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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반도와 그 부속 도서의 지역 구분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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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lbgcolor=#0047a0><colcolor=#fff> 위치 | 헌법 상: 대한민국 동북부 | |||
휴전선 이북 기준: 북한 동부[1] | ||||
면적 | 52,323㎢[2][3] | |||
인구 | 약 690만 명 (추정) | |||
인구밀도 | 131.68명/㎢ (추정) | |||
최대도시 | 함경남도 함흥시 | |||
행정구역 | 북한 | 이북5도위원회 | ||
라선시 함경북도 함경남도 량강도 |
함경북도 함경남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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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정구역장 | 북한 | 이북5도위원회 | ||
신영철 (
라선시) 김철삼 ( 함경북도) 리정남 ( 함경남도) 리태일 ( 량강도) |
이훈 (
함경북도) 이진규 ( 함경남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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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한반도 동북부에 위치한 지역으로, 북한 행정구역 상 함경남도, 함경북도, 량강도에 해당하는 지역이다. 아래 설명처럼 북한에서는 북한령 강원도를 함경도에 절대로 포함하지 않는다. 북한에서는 '함경도'라고 하면 보통은 함경남도와 함경북도를 의미하고, '함경도지방'이라고 하면 양강도(량강도)까지 포함하는 것이다. 전통적인 함경도의 강역은 조선시대부터 내려오는 행정구역을 그대로 계승한 대한민국의 이북 5도상 행정구역으로, 함경북도와 함경남도에 해당한다. 북한에서는 행정구역을 군 수 개의 소속을 수백년 만에 바꿀 정도로 급진적으로 바꾸었기 때문에, 분단 이전의 역사는 이런 행정구역이 아니라 원산이 함경도의 도시인 식의 이북 5도 위원회 등이 주장하는 행정구역을 따로 봐야 편하다.'관북(關北)'이라는 별칭이 있는데 이는 함경도가 강원도와 함경도의 경계에 위치한 고개인 철령의 북쪽에 있다는 것에서 유래했다.
면적은 52,322.49㎢에 달한다. 서쪽으로는 평안도와 닿으며, 북쪽으로는 중국, 러시아와의 국경을 대고 있다. 남쪽으로는 강원도에 닿는데, 동해안을 따라 내려가면 영동 지방, 철령을 넘어가면 영서 지방에 닿는다.
주요 도시로는 함흥시, 성진시(북한 치하 김책시), 청진시, 라선시가 있으며, 모두 동해안에 위치한다는 점이 특징이다. 이 중 최대 도시는 함흥시이다. 분단 전에는 원산시도 대표적인 함경도의 도시였고, 북한에서 강원도에 편입시킨 기간보다 함경도에 속했던 기간이 더 길다.
2. 명칭
이름은 함흥시와 경성군에서 한 글자씩 따왔다.별칭인 관북은 철령관을 기준으로 그 이북에 있다는 것에서 유래하였다.
3. 범위
좀 더 세밀하게 구분하면 마천령산맥을 기준으로 그 이북을 관북,[4] 이 이남을 관남이라 칭하기도 한다. 북한에서도 북한이 펴낸 조선향토대백과를 보면 전통 음식을 언급할 때 '함경도지방'이 아우르는 영역을 묘사하며 한국식의 함경도를 언급하는 사례가 있다. # 다만 북한 내부에서는 '함경도'를 자신들의 함경남도와 함경북도만을 포함하는 개념으로, 량강도와 다르게 취급하는 경우가 많은데 이 문서는 편의상 조선 팔도의 함경도에 가까운 지역을 소개한다. 한국령 함경남도와 함경북도의 경계는 마천령산맥이다.행정구역의 직접적 전신은 고려 때 동계이며, 동계가 확장되어 고려 말~ 조선 건국 초에는 동북면(원간섭기 이후~ 공양왕까지, 태조, 정종), 그리고 함길도( 태종[5] ~ 세조)이라고도 불리었는데, 이 경우는 경성 대신 길주에서 따와 붙인 것. 북방 영토가 확립되기 전에는 길주가 동북 지역의 중심지 중 하나였다. 그러나 이시애의 난으로 길주가 2개 현으로 분할되면서 세조 13년에 함경도로 고쳤다. 이후 성종 1년, 영흥 품관 김영로가 함흥이 반역향이라는 이유로 영안도( 영흥+ 안변)로 개칭할 것을 청했고, 이를 수용하여 영안도로 바뀌었다. 연산군 4년에는 함흥을 강등한 것은 세조의 뜻이 아니었다는 이유로 함흥을 다시 부로 승격하고 함경도로 환원되었다. 함흥은 태조 이성계의 근거지로 즉 조선 왕조의 발상지였기 때문에 반역향으로 남기기에는 껄끄러웠을 것으로 보인다.
실록에 따르면 마천령 산맥을 경계로 삼자는 의견도 있었다. 이 의견이 받아들여졌다면 함경북도는 한반도에 포함되지 않았을 지도 모른다. 그러나 세종은 조종이 일으킨 땅을 헛되이 버릴 수 없다는 이유로 이 의견을 받아들이지 않았다. #
4. 자연환경과 지리
함경도의 면적은 약 52,000㎢ 정도로 한반도 전체 1/4, 남한의 1/2의 크기를 자랑하는 면적을 가지고 있다. 팔도 중에서 가장 넓고 국가로 따지면 네덜란드나 대만보다도 크고, 코스타리카나 보스니아 헤르체고비나와 면적이 비슷하다. 내륙지역은 개마고원을 필두로 한 산지가 많고 대다수의 인구가 밀집한 평야는 주로 동해안에 있다. 이러한 지형상 강원도 다음으로 인구밀도가 희박한 지역이다. 상당수의 지역은 강원도 이상으로 혹독하지만 강원도보다 인구밀도가 높게 집계되는 이유는 동해안에 인구가 어느 정도 있는 도시가 있고, 북한 당국이 평양 등지로의 이촌향도를 규제하고 있기 때문이다. 남쪽 끝인 안변군과 북쪽 끝인 나진시 사이의 거리는 600km에 달하는데 이는 부산광역시 - 평양시 간 거리보다 길다.극한지(極寒地)로 알려진 평안북도( 자강도) 중강진이 근처에 있다. 6.25 전쟁 당시 미합중국 해병대가 한파로 고전한 장진호 전투의 무대 장진군도 이곳에 있다. 참고로 함흥시 이북 한정이지만 대체로 여름이 시원한 지방이다.[6] 함흥~ 성진쯤 오면 열대야도 하루 이틀 나타나는 수준이다. 물론 가장 추운 곳은 백두산 일대로, 천지를 포함한 정상 부근은 툰드라 기후(ET)의 조건에 부합한다. # 개마고원은 물론이고, 청진시, 성진시 등의 해안 지역도 여름 기온이 낮은데, 이건 북한 한류(寒流)의 영향 때문이다. 동해안 연안은 바다의 영향으로 겨울에도 생각하는 것처럼 시베리아 수준으로 춥지는 않다. 1월 평균 영하 5도 정도. 북위 41~42도에 있는데, 한참 아래 38선 바로 위에 있는 철원군이나 양구군 등지보다 따뜻하다(함경도 동해안은 일교차가 작기 때문에 최전방마냥 영하 15도 밑으로 내려가는 일은 적은 편.). 동위도의 북아메리카 내륙과 같은 기후를 갖고 있다.
