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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수정 시각 : 2024-11-03 00:24:12

존댓말 캐릭터

1. 개요2. 일본의 존댓말 문화3. 한국에서4. 한국과 일본 이외에서 - 표현이 가능한가?
4.1. 표현이 불가능하다4.2. 표현이 가능하다
5. 목록6. 관련 문서

1. 개요

"이게 물레라는 거죠?"
"맞아요. 지금 실을 뽑는 중이에요."
"어, 편하게 말씀하셔도 되는데."
"습관이니까 부담 갖지 말아요."
Why? 세계사 '현대 사회의 변화' 중에서. 미르와 아라가 아라 이모가 운영하는 현대사 박물관에서 인공지능으로 구현한 역사 인물들을 만나는데, 등장하는 지도자들 중 모한다스 카람찬드 간디만 아이들과 아미 이모에게 존댓말을 사용해서 미르가 당황하는 장면이다.

존댓말을 사용하는 캐릭터를 서술한 문서.

상대방과 자신의 직위 또는 나이의 차이와 상관없이 무조건 존댓말을 쓰는 캐릭터다. 심성이 정말 착해서도 있지만 사무적인 관계여서, 혹은 비꼬는 목적으로 쓰는 경우도 있다. 특히 한국에선 보통 '존댓말 캐릭터'라고 할 때 떠올리는 이미지는 아래와 같다.
이곳에서 두 번째 등장하는 '엘리트 포스'의 경우는 실제로 그런 경우도 있지만 자기 혼자만 그렇게 생각하는 중2병 캐릭터인 경우도 상당히 많다. 슈우 시라카와, 버나비 브룩스 Jr.가 전자의 전형적인 예시이고 또 강력3반의 서태두가 경찰에게 하는 태도는 후자의 예시다.

사실 근본적으로 한국과 일본의 존댓말의 개념이 차이가 있기 때문에 사석에서 동급생 또는 연하에게 존댓말을 쓰는 일이 거의 없는[5] 한국인 입장에선 상당히 호불호가 갈리는 설정이기도 하다. 때문에 만화나 애니, 드라마 등이 국내에 들어올 때 친구 사이나 동급생이 하급생에게 말을 할 경우 반말을 쓰는 것으로 자막이 수정되기도 한다. 이 경우 원작의 캐릭터를 알거나 일본어를 알아듣는 사람은 들리는 대사와 자막 사이의 괴리를 느낄 수도 있다.[6] 이렇게 번역하는 걸 캐릭터성 하나를 없애버린다고 싫어하는 사람도 있다. 자막은 일본어가 원문이라는 전제로 하여 존댓말로 번역할 수도 있지만, 더빙의 경우 원래 한국어 작품인 것처럼 만들어야 하기 때문에 현지화를 하지 않았더라도 거의 반말로 번역된다.

~슴다체의 경우 일단 완전한 반말은 아니지만, 존댓말이라고 하기에도 어딘가 부족하므로 보통 존댓말 캐릭터에 포함 시키지 않는 편이다. 특성도 전혀 다르다.

2. 일본의 존댓말 문화

일본과 한국의 존비어는 화용론적으로 다르게 분류된다. 일본어는 불어의 T-V구분 등과 같이 친소관계에 따라 존댓말 반말을 선택하는 반면, 한국어는 존댓말 반말의 선택이 철저히 사회적 위계에 따른다. 물론 처음 보는 사람과의 대화 등 중첩되는 상황도 있지만, 많은 경우 한국어와 일본어에서 존비어는 다르게 발현된다.

