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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수정 시각 : 2024-11-14 00:10:24

가부키

이원의 아내에서 넘어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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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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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일:歌舞伎.jpg
문자별 표기
<colbgcolor=#ddd,#333> 한글 가부키
한자
히라가나 かぶき
로마자 Kabuki
1. 개요2. 분류3. 현황4. 역사5. 특징
5.1. 쿠마도리5.2. 카케고에5.3. 연출5.4. 토비롯포5.5. 하나미치5.6. 타치마와리5.7. 미세바5.8. 쿠로고5.9. 음악5.10. 가부키 18번
6. 유명한 가부키 작품7. 가부키 가문
7.1. 특징
7.1.1. 혈연 중심
7.2. 리엔의 아내
7.2.1. 아내라는 것 자체가 직업7.2.2. 아내의 덕목
8. 가부키 출신 배우9. 관련 캐릭터10. 가부키를 소재로 한 작품11. 관련 문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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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가부키 17세기부터 시작된 일본 전통 연극으로, 노래, , 연기가 가미되어 에도 시대 쵸닌(중산~부유층 평민)의 대표적 유흥거리였다. 오늘날로 치면 인기 뮤지컬이나 드라마 쯤 된다. 2008년에 유네스코 지정 인류무형문화유산으로 등록되었다.

가부키(かぶき '카부키'에 가깝게 발음)란 단어는 원래 かぶく란 동사를 체언화한 것이라 하는데, かぶく는 '색다르고 첨단적인 모양을 하고 자유롭게 행동한다'는 뜻이 있다고 한다. 현대의 "歌舞伎"라는 한자는 이 이름에 끼워맞춘 아테지일 뿐으로, 원래 이름의 의미와는 별 상관이 없다.

2. 분류

크게 4개로 나뉜다. 대표 작품으로는 이하라 사이가쿠의 호색일대남 시리즈, 추신구라(忠臣藏), 요시츠네 센본자쿠라, 치카마츠 몬자에몬의 소네자키 신주(曾根崎心中), 4대 츠루야 난보쿠의 사쿠라히메아즈마분쇼(櫻姬東文章) 등이 있다.

3. 현황

도쿠가와 막부 풍기문란을 조성한다는 이유로 가부키를 권장하지 않았다. 아래에도 나왔듯이 처음엔 유녀 매춘 홍보 느낌으로 시작됐기 때문. 세세한 내용까지 검열하기도 했고 여러번 금지하기도 하다가 이후에는 쵸닌들이 막부에 대해 가지는 불만을 희석시키는 역할을 하고 일종의 막부 이념(성리학) 전파 수단 역할으로도 쓸 수 있었기에 더 이상 제지하지 않았다고 한다.

가부키 배우 사이에서는 습명(襲名)이라고 하여 선대의 이름을 혈족의 후계자가 물려받는 전통이 있다. 이때 선대의 이름뿐 아니라 가부키에서 그가 주로 맡았던 역할도 물려받는다는 점이 특징이다. 그리고 야고(屋号)라는 가부키 배우로서의 특수한 가문명도 가진다. 이들은 대다수가 가부키뿐만 아니라 현대 영화배우 역을 맡기도 하며, 아예 겸업하는 케이스도 있을 정도이다. 워낙 역사와 전통이 있다 보니 가부키 가문 출신 배우들은 대부분 연기력에서는 확실히 인정받은 경우가 많다. 게다가 가부키 배우들은 대부분 걸음마를 막 떼었을 때부터 강도높은 배우 훈련을 받기 때문에 실제로도 짬으로 보나 실력으로 보나 웬만한 현대 배우보다 훨씬 인정을 받을 만하다.

가부키의 여러 요소는 현대 일본의 작품에도 많이 응용되고 있다. 물론 만화에도. 예를 들어 슬램덩크의 주인공 사쿠라기 하나미치( 강백호)의 이름은 가부키의 하나미치에서 유래한다. 약간이라도 알아두면 이래저래 달리 보이는 것이 많다. 그 외에 일제강점기를 지나면서 한국어에도 알게 모르게 가부키에서 유래한 말이 쓰이고 있다. 물론 전부 속어 취급이기는 하지만. 대표적인 예가 쌈마이(삼류)라든가 18번(애창곡) 등이다.

가부키와 얼핏 비슷하면서도 따로 구분되는 일본 전통예술로 노(能)와 쿄겐(狂言)이라는 것도 있는데, 가장 알기 쉬운 차이는 얼굴로 가부키는 화장을 하지만 노와 쿄겐은 화장을 전혀 하지 않은 맨얼굴[1]이나 가면을 사용한다. 그 외로 노는 비극이 주, 쿄겐은 희극이 주, 가부키는 비극, 희극 외에도 시대극 같은 여러 장르를 망라한다는 차이가 있다.

한국 사람에게는 우메보시, 낫토, 스모와 함께 일본 문화의 관문 중 하나. 우메보시와 낫토, 스모 그리고 가부키를 순수한 의미에서 즐길 수 있다면 일본 문화에 매우 친숙해졌다고 해도 좋다. 근데 저 셋보다 가부키가 접근 난이도가 훨씬 높다. 음식은 적응을 하면 되고, 스모는 기초 규칙은 단순한 편이라 보면서 받아들이기 힘들지 않은데, 가부키는 언어 난이도 자체가 엄청나게 높다. 일상 회화 수준의 일본어 실력 가지고는 이해하는데 답이 안 나온다. 가부키는 대사들이 고어(古語)로 된 등 전반적으로 사용되는 단어 수준이 높은 편인지라 현대 일본인도 못 알아듣는 경우가 많으며, 고전 문학 전공자거나 가부키를 많이 관람해본 매니아여야 대사를 제대로 알아듣는 정도이다. 마치 판소리가 한문투의 표현이나 고어가 많아 한국인이라고 해도 완전히 이해하기는 힘든 것과 같다. 예를 들어 수궁가 중에는 토끼가 궁에 당도해 "과연 들어와 보니 좋기는 좋다. 네 귀에서 풍경이 웽기렁 젱기렁 허고 별유천지 비인간이라. 이런 좋은 경치에 풍월이나 한 수 읊어 볼까? 산중 유객(山中遊客)이 도수궁(到水宮)허니 사해 풍광(四海風光)이 입안중(入眼中)이라."라는 대사를 하는데, 젊은 사람에게는 한자에 통달한 사람이 아닌 이상 읽어도 이해하기 힘들고, 한자에 대한 지식이 있어서 읽고 어찌저찌 이해가 되더라도 일반적으로는 쓰지 않는 어휘 천지라 대사로 들으면 이해하기가 더더욱 힘들다. 가부키의 대사도 일본인에게 이처럼 느껴진다. 외국인의 경우는 더욱 심해 어지간한 수준의 일본어 실력을 갖추지 않으면 가부키를 이해하기 어렵다. 그것도 얼마 안 되는 현대에 쓰인 각본의 가부키 정도만 이해할 수 있다. 주로 오르는 고전 작품은 가부키 매니아나 오타쿠, 최소한 취미가 가부키 감상이 아닌 이상 일본인도 남녀노소 할 것 없이 다 못 알아듣는다. 그래서 자주 무대에 오르는 작품이 아니라면 아예 자막을 단다.

그래서 가부키는 특히나 진입 장벽이 높았다. 물론 예외는 있는데, 최근 나카무라가 등에서 시도하는 퓨전 가부키극은 어렵지 않게 볼 만한 정도. 심지어 좀비물도 공연했다. 또한 큰 가부키 공연장에서는 외국인을 위한 자막 서비스를 하는 일도 종종 있다. 이외에 가부키를 다룬 '가부쿠몬'이란 만화책도 이해에 도움이 된다. 번역도 훌륭한 편.(역자: 정은서) '쿠니사키 이즈모의 사정'도 도움이 된다. 일본 NHK에서는 Kabuki Kool이라는 외국인 대상의 프로그램을 진행 중인데, 쿨 재팬을 노골적으로 염두에 둔 제목이나 일부 내용을 제쳐두더라도, 영어 실력이 어느정도 된다면 이를 통해 상당히 쉽고 재미있게 가부키에 대해 자세히 알아볼 수 있다.

전통 공연 문화라는 점, 사전 공부를 하지 않으면 작품의 이해가 어렵다는 점이나, 진입장벽으로 인해 현대에는 퓨전 작품의 개발도 한다는 점 등이 서양의 오페라와 유사하다고 볼 수 있다.

국가 공무원 가가쿠 종사자나 개인 사업자인 노가쿠 종사자와 다르게, 가부키 배우들은 대부분 쇼치쿠 주식회사(松竹株式会社; Shochiku Co. Ltd.) 소속이고, 쇼치쿠 소속이 아닌 배우들도 전원 연예기획사 소속으로 전업 연예인들이다. 일본의 대표적인 가부키 전용 극장 긴자의 가부키좌(歌舞伎座)가 쇼치쿠의 지분 3.44%를 보유하고 있다.

4. 역사


Kabuki: The people's dramatic art (한글 자막 있음)

이즈모노 오쿠니(出雲阿国)라는 여성이 신사의 기금 마련을 위해 파격적이고 통속적인 카부키오도리(かぶき踊り)를 춘 것이 가부키의 초기 형태이다. 이에 극적인 요소를 추가하고 유녀들이 연기한 것이 온나카부키(女かぶき)인데, 이후 이 춤과 함께 매춘이 더해지자 막부는 1629년 풍기문란을 유발하고 사회질서를 문란케 한다 하여 금지하였다. 이후 여성 연기자들은 자신들이 하는 공연의 이름만 바꿔달아 일본무용(日本舞踊)이라고 부르게 되었고, 일본무용 또한 가부키와 흡사한 진화를 거쳐 지금까지 이어지고 있다. 가부키에서 갈라져 나온지 시간이 꽤나 지났지만 현재까지도 가부키와 일본무용은 모르는 사람이 보면 같은 예술로 착각할 정도로 서로 밀접한 관계를 유지하고 있다. 그렇기 때문에 일본무용에도 가부키와 거의 똑같은 레퍼토리가 많은 것이 특징.

그래서 손님들은 앞머리를 밀지 않은 어린 소년들이 연기하는 와카슈카부키(若衆かぶき)로 몰리게 되었는데 이 역시 남색이 성행하고 소년들을 둘러싼 사무라이들끼리의 칼부림 등의 문제가 있어 1652년 금지된다. 당시 와카슈는 앞머리를 제외하고 정수리만 민 머리스타일이 일반적이었는데, 여성 역을 담당할 때에는 정수리의 맨살을 보라색 천으로 가리고 연기했으며 이것이 와카슈카부키의 특징이 되었다. 그런데 와카슈카부키도 매춘과 관련되다 보니 현대의 스타킹 페티쉬처럼 당시에는 이 보라색 천에 페티쉬를 가지는 사람들이 많았다고.

하지만 가부키를 허가해 달라는 성원이 빗발치자 도쿠가와 막부가 배우들을 모두 성인 남자가 여자 역까지 담당하고 춤이 아닌 연극과 노래를 중심으로 무대를 조성하는 것을 조건으로 허가한 것이 야로카부키(野郎かぶき)이다. 물론 성인 남자만 공연을 할 수 있게 된 이후에도 견습생인 미성년들이 성매매에 투입되는 경우가 종종 있었다고 하며, 이러한 묘사가 일본 예술 작품들 곳곳에 나타나 있다. 심지어 여자 역을 맡은 가부키 배우들에게는 일종의 통과의례 처럼 묘사되는 경우도 있다. 당연하지만 근대 이후로는 사라졌다. 현대는 최고급 연예인이자 명백한 상류층인 가부키 배우들이 정신이 나가지 않는 이상 매춘 같은 것을 할 리가 없는 관계로 법적인 제한은 모두 사라진 상태이다. 그러나 여전히 여성은 무대에 오르지 않는 것이 전통이며, 가부키 가문의 여식들은 상술한 대로 가부키와 내용이 아주 유사한 일본무용에 종사하는 것이 일반적이다.

가부키는 겐로쿠(元禄) 시대에 전성기를 맞았다. 이 시기는 하이쿠 마츠오 바쇼, 통속소설의 이하라 사이카쿠, 분라쿠의 치카마츠 몬자에몬(近松門左衛門) 등 3대 근세 문호가 활약한 시기이다.

