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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산군 茂山郡 / Musan County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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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가 | 북한 | |
현재 면적 | 1,417㎢ | |
광복 당시 면적 | 6,164km² | |
광역시도 | 함경북도 | |
광복 당시 행정구역 | 1읍 9면 | |
시간대 | UTC+9 | |
[clearfix]
1. 개요
함경북도 서북부에 위치한 군이며 면적은 약 1,417km²다.
2. 역사
발해 멸망 이후 여진족에게 점거되었으나, 세종대왕 때 조선의 영토로 편입되었다. 그러나 이웃 회령시나 부령군과는 달리 4군 6진에 속하지 않아 여전히 여진족이 살고 있었으며, 조선의 행정력이 사실상 미치지 못하였다. 그래서 무산을 다스리는 만호진·첨사진이 2번이나 옮겨다녔고, 그 흔적이 지금도 고무산역, 폐무산역이라는 철도역 이름에 나타나 있다. 지금의 무산읍 지역인 삼봉평(三峯坪)에 첨사진이 들어온 건 200년 이상 세월이 지난 1674년( 현종 15)이었지만, 워낙 위치가 변방의 외진 곳이라서 본격적인 소도시로의 발전은 무산읍에서 노천 철광이 발견되는 일제강점기까지 기다려야 했다.고난의 행군 이후 탈북이 상당히 늘어 회령과 더불어 가장 탈북민의 고향이 되는 비중이 높은 시·군 중 하나가 되었다. 다만 김정은 집권 이후로는 극심한 단속으로 탈북이 줄었다.
3. 기후
냉대기후에 속하며 연교차가 큰 대륙성 기후에 속한다. 최한월인 1월의 평균기온은 -13.4℃로 매우 추운 곳이다. 무산군의 위도는 북위 42°13'39"로 몬테네그로의 수도 포드고리차보다 약간 낮다.[1] 그러나 포드고리차의 1월 평균기온은 영상 5.5℃로 북위 33°에 위치한 제주시와 비슷하다. 그럼에도 온도 차이가 무려 20℃ 가까이 나는 이유는, 무산군이 시베리아로부터 불어오는 차가운 북서풍을 직격탄으로 받는 반면, 포드고리차는 지중해의 영향을 받기 때문이다.최난월인 8월의 평균기온은 21.4℃로, 생각보다 그렇게 낮지도 않다. 옆동네 대홍단군보다 3~4℃ 정도 더 높다. 즉, 여름은 좀 덥고 겨울은 혹독하게 추운 동네다. 연교차는 35℃ 정도로 매우 큰 대륙성 기후를 나타내며 연 평균기온은 5.7℃이다. 연 평균 강수량은 536.5mm로 한반도 내 대표적인 소우지 중 한 곳이다.
4. 출신 인물
5. 철광 산업
자세한 내용은 무산광산 문서 참고하십시오.6. 북한 기준 하위 행정구역
2008년경 기준 다음과 같다.- 읍: 무산읍
- 로동자구: 창렬(彰烈)·강선(降仙)·마양(馬養)·남산(南山)·삼봉(三峰)·주초
- 리: 서호(西湖)·지초(芝草)·새골·칠성(七星)·독소(篤所)·풍산(豊山)·차유(車踰)·오봉(五峰)·허언(虛彦)·온천(溫泉)·박천(朴川)·상창(上倉)·문암(文岩)·홍암(興岩)·림강(臨江)
2008년 이후 현재까지 북한 매체에서 새로운 행정구역이 보도되지는 않은 것으로 보인다.
7. 이북 5도 기준 행정구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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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산군
茂山郡 Musan-gun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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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lbgcolor=#000000><colcolor=#ffffff> 군청 소재지 | 무산읍 성천동 | |||||
상위 행정구역 | 함경북도 | |||||
하위 행정구역 | 1 읍 9 면 | |||||
면적 | 6,163.91km² | |||||
인구 | 113,540명[2] | |||||
인구밀도 | 18.42/㎢ | |||||
명예군수 | ||||||
명예읍면장 | 10석 | |||||
홈페이지 | 이북5도위원회 무산군 소개 |
8.15 광복 당시 1읍 9면으로 대부분 두만강 유역에 자리잡았다.
- 무산읍(茂山邑)
- 관할 동 : 성천(城川), 남산(南山), 독소(篤所), 창렬(彰烈), 칠성(七星)
-
읍사무소와 군청이 성천동에 있었다.
