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영박물관 The British Museum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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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lbgcolor=#000><colcolor=#fff> 개관 | 1753년 6월 7일 ([age(1753-06-07)]주년) | |
소장 규모 | 문화재 약 8백만 점 | |
방문객 수 | 4,097,253명 (2022) | |
관장 | 하트윅 피셔 | |
주소 | Great Russell St, London WC1B 3DG | |
링크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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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영박물관 외부와 내부 사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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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대영박물관(The British Museum)은 영국 런던에 위치한 박물관으로, 1759년 현재의 자리에 개장했다.프랑스 파리의 루브르 박물관과 함께 서유럽의 대표적인 박물관으로 꼽힌다.[1] 영국의 여러 주요 박물관들처럼 입장료는 무료다. 박물관에는 입장료 대신 박물관에 기부해 달라는 차원에서 입구나 출구에 기부함이 놓여있다. 기부인 만큼 돈을 내는 것은 자유이며, 내는 사람들은 보통 5파운드나 10파운드 지폐 한 장을 넣는다. 세계적인 박물관이고 전 세계에서 관람객들이 찾아오는 만큼 기부액도 적지 않지만 그럼에도 유지, 보수 비용이 워낙 커서 영국 정부 예산에서 일정 부분 지원받는다. 한국에서는 박물관 입장료가 그렇게 비싸지 않지만 외국의 여러 사설 박물관들은 유지비 때문에 입장료가 높은 경우가 많아 5파운드도 저렴한 편이다. 입장료가 무료인데다 상당한 질의 컬렉션을 보유한 세계적인 박물관이라서 매년 수많은 관람객들이 찾는 명소이다. 입장 인원이 많으면 줄을 서야 할 수도 있다.[2]
처음에는 자그마한 박물관이었으나, 대영제국의 영향력이 전 세계로 뻗어나감에 따라 타국에서 영국 본토로 가져오는 유물들이 늘어났고, 소장한 유물들을 수용하기 위해 점차 부지를 넓히고 규모를 키운 결과 오늘날의 크기에 이르렀다.
2. 명칭
대영박물관의 영어 명칭은 '브리티시 뮤지엄(the British Museum)'으로, 일반적으로 '대(大)'로 번역하는 'Great' 등의 수식어는 붙어 있지 않다. 그러나 박물관 측의 공식 한국어 안내문에서도 ' 대영 박물관'으로 표기한 바 있고, 국내 대다수 언론이나 서적에서도 대영박물관이라는 표기를 사용하고 있다. 한편, 중국과 일본에서도 가장 널리 쓰이는 번역명은 한자어 '대영박물관(大英博物館)'이다.일각에서는 원어를 살려 '대영박물관' 대신 '영국박물관'이라는 표기를 사용해야 한다는 의견이 있으며, 일부 여행 가이드북이나 교과서 등에서는 이러한 명칭을 사용하기도 한다. 그러나 '영국박물관'이라는 명칭은 '영국 소재의 박물관'이라는 일반명사로 혼동될 여지가 있으며, 어휘 브리튼(Britain)을 '영국'으로 번역하는 것에도 논쟁의 여지가 있다. "대영"을 그저 그레이트브리튼 섬의 번역어로 볼 수도 있기 때문이다.
원래 '영국'은 '영길리' 즉, 잉글랜드의 음역이다. 잉글랜드는 스코틀랜드, 웨일스, 북아일랜드와 함께 영국(연합 왕국)을 이루는 한 부분이다. 그러나 잉글랜드가 영국 전체 중 차지하는 비중이 높다 보니 연합 왕국을 '영길리국( 英 吉 利 國)' 즉 '영국'이라고 칭하게 된 것이다.[3] 때문에 구분을 위해서 연합 왕국 전체를 지칭할 때는 '대영국( 大 英 國)'이라고도 했으며, 이것이 '대영박물관'이라는 번역의 유래가 되었다.
이 밖에 음차하여 '브리티시박물관'이라는 표기를 사용하는 경우도 있다. 과거 국립중앙박물관 국제교류홍보과의 한 보도자료에서는 '영국 브리티시박물관'이라는 명칭을 사용하기도 했다. #
3. 전시품
자세한 내용은 분류:대영박물관 소장품 문서 참고하십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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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시품이 워낙 방대해 전시 유물을 자주 교체하며, 연구 목적으로 빠지는 경우도 잦다. 리모델링이나 공사도 잦아서 관심있는 유물이 없는 경우가 상당히 많으니 이 점 유의하고 방문하는 것이 좋다.
공식앱에서 추천하는 탑10 관람물은 로제타석(204), 아시리아의 사자사냥부조(214), 엘긴 마블(252), 모아이(252), 왕의 머리(184), 아즈텍의 쌍두사(141) 스리랑카의 타라 불상(611), 데이비드 화병(331), 카테벳 미라(361), 루이스 체스맨(502)이다.
