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쑨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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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화민국 초대 임시대총통
쑨원
[ruby(孫, ruby=Sūn)][ruby(文, ruby=Wén)](손문) | Sun Yat-sen
파일:쑨원.png
본명 쑨더밍
손덕명 | 孫德明 | Sūn Démíng | Sun Dakming
출생 1866년 11월 12일 ( 청나라 동치 5년)
청나라 광동성 광주
(現 중화인민공화국 광둥성 중산시)
사망 1925년 3월 12일 (향년 58세)
중화민국 베이징시 협화의원
(現 중화인민공화국 베이징시 둥청구 협화의원)
묘소 장쑤성 난징시 자금성 중산릉
재임기간 초대 임시대총통[1]
1912년 1월 1일 ~ 1912년 3월 10일
서명
파일:쑨원 영문 서명.svg
|
파일:쑨원 서명.sv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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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lbgcolor=#546285><colcolor=#fff> 본관 광동성 동완현
부모 아버지 손달성, 어머니 양태군(楊太君)
배우자 루무전 ( 1885년- 1915년)
천추이펀 ( 1892년- 1925년)
아사다 하루 ( 1897년- 1902년)
오쓰키 가오루 ( 1903년- 1906년)
쑹칭링 ( 1915년- 1925년)
친인척 동서 장제스[2]
자녀 아들 쑨커, 장녀 쑨진위안, 차녀 쑨진완, 삼녀 미야가와 후미코
학력 서의서원(現 홍콩대학 의학부) 졸업
직업 정치인, 외과의사, 혁명가
사상 삼민주의
종교 개신교 ( 회중교회)
신장 168cm[3][4], O형[5]
정당
쑨원
손문 | 孫文 | Sūn Wén | Sun Man
얏센
일선 | 逸仙 | Yìxiàn | Yat-sen
별명 중산 (中山, Zhōngshān) }}}}}}}}}
파일:15so001056rnp59o1or0.jpg
공식 초상화
1. 개요2. 이름3. 생애4. 평가5. 기타6. 대중매체에서7. 주요 경력8. 관련문서9. 둘러보기

[clearfix]

1. 개요

쑨원은 정심(正心), 성의껏 모두 앞에서 선서한다. 지금부터 구(舊)를 없애고 신(新)으로 바꾸고 자립하여 국민이 된다. 성의를 다하고 전력을 당하여 중화민국을 옹호하고, 삼민주의를 실행하고, 오권헌법을 채용한다. 정치를 공명하게 하며, 인민을 안락하게 하고, 국가의 기초를 영원히 강고하게 하며, 세계 평화를 유지하려고 노력한다.
1919년(민국 8년) 1월 12일, 중화혁명당 모임에서.
청나라 정치사상가이자 중화민국의 초대 임시 대총통으로, 중화민국 국부(國父)다. 진나라 시황제 이래 2,000년 이상 이어져 오던 중화제국 전제군주제를 무너뜨린 혁명가로서 중화민국 중화인민공화국 양쪽에서 모두 존경받고 있는 인물이다.[6]

한국에서는 당시 중국 지도층 중에서는 처음으로 대한민국 임시정부를 승인한 인연으로 인해 1968년 대한민국장을 수여하여 독립유공자로 인정하고 있다.

2. 이름

본명은 덕명(德明)인데, 이후 스스로 (文)이라 이름을 바꿨다. 공자가 존경한 고대 문명국 주나라의 초대 왕이 무왕(武王)이고 그의 아버지가 문왕(文王)이며, 중국은 옛날부터 암암리 중국 문화의 계통을 상징적으로 문왕 → 주공 → 공자로 이어진다 생각하였다. 문(文)이란 글자는 아무한테나 올리지 않는, 중국에서 최고의 시호였다. 따라서 이름을 문으로 바꿨을 때부터 자신이 새로운 공화국 문명의 시조가 되겠다는 야망을 가진 것으로 추측된다.

관화 병음으로는 쑨원(Sūn Wén), 쑨원의 모어 광동어로는 쉰만(syun1 man4). 호(號)는 중산으로 일본에 있을 때 사용한 가명인 나카야마(中山)[7]에서 유래하였다. 그리고 광둥성 중산시는 여기서 따서 붙인 지명이다.

