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개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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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민국의 제5대 나라도장[1] |
전근대엔 여러가지 종류가 있었으며 군주(君主)의 소유물이었다. 근대 이후 국새는 특정 인물이 아닌 국가, 정부의 공공 소유물이 되었다. 영어로는 great seal (위대한 직인)이라고 한다.
2. 전근대적 의미: 옥새
크게 국새(國璽), 국인(國印), 국보(國寶)가 있다. 대부분은 군주, 군주 일가의 전유물이다. 이 외에도 각 정부청사의 도장도 있지만 이 문서에선 위 세 가지만 서술한다.종류는 여러가지가 있지만 보통 국새, 국인은 국새(옥새)로 통칭하고 국보만 어보로 따로 부른다.
국새는 군주의 도장(전근대), 국가의 도장(근대)의 의미를 모두 포함한다. 하지만 현대에선 군주의 도장은 옥새, 국가의 도장은 국새로 나누는 경향이 있다. 그래서 그런지 '금으로 만든 옥새' 같은 이상한 서술도 발생한다.
위 경우는 옥새가 '군주의 도장'이란 고유명사가 되었다는 증거이기도 하다. 그래서 군주의 도장에 관해 상세한 설명은 옥새 문서에 쓰고 국새 문서엔 전근대, 근대로 나누고 전근대적 국새는 간략한 구분만 해두었다. 전근대 국새에 대해선 옥새 문서 참조.
2.1. 국새
진시황제가 중국(진)을 통일하면서 많은 글자들을 구분 짓기 시작했는데 도장의 경우 황제의 도장은 새(璽), 제후의 것은 인(印)으로 부르게했다.새의 재질에도 구분을 두었는데 천자는 옥, 제후는 금을 써 만들었다. 그래서 동아시아 황제의 도장은 ' 옥새(玉璽)'라 한다.
삼국사기 고구려 대무신왕 4년(서기 21년) 기사에 "왕이 이물림에 머물렀는데 밤새 이상한 소리가 들려 다음날 아침에 그곳에 사람을 보내니 금새(金璽)와 무기등이 있었다."라는 내용이 등장한다.[2] 이를 보아 고구려는 특이하게 새(璽)를 쓰되 금으로 만든 새를 사용한 듯하다.
고려는 시대에 따라 요[3], 금[4], 원[5], 명[6]에게 국인(國印)을 받았지만 사용하지 않고 자체적으로 국새(國璽)를 만들어 썼다. '갈양사혜거국사비'에 3대 정종이 '새서(璽書)'를 보내 혜거국사를 국사로 임명했다는 기록이 남아있다. 새서는 국새를 찍은 문서란 뜻으로 고려는 최소 3대 정종 대부터 국새가 있었음을 알 수 있다.
동문선 제23권에 따르면 예종은 신하 위계정[7]에게 '옥새(玉璽)'를 가져오게 해 물려받았다.
고려사 인종 세가엔 고려의 예종이 신하 한안인을 시켜 '국새(國璽)'를 가져와 태자였던[8] 인종에게 물려 주었다는 기사가 있다. 이를 보아 타국이 보낸 국인 외에도 고려가 독자적으로 만든 국새가 따로 있던 것으로 보인다. 대화궁 치어엔 서경에서 '신새(神璽)'가 발견됐다는 구절이 있다.
그동안 이런 국새는 왕실에서 자체적으로 보관한 것으로 보이는데, 의종 대에 중서주보리(中書主寶吏)[9]와 부보랑(府寶郞)[10][11]을 두어 국새 및 국보와 받은 국인을 보관하는 부서를 만든 것으로 보인다.
공양왕이 이성계 세력에게 폐위되고 고려가 망하자 '국새(國璽)'는 왕대비전에 보관되었다는 기록이 있다. 고려의 국새는 최종적으로 수창궁 경신전(敬愼殿)에 있다가 이성계가 즉위하며 이성계의 수중에 들어갔다.[12]
조선시대에는 타국이 보낸 국인 외에 따로 쓰는 도장이 있었다. 성리학적 제후국으로서 천자(황제)가 주는 국인을 버릴 순 없으니 잘 쓰지 않고 적당히 간직만 한 것이다. 명, 청이 보낸 국인은 오로지 외교용으로만 쓰고 조선이 독자적으로 사실상의 국새를 만들어 썼다.
조선은 각 소유자(군주)와 용도에 따라 다양한 어보를 만들어 사용했고, 어명을 내릴 때 국서에 찍히는 실무용과 종묘에 모셔진 선왕들에게 바치는 의례용 등 다양한 도장을 제작했다.
1897년에 고종이 칭제건원한 이후, 고종은 천자만이 쓸 수 있는 옥으로 대한국새(大韓國璽), 황제지새(皇帝之璽) 등 옥새들을 제작했다.
2.2. 국인
제후의 도장. 보통 금으로 만들었다. 그래서 보통 금인(金印)이라했다. 지금이야 금이 더 비싸지만 당시에는 옥이 더 귀했기 때문에 황제는 옥으로 왕은 금으로 도장을 만들어 썼다.< 증보문헌비고> 예고새인조(禮考璽印條)에 부여의 예왕(濊王)이 '예왕지인(濊王之印)'을 사용하였다는 기록이 남아 있다. 이는 한국사 최초의 국새(국인)이다.
고려시대부터 조선시대까지는 요ㆍ금ㆍ원ㆍ명ㆍ청에서 국인(國印)을 보내 왔다. 보통 금으로 만들어 금인(金印)이라 불렸다.
고려 강종이 자신의 왕후 원덕태후에게 인수(印綬)를 선물했다. 인수는 국인의 끈을 의미한다. 충렬왕 24년(1298)엔 국인을 보관하기 위해 의종이 만든 부보랑을 인부랑(印符郞)으로 격하한 뒤 종6품으로 정해 2명을 두었다.
여말 아홉 권신들이 흥국사에 모여 토론한 뒤, 정창부원군 왕요를 국왕으로 세우기로 결정했고 그에게 국인을 전해주었다고 한다.
