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센카쿠 열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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난세이 제도 (류큐 열도)
사츠난 제도 오스미 제도 · 토카라 열도 · 아마미 군도
류큐 제도 오키나와 제도 이에섬 · 쿠메섬 · 게라마 제도 · 아구니 제도 · 오키나와섬 · 이헤야이제나 제도 · 이오토리섬
사키시마 제도 미야코 제도 · 야에야마 제도 · 센카쿠 열도
다이토 제도 키타다이토지마 · 오키다이토지마 · 미나미다이토지마
* 사츠난 제도는 가고시마현에 속하며 류큐 제도와 다이토제도는 오키나와현에 속한다.
* 센카쿠 열도(중국명 댜오위다오)는 일본, 중국, 대만의 분쟁지역으로, 이곳에 대해 실효지배 중인 일본은 사키시마 제도의 일부로 포함하고 있다.



센카쿠 열도
파일:external/upload.wikimedia.org/640px-Diaoyutai_senkaku.png
위치
센카쿠 열도에서 가장 면적이 넓은 우오쓰리섬(うおつりじま), 중국명 댜오위섬(钓鱼岛)
1. 개요2. 명칭3. 상세
3.1. 역사
4. 영유권 주장5. 반응6. 사건 사고7. 관련 문서8. 둘러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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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센카쿠 열도 또는 댜오위다오는 동중국해 남서부에 위치한 다섯 개의 무인도와 세 개의 암초로 구성된 제도(諸島, 무리섬)으로, 대만 류큐 열도 사이에 있다. 중국, 대만 일본이 서로 영유권을 주장하고 있으며, 현재 일본 실효지배하고 있다. 이 제도 모두 사람이 살지 않는다.

일본은 이 도서를 독도와 마찬가지로 무주지라고 주장하며 병합하였고(무주지 선점론), 1969년 이 지역에 석유와 천연가스 등 막대한 지하자원이 매장돼 있다는 보고서가 발표되자 이에 대해 중국, 대만에서는 자신들의 땅이지만 일본이 이 지역을 불법 점유하고 있으며, 일본의 '무주지 편입' 이전부터 자신들이 이 섬을 인지하고 있었음은 물론 자신들이 영유하고 있었다며 자국의 영유권을 주장하면서 영토분쟁이 불거졌다.

지리적 위치를 보면 센카쿠 열도는 중국 대륙 본토에서는 320km 떨어져 있고, 대만과 이시가키에서는 170km, 요나구니에서는 150km 떨어져 있다. 센카쿠 제도가 일본과 엄청 멀리 떨어져있고 중국과 훨씬 더 가깝다고 하나, 이는 일본 본섬으로부터 거리를 재었기 때문에 생긴 오해다. 센카쿠 제도는 지리적으로 일본 남서부의 류큐 열도와 가까우며, 이 중 최남서단에 있는 요나구니섬과 매우 가깝다. 다만 대만의 펑자섬과 이곳의 거리는 140km이기 때문에 가장 가까운 해외 영토는 대만이다. 일본 행정구역상 이시가키시 소속이지만 이시가키섬과는 상당히 떨어져있다.

2. 명칭


대만이 사용하는 중국어 정체자 문서 중에 臺 대신에 臺의 약자로도 쓰이는 台를 쓰는 경우도 많이 있지만, 정식으로는 臺를 쓰는 것이 권장된다. 단 홍콩 마카오에서는 정식으로 臺를 폐지하고 台로 병합했기에 台로 표기하는 경우가 꽤 많다. 중국어 간체에서도 臺가 폐지되고 台로 통합됐으므로 무조건 台로 써야겠지만. 그런데 댜오위타이(釣魚臺 또는 釣魚台/钓鱼台)는 베이징에 있는 유적지 이름과 같아서 혼란을 일으킬 수 있으니 주의. 베이징에 있는 댜오위타이는 현재 주로 중국을 방문한 국빈을 영접하는 곳으로 쓰이고 있다.

옛 영어명 Pinnacle Islands는 1884년 영국 해군이 붙인 이름인데, pinnacle(피너클)은 건물(예를 들면 누각·樓閣) 위에 올려 놓는 작은 첨탑(尖塔)을 의미하는 단어이다. 일본어명 센카쿠(せんかく)는 바로 이 영어명을 으로 번역한 것이다. 센카쿠 열도를 이루는 주요 섬들의 이름은 있었으나, 이 여러 섬들을 아우르는 이름은 없었기 때문에 영어명을 번역해서 센카쿠라 지은 것이다.

