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약스칠란의 모습 |
Yaxchilan
1. 개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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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약스칠란은 멕시코에 위치한 마야 문명의 유적이다.우슈마신타 강 유역에 위치한 약스칠란은 그 기원이 선고전기 시절로 거슬러 올라갈 정도로 상당히 오래된 도시였다. 기원후 600년대 후반까지만 해도 그저 그런 중소형 도시들 중 하나였지만, 시간이 흐르면서 지역 패권국으로 성장했고, 9세기 초까지 번영을 이어나갔다. 약스칠란의 역사에 대한 가장 오래된 기록은 359년 7월 23일의 요팟 발람 1세의 즉위에 대한 내용이지만 그를 제외하면 딱히 볼만한 내용은 없다. 이후 5세기 경부터 본격적인 성장이 시작되었고, 인근 도시인 보남팍의 왕을 사로잡기도 했다. 특히 우슈마신타 강 유역의 최대 경쟁국이었던 피에드라스 네그라스와의 경쟁을 시작한 것도 바로 이 시기였다.
약스칠란은 피에드라스 네그라스와 죽고 죽이는 싸움을 하면서 끝없는 라이벌 관계를 이어나갔다. 460년에 약스칠란이 피에드라스 네그라스의 왕을 사로잡아 제물로 바치기도 했고, 반대로 514년에는 매듭눈 재규어 1세가 피에드라스 네그라스군에게 사로잡혀 죽기도 했다. 그나마 매듭눈 재규어 1세의 후계자인 키니치 타트부 졸 2세가 즉위한 이후 어느 정도 중흥에 성공하긴 했지만, 이후에도 인근의 팔렝케나 토니나, 피에드라스 네그라스 같은 다른 강대국들에게 이리저리 치이면서 살아야만 했던 걸로 추정된다.
약스칠란의 22번 건물 유적.
그렇게 이웃 국가들에게 빌빌거리며 살던 약스칠란은 681년 10월에 즉위한 이참나즈 발람 2세의 재위기간에 전성기를 맞게 되었다. 이참나즈 발람 2세는 60년이 넘도록 약스칠란을 다스렸고, 그 오랜 기간 동안 약스칠란에 수많은 건축물들을 세우며 정복전쟁을 벌이는 등 약스칠란의 전성기를 열어젖혔다. 명군이었던 이참나즈 발람 2세는 90대라는 어마어마한 고령의 나이에 승하했다. 이후에도 약스칠란의 전성기는 쭉 이어져서 보남팍을 공격해 찬 무아완 1세 왕을 속왕으로 세우는 등 다양한 업적을 남겼다.[1] 808년에는 최대 경쟁국이었던 피에드라스 네그라스를 침공해 키니치 얏 아크 2세를 포획해 죽이면서 피에드라스 네그라스를 끝장내는 데도 성공했다. 하지만 이후의 기록은 없다.
이후 약스칠란은 고전기 마야 사회의 붕괴와 함께 무너졌다. 그러다가 1833년에 들어서야 처음으로 약스칠란 유적에 대한 간략한 언급이 등장했다. 1882년에는 탐험가 알프레드 모슬레이가 도착해 유적 건물에 있었던 상인방 몇 개를 들어내 대영박물관으로 팔아넘겼다. 1903년에 하버드 대학교의 연구팀을 시작으로 1900년대에 들어 수없이 많은 마야 학자들이 즐겨찾는 성지가 되었다. 하지만 워낙 가기 어려운 오지에 있어서 관광객들의 방문은 거의 없는 수준이었다. 최근까지만 해도 인근 100마일 이내에 도로가 없을 정도였기 때문이다. 그나마 지금은 인근에 멕시코 307번 국도가 뚫렸지만 아직도 국도 인근에서 약 1시간 동안이나 배를 타고 강을 거슬러올라가야 도달할 수 있을 정도로 정글 한가운데에 있어 가는 관광객은 거의 없는 수준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