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개요
나카무라 가문의 문장 카도키리긴소쿠(角切銀杏)[1] |
나카무라 시치노스케 (中村七之助)
일본 가부키 업계에서 대를 이어 내려오는 배우의 세습명 중 하나. 이 이름을 가진 배우가 활동하는 나카무라야(中村屋)는 에도에서 최초로 상설극장을 세운 가문으로, ‘에도 가부키의 원조’라고 불리는 자부심을 갖고 있는, 가부키 4대 명문가에 드는 가문이다.
야고는 2대 이후부터 나카무라야를 사용하고 있으며, 이 전에는 카시와야였다.
2023년 기준, 나카무라야의 선대 당주였던 18대 나카무라 칸자부로, 본명 나미노 노리아키의 차남인 나미노 타카유키가 1987년에 만 3세의 나이에 2대 나카무라 시치노스케를 습명받은 이후 현재까지 당대로 활동중이다.
2. 역대 나카무라 시치노스케
본래 4대 나카무라 칸자부로가 처음 자칭하여 쓰여진 것으로 기록되어있으나 이는 그의 본명이었을 가능성이 크다. 때문에 4대 나카무라 칸자부로가 사용했던 나카무라 시치노스케는 보관명적 처리되고, 훗날 9대 나카무로 칸자부로가 사용하던 시점부터 세습명으로 인정되었다.-
나카무라 시치노스케
3대 나카무라 칸자부로의 양자. 후에 4대 나카무라 칸자부로가 된다. 1662-17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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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대 나카무라 시치노스케
8대 나카무라 칸자부로 양자. 후에 9대 나카무라 칸자부로가 된다. 1765-8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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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대 나카무라 시치노스케 (당대)
18대 나카무라 칸자부로의 차남, 1983–.
3. 2대 나카무라 시치노스케
2대 나카무라 시치노스케 二代目 中村七之助| Nakamura Shichinosuke II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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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명 | [ruby(波野, ruby= なみの)][ruby(隆行 , ruby= たかゆき)] (나미노 타카유키, Namino Takayuki) |
예명 | 2대 나카무라 시치노스케 |
출생 | 1983년 5월 18일 ([age(1983-05-18)]세) |
도쿄도 | |
국적 |
[[일본| ]][[틀:국기| ]][[틀:국기| ]] |
신체 | 175cm |
학력 |
아오야마 학원 유치원 (수료) 아오야마 학원 초등부 (졸업) 분쿄구 제5 중학교 (졸업) 호리코시 고등학교 (졸업) |
가족 |
친할아버지 17대 나카무라 칸자부로 친할머니 나미노 쿠에다 |
아버지
18대 나카무라 칸자부로 (1955-2012년)[2] 어머니 나미노 요시에[3] 형 6대 나카무라 칸쿠로 (1981-)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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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카 3대 나카무라 칸타로 (2011-) 조카 2대 나카무라 쵸자부로 (2013-) 형수 마에다 아이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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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숙모
미타 히로코[4] 육촌 형 2대 나카무라 시도 진이재종 2대 오노에 우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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직업 | 가부키 배우 |
야고[5] | 나카무라야 (中村屋) |
문장 | |
소속 | 펀우드 |
링크 | 나카무라야 홈페이지 |
3.1. 개요
일본의 가부키 배우. 오토와야의 8대 오노에 키쿠고로, 요로즈야의 6대 나카무라 토키조와 함께 여자 역을 연기하는 온나가타에서 최고의 연기를 보여주는 배우로 평가 받으며, 가부키계에 빼놓을 수 없는 배우이다.3.2. 생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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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족과 함께[6]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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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버지, 형과 첫공연 성공 기원 참배를 하러 가는 모습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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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버지, 형과 함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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형과 함께 드라마에 출연했던 모습 |
