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ir.pe (일반/어두운 화면)
최근 수정 시각 : 2024-02-15 12:01:52

유녀

1. 幼女2. 遊女
2.1. 일본에서
2.1.1. 유녀의 계급
2.1.1.1. 견습 유녀2.1.1.2. 중급 유녀2.1.1.3. 상급 유녀
2.1.2. 생활
2.2. 여담2.3. 한국에서
3. 환상게임 현무개전의 등장인물

1. 幼女

어린 여자아이를 가리키는 말. 본래 한자 문화권에서 유아(幼兒) 및 유자(幼子)와 함께 시대를 가리지 않고 널리 쓰였던 어휘로, 불과 수십여년 전만 하더라도 여전히 신문 등에서 두루 사용되었다. 하지만 이제는 법조계의 논문[예]에서나 드문드문 찾아볼 수 있는 어휘이다. 그래도 한자에 능숙한 사람은 그리 어렵지 않게 이해할 수 있다.

2010년대 전후로 라이트 노벨과 같은 일본 서브컬처에서 이 단어를 그대로 음차하여 사용하게 됨에 따라 사용 빈도가 늘어났다. 하지만 일본 서브컬쳐에 관심이 없다면 2번항목과 착각하거나 아예 듣도보도 못한 단어일 가능성이 높고, 알고 있다 해도 어린 여자 아이를 지칭한다는 단어와 일본 서브컬쳐에 대한 선입견이 나쁜 방향으로 시너지를 일으키는 탓에 선뜻 사용하기는 어렵다.

여담으로 영조가 왕자군 시절 낳은 첫째딸이 죽고 슬퍼하며 광지를 적은 것이 있는데 그게 바로 '유녀향염광지'이다. 광지는 무덤에 함께 넣는 종이이다. 유녀는 어린 여자아이를 뜻하며, 향염은 아이의 이름이다. 이 향염은 이후 화억옹주에 추증된다. 딸들에게 대체적으로 사랑을 퍼부었던 젊은 영조의 절절한 심정이 잘 나타나 있다. #

2. 遊女

2.1. 일본에서

파일:external/webup08.jp/0.jpg

파일:maria20rus2002-thumbnail2.jpg

마리아 루스 호 사건 당시 일하고 있던 유녀들

유우죠(ゆうじょ).

저 감옥마냥 창문에 깔린 창살 안에 있는 여성들이 바로 유녀(遊女)들이다. 겉보기에는 화려해보여도 결국 돈에 팔려와 사실상 감옥에 갇혀 일종의 성노예마냥 품평되어 돈을 받고 하룻밤을 파는 매우 슬픈 직업이었다. 특히 일본 동부의 에치고 출신 여성들이 다른 지방의 여성들보다 20% 정도 더 많이 유녀(매춘부)로 팔렸는데, 피부가 부드럽고 인내심이 강한 점 때문에 선호되었다고 한다. #

유곽(遊廓)에 속한 매춘부를 가리키는 말로, 유녀들을 통솔하거나 격이 높은 고급 유우죠들을 오이란(花魁), 혹은 타유(太夫)라고 불렀다. 유우죠들과 이들 오이란들의 시중과 견습을 받는 존재로 카무로(禿)들이 있었다.[2] 오이란(花魁)들은 이들 카무로(禿)들을 잔뜩 데리고 다녔다. 메이지 시대에 들면서 유곽이 폐지됨과 동시에 게이샤 쪽으로 흡수되었다.[3]

2.1.1. 유녀의 계급

1) 구 요시와라 초기: 타유(太夫) > 코우시(格子) > 하시타(端)
2) 구 요시와라 말기: 타유 > 코우시 > 츠보네(局) > 하시타 > 키리미세(切見世)
3) 신 요시와라 초기: 타유 > 코우시 > 산챠(散茶) > 츠보네 > 키리미세
4) 신 요시와라 중기: 타유 > 코우시 > 산챠 > 우메챠(梅茶) > 키리미세
5) 중기 이후: 요비다시(呼出し) > 츄산(昼三) > 츠키마와시(附廻し) > 자시키모치(座敷持ち) > 헤야모치(部屋持ち) > 키리미세
2.1.1.1. 견습 유녀

2.1.1.2. 중급 유녀
2.1.1.3. 상급 유녀



파일:CC-white.svg 이 문서의 내용 중 전체 또는 일부는
문서의 r119버전
, 3.2번 문단
에서 가져왔습니다. 이전 역사 보러 가기
파일:CC-white.svg 이 문서의 내용 중 전체 또는 일부는 다른 문서에서 가져왔습니다.
[ 펼치기 · 접기 ]
문서의 r119버전 ( 이전 역사)
문서의 r ( 이전 역사)

2.1.2. 생활

당연한 이야기지만 성병에 매우 쉽게 노출되어 있었고, 특히 매독에 의한 유녀들의 피해는 매우 극심했다. 매독에 대한 제대로 된 치료법이 나온 건 페니실린이 발명된 이후니까.

