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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정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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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책임비서 중앙위원회 위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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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가주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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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두봉 최용건 김일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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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고인민회의
상임위원장
국방위원장
제1위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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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한대행 김정은
김정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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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무력 최고사령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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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무력 최고사령관
조선로동당 중앙군사위원회 위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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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원수 김정은
조선로동당
중앙군사위원회 부위원장
조선로동당
중앙군사위원회 부위원장
국방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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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민군원수 리병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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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민군원수 박정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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총정치국장 총참모장 조선로동당 군정지도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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육군대장 리태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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육군대장 오일정
해군사령관 항공 및 반항공군사령관 전략군사령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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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군대장 김명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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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군대장 김광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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육군상장 김정길
특수작전군사령관 사회안전상 국가보위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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육군상장 김영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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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안전군 대장 박수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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육군상장 리창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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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lcolor=#fff> 파일: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국무위원장 휘장.svg 위원장
김정은
제1부위원장 부위원장
최룡해 김덕훈
위원
조용원 박정천 오수용 리영길
장정남 김성남 김여정 정경택
김영철 리선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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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일:조선로동당 마크.png 총비서
김정은
파일:조선로동당 마크.png 정치국
<colcolor=#FED11E> 상무위원 <colbgcolor=#fff,#222>겸 총비서
국무위원회 위원장
겸 중앙군사위원회 위원장
<colbgcolor=#fff,#222> 김정은
국무위원회 제1부위원장
최고인민회의 상임위원장
최룡해
겸 비서국 조직비서
조직지도부장
조용원
국무위원회 부위원장
내각총리
김덕훈
중앙군사위원회 부위원장 박정천 · 리병철
가나 리일환 · 김재룡 · 전현철 · 박태성 · 김영철 · 박정근 · 리영길 · 리태섭 · 정경택
후보위원 오일정 · 허철만 · 김성남 · 박태덕 · 김형식 · 조춘룡 · 한광상 · 리철만 · 양승호
주철규 · 리선권 · 김영환 · 최선희 · 박수일 · 리창대 · 우상철
파일:조선로동당 마크.png 중앙군사위원회
위원장 김정은 부위원장 박정천 · 리병철
강순남 · 조경철 · 김조국 · 리영길 · 리태섭 · 박수일 · 오일정 · 조용원 · 리창호
파일:조선로동당 마크.png 중앙검사위원회
위원장 김재룡 부위원장 박태덕 · 리히용
강윤석 · 김광철 · 김성철 · 리경철 · 박광식 · 박광웅
오동일 · 우상철 · 장광봉 · 장기오 · 전태수 · 김인철
파일:조선로동당 마크.png 비서국
제1비서 (공석) 조직비서 조용원
비서 박정천 · 리병철 · 김재룡 · 리일환 · 전현철 · 박태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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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직지도부장 조용원 선전선동부장 리일환
군정지도부장 오일정 근로단체부장 리두성
규률조사부장 박태덕 국제부장 김성남
간부부장 허철만 법무부장 김형식
경공업부장 한광상 농업부장 리철만
통일전선부장 리선권 군수공업부장 조춘룡
민방위부장 강순남 경제부장 전현철
과학교육부장 리충길 재정경리부장 김용수
경제정책실장 (공석) 문화예술부장 주창일
문서정리실장 박정남 역사연구소장 김영광
부장 김세복 · 최휘
파일:조선로동당 마크.png 로동신문
책임주필 박영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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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산주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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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련 문서
분파 · 역사 · 서기장 · 스탈린주의 · 마오주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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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년대 누가 한국을 움직이는가 / 대통령에 영향력 있는 인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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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0년대의 각 해마다 시사저널이 각 분야의 전문가 1000명에 칸타퍼블릭과 함께 실시한 여론조사를 바탕으로 '대통령에 가장 영향력 있는 인물'을 선정했으며, 최대 3명까지 중복응답이 가능하였다. 해당 틀에는 1위만 기재함.
2020 2021 2022 2023 2024
김정은 송영길
2025 2026 2027 2028 2029
같이 보기: 한국에 가장 영향력 있는 인물(종합) / 여권 정치인 / 야권 정치인 / 법조인 / 경제인 / 언론인 / 문화예술인 / 연예인 / 스포츠 스타 / 대통령에 영향력 있는 인물 / 언론매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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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최고령도자
김정은
金正恩 | Kim Jŏng Ŭn[1]
파일:김정은썸네일제거.jpg
<colbgcolor=#024FA2><colcolor=#fff> 출생 1984년 1월 8일[2] ([age(1984-01-08)]세)
강원도 원산시 송천동 특각 602호 초대소[3]
현직 조선로동당 총비서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국무위원장
조선로동당 중앙군사위원장
조선인민군무력 최고사령관
조선로동당 중앙위원회 정치국 상무위원
재임기간 조선로동당 총비서[4]
2021년 1월 10일 ~ 현직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국무위원장
2016년 6월 29일 ~ 현직
조선로동당 중앙군사위원장
2011년 12월 17일 ~ 현직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무력 최고사령관[5]
2011년 12월 30일 ~ 현직
조선로동당 중앙위원회 정치국 상무위원
2012년 4월 11일 ~ 현직
서명 파일:김정은 서명.svg
{{{#!wiki style="margin: 0 -10px -5px; min-height: 26px"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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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lbgcolor=#024FA2><colcolor=#FFF> 본관 전주 김씨
종교 무종교 ( 무신론)
국적 [[북한|]] [사실상]
[[대한민국|]] [헌법상]
학력 스위스 슈타인횔츨리공립중학교 ( 중퇴)[8]
김일성군사종합대학 (포병학 / 학사)
직업 정치인
소속 조선인민군 ( 2010년 ~ 현재)
계급 대장[9] ( 2010년 ~ 2012년)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원수[10] ( 2012년 ~ 2021년)
대원수[11] ( 2021년 - 현재)
신체 키 168.6cm[12], 몸무게 120kg[13], A형
정당

[사실상]


[[무소속|
무소속
]][헌법상][16]
경력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국방위원회 부위원장
( 2010년 6월 4일 - 2010년 9월 3일)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국방위원회 제1부위원장
( 2011년 12월 17일 - 2012년 4월 13일)
조선로동당 중앙군사위원회 위원장[17]
( 2011년 12월 17일 - 현직)
조선인민군 최고사령관
( 2011년 12월 30일 - 2019년 4월 10일)
조선로동당 제1비서
( 2012년 4월 11일 - 2016년 5월 9일)
조선로동당 중앙위원회 정치국 상무위원
( 2012년 4월 11일 - 현직)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국방위원회 제1위원장
( 2012년 4월 13일 - 2016년 6월 29일)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최고인민회의 제13기 대의원(제111호 백두산 선거구)
( 2014년 - 2019년)
조선로동당 위원장[18]
( 2016년 5월 9일 - 2021년 1월 10일 )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무력 최고사령관
( 2019년 4월 11일 - 현직)
조선로동당 총비서
( 2021년 1월 10일 - 현직)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국무위원장
( 2016년 6월 29일 - 현직)
호칭 "조선로동당 총비서이시며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국무위원장이신 경애하는 김정은동지" / "경애하는 총비서 동지" [19]
남한에서의 호칭 김정은[20] / 김정은 위원장[21]
가족
조부 김일성 ( 1912년 - 1994년)
조모 김정숙 ( 1917년 - 1949년)
김정일 ( 1942년 - 2011년)
고용희 ( 1952년 - 2004년)
이복형 김정남 ( 1971년 - 2017년)
김정철 ( 1981년생)
여동생 김여정 ( 1988년생)
아내 리설주 ( 1989년생)
장남 김○○ ( 2010년생)
장녀 김주애 ( 2013년 2월 19일생)
차남 김○○ ( 2017년 2월생)
}}}}}}}}}
1. 개요2. 생애
2.1. 학창 시절2.2. 후계자 생활2.3. 집권 이후
2.3.1. 2011년~2017년2.3.2. 2018년2.3.3. 2019년 이후
3. 통치
3.1. 개혁·개방3.2. 숙청3.3. 선전
4. 특징
4.1. 성격4.2. 건강4.3. 헤어스타일4.4. 김일성 따라하기4.5. 무명의 후계자
5. 평가
5.1. 긍정론5.2. 부정론
6. 창작물7. 발언8. 가족관계9. 여담10. 관련 문서11. 둘러보기

[clearfix]

1. 개요

북한 정치인, 독재자. 김일성으로부터 세어보면 세번째 세습 권력자이며, 조선로동당 총비서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국무위원회 위원장 등의 직책을 겸하고 있다.[22]

2011년 12월 17일에 아버지 김정일의 사망과 함께 수년 전부터 준비된 대로 권력을 세습했다. 집권하고 난 이후 자주 직함을 변경했다. 김정일이 죽은 직후에는 국방위원회 제1위원장, 조선로동당 제1비서, 조선인민군 최고사령관 직함을 달고 있었으나, 2016년 6월 29일에 열린 최고인민회의 제13기 제4차 회의에서 국방위원회를 국무위원회라는 조직으로 개편하고 제1비서의 명칭도 '당 위원장'으로 고쳤다. 이후로는 계속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국무위원장 겸 조선로동당 위원장 겸 조선인민군 최고사령관이라는 직함을 유지하고 있다. 동시에 공화국원수 칭호도 가지고 있다. 로동신문, 조선중앙통신 등 북한 언론이 사용하는 공식 칭호는 "조선로동당 총비서이시며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국무위원장이신 경애하는 김정은동지"이다.[23] 영어권에서는 'President Kim' 혹은 'General Secretary Kim'이라고 불리고 있다.[24]

김정일 고용희 사이의 차남으로 태어났고, 청소년기에 스위스의 수도 베른에서 '박운'이라는 가명으로 유학생활을 하기도 했다.

전 세계적으로 매우 유명하며, 한국 미국을 향한 핵무기 공격 등의 위협적인 발언들 때문에 미국을 포함한 서양의 여러 예능 프로그램, 토크쇼 등에서 자주 풍자화되고 있다. 2018년 남북정상회담에 나서 문재인 대통령과 함께 판문점 선언을 발표했고, 이를 통해 비핵화 종전을 약속하면서 대한민국의 문재인 대통령과 더불어 남북관계 북미관계를 새로운 국면으로 이끌 주인공으로 주목받았다. 하지만 미국과의 협상 난항 등으로 북측이 비핵화를 위한 유의미한 조치를 전혀 취하고 있지 않으며, 오히려 미사일을 발사하는 등 평화를 위한 노력과는 정반대의 행동을 보여주고 있다. 여기에 정권 차원의 각종 폭압적이고 반인권적인 범죄 행위들이 줄어들지도 않았기 때문에 주목하는 만큼이나 경계해야 하는 인물이기도 하다. 2019년에 들어서는 제2차 북미정상회담, 러시아 방문, 중국 시진핑 주석과의 회담, 남북미정상회담 등 다각도의 외교 행보를 보이고 있지만 여전히 결정적인 변화나 성과는 거두고 있지 못한 상태다.

내부적으로는 권력을 획득하는데 성공했는데 장성택 현영철을 숙청 및 처형하면서 당과 군부를 장악했고 선군정치의 영향으로 위상이 너무 막강해진 조선인민군의 권력을 약화시키려고 노력했다. 그래서 과거 노동당 정치국 상무위원이기도 했던 군 총정치국장의 지위를 강등시키고 국방위원회를 폐지시키고 그동안 알려지지 않았던 노동당의 신흥 젊은 관료들을 적극 등용하고 있다. 김정은 시대 들어서서 위상이 높아진 대표적인 노동당 관료들은 김덕훈 내각 총리, 김재룡 중앙검사위원장 겸 비서국 비서, 조용원 비서국 비서 겸 조직지도부장도 있다. 또한 국가보위성 사회안전성도 약화시키기 위해 노동당 검찰소 라인을 우대하고 있다. 그 증거로 우상철이 이례적으로 정치국 회의로 진입한 사례를 들 수 있다.

한편 경제개발을 강조하며 자력갱생(自力更生), 속도전을 내세웠으며 그 과정에서 경공업의 발전을 도모하고 수 많은 건설사업을 추진하며 중공업의 현대화를 추구했다. 그러나 대북제재로 인해 고립된 북한은 외부와의 정상적인 무역 없이 국내 시장에 한정해서 자력갱생과 경제개발을 이루어내는 것은 불가능에 가까운 일이었다. 거기다가 북한 체제 특성상 유명무실한 내각의 행정집행능력, 세계 최악의 부정부패, 2020년 한반도 폭우 사태라는 악재를 거듭한 끝에 2021년에 개최된 조선로동당 제8차대회에서 경제개발이 실패했음을 스스로 인정했고 제2차 고난의 행군을 선언하기까지 했다. 게다가 2022년에는 북한 코로나바이러스감염증-19 대유행에 식량난까지 겹치면서 앞으로도 유의미한 경제 성과를 거두지 못할 것으로 보인다.

이로인해 체제위기가 점차 도래하자 개혁개방을 추구하던 모습은 어디가고 2020년대 이후로 반동사상문화배격법을 제정하고 청년교양보장법을 통과시켜 북한 주민들에게 더욱 무자비한 탄압을 가하고 있고 안그래도 폐쇄적이었던 북한 체제는 오히려 과거로 퇴행하고 있다.

2. 생애

2.1. 학창 시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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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 모습을 보면 상상하기 어렵지만 어린 시절 김정은은 매우 날씬한 체형이었다.

김정은은 1998년부터 2000년까지 스위스 베른의 공립학교인 '리베펠트-슈타인횔츨리 슐레(Liebefeld-Steinhölzli Schule)'에서 재학했다. 영국의 타블로이드 더 선과 이를 인용해 보도한 조선일보에 의하면 그가 스위스 베른 국제학교에 재학했다고 하지만 이는 사실이 아니다. 김정은의 형인 김정철이 1994년에서 1997년까지 베른 국제학교를 다녔다. 스위스 유학 당시 그가 김정일의 아들이라는 사실을 아는 사람은 거의 없었다고 한다. 그가 살던 베른 시 당국 조차도 그가 북한 대사관 직원의 아들 '박운'으로 알고 있었다. 학부모 참여 행사가 있을 때면 항상 갖가지 변명을 만들었다고 한다. 이런 이유로 그의 스위스 유학생활에 관해 정확히 알려진 것은 많지 않았다. 그렇기에 스위스 생활에 관한 여러 보도들은 여타 북한 관련 보도들과 마찬가지로 추측으로 가득한 자극적인 가십거리였다. 하지만 최근 그의 학창시절 가장 친한 친구였던 포르투갈 출신 이민자 2세인 요리사 주앙 미카엘루(João Micaelo)가 JTBC 이규연의 스포트라이트 150회에 출연해 김정은의 스위스 생활에 관한 자세한 이야기들을 처음으로 매스컴에 공개했다. 출처를 알 수 없는 가십성 보도들과 달리 미카엘루는 김정은의 가장 친한 친구임이 훗날 평양 초청과 방문에서 보듯 확인되었고, 장시간 인터뷰한 내용이 김정은의 가족관계나 여타 사실에도 완벽히 부합하기에 김정은의 스위스 시절에 관한 가장 신빙성 있는 정보라고 할 수 있다.

미카엘루의 증언에 따르면 김정은은 여태까지 알려진 바와 같이 학교에서 낙제를 겨우 면했다거나, 적응에 실패하여 친구들과 교사에게 안하무인식의 태도를 보이는 사람이 아니었다. 그는 오히려 조용한 성격으로 친구들이 많지는 않았지만 수학에 뛰어나며 성적도 꽤 괜찮은 학생이었다. 김정은의 가장 큰 관심은 농구였는데, 그는 축구 밖에 모르던 친구들의 흥미를 농구로 돌려놓았다. 농구를 할 때면 항상 이기려는 승부욕을 보였다고 하는데, 미카엘루는 그 나이대에는 모두 이기고 싶어한다며 지나친 승부욕은 아니었다는 어감으로 이야기했다. 김정은은 농구를 할 때면 고급 나이키 농구화와 유니폼을 입고 다녔다고 하는데, 이에 체육 선생님은 김정은에게 '장비는 잘 갖췄는데 실력이 프로가 되려면 멀었다'는 농담을 했고 김정은은 웃어 넘겼다고 회고했다. 또 흥미로운 것은, 김정은은 학교에 다니면서 기본 과목 중 하나인 '고급 민주주의' 과목을 들었다는 점이다. 윌리 슈투더(Ueli Studer) 교사는 그의 제자 김정은에게 고급 민주주의 수업을 가르치면서 그가 북한의 로동당 위원장이 될 것을 꿈에도 몰랐다고 CNN 인터뷰를 통해 말했다.

김정은은 자신과 가장 친한 미카엘루와 또 다른 한 친구를 가끔 자신의 집으로 초대했다고 한다. 김정은이 살던 집은 스위스에서 흔히 볼 수 있는 다세대 주택으로, 호화로움과는 거리가 멀지만 조용한 지역에 위치하고 있으며 학교를 도보로 걸어다닐 만큼 가까운 곳에 있었다. 학교와 집이 있는 리베펠트(Liebefeld)는 유네스코 세계 문화유산인 베른 구시가지에 대중교통으로 10분 남짓밖에 떨어지지 않은 곳이다. 미카엘루는 김정은의 집에 갈 때마다 새롭고 맛있는 음식을 먹을 수 있어서 매우 좋았다고 말했다. 미카엘루는 김정은의 집에 갈 때마다 그의 여동생 김여정을 만났고 돌봐주는 어른들도 기억하고 있었는데, 이들은 후일 미국으로 망명한 김정은의 이모 고영숙 부부이다. 김정은의 농구사랑은 집에서도 계속됐다고 하며 미카엘루는 그와 마이클 조던이 나오는 미국 영화물을 보거나 같이 게임을 즐겼다고 했다. 이외에도 김정은은 이따금씩 스키를 타러 다녔다고 하는데, 마식령 스키장에 큰 공을 들인 걸 보면 스위스 생활이 확실히 큰 영향을 끼친 듯하다.

9학년이 끝날 때쯤 김정은은 북한으로 돌아가게 되었고 미카엘루에게 자신이 김정일의 아들이라는 사실을 밝혔다고 한다. 하지만 미카엘루는 이 말을 전혀 믿지 않았고 믿을 이유도 없었다고 한다.[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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맨 윗줄에서 왼쪽 세 번째 학생이 김정은이다. 혼자만 황인종이라서 구분이 쉽다. 또한 김정은은 트레이닝복을 많이 입었다. 그의 친구 마르코에 의하면 김정은의 옷장이 대부분 나이키 운동화와 나이키 트레이닝복들밖에 없을 정도로 아주 단순했다고 한다.

2013년 김정은은 미카엘루의 언론 인터뷰를 보고 오스트리아 빈에서 요리사로 일하고 있던 그에게 대사관 직원들을 보내 그를 평양으로 초청한다. 스포트라이트 측에 제공한 자료들에 따르면 미카엘루는 2012년 7월 21일부터 2박 3일간의 일정으로 평양을 방문했고 김정은을 만나 굉장한 환대를 받았다. 리설주는 물론 김여정도 참여한 식사자리가 있었고 김여정과도 반갑게 재회했다고 한다. 미카엘루는 자신이 알던 '박운'이 악명 높은 북한의 독재자가 되어서 자신 앞에 서자 어떻게 불러야 할까 잠시 고민도 했지만 그는 하던 대로 그를 '운'으로 불렀고 따뜻한 포옹을 주고받았다고 한다.

북한 귀국 후에는 2005년부터 1년간 전사한 대남공작원의 아들이라는 위장신분으로 인민군 하전사 체험도 했다고 한다. 신분을 감췄다고 하지만, 김정일의 아들이니 신분을 감춘 호위병 1명이 대동했다. 그렇지만 나름 열심히 군 생활을 했다고 한다. 당시 김정은은 신분을 감춘 채 최전방 부대 신병으로 입소해 대략 6개월 정도 고된 군생활을 체험했는데, 일반 병사들과 똑같이 불침번도 서고 얼차려도 받은 것으로 알려졌다. 이때 김정은을 잘 돌봐준 군인들은 김정은이 집권하자 크게 출세했으며 김정은을 갈궜던 군인들은 날벼락을 맡기도 했다. 특히 김정은을 잘 보살펴준 군대 선임병은 군관이 되고 김정은의 최측근 현송월과 결혼하는 등 크게 출세했다고 한다. # 하지만 주성하 기자의 보도에 따르면 현송월의 남편은 박시철이라는 사람인데 북한군 체육단인 7.27 사단 정치위원으로 겨우 중좌 계급밖에 안되고 김정은과 별 관계 없는 사람이라고 한다. #

병사체험 그 후 김일성군사종합대학에 들어가 포병학을 전공했다고 알려져 있다.

2.2. 후계자 생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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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래 김정은은 초창기에는 별 존재감이 없었다. 일설에는 어린 시절 할아버지 김일성이 살아 있을 때, 김일성은 김정남을 귀여워했고 김정은은 찬밥 신세였다고. 링크 내용대로라면 김일성은 김정은을 손자로 생각하지 않았다는 건데, 이 기사가 과장이라고 쳐도 일단 김정은의 친모 고용희가 정실이 아니었던 것은 사실이므로 신빙성은 높다.