현대 중국인들에게는 손중산(孫中山)이라는 경칭으로 불리고 있다. 영미권에선 쑨원의 호 일선(逸仙)의 광둥어식 발음 얏센(Yat-sen)으로 더 잘 알려져 있다. 쑨얏센(Sun Yat-sen)은 중국 광저우시에 있는 중산대학의 영어 명칭 Sun Yat-sen University로도 쓰인다. 또 대만 가오슝시에 있는 국립 중산 대학의 영어 명칭도 National Sun Yat-sen University이다.

대한민국에서는 한국 한자음손문으로 잘 알려졌다.

3. 생애

파일:상세 내용 아이콘.svg   자세한 내용은 쑨원/생애 문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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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 평가

쑨원은 그의 행적이나 사상, 상징성 등으로 인해 여러 측면에서 평가되어, 오늘날 중화민국이나 중화인민공화국 양안뿐만 아니라 홍콩, 마카오 더 나아가 동남아 등의 중화권 화교 지역에서도 대체로 존경받고 있다.[8]

중화민국이야 사실상 쑨원이 건국자이니 그렇다 치더라도, 중화인민공화국에서조차 쑨원의 묘를 중산묘가 아닌 중산(中山陵)이라고 표현하는 것을 보면 그가 현대 중국사에 끼친 영향이 얼마나 큰지 짐작할 수 있다. 중국에서 묘지명으로 능(陵)은 천자만 쓸 수 있기 때문이다. 중산릉 부근에 명나라를 세운 홍무제의 효릉(孝陵)이 있는 것도 이와 무관하지 않다.

파일:external/www.keyunzhan.com/4504.jpg
중국 난징 교외에 위치한 중산릉. 1929년 6월 1일에 안장되었다.

이러한 배경으로 인해 쑨원을 기념하는 건물이 중화인민공화국 중화민국, 싱가포르 세 곳에 모두 존재한다. 중화인민공화국은 광저우의 중산기념당, 중화민국은 타이베이 국부기념관, 싱가포르에도 중산기념당이라는 이름으로 존재. 영어로는 모두 Sun Yat-sen Memorial Hall로 불리고 위치해 있는 도시만 구분한다.

한마디로 중화권에서는 어느 진영에서도 적극적 안티를 찾아보기 힘든 인물. 그나마 개인 단위가 아닌 집단 단위로 뽑자면 대만 독립파 중 강경파들 정도가 있는데, 이들도 쑨원을 자기들과는 무관한 인물로 여기기 때문에 다른 중화권처럼 국부로 대접하지 않을 뿐이지 딱히 그의 행적을 까는 건 아니다. 연장선상에서 중화인민공화국 학자들도 쑨원하면 떠오르는 신해혁명이 부르주아들의 왕조 전복 운동이었지 무산계급들의 계급 타파 운동은 아니었다며 평가절하하는 측면이 있는데[9] 즉, 중국 학자들 입장에선 신해혁명도 평가는 할 만하지만 공산 혁명이 더 위대했다는 것이다. 하지만 이것도 공산 혁명보다 덜 중요하다는 거지 신해혁명 그 다음으로 중요했다는 정도 입장이기 때문에 쑨원의 적극적 안티라고 보기는 어렵다.

삼민주의를 주창하며 안팎으로 썩어들어가던 중국의 개조를 위한 청사진을 제공한 인물이다. 그의 이념과 지도가 신해혁명, 국민당의 1차 북벌 등 굵직한 사건들에 큰 영향을 미쳤다. 그럼에도 본인의 대에 벌어진 일들에서는 끝내 성공을 보지 못했고 계속되는 실패에 좌절해야 했다. 하지만 중국국민당, 중국공산당의 후계자들이 그의 청사진을 바탕으로 군벌들을 토벌하고 새로운 정치 체제를 도입하는 데 성공한다.

중화인민공화국, 중화민국 모두 쑨원을 진시황 이래 2,000년간 이어져 온 천자 제도를 최초로 전복시킨 혁명의 선행자(先行者), 건국 이념을 제공한 중화민족의 국부(國父)로서 존경하고 있다. 객가인으로 알려져 있고, 광둥성 중산시(中山市) 출생이기 때문에 흔히 생각하는 표준 중국어를 쓰던 사람은 아니고, 홍콩 영화에 자주 나온 광동어 구사자였다.[10] 소위 삼민주의로 통칭되는 현대 중국의 이념적 뼈대를 세운 사람으로, 작금의 중화권에서 여러모로 가장 중요하게 취급받는 근현대 시기 인물 중 한 명이다.