중국, 대만 측 명칭에 보이는 조어(釣魚)는 낚시, 물고기잡이를 뜻하는 말이다. 따라서 댜오위다오(조어도)는 물고기 잡는 섬이라는 뜻이고, 댜오위타이(조어대)는 물고기 잡는 높고 평평한 건물이라는 뜻이다. 참고로 중국 측 명칭인 댜오위 섬(钓鱼岛)과 대만 측 명칭인 댜오위타이 섬(釣魚臺)은 이 제도 중 핵심이 되는 섬 하나를 가리키는 말인데, 이 섬에 붙여진 일본 측 명칭은 우오쓰리 섬(うおつりじま)이다. 중국 측 명칭과 뜻은 같다.

한국의 옛날 신문에서 센카쿠 열도 관련 기사를 찾고 싶을 땐 댜오위다오, 댜오위타이, 센카쿠보다 조어도, 조어대, 첨각으로 검색하는 게 걸리기가 쉽다. 예전엔 한자를 그대로 한국 한자음대로 읽고 쓰는 경우가 많았기 때문. 오래된 신문 기사에서는 한글 없이 한자만 써놨다. 소리내서 읽을 경우에는 한국 한자음대로 읽는다. 하지만 네이버 등의 옛날 신문 검색 시 한글을 입력하면 거기에 맞는 한자도 자동으로 매칭시켜서 검색 결과에 표시해 준다. 이 기능 때문에라도 검색 시 한국 한자음대로 적는 게 좋다. 물론 조어대의 경우 베이징에 있는 유적지가 검색 결과에 걸릴 가능성도 높으니 주의.

3. 상세

원래 섬 일대는 1884년 오키나와에 살던 후쿠오카 현 출신 사업가 고가 다쓰시로(古賀辰四郞)가 발견한 뒤 일본 사이타마현에 사는 한 남성의 사유지였으나, 일본 정부가 권리자에게 20억 5,000만 엔을 주고 매입했다. 2012년 9월 11일의 원-엔 환율은 100엔 당 1442.3원으로, 20억 5천만 엔을 원화로 환산하면 약 300억 원을 매입금으로 쓴 것이다. 이 매입을 통해 2012년 9월 11일부로 국유화하였다.

일단 부동산 소유자가 누구인가와 어느 나라의 영토이냐는 다른 문제이고, 또 한 나라 안에서 어느 행정구역에 속하느냐도 다른 문제이다. 예를 들어 부산에 사는 사람이 서울에 땅을 사도 계속 서울의 관할 지역에 속하고, 한국인이 미국 내 땅을 사도 미국 영토인 것과 마찬가지다. 하지만 일본이 이 사실을 몰라서 거금을 들여 국유화한 것은 아니며 중국의 영유권 주장에 민간이 휘말리는 사태를 미연에 방지하는 것과 동시에 일본 관할 아래 부동산 매매를 할 수 있다는 것을 보여줌으로써 실효지배를 강화한 것이다. 예시로 만약 일본이 독도 땅문서를 만들어 거래하려해도 한국이 독도를 실효 지배하는 상황에서 일본 정부가 발행한 독도 땅문서를 한국 정부가 인정해줄 리 없으므로 일본의 독도 땅문서는 땅 없는 땅문서가 되어버려 정상적인 부동산 거래로 취급되기 어렵다.

반대로 중국 입장에서는 자국의 영토를 타국이 맘대로 매매 대상으로 삼은 것으로 볼 수 있다. 결국 이 조치로 인해 2012년 9월 경, 중국 도시 120여곳에서 대규모 반일 시위 및 일본제 상품 파괴 폭동이 일어났다. 한국 THAAD 배치 당시와는 차원이 다른 수준의 반일 감정이 형성되어 과격 시위도 있는 등 난리가 났다. 반일시위가 절정에 달한 것은 9월 18일 전후로, 이날은 일본이 만주사변을 일으켜 중국을 침략한 날이라서 원래부터 중국에서 반일감정이 알게 모르게 끓어오르는 시기인데, 센카쿠 제도를 일본이 국유화한 사실이 알려짐에 따라, 두 사항이 합쳐져 반일감정을 엄청나게 끓어올렸다. 관련뉴스 이때 중국은 더 나아가서 미국 워싱턴 포스트 뉴욕 타임스에 '댜오위다오는 중국 땅'이란 내용으로 대형 광고를 실어 일본이 골머리를 앓게 했다.

