변신자동차 또봇의 등장인물에 대한 내용은 차두리(또봇 시리즈) 문서 참고하십시오.
차두리의 역임 직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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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진영 2018~2019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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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두리 2020~2021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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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필종 2022~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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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owcolor=#ffffff> 초대 | 2대 | 3대 | 4대 | 5대 |
한문배 (1984) |
김광훈 (1985) |
박항서 (1986) |
정해성 (1987~1988) |
최진한 (1989~1990)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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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영진 (1991~1992) |
구상범 (1993) |
최영준 (1994) |
윤상철 (1995)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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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병영 (1997) |
김봉수 (1998) |
강준호 (1999) |
최용수 (1999~2000) |
김귀화 (2000)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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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명진 (2015) |
차두리 (2015) |
오스마르 (2016)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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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요한 (2018~2020) |
기성용 (2021~2022)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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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두리의 수상 이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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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스트팀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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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 · 2015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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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민국의 축구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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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opad> | ||||
<colbgcolor=#eee,#191919><colcolor=#000,#e5e5e5> 이름 |
차두리 車두리|Cha Du-ri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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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생 | 1980년 7월 25일 ([age(1980-07-25)]세) | |||
서독 헤센 주 프랑크푸르트 암 마인[1] | ||||
국적 |
[[대한민국| ]][[틀:국기| ]][[틀:국기|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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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체 | 181cm, 79kg, O형[2] | |||
직업 |
축구 선수 (
라이트백,
윙백[3] / 은퇴) 축구 감독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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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속 | <colbgcolor=#eee,#191919><colcolor=#000,#e5e5e5> 선수 |
바이어 04 레버쿠젠 (2002~2004) → DSC 아르미니아 빌레펠트 (2002~2003 / 임대) → 아인트라흐트 프랑크푸르트 (2003~2004 / 임대) 아인트라흐트 프랑크푸르트 (2004~2006) 1. FSV 마인츠 05 (2006~2007) TuS 코블렌츠 (2007~2009) SC 프라이부르크 (2009~2010) 셀틱 FC (2010~2012) 포르투나 뒤셀도르프 (2012) FC 서울 (2013~2015)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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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도자 |
대한민국 대표팀 (2017~2018 / 코치) 오산고등학교 (2019~2021) 대한민국 대표팀 (2023~2024 / 코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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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타 |
대한민국 대표팀 (2016~2017 / 전력 분석관) FC 서울 (2021~2023 / 유스 강화실장) 대한민국 대표팀 (2023 / 테크니컬 어드바이저)[4]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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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가대표 | 76경기 4골 ( 대한민국 / 2001~2015) | |||
링크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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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lbgcolor=#eee,#191919><colcolor=#000,#e5e5e5> 본관 | 연안 차씨 (延安 車氏) | ||
학력 |
울산양정초등학교 (졸업) 현대중학교 (전학) 배재중학교 (졸업) 배재고등학교 (졸업 / 114회) 고려대학교 정경대학 ( 신문방송학 / 학사)[5]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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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교 | 개신교 ( 예장통합) | |||
가족 |
아버지
차범근, 어머니 오은미 매형 정병훈, 누나 차하나 남동생 차세찌[6], 제수 한채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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딸 차아인[7](2010년생) 아들 차아일[8](2011년생)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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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카 정의영(2005년생) 조카 차봄(2018년 10월 30일생)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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병역 | 예술체육요원[9]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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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대한민국의 축구 선수 출신 코치.
차범근의 1녀 2남 중 둘째이자 장남이다. 아버지의 뒤를 이어 독일 분데스리가에 진출, 잠시 스코티시 프리미어 리그에서 활약한 뒤 2013년에 K리그 클래식의 FC 서울로 이적하였다. 2015년 10월 31일, 팀의 FA컵 우승을 끝으로 선수 생활을 마무리했다. 은퇴식은 11월 7일 홈 수원전에서 치렀다.
2. 선수 경력
2.1. 클럽 경력
자세한 내용은 차두리/클럽 경력 문서 참고하십시오.2.2. 국가대표 경력
자세한 내용은 차두리/국가대표 경력 문서 참고하십시오.2.3. 기록
자세한 내용은 차두리/기록 문서 참고하십시오.2.4. 플레이 스타일
현역 시절 차두리하면 피지컬과[10] 몸싸움, 스피드가 가장 대표적인 특징이었다.[11] 유럽과 한국에서 뛰는 동안 리그에서나 국가대표팀에서나 어떤 선수를 만나더라도 압도적인 몸싸움을 보여준 덕분에 차미네이터, 차이콘, 두리케라톱스, 차이언맨, 차두라리스크, 폭주기관차, 인간흉기, 인간 수류탄, 발업 질럿, 차드로이드 등의 수많은 별명이 따라다녔다. 그 중에서도 현재는 역시 차미네이터란 별명이 가장 대표적으로 기억되고 있다.
차두리의 피지컬은 당시 국가대표팀 동료들도 치를 떨 정도였는데, 오죽하면 2002 월드컵 기간에 상대 선수와의 충돌 대비 훈련 도중 이영표가 차두리에게 부딪혀 부상을 입고 조별예선 2경기에 결장한 적도 있었고, 수비 연습을 같이 해주던 정해성 코치는 차두리와 충돌한 직후 갈비뼈가 부러졌다고 한다. 이에 대해 히딩크는 차두리에게 오히려 잘했다며 윙크를 날렸다는데, 이 정도의 힘과 투지라면 외국의 거구들도 나가 떨어질 것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라고 한다.[12] 박지성, 안정환, 이을용도 공통적으로 차두리랑은 부딪히는게 아니라 피해야 된다고 말한 바 있다. 해당 기사 2023년 김민재도 차두리와 조우해 자기가 안된다며 너스레를 떨기도 했다. 해당 영상
실제 차두리는 아시아 축구 역사상 최고 수준의 피지컬과[13] 무시무시한 스피드, 가공할 순간돌파력을 갖춘 선수였다. 2002 월드컵 히딩크호 선수들 중 30m와 100m 모두 가장 빠른 속도로 주파했다고 한다. 측정된 기록으로는 30m 기록은 3.8초, 100m 기록은 11.2초[14]로, 그 외 50m와 125m도 1위였다고 한다.[15] 당시 차두리의 최고 속도는 대략 36km/h 안팎으로 추정된다. 이런 단거리, 장거리 가리지 않는 뛰어난 스피드는 몸싸움과 결합해 차두리 특유의 직선적인 돌파력으로 나타났고, 특히 달리는 거리가 길 수 밖에 없는 윙백/풀백 시절 돋보이게 된다.
몸싸움 역시 비록 은퇴 직전이긴 했지만 독일 최강의 하드웨어로 손꼽히던 슈테판 에펜베르크[16]가 리그 경기에서 차두리를 상대하다가 벌렁 나자빠질 정도였다. 그야말로 신체 능력은 가히 월드 클래스.[17]
하지만 기본기 측면에서 아쉬운 부분이 있어[18] 온더볼 상황에서 공과 따로 놀거나[19], 오프더볼 상황에서도 경기의 흐름을 제대로 읽지 못해 위험한 장면을 연출하는 문제가 종종 있었다. 결국 이 문제 때문에 처음 포지션은 스트라이커였으나, 둔탁한 볼터치에 결정력이 좋지 않아서 윙 포워드, 윙어로 점점 내려가다 결국 2000년대 중후반 풀백/ 윙백으로 전향한다.