4.1. 중화민국

중화민국 국민대회는 전체 국민의 위탁으로 손중산(孫中山) 선생의 중화민국 건국 이념에 근거하고 국권을 공고히 하며 민권을 보장하고 사회안녕을 수호하며 인민의 복지를 증진하기 위하여 이 헌법을 제정하며 전국에 공포 시행하고 영원히 준수한다.
中華民國國民大會受全體國民之付託,依據 孫中山先生創立中華民國之遺教,為鞏固國權,保障民權,奠定社會安寧,增進人民福利,制定本憲法,頒行全國,永矢咸遵。
중화민국 헌법 전문
1946년 12월 25일 제정된 중화민국 헌법은 아예 헌법 전문에 중화민국은 쑨원의 삼민주의에 근거했다고 못 박아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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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에서부터 장징궈, 리덩후이, 천수이볜, 마잉주, 차이잉원, 라이칭더이다.

중화민국 정부는 국부(國父)로 그를 추앙하고 있다. 주요 관공서마다 그의 초상화가 걸려있고, 장제스를 비롯한 역대 총통들은 정당 관계없이 모두 그의 초상화 앞에서 취임 선서를 거행하고 있다.

다만 쑨원의 위상과 별개로 민주주의가 제대로 정착된 21세기 들어서도 이런 신격화에 가까운 정치인 숭배 현상이 이뤄지고 있다는건 비판의 여지가 있는 대목이긴 하다. 쑨원 본인부터가 기독교 신자로 우상숭배를 배척했던 인물이란 걸 생각하면 더더욱 아이러니하다.

범록연맹을 비롯한 대독진영 강경파 에서는 은근히 부정적 인식을 받기도 한다. 이것은 쑨원 개인이 대만에 뭘 잘못해서라기보다는 "대만과 중국은 별개이다"라는 인식에서 쑨원은 외국인에 불과하고, 또 쑨원을 추종했던 국민당과 장제스가 대만에 와서 철권독재를 편 데 대한 반작용이다.[11] 이들은 쑨원을 추종하는 것 역시 국민당 시절 중국화 교육의 유산이라고 규정한다. 중화민국 국민의례에는 국기와 국기 앞에 거는 쑨원 사진에 3차례 허리를 숙여 절하는 것이 있는데, 일부 독립파들은 이것도 거부하는 경향이 있다. 실제로 정난룽은 쑨원을 국부로 인정하기를 거부했고 대학 시절 교양 필수 과목인 국부 사상을 이수하지 않아서 졸업을 못 했다. 대만에서는 천수이볜 정부 시절 역사 교과서에서 쑨원을 기존의 국부가 아닌 외래인으로 규정하여 논란이 되기도 했고, 2010년대 타이난시에서는 쑨원 동상이 일부 독립파 대만인들에게 파괴되기도 하였다.[12] 그 외 쑨원의 동상에 "중화민국은 떠나라, 국민당은 물러나라"고 글을 남긴 사례도 있다. 물론 화독 혹은 온건파들은 국부까진 아니라도 아시아의 민주주의 지도자 정도로 쑨원을 평가한다.

4.2. 중화인민공화국

20세기에 들어와 중국에는 천지개벽의 위대한 역사적 변혁이 일어났다. 1911년 쑨원 선생이 지도한 신해혁명은 봉건적 군주제를 폐지하고 중화민국을 창건하였다. 그러나 제국주의와 봉건주의를 반대하는 중국인민의 역사적 임무는 아직 달성되지 않았다. 마오쩌둥 주석을 수령으로 하는 중국공산당이 이끌었던 중국의 여러민족인민은 오랜 기간에 걸친 곤란하고 곡절 많은 무장투쟁 및 그밖의 형태의 투쟁을 거쳐 1949년에 드디어 제국주의, 봉건주의 및 관료자본주의의 지배를 물리치고 신민주주의 혁명의 위대한 승리를 전취하여 중화인민공화국을 창건하였다. 이때부터 중국 인민은 국가의 권력을 장악하고 국가의 주인이 되었다.
중화인민공화국 헌법 서언 中

파일:sunwen.jpg

2016년 쑨원 탄생 150주년 기념식. 기념연설을 하는 사람은 시진핑이다.

