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개요
노르만 정복은 10세기부터 12세기까지 유럽 대륙 전체를 대상으로 진행되었던 노르만족의 정복이다. 롤로의 노르망디 침공으로 시작하여 잉글랜드에서의 노르만 왕조 설립, 남이탈리아에서 일어난 시칠리아 왕국 건국이 모두 노르만 정복의 일환이다. 다만, 아일랜드와 같이 그 저항이 강력하여 성공했다고 볼 수 없는 사례도 존재한다. 노르만 정복의 말미에는 바이킹의 일족이었던 노르만족이 서서히 타민족과 융화되며 그 정체성을 잃게 된다.2. 프랑스에서의 노르만족 탄생
모든 노르만 정복의 전신이 되는 사건으로 820년 노르만족이 따뜻한 장소를 찾아 프랑스 북부 세느 강 일대를 공격하며 시작되어, 911년 롤로 공과 서프랑크 왕국의 샤를 3세의 조약으로 노르망디 공국이 세워지기까지 약 100년간 진행된 일련의 사건들이다.3. 잉글랜드에서의 노르만 정복
1066년 노르망디 공작 윌리엄이 헤이스팅스 전투에서 승리하며 잉글랜드에 노르만 왕조를 세웠다. 이 과정에서 윌리엄 1세를 따라온 노르만족 기사들이 잉글랜드의 영지를 받고 대륙의 봉건제도를 잉글랜드로 들여오며 새 지배계층을 이루기 시작해 앵글로색슨족과 대립했다. 후에 존 왕이 노르망디, 앙주 등 대륙의 영토를 대거 상실하며 잉글랜드와 노르망디의 귀족들을 이어주던 연결고리가 사라졌고 결국 이들은 대부분 동화되어 잉글랜드인의 정체성을 가지기 시작했다.노르만족은 바이킹의 후예이긴 하지만 이미 노르망디에 정착한지 200년이 흘러 그 정체성과 혈통, 언어[1], 풍습, 문화, 종교는 프랑스인과 별 차이가 없었다. 이 영향으로 오랫동안 영국 왕실과 주요 귀족층은 프랑스어를 썼으며, 대표적인 예시로 그 유명한 사자심왕 리처드 2세도 평생 영어가 아닌 프랑스어를 구사했다. 그래서 영국-프랑스 라이벌 관계를 들먹일 때 노르만 정복은 사실 프랑스의 잉글랜드 정복이었다라는 떡밥은 양국 국민들의 불타는 주제이기도 하다.
4. 이탈리아에서의 노르만 정복
자세한 내용은 노르만의 시칠리아 정복 전쟁 문서 참고하십시오.11세기 초 노르만 기사들은 이탈리아 남부 도시국가들의 용병으로 고용되어 동로마 제국과 무슬림 군주들과 싸웠는데 이들은 나중에 시칠리아의 정착하며 강력한 세력으로 성장하기 시작했다. 로베르 기스카르의 조카였던 루지에로 2세가 당시 대립교황 아나클레투스 2세와 교황 인노첸시오 2세의 지지로 시칠리아 왕국의 왕이 되며 오트빌(Hauteville) 왕조를 세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