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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수정 시각 : 2024-12-11 15:47:47

북한이탈주민/한국 외부의 탈북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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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2. 중국의 북한이탈주민
2.1. 규모
3. 제3국의 북한이탈주민
3.1. 각국의 정착 지원을 위한 노력
4. 유사 사례
4.1. 조선적 (재일교포)4.2. 조선 교포4.3. 북한 화교4.4. 다른 분단국가의 난민
4.4.1. 동독4.4.2. 중국4.4.3. 베트남4.4.4. 북키프로스

1. 개요

대한민국 외부의 북한이탈주민들의 현황을 서술한 문서.

2. 중국의 북한이탈주민

북한은 탈북자가 발생하면 대부분 국가정보원에 의한 '납치'라고 주장한다. 다만 남한과는 별개로 실제로 비자발적인 탈북이 이루어지는 경우는 상당히 많다. 국경의 젊은 북한 여성에게 접근한 브로커가 "중국에서 몇 달만 일하면 떼돈 벌 수 있다"고 꼬드겨서 압록강을 넘었더니 연변의 조선족에게 팔려갔다면 양반이고 중국 헤이룽장성이나 저멀리 산둥성 깡촌에도 팔려가 한족과 강제 결혼을 하는 식이다.
그러나 2004년 유엔 조사에 의하면 탈북자 전체 중 80% 이상은 조선족과 동거한다는 결과를 감안할 때 대부분 조선족 남자와의 결혼으로 팔려간다. 국경 지역에서 멀리 떨어져 단속이 느슨한 한족 마을들의 경우 탈북여성이 팔려오면 온 동네 사람들이 구경오고 탈북민 여성이 도망치면 온 동네가 합심해서 잡으러 다닌다. 실제로 BBC에서도 탈북민들의 성노예에 대해 다루었다.

이런 수요가 많기 때문에 탈북이 절정을 이루던 10~20년 전에는 압록강이나 두만강을 건너는 북한 여자들을 잡아 팔려는 조선족이나 한족들이 주요 길목에 매복하는 경우도 많았고, 잡으면 등급에 따라 꽤 큰 돈을 만질 수 있었다. 젊고 키가 크고 예쁘면 양극단으로 판매처가 나뉘는데 조금 경제력이 되는 집으로 팔리거나 최악의 경우 노래방 도우미, 마시지로 팔려간다'는 언론보도가 있지만 현지 NGO 활동가등에 따르면 사실 일부 언론보도가 과장된 케이스로 체류도 합법이 아니고(잡히면 북송) 탈북자 대부분이 낙후된 함경북도/자강도 출신으로 키크거나 예쁜 여성 자체가 거의 없으며 그런 여성은 이미 한국행을 계획없이, 대책없이 나오는 경우는 없어 유흥업소 취직은 거의 없다고 보면 된다.

다만 화상채팅 업종은 숨기에도 좋고 직접적인 육체적 피해가 없기 때문에 성행한다고 한다. 아주 어리면 자식이 없는 중국 가정으로 팔리는 경우가 있고, 어정쩡하게 어린 경우나 체격이 왜소한 경우 거의 팔리지 않아서 한국 종교단체에 땡처리되는 경우도 많다. 한국에 자의반 타의반 와서 성매매를 하거나 한국 남성과 결혼하는 수많은 중국 한족 여성들과 오버랩되는 부분. 숫자로 따지면 중국인 여성 쪽이 비교도 안되게 많다.[1]

당연히 이런 케이스로 탈북한 사람들은 중공에 대한 반감이 심하다. 운 좋아야 한국이나 제 3국에 도착하는데, 운 나쁘면 성노예로 살게 된다. 남자들도 농민공보다 못한 취급을 받는 사례도 많다. 그러나 종교 단체에 팔려도 조선족 전도사 잘못 만나면 구타와 성적학대를 당하기도 한다. 북미 지역과 남한 교회의 모금으로 이런 이중생활을 하던 조선족 전도사가 중국 정부의 박해 가능성이 있다며 북미 지역 교회들의 도움으로 가족들과 난민으로 이민간 경우까지 있었다. 물론 그렇게 되면 미국 시민권과 캐나다 시민권을 취득할 가능성이 높아져서 해외여행을 가기에는 유리해진다.