조선 국왕이 명, 청 황제로부터 수여받은 국인 '조선국왕지인(朝鮮國王之印)'은 명, 청과의 외교 문서에 사용했고, 즉위식에서 사군(嗣君)이 승계했다.
2.3. 국보
자세한 내용은 어보 문서 참고하십시오.국보(國寶)는 대보(大寶)라보도 하며 보통 어보(御寶)로 불린다.
2.4. 그 외
신라에선 문무왕 때 구리(銅)로 각 지역의 관인을 주조해 사용한 기록이 있으나 군주의 국새에 관해선 직접적인 기록은 없다. 다만 신라 왕궁의 일부였던 동궁과 월지 호수 안에서 실물 도장이 여럿 출토되었다.3. 근대적 의미
3.1. 대한제국의 국새
근대적인 의미에서 한국사 최초의 국새는 대한제국에서 1897년 9월 주조한 대한국새(大韓國璽)라고 할 수 있다. 재질은 천은 도금(天銀鍍金)이며, 조선시대와 현대의 과도기임을 보여주듯 조선시대처럼 국서(國書), 즉 외교문서에 한정해 사용하였다. 1910년 한일합병으로 일본에게 강탈되어 다른 대한제국 국새·옥새들과 함께 일본 궁내성에 수장되었다가 광복 이듬해인 1946년 미 군정에 의해 반환되었으나, 6.25 전쟁 당시 전쟁통에 분실되었다. 후술한 국새 제작 사기 사건에 연루됐던 민홍규가 복원한다고 한 적이 있다.대한국새의 복원품 |
황제 명의의 옥새는 국새와 별개로 있었는데, 이것도 전쟁통에 분실된 것으로 알고 있었다가 2014년 미국에서 환수되었다. 국새 황제지보 항목 참조.
이외에 칙령을 반포할 때나 행정 문서에 찍는 행정용 도장도 별도로 여럿 있었는데, 주요 도장은 아래와 같다. 다만 이들 도장은 국새로 보지 않는 견해가 우세하다. #
- 국새 제고지보 (國璽 制誥之寶) : 1897년 9월 19일에 보장(寶匠) 전흥길(全興吉) 등이 제작했다. 대한민국에서는 5급 사무관 이상이면 대한민국 국새를 임명장에 날인해주는 것과 달리, 대한제국에서는 국새는 외교문서에서나 쓰였고, 황제 명의의 옥새는 친임관[13]에게나 날인하는 것이지 단순 고급관리(정1품~종2품)인 칙임관을 임명할 때는 이것을 날인했다. 6.25 전쟁 중 분실되었다가 1954년 경남도청 금고에서 발견되었으며 2021년 보물로 지정됐다.
- 1898년 제작되어 칙명 반포 문서에 날인하는 국새 칙명지보(國璽 勅命之寶), 1899년 제작되어 대원수부에서 사용하는 국새 대원수보(國璽 大元帥寶)도 마찬가지로 1954년 경남도청 금고에서 발견됐고, 2021년 보물로 지정됐다.
3.2. 대한민국 역대 국새
[[대한민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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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민국 국새 변천 현황 | ||||||
구분 |
임시정부 국새 |
제1대 국새 | 제2대 국새 | 제3대 국새 | 제4대 국새 | 제5대 국새 |
사용 기간 |
1919~ 1948 |
1949.05.05.~ 1962.12.31. |
1963.01.01.~ 1999.01.31. |
1999.02.01.~ 2008.02.21. |
2008.02.22.~ 2010.11.29. |
2011.10.25.~ |
2010.11.30.~ 2011.10.24. |
||||||
인영 | ||||||
인문 |
大韓民國臨時政府印 (대한민국임시정부인) (한문 전서체) |
大韓民國之璽 (대한민국지새) (한문 전서체) |
대한민국 (한글 전서체) |
대한민국 (훈민정음체) |
대한민국 (훈민정음체) |
대한민국 (훈민정음체) |
크기 | 미상 |
방2촌(方2寸) 6.06×6.06 cm |
정방형 7×7 cm |
정방형 10.1×10.1 cm |
정방형 9.9×9.9 cm |
정방형 10.4×10.4 cm |
재질 | 미상 | 은 | 은 | 금 합금 | 금 합금 | 금 합금 |
중량 | 미상 | 미상 | 2.0 kg | 2.15 kg | 2.9 kg | 3.38 kg |
규정 | - |
국새규정 대통령령 제83호 1949.05.05. |
국새규정 각령 제643호 1962.04.10. |
국새규정 대통령령 제16096호 1999.02.01. |
국새규정 대통령령 제20641호 2008.02.22. |
국새규정 대통령령 제23236호 2011.10.25. |
인뉴 (印鈕) |
미상 | 미상 | 귀뉴(龜鈕) | 봉황뉴(鳳凰鈕) | 봉황뉴 | 봉황뉴 |
관리 기관 |
미상 |
① 총무처 ② 국무원 사무국 ③ 국무원 사무처 ④ 내각 사무처 |
① 내각 사무처 ② 총무처 |
행정자치부 |
① 행정자치부 ② 행정안전부 |
① 행정안전부 ② 안전행정부 ③ 행정자치부 ④ 행정안전부 |
국새는 보통 전문 장인에게 의뢰하여 제작된다. 국새가 제작될 때 '일정한 재료를 얼마 만큼 사용하라.'는 제약이 붙는다. 만일 그 내용이 준수되지 못하면 의뢰를 받은 도장 장인은 파면되고 국새는 폐기되며, 국가는 다른 장인에게 국새 제작을 의뢰한다. 국새의 규격과 형태, 재질에 관한 관련 규정은 국새 규정(대통령령)을 참고하라.