박물관에 전시된 유물에 대한 설명을 듣고 싶다면 구글 스토어나 앱 스토어에서 British Museum Audio 앱을 다운받아 사용하면 된다.[4] 단 오디오 가이드 설명은 한국어가 없으므로 관심있는 유물에 대한 정보는 미리 확인하고 가는 것을 추천한다. 앱은 무료지만 컨텐츠를 보려면 4.99파운드를 결제해야 한다. 결제 전에는 일부 컨텐츠만 미리볼 수 있고 저렴한 옵션을 선택하면 해당되는 유물만 설명을 들을 수 있다. 결제 후에는 데이터를 미리 저장하고 오프라인으로 재생 가능하니 미리 설치하고 데이터를 미리 다운로드하는 것을 추천한다. 오디오 가이드의 안내를 따라서 한 바퀴 돌고, 관심 있는 유물 위주로 다시 관람하는 것이 시간 절약에 큰 도움이 된다.
입구에서 지도를 판매하는데 지도는 안쪽에서 무료로 제공한다. 다만 무료로 제공되는 지도는 흑백으로만 제공되고, 컬러 지도는 돈주고 사야 한다. 참고로 컬러 지도는 시대별로 색부분을 해두었기 때문에 보기 편하다. 하지만 오디오가이드 앱에서도 컬러 지도를 제공하므로 지도를 구입하기보다는 안쪽 도서코너에서 15파운드에 판매하는 한글판 가이드북을 구매하는 것이 낫다.
☆: 타국이 반환을 요구하는 약탈문화재.
3.1. 이집트, 수단 전시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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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명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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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제타석(Rosetta Stone) 대영박물관의 명실상부한 간판급 유물이자 가장 유명한 유물. 1799년 7월 15일에 프랑스 육군 중위가 발견한 것을 후일 영국이 가져와 연구했으며, 이후 언어학자인 샹폴리옹이 로제타석을 통해 베일에 싸여 있던 히에로글리프 해독법을 깨우치면서 대대적으로 유명세를 타게 된다. 내용은 대략 프톨레마이오스 왕조의 프톨레마이오스 5세가 사제들에게 은혜를 베푼 것을 찬양하는 내용이지만 똑같은 내용이 히에로글리프, 민중문자, 그리스 문자로 3번씩이나 반복해서 쓰여 있어서 비교대조를 통해 해독을 할 수 있었다. 자세한 내용은 로제타석 참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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람세스 2세 흉상(Bust of Ramesses II) 고대 이집트의 파라오 람세스 2세의 석조 흉상. 1816년 조반니 벨조니가 룩소르 신전 유적에서 발굴해 영국으로 옮겨왔다. 이 흉상을 보고 인생 무상과 권력의 덧없음을 말하는 시 오지만디아스가 쓰이기도 했다. 흉상 오른쪽 가슴에 뚫린 구멍은 나폴레옹의 병사들이 흉상을 프랑스로 옮겨가려다 실패한 자국이라는 말이 있다. 무게는 7.25톤에 달하고 하나의 거대한 화강암 덩어리로 제작되었다.[5]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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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라 진저(Gebelein predynastic mummies) 기원전 3400년경 이집트 선왕조 시대에 자연적으로 만들어진 미라 6구 중 가장 유명한 미라다. 붉은색 머리카락이 그대로 남아 있어 영미권에서 붉은 머리를 뜻하는 진저라는 별명이 붙었다. 1901년부터 대영박물관에서 전시되기 시작했고, 현재는 죽은 사람에 대한 예우 차원에서 '진저'라는 별명으로 부르지 않는다.[6] 한때 발견자가 자기 동생을 죽여 미라로 만들어서 박물관에 납품했다는 괴담이 돌았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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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피라미드의 외벽(Casing of Great Pyramid of Giza) 이집트 제4왕조 시대에 만들어진 기자의 대피라미드 바깥을 덮고 있던 석회암 외벽 조각의 일부로 보존 상태는 상당히 좋은 축에 속한다. 1838년에 기자의 피라미드에서 떼와서 대영박물관에 안치했다. 이집트 관련 유물이 많아서 박물관 내에서 유물들을 순환 배치하면서 전시하고 있는데, 외벽 조각은 현재 전시되고 있지 않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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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스핑크스의 턱수염(Beard of Great Sphinx of Giza)☆ 기자의 대스핑크스의 턱수염이다. 영국이 1800년대에 오래전 파손되어 앞발 사이에 떨어져 있던 스핑크스의 턱수염 조각을 본국으로 가져왔으며, 대영박물관에서 인기 있는 유물 중 하나가 되었다. 다만 대스핑크스의 석질과 색을 추정해 본 결과, 처음부터 스핑크스에 턱수염이 달려 있던 것은 아니고 후대의 파라오들이 만들어 붙였던 것이라고 한다. 이집트가 정부 차원에서 반환을 요구하고 있지만 영국 정부는 거부하고 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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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바문의 무덤 벽화(tomb-painting of Nebamun) 대영박물관이 소장하고 있는 고대 이집트 예술품 중 가장 유명한 무덤 벽화다. 기원전 1350년경 이집트 신왕국 시대에 그려진 것으로 추정된다. 고대 테베 인근의 신전에서 일하던 관료 네바문의 무덤에 그려져 있던 벽화로 가족을 이끌고 새 사냥을 하는 네바문과 연회에 부른 악공과 무희들, 상차림과 가금류, 생선 등 당대 생활상을 생생하게 묘사하고 있다. 1820년경 무덤이 도굴되어 세계 각지로 팔려나갔고, 벽화 파편 중 다수를 대영박물관에서 매입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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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르네드즈테프의 미라(Mummy of Hornedjitef) 프톨레마이오스 왕조 시대의 신관 호르네드즈테프의 미라와 목관이다. 기원전 220년 경에 만들어졌고, 정교한 수준의 목관과 미라, 그리고 데스마스크 덕분에 유명해졌다. 파라오인 투탕카멘의 것에 비하면 훨씬 덜하지만 확실히 화려한 모습을 보여준다. |