풀백으로 말년인 2010년대 중반까지도 대기만성한걸 생각하면 좀 더 일찍 포메이션 전환하지 못한게 아쉬운 부분인데, 2002년 당시 히딩크 감독도 차두리에게 윙백 전향을 권유한 바 있기에 더 아쉬운 부분이다. 이땐 아버지 포지션에서 성공해야 된다는 생각도 있어서였는지 차두리가 정중하게 거절했다고 한다. 그러다 2006~07시즌 1.FSV 마인츠05에서 뛰면서 위르겐 클롭 감독의 권유로 수비수로 전향한 후 그의 진가가 서서히 드러나기 시작한다. 히딩크, 클롭 두 명장이 모두 풀백을 권유한거 보면 차두리 특징을 잘 캐치한 모양. 그리고 그들의 안목이 틀리지 않아 수비수로 전향한 뒤 차두리는 타고난 철벽같은 몸과 엄청난 순간 가속으로 주포지션인 라이트백뿐만 아니라 센터백 자리도 필요할 땐 가담하는 엄청난 가능성을 보여주었다. 공격 능력이야 포변하기 전 공격수 능력이 있는데다 특히 압박이 덜한 후방, 그것도 측면에 위치하며 이전보다 상대편의 견제를 덜 받게 되었고, 윙어가 중앙으로 좁혀 들어오며 풀백이 측면 공격에 가담하는 전술이 대세가 되자 공격수 시절보다 안정적인 크로스와 드리블을 많이 보여줬다. 수비수가 되면서 오히려 공격력이 상승한 것이다. 하지만 아무래도 성인 무대에 데뷔하고 몇년이 지난 이후에야 포메이션을 변경한 탓에 수비 스킬은 부족할 수 밖에 없었고 이를 속도와 피지컬로 커버했다. 그럼에도 소프트웨어적인 부분과 스킬적인 부분이 많이 부족해 수비적으로는 기복이 큰 아쉬운 선수가 되었다. 2010년 월드컵에서도 거구의 피지컬 사마라스를 압도하는 모습을 보였지만 이어진 나이지리아전, 우루과이전에서는 재빠르고 유연한 공격수들을 제대로 수비하고 통제하지 못해 직접 실점의 원인이 되기도 하였다.
포지션 변경을 선수 커리어 초기에 했다면 안정적인 수비와 적극적인 공격가담 두 마리의 토끼를 모두 잡은 선수 수준으로 성장했을지 모를 일이었지만, 역시 너무 늦은 나이가 문제.[20] 분데스리가를 그만두고 FC 서울로 이적해 K리그 무대를 밟으며 계속 좋은 활약을 보여주는 등 입지를 다지다가 2010년대 중반 은퇴 직전 올라탄 슈틸리케호에서 제대로 포텐이 터지게 되어 측면파괴자로서 그야말로 눈부신 활약을 하여 박수 칠 때 떠난다는 말을 제대로 증명하고 떠나게 되었다. 하드웨어가 워낙 좋다 보니 대표팀에 부임하는 감독들이 내외국인을 막론하고 차두리의 유혹에서 벗어나질 못했는데, 처음부터 수비수로 뛰었다면 송종국 부진 이후 2000년대 중후반 내내 대표팀의 고질병이었던 라이트백 문제는 진작 해결되었을 것이다.[21]
3. 지도자 경력
자세한 내용은 차두리/지도자 경력 문서 참고하십시오.4. 논란 및 사건 사고
4.1. 아내와 이혼 소송
2013년 4월 3일, 처음으로 이혼 기사가 떴었는데, 당시 아내가 오랜 해외 생활을 견디지 못해서 부부 사이가 소원해졌고 이에 차두리가 먼저 이혼 조정 신청을 했다고 한다. 축구 커뮤니티 사이트나 관련 기사에서 차두리가 가족 때문에 휴가 쓰면서 뒤셀도르프에서 얼마 못 뛰고 방출 당했던 것을 들어 축구선수와 가정을 이루면 해외 생활도 각오하여야 되는데 차두리를 배려하지 않았다며 차두리의 아내가 비판을 받는 사태가 발생하였다. 결혼 생활이란 게 마음대로 되는 것도 아니고 낯선 해외에 나가서 생활하는 게 쉬운 일은 아니므로 당사자의 입장이 아닌 이상은 그래도 참고 살아야 한다고 함부로 말할 일은 아니다. 더군다나 이혼이라는 게 그렇게 간단하게 결정할 수 있는 문제도 전혀 아닌데다 법정에서 양측이 최종적으로 합의에 이른 뒤 도장을 찍어야 정식으로 성립되고, 또한 당사자들만의 의사인 만큼 제3자가 함부로 끼어들 일은 더더욱 아니다. 한편 이혼 여파인지 이 시기 소속팀 경기에 출전도 제대로 하지도 못 하였다.사실 2012년 당시 소속돼있던 독일의 뒤셀도르프에서 출전을 하지 않고 계속해서 국내로 특별 휴가를 받았었는데, 이때 해외언론들에 보도대로 역시 이 문제였던 것으로 추측되었다. 결국 뒤셀도르프와의 계약을 중도 해지하고 K리그 진출 의사를 밝히면서 아버지의 팀 수원 삼성 블루윙즈에서 뛰는가 싶었으나, 차범근은 이미 2010년에 수원 삼성 감독에서 물러났던 터라 무산되었고, 그 대신 차범근의 대표팀 감독 시절 애제자였던 최용수 감독이 이끌던 라이벌 FC 서울로 이적하였다. 다만 차두리가 한 이혼 조정 신청도 조정이 되지 않아 불성립됐고, 이에 차두리가 이혼소송을 했으나 1심과 2심 모두 패소해서 현재까지도 법적으로 차두리는 이혼한 상태가 아닌것으로 밝혀졌다.[22]
4.2. 내연 문제 고소전
2024년 5월 27일, 내연 문제[23]로 고소전에 휘말렸다는 기사가 보도되었다. 이에 차두리는 내연녀 중 한 명을 사생활 폭로 등으로 명예를 훼손했다고 주장하며 맞고소했다. 뉴스1 기사, 조선일보 기사, 동아일보 기사, 세계일보 기사.5. 기타
- 선수시절에 계속 민머리로 하다 보니 간혹 탈모라고 오해하는 사람들이 있는데, 차두리는 절대 탈모가 아니고 그냥 본인이 편해서 삭발하고 다니는 것이라고 밝혔다.[25] 고려대 재학 시절에 스티븐 제라드의 머리를 따라하려는 의도[26]로 국가대표팀에 소집되었을 때부터 삭발을 했는데, 이게 너무 편해서 이후로도 계속 삭발을 하고 다니는 것이다. 머리를 민 것이 딱 차두리가 유명해질 시점이었다 보니 오해가 생긴 듯하다. 이는 선수 활동 중 간간이 보였던 머리 기른 모습을 보면 확인이 가능하다. 마인츠 시절 머리 기른 차두리, FC 서울 시절 머리 기른 차두리
- 2001년 월드컵 대표팀이 고려대와 연습 경기를 끝마친 후, 히딩크 감독은 고려대 선수 하나가 계속 개인 훈련을 하고 있는 모습을 보았다. 그래서 '다 끝났다'고 일러주었는데, 선수는 '난 지금 고려대 선수니까 우리 감독의 말을 듣겠다'며 훈련을 계속했다. 이 당돌한 선수가 누군가 싶어 물어보니, "차두리라고, 그 유명한 차붐의 아들입니다."라는 말을 들었다. 그리고 히딩크는 차두리를 월드컵 대표 선수로 발탁했다.