여느 가부키 배우의 자녀들과 마찬가지로 각종 드라마와 영화, TV CM에 다수 출연하였는데, 거의 형인 6대 나카무라 칸쿠로와 형제지간으로 출연하는 경우가 다반사이다. 성격이 형과 달리 겁이 많았던지라 촬영 도중 울음을 터뜨린 적이 많았다고 한다.[7] 이외에도 아버지인 18대 나카무라 칸자부로가 NHK 대하드라마에 주연으로 출연했을 때, 그의 아들 역으로 출연하기도 했으며 이 작품이 시치노스케의 드라마 데뷔작이다. 여담으로, NHK 대하드라마만 총 세작품에 출연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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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5년, 공연이 끝난 후 가족과 함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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형과 렌지시 공연을 하는 모습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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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치노스케의 온나가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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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치노스케의 몇 안 되는 타치야쿠 '요사부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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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HK 대하드라마에서 만담가 케이센을 분한 모습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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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이지 천황 역을 분한 모습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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헤이세이 나카무라자에서 나카무라 종가와 함께[8] |
3.3. 연기 스타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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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대 나카무라 시치노스케의 온나가타 연기 |
아버지인 18대 나카무라 칸자부로는 생전에 시치노스케에 대하여 "타카유키는 마사유키보다 목소리도 얇고 춤선도 아직 서툴지만 정확하다. 저 나이 때는 여자분장을 하면 싫어하는데 늘 좋아해주어 나도 아내도 놀랍다"라 발언하기도 했다.
덧붙여 어릴 적부터 동경하며 목표로 삼고 있는 가부키 배우로, 야마토야의 5대 반도 타마사부로를 꼽았는데, 이 배우 또한 온나가타로 인간 국보 자격을 받은 인물이다.
3.4. 2대 나카무라 시치노스케 경찰관 폭행 사건
헤이세이 17년이던 2005년, 시치노스케는 무용 연습이 끝난 후 도시마구에서 동료 배우들과 술을 마시고는 만취한 상태로 집에 가겠다며 자리에서 일어나 도로로 나왔다. 그리고는 먼저 온 승객이 타고 있던 택시의 뒷좌석 문을 마음대로 열고는 '당장 내려라, 이 택시는 내가 탈 거다'라며 승객을 강제로 내리게 한 뒤 본인이 무임승차했다. 시치노스케는 자택이 있는 분쿄구까지 가달라고 택시기사에게 말했지만 택시기사는 이를 거절하고 시치노스케를 경찰에게 신고한다.신고를 받고 출동한 오츠카 경찰서의 경찰관들이 시치노스케를 택시에서 끌어내리려 하자, '왜 남의 몸에 함부로 손을 대냐, 내 몸에 손대지 마라'라고 역정을 내며 당시 출동한 경찰관을 폭행하였다. 이는 공무집행방해죄와 폭행죄가 적용되어 바로 현행범으로 체포되었고 2시간 반만에 보석금으로 풀려나 자택으로 돌아갔다. 수감돼 있던 중에 술이 깨어, '여기는 어딥니까?'라는 말을 반복했다 한다.
이는 무려 아버지인 나미노 노리유키, 당시 5대 나카무라 칸쿠로가 18대 나카무라 칸자부로 습명을 앞두던 매우 중요한 시기였기에 나카무라야에 소속된 모든 배우들이 시치노스케와 함께 대국민 사과를 하기에 급급했고, 18대 칸자부로는 시치노스케에게 3개월간의 자숙 및 근신의 기간을 내려 모든 가부키 무대에서의 출연을 금지 당했다. 시치노스케는 이 시기만큼 아버지에게 크게 혼난 적이 없을 거라 하기도 했다.
본래 명문가 가부키 배우들의 자녀들은 어린시절부터 금지옥엽으로 자라, 도련님 생활을 지속하기에 그다지 놀라운 행동인 것은 아니다. 어느 여론에서는 그래도 아버지인 18대 칸자부로가 자식 교육을 잘 시켜 이만한 것에서 그친 것이라는 반응이 있었을 정도. 나리타야의 13대 이치카와 단쥬로만 해도 술에 취해 폭력배들에게 선민사상을 갖고 배짱 좋게 시비를 걸다 제대로 털리기도 했다.