흔치 않은 경우지만 중국 대륙에서 중국 위조 여권이나 일본 여권, 대만 여권, 한국 여권, 홍콩 여권, 마카오 여권, 싱가포르 여권의 위조여권[2]을 만드는 경우도 있다. 중국 여권을 제작하는 것이 꽤 쉽기 때문에 남한의 탈북민 정착 정책에 대해 제대로 알지 못하는 일부 탈북자들은 중국 여권으로 한국에 들어와 눌러 살다가 불법체류자 단속 때 적발되어 한국 국적이 부여되기도 한다.[3]

심지어는 여느 조선족 마냥 중국 여권을 들고 한국에서 돈을 벌어서 중국에 있는 가족에게 송금을 하거나 그 상태로 한국과 중국을 드나들다가 적발되기도 한다. 일단 중국에서 걸리지 않는 이상 별 탈 없이 넘어가기는 하는 듯하다. 하지만 공작원도 아닌 일개 탈북자가 국내에 잠입할 수 있다는 것이 어떤 의미인지는 알 수 없다.

일단 공항이나 항구에서 통과한다면 중국 국적의 항공사의 항공기나 해운사의 선박을 탑승한다고 할 지라도 한국에 오는 것은 100% 성공했다고 봐야한다. 왜냐하면 한국행일 경우 대한민국 관계 기관의 관할권에 있을 가능성이 더 높기 때문이다.

사실 북한이탈주민은 남한 중국의 남방 일대보다 동북 3성 지역이 훨씬 많다. 대부분의 탈북자들은 북한에서 고생하다가 중국(동북 3성)이 더 자유롭고 돈 벌기 쉽다는 소리를 듣고 일단 동북 3성 지역에서 돈을 벌어서 다시 북한으로 돌아가야겠다고 생각했다가, 중국(동북 3성)이 북한보다 훨씬 발전한 생활상을 보고 북한으로 안 돌아가고 눌러앉아 산다고 한다.

물론 북한으로 돌아가려고 해도, 이미 북한 내에서 자신에 대한 체포령이 내려진 바람에 못 돌아가게 된 경우도 있다. 다만 중국 공안의 감시가 심하기 때문에 더 자유로운 생활을 원하는 탈북자들은 중국 남쪽으로 쭉 내려가 그들을 난민으로 받아주는 동남아시아의 중립국으로 도피한다. 대사관 경로는 최근 들어 중국 공안의 감시가 심해져서 성공이 어렵다고 한다.

심지어 중국 공안은 외교공관에 진입한 탈북자를 끌어내기까지 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참고로 외교공관은 국제법에 따르면 대사관이 대표하는 나라의 영토로 취급되지는 않으나 그에 준해 영토 소유국의 사법권을 적용하지 않는 지역이다. 한마디로 원래는 중국 공안이 해당 외교공관의 허락 없이 절대로 들어오면 안되는 곳인데 중국 공안은 워낙 권력이 세서 이런 곳을 마음대로 들어와서 사람까지 끌어내는 것이다.[4][5]

그러나 최근에는 국제적 비판이 심해지면서 이런 짓까지는 안 하고 대신 외교공관에 진입 자체를 못하게 경계를 강화하고 있다. 당장 베이징 시내를 돌아보면 막말로 거진 100m 간격으로 경찰과 무경이 배치되어 있는 것을 볼 수 있다. 최근에는 테러 등의 여러 가지 문제로 비단 대사관 뿐만 아니라 시내 전체가 경찰의 감시가 심하다.

명백한 인신매매이지만 탈북이기도 하고 이렇게 납치된 경우와 조금이라도 나은 삶과 가족을 위해 자발적으로 브로커를 찾아가 자신을 판 돈 중 일부를 가족들에게 보내는 여성들은 북한으로 돌아가기도 어렵고 신분이 없어서 항상 불안하게 살다 중국 호적을 구입하거나 여권을 위조해 남한에 오는 경우도 있지만 호적이나 여권을 만들려면 거액이 필요해서 대부분은 동남아나 몽골 루트를 통해 재차 남한으로 도망친다.

특히 함경도 출신들에게 이런 경우가 흔하다. 한국 입국 탈북자들 중 함경북도 출신 여성이 70% 가까이 되는 이유 중 하나라고 할 수 있다. " 국정원에 의한 유인랍치"라는 주장이 북한 내부적으로 통하는 이유는 이렇듯 실제 탈북 과정에서 인신매매가 활발하기 때문이다. 어차피 배후만 국가정보원이라고 갖다붙이면 실체를 파악할 방도가 없으니 말이다.