센카쿠 제도 영토분쟁이 격화된 것은 중국이 일본을 막 제친 2010년대 초반부터이다. 이 당시부터 중국은 센카쿠 열도 영토분쟁으로 일본과 본격적으로 대립하기 시작했고, 스프래틀리 군도 및 파라셀 제도 등 남중국해에서의 영토 분쟁에서도 해군을 동원하여 필리핀, 베트남, 대만과 같은 분쟁 당사국들을 압박하였으며, 아루나찰 프라데시와 아크사이친 등 중국과 인도의 영토분쟁 지역에서 중국은 인도와 국경에서 충돌하며 힘자랑을 시작했다. 중국이 남아메리카 아프리카 지역에 천문학적 규모의 투자를 감행하는 이유 또한 아시아 지역에서 미국이 일본을 지원하고, 일본이 동아시아 국가들을 지원하는 연결고리가 워냑 촘촘하게 얽혀 있는지라 중국이 포위망을 뚫을만한 껀덕지가 없었기 때문이다. 이렇듯 자신들의 국력이 팽창하고 주변 국가에 영향력을 행사하려는데 시시건건 미국과 일본이 방해하니 좋게 보일 수가 없다. 중국이 일본이 저질렀던 만행에 대한 사료를 대거 공개한 것 또한 중일감정 악화에 영향을 미쳤다.

일본은 센카쿠 제도가 류큐 열도의 일부로서 미국의 시정 아래에 놓였으며, 일본은 1971년 미일 류큐 열도 반환협정에 따라 센카쿠 제도의 영유권이 일본에 반환되었다고 주장한다. 요컨대, 청일전쟁 태평양전쟁을 거치면서 종전 이후 영토 문제가 명확히 해결되지 않았기 때문에 계속해서 중일간 충돌이 발생하고 있다.

중국에서 댜오위다오가 대만 소속이 아니라 류큐 소속임은 인정하되 류큐는 중국에 조공을 바치던 속국이었으니 지금 일본은 류큐 열도를 불법 점령하고 있는 것이며 따라서 댜오위다오를 포함한 류큐 열도를 통째로 중국에 '반환'해야 한다는 자극적인 논리를 펼치기도 한다. 이는 류큐가 옛날에 조공 바치고 책봉받았으니까 속국이고 중국 땅이라면 똑같은 논리로 몽골, 한국, 베트남 등 과거 중국에게 조공을 바쳤던 국가의 땅도 모두 중국 땅이라는 지나친 주장이며, 중국도 상당기간 북방유목국가에 조공을 바쳤다. 전근대 동아시아의 조공은 그 의미와 인식이 단순히 속국이 종주국에게 공물을 바친다는 현대인들의 인식과는 달랐다.

만약 이 주장을 중국이 공식으로 받아들일 경우 류큐 소속이라는 것을 인정하는 것만으로 류큐 왕국을 편입했기에 정통성이 있다는 일본의 주장만 더욱 강화시킬 뿐이고, 이 주장으로 최대로 얻을 수 있는 것은 류큐의 중국 편입이 아닌 류큐의 독립일 뿐이다. 때문에 중국 정부의 공식 입장은 류큐 소속이 아닌 대만의 부속 도서라고 주장하고 있으나, 2006년부터 갑자기 이런 주장을 펴는 중국 학자들이 나타나기 시작했다고 한다. 2011년 기사 하지만 2020년대 들어서는 이런 주장이 수그러들었다. 너무 억지이기도 하거니와 일본의 주장을 일부라도 수용하는 것만으로 중국 정부의 공식 주장을 위축시킬 수 있다는 판단 때문으로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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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1. 역사

