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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탈북( 脫 北, North Korea defection) 또는 북한 이탈( 北 韓 離 脫)은 북한 지역 주민이 대한민국(남한)이나 제3국으로 도피· 망명· 귀순하는 행위를 말한다. 반의어는 월북이다.[1]주체사상 독재체제인 북한은 전 주민을 철저한 통제와 감시 하에 두고 연좌제까지 적용하기 때문에, 탈북은 본인 뿐만이 아니라 가족과 주변인들의 인생/목숨을 거는 대단히 위험하고 어려운 행위이다.
2. 특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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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클로즈업 북한] “남한 방송 보며 동경”…다양해진 탈북 이유 (2023년 5월 27일 방영분) |
북한은 이동이나 여행의 자유가 심하게 제한된다. 북한의 한 지역에서 다른 지역으로 가는 것조차 허락을 받고 려행증을 발급받지 않거나 없으면 불가능하다. 심지어 수도인 평양은 특별한 허가증이 없으면 출입이 불가능한 데다 출신 성분이 불분명한 이들은 아예 허락조차 되지 않는다. 쉽게 말하면 국내 이동에조차 여권이 필수라는 말이 된다.[2]
그러다 보니 실질적으로 탈북이 많이 일어나는 곳은 국경 지역, 그것도 신의주 같은 평안도 일대보다는 그나마 통제를 피할 수 있는 동북쪽 함경도 출신들이 대부분이다. 즉 탈북하고 싶어도 지리적 여건이나 형편이 함경도민들 외에는 사실상 불가능하다는 것이다. 2014년 기준 한국 정착 탈북자 중 두만강 국경지대인 회령, 온성, 무산 출신이 절반이라는 주장도 있다. #
평안북도는 압록강 중류나 하류가 인력으로 도강을 할 정도가 되지 못하다 보니 이쪽 출신도 별로 없다는 점이 크다. 두만강은 압록강 하류보다는 건너기가 수월한 듯하다. 브로커를 끼고 탈북을 하는 경우가 많은데, 함경북도나 량강도 같이 함경도 사투리를 사용하는 지역은 연변 출신 조선족으로 위장할 수 있으나 평안도 쪽은 그것이 어려워 더 발각되기 쉽다고 알려져 있다.[3]
해외여행은 꿈에서나 가능할 정도다. 설사 해외로 나왔다고 해도 북한 국가보위성에서 파견한 보위원의 감시 하에 일거수 일투족이 보고되는 것은 기본이고, 그 감시 체계를 벗어난다는 것 역시 엄청난 모험이다. 그나마 뇌물이라도 상납하면 못 본 척 넘어가긴 하지만, 일반 주민들이 그런 금액을 마련할 수 있는 방법을 찾기 어렵다.
냉전 시기에는 탈북자들을 대대적으로 환영하고 기자회견 등을 통해 반공 태세를 강화하는 데 이용했는데, 이 경우는 보통 탈북이 아니라 귀순[4]이라는 단어를 사용했다. 탈북은 1994년 고난의 행군 이후 급격히 탈북자가 늘어나면서 쓰게 된 명칭이다.
과거 냉전 붕괴 이전에 남한과 북한의 체제 경쟁이 심할 때에는 이들의 존재 자체가 아주 훌륭한 선전 효과를 가졌기 때문에, 탈북자가 남한에 들어오면 대대적인 환영 행사와 언론 보도를 하는 것이 관행이었다. 하지만 1990년대 이후에는 북한 경제가 급격히 막장테크를 타면서 탈북자의 수가 매년 1~2천명으로 늘어나고, 체제 경쟁 구도도 약해지면서 이런 관행은 거의 사라졌다.
물론 탈북자들에게 전혀 신경쓰지 않는 것은 아니다. 현재 탈북자들은 경기도 안성시에 소재한 통일부 하나원에서 3개월간 남한 사회에 대한 적응 교육을 받은 후 사회에 나오는데 이때 정착금과 임대 아파트를 배정 받으며 북한이탈주민 지원 제도를 통해 대학 특례 입학과 직업 훈련 등 여러가지 지원을 받을 수 있다.