대부분의 전문가들은 장남이며 언론 노출과 해외 출입이 잦았고 더불어 나이와 경력이 있던 김정남을 후계자로 지목하였으나, 김정남은 정식 결혼이 아니라 원래부터 유부녀와의 불륜의 소산이기 때문에 후계자가 될 가능성이 없었다. 김정은은 후처의 아들이기는 하지만, 정식결혼에서 태어났기 때문에 정통성은 김정은쪽이 강하다. 전문가들의 의견과는 달리 유일하게 김정일 곁에서 요리를 했던 일본인 요리사 후지모토 겐지는 일찍이 저서를 통해 김정은이 후계자가 될 가능성을 점쳤다. 동복형 김정철의 경우, " 김정일이 '여자아이 같다'는 평가를 내리며 후계자 감으로 생각하지 않았다"고 증언했다.[26] 후지모토는 김정은이 김정철과 달리 권력욕과 지도력이 있으며 어린 나이부터 부하들을 휘어잡는 능력을 엿보였다고 술회한다.

하지만 오랫동안 김정남 후계자론이 대세였으며 김정남 대세론이 몰락한 후에도 김정철 대세론에 밀려서 김정은은 후지모토 겐지가 소개한 일부 일화만 주야장천 거론되며 "걔 성깔 있다더라~ 물론 증거는 없음" 정도의 평가를 받으며 고용희의 자식들이 대세인가 아닌가를 소개할 때 곁다리로 이름만 나오는 수준이었고, 2004년 고용희 사망 때도 형에게 밀려 거의 스포트라이트를 받지 못하고 잊혀졌다. 이후 5년간 주목하는 사람이 없었으며 2008년 12월까지만 해도 김정철 세력과 김정남 세력이 알력다툼을 벌이고 있으며 김정철은 조선로동당 부부장 직위에 취임해서 적어도 북한의 실세가 되었다는 분석이 나올 정도였다.[27]

하지만 국정원에서는 김정은 승계를 어느 정도 눈치챈 것으로 보이며 김만복 국정원장이 국정원 출입 기자들에게 세번째 아들의 승계가 가장 유력하다고 귀띔한 일도 있었다. 그러던 중 2009년에 플리커에서 황한밍이라는 중국인이 북한 원산에서 촬영한 사진이 발견이 되었는데, 여기에 "만경대혈통과 백두혈통을 이은 청년대장 김정은"이라는 문구가 발견된다. 이것은 이런 칭호는 김정일만이 받았던 것이기 때문에 후계자로 주목을 받았고, 2009년 6월 국정원이 김정은 후계자 등극을 국회에 보고하면서 김정은이 후계자임이 만천하에 알려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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왼쪽부터 김정각, 리영호, 최룡해, 김정은.

2010년 1월 8일, 즉 그의 생일, 북한에선 TV에 연간 김일성 생일, 6.25전쟁 휴전일, 로동당 창단일로 딱 3번 트는 행사용 노래 <축배를 들자>를 틀었다. 그의 어릴 적 생일 축가로 지어진 노래 < 발걸음> 또한 가사를 개사하여 북한 어린이들 사이에서 자주 불러서 여러 가지로 후계자의 윤곽이 드러났다. 이후에도 위의 각주에서 언급된 시게무라 도시미쓰가 김정은은 오토바이 사고로 식물인간이 되어서 후계자가 아니라고 주장하면서 초를 쳤지만 2010년 9월에 열린 조선로동당 제3차 당대표자회에서 사상 처음으로 모습을 드러냈다. 거기에 당 중앙위 군사위원회 부위원장에 선출되는 등 후계자임이 명확해지면서 그야말로 개망신만 당했다.[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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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도 청년 시절에 문화예술계(라고는 하지만 선전선동에 매우 중요한 요직이다) 쪽에서 들이대기 시작하면서 10년 넘게 자기 입지를 강화해 나왔던 아버지인 김정일과 달리 북한에서 아무 경력도 없다가 갑자기 띄워주려다 보니 넣을 게 없어서 별 해괴한 선전을 해댄다고 한다. 3살 때부터 백발백중의 사격실력을 갖췄다든가, 140km 이상의 거리를 승용차로 운전했다든가, 7살 이전에 전차 등의 중장비를 조종했다는 양판소, 무협지 수준의 소설이 북한 측의 선전 내용이라고.

그러나 이 지도자에게 '권력 유지를 위한 능력' 말고 대체 뭐가 있단 말인가? 3살에 운전을 했니 백발백중이니 하는 말도 안 되는 선전은, 반대로 말하면 '그것밖에 선전할 것이 없어서'인 것이다. 차라리 저런 황당한 소리를 선전이라고 할 바에야, 어릴 적부터 북한의 나아갈 길을 걱정한 속 깊은 아이였다거나, 오만한 미국인들을 말빨로 꺾었다거나 하는 소잿거리로 선전하는 게 나았을 것이다. 실제로 이는 김정일 때 썼던 선전이다. 그들의 선전에 따르면 소련 대사가 거들먹거리며 김정일에게 "동무도 우리 소련 대학교에서 공부할 거죠?" 라고 묻자 "우리나라에도 충분히 좋은 대학교인 김일성종합대학이 있다. 난 거기서 공부할 거다." 라고 말해서 소련의 오만한 대국주의에 반대해 북한의 자존심을 세웠다는 이야기가 있는데(실제로 김일성대 경제학부로 진학하기는 했다), 3살 때 총을 쐈다느니 하는 것보다는 이런 게 더 현실적이지 않을까?[29]

그 밖에 김정일이 발에 땀나게 중국 러시아 등을 오가며 건수를 벌어오면, 북한 내부에서는 "김정은의 공이 컸다"는 식으로 밥을 떠먹여주었단다.

2.3. 집권 이후

2.3.1. 2011년~2017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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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정은을 걱정스럽게 바라보는 듯한 김정일의 모습. 이 당시 아들이 뿌듯하다는 듯이 웃기도 하고, 그야말로 아들을 바라보는 아버지의 인간적인 표정을 보여주고 있다. 그러나 두 부자가 저지른 만행들을 생각하면 한 편의 호러영화가 따로없다.

2011년 12월 17일, 김정일이 심근경색으로 갑작스럽게 사망하면서 김정은은 세계 최연소 국가 지도자가 되었다.

2011년 12월 19일, 조선중앙TV의 특별 방송에서도 김정일 추모위원회에서 가장 먼저 이름이 불리면서 권력 서열 1위로 차기 후계자로 낙점했다는 사실을 재확인했다.

대한민국의 전문가들은 "1994년 당시 김정일의 승계 과정보다 훨씬 불안정하지만 김정일이 구축해놓은 시스템과 중국의 지원으로 체제 붕괴나 내전까지는 이르지 않을 것"이라고 본다. 하지만 김정은의 지지 기반이 미약하기 때문에, 집권에 성공하더라도 김정일이 해왔던 1인 절대 독재는 불가능하며, 요직에 있는 고모 김경희, 고모부 장성택 등의 심복을 중심으로 하는 당의 세력 분포에 따른 집단 지도 체제로 바뀔 가능성이 높다고 예상했다. 이 과정에서 화폐개혁 실패의 책임을 물어 총살형에 처해졌다는 박남기처럼 내부의 권력 투쟁이 격화하면 많은 소련의 스탈린처럼 대숙청이 따를 가능성도 있다.[30][31]그러나 예측과는 달리 장성택은 숙청되었으며, 유력한 심복으로 지목되었던 김경희 역시 건강이 악화되었다는 소식이 들리며 잠적했다. 이를 통해 김정은이 정권 안정을 이제 자신하고 있다는 예측도 있다.

김정은의 상황을 김정일과 비교하면 다음과 같은 차이가 있다.
김정일은 1970년대 후반에 김일성의 후계자로 결정되면서 20년 가까히 정치 일선에 나섰으며 김일성 말년에는 계승 여부와 무관하게 이미 실권을 장악했다. 김정은이 정치 전면에 등장한 것은 2~3년에 지나지 않으며 계승은 받았으나 실권을 장악했는지는 모른다. 직책은 로동당 중앙군사위 부위원장이 다다.
반박 하지만 ' 김일성- 김정일의 직계 혈통'이자 '차기 지도자'로 김정일 생전에 인정받았으니 겉으로 보이는 직책은 크게 중요하지 않을 수도 있다. 북한은 혈통이 지배하는 전제 왕국이다.
김정일은 50대의 원숙한 나이였으나 김정은은 30대 초반의 젊은이일 뿐이다. 숙청이 이루어지고 있었던 것으로 보이지만 북한의 국회라 할 수 있는 조선로동당중앙위원회에서 김정은보다 어린 사람은 거의 없다. 김정은은 나이 든 간부들을 숙청하려 들 테고, 이 때문에 권력 분쟁이 일어날 가능성이 있다.
반박 다만 김정일이 생전에 김정은의 경쟁자로 여겨지는 이들을 미리미리 치워놨기 때문에 이점은 있다. 김평일은 해외를 떠돌며 유배된 상태고, 김정철은 몸이 너무나 병약해서 지도자로서는 부적합한 상태인 데다가 권력에 관심이 없어보인다. 김정남과 장성택은 아예 숙청, 암살되었다. 김정일처럼 확고하지는 않으나 그렇다고 딱히 강력한 대항 세력은 없다. 오히려 김정은이 나이가 어리기 때문에 최소 몇 십 년은 살 테니 '구심점'이 될 수 있다.
김정일 김일성의 첫 번째 아내 김정숙에게서 태어난 적장자(嫡長子)였으며 이것을 자신의 우월한 혈통성으로 내세우는 데 널리 써먹었다. 반면 김정은의 어머니는 재일교포 무용수 고용희다. 게다가 김정은은 장남은커녕 아들 중에서 막내다. 북한은 겉으로는 공산주의를 내세우고 있음에도 철저하게 혈통의 순수성을 따지고 조선시대 유교 사회처럼 신분을 중시하는 사회다.
따라서 고용희의 신분은 북한에서는 오랑캐 출신의 이나 다름없다. 이 때문인지 김정숙과는 달리 고용희는 신격화하지 않고, 존재 자체가 숨겨져 있는 듯하다.
반박 다만 그렇다고 김정일의 다른 자식들이 딱히 혈통 면에서 김정은보다 우월한 것은 아니다. 김정남의 어머니 성혜림도, 북한 사회에서 공식적으로 인정받은 존재는 아니었다. 그리고 고용희의 혈통이 그렇게 걸리면 날조하면 된다.[32] 그런데 모계혈통 같은 건 필요 없다. 김일성 라인이며 김일성 또는 김정일에게 인정받으면 그만이다.
김정일은 후계자 시절에 충분한 홍보 기간이 있었으나 김정은은 몇 년간의 홍보에도 아직 대중에 명확하게 각인된 인물이 아니다. 김정일도 그리 대중에 많이 나서는 인물은 아니었지만, 김정은은 현재까지는 김정일 이상으로 비밀스럽게 움직이며 대중에 나서지 않고 있다. 앞으로도 그럴 가능성이 높다. 물론 북한 정치에서 일반 대중은 그리 중요한 요소가 아니지만 김정은은 아직 할아버지나 아버지 수준의 카리스마가 없다는 평가가 지배적이다. 김정일이 어느 정도 자신의 세력을 구축하면서 권력을 잡았다면 김정은에게 있는 것은 진짜로 '조상의 후광'밖에 없다는 것.
반박 하지만, 2015년 현재 김정은은 안정적으로 승계에 성공했고, 특히 제2권력자로 여겨지던 고모부 장성택을 제거했다. 이제 김정은에게 대항할 만한 인물은 최룡해뿐인데, 그 최룡해마저도 2014년 1월에 김정은에게 절대적인 충성을 맹세하는 연설을 했다. 게다가 최룡해의 입장에서 보면 김정은에게 대들 여유조차 없다. 당장 황병서가 치고 올라와 최룡해의 라이벌로 급부상했기 때문이다.
아무리 ' 김일성 숭배'에 익숙한 북한 사람이라도, 난데없이 얼마 전에 나타난 새파란 20대 청년에게 복종하라는 것을 누가 쉽게 받아들이겠는가? 게다가 집권 얼마 전의 북한의 2009년 화폐개혁 같은 실정이 벌어진 탓에 민심이 매우 나빠졌다. 그래도 김정은은 김일성이 살아 생전의 외모와 같은 점에 희망을 걸지만 글쎄? 실제 생년을 정확히 알 수 없는 김정은이 북한에서는 1982년생으로 취급하는 것도 1942년생인 김정일과 정확하게 40년, 1912년생인 김일성과 정확하게 70년의 연령차가 난다는 상징성을 강조하기 위해서다.
반박 그래서인지 김정은은 포상과 처벌을 번갈아가며 남발하고 점점 자리를 잡아간다. 그리고 북한 사람들의 입장에서 보면, 아예 "어린 김정은을 계속 내세워야 실권자가 마구 바뀌는 대혼란보다는 낫다"는 판단을 할 확률이 높다. 일례로 새파랗게 어린 김정은이 원로인 장성택을 제거하고도 불구하고 아무도 이의를 제기하지 않았다. 게다가 김정은의 외모는 천연인지 성형인지 김일성과 상당부분 닮아 있어서 김일성을 생각나게 하는 얼굴과 몸매를 지니고 있다.
김정일은 어린 시절에는 일반인과 같은 삶을 살았다. 이 때문에 최소한의 현실 감각과 정치 감각은 유지했던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김정은은 태어날 때부터 장군가의 인간으로 철저하게 우대를 받고 길러졌기 때문에, 현실 감각과 정치 감각이 제대로일지 의심스럽다. 김정은은 조선 숙종이나 일본 도쿠가와 이에미츠처럼 날 때부터 지배자인 자이므로 왕조 시대의 인간을 현대에 집어던져 놓은 것과 같을 수도 있다.[33]
반박 그러나 주체사상 도입 이후 절대왕정국가가 된 상황에서 현실 감각을 운운하는 건 지나친 비약이고 설레발이다. 애초에 북한 사회 자체가 다른 민주주의 사회 내지는 공산주의 사회와는 전혀 다른 형태이기 때문에 딱히 어려울 건 없다. 추가로 김정은은 스위스 유학파이다. 이 때문에 되려 김정일보다 세상을 보는 안목은 더 넓다.

사망 발표 직후엔 일단은 김정일 장례에 모든 관심이 집중해서 별 탈은 없지만, 장례가 끝나는 순간부터 북한 내 정권들의 존폐 여부에 윤곽이 서서히 드러나기 시작할 것이다.

김정은 초기에 집단 지도 체제 안에서 정권 안정에 변수를 줄 수 있는 건 오극렬이 어떻게 나오는지에 달려있으며, 김정은의 나이가 아직 어리니 이복형 김정남이 위협적인 존재로 떠오른다. 여기에 아버지 김정일의 이복형제인 김평일까지 가세할 수도 있어, 안정적인 승계에 많은 어려움이 예상되었다.

그러나 정작 북한 내부에서는 김정은의 계승이 순조로운 듯하다. 상중임에도 상당히 빠르게 인사를 정비하는 모습이 보여서다. 대표적으로 25일 군부를 이끌고서 조문을 하는 모습에서 그의 고모부이자 핵심 실세로 예상하는 군부에 아무 직책이 없었던 장성택이 대장 직위를 달고 조문하는 모습이 잡혔다. 이 점은 현재 북한의 실세 장성택이 군부에도 영향력을 끼치기 시작했다는 것을 뜻하니 김정은 체제가 군부에도 작용되기 시작했다는 뜻이다. 이게 김정일의 생전 지시인지, 아니면 김정은 독단적으로 결정한 행위인지 모르겠지만 후자라면 김정일이 생전 '나와 닮았다'라고 한 발언처럼 김정일만큼의 정치 능력을 가졌다고도 볼 수 있다. 게다가 오극렬 못지 않은 권력자인 현철해가 김정은의 후견인을 자처하면서 김정일의 집권 체계는 예상했던 것보다 훨씬 견고하게 시작되었다.

2012년 4월 11일 열린 제4차 조선로동당 대표자회에서 아버지 김정일을 '영원한 총비서'로 추대하고 자신은 조선로동당 총비서 대신 '제1비서'라는 직책을 신설하여 취임해 조선로동당의 당권까지 장악했음을 공식화했다. 아버지 김정일이 김일성의 직책이던 '국가 주석' 자리를 김일성을 '영원한 주석'으로 추대하여 폐지시켰던 전철을 그대로 밟은 것. 그리고 4월 13일 열린 최고인민회의에서 아버지 김정일을 '영원한 국방위원장'으로 추대하고 자신은 다시 국방위원장 대신 국방위원회 '제1위원장'을 했다.

아버지를 영원한 총비서로 남겨서 자신이 국방위원장에 취임하나란 추측도 했으나, 국방위원장직 역시 영원한 국방위원장으로 만들어버림에 따라 헌법을 바꿔서 총비서가 아닌 제1비서로서 당 중앙군사위원장에 취임한 것에 비추어보면, 향후 김정은 체제의 북한은 당 중심일 가능성이 높다.

2016년 5월 6일, 36년 만에 조선로동당 제7차대회를 개최하였고, 5월 9일 새 직책인 조선로동당 위원장직을 신설하여 여기에 직접 자신이 취임하면서 완전히 당 중심으로 국가운영을 바꿨다. [34]

그리고 2016년 6월 29일 최고인민회의를 통해 국방위원회를 폐지하고 국무위원회를 신설하고 국무위원장에 추대되었다.[35]

2017년에는 제6차 핵실험을 통해 마침내 태평양 전쟁 당시 일본을 초토화시킨 리틀 보이 팻 맨을 능가하는 핵무기 개발 및 실험에 성공했고, 이로 인해 대북 제재가 더욱 강화되어 경제적으로 어려움을 겪는 상황에 몰렸다.

2.3.2. 2018년

집권 이후 대남 대미 적대 정책으로 일관하다가 180도 돌변하여 화해의 손을 내밀었다.

2018년 1월 1일, 김정은은 신년사를 발표하며 2018 평창 동계올림픽에 북한 선수단을 파견할 용의가 있다고 밝히며 대화의 손길을 내밀었다.[36] 이를 계기로 개회식 당일 남북 선수단 공동입장과 다음날 친서 전달 등이 이루어지며 남북관계가 새로운 국면을 맞게 되었다. 대한민국에서도 이에 호응하여 2018년 3월 정의용 국가안보실장을 특사를 파견했고, 남북정상회담뿐만 아니라 북미정상회담까지도 이어지게 되었다.

2018년 3월 25일부터 3월 28일까지 시진핑 국가주석의 초청으로 집권 이후 처음으로 태양호를 타고 방중하여 베이징에서 시진핑 국가주석과 북중정상회담을 개최했다. 대한민국과 미국과의 관계 개선에 더불어 중국과의 관계 개선에도 나섰으며 북중정상회담을 통해 본격적으로 국제 외교에 자신의 모습을 공식적으로 나타내게 되었다.

2018년 4월 27일에 열린 2018 제1차 남북정상회담에서 김정은은 문재인 대통령과 만남을 가지며 판문점 선언이라는 성과를 거둔다. 이때 김정은은 북핵(군사적 성취)보다 자신들의 정권 존립이 더 중요하다는 걸 드러냈고 체제 안전만 보장된다면 언제든지 핵무기는 포기할 수 있다며 미국, 대한민국 등에게 핵무기 포기에 대한 의지를 강하게 내비쳤다.

2018년 5월 7일부터 5월 8일에 이번에는 참매 1호로 재차 방중하여 시진핑 국가주석과 다롄에서 2차 북중정상회담을 가졌다.

2018년 5월 10일에는 방북한 폼페이오 미 국무장관 편을 통해 북한에 억류된 한국계 미국인 3명을 풀어줬다.

2018년 5월 16일 0시 30분에 김정은이 한미 군사훈련에 대한 불만을 드러내며 고위급회담을 취소했다.

2018년 5월 26일 15시 판문점에서 2018 제2차 남북정상회담을 개최하며 교착상태에 빠진 남북관계와 북미관계를 완화

2018년 6월 12일 싱가포르에서 북미정상회담을 가졌다.

6월 19일부터 6월 20일까지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의 초청을 받아 1박 2일로 참매 1호로 방중하여 시진핑 국가주석과 베이징에서 3차 북중정상회담을 가졌다. 극비리에 이루어진 3월 1차 방중과 5월 2차 방중과는 달리 첫 공식 방중이었다.

2018년 9월 18일부터 9월 20일까지 2박 3일간 평양에서 2018 제3차 남북정상회담을 개최하였다. 여기서 9월 평양공동선언이라는 성과를 냈는데 특히 연내 서울 방문 추진이라는 파격적인 결과가 나왔다. 2018년 서울 답방은 무산됐지만, 2019년이나 그 이후라도 만약 김정은이 실제로 서울을 방문하게 된다면 북한의 최고지도자로는 처음으로 서울을 공식 방문하게 되는 사례가 된다.

2.3.3. 2019년 이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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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통치

3.1. 개혁·개방

2018년 4월 27일에 열린 남북정상회담에서 김정은은 문재인 대통령에게 베트남식 개혁·개방을 추진하고 싶고, 획기적인 경제 개발을 통해 북한 동아시아의 주요국으로 부상시키겠다는 야심을 내비쳤다고 한다. 실제로 북한이 그동안 베트남식 개혁·개방에 대한 연구 성과를 상당히 축적했다고도 한다.