연평균기온, 연강수량으로 보면 함경도 전역은 해안 지역은 독일, 덴마크, 스웨덴 남부 정도, 산간 지방은 스웨덴 산간 지방에 가깝다. 함경도의 남쪽 해안은 함흥처럼 독일 프랑크푸르트와 연평균기온은 비슷하고 강수량은 200mm 많은 경우가 있다. 청진은 스웨덴 남부의 말뫼와 기온과 강수량이 비슷하다. 가장 추운 삼지연시는 스웨덴 북부 키루나보다 강수량이 300mm 많고 연평균기온은 비슷하다. 함경도 해안 지역은 그래서 사람이 아주 못 살 정도는 아니라서 고구려가 처음으로 국내성 일대를 넘어 외부로 진출하던 곳이었고, 고려가 여진을 정벌하면서도 여진족의 거센 저항에 얻은 땅을 지켜내지 못한 일도 있었다. 고려 말에 쌍성총관부를 공격하고 개마고원까지 영토를 확장한 후 고려사에 따르면 동남민이라는 경상도 일대 사람들이 쌍성이라는 함흥평야 남부는 땅이 기름지다며 자발적으로 진출하기도 했다고 한다. #
전근대사회 시절에는 개마고원은 강수량이 적고 기온이 낮아 상당히 추운 탓에 농업의 발달이 어려워서 척박하고 도저히 사람 살만한 데가 아니고 별볼일없는 고장으로 여겨졌었다. 그나마 땅이 비옥하다는 기록이 있는 동옥저는 함흥평야 일대에 있다. 옥수수나 감자는 조선 후기 때야 들어왔다. 개마고원 일대는 말할 것도 없고, 함경도 해안 지역도 강수량이 적은데다 여름에도 북한한류의 영향으로 흐리고 안개 끼는 날이 어지간히 많아 냉해를 자주 입어 상대적으로 온난한데도 벼농사를 짓기가 힘들다. 물론 이제는 농업 기술이 발달해서 옛날에 비해서 농업 발전이 활발한 고장이 되었다.[7] 지리적 환경 때문에 쌀보다는 주로 콩, 옥수수, 밀, 감자를 재배하는 지역이 많았으나, 함흥평야처럼 남부에 있는 경우 쌀을 주로 심는 경우도 많았다. # 개마고원 일대의 목초지에서는 목축이 발달해서 양, 소, 염소들을 많이 키우고 있다. 해방 전에는 감자를 한반도 어느 곳보다 많이 생산하였고 옥수수는 좀 따뜻한 곳에서 생산했다.
또한 이런 험악한 지리 환경에다 외적을 방비하는 최전방이란 특성 때문에 고려 - 조선 내내 함경도에 주둔한 육군은 병사 1명이 다른 도의 병사 5~6명에 필적한다는 평가를 받을 정도로 고려군/ 조선군 중 정예부대로 꼽혔다. 이성계가 이곳을 기반으로 한 막강한 군사력을 바탕으로 마침내 새 왕조를 열었다. 이순신 장군이 젊은 시절 이곳에서 여진족을 상대로 활약했다. 참고로 상당히 추운 동네다 보니 임진왜란 초기이던 1592년 겨울에는 그 곳에 머물러 있던 왜장 가토 기요마사가 이끄는 부대가 한양으로의 철수 과정에서 (병사의) 40% 가량이 동사했다는 기록까지 있다[8].
5. 인문환경
방언은 정평군 이북은 동북 방언을 쓰고 그 이남은 영동 방언권에 속한다. 다른 북한에 있는 지역에 비해 직설화법을 선호하고, 여성은 생활력을 강조한다. 분단 이전에는 경제 활동을 잘 하는 여성의 발언권이 강하여 일제가 그 활동을 탄압하기도 할 정도였으며, 다른 지방과 달리 육체노동도 꺼리지 않았다고 한다. 아이와 물건을 동시에 지고 장사를 하기도 했다고 한다. # 분단 직전까지는 평안도와 달리 기독교 신자는 적고, 천도교가 좀 퍼져 있었다.이곳의 전통 음식은 북쪽의 음식이 싱겁다는 관념에 비해 맵고 짠 편이다. 예전부터 알려진 음식이던 가자미식해나 함흥냉면의 원형인 회국수는 실제로 짜고 맵다. 마늘과 고추가 많이 쓰이기도 하며, 대신에 음식이 달지 않다고 알려져 있다.
평안도가 실향민도 많다보니 이곳의 사투리, 음식 등이 한반도 북부를 대표하는 경향도 있었으나 함경도는 이곳과 다른 면이 있다. 동북 방언도 서북 방언과 차이가 심한 방언으로, 특히 성조의 사용에서 차이가 두드러진다. 그러나 후술할 탈북민의 영향으로 이곳의 문화도 한국에 소개되고 있다. 가령 탈북민이 운영하는 북한 식당의 경우 싱거운 음식이 많은 실향민의 음식보다 매운 음식을 제공하는 경우가 많다.
함경도 방언으로도 불리는 동북 방언은 지역별로 어미의 차이가 있다. 슴다체와 비슷한 말투를 쓰는 북부 지역의 말투와, 과거 함경도 말투로 알려진 '했지비' 같은 이미지의 남부 지역의 말투로 구분된다. # 이 '북부 지역'을 어떻게 가를지는 학자마다 차이가 나서 한국에서는 육진 방언으로 구분하는 경우가 많으나 북한 사람들은 경험적으로 '함경북도 사투리'와 나머지 등으로 구분하기도 한다.