이러한 적응 교육에도 불구하고 탈북자들이 하루아침에 복잡한 자본주의 사회에 적응하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닌지라 사기 피해를 매우 많이 당하는 편이다. 또한 정부에서 주는 소정의 정착금을 탈북 비용으로 받기 위해 탈북 전문 브로커들이 기승을 부리기도 한다. 심한 경우에는 정착금 300만원을 받았는데 이중에서 브로커 비용이 290만원인지라 딱 10만원 남았다는 후기도 있다.
탈북은 목숨을 걸고 해야 하는 것이다. 직접적인 탈북, 탈북 계획은 물론 탈북 방조까지도 북한에서는 목숨을 걸어야 한다. 탈북에 실패한 탈북자들의 처벌은 기본적으로 교화소[5]에서 몇년의 노동교화형으로 시작하며,[6] 요덕 제15호 관리소를 비롯한 정치범수용소에서 종신형을 보내기도 하며, 가족이나 친척들은 평생 감시와 사회적 불이익을 받아야 한다. 북한은 연좌제가 버젓이 살아있다는 점을 기억하고 있어야 한다.
하지만 급증하는 탈북자를 두고 탈북자들 사이에서도 말이 갈린다. 실제로 어느 탈북자는 몇번이나 탈북 기도하다가 걸렸음에도 운 좋게 구타 및 욕설과 석방 가능한 수용소 생활 끝에 나왔다고 한다. 심지어 자신을 취조하던 군 간부가 "탈북하려는 거 보니 돈 좀 있는 모양이지? 그거 좀 주면 내가 봐주겠네."라는 말까지 들었다고 한다.
사실 북한도 고위간부급이 되지 않는 이상 당원이라도 월급이 좀 박하기 때문에, 이런 식으로 돈을 벌려고 하는 당원들이 많다고 한다. 물론 서민층들보다는 돈을 모으기 상대적으로 수월하기는 하다. 운 나쁘게 걸려들지만 않는다면 탈북하기는 쉬울 수 있다.
실제로 중국, 그것도 동북 3성 지역에서 탈북자들이 잡혀 북송되면, 그들이 중국에서 모은 돈은 보위부에서 전부 다 뺏는다. 그리고 이 북한이탈주민들은 돈을 바쳐서 나와 이전처럼 아무렇지 않게 일하다가, 결국 중국을 거쳐 동남아시아를 통해 10여명의 탈북자 동료와 같이 남한으로 오는데 성공했다. 그 중에는 절반이 같이 수용소에서 탈북기도하다가 걸려 수감된 이들이었다고 한다.
최근에는 북한의 경제가 더욱 악화되어, 감시자들이 탈북을 눈감아주는 대가로 받는 돈의 금액이 정해져 있을 정도라고 한다. 심지어 지방에서는 '기획탈북'이라는 것까지 생겼는데, 지역의 정치지도원이나 경찰간부가 탈북을 시켜준 후 탈북자에게 북한에 남아있는 가족들에게 돈을 송금하도록 브로커 역할을 하는 것이다. 돈을 받았다는 인증사진까지 찍어서 탈북자에게 보내준다고 한다. 더욱 기막힌 것은, 아예 이를 위해 간부가 오히려 탈북하라고 부추긴 경우까지 있었다고 한다.
한겨레중고등학교 재학생들과 인터뷰를 한 것 중에는 탈북 도중에 혼자 잡혀서 북한으로 돌아갔는데 3달 가량 감옥에 갇혔다가 고아원으로 보내졌다는 이야기도 있다. 그러고는 고아원에서 도망쳐나와 친척집에 머물다가, 남한에 있는 가족과 연락이 닿아 재차 탈북을 시도해 성공했다고. 탈북자에 대한 처우도 때에 따라 달라진다고 볼 수 있을 듯하다.
