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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수정 시각 : 2024-10-03 14:04:38

나카무라 시치노스케

1. 개요2. 역대 나카무라 시치노스케3. 2대 나카무라 시치노스케
3.1. 개요3.2. 생애3.3. 연기 스타일3.4. 2대 나카무라 시치노스케 경찰관 폭행 사건3.5. 여담

1. 개요

파일:나카무라야 문장.png
나카무라 가문의 문장 카도키리긴소쿠(角切銀杏)[1]

나카무라 시치노스케 (中村七之助)

일본 가부키 업계에서 대를 이어 내려오는 배우의 세습명 중 하나. 이 이름을 가진 배우가 활동하는 나카무라야(中村屋)는 에도에서 최초로 상설극장을 세운 가문으로, ‘에도 가부키의 원조’라고 불리는 자부심을 갖고 있는, 가부키 4대 명문가에 드는 가문이다.

야고는 2대 이후부터 나카무라야를 사용하고 있으며, 이 전에는 카시와야였다.

2023년 기준, 나카무라야의 선대 당주였던 18대 나카무라 칸자부로, 본명 나미노 노리아키의 차남인 나미노 타카유키가 1987년에 만 3세의 나이에 2대 나카무라 시치노스케를 습명받은 이후 현재까지 당대로 활동중이다.

2. 역대 나카무라 시치노스케

본래 4대 나카무라 칸자부로가 처음 자칭하여 쓰여진 것으로 기록되어있으나 이는 그의 본명이었을 가능성이 크다. 때문에 4대 나카무라 칸자부로가 사용했던 나카무라 시치노스케는 보관명적 처리되고, 훗날 9대 나카무로 칸자부로가 사용하던 시점부터 세습명으로 인정되었다.

3. 2대 나카무라 시치노스케

2대 나카무라 시치노스케
二代目 中村七之助| Nakamura Shichinosuke II
파일:2대 나카무라 시치노스케.jpg
본명 [ruby(波野, ruby= なみの)][ruby(隆行 , ruby= たかゆき)] (나미노 타카유키, Namino Takayuki)
예명 2대 나카무라 시치노스케
출생 1983년 5월 18일 ([age(1983-05-18)]세)
도쿄도
국적
[[일본|]][[틀:국기|]][[틀:국기|]]
신체 175cm
학력 아오야마 학원 유치원 (수료)
아오야마 학원 초등부 (졸업)
분쿄구 제5 중학교 (졸업)
호리코시 고등학교 (졸업)
가족 친할아버지 17대 나카무라 칸자부로
친할머니 나미노 쿠에다
아버지 18대 나카무라 칸자부로 (1955-2012년)[2]
어머니 나미노 요시에[3]
6대 나카무라 칸쿠로 (1981-)
조카 3대 나카무라 칸타로 (2011-)
조카 2대 나카무라 쵸자부로 (2013-)
형수 마에다 아이
외숙모 미타 히로코[4]
육촌 형 2대 나카무라 시도
진이재종 2대 오노에 우콘
직업 가부키 배우
야고[5] 나카무라야 (中村屋)
문장 파일:나카무라야.png
소속 펀우드
링크 나카무라야 홈페이지

3.1. 개요

일본의 가부키 배우. 오토와야의 8대 오노에 키쿠고로, 요로즈야의 6대 나카무라 토키조와 함께 여자 역을 연기하는 온나가타에서 최고의 연기를 보여주는 배우로 평가 받으며, 가부키계에 빼놓을 수 없는 배우이다.