국새 사용 예시 |
국새는 대통령 본인이 직접 사용하는것은 아니지만 장식용은 아니다. 국새규정에 따라 헌법공포문, 5급 이상 공무원의 임명장(위 사진이 그 대표적인 사용례),[14] 중요 외교문서, 훈·포장증의 첫 장 중앙에 찍는 용도로 쓰이며, 도장 문화가 사라져서 사실상 사용하지 않고 있는 중화인민공화국의 국새와는 달리 한국의 국새는 사용 빈도가 꽤 높은 도장에 속한다. 애초에 제4대 국새가 제작된 이유가 제3대 국새가 빈번한 사용 중 금이 갔기 때문이다. (아래 참조)
3.2.1. 임시정부 국새
* 사용 기간: 1919년 ~1948년인뉴를 포함한 생김새가 사진으로라도 남은 1대 국새와 달리, 임시정부 국새는 인영을 제외한 사진도 남아있지 않으며, 여전히 행방불명인 상태이다. 한편 임시의정원 관인은 2019년 고국의 품으로 돌아왔다. #
3.2.2. 1대 국새
- 사용 기간: 1949년 5월~1962년 12월 31일
국가기록원이 소장한 사진에 따르면 인뉴(印鈕)[15]는 정체를 알 수 없는 어떤 짐승의 모양이다. 삽살개나 사자, 해태 모양이라는 말도 있지만 불확실하다. 하지만 1대 국새를 다루었던 당시 공무원이 인뉴는 용 모양이었다고 증언했기 때문에 위 사진이 정말 1대 국새를 찍은 것인지도 불확실하다. 재질은 은이고 크기는 인면(印面)[16] 부분이 정사각형으로 한 면이 2치(약 6 cm)이다. 인면에는 대한민국지새(大韓民國之璽)라고 전서체로 새겼다.
글씨는 서예가이자 전각가인 성재(惺齋) 김태석(金台錫, 1874~1951)의 작품으로 김태석은 고종과 영친왕의 인장을 새겼고 궁내부 미술시찰위원으로 청나라에 파견된 이후 20여 년간 중화민국 인주국(仁鑄局) 관원으로 활동하며 위안스카이의 인장과 중화민국 국새를 새긴 전각의 대가(大家)이다. 당시 충무로2가 59에 위치한 천상당(天賞堂)의 박균달(朴均達)이 정부로부터 의뢰를 받아 조선조 옥새 전각장의 후손인 석불 정기호 선생에게 제작을 의뢰하여 전통 제작 방식인 주물 방식을 통해 만들었다. 당시 천상당은 국새 외에도 대통령인, 국회인 등 정부에서 발주한 관인제작 용역을 거의 독점하다시피 하였다. # # #
현재 분실되었다. 자세한 사항은 아래 '국새실종사건' 문단 참고.
3.2.3. 2대 국새
- 사용 기간: 1963년 1월 1일~1999년 1월 31일
인뉴는 거북이다. 재질은 은이며 크기는 인면 부분이 7 * 7 cm이다. 인면에는 한글 전서체로 '대한민국'이라고 새겼다. 30년이 넘는 긴 세월 동안 사용되어 인면이 닳았고, 더불어 몇 가지 비판을 받는 점이 있어 3대 국새를 제작하기로 했다. 2대 국새는 인뉴가 거북이 모양인데, 거북이는 제후국의 옥새에 사용되기 때문에 격이 낮다고 간주된다는 점, 인면에 새긴 글씨가 한글 전서체인데 한글을 한문 전서체와 비슷하게 디자인하려고 억지로 획을 구부리고 왜곡시켰다는 점이 비판받았다. 국새의 재질이 은이라는 점도 비판대상이었는데, 금보다 격이 낮다는 것이었다. 현재 국가기록원이 이를 보관하고 있다.
한편, 비슷한 시기에 만들어진 대통령과 국무총리의 직인은 50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사용 중이다.
3.2.4. 3대 국새
- 사용 기간: 1999년 2월 1일~2008년 2월 21일, 2010년 12월 1일~2011년 10월 3일(5대 국새를 제작하는 동안 임시로 사용)
인뉴는 봉황.[17] 재질은 금과 아연 등을 섞은 합금이다. (순금과 순은은 다른 금속보다 무른 성질이 있어 보통 다른 금속을 합금하여 그 강도를 높인다.) 인면에는 훈민정음체로 '대한민국'이 새겨져 있다. 크기는 인면이 10.1*10.1 cm이다.
3대 국새 제작은 한국과학기술연구원(KIST)에서 맡았는데, 외환위기 직후라서 제작기간이 단축되었고 더불어 예산도 삭감되었다. 당시 제작에 참여했던 도정만 박사는 3대 국새 제작이 부실했다고 인정하였다.[18] 부실 제작 때문인지 사용되는 도중 국새에 금이 생겨 폐기했다.
나중에 4대 국새와 관련된 사달이 일어나 4대 국새를 폐기하고 5대 국새를 새로 제작하기로 했을 때, 제작하는 동안 임시로 3대 국새를 보강하여 사용하였다. 오늘날은 국가기록원에서 보관한다.
3.2.5. 4대 국새
- 사용 기간: 2008년 2월 22일~2010년 11월 30일
제작 이전에 인뉴를 삼족오 모양으로 만들자는 여론이 있었는데, 2000년대 중후반 당시는 민족주의 바람과 중국의 동북공정에 대한 반발로 만주, 고구려와 관련해 국민적 관심이 크게 높아진 상태였고, 주몽, 연개소문, 대조영 등 고구려를 소재로 한 드라마가 국민적 인기를 끌던 시절이었기 때문이다.
그러다 논의 끝에 3대와 마찬가지로 봉황으로 만들었다. 재질은 금 합금이며 크기는 인면이 10.1*10.1 cm. 그리고 아래 사건으로 폐기되었다. 4대 국새는 인면이 닳거나 금이 가는 등 손상이 없었는데도 불구하고 결국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져야 했다.
이 말 많고 탈 많은 4대 국새는 현재 국가기록원에서 보관 중이다.
