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iki style="margin: 0 -10px -5px; min-height: 28px" {{{#fff {{{#!folding [ 펼치기 · 접기 ] {{{#!wiki style="margin: -6px -1px -11px" |
<colbgcolor=#000> |
아일랜드 |
스코틀랜드 |
웨일스 |
잉글랜드 |
||||
고대 | 켈트족 | ||||||||
히베르니아 , 게일족, |
칼레도니아 , 픽트족, |
,
브리튼족, 로만 브리튼 , 이후, |
|||||||
귀네드 왕국 |
더베드 왕국 |
앵글족 / 색슨족 / 주트족 | |||||||
앵글로색슨 7왕국 {{{-1 {{{#!wiki style="display: inline-block; padding: 0px 5px; border-radius: 4px; background: #8b0000; font-size: 0.88em" |
|||||||||
데인로 | 웨식스 | ||||||||
중세 |
알라퍼 왕국 |
데허이 바르스 |
잉글랜드 왕국 웨식스 왕조 북해 제국 노르만 왕조 앙주 왕조( 앙주 제국) 플랜태저넷 왕조 |
||||||
아일랜드 영지 | |||||||||
스코틀랜드 왕국 |
웨일스 공국 | ||||||||
잉글랜드 왕국 랭커스터 왕조 요크 왕조 (장미 전쟁) |
|||||||||
아일랜드 왕국 | |||||||||
초 기 근 대 |
|
||||||||
근 대 |
|||||||||
아일랜드 왕국 | 스코틀랜드 왕국 | ||||||||
|
|||||||||
현대 |
아일랜드 공화국 아일랜드 자유국 |
그레이트브리튼 및 북아일랜드 연합왕국 윈저 왕조 |
|||||||
아일랜드 |
앵글로색슨 7왕국 구성국 | ||||
{{{#!wiki style="margin: 0 -10px -5px; min-height: 26px" {{{#!folding [ 펼치기 · 접기 ] {{{#!wiki style="margin: -6px -1.5px -13px" |
앵글족 |
노섬브리아 |
머시아 |
동앵글리아 |
색슨족 |
웨식스 |
서식스 |
에식스 |
|
주트족 |
켄트 |
머시아 왕국 Miercna rīce Mierce |
|||
문장 | |||
오파 왕 시절 최고 전성기 |
|||
527년 ~ 879년[1]/918년[2] | |||
위치 | 잉글랜드 | ||
수도 | 톰툰[3] | ||
언어 | 고대 영어[4], 라틴어 | ||
종교 | 게르만 종교 → 그리스도교 | ||
종족 | 앵글로색슨 | ||
정치 체제 | 군주제 | ||
국가 원수 | 왕 | ||
주요 국왕 |
이켈 (527 ~ ?) 펜다 (626 ~ 655) 오파 (757 ~ 796) 앨프윈 (918 ~ 918) |
||
성립 이전 | 로만 브리튼 | ||
멸망 이후 | 웨식스 왕국 |
언어별 명칭 | ||
고대 영어 | Miercna rīce / Mierce | |
라틴어 | Merciorum regnum / Mercia | |
영어 | Kingdom of Mercia |
1. 개요
고대 잉글랜드의 앵글로색슨족이 세운 7왕국 중 하나.2. 역사
2.1. 초기