- 2003년 말에 굿데이 기자를 폭행했다고 모함을 당한 김병현을 옹호하는 글을 싸이월드에 올리기도 했다. 내용은 대충 "저는 야구를 잘 보지도 않고 김병현 선수를 잘 알지도 못하지만 기자들이 워낙 엉뚱하게 기삿거리를 만들다 보니 억울하게 걸렸다고 생각합니다. 힘내십시오."라는 것이었다. 한편 이때 유달리 욕설과 악플을 달던 사람이 있었는데, 이걸 본 오마이뉴스 기자가 IP를 추적했더니 굿데이 신문사가 나왔다고 한다. 당시 굿데이는 이 보도를 부정했지만, IP 기록이 있는지라 엄청난 비난을 받았다. 사실 며느리 사정은 동서가 안다고, 차두리 역시 스포츠 신문 기자에게 비난을 받은 적이 있다. 인터뷰를 거절하자 다음날 '어린 놈이 좀 잘나간다고 오만방자하게 군다'는 훈계조 기사가 났다고 한다.
- 2010년 6월 29일 요하네스버그 국제공항에서 스코틀랜드로 날아가는 비행기를 따로 탔다. 이유는 경기 종료 후 이틀 뒤 스코틀랜드 팀으로 러브콜이 들어와서로, 그 때문에 바로 비행편을 잡고 대표팀과 인사를 나눈 뒤 탑승 게이트로 들어가 스코틀랜드행 비행기에 탑승했다. 참고로 김남일도 요하네스버그에서 바로 러시아 팀으로 들어갔다. 그래서 기자회견에 나오지 않았다. 그리고 스코틀랜드 명문 클럽 셀틱과 2년 계약을 맺었다.
- 셀틱으로 이적할 때 스코티시 프리미어십에서 뛰려면 영국 노동법의 조건을 충족시켜야 하는데, 근래 2년 간 A매치의 75% 이상을 뛰거나 혹은 보증인이 필요했다. 그러나 차두리의 A매치 출전 횟수가 기준에 못 미치다보니 결국 보증인밖에 길이 없었고, 다행히 아버지와 절친하다는 어느 아저씨가 보증을 서 줬는데, 그 사람이 바로 축구계 레전드 올타임으로 꼽히는 프란츠 베켄바워.[27] 보증인의 격이 황당하리만큼 높아서 지금도 잊을 만하면 회자되곤 한다.[28]
- 축구선수가 아니라[29] 스포츠 기자를 꿈꿨다고 한다. 아버지의 기자 친구들처럼 축구를 잘 아는 기자가 되고 싶었다고...그래서 그의 고려대 시절 전공은 체육 쪽이 아닌 신문방송학과였으나,[30] 1998 FIFA 월드컵 프랑스 때 아버지가 감독에서 갑자기 짤리는 등 수모를 겪은 것을 본 후로 정나미가 떨어져 진로를 바꿨다고 한다. 이런 이력 덕에 운동 선수답지 않게 각종 시사 상식과 지식이 풍부한 편이며, 또한 언변도 수려해서 아버지와 함께 2006 FIFA 월드컵 독일에서 해설을 맡아 호평을 들었다.
- 독일 프랑크푸르트에서 태어나 어려서부터 외국 생활을 오래 한 덕에 독일어를 원어민 수준으로 구사한다. 단순히 독일어를 잘 하는 수준을 넘어 한국어보다 독일어를 더 편하게 느끼며, 메모를 할 일이 있으면 독일어로 하기 때문에 배성재가 커닝이 안 된다며 장난을 걸기도 했다. 한국어도 오랜 한국 생활로 이질감이 느껴지지 않는 원어민 수준이라 다중언어 구사자에 가깝지만, 일단 제1언어는 독일어인 셈. 대표팀 초년에 감독이었던 거스 히딩크도 독일어에 능통했기에[31] 둘은 통역 없이 직접 독어로 대화했었고, 2023년 대표팀 코치로 부임한 이후에도 독일어가 가능한 손흥민과 대표팀 소집 중에 독일어로 둘이서 이야기하는 장면이 대표팀 유튜브 채널에 스쳐 지나가며 잡히기도 했다. 또한 독일 국가대표팀 경기를 해설할 때는 장난스럽게 독일을 응원하기도 하고 독일 선수 라인업을 본토 발음으로 소개하여 화제가 되기도 했다. 이후 대표팀 감독 울리 슈틸리케와도 독일어로 진지하게 이야기를 나눌 정도.[32] 차두리의 독일어 인터뷰. 재밌게도 아버지 차범근은 꽤 오랫동안 독일에서 생활했음에도 독일어를 잘 못한다고 한다. 부자가 함께 참여한 인터뷰에서 이 이야기가 나와 차두리가 오랫동안 살았는데 그렇게 못 할 수가 없다며 장난스럽게 말하자 차범근은 "나는 축구를 잘 했잖아?"라고 일축해 웃음을 주었다.[33] 차두리의 누나 차하나도 이화여자대학교에서 독어독문학과를 전공하고 독일 항공사인 루프트한자에서 일했다고 한다.
- 셀틱 FC에서 두 시즌 간 활동했던 경력이 있는 만큼 영어도 수준급으로 구사한다. FIFA와 진행한 차두리의 영어 인터뷰. 원어민 수준으로 유창한 독일어 실력 덕분에 문법 구조와 단어들이 어느 정도 유사한 영어도 상대적으로 쉽게 익혔을 것으로 보인다. 다만, 거의 네이티브 스피커처럼 구사하는 독일어와 달리 영어를 구사할 때에는 독일어식 억양이 있다.
- 풋볼 매니저 시리즈에서 국적 설정이 독일과 한국 이중국적으로 되어 있다. 물론 이 경우는 차두리의 출신지가 프랑크푸르트이기 때문에 자동적으로 독일 국적도 추가된 케이스다. 한국은 병역 문제 등으로 이중국적을 허용하지 않거나 국내에선 권리행사를 포기하게 하는데, FM에서는 이중 국적 금지를 반영하지 못해 저렇게 표시된 것으로 보인다.[34]
- 중고교 시절 축구부 동기 중에 연예인이 있었는데, 바로 개그맨 노우진이었다. 그러나 차두리의 어머니는 노우진을 싫어했다고 하는데, 당시 노우진이 축구를 포기하고 차두리에게 같이 개그맨을 하자 했다고 제안했다고 한다(...).
- 2009년, 한 살 연상의 회사원[35]과 결혼식을 올렸다. 일에 쫓겨 어린 아들을 제대로 코치하지 못한 것이 아쉽다고 밝혔던 차범근은 손자가 태어나면 축구선수로 키우고 싶다고 밝히기도 했다. 그 후 1남 1녀를 둔 아버지가 되었다.