북한 치하에서 언급되는 분위기는 경상도에 비유되는 경우가 많다. 사투리나 급한 성격에 경상도와 비슷한 속설이 있다. 전통 민요의 경우 ' 동부민요'로 아예 강원도나 경상도와 같이 묶이는 경우가 많다. 개인적인 주장이나 북한에서 양강도로 편입된 곳 출신은 옆의 자강도로 건너가도 평안도 사투리인 말투가 너무 부드럽고 편안하다고 할 지경이다. 솔직함을 중시하여 양강도 출신인데 '우리 동네는 날강도라 불린다'고 주장하기도 한다. 하지만 거지가 쫓아와도 먹을 것을 준다면서 인심이 좋다고 주장한다. # 지역드립으로 비하적인 주장도 좀 있으나 이에 관한 주장은 이 문단을 참조. 물론 속설이기에 사람마다 성격이 다양하다.
물론 경상도와 100% 일치하지는 않아 함경도 유래인 부산의 밀면은 원래보다 달게 변했다고 한다. 탈북민이 많은 북쪽이 아니라 함흥 등지의 남쪽은 홍어를 국수에 고명으로 넣는다는 주장이 있다. 지금도 회국수의 원형은 홍어나 가오리를 쓰는 것이라는 말도 있을 정도다. # #
조선족, 고려인, 탈북민 과반수가 함경도 계열이다. 조선족은 일부 다른 지방 출신이 섞여 있으나 고려인이나 탈북민은 압도적으로 함경도 출신 비중이 높다. 강을 건너기도 쉽고 중국과 러시아와의 교통이 편리하다는 지리적인 이유가 크다. 특히 탈북민의 분포가 지리적인 영향이 커서 북한 인구의 2%도 안되는 육진으로 개척된 지역과 그 인근 출신이 전체 한국 정착 탈북민의 과반수를 넘은 적도 있다.
함경도 등 이북출신의 영향으로, 고려인 요리인 국시 또한 밀면과 흡사하게 발전했으며, 고려인 식당을 가면 순대 등 우리에게 친숙한 메뉴가 제법 보인다.
혼란한 해방정국과 6.25 전쟁을 거치며 많은 사람들이 월남을 하여 실향민이 되기도 하였다. 함경도 출신 실향민들은 고향과 가까운 영동지역이나 경상남도 거제, 마산부근이나 부산광역시 등 근방 대도시 등지에 정착했다. 전쟁 당시 북한지역이던 함경도는 한국전쟁 당시 다시 후퇴할 무렵 미군의 함선을 써 피난했다. 강원도 속초시는 함경도 실향민들이 몰려와 속초 아바이마을[9][10]을 형성하였다.
기타 현대 한국에도 알려진 함경도와 관련된 인물이나 문화 요소로는 인물에는 윤동주, 이순재, 주현, 문재인 전 대통령의 부모가 가장 유명하다. 가수 강산에는 거제 출신이나 함경도 가계에 애정을 드러내는 '명태'[11]와 같은 곡을 발표하기도 했다. 사실 윤동주는 엄연히 따지면 북간도 출신이지만 본적이 함경북도 청진이고 구어로 함경도 사투리를 썼다고 알려져 있다. 그래서 영화 동주에는 함경도 사투리를 쓰는 윤동주가 등장한다. 배우 이순재도 유아기부터 서울에서 쭉 살았지만 고향인 함경북도 회령에 애착이 강하며 회령 출신 탈북민을 두고 고향이 같다고 한 적 있다.
문화 요소로는 앞서 언급한 음식이나 뒤에 언급할 홍랑이나 아리랑을 지은 나운규도 유명하지만 명태, 북청사자놀음, 북청 물장수, 풍산개가 유명하다. 국어 교과서에도 등장했던 인물로 최인훈, 이용악도 있다. 더 옛날에는 조선 왕실과 연관이 있는 사람들이 있어 한의학에서 사상의학 창시자로 유명한 이제마, 구한말의 정치인인 이용익 같은 인사가 유명했다. 남남북녀와 같은 맥락으로 회령이나 함흥이 미녀가 많다는 주장도 있었다. 개심사 같은 발해의 유적까지 존재하는 등 이와 관련한 역사적 가치도 있다.
유전자 검사상, 함경도 사람들은 북방계 민족, 대륙 유전자가 한반도에 비해서 아주 높은 것으로도 확인되었다. 몽골, 만주족 등 북방민족의 영향으로 보고있으며, 무작위로 검사한 함경도인의 하플로그룹 유전자도 아주 특이한 편으로 북중국인, 몽골인, 함경도인, 아랍인, 만주족, 시베리아 원주민 등이 검출되었다. 이를 통해 동북방언이 북방계 민족 언어의 영향을 받은 것을 알수있다.
6. 역사
6.1. 고려 이전
현재 사학계는 함경남도 일대에 임둔군이 있었을 것이라고 보고 있다.원삼국시대 때 해안 지역은 옥저의 영역이었고, 내륙의 개마고원 일대는 개마국, 구다국 등의 소국이 있었다가 고구려로 편입되었다. 뒷날 모두 고구려의 영역이 되었고, 신라 진흥왕이 함경남도 장진군 황초령, 이원군 마운령까지 진출했다가 지금의 강원도에 속하는 안변군 일대의 이남을 제외한 대부분의 지역은 다시 고구려의 영역이 되었다.
남북국시대에는 대체적으로 안변군을 포함한 남부 지역(현재의 강원도(북한)의 대부분)은 통일신라, 그 외에는 발해의 영역이었다. 현재 사학계는 북청에 남경남해부가 있었을 것이라고 보고 있다. 또한 발해 관련 유물, 유적들로는 함경북도 명천군의 개심사, 청진시 동쪽의 부거리 일대의 유적들, 함경남도 금호지구의 오매리 일대의 유적들이 있다. 최근 들어 발해의 영역에 속했는지 논란이 많고 발해 유적도 거의 발견되지 않은 평안도와는 달리 남경남해부가 위치하는 등 발해의 확고한 영토였으며 한반도 내부에서 유일하게 발해의 유적들이 남아 있는 지역이다.
