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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리아 اسُورِيَا Syria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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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대한민국과 시리아의 관계. 두 나라는 현재까지 미수교 상태이다.시리아는 현재 195개의 유엔 회원국 중 유일하게 한국과 수교관계를 맺지 않은 나라다.
2. 역사적 관계
2.1. 전근대
신라의 승려 혜초는 왕오천축국전에서 시리아 관련한 기록을 일부 남긴 바 있다. 왕오천축국전에서는 시리아가 소불름국(小拂菻國)이라는 명칭으로 언급된다.2.2. 20세기
시리아는 북한의 오랜 우방국으로 줄곧 한국과는 거리를 두는 행보를 보여왔다. 1980년대 말부터는 시리아도 현실적인 자세로 돌아서 아주 기본적인 경제, 문화 교류 정도는 거부하지 않고 있었다. 1986년 서울 아시안 게임에는 불참했으나, 1988년의 서울올림픽에는 참가하여 서울에 시리아 선수단이 입국했으며, 이후 대한민국에서 열리는 스포츠 행사에 종종 참가하고 있다. 축구 국가대표팀과도 인연이 있어, 대한민국과 시리아 양국에서 국가대표팀 경기를 몇 차례 치르기도 했다.2.3. 21세기
2.3.1. 2000년대
한국 제품도 진출해 있고, 한국 문화까지 알려지고 있고, 시리아를 방문했던 사람들의 증언에 의하면 한국인에 대한 거부감도 그다지 없었다고 한다. 미국과 사이가 좋지 않고 북한과 단독 수교국이라 험악한 곳이라는 편견이 있는데, 조갑제 역시 친북 국가라고 안 좋게 여겼다가 시리아 여행을 직접 갔다온 다음부터는 북한과는 비교하기도 어려울 정도로 생활이 넉넉한 편이고 문화도 풍부하며 반미를 하긴 하지만 그렇다고 한국이 원수질 필요도 없고 어느 정도 친하게 지내면 좋겠단 의견을 글로 쓴 바 있다. 정작 이웃나라인 이라크는 당시의 시리아와는 대조적으로 한국의 단독 수교국이었으나[1] 일찍이 여행금지국가로 지정된 탓에 정작 갈 수가 없었다.[2]그러나 시리아에서 며칠만 있으면 이 나라를 북한과 비교하는 것은 모욕이란 것을 알 수 있다. 북한 평양의 옥상에 위성TV용 접시의 숲이 있는가? 다마스쿠스 시장과 같은 시끌벅적한 시장이 있는가? 일반 국민들이 명랑하고 친절한가? 외국인 투자가 허용되는가? 시리아의 거리는 자동차 홍수다. 그 30%가 한국 자동차라고 한다. 굶는 사람이 없다. 공개적으로 정부를 비판하지 않는 한 감옥에 가지 않는다. (중략) 시리아에 와서 여행해 보면 「그동안 많이 오해했구나」 하는 부분이 보인다. 한국인은 시리아를 주로 성경, 이스라엘, 미국의 시각에서 보아 왔다. 그런 시리아는 反기독교, 친북, 독재, 테러지원국가다. 그런 면이 있지만 과연 「악의 축」이라고 불릴 정도인가, 하는 생각이 든다. 시리아의 지난 100년 역사만 알아도 언론에서 얻은 선입관이 달라질 수 있다. (중략) 시리아를 여행해 보니 이 나라와 국민들은 비록 가난하지만 품격이 있다는 느낌이 들었다. 건축물, 음식, 옷차림, 상품, 태도 등을 통해서 드러나는 품격이야말로 문화와 역사의 축적에서 자연스럽게 우러난 것이리라. 다양한 민족·종교·제도가 약 1만 년의 역사 속에서 충돌, 융합하면서 빚어낸 33개의 문명, 그 후광을 받은 나라이고 사람들이기에 촌스럽지 않고 어른스러운 것이다. 역사는 흉기가 아니라 교양인 것이다.
#
2009년에는 코트라(KOTRA)의 다마스커스 한국 무역관이 개설되었다.[3]2.3.2. 2010년대
2011~12년 이후로는 상황이 급변했다. 시리아의 정세가 내전으로 인하여 매우 불안정해졌다. 또한 시리아 정부군과 반군, IS가 서로 격돌하는 등 전란의 시대를 맞이하게 되었다. 외교통상부(당시)는 시리아 전역을 여행경보단계 4단계로 지정, 여행금지국가가 된 것이다. 이때부터 시리아 방문이 법적으로 금지되었다. 더군다나 미수교국인 시리아에는 대한민국 공관이 없으므로 이례상황이 발생하면 수교국보다도 더욱 곤란해진다.내전 초기에 일각에선 시리아 내전으로 친북 성향의 아사드 정권이 붕괴되고 시리아가 민주화되면 한국과 시리아의 국교 수립도 가능하리라는 기대도 있었다. 그러나 10년이 지나도록 아사드 정권이 여전히 굳건하고, 내전도 종식될 기미가 보이지 않는 상황에서 이는 시기상조에 가까운 주장이 되었다.[4]
국교관계가 없으니 중동에서 유독 한국과 교류가 이루어지지 않는 유일한 국가지만, 시리아 내에서 K-POP 등 한류의 영향이 어느 정도 있는 편이고 시리아 정부 차원에서도 딱히 한국 문화 유입을 차단하지도 않는다. 국민감정 또한, 대한민국에 특별히 반 시리아 감정이 있거나 시리아에 반한 감정이 있는 것도 아니다. 그리고 한국에서도 소수지만 몇몇 시리아계 난민이나 이주민들이 거주하며, 유니세프를 통해 시리아 난민을 위한 후원금을 보내주는 경우도 있다. 2012년 시리아 내전이 한창일 무렵에는 반군을 포함한 반정부-반체제 세력들에게 100만 달러를 지원해준 적도 있었다.
