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개요
漫才(まんざい)일본의 전통희극인 万才(만자이)를 기반으로 간사이 지방에서 독자적으로 발달한 예능형식.
2. 역사
만자이를 펼치는 사람들은 漫才師(만자이시)라고 부르며, 그 기원을 돌아보면 나라 시대의 "萬歳"(숫자의 "만", 나이의 "세".)[1]에 있다. 어원적인 의미로는 신년에 천수만세(千秋萬歲)를 기리며, 악기 연주와 노래를 하는 공연을 했던 것으로, 음양사의 일종으로서 11세기에는 이를 전문으로하는 예능인인 "千秋萬歳法師"(천수만세법사)가 등장할정도로 전문 예능으로 자리잡는다.원래는 귀족층의 문화였으나, 일본의 권력이 귀족에서 무사로 바뀌는 가마쿠라 시대부터는 무사의 귀족화와 동시에 귀족문화 또한 무사 계급으로 전파되었으며, 기존의 전문직업예능인의 몰락으로 생계를 위해서 일반 백성의 마을이나 집들을 돌면서 공연을 펼치 "声聞師"(성문사)로서 재탄생하게 된다.
전국시대에 오면서 만세의 문화는 전국적으로 유행하였고, 에도 시대에는 음양사가 금지되면서 그를 대신할 신도적 요소를 추가하며 살아 남아, 전용공연장이 만들어져서 공연을 펼칠정도로 유행하였으며,18세기말에는 오사카와 교토의 상설전용공연장이 만들어졌다.
이때 유행한 만세는 이전시대의 음악과 연주 중심의 만세와 다른 것으로 2인조로 서도 대화를 주고 받고 하는 "軽口"(카루쿠치 뜻: 가벼운 말), 길거리 나 극장에서 즉흥적으로 연주나 극을 시작하는 "俄"(니와카 뜻 : 갑자기/비전문가) 의 두 부류이며, 이것들이 현대 만세의 직계 조상에 해당된다.
18세기 말에 에도에서 만담이나 이야기/썰을 푸는 형식인 신생 예능인 "落語"(라쿠고)의 등장으로, 만세는 주류 예능에서 퇴출되었고, 그 흐름은 근대화에 들어가면서 가속되어, 라쿠고 극장앞에서 악기를 연주하여 관객을 모으는 용도나, 휴식시간에 관객을 지루하지 않게 하는 노래나 연주를 하는 하류의 부속품 예능으로 전락되었다.[2]
이런 만세를 변화시킨 계기는 오사카에서 "玉子屋円辰"(타마고야엔타츠)라는 만세연주가가 연주와 함께, 중간 중간에 만담을 넣는 형식을 발명하면서, 라쿠고의 부속연주가나 니와카들이 따라하기 시작하였고, 이쯤에 고전 예능인 "萬歳"와 구분 짓기 위해서 "万才"라는 표기가 시작되었고, 이를 행하는 예능인을 "万才師"(만자이시)라 부르기 시작하였다.
이 시대의 만자이는 악기연주가 필수였고, 그 사이 사이에 만담을 넣는 형식이였기에 만자이 = 연주가 당연하였다.[3] 1919년, "横山エンタツ"(요코야마 엔타츠)와 "花菱アチャコ"(하나비시 아챠코)라는 만자이시가 실험삼아 한 <연주 없이 둘이 대화만하는 만자이>을 공연하였지만, 관객들에게 "제대로 된 만자이를 하라고!"라고 욕을 먹고 쓰레기가 날라왔을 정도.