머시아('미위르체')[5] 왕국은 주변 국가에 비해 효율적인 정치체계를 유지했고, 비교적 늦은 시기에 기독교를 수용했다. 앵글족이 6세기 말부터 템스 강 북쪽에 정착해 살면서 생겨났다. 첫 왕인 이켈은 전설에 따르면 이주 이전 덴마크의 앵글족들의 왕이었는데, 동앵글리아를 통해 머시아 지역의 브리튼인들을 쳐부순 후 머시아를 세웠다고 한다. 머시아인들의 조약에 따르면 초기의 국경은 더비셔, 레스터셔, 노팅엄셔, 노샘프턴셔, 스태퍼드셔를 비롯한 북부 지역을 포함했다.2.2. 전성기
잉글랜드의 초기 역사를 기록한 성 베다(Bēda)에 의하면 머시아의 왕 펜다(Penda, 재위 626~655)는 633년 노섬브리아의 왕 에아드위네( 노섬브리아의 에드윈)를 귀네드 왕국과 연합해 격파하고, 브리튼의 패권을 차지한 에아드위네를 죽여 노섬브리아를 굴복시켰다. 에아드위네의 뒤를 이어 즉위한 오수왈데(Osuualde, 오즈왈드)는 머시아의 지배를 인정하지 않았고, 에아드위네 사후 분열된 노섬브리아를 통일한 후 다시 군사를 일으켜 머시아의 북쪽을 침공했다. 하지만 펜다는 642년 메이서필드 전투에서 승리하고, 오수왈데를 죽이며 노섬브리아를 종속국으로 삼았다. 그러나 다음 왕인 오스위그(Ōswīg, 오스위우)가 재차 침공을 감행했고, 전투 도중 펜다가 전사함에 따라 머시아의 패전으로 끝났다.2.3. 머시아의 중흥
펜다가 전사한 후 그의 아들 페아다(Peada)가 655년 머시아의 왕위를 계승했다. 하지만 한때 노섬브리아를 압도했던 머시아는 많은 국력을 소진한 상태였다. 게다가 이듬해(656) 페아다가 병으로 사망해, 노섬브리아의 왕 오스위그가 머시아를 보호국으로 삼았다. 하지만 머시아인들은 울프헤레(Wulfhere)를 지도자로 세우고 658년 반란을 일으켜 노섬브리아의 지배에서 벗어났으며 울프헤레가 머시아의 왕위에 올랐다.오스위그가 죽자 노섬브리아에서 내전이 발생했고, 자연스레 머시아는 브리튼 섬에서 가장 강력한 국가가 되었다. 울프헤레는 노섬브리아를 상대로 복수하기 위해 674년 오스위그의 아들과 전쟁을 벌였으나 패배했다. 울프헤레의 뒤를 이은 애델레드(Æthelred)는 679년 트렌트 전투에서 노섬브리아를 격파했다. 이후의 왕들은 대외원정보단 머시아의 정치적, 종교적 기반을 다졌다. 716년에 즉위한 애델발드(Æthelbald)는 남쪽에 있는 두 명의 강력한 경쟁자였던 웨식스의 이네(Ine)와 켄트의 위트레드(Wihtred)를 견제했는데 위트레드는 725년 세상을 떠났고, 이네는 왕위를 내려놓은 후 726년 로마의 수도승이 되어서 애델발드는 아무 것도 하지 않은 채 경쟁자를 제거한 셈이 되었다. 결국 그는 손쉽게 두 왕국에 강력한 영향력을 미칠 수 있었지만 웨식스와의 전투에서 패배하는 바람에 완전한 지배는 이어가지 못했다.
2.4. 최후의 확장기
757년 애델발드는 자신의 호위병들에게 암살당했다. 왕이 사라진 머시아에서는 내전이 발발했고, 오파(Offa)가 모든 경쟁자들을 무찌르고 왕이 되었다. 오파의 치하에서 크게 번영한 머시아는 켄트와 서식스 왕국을 점령했고, 웨식스와 동앵글리아를 거의 속국으로 둘 정도로 강력한 영향력을 행사하는 강대한 왕국이 되었다. 이후 머시아는 잉글랜드 남부 전역을 지배했고, 절정기에는 험버강에서 영국 해협에 이르러 동앵글리아, 웨식스, 에식스, 켄트 등을 속국으로 삼아 하나의 국가로 만들 정도였다. 오파는 머시아뿐만 아니라 잉글랜드 전체를 발전시켜 처음으로 자체적인 금화를 양산했고, 가톨릭도 크게 발전했으며 카롤루스 대제와의 협상을 통해 브리튼의 지배자로 인정받았다. 하지만 796년 7월에 그가 죽고 아들도 재위 5개월 만에 죽자 왕국에 내전이 일어났다.2.5. 몰락