3.2. 그리스, 로마 전시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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엘긴 마블(Elgin Marbles)☆ 그리스 파르테논 신전를 장식한 조각상들과 부조 조각. 그리스가 오스만 제국의 지배를 받던 시기, 파르테논에 남아 있던 조각들을 엘긴 경이 7만 파운드를 들여 모국으로 가져온 것이다. 유물의 가치와 규모가 상당해서 그리스 정부가 지속적으로 반환을 요구하고 있지만 영국 정부가 묵살하고 있는 것으로 유명하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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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반 던지는 사람(Discus Thrower) 기원전 450년경 고대 그리스에서 미론이 만든 청동 조각상을 원본으로 만들어진 고대 로마 시대의 대리석 복제품이다. 복제품이기는 하지만 기원후 200년경에 만들어진 것으로 역사도 오래 되었고, 아름다움이 뛰어나 가치는 충분하다. 1700년대에 하드리아누스 황제의 별장 유적에서 발견되었으며 이후 1805년에 대영박물관으로 이관되어 현재까지 전시되고 있다. 발굴 당시 머리와 코, 발 부분이 파손되어 있었지만 후에 현재처럼 복원되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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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우솔레움 조각(Mausoleum of Halikarnassos)☆ 세계 7대 불가사의 중 하나였던 마우솔로스 영묘를 장식하던 대리석 조각이다. 마우솔로스 왕의 조각상, 그리스와 아마존 여인들 사이의 전투를 묘사한 부조, 마우솔레움 가장 꼭대기에 세워져 있던 사두마차를 끌던 말 한 마리의 조각 등이 소장되어 있다. 현재는 폐허에 불과한 마우솔레움의 얼마 남지 않은 유물로 그 가치가 높다. 튀르키예 정부에서 꾸준하게 반환을 요구하고 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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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르테미스 신전 조각(Temple of Artemis)☆ 위의 마우솔로스 영묘와 함께 세계 7대 불가사의 중 하나인 에페소스의 아르테미스 신전 유물이다. 현존하는 몇 안되는 아르테미스 신전과 관련된 유물 중 하나이다. 신전의 기둥들을 받치던 화려하게 조각된 기둥 받침 1점, 그리고 이오니아 양식으로 만들어진 기둥주 장식 한 점이 1872년 이래 대영박물관에 전시되어 있다. 기둥 받침에 새겨진 인물들은 죽음의 신 타나토스와 페르세포네 등이라고 한다. 튀르키예에서 반환을 요구하고 있지만 받아들여지지 않고 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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랠리의 비너스(Crouching Venus) 영국의 화가 피터 랠리가 소유했던 수집품들 중 하나여서 '랠리의 비너스'라고 불리지만, '웅크린 비너스'라는 별칭으로 더 알려져 있다. 미의 여신 비너스가 목욕 중 자신의 모습을 들키자 놀라 제 나신을 가리는 모습을 아름답게 표현해서 비너스를 묘사한 수많은 조각들 중에서도 유명한 편에 속한다. 서기 1세기경 로마인들이 그리스 조각을 베껴 만든 것으로 현재는 영국 왕실에 소유권이 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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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레크테이온 여인상(Erechtheion Statue)☆ 아테네의 아크로폴리스에 있는 에레크테이온 신전을 떠받치던 6개 여인상들 중 하나로 1816년 영국이 아크로폴리스에서 통째로 가져갔다. 기원전 400년경에 만들어졌고 높이는 약 2m 정도로 실제 사람의 크기와 비슷하다. 그리스 측에서 여인상을 제자리로 돌려놓기 위해 노력하고 있지만 진전이 없는 상태다. |