2.3.3. 2020년대
2021년 3월 31일, 외교부는 한국 정부가 시리아 난민을 위해 1천800만달러(약 203억원) 규모의 인도적 지원을 한다고 밝혔다. #주 터키 한국 대사관이 터키내 시리아 난민들을 위한 신재생 에너지 분야 직업훈련소 오픈행사식을 개최했다고 밝혔다. #
2022년 5월 10일, 외교부는 시리아 난민들을 돕기 위해 1,380만달러(176억3,000만원) 규모의 인도적 지원을 제공하기로 결정했다. #
시리아 대민 지원으로 인해 외교관계 개선을 기대할 수 있었으나,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에서 시리아 정부가 러시아를 강력하게 지지하면서 개선의 여지가 꺾였다. 실제로 현재 양국의 분위기를 살피자면 시리아는 한국과 수교를 맺을 생각이 아직까지 없고, 한국 역시 아직까지는 시리아와 외교를 맺어봐야 이득이 없기 때문에 시도하지 않는 분위기이다.
2023년 2월, 튀르키예와 시리아 일대에서 대지진이 일어났다. 2월 12일, 반크는 튀르키예와 시리아 지진 피해 주민을 돕기 위한 캠페인을 진행한다고 밝혔다. #
2월 15일, 더불어민주당이 튀르키예와 시리아 지진 복구 성금을 모금한다고 밝혔다. # 호반건설 계열은 튀르키예와 시리아에 구호성금 1억5천만원과 구호물품을 보냈다고 밝혔다. # 그리고 TWICE도 튀르키예와 시리아 강진 피해 주민들을 돕기 위한 성금 2억원을 기부했다. #
12월 8일 시리아 반군이 다마스쿠스를 점령하고 50년에 걸친 아사드 세습 정권이 무너지면서 한국-시리아 수교에 대한 가능성이 조금이나마 생겼다.[5]
양국은 미 수교국이므로 상대국 공관이 없으며 대한민국은 주 레바논 대한민국 대사관에서 시리아를 겸임하며, 시리아는 주 일본 대사관에서 대한민국을 겸임한다. 만일 양국이 수교하더라도 상호 교민이 거의 없기 때문에 이대로 겸임 체제로 갈 가능성이 높다.
3. 관련 문서
[1]
1980년까지는 북한 단독 수교국이였으나
이란-이라크 전쟁 당시에 북한이 이란을 지원하면서 단교하고 1989년 남한과 국교를 수립했다. 이후로도 딱히 북한과 관계 회복을 시도하지 않았기 때문에 사담 후세인 정권 내내 서방과 그렇게 대립하면서도 남한 단독 수교국으로 남아있었던 것은 아이러니.
[2]
2004년 4월 초까지는 "되도록 방문을 피하라"는 식의 자제 ~ 제한 수준이라 방문이 원천차단된 것은 아니었고 그 이후에도 여행금지라고는 해도 법적으로 처벌이 확실히 이루어지지는 않고 있었으나, 2007년 아프간 피랍사태를 계기로 하여 서서히 제도가 엄격해져 이라크 여행은 진짜 '금지'가 되었다. 다만 2000년대 극심한 내전 상황으로 누구든지 함부로 방문할 수 없었던 데 비해 정국이 전쟁이 2010년대 후반 들어서는 기자나 무역 목적으로는 방문할 수 있게 되었다. 물론 기자들 및 일부 이라크에서 활동하는 기업들 한정이지만.
[3]
90년대 북방외교 시기에도 미수교국에 공관이 개설되기 이전 코트라 한국무역관이 먼저 개설되어 사전 작업을 하는 방식이었는데, 시리아도 당시 수교 분위기가 꽤 무르익고 있었다.
[4]
심지어 알아사드는 시리아 내전으로 미국에게 단교당했으며, 러시아와 이란에게 협력하면서 반미, 반서방 스탠스를 취하면서 대표적인 친북 국가로 알려지게 되었다.
[5]
하지만 시리아 반군의 주역인
HTS는
이슬람 근본주의 성향에 서방국가들로 부터 테러단체로 지정되어 있고 남부의 친서방 반군들은 1기
트럼프 행정부 이후 서방의 직접적 지원이 없어지고
요르단과
사우디,
카타르의 지원으로 연명해오던 상태여서 힘이 부족하다.
알탄프의 미군마저도 아랍 국가들 그 중에서도
요르단의 보급과 협조로 유지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