내전이 종식되자 코앤울프(Coenwulf)가 머시아의 왕위에 올랐다. 그는 펜다의 여동생과 웨식스 왕 첸왈흐의 자손으로, 펜다와의 혈연적 연관성을 들어 왕위를 차지했다. 하지만 무리한 귀네드 왕국 원정으로 국력이 크게 쇠진했고 베오른울프(Beornwulf) 왕 치세에 엘렌둔(Ellendun)전투에서 웨식스의 에즈베르흐트(Ecgberht, 에그버트) 왕에게 크게 패했다.이시기 머시아의 왕위는 잦은 내전으로 왕조가 자주 바뀌었는데, 현대 사학자들은 이 왕들이 이름 앞글자를 따 C왕조, B왕조, W왕조라고 칭한다. 코엔울프의 즉위로 인해 정통 이켈 왕가가 대가 끊겨버리자 차기 왕위를 두고 이 세 가문이 나라가 망하는 870년대까지도 아주 박터지게 싸우게 되는데,[6] 결국은 C왕조가 상처뿐인 승리를 거두기는 한다. 한편 이시기 왕좌의 게임에 참가했던 이 세 가문 모두 앵글로색슨 연대기는 어쨋든 이켈의 후손이라고 주장한다. 즉 모계던 부계던간에 어쨋든 왕가의 피를 이어받은 머시아 왕가의 일원들이라는 것이다. 이에 대한 학자들의 반응은 크게 두가지로 나뉘는데, 첫번째는 이 기록을 최대한 존중해 세 가문 모두 펜다와 이켈과 어떤 식으로든 혈연적 연관성이 있으리라고 주장하는 이들이 있다. 이들은 9세기 초부터 벌어진 일련의 왕좌의 게임들이 머시아 왕가라는 거대한 친족집단 내에서 벌어진 정통성 싸움이라고 본다.
한편 다른 학자들은, 이 세 가문이 머시아 왕가와 그다지 혈연적 연관성이 없으며, 본래 각지의 토착 귀족들로서 왕가의 대가 끊어진 이후 왕위를 놓고 힘겨루기를 벌인 것이라 본다. C왕조의 경우 웨식스 왕가의 후손임이 거의 확실하나 동시에 펜다와 혈연적 연관성도 부정되지는 않으며, W왕조는 혈연적 연관성이 있을수도 있으나 이 입장의 학자들은 대부분 부정하며, B왕조의 경우에는 혈연적 연관성이 없다는 의견이 다수이다.
전쟁의 결과로 머시아는 잉글랜드 남동부 지역을 모조리 상실하면서 머시아는 웨식스의 속국으로 전락했다. 위즐라프(Wiglaf)의 지휘 아래 머시아는 주권을 회복했지만 865년 이교도 대군세라 불리는 데인족의 대대적인 공격으로 노팅엄을 빼앗기면서 왕이 강제 퇴위당했고, 내분과 바이킹의 침공에 약화되던 머시아는 결국 870년 후반 데인족에게 왕국동부가 강제 분할당했다. 머시아 왕국의 마지막 왕인 체올울프(Ceolwulf) 2세[7]는 머시아를 879년까지 통치했다. 하지만 그가 서거한 후, 2년간의 내전 끝에 애설레드(Æthelred)가 즉위했지만 머시아는 그 시기를 거치며 더 이상 독립 왕국이 아니라 웨식스의 종속국으로 전락했다.
애설레드는 바이킹의 침공에 위협받는 룬덴( 런던)을 공격했고, 귀네드의 왕인 아나라우트에게 패배하긴 했지만 웨일스에 대한 지배권을 복구하기 위해 콘위 전투를 벌이는 등 머시아의 부흥을 위해 힘썼다. 또한 910년에 즉위한 여군주 애설플래드(Æthelflæd)[8]는 데인족들과의 기나긴 전쟁을 통해 데인족들의 지배하에 놓였던 머시아와 동앵글리아를 탈환하는 데 성공했다. 하지만 918년 바이킹과 전쟁을 벌이던 와중 목숨을 잃었다. 이어서 여군주인 앨프윈(Ælfwynn)이 즉위했으나 반년 후 선왕들의 노력에도 불구하고 머시아는 결국 웨식스에게 병합되었다.