워싱턴 포스트는 중국 동북 3성에 숨어사는 북한 여성 5분의 1 가량이 온라인 성매매를 비롯한 성적 착취에 노출되어 있다고 보도했다. #

2.1. 규모

2023년 북한인권정보센터 보고서에 따르면 중국에 체류하는 탈북자 숫자는 최소 1만 명이 넘는 것으로 추정되고 이들 중 상당수는 여성이다.

중국 등 제3국에 체류하는 탈북자 숫자에 관한 통계는 제각각이라고 알려졌는데 이에 관해서 어이없는 해프닝이 있다. 법륜이 주도하는 '좋은벗들'이라는 시민단체가 2000년대 초반 부정확한 자료에 근거해서 중국에 숨어사는 탈북자가 "최대 30만명"에 이른다고 주장한 것이다. 전문가들은 최소 1만 명, 최대 5만 명 수준으로 추측하고 있으며 당시 현장에서 활동하는 NGO 활동가들, 러시아 출신인 안드레이 란코프 국민대학교 교수[6], 중국 정부, 로빈슨 존스홉킨스 대학 교수 등은 황당하게 과장된 수치라고 비난했다. # # #

여기에 낚인 한국 및 외국의 많은 언론에서 마치 탈북자가 수십만 명이라도 되는 양 수 많은 기사를 퍼뜨렸고 문제가 커지자 '좋은벗들' 단체 대표가 2000년대 중반에 '다시 계산해 봤더니 3~5만 명이더라' 라고 번복했지만 이미 탈북자 수십만명설을 오랜 기간 집요하게 보도하면서 북한 정권의 붕괴가 임박했다고 주장하던 조중동과 주요 보수 매체들은 제대로 된 정정 기사를 단 한번도 낸 적이 없다. 다행히 현재 다른 언론사들이 다시 검증한 기사를 내보내고 있다.

앞서 언급한 현지 NGO 전문가들은 인구, 현지경찰 통계, 북송규모 등을 이유로 2만명도 넘기 힘들다고 말한다. 가장 과학적인 추산 방법을 사용하는 존스홉킨스 대학 로빈슨 교수팀은 현재 탈북자를 1만명 정도로 보고 있다. 참고로 탈북자 중에 여성이 70%라는 기사가 있는데, 탈북자가 상당히 많았다고 주장되는 2000년대 초반에는 성비가 반반이었으며 탈북자가 많이 감소하면서 70%에 이른 것으로 추정된다.

3. 제3국의 북한이탈주민

미국, 서유럽 국가들 등지에도 대한민국이나 중국에 비해 수는 적지만 몇몇 탈북민들이 거주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코리아타운이나 영국 런던의 뉴몰던 같은 지역에 상당수의 탈북민들이 모여 산다는 보도도 있다. 아시아권 국가인 싱가포르에도 탈북민들이 소수 거주한다.

한국 사회에 적응하지 못한 일부 북한이탈주민들은 한국을 떠나 외국으로 이민을 가기도 한다.

하지만 정치적 난민 신청을 하면서 " 대한민국 국적이 없고 대한민국을 방문한 적이 없다"라는 거짓말을 한 경우에는 문제가 된다. 2000년대 중후반에서 2010년대 초반까지는 탈북자들 사이에서 북미, 서유럽 등에 난민신청을 하는 사람이 늘었고, 초기에는 영국이나 캐나다 등지에서 탈북자를 수백명씩 받아주었다. 하지만 갑자기 급증하는 탈북자들을 이상하게 여긴 각국 정부에서 정밀 심사를 하고 한국 정부에 신원 및 지문 조회를 요청해 대한민국 국적을 취득했던 탈북자들에 대해서는 난민 지위를 거의 인정하기 않게 되었다. 게다가 중국 조선족이 그동안 본인들을 탈북자로 속여 유럽에 난민으로 정착을 시도하던 게 드러났다.[7] 그러나 한국을 거치지 않고 입국한 탈북자들은 난민 허가가 전혀 문제없이 잘 이루어진다.

유럽에서는 브렉시트와 시리아 난민, 러시아와 우크라이나 간의 문제로 인해 반(反) 외국인 정서가 팽배해서 골머리를 앓고 있었는데, 이로 인해서 영국 정부와 캐나다 정부는 자국 의회와 인권단체의 권고를 무력화하기 위해 대한민국 안전 국가로 지정한 것이다.

