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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수정 시각 : 2024-11-01 12:02:54

중국 제국주의

중화 제국주의에서 넘어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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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 제국주의
中国帝国主义 | Chinese Imperialism
파일:18d4ed8b589505ec0.jpg
1. 개요2. 역사3. 관련 사례
3.1. 중국 대륙
3.1.1. 중국화
3.2. 대만
3.2.1. 중화민국의 대만 통치 관련
3.2.1.1. 제국주의이다3.2.1.2. 제국주의는 아니다
3.3. 홍콩3.4. 한반도3.5. 일본3.6. 필리핀3.7. 몽골3.8. 베트남3.9. 미얀마
4. 비판
4.1. 외국에서의 시각4.2. 중국 내부의 비판적 시각
5. 여담6. 같이 보기7. 외부 링크8. 둘러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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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중국이 역사적으로 제국주의적 정책을 펼친 사례들을 서술하며, 그 외의 중국의 패권주의나 비판자들에 의해 제국주의자라고 종종 비판되는 사례들까지 폭넓게 서술할 수 있다.

중국 제국주의는 중화제국주의(中華帝國主義 / Sino-imperialism)라고도 부른다.

2. 역사

중국은 오랜 제국의 역사를 가지고 있는데 이러한 전근대 대제국을 근대적 의미의 제국주의라고 볼 수 있는지 여부는 학계에서도 논쟁의 여지가 있다. 넓은 의미에서 '중국의 영토 팽창주의'(Chinese expansionism)도 중화제국주의에 포함돨 수 있다.

현대 중화제국주의의 기반이 된 중화사상 역시 이런 중화제국의 배경 하에서 형성된 개념이다.

3. 관련 사례

3.1. 중국 대륙

파일:관련 문서 아이콘.svg   관련 문서: 중국 본토
, 오족공화
, 정착민 식민주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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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족 민족주의, 특히 대한족주의로 나타난다.

중화민국 시대에 티베트는 사실상 독립국가였으나 1950년 중국의 티베트 침공으로 완전히 중화인민공화국의 영토가 되었다.

최근에는 신장 재교육 캠프, 즉 신장 위구르 자치구에 강제노동수용소를 세워서 위구르인 카자흐인, 키르기스인을 강제노역시키고 학대하고 있다. 때문에 베이징의 소수민족 거주 지역에 대한 통치행태가 식민주의적이라는 비판을 받기도 한다.

3.1.1. 중국화

파일:관련 문서 아이콘.svg   관련 문서: 중국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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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수민족의 문화가 주류 중국문화( 한족문화)로 동화되는 것을 말한다. 제국주의는 강대한 nation의 영향력을 의미하는 경우가 많기에 중국화 또한 넓은 의미의 중화 제국주의에 포함될 수 있다. 그나마 자연스러운 중국화의 경우 비판의 여지가 덜하지만, 위에서 언급된 티베트 동튀르키스탄에서는 강압적인 중국화가 국가정책으로써 시행되고 있다.

특히 언어 이외에 기타 교과 과목을 전부 표준 중국어로만 교육하는 것이 비판의 소지가 크다. 유사 사례로 1970년대 남아프리카공화국에서 아파르트헤이트를 시행할 당시, 흑인들에게 부족어나 아니면 실용성이 높은 영어 대신 남아공 정부 차원에서 선호하는 아프리칸스어로 교육을 강제했다가 소웨토 항쟁이 일어났던 사례를 참고 가능하다. 한 편 표준 중국어는 심지어 한국어보다도 국제적인 활용성이 낮은 언어인데다 # 그렇다고 소련 시절 러시아어처럼 컴퓨터나 과학기술 관련해서 그렇게까지 사용이 편리한 언어도 아닌데, 심지어 영어 교육까지 축소시키며 #1 #2 일부러 중국어로만 반강제하는 것은 효율성 측면에서도 비판이 나올 수 밖에 없다.

3.2. 대만

토론 합의사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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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론 링크
  • 화독이나 양국론이 국민당보다 민진당에서 더 주장되는 것을 고려했을 때 화독파가 중국국민당, 민주진보당에서 반반씩 섞여있다는 뉘앙스의 서술을 하지 않는다.
  • 라이칭더가 차이잉원보다 대만독립 성향이 강하다는 묘사는 할 수 있으나, 절대로 화독이 아니라고 단정짓는 서술은 하지 않는다.
  • 1945년 이후 중화민국의 대만 통치나 대만 주권 미정론과 관련해 대만 독립 지지자들이 중국 제국주의, 침략이라고 보는 견해에 대해 긍정하는 견해와 부정하는 견해를 모두 적으며 MPOV로 작성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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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일:관련 문서 아이콘.svg   관련 문서: 하나의 중국
, 타이완 독립운동
, 반분열국가법
, 친중공파
,
,

우선 타이완 내에서 서술되는 중국에 대한 반대 여론은 두 가지 여론으로 나눌 수 있다는 점을 먼저 서술할 필요가 있다. 즉 단순히 우리가 통상적으로 이해하는 중국인 중화인민공화국을 의미할 수도 있지만, 더 나아가 현재 타이완 섬을 실효 통치하고 있는 중화민국에 대한 반대일 수도 있다.

그 이유는 오늘날 타이완에 존재하고 있는 정부인 중화민국의 특수한 역사적 상황 때문이다. 중화민국은 당초 타이완 섬을 제외한 중국 대륙을 대표하는 국가로 건국된 반면, 국공내전 이후의 중화민국은 타이완 지역만을 실질적으로 통치하고 있으며 오늘날에는 정부 기관에서도 타이완 지역만을 언급하거나 선언하고 있다. 그럼에도 중화민국은 명목상 중국 대륙 전체를 대표하고 있는 국가임을 자처하고 있다.[1] 이 때문에 2016년 출범한 차이잉원 정부에서는 이 둘을 병기한 중화민국 대만이라는 표현을 쓰기도 했다.

그러렇기에 오늘날 중화민국(이하 타이완)의 자국 정체성에 대한 여론은 확고하게 정의되지 않은 상태다. 민주진보당 지지자가 국민당보고 공비라고 욕하고, 국민당 지지자가 민주진보당보고 한간이라고 욕할 정도니 말이다. 다만 크게 '중화민국'을 어떻게 정의하냐에 따라 범록연맹, 범람연맹, 중간파[2] 등으로 나눌 수 있다. 오늘날 타이완의 집권세력인 민주진보당이 중심이 되는 범록연맹은 자국의 정체성은 오늘날 민주주의를 향유하는 타이완이 중심이 되어야한다고 생각하고 있다. 이들은 중국에 대해서 비판적이며 이는 중화인민공화국은 물론 과거 본토수복을 외치던 국민당 일당독재 시기에 대한 비판도 포함하고 있다.[3] 따라서 이들에게 중화민국의 중국 정체성은 크게 관심이 없거나 오히려 비판적이다.

반면 대륙 시기는 물론이고 국부천대 이후에도 수십년간 타이완에서 집권해온 범람연맹의 중국국민당은 이야기가 다르다. 이들은 대륙 시기 반포한 중화민국 헌법이 타이완의 정체성을 유지하고 있으며, 언젠가는 양안통일을 실시하거나 최소한 중국 대륙과의 교류를 강화해서 외교적, 경제적 불안을 해소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한다.[4] 이들에게 있어 타이완은 그저 정부 소재지이자 중요 지역일뿐, 중화민족에 대한 정체성은 유지하고 있다.

2000년대 후반 천수이볜 정부는 경제적 무능, 부패에 대한 방치, 외교적 고래를 초래하였다. 그 결과 국민당 권위주의를 비판하던 천수이볜을 향해 타이완 국민들이 총통부 앞에서 점거 시위를 벌일 정도가 되었다. 이는 즉 중화민국 국체를 폐기하고 타이완의 완전한 독립을 정체성으로 내세우던 강경 타이완 독립운동의 추락을 의미하는 것이었다. 그 대안으로 성장한 것이 바로 화독이다. 중화민국의 역사적 정체성은 유지하되 오늘날의 정통성은 타이완의 민주주의에서 온다. 이를 두고 영어권 커뮤니티, 유튜브 댓글 등에서는 우마오당, 탱키, 그 외 친중파들이 국공내전과 국부천대 후 '중화민국'이라는 역사적 맥락을 들먹이며, 대만에서 주요 공식 기관이나 국명에 중국/중화가 포함된다며 대만 본인들도 중화의 일부임을 부정하지 않는다며 대만 독립은 사기네 뭐네 하면서 프로파간다를 퍼트리고 있다. 그러나 대만독립을 지지하는 관점에선 애초에 대다수 서민들에게 중국이니 대만이니 하는건 별로 와닿지 않을뿐더러, 양안관계의 파탄은 경제적 혼란과 전쟁을 불러올 가능성이 있기에 기피하는 것에 불과하다. 즉각적인 타이완 독립을 지지하는 여론은 21세기 내내 20% 정도를 차지하는데 적은 숫자는 아니지만 다수라고 하기에도 무리가 있는 수준이이다.