그 이후 머시아의 왕위는 웨식스의 왕이 겸하게 되었다. 대표적으로 애설스탠은 웨식스의 왕이자 머시아의 보호자라 칭했다. 그 이후론 별로 언급되는 바가 적은데 955년 이드위그 왕 치세에 잉글랜드 왕국이 3개로 분열되면서 에드거 1세가 잉글랜드의 북부 머시아 일대를 959년까지 독단적으로 통치했다. 그리고 이드위그 왕이 서거하고 잉글랜드의 왕위를 이으면서 머시아는 다시 잉글랜드로 병합되었다. 그리고 1017년 크누트 대왕이 정복할 당시 머시아 북부를 받아냈다는 1049년의 기록을 끝으로 언급되지 않았다.
2.6. 머시아 백작령
머시아 왕국이 망한 후에 머시아는 백작령이 되었다[9].초대 백작은 레오프리치(Leofric)인데, 이 사람이 바로 그 유명한 레이디 고다이버의 남편 리어프릭이다. 그는 당시 잉글랜드에서 웨식스 백작 다음으로 강한 제후였다.
2대 백작은 레오프리치의 아들 앨프가르(Ælfgar)가 이었다. 그의 대에 웨식스 백작 고드윈과 참회왕 에드워드의 대결이 있었는데, 일시적으로 패배한 고드윈 일가가 앨프가르의 영토로 망명해왔다. 이때 앨프가르는 고드윈의 아들 해럴드의 작위인 동앵글리아 백작을 얻었다. 이후 고드윈이 에드워드와 화해하면서 다시 해럴드가 동앵글리아 백작이 되었지만, 얼마 가지 않아 고드윈이 죽고 해럴드가 웨식스 백작이 되면서 동앵글리아는 다시 앨프가르에게 귀속되었다.
앨프가르는 1055년 추방당했고, 아일랜드에서 18척의 배를 이끌고 웨일스에 상륙해 귀네드와 포위스의 왕 그리퍼드 압 허웰린과 동맹을 맺었다. 둘은 브리튼인 군대를 이끌고 잉글랜드로 쳐들어갔고, 에드워드의 명령을 받은 해리포드 백작 겁쟁이 랄프(Ralf the timid)와 맞붙었다. 랄프는 이 싸움에서 참패했고, 앨프가르는 랄프의 영지를 들쑤시며 온갖 약탈과 파괴를 자행했다.
이후 에드워드가 웨식스 백작 해럴드를 앞세워 토벌군을 조직하자 힘에 부친 앨프가르는 다시 웨일스로 도망쳤다. 그러나 재차 침략해올 것을 두려워한 에드워드는 앨프가르를 복권했고, 그는 다시 머시아 백작이 되었다.
앨프가르가 죽자 3대 백작으로 에드윈(Edwin)이 뒤를 이었다. 에드윈의 형은 모르카르(Morcar)였는데, 노섬브리아 백작 토스티그가 학정을 펴자 모르카르가 노섬브리아 백작으로 추대되었고 토스티그는 스코틀랜드로 도망쳤다.
토스티그는 노르웨이 왕 하랄 3세 하르드라다에게 사주해 잉글랜드로 쳐들어왔다. 에드윈과 모르카르는 요크 인근에서 벌어진 풀포드 전투에서 참패해 요크를 내주었지만, 해럴드 2세가 스탬퍼드 브리지 전투에서 그들을 죽였다.
헤이스팅스 전투에서 윌리엄 1세가 해럴드를 죽였다. 이때 에드윈과 모르카르는 참전하지 않았다고 한다.
이후 둘은 머시아에서 반란을 일으키려 했으나 윌리엄이 이를 눈치채고 먼저 행동을 취하자 굴복했다. 그리고 스코틀랜드로 망명을 떠났는데, 1071년 그를 따르던 노르만족 수행원들이 배신해 살해당했고, 그가 다스리던 영토는 알랭 르 루(Alain le Roux)라는 이에게 돌아갔다. 그리고 이를 끝으로 머시아는 역사에서 사라졌다.