미국에 가면 더 돈 많이 벌고 좋아진다고 여기는 탈북자들도 많아졌다. 물론 탈북 상태에서 대한민국을 거치지 않고 미국으로 가는 건 가능하기는 한데, 대부분의 정보가 낭설에 불과하다. 미국이 이민자들의 후손들이 대부분을 차지하는 나라지만, 대한민국에 정착했을 경우와는 달리 정착연금도 거의 없기 때문에 비참한 최후를 겪는 일도 있다. #

일본에도 탈북자가 있는데 재일교포 북송 당시 일본인 처와 함께 온 재일 조선인들의 후예들이 대부분이다. 1000명 정도로 추정한다. 이들의 경우 재한 일본인이거나 재일 한국인과 같이 일본에 연고가 있는 사례가 많다. #

3.1. 각국의 정착 지원을 위한 노력

다만 북미, 서유럽도 사람 사는 곳인지라 대한민국 만큼은 아닐지라도 탈북 난민의 자국 정착 환경을 개선하기 위하여 나름 노력을 하고 있다.

대표적으로 미국의 경우 탈북민 정착 지원 네크워크인 '미래를 위한 친구들'을 출범한 바 있다. 해당 네트워크는 지역사회 기반 단체와 학생 자원봉사자, 교육기관 및 각 도시의 기타 전문가들로 구성되어있다. # 미국 국무부는 탈북민들이 민주주의 사회에서 새로운 삶을 시작할 수 있도록 다양한 자원을 제공하고 있다"라며 사회통합을 위한 교육과 영어 교육 프로그램을 언급한 바 있다. #

캐나다의 경우 비록 정부 차원의 노력은 아니었지만 2024년에 민간 차원의 노력 덕택에 캐나다 정부가 탈북민을 난민으로 받아들였다. #

그리고 유럽에서도 탈북 난민에 대한 처우가 점점 대한민국에서의 처우를 따라가고 있는데 대표적으로 영국에서는 정착한 탈북민이 한때 근로자였다가 고양자 입장인 상점 지배인이 되는 사례가 늘고있다고 한다. # 그리고 2024년에 영국 국립복권국에 탈북민 지원 단체에 올 상반기 30만 파운드, 한국 돈으로 약 5억 4천만원을 지원했다. #

EU에서는 2019년 기준으로 북한 출신 2,298명이 시민권을 취득했다고 한다. 다만 검증 시스템에 구멍이 많다는 지적에서 알 수 있듯, 이른바 '위장 탈북민'도 포함되어 있다는 것에 주의가 필요한 부분이다. #

4. 유사 사례

4.1. 조선적 (재일교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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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2. 조선 교포

여기서 말하는 조선은 조선 왕조가 아니라 북한이다. 북한에서 사용하는 공식 국가명은 조선민주주의 인민공화국이며, 북한에서는 이를 줄여서 조선이라고 부른다. 즉 북한의 교포들을 '조선 교포'라고 하며, 대부분 중국에 거주한다. 북한에서는 줄여서 조교(朝僑)라고 부른다.

중국에서 태어나고 쭉 자랐으며 언어적, 문화적, 정서적으로 사실상 중국 조선족처럼 살고 있는데 서류상으로는 북한 국적이다. 그래서 어릴 때는 자기가 중국 조선족인 줄 알았는데 친구들과 신분증 표기가 달라서 알아보고 나니까 북한 조교였다는 케이스도 있다. 주로 중국에서 조선족에게 중국 국적을 줄 때 그것을 받지 않고 북한 국적을 가진 사람들과 그 자손들이다.[8] 그러나 중국에서 대를 이어 체류해 북한 내에 호적이 없다. 즉 중국에서 합법적으로 평생 거주할 수 있으며 북송을 당하지 않는 북한 국적들이다. 중국은 외국인을 위한 귀화 제도가 있긴 하나 특별한 경우[9]에만 귀화를 허용하기 때문에 대부분의 조선 교포들은 중국 국적을 가질 수 없다.

이들의 경우 국정원 심사를 통해 간첩이 아님을 증명받고 보통의 북한 사람들과 달리 일제강점기 시절 조선인 호적을 가진 조상이 있다고 인정되면 이론상으로는 한국 국적을 인정받고 한국에 거주할 수 있다. 반면 후천적으로 북한 국적을 취득한 경우는 많이 복잡하다.

중국에서 중국 조선족처럼 살고 있는 조선 교포들이 한국에 와서 정착을 신청하는 일은 자주 있는 일이 아니어서, 이를 대비하여 만들어진 법적 제도가 존재하지 않는다.[10] 그래서 조선 교포들이 정착을 희망하여 한국으로 왔어도, 정주지역이 군사분계선 이북지역이 아니었다는 이유로 국정원 심사를 받을 기회가 주어지지 않는다. 그래서 중국으로 돌려보내지거나 또는 한국에 남을 경우에는 무국적자로 대우받는다. 중국 국적도 아니고, 탈북민도 아닌 데다가, 한국은 북한을 국가로 인정하지 않으므로 무국적자가 되어버리는 것이다.