1879년, 일본 제국은 사츠마 번의 정벌 이래 작은 예속국가였던 류큐에 침입해 류큐 왕국을 폐합하였다. 류큐왕국과 교류를 하고 있었던 미국의 전직 대통령인 율리시스 그랜트 청나라에 이 사건은 심각한 문제이므로 청나라가 일본과 이 문제를 해결해야 한다고 제안했다. 그랜트의 중재로 청나라 측은 류큐를 3분해서 오키나와 남쪽의 류큐 열도는 청나라 영토, 오키나와 북쪽의 류큐 열도는 일본에 병합시키며 오키나와는 독립을 유지할 것을 제안했다. 그러나 일본은 오키나와 남쪽의 류큐 열도를 청나라에 주는 대신 오키나와 이북의 류큐 열도를 모두 일본에 병합시키며 류큐 왕국을 일본에 합병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러나 이홍장은 일본의 제안을 조공국이 없어지는 굴욕이라고 여겼는지 받아들이지 않았고, 협상이 진행되는 도중 청일전쟁이 나면서 대만까지 통째로 일본이 점령하면서 류큐 분할은 없던 일이 되었다. 역사에 '만약'은 없다고 하지만 그때 이홍장이 오키나와 이남의 류큐 열도를 받았을 경우 센카쿠 열도 영토 분쟁은 없었을 것이다. 어차피 이 섬들은 전통적 일본의 영역이 아니라 류큐, 아니면 대만 소속인데, 류큐 열도의 섬으로 본다면 그중에서도 오키나와 남쪽의 류큐 열도에 소속된 섬이기 때문이다.

1895년 청일전쟁 와중에 일본 제국은 이 군도를 무주지라며 자국 영토로 편입했다. 편입과정은 현지에 표지 말뚝을 설치한다는 각의 결정을 했다는 것이다.( 일본 외무성 홈페이지)) 실제로는 청일전쟁 승리 후 세울 필요성이 없었으므로 이를 실행하지는 않고, 1969년 5월 10일에 세웠다.

이때 편입 과정에서 외국에 알리지 않고 편입한 것으로 보인다.
질문: 일본 정부는 1895년의 각의(閣議) 결정을 대외적으로 밝히지 않고 비밀리에 실시한 것은 아닙니까?

일본 정부 답변: 1895년의 각의 결정이 당시 공개되지 않은 것은 사실이지만, 이것은 당시 다른 일반적인 각의 결정에 대해서도 마찬가지였다고 알고 있습니다. 전술한 각의 결정 이후 일본은 민간인의 토지 차용 신청에 대한 허가 발표, 그리고 국가 및 오키나와현에 의한 실지조사 등 센카쿠 제도에 대해 공공연히 주권 행사를 하고 있었으므로, 일본의 영유 의사는 대외적으로도 명백했습니다. 또한 국제법상 선점 의사에 대해 타국에 통보할 의무가 있는 것은 아닙니다.
일본 외무성 홈페이지
1905년에 일본 정부가 독도를 자국 영토로 편입할 당시에도, 대한제국 정부는 이를 모르고 있다가 1906년 울도 군수 심흥택이 독도에 일본인이 방문하고 나서야 이를 알고 본국 정부에 보고 할 정도였다. 이렇게 당시 일본은 영토를 편입하면서 관련국에 적극적으로 알리지 않고 몰래 해왔다. 위 일본 정부의 답변에서도, 1) 민간인의 토지 차용 신청에 대한 허가 2) 오키나와현에 의한 실지조사 같은 주권행사가 '대외적인 영유권 의사 표명'이라고 액면 그대로 믿기에는 힘들어 보인다. 이는 일본 국내에서 몰래 할 수 있는 것으로 외국 정부를 상대로 한 행위가 아니기 때문이다.

그러다 제2차 세계 대전 말기에 미국이 중국에 대만과 함께 류큐 일대를 중국에 완전히 '반환'하는 것을 제안했으나 이상하게도 장제스가 거부했다는 주장이 있다. # 역사에 '만약'은 없다고 하지만 굳이 추정을 해보자면, 그때 장제스가 류큐를 받았을 경우 센카쿠 열도 영토 분쟁은 없었을 수도 있다. 어차피 이 섬들은 대만 아니면 류큐 소속이니까. 물론 중국이 이 곳을 실질 통치하겠다고 나섰다면 일본이 개입하지 않은 채 중국과 대만 사이에 분쟁이 생겼을 것이다.

현재 센카쿠 열도 분쟁에서 중국과 대만은 일본의 실효 지배를 무력화해야 하는 입장이라 일단은 협력 관계에 있다. 독도 문제에서 북한이 대한민국을 지지하면서, 굳이 끼어들려 하지 않는 것과 비슷하다.