그렇다면 중국 본토에서는 타이완을 어떻게 생각할까? 카이로 회담 이전까지 마오쩌둥 #은 대만독립과 대만공화국 성립을 민족해방혁명이라 규정하며 대만의 독립을 지지했었다. 심지어 마오쩌둥은 1947년 3월8일 옌안(延安)에서도 방송을 통해 ‘우리는 대만 독립을 찬성하고 대만이 스스로 자신들이 요구해온 나라를 건립하는데 찬성한다’고 밝혔다. 애초에 1940년대까지 대륙의 공산주의자들은, 대만을 중국의 일부라고 여겼던 민족주의자들과 달리 대만을 중국과 분리된 별개 지역으로 보았다.[5] 대만공산당도 오늘날에 대독파의 대표적 인물들인 천수이볜, 뤼슈롄 등과는 비교될 안될 정도로 급진적으로 중국/일본과 분리된 대만공화국 수립을 부르짖은 초강경 급진 대독파였는데[6], 정작 그 후신인 대만노동당은 양안통일을 부르짖고 있다.[7] 또한 21세기 와서 대륙 공산당은 민진당을 견제하기 위해 국민당을 밀어주고 국민당도 중공과 교류에 우호적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역사는 무시하고 국공내전 드립치며 하나의 중국을 옹호하는 우마오당들은 답이 없다. 그렇기에 대만민족주의자들 입장에선 중국공산당이 영토적 야욕때문에 통수를 쳤다고 볼 여지가 있다. # 대만 민족주의적 관점에선 중공은 단 1초도 대만을 통치한 적이 없고, 본인들도 과거에 대만은 중국이 아닌 별개 독립된 곳이라고 인정했기에 대만을 자신들의 영토라고 주장할 권리가 없는 셈이다.

라이칭더를 비롯한 대만 민족주의자들은 중국이 대만을 힘으로라도 점유하려고 시도하는 것이 '영토를 온전하게 회복하기 위한' 것이라는 주장도 중국공산당의 프로파간다에 불과하다고 비판한다. 왜냐하면 정작 이들은 러시아 제국주의로 인한 아이훈 조약(1858년)으로 현재 러시아가 점유하고 있는, 소위 '빼앗긴' 영토에 대해서 힘으로는 커녕 협상으로라도 돌려받으려는 시도 자체를 전혀 하지 않기 때문이다. #

3.2.1. 중화민국의 대만 통치 관련

3.2.1.1. 제국주의이다
파일:관련 문서 아이콘.svg   관련 문서: 백색 공포
, 대만 주권 미정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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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28 사건을 묘사한 판화도. 이는 이후 전개될 백색 공포 시대의 상징적인 이미지로 남아 있다.
대만 독립을 지지하는 입장에서, 대만에 사는 사람들은 근본적으로 정체성부터가 중국인이 아닌 대만인이다. 대만이라는 나라는 이민자들에 의해 세워진 이민자들의 나라이고, 이러한 정체성은 동녕국 때 부터 시작되었다는 것이 그들의 논지다.[8] 타이완섬 만주 일본의 지배를 받았을 지언정 중국의 지배는 받아본적이 없다고 한다. 자신들의 정체성을 중국인이 아닌 대만인이라고 정의하는 대만인들은 대만을 사랑하는 것이지 중화민국을 사랑하는 것이 아니다. 따라서 이들은 중화민국을 외세 침략자로 여기며 싫어하기까지 한다. 많은 수의 대만인들은 2.28 사건, 백색 공포 등 중화민국이 대만을 제국주의적으로 침탈했다고 여기고 있다.[A] 현재 민진당 정부가 영어를 공용어로 지정하고, 장제스 동상을 철거하는 것도 이러한 이유 때문이다. 그들의 관점에서 장제스는 대만의 국부가 아닌 대만을 침략한 외국인이라는 것이다.[10] 따라서 이들에게 국공내전은 다른 나라의 이야기일 뿐이다. 급진적인 친대만파에서는 "대만은 중국이 아니고, 중국의 일부가 아니며, 중국과 관련이 없다."라는 주장을 펴고 있다. 그러나 이를 실행에 옳길지에는 많은 우려가 있는지라 독립을 실행에 옳기길 원하는 사람들은 별로 많지 않다.

이러한 대독파들은 대만 주권 미정론을 지지하고 있는데, 이에 따라 대만의 중화민국 점령을 중화제국주의의 사례로 간주하기도 한다. 실제로 대만 주권 미정론 문서에서도 나와있으나 샌프란시스코 강화조약 이전까지 미국과 영국은 (특히 국공내전에서 국민당의 패색이 짙어진 후부터) 중화민국의 대만 통치에 대해, 일본이 공식적으로 대만을 포기한 적이 없기에 중화민국이 대만을 통치하는 것이 법적 타당성이 없다는 견해를 종종 나타내기도 했다. 게다가 이후 중일평화우호조약, 샌프란시스코 강화조약의 전문 중 그 어디에도 대만이 중국의 영토라고 규정하는 내용은 없다. 즉, 일본이 식민지 대만에 대한 영유권을 포기하는 것에 대한 국제 조약만 있을 뿐 그 이후 대만이 어디에 속해야 할 영토인지를 규정해주는 조약은 없다는 의미이다.[11] 1951년 평화 회의에서 대부분의 국가들은 유엔 헌장에 명시된 자결 원칙에 따라 타이완의 지위를 정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 이 자결 원칙은 대만 민족주의자들이 자주 독립을 위해 언급하는 것이다.[12]

한국과는 다르게 대만은 제2차 세계 대전 이후 독립하지 못하였고 중화민국에게 흡수점령 당했다. 한국에서 잘 알려지지 않은 사실이지만 제2차 세계대전의 결과로 일본 제국이 패망하여, 기존 식민지였던 대만지역은 연합국 최고사령관에 의해 총령 1호(General Order No. 1)가 발표되었고, 이에 따라 중화민국 육군이 일시적으로 대만을 점령할 것으로 합의한 것이며 # 무조건 중화민국 영토로 흡수합병하자고 결론난 것이 아니였다. 즉, 당시 중화민국의 대만 통치는 연합국의 일부로써 군사점령을 한 것이지, 영유권 자체가 일본에서 중화민국으로 즉각 이양된 것은 아니며, 미국은 국공내전에서 국민당이 패퇴하기 이전부터 대만이 중화민국으로의 귀속 여부는 향후 중일간의 조약을 채결해 해결해야 한다는 입장이였다. 그러나 국민당 정부가 국공내전에 휘말리면서 결국 국부천대를 통해 중화민국 정부가 대만으로 망명해 왔다. 이것은 1808년 나폴레옹의 포르투갈 침공으로 인하여 포르투갈 왕실 전체가 브라질로 망명 온 것과 비교할 수 있는데, 차이점은 대만과 달리 1822년 브라질은 독립을 선언했다. 즉, 애초에 현 대만의 국체인 중화민국 헌정체제는 대만민중의 의지로 탄생한 국가가 아니다.[13]

비록 대만 민족주의자들의 타이완 경제성장의 기원을 일제 식민통치시기에서 찾는 것은 매우 과장된 부분이 많고 경제성장 관련 부분은 확실히 국민정부의 주요 업적이긴 하다. 그러나 대만인(특히 본성인)들이 자유권을 포함한 정치적 권리 측면에서 본성인들이 느끼기에 충분히 국민정부가 일제 시대보다 더욱 폭압적이게 느껴질 수가 있으며, 실제로도 그런 부분들이 꽤 있다. 가령 대만일치시기에는 대만 의회 설치 청원 운동(臺灣議會設置請願運動)이 벌어졌는데 이에 대한 성과로 일제는 1935년 대만에서 지방 자치를 부여하였고 대만 의회의 절반을 대만인들이 선거로 뽑을 수 있게 되었다. 그러나 국부천대 이후 중화민국의 국민대회는 소위 '만년 국회'라고 불릴 정도로 선거를 치르지 않고 대륙에서 뽑은 인사들로 몇십년간 계속 해먹었고 입법원의 경우도 마찬가지였는데 동원감란시기임시조관으로 선거 자체가 중단되었다. 또한 이러한 백색 공포 기간에는 대만어, 대만 객가인의 토착 문화, 대만 원주민의 언어와 문화 등을 심하게 탄압했는데, 해외에서 아예 '문화적 제노사이드'라고까지 부르기도 한다.[14] 대만인들의 민족문학이라고 볼 수 있는 향토문학(鄉土文學)의 경우도 1937년에 일본이 군국주의/전체주의화 되면서 금지되었지만 그 전까지는 대놓고 독립을 주장하지 않는 한도에서 상당한 발전을 이룩하였다. 그러나 군국주의/전체주의화 된 일제가 패망한 이후 국민정부 또한 1937년 이후의 일본과 다를바 없이 향토문학을 탄압했고 70년대 가서야 향토문학이 부활할 정도였다. 때문에 대만민족주의자들은 백색 공포 시기를 일제 식민시대보다 더 억압적인, 사실상 외성인에 의한 정착민 식민주의에 가깝다고 보고 있다. 게다가 대만 현지 본성인들의 인구 비율을 무시하고, 단지 대륙에서의 인구 비율에 따라 교육,정치,경제 정책을 폈고 소위 높으신 분들도 대륙의 인구 비율에 따라 할당했기 때문에[15] 소수인 외성인들이 절대적인 특권을 누리며 본성인의 정치적 권리를 제한했다는 점 때문에 타이완 내셔널리스트들은 외성인 중심 국민당 독재시기 자체를 아파르트헤이트 당시 백인-흑인 관계와 유사하다고 비판하기도 한다.[A]