베트남 북한, 중국처럼 공산당 일당 독재 체제를 유지하고 있는 사회주의 국가다. 베트남의 개혁 개방 정책은 ' 도이머이'(쇄신)라는 이름으로 불리며, 중국처럼 정치적으로는 공산당 일당 독재 체제라는 기본 골격을 유지하면서 경제적으로는 시장을 개방하고 해외 자본을 유치해 시장 경제 자본주의를 접목시킨 정책으로 1986년 응우옌 반 린 서기장이 취임한 후 제6차 공산당대회에서 처음 도입했다. 도이머이 이후 베트남은 연평균 7.6%의 고도 성장을 달성하고 정책 추진 20년 만인 2006년에 세계무역기구에 150번 째 회원국으로 가입했다. 이는 일부 지역에 한해 외국인 투자를 허용하고 거대한 내수를 바탕으로 생산성을 개선시킨 중국식 개혁·개방과는 차이가 있다. 경제적으로는 중국보다 자본에 대한 통제가 덜하고, 정치적으로는 미국과 보다 친밀한 관계를 유지하고 있다는 점이 특징이다.

김정일과 달리 스위스에서 유학한 김정은은 서유럽의 발전상을 보면서 북한 경제에 서구식 제도를 대거 도입할 필요가 있다는 생각을 갖게 된 것으로 보인다. 가까운 중국의 개혁·개방 경험이 있지만 경제 규모나 국제 사회에서의 지위 등을 감안할 때 북한이 처한 여건이 중국과는 큰 차이가 있기 때문에, 2000년대 초반 위키리크스가 공개한 미국 정부의 외교 전문에 따르면 당시 김정일의 후계자 후보로 부상한 김정은은 베트남식 개혁을 선호한 것으로 드러난 바 있다.

또한 김정은은 중국에 대한 견제 심리가 있다고 알려져 있는 이유는 중국의 내정 간섭 때문으로 장성택, 김정남 등 친중파 숙청의 이유도 이와 관련 있다고 추정된다. 이 때문에 미국과의 관계 개선을 통해 미국 중국 사이에서 견제와 균형을 취하는 줄타기 전략을 취할 가능성이 높다.[37][38][39] 이는 김일성 소련 중국의 사이가 소원해졌을 때 양국 간 줄 타기 외교를 하며 실리를 취하려 했던 행보와 비슷하다고 볼 수 있을 것 같다.

내부적으로는 아버지 선군정치 덕분에 세력이 비대해진 북한 군부를 반복된 숙청을 통해 약화시키고 길들이는데도 성공한 것 같다. 북한 군부는 우리나라의 안전과 마찬가지로 한반도-동북아 평화와 개혁 개방의 문제가 될 수 있었다.

김정은은 김정일과 달리 젊고, 자본주의 국가에서 살아본 경험도 있다. 따라서 할아버지 아버지처럼 고립된 세계 최빈국 안에서만 신으로 숭상 받다가 죽는 전철을 밟고 싶지 않은 마음이 있을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 그러기 위해선 경제 문제가 가장 먼저 풀어야 할 숙제라고 생각할 것이다.

그러나 김정은은 집권 첫 6년 동안 군부를 통제하는 것에 주력했고 이를 위해 선대에 이어 핵무기 실험을 이어 나갔다. 대외적으로는 미국이 침공해올 경우를 대비한 '보험'이라지만, 내부적으로는 핵무기를 앞세우면 재래식 무기의 발언권이 약해진다는 이유도 있을 것이다. 김정은이 집권하고 '선군정치의 시대'에서 '선당정치의 시대'로 변하자, 과거 선군정치의 영광과 특혜를 잊지 못하는 일부 군인들의 불만이 있다고 한다. 그간 공포의 대명사였던 북한군의 약탈과 횡포도 눈에 띄게 사라졌다고. 북 소장파 군인, 김정은 ‘선당정치’에 불만, 김정일 '선군정치' vs 김정은 '선당정치'

또한 김정은은 그간 군부가 누려온 각종 특혜를 회수하기도 했는데 이 과정에서 일부 군부의 불만이 있었지만 큰 갈등으로 치닫지 않았다. 이는 김정은이 그런 반발을 제 아무리 사소한 것이라도 그냥 넘기지 않는 냉엄함을 보여주었기 때문도 있겠지만, 핵무기 개발로 인한 국제 사회의 경제 제재와, 세계 최강국과 1년 내내 얼굴을 맞대고 살아야 하는 위기감을 느낀 북한의 엘리트층이 김정은과 운명 공동체라는 의식이 있었기 때문으로 해석된다.

다만 이와 다른 시각도 있을 수 있다. 북한은 매우 폐쇄적인 국가라서 권력층의 내부를 직접 취재하는 것이 불가능하여서 무슨 의도로 정책을 내놓는지를 알아내는 것이 어렵고, 이에 따라 각 정치권에 입맛에 맞는 주장을 할 수 있기 때문이다. 막말로 북한이 어떤 도발을 해도 '이것은 대화를 하자는 뜻이다'라고 설명할 수도 있으며, 반대로 북한이 어떠한 유화적 제스처를 취해도 면종복배 식의 태도를 취하는 것이라고 설명할 수 있다. 2019년 하노이 회담 결렬 이후로는 표면적으로는 고립주의, 폐쇄주의 성향이 심해지고 있다. “굶어죽고 얼어죽을지언정 버릴수 없는것이 민족자존”이라며 “우리 식대로 살아나가자는 당정책보다 더 좋은 것은 없다”는 식의 주장이 노동신문에 등장하기 시작하였다. 2020년의 연락사무소 폭파는 대화로 북한과 교류의 물꼬를 트고자 하는 더불어민주당마저 비난한 사건이었다. 2021년에는 국가정보원도 인정하였던, 북한이 전례가 없던 외부 문화 단속법인 반동사상문화배격법 채택이 확인되고 #, 반사회주의를 적발할 연합지휘부 조직에 나서 주민 통제에 열을 올린다는 분석이 있다.

3.2. 숙청

할아버지 아버지에 비해 권력 승계 당시의 불안정한 정치 기반을 의식하여, 자신의 고모부이자 정치적 후견인인 장성택과 이복 형 김정남으로 대표되는 친족들을 비롯해 많은 군 장성들을 사소한 사유만으로도 목숨을 빼앗는 공포 정치를 펼쳤고, 그 덕에 후계자 수업이 덜 끝난 상태에서, 그것도 20대 후반의 젊은 나이에 최고 권력에 올랐음에도 불구하고 북한 권력 세계를 확실히 휘어 잡은 것 같기는 하다.

어쨌든 김정은 집권 초기 무분별 대규모 숙청을 통한 공포 정치는, 그의 정치적 입지가 북한의 건국자인 김일성과, 권좌에 오르기까지 수십 년간을 권력 핵심에서 복무하며 정무 감각을 익히고 세력을 다진 김정일에 비해 비교적 불안정하다는 것을 의미한다고 볼 수 있다.

국정원에 따르면 김정은이 권력 전면에 나선 2012년 7월 이후 사형 당한 고위 간부는 100여 명에 달한다. 전술한 국정원의 발표 소스는 국정원 산하 국가안보전략연구원이 2016년에 발간한 『김정은 집권 5년 실정백서』를 인용한 것으로써 국정원 산하 김정은 집권 이후 총살‧처형된 간부들은 2016년 기준 총 140여 명으로 2012년 3명, 2013년 30여 명, 2014년 40여 명, 2015년 60여 명이라고 한다.

그러나 이는 김정일 집권 초기에 김정일이 권력 기반을 다지기 위해 자행한 심화조 사건에서 희생당한 수천 명에서 수만 명에 이르는 사람 숫자보다 훨씬 적은 것으로, 오히려 김정일에 비해 권력 획득 과정이 안정적이거나, 큰 차이가 없음을 보여주는 반증이라는 의견도 있다.
김정은의 첫 표적은 김정일 사망 이후 군부 실세로 꼽히던 리영호 인민군 총참모장이었다. 리영호 김정일의 죽음이 임박하던 시절, 인민군 총참모장-당 정치국 상무위원-당 중앙군사위원회 부위원장으로 파격 승진을 했던 인물로, 김정일이 김정은의 사람으로 쓰려고 발탁한 인물인 것으로 추정되는데, 김정은은 2012년 7월 리영호를 ('일신 상의 이유로 모든 보직에서 물러났다'고 표면상 밝혔지만) 해임해 버렸다.

그의 해임은 김정은의 군 통제 강화 과정에서 비협조적 태도를 취한 데 대한 문책성 인사로 알려졌다. 리영호를 포함해 김정일의 장례식 때 영구차를 호위했던 김정각, 김영춘, 우동측 등 ‘군부 4인방’도 김정은 시대 개막 이후 모두 숙청되거나 일선에서 물러났다.

그러나 세종연구소와 대통령 직속 정책기획위원회가 주최한 2018년 4월 18일의 세종국가포럼의 발표에 의하면, 속칭 영구차 호송 7인방이 숙청된 일화는 과장된 면이 있다고 한다. 박근혜 정부는 김정은의 잔학성을 강조하기 위해 영구차 호송 7인방이 거의 숙청되었다고 말하여 왔다.

이에 따라 다수 언론들은 “거듭된 숙청으로 김정일 사망 당시 김정은의 후견인으로 점쳐졌던 총참모장 리영호, 인민무력부장 김영춘 등 이른바 ‘운구차 7인방’은 모두 권력의 자리에서 물러나게 됐다”고 주장하면서 ‘운구차 7인방’이 대부분 숙청된 것처럼 왜곡 보도해왔다.

그러나 리영호 총참모장은 과거 군부가 관장하던 외화벌이 사업을 당과 내각으로 이전하는 데 반발하다가 2012년 7월에 해임되었다는 것이 대체적인 분석이며 김정은은 동년 5월 14일 “군대가 너무 돈 맛을 들였다. 총과 총알은 당과 국가가 만들어 주겠으니 군대는 싸움만 잘 하면 된다”라고도 지적한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그렇다면 리영호의 해임은 김정은의 1인 지배 체제 강화와는 무관하게 북한 군부를 사정(査正)하는 과정에서 이루어진 숙청이라고 보는 것이 적절할 것이다. ‘운구차 7인방’ 중 김기남과 최태복 당 중앙위원회 부위원장은 2017년 10월 당 중앙위원회 제7기 제2차 전원회의를 계기로 은퇴했는데 당시 그들의 나이는 각기 88세와 87세였다. 그러므로 이들의 퇴장 사유는 단순한 고령 때문일 것이다.

또한 김영춘은 2013년 4월 인민무력부장직에서 해임되었지만 당 중앙위원회 군사부장직을 맡고 있다가 은퇴했으므로 숙청과는 무관하다. 2013년에 김영춘의 나이가 77세였으므로 당시 그의 인민무력부장 해임도 나이에 따른 것으로 판단할 수 있다.

김정각은 2013년 4월 총정치국 제1부국장에서 인민무력부장으로 승진했다가 김일성군사종합대학 총장직으로 자리를 옮겼다. 그 후 김정각은 인민무력성 제1부상직으로 다시 이동했다가 2018년에는 인민군 총정치국장이라는 군부 1인자 직책에 잠깐 올랐다가 2018년 5월 평양시 당 위원장을 지냈던 김수길에게 총정치국장 자리를 넘긴 걸로 나타났다.

마지막으로 우동측 전 국가안전보위부 제1부부장은 2012년 3월 뇌출혈로 쓰러진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그러므로 그의 퇴장도 정치적인 숙청과는 전혀 무관하다.

이처럼 ‘운구차 7인방’의 운명을 분석해보면 장성택을 제외하고는 김정은의 1인 지배체제 강화를 위해 숙청된 인물은 없다는 것이 세종연구소의 발표 내용이다.[40]

2013년 12월에는 자신의 고모부이자 김정일의 사망 이후 북한 2인자로 군림하던 장성택을 전격 처형, 전 세계를 충격에 빠뜨렸다. 죄목 중에는 김정은에 대해 ‘왼새끼를 꼬며(딴마음을 먹고)’, 김정은을 추대하는 자리에서 ‘건성건성 박수를 쳤다’는 것도 있었다.

한미 당국이 북한 체제에 커다란 파급력을 낳으며 내부 쿠데타까지 몰고 올 수 있을 것으로 기대했던 장성택의 허망한 죽음이 의외로 그냥저냥 지나가자 북한 체제의 견고함[41]이 상상 이상이라는 평가도 나오고 있다. 장성택 김정일의 여동생인 김경희의 남편이자, 김정일 정권 시절에는 비록 실각과 복권을 여러 차례 반복했지만 늘 권력 2인자 자리를 놓지 않았던 최고 실력자 중 한 사람이었다.

세종연구소는 세종국가포럼의 발표 내용에서 고모부인 장성택이 처형된 이유로 '반혁명적인 종파행위'와 '방탕하고 난잡한 여자 관계'를 들고 있다. 여기서 '종파'(宗派)란 '개인이나 분파의 이익을 추구하며 당과 '혁명운동'을 분열·파괴하는 집단'을 가리킨다. 장성택이 김정은에 대한 반란을 꾀했다는 것으로, 김정은은 장성택을 제거할 이유가 있었던 셈이다.

2015년 4월에는 현영철 인민무력부장이 재판 절차도 없이 대공화기인 고사총으로 공개 처형되었다. 처형 이유는 ‘김정은이 참석한 행사에서 꾸벅꾸벅 졸았기 때문’이었다.

현영철의 처형 한 달 뒤인 2015년 5월 김정은은 최영건 부총리도 처형했다. 최영건은 김정은이 추진하는 산림녹화정책과 관련해 불만을 표출하고 성과를 내지 못했다는 것을 이유로 처형된 것으로 알려졌다. 2016년 2월에는 우리 군대의 합참의장에 해당하는 리영길 인민군 총참모장(군부 서열 3위)을 처형했다. 죄목은 ‘종파분자 및 세도·비리’인 것으로 전해졌다. ‘반(反)김정은 파벌을 구축하고 권력 남용 비리를 저질렀다’는 얘기다.

그러나 2016년 5월, 리영길의 생존이 확인되면서 국정원의 잘못된 정보임이 판명났다. 로동당 기관지 <로동신문>이 10일 보도한 조선로동당 중앙위원회 제7기 제1차 전원회의의 인선 내용을 보면, 리영길 전 총참모장이 중앙군사위원, 정치국 후보위원에 선임됐다. 가장 최근인 17년 4월 15일에는 대장으로 진급한 상태다.[42]

2017년 2월, 김정은의 이복 형인 김정남이 말레이시아 쿠알라룸푸르 국제공항에서 화학무기인 VX 액체로 살해되는 사건이 발생했다. 자세한 내용은 김정남 피살 사건을 참조.

한편 세종연구소는 2018년 4월의 발표에서 다수의 전문가들은 김정은의 숙청이 김일정과 김정일 시대의 ‘즉흥적’인 숙청과는 다르다고 주장하였다. 국가정보원 산하 국가안보전략연구원이 2016년에 발간한 『김정은 집권 5년 실정백서』에 따르면, 김정은 집권 이후 총살‧처형된 간부들은 2016년 기준 총 140여 명으로 2012년 3명, 2013년 30여 명, 2014년 40여 명, 2015년 60여 명이라고 한다.

그런데 김일성 사망 후인 1997년부터 1999년까지 약 3년 동안 이른바 심화조 사건을 통해 숙청된 간부들은 아무리 최소로 잡아도 2,000 명 정도로 추산된다. 김정은 집권 이후 140여 명의 간부가 숙청되었다면 그 숫자가 적은 것은 아니지만 김정일 시대 심화조 사건으로 숙청된 간부들의 약 7% 정도에 불과한 수치다.

게다가 '심화조 사건' 때 최대 25,000여 명이 숙청되거나 유배되었다는 주장도 있기에 이 수치와 비교하면 김정은이 숙청한 숫자는 김정일과 비교했을 때 더욱 낮아질 수 있다. 심화조 사건으로 당시 핵심 실세였던 문성술 당 중앙위원회 조직지도부 본부당 책임비서까지 처형되었으므로 김정일 시대에도 핵심 간부들이 결코 숙청에서 자유로운 것은 아니었다는 것이다.

그리고 박근혜 정부 시기 국정원이 ‘숙청’되었다고 발표한 북한 간부들 중 일부는 얼마 후 복권되거나 다른 직책으로 이동한 것이 확인되고 있어 실제 숙청 규모는 국정원이 발표한 것보다 훨씬 적을 수 있다. 이는 현송월이나 같은 음악단 단원들, 리영길이 처형당했다는 잘못된 국정원 발 정보가 유통되었다는 것에서 드러난다. 김정은은 권력이 안정된 이후 후기 소련처럼 온건한 숙청(최고 권력에 위협되지 않는 간부는 살려두는 숙청)을 실행하고 있다. 또한 김일성이나 김정일처럼 잔혹한 대량 숙청을 하는 모습을 보여주지는 않고 있다.

2018년 기준으로 김정은은 북한의 오랜 핵무기 개발로 인해 받고 있는 국제 사회의 각종 경제 및 인적 제재를 돌파하고, 북한 경제를 치유하기 위해 문재인 대통령과 마이크 폼페이오 국무장관, 시진핑 국가주석 등과 소위 "정상 국가의 수장"으로서 외교를 한 상태이기 때문이다. 문재인 정부의 대북전략 중 하나가 김정은을 외교 무대에 데뷔시켜서 국제적 규범을 따르도록 만들겠다는 것이었는데, 어쩌면 성공한 셈이다. 심지어 기자회견 형식으로 선언문까지 냈는데 이는 김정은이 국제 외교 무대에 정식으로 데뷔했음을 알려주는 확실한 신호다. 이렇기 때문에 김일성, 김정일 시기와는 다른 온건한 정책을 펼치는 것이라고 볼 수 있다. 선대에서 주로 이루어져 왔던 인권 문제나 무자비한 숙청 문제에 관한 지적들이 정식 외교 무대에서 계속 거론될 수 있기 때문이다.

한편 미국이 원하는 당장의 대가는 북한이 현재 보유하고 있는 핵무기를 모두 없애고, 앞으로도 독단적인 핵무기 개발을 하지 않겠다는 의지 표명과 행동을 보여주는 것이기에 미국이 입에 담지는 않고 있지만, 후일 북한의 최대 외교적 숙원인 미국과의 정식 수교가 이루어진다면 미국에 의해서 북한내 인권 문제가 충분히 거론될 수 있다. 앞으로 북미 간의 협상과 거래의 결과에 따라서 김씨일가, 특히 김일성, 김정일이 저질러 왔던 인권 탄압과 숙청의 강도가 줄어들 가능성이 있다. 김정은 정권이 온건한 숙청을 하는 지금보다 더 완화될 일말의 가능성이 있다는 것이다. 그 결과로, 김정은이 계속해서 인권 탄압을 멈추고자 하는 행보를 보이면 미국에 반항한 인권탄압 독재자의 비참한 말로는 걷게 되지 않을 수도 있다.

아래는 김정은에 의해 숙청당한 것으로 확인된 인물들의 명단이다.

3.3. 선전

북한 정권이 김정은의 가장 대표적인 업적으로 홍보하는 것이 바로 2009년에 북한에서 자체 기술을 확보했다는 컴퓨터 수치제어 공작 기계의 핵심 기술인 CNC(Computerized Numerical Control)이다. 북한 언론에서는 이것을 김정은의 치적이라 주장하고, "과학 기술에 능한 지도자"라며 CNC 홍보 노래까지 만들어 북한 주민들에게 전파한다. 해당 노래는 유튜브에서 'CNC Song'으로 검색하면 들어볼 수 있다. 영상 링크

하지만 CNC 기술은 이미 1940년대 말~1950년대에 미국이 개발해 현재는 전 세계적으로 공작 기계의 기본 기능으로 여길 만큼 매우 보편화되었다. 물론 미국이 1940년대 개발했다고 이 기계가 만들기 쉬운 건 절대 아니다. 일본은 1967년, 한국은 1977년이 되어서야 자체적인 CNC 개발에 성공했다. 게다가 이것을 못 만드는 나라도 많은데 굳이 안 만드는 이유는 기술력이 부족해서라기보다는 CNC 공작기계를 수입하는 것이 개발하는 것보다 싸게 먹혀서라고 한다.

어쨌든 이 기술을 2010년에 와서야 '과학 기술의 혁명'이라고 선전하는 것을 보면 북한이 시대에 얼마나 뒤떨어져 있는지 알 수 있다. 뿐만 아니라, 아무리 CNC 절삭가공기계 개발에 성공했다 하더라도 생산된 제품의 품질은 현재 우리나라에서 생산되는 CNC 양산 가공품보다 더 열악할 것이라 예상된다.

탈북자를 사살하라는 명령을 내렸다고 알려져 있으며, 그 때문인지 2010~2011년에는 대한민국으로 입국하는 탈북자 수가 많이 줄었다. 탈출이 힘드니 포기하는 사람이 늘어난 모양이다. 그러나 대한민국으로 들어오는 사람 수는 줄었지만, 중국으로 탈북하는 숫자는 여전한 듯. 하지만 중국에 탈북자 체포를 강력하게 요청했고, 중국 경찰이 빡세게 잡아 들이고 있어서, 섣불리 대한민국으로 가려는 시도 자체를 못하고 있다고 한다. 그래서 탈북자가 중국에 계속 정체되고 있는 상황. 이런 중국 경찰의 행태가 계속되자 미 의회기구에서 공개적으로 비판 성명을 내기도 했다. 미 의회기구 "중국, 올들어 탈북자 단속 강화" 비판

탈북하는 인물의 이야기를 들어보면 실제로 잘 살았다는 말을 하여 계층이 높아진 것 아니냐는 주장도 많은데, 탈북자 문서에서도 보면 주관적 경제 계층은 안바뀌었다. 너무 넘어가기 힘들면 돈은 한국 가족이 댄다. 음지에서의 사경제가 발달하여 주민들은 이제 돈을 버는 방법을 알게 된 것이다. 하지만 정치적인 상류층이 탈북하는 경향이 느는 것은 맞다. 정치활동 위주의 탈북자는 김정일 집권 말기 이후부터 탈북한 사람들이 많다. 김정은 집권 이후 정치계에 만연한 숙청 등으로 인한 정치적 혼란함과, 더불어 시장화에 따른 외부 문물 유입[43] 여파로 이제는 자유 국가들의 문물을 더 쉽게 접할 수 있게 되면서 다방면으로 북한의 체제에 염증을 느끼는 내부 분위기가 주민 사이에서 점차 팽배해지면서, 이들이 탈북에 앞장서게 됨으로서 탈북자들의 양상이 크게 변화한 것이다.