- 그런데 2013년 4월 3일, 이혼 기사가 떴다. 아내가 오랜 해외 생활을 견디지 못해서 부부 사이가 소원해졌고 이에 차두리가 먼저 이혼 조정 신청을 했다고 한다.[36] 이때 이혼 여파인지 당시 소속팀 경기에 출전도 제대로 못 하였고, 결국 독일 소속팀과 계약도 중도해지 했다. 다만 차두리가 한 이혼 조정 신청도 조정이 되지 않아 불성립됐고, 이에 차두리가 이혼소송을 했으나 1심과 2심 모두 패소해서 현재 법적으로 차두리는 이혼한 상태가 아닌것으로 밝혀졌다.[37]
- 성격이 좋아서 훈훈한 일화들이 여럿 있다. 2011 AFC 아시안컵 카타르 예선 첫 경기 바레인전에서 몸싸움을 하다가 본인 얼굴에 침을 뱉은 상대 선수와 유니폼을 교환했다. 국가대표 초년병 시절 잉글랜드 대표팀과의 경기에서 교환 요청을 하다 거절 당한 경험이 떠올라[38] 그의 사과를 받아주고 유니폼을 건네줬다고 한다. 본선 이란전에서도 연장전에 터진 윤빛가람의 골로 1:0으로 패배해 고개를 푹 숙이고 있는 이란 선수를 위로하는 매너 있는 모습을 보여주었다.
-
예방접종을 위해서 주사를 맞았을 때 깜짝 놀라는 표정이 화제가 되기도 했다.로봇이라 인간 주사 맞으면 안 되는데 표정.
- 국가대표 축구팀 주치의 송준섭 유나이티드 병원장은 차두리가 타고난 신체라는 것을 설명하며 "로봇 심장"이라는 표현을 썼다. 엘리트 운동선수들은 심장 근육 벽이 일반인보다 두꺼워지는 심장 비대(肥大) 증상이 나타나는데, 이는 극심한 운동에 몸이 적응하는 현상이다.[39] 그런데 차두리의 심장은 기능이 원래 뛰어나서 심장 벽의 두께가 두꺼워질 필요가 없기 때문에 일반인과 별 차이 없다고 한다. 기사
- 2014년 브라질 월드컵에서 홍명보호가 처참한 경기력으로 광탈하고 왔음에도 홍명보가 유임되자 " 98년에는 왜...???혼자서..."라며 애둘러서 불만을 표했다. 기사 이후에 '차두리의 쿨한 브라질' 마지막 칼럼에서 밝히길 "그 입 다물라!"는 차범근의 엄중한 제지가 떨어져 반성하고 있었다고 한다.[40] 그 와중에 최용수 감독은 제자 차두리가 해설만큼 축구도 잘 했으면 좋겠다, 자긴 아주 열심히 공부하는 훌륭한 감독이다라고 차두리한테 세뇌시키는 우스갯소리도 했다고 한다.[41]
- 브라질 월드컵을 앞두고 방영된 차범근, 차두리 다큐멘터리를 보면 자신이 박지성이나 손흥민만큼 축구를 잘 하지 못해서 아버지를 기쁘게 해드리지 못한 것에 대해 언제나 죄송하고 마음이 아프다고 했다. 차범근은 반대로 '차범근의 아들'이라는 부담 때문에 아들이 힘들어했던 것에 대해 미안하다고 말했다. 이후 2014년 K리그 베스트 일레븐에 선정된 후 차범근의 아들로 태어나 드디어 인정받은 것 같다고 소회를 밝힌 걸 보면 워낙 성격이 좋아 잘 드러나지 않았을 뿐 살아오며 마음고생이 꽤나 심했음을 알 수 있다.
- 사실 차두리가 이만큼 해 온 것도 대단한 것이다. 이름 없는 선수의 아들이 유명선수가 되거나 반대로 유명선수의 아들이 별 볼 일 없는 선수가 된 사례는 정말 수도 없이 많지만[42] 유명한 축구선수의 자식이 아버지 따라 좋은 모습을 보이는 경우는 국내에서도 국외에서도 꽤 드문 케이스다. 기껏해야 파올로 말디니, 카스페르 슈마이켈 정도. 애초에 차범근이 이룬 커리어가 하도 넘사벽이라 상대적으로 부족하다는 것일 뿐 한국에서 차두리만한 커리어도 드물다. 애초에 초중고 거치며 1% 남짓한 엘리트들만 남는다고 하는 프로 축구계에 진출한 것도 모자라 그 중에서도 엘리트들만 모인다는 국가대표까지 출전할 정도면 이미 절대치론 프로축구선수로 대성한 초엘리트다. 심지어 공격수로는 대성하지 못했지만 윙백/풀백 전향 이후로는 주전을 넘어 오른쪽 풀백 국대 역대 순위에서도 거론될 정도로[43] 탁월했다. 차범근도 인터뷰나 기고문에서 독일에 가면 현역 시절 동료들에게 아들이 국가대표라고 자랑하면 다들 부러워한다는 얘기를 몇번씩 했다. 前 키커 편집장이던 라이너 홀츠슈는 일간스포츠와의 인터뷰에서 분데스리가를 통틀어도 차붐 부자처럼 대를 이어 왕성한 활약을 보인 경우는 드물다고 말했고, 트란스퍼마르크트는 차붐 부자를 분데스리가에서 활약한 역대 부자 랭킹 3위로 올렸다.[44]
- 팬들은 차두리가 활약을 보일 때는 다른 선수들과 달리 기량이 많아졌다라는 표현을 쓴다. 일종의 관용구인데, 위에서 서술한 독일전 전설적인 3-1 승리 때 필립 람과 스피드경쟁을 벌이는 것을 보고 송재익 캐스터가 친 멘트에서 유래. 왜 기량이 '많아졌'다고 하는지 알 수 없는 어색하면서도 묘한 어감 때문에 유행어로 자리잡았다.
- 아이돌 가수 선미가 차두리의 팬이다. 이상형으로 차두리를 뽑은 적도 있을 정도. 24시간이 모자라 활동 시절에는 같이 안무 추고 싶은 남자로 엠블랙의 이준과 함께 그를 뽑기도 했다. 게다가 아이스 버킷 챌린지가 유행할 적에는 다음 상대로 차범근, 차두리, 그리고 차두리의 동생 차세찌를 지목했다. 차두리 역시 자신을 지목해준[45] 선미에게 감사하다는 인사를 올리며 아이스 버킷에 가담했다.
- 안티가 드문 축구선수 중 한 명이다. 차미네이터, 차붐의 아들로 대변되는 캐릭터상이 확실한데다, 성격도 서글서글하고 얼굴까지 일명 웃상이라 팬들이 많다. 대개 유명 선수들은 그 선수가 소속된 팀의 안티팬들이 엮이거나 축구 외적인 면으로 구설수에 올라 까이거나 아니면 명성에 비해 형편없는 기량으로 비난을 받거나 그것도 아니면 단지 잘 나간다는 이유 하나만으로도 욕을 먹거나 하는데, 차두리는 그 어떤 것에도 속하지 않는 드문 케이스.[46] 어떻게 보면 자연스러운데, 누가 봐도 "언제나 많이 뛰고 잘 뛰었다."