본래 발해 시대까지는 발해인들이 많이 살았으나 발해를 멸망시킨 거란족의 요나라가 함경도 일대의 발해인들을 랴오닝성 일대로 강제 이주시켜버리는 바람에 고려 시대에는 여진족들이 터를 잡았다.[12] 사실 발해 멸망 직후에는 남경남해부를 중심으로 발해부흥운동이 전개된 듯 하나 발해부흥운동 세력의 중심이 시간이 지날수록 압록강, 두만강 이북으로 넘어간 듯 하고[13] 후발해, 정안국 시기를 거치며 발해유민의 내투 기록이 이어지기 때문에 요나라로 강제이주 당하지 않은 함경도 거주 발해인들 중 상당수가 고려로 내투한 것으로 추정된다. 한편 정평 이남의 함경도 지역은 고려의 영토로 편입되어 천리장성을 경계로 이남은 고려의 동계, 이북은 여진족의 영토로 갈라졌다. 예종 시기에 윤관이 천리장성 이북에 동북 9성을 쌓고 영토화를 시도하기도 하였으나 여진족의 거센 저항에 포기하기도 하였다.
여몽전쟁 시기에는 화주 사람인 조휘와 탁청이 고려 관리를 죽이고 몽골에 귀부하면서 화주에 몽골 제국의 직할통치기관인 쌍성총관부가 설치되었다. 그러다 공민왕 대에 이자춘과 이성계 일가의 도움으로 쌍성총관부를 수복하였다. 이후 이성계는 고려 중앙정계에 진출하면서 자신의 연고지였던 함경도 일대를 자신의 권력 기반으로 삼았는데 고려 멸망 직전에는 이미 함경도 전체가 이성계의 독립왕국이나 다름없었으며 심지어는 목단강 일대에 거주하는 여진 부족에게까지 이성계의 영향력이 미쳤다.
6.2. 조선
조선 왕조 초기에는 이성계의 연고지였던 만큼 풍패지향(豊沛之鄕), 흥왕지지(興王之地)로 일컬어졌으나[14] 조사의의 난(1402년)과 이징옥의 난(1453년), 이시애의 난(1467년)이 연달아 일어난 뒤 반역향[15]으로 찍혔다. 이런 도중에 조종께서 지키시던 땅이라는 명목으로 세종 때까지 두만강 하류의 영토를 확장하면서 외부의 적의 공격을 막아내는 데 힘썼다. 용비어천가에도 함경도 지명(경흥, 덕원, 적도[赤島])이 등장한다.그러나 통일신라 이후 신라계 명문세가들[16]이 하삼도와 경기, 황해[17], 강원 남부 등 신라 내지에 자리잡게 됨에 따라 함흥 이북으로는 공민왕 대 가서야 개척된 함경도에 비해 전통적인 유력가문이 많을 수밖에 없었다. 이성계의 연고지이기는 했지만 그도 조상이 전라도 쪽이어서 전주와 함흥이 동시에 풍패지향이라고 불렸다. 이곳 사람은 아예 가문으로 따지면 대다수가 본관이 함경도가 아닐 지경이다. 게다가 조선이 농본사회였던지라 기후가 척박한 함경도는 군사기지 이상이 되기 어려웠다. 17세기까지는 팔도 중 가장 인구가 적은 곳이었으니, 함경도를 인구가 많은 다른 지방과 똑같이 관심을 기울여도 역차별이었다. 이러니 조선 내내 함경도가 가장 소외되었음을 이해하기란 어려운 일이 아니다. 조선 초기에는 토관 제도 등을 실시하여 토착 유력 인사를 흡수하며 이곳 사람들을 회유하였다. #
조정이 자신들을 차별한다고 함경도 사람들이 분노했음은 급기야 임진왜란 때 북상한 가토 기요마사에게 조선 최북단 회령 아전 국경인(鞠景仁)[18] 등이 임해군, 순화군을 팔아넘긴 데서 여실히 드러난다. 물론 나중에 의병장과 유생들에게 죽었다. 당시 함경도는 일본의 도호쿠 지방과 비슷하게 변방 중 변방이었던 것. 그렇지만 조선은 중앙집권적 체계를 강조했기에 일본과 달리 지역색이 약했다. 이 당시에도 함경도 개척을 주도한 사람들은 남쪽에서 이주한 조선 출신이기에 자신이 조선인이라는 인식을 가졌으며, 이곳 사람들은 국경인의 난에서 타지역 출신 국경인을 함경도 사람이 진압하였음을 강조했다. # 심지어 "관북(關北)은 인문(人文)의 열림이 다른 지방보다 뒤처지지만 풍기가 질직(質直)하고 후중(厚重)하기 때문에 성취하는 경지에 이르면 정고(貞固)하고 독실(篤實)함이 우뚝 볼 만하니[19] 다른 지방이 미치지 못하는 바이다."라며 안동 김씨 가문의 영의정을 지낸 김병학이 함경도 출신이라도 유교적 소양을 갖추면 호평을 하기도 했다. #
택리지에서 함흥 이북으로는 설명이 적다. 태조가 서북[20] 사람들을 높은 벼슬에 임용하지 말라는 기록, 세종 시절에 6진을 개척하였다는 기록, 함흥 이북 지역의 한두 개 정도의 성씨들을 제외하고는 정말로 없다. 조금 더 설명을 부연하자면 택리지에서 각 지역을 설명할 때, 각 도에 속한 지금의 우리로 치자면 광역시나 시나 군에 해당하는 행정구역인 부나 목, 군, 현에 대한 개괄적인 위치나 이름은 모두 언급한다. 물론 대도시나 역사가 깊은 도시라면 자세한 설명이 더해진다. 그런데 함경도의 경우, 함흥과 화령을 제외한 다른 지역은 설명이 적은 편이다. 당시에 이 지역이 얼마나 조선 사람들의 관심 밖이었는지 보여주는 하나의 예.