센카쿠 열도와 인근 해역은 1895년 청일전쟁 이후 일본의 영토로 귀속됐다가 1951년 9월 미일강화조약 체결로 일본에서 미국으로 이양되었다. 처음에 미국은 당연히 중국에 모두 반환해주려고 했는데 장제스가 거절한 이후 미국은 땅 욕심이 생겨서 결국 미국의 영토가 됐다. 그러다 다시 일본에 반환되었고 사실 이 당시까지만 해도 동 도서에 대한 영유권 주장은 제기되지 않았으나, 1968∼1969년 유엔 아시아극동경제위원회(ECAFE)의 아시아 연안지역 광물자원 공동개발조정위원회(CCOP)가 동중국해 일대의 해저조사를 실시하여 석유매장 가능성을 확인한 시점부터 중국-대만의 영유권 논쟁이 활발해졌다.( 문단 서술 참고 내용의 출처)

4. 영유권 주장

4.1. 일본

공식적으로 센카쿠 열도를 실효지배하는 국가는 일본이 맞다. 일본 외무성 홈페이지에 게재된 공식 입장에 따르면, "센카쿠 제도가 일본 고유 영토임은 역사적으로도 국제법상으로도 명백하며, 실제로 일본국은 이를 유효하게 지배하고 있습니다. 센카쿠 제도를 둘러싸고 해결해야 할 영유권 문제는 애초부터 존재하지 않습니다."라고 한다. 일본 외무성은 독도에 대하여는 다케시마 문제'라는 표현을 쓰는 반면, 자신들이 실효지배하는 센카쿠에 관하여만 '센카쿠 제도를 둘러싼 정세'라고 에둘러 표현하여 영유권 문제가 없음을 애써 강변하고 있다. 영유권 분쟁에서는 보통 실효지배 중인 측에서 분쟁의 존재를 부인하는 경우가 대부분인데, 자칫 영유권의 변경 내지 타협 가능성을 인정하는 결과로 이어지기 때문이다.

그러나 하토야마 유키오 전 일본 총리는 일본이 센카쿠 제도에 대해 분쟁 지역임을 인정할 필요가 있다는 입장을 냈다. 다른 사람도 아닌 일본의 전임 총리가 한 발언이라는 점에서 일본 내에서는 대단한 충격으로 받아들이고있다.

일본은 센카쿠 열도에 대해 1885년 오키나와에 살던 후쿠오카 현 출신 사업가 고가 다쓰시로가 발견한 뒤 일본 정부가 무주지임을 확인하고 1895년 1월 14일 정식 편입했다고 주장하고 있다. 이 과정에서 일반적인 무주지를 영토로 편입했으므로 센카쿠 제도는 일본 영토라는 주장이다. 그리고 이 주장을 중심으로 센카쿠 제도 개척의 날이라는 기념일까지 만들었다. 이거 어디서 본 거 같은데?

이 같은 영유권 분쟁은 북한 핵개발 문제와 함께 일본 내에서 평화헌법 개정의 명분과 군비 강화의 동력으로 작용하고 있다. 2014년 7월 내각의 결정에 따라 헌법해석 변경이 이루어졌다. 이는 우익 세력의 오랜 숙원인 헌법개정의 전초작업에 해당한다. 개헌이 국내여론상 어렵다고 판단되자 헌법 9조의 해석 변경을 단행하여 개헌과 비슷한 효과를 보기 위함으로 풀이된다. 또 경항모급인 이즈모함을 건조하고 차세대 주력전투기로 쓰일 F-3 개발과 미국으로부터 F-35를 도입하는 등의 조처를 통해 군사력 강화에도 박차를 가하고 있다.

2017년 아베 총리는 미국 트럼프 대통령과의 정상회담에서도 공식적으로 일미안보조약 제5조의 대상이 됨을 재천명하였다. 이는 일반적인 생각과 달리 결코 공짜로 얻어낸 것이 아니다. 일본의 센카쿠 열도 점유에 대한 전폭적인 지지를 대가로 일본 정부는 미국에 엄청난 경제적 지원을 약속했다.