- 고려대학교 동기 이택근과 친구 사이다. 그래서 그런지 경기가 없는 날엔 이택근의 초대로 목동 야구장을 찾는다든지 경기가 없는 날엔 서로 만난다든지 하는 친분을 과시했고, 이택근의 동료 박병호가 50홈런을 쳤을 땐 축하한다는 인스타를 남기기도 했다.[47]
- 2016년부터 한국일보에서 자신의 칼럼 ' 차두리의 유로話'를 연재하게 되어 스포츠 기자의 꿈에도 한발 가까워지게 됐다. 차두리 본인이 해외축구계에 정통하고 해설 경력까지 갖춘 만큼 필력도 좋고 분석력도 상당하다. 무엇보다 자신의 선한 사람됨이 잘 드러나는 글을 쓰고 있는데 따뜻한 칼럼들로 많은 이들을 감동시켰던 아버지를 연상시킨다. 이러한 이유들로 칼럼니스트로서도 큰 호평을 받고 있다.
- 새우 알레르기가 있다. 영국에서 기성용 응원차 방문해서 새우를 먹었는데 눈이 퉁퉁 부었다고 한다.
- 이미 2002년 월드컵 대표팀 시절부터 스타 선수인 차두리는 2010년 짱구는 못말려 10기 - 염색을 해요 - 편에서 짱구( 박영남 성우)가 염색을 하고 스스로 베컴, 차두리라고 언급했다. 반삭 헤어스타일은 차두리 선수의 트레이드 마크였고, 당시 2010년은 남아공 월드컵이 열린 해였기에 축구선수인 데이비드 베컴과 차두리로 로컬화 했다.
-
국가대표팀 선배 이동국의 K리그 최다골 기록을 축하하면서 '동궈형님'이라는 호칭을 쓴 적이 있다.
- FC 온라인(舊 피파 온라인 4)에서는 사기적인 체감으로 박주영 등과 함께 대표적인 적폐 선수로 활약하고 있는데, 공격엔 박주영, 수비엔 차두리로 만인의 주적 순위 1,2위를 다툰다. 게임상에선 보통 주 포지션인 라이트백이 아니라 센터백[48]으로 기용되는 경우가 많은데, 작은 편이 아닌 키 + 게임 내 거의 모든 선수를 튕겨내는 능력치 이상의 몸싸움 + 발군인 스피드 + 일명 코다리라 불리는 한국 팀케미 특유의 눈에 보이지 않는 온갖 버프까지 겹쳐 센터백으로의 활약이 어머어마하다. 이 차두리에게 당한 많은 유저들의 원성을 샀다. 심지어 차범근까지 사용하면 가뜩이나 빠른 스피드에 속력과 가속력을 1 올려주는 아버지와 아들 특성 팀컬러까지 받으니... 사실 피파 온라인 3 시절에도 공격수로 출시되었었는데 이때도 몸싸움 하나만큼은 사기 수준이라 등지기 버튼만 연타하며 탱크처럼 뚫고 가는게 가능할 수준이였지만 다른 능력치가 별로라 잘 쓰이지 않았고, 피파4 초창기에도 급여 문제로 잘 쓰이지 않았지만 이후 총 급여가 올라 피파4에서는 모든 면에서 만능인 사기 캐릭터로 군림중인 상황이다.
- 과거 김남일 코치의 '빠따' 발언 이후 이동국이 대표팀에 소집되고 나서 김남일에게 "내 밑으로 빠따 맞으면 코치지만 후배인 차두리도 같이 맞아야 하잖아?"라고 농담을 하기도 했다. 기사
- 2024년 2월 29일, 제36회 차범근 축구상 시상식에 모습을 드러냈다.
5.1. 로봇설
인터넷 몇몇 사이트들에서 신빙성을 얻고 있는 가설이다. 차두리는 사실 차범근의 아들이 아니라 차범근이 제작한 무선 조종 로봇이라는 음모론에 근거를 두고 있다. 차두리의 사기급 육체 포텐셜과 차두리가 볼을 잡았을 때 반드시 일어나는 상황, 차두리의 표정 등 여러 가지에서 추론되고 있는 가설로 일파만파로 퍼져 나가고 있다.
- 유명인의 자녀라면 어린 시절부터 주목을 받기 마련인데 어린 시절이 제대로 알려지지 않았다.[49]
- 고되고 힘든 훈련에서도 매번 혼자 웃고 있다.
- 차두리가 볼을 잡으면 차범근이 조용해지는데, 차두리를 조종해야 하기 때문이다.
- 이름이 차두리인 이유는 Dr. CHA의 역두문자어이기 때문이다.
- 등번호 11번은 사실 백넘버로 위장한 콘센트다. 이후 220V로 업그레이드해서 등번호가 22번이 되었다고 한다.
- 차두리의 머리가 자라지 않는 이유는 머리에 태양광 발전판이 있기 때문이다.
- 차두리는 전진과 후진밖에 못 한다.
- 차두리의 몸싸움을 보면 사람 대 사람으로 부딪힌다고 볼 수 없다.
- 아르헨티나전에서 그토록 한국이 열세였음에도 그가 등장하지 않은 것은 경기장의 해발 1,700m의 기압과 온도에 의해 기계 오작동이 생겨서 그렇다.
사실 2002년 한일 월드컵 무렵에 나온 개그다. 하지만 뒤집어 보면 저런 개그가 계속 나오는 것도 차두리의 피지컬이 그만큼 높고, 또 차두리의 활동능력이 뛰어나다는 것을 알 수 있기에 저런 개그가 계속 나오는 것이라 할 수 있다.
결국 이런 만화까지 나왔다. 심지어 이 만화는 2010년 6월 15일 YTN에서 매스컴도 탔다. 그 후 6월 24일 KBS 9시 뉴스에는 이 로봇 설을 총 정리한 뉴스가 떴다. 이걸 알게 된 차두리는 장난스럽게 아니라는 식으로 말했고, 2~3일 뒤 네이버에선 차범근에게 질문을 하는 코너에서 차두리 로봇의 설계도를 언제 공개 하냐고 묻자 이런 답변이 나왔다.
로보트… 이건 일급비밀이야. 많이 알면 다친다고!!! 로보트 아빠는 상관없지만 로보트 엄마가 비밀로 부치고 싶어 해. 이해해줘. 로보트 가족 중에서는 엄마 힘이 젤 쎄다고!!! |
출처. 6월15일 17시37분33초의 질문에 대한 답변.
그리고 23일에 있는 나이지리아전을 앞두고 차두리가 USB 꽂고 충전하고 오겠다고 하기도 했다. 부자가 이 가설을 즐기는 듯하다.
2015년 1월 22일 아시안컵 8강 우즈베키스탄전에서 차두리 로봇설이 다시 제기되었다. 예전에는 아버지가 해설을 하느라 조이스틱 조정이 힘들었는데, 해설을 그만둔 후 VR로 원격 조종해서 조종이 더 편해졌다는 설도 나왔다. 그리고 실은 여태 OS가 독일어 버전이었기 때문에 본프레레, 슈틸리케등 독일어를 아는 사람이어야 제대로 조작할 수 있다는 사실이 밝혀졌다. 독일인인 슈틸리케야 말 할 것도 없고 본프레레는 네덜란드 출신이지만 독일어를 유창하게 구사할 수 있다고 한다. 그리고 이 시절 차두리는 꼭 한 번씩은 놀랄 만한 명장면을 뽑아낸다. 게다가 한일 월드컵 당시의 감독이었던 히딩크도 네덜란드인이지만 독일어를 구사할 수 있다고 한다.[50]
차두리에게 직접 독일어로 작전을 전달하는 슈틸리케 감독의 모습.[51] 이 경기에서 위의 손흥민 골 어시스트 장면이 나왔다.