원래는 서민들의 유흥거리였던 만큼 내용이 저속한 경우도 많았고, 귀족들의 예술이었던 노가쿠의 레퍼토리를 빌려온 것도 있었으며, 독창적이고 수준 높은 희곡이 많은 편은 아니었다. 실제로 가부키가 노가쿠를 제치고 확실히 대세로 자리잡은 지 오랜 세월이 지난 지금도, 노가쿠 종사자들은 노를 뮤지컬이나 오페라에 비유하고 가부키를 길거리 공연에 비유하는 등 은연중에 약간 낮잡아 보는 경우가 있다. 그러나 가부키가 눈엣가시였던 에도 막부에서 몇번이고 가부키를 금지시킬 때마다 막부에서 금지하는 내용을 빼고 내용을 다듬는 수정작업이 이루어졌으며, 이 때마다 작품성을 높이는 작업 또한 동반되었다. 그리하여 단순히 자극적이고 야한 섹시댄스에 불과했던 초창기의 형태에서 점차적으로 진화해 깊이 있는 줄거리와 화려한 연출, 수준 높은 연기 등의 높은 작품성을 띄게 되었다. 그에 따라 가부키를 바라보는 시선 또한 달라져 현재로 치면 스트립쇼를 보는 시선이었던 초기와는 달리 에도 말기의 가부키는 서민들이 접하는 것 중에서는 매우 높은 수준의 예술로 평가되게 되었고 자연히 가부키 배우들의 경제적, 사회적 지위 또한 올라갔다.

에도시대 말에서 메이지 유신 즈음에 서양에서 새로운 문물이 들어오기 시작했고 변화를 거부하던 노가쿠가 몰락하면서 가부키는 새로운 변화기를 맞게 되었고, 서양의 선진 문물을 적극적으로 받아들여 새로운 연출 기법[2]을 발전시키고 스토리도 적극적으로 진화하고 발전시키며 500년 이상 고급 예술 자리를 꿰차던 노가쿠를 제치고 일본을 대표하는 고급 전통 예술로 발돋움하게 된다.

이 즈음 메이지 천황이 가부키를 직접 관람하는 일이 벌어졌는데, 당시 현인신으로 떠받들여지던 천황이 직접 관람한다는 것은 당시 일본에서는 상당한 대사건이었으며, 가부키에 대해 일부에게 마지막까지 남아있던 '저속한 서민 문화'라는 시선도 완전히 사라지게 되었다. 그러나 동시에 서양의 신파극이 들어와 가부키는 "구파극"으로 불리며 외면당하기도 했고, 태평양 전쟁에서 일본 제국이 패전하며 연합군에게 점령된 후에는 한동안 결투나 복수 등을 테마로 한 극들은 상연이 금지되기도 했다.

현대에도 활발히 새로운 기법과 희곡을 창작한다는 점에서 650년 전과 달라진 점이 거의 없는 노가쿠와는 극명한 대비를 이룬다. 근대에 들어와선 작품에서 저급하고 세속적인 내용을 삭제하는 등 고급 예술화되는 중이며, 계속해서 퓨전 가부키극이 제작되는데, 이들 중 일부는 가부키의 상징인 화려한 의상과 화장 등을 제외하면 현대의 뮤지컬과 거의 차이가 없는 경우도 있어 진입 장벽이 매우 낮기 때문에 초보자나 외국인 또한 부담 없이 관람이 가능하다. 서양의 스토리를 적극적으로 받아들였기 때문에 미녀와 야수 아이다 등 서양의 뮤지컬을 그대로 번안해 만든 작품이나 바람계곡의 나우시카 같은 애니메이션 원작의 작품 또한 상연되고 있으며, 이들을 관람하며 서양의 원본과 비교하는 것도 재미가 쏠쏠하다. 심지어는 스타워즈도 가부키로 만들어졌으며, 하츠네 미쿠가 홀로그램으로 등장하는 작품도 상연된 바 있다.

5. 특징

해당 영상에서 유명 가부키 극의 일부분을 감상할 수 있다. 명문가로 불리는 4 가문의 직계 당주라인 배우들은 물론이고 TV 드라마나 영화에서 활약하는 가부키 출신 배우도 몇 출연한다.[3] 전형적인 가부키 극부터 보고 싶다면 6분 45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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퓨전극 《 루팡 3세》 가부키 극의 홍보물[4] 미네 후지코 역에 2대 이치카와 에미야가 분하고 있다.]
가장 큰 특징은 남성 배우만 나오고, 여성 역할도 남성 배우가 한다. 앞서 나왔듯이 매춘 문제 때문에 성인 남성 배우만 나오는 "야로카부키"만 허락되고 굳어진 것이 지금까지 내려온 것. 이건 노가쿠도 비슷했지만 노가쿠는 1940년대 이후 여성 배우들도 나오고 있기 때문에 현대에는 가부키만의 특징으로 남게 되었다. 현대에는 배우들의 자식들이 아역 배우로 등장하기도 하는데, 아이들의 작은 체격을 이용해 먼 거리에서 일어나는 일을 표현할 때 주로 등장한다. 예를 들어 두 무사가 결투하는 장면에서 처음에는 아버지들이 나와서 결투를 하고, 이들이 관객 입장에서 먼 곳으로 장소를 옮겨 결투하는 장면이 다시 나올 때는 어린 아들들이 아버지들과 동일한 분장을 하고 결투하는 식. 노가쿠와 마찬가지로 가부키도 아주 어릴 때부터 배우 훈련인 케이코(稽古)를 진행하기 때문에 아이들이라고 딱히 연기력이 떨어지지는 않는다.

또한 가부키를 배우고 있는 남자라고 해서 누구나 무조건 주조연을 맡을 수 있는 것은 아니다. 실력이 어떠하든 가문의 위치에 따라 평생 주연을 맡지 못하거나 조연조차도 다른 가문과의 경쟁에서 밀리는 경우가 종종 생긴다. 어디서나 주연은 주요 명문가의 장남들이 맡게 되며 이하의 가문들은 해당 가문이나 후원사에서 직접 올리는 가부키 극이나 연고지에서 올리는 가부키 극 등에서 겨우 주연을 맡는다. 문하생들의 취급은 더욱 좋지 않으며 주연을 빛내주는 단역을 주로 맡으나 실력을 인정받으면 유명 배우의 방자로 들어갈 기회를 얻기도 한다. 이럴 경우 이름있는 조연은 보장된다. 운좋게 자식이 없는 유명배우의 양자로 들어가게 된다면 주연 자리도 가능한데, 마츠시마야의 6대 카타오카 아이노스케가 대표적인 사례이다.

5.1. 쿠마도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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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부키 하면 가장 먼저 떠오르는 것이 등장인물들의 화려한 화장이다. 이를 쿠마도리(隈取り)라 부르는데, 배역에 따라 화장이 다르다. 항상 배우 본인이 직접 하는 화장으로, 기본적으로 얼굴에 하얗게 분칠을 하고 색이 들어간 선을 그린다. 하얀 분칠을 하는것은 과거 가부키는 어두운 곳에서도 공연을 했기 때문에 가시성을 늘리고, 주인공을 강조하기위해 하기 시작했다는 썰이 있다. 붉은색 선으로 그리면(베니구마紅隈) 선한 주인공이고, 검은색, 푸른색 선으로 그리면(아이구마藍隈) 악역이다. 갈색 선은 인간이 아닌 요괴를 상징한다. 이 선들은 인물이 흥분하면 핏발이 서는 것을 형상화한 것으로, 당연히 선이 많을수록 그 인물은 다혈질적인 성격이다.

가부키와 노를 가장 명백하게 구별할 수 있는 방법이 바로 이 쿠마도리인데, 노 배우들은 절대 화장을 하지 않고 반드시 아무 것도 없는 맨 얼굴로 공연하거나 노멘(能面)이라는 가면을 사용한다. 반대로, 가부키에서는 절대 가면을 쓰지 않는다. 따라서 일본 전통 예능의 공연 사진을 봤는데, 이것이 무슨 공연인지 헷갈린다면 배우들의 얼굴을 보면 아주 손쉽게 구분이 가능하다.
10대 마츠모토 코시로의 분장 및 쿠마도리 그리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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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연이 끝나면 (언제나는 아니지만) 쿠마도리 상태의 얼굴을 그대로 종이에 찍어 기념품을 만들기도 한다. 이를 오시구마(押隈)라고 하는데, 해당 배우의 서명을 곁들여 공연의 최대 후원자나 기타 VIP 관객에게 선물로 주는 것이 일반적이었다. 현재는 배우가 기념으로 그냥 소장하는 경우도 많다. 현대의 연예계에는 보통 전속 메이크업 아티스트가 있지만, 가부키의 쿠마도리는 항상 배우 본인이 직접 그리는 것을 원칙으로 한다.

5.2. 카케고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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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이버 웹툰 낢이 사는 이야기
스케로쿠(助六)에 출연한 18대 나카무라 칸자부로(中村勘三郎). 유머러스한 재치로 일본 대중들에게 사랑받은 배우였지만 아쉽게도 2012년 호흡장애로 숨을 거두었다. 위의 동영상보다 카케고에가 좀 더 명확하게 들린다. 그가 하나미치로 퇴장하자 열광하듯 앞다투어 소리치는 히이키들로 그의 인기를 실감할 수 있다. 좌측 상대는 가부키의 전설 12대 이치카와 단쥬로.

일본 전통 문화의 첨병으로 꼽히는 만큼 특수한 성질이 아주 많다. 가부키를 보다 보면 객석 어딘가에서 갑자기 간 떨어트릴 만큼의 괴성이 곳곳에서 들리는데, 이렇게 소리를 지르는 사람들을 히이키(ひいき)라고 한다. 특정 가부키 배우를 후원하는 후원자로, 자신이 후원하는 가문의 배우가 나오면 배우의 야고(屋号)나[5] 응원하는 멘트를 온 힘을 다해 외치며 호응한다고 한다. 등장할 때 소란스러울수록 인기가 많은 셈. 지금은 전문 호응꾼을 고용하고 있다. 대개 가부키 애호가들이 지원하는데, 이들은 극중 카케고에를 넣어주는 대가로 무료 관람이 가능하다. 물론 전문 히이키가 아닌 개인이더라도 얼마든지 자유롭게 카케고에를 넣을 수 있고, 실제로 가부키를 직접 관람하다 보면 옆자리에 앉은 평범한 회사원이나 영감님들이 카케고에를 외치는 경우도 많다. 그러나 카케고에를 제대로 넣으려면 배우의 신상에 대해 잘 알고 있어야 하고, 극의 딱 정확한 시점에 소리를 질러야 하기 때문에 해당 극 전반에 대한 이해도도 상당히 높아야 한다. 아무나 할 수 있는 일은 아닌 셈. 히이키들이 이렇게 외치는 것을 카케고에(掛け声)라고 하는데, 가부키뿐만 아니라 일본의 다른 서민 예능에서도 간간히 들을 수 있다.

원래 카케고에는 연주자들이 추임새를 넣는 것을 일컫는 용어로, 가부키나 노 하면 생각나는 기묘한 " 요오~" 하는 효과음이 대표적이다. 이것은 원래 지휘자가 없는 전통 연주에서 연주자들끼리 호흡을 맞추기 위해 넣는 것으로, 악보에 기입되어 있어 음악의 일부로 취급된다.[6] 그런데 가부키에서는 관객이 배우를 응원하는 것 또한 카케고에라고 부른다. 관객이 배우를 향해 응원해 주는 것 또한 연주자들의 추임새처럼 당연한 극의 일부로 수용한다는 것이다.

이처럼 가부키는 관객이 일방적으로 보기만 하는 노와는 다르게 관객과 배우가 서로 소통하는 연극이며, 이는 서민들이 감상하는 가부키와 지체 높은 귀족들이 감상하는 노의 차이라고 볼 수 있다. 이 히이키들의 괴성에서 비롯되어, 현재는 일본에서 카케고에라고 하면 일반적으로 관객이 배우나 가수에게 던지는 응원의 말을 의미한다. 일본 아이돌 팬이나 아이돌물 애니메이션의 애호가라면 이 용법에 익숙할 것이다. 현재 연주 도중에 넣는 추임새라는 원래 의미의 용법은 전통 음악인들 사이에서나 쓰인다.