대만이 독립하지 못한 이러한 상황은, 한반도 분단과도 유사점이 있다. 원래는 해방된 식민지인 한반도를 미국과 소련이 38선을 경계로 '일시적으로' 몇년 관리하다가 통일 국가를 만들려고 했다. 즉, 2차대전 종결 직후 승전국인 주요 열강들(미국,소련,중화민국)이 주민들의 의사를 존중하지 않은 결정을 한 것이다.
3.2.1.2. 제국주의는 아니다
파일:simple-english-under-the-surrender-of-japan-to-the-allies-us-and-china-circa-1945-unknown-2-surrender-japan-us-china-19-MYWP72.jpg
1945년, 10월 25일. 타이완의 반환식이 이루어진 날.
대규모로 밀집한 군중들이 행사장 밖에서 대기하고 있다.

세계 대다수 국가들의 민족주의 운동이 그러하듯 타이완 민족주의 역시 대다수 민중과는 괴리된 지식인들로부터 시작되었다. 이들이 주도한 타이완 민족주의자들은 20세기 후반부터 타이완 독립을 정당화하기위해서 타이완 독립에 대한 여러 신화를 창조해냈다. 예를 들어 타이완 경제성장의 기원을 일제 식민통치시기의 유산에서 찾고 국민당의 통치 노력을 평가절하하는 등의 노력이 있었다. 당연하지만 당대부터 부정당했고 1980년대부터 중공업중심의 경제변화가 이루어진 이후에는 거의 논의가 이루어지지 않았고 오늘날에 이르어서는 반박 의견조차 나오지 않는 용도폐기된 이론이다.

오히려 대만일치시기 타이완의 지식인들은 중국의 정치적 변화에 끊임없이 관심을 가지면서 타이완의 변화를 이루고자 시도하였다. 예를 들어서 타이완에서도 국민혁명을 수용할 가능성을 검토한다던가 일본의 식민통치에 굴종하지 않을 방법등의 모색이 그것이었다. 그렇기에 타이완 민중들은 언젠가 조국이 자신들이 해방시켜줄 것이라는 믿음을 견지한채 살아갔다.[17]

1945년 일본은 항복하였고, 타이베이에서는 10만명이 넘는 민중들이 결집하여 해방에 대한 기쁨을 표현하였다. 물론 이러한 기대는 얼마 지나지않아 큰 실망으로 변화하였고 이후 수십년간 타이완에서는 백색 테러가 지속되었고 그에 대한 반발로 타이완 독립운동이 본격화되었지만, 그와 별개로 애초부터 타이완은 중국과 별개였다는 이론은 역사적 사실과 거리가 멀다.

무엇보다 타이완 계엄령 시기 국민당 정부의 대만 관념은 "반공대륙의 부흥기지이자 중화민국의 마지막 보루"였지, 본토와 다른 무엇인가가 아니었다. 엄밀히 말해 차별정책이라기보다는 변화된 현실을 받아들이기를 거부하고 형식상의 정통성을 유지하기 위한 태도였다고 보는 것이 타당하다. 그렇기에 중화민국이 본성인을 차별화했다는 지적은 틀린 것은 아니지만 당시 타이완 역사를 지나치게 선과 악으로 단순화시켜 바라볼 위험성이 존재한다.

3.3. 홍콩

파일:관련 문서 아이콘.svg   관련 문서: 홍콩 민주화 운동
, 홍콩특별행정구의 국가안전을 수호하는 법률제도와 집행기제 수립 및 완비에 관한 전국인민대표대회의 결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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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은 홍콩이 영국으로 반환되기 전에 기존의 정치와 경제 체제에 있어 일국양제를 약속했으나, 정작 1997년 홍콩 반환 직후 기존 직선제 선출 입법국을 강제해산하고, 절반을 공산당이 지정해 임명하는 홍콩 입법회를 구성했다.

2019년 홍콩 민주화 운동에 대한 반응으로, 중국 공산당은 홍콩 국가보안법을 제정하여 기존 일국양제 원칙을 훼손하고 홍콩의 민주화 운동가들을 본토스럽게 심하게 탄압하였다. 한국에서도 널리 알려진 민주화운동가인 조슈아 웡도 이 법으로 인해 감옥에 가게 되었다.

이러한 행태로 인해 홍콩 민족주의자들은 중국을 제국주의자, 식민통치를 하고 있다고 비판하기도 한다.

3.4. 한반도

역사적으로 한반도는 중국의 침략에 시달렸다. 그러나 전근대 중화 제국의 팽창주의와 오늘날 중국 제국주의, 중국의 혐한 감정은 이유가 다르다. 전근대 당시 중국이 한국을 침략한 경우는 대개 지정학적/안보적 이유였다면, 오늘날 중국 제국주의가 한국을 타깃으로 하는 이유는 이데올로기적 이유 즉 일당 독재/내부 결속 강화를 위한 것이기 때문이다.

좀 더 자세히 설명하자면 중화 왕조들와 북아시아의 유목 제국 사이의 힘의 균형은 어느 쪽이 한반도와 동튀르키스탄 일대에 영향력을 행사하는가에 따라 좌우되는 경우가 많았다. 유목제국들이 한반도 일대에서 인구와 식량을 조달받게 되면 중화 왕조들과의 전쟁에서 우위를 점하게 되었고, 반대로 중화 제국들 입장에서는 북방 유목민족과 전쟁에서 우위를 점하기 위해서는 한국계 국가들과의 우호 관계 혹은 주종 관계가 필수였다.

고조선 한나라에 의해 멸망했는데, 이는 흉노와 한나라 사이의 전쟁 과정에서 흉노에 결정적인 우위를 점하기 위한 선제 공격 차원이었다.[18] 고구려는 한나라, 신나라, 수나라, 당나라까지 중국의 여러 왕조들과 수차례 전쟁을 치러왔다. 오늘날 중국에서 고의로 간과하는 사실이지만 고수전쟁, 고당전쟁은 중화를 통일하기 위한 전쟁이 아니라 돌궐 제국을 비롯한 북방 유목민과의 전쟁에서 우위를 차지하고, 통제력을 확실하게 하기 위한 전쟁이었다. 고구려와 돌궐 사이의 동맹 관계는 백제와 일본과의 동맹으로 이어졌고, 당나라의 팽창 과정에서 돌궐과 백제, 고구려가 모두 공격 대상이 되었다. 고구려의 백제의 멸망 이후 당나라는 신라에게까지 야욕을 펼쳐 나당전쟁이 일어났다.

반대로 유목민들이 중국을 침공하는 과정에서 한국계 국가들을 침략했던 이유 역시 지정학적 이유였다. 고대사에서 모용선비 부여를 침공하여 노예 수만여 명을 잡아간 이후 세력이 강대해져 성공적으로 북중국에 안착한 사례, 거란족이 발해를 정복하고 요나라를 건국하나, 이후 고려의 여요전쟁에서 실패하고 북송 정벌에 실패한 사례, 몽골과의 여몽전쟁 이후 몽골족들이 중국을 통일한 경우, 병자호란 이후 만주족이 중국을 통일한 사례를 보듯 한반도는 북방 유목 제국과 중원 사이의 세력 균형에 지정학적으로 매우 중요한 지정학적 입지를 지니고 있다.

반면 오늘날 중국 제국주의의 혐한 감정은 단순한 지정학적/안보 이유라고 단정짓기 애매하다. 6.25 전쟁 중국의 개입으로 인한 남북분단은 오늘날까지도 이어지고 있고, 냉전과 신냉전 시대가 되면서, 중국의 한국관도 꾸준히 변화하고 있기 때문이다.. 오늘날 중국의 혐한 감정과 한국을 향한 노골적인 제국주의는 중화주의/시진핑주의/독재정권 강화를 위한 반권위적인 한국 문화의 차단 시도 등이 복합적으로 엮어있다. 중국의 한국 문화 예속화 시도는 후술한 시진핑의 망언에서 보듯, 중국 국가 사업 차원에서 벌어지는 일이기 때문에 단순한 문화 강탈이나 표절 등으로 치부하기에는 규모가 너무 거대하다. 바이두 백과, 중국어 위키백과 등에서 한민족 전체를 조선족이라 우긴다던지, 무조건 중국인이라고 우기면서 자국 역사이자 문화라고 편입을 시도하는 경우가 빈번해졌다. 이에 대해 문화 제국주의(cultural imperialism)라고 표현한 사례가 있다. # 이 외에도 중국인들이 한국을 비하할 때 전형적으로 들먹이는 말은 "고작 5천만명밖에 안 되는 한국인들이 어떻게 14억 중국인을 제대로 이해한다고 함부로 비판하는가?" 혹은 "한국은 미국의 속국" 같은 레퍼토리가 있다. 한국을 미얀마 군부 정권처럼 중국의 위성국화 하려는 중국 제국주의가 중국인 일반에 얼마나 뿌리깊게 박혀있는지를 짐작할 수 있다.
He then went into the history of China and Korea. Not North Korea, Korea. And you know, you’re talking about thousands of years …and many wars. And Korea actually used to be a part of China.