또한 일본은 특히 부모, 조부모에게 반말을 하는 것이 일반적이거나 가정 풍습에 따라 모든 사람에게 존댓말을 하거나 친구에게 존댓말을 하는 경우도 보인다. 말하자면 일본은 사회적으로 존댓말·반말의 사용 빈도 편차가 한국보다 심하고 문화가 생각보다 많이 다른 편. 일단 일본은 선생님이나 심지어 일반 어른도 교복 입은 고등학생에게 존댓말을 쓰는 게 정석적인 대화 방식으로 길을 묻거나 어떤 문제가 있거나 할 때 성인이 초면의 미성년자에게 평어를 쓰는 게 "너 임마", "이 자식아" 같은 공격적 표현을 쓰지만 않으면 큰 시비로 여겨지지는 않는 한국과는 다르다.[7] 사실 한국인들도 미성년자끼리의 대화가 아니면 서로 친하지 않은 경우에는 나이에 상관없이 존댓말을 쓰는 것이 예의에 맞다는 것을 알고 있다. 다만 연장자가 반말하는 것이 자연스럽다고 사회 인식에 뿌리 박혀 있어서 다들 알면서도 암묵적으로 신경 쓰지 않는 것이다.[8] 하지만 자신이 나이가 많다고 초면에 먼저 반말을 쓰면 한국에서도 '못 배운' 사람이란 이미지가 박힐 수 있어서 조심해야 한다.

일본은 어른이더라도 미성년자에게 존댓말을 하는 게 당연한 수준이고, 초면이라면 어른의 가벼운 반말조차 무례하다는 사회적 통념이 있다.[9] 어른이라도 반말을 쉽게 쓰면 건들 거리거나 불량하다고 인지되며 스스로도 자신이 그렇게 보이는 걸 인정하는 사람인 경우에 미성년자에게 반말을 쓴다. 아이러니하게도 일본 창작물에는 그런 식으로 누구에게나 무례하게 반말을 쓰는 성인 캐릭터 또한 (굳이 악역이 아니어도) 적지 않게 등장하지만 말이다.

반대로 연소자인 경우 한국은 젊은 불량배·양아치나 불량 학생도 선생님이나 초면의 어른에게 시비가 붙거나 협박을 하더라도 극단적으로 막장인 경우가 아닌 이상 일단은 불량한 높임말이라도 하고("선생님이 뭔데 상관이에...요?", "가던 길 가...요." "아저씨 죽고 싶어...요?", " 손님 맞을래요?" 등) 들어가고 나중에서 갈등이 심해지거나 해야 반말을 하거나 하는데, 일본 불량 학생(폭주족 포함) 쪽은 자신과 수십 살 차이 나 보이는 어른에게도 바로 그냥 반말("이봐 영감, 꺼져." "나카다, 상관하지 마.")하는 경우가 많다.[10]

또한 한국과 달리 적어도 초등학교 저학년까지의 어린 아이들은 불량스럽지 않더라도 어른들에게 반말을 쓰는 게 일반적이다. 너무 어린 아이들이 꼬박꼬박 존댓말을 쓰면 일본인 입장에선 위화감을 느낄 정도라고 한다.[11] 그리고 일본에서 학교 친구끼리 존댓말을 쓰는 것은 전혀 이상한 일이 아니다. 일본에서는 초등학생도 개학하고 처음 만나는, 즉 아직 친하지 않은 상대에게는 존댓말로 첫인사하는 일은 너무나도 자연스러운 일이며 수 개월 간 가깝게 지내서 절친이 됐다고 할 정도가 아니면 같은 반 학생끼리 존댓말 하는 건 전혀 이상하지 않고, 심지어 절친에게 존댓말을 써도 무방하다. 사실 동갑내기 간의 존댓말 자체는 한국어에서도 성인들끼리의 상식이다. 대학 입학하자마자 동갑내기나 동기들 간에 초면에 존댓말을 하는 것을 생각해보면 쉽다. 다만 한국은 이것이 고등학교 이하에선 적용되지 않는다는 게 정확할 것이다. 가장 대표적인 예시가 최유기 저팔계다. 존댓말을 더빙에서도 그대로 쓰는데 이 캐릭터의 경우 아무도 어색하다고 생각하거나 '한국에서도 그대로 반영됐네?' 같은 생각을 하지 않는다. 이런 차이는 중세 한국과 일본에서 유교의 위상 차이 때문이다. 한국어와 일본어는 존비어로 위계를 정하는 건 똑같지만 유교적 질서가 조선 왕조 500년 간 사회와 사람들의 관념 속에 완전히 스며들었던[12] 한국과 달리 일본에서 유학은 그 정도로 지배적인 위치를 갖지 못했기 때문이다.