4.2. 중국

중국은 댜오위다오가 대만의 부속도서로서 1372년 명나라 선원들이 처음으로 이 섬에 대해 기록을 남겼고 1403년 명나라 영락제 시기의 문헌 <순풍상송(順風相送)>이란 책에 '조어서(釣魚嶼)'란 이름으로 나와 있음을 근거로 중국이 댜오위다오를 가장 먼저 발견했으며, 댜오위다오라는 이름을 붙이고 섬을 이용해왔다고 주장한다. 아울러, 이때부터 계속해서 중국이 관할권을 행사해왔으며, 1863년 제작된 중국의 세계지도에 댜오위다오라는 명칭으로 표시됐다는 점을 여러 고지도들도 댜오위다오를 중국 영토로 표기한다고 주장한다. 따라서 댜오위다오가 역사적으로 중국 대만성 소속이지만 일본이 청일전쟁이 진행 중이던 1895년 센카쿠 제도가 무주지라고 주장하며 일본 영토로 강제편입했다고 주장하고 있다.

중국은 당초 이 섬의 존재 가치에 그다지 큰 신경을 쓰지 않았다. 2차대전 직후 미군이 류큐 열도와 함께 센카쿠 제도를 점령했을 때도 특별한 대응조치를 취하지 않았다. 하지만 1969년 이 지역에 석유와 천연가스 등 막대한 지하자원이 매장돼 있다는 보고서가 발표된 상황에서 미군이 1972년 류큐 열도와 함께 센카쿠 제도를 일본에 반환하자 반발하기 시작했다.

4.3. 대만

釣魚臺列嶼(Diaoyutai Islets)是臺灣的附屬島嶼,其行政管轄隸屬臺灣省宜蘭縣頭城鎮大溪里。無論從歷史、地理、地質、使用與國際法來看,釣魚臺列嶼都是中華民國的固有領土。
댜오위타이(Diaoyutai) 열서는 대만의 부속 도서이며, 그 행정 관할은 대만성 이란현 터우청진 다시리에 예속되어 있다. 역사, 지리, 지질, 국제법적 관점을 막론하고, 댜오위타이 열서는 대만의 고유 영토이다.
출처: 대만 외교부, 中華民國對釣魚臺列嶼主權的立場與主張(대만의 댜오위타이 주권에 대한 입장과 주장)
현재 중국에서 센카쿠 제도를 중국 타이완성 소속으로 지정해두고있으니 만큼 센카쿠 제도가 속해있는 대만 역시 센카쿠 제도가 당연히 자신들의 소속이라며 중국 본토와 똑같이 역사적으로 대만의 부속도서라고 영유권을 주장하는 중이다. 여기까지는 대만과 중국 본토의 주장이 일치하나, 대만의 경우 댜오위타이는 중국땅이 아닌 대만땅이라고 주장하고있는 반면 중국은 댜오위다오가 중국 타이완성에 소속된 중국땅이라고 주장하고있다. 중국 본토에서 댜오위다오가 중국땅이라고하면 대만인들은 "댜오위타이는 중국땅이 아닌 대만땅이다"라며 반발한다.

일본 독도 문제로 국제사법재판소로 가네 마네 할 때 대만에서 "댜오위타이 문제도 같이 회부하자!"라고 주장했다고 하나 대만이 ICJ회부를 실행에 옮겼다면 일본은 ICJ 강제 관할권 조항에 동의한 국가이기 때문에 상대방의 일방적인 제소에도 무조건 응해야 한다. 그러므로 실제로 대만이 ICJ에 회부한 것은 아니다.

현재 대만은 일본과 따로 협정을 맺어 현재 대만의 센카쿠 열도 영유권 주장은 일시 유보한 상태이다. 정확하게는 미국처럼 일본의 행정권까지만 어쩔 수 없이 인정해준 것이고, 주권에 대해서는 단호한 입장을 취하고 있다.

대만에서는 센카쿠 열도 영유권 주장에서 정치 진영에 따라 온도차가 있는데, 범람연맹 계열에서는 센카쿠 열도가 대만 땅이라고 적극적으로 주장하는 편이다. ICJ에 회부하자는 발언도 범람연맹의 중심 정당인 중국국민당이 집권했던 시절 마잉주 당시 총통이 했던 말이다. 반면 범록연맹 계열에서는 일본과의 관계를 고려해 센카쿠 열도가 대만 땅이라고 말은 해도 적극적으로 영토 분쟁에 나서지는 않는다. 리덩후이는 아예 센카쿠 열도가 일본의 영토라고 발언해버려서 대만 여야 양쪽에서 까인 적이 있다.

