎을 골라내야 한다고 투덜거리는 편지도 남아있다.

2차대전기에는 미군과 비슷하게 통조림화된 전투식량을 사용했는데, 개중 특이한 것으로는 홍차를 비롯해 영국인 취향의 부식만 모은 것도 있었다. 식량은 미군에게서 얻어먹고 이걸로 입가심을 하라는 뻔뻔한 물건이다.

처칠 레이션이라고 하여 일본군이 말레이 전역에서 요긴하게 써먹은 적이 있다. 이 경험으로 인해 그 유명한 무다구치 렌야가 보급은 약탈로 해결할 수 있다는 망상을 하는 데 일조했다.


[1] 1948~1960. 말레이시아 공산당의 봉기로 시작된 영국과 ANZAC, 인도 그리고 말라야 연방과 말레이시아 공산주의 세력의 전쟁이다. 비상사태라는 명칭은 국가 대 국가의 전쟁이나 내전이 아닌 말레이 공산당의 봉기로 인한 폭동을 진압했다는 영국과 말레이시아의 입장이 반영된 표현이다. 제2차 대전을 거치며 영국은 해외 식민지를 유지할 힘이 약화되었고, 또 세계적으로도 탈식민화의 추세가 가속화 되고 있었다. 그래서 영국은 직접 지배를 단계적으로 포기하고 기존에 호주/뉴질랜드/캐나다/남아프리카/싱가포르 등에서만 허용되던 고도의 자치를 말레이시아를 포함한 각 식민지들을 대상으로도 실시하기 시작했고, 말레이시아도 말라야 연방을 비롯한 여러 자치 식민지들의 연합으로 개편되었다. 말레이시아 각 지역의 식민지 주민들도 자신들의 정치적 지위에 큰 향상이 있을 것으로 보았고 장기적으로는 영국이 독립을 약속했기 때문에 이 결정을 기쁘게 받았다. 여기서 문제는 안 그래도 대영제국의 일부로서 제국주의적 플랜테이션 농업을 주력으로 삼은 말레이시아의 경제가 태평양 전쟁과 대영제국 경제권의 해체를 거치며 엉망이 된 상황에서 중국과 소련의 영향으로 공산당이 발호했다는 점이었다. 특히 이들은 중국 공산당과의 협력으로 말레이시아 내에서 크게 세를 키웠는데, 이 부분에서 알 수 있듯이 이들 말레이시아 공산당의 인종적 주력은 중국 공산당과 중국 공산당의 마오주의 노선에 동조하는 중국인 즉 화교들이었다. 화교 공산주의자들은 동남아시아 내 화교들에 대해 억압적인 정책을 펼치던 일본 제국에 저항했고, 일본 제국이 물러나자 이제는 제국주의 영국에 저항하여 모든 말레이시아 민족들이 봉기해야 한다고 선동했지만 이들의 인종적 주류는 화교였고, 이들 화교들에 대해 반감을 넘어서 적개심을 가지던 말레이계와 인도계 등 다른 말레이시아의 민족들 사이에서 반발이 일어났다. 그럼에도 말레이시아의 공산주의자 화교들은 모국 중국이 국공내전이 끝난 1949년에 결국 공산화되고 중국의 지원이 들어오자 이에 발맞춰 세를 더욱 불렸다. 이들 화교 세력의 성장은 영국 식민 당국은 물론이고 인구의 대다수를 차지하는 원주민인 말레이인들에게도 큰 위협으로 받아들여졌다. 영국은 식민지 자치를 강화해주었긴 했지만, 그렇다고 주요 항로이자 영국령 홍콩을 유지하는 것에 더 나아가 영국의 가장 큰 이권 지역이자 많은 영국계 주민들이 거주하고 있는 호주 뉴질랜드로 향하는 데 필수적인 위치에 있는 믈라카 해협에서의 영향권을 포기할 생각은 없었고, 이를 적성 세력인 공산권에 넘겨줄 생각은 더더욱 없었다. 또한 말레이시아의 주도적인 세력이자 토착 원주민들인 말레이인들은 자신들의 땅에 들어와 영국인들을 도우며 점차 경제를 장악해 나간 화교와 인도인들을 매우 싫어했다. 거기다 말레이인들은 이미 영국으로부터 고도의 자치권을 부여 받아 시행까지 하고 있었고, 중장기적으로는 독립까지 예정되어 있던 상황이라 오히려 이런 말레이시아의 자치와 독립에 악영향을 줄 수도 있는 화교 공산주의자들의 움직임에 동조해줄 생각이 더더욱 없었다. 거기다 당시 싱가포르를 포함한 말레이시아 인구의 38%가 화교였는데 이는 49%를 차지하는 말레이인들과 그렇게 차이가 나지도 않는 어마어마한 숫자였다. 그렇기에 말레이인들은 들불처럼 번지는 공산주의 운동을 놔뒀다가는 결국 말레이인이 주류가 된 말레이 독립 국가는 물거품이 되고 말레이인들이 화교 공산주의자들에게 휘둘려 지배 당하는 작은 중국이 될 것이라고 우려할 수밖에 없었다. 이에 말레이인들은 말레이시아 공산당에 적극 대항하고자 하였고, 말레이인들의 지지와 지원을 받은 신생 말라야 연방 정부는 영국과 함께 공산주의 세력을 제압하는 데 적극적으로 나섰다. 그리고 영국령 싱가포르도 화교가 인구의 주축이었음에도 이미 영국으로부터 고도의 자치권을 인정받고 있었던 데다, 인도양과 태평양을 이어주는 지점이라는 지리적 이점을 활용하여 영국 및 호주와의 공동 경제권을 구성하고 있었고, 더해서 두 나라 더 나아가 자유세계에 필요한 항만 시설들과 군사 시설들을 유치하여 막대한 경제적 이익을 구가하고 있던 상황이라 리콴유의 주도 아래에 말레이 연방 내 공산주의자들을 진압하는 데 앞장섰다. [2] 정확히 말하자면 영국군 중에서도 현지 말레이인과 중국인(화교)로 구성된 군대다. [3] 당장 한국 전투식량에서 김치 고추장을 어떻게든 넣으려 하는 것을 생각해보자. [4] 두 번째 사진의 보라색 포장 [5] 1박스에 약 3kg [6] 미군 FSR에 들어있는 그거 맞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