3.2. 생애

파일:나카무라야 일가.jpg
가족과 함께[6]
1983년, 가부키 명문가 나카무라야의 당시 당주였던 아버지 18대 나카무라 칸자부로와 어머니 나미노 요시에 사이에서 2남 중 차남으로 도쿄에서 태어났다. 본명은 나미노 타카유키. 형인 6대 나카무라 칸쿠로는 나카무라야의 현 당주이다.
파일:칸자부로 시치노스케.jpg
아버지, 형과 첫공연 성공 기원 참배를 하러 가는 모습
1985년, 본명 나미노 타카유키로 하츠오메미에를 치른 뒤, 곧 바로 형과 함께 나카무라야의 세습명을 습명 받고, 모모타로 이야기의 모모타로 동생 역으로 연기하며 2대 나카무라 시치노스케로서 첫 무대를 밟았다.
파일:시치노스케 칸자부로.jpg
아버지, 형과 함께
18대 나카무라 칸자부로는 차남인 시치노스케에게 어릴 적부터 형보다 더욱 많은 역할을 경험 시켜주며 어떤 배역이 자신에게 맞는지 생각해볼 수 있는 선택권을 주었다고 한다. 여유롭고 춤에 집중해야 되는 온나가타를 선호하게 된 것이 바로 이때 연기했던 기억이 오래 남았기 때문이라고 회고했다.
파일:시치노스케.jpg 파일:나카무라 시치노스케 어린시절.jpg
형과 함께 드라마에 출연했던 모습
어째 여기서도 여장을 하고 있다
여느 가부키 배우의 자녀들과 마찬가지로 각종 드라마와 영화, TV CM에 다수 출연하였는데, 거의 형인 6대 나카무라 칸쿠로와 형제지간으로 출연하는 경우가 다반사이다. 성격이 형과 달리 겁이 많았던지라 촬영 도중 울음을 터뜨린 적이 많았다고 한다.[7] 이외에도 아버지인 18대 나카무라 칸자부로 NHK 대하드라마에 주연으로 출연했을 때, 그의 아들 역으로 출연하기도 했으며 이 작품이 시치노스케의 드라마 데뷔작이다. 여담으로, NHK 대하드라마만 총 세작품에 출연하였다.
파일:1000012155.jpg
1995년, 공연이 끝난 후 가족과 함께
파일:렌지시 나카무라야.jpg 파일:나카무라야 형제 렌지시.jpg
형과 렌지시 공연을 하는 모습
자신있어 하는 연목으로는 나카무라야의 가부키 18번이라 불리는 '렌지시(연사자)'와 '카가미지시(거울사자)'가 있는데, 원래 렌지시는 아버지와 아들들이라는 명목으로 셋이서 무대에 섰지만 아버지인 18대 나카무라 칸자부로가 사망한 이후로는, 칸쿠로가 아빠 사자, 시치노스케가 아기 사자를 연기하며 무대에 서는 모습이 많이 보여졌다. 이후 조카인 3대 나카무라 칸타로가 아기 사자를 연기할 나이가 되자, 시치노스케는 다시 '카가미지시' 연목에 열중하고 있다.
파일:나카무라 형제 4.jpg 파일:나카무라 형제 3.jpg
시치노스케의 온나가타
시치노스케의 가부키 커리어 중 온나가타를 빼놓을 수가 없는데, 특유의 말투와 행동, 그리고 고전 무용에서 연출되는 온나가타의 극도로 어려운 동작 등을 무리 없이 소화해낸다. 울음소리와 연기는 말할 것도 없이 높게 평가 받고 있으며 시치노스케가 맡는 온나가타 역을 보러 순회를 도는 팬클럽이 따로 존재할 정도. 오토와야의 5대 오노에 키쿠노스케가 강인한 여성을 연기한다면 시치노스케의 온나가타는 가련해보이고 아련미 넘치는 연기를 한다는 것이 차이점으로 대조되고 있다. 몸집도 왜소한 편이고 목소리도 많이 가늘어 특히 이 배역에서 특징이 두드러진다. 보통 형의 상대역으로 출연하는 경우가 많다.
파일:시치노스케 타치야쿠.jpg
시치노스케의 몇 안 되는 타치야쿠 '요사부로'
물론 온나가타를 제외하고도 상술한 카가미지시나 코쿤 가부키 등에서는 타치야쿠에 서기도 하며 많은 연기를 펼치고 있다. 이 경우, 얍삽한 인상의 배우 즉 삼마이메 역할이거나 형이 맡는 역할의 조력자 내지 주연급에 해당하는 조연 등으로 출연한다.
파일:시치노스케 연기.jpg
NHK 대하드라마에서 만담가 케이센을 분한 모습
2019년, 이 주연을 맡았던 NHK 대하드라마 이다텐 ~도쿄 올림픽 이야기~》39화에 만담가 배역을 분하며 처음으로 만담에 도전했었다. 같이 출연한 배우로 나카무라 시도, 이쿠타 토마, 호시노 겐 등, 절친한 배우들이 많아 출연 제의를 수락했었다고 한다.
파일:시치노스케 라스트 사무라이.png
메이지 천황 역을 분한 모습
이전에도 톰 크루즈 와타나베 켄 주연의 영화 라스트 사무라이에서 메이지 천황 역할로 출연했다.
파일:나카무라야 시치노스케.jpg
헤이세이 나카무라자에서 나카무라 종가와 함께[8]
한때, 하술할 사건으로 인해 구설수가 있는 인물이기도 했지만 깊은 자숙과 더불어, 조용한 성격과 연기하는 온나가타 역으로 가부키 팬들에게 꾸준히 사랑받고 있으며, 일본 외교 상으로도 빠질 수 없는 인물로 여겨지고 있다.[9]