범록연맹 계열의 민주진보당 소속 차이잉원 현임 총통은 당선 직후 "댜오위타이는 대만땅이다"라고 발언한 바 있지만 #, 기본적으로 범록연맹 소속이기 때문에 차이잉원 총통 시기에는 영토 분쟁에 적극적으로 나서지는 않을 거란 예측도 있다.

하지만 온도차가 어떻든, 중국에 밀려 국제사회에서 고립된 상황에서 일본마저 적으로 만들어 좋을 게 없기 때문에 센카쿠 문제로 일본을 자극하는 것은 최대한 피하고 있다. 물론 일본도 중국 견제를 위해 대만과의 협력은 중요하다. 대만과 일본 양국은 2012년에 대만 어민의 센카쿠 해역 내 조업 허용을 골자로 한 어업협정을 체결한 바 있으며, 일본 내에서는 대만에 너무 많이 양보한 거 아니냐는 비판이 제기되기도 했다. 대만으로부터 센카쿠 관할권을 인정받는 대신 어업권을 내준 셈이다.

2020년 현재 대만-일본 수역에 대만 해양순방서는 매일 한 척 내지 두 척의 함정을 파견해 순시 근무하고 있으며, 해양순방서 제1순방구주임 홍버성(洪伯昇)은 앞으로도 우리 정부의 어민보호 표준작업 절차에 의거하여 어민 보호 임무를 이행하고 우리나라 주권과 어먼의 어업권을 지켜나갈 것이라고 말했다. #

5. 반응

5.1. 미국

2015년 아베 신조 내각의 노력으로 미국이 센카쿠 열도에 대한 미일방위조약의 효력이 발휘됨을 인정하는 상황이고 동시에 미일합동훈련을 통한 중국의 센카쿠 열도에 대한 팽창에 대해서 적극적으로 저지를 위한 미일방위협력을 가속화함으로써 일본 영토임을 시인했다. 현재 센카쿠 열도를 두고 중일간의 갈등은 상당히 대립이 강화되고 있는 추세이다. 2015년 동안 근접위협비행에 사격레이더의 조준 등의 사건들이 나오고 있고 중국견제론에 입각하여 일본의 아베내각이 매우 강경하게 나오고 있기 때문이다. #, 뉴스, #, 2017년 미국의 트럼프 대통령 또한 마찬가지로 센카쿠 열도를 보호한다고 천명했다. #

현실적으로 미국에게 중국은 잠재적 주적이다. 때문에 중국이 어디랑 대립을 갖더라도 표면적인 주적인 북한과의 대립이 아닌 이상 중국의 편을 들어주지 않는다. 사실상 일본의 영유권을 인정해주는 것이라고 봐도 무방하다. 미일관계 제2차 세계 대전 이후 유례없이 강력한 상황이며 센카쿠 제도 분쟁뿐 아니라 남중국해 영토분쟁, 일본의 재무장 등 여러 현안에서 대부분 미국은 일본 편을 들고 있는 상황이다. 그렇기 때문에 중국도 이 분쟁에 함부로 왈가왈부 하지 못하는 상황.

5.2. 대한민국

대한민국은 공식적으로 이 문제에 중립이고, 최대한 언급을 하지 않는 상태를 유지하고 있다. 다만 일본이 실효지배하는 점을 고려하여 이름을 표기할 때에는 일본명을 따라 '센카쿠 열도'라고 부를 때가 많으며, 맨 처음 언급할 때에 한해 '(중국명 댜오위다오)'를 병기하는 식으로 영유권 분쟁이 있다는 점을 언급한다. 어차피 센카쿠 열도의 위치는 대한민국과 전혀 상관없는 위치이고 실효지배하는 국가의 영유권을 우선해주는게 독도 관련 문제에서도 목소리를 내기 좋기 때문. 게다가 중국이 주장하는 조공국 = 중국의 속국 논리가 한국측에서 도저히 받아들일 수 없다는 이유도 있다.

일부 민간에서는 아무리 독도의 영유권을 주장하는데 보탬이 된다고 하더라도, 일본 자체에 반감을 가지고 똑같이 무주지라고 병합한 이 섬을 중국이 영유해야 한다는 주장을 하는 이들도 있지만, 일본의 독도 영유권 주장에 대응하여 실효지배하는 쪽이 유리하다는 논리를 따라 대한민국의 독도 실효 영유의 정당화로 오히려 일본의 센카쿠 열도 실효 영유를 인정하는 의견도 꽤 많다.