출력저하설이 제기되었는데, 차두리를 까는 게 아니라 오히려 출력을 줄임으로써 되려 폭주가 줄고 밸런스가 좋아져서 전성기를 맞이했다고 한다.
아버지가 출연하던 KDB 대우증권의 광고를 찍었는데, 본인이 로봇이라는 설을 부정했다.
5.2. 딸과 관련된 문신
2010년 월드컵 때 윗도리를 벗어 젖혀서, 문신을 한 모습이 공개 되었다. 왼쪽 옆구리와 오른쪽 팔에 각각 문신을 하였다.
-
왼쪽 옆구리
왼쪽 옆구리의 문신은 로마 숫자 표기법으로 된 숫자이며 2개의 날짜를 의미한다. 사진을 자세히 보면 구분을 위한 점이 찍혀 있음을 확인 할 수 있다.
V I I . I I . M M X → 7.2.2010 → 2010년 2월 7일 |
X I I I . I X . L X X V III → 13.9.78 → (19)78년 9월 13일 |
첫 번째 날짜는 딸 차아인양의 생일이며, 두 번째 날짜는 전 부인인 신혜성씨의 생일이다.
- 오른쪽 팔
오른쪽 팔의 문신은
히브리어의 아인(Ayin)이라는 글자이다. 위의 4개의 글꼴 모두 모두 아인에 해당하는데, 이중 4번째 글꼴과 동일한 문신을 했다. 문신의 의미는 당연히 딸의 이름을 의미한다.
딸내미바보 확정이었다. 참고로 2011년 아들을 얻었는데, 아들의 생일에 맞추어 문신을 추가하였는지는 확인되지 않았다.
2013년 경에는 양팔 가득히 문신을 추가했다.
후에 차범근의 칼럼에 이 문신에 관한 비화가 자세히 나왔는데, 2012년 이혼을 진행하던 중 충격 때문인지 양팔에 잔뜩 문신을 새기게 되었는데 당시 가족들은 이걸 FC 서울 경기를 보면서 알았다고 하며 그전까지는 아무도 몰랐다고 한다. 차범근의 말로는 잠시 축구를 접고 학원에 다니면서 공부를 하고 있던 시기라 당분간 반팔 입을 일이 없을 거라 생각했던 거 같다고 하였는데, 그러나 이후 기성용과 당시 서울 감독이었던 최용수의 설득으로 FC 서울에 입단한 것이라고 한다.
이에 차씨 집안의 실권을 쥐고 있는 차범근의 아내(일명 두리엄마)가 화가 폭발하여 무려 한 달 가까이 방에서 나오지 못하게 했다고 하며 이후로도 집안에서는 사시사철 긴팔만 입게 했다고 한다. 차두리 말에 따르면 당시 너무 스트레스가 심해서 뭐라도 했었어야 했다고 해명했는데, 차범근은 베컴 덕후인 차두리가 베컴의 양팔 가득한 문신을 따라한 것이라고 추측한다고 밝히기도 했다.[52] 관련 기사
심지어 아직까지도 차두리는 한여름에도 집에서는 긴팔만 입고 생활한다고 한다.
5.2.1. 부전자전 외모
아버지 차범근과 여러모로 판박이 외모. ' 부전자전이란 이런 것이다.'라는 것을 보여준다.[53]
차씨네 가문 3세. 일단 우는 표정은 아빠를 닮은 듯.
참고로 6살 아래 동생 차세찌도 차두리와 매우 닮았다. 오죽하면 쌍둥이 아니냐는 평이 있을 정도다. 하늘색 와이셔츠를 입은 쪽이 차두리다.[54]
차범근의 장녀이자 차두리의 2살 위(1978년생) 누나 차하나가 있으며 차하나는 부친보다는 모친을 많이 닮았다.
5.3. 피곤한 간 때문이야
자세한 내용은 간 때문이야 문서 참고하십시오.6. 둘러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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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민국 축구 국가대표팀 클린스만호 / 코칭스태프 |
|||
<colcolor=#fff><rowcolor=#ffffff> 직책 | 이름 | 국적 | 생년월일 |
<colbgcolor=#0b090c> 감독 |
위르겐 클린스만 Jürgen KLINSMANN
|
1964년 7월 30일 ([age(1964-07-30)]세) | |
수석 코치 |
안드레아스 헤어초크 Andreas HERZOG
|
1968년 9월 10일 ([age(1968-09-10)]세) | |
코치 |
파올로 스트링가라 Paolo STRINGARA
|
1962년 9월 22일 ([age(1962-09-22)]세) | |
차두리 CHA Duri
|
1980년 7월 25일 ([age(1980-07-25)]세) | ||
골키퍼 코치 |
안드레아스 쾨프케 Andreas KÖPKE
|
1962년 3월 12일 ([age(1962-03-12)]세) | |
피지컬 코치 |
베르너 로이타르트 Werner LEUTHARD
|
1962년 1월 24일 ([age(1962-01-24)]세) | |
이재홍 LEE Jaehong
|
1983년 3월 23일 ([age(1983-03-23)]세) | ||
2024년 2월 16일 경질 발표 당시 |
[1]
現
독일
헤센 주
프랑크푸르트.
[2]
#
[3]
주 포지션은
라이트백이었으며,
윙백으로도 자주 나왔다. 또한 후방에서의 빠른 스피드를 이용한 압박 수비에 능했기 때문에 3백의 오른쪽
스토퍼 자리에도 종종 기용됐다. 유스 시절 및 데뷔 초창기엔
윙어로 자주 기용됐고 유사시
스트라이커로 기용된 경우도 있었다.
[4]
직후 코치로 변경.
[5]
졸업과 관련된 비화는 아래 클럽 경력 문단의 1번을 참조할 것.
[6]
셋째라는 뜻이다. 같은 의미로 3남매의 첫째인 누나 이름은 하나, 둘째인 본인의 이름은 두리이다.
[7]
법률혼 배우자 신혜성과의 사이에서 낳은 딸.
[8]
법률혼 배우자 신혜성과의 사이에서 낳은 아들.
[9]
2002 FIFA 월드컵 한국·일본 8강 진출로 인한 병역 특례.
[10]
체력도 뛰어나 셔틀런을 박지성 못지 않게 잘 했다고 한다.
[11]
현재 국가대표팀에서 활약중인 수비수
김민재와는 스타일이 조금 다르다. 김민재는 스피드도 빠르긴 하지만 순간 가속력 면에서 차두리에 못 미친다. 중앙수비수인만큼 차두리보다 몸싸움을 자주 하지만, 실제로 차두리와 함께 했던 인터뷰를 보면 차두리쪽의 몸싸움이 더 강하다고... 현역 최고 클래스 수비수보다도 몸싸움이 강력하지만 아버지 차범근처럼 폭발적인 스피드와 민첩성이 더 돋보인다는 점에서 차두리의 피지컬이 얼마나 강력한지 알 수 있다. 그렇기 때문에 지도자들이 차두리를 공격수로 활용하고 싶은 욕심을 저버리지 못한 것이다. 볼 핸들링만 좀 좋았다면 저런 피지컬로 순식간에 쭉쭉 치고달리는 차두리를 제어할 수 있는 수비진은 국제 무대에서도 드물었을 것이다. 차범근이 딱 그런 케이스였다.