덧붙여 주로 나이나 지위가 더 높은 사람이 상대를 긴장시키지 않고자 할 경우, 한국에선 존댓말 위주로 쓰는데 일본에선 존댓말과 반말을 섞어 쓰기도 한다. 예를 들어 의사가 환자에게 具合はどうですか→いつからそうだったの→もっと説明してください。(상태는 어떠신가요? 언제부터 그랬어? 좀 더 설명해 주세요.) 이런 식으로 말하는 것은 일본에서 흔하며 이는 변호사와 피고인, 면접관과 구직자 등의 관계에도 볼 수 있다.

잘 안 알려진 사실이지만 존댓말이 더빙에서 반영되거나 수정되는 기준이 학교가 존재하냐 안 하냐가 되기도 한다는 우스갯소리가 있다.

역으로 한국판이 원판인 작품에서 존댓말 캐릭터였는데 일본판에서 반말로 바뀐 경우도 소수나마 존재한다. 그리고 한국판이 원판인 작품에서 존댓말 캐릭터가 아니었는데 일본판에서 존댓말 캐릭터가 되는 경우도 있으며, 이 경우는 대부분 소심한 캐릭터, 모범생 캐릭터, 부잣집 아가씨 캐릭터, 공주 캐릭터다. 부잣집 아가씨 캐릭터와 공주 캐릭터의 경우 한국 원판에서는 반말(동갑이거나 연하인 사람에게)이나 평범한 존댓말(연상인 사람에게)을 쓰는 캐릭터인데 일본판에서 ~데스와(~ですわ)·~마스와(~ますわ)체를 쓰는 캐릭터가 되기도 한다.

왜인지는 몰라도 존댓말과 반말에 대한 전반적인 반응을 보면 반말 캐릭터가 윗사람 한정으로 존댓말하는 것으로 바뀌어 성깔 있는 성격이 죽었다고 반발하는 반응보다 존댓말이 반말로 바뀌어서 반발하는 반응이 상대적으로 미묘하게 적어 보인다. 아무래도 역시나 존댓말만 쓰는 문화 자체가 익숙하지 않다는 심리는 건드릴 수 없어서 그런 듯 하다.

간혹 불특정 다수한테 존댓말과 반말을 섞어 쓰는 캐릭터가 있을 경우 국내에서는 어느 더빙은 반말 하나로만, 어느 쪽은 존댓말 하나로만 통일하는 경우가 많은데 이 경우는 말투가 자꾸 섞이거나 하면 시청자 입장에서 갑자기 혼란스러워 할까 봐 그런 것이라는 말이 있다.

3. 한국에서

한국에선 일반적으로 이런 어투를 한국어로 번역할 때 대대적으로 손을 본다. 아무래도 연상이나 선배 부모 등이 아닌 친구나 연하[13]에게 존댓말을 하는 건 한국 독자들에게 많이 어색하므로 의사, 집사, 메이드 같이 존댓말 응대가 당연한 직업이나 아가씨 캐릭터처럼 존댓말이 주된 캐릭터 성이 아니라면 반말로 번역하는 게 일반적이다. 예를 들어 명탐정 코난 츠부라야 미츠히코는 교사인 부모님의 영향으로 어른들은 물론 또래인 소년탐정단 친구들에게도 전부 존댓말만 쓰지만, 한국에선 친구에게 존댓말을 쓰는 건 매우 어색하기 때문에 한국어 더빙판에선 모두 반말로 바뀌었다. 반대로 어지간해선 어른들에게 시종일관 반말을 쓰는 나머지 4명은 한국어 더빙판에선 존댓말을 하는 걸로 바뀌었다. 이러한 각색은 더빙과 만화책 번역 뿐 아니라 일어 원판에 자막을 달 때도 그대로 적용되는 편이다. 그런다고 무조건 다 바뀌는 건 아니고 PD 재량에 따라 어떤 건 바뀌고 어떤 건 그대로 가기도 한다.[14]

다만 애니플러스가 일본어판을 있는 그대로 방영한다는 전략을 내세워 큰 호응을 얻으면서 일본 애니메이션 더빙 자체가 투니버스가 일본 애니메이션을 주력으로 삼던 시절에 비하면 줄어든 편이고, 그나마 20년대부터는 애니플러스에서도 더빙이 조금씩 늘고는 있지만 그마저도 존댓말을 비롯한 모에속성 전반을 활용하기 어려운 여성향 애니메이션이 대세라, 여전히 한국어로 더빙된 일본 애니메이션에서 존댓말 캐릭터를 찾아보기는 힘든 편이다. 그나마 한국어 음성으로 존댓말만을 구사하는 캐릭터를 꼽으라면 요르 포저 정도.