5.3. 류큐 독립 지지자

현재는 세력이라고 분류하기에도 민망한 수준이지만, 류큐 독립 운동가들은 일본 정부와 동일하게 센카쿠 열도가 류큐 열도 소속이라는 입장이다. 그리고 류큐가 독립할 경우 명백히 류큐 공화국의 영토가 돼야 한다고 강력하게 주장하고 있다.

다만 근래 중국과의 센카쿠 열도 영토 분쟁이 격화되자 독립 운동에 불똥이 튀었다. 독립 시 센카쿠 열도를 중국으로부터 지켜낼 수 있겠냐는 우려 때문에 독립 찬성 여론이 급감했기 때문이다. 게다가 중국 일각에서 오키나와 현 현지의 독립 운동가들의 입장과 무관하게 자국에 유리한 방향으로 류큐 독립이나 류큐의 중국 편입 같은 주장이 나오자, 류큐 독립 운동가들이 일본 극우 세력으로부터 중국의 지원을 받았느니 어쩌니 같은 사실과 다른 음해에도 시달리고 있다. 상세한 내용은 류큐 독립 운동 문서를 참고할 것.

5.4. 북한·러시아·몽골

북한 러시아, 몽골은 같은 구 공산권인 중국의 영유권 주장에 동조하는 경향이 있지만 북한을 제외한 나머지 둘은 동상이몽의 상태라 꼭 지지만 하고 있지도 않다.

북한에서는 공식적으로 댜오위다오라고 칭하며, "일본명 센가꾸 렬도"라고 병기하는 것이 일반적이다.

러시아는 명시적으로 일방을 지지하는 의사를 표명하는 것은 아니나, 중국에 동조하는 것으로 보이는 행동을 하는 경우가 있다. 다만 국제적으로 센카쿠 제도라고 부르니 만큼 러시아 또한 마찬가지로 센카쿠 제도라고 부르는 경우가 많다. 또한 러시아의 경우 크림반도와 쿠릴 열도 남부에 대한 영토분쟁에 대해 자국이 실효지배하고 있는 입장에 있으므로 중국의 주장에 완전히 힘을 실어 주었다고 보기는 어렵다. 한국이 독도를 실효지배하고 있는 입장에서 센카쿠 열도와 관련하여 중국의 입장을 지지하기 어려울 수 있는 것과 비교하면 러시아의 입장을 이해할 수 있다.

몽골의 경우 러시아와 중국 사이에 낀 지정학적 위치와 더불어 외교적으로도 양국과 보다 가까우므로 중국의 주장에 가까운 태도를 보이는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몽골 역시 명시적으로 중국의 영유권 주장에 동조한다고 보기까지는 어렵다.

5.5. 베트남

베트남은 명시적으로 일방을 지지하는 의사를 표명하는 것은 아니나, 일본에 동조하는 것으로 보이는 행동을 하는 경우가 있다. 다른 공산권 국가들의 경우 중국의 영유권 주장에 동조하는 경향이 있지만 베트남은 공산권 유일의 친일국가이다.[1] 또한 베트남은 혐한 분위기도 있고 친일국가이기 때문에 독도 문제에 대해서도 일본의 입장에 동조하는 경향이 있다.

6. 사건 사고

7. 관련 문서

8. 둘러보기

난세이 제도 (류큐 열도)
사츠난 제도 오스미 제도 · 토카라 열도 · 아마미 군도
류큐 제도 오키나와 제도 이에섬 · 쿠메섬 · 게라마 제도 · 아구니 제도 · 오키나와섬 · 이헤야이제나 제도 · 이오토리섬
사키시마 제도 미야코 제도 · 야에야마 제도 · 센카쿠 열도
다이토 제도 키타다이토지마 · 오키다이토지마 · 미나미다이토지마
* 사츠난 제도는 가고시마현에 속하며 류큐 제도와 다이토제도는 오키나와현에 속한다.
* 센카쿠 열도(중국명 댜오위다오)는 일본, 중국, 대만의 분쟁지역으로, 이곳에 대해 실효지배 중인 일본은 사키시마 제도의 일부로 포함하고 있다.




[1] 이는 중국과 남중국해의 스프래틀리 군도 파라셀 제도를 둘러싼 분쟁과 관련하여 중국과 대립하고 있는 혐중 성향이 워낙 심한 국가이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