[12]
출처: 히딩크 자서전 '마이 웨이' 229p.
[13]
아시아에서 뿐만 아니라 세계적으로도 상위 1%에 들만한 피지컬이다. 당대 최고의 피지컬 플레이어였던
디디에 드록바와의 몸싸움에서도 밀리지 않았을 정도니 말 다했다. 링크된 움짤은 전설의
한일전 두리블.
[14]
참고로 육상
100m 달리기 한국 기록이 2017년 6월 김국영이 기록한 10초 07이다. 또 당시 축구 국대 선수들은 (골키퍼를 제외하면)아무리 느려도 12초대는 주파했다고 한다. 즉, 당시 국대하려면 11~12초대는 나와야 된다는 것.
[15]
여담으로 그 외 빨랐던 선수로는 이천수, 최태욱, 박지성 등이 있었다.
[16]
FC 바이에른 뮌헨을 챔피언스리그 우승으로 이끌고 구단 명예의 전당에 헌액된 레전드 선수이다.
1994 FIFA 월드컵 미국 독일전에서
법규를 시전하신 한성깔하는 인물이기도 하다.
[17]
이 무지막지한 몸은 부친
차범근의 유전빨에 더해 차범근이 프로선수로 성공하고 본인이 어릴 적 못 먹은
고기를 아들은 실컷 먹여가며 만든 결과로 보인다. 여담으로 이러한 차범근의 피지컬은 차두리에게만 물려준 것은 아닌 것으로 보이는데, 차두리가 근육으로 압축해 놓은 몸이라면 누나인
차하나는 다 풀어 놓은 상태라는 목격담이 있다. 실제로
차하나가 차범근과 같이 찍은 결혼식 사진을 보면 키 179cm인 아버지와 큰 차이가 없다.
차하나 씨 결혼식 때 아버지와 찍은 사진. 해병대 출신 막내 차세찌 또한 강력한 피지컬을 자랑한다. 덕분에 일부 네티즌들은 이 집안은 품종 유지를 위해서라도 골격 좋은 배우자랑 만나 자손 많이 낳아야 한다는 드립도 친다. 배성재 캐스터는 실제로 2010년대 초반 요르단 2차전 때 당시 차범근 해설 위원 보고 "얼마 전에 2030년 월드컵 주축이 될 유망주를 얻으셨죠?"라고 농담삼아 말하기도 했다.
[18]
차두리가 본격적으로 축구선수가 된 것은
중학생 때였으며, 후술되어 있지만 1998년 월드컵 전까진 축구 선수가 아닌 스포츠
기자를 꿈꾸던 학생이었다. 2002년 당시
히딩크가 국대에 콜업한 것도 프로선수가 아닌 대학생 차두리를 뽑은거였다. 이렇게 차두리가 늦게 선수 생활을 시작해서 그런지 차범근도 차두리의 기본기를 봐주지 못한 것에 대해 안타깝게 생각한다고 한다.
[19]
국가대표 경기 도중에는 공보다 더 빨라서 차두리가 먼저 골라인 밖으로 나간 다음에 공이 골라인 밖으로 나간 적도 있었다. 덕분에 오죽하면 '30대가 된 뒤부터는 피지컬이 전성기보다 떨어져서 공이랑 같이 달려 전성기가 온 것'이라는 농담까지 생겼다.
[20]
사실 20대 중후반에 포지션을 변경해서 성공한 케이스가 아주 드물지는 않다. 차두리의 경우 나이 문제보다는 본인의 부족한 기본기 문제가 더 컸던 것으로 보인다.
[21]
레프트백은
이영표가 은퇴한 2011년부터 문제점으로 지적되었고, 그마저도 조광래가 김영권 등 본 포지션이 아닌 선수들을 풀백으로 쓰기도 하고 홍명보가 폼이 떨어진 윤석영만 기용해서 문제를 심화시킨 면이 더 컸다. 하지만 라이트백은
송종국의 전성기가 3년도 채 못가면서 2006년 독일 월드컵 이전부터 꾸준히 지적되어 온 문제였다. 폼 떨어진 송종국을 대체할 멤버가 필요했지만 찾을 수가 없었다. 아드보가트호에선
조원희를 꾸준히 시험했으나 공수밸런스 문제가 두드러져 월드컵에선 토고전에 송종국을 썼고 송종국의 폼이 너무 저조하자 전성기였던 김동진을 주전 레프트백, 이영표를 라이트백으로 쓰는 임시방편으로 떼웠다. 2007년 베어벡호에서 급부상한
오범석은 남아공 월드컵을 앞두고 점점 불안해져서 라이트백 포지션에 완전히 적응한 차두리가 주전이 되었다.
최철순,
최효진 같은 선수들도 있긴 했지만 피지컬이 약해서 유럽, 아프리카 선수들에게 정면으로 맞서기는 힘들다는 평가를 받았다.
[22]
다만 아직도 결혼 상태인 것과는 별개로 2011년 이후로 지금까지 별거 중에 있다.
[23]
쉽게 말해서 두 여자랑
양다리를 걸쳤다는 얘기다. 이게 사실이라면 차두리 본인도 절대 뭐라고 할 말이 없는 셈이 된다.
[24]
현재는
이주헌,
박종윤이 맡고 있다.
[25]
고화질 사진들을 보면 삭발을 했음에도 이마 라인이 선명해서 탈모가 아닌 것을 알 수 있다.
[26]
제라드는 전성기에 돌입하기 이전인 2000년대 초반에 반삭의 헤어스타일을 유지했던 적이 있었다. 차두리는
독일
프랑크푸르트 태생으로 흔히 독일 선수나
분데스리가에서 뛰는 선수를 더 선호하거나 존경할 것 같지만, 의외로 잉글랜드 선수도 좋아한다. 지금 소개된 제라드의 사례도 그렇고
데이비드 베컴이
파리 생제르맹 FC에 뛰던 시기에 파리 현지 스토어샵까지 방문하여 베컴의 져지를 구입했다는 일화도 있다. 또한 스코틀랜드 클럽이긴 하지만
셀틱 FC 소속으로
영국에서 두 시즌을 뛴 적도 있다.
[27]
FC 바이에른 뮌헨의 유러피언컵 3연패와 독일의 유로와 월드컵 우승을 이끈 역대 최고의 수비수라고 불리는 인물이다. 게다가 감독 능력도 사기적이라서 축구 역사상 두번째로 선수와 감독으로 모두 월드컵 우승을 경험한 바 있다.
[28]
차범근의 뒤를 잇는 한국축구의 레전드
박지성도 비슷한 사례가 있는데,
맨체스터 유나이티드 FC로 이적할 때 워크퍼밋 발급조건이 안 맞아 보증인 3명이 필요했다. 박지성의 은사이자 PSV의 감독이었던
거스 히딩크와 박지성을 영입하고자 했던 맨유의 감독
알렉스 퍼거슨이 보증을 서 줬고, 마지막으로 박지성의 플레이를 좋아한다는 어떤 네덜란드 아저씨가 보증을 서줬는데, 그 사람이 바로 베켄바워의 숙명의 라이벌인 또 다른 레전드
요한 크루이프였다는 것. 아마도 같은 네덜란드인인 히딩크 인맥이 아니었을까 추측된다.