이후 시진핑 주석은 한국과 중국의 역사에 대한 이야기를 했습니다. 북한이 아닌 한국에 대해서 말이죠. 아시다시피 수천 년 동안의 (역사와) ... 전란에 대해서 우린 이야기했습니다. 한국은 사실상 중국의 일부였다는 것도요.
WSJ의 트럼프 대통령 인터뷰

중국에서는 "고대 한반도는 항상 중국의 속국 내지 식민지였다"라는 왜곡된 역사관이 강요되고 있다. 더 나아가 중국은 고구려 발해 조차 중국의 지방정권이라는 역사왜곡인 동북공정을 시행하는 상황이다. 물론 중국에서만 그렇게 조작하는 것일 뿐, 국제적으로 인정받지 못하는 근거가 빈약한 주장들이다.
만주와 경계를 맞대고 있지만 황해를 사이에 두고 중국과 좀 더 안전하게 떨어져 있는 한국은 우리 주제에 걸맞은 고전적 사례다. 원시시대 한반도에서는 기원후 제1천년기에 세 개의 독립된 왕국이 등장했다. 중국의 침략을 이겨낸 그들은 한자(15세기에는 고유의 문자를 창안했다.), 불교, 유교를 비롯한 중국 문화의 많은 특징들을 흡수했다. 7세기에 신라가 이 땅을 통일하면서 신라어가 표준어가 된 것으로 보인다. 936년에 고려가 신라를 대체했고, 이 때부터 근대까지 한국은 중국, 몽골, 일본의 침략과 지배를 겪으면서도 대체로 통일과 독립을 꾸준히 유지해왔다. 한국의 문화와 정체성과 국체는 1천년이 넘게 일치된 상태로 이어져왔다. 여기에서 의문은, 외견상 엘리트 지배와 계급 분열로 규정되는 전근대 국가사회에서, 집단정체성이 정치적으로 중요하지 않았다면 어째서 이런 일치가 이토록 오랫동안, 강대한 이웃나라들을 이겨내고 끈질기게 지속되었는가 하는 점이다. ... "정체성을 공유한다는 인식을 지닌 동질적 집합성이 서유럽의 여러 나라에서 일어난 것보다 훨씬 이른 시기에 국가의 조직적 활동에 의해 창출되었을 수도 있다."[19] ... 근대주의 이론가/역사학자인 에릭 홉스봄도 지적했듯이 중국과 한국, 일본은 "민족적으로 거의 또는 완전히 동질적인 주민으로 구성된 극히 희귀한 사례다."[20][21]
민족 / 아자 가트, 알렉산더 야콥슨 저

중국인들은 중국사에 포함된다는 근거로 과거 맺어진 조공책봉관계를 주로 거론하는데, 이런 주장을 중국 측 논지 그대로 적용하면 일본인들은 네덜란드 상인들을 두고 자신들의 속국이라 조공을 받는다고 주장했으니, 인도네시아와 네덜란드가 전근대부터 일본의 식민지였다는 궤변도 성립한다.

심지어 같은 공산주의 우방국인 북한의 지도자인 김정은 조차 중국이 한반도를 티베트나 신장처럼 다루려고 한다고 보았다. # 의외일지 모르겠지만 마오쩌둥 김일성과 만났을 때 요동은 원래 조선민족(한민족)의 영토인데 중국의 봉건주의가 침략해 중국이 가져갔다고 종종 인정하며 심지어 김일성에게 당신들 역사에서 이걸 써 넣어야 한다고까지 말했다. #

3.5. 일본

센카쿠 열도 중국 어선 충돌 사건 당시 국제무역 관행을 대놓고 무시하면서까지 일본에 경제재제를 가해 위협한 사건이 있었는데 일본 내 보수주의자들은 이것을 "중화제국주의"라고 비난하였다. 영어 위키백과 뿐 아니라 중국어 위키백과에서도 문서 최상단에 일본 보수 시위대의 이미지와 함께 이를 언급할 정도.

3.6. 필리핀

필리핀 공산당(Communist Party of the Philippines, CCP)은 마오주의 정당임에도 불구하고 현 중국과 중국공산당에 대해 강경한 입장을 보이고 있는데, 이는 현 중국이 중화제국주의(Chinese imperialism)로 주변국들을 위협하고 강압적인 경제,군사적 수단으로 필리핀의 주권을 침해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에 따라 필리핀 공산당은 중국을 자본주의와 제국주의의 권력으로 규정하였다. # 실제로 중국은 필리핀 인근 해역에 인공 섬을 구축하고 간척사업을 벌이고 있는데, 중국은 남중국해 해역의 90%가 자신들의 해역이라고 주장한다. 또한 필리핀 국가민주전선도 중국을 제국주의 패권세력으로 규정하고 이에 저항하겠다고 밝혔다.

3.7. 몽골

몽골민족의 조국(homeland)인 내몽골 몽골이 아닌 중국의 영토라는 점이 몽골 민족주의자들에게 제국주의적 영토강탈이라고 비판받기도 한다.

오늘날 중국에는 "내몽골은 중국의 일부이므로 내몽골의 역사는 중화민족 즉 중국의 역사이고 따라서 외몽골의 역사 역시 중국의 역사"라는 인식 역시 나타나게 되었다. 이는 중국의 한국 문화 예속화 시도에서 분청 우마오당들이 주장하는 논리 즉 조선족 문화는 중국 문화이므로 한국 문화는 중국 문화라는 논리와도 유사하다. 이러한 배경 하에서, 오늘날 중국에서는 몽골어와 몽골 전통 문화에 대한 말살 조치가 취해짐과 동시에 "시진핑이 칭기스 칸과 맞먹는 중화영웅"이라는 이중사고가 강요되는 것이다.

국내 학계와 언론에서는 중국 관제 차원에서 이루어지는 동북공정에 대응하는 과정에서, 외몽골을 겨냥한 중국의 역사 왜곡은 막북공정,[22] 외몽골과 내몽골 전반을 아우르는 역사왜곡은 북방공정으로 지칭하고 있다.

3.8. 베트남

베트남은 세계 최고의 반중 국가중 하나이다. 베트남의 역사는 중국으로부터 살아남기 그 자체였다. 최근에는 남중국해 분쟁에서 중국이 베트남 앞마당 바다까지 자기들의 영해라고 주장하는 행태로 인해 베트남의 혐중 감정이 증폭되고 있다.

3.9. 미얀마

파일:관련 문서 아이콘.svg   관련 문서: 2021년 미얀마 쿠데타
, 민 아웅 흘라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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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 비판

중국이 제1등국의 지위가 되었을 때 어떻게 하면 좋을까? 옛날부터 중국에는 '약한 자를 구하고 위태로운 자를 돕는다'라는 말이 있다. 중국에 이와 같은 좋은 정책이 있었기에 수천 년 간 강대했을 때에도 안남, 버마, 조선, 시암 등의 소국이 독립을 유지할 수 있었던 것이다. 그러나 유럽의 바람이 동으로 불어오자 안남은 프랑스에 멸망당했고, 버마는 영국에 멸망당했으며, 조선은 일본에 멸망당하고 말았다. 따라서 중국이 만일 강대해진다면, 우리는 민족의 지위를 되찾을 뿐만이 아니라 세계에 대해 일대 책임을 질 필요가 있다. 만일 중국이 이 책임을 지지 않는다면, 세계에 있어서는 별 이익이 없으며 오히려 큰 해가 되는 것이다. 그렇다면 중국은 세계에 대해 어떠한 책임을 져야 하는가?

지금 세계의 열강이 추구하는 것은 다른 나라를 멸망시키는 것이다. 만일 중국이 강해져서 열강과 마찬가지로 다른 나라를 멸망시키고, 열강의 제국주의를 흉내내어 같은 길을 걷는다면, 그들의 자취를 그대로 밟는 것이 된다. 그러므로 우리는 먼저 하나의 정책, 즉 '약한 자를 구하고 위태로운 자를 돕는다'는 정책을 결정할 필요가 있다. 그럼으로써 우리 민족의 사명을 다할 수 있는 것이다. 우리는 약소 민족을 돕고 열강에는 저항해야 한다. 전 인민이 이 뜻을 단단히 정하지 않는 한 중국 민족에게는 희망이 없다. 우리는 아직 발전하지 않은 상태이므로 '약한 자를 구하고 위태로운 자를 돕는다'는 뜻을 단단히 정해두어야 한다. 그리하여 장차 강대해졌을 때 오늘날 몸으로 느끼고 있는 열강의 정치·경제적 압박에 의한 고통을 되새겨, 장래 약소 민족이 만일 이와 같은 고통을 받는다면 우리는 그러한 제국주의를 소멸시켜 버려야만 한다. 그것이 바로 '치국, 평천하'인 것이다.