그나마 팔도 사람들의 인심을 설명할 때 한번 더 언급한다. 평안도는 살터를 정하는 데에 그 지방의 풍속을 살피지 않을 수 없다면서 아예 8도 중 가장 순후한 인품을 가진 사람들이 모여 산다고 극찬할 정도였지만, 함경도 사람에 대해서 '오랑캐와 마주한 탓에 사람들이 굳세고 사납다.' 라고 평가했다. 평안도 말고는 경상도만 호평하고 나머지 지역은 다 깎아내릴 정도로 정치적인 관점이 반영되기는 하였지만 말이다. # 확실히 춥고 거칠고 야인들까지 많이 쳐들어오는 땅이었으니 사람들이 유순하다면 그게 더 말이 안되긴 한다. 번호(친 조선 여진족)들도 많이 살았고 혼혈이나 정착 등을 하기도 했다. 다만 원산이 번화한 곳이라고 소개하고, 회령의 황제릉이나 운두산성, 안변의 석왕사를 언급하기는 한다. #
함흥 일대가 아니면 척박한 지역이었던 탓에 4군 6진 개척 이후 함경도 북부 지역에는 사민정책이 반강제적으로 시행되었는데[21] 많은 반발과 탈출이 있었다. 또한 오성대감 이항복과 추사체로 알려진 김정희가 북청군으로 보내진 적이 있었을 만큼 유배지로 이용되기도 했고 유배지이자 첩첩산중의 대명사로도 유명한 개마고원의 삼수군, 갑산군이 바로 이곳에 있다.[22]
워낙 땅도 바다도 험해서, 산길 험한거야 말할것도 없고, 바닷길도 서해나 남해에서 10년 쓰는 선박이 동북해에서는 5년 만에 폐선처리가 될 정도였다. 조선도 영토 확장 욕구가 상당했지만 올라가는 것 자체가 어려운데 올라가도 보이는 건 여진족뿐이라... 이는 함경도 북부 개척은 증기선이 나온 후에야 본격화되었다.
또한 얄개, 돌상놈 같은 비하어들이 이때 나왔으며 매우 비극적인 내용의 전래 민요도 있다.
타박 타박 타박네야 너 어드메 울고 가니 우리 엄마 무덤가에 젖 먹으러 찾아간다 물이 깊어서 못간단다 물이 깊으면 헤엄치지 산이 높아서 못간단다 산이 높으면 기어가지 명태줄라 명태싫다 가지줄라 가지싫다 우리 엄마 젖을 다오 우리 엄마 젖을 다오 우리 엄마 무덤가에 기어기어 와서 보니 빛깔곱고 탐스러운 개똥참외 열렸길래 두손으로 따서들고 정신없이 먹어보니 우리 엄마 살아생전 내게 주던 젖맛일세 |
실제로 양반이 적은 평안도보다도 늦게 개척된 함경도의 특성상 명문가가 생길 여지가 없어서 근본적으로는 무당의 딸로서 겪을 수밖에 없었던 신분계급상 극심한 천대로 볼 수 있다. 함경도라서 차별하기보다는 신분이 낮은 사람을 차별하니 함경도 출신도 차별받게 되는 것이다. 단천의 연은분리법에 관한 서술 등을 보면 조정에서도 경제적인 문제에 대해서는 별 차별이 없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국어 영역 고전시가 부문에서 '묏버들 가려것거 보내노라 님의 손데'로 시작하는 기생 홍랑의 시조에 담긴 애절한 사랑 이야기가 전해오는 곳도 함경도이다. 당시 관기는 해당 관청의 영역조차 못 벗어나 '함관령'이라는 함경도의 고개까지만 갈 수 있다고 하고 일반 백성은 이사를 하기 어렵게 막아놔서[23] 생긴 비극이었다.[24][25][26] 다만 인터넷 상의 일설과 달리 아예 서울에 가지 못한거는 아니어서 근면하다는 '북청 물장수'의 이야기는 1800년대 초부터 있었다고 한다. #
함경도에 없는 것 3가지는 노복(奴僕, 머슴), 기생, 거지라는 말이 있었다.[27]
원래 평안도는 한국사 최초의 대도시 평양 및 대중 무역도시 의주가 위치해 지리적 이점과 더불어 조선 말기에 과거합격자 비율이 조선 팔도 중 1위라는 사실에 비해 구한말에는 의외로 인구대비 양반의 수가 황해도나 평안도보다 많았다. 다만 이들을 사대부로 인정하기는 싫었는지 택리지에서는 함경도에는 사대부가 없다고 깠다. 이 서술은 택리지가 별로 정치적으로 중립적이지 않다는 것을 보여주는 사례 중 하나이다. 18세기부터 면적이 훨씬 적은 황해도의 인구를 추월했다. 북어 같은 지역 특산물을 이때부터 개발하기 시작하고, 상업과 무역도 조금씩 발달하였다. 감자와 같은 함경도에 맞는 외래 작물은 19세기 들어서야 재배가 시작되었다. 19세기부터야 인구가 제대로 증가하기 시작해 20세기 초반에는 충청도의 인구에 육박하게 되었다.
6.3. 근현대
하지만 조선 시대 때 차별 당한 북한 지역이 오히려 역설적으로 개화기, 일제강점기에 더 적극적이었다. 당시 북한 지역이 지리적 조건이 좋았기 때문에 산업이 발전할 수 있었다. 영·정조 때부터 조정은 전국적인 정치적 지역 차별을 없애는데 관심이 있었고, 구한말부터 조정에서는 오늘날 고려대학교의 전신인 보성전문학교를 세운 이용익과 같은 인사를 총애하기도 했다. 조선 후기로 가면서 백두산이 중시되는 등의 움직임이 있자 아예 함경도민은 자신들은 '조선의 뿌리'라고 여기고자 하는 경우가 있었다. # 윤동주 같은 인물은 뿌리가 함경도라는 이유로 자신을 '조선 사람'이라고 여길 정도였다. 함경도 주민들에게 이민족의 후손이라는 의심을 받던 재가승이라는 함경북도 최북단의 집단도 갑오개혁 때 이미 차별이 없어졌다는 언급이 있다. # 김구는 1895년에 북청군을 들르면서 '문화향'이라고 칭했을 정도다. #심지어 농사조차 단천 같은 남쪽에 있는 지역에서도 토질이 적합하지 않은 곳은 쌀농사가 어려울 정도였다고 하지만, 조, 수수, 감자, 피 등을 재배하여 유복하게 사는 경우도 있었다고 한다. #
개화기 당시 이곳에서는 주로 '자강 운동'이 벌어졌고 근대식 교육 및 산업의 발전이 활발하게 진행되었다. 원산, 흥남, 청진의 발전이 이때부터 시작되었고 무산군의 철광과 장진호, 부전호 수력발전소 등이 이때 만들어졌다.
덕분에 이 당시 함경도를 포함한 북한 지역은 '동양의 덴마크'라는 별명이 있었을 정도로 생활 수준이 남부 지방보다 높았다. 물론 이는 어디까지나 일제의 한반도 병참기지화에 필요한 인프라 구축을 의미할 뿐 식민지 피지배민들의 생활수준 향상을 위한 것이 아님을 명심해야 한다.