중화인민공화국의 경우 쑨원을 마오쩌둥에 앞선 혁명 선행자 정도로 평가한다. 사실 몇몇 지식인의 동아리로 출발한 중국공산당이 대폭적으로 세를 확장할 수 있던 것도 쑨원이 국공합작을 받아들였기에 가능했다. 게다가 쑨원은 국민당 우파의 반발에도 공산당을 품고 가려고 했다. 이는 제1차 세계 대전 이후 독일이 가지고 있던 이권을 중국에 반환하기 인색하고 서로 나눠가지려던 영미일 열강의 거동에 쑨원이 실망한 탓도 있었다. 때문에 쑨원은 당시까지만 해도 그나마 약소국을 도우던 레닌 소련을 환영하게 되고, 이들의 지원을 받아 황포군관학교와 국민혁명군을 창건하게 된다. 또 쑨원의 마지막 부인인 쑹칭링 역시 동생의 남편이었던 장제스와 계속 대립하다 장제스가 대만으로 쫓겨날 때도 같이 가지 않고 본토에 남아 중공 정권에 참여했고 쑨원 사후에 공산당에 대한 탄압으로 일관하던 장제스와 달리 생전에도 공산당에게 유화적이었기 때문에, 중국 공산당은 전 중화민국 정권의 창시자이긴 해도 쑨원을 딱히 격하할 필요가 없었다.

파일:BandPhoto_2020_06_11_11_59_54.jpg

덕분에 국경절이나 전승절과 같은 주요 기념일에는 마오쩌둥의 초상에 앞서 쑨원의 초상화가 등장한다. 상술했듯이 묘지를 으로 칭한다거나 주요 도시[13]중산이라는 도로명이나 지명이 거의 반드시 존재할 만큼 공식적으로 중국의 위인 대우는 확실히 받고 있다. 오히려 중국에서는 지명에 공산당 지도자의 이름이 붙는 경우는 거의 없다. 다만 중화인민공화국의 건국자 격인 마오쩌둥보다는 아래로 취급받는다. 중국의 모든 화폐에는 마오쩌둥의 초상이 들어가 있고 쑨원의 초상은 들어가 있지 않으며 천안문 광장에도 마오쩌둥의 초상화만이 걸려 있다.

또 대만에서도 높이 평가받고 있는 만큼, 하나의 중국을 강조하기 위해 쑨원을 양안의 공통 국부로서 강조하는 경향도 있다. 대만독립파들이 부정적으로 평가하는 장제스에 대한 평가가 대륙에서 과거보다 나아진 것도 이 때문이다. 이러다보니 쑨원 탄생 150주년 기념식에 본토에서는 시진핑 주석이 참가하였으나, 정작 이때 대만은 조용한 편이었다. 당시는 차이잉원 행정부 1기가 막 출범하고 연초에 TWICE 쯔위 청천백일만지홍기 논란으로 인해 대만 내 반중 감정이 고조된 상태였다. 쉽게 말해 하나의 중국을 강조하려고 쑨원을 띄우는 중공의 속내가 뻔히 보이기에 오히려 대만은 차분했다는 것이다. 차이잉원 정권이 대만 독립파를 지지층으로 두고 있는 정권이니 더 그랬다.

4.3. 기타

홍콩이나 마카오의 경우 쑨원 본인부터가 홍콩과 인연이 깊었고 홍콩 사람들과 똑같은 언어인 광동어를 쓴 점 등 때문인지, 국민당을 지지하는 사람들 뿐만 아니라 작금의 민주파 홍콩인, 마카오인들에게도 민주주의를 추구한 선구자로서 나름 존경받고 있다. 이는 홍콩 독립운동 지지자들도 마찬가지라, 쑨원을 외부에서 온 사람 취급하는 대만 독립파들과 비교해보면 재미있는 부분이다.

홍콩 본토파들은 쑨원의 혁명 정신처럼 우리도 홍콩을 중국으로부터 독립시키자고 하고, 민주파들은 중공에 맞서 민주주의를 수호하고 중국 내 민주화 운동가들에게 동기부여를 하기 위해 쑨원의 이미지를 이용하는 측면이 있다.

또 홍콩, 마카오 뿐만 아니라 인접한 광둥성은 중국에서 기독교 교세가 상대적으로 강한 만큼, 기독교 신자였던 쑨원을 더 취급하기도 한다. 여담으로 홍콩인 기독교 신자들이 꼽는 이름난 중화 기독교인으론 쑨원 외 중국 최초의 목사 량파 목사, 이후 중화민국 총통을 지낸 장제스 등이 있다.

동남아 등의 중화권 화교 지역에서도 대체로 존경받고 있다.

