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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수정 시각 : 2021-06-13 10:57:27

장쭤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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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lbgcolor=#020894><colcolor=#fff> 봉천군벌 1대 수장
중화민국 초대 육해군대원수
장쭤린
張作霖 | Zhang Zuolin
파일:external/upload.wikimedia.org/Zhang_Zuo-lin.png
이름 <colbgcolor=#fff,#1f2023> 張作霖 | 张作霖
장작림 | Zhāng Zuòlín
우정(雨亭)
출생 1875년 3월 19일
파일:청나라 국기(1862~1889).png 청나라 봉천성 해성현[1]
사망 1928년 6월 4일 (54세)
중화민국 봉천성 황고둔
국적 파일:청나라 국기.svg 청나라
파일:중화민국 북양정부 국기.svg 중화민국
직업 정치가, 군인
배우자 초취 조춘계(赵春桂)
계취 노수훤(卢寿萱)
측실 대헌옥 (戴宪玉)
측실 허주양 (许澍旸)
측실 수의(寿懿)
측실 마월청(马月清)
자녀 슬하 9남 7녀
장남  장쉐량(張學良)
대원수
재임 기간
1927년 6월 18일 ~ 1928년 6월 2일 (350일)

1. 개요2. 생애3. 여담4. 가족관계5. 주요 경력6. 창작물7. 참고문헌

[clearfix]

1. 개요

봉천군벌의 수장으로 중국 동북 화북 지방을 지배한 중국 군벌 시대의 가장 대표적인 군벌 중 하나이자 장제스 등장 이전까지는 대륙에서 가장 막강한 힘을 가졌던 군벌의 수장. 그가 보유한 군사력은 국민혁명만 아니었으면 천하통일을 이룰 뻔한 수준이었다. 일각에서는 당시 중국의 주요 세력으로 국민당과 공산당만이 아닌 봉천군벌 역시 한 축을 형성했다고 보기도 한다. 실제로 그는 중국 공산당을 창당한 리다자오를 공격한 뒤 사로잡아 처형했다.

2. 생애

파일:상세 내용 아이콘.svg   자세한 내용은 장쭤린/생애 문서
번 문단을
부분을
참고하십시오.

3. 여담

상당히 호탕한 기질을 가졌다고 알려져있다. 1917년에는 자신에게 폭탄을 던진 테러범을 심문한 뒤 도리어 애국자라고 하며 그대로 훈방한 적이 있었다고 한다.

이런 성격을 보여주는 사례로는 첫번째 제1차 세계 대전 종전 후 펑텐군기창(奉天軍械廠)[2] 설립 초기의 일화도 있다. 제1차 세계 대전까지 독일 최대의 군수기업이던 크루프 베르사유 조약으로 판로가 막히게 되자 많은 잉여 제작설비를 해외에 수출했다. 중국에서도 판매를 위탁받은 네덜란드 업자가 상하이의 신문에 판매 광고를 냈다. 장쭤린은 이를 보고 병공창 총변(總辦)이던 한린춘(韓麟春)에게 이 설비를 구입해오라고 거금을 쥐어 그를 상해로 보냈다. 그런데 상하이에 간 한린춘은 이 돈을 도박장에서 탕진해 버렸다... 자금을 다 날린 뒤에 주군의 비용을 탕진한 것에 대해 죄책감과 두려움이 엄습한 한린춘은 자살을 결심하고 다시 동북으로 돌아가 장쭤린에게 “구매 자금을 도박장에서 다 잃었습니다. 이제야 비로소 도박의 도를 깨우친 듯합니다. 득도한 선인들의 기분이 어땠을지 짐작이 갑니다. 여한이 없으니 황포강에 투신하겠습니다.”는 내용의 유서를 보냈고, 이를 받아본 장쭤린은 도리어 “내 부하 중에 득도한 놈이 생겼다”며 포복절도한 뒤 군수처장을 불러다 "돈 백만 원을 줄 테니 한린춘에게 전해라, 절반은 무기 구매, 절반은 도박에 쓰라 하고 절대 강물에 뛰어들지 말라 단단히 일러라" 라고 했다. 뜻밖의 처분에 감동한 한린춘은 다시 도박장에 가서 본전의 4배를 따고는 손을 턴 뒤, 딴 돈을 한 푼도 남기지 않고 기계 구입에 사용했다고 한다. 장쭤린은 그리고 나서 한린춘이 돌아올 때 직접 역에 나가 "너 같은 부하를 둔 게 영광"이라며 엉덩이를 두드려줬다고 한다. 이게 정확히 언제적 일화인지는 불분명하나, 이런 우여곡절을 거쳐 1921년부터 건립된 펑텐군기창은 1928년 완공이 되자 중국 최대 규모의 종합 무기공장으로 발전한다.[3]

또 두번째 일화는 한번은 자신이 세운 군사학교 졸업식 연설문을 작성했는데, 정작 졸업식 당일 날은 내용을 다 잊어버리고 말았다.(...)이에 장쭤린은 "미안하다, 너희들에게 할 말을 다 잊었구나. 열심히 하라, 그럼 나중에 내 모든 것을 너희에게 주겠다." 며 짧은 연설로 마쳤고, 생도들은 환호하며 박수를 쳤다. 군벌이 모든 것을 주겠다 함은 그 지위까지 넘겨주겠다는 뜻이니 좋아할 수 밖에. 그런데 연설을 마치고 퇴장하면서 장쭤린은 하나 잊은 것이 있다는 듯, "내가 잠시 실언을 했다. 다른 건 다 줘도 같이 사는 여자들은 못 주겠다." 라고 정정하자 생도들은 곧장 폭소를 터트렸다.

1927년 군대를 이끌고 소련 대사관을 공격해 중국 공산당 설립한 리다자오를 붙잡아 처형했다.

그를 암살했던 고모토 다이사쿠의 운명은 이후 기구했는데 나중에 중일전쟁에도 참여했다가 일본이 패배하면서 산시왕 옌시산의 수하가 되어 그에게 협조했다. 이후 옌시산이 패하여 광저우로 달아나자 그는 공산당의 포로가 되었다. 공산당은 그를 전향시키려 했으나 고토모 다이사쿠는 전향을 거부했고 황구툰에서 장쭤린을 암살한 것이 국가를 위한 대의였다고 끝까지 정신승리를 하다가 중화인민공화국의 감옥에서 옥사했다.[4]

4. 가족관계

장쭤린/가족관계 문서 참조.

5. 주요 경력

중화민국 역대 육해군 대원수
파일:중화민국 대원수기.png
대행 초대 북양 정부 멸망
후웨이더 장쭤린
( 1927년 6월 18일 ~ 1928년 6월 2일)
봉천군벌 역대 수장
파일:봉천군벌 기.svg
1대 장쭤린 2대 장쉐량

6. 창작물

파일:건군대업장작림.jpg

7. 참고문헌


[1] 현 중국 랴오닝성 안산 시 하이청 시. [2] 후일 동삼성병공창(東三省兵工廠)으로 개칭되어 일본 제국의 괴뢰국 만주국의 주요 군수공장이 되었다가, 일본군이 접수하여 관동군야전병기창, 펑텐조병소주식회사 등으로 발전했다. 보통은 선양병공창(沈阳兵工厂)이라고도 불린다. [3] 1930~40년대 전성기에는 생산 노동자가 3만 명에 이를 정도였다. [4] 말은 저렇게 했지만 소속을 계속 갈아타면서 살아남은 모습에서 알 수 있듯이 단순한 기회주의자였을 가능성이 높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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