3.2.6. 5대 국새
- 사용 기간: 2011년 10월 4일~현재
인뉴는 역시 봉황이지만 이전 국새 인뉴와 달리 봉황 두 마리가 큰 무궁화를 등에 짊어진 모양이다. 재질은 금, 은, 구리, 아연에 3대 국새처럼 균열이 생기는 일이 없도록 이리듐을 추가로 첨가했다고 알려졌다. 그러나 실제로 이리듐은 첨가되지 않았다. 자세한 내용은 5대 국새 논란 참조.
크기는 인면이 10.4*10.4 cm. 제작은 3대 때와 마찬가지로 KIST에서 맡았다. 3대 국새 제작에 참여하기도 했던 도정만 박사가 제작단장을 맡았다. 인뉴와 인면을 따로 제작하여 붙이지 않고, 처음부터 일체형으로 제작했다.
4. 사용처
국새는 다음과 같은 곳에 사용된다. 모두 국새규정 제6조 제1항이 근거 규정이며, 이 중 몇몇 경우는 또 다른 규정이 같이 적용되어 있다. 이 경우에는 그 또 다른 규정이 무엇인지 옆에 병기한다.- 헌법개정 공포문의 전문(前文)( 법령 등 공포에 관한 법률 제4조)[19]
- 대통령이 임용하는 공무원의 임명장(공무원 인사기록ㆍ통계 및 인사사무 처리 규정 제25조 제2항, 군인사법 시행령 제37조의2 제2항, 군무원인사법 시행령 제46조의3 제2항, 소방공무원임용령 제3조의2 제2항, 교육공무원 인사기록 및 인사사무 처리 규칙 제17조 제3항)[20][21]
- 대통령이 장관 등에게 임용권을 위임한 국가공무원의 임명장(공무원 인사기록ㆍ통계 및 인사사무 처리 규정 제25조 제3항)[22]
- 대통령이 국방부장관에게 임용권을 위임한 영관급 장교와 4급 이상 군무원의 임명장(군인사법 시행령 제37조의2 제3항, 군무원인사법 시행령 제46조의3 제3항)[23]
- 대통령이 소방청장이나 시·도지사에게 임용권을 위임한 소방령 이상 소방공무원의 임명장(소방공무원임용령 제3조의2 제3항)[24]
- 훈장증과 포장증
- 대통령 명의의 비준서 등 외교부장관이 날인을 요청하는 외교문서
- 그 밖에 행정안전부장관이 필요하다고 인정하는 모든 문서
5. 논란
5.1. 국새 실종 사건
2005년 감사원 감사 결과 1대 국새와 1대 대통령인이 분실되었음이 확인되었다. 게다가 국새뿐만 아니라 대한민국 제헌 헌법 원문도 분실되어 국가기록물 관리가 그동안 허술했음이 드러났다.국가기록원에서는 대략 1965~1966년 사이에 분실된 것으로 추정했다. 2대 국새를 새로 제작한 뒤 1대 국새를 금고에 넣어두었는데, 국새 관리부처가 바뀌는 와중에 잃어버린 듯하다. 연합뉴스 기사
1대 국새와 관련해서는 이상한 사항이 한두 가지가 아니다. 기록에 남은 사진에는 1대 국새의 인뉴가 어떤 짐승 모양이다. 하지만 1대 국새를 실제로 다루었던 당시 공무원은 인뉴가 용 모양이었다고 주장했다.[25] 또한 전각장 정기호(鄭基浩)[26]는 생전에 자기가 1대 국새를 만들었다면서 도면을 남겼는데, 이 도면에도 인뉴가 용 모양이다. 국새는 나라를 상징하는 도장인 만큼 인뉴 모양으로 특별히 상서로운 상징을 고르는 법이다. 또한 위 사진에도 나오듯이 어떤 짐승이 인면 위에 비스듬히 앉아있는 형태다. 인뉴의 동물들은 인면에 새기는 글자와 평행하게 똑바로 있는 것이 통례인 만큼, 인뉴 짐승의 이런 자세는 여간 이상한 것이 아니다.
문제는 이뿐만이 아니다. 잘 쓰던 1대 국새를 왜 폐기하고 2대 국새를 새로 제작했는지도 의문인데, 제5대 국새 백서에는 "국새는 한글을 사용해야 한다는 이유로 1962년 제작되었다." 하고 설명했다. 게다가 1대 대통령인[27]까지 같이 분실되었기 때문에[28], 누군지는 알 수 없지만 고위층 인사가 1대 국새와 대통령인을 작정하고 빼돌린 게 아니냐는 의혹이 생겼다. 국가기록원에서 현상금을 걸어 수배했으나, 처음 분실 사실이 발표된 2005년부터 지금까지 행방을 알 수 없다.
▲ 2017년 KBS에서 제작, 방송한 관련 다큐멘터리 |
5.2. 국새 사기 사건
2010년, 4대 국새와 관련된 조사에서 4대 국새 제작단장 민홍규(閔弘圭: 1954~)[29]가 저지른 어처구니없는 작태가 드러났다. 국새 제작과정에서 황당한 짓들을 벌인 것이다.우선 국새를 만들 때 생긴 잔여 금(金)을 반환해야 하는데도 불구하고 본인이 몰래 빼돌려서 횡령했다고 한다. 거기다 조선시대부터 내려오는 전통방식대로 제작하겠다고 계약을 했는데도, 민홍규는 기계를 사용하는 현대 방식으로 국새를 제작했다. 수사과정에서 드러난 바에 따르면 민홍규는 아예 전통적 제작방식을 배운 적이 없는 등[30] 본인이 주장한 경력이 모두 가짜임이 드러났다.
민홍규는 그동안 스스로를 전각장 석불 정기호 선생의 수제자로 자처해 왔다. 하지만 검찰 조사결과 석불 정기호 선생 생전에 두어 번 선생을 찾아왔었을 뿐, 제자로서 가르침을 받은 적이 없거니와 주물 자체에 대해서도 잘 몰랐다. 실제로 4대 국새 제작 때에도 주물은 자신이 아닌 다른 사람에게 시켰다고 한다. 4대 국새 제작은 여러 가지 의미에서 사기였던 셈이다. 이러한 행각이 발각되기 전까지 경상남도 산청군에 민홍규를 중심으로 국새문화원을 세우기로 하고 산청군이 예산을 지원할 계획이었다. 산청군에서는 관광명소로 만들 생각으로 예산을 지원해왔는데 민홍규가 잡혀들어가면서 닭 쫓던 개가 지붕을 쳐다보듯 허망하게 되었다.