이런 상황을 보면 중화권의 다양한 진영에서 서로서로 쑨원의 필요한 점을 평가하고 이용한다고 볼 수 있다. 영어 위키백과를 비롯한 서구권에선 쑨원을 민주사회주의자로 분류하고 있고 실제 그런 성향이 있지만, 쑨원의 사상인 삼민주의[14]는 오늘날 진영적으로 보면 좌우파적 사상의 성격도 모두 가지고 있기에, 각 진영에선 자기들한테 필요한 부분만 강조하는 식이다.[15] 즉, 삼민주의에서 민족주의는 하나의 중국, 민생주의는 경제적 평등, 민권주의는 서방식 민주주의와 통하는 바가 있으며, 쑨원의 계승을 표방하는 각 정치세력들은 이들 중에서 자기에 맞는 부분만 강조하면서 쑨원의 이름을 빌리는 모양새다. 덕분에 살아생전엔 실권이 부족해 여러모로 고생했던 쑨원의 삶과 사상이, 오히려 죽고 나서 더 대접받는 측면도 있다.

물론 쑨원을 무조건 찬양하는 이들만 있는 게 아니라서 그를 반대하는 반대자들도 꽤나 많았다고 한다. 오권분립 삼민주의를 내세울 때 여러 군벌의 인사들과 일부 한족주의 성향의 일부 국민당이 쑨원에게 반대 의사를 표명했고 오족공화[16]를 헌법에 명시하자 오히려 그에게 반감을 품은 이들도 있다고 한다. 중국 연방공화국을 꿈꾸던 몇몇 이들도 쑨원에게 의문을 가졌다. 쑨원을 중화민국 시절 때 인물이라며 무덤을 훼손시키려던 홍위병들도 마오쩌둥이 존경한 인물이라며 말한 한 농부의 제지가 아니었으면 큰일 날 뻔 했다.

5. 기타


파일:attachment/love_&_war.jpg
혁명은 불이고, 기독교는 기름이다. 사람들은 나의 혁명만 보고, 나의 신앙을 보지 못한다. 기름이 없으면 어떻게 불이 일어나겠는가?

6. 대중매체에서

7. 주요 경력

중화민국 임시 대총통
파일:중화민국 임시정부 국장.svg
중화민국 임시 대총통 선출 1대 2대
쑨원 위안스카이
중화민국 호법군정부 육해군 대원수
(초임) 초대 대원수제도 폐지
쑨원
중화민국 비상 대총통
(초임) 초대 광동정부 붕괴
쑨원
중화민국 육해군대원수대본영 육해군 대원수
(초임) 초대 대행
쑨원 후한민