이들 중에서 아주 드물게 한국 국적으로 인정받고 한국에 정착한 아주 극소수의 사례도 있지만, 국적만 인정받았을뿐 일반적 의미의 탈북민과 같은 대우를 해주지는 않았다고 한다.

4.3. 북한 화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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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4. 다른 분단국가의 난민

4.4.1. 동독

독일 재통일 이전에는 '레푸블리크플루흐트(Republikflucht, 탈공화국[11])이라는 동독 서독행을 택하는 사람이 많았는데, 동독의 주변국들이 사실상 우회 탈동을 묵인하여 탈동이 너무나도 쉬웠다는 점에서 기인하였다. 어느 정도인고 하니 그 규모가 탈북자에 비해 무려 75배였다고 한다. 당시 서기장이었던 에리히 호네커 본인이 서독 출신에 이산가족 출신이라서[12], 대놓고 탈동하다가 발각된 사람을 제외하면 탈동 자체를 그냥 묵인하라고 지시했기 때문이다. 의외로 잠깐의 교류조차도 엄중처벌하는 남한 북한과는 달리, 동독 서독은 생각 외로 상호 교류가 잦은 편이라서, 동독의 유명 록 스타가 서독으로 투어를 떠나거나 동독 학생들이 서독의 유명한 유적지 등으로 수학여행을 가는 일도 많았고, 반대로 서독의 개신교 목사 가톨릭 신부가 현지에서의 선교 활동을 목적으로 동독에 파견되는 일도 흔했다.[13] 때문에 여러가지 사유로 서독을 방문한 동독인들이 탈동을 할 가능성은 대단히 높았는데, 위의 각주에서 상술했듯이 에리히 호네커 서기장이 상식인이라서 이산가족 상봉이나 단순 여행 목적의 서독 방문은 얼마든지 허가를 해준데다, 이미 탈동한 사람을 억지로 재입동시켜서 긁어 부스럼만들기도 싫어한 까닭에 그냥 냅둔 것이다. 그리고 동독 자체가 서독과 비교해도 경제력 면에서 꽤 선방하는 입장이고 공산당 일당독재 국가치고는 그런대로 자유가 보장되는 나라였기에[14], 탈동자가 탈북자에 비하면 다소 적은 편이라서 체제 붕괴로 이어질 위험이 적었기 때문에, 소수의 몇몇이 탈동하는 것은 딱히 신경도 안 썼다.[15]

물론 탈동 자체를 전면 허용하는 건 당연히 아니라서, 가족 중에 탈동자가 있으면 직장이나 당국의 눈칫밥 먹으며 사는 신세로 살아야 했다는 점에선 북한과 그리 다르지 않았다.[16] 그리고, 어쨌든 탈동이 어디까지나 탈북하는 것에 비해 쉽다는 거지, 무슨 제 집 드나들 듯할 수 있는 건 아니라서, 탈동하다가 발각되어 현장에서 사살된 사람들의 수가 수백에 달했다. 때문에 탈동 과정에서 겪은 독일인들의 슬픔을 스페인 가수 라 오레하 데 반 고흐 Dia Cero라는 노래로 표현했다.

북한에서 보통 사람들이 공식적인 방법으로 중국으로 가기 힘든데 반해[17], 동독에서는 그냥 휴가를 간다고 하면 별 어려움 없이 체코슬로바키아로 갈 수 있었다. 여기서 중립국 오스트리아로 가는데, 오스트리아는 중립국이기에 1957년 체코슬로바키아와 국경을 개방했다. 때문에 오스트리아로 우르르르 몰려갔다가 언어가 같은 오스트리아에서 신원을 확인하고 서독으로 넘어갔다. 물론 베를린 장벽이 생기기 전에는 우회하지 않고 직접 넘어갔다.