보통 30세쯤 되면 자유의 몸이 될 수 있었지만, 매일같이 성분 가득한 화장품을 바르고 담배를 하며 온갖 거친 남자들을 상대하며 성병에까지 노출된 유녀가 30세 넘어서까지 생존하는 건 결코 쉽지 않았다. 30세를 넘어 풀려난다 한들, 어린 시절부터 선배 유녀의 뒤를 따라다니며 배운 거라고는 매춘과 풍류뿐인 여자들이 할 수 있는 건 당시에도 사실상 없다시피했고 결국 방법은 낙적이라 해서 높거나 돈이 많은 남자들의 으로 팔려가거나[11] 기존의 영업소에 남아서 후배 유녀들을 관리하고 통제하며 손님몰이하는 야리데바바(やり手婆)라는 존재가 되는 경우가 많았다.[12] 요시와라 유곽 항목도 참조.

그리고 유녀들은 사망하면 인수인이 없었기에 제대로 된 장례도 없이 절 앞이나 길가에다가 버렸는데 이러한 유녀나 연고자가 없는 사망자들의 시체를 보관하고 명복을 빌어주는 절들을 나게코미데라(投げ込み寺, 投込寺)라고 부르게 되었는데 대표적으로 죠칸지가 있다.

유우죠들의 헤어스타일은 크게 다테 효우코(伊達兵庫)/츠부시 시마다(つぶし島田)/마루마게(丸髷)가 대표적이었다.
파일:external/oekakiart.net/04.jpg 파일:external/oekakiart.net/05.jpg
다테 효우코(伊達兵庫)와 오이란(花魁) 유이와타(結綿)-츠부시 시마다(つぶし島田)-마루마게(丸髷)
오이란(花魁)과 같은 고급 유우죠들은 비녀를 많이 끼는 코토지 칸자시(琴柱 簪)라는 장식을 한 다테 효우코(伊達兵庫)의 모습을 주로 했다고 한다. 그 밖에 유녀(遊女)나 카무로(禿)들은 위 이미지 2번째의 츠부시 시마다(つぶし島田)[13] 3번째의 마루마게(丸髷)[14]를 주로 했다고 한다. 첫 번째 헤어 스타일인 유이와타(結綿)는 에도시대 때부터 미혼 처녀들과 여자아이들의 주 헤어 스타일이었다고 한다. 앞서 언급된 츠부시 시마다(つぶし島田)와 혼용되긴 했어도 많이 유사한 이유가 그것이다. 게이샤의 추억에서도 항목으로 정리해놓은 게 있지만, 유우죠들의 복식은 게이샤들과도 차이가 있었다. 게이샤들은 머리치장이 화려하지 않은 편이고 그나마 화려하다면 견습들인 마이코들 정도였다. 유우죠들은 게이샤들의 기모노와 비교했을 때 소매와 치마가 굉장히 길었다.

쥬니히토에와 거의 유사한 수준처럼 길었다. 그리고 기모노를 입고 뒤에 '오비(帶, 허리띠)'라고 하는 커다란 천을 묶은 차림이 앞으로 오도록 입었다.[15]
파일:external/trendsokuhou.com/oiran.jpg 파일:external/s-media-cache-ak0.pinimg.com/78043e5ad5e1c3023c127a78bbad9157.jpg
오이란(花魁)과 카무로(禿)
대략 이런 모습. 어깨과 가슴골까지 노출이 쉽게 잘 드러나는 옷을 입기도 했지만 그렇지 않은 경우도 많았다. 가상매체에서는 일본 헤이안 시대부터 에도 시대에 이르기까지의 유곽(遊廓)을 재현할 때나 그런 배경에 있을 때 히로인으로도 반드시 등장한다. 혹은 유우죠의 복장이나 헤어스타일로 등장하기도 한다.

유우죠들을 다룬 대표적인 작품으로는, 카사네 테토 요시와라 라멘토, 츠치야 안나 주연의 영화 ' 사쿠란'이 있다. 마후마후의 노래 ' 으스름달'도 유우죠를 소재로 했다. 추리소설가 미쓰다 신조 도조 겐야 시리즈 중 2012년작인 '유령여자[16]처럼 원망하는 것'은 쇼와시대 시골의 평범한 소녀가 유곽으로 팔려와 유녀가 되고 그 이후의 삶이 어떻게 되었는지까지 끔찍할 정도로 생생하게 그린 수작이다. 유곽에서 쓰이는 용어 등 당시 유곽의 모습이 자세하게 그려져 있다.(국내에는 아직 미정발 상태다.)