3. 역대 국왕
이름 | 재위기간 | 왕조 | 비고 |
이켈 | 515-535 | 이켈 왕조 | 대륙 앵글족의 마지막 왕이었다고 전함[10] |
크네바 | 535-554 | ||
퀴네왈드 | 554-584 | ||
크레오다 | 584-593 | 실존인물임이 확인된 첫 왕. 머시아 왕성 요새 건축. | |
피바 | 593-606 | 이켈 왕가의 실질적 시조. 서쪽으로 영토 확장. | |
체오를 | 606-626 | 불명 | 이름은 '투박한'이라는 뜻. 베다의 연대기에만 등장. 앵글로색슨 연대기에 등장하지 않음. 망명중이던 데이라의 에드위네와 자기 딸을 결혼시킴. 펜다에 의해 후손 멸족됨. |
펜다 | 626-655 | 이켈 왕조 | 머시아를 앵글로색슨 7왕국 내 패자로 만듬. 최후의 이교도 왕. |
에오와 | 635-642 | 펜다의 동생. 북부 머시아의 왕. | |
페아다 | 653-656 | 펜다의 아들. 남부 머시아의 왕. | |
노섬브리아의 오스위우 | 655-658 | 노섬브리아 왕조 | 노섬브리아의 왕. 펜다 사후 머시아 정복 |
울프헤레 | 658-675 | 이켈 왕조 | 펜다의 아들. 머시아의 위상 회복. 최초의 공식적인 기독교 왕. |
애델레드 1세 | 675-704 | 펜다의 아들. 퇴위당해 716년에 사망. | |
코엔레드 | 704-709 | 울프헤레의 아들. 퇴위당해 로마로 떠남. 사망년 불명. | |
체올레드 | 709-716 | 애델레드 1세의 아들. 독살당함. | |
체올왈드 | 716 | 체올레드의 동생. 실존 여부 불분명. | |
애델발드 1세 | 716-757 | 에오와의 손자. 736년에 스스로를 전 브리티니아의 왕이라고 칭함. 근위대에게 살해당함. | |
베오른레드 | 757 | B왕조 | 찬탈자. 애델발드 1세의 죽음을 사주했을 수 있음. 웨식스의 베오르흐트릭과 같은 가문일 수도 있음. |
오파 | 757-796 | 이켈 왕조 | 에오와의 증손자. 머시아 역사상 가장 뛰어난 명군. 스스로를 잉글랜드의 왕이라 칭함. 오파의 방벽 건설. |
엑크프리스 | 784-796 | 공동왕 재위. 아버지 사후 몇달 후에 갑자기 사망. | |
코엔울프 | 796-821 | C왕조 | 웨식스 왕 첸왈흐의 후손임이 거의 확실시됨. 펜다의 여동생의 칠대손. 스스로 황제라고 칭함. |
체올울프 1세 | 821-823 | 코엔울프의 동생. 베오른울프에게 찬탈당함. | |
베오른울프 | 823-826 | B왕조 | 베오른레드의 친척. 동앵글리아와의 전투에서 전사. |
루데카 | 826-827 | 불명 | 찬탈자. 베오른울프 시절 둑스(dux)[11]였다고 언급된다. 전임자와 같은 이유로 사망. |
위즐라프(첫번째) | 827-829 | W왕조 | 펜다의 후손일수도 있음. |
웨식스의 엑크베르흐트 | 829-830 | 웨식스 왕조 | 웨식스의 왕. 위즐라프를 쫒아내고 재위. |
위즐라프(두번째) | 830-839 | W왕조 | 엑크베르흐트를 쫒아내고 복위. 머시아 패권 영구 상실과 웨식스의 패권 획득 |
위그문드 | 839-840 | 위즐라프의 아들. 체올울프 1세의 아들로 입양됨. | |
위그스탄 | 840 | 위그문드의 아들. 어머니 앨플래드와 결혼하길 원했던 베오르흐트울프의 아들 베오르흐트프리스의 제안을 거부한 것에 대한 복수로 살해당했다고 한다. | |
앨플래드 | 840 | C왕조 | 위그문드의 왕비이자 위그스탄의 어머니, 체올울프 1세의 딸. W왕조와 C왕조의 결합. |
베오르흐트울프 | 840-852 | B왕조. | 위그스탄의 사촌이라고 주장함. 앨플래드에게 아들 베오르흐트프리스와 결혼할 것을 강요. |
부르그레드 | 852-874 | 베오르흐트울프의 친척. 이교도 대군세의 시작. 체올울프 2세에 의해 퇴위당함. | |
체올울프 2세 | 874-883 | C왕조 | 앨플래드와 위그스탄의 아들. 바이킹의 지원으로 왕이 됨. 877년 왕국 동부 상실. 머시아의 실질적인 마지막 국왕. |
4. 대중 매체에서 등장
- 2015년 토탈 워: 아틸라의 DLC 샤를마뉴의 시대에서 플레이어블 세력으로 구현되었다. 이때는 머시아의 전성기를 이끈 명군 오파가 재위하던 시기에서 플레이 하게 된다.