분단 시절에 서독도 현재 탈북자들처럼 동독 이탈자에게 정착금 지원도 있었고 탈북자들이 겪는 갈등도 서독 내에서도 비슷하게 나타난다. 동독에서 서독으로 넘어오는 계층은 대부분 은퇴자들이었다고 하는데, 은퇴자를 서독으로 보내면 복지 부담을 덜 수 있다는 이유로 동독 정부가 은퇴자의 '탈동'을 강경하게 막지 않았기 때문이다. 예를 들면 동독 정부는 청년에 비해 은퇴자나 노인의 서독 방문 허가는 잘 내줬다. 정확히는 직접적으로 서독 방문 허가를 안 내주었다기 보다는, 은퇴자나 심신미약자가 아닌 일반인이 서독 방문 신청을 하면 겨우 당일치기 여행이나 할 수준의 돈만 들고가게해서[18], 탈동을 시도한 사람들이 돈이 다 떨어져서 울며 겨자먹기로 재입동을 할 수밖에 없게 만들었다.

4.4.2. 중국

대만에서는 중국 대륙에서 넘어온 사람들에게 한동안 반공의사라고 대접하기도 했지만 지금 중국은 정치적, 경제적으로 괄목한 성장을 했기 때문에 굳이 중국 대륙인들이 탈북하듯이 대만으로 올 필요가 없어졌다. 지금은 그냥 대만으로 여행오는 중국 대륙인들이 많고 이들은 물론 다시 본국으로 돌아간다. 또한 대만 정부는 귀순자에 대한 정착 지원이나 혜택 등을 일절 베풀지 않고 있다. 다만 현재는 분단국가로서 서로의 국적을 인정하지 않는다는 점을 이용해 중국 대륙인이 대만에 호적을 개설하면 대만 국적을 얻을 수 있는데 대만의 정치 상황에 따라 쉽게 개설될 수도 있고 어려울 수도 있다.

1992년 양안 컨센서스 이후 중국 → 대만으로 이민 온 사람이 2015년 기준으로는 거의 50만 명에 달한다.[19] 일반적인 중국 → 대만 이민은 경제적 목적(취업) 등을 위해 대만에 왔다가 눌러살게 된 경우(의외로 상당하다), 대만인과 결혼하는 케이스(이것도 많다) 등이 있다. 대만에서는 이들을 신세대 외성인이라고 부른다. 그러나 탈북처럼 중국 → 대만으로 망명가는 케이스는 아직 가끔씩 볼 수 있는데, 중국의 민주화 인사, 파룬궁 등 반체제 난민[20]들이 있다. 홍콩 중국에 반환되기 이전까지, 혹은 홍콩 보안법 통과 이전까지는 같은 이유로 홍콩으로 망명가는 중국인들도 좀 있었다.

21세기 이후로 대만으로 넘어오는 사람들의 대부분은 정치적인 이유로 중국을 떠나 망명하는 반체제 인사나 예술인, 연예인이다. 하지만, 양안관계 중국인에 대한 대만 정부의 관점에 따라 중국인의 대만 이주가 힘든 것도 사실이고, 어차피 친서방 국가로 가는 것이라면 아무 곳으로나 가도 되므로, 중국 출신의 망명자들이 대만으로 이주하는 경우는 다소 적은 편이다.[21]

4.4.3. 베트남

베트남이 분단된 시절에는 북베트남에서 자유를 찾아 탈북하는 경우도 많았다. 특히 제네바 협정으로 분단이 확정된 1954년, 북베트남이 한참 토지개혁과 종교탄압을 할때 지주나 종교인들이 남베트남으로 피난왔었다.

4.4.4. 북키프로스

키프로스도 2008년 이전까지는 북키프로스에서 남키프로스로 탈북한 사람들이 제법 있었다고 한다. 하지만, 이쪽은 이념 차이가 아니라 그리스계 주민 튀르키예계 주민 간의 민족주의적 갈등이 분단의 원인[22]이므로, 취업 문제같은 경제적 원인이 아니고서야 구태여 탈북을 하려는 경우는 없었다. 때문에 2008년 이전에도 북키프로스의 주민들은 남키프로스로 직접 넘어가는 경우만 아니라면, 국내 여행이나 해외로의 방문에 아무런 제약도 없었는데, 사실상 팔레스타인과 유사했다.[23]

애초에 북키프로스가 경제적으로 낙후된 원인도 순전히 이 '나라'를 튀르키예 괴뢰국으로 보았던 국제사회에서 국가 승인을 거부하는 여론이 컸기 때문에, 다른 나라와의 수교가 어려워서 그런 것일 뿐이다. 그래서 서서히 북키프로스에 자치권을 주고 통일하자는 여론이 날로 강해지는 오늘날에는 다시금 제한적으로나마 양자간의 교류가 늘어서, 옛날처럼 탈북자가 늘지는 않게 되었다.[24]