먹고사는 문제가 해결된 사람들도 탈북했다는 건, 과거처럼 경제적인 이유보다는 정치·사회적 이유로 탈북을 하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쉽게 이야기해서 '미래가 없는 사회에서는 잘 먹고 잘 살아봤자 의미가 없다'는 것. 인간의 근본 욕구가 채워지게 될 경우, 다음은 삶의 질을 높이는 것에 눈을 옮긴다. 이것은 역사를 통해 수차례 나타난다. 당장 대한민국만 해도 경제개발 5개년 계획 등을 거쳐 먹고 사는 문제가 해소되는 순간부터, 군부독재를 비판하고 민주주의를 추구하는 운동이 활발히 전개되었다. 이처럼 탈북하는 계층이 부유해진다는 것은 북한 체제를 떠받치고 있는 기반 자체가 동요하고 있다는 것을 의미하는 것이다. 김정은의 탈북자에 대한 잔혹한 처벌 명령은, 그가 북한 내의 현 탈북자 상황의 의미와 특성을 아주 명확하게 인식하고 있음을 보여주는 것이다.

아래 3개 치적 시설들은 나름대로 시설이 고급화되어 있다. 문제는 관광객이 오기에는 교통이 아주 불편하며 무엇보다 이 시설이 제대로 작동하려면 전기가 안정적으로 공급되어야 하는데 전기 공급부족으로 제대로 돌아가지 않는다는 것이다. 애초에 굶주리는 인민들을 먹일 돈으로 이런 것들을 짓는다는 것 자체가 해괴한 짓이다.

한편 선전 활동 중에서 특이한 점으로, 후계자로 공식 등장해서 집권한 이후 북한 정권에서 김정은의 생일(1월 8일)을 공식적으로 기념, 축하한 사례가 아직 한번도 없다. 1월 8일이 김정은의 생일임이 밝혀진 것도, 데니스 로드맨이 방북해서 농구 경기를 치룬 뒤 북한 매체에서 '원수님(김정은)의 생일을 기념하여 1월 8일 농구 경기를 열었다'라고 공개한 뒤에야 알려진 것이다. 김일성 김정일의 생일은 각각 '태양절'(4월 15일)과 '광명성절'(2월 16일)로 부르며[44] 모두 공휴일로 지정하고 거창한 축하 행사를 치루는 것과는 대조적이다. 아직 김정은의 나이가 어리고 선대와 같은 반열에 올라서 기념하기엔 부담스러워서 일부러 기피하는 것으로 추정한다. 연합뉴스 기사

4. 특징

4.1. 성격

후지모토 겐지의 증언에 따르면 아버지 김정일은 아들인 김정은이 자신을 꼭 닮았다며 만족스러워 했다고 한다. 이 문단에 서술된 내용 중에는 후지모토 겐지의 저서를 인용한 부분이 많다.

' 여색(女色)'에 대해선 주장이 엇갈린다. 김정일처럼 똑같이 기쁨조와 같은 미녀들을 뽑아서 즐긴다는 주장도 있지만, 반대로 기존의 기쁨조를 해체하고 비서나 별장 관리 등의 업무를 모두 남자 직원에게 맡겼다는 분석도 있다. 2013년 말에 장성택이 처형되자 과거 김씨 일가를 직접 알고 지낸 사람인 후지모토 겐지는 이에 대해 다소 흥미로운 발언을 했는데, 김정은이 여러 여자와 만나는 것을 극도로 꺼리며 이 때문에 기쁨조를 창시하는 등의 문란한 가치관을 지닌 장성택을 제거해버렸다고 증언했고 여자관계가 대단히 문란했던 아버지 김정일마저도 여러 여자들과 관계를 갖는 것을 증오했다고 더 확실히 표현하기까지 했다. 이것이 장성택 처형의 유일한 원인이라고 보긴 힘들겠지만 후지모토의 증언이 맞다면 애비 마냥 여성편력이 난잡한 성향은 아닌 것으로 추정된다. 물론 아돌프 히틀러처럼 여색을 멀리하는 독재자들은 이미 역사적으로 존재해으므로[45] 김정은이 좋은 사람이었다고 보기엔 부적절하다.[46]

일단 아내인 리설주와는 공식 석상에 함께 등장하는 모습이 매우 자주 나와서 단순히 권력자의 아내가 아니라 마치 공식적인 ' 퍼스트 레이디'의 위치를 마련해주는 듯한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 과거 김정일의 아내들이 단순히 가정 내에서 내조만 하거나 비서 수준으로 김정일을 보좌한 정도에 머문 것과는 대조적이다.

태영호 前 공사의 저서인 '3층 서기실의 암호'에 따르면 2018년 4월 정상회담 뒤 언론과 온라인에서 김정은에 대한 찬양 일색의 인물평이 나왔지만 김정은은 고모부를 대공 기관총으로 처형한 것과 형인 김정남을 암살했다는 것을 대중들이 잊고 있다고 말하며 여러 일화들을 서술해 놓았다. 책에 의하면 7월 27일은 휴전협정일이지만 북한에서는 전승절로 기념하고 있는데, 2013년 7월 재개관을 앞둔 조국해방전쟁승리기념관(전쟁기념관)에 화재가 발생했다. 보고를 받은 김정은이 부리나케 달려와 아직도 불바다인 지하에 구둣발로 들어가더니, 수백 명이 진화와 정리 작업을 벌이고 있었는데 김정은은 “내가 그렇게 불조심하라고 했는데 주의 안 하고 무엇을 했느냐”며 고래고래 고함을 지르면서 쌍욕을 했다는 일화가 있다. (p.518)

2015년 5월에는 김정은이 자라양식공장을 ‘현지지도’했었는데, 공장에 있던 새끼 자라가 거의 죽어 있었다. 김정은이 이유를 묻자 공장 지배인은 전기와 사료 부족을 이유로 들었으나 김정은은 “전기, 사료, 설비 문제 때문에 생산을 정상화하지 못하고 있다는 것은 말도 안 되는 넋두리”라고 심하게 질책했다.

한편 2016년 대통령 당선 이전 "김정은과 대화할 수도 있다"라는 트럼프 발언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느냐는 APTN 특파원의 질문에 최고인민회의 상임위원회 양형섭 부위원장은 “우리는 대화 자체는 반대하지 않는다. 대화는 전쟁 때도 한다. 대화 못할 이유는 없다”고 했다. 외무성이 사전에 작성해 준 원고대로 ‘우리는 언제나 대화에 임할 준비가 되어 있다’는 취지에서 한 말이었다. 그러자 김정은은 야밤에 외무성 김계관 1부상에게 전화를 걸어 이렇게 질책했다. “야, 그 늙은이(양형섭)가 어떻게 내 승인도 없이 트럼프와 대화에 임하겠다고 말할 수 있는가. 나를 대표해서 말할 수 있는 권한을 누가 줬는가. 나는 조선의 지도자이고 트럼프는 대통령도 안 된 후보인데 같은 급이 아니다. 외무성이 그 늙은이한테 그리 말하라고 써줬는가.” 양형섭은 1925년 생으로 알려져 있으며 김일성의 사촌 매부다. 그런 인물을 김정은은 ‘늙은이’라고 칭하며 원색적인 비난을 퍼부었던 것이다.

2014년 7월 시진핑이 북한을 방문하지 않고 대한민국의 박근혜 대통령과 만나자 군 장성들을 모아 놓고 시진핑 개새끼라고 욕을 했으며, 중국과의 교류를 중단하고 러시아, 동남아로 교류를 하라고 지시했다. # 주성하 기자는 김정은이 인테리어 집착증에 걸렸다는 정신과 소견을 냈다. 1년 반동안 회의실 인테리어를 10번이나 바꾸는 등 회의실 치장에 돈을 퍼붓고 있다는 게 북한이 공개한 사진자료만으로도 드러난다. 도청에 대한 히스테리적인 두려움 때문에 인테리어를 바꾸는 것일 수도 있다.

4.2. 건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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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년 사진. 이때까진 그래도 통통한 정도였다면 이 이후에는 살이 매우 찌고 건강이 매우 나빠져서, 이젠 이 사진이 리즈 시절이 되어 버렸다. 이때까지만 해도 하도 많이 봐서 이젠 동네 형 느낌까지 난다는 말도 우스겟소리도 있었다.

김정일의 전속 요리사였던 후지모토 겐지의 말에 따르면, 김정은의 인상을 "어렸을 때보다 얼굴에 살이 많이 붙었다"면서 김 위원장으로부터 "많이 먹어 관록을 붙이라", "위에 있는(높은) 사람이 가늘어선(말라선) 안 된다"는 얘기를 많이 들었다고 하며, 지도자의 풍채를 만들기 위해 일부러 배불리 먹이고 재워 살을 찌운 듯하다고 한다. 갑작스럽게 살을 많이 찌워서 건강에 문제가 있다는 소문이 있으나, 아직 30대 정도로 나이가 젊어서인지 구체적인 이야기는 없다. 젊은 시절의 방탕한 생활이 바로 건강에 악영향을 주는 것은 아니다. 문제는 아버지 김정일, 그리고 그의 형 김정남이 생전에 그랬듯이, 중장년이 되고 나서 고생할 가능성도 꽤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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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문서의 내용만 보면 그냥 걸어다니는 종합병원으로, 당장 심장마비로 즉사해도 이상하지 않을만큼 상태가 좋지 않다. 하지만 김씨 백두혈통 집안만 전문으로 연구해온 전문병원[47]이 2개나 있는데다가 진짜로 좀 이상하다 싶으면 참매 1호[48]를 타고 우방국이나 중립국[49]으로 날아가 그 나라 유명 의료진으로부터 치료를 받기 때문에, 그리 쉽게 죽을 가능성은 높지 않다. 북한 지도자라는 사람이 죽었다는 말은, 북한 중앙텔레비전에 리춘히 같은 거물급 아나운서가[50] 검은 상복 입고 나와서 펑펑 울며 발표하기 전까지는 그 어떤 것도 믿으면 안 된다. 게다가 김정일도 저 나이 때 저 정도 병은 달고 살다가 죽었다. 김정은보다 더 심했는데, 김정일은 19살 때부터 비만에 지방간을 달고 있었다. 지방간같은 경우 김정은도 심각할 거라는 추정이 북한 전문가들로부터 돌고 있는데 고지혈증을 앓고 있는 점을 감안해 볼 때 충분히 그럴 거라는 추측이다. 뿐만 아니라 김정은은 애주가에 골초로 알려져 있는데 이는 아버지인 김정일과 비교해 볼 때 더 심한 수준이며 이와 같은 식습관과 생활습관으로 인한 요인들이 겹쳐서 김정은의 간 건강을 악화시키는 원인이 되고 있다.

2021년 하반기 들어서는 늘기만 하던 살이 급격하게 빠지고 있는 것이 포착되기 시작했다. 이에 대해 대역설이나, 말년의 김정일이 갑자기 수척해진 것처럼 김정은에게도 건강이상이 온 것이 아니냐는 추측이 나돌았다. 하지만 국정원에선 건강이상 동향이 없다고 발표하는 중이고, 아직 10년 전 체격으로 돌아가지도 못한 정도라서 '수척'해졌다고 할 정도는 아니다. 오히려 "인민을 위해 과로하느라 살이 빠지고 있다"고 선전까지 하고 있는 것을 보아 심각한 일은 아니라는 추측도 있다. #

그러나 2022년 중순들어 다시 살이 찌기 시작하고 있다. #

4.3. 헤어스타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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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정은 헤어스타일 본받아야'…북, 교사들에 강조

김정은의 헤어스타일은 북한 내에서 '패기머리'라고 불리고 있다. 이 헤어스타일은 김정은만의 전유물은 아닌데, 주민들 특히 주로 젊은 남성들 사이에서 널리 퍼져 있다는 정보가 있다. RFA 실제로 2014년 황병서 방남 당시 황병서를 수행한 경호원들이 모두 이 헤어스타일을 하고 있는 것이 관찰되었다. 채널A(동영상)

데일리NK는 또 다른 소식통을 인용해 ' 두발규제 때문에 북한 남학생들은 김정은과 같은 헤어스타일을 하도록 당국에 강요당하고 있으며, 이 같은 헤어스타일을 하지 않으면 바리캉으로 밀어버린다'고 보도했다. 데일리NK

이 제한은 학생에 국한된 것만이 아니다. 교원(교사)에 대한 헤어스타일 통제는 북한 남학생과 맞먹는다. 북한의 '공식 이발소'는 무조건 이 헤어스타일로 만들어버린다. 개인 집 등에서 운영하는 이발소의 사용은 불법이고 몇배나 비싸지만 그런 사설 이발소를 이용하는 손님들이 점점 늘고 있다. 적발시에는 빡빡 밀게 된다. 조선일보

일본에서는 머리통에 검은색 전화 수화기를 얹어놓은듯하다 하여 검은 전화기라는 뜻으로 쿠로뎅와라고 부른다. 옆머리를 두피가 다 드러나 보이도록 너무 짧게 민 것을 제외하면 투블럭을 베이스로 가르마 혹은 포마드로 붙여 넘긴 머리로 옆머리를 빼면 그럭저럭 멋쟁이 스타일인데, 저 옆머리, 그리고 결정적으로 너무 살쪄서 안 어울리는 게 문제.

4.4. 김일성 따라하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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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은 성형설을 극력 부인하고 있다. 성형설이 사실이라 쳐도 차라리 미남으로 성형을 하지 왜 지금의 용모로 하겠는가 싶겠지만, 절대군주제의 전제국가 상태로 퇴행한 북한의 상황에서, 북한 민중에게 김정은을 이미 신격화된 예전 지도자의 핏줄임을 강조하려는 의도가 있다고 주장된다. 북한 민중들이 김일성과 김정일에게 하듯이, 김정은 역시 신격화된 존재로 생각하도록 유도하고 충성을 강요한다는 것이다.

역사상 한 왕조의 후계자가 민중에게 존경을 받던 부왕의 복장이나 외모를 흉내내어 민중에게 어필하는 일은 흔하고 특이한 일도 아니며, 몇 세기 이전 왕정 국가에서도 종종 있었다. 21세기인 지금 역시 민주주의 국가에서도 빛나는 전임자의 이미지를 따라 하려는 후임자 등으로 형태가 변형되어 계승되었다. 그렇게 없는 일도 아니라는 것. 물론 용모까지 그대로 따라하는 것은 부족 단위 국가 정도에서나 볼 수 있는, 아주 드문 일임에 틀림없다. 이때문에 김일성처럼 보이도록 성형한 것이라는 설이 있지만, 이는 어디까지나 추측에 불과하며, 확실한 정보는 없다. 피를 물려받은 손자가 외모를 닮았다 해서 별로 이상한 일도 아니고, 똑같이 체구가 크고 비슷한 머리스타일까지 갖고 있으니 우리의 편견까지 작용한다면 그 모습이 유독 더 비슷해보일 수밖에 없다.

그렇다고 치더라도 김일성의 행보를 비교적 유사하게 따라가고 있고, 엘리트 계층의 탈북민이자 그 중에서도 꽤나 강경파에 가까운 김길선[53] 기자는 김정은이 수령이 된 후에 이룬 것은 없는 것에 대한 콤플렉스 때문이라고 평가했다. 이에 대한 반대급부인지 김정일이 걸었던 행보를 상당 부분 부정하는 모습도 보여주고 있다. 태영호는 이에 대해 고난의 행군 등 20세기 말~21세기 초 북한이 겪어온 경제적 고난을 김정일의 책임으로 돌리려는 것이라고 분석하기도 했다.

4.5. 무명의 후계자

그동안 세계의 관심 밖에서 있었던 인물인 만큼 초치에는 이름도 제대로 알려지지 않았다. 이름이 김정으로 알려져 있었으나 그렇게 알려진 당시에도 "김정을 잘못 쓴 게 아니냐"는 말이 있었다. '김정은, 김정운, 김정훈' 등이 거론되어 꽤 혼란스러웠다고. 기사.

김정은이 후계자가 될 것임을 예측한 후지모토 겐지도 '김정운'으로 소개하였다. 일본어로는 '은'이든 '운'이든 'ウン'으로 옮기기 때문에 모종의 착각이 있었던 듯. 실제로 그의 저서에서 그가 직접 쓴 한글을 보면, 'ㅜ'와 'ㅡ'가 자주 뒤바뀌어 있다. 북한에서는 이 두 발음이 대한민국에 비해 구별이 힘든 것도 이유 중 하나.[54] 일본에서 2003년 발간된 만화 <김정일 입문> 서두의 계보를 보면 생뚱맞게도 金正雄(김정웅)으로 표기했고 'ウン' 발음으로 되어 있다.[55] 여동생 김여정은 아예 한자 표기도 없던 걸로 보아, 북한 매체는 이름이나 한자 표기는 거의 안 했던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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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후 북한 조선중앙통신이 한자 이름까지 金正으로 보도하자[56] 중국, 일본 언론에서도 종래의 '은'에 해당하는 銀, 殷 대신 恩으로 표기하기 시작했다.[57]

일부 일본 환빠 비스무리한 사람들은 " 요코다 메구미가 김정은의 어머니"라고 주장한다. 요코다 메구미가 천황의 후손이라 일본의 고귀한 피를 이어받고 싶은 김정일이 요코다 메구미를 납치하여 김정은을 낳았고, 김정은은 그로 인해 한일혼혈이며 일본에 호의적이라는 것.[58] 불쏘시개 책도 있다.

스위스의 한 언론매체는 슈퍼주니어 예성을 김정은으로 만들었다. 사진은 U 활동 당시 앨범 자켓 사진이다. 당시 김정은의 이름을 김정운으로 잘못 알고 있었고, 해당 매체들은 예성의 본명인 김종운과 김정운을 혼동했다. 아마도 발음상 외국인들은 헷갈렸을 수도. 이 때문에 예성은 당시 실시간 검색순위 1위를 굳게 지키기도 했다. 본인도 정말 깜짝 놀랐다고…

5. 평가

5.1. 긍정론

북한 정권을 유지할 만한 능력이 있다는 평가가 있다. 먼저 1년 만에 자신의 지도력을 해칠 만한 노련한 군부실세인 리영호를 숙청하며 군부를 휘어잡고, 별 혼란 없이 당과 장악하는 면을 봐서는 아예 권력장악에 숙맥은 아니라는 것이다. 또한 장성택을 처형한 뒤, 대규모 체제이탈 망명사태가 벌어지고, 숙청이 벌어지리라는 예상이나 보도가 이어졌고 4월의 당직·내각개편에서도 장성택 잔당 숙청 및 물갈이가 예상되었으나, 도리어 장성택의 심복이라며 숙청설이 나돌았던 여러 인물들(예를 들어 강석주)이 유임되었고 내각도 급격한 변화 없이 안정적으로 유지되었다.

민심의 불만도 교묘히 컨트롤하는 노회한 모습도 있는데, 2013년에는 2012년에 대규모 수해로 식량난이 극히 악화해 특히 봄철의 보릿고개에 인민의 불만이 폭발, 김정은 체제가 흔들릴 것이라는 예상이 돌았다. 그러나 2013년 김정은은 고난의 행군으로 수십만을 굶겨 죽였던 김정일과는 달리[59] 신성불가침이었던 군량미를 대규모로 풀어서 인민의 불만을 어느 정도 넘겼다. 뿐만 아니라 2013년 초의 박봉주의 시장 개혁조치가 일단 성공적이라 평가 받고[60] 식량 생산이 크게 늘었으며, 중국에 헐값으로 자원을 넘긴 뒤에 받아온 외화로 비료를 대규모로 수입하는 등, 김정일처럼 을 깎는 다락밭 개간 같은 뻘짓 없이 합리적으로 식량 증산에도 힘쓰는 등의 모습이다. 일단 미국의 평가로도 "식량난은 10년 후에는 거의 극복할 것"이라고 평가받을 만큼, 김정은이 먹고 사는 문제를 나름 신경 쓰는 것 같다. 미 농무부 "북한 식량 사정 점차 개선"

북한이 신정 일치 국가인 만큼 내부적으로는 김씨 일가를 대체할 만한 인물이나 세력이 없고, 외국에서 오래 생활해봤으니 세상 물정에도 그리 어둡지는 않으리라는 점도 주목할 대목이다. 식량 증산은 아비보다 제 나름대로 합리적인 방법을 쓰고 있는 듯하다. 1994년 김일성 사후 김정일이 처음 정권을 잡았을 때 많은 북한 전문가들이 3년 안에 쫓겨나리라고 했지만 되려 죽을 때까지 권좌에 있었던 것으로 미루어볼 때, 김정은도 정권을 처음 10년 정도만 안정적으로 유지하면 선조들처럼 종신 집권할 가능성이 없지 않다.