함경도민의 강한 자립심은 ' 북청 물장수'라는 말로도 알려져 있다. 아직 서울 시내에 상수도가 보급되지 않은 시절에는 일일이 물동이를 지고 떠서 날라야 했는데, 이 일을 맡은 사람들이 대개 북청 출신이라는 점에 기인했다.
광복 전의 기행문에 묘사된 바로는 함경도 일대의 장터는 거의 대부분이 여성이었다고 하는데, 지금도 장마당 상인들 중에서 여성들이 차지하는 비중이 80%에 달한다고 한다. # 다만 이건 과거와 무관하게 북한 당국이 남성에 대해 각종 정치적 제약으로 장사를 방해하기 때문에 일어나는 현상으로 이런 현상이 딱히 없던 황해도나 북한령 강원도를 포함한 북한 전역에서 일어나는 현상이다.
평균 신장 역시 1930년대 당시 동아시아에서 가장 큰 수준[28]이었다. 김연옥의 "기후학개론"에 따르면, 중국의 경우는 가장 큰 허베이성이 165.9cm, 가장 작은 후난성이 159.5cm, 2번째 단신 광동성이 159.7cm , 몽골계 할하인, 부랴트인과 다우르족은 각각 165.4cm, 164cm와 162.6cm, 퉁구스계 만주족, 오르촌족은 각각 164.2cm와 160.8cm이었으며 한국은 평균 162~4cm, 일본은 가장 큰 지역이 161.3cm(간사이)이었다. 당시 한국 최단은 161.7cm의 충청남도와 전라북도. 그 당시 한국의 지역별 평균신장 링크 프로레슬러 역도산(김신락)도 함경남도 홍원군 출신이다. 태어난 곳이 함경도인 배우 주현도 174cm으로 160cm 중반이 많은 그 나이대 남성에 비하면 꽤 크다.
80년이 흐른 남한의 20~30대 남성 평균 신장이 174~5cm, 일본의 남성 평균 신장이 170.7cm, 중국 화북, 만주 일대의 남성 평균 신장이 173~174cm임을 감안(동북 지방은 한국인과 비슷하지만 남부지방은 인도차이나 반도의 평균키와 비슷하며, 전체적인 평균키는 일본과 비슷하거나 미세하게 작다). 북한이 의식주로 제대로 해결 못하는 극단적으로 가난한 나라만 아니었다면(1990년대의 남한 수준만 되었더라도) 북한 남성의 평균 신장은 못해도 174cm는 넘었을 가능성이 높다. 당장 평균 162cm 전후로 집계된 한반도의 남부 지역이 경제성장으로 현재 평균키가 174cm 정도로 되었으니 단순 계산으로만 따져도 주민들을 배부르게 먹일 경우 함경북도 지역의 평균키는 대략 178cm정도는 되지 않았을까 추측된다.[29] 물론 개인의 차이는 있어서 아리랑으로 유명한 나운규는 함경북도 회령 출신임에도 키가 작기로 유명했다고 한다.
해방 이후 38선으로 남북이 분단되자 함경도 출신 군 장성들이 대거 월남하였고, 6.25 전쟁을 거치면서 나름의 세력을 구축하지만 국가재건최고회의 및 군 수뇌부에 발생한 파벌싸움에서 ' 알래스카 토벌작전'에 의해 군복을 벗게 된다. 당시 '알래스카'가 군내에서 함경도 출신 인사를 가리키는 암호명이었다.[30] 정일권 같이 함경도 파벌을 이루던 인사 중 박정희와 친한 인사는 그 파벌 싸움에서 살아남아 국무총리 등을 지냈다.
6.4. 북한 치하의 함경도
러시아가 연해주를 먹으면서 독립운동의 기지가 되기도 했고, 간도 논쟁도 다 여기서 온 것이다. 반면 일제가 패전할 때는 만주 작전에서 가장 먼저 점령된( 청진) 곳이기도 하다.초기 북한에서는 조만식 등의 기독교 민족주의자 세력이 강했던 평안도에 비해 함흥 등 해안지역의 공업지대를 중심으로 토착 공산주의자들의 세력이 강했다. 대표적인 인물이 아래에도 나오는 오기섭으로 이들은 김일성에게 쉽게 따르지 않고 김일성을 견제하는 모습을 보였으며 남로당 숙청, 8월 종파사건 등을 거치면서 대부분 숙청되었다.
탈북자 강연에 의하면 2000년대 이후로 함경도가 탈북의 명소로 떠오르고 있다고 한다. 실제로 혜산~온성 근처의 국경지대에는 탈북자 가족들이나 바깥세계에 끈이 닿아 있는 주민들이 꽤 많다. 그리고 국경을 지키는 군인들 역시 탈북 브로커가 거의 본업 수준이라 한다.[31] 그러나 김정은 정권들어 강한 의지로 탈북을 절반으로 줄이고, 코로나19의 유행 이후로는 방역을 구실로 거의 0에 가깝게 국경을 못 나가게 했다.
강명도는 한 좌담 프로에서 김일성이 관북 출신들은 간부로 등용하지 마라란 교시를 내렸을 정도였다고 증언했다. 그 이유는 김일성의 후계자가 되려고 했다가 숙청당한 갑산파의 리더 박금철의 고향과 김일성 가짜설을 주장한 오기섭의 고향이 이곳이기 때문이다. 1 2 다만 북한의 평범한 주민들이 보는 곳에서는 '지방주의'를 없애라며 아예 지역을 중심으로 한 파벌 자체를 경계했다. 라선시(라진, 선봉)은 남포시보다도 잘 살아서 북한에서 제2~4위[32]의 소득을 자랑하는데, 이것이 다 중국, 러시아와의 무역 때문이다.
2016년에는 기록적인 폭우가 일어났다.
풍계리 핵실험장으로 인해 방사능 오염과 지하수 오염이 심각하다. 기본적으로 길주군 출신은 피폭검사를 해야 할 정도이다.
2022년 현재까지도 함경도는 정치범수용소가 제일 많은 곳이다.[33]
함경도에 위치한 백두산과 관련해 백두산 위인이라고 김씨 일가를 선전하기도 하지만 오히려 평안도(정확히는 평양시)보다 김씨 일가에 대한 반감이 높을 것으로 예상되는 지역이다. 다만 여론조사 같은 것을 한 적은 없으므로 정확히 알 수 없는 문제이기는 하다. 탈북자들이 많다는 것을 통해 간접적으로 추정할 수 있을 뿐.