2.2. 여담

아베 사다 사건의 아베 사다가 유녀 출신이다.

2.3. 한국에서

주로 고구려에서 남편이 없이 떠돌아다니는 여자라는 의미의 성격으로 사회모습에 대해서 언급될 때 나온다. 이 설에는 두가지가 있는데 고구려의 활기찬 모습에 여성들의 바깥활동이 잦은 것을 중국인들이 언급된 남편이 없이 떠돌아다니는 여자라는 의미의 성격으로 해석되는 것과 전쟁포로들중에 여성들로서 매춘을 담당하게 되는 여성 전쟁포로들을 언급한다는 설로 두가지가 언급된다. 고구려-수 전쟁에서 포로가 된 수나라 포로들에게 가족을 이루어서 살게 했다는 이야기가도 있기 때문에 상대적으로 두가지의 의미가 폭 넓게 사용된 것으로 보기도 한다. #유녀를 창기로 해석한 기사

3. 환상게임 현무개전의 등장인물

파일:상세 내용 아이콘.svg   자세한 내용은 리무드 로운 문서
번 문단을
부분을
참고하십시오.


[예] 파일:유녀 - 사용례.jpg [2] 카무로들은 나중에 후리소데 신조라는 위치로 올라가고 이들 중 소수만이 고급 유녀가 된다. [3] 기본적으로 유우죠들도 게이샤만큼은 아니더라도 풍류를 할 줄 알아야 했고, 그 때문에 게이샤 쪽으로 쉽게 흡수될 수 있었다. [4] 즉 카무로 시기부터 한 후리소데 신조들과 달리 이들은 늦깎이 취급이라고도 할 수 있다. [5] 카코이(鹿恋)는 후리소데 신조 다음 단계로 본격 손님 받기를 시작하는 단계인데 비용은 가장 쌌다. 텐진(天神)의 경우 카코이의 바로 다음단계이자 타유의 바로 뒷단계인 고로 취급은 카코이보다 더 좋았는데, 이들은 연회를 할 수 있을 정도로 큰 가게인 '아게야(揚屋)' 에 초청받을 수 있었다. 참고로 상급 유녀들의 계급이 바뀐 다음에도 '아게야 = 상급 유녀들만 출입 가능' 이라는 규정은 여전히 지켜졌다고. [6] 와카, 차도, 화도, 향도, 서도, 바둑 등 각종 귀족 취미. [7] 18세기 중엽 요시와라에서 타유라는 말이 사라졌고, 오이란이라는 말이 이 시기에 자리 교대를 하듯 나타났다. [8] 소위 코미세(小見世)라고 불리는 곳들. [9] 즉 이쪽은 손님 유인용도 겸한다. [10] 오이란이 1등짜리면 코우시는 2등쯤 되는 지위다. [11] 이를 '미우케'라 하는데 유녀 이야기가 중심인 창작물에서 많이 나오는 용어이다. 사실 유녀가 유명해지고 고급이 된다고 해도 걸려있는 몸값이 컸기에 미우케를 해주는 사람들 자체가 많지 않아 미우케를 받아 유곽에서 나가는 것은 유녀들 중에서도 소수의 케이스에 한정되었다고 한다. [12] 때문에 유녀들이 꼼수쓰는 걸 이들이 방지했지만 동시에 유녀들의 고충상담(?)도 해주었다고 한다. 그 자신이 유녀 출신이기 때문에 유녀의 고충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기 때문. [13] 유우죠가 아니더라도 미혼인 처녀들이 이 헤어스타일을 하기도 했다. [14] 유부녀들이 에도 시대 결혼을 한 여성이라는 의미에서 했다. 조선 시대의 기혼 여성은 머리를 올리는 일과 같다고 하겠다. [15] 에도 시대 게이샤들은 매춘을 하지 못하도록 하기 위해서 오비(帶, 허리띠)를 뒤로 하는 형태로 벗기 어렵게 했다고 한다. 사실 게이샤들의 기모노 이외에도 대체적으로 여성용 기모노는 오비를 뒤로 오도록 입는 경우가 많은 편이긴 하다. 우리가 흔히 알고 있는 여성용 기모노의 모습을 떠올려보자. [16] 幽女. 遊女와 발음이 같은 것을 이용한 제목.