1930년, 요코야마 엔타츠와 하나비시 아챠코는 요시모토 흥업에 들어가, "秋田實"(아키타 미노루)라는 만담작가를 만나는데, 이 작가의 조언으로 당시 유행하기 시작하던 양복 차림으로 차려입고, 가벼운 말투로 일반 샐러리맨이 대화를 나누는 형식인 만자이가 탄생하게 된다. 이 형식의 탄생시점에는 기존 만자의 아류 였기에 이 만자이를 "しゃべくり万才"(샤베쿠리 만자이 뜻 : 말만하는 만자이)라 불렸다. 이 샤베쿠리 만자이는 당시 라이벌 유명했던 와세다 대학과 케이오 대학과의 야구시합등을 만담형식으로 푸는 걸로 대박을 쳤으며 1932년, 요시모토 흥업에서 기존 "万才"와 완전 구분 짓기 위해, 漫才(만자이)라는 호칭을 처음 사용하면서 현대 만자이가 정립된다.[4]
전통적인 만자이의 방법론은 70년대 말, 신스케 X 류스케 콤비의 등장으로 한 차례 변화했다. 이들은 츳코미 역할을 맡은 류스케가 아이카타인 신스케에게 츳코미를 해도 보케 역할을 맡은 신스케가 말을 멈추지 않고 빠른 탬포로 모든 대사를 말하는 새로운 스타일의 만자이를 선보이며 대중들에게 큰 인기를 끌었다. 방송 작가 후루카와 카이치로는 "기존의 만자이는 츳코미가 보케를 비웃는 패턴이었다. 그런데 신스케 X 류스케의 만자이는 보케들끼리 이야기를 주고 받는 것에 가깝다. 이것은 대혁신이라고 할 수 밖에 없다."라고 두 사람의 만자이를 극찬했다. 그러나 보수적인 선배 만자이시들에게는 비난을 받기도 했다. [5]
또한, 시마다 신스케는 고전 만자이부터 당시의 현대 만자이까지 음원을 다 들으며 만자이의 변천사를 확인하고, 공책에 최신 만자이의 대사/시간/타이밍/어조/음색/을 기록하여 분석, 타이머로 타이밍과 시간을 재면서 연습하여 최초로 만자이 방법론을 체계적으로 정립한 사람이기도 했다.
현대 만자이는 80년대 중반, 만자이에 콩트식 연기를 첨가한 새로운 스타일의 만자이를 펼친 " 다운타운"의 등장으로 또다시 새롭게 변모하였다. 다운타운의 파격적인 만자이 스타일[6]로 인해, 만자이시는 정장 차림이어야한다는 고정 관념이 사라져, 이 시기를 기점으로 복장도 자유화되었다. 지금은 다운타운의 영향을 받지 않은 만자이시가 없는 시대에 도달했으며 기존까지의 현대의 만자이는 고전화되어 "정통파 만자이"라 분류되고 있다.
3. 정의
현대 일본에서 가장 대중적이고 인기높은 예능이고, 말로 웃기는 장르 중에서는 대세를 이루고 있는 방식이다.[7] 현재 일본의 방송에서 활동하고 있는 일본 개그맨들의 원점이자 종점이라고도 부를 수 있는 코미디 스타일로, 현재 일본 방송에서 자주 보이는 콤비 개그맨들은 대부분 이 만자이 콤비를 뜻하는 것이다.보케와 츳코미로 구성된 2인조가 필요하며, 간혹 3명 이상의 인원으로 펼치는 그룹만자이도 있다. 뭐니뭐니해도 콤비의 수가 압도적으로 많고, 그 다음이 3인조인 트리오. 트리오는 보케2+츳코미1이 일반적이다. 콤비의 파트너는 相方(아이카타)라고 한다. 콤비 만자이에서뿐만 아니라 일본 문화 전체에 걸쳐 보케와 츳코미의 관계는 흔들리지 않는 뿌리로 자리잡고 있다. 보통 콤비의 츳코미역은 방송 MC로 활약하는 경우가 많은데, 많은 경우 MC이외의 출연진 전원(보케)vsMC(츳코미)의 구도로 진행된다. 방송뿐만 아니라 드라마, 영화, 애니메이션의 캐릭터들은 대부분 이 둘 중 한가지 타입으로 구분지을 수 있을정도.
크게 しゃべくり漫才(샤베쿠리 만자이)와 コント漫才(콩트 만자이)로 나뉜다. 샤베쿠리 만자이는 어떤 화제에 관하여 이야기를 이어가는 형식, 콩트 만자이는 만자이의 틀 안에서 상황 설정(역할)을 통해 코미디를 펼치는 형식이다.
일본에는 수많은 만자이 경연대회가 있어서 신인 코미디언들의 등용문이 되고 있다. 만자이가 워낙 대중적인 인기를 구가하고 있어 데뷔가 상대적으로 편하고, 추후 버라이어티 방송으로 진출한 후에도 모든 상황을 홀로 대처해야하는 핀게닌에 비해 호흡이 잘 맞는 아이카타가 있어 안정적으로 방송에 임할수 있기 때문에, 만자이 자체가 목적이건 방송진출이 목적이건 만자이시는 많은 게닌 지망생들이 선택하는 길이다.