3.3. 중동 전시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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님루드 렌즈(Nimrud Lens) 아시리아의 님루드 왕궁 유적에서 발견된 수정 유물로, 독특하게도 볼록렌즈의 효과를 내어서 세간에 주목을 받았다. 그 이유는 볼록렌즈 자체의 발견이 10세기 경에 이루어졌고 볼록렌즈 안경은 12세기가 되어서 나왔는데 해당 유물은 무려 기원전 8세기의 것이기 때문이다. 다만 학계에서는 님루드 렌즈의 효과는 우연의 산물일 뿐, 희귀한 장식 정도로 추정하고 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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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르의 군기(Standard of Ur) 수메르의 도시 우르에서 발견된 유물. 조개 껍질과 청금석 모자이크가 박힌 나무 상자다. 세계 최초의 문명에서 만든 만큼 무려 4,600년된 유물이다. 전쟁과 평화의 모습을 새겨넣었고 1920년대에 우르의 왕릉에서 발견되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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길가메시 서판(Gilgamesh Flood Myth) 대략 기원전 7세기 경에 만들어진 토판으로 길가메시의 영생을 얻기 위한 여정을 담아낸 길가메시 서사시의 내용들 중에서도 홍수와 관련된 내용을 다룬다. 니네베의 유적에서 발굴했고 현재는 대영박물관 55번 전시관에서 전시 중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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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슈르바니팔의 도서관(Library of Ashurbanipal) 아시리아의 왕궁 유적에 소장되어 있던 3만 점이 넘는 토판을 통째로 가져왔다. 그 유명한 길가메시 서사시도 포함되어 있었다. 행정 문서부터 소설까지 다양한 장르의 엄청나게 방대한 양 덕분에 기원전 메소포타미아 문명을 연구하는 데에 대단히 중요한 유물들 중 하나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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키루스 원통(Cyrus Cylinder) 키루스 2세가 바빌론을 정복한 직후 남긴 칙령과 업적을 새긴 원통으로, 1879년 이라크에서 영국 조사단이 발견했다. 발굴 당시 여러 조각으로 부서져있던 것을 큰 조각 2개로 합친후, 두 조각을 합쳐 원래의 원통 모양으로 복원한 것이다. 힘과 무자비함을 강조한 아시리아 아슈르바니팔왕의 비문과는 달리, 바빌론의 군주가 신들을 노하게 하고 백성들을 괴롭히자 키루스 2세가 올바르게 바로잡아 평화를 되찾았다는 내용이 주를 이루고 있다. 바빌론의 외국인 포로들을 고향으로 돌려보냈다는 대목이 있어 키루스 2세가 바빌론 유수를 끝내고 유대인들을 해방했다는 사료로 여겨지고 있다. 팔레비 2세의 적극적인 홍보로 세계 최초의 인권 선언문으로 여겨지고 있으며, 원통의 복제품이 UN본부에 전시되어 있다. |
3.4. 아시아 전시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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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나가와 해변의 높은 파도 아래 대영박물관의 아시아 전시관에서 전시 중인 여러 점의 일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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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라 금귀걸이(Silla Ear-Ring) 과거 일제강점기 당시 외국으로 반출된 수많은 유물들 중 하나다. 대영박물관의 소개에 따르면 1938년에 일본에게서 공식적으로 매입한 것이라고 한다. 1,600여 년 전 만들어진 유물임에도 굉장히 정교한 세공술을 자랑하는 대영박물관 내 대표적인 한국 유물이다. 안타깝게도 외국 박물관에 소장되어 있기 때문에 한국 고고학자들이 쉽게 분석하거나 연구할 수 없다고 한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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춤추는 시바 신상(Dancing Shiva Statue)☆ 힌두교 파괴의 신 시바의 춤추는 모습을 조각한 신상. 시바 신의 발 아래에는 짓밟힌 악마의 모습이 조그맣게 조각되어 있고 세상 만물을 상징하는 순환의 춤을 추고 있는 모습이다. 촐라 제국 시대인 1100년경에 제작된 것으로 추정되며 청동으로 제작되었다. 주형틀에 녹인 청동을 부은 후 굳혀서 만들어진 것으로 본다. 현존하는 수많은 시바 신상들 중 가장 유명한 신상으로 잘 알려져 있다. 1800년대에서 1900년대 사이 인도 타밀나두 주에서 가져왔고, 한동안 여러 유럽인 수집가들의 손을 전전하다 1987년부터 대영박물관의 소장품이 되었다. 참고로 신상 왼쪽 어깨 위쪽의 아치가 약간 부서져 있다고 한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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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이비드 화병(David Vases) 원나라 시대의 청화백자로, 높이 60cm에 달하는 병의 목부분에 서기로 1351년 4월, 당대 옥산현에 살던 '장원진'이 가족의 안녕을 기원하기 위해 도교사원에 제작해 바친 내역이 적혀 있다. 제작 연도를 정확하게 확인 가능한 몇 안되는 백자 유물이며, 현재까지 남아있는 전 세계의 청화백자 유물 중 가장 오래된 유물로 꼽히고 있다. 대영제국시기에 활동한 사업가 퍼시벌 데이비드 경[8]이 중국에서 구입해 런던 대학에 기증한 유물이다. |
2000년에 한국관이 개관했다. 위치는 조금 외진 곳이라서 근처의 중국관, 일본관에 규모 면에서 묻히는 감이 있지만 삼성문화재단에서 힘을 써서 전시된 문화재들은 전부 정식으로 한국에서 대여받은 물건들이다. 유물의 질은 한국 국립중앙박물관의 컬렉션에 비하면 떨어지며, 유물의 양도 유구한 한국 문화를 속성으로 보여주는 수준이다. 이 박물관을 방문하는 세계인에게 한국을 홍보하기 위한 성격이 강하다. 실제로 전시관 한켠에 한옥과 온돌의 우수성을 홍보하는 디오라마가 자리잡고 있다. 또한 버나드 리치가 영감을 받아서 수집했다는 달항아리가 전시되어 있다.