국새에 민홍규 본인의 이름을 새긴 것도 논란이 되었다. 인뉴에 있는 봉황 부리 밑에 자신의 성인 '閔'을 음각했고, 인면에 새긴 '대한민국' 글자 중 '대'자의 ㄷ자 안쪽에 閔弘圭作 二千七年(민홍규 작 2007년)이라고 한자로 새겼다. # 예술작품에 작가가 자기의 이름을 새기는 것은 있을 수 있는 일이기는 하나, 국가의 발주를 받아 공공물을 만들면서 그러한 부분을 사전에 합의하지 않았다는 것이 문제. 조각된 작가의 이름도 도장 찍을 때 찍히는 자리는 아니기는 하지만, 작가의 원래 의도야 어떻듯 하필 ‘국새’에 자기이름을 새겼다는 것이 선정적으로 보도되고 괴이한 음모론까지 나돌면서 결국 제4대 국새의 권위는 추락하고 말았다. 그 외에도 봉황 꼬리에 太平年(태평년), 萬歲璽(만세새)[31]라는 글자를, 인뉴 받침대에는 太平萬年(태평만년)이라는 글자를 새겼다. # 원래 이 사실은 알려지지 않았으나, 금 횡령 사실이 불거지면서 확인차 국새를 살피던 중에 발견되었다. 문구 자체는 좋은 의미이기는 하나, 발주청에 알리지 않고 ‘몰래 새겼다’는 점에서 이 사실도 인구에 회자되었다.
민홍규는 4대 국새 제작단장으로 선정되려고 언론사에 로비를 했다고 한다. 본인의 이름 값을 높여서 제작단장으로 선정되기 쉽게 하려고 한 공작이다. 횡령한 금으로 도장을 만들어 국회의원 등 유력인사들에게 로비 용도로 제공했다는 혐의도 있었으나, 검찰에서는 금 도장 로비 혐의는 근거가 없다고 판단하여 기소하지 않았다. 처음 횡령 사실이 알려졌을 때 민홍규는 찾아온 신문기자에게 "국새를 제작하고 남는 금을 사용하면 이롭지 않기 때문에, 2007년 말에 제사를 지낸 뒤 금을 태워 없앴다."라고 말하였다. 조선일보 보도기사 금이 태워져서 재가 될 수 있는 물질이던가? [32]
게다가 자칭 국새 장인 민홍규는 백금으로 장식된 다이아몬드 국새를 만들어서 돈벌이를 노렸는데 가격을 40억 원이라고 매겼다. 그러나 이 국새는 팔리기는커녕 민홍규 집에 보관되었을 뿐이었다. 이 초호화 국새의 성분을 조사해보니, 니켈과 황동 합금으로 도장을 만들고 공업용 인조 다이아몬드로 장식한 것이었다고 한다. 절대로 40억 원 가격을 매길 수 없는 물건이다.
결국 2011년 1월 20일, 서울중앙지법 1심 재판에서 민홍규는 가짜 국새 제작 혐의로 징역 2년 6개월을 선고받았다. 2011년 7월, 서울중앙지법 항소심에서 가짜 국새 제작 혐의뿐만 아니라 위에서 언급된 가짜 다이아몬드 국새를 판매하려 한 혐의까지 유죄로 인정되어 결국 형량에 6개월이 더해져 징역 3년을 선고받았다. 이후 항소심 재판 결과에 불복하고 다시 상고했지만, 2011년 12월 4일에 대법원은 항소심 결과인 징역 3년을 확정하였다.
하지만 형을 다 살고 나온 민씨는 여론재판의 희생양이었다느니, 진실은 승리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여담으로 2008년에 KBS에서는 국새 제작 관련 다큐멘터리를 제작했다. 당시 자칭 장인이라는 그가 정작 국새 제작에는 특별히 아는 게 없어 방송될 분량이 별로 없어서인지 다큐멘터리의 내용 대부분은 외국 국새에 관한 이야기, 금을 녹이고 가마를 부수는 장면, 전통 기술을 배웠다고 사기치는 민씨의 주장들로 이루어져 있다. 해당 다큐멘터리 홈페이지.
5.3. 제5대 국새 논란
제5대 국새 인문 모형 선정 과정에 참여했던 전각가 전상모씨는 객관성과 공정성이 지켜지지 않았다고 주장했다.인문 모형 심사위원 5명 중 전각학회의 추천을 받은 2명이 모두 당선자인 전각학회장 권모씨의 문하생이라는 것이다. 더욱이 당선작 외에 우수작을 만든 작가도 역시 권 회장의 제자라고 지적했다. 전씨는 "학회장이 제자를 심사위원으로 추천한 뒤 본인이 응모할 수 있게 하고선 공정성에 유의했다는 것은 납득하기 어려우며, 그런 논리라면 심사위원이 출품해도 된다"라고 말했다.
행안부는 이에 대해 "전각학회뿐 아니라 인장과 서체, 디자인 분야 전문가들도 심사에 참여해 5명이 만장일치로 당선작을 1등으로 꼽았다"라며 "전각학회장 개인이 아닌 기관 명의로 6명을 추천받아 그중에 2명을 선정했으며 심사위원들은 출품자가 누구인지 모르는 채 평가했다." 하고 말했다.
2011년 4월 29일, 대종언어연구소(大宗言語研究所)[33] 박대종 소장[34]은 현행 국새의 서체가 국새규정 5조의 ' 훈민정음 창제 당시의 자체로 한다'는 조항에 맞지 않다는 주장을 했다. # 동국정운에 따르면 大韓民國을 한글로 옮길때 땡ᅘᅡᆫ민귁이라고 적어야 하고 지금 적은 것처럼 대한민국이라고 적으면 의미가 달라지며 특히 韓國이 아니라 漢國이라는 의미가 된다고 한다.