또한 한국 웹툰 중 현대 한국을 배경으로 한 작품에서도 존댓말 캐릭터란 매우 드문데, 이유는 다름아닌 호칭의 문제 때문이다. 한국에서는 반말로 사람을 부를 때는 '~야(아)'라는 어미를 붙이게 되어 있고, 반대로 높여 부르려면 보통 씨, 님, 군/양, 학생 등의 호칭이 붙어야 자연스럽다. 그런데 동갑인 타인에게 존댓말을 하게 되면 전자와 후자의 어법이 모두 어색해지고, 특히 자녀나 친동생, 동갑인 쌍둥이 형제 등 '동등하거나 손아래이면서 개인적으로 가까운 관계인 사람'과 대화하는 상황도 한국이 아닌 다른 대부분의 국가에서야 그냥 이름만 부르면 되니 자녀나 동생, 쌍둥이 형제에게 존댓말을 해도 어색하지 않겠지만, 한국은 앞서 말한 대로 타인을 호명하는 게 기본인데 그걸 형제에게 사용한다면 굉장히 부자연스러운 상황이 된다. 가령 어떤 한국인 캐릭터가 존댓말 캐릭터라는 이유로 자녀나 동생이나 쌍둥이를 'OO 씨'라고 부르거나, 혹은 이름만 부르고 존댓말을 한다고 생각해 보자. 몰입도가 확 떨어지지 않겠는가?

4. 한국과 일본 이외에서 - 표현이 가능한가?

4.1. 표현이 불가능하다

이 클리셰는 위계에 따라 말투를 달리하는 것이 필수적인 존비어 구분이 철저한 한국과 일본의 매체에 해당되는 것이다. 당연히 존비어 구분이 없는 언어, 예컨대 영어나[15] 유럽권의 언어 다수, 중국어권의[16] 캐릭터는 이런 식으로 분류하기 어렵다. 굳이 나누자면 정중한 말투로 나눌 수 있겠지만...[17] 존비어 구분이 없으니 번역할 때도 상황이나 취향에 따라 알맞게 존댓말과 반말로 나눌 뿐 원문은 존댓말과 반말이 구분되지 않으니 이런 식으로 구분하지 어렵다. 일본어 매체의 보쿠 소녀를 한국어로 표현할 방법은 없지만 존댓말-반말 구분은 할 수 있는데 반해, 존비어 구분이 없는 언어로 번역하면 존댓말-반말을 사용하는 분위기를 깡그리 구분할 수 없게 되고, 작품의 상황이나 캐릭터의 개성을 알 수 없게 된다. 원작에서 캐릭터의 개성을 드러내기 위해 아무리 존댓말 캐릭터-반말 캐릭터로 구분한다 한들, 존비어 구분이 없는 언어로 번역하면 이러한 설정은 깡그리 사라져서 설정 자체가 의미없게 된다. 바꿔 말하면 보쿠 소녀라는 설정이 오직 일본어에서만 가능하고 일본어에서만 상상할 수 있듯이, 존댓말캐-반말캐 설정은 오직 한국어 매체와 일본어 매체에서만 상상하고 설정할 수 있으며 한국어와 일본어를 제외한 다른 언어에서는 그러한 구분과 설정을 한다는 것을 상상조차 할 수 없다는 것이다. 한국어의 존비어 문화에도 나오듯이 존비어는 단점이 상당하지만, 상황이나 성격 등을 더 잘 이해할 수 있다는 장점이 있다. 특히 일방적으로 설명만 하는 연설이나 책의 서술같은 경우 특히 그렇다. 존댓말 캐릭터를 만들어 주었는데 왜 재미를 느끼지 못해