5.3. 연출

가부키와 노는 이외에도 많은 차이점이 있는데, 연출상에서도 주목할 만한 차이점이 있다. 기본적으로 가부키는 최대한 특수 효과와 무대 장치 등을 많이 이용해 관객으로 하여금 마치 작중의 배경 속에 들어앉아 있는 듯한 생생함을 느끼게 한다. 또한 연기도, 현대의 연극이 그렇듯이 관객에게 최대한 잘 전해지도록 과장되고 알기 쉽게 하는 것이 일반적이기 때문에, 가부키에서 사용되는 고어(古語)를 모르거나, 심지어 일본어를 한마디도 할 줄 모르는 사람이 관람해도 극에서 어떤 일이 일어나고 있는지 쉽게 감을 잡을 수 있다. 이와는 대비되게 노에서는 특수 효과와 무대 장치 등을 전혀 사용하지 않아 배우들은 아무 것도 없는 무대 위에서 오로지 대사와 연기만으로 해당 장면을 연기하며, 그 연기도 극도로 양식화되고 간략화되었기 때문에 노가쿠 애호가가 아니면 무슨 장면인지 이해하기가 대단히 어렵다. 또한 가부키에서는 배우가 얼굴 표정을 매우 적극적으로 활용하지만, 노에서는 가면을 쓰거나, 가면을 쓰지 않더라도 시종일관 뻣뻣한 무표정(直面)으로 연기하기 때문에 표정으로 전해지는 인물의 감정을 종잡기 어렵다.

알기 쉽게 예를 들어보자면, 가부키의 여성 역을 맡은 배우는 여성성을 극도로 과장한 연기를 지향하기 때문에 항상 높고 새된 목소리로 대사를 읊고, 걸을 때도 양 무릎을 붙이고 종종걸음으로 걸으며, 몸짓 하나하나가 최대한 색기를 드러내도록 연기를 하지만, 노에서는 여성의 얼굴을 표현한 가면을 사용하는 것 외에 여성성을 직접적으로 드러내는 일이 없다. 대사 또한 남성의 목소리를 그대로 활용해 마치 성악을 하듯이 노래한다. 인물이 극도의 슬픔으로 통곡하는 장면이 있을 때도, 가부키에서는 슬픔의 표현을 과장해 배우가 목놓아 오열하거나, 과장된 몸짓으로 눈물을 닦는 행동을 하지만 노에서는 단지 고개를 약간 숙이고 한 손으로 서서히 눈을 가리는 행동이 전부다.

기본적으로 호흡이 극단적으로 느린 노에 비해 호흡이 빠르고, 정교한 무대 장치와 생생한 연기 등으로 더 깊이 있는 연기를 펼칠 수 있으므로, 가부키 극들은 기본적으로 현대의 연극처럼 줄거리가 복잡한 경우가 많다. 따라서 줄거리가 극도로 단순하고 줄거리의 진행보다는 배우의 춤에 더 관심을 두는 노[7]와 다르게 가부키는 줄거리 그 자체와 배우의 생생한 연기 등이 관람 포인트이다.

5.4. 토비롯포

제1명문가 나리타야의 선대 당주
12대 이치카와 단쥬로[8]가 설명하는 벤케이의 토비롯포[9]
노와 가부키의 이러한 차이점은 NHK의 외국인 대상 가부키 홍보 프로그램인 Kabuki Kool의 에피소드에서 간단하게 볼 수 있다. 주군 미나모토노 요시츠네를 살리기 위해 주군을 덜떨어진 시종으로 위장해가며 피난을 가는 무사시보 벤케이와 그 장수 일행을 검문하는 적대 수문대장 토가시(富樫)의 이야기를 각각 다룬 노와 가부키가 하나씩 있다. 노 <아타카(安宅)>에서는 단지 벤케이가 보내 달라고 하자 토가시가 반쯤은 속고 반쯤은 쫄아서 일행을 보내 준다. 반면 가부키 <칸진쵸(勧進帳)>에서는 토가시가 과거 벤케이, 요시츠네와 같은 전장에 참전한 경험이 있어 그들의 얼굴을 이미 알고 있었다는 오리지널 설정이 붙어서 사실 벤케이와 요시츠네의 정체를 이미 간파했으나 요시츠네를 살리기 위해 몸을 아끼지 않는 벤케이의 모습을 보고 비록 적이지만 충성심에 감복해 보내 준다는, 보다 깊이 있고 긴장감 넘치는 스토리로 크게 각색되었다.

극의 말미에는 검문소를 안전하게 통과해 앞으로 나아가는 요시츠네와 벤케이 일행에게, 앞선 자신들의 실례를 사과하기 위해 토가시가 쫓아와 벤케이에게 술을 대접하는 장면이 있는데, 이때 벤케이가 술을 마시고 춤을 춘다. 노와 가부키 버전에서 이 춤 또한 사뭇 다른데, 노에서는 벤케이가 아직도 토가시에 대한 경계심을 놓지 않았음을 표현하는 춤을 추는 데 비해, 가부키에서는 벤케이 또한 토가시가 자신들의 정체에 대해 알면서도 그냥 보내준 것을 눈치챘고, 자신들처럼 중대한 적을 그냥 보내준 죄로 나중에 할복을 면치 못하리라는 것을 알기 때문에 그에게 감사를 표하고 장수(長壽)를 기원하는 춤(延年之舞)을 추는 것으로 변형되었다.
코오라이야의 선대 당주
초대 마츠모토 하쿠오 벤케이 토비롯포[10]
초대 마츠모토 하쿠오의 장남
2대 마츠모토 하쿠오의 벤케이 토비롯포[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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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대 마츠모토 하쿠오의 장손
7대 이치카와 소메고로의 벤케이 토비롯포[12]
모든 갈등이 해결되고 요시츠네와 벤케이 일당이 탈출에 성공하고, 벤케이 역시 이들의 뒤를 따라 하나미치 앞에 서고 토가시는 그들의 떠나는 모습을 마치 못봤다는 듯이 오른팔 소매를 휘감고 얼굴을 가린다. 이로써 막이 닫히면서 극이 끝나는데, 여기서도 노의 경우 모든 배우들이 퇴장하고 그대로 끝이지만, 가부키의 경우 막이 닫힌 후에도 벤케이 혼자 하나미치에 남아 검문소 쪽을 돌아보며 토가시에게 감사를 표하고, 앞서 일행들이 간 쪽을 지그시 응시하다가 긴장감 넘치는 하야시 연주와 함께 토비롯포(飛六方)라는 특유의 스텝을 밟으며 뒤따라가며 극이 마무리된다. 실제로 관람하면 이미 스토리가 다 알려져 있는 옛날 연극임에도 불구하고 상술한 여러 각색들과 배우들의 적절한 과장을 섞은 연기 덕분에 관객도 끝까지 긴장감을 놓지 못할 정도이다. 특히 이 토비롯포가 가부키 전체 작품을 통틀어 대단한 볼거리인데, 의복에 장비만 수십kg을 감당하는 벤케이가 현란하게 사방을 가리키며 민첩하게 거동하는 모습은 아무리 가부키에 문외한이라도 눈을 뗄 수가 없다. 게다가 대사라고는 단 한 마디도 없는데 오직 몸짓만으로 온 관객의 관심을 집중시키니 그 몰입도는 가히 상상초월. 발을 뗄듯 말듯 하면서 애를 태우다가 마치 허공답보를 하듯 사뿐사뿐 달려나가는 모습은 좌중의 갈채를 유도한다. 이 장면에서 극장 내에 있던 모든 히이키들이 일제적으로 외치는 카케고에와 관객들의 열띤 박수소리까지 같이 울려퍼지는데, 이 현장을 직접 겪어보면 대단히 극적인 경험이 된다. 이렇듯 벤케이 역은 고난도의 기술과 경력을 요구하므로 주로 이치카와를 습명하는 배우가 맡고 있다.

여담으로 나리타야의 11대 이치카와 단쥬로와 코오라이야의 초대 마츠모토 하쿠오는 친형제였다. 때문에 나리타야와 코오라이야의 벤케이 연기는 어딘가 닮았으면서도 전혀 다른 느낌을 선사하는 것으로 유명하여 후원자들끼리 간혹 벤케이는 나리타야냐, 코오라이야냐로 다투는 광경을 확인할 수 있다. 실제로 나리타야의 11대 이치카와 단쥬로, 12대 이치카와 단쥬로, 13대 이치카와 단쥬로 하쿠엔 삼대와 코오라이야의 초대 마츠모토 하쿠오, 2대 마츠모토 하쿠오, 10대 마츠모토 코시로 삼대의 벤케이 연기는 서로 닮았으면서도 선조들이 가르쳤던 것을 토대로 연기법이 전수되었기에 발을 딛는 법이나 롯포에서 손의 움직임이 명확히 나뉘는 것을 볼 수 있다.

5.5. 하나미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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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미치(花道)는 원래 화류계를 지칭하는 말이나, 가부키에서는 무대에서 객석 쪽으로 난 통로를 뜻한다. 무대 구성이 상당히 기이한데, 전면 무대를 기준으로 3:7로 양분하여 설치하는 것이 정통이다. 따라서 1층 객석은 둘로 쪼개져 있다. 하나미치는 본 무대와 다른 배경을 뜻하거나, 인물이 등퇴장하며 강조를 주는 효과를 제공한다. 심지어 하나미치 중간에 위치한 바닥문(セリ, 본 무대에도 세리가 설치되어 있음)을 통해 배우를 올려보냄으로써 등장인물이 갑자기 바닥에서 솟아오르는 효과도 낼 수 있다. 하나미치는 원래 퇴장할 때 히이키들이 축의금을 주는 길이었는데, 이게 변질되어 무대의 일부가 되었다고 한다. 배우가 퇴장하는 길이기 때문에 일본어에서 하나미치는 최전성기에 은퇴하는 것을 빗대는 표현으로 쓰기도 한다. 현재는 신기술을 적극적으로 수용하는 가부키답게 와이어 액션도 발달해 배우가 아예 하나미치 위로 날아서 퇴장하는 경우도 있다. 이 경우 더욱 강렬한 시각적 임팩트를 줄 수 있고, 2층 객석의 관객에게도 가깝게 다가갈 수 있다는 장점이 있다. 하지만 일단 위험하고[13], 와이어 하나에 지탱한 상태로 가부키 특유의 자세를 취하는 것이 대단히 어렵기 때문에 배우에게 부담이 많이 간다.

5.6. 타치마와리

타치마와리(立ち回り)는 가부키에서의 결투 장면을 뜻한다. 그런데 어째 무사도의 나라라는 일본 치고는 동작이 묘하게 이질감 든다. 칼을 쓱 들었다 손목으로 까딱까딱하는 게 전부며, 절대 무기가 배우를 스치는 일이 없다. 심지어는 서로 일렬로 서서 미세바(見せ場) 효과를 주기 위해 관객을 본 채로 싸우는 경우도 있다. 이해하기 어렵지만 잔인한 장면을 어떻게 예술적으로 승화시킬까 고뇌하다 나온 산물이라고 한다. 비단 가부키만 이러는 것이 아니고, 연극에서 결투 등을 표현할 때 보통 이런 식으로 칼을 휘두르는 시늉만 하는 경우가 많다. 아무리 나무로 만든 가검이라고 해도 잘못 맞으면 크게 다칠 수 있기 때문이다. 현재는 배우들의 기량도 매우 올라가서 무기가 빠른 속도로 아슬아슬하게 배우를 스칠락 말락 하며 싸우는 장면을 연출하기 때문에, 실제로 보면 상당히 긴박하고 역동적인 느낌을 준다. 결투에서 캐릭터가 다치거나 사망하는 장면의 경우에도 많은 기법을 동원해 예술적이면서도 또한 당대 기준으로는 매우 현실적인 연출을 추구했는데, 컴퓨터 그래픽과 정교한 카메라워크 등으로 점철된 영화의 특수 효과에 익숙해진 현대인이 보기에는 별 것 없어 보일지 몰라도 에도 시대의 관객들에게는 매우 효과적이었을 것이다.

5.7. 미세바

미세바(見せ場)는 미에(見え)가 강조되는 부분, 즉 하이라이트다.

미에란 극에서 연기하는 역할이 무언가에 대한 결단을 하거나 적을 물리칠 때, 등장, 퇴장을 할 때에 눈을 감았다가 부릅 뜨면서 동공을 한 가운데로 모아 객석을 응시하는 움직임을 말한다. 가끔 '요오~'하는 쿠로고들의 목소리 + 하야시의 카케고에와 함께 움직임을 선보이는 경우도 있으며 배우에 따라 본인이 울음 소리를 내곤 한다. 눈을 감은 채로 절도있는 손동작과 함께 입술 모양을 일그러트리며 고개를 흔드는 경우가 많다. 이 미에라는 동작이 언뜻 보기에 사시를 연상케 하여 눈동자에 힘만 주면 할 수 있을 것 같지만 배우들은 이것을 완벽하게 표현하기 위해 오랜 시간 노력한다.