사실 중국관이 퍼시벌 데이비드 컬렉션을 위시한 수천 점의 당, 송, 원, 명, 청대의 도자기 걸작선에서 상나라 시대의 청동기, 명, 청대의 공예품, 가구, 불상에 이르기까지 그 규모와 퀄리티가 중국과 대만의 유명 박물관에도 뒤지지 않는 반면, 한국관과 일본관은 자국 홍보관 성격이 강하다. 일본관 역시 일본의 다도와 전통 다실을 홍보하는 공간이 마련되어 있으며, 특히 일본 만화가 전시관 한켠에 비중있게 전시되고 있다.
3.5. 영국, 유럽, 선사시대 전시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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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쿠르고스 잔(Lycurgus Cup) 4세기 경에 제작된 것으로 추정되는 로마 제국 시대의 유리잔으로, 외부에서 반사광이 비춰지면 겉면이 녹색으로, 컵 안쪽에서 투과광이 비춰지면 안쪽이 붉은색으로 빛나는 것으로 유명한 유물이다. 유리에 나노단위로 첨가된 금, 은 입자로 인해 이런 현상이 발생하는 것으로 추정되고 있으나, 정확한 원인을 알아내려면 컵을 조각내서 내부를 분석해야 하기 때문에 아직까지도 미스터리로 남아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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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튼 후 보물(Sutton Hoo Treasures) 외국에서 들여온 유물로 가득한 대영박물관에서 몇 안되는 영국의 유물로, 1939년 영국 서포트 지방에서 발견된 중세 바이킹의 장례 부장품들이다. 서튼 지역의 야산에 묻혀 있던 배[9] 안에서 발견되었으며, 그중 가장 유명한 '서튼 후의 투구'는 발굴 당시 500조각으로 나뉘어 있었다. 중세 암흑기 시절 브리튼 섬에도 발달된 문화가 있었다는 것을 입증하는 유물이어서 박물관 내에서도 눈에 잘 띄는 곳에 전시되어 있다. 바로 뒷편에 투구의 복원 모형이 전시되어 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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루이스 체스맨(Lewis chessmen) 대영박물관의 영국 유물 중 서튼 후 보물 다음으로 유명한 유몰로, 19세기 초반 스코틀랜드 루이스 섬에서 발견된 92개의 체스 놀이말 세트다. 이중 78개는 체스의 킹, 퀸, 비숍, 나이트, 폰을 그대로 의인화해서 만들었다. 12세기 ~ 13세기 초에 만들어진 것으로 추정되며, 모두 고래 이빨이나 바다코끼리의 이빨을 깎아 만들었다. 해리포터와 마법사의 돌 영화판에서 해리 포터와 론 위즐리가 이 유물을 그대로 본뜬 체스를 두는 장면이 등장한 이후 엄청나게 유명해졌으며, 대영박물관 기념품 샵에서도 해당 체스말을 본뜬 다양한 기념품을 판매하고 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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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 아그네스 잔(Saint Agnes Cup) 에나멜과 진주로 화려하게 세공된 황금잔. 14세기 말에 프랑스 왕실을 위해 제작된 것으로 추정된다. 이후 300여 년 동안 스페인에 있다가 나중에는 영국 왕실로 소유권이 이전되었으며 1892년부터 대영박물관의 소장품이 되었다. 높이는 23.6cm, 지름은 17.8cm, 무게는 1.935kg에 달하는 상당히 큰 크기의 잔이다. 잔에는 성 아그네스의 일생이 색색의 에나멜로 칠해져 있는데 만든 지 700년이 넘은 유물치고는 거의 새 것처럼 보존 상태가 양호해서 고고학적으로도 가치가 매우 높다. 컵 하단에는 4명의 복음 서기자들의 모습이 그려졌다. 또한 컵 바닥을 보면 테두리 부분에 진주로 튜더 장미가 씌워져 있는 것을 볼 수 있는데 헨리 8세 시절에 추가된 것으로 보인다. 현재는 40번 전시관에서 전시 중이며 상당히 유명한 유물들 중 하나에 속한다. |