그런데 '창제 당시의 자체(字體)로 한다'고 했지, 창제 당시의 표기법으로 한다고는 안 했다. 자체(字體)란 한자 뜻 그대로 글자의 서체, 즉 글꼴, 폰트를 말하는 것이지 발음이나 표기방식이 아니다. 더군다나 박 소장이 제시한 동국정운은 중국의 운서를 바탕으로 만든 가공의 한자음이지 현실의 한자음이 아닐 뿐더러, 인공이냐 실제의 발음이냐를 떠나서 현대의 국새를 만드는데 중세의 발음으로 표기한다는 건 최소한의 상식에도 맞지 않는다. 이 주장 때문에 행정안전부는 '자체라는 것은 그 시절의 글자 형태를 빌린다는 것이지 표기법을 그대로 가져온다는 의미가 아니다'라는 해석을 보도자료로 내놓았다.
서체 논란 이후에도 다른 문제들이 계속 불거졌다.
제 5대 국새 제작 총괄을 맡은 한국과학기술연구원은 규정과는 다르게 규격과 재질을 변경, 제작했으며 주무부처인 행정안전부는 이에 맞춰 관련법을 개정한 것이다. 이에 대해 주물업계는 행안부가 주물 기술이 없는 KIST에 국새 제작을 맡겼기 때문이라고 비판했다. KIST는 제3대 국새를 부실 제작해 논란에 휩싸인 바 있다.
제5대 국새 인면은 이전 규정보다 가로 세로가 각각 0.2 cm 큰 10.3 cm짜리 정방형으로 제작됐다. 한 주물업체 대표는 “국새를 규정대로 만들지 못한다는 건 기술이 없다는 것”이라며 “정부가 기술 없는 기관에 국새 제작을 맡기고선 관련법을 개정한다는 건 국가적인 망신”이라고 지적했다. 그는 “일반적으로 주물을 쏘면 연마와 광내기 작업 등을 거쳐 크기가 작아진다”라며 “크기가 커졌다는 건 주물이 잘못 나왔거나 균열이 생겨 땜을 했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기사링크
그 뿐만 아니라 희귀금속 이리듐을 넣어 최첨단 기법으로 제작했다던 KIST의 말과는 달리 5대 국새에는 희귀금속 이리듐이 포함되지 않은 것으로 확인됐다. 행정안전부는 5대 국새 감리를 주관한 국방기술품질원으로부터 제출받은 감리 보고서를 통해 이 같은 사실을 알고도 이리듐이 들어갔다고 판정했다. 한국화학융합시험연구원(KTR)의 국새 성분분석 결과, 5대 국새는 이리듐(Ir)이 포함되지 않은 금(Au·75.1%)ㆍ은(Ag·11%)ㆍ구리(Cu·12.5%)ㆍ아연(Zn·1.07%)의 합금이었다. 감리보고서에는 ‘이리듐의 경우 장입량이 0.475g(0.01%)의 소량인 관계로 성분분석이 어려웠으나 감리단 입회하에 장입을 확인했다.’고 쓰였다.
그러나 5대 국새 성분 분석 시 KTR이 사용한 습식 분석법은 ppm(100만분의 1·0.000001%) 단위까지 검출될 정도로 정밀도가 높다. KTR 관계자는 "국새에 이리듐이 들어갔다면 성분 분석결과에 검출되는 게 당연하다." 하며 "검출되지 않았다는 건 이리듐을 넣지 않았다는 것"이라고 지적했다. 당시 성분 분석을 담당했던 KTR 관계자는 "분석에 대한 결과나 내용은 의뢰자가 아닌 제삼자에겐 말해 줄 수 없다.", "분석은 의뢰한 금속성분에 한해 이뤄진다."라고 말했다.
이에 대해 주물업계 관계자는 "행안부와 KIST가 국새 강도를 높이고자 이리듐을 넣었다고 밝혔으니 어떻게든 성분 분석결과에 나오게 했을 것"이라며 "그들의 해명처럼 감리단 입회하에 넣었다고 할 거면 성분 분석은 대체 왜 하느냐." 반문했다. 그는 "합금이 어렵고 값비싼 이리듐을 굳이 넣을 이유가 없다. 기존 국새처럼 18 K(금 75% 이상) 합금으로도 충분한 강도를 지닌다." 하며 "이는 4대 국새 때 전통기법으로 사기를 쳤듯 5대 역시 KIST의 기술 부재를 최첨단 기법으로 포장하려는 대국민 사기극"이라고 비판했다.
이뿐만 아니라 이리듐이 들어갔다는 최종 결론은 감리단이 아닌 행안부와 국새 제작위원회가 내린 것으로 확인됐다. 그러나 행안부 관계자는 "기술적인 부분은 잘 모른다. 감리단에 물어보라."라고 말했다. 앞서 4대 국새를 만든 민홍규 前 제작단장은 금ㆍ은ㆍ구리ㆍ아연ㆍ주석 등 오(五)합금을 쓰는 전통기법으로 국새를 만들겠다고 밝혔으나 이후 성분분석에서 주석이 포함되지 않은 것으로 드러나 사기 혐의 등으로 징역 3년형을 선고받았다. 기사링크
6. 각국의 국새
6.1. 중국
2023년 현재 중국은 국새를 거의 사용하지 않는다. 덩샤오핑 집권 이후 중국의 공문서는 국새를 찍지 않는 대신 우상단에 최고지도자가 서명한다. 예를 들면 2013년 이후에 발행되는 정부 공문서에는 시진핑의 서명이 있다. 다만 정부부처별로 문서에 관인을 찍는 경우는 남아 있다.[35]현대 중화인민공화국의 첫 국새는 청동제이다. 중국이 마르크스-레닌주의 국가를 표방하는 만큼, 자본가 계급을 연상시키는 사치스러운 옥이나 황금 대신 실용적이고 검소한 재료로 만들었다고 한다. 역대 왕조의 국새에 옥을 쓰는 전통을 현대 중국은 따르지 않은 셈인데, 이 점에서 후술할 대만의 국새와 구분된다.