또한 도 깜빡여서는 안 되며 가능한 눈을 크게 부릅 뜨고 오랫동안 유지하는 것이 중요하다. 미에의 종류도 여러가지가 있으며 그중 한쪽 동공은 정면을 응시하되 다른쪽 동공은 안쪽으로 모으는 미에가 가부키 배우들에게 고난이도로 꼽힌다고 한다. 무대에서 자연스럽게 나오기까지 연습하는 데 오랜 시간이 걸린다고 한다.
파일:우키요에 미에.jpg
우키요에로 표현한 가부키 배우의 미에
자세히 보면 동공이 각자 다른 곳을 응시하고 있다
6대 카타오카 아이노스케의 미에
마찬가지로 동공이 각자 다른 곳을 응시하고 있다.
미세바에서는 주연급 인물이 모두 나와 일렬로 서서는 각자 맡은 절제된 동작을 하면서 미에를 선보인다. 여기서 마루바닥에 나무조각을 쳐서 내는 '착착착착착' 하는 츠케(ツケ)라는 효과음을 사용해서 굉장히 정신사납게 만든다. 게다가 히이키들이 여기서 본격적으로 경쟁하듯 자신이 후원하는 배우 이름을 소리친다. 이때의 배우의 움직임이 매우 특이한데, 팔다리와 얼굴 중 한 번에 하나씩만 움직이며, 마지막에는 얼굴을 앞뒤로 흔들다가 관객을 향해 눈을 부라린다. 영화는 카메라로 기교를 부려 관객의 시야를 제한할 수 있지만, 가부키는 무대 위에서 벌어지는 공연이기 때문에 당연히 이런 것이 절대 불가능하다. 때문에 가부키 배우들이 미세바에서 사지를 한 번에 하나씩만 움직이는 것은, 관객의 시선을 온몸에 분산시키지 않고 자신이 원하는 곳으로 시선을 유도하기 위함이다. 관객을 향해 눈을 부라리기 전에 머리를 앞뒤로 빠르게 흔드는 것도 같은 맥락에서 나오는 행동이다. 보통 전투장면의 극적인 순간이나 또는 작품의 마지막 장면에서 미세바가 등장하며, 긴장을 고조하는 츠케의 효과음과 여기저기서 소리를 지르는 히이키들의 성원에 극적인 분위기가 최고조에 이른다. 보다 성숙한 배우의 경우에는 몸짓을 굳이 크게 하지 않아도 절도있는 연출로 최대 극적인 효과를 주며, 눈동자를 가운데로 한데 모으기까지 한다.
파일:9대 단쥬로 니라미2.jpg
나리타야
9대 이치카와 단쥬로의 니라미
덧붙여 미에의 표현 방식 중 하나로 니라미(睨み)라는 것이 있는데 니라미는 노려보는 표현의 일종으로 하늘과 땅을 동시에 바라보며 빛을 반사 시킨다는 의미가 있다. 이는 나리타야의 초대 이치카와 단쥬로가 고안한 표현 방식으로 오직 나리타야의 직계 장자만이 니라미를 관객에게 선보일 수 있다. 그렇기에 현재 니라미를 피로할 수 있는 배우는 나리타야의 당주 13대 이치카와 단쥬로 하쿠엔 단 한 사람뿐이다.[14]
파일:11대 에비조 니라미.jpg
나리타야
13대 이치카와 단쥬로 하쿠엔의 니라미
언뜻보면 미에와 별반 다를 게 없어 보이는데, 나리타야의 니라미는 공연 도중에는 얼마 하지 않고 습명을 발표하거나 가문의 특별한 행사 등의 위치에서만 보여주는 유구한 역사를 지닌 동작이기에 차별화되는 것이다.
오사카 도톤보리에서
니라미를 선보이는 13대 이치카와 단쥬로 하쿠엔
그리고 나리타야의 니라미를 직접 보면 해당 년도의 운수가 좋다는 미신 또한 일반 팬들 사이에서 늘 한 몫 한다. 위의 인파가 전부 단쥬로의 니라미를 보기 위해 몰려온 것인데, 만약 저기서 단쥬로가 눈을 조금이라도 잘못 깜빡인다면...
도쿄 스카이트리에서
니라미를 선보이는 13대 이치카와 단쥬로 하쿠엔

5.8. 쿠로고

쿠로고(黒衣)[15]는 말 그대로 검은 옷을 입은 사람들로, 무대에 등장해서 보조 역할을 한다. 전신은 물론 얼굴까지 검은 천으로 덮어 그야말로 투명인간 취급한다.[16] 다만 배경이 눈밭이거나 바다 한가운데인 경우에는 검은 옷 대신 배경에 더 잘 어울리는 흰 옷이나 파란 옷을 입기도 한다. 마츠바메모노에서는 쿠로고 대신 일반적인 기모노를 입은 조수가 거들어 주는데, 쿠로고가 없고 대신 코켄(後見)이 있는 노가쿠를 모방한 것이다. 물론 무대를 지휘하는 감독에 가까운 노의 코켄과는 달리 일반적인 쿠로고처럼 딱 조수 역할만 한다는 차이점이 있다. 보통 스케로쿠나 렌지시처럼 큰 도구를 패용했을 때 혹은 의상의 효과를 연출할 필요가 있을 때 등장하며 이 경우에는 검은 옷이나 검은 천으로 얼굴을 가리기보다는 오히려 옷을 제대로 차려입고 분칠까지 한 다음 등장하는 경우도 많다.

가문이나 해당 배역의 제자, 방자가 주로 쿠로고를 하는 경우가 많다. 연습 현장에서 늘 스승의 그림자로 행동하는 사람들이기에 스승의 행동거지를 잘 파악하고 있는 사람이기 때문이다.

5.9. 음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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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부키의 음악은 매우 독특한데, 일반적으로 에서 사용하는 악기를 그대로 사용하지만, 그 주법이나 음악 등은 전혀 다르다. 노에서는 단 네 개의 악기만을 이용하지만, 가부키에서는 츠즈미(鼓)를 여러 명 배치하는 것이 일반적이고, 거기에 오오카와(大革)를 맡는 주자를 한 명 배치하며, 마지막으로 시메다이코(끈으로 묶어 조립하는 작은 타이코) 주자를 한두 명 정도 배치함으로써 기본 타악기의 틀을 잡는다.

그러나 여기에 노에서는 전혀 사용하지 않는 샤미센을 여러 명 추가로 배치하고, 이외에도 크고 작은 타이코와 피리를 여러대 동원하며, 마지막으로 나무 삐걱거리는 소리, 비오는 소리, 개구리 소리 등의 음향효과를 위한 온갖 나리모노(鳴物)까지 배치해서 상당히 화려한 연주를 한다. 일반적으로 악기 주자들은 무대 옆의 쿠로미스(黒御簾)라고 하는 골방에 들어가 관객에게 보이지 않게 연주하지만, 경우에 따라 사진처럼 무대 뒤에 여러 줄로 앉아 연주를 하기도 한다.

기본적인 음악의 틀은 츠즈미와 오오카와의 연주로 결정되는데, 이때 코츠즈미와 오오츠즈미가 서로 번갈아 연주되는 치리카라 박자(チリカラ拍子)를 응용한 박자가 가장 널리 쓰인다. 이 치리카라 박자는 의외로 역사가 짧아, 에도 시대 말기 무렵 처음 샤미센의 연주를 염두에 두고 개발되어 쇼와 시절 완성된 주법으로, 노가쿠 등에서는 전혀 사용되지 않는 가부키만의 특징적인 리듬이다.[17] 시메다이코는 치리카라 박자나 노가쿠식 연주에서 츠즈미와 함께 연주하기도 하지만 와타리뵤오시(渡拍子)나 미야카구라(宮神楽) 같은 츠즈미와 동떨어진 박자를 연주하기도 하고, 독주인 타이코지(太鼓地), 또는 얇은 채를 사용해 마츠리(일본 축제)의 태고 연주를 모방하는 박자들(쇼오덴[正殿], 칸다마루[神田丸], 야타이[屋台], 시쵸오메[四丁目] 등)을 연주하기도 한다.

여기에 목이 가는 샤미센의 연주와 거기에 맞춘 합창단의 노래를 곁들이면 나가우타(長唄)라는 가부키 전용 음악이 완성된다. 자체의 음악적인 가치도 매우 높기 때문에 현재는 가부키의 반주 외에도 여러 나가우타 악곡이 작곡되어 공연되고 있기도 하다. 일본풍 음악을 만들 때 샘플링으로 넣기도 하는데, 짧은 치리카라 박자와 샤미센 소리, 거기에 "요오~"하는 카케고에 정도만 넣어도 완벽히 18세기 에도가 펼쳐지는 마법이 일어난다.

분라쿠에서 영향을 받은 극을 상연할 때는[18], 노가쿠에서 따온 극들인 마츠바메모노(松羽目物)에서 노 무대의 흉내를 내기 위해 소나무 그림을 배경으로 걸어놓듯 원본인 분라쿠의 감성을 살리기 위해 분라쿠의 샤미센 연주자와 창을 부르는 사람 겸 변사인 기다유우(義大夫)를 모방한 연주가[19]가 참가하며, 이들은 분라쿠의 전용석과 비슷한 회전식 좌석에 앉아서 연주를 하는 것이 특징이다. 가부키를 보는데 뜬금없이 무대 오른쪽에서 둔탁한 샤미센[20] 소리와 창 소리가 들린다면 십중팔구 분라쿠 작품이 원작인 극이다.

5.10. 가부키 18번

가부키의 등장 인물들은 대단히 정형화되어 있어 얼굴이나 차림새만 봐도 성격과 언행을 예상하기 매우 쉬우며, 극의 성격 또한 어떤 주인공이 등장하느냐에 따라 크게 바뀌는 것이 특징이다. 그 중 힘 세고 가끔 초능력까지 지닌 등장인물 또는 그를 맡은 연기자를 아라고토(荒事)라고 부르는데 현대의 슈퍼히어로와 크게 다르지 않다. 이들이 등장하는 극 중 가장 빼어난 극 열 여덟 작품을 제 7대 이치카와 단쥬로(1791 - 1859)[21]가 뽑아 정리한 것이 바로 가부키 18번(歌舞伎十八番)으로, 현대까지 내려오는 수많은 " 18번" 드립의 원조가 되었다.

7대 이치카와 단쥬로의 가부키 18번
현재까지 자주 상연되는 작품
*칸진쵸(勧進帳)[22]
*시바라쿠(暫)[23]
*스케로쿠(助六)
*나루카미(鳴神)
*야노네(矢の根)
현대에도 가끔 상연되는 작품
*우이로오우리(外郎売)
*카게키요(景清)
*카마히게(鎌髭)
*칸우(関羽)
*케누키(毛抜)
*조오히키(象引)
*후도오(不動)
현대에는 더이상 상연되지 않는 작품
*우와나리(嫐)
*오시모도시(押戻)
*게다츠(解脱)
*쟈야나기(蛇柳)
*나나츠멘(七つ面) - 가부키에서 유일하게 가면이 사용되었던 극이다. 현재는 더이상 상연되지 않기 때문에 가부키에서 가면을 전혀 쓰지 않는다고 해도 틀린 말이 아니다.
*후와(不破)

이후에 메이지 시대에 7대의 후손인 9대 이치카와 단쥬로(1838-1903) 또한 열 여덟곡을 엄선해 신 가부키 18번(新歌舞伎十八番)으로 정리했으나 이쪽은 인지도가 덜하다.

6. 유명한 가부키 작품

7. 가부키 가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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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이지유신 이전까지만 해도 일본에서는 평민들이 성씨를 사용하는 것은 상상도 못했는데, 가부키 가문은 그 오래 전부터 가문의 배우들이 모두 성씨를 사용했고 이를 세습하는 문화가 자리잡혀 있었다. 그러다가 메이지시대부터 본격적인 고급 예술 문화로 발돋움한 가부키는 점차 그 입지와 명예를 상승시켜왔는데, 가부키 가문은 1947년 신헌법 제정으로 화족이 모두 폐지된 후 일본 사회 내에서 대표적인 명문가로 분류되고 있으며, 일본 명가도감에도 정치인 가문과 어깨를 나란히 하며 빠지지 않고 나오고 있기 때문에 사실상 귀족에 가까운 취급을 받는다.