국경도시이자
광업도시로 유명하며, 창렬동에는
한반도 유일의 노천
철광이 있다. 매장량 17억t의 거대광산이지만 품위가 낮은 자철광(磁鐵鑛)산이라는 게 단점이라
품질이 창렬, 1916년에 발견되어 무산이 읍으로 성장하는 데 큰 역할을 했지만 상기 이유로 사실상 오랫동안 방치해 두다가 일제 말기 전시정책으로 개발되기 시작하였다. 1944년 당시 인구는 20,687명이었으며 읍내에 백무선과 무산선 철도가 지나가며 무산역과 독소역이 있다.
- 삼사면(三社面)
- 삼장면(三長面)
- 서하면(西下面)
- 관할 동 : 삼천(三川), 임강(臨江), 흥암(興巖)
- 어하면(漁下面)
- 관할 동 : 허언(虛彦), 오봉(五峯) 온천(溫川)
- 연사면(延社面)
- 영북면(永北面)
- 관할 동 : 지초(芝草), 노덕(鹵德), 서호(西湖), 양영(梁永)
- 풍계면(豊溪面)
- 관할 동 : 명신(明臣), 계상(溪上), 계하(溪下), 송학(松鶴), 용천(龍川)
예전에는 무산군에 해면(海面)( 부령군 삼해면 가진.내포동 인근)이라는 월경지가 있었는데, 이름 그대로 바다에 접한것이 특징이다. #
광복 이전의 무산군과 충청북도의 크기 비교. 왼쪽이 무산군이며 오른쪽은 충청북도이고 회색 선은 무산군에서는 읍면 경계, 충청북도에서는 시군 경계를 나타낸다.[4] 보면 알겠지만 무산군의 몇몇 면은 충청북도의 시군 하나 크기를 아득히 능가한다.
원래 면적은 6,163.91km²로 한국 기초자치단체 중 제일 면적이 큰 홍천군의 3.4배로 대한민국에서 가장 넓은 군이었으며[5], 이곳에 속한 삼사면(三社面) 역시 한국에서 가장 넓은 면이었으며, 면임에도 면적이 2,254.39km²로 제주특별자치도보다 더 넓었다. 참고로 8.15 광복 당시 삼사면의 인구가 27,333명이였으니, 인구밀도는 12 명/km²이었다.[6] 또한 연사면은 읍면 단위 행정구역상 전국에서 4번째(1,030.95km²)[7], 삼장면은 5번째(1,014.23km²)[8]로 넓었다.
참고로 군 최남단에 위치한 백무선 북계수역은 해발 1,750m로, 한반도에서 가장 높은 역이라는 타이틀을 가지고 있었다. 거리상으로 무산읍에서 북계수역까지의 거리는 110km 정도가 되는데, 우리에게 친숙한 남한 지역에서 이 정도 거리가 나오는 구간으로는 서울특별시 ~ 홍성군(110km), 서울 ~ 청주시(111km), 광주광역시 ~ 진주시(114km) 등이 있다.
원래 무산읍, 동면, 삼사면, 삼장면, 서하면, 어하면, 연사면, 연상면, 영북면, 풍계면으로 구성되었는데, 앞서도 언급했듯이 삼사면은 한국 최대의 면이었다. 그러나 북한 정부는 철도로 연결된 길주군 양사면 서부(백암, 대택 일대)를 합쳐 삼사군(현 백암군), 연사면 일대를 연사군 등으로 분리시키며 군역이 크게 줄었다. 쪼갠 이유는 무산군이 지나치게 군역이 넓어 행정력이 닿지 않는 지역이 나왔기 때문이다. 그래도 서울특별시 두 개가 들어가고도 남을 정도로 넓다.
[1]
포드고리차의 위도는 대략 북위 42°26'이다.
[2]
1944년 인구총조사
[3]
이는 2024년의 남한만을 기준으로 할 때, 가장 넓은 군인 1,820.57㎢의
홍천군보다 넓다.
[4]
1945년 광복 당시 기준의 지도라,
증평군이 없고
충주시
수안보면(당시 상모면) 일대가
괴산군 관할인 등 오늘날과는 다소 다르다.
[5]
대한민국의
이북 5도청 체계로는 지금도 그렇다. 현재 대한민국
경기도 면적의 절반보다도 크며,
충청북도 전체 면적의 80%를 넘는다.
[6]
현재 한국에서 인구밀도가 가장 낮은
인제군(19.3명/km²)와 비교해보자. 더구나 이 때는 물론 도시화가 진행되지 않은 상태였다.
[7]
전라남도
해남군과 넓이가 비슷하다.
[8]
경상북도
김천시와 넓이가 비슷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