어떻게 보면 당연하기도 한데, 탈북자라고 해서 다 같은 탈북자가 아니다. 대한민국 국민이 연상하는 탈북은 북한을 탈출하여 남한에 들어오는 것을 패키지로 의미하는 경우가 많은데, 탈북자들이 흔히 탈북했다가 잡혔다는 말을 할 때 의미하는 탈북은 북한을 탈출하는 행위까지인 것이다. 묘하게도 탈북하기 전 한국으로 가겠다고 미리 결심한 후 탈북한 사례는 그리 많지 않다.
대부분이 북한이 당면하고 있는 경제 실정과 이로 인해 발생하는 여러가지 문제를 벗어나기 위해 일단 북한을 뜨자는 일이 대부분이고, 한국행을 결정하는 것은 중국이나 러시아로 나왔다가 거기에서 대한민국과 관련된 매체나 정보를 접한 뒤 가겠다고 결정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실제로 북한 탈출 후 중국 등지[7]에서 유랑 생활을 오래 하다가 들어온 탈북자들이 많다. 이 역시 중국 동북 3성 지역에서 생활을 하다가 한국과 관련된 뉴스나 한국 드라마를 시청하고 나서야 한국의 실상을 알고 남한으로 오는 경우가 많다. 국경지역이나 한국 드라마를 비밀리에 접할 수 있는 사람들 빼고는 남한에 대한 실상을 모르는 이들이 대부분이다.
곧바로 남한으로 직통으로 들어오는 경우는 흔하지 않은데 이와 같이 직통으로 들어오는 탈북자들은 처음부터 남한까지 오는 것을 계획하고 북한을 탈출한 고위층이거나 이미 남한에 정착한 탈북자가 기획하여 가족을 데려오는 경우 등이다.
북한에서도 탈북해서 중국으로 가는 것 자체로는 그다지 처벌이 중하지 않아서 노동교화형이나 노동단련형 정도로 처벌받고 석방되는 경우가 많지만 남쪽으로 오는 순간 엄청난 중죄가 된다.
간단히 정리하면 이렇다. 중국 동북 3성 지역에서 잡힌 경우는 북한에서도 생계형 탈북으로 봐서 길게는 5년 정도 형을 마치고 풀려나지만 중국 동북 3성과 다른 성[8]의 접경지역, 3국의 국경 지대, 중국의 공항이나 항구, 중국 영해 등에서 잡히게 되면 다른 나라, 특히 한국으로 가려는 의도로 봐서 그 처벌 수위가 기본 10년형의 중형으로 늘어난다. 심한 경우에는 한번 들어가면 절대 사회로 복귀할 수 없는 완전통제구역으로 끌려 가거나 끔찍하게 처형된다.
그래서 탈북자 가족들은 현지에서 대부분 탈북자에 대해 '행방불명'이나 '가족들 몰래 중국으로 간 것'으로 해놓고, 확인이 안 된다는 것을 이용하여 보위부에 뇌물을 먹이고 눈 감아달라고 하는 경우가 많다. 먹고 살기 힘들어서 탈북했는데 가족들에게 뭔 돈이 있냐 싶지만, 놀랍게도 남한에서 번 돈을 북한에 송금하는 것이 가능하다.
남한에서 탈북자들이 번 돈을 북한에 송금하는 절차는 음성적이지만 과정은 단순하다. 한국 원을 중국 위안으로 환전해 브로커에게 건네면 브로커는 북한 내부 인맥에게 현찰을 전달하고, 내부 인맥은 특정 가정을 방문해 돈뭉치를 전달하면 끝. 문제는 이 절차를 북한에서 다 알고 감시망을 돌리고 있다는 점이다. 브로커는 북중국경 출입이 가능한 인원을 고용해야 하고, 북한 내부로 들어갈 수 있는 인원도 거주지와 목적지가 불분명한 곳을 방문하면 검문시 소명하거나 주민 신고가 들어가는 등 위험의 여지가 많다. 북한 내부로 들어간 인원이 자유롭게 어딘가를 방문할 수 있는 기회도 한정적일 수 있어서 전달에 시간이 오래 걸리는 것은 물론이다. 그 와중에 내부 인원은 국제전화가 가능한 중국 전화기를 보유해서 브로커 및 의뢰인과 계속 통화를 해야 하는데 북한에 중국 기지국이 있는 게 아니라서 통화를 하려면 전파가 닿는 곳을 찾아 높은 산 위로 올라가든지 해야 한다. 이것도 걸려선 안 되며, 당연히 고지대들은 감시되고 있다.