물론 이들 사이에도 급은 존재한다. AKB48의 전 멤버 마에다 아츠코의 연인이던 2대 오노에 마츠야의 집안처럼 세습명도 짧고 입지도 없어 아예 졸부 취급 당하는 가문도 있기 때문. 문서를 참조하면 알겠지만, 이쪽은 배우로서는 가계 입지에 가치가 있으나 마츠야의 아버지가 가부키 문하생으로 입문하면서 시작한 가문이고 그 유고성 또한 짧기 때문이다. 주연보다는 조연으로 주로 활동하며, 주연이라 해봤자 명문가들이 출연하지 않는 창작 가부키 정도이다. 애초에 아이돌과의 결혼을 허락한 것만 봐도 답이 없다는 게 정설인데, 일단 2000년대 이후의 일본 아이돌은 가부키 집안의 며느리가 되기엔 품위도 없고 이미지가 맞지 않다고 생각되기 때문이다. 비슷한 예로 운동선수 집안 출신인 일본 국민 야구선수 오타니 쇼헤이와 그의 가족들이 “배우나 아나운서 등 연예계와 방송업계 종사 인물을 결혼 상대로 원하지 않는다”고 언급한 것만 봐도 방송업계 종사자들이 상류층 사회에서 어떻게 비춰지는지 알 수 있으며, 일개 야구선수 집안보다 더 급이 훨씬 높은 가부키계 집안에서 아이돌과 아이돌 출신의 가부키 며느리를 어떻게 볼지는 뻔하다.

일본에는 100여개의 가부키 가문이 있는데, 그 중 40여개의 주요 가문이 존재한다. 배우 본인과 가문의 위상은 당주의 경력, 주연 배우 역할을 맡는 빈도, 배우의 실력 흥행 정도 등에 따라 매년 랭킹이 매겨지고 갱신된다고. 그중에서도 특히 유서가 깊고 명예도 높아 언제나 변치 않고 다섯손가락 안에 들어가는 일명 4대 가문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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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lbgcolor=#fe0000> 나리타야 파일:71265600-B5C9-4AC7-B421-E2F29A4C32EC.png 이치카와 신노스케 이치카와 에비조(공석) 이치카와 단쥬로( 11대, 12대)
오토와야 파일:1F9D7293-D46B-4798-BF05-D2DD4F530D37.png 오노에 우시노스케(공석) 오노에 키쿠노스케 오노에 키쿠고로( 7대)
코오라이야 파일:C65C1B3C-3EF6-4809-986D-880BA53AB71A.jpg 마츠모토 킨타로(공석) 이치카와 소메고로 마츠모토 코시로 마츠모토 하쿠오
나카무라야 파일:C52585F0-9C97-4BBA-AB6D-FD9D0441A623.png 나카무라 칸타로 → 나카무라 칸쿠로 나카무라 칸자부로(공석) }}} 現 당주는 볼드체 처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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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리타야 파일:71265600-B5C9-4AC7-B421-E2F29A4C32EC.png [25] 오토와야 파일:1F9D7293-D46B-4798-BF05-D2DD4F530D37.png [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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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오라이야 파일:C65C1B3C-3EF6-4809-986D-880BA53AB71A.jpg [27] 나카무라야 파일:C52585F0-9C97-4BBA-AB6D-FD9D0441A623.png [28]
이 4가문은 명문이라 칭해지는 가문들 중에서도 더욱 명문으로 취급받으며, 마치 로열 패밀리와 같은 명성은 물론이고, 품위있는 귀족 가문처럼 여겨지고 있기 때문에 정재계 인사들은 물론 구 화족 황족들과도 연줄이 깊은 엄연한 상류층. 특히 최고 명문가 나리타야의 세츠분 축제는 일반참하를 방불케 한다. 그 다음으로는 간사이 가부키 명문 마츠시마야(松嶋屋)[29],일본 배우 협회의 고위직 하리마야(播磨屋), 온나카타로는 최고봉에 섰던 나리코마야(成駒屋), 전후 가부키를 부활시킨 타카사고야(高砂屋)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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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돈지간인 오토와야와 하리마야의 양가 가족사진
따라서 날 때부터 금수저를 물고 태어난 것이나 다름없는 가부키 명문가 2세들은 드라마, 영화는 물론이고 예능, 토크쇼, CF까지 종횡무진하며 마치 연예인과 같은 활동을 하는데, 패널들을 짖궃고 험하게 다루기로 유명한 일본 예능의 경우에도 가부키 가문의 아들딸이 출연하면 조심스럽게 대한다고.[30] 이들은 대를 이어 전통을 잇는다는 전문 직종을 플러스 알파의 요소로 지니고 있어 연예계에서도 그 이상의 선망 인정을 받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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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리타야의 8대 이치카와 신노스케와 4대 이치카와 보탄
가부키 가문의 자녀들은 데뷔작부터 NHK 대하드라마 시리즈 같이 화제성 있는 작품의 주조연부터 시작해 대형 방송사 및 기업의 러브콜을 받으며 화려한 필모그래피를 쌓아간다. 이를 봐도 알 수 있듯이 일반 연예인 지망생들처럼 스타가 되기 위해 망가지는 역할을 맡거나 가난 무명 시절을 거칠 필요 없는 연예계의 왕자님, 공주님 같은 존재라는 것. 과거 대표적으로는 나리타야의 13대 이치카와 단쥬로 하쿠엔과 오토와야의 테라지마 시노부 그리고 코오라이야의 마츠 타카코가 있었는데, 이들이 본격적으로 배우 활동을 시작한 시기이자 그라비아돌 여배우 루트가 만연했던 90년대 일본 연예계에선 이런 말도 있었다.
” 水着にならなくてもいいのは松たか子だけ”
수영복을 입지 않아도 되는 건 마츠 타카코 뿐.

7.1. 특징

가부키 가문의 가장 큰 특징은 조상 대대로 쓰이는 예명을 세습해나간다는 것으로, 앞에 몇대째인지 붙여 구분한다. 이렇게 세습받는 이름을 명적(名跡)이라 부르며, 이름을 받는 의식을 습명(襲名)이라 부른다. 단순히 이름 뿐만 아니라 해당 이름의 지위도 물려받기 때문에 가부키 가문의 아들로 태어난다는 것은 운명적으로 명예를 물려받은 왕자님이라는 뜻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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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년, 오토와야의 장손
6대 오노에 키쿠노스케의 하츠오메미에 기자회견[31]
가부키 가문의 아들들은 빠르면 만 1~2세 즈음 본명으로써 무대에 올라 관객들에게 공식적인 첫 모습을 보이는 하츠오메미에(初お目見え)를 치른다. 행사에 앞서 도쿄 도내에 있는 호텔에서 기자회견을 여는데, 주요 가문이나 유명 가부키 배우의 자녀들 같은 경우 마치 청문회를 방불케 하는 카메라들이 집결한다.[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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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년, 나리타야의 장남
8대 이치카와 신노스케의 하츠오메미에[33]
4대 가문의 하츠오메미에 영상[34]
나리타야 오토와야 코오라이야 나카무라야
이때부터 일반인에서 암묵적인 배우 데뷔를 한 것이나 마찬가지기 때문에 모자이크등의 신상보호를 할 의무가 없어지며, 첫 공식 프로필 사진도 공개된다. 하츠오메미에를 치른 후 인간국보급 선생님들에게 둘러싸여 영재 훈련을 받는데, 이 시기엔 연습을 매일 한다. 단순히 가부키 뿐만 아니라 고전 무용, 악기 연주, 노래, 연기 에도 능해야 해서 웬만한 예술 학교 전공생 수준의 교육을 받으며 자란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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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쿄도 가부키좌 분장실에서의 6대 오노에 키쿠노스케[35]
이후 정식 활동을 알리는 첫 무대(하츠부타이:初舞台)를 치르고 본격적인 가부키 배우 생활을 시작한다. 아역부터 시작해 점차 비중있는 배역을 맡아가며 차근차근 미래에 있을 습명을 위한 연식을 쌓아가는데, 본디 가부키계는 출신 가문과 경력에 따라 맡을 수 있는 배역이 한정되어 있기 때문에 평생 조연이나 단역으로밖에 출연하지 못하는 가부키 배우가 있고, 대부분 주연을 자주 맡아 스포트라이트를 한몸에 받는 가부키 배우가 있다. 후자는 보통 4대 가문을 포함한 주요 가문 출신의 배우들이다.[36]
1989년, 고전 무용 수업을 받는
13대 이치카와 단쥬로 하쿠엔 8대 오노에 키쿠고로[37]
1989년, 공연을 앞두고
분장을 하고 있는 6대 나카무라 칸쿠로[38]
가부키계에서 아들이 가문을 계승해 이어 나가는 것을 중요시 하는건 사실이지만 ‘어디까지나 본인의 의사에 따라 결정한다‘를 모토로 하고 있다. 아들이 가부키를 그만두거나 대가 완전히 끊긴다고 해도 가문 휘하의 제자(문하생)를 후계자로 삼거나 양자를 들일 수 있으며, 그것도 아니면 데릴사위를 들일 수 있기 때문이다.

한 마디로 가문이 벗어날 수 없는 족쇄까지는 아니라는 것. 그러나 태어날 때부터 항상 가부키에 둘러싸여 살아왔고 습명 받은 이름에서 주어지는 명예가 상당하기 때문에, 사춘기때 방황하는 경우는 많아도 치가 떨릴 정도로 하기 싫은게 아닌 이상 대부분 한다고 한다. 특히 4대 가문을 포함한 주요 가문의 아들들은 선택이 사실상 유도심문에 가까우며, 나리타야의 13대 이치카와 단쥬로 하쿠엔 후계자 8대 이치카와 신노스케에 대해 “(가부키를)피할 수 없으면 즐겁게라도 만들어야 한다”며 아들이 매우 어렸을 때부터 장난감 대신 가부키 의상이나 그림, 소품 등으로 집안을 채웠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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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리타야의 장녀 4대 이치카와 보탄
의 경우 남자 형제들이 하츠오메미에를 치른 후 첫 무대(하츠부타이: 初舞台)에 오르는 것과 달리, 아예 하츠오메미에와 첫무대를 하나로 퉁치고[39] 성별제약이 없는 만 16세까지만 가부키 공연의 아역배우로 출연한다.[40] 어린시절부터 고전 무용을 배우면서 명적을 받아 일본 무용계에서 활동하며, 이후 브라운관을 통해 연예계 데뷔를 하는 경우도 있는데 마츠 타카코 테라지마 시노부도 이 같은 경우다. 다만 일반인으로 살아가는 경우가 대부분이기 때문에 어릴 때는 얼굴 공개를 잘 하지 않는 편이며, 매스컴에 자주 노출되는 유명 가문들을 제외하면 방송 활동은 커녕 이름과 나이도 공개하지 않는 경우가 더 많다. 사실상 반강제인 아들들에 비해 훨씬 자유로운 입장.

7.1.1. 혈연 중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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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대 이치카와 단쥬로와 그의 장남 13대 이치카와 단쥬로
그리고 13대 단쥬로의 장남 8대 이치카와 신노스케[41]
본래부터 가부키계는 철저한 혈연 중심 사회다. 일본에서 가부키 배우가 되는 방법은 딱 세 가지가 있는데, 첫 번째는 가부키 가문의 아들로 태어나는 것, 두 번째는 가부키 가문의 문하생으로 들어가는 것, 세 번째는 가부키 가문의 양자가 되는 것이다.

일반 가정에서 태어난 사람들은 아주 어릴때부터 영재교육을 받고 아역으로 무대에도 서면서 기본소양을 습득할 수 있는 가부키 가문의 아들과 달리 문하생이 되는 것 말고는 가부키 배우가 되는 방법이 없다. 따라서 가부키 배우를 지망하는 경우, 일본 국립극장[42]의 가부키 양성소나 오사카에 있는 쇼치쿠·카미가타 가부키 학원[43]의 입학시험을 쳐야하는데, 18세~23세 이하라는 나이 제한이 있고 매년 정기적으로 모집하는 것도 아닌데다 서너명의 학생들만 뽑을 정도로 운빨과 경쟁률이 높은 소수정예다.

합격하면 2년 동안의 양성과정을 밟은 뒤 가부키 배우의 문하생으로 들어가 해당 배우에게서 예명을 받게 되며, 그 후에는 대사가 없는 배역, 또는 스승 배우의 공연보조 역할을 맡으며 배우로써의 커리어를 시작하게 된다. 만약 해당 배우가 아들이 없거나 또는 아들이 가부키 배우의 길을 걷기를 포기한 경우, 양성과정을 밟은 제자가 스승의 후계자가 되어 명적을 그대로 습명하는 경우도 상당수 존재한다.