3.3. 연기 스타일

2대 나카무라 시치노스케의 온나가타 연기
위 영상에서 2대 시치노스케의 온나가타 발성 연기를 들어볼 수 있다. 상대역은 형인 6대 나카무라 칸쿠로. 목소리 자체도 굉장히 얇고 신체도 가는 편이라 그야말로 온나가타에 최적화인 셈. 코쿤 가부키로 몇 년만에 타치야쿠에 섰을 때, 기자회견에서 "오랜만의 타치야쿠라 많이 떨리고 적응이 안 된다. 온나가타는 몸과 잘 맞아 신경 쓰지 않고도 몸이 잘 나가고 목소리가 잘 울리는데, 타치야쿠는 이것저것 신경쓸 게 많아, 머리가 복잡해져 멋대로 움직여버릴 때가 많다"라고 전했다.

아버지인 18대 나카무라 칸자부로는 생전에 시치노스케에 대하여 "타카유키는 마사유키보다 목소리도 얇고 춤선도 아직 서툴지만 정확하다. 저 나이 때는 여자분장을 하면 싫어하는데 늘 좋아해주어 나도 아내도 놀랍다"라 발언하기도 했다.

덧붙여 어릴 적부터 동경하며 목표로 삼고 있는 가부키 배우로, 야마토야의 5대 반도 타마사부로를 꼽았는데, 이 배우 또한 온나가타로 인간 국보 자격을 받은 인물이다.

3.4. 2대 나카무라 시치노스케 경찰관 폭행 사건

헤이세이 17년이던 2005년, 시치노스케는 무용 연습이 끝난 후 도시마구에서 동료 배우들과 을 마시고는 만취한 상태로 집에 가겠다며 자리에서 일어나 도로로 나왔다. 그리고는 먼저 온 승객이 타고 있던 택시의 뒷좌석 문을 마음대로 열고는 '당장 내려라, 이 택시는 내가 탈 거다'라며 승객을 강제로 내리게 한 뒤 본인이 무임승차했다. 시치노스케는 자택이 있는 분쿄구까지 가달라고 택시기사에게 말했지만 택시기사는 이를 거절하고 시치노스케를 경찰에게 신고한다.

신고를 받고 출동한 오츠카 경찰서의 경찰관들이 시치노스케를 택시에서 끌어내리려 하자, '왜 남의 몸에 함부로 손을 대냐, 내 몸에 손대지 마라'라고 역정을 내며 당시 출동한 경찰관을 폭행하였다. 이는 공무집행방해죄와 폭행죄가 적용되어 바로 현행범으로 체포되었고 2시간 반만에 보석금으로 풀려나 자택으로 돌아갔다. 수감돼 있던 중에 술이 깨어, '여기는 어딥니까?'라는 말을 반복했다 한다.