이런 고생을 거쳐 전달책이 가정을 방문해 돈뭉치를 줘도 문제의 소지가 여전히 남아 있는데, 그 집에서 실종자(=탈북자)가 났는데 언제부턴가 돈걱정을 안하고 살기 시작했다면 당연히 모든 이웃이 의심하게 되기 때문. 그래서 수상하다 싶은 집에는 보위부나 인민군에서 탈북한 가족이 보낸 돈을 받으라고 떠보고, 가족이 '그러냐'라 하고 돈을 받거나 하면 재산을 몰수하고 싹 다 체포해 버리기도 한다. 그래서인지 탈북자 가정 스스로 의심이 풀리기 전엔 수상한 돈 따위 받지 않으려 하기도 해서 전달에 실패하기도 한다. 위험부담이 엄청난데다 중간에 끼는 브로커와 전달책이 여럿일 수밖에 없어 수수료는 쌀 때는 30%대, 통제가 강화된 2020년 이후로는 50%대에 육박한다고 한다. 그나마도 수수료가 문제가 아니라 믿을 만한 브로커만 찾을 수 있다면 돈이야 얼마든지 줄 수 있을 만큼 어려운 일이라고 한다. 그나마 다행인 것은 남한에서 탈북자들이 일 년 고생해서 여윳돈 몇백 남기는 건 그렇게 어렵지 않고 그 돈의 반만 전달돼도 북한에서는 먹고살고 학교 보내고 다 할 만한 나름의 부자가 된다고 한다. 혹시나 돈을 함부로 쓰다가 의심받을 것이 문제지.
하지만 재입북자가 하나원 동기들을 기억해 내서 신상을 발설하는 순간, 탈북자 한 기수 가족들이 줄줄이 수용소행이 된다. 이에 대해서는 본 문서의 '돌아갈 수가 없다' 문단 참조.
2020년 코로나바이러스감염증-19 유헹 이후 중국과 북한이 국경을 폐쇄하면서 탈북이 큰 폭으로 감소하였다. 한국 정착 탈북자 중 2020년에 국경을 통과한 사람은 1명이 알려져 있고 2021년에 국경을 통과한 사람은 2명이 알려져 있다. 2023년에 국경도 아니고 배로 탈북한 사람이 15명으로 알려져 있다. #
3. 원인
자세한 내용은 탈북/원인 문서 참고하십시오.4. 북한이탈주민
자세한 내용은 북한이탈주민 문서 참고하십시오.5. 탈북 경로
자세한 내용은 탈북/탈북 경로 문서 참고하십시오.6. 가짜 탈북자
자세한 내용은 탈북/가짜 탈북자 문서 참고하십시오.7. 관련 사건
- 황장엽 망명 사건
- 노크 귀순 사건
- 류경식당 종업원 집단탈북 사건
- 2017년 판문점 귀순 북한군 총격 사건
- 2017년 GP 경계 실패 논란[9]
- 2019년 탈북 선원 강제 북송 사건
- 북한이탈주민 철책 훼손 귀순 사건
- 우즈베키스탄 북한식당 종업원 집단 탈북 사건
- 2023년 북한 일가족 NLL 귀순 사건
8. 탈북을 다룬 영상물
- 국경의 남쪽
- 신이 보낸 사람
- 크로싱
- 천국의 국경을 넘다 2 3부작 (2011)
- 천국의 국경을 넘다 2016 - 브로커 (2016)
- 밀항선
- 풍산개(영화)
- 태풍(영화)
- 김정일리아 - N.C 헤이킨이 만든 탈북 다큐멘터리 작품. 실제 정치범수용소/북한에서 목숨을 건져 나온 12명의 탈북자의 증언으로 다큐멘터리가 시작되었다.