그러나 최근 김정은 치하에서 장마당 경제가 활성화되면서 신흥 부유 세력인 돈주들이 수십만 명으로 늘어나고 있으며, [61] 북한 경제는 마이너스 성장이었던 15년을 제외한 2012~2016년까지 연평균 1.2% 플러스 성장을 기록했다. 특히 2016년에는 제재에도 불구하고 3.9%가 성장했다. [62]이는 김정은이 대외적으로는 대중무역을 확대하고 대내적으로는 시장 경제를 일정 부분 허용했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었다는 분석이 있다.

김정은은 집권 초기인 2012년 6월 '우리 식의 새로운 경제관리체계를 확립할 데 대하여'라는 방침에서 "생산수단에 대한 사회주의적 소유를 확고히 고수하면서 국가의 통일적 지도 밑에 모든 기업체들이 경영 활동을 독자적으로 창발적으로 해나가자"고 강조하였는데 이는 생산수단은 사회가 소유하고 중앙집권적인 경제 계획 시스템으로 대표되는 사회주의 경제 체제는 그대로 유지하면서 개인이나 기업의 자율성을 조금 늘려주었다는 것을 의미한다. 따라서 농업 분야에서 초과생산분은 개인이 마음대로 처분할 수 있게 되었으며 공업 분야에도 개인의 투자를 허용하였다. 농업 부문에서는 협동농장의 생산단위 규모를 기존 10명~25명에서 세분하여 3~5명으로 축소했고 해당 생산단위가 일정 규모의 경지를 담당하도록 하는 '포전담당책임제'를 도입했다. 또 목표량을 초과한 생산물은 전량 농민들이 가져가 자유롭게 처분할 수 있게 하는 등 인센티브를 도입했다. 공업 부문에서는 공장·기업소에 경영상의 자율권을 부여했고 개인의 투자를 통한 경영 참여를 허용했다. 전문가들은 계획 수립 단계에서부터 생산, 제품 판매(처분) 및 수익 처분에 이르기까지 기업 활동의 전 과정에서 기업의 권한을 확대하는 조치가 취해진 것으로 보고 있다. 출처 이 모든 과정에서 신흥 부유층인 돈주들이 등장하여 달러를 축적하였으며 축적한 달러가 시장에 재투자되고, 그럼으로써 장마당 경제가 다시 활성화되는 선순환 구조를 낳고 있는 것이다. 이 돈주들은 유통업이나 건설업, 심지어는 광산 채굴업에도 투자를 하고 있다. 이렇게 성장한 비공식 사경제가 북한주민의 전반적인 생활 수준을 올리고 있으며 김정은 정권의 명줄을 유지시키고 있는 셈이다. 그 외에도 13개 경제특구를 개설하여 외자 유치를 노리고, 일부 경공업 소비재에 한해서 품질 개선이 이루어지기도 하는 등, 적어도 경제 면에서는 김정은은 나름 성과를 올리고 있다.

2018년 기준으로 몇 년 전까지만 해도, 북한 경제가 나아지고 있다는 언론 보도는 거의 없었으나, 2018 제1차 남북정상회담을 전후해서 북한의 실상이 차차 알려지는 중이다. 통일 연구원 소속 박영자 박사에 의하면 김정은은 김일성만은 못해도 적어도 이런 경제 성장으로 인해, 김정일보다는 지지를 더 많이 받고 있으며, 특히 젊은 층에게 더 큰 지지를 받고 있다고 한다. 게다가 김정은 대에 부를 축적한 신흥 돈주들도 김정은과 유착관계를 맺으면서 지지하고 있는 모양새다. 김정은의 통치력에 대한 부정론에서 주장하는 대로, 적어도 경제면에서는 김정은이 "과거의 시스템을 바꿀 생각은 거의 없고 현상유지에 만족하려는 모습을 보여준다"라고 볼 수는 없다. 김정일이 북한 경제의 생명을 유지시켜주는 장마당을 탄압한 것과는 달리, 김정은은 장마당을 대대적으로 장려하고 있기 때문이다.

사실 정치외교적 능력도 매우 탁월하다고 할 수 있다. 미국은 전통적으로 항상 북한과 원수 지간의 관계로 세계 최강의 초강대국으로써 관계가 심하게 틀어지면 국제적, 정치적으로 위기를 맞을 가능성이 급상승하는 미국과 척을 진 것은 북한의 상황이 크게 나빠진 요인 중 하나이다. 김일성이 사망하기 직전 미국의 전 대통령인 지미 카터를 만났던 것과 김정일이 당시 미 국무장관이었던 매들린 올브라이트를 만났던 것도 사실 큰 발전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런데 김정은은 그런 제국주의 원쑤[63] 나라인 미국의 대통령과 정상회담을 무려 3번이나 성공시켜 선대 지도자인 할아버지와 아버지는 상상도 못 할 대외적 성과를 달성했다.[64] 아무리 도널드 트럼프가 다소 괴짜 같은 사람이라고 해도 독선적 성향의 나름 강경파인만큼 이는 큰 성과라고 할 수 있다. 한국 대통령과의 정상 회담 역시 문재인 전 대통령 단 한 명과 무려 4번이나 성공 시켰는데 할아버지 김일성은 아예 이승만, 박정희, 전두환 전 대통령 등과 시대상 정상회담이 어려워 만난 적 자체가 없었고[65] 아버지 김정일 역시 대통령 두 사람 김대중, 노무현 전 대통령과 각각 한 번씩 두 번 정상회담을 성공시켰을 뿐이지만 김정은은 젊고 미숙한 나이에도 그러한 성과를 이루어냈다. 해외에서도 김정은을 김정일만큼 악마로 취급하는 시각은 그리 많지 않다.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은 김정은이 소양있고 성숙한 정치인이라고 평가했다 연합뉴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2018년 북미 정상 회담이후 "김정은은 매우 훌륭하고 똑똑한 협상가"라고 극찬했다. 스포츠 경향[66] 2018년 10월 미국의 도널드 트럼프는 "자신은 김정은과 사랑에 빠졌다."고 했을 정도.

무엇보다, 미국과의 대화 과정에서 기존의 입장을 선뜻 뒤집지는 않을지언정 판까지 깨려고 무모한 도발을 감행하는건 자제하고 있다. 심지어 트럼프 행정부의 강경파 중 하나인 마이크 폼페이오 국무부 장관이 협상 과정에서 방해가 된다는 불만을 내세우면서 정작 그 당사자를 직접 평양으로 보내라는 친서를 트럼프 대통령에게 보냈을 정도. 자신을 거슬리게 하는 마이크 폼페이오를 직접 만나겠다면서 대화를 이어가려는 의지를 보인건 확실히 그렇게 꽉 막힌 인물이 아니라는 반증이기도 하다. 특히 그렇게 만나서 " CIA가 나를 암살하려 시도해온 것을 사과하라."는 말을 한데 대해 마이크 폼페이오가 "(우리는) 지금도 당신을 암살하려 하고 있다."는 독설로 되받아치자 도리어 웃으며 화기애애하게 회담한 것을 보면 더더욱 그렇다. 그래도 지도자로써 생각보다 무척 통이 크고 포악하지는 않다는 뜻이다.

위에 나온 성격 부분 정보에서도 어느 정도 유추할 수 있듯이 사생활과 개인사도 할아버지와 아버지에 비하면 훨씬 깨끗하여 권력투쟁이나 여성문제 등 각종 잔혹하고 비인간적인 개인사에 대한 정보도 훨씬 적고[67][68] 여성 편력으로 인한 대내외적 이미지가 크게 실추되어 있지 않으며[69] 선대의 수령들과는 달리 역대 한국 대통령들처럼 당당히 정식 영부인을 공식 석상에 대동하며 정치적, 사회적, 대외적으로 더욱 좋은 이미지를 보이고 있다. 김일성은 김정숙이 너무 빨리 사망하고[70] 재혼한 김성애를 공식적으로 대동하기는 했으나 김성애는 어디까지나 김일성의 총애를 받아 대외적 이미지 메이킹 용도로 나섰을 뿐이며 아내로써도 어머니로써도 형편 없어서 김일성의 정식 부인 역할을 했다고 보기에도 민망한 수준에 별 지적 역량도 능력도 없는 주제에[71] 야심과 권력욕과 오만함이 심해 김일성과 김평일만 믿고 함부로 나대다가 결국 의붓아들인 김정일과 졸개들에게 역관광을 당해 김일성의 대외적, 공식적 정식 부인이었음에도 결국 자신과 자신이 가장 든든하게 여겼던 김평일을 비롯한 집안 자체가 곁가지로 분류되어 갈려나가는 비극을 자초했다. 김정일은 애초에 부인을 공식적으로 드러낼만큼 당당한 적 자체가 없었고 공식 부인만 4~5명이었다. 여성편력 역시 김정일 하면 가장 먼저 생각나는 것들 중 하나가 그 끔찍한 '기쁨조'일 정도로 난잡하고 지저분함 그 이상이었다. 그러나 김정은은 한 국가의 최고지도자답게 여성 편력 논란 없이 늘 공식 석상에서 아무도 정통성과 도덕성을 부정할 수 없는 배우자인 리설주를 대동하여[72] 한국이나 여러 선진국들의 대통령, 총리 등 문명국가들의 국가수반과 비슷한 모습을 보여주면서 좋은 이미지를 성공적으로 구축하고 있다. 젊은 편임에도 그런 부분에서 선대 지도자들보다 깔끔하고 자유롭다는 뜻이다.[73]

선대 지도자인 김정일에 비해 건축 사업에 상당한 공을 들이고 있다. 려명거리 미래과학자거리를 조성하고, 평양순안국제공항 평양종합병원, 그 외 관광 시설들을 현대의 미적 감각에 그나마 가깝게 재정비하고 있다.[74] 없는 살림에 대체 건축 자재를 개발하게 해서[75] 핵심계층은 물론 동요계층에 해당하는 지방 인민들에게까지 살림집을 선물하고 있다. 특히 삼지연시와 같이 중요도가 높은 일부 도시는 인프라 재구축 수준으로 시가지를 환골탈태시켜놓았다. 이를 통해 본인의 방식으로 관광객 유치 효과를 노림과 동시에 주민들의 환심을 사려고 하는 것으로 보인다. 건물들은 하나같이 파스텔톤인 것이 눈에 띄는데, 김정은의 스위스 유학 당시 경험이 반영된 것으로 보인다.

5.2. 부정론

기분에 따라 고위간부를 숙청하여 김일성이나 김정일보다 인명경시 성향을 좀 더 보이고 있거니와[76] 사람 먹을 물도 없는데 자라 공장에서 자라를 키워내라 하는 등 얼토당토하지 않는 명령을 내리고, 명령만 하면 뚝딱 만들어내는 양 생각하는 것을 보면, 세상 물정에 밝은 것은 아닌 것 같다. 여기에 인민에 대한 실질적인 연결성을 가진 농장과 같은 농업 관련 시설로 주로 현지지도를 나갔던 김일성 김정일과는 달리, 김정은은 인민의 실생활과는 전혀 관계 없는 관광지 또는 사치성 시설에 대한 현지시찰이 대부분이라는 점에도 차이가 난다. 남북정상회담, 경제 개혁 등을 통해 나름 대내외적 지지를 얻기도 했으나 이를 다시 뒤엎기도 하고[77], 뚜렷한 이유없이 금강산 관광시설을 두고 욕하거나 중국의 심기를 거스르며 핵개발을 하여 외부적 신임을 잃기도 한다. 선대처럼 보통 국가와 비교하면 인터넷 개방도 하지 않고 스스로 전면적인 무역도 하지 않는 상태에서 수입병을 부르짖고, 국경을 가두고 이민을 허용하지 않는 등의 문제가 극심한 정책을 펴고 있으나 그나마 정권 유지 측면에서 봐주어도 과욕이나 충동적인 행동을 보인다는 것이 문제다.

할아버지인 김일성과 아버지였던 김정일의 능력에 모자라도 한참 모자란다고 볼 수 있다. 물론 이것은 아버지였던 김정일의 개막장처신이 그 첫 번째 이유라고 볼 수 있을 것이다. 도저히 맨정신으로는 설명할 수 없는 여성편력으로 인해 후계자 선정을 어렵게 만든 것은 자업자득인 셈이다. 당장 김씨 가문의 우상화의 토대라고 할 수 있는 백두혈통을 내세울 근거를 빼앗아버림으로써 명분면에서도 약했다.

더구나 1980년대부터 후계자 수업을 받아와 논란은 많았지만 비교적 순탄하게 후계자로 임명받을 수 있었던 김정일과는 달리 김정은은 후계자 수업도 받은 일도 없는 상황에서 아버지의 건강 악화로 인해 갑작스럽게 지명된 처지라 권력 기반이 약할 수밖에 없었으며, 여기에 결정타는 해외에서 자랐다는 약점이 있었다.

대외관계에 있어서는 중국과의 관계도 김정일 시절보다 험악해졌는데, 최소한 김일성·김정일 라인까지는 중국을 지나치게 자극하면서까지 통제를 무시하려는 듯한 행동을 보여준 적이 없었다. 3차 핵실험은 중국에게도 상당한 위협감을 주며 그 사이에도 김정은이 조용조용 지내려는 중국의 의도와는 반대로 나가니,[78] 일반 중국인부터 중국 공산당 수뇌부까지 북한에 불만이 높아지고 있다. 당장 북한의 전혀 가망없는 경제 상황은 중국 정부로서도 골칫거리다. 원조를 한다고는 하지만 개선될 여지가 보이지도 않고, 큰 개선을 보이지 않는 경제난과 중국보다도 열악한 인권으로 인해 북한 주민의 탈북 동기가 늘어남으로서 이들의 처리도 고민해야 할 처지다.

물론 지금까지는 체포해서 다시 북한으로 넘기지만, 언제까지 국제사회의 비난을 받으면서까지 이렇게 하기는 어려운 일이다. 중국의 탈북자 북송 문제는 김영주 더불어민주당 의원, 지성호 국민의힘 의원의 의견에서 드러나듯 한국 정치에서까지 초당적인 의제로 여겨지고 있다. # 여기에 툭하면 도발로 나오는 북한의 태도 역시 중국의 인내심을 점점 한계상황으로 몰아가고 있는 것도 또 하나의 문제다. 2020년 이후 코로나 시국에 국경 차단을 하며 빠져 나가는 것, 무역도 막는 초강수를 두며 탈북은 일단 막았으나 민생을 심각히 나쁘게 만들었다. 들어오는 것을 막는 것뿐 아니라 '세계 유일 코로나 청정국'에서 '오염된 곳'으로 나가는 걸 막던 것이다.

중국이 북한 때문에 손해를 보는 게 정말 한두가지가 아니다. 중국이 북한의 도발 때마다 '대화와 자제'를 주장하고 있지만 중국의 입장에서도 북한의 개짓을 그냥 두고 보기만 하기도 뭣한 상황이다. 이전 G20 정상회담을 광저우에서 개최했을때 중국은 이것을 통해 주도권을 잡으려고 했지만 북한이 미사일 실험을 하는 바람에 미국 등에 "야, 저런데 니네들 계속 그렇게 대화같은 소리할래."라고 핀잔만 들었고 망신만 당한 중국은 중국대로 이를 가는 상태로 빠지고 말았다. 중국이 아직도 '대화와 자제'를 주장하고 있지만 북한이 'ㅈㄹ하네!'라며 계속 중국의 의도에 어긋나는 행패를 부리고 있으니 중국도 정말 열이 날 대로 날 상황이다.[79]그래서 요즘은 대북제재 강도를 높이려는 시도도 한다. 중국이 미국을 견제하며 북한에 손을 내밀면, 북한은 중국에 온갖 단물을 빨아먹으려는 시도를 한다.

문재인 정부 이전에는 대한민국과의 관계는 더 말할 것도 없이 극도의 긴장 상태를 만들어냈다. 대한민국이야 정권 교체와 함께 대북정책이 강경하게 변했다고 해도, 과거 대북지원을 받던 시절에서 10년도 안 지났는데 마치 그런 시절이 없었던 것처럼 호전적인 태도로 돌변했을 뿐만 아니라, 대한민국 민간인의 생명까지 뺏는 무력도발까지 감행했다. 2018년 이전까지는 보수 정권의 정보 당국의 예상조차 뛰어넘는 막말을 해댔다. 최전방 서해 무도 방어대에서 “항복 문서에 도장 찍을 놈도 없도록 수장(水葬)시키라”라는 말을 할 때만 해도 특수부대 앞에서 “적들을 무자비하게 쓸어버리고 서울을 단숨에 타고 앉으며 남반부를 평정할 생각을 하여야 한다”라는 말을 할 줄은 몰랐던 것이다. # 선대처럼 한국의 정권과 주민을 분리시키는 최소한의 분별력마저 2018년 이후에나 생긴 것이다. 하노이 회담 결렬 이후로는 직접 막말은 안하는데 김여정의 막말을 묵인하고 있다.

그나마 북한을 현상유지시키는 통치력을 그나마 능력이라고 과장해서 평가해도 외교능력에 있어서는 도저히 능력이 있다고 볼 수가 없다. UN 상임이사국이라는 위치를 가지고 있는 중국의 현재의 형편상 북한을 언제나 감싸고 돌 수는 없는 노릇이다. 하다못해 미국까지 북한 문제에 대해서는 단호하게 나와 줄 것을 중국에 요구하고 있는 형편이다. 문제는 그렇다고 북한을 그대로 버려두기에는 북한의 붕괴는 중국에게도 심각한 혼란을 초래할 수 있다는 점에 있다. 현재로서는 북한에 관한 문제에 대해서는 '대화로서의 협상' 또는 '기권'이라는 형태로서 대응하고 있는 형편이지만 전 세계를 상대로 어그로를 유발하는 북한의 행태를 계속 이런 식으로 대응할 경우, 국제사회가 중국을 바라보는 시선이 점점 부정적으로 변화될 가능성이 크기 때문에 중국이 상당히 곤란한 형편에 놓인 것은 부인하지 못한다.

이러다보니 중국이 북한을 감싸주고 싶어도 못하는 이유가 미국과 일본이 좀더 능동적인 대북제재를 중국이 실시해주길 원하나 북한이 없어지면 중국이 처해질 입장 때문에라도 그렇게 하질 못한다. 하지만 북한이 이렇게 망나니 짓을 해대고 있으니 중국이 북한을 감싸는 것도 한계에 이르고 결국에는 홧김에라도 대북제재에 동참하는 경우가 많다. 그리고 그것도 미국의 입장에서 볼 때는 조족지혈이다. 그렇지만 2017년경에는 아예 북한에 등을 돌린 듯한 제스쳐도 자주 보였다. 자국으로 나온 북한 노동자들의 비자연장도 연장해주지 않고 있으며 합작으로 연 북한기업조차 폐쇄된 상태이다.

2014년 하반기로 접어들면서, 그동안 중국과 삐걱대던 외교관계의 결과가 가시적으로 나타나고 있다. 북한 3차 핵실험 이후 북·중 경제협력사업이 소강상태로 접어들었고 급기야 중국이 북한의 항구를 빌려 동해를 통한 물류 통로를 개척하려던 계획을 수정해 러시아의 항구를 이용하려 하고 있다.[80] 대규모 투자를 해봤자 북한이 지금처럼 호전적인 태도를 유지하면 전쟁이 일어나 투자회수를 못할 위험이 높은 데다가 도저히 통제도 안되고 예측도 안 되는 북한보다는 차라리 러시아가 낫다는 이유 때문이라고 한다. 게다가 2000년대 북한에 적극적으로 투자했던 중국 기업들은 비참할 정도로 열악한 인프라와 북한 정부의 이해할 수 없는 정책 때문에 하나 둘 등을 돌리고 있다. 돈 떼먹히는 게 기본이었고, 감시까지 하면서 송금도 제대로 못 하게 막았다고 하니, 중국 기업들의 신뢰를 얻지 못함은 당연하다.

통치 정당성이 할아버지나 아버지보다 훨씬 떨어지는 편이다. 그럴 수밖에 없는 것이, 김일성 빨치산 항일무장투쟁 활동을 하며 조직을 운영하는 방법을 알았고, 김정일은 1970년대부터 정치에 나서기 시작했고 김일성이 죽은 1994년까지 상당히 오랫동안 정치인으로서 활동하며 나름의 내공을 쌓았다. 그러나 김정은은 2010년에 갑툭튀해서 정치감은 전혀 없는 상태에서 2011년 겨울, 최고지도자가 된다. 그래서 집권 초기에 이전부터 권력이 엄청나게 강했던 고모부 장성택까지 죽이며 공포 정치로 자신의 권력을 공고히 하려고 했던 것이다. 특히 어머니 고용희가 북한에서 천시되는 재일교포, 남한 출신이라는 설이 있어서 일각에서는 이것을 체제 위협 요인으로 언급하기도 한다.

심지어 일부 간부들은 탈북까지 고려하고 있다. 하다못해 해외주재 북한공관원들은 본국으로의 소환도 거부할 정도이니 말 다한 것이다. 이는 2015년 4월 말에 일어난 현영철 인민무력부장의 숙청으로 그 정점을 찍었는데, 심지어 현영철은 김정은 자신이 직접 임명한 인사였음에도 숙청시켰으니, 다른 일반 간부들의 속내는 더 다른 말이 필요없을 것이다.

2018년 남북정상회담 이후 국제무대에 데뷔한 김정은은 온건한 성향을 보이기도 하였다. 유엔대북제재로 민생이 파탄나고 국내 문제에서 초기의 공포정치를 버리고 자애로운 어버이 지도자라는 컨셉을 잡는다는 인식이 있기도 하였다. 이 때까지만 해도 김정은의 지지가 높았던 것으로 보인다. 이 지지는 그가 개혁을 택하리라 믿은 주민들의 지지였으나, 하노이 회담 결렬 이후 그런 기대에 반하여 비사회주의와 투쟁하고, 백두산 정신을 지켜야 한다면서 내부 단속에 열을 올리는 모습을 보인다.