8. 관련문서

9. 둘러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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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공식 직책명은 중화민국 임시대총통. [2] 쑨원의 후계자로 유명한 그 장제스 맞다. 쑨원의 배우자 여동생 장제스가 결혼했다. 다만 장제스와 쑹메이링 간의 결혼은 쑨원의 사망 2년 후인 1927년에 이루어졌다. [3] # [4] 후쭝난의 증언. [5] # [6] 중화민국에선 헌법 전문에 이름을 새길 정도이고, 중화인민공화국 역시 헌법 서언에 그를 언급하며, 다양한 매체에서 혁명가라 칭하는 등 중화권에서의 위상이 대단하다. [7] 정확히는 中山樵. 독음은 나카야마 키코리(なかやま きこり)라고도 하고 나카야마 쇼(なかやま しょう)라고도 하는데 인터넷에서는 전자가 더 많이 보인다. [8] 동남아에 가면 쑨원 기념관이 있는게 괜히 있는게 아니다. [9] 물론 중화민국 학자들은 신해혁명이 전 계층이 참여한 전민혁명이었다며 반박한다. [10] 광동어만 가능 했고, 표준 중국어는 거의 불가능 해서 이홍장이 매우 애를 먹었다고 한다. [11] 쑨원은 대륙에서 활동하다가 사망했기에 국부천대 이후 국민당 정권의 대만 탄압에 직접적인 책임은 없다. 쑨원 본인은 일본이 통치하던 대만을 몇차례 방문한 적은 있었다. [12] 여담으로 이때 일부 대만 원주민들은 이른바 본성인들도 결국 외성인보다 좀 더 일찍 대만에 이주한 외래인에 불과할 뿐 아니냐며, 내로남불하지 말란 식으로 정성공 동상에 연기를 피우기도 했다. [13] 베이징, 상하이, 광저우, 칭다오 [14] 민족주의(民族主義), 민권주의(民權主義), 민생주의(民生主義)를 뜻한다. [15] 장제스 독재정치를 펼쳤지만, 그와는 별개로 그 당시 중화민국(대만)의 헌법이 상당히 진보적인건 쑨원의 영향 덕분도 있다. [16] 한족, 만주족, 몽골족, 무슬림, 티베트족으로 구성된 중국의 겨레들이 어울리자는 사상이다. [17] 훗날 중화민국의 고위직 [18] 다만 레닌도 진짜 마구잡이 숙청하고 죽이던 스탈린에 비하면 양반이었다. [19] 그의 후계자라고 할 수 있는 장제스 몽골을 되찾아야 할 땅으로 인식해 중화민국은 2012년 몽골의 독립을 승인하기 전까지 실제 몽골을 자국 영토로 인식했다. 또한 한국의 독립을 도우며 한편으로는 독립될 한국을 국민당의 영향력 아래에 두려고 계획했다. 조소앙이 " 대한민국 임시정부에 장제스가 사상 및 영향력을 과하게 주입하고 있다."고 미국에 불평을 할 정도였다. [20] 애초에 쑨원은 생애의 대부분을 추하게 몰락 중이던 이민족들의 정복 왕조 청나라에서 보냈다. 당시 조선도 마찬가지였으나, 중국도 외국 열강들에게 온갖 공격을 받던 시기였다. 쑨원이 민족주의를 내세웠다고는 해도 이는 외국의 침략에 맞서는, 이른바 저항적인 민족해방에 가까운 것이었다. [21] 사실 흔히 착각하는 것과 달리 전통적 중화사상은 주변 약소국이 중국을 상국으로 모시면 중국도 그 국가들에게 물질적으로 보상을 해줄 것을 강조했으며, 결코 국수주의로 점철된 이기적인 사상이 아니었다. 쑨원도 전통적 중화사상에 아시아주의적 가치를 더하여 계승했던 것이다. 국내에선 중국 내셔널리즘이나 한족 민족주의를 부정하기 위해 이들을 그저 전근대부터 통용된 중화사상 하나로만 결부시키고, 나아가 동의어로 간주하는 경향이 있는데, 현대의 중국 내셔널리즘은 원래 중화사상의 동의어가 아니라 별개의 개념이다. [22] 실제로 그 시기에 중국 대륙에서 활동하던 독립운동가였던 박은식은 한국의 독립운동을 위해 일단은 중국과 협력해야겠지만 그와 같이 "만일 중국이 강성해진다면 교만해질 것이며 한반도에 대한 야심이 생겨 중국의 동정은 얻을 생각도 할 수 없을 것이다."라고 날카롭게 경고했다. [23] 이는 계획으로만 끝났고 이후 중화인민공화국 건국 뒤인 1953년에 마오쩌둥이 구상하게 된다. [24] 소련이 소비에츠키 소유즈급 전함을 인민해방군 해군에게 공여해 줬다는 아스트랄한 설정(...) [25] 쑨원은 부패한 몰락 왕조를 무너뜨린 엄연한 혁명가인데도 그냥 개신교인이라 넣은 것으로 보인다. 템플 기사단/템플 기사단원과 협력자 문서를 보면 미디어 믹스 등에서 딱히 출연하지 않는데도 기독교인, 우익, 독재자(일부 공산주의자들도 포함) 등이 템플 기사단에 포함된 것을 볼 수 있다. [26] 을축양요 당시 좌초된 프랑스 선박의 선원들을 구하러 나섰다가 자국의 오인 사격을 맞고 조선인 신도들과 함께 순교한 베르뇌 주교를 기리기 위해 조선식 이름인 경일을 붙였다. [27] 원 역사에서는 연방제는 중국을 분열시키는 것이라며 반대했다.(…) [28] 작중 유럽에서 전쟁이 벌어지자 전쟁의 참상을 최대한 막고 병사들을 구하기 위해 조선에서 조직되었다. [29] 조지원 역시 위선일지는 몰라도 손문을 늘 친구라고 부르면서 친해진다. [30] 그와중에 위의 중화사상 모습을 반영하여 한국을 도와주려다가 오히려 중화민국이 경제적으로 곤란해진다. [31] 이때 한국에 망명와서 짜장면을 먹는장면이 되게 불쌍해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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