우리가 장차 '치국평천하'를 실현하기 위해서는 먼저 민족주의와 민족의 지위를 되찾을 필요가 있다. 그리하여 고유의 도덕과 평화를 기반으로 하여 세계를 통일하고, 하나의 '대동의 치'를 만들지 않으면 안 된다. 이것이야말로 우리들 4억 인의 큰 책임이다. 여러분은 모두 4억 인민의 한 분자이다. 모두들 이 책임을 져야 한다. 이것이야말로 우리 민족주의의 참된 정신인 것이다.
쑨원, 1924년 3월 24일 연설
현대 중국의 패권주의는 쑨원, 더 나아가 전근대의 중화사상에 기반한 역대 중국 왕조의 그것과 비교해도 크게 변질된 형태라고 볼 수 있다. 사실상 21세기 나치 독일, 일본 제국이라고 봐도 전혀 이상하지 않을 정도이다. 사실 쑨원 생전에도 이를 왜곡, 변형해서 중국 군벌들이 각 지방의 소수민족을 박해한 전적이 있었고 쑨원 사후에 더 심해졌다. 현대 중국의 외교정책은 역대 중화제국보다 오히려 고대 중국의 상나라나 고대 중동의 아시리아 제국, 대항해 시대 이전 아메리카 대륙의 아즈텍 제국 및 잉카제국, 근대의 나치 독일, 일본 제국에 더 가깝다. 그래서 중국을 싫어하는 입장에서는 중국의 패권주의적인 태도를 중화제국주의로 칭하며 비판하기도 한다. 실제로도 시진핑 시대의 '차이나 모델'은 일본 제국의 추태와 흡사하다는 평가가 있다. #

파일:external/i.huffpost.com/o-KBS-570.jpg [23][24]
소국이라 하기에는 땅이 너무 넓고, 대국이라 하기에는 사람들 속이 좁으니, 중국이라 부른다더라.
― 네이버 뉴스 베스트 댓글

대인이라면 군자의 면모를 보이고 을 베풀어야 함에도 오히려 소인배적인 행보만 보여주고 있으니 따를 리가 없다. 전근대 중국은 천자국을 자처하는 입장에서 황제국으로서의 체면을 상당히 신경썼다. 그래서 과거 강대국에게 충성 및 우호의 의미를 지닌 조공도 황제국의 체면을 지키기 위해 제후국이 바친 조공보다 더 가치가 높거나 많은 하사품을 내렸다. 자국 백성들이 주변국에 민폐를 끼치면 오히려 가중처벌을 했다. 이는 중화사상의 영향도 있었지만 유교의 종주국이라는 특성상 덕치를 근본으로 삼았고 항상 주변국들에게 모범을 보여야 했기 때문이다.[25] 특히, 그 상대가 조선 같은 제후국인 경우에는 오히려 국가가 자국 백성에 대한 보호를 포기했고, 자체적으로 처벌하고 나중에 보고를 올리라는 식으로 처리했다. 심지어 청나라도 역모, 밀수 등을 제외한 일은 조선에서 처리하도록 조치했다. 그만큼 중화제국들은 주변국과의 관계를 중시하여 모범을 보일 수 있게 노력했다. 그런 만큼 조선에서는 명 초기 때까지 남아있던 순장 풍습이나 공녀 요구에 대한 비판을 해도 중국에 대한 근본적인 불만을 가지지 않았다.[26] 그래서 당시 조선에서는 명이 국운이 기운 걸 알면서도 차마 명나라를 내치자는 주장이 삼전도의 굴욕 전까지는 거론되지도 않았었다.[27]

그러나 현대 중국에서는 마오쩌둥의 한 마디에 민족주의의 과격화를 막던 인문학과 유교가 대대적으로 파괴되었다. 그러한 사상적 아노미 상태에서 시간이 흐르자 민족주의를 바탕으로 하는 자문화 우월주의와 타국을 향한 갑질과 천시밖에 남지 않게 되었다. 오늘날에는 영토 확장이 거의 불가능하여 영향력 확장 정도만 가능하고, 또 그런 것은 방향을 가리지 않는다. 그래서 오늘날의 중화사상은 패권주의와 다름없는 형태가 되었다. 현재 남중국해 등지에서 이뤄지는 분쟁이나 한반도에 대한 압박은 겉으로 보면 자원을 놓고 벌이는 충돌이지만, 실제로는 이들 나라를 장기적으로 자국의 영향력 하에 두어 제국 주변의 안전지대를 확보하고, 팽창이 목적이라면 이들 지역을 기반으로 더욱 뻗어 나아가고자 하는데 그 목적이 있는 것이다. 도련선 전략도 그 일환중 하나이다.[28]

중화사상 미국의 패권주의와 비교되는 이유는 기브 앤 테이크 및 원칙주의의 특징이 강한 미국의 패권주의와 달리 중국은 상전처럼 위에서 군림한 채로 일방적으로 다른 나라를 찍어내리고 착취하려 들며 자신들 입맛대로 하려는 외교방식을 고수하고 있기 때문이다. 미국도 국익을 위해서는 강경하게 나올 때도 많다. 그러나 민주주의 자유주의를 표방하는 만큼 상대방을 일방적으로 찍어 내리지는 않는다. 여러 제제나 무력시위를 하는 등 강경책과, 경제적 이익을 제공하거나 원조를 해주는 등 온건책을 당근과 채찍처럼 병행해서 쓴다. 그리고 자유민주주의를 받아 들이고, 서방 세력에 합류한다면 그에 대한 대가를 확실히 지급한다. 무력 시위나 개입은 최후의 수단에 가깝다.

반면 중국은 대국이자 상국인 자신의 나라를 중심으로 옛날 제후국이였던 국가가 중화 세계에 편입하는 것을 지극히 당연한 것으로 여긴다. 옛 중화제국의 세력권으로 여겨지는 나라들에 대해서는 외교적으로 고압적이고 일방적이다. 이 점이 미국의 패권주의와 비교되는 중화사상의 특징이다. 사실 미국 역시 자국의 세력권인 중남미, 중동 등지에서는 지극히 고압적이고 일방적인 패권을 휘두르고 있다. 이 때문에 동아시아 지역과 동남아시아 지역에서 반중감정이 강한 것처럼 중남미 지역에서는 반미감정이 강하다.[29]

하지만 중국은 미국이 중남미 일대에서 내세우는 패권주의적 행태를 훨씬 능가하는 막무가내식의 고압적인 태도를 내세우며, 각종 이권만 가져가고 과한 책임을 부여하려하는 얌체적인 모습을 보여는 것이 문제이다. 그래서 중남미나 중동 일부 국가[30], 아프리카 등 중국과 우호적인 관계였던 국가들도 중국과 거리를 두려는 모습을 보이고 있다. 특히 아프리카에서는 반중 감정이 전통적으로 중국과 교류했던 동아시아, 동남아시아 국가들보다 더욱 심하다.

미국의 경우 2차 세계 대전 이후 세계를 주도해오면서 수많은 전쟁을 치렀고 그 과정에서 단순히 강력한 국력과 군사력만이 능사가 아니라는 것을 뼈저리게 느꼈다. 이 때문에 고립정책을 추구하던 도널드 트럼프 시절조차 기존과는 다른 정책으로 마찰은 있었을지언정 외교적으로 친미국가는 대우를 해 주었다. 즉, 갑질은 할지언정 최소한 갑질에 대한 대가는 줬고, 이 때문에 주변국들 입장에서도 자국민을 상대로 내밀 명분을 가질 수 있다. 그러나 중국의 경우는 주변국들의 자주국방과 경제를 무시한 채 무조건 중국을 따르라고 일방적으로 압박하는 데다가 그 태도나 형식도 미국과는 비교도 할 수 없을 정도로 고압적이며, 주변국 입장에서 자국민들을 설득하는데 필요한 명분을 제공하지도 않는다. 이 때문에 미국의 견제책이 되어줄 국가로 생각했던 중남미 국가나 허울만 좋아보이는 중국의 식민지 정책인 일대일로를 통해 경제를 상승시킬수 있다고 기대했던 아프리카 등 초기에 친중이던 지역들 조차 얼마 되지 않아 전부 반중으로 뒤돌아섰다. 실제로 자국 발전에 기여할 수 있다고 생각해 일대일로에 참여했던 아프리카 국가들 상당수가 중국에 진 채무로 인해 국가재정이 파탄이 나고, 빚을 변제하기 위해 각종 이권을 넘기는 등 중국에 경제적으로 예속되자 독재 정권이 아닌 국가들은 대부분 친서방으로 돌아서고 있다.