이는 주민들의 김정은 지지 이유를 스스로 없애는 것이다. 연단에서는 눈물까지 흘려가며 잘 살게 해주겠다고 하더니, 뒤에서는 한국 정부가 보수층에게 비판 받아가면서 하는 지원[81]까지 거절하기도 한다. 남북관계를 파탄내며 많은 책임을 남측에 뒤집어 씌우는 모습도 보이는 상황이다. 이렇다 보니, 북미관계를 개선하려고 했던 한국과 미국은 이를 계기로 그냥 엿 먹어버리고 만다. 결국 야당에서 문재인 정부를 비호하는 모습을 보이기도 했다. 대표적으로 성일종 의원이 "북한 정권은 더 이상 대한민국 대통령에 대한 폄훼를 중단하라. 자유민주주의 체제 하의 대한민국 국민이 뽑은 대통령이다."라고 북한을 비난한 것이 그 예. 2018년경에 스스로 비핵화를 해놓겠다고 당당하게 주장하고선 갑자기 말을 바꾸면서, 하노이 회담 결렬 이후에 대한 대처도 제대로 하지 않고 고립주의를 택했다.

2019년 돌연 국민의 정부가 제안해 김정일이 승낙했던 금강산 관광을 이유 없이[82] 부정하며 '너절한 시설'을 철거하라며 본색을 드러내었다. 더불어민주당마저 유감을 드러낼 정도였다. # 대북제재를 풀기 위해선 핵도 포기해야 하는데, 하노이 회담에서 무리한 요구를 함으로써 좋은 기회를 스스로 날려버렸다. 2018년 이후 탈북한 탈북자들은 대화가 있던 와중에도 남한에 대해 환상을 가지지 말라는 교육을 받기도 하였다는 증언을 하였다. 남한과 대화를 하겠다며 겉으로는 웃으면서, 젊은 세대에 많이 퍼진 한류를 차단하는 이중적인 움직임도 보인다. #

핵을 포기하는 것을 두고 리비아, 우크라이나처럼 된다는 주장도 많으나[83] 이들조차 북한보단 민생이 훨씬 나으며, 카자흐스탄, 남아프리카공화국처럼 핵포기로 북한과는 비교도 어려울 정도로 잘 사는 경우도 많다. 리비아는 단지 국제 사회가 시민의 편을 들어 몰락했고, 우크라이나와 달리 강대국이 북한을 침공할 역사적 근거가 적으며, 핵을 개발하여 오히려 국제 사회가 통제되지 못한 핵무기의 위험성을 들어 개입할 여지도 생겼다. 거의 북한의 핵개발이 알려지지 않던 김일성이 집권할 당시에도 북한 체제는 유지되었고 핵개발이 알려지며 대량살상무기 의혹을 구실로 미국의 공격을 받은 이라크의 상황이 될 수 있었으나 한국의 피해 우려 등 지정학적 여건 상 실현이 되지 않은 것을 무시한 것이다.

특히 카자흐스탄은 박근혜 정부, 문재인 정부가 공통으로 언급할 정도로 높은 경제성장률을 이룩한 곳이다. 핵을 포기하고 정권에 위협이 되는 사태가 일어난 나라들은 내치를 잘못해서 정권에 위협이 되는 사태가 일어나거나 민주화 같은 노력이 없던 점이 있을 뿐이다. 핵개발을 중도에 중단하고 가장 잘 사는 나라의 대표적인 예시는 대한민국이며, 세계의 수많은 나라들은 이미 핵없이 북한보다 잘 살고 있다. 2021년 들어 핵무기는 남용하지 않겠다고 하여 먼저 자신들이 쏠 수도 있음을 암시하여 어그로를 끌기도 한다. 우크라이나 전쟁이 발발하자 핵을 가지지 않아 침략당했다고 볼 여지가 있는 우크라이나와 미국 제국주의자를 비난하는 러시아의 주장 중 어느 편을 옹호해야 할지 난감한 처지에 놓였다. 일단 외부적으로는 러시아를 적극적으로 옹호하며 전쟁 방지라는 핵보유의 구실을 포기하는 모양새지만, 내부적으로는 로동신문에 아예 전쟁에 대한 언급 자체를 않으며 그냥 불리한 사실은 숨기는 행태를 보인다.

김정은이 묵인한 연락사무소 폭파는 일부 진보 진영에서도 우리의 제의에 대한 호응을 하지 않는다며 북한에 대한 회의감을 들게 하기도 하였고, 연평도 인근에서 피격된 공무원에 대한 해명에서 정부의 주장에 해명을 제대로 못하여 민주당 송영길 의원마저 최고지도부가 알고 있을 사실이 무시되고 있다며 비판하는 일이 있었다. # 겉으로 보이고자 하는 모습은 개선의 여지가 있다는 해석도 가능하여 진보진영은 이를 긍정적으로 평가하기도 하지만, 정작 정부의 제안에 어깃장을 놓기도 하여 일부 인사가 반발하는 경우도 있었다.

긍정론에 서술된 식량 사정 등의 민생 개선도 결국 주민들의 생존 본능적 행위, 즉 자본주의를 막지 못해서이다. 체제 전환을 겪은 구 공산권 국가들은 위에서 개혁을 시작했지만, 김정은 정권은 제도를 그런 식으로 바꾸기 보다는 시장을 없애는 것은 체제 붕괴 위험을 증가시키므로 방치하고, 이용할 수 있을 때 이용하는 모습을 보인다. # 코로나 직전까지도 식량난이 심하다는 주장도 있으나, 이건 인구로 국력을 부풀리려는 북한의 통계 조작을 두고 국제기구가 많은 지원을 받기 위한 과장을 하는 것이라는 주장도 제기된다. # 그러면서도 2018년 신년사에서는 경제난을 관료주의 탓으로 돌리며 선대의 남탓하는 습관, '닭 잡아 먹고 오리발 내밀기' 수법을 그대로 드러내기도 하였다.

어떤 입장에서는 긍정론의 유화적 제스처도 결국 이런 태도로 보기도 한다. "내가 이렇게 잘해주지만, 너희는 대결을 일삼는다"는 주장을 정당화하기 위한 피해자 코스프레 같은 것이다.[84] 남북 관계 개선에 열심인 문재인 정부에게 유화적 제스처를 내밀다가도 '남조선 당국은 지난 보수정권 시기와 다름 없이 부당한 구실과 법적 제도적 장치들을 내세워 각계층 인민들의 접촉과 내왕을 가로막는다.'는 개소리도 하였다. # 2020년 10월 열병식에서는 마침내 면목이 없고 미안하다는 발언을 하였으나, 이 발언의 전제로 온 나라 인민이 자신을 열렬히 지지한다는 것을 드는, 언플을 하는 것이었다. 자신이 주민들의 뜻에 반해 통제를 하고선, 이제 주민들이 자신을 지지한다는 것이다. 특히 ICBM이 공개되자 웃는 모습, 고급 시계를 차며 우는 모습이 발언의 진정성에 의문을 갖는 시각을 불러일으켰다. 베를린 선언에서 문 대통령이 체제를 존중하겠다고 해도 그냥 무시하고, 자신은 자신의 나라가 세계적인 핵강국이 되었고 강위력한 국방력에 의거하여 조국통일을 앞당긴다면서 "도발을 억제해야 한다는 망상과 심한 위기의식, 피해의식에서 빨리 벗어나야 한다"는 모순된 주장을 하고 있다. # 김정은은 문재인 정부가 사드 배치 같은 강경책을 추진하고 나서 몇 달 후에도 대화에 나서더니 하노이에서의 무리한 요구가 실패하자 일관되지 못한 행동을 보이고 있는 것이다.

코로나 사태 이후로 이해할 수 없는 행보를 보이고 있다. 대놓고 자신은 민생보다 자신에 대한 충성이 중요하다는 태도를 보이는 것이 아닌가 싶을 지경이다. 김일성종합대학 공식 홈페이지에서는 2021년 8차 당대회 보고에서 김정은이 경제건설과 인민생활향상에 힘을 집중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사회주의 생활양식을 고수하고 확립하는 것이 더 급선무라고 강조했다고 주장했다. # 로동신문에 올라간 김정은 명의의 청년절 축하문에서도 탄원(탄광이나 염전 등 험지에 대한 자원[85]) 분위기가 고조된 것은 몇만대 기계가 생산됐다는 것보다도 더 고무적인 소식이라고 주장할 지경이다. # 코로나19와 수해로 민생이 더 악화되는 와중에도, 김정은은 직접 외부 지원을 거절하라는 선언을 하고, 외부 사회에 물품에 대한 방역을 요구한다는 선택지마저 고르지 않는다. # 2019년 한국 정부는 9년 만의 정부 차원의 쌀 지원을 추진했으나 코로나 사태가 도래하도록 '한미연합훈련'을 이유로 쌀을 받지 않았다. # 거칠게 말해서 자신의 안위는 민생보다 중요하다는 것이다. 김정은 집권 이후 한국 정부의 인도적 지원이라면 무시하는 경향을 찾아볼 수 있는데, 자신은 유례가 없는 위기가 닥쳤다는 말[86]을 해도 안 받는 경우가 꽤 있다. 이것 때문에 주민들의 생계가 다시 악화되고 있다는 지적이 이어진다.

여기에 북한 연구자들을 경악케 했던[87] 한류 유포만 해도 사형, 한국 말투 써도 징역이라는 '반동사상문화배격법'의 제정, 80일 전투로 주민을 쓸모 없는 노동에 동원시켜 주민들을 통제하는 모습도 보인다. 연락사무소 폭파에도 인내하던 정세현 민주평통 수석부의장은 반동사상문화배격법에 환멸을 느꼈는지, 이 법을 언급하면서 "북한이 잘못하면 남한에 흡수당할 수 있다며 통일에 대해 걱정을 하는 것 같다", "준다고 해서 쉽게 받을 것 같지도 않다", "분단의 고통과 불이익이 최소화되는 시점에서 통일을 지향해야 한다"라고 발언하는 지경에 이르렀다. # 2021년 8차 당대회도 경제 부분에서 '비사회주의'를 없애겠다, 상업봉사부문에서 국가의 통제력을 강화하겠다고 밝히는 등의 퇴행적인 모습을 보였다. 안드레이 란코프 국민대 교수는 이를 두고 "장기적으로는 자살정책"이라고 일갈했다. #

2021년 4월에는 아예 청년세대를 꼬집어 "우리식 사회주의의 참다운 우월성에 대한 실체험과 표상이 부족하다[88]"라고 언급하는 열렬한 지지에 감사하다는 10월 열병식 발언과 모순된 발언을 하였다. # "간고한 시련 속에서도 우리 새 세대들과 인민들에게 베풀어지는 우리나라 사회주의 제도의 혜택이 얼마나 소중하고 값비싼 것인가를 모든 청년들이 다 잘 알도록 해야 한다"라는 발언은 나는 간고한 시련을 못 없애겠으며, 너희는 그냥 세뇌되어 살아갔으면 좋겠다는 의향을 내비친 것으로 해석이 가능할 지경이다. 고난의 행군을 결심했다는 발언에도 당시 가족, 이웃이 죽어가는 모습을 본 탈북민들이 격분하기도 했다. # 단기적으로는 나라 경제가 나아지지 않아도 주민에 대한 통제와 세뇌로 버틸 수 있을지도[89] 모르나, 장기적으로 갈수록 어렸을 때부터 시장화와 한국을 비롯한 외부 문화에 익숙한 젊은 세대의 눈높이, 한국을 비롯한 국제사회의 압력, 핵을 완성하여 잘살게 된다는 선전이 통하지 않는 미래를 어떻게 견딜 수 있을지 의문이다.

6. 창작물

6.1. 풍자

김정은/풍자 참조.

7. 발언

김정은은 직설적이면서 돌직구를 날리는 발언이 특징이다. 그러면서 연설에서는 무력을 통한 체제유지, 체제보장 같은 의미는 항상 내포하는 편이다. 그나마 2018년 이후 무력통일 드립은 사라졌다. 2019년 하노이 정상회담 결렬 이후 다시금 남한을 압박하는 발언을 지속하고 있다. 이는 북한의 경제난이 제대로 해결되지 않는 상황에서 북한 주민들을 결집시켜야 할 필요가 있기 때문이라는 해석이 있다. 2019년 말 이후 김여정에게 대남 발언의 주도권을 넘긴 채 주로 내치에 집중하고 있다.
한치의 드팀[90]도, 한 걸음의 양보도 없이 오직 수령님, 장군님식으로 무조건 끝까지 강행하자.
- 태양절(명절로 지정된 김일성 생일)을 맞아 처음으로 공개한 육성이 담긴 공식연설 中
나의 통일관은 무력통일이며 직접 탱크를 몰고 서울로 진격하겠다.[91]
- 2011년 말 발언, 당시 한국 정부에서 이런 발언의 내용을 입수했다고 전해진다. #1 #2
조선 혁명 완수를 위해 적들과 총결사전을 벌이자.
- 2014년 제7차 사상일꾼대회에서
미제와 어떤 형태의 전쟁도 가능하다.
- 2015 열병식 육성연설 중 나온 연설 중 일부
조국통일을 위한 천금같은 기회는 우리가 먼저 선택하게 될 것... (중략) 일단 전쟁이 일어나면 파죽지세로 달려나가 무쇠발톱으로 적진을 짓뭉개버려야한다. 그러자면 지난 조국해방전쟁 시기 원쑤들을 무자비하게 깔아눕히며 제일 먼저 서울에 돌입해 괴뢰 중앙청 공화국깃발을 꽂은 영웅땅크병들의 싸움본때와 투쟁정신을 이어받아야 한다.
- 2016년 3월, '조선인민군 땅크병(탱크병)경기대회-2016'에서
공장이 어떻게 이렇게 한심한 지경에 이르렀나, 위대한 장군님의 업적을 말아먹고 있다.
- 2014년 공장 시찰 도중[92]
침략적인 외세와 야합하여 동족을 반대하는 핵 전쟁 연습에 매달리는것은 스스로 화를 불러오는 위험천만한 행위입니다.
경제 건설의 성과는 인민 생활에서 나타나야 합니다.
담력과 배짱이 영웅남아답다. (중략) 3살 때 총을 쏘았고, 3초 내에 10발의 총탄을 쏘아 목표를 다 명중시키며 목표를 100% 통구멍낸다. (중략) 3살 때부터 운전을 시작해, 8살도 되기 전엔 굽이와 경사지가 많은 비포장도로를 몰고 질주했다. (중략) 초고속보트를 시속 200km로 몰아, 외국 보트회사 시험운전사를 2번이나 이겼다 ... (중략) ...
- 경애하는 김정은 원수님 혁명활동 교수 참고서 '비범한 천품' 항목 中
전쟁할 생각은 없다. 외교 쪽 인간들이 미국에 접근하면 (미국측이) 무리한 난제들 들이대는 바람에 울컥해서 미사일을 발사하고 있다.
- 2016년 4월, 김정일 전속 요리사였던 후지모토 겐지와의 대화 中 #
장군님의 넓은 도량이 6.15 공동선언을 이끌어 낼 수 있었습니다.
- 2016년 조선로동당 제7차대회 연설 中
희한한 광경이요, 대단하오 대단해. 저속에서 무엇이 남아나겠소. 일단 싸움이 벌어지면 남조선 것들을 저렇게 답새겨야(두들겨 패버려야) 하오. 첫 타격에 남조선 것들의 대응의지를 완전히 꺾어놓고 그래도 단말마적으로 발악하는 놈들이 있다면 아우성칠 놈, 비명지를 놈도 없이 모조리 쓸어버려야 하오. 우리 영용한 포병들이 겨냥하는 곳마다가 적들의 송장더미로 되게 해야 하오.
- 2016년 12월 1일, 원산에서 포사격 훈련을 참관하며 ( 조선중앙통신 보도) #
미국의 늙다리 미치광이를 반드시, 반드시 불로 다스릴 것이다.
- 2017년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의 북한 완전 파괴 발언에 반발하며 나온 성명 中
새로운 력사는 이제부터. 평화의 시대, 력사의 출발점에서.
- 2018 제1차 남북정상회담 시작을 앞두고 평화의 집 방명록에 남긴 글.
오기 전에 보니까 오늘 저녁의 만찬 음식 가지고 많이 이야기들을 하던데, 어렵사리 평양에서부터 평양냉면을 가져왔습니다. 가져왔는데, 대통령께서 좀 편한 마음으로 평양냉면, 이렇게 멀리 온, 멀다고 말하면 안 되갓구나. 좀 맛있게 드셨으면 좋겠습니다.
- 2018 제1차 남북정상회담 오전 회의 모두발언 중 일부
조선반도를 핵무기도, 핵 위협도 없는 평화의 땅으로 만들기 위해 적극 노력해 나가기로 확약하였습니다.
- 9월 평양공동선언 발표 기자회견 중
그런 의지가 없다면 여기 오지 않았을 것입니다.
- 2019년 북미정상회담 중 '비핵화 준비가 되었느냐'는 기자의 질문에.
관광지구에 꾸려놓은 봉사건물들이 민족성이라는 것은 전혀 찾아볼 수 없고 범벅식이라고, 건물들을 무슨 피해지역의 가설막이나 격리병동처럼 들여앉혀 놓았다고, 건축미학적으로 심히 낙후할 뿐아니라 그것마저 관리가 되지 않아 남루하기 그지없다.
- 2019년 10월 23일 로동신문에 실린 발언. 금강산 관광 시설에 대한 주장이다. [93]
적대세력이 우리를 겨냥해 핵을 사용하려 하지 않는 한 핵무기를 남용하지[94] 않을 것임을 다시금 확언한다.
- 2021년 1월, 조선로동당 제8차대회에서
우리 인민이 다시는 허리띠를 조이지 않고 사회주의 부귀영화를 마음껏 누리게 하자는 것이 우리 당의 확고한 결심입니다.
- 2012년 4월 15일, 평양 김일성광장에서 한 첫 공개 연설 중
허리띠를 졸라매더라도 기어이 자력부강, 자력번영하여 나라의 존엄을 지키고 제국주의를 타승(打勝, 쳐서 이김)하겠다는 것이 우리의 억센 혁명 신념
- 2019년 12월 21일, 제7기 제5차 전원회의에서[95]
세계적인 악성비루스 전파 상황이 악화되고 있는 현실은 큰물(홍수)피해와 관련한 그 어떤 외부적지원도 허용하지 말며 국경을 더욱 철통같이 닫아매고 방역사업을 엄격히 진행할 것을 요구한다.[96]
- 2020년 8월, 당 중앙위원회 제7기 제16차 정치국회의에서
하늘같고 바다같은 우리 인민의 너무도 크나큰 믿음을 받아안기만 하면서 언제나 제대로 한번 보답이 따르지 못해 정말 면목이 없습니다.
- 2020년 10월, 조선로동당 창건 75주년 기념 열병식 연설에서[97]
현재 남조선당국은 방역협력, 인도주의적협력, 개별관광같은 비본질적인 문제들을 꺼내들고 북남관계개선에 관심이 있는듯한 인상을 주고 있다. (중략) 남조선당국이 이중적이며 공평성이 보장되지 않는 사고관점을 가지고 '도발'이니 뭐니 하며 계속 우리를 몰아붙이려 할 때에는 우리도 부득불 남조선을 달리 상대해줄수밖에 없게 될것. (중략) 남조선당국의 태도여하에 따라 얼마든지 가까운 시일안에 북남관계가 다시 3년전 봄날과 같이 온 겨레의 염원대로 평화와 번영의 새 출발점에로 돌아갈수도 있을것.
- 2021년 1월, 조선로동당 중앙위원회 제7기 사업총화에서 #[98]
총비서께서는 우리 혁명은 반사회주의·비사회주의와의 투쟁을 어느 때보다 요구하고 있다고 하시면서 우리의 사상과 일심단결을 저해하는 악성 종양[99]을 단호하게 수술해버릴 혁명적 의지와 결심을 천명하시었습니다.
- 조선중앙방송, 2021년 2월 8-11일 평양에서 열린 노동당 전원회의에서 김 위원장이 강조한 내용을 언급하며
나는 당중앙위원회로부터 시작하여 각급 당조직들, 전당의 세포비서들이 더욱 간고한 《 고난의 행군》을 할것을 결심하였습니다.
- 2021년 4월, 조선로동당 제6차 세포비서대회에서 한 폐회사 중
인간개조운동이 힘있게 벌어지던 천리마시대처럼 뒤떨어진 사람들을 사회주의적근로자, 애국적인 근로자로 만드는 사업을 전당적으로 조직전개하여야 한다.
- 2021년 4월, 조선로동당 제6차 세포비서대회에서의 결론 《현시기 당세포강화에서 나서는 중요과업에 대하여》 중
그 어디를 둘러보아도 청춘기의 세대들이 영달과 향락만을 추구하고있는 이 세계에서[100] 고생과 시련을 오히려 락(낙)으로 여기며 조국의 부름앞에 충실하고 사회와 집단앞에 성실하며 미래를 위해 투신하는[101] 혁명적인 청년들은 우리 청년들뿐입니다. (중략) 그런데 지금의 청년세대는 나라가 시련을 겪던 고난의 시기에 나서자라다보니 우리 식 사회주의의 참다운 우월성에 대한 실체험과 표상이 부족하며 지어 일부 잘못된 인식까지 가지고있습니다. (중략) 간고한 시련속에서도 우리 새세대들과 인민들에게 베풀어지는 우리 나라 사회주의제도의 혜택이 얼마나 소중하고 값비싼것인가를 모든 청년들이 다 잘 알도록 각방으로 꾸준히 교양하여야 합니다.
- 2021년 4월, 청년동맹 제10차대회에 보낸 서한 중
지금 우리는 건국이래 가장 준엄한 국면에 처해있으며 전대미문의 난관을 불굴의 정신력으로 돌파해나가고있습니다.
- 2021년 8월 28일 청년절 축하문에서
남조선은 북조선의 도발을 억제해야 한다는 망상과 심한 위기의식, 피해의식에서 빨리 벗어나야 한다.
- 2021년 9월 29일, 최고인민회의 제14기 제5차 회의 2일 회의에서 남북 통신선 복원을 지시하며[102]
우리 핵무력의 기본사명은 전쟁을 억제함에 있지만 이 땅에서 우리가 결코 바라지 않는 상황이 조성되는 경우에까지 우리의 핵이 전쟁 방지라는 하나의 사명에만 속박되어 있을 수는 없다.
어떤 세력이든 우리 국가의 근본 이익을 침탈하려 든다면 우리 핵 무력은 의외의 자기의 둘째가는 사명을 결단코 결행하지 않을 수 없을 것이다.
- 2022년 4월, 항일빨치산 창설[103] 90주년 기념 열병식 연설 중 #

8. 가족관계


가족으로는 아내 리설주가 있고 둘 사이에 2남 1녀를 두고 있다고 알려져 있다. 리설주는 선대의 부인들과는 달리 왕성한 활동력을 보여주고 있으며, 북한 최고 권력자의 배우자로서는 오랜만에 ' 여사'로 호칭되었다. [106] 여동생 김여정 조선로동당 선전선동부 제1부부장으로서 김정은에 버금가는 위세를 갖고 비서실장 역할[107]을 수행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이복 형 김정남 이외에도 동복 형 김정철이 있지만 최고 권력자가 되기에는 성격이 너무 부드러워 동생들과는 달리 권력과 거리를 두며 유유자적하게 산다고 한다. 김정일의 전속 요리사 후지모토 겐지의 증언에 따르면 김정일조차도 "정철이는 (후계를 맡기면) 안 돼. 여자애처럼 너무 착해서"라며 권력을 맡기기엔 부적합하다는 평가를[108], 반면 김정은에 대해서는 "나를 꼭 닮았다"며 호평했다고.