6.5. 통일 이후의 전망
풍부한 임산자원과 중국, 러시아, 일본의 교차점으로서 발전 잠재력이 매우 높다.또한 백두산, 칠보산 같은 명산들과 개마고원도 이곳에 있고 두만강과 동해안을 끼고 있어 관광지로서 발전할 가능성도 충분하다. 특히 여름이 시원하여 피서지로 가장 인기 있는 지역이 될 것으로 생각된다. 겨울이 일찍 찾아오고 꽤 길게 이어지는 곳이라 향후에 동계스포츠 중심지가 될 가능성이 높다.
게다가 중국, 러시아와 지리적으로 인접해 있고, 바다 건너 일본까지도 왕래가 가능하므로, 넓은 배후 시장도 확보되어 있다. 실제로 해방 전까지만 하더라도 함경도 지역은 일본 본토를 제외하면 아시아 제일의 중화학 공업 지역이었으며, 관광 명소이기도 했다.
인구밀도는 희박하지만 워낙 땅이 넓어[34] 인구도 비교적 많은 편이다. 700만 명이 거주해서, 경상도(약 1,300만)나 평안도(약 1,100만)보다는 적지만 충청도와 전라도(각각 약 500만)보다는 많다.
그러나 통일 이후 거주 이전의 자유가 생기므로 이촌향도 등이 벌어져 인구가 폭락할 가능성이 있어 예상과는 다를 수 있다. 해당 지역 대부분이 매우 혹독하고 인프라가 낙후됐지만 북한 당국이 이동을 제한해서 현재 인구가 유지되는 면이 있어서, 타 지역으로 가지 않아도 최소한 일자리가 많고 비교적 발전된 해안 대도시로 인구가 쏠릴 것으로 보인다.
때문에 통일이 이루어진 후 이 지역에 대한 개발이 체계적으로 이루어진다면 상당한 발전을 이룰 수 있을 것으로 예상된다.
그리고 경기도, 강원도에 있던 메이커 사단의 일부가 이쪽으로 옮겨 가서 이 쪽이 전방, 최전방이 될 것이다.
무엇보다 희망적인 것은 대한민국으로 온 탈북자들의 대부분이 이곳 함경도 출신이라 한국에 우호적인 분위기가 비밀리에 형성되어가고 있다는 점도 고무적이다.[35] 또한 함경북도 동해안 지역의 나진시, 청진시 등 주요 항구 도시도 존재하고 있다는 점도 주목할만 하다.
통일 이후에 량강도를 인정하지 않는다면 지역에 따라서 함경북도, 함경남도, 평안북도로 흡수될 가능성이 크다. 다만 이 경우 이북5도 기준을 적용하면 함경도의 면적이 너무 넓어지기 때문에 관리상의 어려움이 발생할 가능성이 높다.[36] 이 경우 북한 기준 행정구역 구분은 유지하고 명칭만 개정하는 등의 다른 조치를 취할 수도 있을 것으로 추정된다.[37]
그리고 지리적 특성상 중국과 러시아 두 강대국들이 눈독을 들일 만한 곳이다.[38] 그리고 통일이 되면 미국도 이곳을 주목할 가능성이 있다. 알래스카 주와 거리도 가까울 뿐 아니라 이 두 적대국의 태평양 진출을 저지할 수 있는 명당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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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 세종실록지리지에서의 설명
[1]
전통적으로는 함경도는 조선의 북쪽 지방이라고 하여 '북선'의 영역으로 여겨졌으며, 현대에도 북한에서 태어난 함경도 일대 주민은 자신을 '북쪽' 출신이라고도 한다.
[2]
북한의 행정구역인 함경북도+함경남도+량강도 면적 합은 약 48,831㎢이다.
[3]
함경도의 크기는
네덜란드와
대만보다 훨씬 크며,
에스토니아와
슬로바키아보다 크고,
코스타리카와 비슷한 크기이고,
크로아티아와
토고보단 작다.
[4]
영북이라고도 부른다.
[5]
태종 대 당시 처음엔 영길도(영흥+길주)로 불렀다.함길도는 함흥과 길주의 앞글자를 딴 것이다.
[6]
한반도 대부분 지역에서
냉대 동계 건조 기후가 나타나지만 대부분 Dwa인 반면, 함흥 이북 함경도는 Dwb(내륙)/Dfb(동해안)다.
[7]
여기보다 강수량도 적고 더 추운 곳이 중국 둥베이 평원인데, 일제강점기만 해도 농업 발전에 불리하다고 여겨졌지만, 현대에는
중국의 곡창지대라고 불릴 정도로 평가가 올라갔다.
[8]
일본은 북부의
홋카이도 지역을 제외하면 전체적으로 따뜻한 기후인 나라로, 아무래도 따뜻한 나라에서만 살아온 사람들이다 보니 추위에는 제대로 사전에 대비를 못해서 이런 참사를 겪게 된 것이었다. 한국인들 사이에서도 춥고 거친 곳이라는 이미지가 있는 동네인 마당에 이런 걸 많이 접해본 적이 없는 일본인들의 입장에서는 오죽했을까 싶다.
[9]
그래서 아바이마을 내 식당의 이름에는
함경남도의 지명이 많이 붙어있다. 그 예로
북청,
단천이 있다.
[10]
아바이순대가 여기서 나왔다.
[11]
명태라는 이름의 유래는 함경북도 명천에서 태씨 성을 가진 어부가 낚은 물고기여서라는 설이 있다.
[12]
발해 멸망 이전에도 발해-신라 국경에
말갈 소국들이 출몰해 중앙정부를 무시하고 통교를 시도했다는 기록을 봤을때 발해가 쇠락해 말갈에 대한 통제력이 약해져 이들이 꽤 남하해 있었거나 신라를 견제하기 위해 발해가 의도적으로 말갈인을 사민시킨 것으로 추정하기도 한다.
# 실제로 주민들을 몽땅 사민했다기엔 백두산 폭발과
발해부흥운동의 여파로 함경도 같은 변방에 대한 요나라의 통제력은 안정적이지 못했다.
[13]
정안국의 열씨 정권은 정황상 본래 남경남해부에 기반을 둔 듯 하나(
열주도 참조) 정안국 건국후 중심지가 함경도를 벗어나 북쪽으로 이동한것으로 추정된다.