- 2018년 토탈 워 사가: 브리타니아의 왕좌에서 10개의 플레이어블 세력 중 하나로 등장한다. 웨식스와 함께 유이하게 플레이할 수 있는 앵글로색슨 왕국으로, 지도자는 체올울프 2세. 인게임 시점이 머시아를 휩쓸은 이교도 대군세 이후이기 때문에, 머시아 동부지역은 바이킹 세력들이 점거한 상태로 시작하며 웨일스의 귀네드 왕국과의 전쟁 상태로 시작하게 된다.[12]
- 드라마 바이킹스에서는 바이킹들의 머시아 침공이 그려지며, 머시아의 공주 크웬트리스 등의 머시아 인물들이 나오기도 하였다.
- 드라마 라스트 킹덤에서는 바이킹 침공 이후 웨식스의 속국이 된 머시아를 볼 수 있다. 웨식스의 공주 출신으로 머시아의 군주가 된 애설플래드가 드라마의 주요 히로인이기도 하다.
- 게임 어쌔신 크리드 발할라에서는 바이킹인 주인공이 체올울프 2세의 즉위를 돕는다.[13]
- 크루세이더 킹즈 3 867 시나리오에서 부르그레드 왕 재위로 등장. 시작 시점에 요크를 차지한 바이킹과 싸우고 있다. 실제 역사에서의 B왕조와 C왕조 간의 대립 구현이 미흡해 실제 역사같은 전개가 벌어지기는 매우 힘들다.
[1]
덴마크계 바이킹인 데인족의 정복 이전 독립 왕국 시절. '
이교도 대군세'로 막대한 피해를 입은 머시아는 이후 웨식스의 종속국이 되었다.
[2]
웨식스의 왕
대 에드워드의 치세에 웨식스에 완전히 흡수됨.
[3]
Tomtun. 현재의 탬워스(Tamworth).
[4]
머시아 방언
[5]
ˈmiy̯rˠ.t͡ʃe
[6]
다만 W왕조는 중간에 대가 끊겨서 C왕조에 흡수된다.
[7]
체올울프 1세의 아들
[8]
웨식스의 명군인
앨프레드 대왕의 딸이기도 하며, 이는 머시아의 왕권이 이미 웨식스에게 넘어갔다는 것을 보여주는 것이기도 하다.
[9]
크누트의 잉글랜드 정복 이후 잉글랜드에는 이교도 대군세 때의 4왕국(노섬브리아, 머시아, 웨식스, 동앵글리아)이 부활해 백작령이 되었는데, 현재까지 남아있는 작위로는 웨식스 백작이 있다.
[10]
여담으로, 그의 아버지라 전해지는 에오메르가 앵글족의 왕이었던 시절 그에게 반란을 일으켰다가 쫒겨난 두 형제가 있었는데, 놀랍게도 그 두 형제가 웨식스 왕가의 조상이라고 한다(...) 머시아가 잘나가던 시절 웨식스를 어떤 시선으로 봤는지 알 수 있는 전설이다.
[11]
공작이 아니라 군사 사령관을 의미한다.
[12]
노섬브리아와 이스트 앵글리아는 이무렵 바이킹 대군세 세력으로 각각 구트프리드와 구트룸이 지도자로 나온다. 플레이어가 귀네드일때는 머시아와 전쟁 상태로 시작하진 않는다.
[13]
정확하게는 꼭두각시로 세우고, 결국에는 왕위에서 내쫓아버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