대한민국의 국가안보전략연구소장 유성옥 氏에 따르면 1984년 1월 8일 출생으로 추정됐으나 북한에서는 1982년생으로 선전한다. 조작의 이유로는 김일성의 탄생년인 1912년과 끝자리를 맞추기 위해서라는 설이 있다. 권력승계 뒤에는 생일을 1월 1일로 선전하는 중. 김정일도 원래는 1941년생인데 김일성과 맞추기 위해 1942년생이라고 조작한 전력이 있다.

참고로 어머니 고용희 제주도 출신 재일교포의 딸이었고 1960년대 대규모 북송 때 북한으로 넘어갔다고. 이 때문에 김정일이 사망하자 김정은의 혈통적 순수성에 흠이 되지 않도록 조총련의 위상이 격하되는가 하면, 고용희의 출신에 함구령이 내려졌다고…

현재 김정은의 가장 큰 콤플렉스로 보인다. 정실 부인도 아닌 김일성의 허락을 받지 않은 여자, 게다가 북한에서 적대계층으로 취급받는 남조선계 출신( 제주도)+ 재일교포 출신으로서 일반인이었다면 최하위계층 대접을 받을 인물인 것이다. 이미 숙청된 개만도 못한 인간쓰레기 고모부, 김일성 가문의 후손, 즉 백두혈통의 순수한 혈통이 아니라는 점이 김정은에게 큰 약점으로 따라다니고 있다. 그러나 평양의 일부 간부들은 '장군님(김정은)과 자제들밖에 몰랐던 어머니의 헌신이 드러나지 못한 것에 대한 가슴 아픔'이 있다고 변명한다고 한다. # 김정은이 세습 독재를 하면 자신이 특권을 누릴 수 있다고 생각하는 자들은 '평양 어머님'이라면서 칭송한다고 한다. #

자녀로는 첫째인 아들과 둘째인 딸( 김주애), 셋째인 아들이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기사1 기사2 첫째 아들의 나이는 [age(2010-01-01)]세, 셋째 아들의 나이는 [age(2017-02-01)]세라고 한다.

그 외의 여자 관계의 경우엔 성격 문단에서 언급했듯이 아직 불확실한 부분이 많다. 일단 공식적으론 김정은이 리설주 외에 ''이나 '정부'를 두었다는 확실한 증거는 없다.
한때 현송월이 김정은의 애인이라는 설도 나돌았으나 이는 현송월 처형설에서 비롯된 루머에 가깝다. 다만 현송월과 김정은이 남매 수준으로 친한 사이라는 추론은 나오고 있다.

9. 여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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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오스인민민주공화국
국가주석
베트남사회주의공화국
국가주석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국무위원장
중화인민공화국
국가주석
쿠바공화국
국가주석
통룬 씨쑬릿 응우옌쑤언푹 김정은 시진핑 미겔 디아스카넬