[14]
일부에서
택리지의 태조 이성계가 서북 출신의 임용을 막았다는 서술로 보아 자신의 고향 및 기반인 함경도를 차별했다는 주장을 하기도 하는데, 당시 '서북'은 평안도 지역을 지칭하는 것이며, 함경도 쪽은 '동북(면)'이라고 지칭했다. 따라서 이성계의 저 발언은 평안도 출신의 임용을 막은 것이지 함경도와는 관련 없는 발언이다.
[15]
반역향으로 찍힌 지역 출신은
과거 시험 응시를 제한당했다.
[16]
한국의 성씨는 본관이 평양-강릉 이북인 경우가 아주 드물다.
[17]
북한 땅이 되어버려 관심이 적지만
연안 이씨 같은 사례가 있다.
문화 류씨는 고구려계다.
[18]
국경인 또한
전주에서 유배되어 온 사람이었다. 國境人이 아니다.
[19]
풍습이 곧고 두터우니, 소양을 갖추게 되면 올곧고 진실하다는 뜻이다.
[20]
평안도(
황해도를 포함하기도 한다.)와 함경도를 통틀어 서북, 서북 양도라고 일컫는다. 그런데 함경도를 두고 종종 동북 혹은 동북면으로 호칭하는 사료들도 있다. 조선왕조실록에서 보통 서북면은 평안도, 동북면은 함경도 지방을 가리킨다.
[21]
호패를 집에 두고 왔다고 강제이주, 길에서 싸웠다고 강제이주시키는 판인데 이사를 허용할 리가 없다.
[22]
참고로 갑산에 유배왔던 이들 중 하나가
윤선도다.
[23]
다만 실제로는 통제가 느슨했는지 홍랑의 시대인 선조 때도 관기를 끼고 한양에서 사는 일도 빈번했다고 한다(다만 이건 법을 어길 끗발 있는 높으신 분에게 간택받은 소수에게나 해당된다).
# 세조~숙종 시기 조정에서는 이 고장이 국방을 위해 인구가 많아야 한다고 생각하였고, 이에 이사를 어렵게 만들었다. 그러면서 그곳의 불만은 잘 타일러야 한다고 여겼다.
[24]
실향민 출신인
윤승운 화백이 분개하는 부분이며 배우
이순재도
회령 출신이다.
[25]
함경도 음식에 대한 대목이므로 이순재 씨의 회고를 그대로 기록한다. "국수를 말고 떡을 쳤죠. 함경도식
국수를 즐겨 먹었습니다. 함경도식은
메밀이 아니라
당면으로 만들어요. 양념을 해서 고기와
오이무침을 같이 말아 먹는데 상당히 쫄깃쫄깃합니다.
냉면이 아니라
온면으로 만들어 먹었어요. 서울시내에서 그런 국수를 파는 데는 없죠. 떡도 그렇습니다.
찰떡도 함경도 식으로 먹었죠. 보통
콩가루에 묻혀 먹잖아요. 우리는
팥가루에 묻혀 먹었습니다. 모양도 형태도 제각각이지만 그 맛을 무엇에 비교하겠습니까."
[26]
제주도 또한 비슷하게 섬 사람들의 한반도 육지부 상륙을 아예 법적으로 금지하는 출륙금지령이 존재했다. 다만 이 당시에는 그것이 심각한 차별로 느껴지지 않았는지, 제주 인구 감소를 막기 위해 필요하다는 배경하에서 추진되었다는 해석도 있다.
#
[27]
노복은 노비도 의미하는데 노비를 가지려면 노비를 데리고 있을 경제력이 있어야 한다. 하지만 척박한 땅이니 경제력 있는 부자가 있을 리가 없고 부자들이 없으니 기생들이 있을 리도 없다. 그리고 거지들도 빌어먹을 곳이 있어야 빌어먹지 가난한 곳에서 뭘 빌어먹을지는 둘째고 거지는 집이 없으니 그 함경도 겨울을 견딜 수는 있을까 싶다.
[28]
평북 165.5cm, 함남 166.2cm, 함북 166.8cm
[29]
게르만 혈통이 많은
미국 백인과 동일하다.
[30]
여담으로 평안도 출신 군 인사는 '텍사스', 전라도 출신 군 인사는 '하와이'라고 불렸다. 해방 직후에 미군 제24군단이 한반도에 진주하면서 한반도 8개 도 각각에 대한 작전명으로 붙인 것에서 유래했다고 한다.
#1
#2 이들 '텍사스'나 '하와이'라는 암호명으로 불린 평안도, 전라도 출신 군 인사들도 차례차례 숙청된다.
[31]
아무리 북한이 선군정치를 지향하고 있다고 해도, 뿌리 깊은 부정부패 때문에 물자가 제대로 보급되지 않을 때가 많은 게 원인이다. 그렇다고 해서 국가에서 직접 돈을 주는 것도 아니다.
[32]
내륙의 평성, 평양과도 가까운 북중 국경의 신의주도 무역이 많이 이루어진다.
[33]
제일 유명한 곳은 핵실험장도 겸하는, 건설 이후 단 한 명도 나온 사람이 없는
명간 제16호 관리소.
[34]
면적은
경상도의 1.5배쯤 되고,
수도권(휴전선 이남)의 5배이다. 같은 함경도인데도
함흥시에서
온성군까지의 직선거리가 약 400km, 철도 이동 거리는 약 760km에 달한다.
[35]
단순히 탈북민이 아니더라도 국경을 맞대고 있는 지리적 위치로 인해
동북 3성을 통한 밀수로 대한민국산 제품들과 한류가 유입되었고 이를 통해 대한민국에 대한 실상이 알려지며 한국에 우호적인 분위기가 형성되었던 것이다.
[36]
당장
경상북도도 행정구역이 너무 넓다는 이야기가 나오고 있는데, 이북5도 기준 '함경남도'의 면적은
경상도 전체와 유사한 수준이다.
[37]
조선시대의 경우
평안도를 3개의 도로 나누어 통치한 적이 있다. (실제로 이 시기에는 '
평안중도'가 존재했다.)
[38]
함경도는 중국에 있어서 태평양으로 진출할 수 있는 창구와 마찬가지이기 때문에 관심을 두고 있다. 북한내 위기상황이 다가올 것을 대비해 인민해방군을 함경도 국경 지역으로 배치해 놓는 이유도 이 때문이다. 러시아는 부동항 확보와 지정학적 조건으로 인해 함경도에 진출할 기회를 노리고 있다.
[39]
함흥과 길주의 앞글자를 따서 붙여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