[1] 애당초 이쪽은 체류가 합법이다. [2] 단 해당 국가들의 여권을 위조하는 것은 어렵고 전자여권으로만 가능하기 때문에 발각될 위험이 크다. 그런데 탈북민에게서 태어난 한중혼혈인 자녀에게는 중국 여권으로 출국이 가능하지만 중국 대륙인인 부모 중 한 명이 허락할 리가 만무하고 발급관청인 이민관리국 중국 여권 발급을 방해한다. 그래서 이들도 별반 다를 것이 없다. [3] 국가정보원 조사 이후 공작원이 아니라고 확실히 판명되는 경우에는 한국 여권이든, 외국 여권이든 웬만해서는 처벌을 받지 않거나 받더라도 경미한 처벌을 받는다. 통일부 유튜브에도 이러한 상황에 대한 설명이 자세하게 나온다. 그 영상에서는 중국 대륙인과의 혼혈인 경우에 중국 대륙 여권이 나오는 경우에도 부모 중 한 명이 한국 국적자인 탈북민들이기 때문에 한국 국적이 부여된다. 그래서 이들은 한국 내 어디서든 정주할 권리가 있다. [4] 현지 경찰 등이 경계를 한다고 해도 외부까지가 한계다. 예를 들어 주한미국대사관은 외부는 경찰청, 내부는 미국 해병대가 경계를 한다. [5] 더군다나 해당 탈북자는 해외 국적을 부여 받기 이전 상태이기 때문에 무조건 밀입국한 북한 주민으로 본다. [6] 버락 오바마 미국 대통령이 재임시에 직접 조언을 요청했을 정도로 세계적인 북한 전문가다. [7] 오죽하면 여러 나라에서 한국인이거나 탈북자라면 위장 탈북자를 막기 위해 역사 시험 및 지리·사회 문제로 입국검사까지 하고 있다. 적발된 중국 국적인들은 "유럽이 근대에 중국을 털어먹었으니 이 정도는 당연하다"라는 주장을 하고 있지만, 그게 먹힐 리가 없다. 물론 유럽 국가들은 적발된 중국 국적인들에게 정착연금으로 써먹은 돈을 다 토해내게 만든 다음 강제 추방했다. 돈 없다고 하면 교도소로 보내 일하게 했다. 중국은 이에 대해서 침묵했다. [8] 아버지는 북한 사람이고 어머니는 중국인 한족이었는데, 아버지를 따라 북한 국적을 받은 경우도 있다. [9] 중국은 부모나 조부모 중에 중국인이 있거나 국가대표 운동선수처럼 중국의 이익에 부합하는 특별한 경우에만 외국인의 귀화를 허용한다. [10] 말할 필요도 없이, 조선 교포들이 본토 북한인들에 비해 경제적, 정치적, 문화적으로 넘사벽으로 좋은 조건에서 살기 때문이다. 북한에 비해 상대적으로 중국은 어느 정도의 상식이 통하는 나라이기 때문에, 중국에서 안정적으로 정착하는데 성공했다면 굳이 남한행을 택할 이유가 없다. 거의 일본 내 조총련계 주민들(조선적 특별영주자)과 다를 바 없는 수준이다. [11] 공화국은 동독에서의 자국을 일컫는 말이다. [12] 고향인 노인키르헨 서독령으로 있었는데, 당시 이곳에 에리히 호네커의 여동생이 살고 있었다. 그리고 호네커 본인부터가 요시프 브로즈 티토 피델 카스트로, 라울 카스트로 형제와 함께 공산권 지도자 중에서는 친서방 진영에서도 상식인 대접받던 몇 안되는 인물이어서, 김일성 일가 마냥 살기위해 달아나는 사람을 마구잡이로 잡아들이거나 하지도 않았다. 심지어 김정은은 어머니 고용희가 남한 지역의 재일교포 출신인데도 김정일보다 더 강도 높게 잡아들이는 판국이다. [13] 후자의 목적으로 월동한 사람이 바로 앙겔라 메르켈 전 수상이다. 아버지가 교단의 방침으로 인해 동독에 파견된 루터교 신부였던지라, 태어난지 3개월 만에 아버지를 따라 동독으로 보내지면서 유년시절을 거기서 보냈다. [14] 서독에도 없었던 누드비치가 있다거나 낙태를 전면 허용하고, 대놓고 나체시위를 하는 여성단체들을 향해 에리히 호네커 서기장이 직접 나타나서 호의를 표하는(...) 등으로, 동독이 여성 인권 면에서 훨씬 나은 편이었다. 때문에, 이 부분에서 자국보다 뒤쳐지는 서독과 통일할 경우에 여성 인권 수준이 하락할 위험성때문에, 동독 내 여성단체들이 독일 통일 반대 운동을 벌인 적도 있다. 