[1] 북한식 변형 매큔-라이샤워 표기법에 따른 표기, 기존 매큔-라이샤워 표기법에 따르면 Kim Chŏng-ŭn이다. 조선어의 라틴문자 표기법 참고. 해당 표기법에 따르면 변별 기호는 생략 가능하기 때문에 조선중앙통신 등 북한 언론에서도 일반적으로는 Kim Jong Un이라는 표기를 쓴다. 국어의 로마자 표기법에 따른 표기는 Gim Jeongeun. [2] 김정일· 후지모토 겐지· 일본 1982년 출생으로, 고용숙·서양권은 1984년 출생으로 주장하고 있으나, 공식적으로 인정되는 건 후자로, 미국· 대한민국· 중국도 이쪽으로 결론냈다. 동아일보 우리민족끼리는 1983년 출생이라고 주장한다. 링크 공휴일이자 자칭 '민족 최대의 명절'이라는 김일성의 생일 태양절( 4월 15일)이나 김정일의 생일 광명성절( 2월 16일)과는 달리 2021년 시점에서도 명절은커녕 공휴일로도 지정되어 있지 않다. 2021년 김정은이 '김정은주의'를 내세우며 셀프 우상화에 나서고 있는데 그것이 완료되면 격상될 것으로 보인다. [3] 송도원국제소년단야영소의 반대편에 있다. 2018년 방남한 동생 김여정 최문순 강원도지사에게 밝힌 내용이다. # 이와 별개로 북한 당국에서는 공식적으로 량강도 삼지연시 출생임을 내세우고 있다. 다만 할아버지(만경대고향집)나 아버지(백두산 밀영, 실제로는 러시아 하바롭스크 근교 출신)마냥 출생지(라고 주장하는 곳)를 대대적으로 사적지로 만들고 있지는 않으며, 대내적으로도 그다지 출생지를 알리고 있지는 않다. 이북 5도 기준 함경남도 원산시 송상동, 송중동, 송하동, 문천군 덕원면 부산리, 어운리, 문암리 일대 [4] 2012년 4월 11일 '조선로동당 제1비서', 2016년 5월 9일 '조선로동당 위원장'을 거쳐서 김정일시대 까지의 북한에서 공산당 서기장을 뜻하는 '총비서' 직책을 다시 부활시킨 것이다. '총비서'란 소련 공산당 서기장, 중국 공산당 총서기와 정확히 대응하는 직책이고 명칭만 다르다. 서기장 자체도 원래는 공산당의 우두머리를 뜻하는 직책이 아니라 당 사무총장을 뜻하는 말이다. 서기장, 서기국장, 비서장, 총서기, 총비서, 총간사, 간사장, 사무총장 모두 같은 직책이며 나라나 정당마다 이름이 조금식 다르다. 중화권에서 대통령 총통이라고 하는 것과 같다. 자세한 것은 조선로동당 총비서 문서 참조. [5] 통수권자임을 의미한다. 원래 '조선인민군 최고사령관' 직함을 쓰다가 2019년 4월 11일부터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무력 최고사령관'으로 바꾸었다. 2020년 10월에 일시적으로 '공화국무력 총사령관'을 사용한 바 있지만 이내 다시 원래대로 돌아왔다. 그러다가 2021년 2월 중순부터는 이 호칭을 공식적으로 사용하지 않고 있다. 다만 외국에서 김정은에게 보내는 각종 축전에는 여전히 사용되는 것으로 보아 직함 자체는 유지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그러다가 2022년 3월 25일 화성-17 시험발사 보도 때 오랜만에 다시 사용되었다. [사실상] [헌법상] [8] School Liebefeld Steinhölzli. 1998년부터 2000년까지 다녔으나, 중퇴했다고 한다. 베른 국제학교 맞은편에 위치해서 알렉스 맞추켈리가 얼굴을 본 적이 있다고 말했다. [9] 당시는 후계자의 위치였다. [10] 국가원수(元首)를 말하는 것이 아니며,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원수(元帥)' 자체가 하나의 군 계급명이다. 북한군은 원수 계급이 '대원수',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원수', '원수', '차수'의 4계급으로 나누어져 있는데, '대원수'는 김일성, 김정일(사후 추서)에게만 부여된 계급이고,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원수'는 김정은 전용 계급이다. '차수'는 군 원로들에게 선물처럼 분배되는 계급이고, 직업군인으로서 도달할 수 있는 가장 높은 계급은 그냥 '원수'('인민군 원수'라고도 함)이며 김정은의 취임 당시 이 계급에 도달한 사람은 오진우, 최광, 리을설 뿐이었다. [11] 2021년 1월부터 대원수 계급장을 단 사진이 공개되더니 2022년 4월 25일 조선인민혁명군 창건 90주년 경축 열병식에는 아예 대원수 견장을 찬 흰색 원수복을 입고 나왔고 정부 고위 관계자도 대원수로 진급한게 맞다고 확인해줬다. [12] 트럼프와의 정상회담에서 김정은과 트럼프가 마주 서는 모습이 자주 보이는데, 실제로는 이보다 키가 큰 편이라든가 아니면 트럼프와 만났을 때 키 높이 구두를 신었다는 등 여러 가지 추측들이 돌아다니고 있다. 키가 170cm인 문재인 대통령보다 같이 섰을 때 살짝 더 작았다. # [13] 2010년에는 90kg로 추정되었는데, 몇 년 사이 급격히 늘고 있다. 장성택 공개총살한 이후로 특히 스트레스성 폭식이 늘어난 것으로 추정. 뉴스에 따르자면 2014년에는 120kg, 2016년에는 130kg으로 나왔다고 보도했다. 신변 위협에 불면증…130kg으로 불어난 김정은 # 2020년 11월 3일 국가정보원에 따르면 체중이 140kg으로 불었다고 한다. # 그러나 2021년 9월 9일 정권 수립 73주년 열병식에는 체중을 많이 감량한 모습으로 등장했으며 연설은 생략했다. 이에 당뇨로 인한 체중 감소라는 건강 이상설이 돌고 있지만, 건강관리를 했을 가능성도 존재한다. 김정은이 조부인 김일성의 이미지를 떠올리게 하려는 전략으로 살을 찌운 것인 만큼 체중 감량도 정치적인 의미를 부여할 수 있다. 2021년 10월 28일 김정은이 체중을 140㎏에서 20㎏ 가량 감량했고 건강에는 별 문제가 없다고 국가정보원이 밝혔다. # [사실상] [헌법상] [16] 현재 대한민국 정부와 대한민국 헌법 에서는 북한과 조선로동당을 반국가단체로 규정하여 인정하지 않고 있으므로 헌법상 무소속이다. [17] 중국공산당 중앙군사위원회 주석의 북한 버전이다. [18] 조선로동당 중앙위원회 위원장이 아닌 그저 '조선로동당 위원장'이라는 직함을 신설했다. 얼핏 들으면 모순 같은 직책이어서 '중앙위원장'을 줄여 말한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도 들지만 북한에서는 김정은의 직함을 함부로 줄여 말하지 않는다. 아마 조선로동당 중앙위원회 정치국 상무위원, 정치국 위원, 정치국 후보위원의 우두머리라는 뜻에서 만든 직책으로 보인다. 북한의 노동당 위원장에 대응하는 타국의 직책은 공산당 서기장/총서기로, 흔히 줄여서 소련 공산당 서기장, 중국공산당 총서기라고 하지만 정식명칭은 소련 공산당 중앙위원회 서기장, 중국공산당 중앙위원회 총서기이고 이들은 공산당 중앙위원회 정치국의 대표자들이다. 그러므로 조선로동당 중앙위원회 정치국 위원들의 우두머리라는 뜻의 위원장일 가능성이 가장 높다. 조선로동당 제8차대회에서 비서제로 환원이 결정되었다. [19] 2020년 하반기 쯤부터 '국무위원회 위원장'이라는 표현이 '국무위원장'으로 바뀌었다. 2021년 2월 중순까지는 "조선로동당 총비서이시며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국무위원장이시며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무력 최고사령관이신 우리 당과 국가, 무력의 최고령도자 김정은동지"라는 긴 수식어를 사용하다가 이후부터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무력 최고사령관'이라는 직함과 '우리 당과 국가, 무력의 최고령도자'라는 표현을 삭제하고 '경애하는'만 넣어 짧게 줄여 사용하고 있다. 특히 당 행사에서는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국무위원장'이라는 표현도 삭제하여 "조선로동당 총비서이신 경애하는 김정은동지"처럼 매우 짧게 사용하고 있다. [20] 대부분 많은 사람들과 보수정당 정치인들은 이렇게 부른다. 과거 뉴스에서도 그냥 김정은이라고 불렀다. [21] 뉴스, 신문, 민주당계, 진보정당계 정치인들이 이렇게 부른다. [22] 북한은 당국가체제(黨國家體制)로서, 조선로동당 총비서 직함이 다른 어떠한 직책보다 앞선다. 이는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사회주의헌법 전문, 제11조에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과 조선인민은 ...(중략)... 조선로동당의 령도밑에',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은 조선로동당의 령도밑에 모든 활동을 진행한다'라는 문구를 통해서도 잘 알 수 있다. 조선중앙텔레비죤 리춘히가 항상 "조선로동당 총비서이시며..."라며 가장 먼저 호칭하는 데는 다 이러한 이유가 있다. [23] 2019년 4월 이전에는 '조선인민군 최고사령관'. 2020년 하반기 이전에는 '국무위원회 위원장'. 2021년 1월 이전에는 '조선로동당 위원장'. 다만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무력 최고사령관'이라는 수식어는 2021년 2월 중순 이후 대내 보도에서 사용하지 않고 있으며, 김정은 앞으로 오는 해외 단체나 정치인들의 축전이 아닌 이상 쓰이지 않고 있다. 김정은은 집권 이후 줄곧 군권을 약화시키고 당권을 정상화·강화시키는 조치를 취하고 있는데, 이 역시 선군정치 탈피 시도로 보인다. 다만 2022년 3월 25일 화성-17 시험발사 보도 때 오랜만에 다시 사용되었다. [24] 2021년 1월 조선로동당 제8차대회 이후 총비서직을 달면서 General Secretary라는 칭호도 사용하고 있으며, 국무위원장의 영문 명칭도 Chairman에서 President로 바뀌었다. [25] 그저 농담으로 넘겼다는 거다. [26] 출처:후지모토 겐지, 김정일의 요리사, 4장 [27] 다만 와세다대학 명예교수 시게무라 도시미쓰는 김정남도 김정철도 아닌 다른 아들이 전면에 부상했다는 정보가 있다고 주장하긴 했다. 하지만 뉘앙스를 보면 '공개되지 않은 아들'이라고 하는데 김정은의 경우에는 정보가 거의 없긴 해도 기존에 알려진 아들이긴 해서 김정은을 의미한다고 보기엔 좀 거시기한 면이 있다. 2003~2005년 사이에 성혜림과 고용희 사이에서 낳은 세 아들이 아닌 제4의 아들이 후계자가 될 것이라는 썰이 없던 것도 아니었고. 게다가 시게무라는 김정은 식물인간설, 김정은 김일성 아들설, 김정일 대역의 북한 통치설 등 황당무계한 북한 관련 낭설을 하도 많이 유포한 전력이 있어서 믿기 매우 힘든 인물이기도 하다. [28] 이후로도 시게무라는 온갖 뇌피셜 음모론을 늘어놓다가 학계에서 공공연하게 믿을 수 없는 인물이라고 조리돌림당하는 수준이 되었으며 한때 일본 방송에서도 자칭 북한통으로 패널 섭외가 많이 들어왔지만 밑천이 다 털리면서 방송 섭외도 거의 끊겼다고 한다. [29] 그러나 개인의 무예가 뛰어난것이 정치적 능력과 직결되지 않는다는 사실은 어느 정도 교육을 받은 사람들이나 알 수 있는 것이지, 북한 주민들의 낮은 교육 수준을 감안하면 이런식의 선전도 먹힐 수 있음을 고려할 필요가 있다. 실제로 김정은이 학창시절과는 달리 몸집을 급격히 불린것도 고대 사회에서 지도자의 덩치가 지도자의 덕목으로 통했기에 써먹었던 수법이였다. [30] <김정일 사망> 북한 체제 어디로 가나 [31] <김정일 사망> 김정은 후계구도 유지될까 [32] 단, 이 경우 총련 등의 반발이 있을 것이다. [33] [김정일 사망] 암투로 권력 쟁취한 김정일 vs 귀공자로 자란 김정은 [34] 北 김정은 '신설' 노동당 위원장 취임…김일성 따라 당 중시 [35] 北김정은, 최고인민회의서 국무위원장 추대…'유일체제' 완성 [36] 다만 김정은이 신년사에서 남북 협력을 강조하며 대화를 제의한 것은 이번이 처음은 아니었다. 2014년 신년사에서는 "우리는 민족을 중시하고 통일을 바라는 사람이라면 그가 누구든 과거를 불문하고 함께 나아갈 것이며 북남관계 개선을 위해 앞으로도 적극 노력할 것입니다. 북과 남, 해외의 온 겨레는 참다운 애국의 가치, 우리민족끼리 이념 밑에 굳게 단합하여 조국통일을 위한 거족적 투쟁에 힘차게 떨쳐나섬으로써 올해의 자주통일과 평화번영의 새 국면을 열어나가야 할 것입니다."라고 하였고, 2015년 신년사에서는 "우리는 남조선 당국이 진실로 대화를 통하여 북남관계를 개선하려는 입장이라면 중단된 고위급접촉도 재개할 수 있고 부분별 회담도 할 수 있다고 봅니다. 그리고 분위기와 환경이 마련되는데 따라 최고위급 회담도 못할 이유가 없습니다."라고 하였으며, 2016년 신년사에서는 "우리는 북남대화와 관계개선을 위해 앞으로도 적극 노력할것이며 진실로 민족의 화해와 단합, 평화와 통일을 바라는 사람이라면 누구와도 마주앉아 민족문제, 통일문제를 허심탄회하게 론의할 것입니다."라고 하였고, 2017년 신년사에서는 "북남관계를 개선하고 북과 남 사이의 첨예한 군사적 충돌과 전쟁위험을 해소하기 위한 적극적인 대책을 세워나가야 합니다. 북남관계개선은 평화와 통일에로 나아가는 출발점이며 온 겨레의 절박한 요구입니다. 파국상태에 처한 현 북남관계를 수수방관한다면 그 어느 정치인도 민족 앞에 지닌 자기의 책임과 역할을 다한다고 말할 수 없으며 민심의 지지를 받을 수 없습니다."라고 하였다. '''하지만 신년사들이 있었던 매년, 적어도 2차례 이상의 심각한 무력도발-핵, 미사일 실험 및 대한민국을 향한 직접적 포격-및 외교적 도발을 일삼았다는 것이다. 즉, 이전 김정은이 했었던 유화적 신년사들에는 진정성이 결여되어 있었다고 봐도 무방할 지경이고 이건 2018년 이후 180도 돌변한 김정은의 진정성을 충분히 의심케 한다. 자세한 내역은 북한/대남 도발 문서를 참고하기 바람. [37] 김정은, 도보다리서 `베트남 모델` 말했다 [38] 중국에게 북한은 중요한 완충지대이다. 뿐만 아니라 북한은 국력이 약하기 때문에 중국과 불평등한 무역을 할 수도 있고, 중국이 헐값으로 북한 지하 자원의 채굴권을 딸 수도 있다. 이런 상황에서 북한의 개방은 중국에 문제가 많이 생길 수 있다. 남북통일에 대한 주변 강국의 생각은? [39] 김정은의 이 같은 발언 뒤에는 과거 김정일의 주한미군에 대한 생각이 자리잡고 있다. 김대중 전 대통령이 저술한 김대중 자서전에 의하면 김정일은 남북정상회담 자리에서 1992년 초 미국 공화당 정부 시기에 자신이 김용순 비서를 특사로 보내어 주한 미군 주둔을 요청했다고 발언했다. 김정일이 주한미군 존속을 원한 이유는 한반도의 지정학적 특성상, 주변 강국들이 전략적 이점을 탐내어 수많은 침략을 자행한 역사가 있기 때문이라고 자서전은 전한다. 주변 강국들의 침략을 막기 위해서 주한미군이 한반도를 안정시켜야 한다는 것이었다. 덧붙여서 김정일은 통일 후에도 주한미군은 남아 있어야 한다고 발언했다. 또한 김정일은 내부적으로 북한 주민들의 반미 감정 때문에 주한 미군 철수를 선전하는 것뿐이라고 발언하였다. 김정일의 이 같은 인식이, 주한미군의 역할에 대한 인식이 그대로 김정은에게 계승된 것이라고 볼 수 있다. [총력특집(2)] 정상회담 ‘뜨거운 감자’ 주한미군의 미래 [40] 세종국가전략포럼: 2018 남북정상회담과 한반도 냉전구조 해체 전략 [41] regime's durability. [42] 박근혜 정권 당시 국정원이 가져온 북한 인사들의 처형 소식은 잘못된 것들이 많았고, 주류 언론들도 이를 그대로 재생산하는 데 바빴다. 리영수 총참모장 확인…“생존 위한 맹종” 여기서 보듯이 지상파인 KBS도 리영길이 처형되었다는 잘못된 정보를 그대로 방송하고 있다. 이 문서도 리영길이 생존해 있는데도 불구하고 잘못된 정보를 2016년부터 실어놓고 있었다. [43] 김정일이 집권하던 시기부터 들어오던 것이었다. [44] 참고로 생일을 ㅇㅇ절로 부르는것은 황제의 예법이다. 제후국을 자처하느라 조선에서도 하지 못했던것을 현대국가가 차용하고 있는것. [45] 히틀러는 1차 대전 참전 당시에도 다른 병사들이 흔히 가는 사창가도 들락날락하지 않았으며 개인적으로도 금욕적인 성향이었다. 총통으로써 절대권력을 지닌 최고지도자일 때에도 여자들과 같이 있는 것은 좋아했지만 함께 시간을 보내고 관심과 선망의 대상이 되는 것을 즐겼을 뿐 난잡한 관계는 없었다고 알려져 있다. [46] 엄청나게 많은 사람을 죽인 스탈린도 물질욕 보다는 순수한 권력욕이 더 컸다. [47] 1976년에 설립된 장수 연구소와 1982년 설립된 만수무강 연구소가 바로 그것이다. 장수연구소는 자연요법과 한의학, 만수무강연구소는 서양의학 전문이라고 한다. 그런데 이들 기관의 진짜 이름은 각각 북한 기초의학 연구소와 임상의학연구소다. 평양의대 안에 있다. [48] 비행기를 그렇게 싫어하던 김정일도 아플 때는 탔다고 한다. [49] 주로 스위스다. [50] 리춘히는 현재 너무 고령이어서 다른 아나운서가 김정은의 사망 발표를 하게 될 가능성이 높아지고 있다. [51] 기사에 첨부된 사진을 자세히 보면 배경이 푸르다. 10월의 북한이라고 볼 수 없기에, 8월에 찍은 사진과 영상을 공개한 것이라는 이야기가 있다. [52] 김정은과 달리 문재인은 등산을 즐기며 본인이 직접 히말라야 등정까지 다녀올 정도로 체력이 건강한 편이다. 오히려 60대인 문재인이 30대인 김정은을 배려하여 직접 등반이 아닌 케이블카를 이용해 백두산을 올라갔다는 점에서 상당히 대비된다고 볼 수 있다. [53] 북한에 대해서라기 보다는 김씨부자에 대해서 혐오와 증오에 가까울 정도로 강경한 발언을 쏟아내며 김씨부자 혹은 김씨왕조라고 부르지 않고 김일성 족속이라고 부른다. [54] 대한민국 표준어의 ㅡ는 평순인 /ɯ/, ㅜ는 원순인 /u/로 대립이 확실한데, 북한에서는 사투리가 입에 남은 사람들은 두 발음을 구분을 못하기도 한다. 문화어는 원칙적으로는 이를 구분하나 실제 언어 생활에서는 그렇지 못한 경우가 종종 있다. 북한의 로마자 표기법에서 ㅡ는 u로 표기한다. 로마자 표기명도 Kim Jong-un이다. 한편 슈퍼주니어 예성의 본명이 '김종운'인 관계로, 서구권에서는 한때 오해도 생겼다고 한다. [55] 일본어 화자의 청취 감각으로는 한국어의 '은, 응, 운, 웅'이 모두 'ウン'과 같게 들리기 때문에, 북한의 공식 한자 표기가 공개되지 않은 상태에서 되는 대로 아무 한자나 때려박은 것으로 보인다. [56] 관련 기사 [57] '정운'으로 알려져 있었을 때의 한자 표기는 '正雲'으로 표기해 왔다. 물론 북한 당국의 한자 인증(?)이 없었기에 일단 자의적으로 표기했다. [58] 아마 김정은의 어머니인 고용희 재일교포 일본에서 살았던 경험이 있는 것을 바탕으로 루머를 붙인 것으로 추정된다. [59] 심지어 김정일은 본인의 무능함만으로도 충분히 북한 경제를 나락으로 떨어뜨려 어느 정도의 기아 상황은 만들어질 수 밖에 없었음에도 이미 아버지로부터 자신에게 넘어와있는 실권을 악용해 아버지 김일성이 군량미를 풀어서라도 인민들을 먹이라고 한 것을 무시하고 군량미를 전혀 사용하지 않았으며 더 나아가 인민들이 배가 부르면 딴 마음을 먹는다면서 의도적으로 기아 상황을 유도하여 고난의 행군이라는 희대의 대재앙으로 북한을 지옥 그 자체로 만드는 데에 일조했다. [60] 장성택의 가신이었던 박봉주가 주군인 장성택 처형에도 살아남았다고 할 만큼 이 조치는 성공적이었다. [61] [랭킹쇼] 김정은 경제정책 7년…북한경제 현재 모습 [62] 북한경제의 플러스 성장을 견인하는 대중국 수출과 시장화 [63] 북한은 김일성, 김정일, 김정은이 했던 최고사령관(사실상 최고지도자)을 원수님이라고 하는 것 때문에 원수, 웬수라는 단어를 원쑤라고 표현한다. [64] 당장 당시 북한 방송에 미국 대통령이 좋은 이미지로 구축되어 나오는 말도 안 되는 상황을 볼 수 있었다. [65] 김영삼 전 대통령과 정상회담을 계획하여 성공 직전까지 갔고 그가 결렬된 것이 아니라 준비까지 완성되었으나 그가 얼마 남지 않은 상황에서 갑작스럽게 사망함으로써 자신의 역사에 남북정상회담은 기록하지 못 했다. [66] 이는 2017년 로켓맨이라고 했던 트럼프의 평가하고는 상반된 평가이다. [67] 다만 이는 김정은 본인의 개인적 사생활에 대해 정확히 알 수는 없어서 애매한 부분이기도 하고 김정은은 김일성이나 김정일과는 달리 경쟁자들과의 암투를 벌일 여지가 별로 없었고 젊고 어린 나이에 갑자기 후계자로 급부상했기에 그런 추악한 이야기들을 쌓을 시간이 많지 않았다. 또한 김일성과 김정일이 너무 더러워서 상대적으로 더 깨끗해보일 뿐이지 그리 훌륭한 것은 아니라는 것도 무시할 수 없는 부분이다. [68] 후지모토 겐지는 김정은이 아버지 김정일에 비해 여성 문제와 성가치관, 가정관 등이 매우 올바르고 건전한 것처럼 언급한 적이 있는데 김정일과 김정은 부자에 관해 외국인치고는 매우 잘 아는 편에 해당해서 그가 김정은의 그러한 부분들에 대해 언급한 것이 어느 정도 신빙성과 공신력을 내재하고 있기는 하다. 그러나 항목을 보면 할 수 있듯이 그는 허풍이 심한 사람이며 그도 백두혈통이라 불리는 가족이 아님은 물론 그저 외국인 신분으로 고용된 직원에 불과해 정확하게 알고 있으리라는 보장은 없다. [69] 물론 김일성과 김정일이 너무 지저분해서 상대적으로 그렇다는 것이지 김정은도 그 부분에서 훌륭하고 완벽하다고 볼 수는 없다. 여전히 기쁨조를 비롯하여 북한 여성들의 심각한 인권 실태는 근본적으로 개선되지 않고 있으며 김정은 역시 그 문제로 말이 많이 나오고 있다. [70] 김정일이 만 10세도 안 된 어린 나이일 때 죽었다. [71] 김일성의 수하들이 중학교 밖에 못 나온 여인이 수령만 믿고 까분다며 싫어해서 주변에 적을 많이 만들었고 여맹을 장악한 막강한 권력 역시 제대로 활용하지 못 했다. [72] 리설주가 수령 배우자로써 매우 당당한 위치이기 때문에 정상회담 당시 문재인 전 대통령에게 얄밉다고 농담을 하고 옆에서 김정숙 여사가 웃으며 받아주는 훈훈한 광경도 연출이 가능했다. [73] 물론 김정은 역시 자세한 사생활은 알 수 없으니 세컨드나 그 외의 여성 노리개들이 없다고 확신할 수는 없다. 하지만 유럽 국가들을 비롯한 타국의 국가 최고지도자들이나 고위정치인들도 여성 편력 문제로 인한 스캔들로 구설수와 이미지 실추가 많으며 심지어 그로 인해 사임이나 탄핵 위기 등을 맞기까지 하는 것을 보면 비단 북한만의 문제가 아니며 오히려 김정은이 상대적으로 깨끗하다고 볼 여지가 많다. [74] 문제는 병원의 경우, 건물은 갖춰놓았는데 의료장비가 부족해서 문을 열지 못하고 있다. [75] 다만 북한 측이 선전하는 것처럼 안전성이 보장되는지는 별개의 문제다. [76] 다만 이는 김정은 특유의 잘못이라기보다 아버지 김정일이 만들어놓은 배경 때문에 어쩔 수 없이 그렇게 된 면도 있다. 김일성 때만 해도 수령과 수하들의 관계가 서로 신뢰하고 충성하며 나름 괜찮은 분위기가 형성되어 있었으나 김정일이 집권 과정에서 수령이 수하들을 믿지 못 해서 잔인하게 숙청해버리는 문화를 제대로 형성해버렸다. 김일성도 그러한 배신, 숙청, 토사구팽을 통해 권력기반을 잡았지만 그래도 그 정도로 비인간적이고 살벌하지는 않았는데 김정일은 집권초기부터 병적인 의심과 잔혹성 등으로 그러한 시스템을 형성해버려 이미 김정은이 등장하기 훨씬 전부터 그 바닥은 이미 그런 지옥 같은 세상이 되어있었다. 대표적인 예가 심화조 사건. 김정은 역시 폭력성과 잔혹성 등이 있어서 김정일로부터 유약한 김정철 대신 선택 받은 이유 중 하나가 되었다지만 그 배경 자체를 김정은이 형성했다고 볼 수는 없다. [77] 2021년에는 8차 당대회 때 사회주의적 경제를 천명하더니, 북한 내부와 연락한다는 서로 다른 언론들에서 상거래나 장사 제한이 심해진다는 주장이 나오고 있다. #1 #2 #3 #4 장사 자체를 하지 말라는 '규찰대'에 맞서 장사꾼들은 울거나 아우성치며 저항한다는 말이 공통적으로 나온다. [78] 북한의 도발은 일본의 재무장화의 명분이 되고 한국의 군비 증강에 영향을 주며, 미국 아시아 개입 명분을 제공할 수 있다. 이는 곧 아시아 전체의 군비 증가 및 전쟁 위험성 증가로 이어진다. 그리고 이것들은 중국의 입장에선 반드시 막아야 할 과제들이다. [79] 중국이 이런 말을 할 자격은 없다. 북한이라는 골칫거리를 지금까지 유지시켜준 나라가 누구인가? 다름아닌 중국이다. 온전히 북한의 책임이라고 보기도 어렵다. [80] 중국 '동해 출구' 북한서 극동 러시아로 중심 이동 [81] 최근 보수 야당은 모든 대북지원을 거부하지는 않는다. 태영호 의원도 대북지원을 부정하는 것은 아니며, 다만 남북관계 개선을 염두에 두고 지원하는 것을 반대하여 국제기구를 통한 정기적 지원을 주장할 뿐이다. # 태영호 의원은 분배감시 시스템이 갖추어져 필요한 주민들이 한국 식량인 줄 알고 받을 여건도 된다고 판단한다. 이를 계기로 대한민국은 북한 주민을 버리지 않는다는 인식을 심으려는 의도도 있다. [82] 연락사무소 폭파 같은 사건도 대북전단 같은 구실을 대고는 했는데, 이 건은 그런 구실도 대지 않았다. [83] 북한은 국제사회에 편입되면 한국이나 옛 동독처럼 보호를 받을 수 있다. 그러자면 반드시 외부와 전면적으로 교류해야 한다. 그러나 처음부터 토지개혁이나 그 이후 해방전을 소련이 아니라 자신이 주도했다는 등 거짓말로 권력을 획득했던 김일성 가문의 특성상, 전면적인 교류는 권력에 대한 균열을 상징하기에 이것은 불가능하다는 주장도 있다. # 다만 개방을 하면 초기에는 2018년경의 데탕트처럼 지지를 얻을 여지가 있으며, 그나마 선대의 적폐를 청산했다는 긍정적 평가가 나올 여지도 있었다. 물론 주민들의 생계는 김일성 가문의 안위와 무관하게 훨씬 좋아질 것이다. 중국에 그러면 먹히지 않겠냐는 시각도 있지만 북한 주민 정서는 통일을 더 원하지 중국에 종속되는 것은 싫어한다. [84] 쉽게 말해, 궁예질. [85] 말이 자원이지, 1년 정도 지나면 원칙적으로는 그런 험지에서 벗어날 수 없기에 기피된다고 알려져 있다. 고아가 자원했다는 조선중앙통신의 기이한 뉴스도 있다. [86] 대내적으로는 위기를 과장하는 경향도 보인다. 2016년 두만강 유역 대홍수의 경우도 해방 이후 최대라는 언급이 있었으나 북한 관영 매체는 이것보다 심한 재해를 언급하기도 했다. [87] 법 내용을 공개하고 있지 않으나, 북한 관련 언론사는 일부 조문 내용을 취재하고 있다. 북한 전문가도 이 보도를 믿으며, 놀라움과 실망을 금치 못한다. 동아대 강동완 교수 논평, 문순보 대진대 북방연구소 수석연구위원 논평. 2021년 2월 16일 국정원의 국회 정보위 업무보고에서도 이 내용이 언급된 것으로 알려져, 이 언론의 보도가 맞는 부분이 있었음이 드러났다. # [88] 북한의 경제위기였던 고난의 행군의 영향을 두고 한 발언이다. 참고로 이때는 나라를 믿어 배급을 기다리던 사람은 굶어죽고, 그렇지 않고 장사하던 사람들이 살던 시대였다. [89] 평양 당간부는 남쪽이 약속을 저버렸다고 속고 있으며, 평양의 한 주민은 남조선이 식민지 노예라고 속고 있다는 인터뷰가 존재한다. 링크 타보면 알겠지만 평양 옆 동네 평성시부터 분위기가 그만 때려 잡으라고 아우성이며, 평안북도 당 간부는 8차 당대회는 실패할 것이라고 주장한다. 국경지대 주민은 부패 척결 주장 빼고는 냉소적이다. # [90] 틈이 생기어 어긋나는 것을 뜻하는 명사. # 남한의 표준어이기도 하나 생소한 어휘로 취급 받는다. [91] 백두산을 베고 누워 있는 수령님(김일성)의 발밑에 하루빨리 남해를 깔아 드리기 위해 직접 탱크를 몰고 진격한다는 바리에이션도 있다. #현실적으로는 가능할 것 같지가 않다. [92] 두 팔을 흔들며 격노하는 김정은의 영상은 조선중앙TV가, 발언의 내용은 로동신문이 보도했다. [93] 심지어 아버지의 업적을 비난하는 듯한 발언으로 큰 충격을 주었다. 이밖에도 김정은은 아버지가 만든 선전영화인 민족과 운명 중 상당수 에피소드를 시청 금지시키는 등, 아버지가 외국과 진행했던 합작 사업이나 '일탈적'인 취미로 시도했던 문화예술 사업들을 그렇게 좋게 보지 않는지 연이어 철회하는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 이러한 행보를 두고 태영호는 김정은이 '아버지의 업적을 부정하는 정책'을 취하고 있다고 평했다. [94] 2020년 10월 이전 '핵선제불사용'에서 후퇴한 내용이라 경향신문에서도 이를 비판하는 논평이 실렸다. # [95] 당연히 자신의 첫 연설과 모순된다. [96] 방역의 측면에서 보아도 '그 어떤 외부적지원'에 포함되는 방역 물자, 백신을 거부하는 것은 문제가 크다. 아프리카의 빈국도 지원을 받는 판에 이렇게 지원까지 제대로 받지 않는 건 북한이 거의 유일하다. 전 세계에서 백신 도입이 가장 늦어지는 두 나라 중 하나가 북한이며 2021년 12월에도 받지 않는다. [97] 눈물까지 보인 연설이었지만 #, 연설 뒤 ICBM을 보고선 활짝 웃었다. # [98] 주민에게 긍정적 영향이 갈 수 있는 조치를 싫어하고 군사적 문제 해결에만 집착하며 책임을 전부 한국 정부에 뒤집어 씌우고 있다. 진보 언론도 열받게 한 대목이다. # [99] 반사회주의, 비사회주의를 언급하며 이를 언급한 것으로 보면 한류 등 외부문물, 당의 집단주의 지침을 어기는 개인주의 등을 일컫는 것으로 보인다. 외신을 타고 중역되어 'K팝은 악성 암'이라고 알려졌다. [100] 글을 잘 읽어보면 전세계의 청년의 행태를 어떻게 보는지 알 수 있다. [101] 탄광, 염전, 농촌 등 험지로 탄원시킨 것을 이렇게 주장한다. 북한에서 말하는 탄원은 어렵고 힘든 부문에 자발적으로 진출한다는 것이다. 말 자체가 자발적으로 갈 곳이 있으면 힘들지 않아야 하는데 모순적인 표현으로, 앞서 언급했다시피 끌고 가는 것이다. [102] 통신선은 복원되었지만 접촉 제안은 2021년 12월이 되도록 무응답이다. 문재인 정부의 실무 접촉 제안에도 답을 하지 않았다. # [103] 사실 1932년에 이런 일이 있었다는 말 자체가 우상화를 위한 거짓말이다. 조선인민혁명군, 김일성/생애 문서 참조. [104] 김정은이 숙청했다. [105] 말레이시아에서 암살당했다. [106] 김정숙이나 김성애도 여사로 칭해진 기록이 있다. [107] 2018년 5월 1일에 보도된 한 기사에 따르면, 김정은의 비서실장으로 볼 수 있는 인물은 김창선 국무위원회 서기실장이라고 한다. 기사 다만 김정은이 참여하는 행사마다 격에 맞게 수행해야 하는 인물이 달라지는 측면이 있으므로 비서실장 역할을 김창선 혼자서 다 한다고 해석하는 것은 무리가 있긴 하다. [108] 원래 김정일은 김정철에게 중앙당 선전부라는 막중한 자리에 앉히고 후계자 수업을 시켜보았으나 권력에 대한 욕구가 전혀 없다보니 잘해보려고 하지도 않았다고 한다. 지근거리에서 김정철을 모셨던 태영호도 기타밖에 모르는 청년으로 기억했다. [109] 특히 베른은 스위스 내에서도 독일어 화자가 압도적으로 많은 지방이다. [110] 한 행동전문가는 몸을 흔드는 것은 김정은이 자신의 불안함 혹은 긴장을 유난히 더 하게 될 경우에 하는 행동으로 분석하였다. 실제로 열병식 초창기때 몸을 이리저리 흔들다가 점차 나아지기도 했으며, 그 이후로도 몸을 흔드는 장면들이 종종 보였는데 대부분 울컥하거나 긴장을 하는 모습이 같이 포착된다는 것이 가장 큰 근거. [111] 집권 이전까지만 해도 '존경하는 김정은 대장' 등으로 불렸다. 집권 이후로는 '존경하는~'이라는 수식어가 리설주의 것이 되었다. 관련 기사를 보면, 북한에서는 존경과 경애에는 현격한 차이가 있는 것으로 해석할 수 있다. 기사 [112] 그 이전에는 부탄 지그메 케사르 남기엘 왕축 국왕이 최연소 국가수반이었다. [113] 김일성 김정일도 그렇다. [114] 아사히 "韓특사단 만찬서 정의용·리설주, 김정은에 금연 권해" [115] 이 우표 발행을 두고 일부에서는 "수천만의 인권을 유린한 독재자의 얼굴을 대한민국 공식 우표에 집어넣었다"며 "아직 과거에 대한 반성과 화해의 절차가 법적으로 시작되지 않은 단계에서 김정은의 얼굴을 대한민국 공식 우표에 넣는 것은 몰역사적인 처사"라고 비판했을 뿐 아니라, 2017년에 박정희 대통령 탄생100돌 기념우표 발행이 불발됐던 점을 언급, "'대한민국 전 대통령의 우표'는 정권의 눈치를 보느라 발행하지 않고 '대한민국 우표에 들어가지 말아야 할 사람의 우표'를 발행했다"고 비난했다.[119] [116] 첫째며느리( 김정일)가 그리워질 정도라는 의미. 주로 조선노동당 간부들 사이에서 사용되는 은어라고 한다. [117] 김일성, 김정일보다 더 포악하다는 의미 [118] 웜비어는 식물인간 상태로 미국으로 송환된 이후 사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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