- 48m
- 채널A 특별취재 - 탈북: 탈북의 전 과정을 PD가 따라다니며 직접 녹화했다. 그리고 휴스턴 국제영화제 방송다큐멘터리 부문에서 대상을 수상했다. 여기서 나온 꽃제비 출신의 김신혁 군[10]이 7살의 어린 나이로 탈북하는 모습이 화제가 되었다. "한국에 가서 무엇을 하고 싶냐"는 질문에 "오토바이를 타고, 오이를 먹고, 고기도 먹고, 일도 하고 싶다"고 답했다.
- 이규연의 스포트라이트 17~18회 - 엄마 찾아 사선을 뚫다
- 불어라 미풍아 (2016년 드라마)
- 그물 (2016년 영화)
- 남과북 - 유튜브에서 찾아볼 수 있으며, 파워무비 채널에서 단편영화 프로젝트로 6달간 만들어졌다. 내용은 남한과 북한의 21세기 정보전쟁을 다룬 영상물이지만, 1화에 가짜로 탈북하는 사람이 나오므로 넣었다.
- TV조선 - 끝까지 간다 (4화,5화) - ' 이주성 ' 군외 3명이 개그맨 정성호와 갈렙선교회의 김성은 목사의 도움으로 탈북하는 과정을 영상에 담았다. 특히 이주성 군은 먼저 탈북한 부모님을 만나기 위해 홀로 백두산을 넘어 탈북한 12살 아이로 스포트라이트를 받고 있다.
- 비욘드 유토피아 (2023년 영화) - 갈렙선교회
- 로기완 (2024년 영화)
9. 북한의 시설물
인천대교,
광안대교,
부산항대교 ↔ 서해갑문: 이마저도 서해갑문은 북한정권이 자랑하는 시설인데, 어느 탈북민 유튜버가 말하길 남포갑문은 인천대교, 광안대교, 부산항대교와 비교하면 초라하기 그지없다고 할 정도이다. 그나마도 제대로 관리도 하지 못해 그야말로 ‘흉물’수준으로 방치된 상태라는 증언이다.
송도, 강남, 해운대 센텀시티, 서면 등지의 대형 마천루 ↔ 평양 려명거리의 마천루: 려명거리에는 북한의 1, 2위 마천루 등 고층건물이 있기는 하지만 그마저도 마감이 엉망이라든지 여러가지의 나사빠진 모습이 당연히도 송도, 강남과는 비교가 안되는 모습이다. 더군다나, 송도, 강남, 해운대 센텀시티, 서면의 마천루들은 북한처럼 과시용이 아닌 평범한 오피스와 아파트들이다.
평촌, 인천 논현, 과천이나 김해, 양산, 동래, 경산 등의 여러 신도시 ↔ 려명거리 신도시 등: 여기에 북한의 다양한 고층건물 등 북한치고는 꽤 첨단 건축물들이 있지만 부실공사 논란이 있다.
송도, 강남, 해운대 센텀시티, 서면 등지의 대형 마천루 ↔ 평양 려명거리의 마천루: 려명거리에는 북한의 1, 2위 마천루 등 고층건물이 있기는 하지만 그마저도 마감이 엉망이라든지 여러가지의 나사빠진 모습이 당연히도 송도, 강남과는 비교가 안되는 모습이다. 더군다나, 송도, 강남, 해운대 센텀시티, 서면의 마천루들은 북한처럼 과시용이 아닌 평범한 오피스와 아파트들이다.
평촌, 인천 논현, 과천이나 김해, 양산, 동래, 경산 등의 여러 신도시 ↔ 려명거리 신도시 등: 여기에 북한의 다양한 고층건물 등 북한치고는 꽤 첨단 건축물들이 있지만 부실공사 논란이 있다.