게다가 상술했듯이 서독 방문이 상대적으로 쉬운 것도 그렇고, 음악 활동 자체가 자유로워서 동독의 인기 록밴드인 카라트 서독에서도 투어를 뛰는 등, 북한이나 중국과는 비교하는게 실례일 정도로 자유로운 사회를 이루었다. 대충 박정희 전두환 시절의 대한민국이나 현대 싱가포르의 체제를 생각하면 쉬운데, 이는 서양 공산주의 국가들의 공통된 특징이었다. [15] 상술했듯이, 북한 김일성 시절까지는 중국 측에서 탈북자를 붙잡아서 송환해 주지 않는 이상에야 이미 탈북한 사람을 신경끄는 편이었으나, 고난의 행군 이후로 탈북의 목적이 경제난을 피하기 위한 것으로 바뀌면서 탈북자의 수가 급격히 늘고 이에 따른 체제 붕괴의 위험이 높아지자, 이제는 이미 탈북한 사람들조차 각종 감언이설로 회유해서 재입북시키려 하거나, 직접 공작원들을 동원하거나 우방국 정부에게 도움을 받아가면서까지 강제 송환시킨다. [16] 이에 관하여 차이가 있다면, 탈북자가 나온 집안 전체를 적대계층으로 전락시켜서 사람취급도 안 해주는 북한과는 달리, 동독은 그저 탈동자 가족의 커리어를 꼬이게 만들었을 뿐, 그 친척이나 자녀들은 일절 건드리지 않았다는 점이 있다. 독일 영화인 굿바이 레닌을 보면, 주인공의 어머니는 독일 사회주의통일당의 당원이라서, 남편(주인공의 아버지)이 서독으로 탈출한 뒤로 당국의 눈치를 보며 살았음을 고백하지만, 그랬든 말든 주인공 본인은 전기기사로 일하면서 별 문제없이 사는 걸로 나온다. [17] 북한 남한은 커녕, 중국이나 러시아와 비교해도 경제력 차이가 하늘과 땅 차이라서 그렇다. 상류층이 아닌 이상에야 북한인들 눈에는 중국 정도만 돼도 그야말로 천국인지라서, 단순 방문 목적의 월경조차도 곧장 탈북으로 이어질 가능성이 커서, 일반인의 중국 방문을 전혀 허용해주지 않는다. [18] 이원복의 만화인 먼나라 이웃나라 독일편에 의하면, 100 동독 마르크로 들고갈 수 있는 돈의 상한선을 정해놓았다고 한다. [19] 대만 인구의 1%를 넘으며 대만 원주민보다도 숫자가 많다.(...) [20] 중국 민주화 인사나 파룬궁은 대한민국에도 꽤 많은 수가 난민법에 따른 난민으로 인정되어 들어와 살고 있다. [21] 과거 천안문 6.4 항쟁의 주역들 중 한 명인 민주운동가 외르케시 될레트 대만으로 망명했으나 똑같이 천안문 사태와 관련이 깊었던 영화감독 장률 한국으로 망명했고 소설가인 가오싱젠 프랑스로 망명했다. [22] 사실 그래서 이 당시에 그리스군 키프로스 지배권을 놓고 튀르키예군과 무력충돌을 벌일 때, 당시 미국의 대통령이던 린든 B. 존슨 그리스 대사를 백악관으로 불러내어 압력을 넣어서 튀르키예 측과 정전하도록 강요하기도 했다. 당시 그리스와 튀르키예 모두 친서방 국가라서 이들끼리의 대립을 달가워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23] 물론 당연히도 키프로스의 분단 상황이 이스라엘- 팔레스타인 간의 갈등 상황보다는 하늘과 땅 차이로 나은 편이다. 잊을 만하면 테러와 무력분쟁이 오가는 이-팔 관계와는 달리, 남북 키프로스는 6,70년대에 교전을 벌였던 이후로는 일체의 무력분쟁도 없었고, 둘 다 거주 이전의 자유가 보장되었기 때문에 생각보다 서로 간의 교류나 이동도 많았기 때문이다. [24] 사실 이는 남키프로스 그리스 경제위기의 영향으로 인해 똑같이 경제위기를 겪게 된 바람에, 구태여 북키프로스 주민들이 남키프로스로 갈 이유가 없어진 탓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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