인면에는 '중화인민공화국중앙인민정부지인'(中華人民共和國中央人民政府之印)이라고 새겼다. 1954년 제1차 전국인민대표대회 이후 사용하지 않고 국가박물관에 1급 국가문물로 보관 중이다.
간화자를 사용하지 않던 시절에 만들고 쓰던 물건이라 인면의 글자가 정체자(번체자)이다.
6.2. 일본
일본은 나라의 도장인 국새(国璽)와 천황의 도장인 어새(御璽)를 같이 사용한다. 둘 다 금으로 제작했는데, 인면의 글씨(인문)를 제외하면 두 도장의 모양은 같다.
두 도장 모두 1874년에 제작하여 전서체로 국새에는 대일본국새(大日本國璽), 어새에는 천황어새(天皇御璽)라고 인문을 새겼다. 일본 국새와 어새는 언론에 딱 한 번 실물이 공개된 이후 여태껏 공개된 적이 없다. # 위 사진의 국새는 NHK의 천황 관련 다큐에 잠시 나온 화면이다.
새로운 천황이 즉위할 때 삼종신기처럼 이 국새와 어새도 새 천황이 승계하게 된다. 일본제국 시대에는 궁내성 내대신부가 국새와 어새를 담당했다.
어새와 국새 중 어새를 훨씬 자주 사용한다. 비록 상징일지라도 일본이 군주국임을 알 수 있는 대목.[36] 메이지 유신 당시 제작되어 신자체가 아닌 구자체를 사용했다. 임금 황(皇) 자의 머리에 흰 백(白)이 아니라 스스로 자(自)가 붙은 「𦤃」자를 새겼다. 설문해자에 실린 전서체의 글꼴을 따른 듯.
6.3. 대만(중화민국)
대만 국새의 공식명칭은 국명인 "중화민국"을 따서 중화민국지새(中華民國之璽)다. 중화민국 정부가 대륙을 통치하던 1929년부터 사용하기 시작하여 국부천대 이후에도 사용하고 있다.
다른 나라의 국새는 모두 금속제지만 이 국새는 재질이 옥이라 말 그대로 옥새다. 진시황의 전국옥새가 옥으로 만들어진 것을 따랐다.
중화민국 총통 취임식에는 입법원장(한국의 국회의장격)이 신임(혹은 재선) 총통에게 국새를 전달하는 절차가 포함된다. 이는 권력이 합법적, 평화적으로 이양됨을 상징한다.
중화민국지새 말고도 영전지새(榮典之璽)라는 도장도 존재하는데 이것도 옥으로 만들어졌다. 경옥으로 만든 중화민국지새와는 달리 이것은 연옥으로 제작. 영전지새는 주로 훈장이나 표창을 할때 증서에다 찍는 용도로 쓰인다.
6.4. 미국
미국에서는 국무부 청사에 보관 중인 국장이 새겨진 거대한 압력 스탬프가 국새와 동일한 역할을 하고 있는데, 이를 그레이트 실(Great Seal)이라고 한다.자세한 내용은 미국 국장 문서 참고하십시오.
6.5. 영국
6.6. 프랑스
프랑스 법무장관은 Garde des Sceaux(국새상서)라는 국새를 관리하는 관직을 겸임하며 현재도 장관 집무실에 국새가 보관되어있다.6.7. 바티칸
교황의 국새인 어부의 반지. 서양에서 자주 사용하는 반지 형태[37] 도장이다. 어부의 반지라고 부르는 것은 초대 교황인 베드로와 관련이 있다. 예수가 어부였던 그를 제자로 삼았을 때 "내가 너를 사람을 낚는 어부로 만들겠다"고 했던 것이다. 이 반지는 역시 금으로 되어 있으며 그물을 쳐서 물고기를 낚는 베드로와 교황의 이름이 새겨져 있다. 교황이 바뀔 때마다 이전 교황의 반지는 공식적으로 사용할 수 없도록 깊은 흠집 두 줄을 내고[38] 새로운 디자인으로 새로 만든다. 이 도장은 본래 공식 문서에 찍히는 것으로, 교황의 서명 역할을 하기 때문에 도장의 주인이 죽거나 퇴위하면 도장까지 도장의 주인처럼 퇴역하는 것이다.
7. 관련 문서
[1]
인뉴 생김새는 봉황 두 마리가
무궁화를 업은 모습이다. 대한민국 청와대의 대통령기에서 본뜬 듯하다.
[2]
이는 금새가 부여정벌의 시기에 하늘이 주었다는 것으로 고구려가 부여 정벌을 자국이 쓰는 국새로 정복, 정벌을 정당화, 신성화하려는 의도가 있다.
[3]
정종(10대)~숙종.
[4]
인종~강종.
[5]
충렬왕~공민왕.
[6]
공민왕~공양왕.
[7]
예종의
배향공신이다.
[8]
정확히는 권국사.
[9]
중서(中書)에서 '새'보'(璽寶)를 '주'관하는 관'리'.
[10]
창'부'(倉府)에 '새'보'(璽寶)를 관리하는 '낭'관(郎官).
[11]
고려사 의위지엔 부(符)보랑이라 했다. 의미는 결국 비슷하다.
[12]
조선왕조실록은 이 국새를 '국보(國寶)'라고도 기록했다.
[13]
갑오개혁 때 도입된 관리 분류 등급으로, 황제가 직접 임명장을 주는 최고고등관. 친임관>칙임관>주임관>판임관 순이다.
일본 제국의 제도를 그대로 본땄기에
관련 항목을 참조바람.
[14]
참고로 이런 국새가 찍힐 정도 되는 고위 공무원의 임명장 본문 글씨는
인사혁신처 심사임용과 소속
필경사(6급)들이
붓으로 쓰고 있다. 훈장증도 마찬가지. 말단 공무원 임명장은 그냥 컴퓨터로 찍는다.