그 외에 가문의 문하생으로 들어가는 길은 아역배우 출신이 있다. 아역 가부키 배우의 경우 아동극단 출신들도 많은데, 이들 중 가부키 배우로써의 재능이 우수하다고 판단되는 사람의 경우 가부키 배우가 해당 아역배우를 스카우트하여 해당 배우의 아들 대신, 또는 아들과 같이 가부키 배우로써의 훈련을 받아오는 경우가 있다. 마찬가지로 이렇게 양성과정을 밟아 스승의 명적을 습명하는 경우 역시 존재한다.

이러한 과정이 일반적이기 때문에 가부키 배우는 정식 데뷔를 만 10세 이전의 나이에 하는 경우가 많다. 하지만 예외적인 경우도 있는데, 카가와 테루유키의 경우 가부키 가문에서 태어났지만 어렸을 때 부모가 이혼하며 어머니의 손에서 자라 가부키 배우가 아닌 일반 배우로 활동하다 45세라는 늦은 나이에 가부키 배우로 데뷔한, 가부키계 내에서도 상당히 드문 사례에 해당한다. 그 외 평범한 은행원으로 근무하다 아들이 없던 가부키 배우의 사위로 들어간 후 장인에게서 배우의 직위를 세습받은 경우도 존재하는데 이 역시 드문 일.

7.2. 리엔의 아내

梨園の妻

가부키 배우의 아내를 뜻하는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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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년, 13대 이치카와 단쥬로 하쿠엔
아나운서 코바야시 마오[44] 약혼 회견
일본에서는 가부키 집안을 리엔(梨園)이라 칭하는데, 한자를 풀어보자면 배나무 정원 쯤 되는 이 말은 본래 당나라의 궁중악사 양성소를 가리키는 이름이었다. 현종이 배나무가 심어진 정원에서 악사들에게 음악을 가르친 데서 유래했다고 한다. 리엔의 아내라는 표현 자체가 가진 느낌은 이제까지 평범한 세상에서 살던 여성이 리엔이라는 곳의 일원이 되어 살아가야 한다는 것을 뜻하는 것이다.

가부키 배우의 혼사는 주식회사 쇼치쿠가 깊이 관여한다. 쇼치쿠는 가부키를 직접 제작하고 상연하는 최대 제작사이자 대주주이며,[45] 모든 가부키 배우들은 쇼치쿠의 소속이다. 한마디로 일본 가부키의 밥줄과도 마찬가지.
2009년, 6대 나카무라 칸쿠로
여배우 마에다 아이의 결혼식
쇼치쿠는 마치 간택 과정을 거치듯이 예비 신부 후보의 결혼 전 이미지, 학력, 직업, 집안 등을 알아보며 가부키 가문에 시집 올 자격을 갖췄는지 판단한다. 이는 해당 집안의 격이 높을수록 심해지는 편이며, 유명 여배우라고 해도 사생활이 난잡하거나 선정성 있는 작품에 출연했을 경우 결격사유다.[46] 가부키계는 아니지만 미야자와 리에도 누드 화보를 찍은 적 있다는 이유로 예비 시가였던 스모 집안과 스모계가 똘똘 뭉쳐 반대해 결국 파혼당했다.[47]

또한 혼전임신 등으로 아이가 생겼다고 해도 아직 때가 아니라고 여겨져 결혼이 허락되지 않는 경우도 있다. 배우로서 입지를 다지지 못했을 때를 말하는데, 이치카와 단쥬로가 모 여성 가수 사이에서 사생아 딸을 얻었을때 쇼치쿠는 아직 에비조의 나이가 20대 초반인데다 상대 여성의 학력이나 집안이 좋은 것도 아니고, 그렇다고 종사하는 업계에서 유명한 것도 아니었기 때문에 ‘이런 여자를 나리타야의 며느리로 들일 수 없다!’ 라며 반대했다고 한다.[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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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대 오노에 키쿠고로
하리마야의 4녀 테라지마 요코의 약혼회견[49]
보통 리엔의 아내는 가부키 가문이나 전통업에 종사하는 명인/명가의 딸, 사생활이 깨끗한 여배우 아나운서 같은 텔런트 등이 주를 이룬다. 일반인이라 해도 중산층- 부유층 가정에서 곱게 자란 오죠사마들이 대다수. 또한 각 가문마다 후원해주는 후원회가 존재하는데, 이들 구성원은 대부분이 상류층이라 이곳에서 여성을 소개받아 결혼하기도 한다. 한편으론 평범한 가정 출신임에도 좋은 학력과 사회적으로 괜찮은 직업을 보유해 리엔의 아내가 된 경우도 꽤 존재하는데, 이런 경우엔 언론에서 신데렐라 취급을 받는다.[50]

20세기, 간사이 가부키 명문가 마츠시마야의 당주 12대 카타오카 니자에몬은 오랜 세월을 함께한 애인이 있었는데, 오히려 아내보다도 함께 있던 시간이 길고 아들을 셋씩이나 낳아준 여자였음에도 끝내 정식 결혼을 하지 못한 이유가 바로 신분이 불분명했기 때문이다. 과거에 무슨 일을 했던 자인지 정확히 구별이 안 되면 쇼치쿠에서는 입적( 혼인신고)을 적극 반대했기에 평생 정부로 남을 수밖에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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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대 카타오카 아이노스케와 후지와라 노리카의 결혼 참배
남편보다 몇 보 뒤에서 걸으며 앞서서는 안 된다
이러한 난관을 모두 거쳐 쇼치쿠의 동의 아래 가부키 배우인 남편과 결혼을 하면 비로소 리엔의 아내(梨园の妻)라고 불리며, 상류사회의 일원이 된다. 가부키 집안 며느리로서의 명예는 물론이고, 본인의 자녀들도 상류층이자 유사 귀족으로 대접받는 기득권의 일원으로서 대대손손 잘 먹고 잘 사는 미래가 보장되기 때문에 가부키 가문에 시집가는 것을 동경하는 여성들도 있다.

또한 가부키계는 한국 재벌가처럼 가문끼리 혼맥이 얽혀있어 한다리 건너 혈연, 지연인 경우가 많아 결혼으로 인해 거물급 가부키 배우와 친척 지간이 될 수도 있다. 대표적으로 마츠시마야의 선대 당주 13대 카타오카 니자에몬[51]은 원래 일본의 야스다 재벌의 2대 총수 야스다 젠자부로의 3남으로 태어난 사람이다. 젠자부로가 11대 카타오카 니자에몬에게 자신의 3남을 입적 시킨 것인데, 당시에는 재벌과 명문가 사이에서 갓 태어난 아들의 양자 입적은 흔한 일이었다.

하지만 리엔의 아내가 된 여성들의 고생길은 이제 시작이다. 개인의 삶은 어디에도 없는 일정을 소화할 뿐만 아니라 엄청난 인내심을 요구받게 되며, 남편 아들을 인생의 우선 순위로 두고 살아가야 한다.

7.2.1. 아내라는 것 자체가 직업

”舞台は夫の職場、会場のロビーや客席は妻の仕事場”
무대는 남편의 직장, 극장 로비 객석은 아내의 일터.
역시 가부키 집안은 한 달 내내 쉬는 날이 없어. 한 달 동안 공연하고, 끝나면 또 다음 공연 연습하고.. 저는 거기에 적응하는데 3년 정도 걸렸어요.
8대 이치카와 소메고로의 어머니 후지마 소노코
당신도 알다시피 우리 집안은 굉장히 까다로워요. 앞으로 당신을 힘들게 할 수도 있고, 당신이 힘들어 할 수도 있어요. 그래도 정말 괜찮겠어요?
6대 나카무라 칸쿠로가 배우자인 마에다 아이에게 혼담 이야기가 오갈 때 했던 말.
가부키 배우의 아내라고 하면 사극 영화나 드라마에 나오는 왕비처럼 화려한 생활만 누리며 살 것 같지만 마냥 그렇지만은 않다. 예로부터 가부키는 철저한 가족 산업이자 많은 직원들을 거느린 하나의 기업체와 다름 없기 때문에, 가부키 가문에 시집 온 순간부터 그 기업체(가문)를 총괄하는 여주인(女將 : 오카미)[52]이라는 직업이 생기는 것이나 마찬가지다. 결혼 전 가졌던 직업은 그게 어떤 것이었던지 간에 사실상 은퇴할 수밖에 없게 되며, 훗날 활동을 재개하는 경우도 있지만 이마저도 남편과 아들이 중요한 습명을 마쳐 한숨 돌리게 된 경우거나[53] 본인이 시어머니가 된 경우다.

보통 주말이나 공휴일이 일하는 날인 가부키 배우는 샐러리맨과 달리 월별마다 다르게 지급되는 스케줄을 조정하기 힘들 뿐더러 특별한 날일수록 더욱 바쁘다. 상술했듯이 가부키는 한달 주기로 공연 연습을 반복하는데, 리엔의 아내는 공연 첫날인 쇼니치(初日), 마지막 날인 센슈락(千秋楽)[54] 기모노 차림으로 배우인 남편보다 더 바쁘게, 하지만 단아한 걸음걸이로 극장을 분주히 돌아다니며 공연을 보러온 후원회나 히이키(贔屓), 혹은 타니마치(タニマチ)라 불리는 큰손들을 접객하고 인사를 드린다.[55]

한화로 수십만원에 달하는 가부키 공연을 수차례 보러와주며 도움이 필요할 때마다 힘이 되어주는 중요한 인맥인 후원자들을 홀대할 수 없는 일. 그렇다고 공연에 출연해야 하는 배우 본인이 이들을 일일이 다 상대할 수 없으니 이는 제일 가까운 사람인 아내의 일이라 여기는 것이다. 리엔의 아내에겐 공연 중간의 휴식 시간은 쉬는 시간이 아니라 더더욱 바쁜 시간일 뿐이다. 객석을 돌아다니며 손님들이 공연을 잘 감상하고 있는지 확인해야 하고, 중간중간에 남편과 함께 출연하는 배우나 직원들을 신경쓰는 것도 아내의 일이기 때문. 극장에서 선배 부인들을 만나면 깍듯이 인사해야 하는 것은 필수다.

이렇게 중요 손님들을 응대하는 리엔의 아내가 심사숙고 해야 할 것은 바로 기모노 선택. 남편보다 경력이 오래된 배우의 아내나[56] 큰손들이 입은 것보다 화려하거나 비싼 기모노를 입으면 실례를 범하는 것이다. 그렇다고 너무 수수해거나 저렴한 것을 입어도 품위가 없다며 책을 잡히는데, “派手すぎてもいけないし、地味すぎても華がない (너무 화려해도 안 되고, 너무 수수해도 매력이 없다)” 라는 암묵의 룰을 지켜야 한다고. 또한 남편이 출연하는 공연의 주제나 특성에 어울리게끔 디자인에도 신경써야 하며, 서양화가 수놓아진 기모노는 금물이다. 뿐만 아니라 남편과 아들의 몫까지[57] 수백 벌의 기모노를 관리해야 한다. 하루종일 입고 생활하는 옷을 타인에게 함부로 맡길 수는 없다는 논리.

보기 좋게 기모노를 차려입고 손님들을 상대하는 것만이 리엔의 아내가 해야할 일의 전부가 아니다. 일단 가부키 가문에 입성하게 된 이상 이들은 상류사회의 문화에 익숙해져야 한다. 중요하고도 높은 위치에 있는 손님들과 평소에도 좋은 관계를 유지할 뿐만 아니라, 그들의 수준에 맞는 자연스러운 대화를 이어나가기 위해 최근 사회 이슈나 정치적인 사건과 같은 시류를 파악하고 있어야한다. 뿐만 아니라 가부키의 역사와 세세한 규칙, 암묵적인 규율과 전통은 상식이며, 200여개에 달하는 공연에 대해서도 알아야 한다고. 24절기도 능숙하게 꿰뚫고 있어야 하는데, 이에 맞추어 기모노를 갖춰 입고 행사를 챙겨야 하기 때문이다. 또한 다도 서예, 꽃꽂이 그리고 양식 일식 요리 같은 상류층 여성들의 소양까지 두루 익혀야 하며, 사교 모임에도 틈틈이 참석해야 한다.