4.2. 표현이 가능하다

부탁이 있는데요, 양 한 마리만 그려줘.[18]
« S'il vous plaît… dessine-moi un mouton… »
- 어린 왕자
"Det er meget ligefremt og velmeent sagt, jeg vil være ligesaa velmenende og ligefrem. De, som en lærd Mand, veed vistnok hvor underlig Naturen er. Somme Mennesker kunne ikke taale at røre ved graat Papir, saa faae de ondt; Andre gaaer det gjennem alle Lemmer, naar man lader et Søm gnide mod en Glasrude; jeg har ligesaadan en Følelse ved at høre Dem sige Du til mig, jeg føler mig ligesom trykket til Jorden i min første Stilling hos Dem. De seer at det er en Følelse, det er ikke Stolthed; jeg kan ikke lade Dem sige Du til mig, men jeg skal gjerne sige Du til Dem, saa er det halve gjort!"(덴마크어 원문) 출처
“I will be equally kind and straightforward. You are a learned man, and know how wonderful human nature is. There are some men who cannot endure the smell of brown paper; it makes them ill. Others will feel a shuddering sensation to their very marrow, if a nail is scratched on a pane of glass. I myself have a similar kind of feeling when I hear any one say thou to me. I feel crushed by it, as I used to feel in my former position with you. You will perceive that this is a matter of feeling, not pride. I cannot allow you to say thou to me; I will gladly say it to you, and therefore your wish will be half fulfilled.”(영어, 수잔나 메리 폴 번역) 출처[19]
"나도 동등하게 친절하고 솔직하게 대하게 될 거예요. 당신은 배운 사람이고, 인간의 본성이 얼마나 멋진지 아는 이예요. 그들을 아프게 만드는 갈색 종이 냄새를 견디지 못하는 사람들이 있어요. 다른 사람들은 골수까지 전율하는 느낌을 느끼겠지, 유리창에 손톱이 긁히게 된 경우라면. 나는 나 스스로 누군가가 나에게 라고 말하는 것을 들을 때 비슷한 느낌을 받아요. 나는 그것에 의해 짓눌렸던 느낌이 들어, 내가 예전에 당신과 함께 있을 때 느꼈던 것처럼. 당신은 이것은 감정의 문제라는 것을 깨닫게 될 거예요, 자존심이 아니라. 나는 당신이 나에게 라고 말하는 것을 허용할 수 없어요. 나는 기꺼이 그것을 당신에게 말할 거예요, 그리고 당신의 소원은 절반쯤 성취될 것이라고."(영어 기반 번역)
"그런데 나는 당신이 나를 '너'라고 부를 때마다 그와 똑같은 느낌을 받아요. 그럴 때마다 땅으로 꺼지는 것처럼 기가 죽어요. 내가 당신의 그림자로 살던 때가 생각나서 그런 거겠죠. 이건 자존심 때문이 아니라, 그냥 순수한 느낌이 그렇다는 거예요. 그래서 당신이 나를 라고 부르는 걸 허락할 수 없어요. 하지만 나는 당신라고 부르고 싶군요. 그러면 당신이 원하는 바가 절반은 이루어진 것 아닌가요?"(한국어, 배수아 번역) 출처[20]
한스 크리스티안 안데르센, ' 그림자(동화)'
다만 모든 문장마다 구분할 수는 없지만, 공손한 표현이나 친소어 구분은 있기 때문에, 현지 언어의 용법이 아니라 존비어 체계를 나타내기 위한 번역체를 목적으로 친소어로 의역하거나 번역차용한다면 적어도 반은 표현할 수는 있다. 완벽하지는 않지만 그래도 그나마 다행인 점이다.[21] 존댓말 캐릭터/목록 문서에는 한국어와 일본어 이외의 언어 매체가 등재되어 있는데, 이게 번역본 뿐만 아니라 원어판에서도 이러한지는 좀 애매한 편이다.

서양권 매체에서 대표적인 존댓말 캐릭터를 예로 들자면 프리즐 선생님이나 집요정을 들 수 있다. 특히 집요정들은 경어체 외에도 군대처럼 서열이 엄격한 집단에서 하급자가 사용하는 ~Sir 를 붙이는 말투를 사용한다. 유럽 대륙의 언어들은 T-V구분이 있어 영어보다 존댓말 표현이 좀 더 쉬운 편이다.