[15]
도장에서 손잡이 부분을 가리키는 말이다. 도장을 고급스럽게 만들 때 흔히 이 인뉴를 용이나 봉황 등 상서로운 상징물 형태로 만들곤 한다.
[16]
도장에서 글자를 새기는 부분을 말한다.
[17]
대한민국의 대통령 문장이 봉황이다. 뉴스 자료화면에 자주 나오는 청와대 대통령 집무실의 대통령이 사용하는 의자 뒤편에 새겨진 그림이 바로 봉황이다.
[18]
3대 국새 제작단장은 KIST의 최주 박사였다. 도정만 박사는 당시 최주 박사의 조수로 참여했고, 5대 국새 제작단장을 맡았다.
[19]
이 경우는 법령공포법 조항이 1차적 근거 규정이고 국새규정은 대통령령으로서 상위법인 법률의 규정을 따른 것이다.
[20]
대통령이 임용권을 장관 등에게 위임하지 않고 직접 행사하는 공무원에 한정한다.
[21]
'임명장'에 한정되기 때문에 '위촉장'에는 대통령 직인만 날인되고 국새는 날인되지 않는다.
[22]
원래는 5급 이상이면 대통령 직인과 국새가 날인된 임명장을 받았으나, 2005년 2월부터 4급과 5급의 신규임용 및 승진임용을 장관 등에게 위임하면서 대통령이 직접 임용권을 행사하는 경우로 한정시켰다. 이후 2008년 6월에 비고공단 3급의 신규임용 및 승진임용을 비롯하여 고위공무원단이 아닌 일반직공무원 임용권 일체가 장관 등에게 위임된다. 이에 따라 공무원들의 사기가 저하되는 현상이 일어나자 사기 진작을 위해 2009년 11월부터 대통령이 직접 임용권을 행사하지 않더라도 임용권 자체는 갖고 있는 5급까지는 이전처럼 대통령 직인과 국새가 날인된 임명장을 받을 수 있도록 규정을 다시 개정한 것이다.
[23]
다시금 대통령 직인과 국새가 날인된 임명장을 받게 된 5급 이상 일반직공무원과 마찬가지로 사기 진작을 위해 2014년 6월부터 조치되었다.
[24]
소방공무원이 일괄적으로 국가직으로 전환된 2020년 4월부터 실시되었다.
[25]
다만 아래의 다큐멘터리를 보면 한국전쟁 기를 포함해 1956년까지 국새를 관리했던 공무원은 남은 사진 속의 국새가 1대 국새가 맞다고 증언했으며, 그에 앞서 나오는 현존 사진 속 인면과 관인대장에 남은 1대 국새의 인면 또한 동일하다.
[26]
1899년~1989년. 호는 석불(石拂). 조선시대 옥새전각장의 계보를 이었다고 한다. 5대 국새 관련으로 사기를 친 민홍규는 자기는 정기호의 제자라고 주장했었다. 정기호의 아들이나 제자들은 민홍규의 말을 하나같이 부정한다.
[27]
국새가 '나라의 도장'이라면, 대통령인은 '대통령의 도장'이다. 대통령 이름을 새긴 개인용 도장 말고 공적으로 대통령만 사용하는 관인이 따로 있다. 쉽게 말하자면,
대통령의 직인.
[28]
한편, 2대 국새와 비슷한 시기에 만들어진 2대 대통령인과 총리 직인은 제작된 지 50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사용 중이다.
[29]
이 양반은 이전에 '갑골문
천부경'을 소유했다고 보도된 적이 있으므로,
환빠들의 입지는 다시 한 번 좁아졌다.
[30]
민홍규를 조사하는 과정에서 검찰이 확인한 바에 따르면, 애초에 조선시대의 전통적인 국새 제작 기술은 이미
실전되었다. 민홍규는 처음부터 없는 것을 있다고 주장한 것이다.
[31]
태평한 시절에 만 세대 동안 이어질 국새란 뜻이다.
[32]
참고로 금의 녹는점은 1064.18°C, 끓는점은 2970°C 로 단순히 제사에서 불을 피우는 정도로 금을 없앨 수는 없다.
[33]
저술/논문 활동은 박대종 소장 1인 외에는 보이지 않는다. 어린이용 한자 학습만화 출간과 학습 사이트 운영이 본업인 듯하다.
[34]
육사 출신이다. 6권으로 출간된 <나는 언어정복의 사명을 띠고 이 땅에 태어났다> 시리즈를 통해 영어, 우리말, 한자의 발음이 비슷한 단어를 나열하며 어원론을 전개하는데 (예를 들면, 視(볼 시)-see(보다), 朴(나무껍질 박)-bark(나무껍질), 誦(노래할 송)-song(노래) 따위들), 결론은 한자를 창제한 것도 우리 민족이고 영어를 비롯한 전 세계어는 사실상 우리말에서 비롯되었다고 주장하는 사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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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5]
다만 그 관인도 한국이나 대만, 일본에서와 같은 사각형 도장이 아니다. 중국에서 쓰는 직인은 중국 국장이 가운데 박히고 그 위로 원 테두리를 따라 해당 부서의 이름이 적히는 원형 도장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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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각총리대신 역시 취임 시 어새가 찍힌 임명장을 천황에게 직접 수여받는다. 참고로 천황은 군주인 만큼 임명장 같은 건 따로 없고,
황실전범에 따라 적법한 황위계승자로서 스스로 자신의 즉위를 선포하는 형식을 취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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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양에서는 도장으로 낙관을 찍는 대신,
밀랍으로
봉인을 하고 그 위에
도장을
찍는 방식을 자주 사용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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많은 사람들이 반지를 부수는 것으로 아는데, 이는 "'줄을 그어 지운다.'는 뜻의 이탈리아어 'biffatura'의 오역인 것 같다."고
베네딕토 16세의 교황 반지를 만들었던 세공사 클라우디오 프란치가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