일본은 선물 문화인 ‘ 오미야게(お土産)’가 있는데, 가부키계도 예외는 없다. 습명 공연에 맞춰 팬들에게 선물할 가문의 문장이 그려진 수건이나 부채 따위를 준비하는 것은 지극히 당연한 일이며, 습명을 앞두고 지인이나 큰손들의 집을 찾아가 인사를 드리는 관습이 있는데,[58] 이때 가져가는 선물 역시 아내가 준비한다. 게다가 습명처럼 중요한 행사는 물론이고 연기 무용 선생님들에 대한 답례품, 극장 및 분장실에서 일해주는 사람을 치하하기 위한 음식, 제자의 출산 선물, 타 가문 자녀의 입학 선물 등등... 선물을 챙겨야 할 일이 수두룩하다.

공연이 없는 날에도 중요 후원자들에게 안부를 묻는 편지를 쓰고, 설날 같이 큰 명절에 맞춰서 연하장을 보내는데 이때 수십통의 편지를 전부 다 손글씨로 작성한다. 실제로 가부키 가문마다 후원자 리스트가 존재하며, 리엔의 아내들은 이걸 전부 외우고 기억해야 한다고. 또한 남편의 일을 원활하게 하기 위한 대외적인 준비나 직원들의 식사 및 급료, 연말정산같은 재정 관리와 남편의 스케줄까지 조정해야 한다.

8대 나카무라 시칸의 아내 미타 히로코는 하루에도 극장을 4번이나 오가야 했으며, 스케줄도 일정하지 않고 아침이나 점심시간 따위는 없는 바쁜 하루를 보내야 한다고 밝혔다. 새벽 3시쯤에야 일정이 끝날 정도로 고된 생활을 했다고. 그나마 각 가문마다 비서나 제자들을 포함한 직원들이 여럿 상주하고 있기 때문에, 이 모든 과정을 오로지 아내 혼자서 떠맡는 건 아니다. 여주인(女將)이라는 말 답게 지시하고 결정을 내리는 사람(아내)과 보고하고 행동하는 사람(직원)이 나뉘어져 있는 형식. 가부키 배우들 역시 공연 시즌이 아니면 직원들과 동행하는 경우가 더 많다. 또한 이들은 자녀들의 육아나 케어까지 담당하기도 한다.[59] 애초에 연예인들도 매니저, 코디 등 몇사람이 붙어서 케어하는 마당에 한명이 비서 내지는 매니저 일, 가사, 육아까지 다 해내는건 불가능에 가깝다.

이쯤 되면 평범한 집안에서 나고자란 여성이 리엔의 아내가 되기 힘든 이유가 이해가 갈 것이다. 가부키 가문의 딸로 태어났으면 어머니가 해오던 일을 어깨너머로 보고 자랐고, 상류층 집안 출신이면 어려서부터 상류 문화의 소양을 배워왔겠지만 정말 평범한 일반인들은 결혼하자마자 이 모든 걸 한꺼번에 다 배워야 하기 때문. 이러한 생활에 적응하지 못하여 결국 이혼을 하는 경우도 꽤 많은데 2대 나카무라 시도와 결혼했던 다케우치 유코, 그리고 9대 이치카와 츄샤와 결혼했던 그의 전처가 이러한 생활과 주변 시선, 남편의 잦은 일탈을 견디지 못하고 이혼하였다.

7.2.2. 아내의 덕목

이처럼 한 기업체의 일원이자 안주인으로서 살아가는 리엔의 아내이지만, 가장 큰 사명이자 중요한 가업은 바로 대를 이을 아들을 낳아 잘 양육하는 것이다. 장남 이외의 아들들에게도 예명이 주어지고 가부키 배우로서의 활동이 허락되는 가부키계 특성상, 아들을 많이 낳을수록 가문 소속 배우가 늘어나는거나 마찬가지라 할 수 있는 극과 각색할 이야기가 많아지면서 가문이 번창한다.
파일:후지 스미코.jpg 파일:후지 스미코 by 60s.jpg
7대 오노에 키쿠고로의 부인 후지 스미코
장녀 테라지마 시노부 내외, 외손자 초대 오노에 마호로와 함께
여배우로 활동하던 1960년대의 후지 스미코
오토와야의 당주 7대 오노에 키쿠고로의 부인이자 쇼와시대 때 절세미녀 연기로 이름을 날린 여배우 후지 스미코는, 장녀 테라지마 시노부를 낳은 뒤 5년만에 후계자인 장남 8대 오노에 키쿠고로를 낳았던 때를 이렇게 회상했다.
”和康が生まれたとき、父が病室へ入ってくるなり、それまで見たことのないような嬉しそうな顔で握手してくださって。(中略)お医者様に、男の子です、と言われた途端、スッと意識が遠のいたほど、ほっとしました”
카즈야스[60]를 낳았을 때, 시아버님께서 병실에 오시자마자 그때까지 본 적 없는 듯한 아주 기쁜 얼굴로 손을 잡아 주셔서.. (중략) ‘아들입니다’ 라는 의사 선생님의 목소리가 들리는 순간 의식이 확 멀어졌을 정도로 안심했어요.
후지 스미코 <여배우로 사는 것> 中
산업화와 도시화가 증가하고 90년대 이후로 핵가족이 보편화되기 시작하면서 가부키 가문에선 부인이 아들을 둘 이상만 낳아도 대단한 업적으로 여긴다. 특히 4대 가문을 포함한 주요 가문 며느리들의 경우, 반드시 아들 하나는 낳아야 하는 입장이기 때문에 보이지 않는 압박을 받는다고. 남매를 원해도 일단 부담감에서 빨리 벗어나기 위해 첫째는 아들을 선호하는 듯.
파일:마에다 아이와 두 아들.webp
6대 나카무라 칸쿠로의 부인 마에다 아이 역시 젊은 나이에 시집와 동안인 외모 때문에 위엄이 없다는 등 여러 트집 잡힌 말들을 들었으나, 현재는 4대 가문 며느리들 중 유일하게 아들을 둘 이상 낳아 훗날 동세대 리엔의 아내들 중 제일 높은 지위에 오를 것으로 예상된다며 가부키계의 많은 치하를 받고 있다.

사실 가부키계에서는 대를 잇는 문제로 트러블을 일으켜 이혼하거나 결별한 커플이 수없이 많다. 여배우 에스미 마키코(江角 マキコ) 역시 2000년대 초반, 8대 오노에 키쿠고로와 진지한 만남을 가지다 아이를 낳기엔 너무 나이가 많다는 이유 때문에 헤어졌다고 한다. 마키코 쪽이 무려 11살이나 연상이였기 때문.[61]

이 점에서 최고봉으로 여겨지는 사람은 80년대 아이돌 출신이자 8대 나카무라 시칸의 아내인 미타 히로코. 남편이 나리코마야(成駒屋) 출신[62]이라 집안의 격도 높고, 대를 이을 아들을 무려 셋이나 낳은데다 남편과 아들들의 내조도 잘 했기에 현재 세대교체가 된 리엔의 아내들 중에서 최고라는 것이다. 그 이전엔 4대 사카타 토쥬로의 부인 오오기 치카코, 7대 오노에 키쿠고로의 부인 후지 스미코, 18대 나카무라 칸자부로의 부인 나카무라 요시에 순으로 서열이 존재했다.
1991년 약혼 발표회견에서 남편과 함께[63]
나리코마야의 2016년 습명
원래 리엔의 아내는 이목을 끌지 않도록 행동하는 데 많은 신경을 쓴다. 그러나 미타 히로코의 경우 과거 아이돌로 활동했던 이력이 있어서[64] 가문의 습명 피로연 때부터 모습을 드러낸 채 여러 활동에 임했으며, 습명까지 1년 동안의 기록이 다큐멘터리로 제작되기도 하였다.[65] 습명 기자회견에서는 모습을 최대한 감추려 하였지만 이후 진행된 행사부터는 남편과 아들들의 권유로 함께 카메라 앞에 섰다.

8. 가부키 출신 배우

무수히 많기 때문에 이 항목에는 자세한 사항보다는 간략한 인적사항 정도만 기재한다.

9. 관련 캐릭터

가부키가 일본하면 떠오르는 대표적인 문화 중 하나로 자리잡은 만큼 각종 창작물에서도 잊을 만하면 가부키를 컨셉으로 잡은 캐릭터가 등장하곤 한다. 다만 가부키의 여러 심오한 특징들을 완벽하게 재현하는 건 힘든지 가부키 배우하면 떠오르는 강렬한 쿠마도리나 긴 장발, 그리고 특유의 포즈와 함께 느릿느릿하고 강세를 주는 어투 정도만 구현한게 특징.