10. 탈북의 결심하게 된 이유와 남한에 입국 후 반응
탈북을 결심하게 된 계기로는 한국의 드라마나 음악만큼이나 6시 내고향 같이 농촌을 다룬 프로그램이 꼽히기도 한다. 나라를 대표하는 도시가 아닌 농촌이나 빈민가는 부국과 빈국 사이에 극심한 격차가 나기 마련이다. 그러니, 한국의 일개 농촌인데 집집마다 자동차가 있고 농기계가 있으며 스마트폰을 사용하고 TV와 전기가 들어오며 그들 기준 호화판 식사이니, 어떤 의미에서는 화려한 도시 외관 이상의 문화적 충격을 받는 것. 비슷한 일례로, 망명한 북한 출신 관료가 서울 도심 구경을 마다하고 달동네를 가보자고 했는데, 빈민가임에도 TV와 냉장고가 있고 전기와 수도가 들어오는 것을 보고 데꿀멍 했다고 한다.10.1. 인천국제공항이나 입국 후 반응
탈북자들은 인천을 통해 입국하고 국정원에 방문하게 되는데 이 때 버스로 이동하는 과정에서 인천대교를 바라보고 대부분 놀라서 충격을 받는다고 한다. 탈북자들의 표현에 따르면 가히 ‘타임머신을 타고 미래로 떨어진 것과 같은’ 충격을 받는다고 한다. 일부 지식인 계층과 사회지도층 출신의 탈북민들은 "남쪽은 이렇게 엄청 발전하고 부유하게 잘 살고 있는데 우리는 지금까지 뭘 했던 거냐?"고 탄식하면서 다시 한 번 김씨왕조 일가의 악랄함에 치를 떤다고 한다.서울에 도착할 시 수도권의 관문이자 한국의 최대 공항인 인천국제공항으로 입국 → 세계 최장 4위의 교각인 인천대교와 → 대형 마천루가 즐비한 송도국제도시 → 인천 내 주요 공단인 남동인더스파크(남동공단) → 바다 앞에 근사하게 위치한 인천논현, 시흥배곧과 → 수리산과 관악산, 청계산 사이에 빽빽하게 세워진 산본, 평촌, 과천의 경로를 거쳐 강남 직전에 위치한 국정원에 도착하게 된다.
한국을 처음 입국한 탈북민들은 거대하고 웅장한 인천대교를 바라보면 그저 놀라서 감탄사밖에는 안 나온다고 한다. 자신들이 살던 북한과 비교하면 극과 극의 체험을 하는데, 대부분의 탈북민들은 인천대교를 건너면 송도국제도시가 나온다. 그리고, 이렇게 좋은 나라에서 살게 된 것에 다시 한 번 감사함을 느낀다고 한다.[11]
10.2. 김해국제공항에 입국 후 반응
부산을 통해 입국하더라도 부산을 통과해서 국정원으로 가기 때문에 같은 느낌을 받는다고 한다. 단 이 쪽은 광안대교, 부산항대교를 통과하면서 혹은 신평장림공업단지를 보면서 남북한의 경제적 격차를 느낀다고 한다. 그 이동경로를 살펴보면...부산에 도착할 시 영남권의 관문이자 한국에서 두 번째로 큰 국제공항인 김해국제공항으로 입국 → 부산 내 주요 공단인 녹산공단이나 신평장림공업단지 → 대한민국에서 가장 큰 항구인 부산항과 재개발이 이루어지는 원도심 → 중심업무단지가 많은 서면 → 유명 관광지인 광안대교 → 고층 아파트와 오피스가 있는 해운대를 거쳐 국정원에 도착하게 된다.
한국을 처음 입국한 탈북민들은 거대하고 웅장한 광안대교, 부산항대교를 바라보면 그저 놀라서 감탄사밖에는 안 나온다고 한다. 자신들이 살던 북한과 비교하면 극과 극의 체험을 하는데, 대부분의 탈북민들은 광안대교, 부산항대교를 바라보고 대한민국의 발전상에 다시 한 번 놀라게 된다고 증언한다. 그리고, 이렇게 좋은 나라에서 살게 된 것에 다시 한 번 감사함을 느낀다고 한다.[12]
11. 기타
- 과거 군사정권 시대에는 안기부가 탈북자에 대한 고문을 자행한 적 있다는 증언도 있다. #, #
- MBC의 개그 프로그램 웃으면 복이와요에서 많은 인기를 얻었던 ' 오데로 갔나'의 노래 가사는 북한 주민들이 고난의 행군으로 먹고 살기가 어려워서 어쩔 수 없이 탈북으로 도망칠 수 밖에 없는 북한의 암울한 현실을 신랄하게 풍자한 내용이다.