3.6. 아프리카, 오세아니아, 아메리카 전시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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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아이(Moai)☆ 이스터 섬에서 가져온 거대한 조각상. 대략 1000년에서 1200년대 사이에 제작된 것으로 추정된다. 원래 이스터 섬에 세워진 석상이지만 1868년에 이스터 섬을 탐험한 영국 탐험대가 빅토리아 여왕에게 바칠 선물로 배에 실어왔고, 빅토리아 여왕은 모아이 석상을 대영박물관에 기증했다. 이후 이스터 섬 측에서 반환을 요구 중이지만 영국 정부의 답변은 없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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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즈텍의 쌍두사(Double-headed Serpent of Aztecs) 멕시코의 아즈텍 제국에서 만들어진 고대 뱀신의 유물. 귀중한 터키석으로 만들어졌고 홍합과 조개 껍데기로 장식되어 있다. 아즈텍 제국의 몇 남지 않은 유물들 중 하나이며, 길이는 17인치, 높이는 8인치, 두께는 2인치 정도 되며 15세기 경에 제작된 것으로 추정된다. 1894년에 멕시코 유적에서 발굴되었다. |
약스칠란 24번 석비(Yaxchilan Lintel 24) 마야 문명의 유적 ' 약스칠란'에서 가져온 비석이다. 피의 의식을 치르고 있는 약스칠란의 군주 발람 3세와 카발 촉 왕비의 모습이 새겨져 있다. 1882년 영국의 고고학자 알프레드 모슬레이가 약스칠란의 한 건물 천장에서 뜯어왔다.[10] 원래 다른 석비들도 있었지만 24번 석비를 제외하고 모두 멕시코로 돌아갔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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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페의 청동 두상(Bronze Head from Ife) 14세기 경에 만들어진 청동 두상으로 왕의 모습을 묘사한 것으로 추정된다. 1938년 나이지리아의 이페 유적에서 발굴된 유물로 발견 당시 상당한 논란을 일으켰다. 서구 학자들은 '미개'하다고 여겼던 아프리카인들이 이런 정교한 두상을 만들었기 때문이다. 이후 아프리카 문화의 우수함을 보여주는 유물 중 하나로 꼽히게 되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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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융 토템 폴(Kayung Totem Pole) 캐나다의 하이다족이 1850년대에 만든 토템 폴이다. 1903년 무렵 캐나다 식민당국이 대영박물관으로 전달했다. 삼나무 한 그루를 통째로 깎아 부족 대대로 내려오는 이야기들을 빽빽히 새겼다. |
베닌 브론즈(Benin Bronze)☆ 나이지리아의 베닌 제국의 왕궁에 장식되어 있던 청동 조각품들이다. 대략 13세기부터 16세기까지 다양한 연대에 만들어졌으며, 청동판, 조각 머리, 보석류 등 종류도 다양하다. 이 청동판들은 본래 왕궁의 벽을 장식하던 것으로 왕실의 일대기와 베닌 제국의 역사를 연표식으로 담은 것이었는데, 영국이 약탈하는 과정에서 섞여버려서 올바르게 배열하는 순서는 알 수 없게 되었다고 한다. 1897년 영국이 원정을 와서 약탈해갔고, 현재는 대영박물관 외에 독일과 미국의 박물관에도 상당수가 전시되어 있다. 나이지리아 측에서 꾸준히 반환을 요구하고 있다. |
4. 침략과 강탈의 역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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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영 약탈 · 노략질 · 강도 박물관 대영박물관의 어두운 이면을 풍자하는 팜플렛 패러디. |
이름은 영국 박물관인데 정작 영국 물건은 별로 없고 타국 유물이 더 많은 박물관이다. 고대 이집트와 고대 메소포타미아, 고대 그리스, 고대 로마, 심지어 남태평양에서 온 유물도 있다. 그러나 대부분의 유물이 정당하게 구매하거나 대여해온 것이 아닌, 무단으로 가져온 것이 많아서 장물관이라는 비아냥을 듣는다. 비슷하게 장물관 소리를 듣는 루브르 박물관은 그래도 명색이 프랑스의 중심 박물관답게 프랑스의 작품이 많다는 점에서 대영박물관과 비교되고 있다.