10. 가부키를 소재로 한 작품

11. 관련 문서


[1] 노가쿠는 과거 사무라이의 예술이었고 신에게 바친다는 의미가 있어서 예법이 아주 엄격하다. 화장이나 장신구를 전부 금지하여 여성 노가쿠 배우들도 무대에 오를 때는 평소에 하던 화장까지 다 지우고 쌩얼로 출연해야 한다. [2] 가부키만의 특징인 회전 무대나 기묘한 음악 등은 전부 에도시대 말기 ~ 근대에 만들어진 것들이다. [3] 주요 4 명문가의 장남들이 이전에 습명받은 세습명으로 무대에 올랐다. 주연에 13대 이치카와 단쥬로 하쿠엔, 8대 오노에 키쿠고로, 10대 마츠모토 코시로, 6대 나카무라 칸쿠로가 출연하며 나카무라야의 2대 나카무라 시치노스케, 요로즈야의 2대 나카무라 시도, 5대 나카무라 토키조, 마츠시마야의 초대 카타오카 타카타로, 오토와야의 4대 오노에 쇼로쿠도 함께 출연했다. 엄밀히 따지고 보면 출연진 모두가 혈연으로 얽혀있다. [4] 제니가타 코이치 역에 9대 이치카와 츄샤, 이시카와 고에몽 역에 2대 오노에 마츠야, 지겐 다이스케 역에 3대 이치카와 에미사부로, 루팡 3세 역에 6대 카타오카 아이노스케 그리고 [5] 위의 이미지에서도 등장하는 것처럼 키노쿠니야나리타야와 같은 이름들, 배우가 습명하는 이름의 명적이 소재한 가문을 일컫는다. [6] 샤미센 연주자는 연주의 템포를 바꾸거나 연주 사이에 공백을 뒀다가 다시 연주를 시작할 때 다른 연주자들에게 신호하기 위해 주변에만 들릴 정도로 '헛', '욧' 등의 짤막한 카케고에를 넣고, 타악기를 담당하는 하야시(囃子)는 다른 연주자뿐만 아니라 관객에게도 잘 들리게 우렁찬 목소리로 넣는다. [7] 많은 노 희곡의 줄거리는 슬퍼하는 귀신을 달래 춤을 추게 하고 성불하게 한다 하는 정도로 단순한 레퍼토리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는다. [8] 나리타야의 현 당주인 13대 이치카와 단쥬로 하쿠엔의 친아버지이며 2013년에 백혈병으로 사망하였다. [9] 영상 초반부에 벤케이의 미에도 직접 선보인다. [10] 영상은 누르면 재생된다. 일본의 가부키 팬들에게는 벤케이 하면 단연코 이 배우가 떠오른다고 할 정도로 벤케이 역할로 칸진쵸 무대에 여러번 올랐으며 그의 연기 또한 일품으로 일컬어진다. 초대 하쿠오의 장남인 2대 마츠모토 하쿠오와 장손인 10대 마츠모토 코시로 그리고 증손인 8대 이치카와 소메고로까지 초대 하쿠오의 벤케이를 넘어서기 위해 늘 노력한다고. [11] 6대 이치카와 소메고로, 9대 마츠모토 코시로를 지내며 하쿠오 이전의 세습명으로 전성기를 보낸 인물이다. 현역 배우로는 칸진초의 벤케이 역을 가장 많이 연기한 인물로 기록되어 있다. 1:00경 빗발치는 카케고에가 압권이다. [12] '이치카와'라는 성 때문에 나리타야로 종종 오해하는 경우도 있지만 이치카와 소메고로는 코오라이야의 명적 세습명이다. 사진 속 인물도 당시 7대 이치카와 소메고로의 묘세키로 활동하였고 현재는 10대 마츠모토 코시로를 습명받아 활동하고 있다. 그의 벤케이는 선조들과 같은 날랜 몸짓과 절도있는 연기로 관객의 대호평을 받았다. [13] 가부키의 특징은 모든 특수 효과는 전기장치 등에 전혀 의지하지 않고 반드시 사람이 직접 조작한다는 것이었다. 따라서 와이어 또한 위에서 일꾼들이 잡은 상태로 움직여 배우가 퇴장하는 것이었다. 까딱하면 대형 사고가 일어날 위험이 항상 있다. 현재는 극장에 따라 전기장치에 의지하는 경우도 많이 늘어 이 문제는 해결되었다. [14] 가끔 이치카와 분가인 코오라이야나 오모다카야가 피로하는 경우도 있는데 공식적인 행사에서는 금기시되는 편이다. 특히 코오라이야는 19세기 이후로는 기록도 존재하지 않는다. [15] 쿠로코(黒子)라고 부르는 경우도 있지만 정식 명칭은 쿠로이다. [16] 명탐정 코난에서 범인을 검게 칠하는 것도 여기서 영향을 받았다. [17] 노가쿠에서는 가부키의 박자를 사용하지 않지만, 가부키에서는 거꾸로 노가쿠의 박자를 군데군데 사용하는 경우도 잦다. 이 때는 톳땅 박자(トッタン拍子)라고 불러 구분한다. [18] 가장 잘 알려진 극 중 하나인 추신구라 등이 바로 분라쿠의 극을 가부키로 번안한 극들이다. [19] 이들도 기다유우라고 부르나 義夫로 표기해 분라쿠 쪽 오리지널과 구분한다. 분라쿠의 오리지널 기다유우를 초청해 공연하는 경우도 있지만 한번 가부키 공연에 참가하려면 분라쿠 공연 일정을 한 달 가량 비워놓아야 하기 때문에 초청하기 어렵고 돈도 많이 드는 관계로 상당히 드물다. [20] 분라쿠의 샤미센은 가부키에서 일반적으로 사용되는 나가우타 샤미센(長唄三味線)과는 달리 낮고 둔탁한 소리가 특징이다. 악기 자체의 크기도 보다 크고 연주에 사용하는 채도 매우 두껍기 때문. [21] 1800년에서 1832년까지 7대 이치카와 단쥬로로 활동했으며 그 외에는 대부분 5대 이치카와 에비조로 활동했었다. [22] 그 유명한 벤케이의 토비롯포가 나오는 작품 [23] 주인공이 '시바라쿠(잠깐만)!'를 외치며 하나미치로 등장하는 대목이 압권인 작품으로, 나리타야(이치카와 종가)에서만 공연하는 특수한 극이다. 동경올림픽에서도 연출되었다. [출처] https://www2.ntj.jac.go.jp/unesco/kabuki/ko/index.html [25] 나리타야(成田屋) 가계도 파일:naritaya family.jpg [26] 오토와야(音羽屋) 가계도 파일:otowaya family.jpg [27] 코오라이야(高麗屋) 가계도 파일:kouraiya family.jpg [28] 나카무라야(中村屋) 가계도. 사진에는 선대 당주인 나미노 노리아키가 16대 나카무라 칸자부로라고 표기되어 있지만 이는 포기 오류이며 나미노 노리아키는 18대 나카무라 칸자부로이다. 파일:nakamuraya family.jpg [29] 15대 카타오카 니자에몬, 6대 카타오카 아이노스케. [30] 그렇다고 해서 절절매는 입장은 아니고 웬만한 농담은 다 하지만, 몰카 츳코미 같은 행동은 일절 하지 않는다. [31] 당시에는 본명인 테라지마 카즈후미로 불렸다. 옆에 있는 사람은 아버지인 8대 오노에 키쿠고로. [32] 참고로 이때 기자들이 ‘장래에는 뭐가 되고싶나요?’ 라고 물어보는데 다들 어려서 ‘토토, 히어로, 왕자, 케이크집 사장님'등 정말 그 나이대 아이들이 할 수 있는 말을 한다. [33] 이 당시엔 본명인 호리코시 칸겐으로 불렸다. 옆에 있는 사람은 아버지인 13대 이치카와 단쥬로 하쿠엔. [34] 좌측부터 8대 이치카와 신노스케, 6대 오노에 키쿠노스케, 8대 이치카와 소메고로, 3대 나카무라 칸타로 [35] 함께 있는 사람은 어머니 테라지마 요코와 여동생 테라지마 토모요. 테라지마 요코는 가부키 명문가 하리마야(播磨屋)의 당주이자 인간국보인 2대 나카무라 키치에몬의 4녀이기 때문에 2대 마츠모토 하쿠오의 조카, 10대 마츠모토 코시로 마츠 타카코의 사촌, 13대 이치카와 단쥬로 하쿠엔 6촌 여동생이기도 하다. [36] 물론 조연을 맡는 한미한 집안들의 가부키 배우들이라고 늘 손해만 보고 살지는 않는다. 우선 배우의 결혼에까지 관여하는 보수적인 가부키계와 쇼치쿠의 압박이 상대적으로 덜하다는 뜻이기도 하며 어쨌든 이들도 가부키 가문의 일원이기 때문에 사회에서는 꽤나 대접받는다. 집안에 따라 높은 가문의 가부키 배우들과도 교류가 가능해 상류층들과 인맥쌓기도 가능하다. 거기에 행동거지를 조심하는 상류층 가부키 가문과 달리 격식을 상대적으로 차리지 않아도 되기 때문에 방송계에서도 편하게 부를 수 있으며 예능 프로 출연 등 방송출연도 유연해 인지도를 쌓기 좋다는 장점도 있다. 2대 오노에 마츠야가 대표적인 예시. 가부키계에 들어갈 필요도 없이 충분히 성공한 대배우였던 카가와 테루유키가 몇십년간 절연했던 아버지와 화해하고 그 보수적이고 고릿적한 가부키계에 들어간 게 괜히 그런 게 아니다. 물론 카가와는 이 때문에 아내와 이혼하고 아들 역시 근근히 가부키계에서 텃세를 받아왔다고 한다. [37] 당시엔 7대 이치카와 신노스케, 6대 오노에 우시노스케였다. [38] 나카무라야의 18대 나카무라 칸자부로의 장남. 당시에는 2대 나카무라 칸타로였다. [39] 이 때문에 13대 이치카와 단쥬로 구마모토에서 딸 4대 이치카와 보탄의 하츠오메미에를 따로 치러주었다. [40] 늦어도 10세 이전에는 데뷔하는 남자 형제들과 달리 배우로 데뷔해야 할 의무는 없기 때문에 무대에 오르는 나이는 천차만별이다. 마츠 타카코도 중학생 때 첫 무대에 섰다. [41] 나리타야의 현 당주 13대 이치카와 단쥬로 하쿠엔이 자신의 아버지와 어릴 적 섰던 무대였으며 이를 35년 뒤인 2021년에 자신의 장남 호리코시 칸겐과 다시금 무대에 섰다. 본래 나리타야에서 대대적으로 장남과 섰던 무대였던지라 실제 부자관계가 해당 역할을 연기한다는 것만으로 가치가 크다고 평가된다. 12대 이치카와 단쥬로 또한 아버지인 11대 이치카와 단쥬로와 함께 피로한 기록이 있다. [42] 1969년 개장. [43] 1997년 개원. [44] 기상 캐스터로 시작해 니혼 테레비 <News Zero> 라는 프로그램에서 사쿠라이 쇼와 함께 활동했으며, 2017년에 유방암으로 사망했다. [45] 도쿄의 가부키좌, 오사카의 쇼치쿠좌, 교토의 미나미좌와 같은 대형 가부키 극장을 운영해왔다. [46] 이치카와 단쥬로와 교제하던 요네쿠라 료코 나카무라 시도와 교제하던 시노하라 토모에는 각자 분야에서 톱 반열에 올랐음에도 불구하고 쇼치쿠의 반대로 인해 결혼이 무산됐다. 요네쿠라 료코 상견례까지 마쳤음에도 불구하고 연예계를 은퇴하고 남편의 내조에만 전념하는 것에 반대하는 입장이여서 혼사가 파토났다는 말이 있고, 시노하라 토모에는 특유의 이미지로 인해 가부키 집안 기준으로는 며느리가 되기엔 품위가 없다는 이유였다. [47] 참고로 스모도 전통 업계 종사자 집안이 있는 만큼 전통 업계를 상류층으로 대접하는 일본에서는 엄연히 가부키 가문과 엇비슷한 귀족층이다. 거기에 리에가 약혼했던 스모 선수인 타카노하나 코우지(貴乃花光司)가 속한 타카노하나 가문은다카노하나의 아버지 즉 1대 다카노하나의 22살 많은 큰형은 1대 와카노하나이자 요코즈나였고, 와카노하나의 사위인 2대 와카노하나도 요코즈나에 오르는 등 무려 2대에 걸쳐 두명의 요코즈나를 배출한 스모 성골 가문이다. 코우지 본인도 사실상 스모 계급에서 최고로 손꼽히는 오제키이기도 하다. 사실 스모업계가 아니더라도 전국민이 다 아는, 누드화보를 찍은 여인을 일반집안에서도 며느리로 받아들이기란 쉽지 않다. [48] 굳이 쇼치쿠의 반대가 아니더라도 가문의 위신과 향후 전망이 달린 문제였기 때문에 도저히 결혼을 못하는 상황이었다. [49] 오랜만에 나온 가부키 명문가끼리의 성혼이라 가부키계의 큰 경사였다. [50] 나리타야 13대 이치카와 단쥬로 하쿠엔의 부인 코바야시 마오와 나카무라야 6대 나카무라 칸쿠로의 부인 마에다 아이가 이 같은 경우. 코바야시 마오는 명문대인 조치대학을 졸업한 아나운서였고, 마에다 아이는 배우로서 유명한 편은 아니었지만 청순한 연기로 이미지가 좋았으며 아오야마가쿠인대학을 졸업했고, 무엇보다 남편 칸쿠로와 8년간의 연애를 했다. [51] 12대 카타오카 니자에몬의 사촌 동생이자 15대 카타오카 니자에몬의 아버지. 인간 국보이자 문화공로자였다. [52] 실제로 언론 및 대중들은 사모님을 뜻하는 ‘오쿠상(奥さん)’보다는 ‘오카미상(女將さん)’으로 리엔의 아내들을 칭한다. [53] 보통 동시 습명을 치르게 되는 때인데, 아들이 태어난 시점에서 최소 15-20년의 세월이 걸린다. [54] 여기에서 유래하여 일본에서는 가부키 외의 공연( 연극, 뮤지컬, 다카라즈카 등)에서도 첫공과 막공을 쇼니치, 센슈락(천추락)이라고 부르곤 한다. [55] 실제로 가부키좌를 방문하면 시어머니 며느리가 기모노를 입고 손님들과 끊임없이 인사를 주고받고 있는 모습을 볼 수 있다. 다만 후원회가 아니라면 굳이 그들에게 다가가 인사를 할 필요는 없다. [56] 보통 가문의 위상과 습명받은 이름의 영향력에 따라서 가부키 배우의 서열이 갈린다고 생각하는 경우가 많은데, 가부키계에선 경력 역시 엄청나게 중요하다. [57] 가부키 배우들은 공식행사에서 입는 예복 뿐만 아니라 일상생활에서도 키나가시, 히토에, 유카타, 하오리 등의 기모노 차림이다. 가부키좌에서 대부분의 시간을 보내기 때문. [58] 남편은 아들과 함께, 아내는 시어머니와 함께 방문한다. 이때 양쪽 모두 기모노를 갖춰 입고 가며, 방문하는 집들 역시 만화나 드라마에 나올법한 엄청난 대저택인 경우가 많다. [59] 8대 이치카와 신노스케의 하츠오메미에(白お目見え) 다큐에서 바쁜 어머니를 대신해 직원들의 보살핌을 받고있는 모습을 볼 수 있다. [60] 8대 오노에 키쿠고로의 본명이다. [61] 그러나 훗날 에스미 마키코가 천박하고 질 나쁜 인간성으로 연예계에서 사실상 퇴출당한 것을 생각해보면 오토와야 입장에선 현명한 판단이었다. [62] 종가 출신이긴 하나 당주 라인은 아니다. [63] 30여년 후, 나카무라 시칸의 지속적인 불륜으로 연일 메스컴에 오르내리다 별거까지 간 것을 생각하면 많은 생각이 드는 영상이다. [64] 데뷔 동기들인 하야미 유, 마츠모토 이요 수준의 인기는 끌지 못했으나 여러 광고나 방송에 출연하며 꾸준히 활동하던 텔런트였고, 이후 20대 중반의 젊은 나이에 가부키 가문 후계자와 결혼하며 신데렐라 스토리로 더 유명해졌다. [65] 미타 히로코의 데뷔 시절, 리엔의 아내로서의 하루일과는 16분부터 시작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