다만 그래도, 특수한 어미는 표현하기 어렵다. 가령 스이세이세키의 경우 버릇없는 말투에 존댓말 어미 ~데스 만 붙이는데, 어미의 개념이 없고 비존대-존대를 어미가 아니라 단어 구성으로 표현하는 영어에서는 그냥 평어체를 쓰는 것으로 바뀌었다. 사실 평어체 뒤어 sir만 붙이면 비슷한 느낌을 줄 수 있지만... 또한 ~분, ~께서~하시다 같은 한국어의 높임법과 같은 특별한 높임법은 아무래도 표현할 수 없다.

세계각국 언어에서 존댓말을 어떻게 표현하는지 알고 싶다면 존댓말 문서 참고.

5. 목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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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고하십시오.

6. 관련 문서



[1] 일본에서 타인을 풀네임으로 부르는 것은 상대방에게 정이 없거나 정이 가지 않을 때 쓰는 표현의 일종이다. 따라서 상대방에게 반말을 쓰기도 하고 상대방에게 버릇없는 행동을 하기도 한다. 이름이 짧은 한국은 인식이 좀 다르지만. 사실 이는 정도의 차이만 있을 뿐 어느 나라나 마찬가지다. 심지어 서양에서도 사석에서 풀네임으로 부르는 건 부모가 자녀를 훈육하는 것 같다고 싫어하는 경우가 꽤 있다. 영미권에서 미들네임까지 포함된 풀네임으로 불리는 경우는 부모에게 혼날 때와 법정에 섰을 때 뿐이라고 할 정도. [2] 이는 매체에서 흔히 찾아 볼 수 있는데 동서양을 막론하고 풀네임으로 부르는 경우 굉장히 딱딱하고 거리감 있어 보이게 말하는 연출이 많다. [3] 외국인들이 한국어/일본어를 배울 때는 존댓말을 먼저 배운다. 친소어 문화라 존댓말/반말 사용이 나이에 구애받지 않고 비교적 자유로운 외국인 입장에서는 배움이 짧아 반말과 존댓말 중 하나만 쓸 수 있다면 존댓말만 쓰는 게 트러블을 덜 일으키기 때문. 참고로 외국인 남성이 어설프게 일본어를 구사하는 경우 높은 확률로 1인칭은 와타시다. 이것도 1인칭 중 남녀 상관없이 쓰는 게 와타시뿐이라 배우거나 가르치는 입장에서 와타시로 통일하는 게 편하기 때문. [4] 저렇게 감정이 격해진 상태에서 하는 온갖 폭언까지 존댓말로 하는 캐릭터도 종종 있다. [5] 공적인 자리에서는 나이 불문하고 존댓말을 쓴다. 이 때문에 순수 한국 작품에서는 캐릭터가 특별한 이유 없이 존댓말을 쓴다면 인간 관계를 공적으로 생각한다는 딱딱한 이미지가 생기게 된다. 이런 경우 서로 친해지면서 말을 놓는 묘사가 나오기도 한다. [6] 가끔 나이가 어린 팬들은 이를 두고 오역이라고 말하기도 하지만 번역이란 것은 그 나라의 사람들이 위화감 없이 이해할 수 있도록, 해당 언어 문화에 맞게 끔 의미를 옮기는 것이지 문장을 그대로 해석하는 것이 아니다. [7] 심지어 어린 쪽이 어른을 얕보고 먼저 시비를 걸 때도 어지간히 막장이 아닌 이상 은연 중에 존댓말을 쓰는 모습을 볼 수 있다.(아저씨 뭔데요? 등) 나이에 따른 여부가 정말 사회 깊게 파고들어있음을 보여주는 예시. [8] 길을 묻거나 하는 초면끼리의 대화에서는 '학생, 여기가 어딘지 알아?' 정도의 뉘앙스면 괜찮지만, 매장이나 편의점 같은 곳에 가면 십중팔구 직원들이 학생들에게도 존댓말을 쓴다. 이곳은 엄연히 상업적인 곳이라 가볍게 묻고 넘기는 대화와는 조금 수준이 다르긴 하지만. [9] 대신 살짝 하대하는 의미의 존댓말 정도는 가능하다. "당신은 ~해야 되는 거예요. 알겠어요?" 이런 식. [10] 경우는 조금 다르지만, 일본 고등학생들 중(특히 여고나 여고생들) 선생님과의 관계가 매우 친할 경우 이름을 직접 부르거나 반말로 하기도 한다. 