그래서 현재 많은 나라에서 대영박물관에 약탈 문화재 반환을 요구하고 있다. 대표적으로 파르테논 관에 전시된 파르테논 신전의 장식물( 엘긴 마블)들을 그리스에서 반환을 요구하고 있으며, 이집트, 중국, 인도를 비롯한 아시아, 아프리카 국가들 또한 약탈당한 자국 문화재를 돌려달라고 요구하고 있다. 한국의 약탈 문화재도 소장하고 있는데, 대영박물관 신라 금귀걸이가 한국이 자국의 유물을 보호할 능력을 상실하였을 때 해외로 유출된 문화재다. 대영박물관의 소개에 따르면 1938년 5월 24일 당시 한국을 지배하고 있던 일본을 통해 정식으로 구매한 것이라고 한다. 즉, 장물을 매입했다는 뜻이다. 실제로 성화에 못 이겨 돌려주거나 배상금을 지불한 경우도 있지만, 대부분 반환을 거부하고 있다.[11]
이렇다 보니 "대영박물관에서 영국 것은 건물과 경비원이 전부"라는 뼈 있는 농담도 있을 정도다. 물론 농담일 뿐 영국 유물이 거의 소장되어 있지 않다고 믿으면 곤란하다.[12] 루브르 박물관과 함께 문화재를 빼앗긴 나라들 입장에서는 큰 원성의 대상이다.
이러한 비난을 의식하고 있는지 최근에는 논란의 여지가 있는 고고학적 유물이나 문화재보다는 합법 구매가 가능한 근현대 미술작품 위주로 소장품을 매입하고 있다. 또한 수집가들에게 합법적으로 기증받은 컬렉션의 경우, 기증자의 프로필과 입수 경로를 상세히 밝히고 있다.
5. 위치
- 주소: 50 Great Russel St. London, WC1B 3DG.
세계구급 명성에 비해 박물관이 이면도로에 있어서 접근성이 떨어진다. 입구 근처를 둘러보면 이렇게 유명한 박물관으로 들어오는 길목이라는 게 믿기지 않을 정도이며, 길만 헤매고 허탕치는 관광객들도 상당한 듯하다.
- 런던 지하철
- 토트넘 코트 로드 역: Charing Cross Road를 북쪽으로 조금만 따라가면 Great Russel Street가 나온다. 우회전 후 조금만 걸으면 박물관이다.
- 홀본 역: High Holborn을 서쪽으로 따라 가다가 삼거리에서 New Oxford Street으로 들어간 뒤, 길 끝에서 Museum Street을 따라 북쪽으로 가면 Great Russel Street이다. 홀본에서 걸어가려면 아주 조금 가깝긴 한데 복잡하므로 웬만하면 토트넘 코트 로드로 가자.
- 런던 버스
- 98: British Museum OA (ID 50334)에서 하차하면 바로 코앞이다.
- 98: British Museum W (ID 71840)에서 하차 후, 버스 진행 방향으로 그레이트 러셀 스트리트를 따라가면 건너편에 있다.
- 8, 10, 14, 24, 29, 73, 134, 390, N5, N20, N29, N73, N253, N279: Great Russell Street R (ID 50347)에서 하차 후, 버스 진행 방향으로 조금만 따라 내려가면 그레이트 러셀 스트리트가 나온다.
6. 대영도서관과의 관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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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거의 브리티시 라이브러리 |
원래 바로 옆에 대영도서관이 자리하고 있었다. 그러나 대영박물관이 확장을 하면서 기존 대영도서관 건물까지 확장하게 되었고, 대영도서관은 유스턴에 새로 건물을 지어서 이사했다.
7. 여담
대영박물관이 그 명성과 수량 및 연간 방문객 통계 또한 전 세계 최고 수준이다보니 타 국가 간의 문화전쟁에 휘말리는 경우도 많다.예를 들어 대영박물관에서는 2009년 최초 행사 이후, 2016년부터 김치, 케이팝, 한가위 및 설날 축제 등 다양한 한국의 문화를 전 세계인들에게 소개하는 행사를 매년 개최하고 있다. 그런데 2023년 1월 20일에 트위터로 한국의 설날과 한복에 대하여 '아름다운 코리아의 문화'라고 소개하는 글을 올리고 한영 우호 차원에서 박물관 내에 한국 설날 기념공연을 기획했다가 중국의 전통문화를 한국의 문화로 둔갑시켰다면서 중국인들의 집단 테러를 받았다. #1 #2 #3 #4
결국 1월 22일에 게시물을 다 내리고 '중국 설'이라고 새로 게시하면서 사실상 항복하고 말았다(...). 당연히 국내 누리꾼들은 격하게 반발했다. 이에 국내 누리꾼들은 댓글에 한국과 관련된 이미지를 넣거나 한국을 언급해 대영박물관과 중국인들을 비판하고 있고, 중국인들은 누리꾼들을 조롱해[13] 두 나라 누리꾼글의 대립이 심해지고 있다. 와중에 글과 함께 영국이 2차 아편전쟁때 베이징을 함락시키면서 약탈한 그림을 올렸다. #1 #2 #3[14]
2023년 8월 직원이 유물 약 2,000여점을 훔쳤다는 사실이 뒤늦게 드러나 런던광역경찰청이 조사에 나섰고 박물관 측에서도 자체적인 조사를 진행했다. 유물 여러 점이 이베이를 통해 팔려나간 것이 확인되었고 박물관은 유출된 유물들을 환수하기 위한 작업에 들어갔다. 2021년부터 도난과 관련된 보고가 올라온 것이 밝혀졌고, 하트윅 피셔 박물관장은 이를 심각하게 받아들이지 못한 점과 도난 사건에 대한 책임을 지고 사임을 발표했다. 이 사건과 관련된 직원 1명은 해고당했다.