[29]
차두리는 중학교 때부터 축구를 시작해서 체육 엘리트 출신도 아니었다.
[30]
2001학번까지만 해도 체육특기자 전형 입학생들은 원하는 학과를 선택할 수 있었다.
[31]
네덜란드어와 독일어는 유사성이 매우 높아 독일어를 잘 구사하는
네덜란드인들이 상당히 많다.
[32]
독일 본토 사람들도 말하길 얼굴만 가리면 그냥 독일 원어민이 말하는 것 같다고 한다. 오랜 기간 공부를 해서 독일어를 능숙하게 해도 외국인 특유의 억양이나 구사하는 단어에서 어색한 면이 느껴지는데, 차두리는 사용하는 단어, 발음, 말투가 그냥 전형적인 독일 축구선수가 말하는 것처럼 위화감 없이 매우 자연스럽다는 평가다. 어린 시절 독일에서 지내며 사실상 모국어로 익혔으니 어찌 보면
당연지사.
[33]
물론 상대적으로 아들보다 독일어를 못 한다는 거지 실제로는 차범근도 독일어에 매우 능통하다. 차두리만큼 유창하지는 않지만 적어도 듣는 건 거의 다 되고, 은퇴한지 한참 지난 시점에도
거스 히딩크나
위르겐 클린스만 등 독일어 화자 외국인과 독일어로 대화했다.
[34]
중국 귀화 선수들의 국적 표기 예에서 보듯 FM 최신작에서는 시스템적으로 보완하는 방법이 생겼음에도 여전히 이중국적이다. 아무래도 선수 말년, 은퇴 이후라 스포츠인터랙티브에서도 크게 신경을 안 쓴 듯 싶다.
[35]
말이 회사원이지 서울 임페리얼 팰리스 호텔 신철호 회장의 장녀이다. 그래서 장인 덕보려는 것 아니냐는 뒷말이 나오기도 했는데, 이에 대해 차두리가 굉장히 민감한 반응을 보인 적도 있었다. 아버지 후광이 더 큰데 굳이...?
[36]
그런데 축구 커뮤니티 사이트나 관련 기사에서 차두리가 가족 때문에 휴가 쓰면서 뒤셀도르프에서 얼마 못 뛰고 방출 당했던 것을 들어 축구선수와 가정을 이루면 해외 생활도 각오하여야 되는데 차두리를 배려하지 않았다며 차두리의 아내가 비판을 받는 사태가 발생하였다. 그러나 결혼생활이란 게 마음대로 되는 것도 아니고 낯선 해외에 나가서 생활하는 게 쉬운 일은 아니므로 당사자의 입장이 아닌 이상은 그래도 참고 살아야 한다고 함부로 말할 일은 아니다. 더군다나
이혼이 그렇게 간단하게 결정하는 문제도 아니고 당사자들만의 의사인 만큼 제3자가 함부로 끼어들 일은 더더욱 아니다.
[37]
다만 아직도 결혼 상태인 것과는 별개로 2011년 이후로 지금까지 별거 중이다.
[38]
데이비드 베컴 문서 참고.
[39]
의학용어로 스포츠 심장이라고 한다.
[40]
차범근 항목을 보면 알겠지만,
조광래와 정반대 성격의 소유자로, 설사 본인이 불합리한 일을 당했어도 다른 사람 험담을 하는 일이 거의 없으며,
홍명보에 대해 변호하는 입장을 취하고 있다. 다만 차두리의 트윗도 홍명보보다는 축구협회를 저격했다는 느낌이 더 강하다.
[41]
최용수는 98 월드컵 당시 차범근 감독 제자였는데, 이때 선발 라인에서
김도훈한테 밀려서 차범근한테 섭섭했던 감정을 이후 방송에서 유머스럽게 털어놔서 차범근이 공개 사과하기도 했다. 이때 쌓인 게 있어서 FC 서울 감독 시절 제자였던 차두리를 보면 "두리야. 너네 아빠는 큰 실수를 하셨어. 집에서 혹시 내 얘기 안하시디?"라며 집요하게 물어봤다고 한다.
[42]
전자의 대표가
펠레와
손흥민이고, 후자의 대표가
디에고 마라도나의 아들,
지네딘 지단의 아들이다. 다만 마라도나 쪽은 친아들이 아니라
사생아다.
[43]
2020년대 기준 보통은
송종국 바로 다음으로 거론될 정도다.
[44]
1위는 귄터 쿤츠 -
슈테판 쿤츠, 2위는
프란츠 베켄바워 - 슈테판 베켄바워를 꼽았다.
[45]
물론 선미만 그를 지목한 것은 아니고
모태범,
임상협,
신아영 등이 그를 지목했다.
[46]
다만 인기 때문에 풀백으로서는 늦게 전향한 것도 있고 해서 공격력 대비 수비력이 크게 좋진 않았는데, 그 부분까지 과대평가되는 거 아니냐는 말은 있었다. 그러나 다른 면, 특히 피지컬에서 경쟁자들에 비해 확실히 우위에 서 있고, 경력이 쌓이면서 이를 장점으로 좋은 모습을 많이 보인 덕에 크게 논란이 되지는 못했다.
[47]
참고로 차두리는
야빠로도 유명하다.
[48]
FC 온라인에서는 차두리를 거진 센터백으로만 쓰기 때문에 차두리의 선수시절을 잘 모르는 유저들은 차두리가 원래 센터백인줄 아는 경우도 꽤 많다고 한다. 때문에 축구를 게임으로만 아는 축알못 판독기로도 쓰인다고..
[49]
차범근이 찍은 유제품 CF에 등장한 적이 있다. 이때부터 몸싸움의 귀재였다.
http://media.adic.co.kr/tv/wmv300/199808/V2000617.wmv
[50]
네덜란드어는 독일어와 비슷한 점이 많아 서로 배우기 상대적으로 수월한 편이다.
[51]
사실 뒤에 등장한 통역관은 스페인어 통역관이다. 슈틸리케 감독은 아르헨티나인인 수석 코치 아르무아를 배려해 통역관이 두 명이 붙을 필요가 없도록 공식 석상에서는 스페인어를 활용해왔기 때문이다. 그러니까 저기서 통역관은 할 말이 없는 게 아니라 대화를 아예 못 알아듣고 있었을 것이다.
[52]
차두리는 예전 생제르망에 입단한 베컴의 유니폼을 사기 위해 독일에서 파리까지 직접 가서 줄을 서서 유니폼을 샀던 전력이 있으며 게다가 아예 베컴 집에 가보고 싶어서, LA 갤럭시로 이전을 고민한 적도 있을 정도로 베컴 덕후라고 한다.
[53]
머리를 밀고 다녀서 잘 부각되지 않는것이다.
[54]
차세찌에서 턱살을 빼고 눈썹을 가늘게하고 머리를 빡빡이로 해보자. 그야말로 붕어빵이다. 반대로 차세찌는 형과 달리 머리를 길렀기에 어느정도 구분은 가능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