선생님도 학생들과 친하려고 하는 성격 + 사교성 좋은 학생 정도의 관계에서만 가능하긴 하지만, 아무리 친해도 선생님께 '〇〇야'라고 부른다거나 반말을 하는 것을 상상도 하지 못하는 한국과는 약간 다른 점이다. [11] '어린 아이는 어린 아이답게 철이 없어야 한다.' 정도의 생각인 듯하다. 거의 모든 일본인들이 그렇게 반말하는 어린 아이들을 귀엽게 본다. 정작 일본 창작물에 나오는 존댓말 캐릭터는 어린 아이인 경우도 적지 않지만... [12] 사실 불교 국가였던 고려도 조선만큼은 아니지만 유교의 영향이 결코 약한 편은 아니었으며 삼국시대 남북국시대에도 중국으로부터 들어온 유교가 어느 정도 영향력을 발휘하고 있었음을 감안하면, 한국에서 유교가 자리 잡아온 역사는 더욱 길다고 볼 수 있다. 정작 중국은 사회주의 문화대혁명으로 말미암아 유교문화가 상당히 퇴색되었고 존비어 문화도 사실상 사라졌다. [13] 성인들끼리 서로 모르는 사이일 경우는 제외. 이 경우는 한국에서도 나이를 따지지 않고 서로에게 존댓말을 쓴다. [14] PD로서 가장 뚜렷하게 나타나는 경우는 바로 황태훈 PD. 이 PD는 웬만해선 존댓말 캐릭터가 반말로 바뀌는 게 흔한 편이지만 애초에 존댓말 캐릭터가 우리나라의 정서와 맞지 않아서 이것에 대한 구설수는 잘 없는 편이고, 대신에 사투리 반영은 오히려 사투리를 하는 경우가 매우 흔하고 이걸 멋대로 바꾸는 것은 지방 사람들을 무시하는 일이므로 잘 반영해서 이런 면에서 호평이 많다. [15] 경어가 없는 건 아니지만, 보통 Sir, ma'am 같은 경칭 없이 평어로 바뀐다. [16] 존댓말이 없는 건 아니지만, 일상적으로 잘 사용하지 않으며 대륙의 표준중국어는 문화대혁명의 영향으로 존비어 문화가 없어졌다. 그나마 존비어 문화가 남아있는 대만 등 해외의 표준중국어조차 그 정도가 한국어와 일본어의 존비어만큼 체계적이지는 않다. [17] 프리즐 선생님이 여기에 해당한다. 영어판 기준으로도 Please, everyone 같은 경어체를 사용한다. 존댓말 캐릭터/목록 문서에도 있다. [18] 프랑스어에서 S'il vous plaît는 존댓말, dessine-moi는 반말이다. 문장 중간에 말을 놓은 것. 다만 프랑스어의 존댓말 체계는 T-V구분이며, 무조건 나이를 따지는 한국어의 존댓말 체계와는 다른 친소어이다. 그래서 중간에 반말로 말을 놓은 것이다. 끝까지 존대로 하려면 "S'il vous plaît, dessinez-moi un mouton" / 처음부터 반말로 하려면 "S'il te plaît, dessine-moi un mouton"라 하면 된다. [19] 덴마크어에서 구분되는 표현을 영어로도 구분해야 하는데, 현대 영어에서 사용되지 않는 thou로 번역차용하는 센스를 발휘했다. 다만 오늘날에는 사용되지 않기 때문에, 요즘 영어에서 thou라고 말하고 이에 따른 동사변형을 사용하면 현대인이 대화하는 게 아니라 사극에서 왕이 신하에게 명령하는 듯한 느낌을 준다. 여기서는 단어 구분이 중요하기 때문에 번역체로서 사용한 것이다. [20] 사실 '당신'이라는 표현도 한국어에서 존댓말로 사용하는 경우가 거의 없지만, 역시 구분을 위해 번역체로 사용한 것이다. [21] 가령 ~세요, ~십시오 에는 Please를 꼭 붙인다든지. 영어에서는 굳이 그럴 필요가 없지만 원문의 존댓말을 나타내기 위한 번역체로 사용하는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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