2023년 박물관 관람객 수 TOP 10 순위에서 3위(582만명)를 차지했다. #
8. 관련 문서
[1]
세계 3대 박물관이라는 말이 있으나, 일부 학술적 통계를 제외한 단순 '
세계 3대 ○○' 식의 리스트는
일본의 잡지사에서 뭔가 있어 보이기 위해 신변잡기적으로 줄세운 랭킹 같은 것으로 공신력이 없다. 사람에 따라
바티칸의
바티칸 미술관,
대만
타이베이의
국립고궁박물원,
미국
뉴욕의
메트로폴리탄 박물관,
러시아의
에르미타주 박물관을 포함시키는 의견도 많은 등 이렇다할 기준도 없다.
[2]
방문 당일 예기치 못한 변수를 예방하기 위해서는 번거롭더라도 대영박물관 홈페이지에서 예약 발권을 하여 입장을 보장받는 것이 안전할 수도 있다. 참고로 예약은 무료다.
[3]
센고쿠 시대에 일본과 교류하던 포르투갈 상인들을 통해 잉글레즈(inglez)라는 어휘가 수입, 왕국 전체를 칭하는 어휘로 여겨지면서 한자로 음역되었다. 오늘날 일본어에서는 한자 '영길리'를
가타카나로 쓴 '이기리스(イギリス)'라는 표기가 가장 널리 쓰인다.
[4]
과거에는 오디오 가이드 대여 서비스를 했지만 현재는 지원하지 않는다. 참고로 안내기를 만들 때
대한항공이 협찬해서
스카이패스 카드가 있으면 대여료가 할인되었다. 오디오 가이드에 한국어가 포함된 것도 이 덕분이다.
[5]
사족으로 이 유물 앞에는 이집트의 전설적인 축구선수 살라의 축구화가 전시되어 있다.
[6]
실제로 진저란 별칭은 적발에 대한 멸칭의 뉘앙스가 있어 함부로 입에 올리지 않는다.
[7]
회화가 아니라 목판화이다. 판화라서 영국박물관에만 있는 것이 아니라 일본을 비롯 여러 박물관에 소장되어 있다.
[8]
참고로 경주의
서봉총 남분 발굴에 참여한 인물이다.
[9]
바이킹들은 타고 다니던 배를 관 대용으로 사용했다.
[10]
여담이지만 이 건물은 훗날 무너져서 돌더미가 되어버렸다.
[11]
이런 모습은
가상의 아프리카 국가가 주 무대로 등장하는 영화인
블랙 팬서에서 풍자된다. 작중에 이 박물관을 풍자한 듯한 명칭의 대영제국 박물관(Museum of Great Britain)에 방문한
와칸다의
왕족 출신인
에릭 킬몽거가 큐레이터에게 아프리카에서 온 유물들의 가격을 묻고 이에 큐레이터가 여기 유물들은 파는 게 아니라며 정색한다. 그러자 킬몽거가 오히려 대뜸 "그럼 당신 선조들은 이걸 어떻게 얻었을까? 돈주고 사서? 아님 훔쳐서?"라고 쏘아붙이자 큐레이터가 말문이 제대로 막혀서 당장 나가달라고 말하는 장면이 있다. 이후 이 큐레이터는 독살 증세를 보이며 죽는데 사실 킬몽거의 여자친구가 몰래 커피에 독을 탄 것이었다. 그리고 이런 소동이 일어나는 사이 킬몽거는 유물 몇 점을 훔쳐 달아난다. 참고로 이 장면에서 큐레이터는 커피를 들면서 에릭에게 설명했는데, 이는 업계에서 상당히 무례한 행동으로 취급받는다.
[12]
실제로
유명한 서튼 후 투구를 비롯한 고대 영국 ~
대영제국 시기까지의 고고학적 유물과 생활용품, 장신구들이 매우 충실하게 전시되어 있다.
[13]
가끔씩 닉네임을 영어로 해 중국인이 아닌 척하는 중국인들도 있다.
[14]
국내 뉴스에서도 다뤘지만 대영박물관의 대처인 블랙 유머는 모르는듯 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