베트남 전쟁을 예로 들자면, 이 전쟁은 미국의 패권주의를 비판하는 예시로 정말 자주 등장하는 전쟁이면서도 아이러니하게도 미국이 중국보다는 낫다는 점을 보여주는 전쟁이기도 하다. 미군이 베트남에서 철수한 직접적인 원인은 명분 없는 침략전쟁을 반대하는 시민들의 대규모 반전 시위이다. 이건 독재국가 중국에서는 꿈도 못꾸는 일이다. 즉 미국은 정부의 침략 전쟁을 시민들이 나서서 억제하는 것이 가능한 문민통제 민주국가인데 비해, 중국은 정부나 독재자의 행보에 시민들이 제동을 걸려고 하면 철권으로 다스리는 독재국가라는 점이 가장 큰 차이다.

이로 인해 중국은 동아시아 패권을 넘볼만한 국력을 지녔음에도 미국과 달리 동북아시아와 동남아시아에 진정한 동맹국이 없는 상황이다. 근처의 우호국이라면 공공의 적인 미국을 견제하려는 불편한 동맹국 러시아[31], 중국에게 의존해도 어디로 튈 지 모르는 북한, 그나마 핵이라도 갖고 있는 파키스탄 정도가 있고 그 외에는 미얀마, 라오스, 캄보디아 같은 동남아 최빈국 정도 뿐이다. 친중 성향이 있었던 말레이시아 스리랑카 같은 곳도 2020년대 들어 일대일로 등의 악영향으로 옛날만 못한 상황이다.[32] 제아무리 초강대국이라고 하더라도 지역강국들의 협력 없이는 세계 패권을 쥘 수 없다. 즉, 근현대의 중화사상은 전통적인 중화사상과 결이 다른 초국가주의, 패권주의, 제국주의, 징고이즘에 가깝다고 볼 수 있다. 게다가 시진핑의 장기집권 이후 이 현상은 더욱 심화되고 있다. 앞으로도 계속 이렇게 지속된다면 중화사상도 '중화 파시즘'으로 변질될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고, 향후 나치 독일이나 일본 제국 전철을 밟는 시나리오마저 허황된 얘기가 아니다.[33]

사실 이미 중국의 군국주의화는 가시화될 정도로 진행되고 있다. 해마다 군사 퍼레이드의 규모가 점점 화려해지고 커지고 있으며, 예전의 도광양회 전략 역시 미국과 같은 초강대국을 상대할 때 빼고는 완전히 사라졌다.[34] 또한, 중국의 국민들 역시 이전에 비해서 훨씬 자국우월주의 성향이 강해졌다. 칭기즈 칸 같은 타민족의 영웅을 중화민족 영웅으로 삼거나 고구려 같은 찬란한 역사를 가진 주변국의 역사를 자국의 문명이라 주장하는 역사 왜곡을 하고 있다.[35] 신화나 고대 사료 특유의 과장된 비유를 역사적 사실이라고 우기는 등 점점 폐쇄적이고 극단적으로 변해가고 있다.

4.1. 외국에서의 시각

개혁개방 이후 중국의 경제력이 점차 부상하며 시진핑 집권 이후 심화된 중국인들의 국뽕은 타국에서 중국인들 이미지 망치는 큰 문제점으로 작용하고 있다.

당장 옆나라 일본만 가도 이놈의 중화사상 때문에 중국인 혐오가 생긴 일본인이 한둘이 아니다. 특히, 미국이나 캐나다같은 이민자가 많은 국가에서도 일부 중국인 때문에 이미지가 썩 좋지 않다. 덩달아 같은 아시아인인 한국인들까지 엿 먹이고 있다. 특히 같은 동아시아 국가 사람들은 더더욱 심하다. 길가다 물어볼 게 있어서 동아시아인 아무나 붙잡고 물어볼 때 중국어로 물어 본다던가,[36] 새치기 역시 번번히 일어난다. 물론 단순히 무개념 중국인으로 볼 수도 있지만, 언어의 경우 중국이라는 나라가 인구도 많고, 북미국가는 중국인이 많을테니 동아시아인은 무조건 중국인이라는 잘못된 시각[37]에서 고집하는 경우도 있다. 온라인 게임에서도 이러한 문제는 심각한데, 영어로 말하라고 해도 끝까지 한어 병음으로만 채팅을 치면서 타국 유저들의 게임 진행에 어려움을 주는 중국 유저들 때문에 게임상에서도 중국인들을 기피하는 풍조가 생기고 있으며, 불법 프로그램으로 타국 유저들을 괴롭히는 악질적인 중국인 핵 유저들 때문에 올바른 방법으로만 게임을 즐기는 정상적인 중국인 게이머들까지 피해를 받고 있다. 이러한 잘못된 중화사상을 간직한 중국인들 때문에 엄한 중국인들까지 피해를 보는 것.

정치제도는 일당독재이긴 하되 과두정으로 그나마 권력의 견제가 이뤄지던 것을 시진핑이 사실상 일인독재로 후퇴시켜 버렸으며, 그 전에 애초부터 민주주의가 정착된 주변국들은 중국의 정치체제를 배울 생각 따윈 전혀 없다. 이미 청나라 시절부터 남발된 문자의 옥으로 후퇴하고 있던 상황에서 문화대혁명까지 일어나고 지속적으로 탄압을 해 온 결과, 유교 문화의 헤게모니는 이미 한국 대만에게 넘어갔고,[38] 예술도 문화대혁명의 광기가 휩쓴 뒤에도 지속적으로 검열을 해대니 문화·예술이 심각하게 지체되어 대중문화는 일본 문화와 후발 주자인 한류가 중국 대륙을 휩쓸고 있는 처지이다. 그나마 다 지난 과거 일이라 검열에서 비교적 자유롭고 예산을 많이 부을 수 있는 사극 정도만이 주변국에 먹히는 수준.[39]

2016년 미국 대통령 선거에서 트럼프가 당선되면서 적극적으로 중국을 견제하며[40] 경제적으로 압박을 가하고 푸틴과는 친밀한 관계를 유지하는 등 반중 친러 행보를 나아감에 따라 중국이랑 대립이 치열해지고 있다. 이는 지극히 당연한 조치로, 미국은 결코 동아시아에서의 패권을 내려놓을 생각이 없고 내려놓을 수도 없다. 민주당이 트럼프의 정책에 사사건건 딴지를 걸고 있지만 중국 견제에는 동참할 정도다. 동아시아는 현재 미중러 3국의 패권싸움이 가장 치열한 곳인데, 이곳에서 만일 미국이 패권을 내려놓게 된다면 동아시아 뿐만이 아니라 유럽의 나토와 중동질서가 상당히 어지러워진다. 더욱이 미국은 두 차례의 세계대전으로 인해 패권을 반 강제적으로 내려놓게 된 영국의 위상이 세계 무대에서 어떻게 되었는지를 눈뜨고 똑똑히 보았다. 미국은 세계대전처럼 본토가 철저히 박살나는 정도의 상황이 아니라면 결코 동아시아(최소 일본)에서의 패권을 포기할 수가 없다.[41][42] 동아시아 패권의 포기는 연쇄작용을 일으켜, 유럽과 중동, 나아가 전 세계에서의 패권에 심각하게 안 좋은 영향을 끼치게 되기 때문이다.

한편 중국 공산당의 교육과정은 지나치게 애국심을 강조하는데, 여기에 중화사상까지 곁들여지니 필연적으로 중국 국민들의 과격화가 이루어지게 된다. 결국 중국 공산당은 자기들이 이 꼴을 만들어 놓고 뒤늦게서야 국민들에게 자제를 부탁하는 블랙 코미디스러운 상황이 연출되기도 한다.[43] 이는 중국 정부로서도 어쩔 수가 없었던 것이 덩샤오핑의 개혁 개방을 계기로 중국도 서방 세계를 본격적으로 받아들이게 되면서, 중국의 젊은층이 자유주의와 민주주의에 대해서 눈으로 보게 되었고 체제에 불만을 가졌기 때문이다. 과거 냉전 시대처럼 단순히 사회주의만으로는 인민 통치가 불가능해졌기 때문에, 사회주의에 중화사상을 바탕으로 하는 민족주의를 더하게 된 것이다. 이러다보니, 최근 중국 젊은이들 중 일부 극우층에서는 ' 중국은 평화롭게 지냈으나 과거 제국주의 시대에 서구 열강과 일본에게 무수한 침략과 약탈을 당했다.'는 자학사관이 깃들게 되었으며, 그 결과 ' 그러니 이제 강대국이 된 중국이 되갚아줄 차례다.'라는 이상한 방식의 결론을 도출하는 사람들이 늘어나게 되었다. 최근 쯔위 사태 역시 중국 정부 차원에서는 조용히 처리하려 했으나, 이런 국수주의 사상에 물든 젊은이들이 떠벌리고 다니는 바람에 세계의 주목을 받게 되었으며, 이로 인해 대만의 항의로 양안문제가 크게 대두되었고, 중국 정부의 입장이 상당히 난처로워졌다. 그리고, 무엇보다 양안문제와 남중국해 문제, 미중무역전쟁으로 인해 동아시아 내에서 미국과의 패권 싸움이 불리하게 돌아가기 시작했다.