현재는 깊게 자숙하였는지 이 때 이후로는 사건 사고가 없으며 술을 아예 끊어버렸다고 한다. 공연에 복귀했던 당시에 공연 시작과 끝마다 혼자 나와, 계속 사과를 거듭하며 앞으로 가부키에 매진할 것을 팬들에게 약속하기도 했고 해당 경찰서와 경찰관들에게 찾아가 깊이 용서를 구했고 이때의 사건을 일평생의 부끄러운 기억으로 안고 있다고 한다.
3.5. 여담
- 최종학력은 호리코시 고등학교 졸업. 가부키에 더욱 매진하기 위해 대학 진학은 포기했다.[10] 호리코시 고등학교의 동기로 배우 마츠다 류헤이와 쟈니스의 이쿠타 토마, 마츠모토 준이 있으며, 마츠모토 준과는 같은 반이기도 했던 절친 사이였기에 집에도 자주 놀러왔다고 한다. 이외에도 한 학년 아래였지만 가부키 명문가 오토와야 소속의 2대 오노에 마츠야가 있다.
가수
호시노 겐과 친한 사이인데, 이는 아버지인 18대
나카무라 칸자부로의 영향이라 한다.
호시노 겐은 칸자부로를 보며 인생의 많은 것을 느껴, '化物(괴물)'이란 곡을 작사 작곡하기도 했고, 칸자부로의 소개로 만나 헤이세이 나카무라자를 구경시켜주기도 했다.
호시노 겐이
아라가키 유이와 결혼하자, 부부를 나카무라자의
가부키 공연에 초대하기도 했다고 한다.
- 롯데 초코파이가 일본에 출시됐을 당시 형과 함께 CM을 맡았으며, 이외에도 아버지, 나카무라야 배우들과 찍는 등 많은 CM에 출연했다.
- 한신 타이거스의 열렬한 팬으로, 퍼스널리티를 맡아 진행하는 라디오 방송 <시치노스케의 라디노스케>에서 종종 경기 상황을 언급하며 응원하기도 했고 실제 경기의 라디오 중계에 게스트로 출연하기도 했다.
[1]
스미키리이쵸.
[2]
본명은 나미노 노리아키. 문서참조.
[3]
인간문화재 보유자인 7대 나카무라 시칸의 차녀이다.
[4]
외삼촌 8대 나카무라 시칸의 부인이다.
[5]
가부키 배우로서 가지는 집안 이름. 세습명 구도를 중심으로 창시되며, 가부키계에는 4대 명문가를 포함한 40개 정도의 주요 야고가 있다고 한다.
[6]
형인 6대 나카무라 칸쿠로의
시치고산을 기념하는 자리였다.
[7]
1989년 밀착 취재 영상에선 부모님 없이 형과 단둘이 밤늦게까지 활동하러 다니는 모습이 주를 이루는데, 물론 가부키 명가의 자제인 만큼 최고의 환경에서 자랐겠지만 미취학 아동치곤 대단한 모습을 보인다. 물론 아이는 아이인지라 마지막 밤 공연을 마치고 귀가할때 눈물을 보이기도 했다. 이때 차에 타고도 우는 와중에 창에 매달려 시선을 때지 않는 시치노스케와, 뒤에서 티슈를 꺼내 무심하게 얼굴을 닦아주는 형 칸쿠로가 포인트(…)
[8]
좌측부터 시치노스케 본인, 조카 3대 나카무라 칸타로와 2대 나카무라 쵸자부로, 형
6대 나카무라 칸쿠로.
[9]
프랑스,
스페인 등.
[10]
애초에 4대 명문가 구성원 중 대학교 졸업장을 받은 인물은 극히 드물며, 진학을 하더라도 본업인 배우 일이 바빠져 중퇴하는 경우가 다반사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