4. 참고
5. 만자이 콤비 목록
동일본 출신들이 많은 콩트 콤비들과는 다르게, 만자이 콤비는 서일본(특히 간사이) 출신들이 많다.- 야스시키요시 (요코야마 야스시, 니시카와 키요시)[8]
- 투 비트 ( 비트 타케시, 비트 키요시)
- 신스케 X 류스케 ( 시마다 신스케, 마츠모토 류스케)
- 다운타운 ( 마츠모토 히토시, 하마다 마사토시)
- 오도리 ( 와카바야시 마사야스, 카스가 토시아키)
- FUJIWARA (후지모토 토시후미 & 하라니시 타카유키)
- 츄토리얼(오와라이) (토쿠이 요시미, 후쿠다 미츠노리)
- 풋볼아워 (이와오 노조무, 고토 테루모토)
- 블랙 마요네즈( 브라마요) (코스기 류이치, 요시다 타카시)
- 와라이메시 (니시다 코지, 나카니시 테츠오)
- 언터쳐블 (야마자키 히로나리, 시바타 히데츠구)
- 샌드위치맨(오와라이) (다테 미키오, 토미자와 타케시)
- NON STYLE (이시다 아키라, 이노우에 유스케)
- 토미즈 (키타무라 마사히데, 미츠다 켄)
- 기린 (타무라 히로시, 카와시마 아키라)
- 펑크부부 (사토 테츠오[9], 쿠로세 쥰)
- 나이츠 (하나와 노부유키[10], 츠치야 노부유키)
- U字工事[11] (후쿠다 카오루, 마시코 타쿠로)
- 히비키 (나가토모 미츠히로, 코바야시 유스케)
- 오리엔탈 라디오[12] (나카타 아츠히코, 후지모리 신고)
6. 소재로 한 작품
7. 관련 문서
[1]
같은 뜻 다른 한자인 万 또는 才로 점차 변이해간다.
[2]
카루쿠치는 라쿠고형식으로 진화하여 上方落語(카미가타 라쿠고)로 명맥으로 이어간다.
[3]
오사카에서 탄생한 새로운 만자이의 문화는 1917년에 도쿄에 전해지게 되었고, 늦게 접한 만큼, 후에 등장하는 현대 만자이에게 고전 만자이에 퇴출되는 시기가 늦었고 지금 처럼 지역문화의 전파가 빠르지 않았기에 고전적 만자이는, 발상지인 오사카에서는 현대 만자이에게 패배하여 거의 사라지고, 늦게 접한 도쿄의 아사쿠사에서만 볼수 있는 "화석"으로 남아 있다. 이게 고전 만자이의 성지를 아사쿠사라고 하는 이유이다.
[4]
하지만 1990년중반까지 "万才"가 "漫才"와 공용되었고, 2000년대에 들어서면서 "漫才"가 정착하기 시작했다.
[5]
당시 신스케의 선배인 나카타 카우스는 "너희가 전통을 파괴했다"라며 화내었고, 시마다 신스케도 "이런 방식은 절대 오래 못가요. 몇 년 안에 한계가 올테니 그때까지만 눈감아주세요"하고 사죄하였다는 일화가 있다.
[6]
70~80년대 만자이의 최정상을 달리던
시마다 신스케가 다운타운의 만자이를 보자마자, "우리 시대는 끝났다"라며 만자이에서 은퇴하여 버라이어티 MC로 전향할 정도의 새로운 쇼크였다.
[7]
미국에서는 개그맨 한 명이 혼자 무대 위에 올라가 웃기는 '
스탠드업 코미디'가 코미디의 대세를 이루고 있다.
[8]
1967년부터 1989년까지 활동한 원로 만자이 콤비로, 1980년대 초 만자이 열풍을 선도했다.
[9]
상당히 특이한 경력을 가지고 있는데, 고전 프라모델 모으는 걸 좋아하고 일본
건프라 빌더스 월드컵 2014, 2015 결승진출에 2016년 준우승을 했던 적이 있다. 현재는 그 취미를 살려
레트로 키즈라는 고전 프라모델 유튜버도 하고 있다.
[10]
핀게닌으로 활동중인 하나와(본명 하나와 나오키)의 친동생이다.
[11]
'유지코지'라고 읽는다. 방언 중에서는 다소 마이너한
도치기 방언을 주요 네타로 사용하는 것이 특징인 콤비.
[12]
'무용담' 네타가 워낙 히트해서 콩트콤비로 많이 알려져 있지만, 만자이도 병행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