4.2. 중국 내부의 비판적 시각

쉬샤오둥, 천추스, 하오하이둥처럼 비판적 시각도 많다. 자신들의 자랑스런 나라가 현실에서 죽을 쑬수록 이 현상이 최근의 경제위기 때문에 자연스레 고쳐질 확률이 높다. 쉬샤오둥은 이 사태를 어이없어 했는데 왜 태권도를 우리나라(중국) 것이라고 하냐고 화낼 정도.

코로나바이러스감염증-19라는 재앙으로 인해 상하이 봉쇄와 같은 사건이 벌어지고 2022년 중국 제로 코로나 반대 시위 같은 일도 터지면서 빠른 교정에 들어가고 있다. '어차피 죽을 거 목소리라도 내고 죽자'는 분위기가 생기고 있다. 실제로 코로나 발생 이후 진실을 요구하는 대륙인들과 고발의 목소리가 VPN을 타고 외부로 나오고 있다. 아예 TIME지에도 "CHINA'S TEST"(시험받는 중국)이라고 나올 정도. 당연히 검열을 통해 차단과 탄압을 하고 있지만 빠져나가는 법에 도가 튼 중국 네티즌들은 계속 한 수 앞을 지나가며 중국 당국을 엿먹이고 있다. 검열을 피하기 위해 갑골문을 쓰는 사례가 있을 정도.

2020년대에 들어서면서 갑자기 파도처럼 밀려나오는 중국 정부의 국수주의적 정책 및 주변국을 향한 문화 참탈, 자국의 문화 규제 역시 최근 들어 급격하게 강해지는 자국민의 중국 정부를 향한 강한 불신감으로 인하여 나오는 것이라는 의견도 있다. 즉, 강한 문화 왜곡과 규제, 배외주의 등으로 아예 중국인들의 눈과 귀를 막고 세뇌를 시켜서 반발을 잠재우려고 한다는 것. 중국 내 포털 사이트 댓글창이나 중국 내부 커뮤니티를 보는 사람들은 대충 알겠지만, 중국 경찰이 24시간 감시하는 곳임에도 중국 정부를 욕하는 글들이 상당히 많이 올라오며 그 비중이 크게 늘었다. 다들 알다시피 중국은 사상통제를 심각하게 하는 나라임에도 이런 일이 빈번하게 발생한다는 것은 그만큼 중국인들의 인내심이 한계에 치달았다는 것을 뜻하기도 한다.