[1]
탈북을 말 그대로 뒤집은 '탈남(脫南)'이라고 표현하기도 하지만, 속어에 가깝고 사전에 등재된 말은 아니다. '탈남'은 탈북자가 북한이나 제3국으로 이동하는 경우를 가리킬 때 제한적으로 사용하는 용례가 일부 존재한다.
#
[2]
연방제도 아니고 한 나라 안에서 이동하는 것조차 허가를 받아야 가능하게 만든 독재자는
폴 포트,
이디 아민,
마시아스 응게마,
사파르무라트 니야조프(그나마 이는 일부 지역에만 적용되었다),
이사이아스 아페웨르키처럼 당대에도 정말 도를 넘은 수준의 독재자밖에 없다. 정작 연방제의 대명사 미국에서는 여권이 필요없으며, 소련도 다른 지역을 이동하려면 국내 여권이 필요했으나 소련은 여러 '
공화국'들로 이루어진 국가라 공화국들 사이를 이동하는 데에 여권이 필요한 경우였기에 북한과 비교하기는 힘들다.
[3]
반대로 상당히 드문 경우이기는 하지만, 개성 출신이라
경기 방언을 쓰다보니 거꾸로 중국에서 남한 사람으로 위장하기 쉬웠다는 개성 출신 북한이탈주민의 증언도 존재한다.
[4]
평범한 민간인이 아닌 군인이나 고위 관료의 탈북은 여전히 '귀순'이라는 단어로 불리는 경우가 많다.
[5]
북한의 교도소
[6]
말이 노동교화형이지 수년간의 열악한 수감 생활을 버티지 못하고 죽는게 대다수다.
[7]
대부분 동북 3성 지역에서 활동한다.
[8]
랴오닝성/헤이룽장성과 허베이/내몽골자치구의 경계 지역
[9]
귀순 병사의 증언에서 시작된 논란이다.
[10]
방송 당시에는 '김진혁'이라는 가명을 쓰고 있었으며, 그 아이의 일행들도 다 가명을 쓰고 있었다.
[11]
탈북민 거의 모두가 대한민국에서 자신들을 받아들였다는 사실을 진심으로 감사하게 여긴다. 그도 그럴 것이 중국은 두말할 필요도 없고, 북한이탈주민을 받아주는
태국,
말레이시아,
인도네시아나
몽골 역시 안전하지 않고,
싱가포르는 영어를 잘해야 한다. 무엇보다
같은 말,
같은 문화,
같은 풍습을 공유하고 있는
동족이 더구나 엄청난
경제 부흥을 일궈냈고
잘살고 부강한 국가를 이뤘으니 놀라지 않을 수 없다. 그래서 이구동성으로 하는 말이 "대한민국이 우리를 받아들여 주지 않았으면 우리가 어디로 가서 살았겠느냐?"는 것이다.
[12]
탈북민 거의 모두가 대한민국에서 자신들을 받아들였다는 사실을 진심으로 감사하게 여긴다. 그도 그럴 것이 중국은 두말할 필요도 없고, 북한이탈주민을 받아주는
태국,
말레이시아,
인도네시아나
몽골 역시 안전하지 않고,
싱가포르는 영어를 잘해야 한다. 무엇보다
같은 말,
같은 문화,
같은 풍습을 공유하고 있는
동족이 더구나 엄청난
경제 부흥을 일궈냈고
잘살고 부강한 국가를 이뤘으니 놀라지 않을 수 없다. 그래서 이구동성으로 하는 말이 "대한민국이 우리를 받아들여 주지 않았으면 우리가 어디로 가서 살았겠느냐?"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