이는 무려 아버지인 나미노 노리유키, 당시 5대 나카무라 칸쿠로가 18대 나카무라 칸자부로 습명을 앞두던 매우 중요한 시기였기에 나카무라야에 소속된 모든 배우들이 시치노스케와 함께 대국민 사과를 하기에 급급했고, 18대 칸자부로는 시치노스케에게 3개월간의 자숙 및 근신의 기간을 내려 모든 가부키 무대에서의 출연을 금지 당했다. 시치노스케는 이 시기만큼 아버지에게 크게 혼난 적이 없을 거라 하기도 했다.

본래 명문가 가부키 배우들의 자녀들은 어린시절부터 금지옥엽으로 자라, 도련님 생활을 지속하기에 그다지 놀라운 행동인 것은 아니다. 어느 여론에서는 그래도 아버지인 18대 칸자부로가 자식 교육을 잘 시켜 이만한 것에서 그친 것이라는 반응이 있었을 정도. 나리타야의 13대 이치카와 단쥬로만 해도 에 취해 폭력배들에게 선민사상을 갖고 배짱 좋게 시비를 걸다 제대로 털리기도 했다.

현재는 깊게 자숙하였는지 이 때 이후로는 사건 사고가 없으며 을 아예 끊어버렸다고 한다. 공연에 복귀했던 당시에 공연 시작과 끝마다 혼자 나와, 계속 사과를 거듭하며 앞으로 가부키에 매진할 것을 팬들에게 약속하기도 했고 해당 경찰서와 경찰관들에게 찾아가 깊이 용서를 구했고 이때의 사건을 일평생의 부끄러운 기억으로 안고 있다고 한다.

3.5. 여담

파일:시치노스케 호시노 겐.jpg }}} ||
가수 호시노 겐과 친한 사이인데, 이는 아버지인 18대 나카무라 칸자부로의 영향이라 한다. 호시노 겐은 칸자부로를 보며 인생의 많은 것을 느껴, '化物(괴물)'이란 곡을 작사 작곡하기도 했고, 칸자부로의 소개로 만나 헤이세이 나카무라자를 구경시켜주기도 했다. 호시노 겐 아라가키 유이와 결혼하자, 부부를 나카무라자의 가부키 공연에 초대하기도 했다고 한다.


[1] 스미키리이쵸. [2] 본명은 나미노 노리아키. 문서참조. [3] 인간문화재 보유자인 7대 나카무라 시칸의 차녀이다. [4] 외삼촌 8대 나카무라 시칸의 부인이다. [5] 가부키 배우로서 가지는 집안 이름. 세습명 구도를 중심으로 창시되며, 가부키계에는 4대 명문가를 포함한 40개 정도의 주요 야고가 있다고 한다. [6] 형인 6대 나카무라 칸쿠로의 시치고산을 기념하는 자리였다. [7] 1989년 밀착 취재 영상에선 부모님 없이 형과 단둘이 밤늦게까지 활동하러 다니는 모습이 주를 이루는데, 물론 가부키 명가의 자제인 만큼 최고의 환경에서 자랐겠지만 미취학 아동치곤 대단한 모습을 보인다. 물론 아이는 아이인지라 마지막 밤 공연을 마치고 귀가할때 눈물을 보이기도 했다. 이때 차에 타고도 우는 와중에 창에 매달려 시선을 때지 않는 시치노스케와, 뒤에서 티슈를 꺼내 무심하게 얼굴을 닦아주는 형 칸쿠로가 포인트(…) [8] 좌측부터 시치노스케 본인, 조카 3대 나카무라 칸타로와 2대 나카무라 쵸자부로, 형 6대 나카무라 칸쿠로. [9] 프랑스, 스페인 등. [10] 애초에 4대 명문가 구성원 중 대학교 졸업장을 받은 인물은 극히 드물며, 진학을 하더라도 본업인 배우 일이 바빠져 중퇴하는 경우가 다반사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