5. 여담

6. 같이 보기

7. 외부 링크

8. 둘러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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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단적인 예로 타이완 타오위안 국제공항에서 출,입국 심사를 받을 때 중화민국 국적자가 아닌 사람들을 통칭하는 표현은 "중국 대륙, 홍콩 및 마카오, 외국인"이다. 당연히 중화인민공화국을 중국으로 인정하지 않겠다는 뜻이다. [2] 중간파는 보통 현상유지를 주장하는데, 현상유지의 맥락이 조금 다르다. 범람쪽은 아예 92공식 자체의 폐기와 2개의 중국을 주장하는 중화민국 독립(화독)보다는 양안통일을 기반으로 하되 본토가 민주화되지 않았으므로 일단 현상유지를 하자 쪽이 주류에 가깝다. 범록의 주류인 민진당 쪽에서는 대만민족주의+화독 성향이 주류에 가깝다. [3] 타이완 현대 정치사에 무지한 사람들은 범록연맹=대만 독립이라는 오류를 범한다. 하지만 당초 민주진보당은 환경, 성소수자, 개발 난민 등의 진보적 어젠다가 총집결된 좌익 빅 텐트에 가까웠고 지금도 이러한 성향은 크게 변하지 않았다. 오히려 강경 대만독립론자들이 1990년대 중반부터 2000년대 후반까지 지속적으로 이탈해갔다. [4] 범록연맹에서 이걸 보고 국민당이 중국에게 항복하니, 나라 팔아먹니 주장하는 색깔론을 피기도 한다. [5] 애초에 공산주의 자체가 대국주의적인 내셔널리즘에 반대하는 반제국주의, 반민족주의 사상이다. 레닌이 러시아 내셔널리즘에 반대하면서도 약소국/약소민족 내셔널리즘만큼은 민족해방(National liberation) 운운하며 지지했던 것이다. [6] 이는 공산주의 이론 중 일부인 반제국주의, 레닌 민족자결주의 개념에서 비롯된 것이다. 대만은 중국이나 일본같은 제국이 아닌 대만민족에 의해 통치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7] 사실 (21세기 기준)공산주의 계열 중에서도 대만 독립을 지지하는 세력이 있다. 다만 이들은 일제 시대 대만공산당이나 현 노동당류의 마르크스-레닌주의(스탈린주의와 이후 현실사회주의)와 사이가 드럽게 안좋은 국제 사회주의 전진 같은 트로츠키주의 계열이라는 점이다. [8] 정성공이 대만을 접수하기 전까지 대만은 중국 역사에서 거의 거론된 적이 없으며 원주민 위주의 독립국가 혹은 최소한 중국의 일부는 아니었다. 이를 근거로 대만 민족주의자들은 중국이 역사를 근거로 대만이 자기네 땅이라고 주장하는 것은 부당하다고 주장한다. 동녕국부터 이어져온 대만인의 정체성은 이민자들의 나라라는 것이 그들의 입장이다. [A] 실제로 영어 위키백과의 '백색 공포' 문서는 아예 중국 제국주의(Chinese imperialism)로 분류(Category)하고 있으며 # '중국 제국주의' 문서의 정치적 제국주의(Political imperialism) 항목에서도 아파르트헤이트 관련 언급이 있다. # [10] 대만에 대한 통치권이 일본 제국에서 중화민국으로 넘어간건 1945년부터였다. 대만인 관점에서는 일제의 침략 이후 중화민국의 침략이다. [11] 카이로 선언에서는 대만을 중국의 영토라고 규정하고 있는데, 이 선언은 법적 구속력이 전혀 없는 정치적 선언에 불과하다. [12] 이러한 복잡한 역사적 경위들에 대해 잘 모르고 중화민국 정통론에 대해서 적지 않은 우호적 관점을 지닌 한국인들 일각에서는 대만 독립론을 홍콩 독립론 수준의 억지로 인식하는 경향이 있다. 그러나 중화민국 정통론 못지 않게 대만 독립론도 대만 역사를 자세히 알고나면 주장할 만한 명분이야 충분히 있다. [13] 역설적으로 국민당 일당독재가 종식된 현 기준에서는 되려 과거 민국파들의 적이였던 중화인민공화국의 존재가 대만 독립을 막고 중화민국 국체를 유지시키는데 중요한 기여(?)를 하고 있다. 현재 대만인들 대다수는 자신들을 중국인이 아닌 대만인으로 인식하고 있는데 대만 독립 선언하면 중공이 극대노해 양안전쟁 발발할 가능성이 높으므로 일단은 현상유지하자는 분위기가 형성되어 중화민국 체제가 계속 이어질 수밖에 없는 것. [14] 참고로 일제 강점기 시절 일제가 조선인들에게 강요한 창씨개명도 해외에서 '문화적 제노사이드'라고 부른다. [15] 예시를 들자면 학교 교장 등 일부 공직 같은 부분에서도 본토의 성 인구 비율 할당으로 채워넣어서 국부천대 이후 중화민국 인구의 절대다수를 차지하는 본성인들의 기회의 평등을 사실상 박탈하였다. [A] [17] 이 시기에 대한 타이완의 정체성과 역사적 태도에 대한 자세한 정보는 황쥔지에가 쓴 "대만의 역사와 정체성을 찾아서 : 대만의식과 대만문화"을 참고할 것. [18] 동쪽으로 조선을 정벌하고 현도와 낙랑을 세워 흉노의 왼팔을 끊었다. 서쪽으로 대완을 정벌하고 36국을 아우르며 오손과 관계를 맺고 돈황(敦煌) · 주천(酒泉) · 장액(張掖)을 세워 야강을 막아 흉노의 오른팔을 찢었다. 선우는 홀로 고립되어 멀리 막북으로 돌아갔다. - 『사기』 위현전 [19] 출처: Proto-Nationalism in Pre-Modern Korea / John Duncan [20] 출처: Nation and Nationalism since 1780 [21] 다만 같은 책의 다른 문단에서 "민족적으로 거의 또는 완전히 동질적인 주민으로 구성된 극히 희귀한 사례다."라고 한 것은 '명백한 과장이다'라는 설명도 등장한다. 즉 극히 희귀한 사례까지는 아니라는 것. [22] 막북은 고비 사막 이북을 지칭하는 용어이다. [23] 저 말도 맹자에 나오는 소국은 대국을 섬겨야 한다는 논조를 빗대어 한 말로 보인다. 그러나 맹자는 대국도 힘에 취해 패권을 휘둘러야 하는 것이 아닌 소국을 인(仁)으로써 섬기고 존중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즉, 이 발언 역시 맹자가 한 발언을 크게 왜곡해서 내뱉은 발언인 셈이다. [24] 오직 어진 자야만이 대국으로써 소국을 섬길 수 있으니 이러므로 탕왕께서 갈(葛)을 섬기셨고, 문왕께서 곤이(昆夷)를 섬기셨습니다. (惟仁者爲能以大事小,是故湯事葛,文王事昆夷.) - 맹자 양혜왕 하편 - [25] 즉, 화의 민족인 중국인이 오랑캐의 나라에 가서 민폐를 저지르는 것 자체가 중화민족의 격을 훼손시켰다는 의미이다. [26] 현재의 한국에서도 미국이 중국 공산당과 같은 해악을 끼치지 않는 이상 대부분 친미 기조를 유지하는 것과 마찬가지이다. [27] 그나마 광해군이 명나라와의 관게에서 적당히 발을 빼려 했지만 인조반정으로 폐위당하면서 무산되었다. 다만 광해군의 외교정책과 당시 동북아시아의 정세는 현재 주류적인 학계의 입장과는 거리가 있다. 청은 끝내 자력으로 장성을 넘지 못했고, 병자호란도 보급상황 등을 고려하면 도박에 가까웠다. 오히려 당대의 지식인들은 명이 청에게 멸망당하리라고 예측하는 것이 쉽지 않은 상황이었다. [28] 제1~3도련선으로 나뉘는데, 제1도련선은 한반도를 제외한 서태평양 연안 지역, 제2도련선은 한반도를 포함하고 일본 열도까지 영향권 하에 두는 서태평양 전역, 제3도련선은 미국의 하와이 외곽까지 뻗어나가 태평양을 반분하는 것이다. [29] 그런 반미감정의 반작용으로 동아시아 지역에 미국과 동맹을 맺은 한국과 일본이 존재하듯이, 최근 중남미 국가들이 중국과 동맹을 맺는 것에 관심을 보이고 있다. [30] 요르단, 레바논, 튀르키예 등. [31] 러시아는 공공의 적 미국을 견제하기 위해 중국과 좋은 관계를 유지하고 있다. 러시아가 중국에 협력하는 이유는 냉전 때와는 달리 미국을 홀로 상대하기에는 국력에서 한참 밀리기 때문이다. 중국과 손을 잡아야 힘의 균형이 맞는다. 그리고 러시아에 있어 중국이 필요한 존재라는 것은 우크라이나 전쟁에서 여실없이 드러났다. 자만한 러시아군이 우크라이나에서 고전하자 중국에 물자 지원을 요청했고, 서방이 대러제재를 가하는 중임에도 중국은 되려 교역로를 확충하여 러시아에 지원을 해주었다. [32] 중국이 설령 동맹국을 만들려고 해도, 일방적으로 퍼주는 관계가 아닌 이상 어렵다. 그나마 파키스탄 정도가 인도에 대한 견제라는 점을 지렛대 삼아 동맹국으로 기능하고 있으나 러시아는 일본 문제를 제외하면 아시아 패권에 아주 큰 관심은 없고, 일본과 한국은 굳이 친미가 아니더라도 나름의 영역권을 추구하는 국가라 중국의 패권에 협조할 가능성이 적다. [33] 현재 중국의 군사력이 2차 세계대전 당시 나치 독일과 일본 제국을 압도하는 수준인만큼 정말 중국이 나치 독일과 일본 제국의 전철을 밟게 된다면 그 피해는 인류 역사상 그 어떠한 전쟁과도 비교할 수 없는 수준이 될 것이다. 현재 중국의 국력을 당시로 비유하면 독일과 소련을 합친 것과 비슷하다. [34] 중국 역시 미국이라는 거대한 소비시장이 존재하지 않으면 경제가 붕괴되며, 동시에 미국이라는 가상적국이 존재하지 않으면 내부 불만들이 모조리 중국 공산당으로 옮겨질 것이라는 것을 알기 때문이다. 그래서 현실적인 이유로 아직까지는 미국을 상대로는 꼬리를 내리고 있다. [35] 실제로 차이나 머니로 옥스포드에서 출간한 그림책에 고구려 시절 영토를 중국 영토로 표기 하도록 만들었다. 이를 항의하자 출판측에서는 이는 어디까지나 한국의 의견이라며 거절했다 한다. [36] 영어로 중국어를 못한다고 하거나 중국인이 아니라고 말해도 끝까지 중국어로 말하는 사례가 종종 발생한다. 단순히 영어를 못해서 그러는 거라고 핑계대기도 뭐한 것이, 이런 케이스는 보통 자신이 영어를 못해서라기보단 "이 나라 사람들도 중국어를 알아듣겠지?"라는 마인드에서 나오는 무례이기 때문. [37] 이건 비단 중국인만의 문제가 아니라 타 인종•민족들에게도 나타나는 현상이다. 북미에서 동양인들한테 멋대로 중국어를 쓰는 사람들은 인종•민족 불문하고 널렸다. 가끔 가다 동양인들도 그런다(...). 한국인들도 예외가 아니다. [38] 어느 정도냐면 공자를 비롯한 유교 사상을 연구하기 위해 중국의 학자들이 한국으로 넘어와서 연구를 하며, 이황, 이이를 비롯한 조선의 학자들의 저서를 통해 성리학을 연구한다. 이유는 각종 왕릉, 사찰과 함께 홍위병의 공격을 가장 많이 받은 것이 유교 서책이었기 때문. 단적인 예시를 들자면 공자의 묘 또한 문화 대혁명 때 파괴되었다. 대만의 경우는 본성인 기준 문화대혁명 이전부터 살아온 같은 민족이라 본래의 풍습 등 무형문화가 문화대혁명으로 실전된 본토보다 보존이 되어있어서이다. [39] 오죽했으면 사극이 너무 넘쳐난다는 이유로 금지령을 내렸을 정도이다. [40] 대만과 대놓고 교류하는것은 덤. [41] 미국에 있어서 동아시아, 특히 일본의 경우 일본을 포기하면 대 동아시아 최전선이 넓디넓은 태평양 너머의 하와이가 되기 때문에 미국의 대 동아시아 최후의 마지노선이다. 상황이 여의치 않게 돌아갈 경우 한국이나 대만은 몰라도 일본만큼은 절대로 포기하지 않겠단 의지를 1950년대 당시 보여주었으며, 그게 바로 한국 전쟁 때의 상황이었다. 일본을 지배하면 미국과 사이에 있는 그 태평양이 전부 미국 사정권에 들기 때문이었다. [42] 하지만 지금은 상대가 소련이 아니라 중국이라서 한국과 대만의 지정학상 중요성이 예전보다 훨씬 더 커진 상황이라서 역시나 함부로 포기할 수 없게 되었다. 1950년대에 미국이 4~5만명의 군인을 희생해 가며 한국을 지킨 이유도 냉전의 최전방이라기보다는' 한국이 없으면 일본이 망한다 -> 일본이 망하면 태평양 패권을 잃는다는 계산 때문이었다. 미국이 한국을 수호하려는 의지는 오히려 현대에 더 커졌는데, 신냉전이 다가오며 한국의 국력 상승과 더불어, 섬나라라는 한계에다 자위대라는 한계까지 가진 일본보다 북중러와 육지를 맞댄 데다 육군강국이며 정규군을 가진 한국의 중요성이 21세기 들어서 매우 중요해졌기 때문이며, 그러면서도 앞서 말한 한국이 없으면 일본도 망한다는 논리는 또 여전히 유효하다. 굳이 따지자면, 일본의 중요성은 미일 사이의 태평양을 지배하려는 용도라면 한국의 중요성은 신냉전 들어 북한-중국-러시아에 위협이 되는 치명적인 단검 같은 용도이다. 2차대전 이후 태평양이 미국 영향권에 들어간 지 오래되었으므로 21세기 신냉전 이후 미국의 관심이 한국에 더 쏠리며 한미 미사일 지침 폐지에 불만을 품었던 일본의 입장도 해석하자면 미국이 자신들 대비 한국의 중요도를 높인다는 것에 대한 불만이 있었다. [43] 웃기게도 이런 상황은 중국이 그토록 흑역사라고 여기고 있는 홍위병의 탄생과도 유사점을 보인다. [44] 고전적 의미의 식민지 확보 등 일반적인 식민주의와 달리, 식민지 상태에서 독립한 국가들을 경제적 혹은 정치적으로 예속화하려는 정책을 의미한다. 가령 중국의 대아프리카 정책과 대대만 정책이 비판자들에게 '신식민주의'라고 지적받기도 한다. [45] "China's Pursuit of a New World Media Order" (PDF). Reporters Without Borders. 29 November 2018. Retrieved 24 June 2022. "Global Times is an ultra-nationalist tabloid established by People's Daily in 1993 to comment on international new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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