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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수정 시각 : 2024-10-17 19:26:54

홍콩 독립운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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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콩 독립운동
香港獨立運動
Hong Kong Independence Movement,
(Radical) Localism in Hong Kong
파일:홍콩 독립운동기.svg
홍콩 독립운동 깃발[1]

1. 개요2. 운동 성격3. 관련 기사들4. 홍콩의 법적 지위5. 독립 주장의 원인
5.1. 반분열국가법 개정5.2. 불완전한 민주주의5.3. 일국양제 훼손 시도5.4. 본토와 홍콩 양 측 주민간의 정서 차이5.5. 학생운동권의 홍콩 내셔널리즘 대두5.6. 서방 국가와의 연계 가능성과 그에 따른 기대
6. 대내외 반응
6.1. 중화인민공화국6.2. 대만 정치권6.3. 중국 민주화 세력6.4. 홍콩
6.4.1. 여론조사
6.5. 대한민국6.6. 베트남6.7. 서방 국가
7. 주의할 점8. 만약 실제로 독립한다면 일어날 일9. 기타10. 관련 문서

1. 개요

홍콩 독립운동 홍콩 중국으로부터 완전 독립하여 1965년 말레이시아의 자치령으로부터 독립한 싱가포르[2][3] 같은 주권 국가로 건국하려는 분리주의 운동이다.

국가 형태는 공화국이 될 수도 있고 영국 국왕을 국가원수로 모시는 입헌군주국( 영연방 왕국)이 될 수도 있다.[4]

주요 구호는 2019년 홍콩 민주화 운동에서 제창된 광복홍콩 시대혁명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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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년 홍콩 민주화 운동 시위가 장기화하면서 홍콩 독립을 주장하는 "홍콩 독립"이라는 구호가 시위에서 대놓고 나온다. 홍콩 독립을 주장하는 본토파의 지지율도 급격히 상승하고 있다. 기사

무력 진압에 대응할 장비가 따로 없어서인지 , 투석기 등을 사용하고 있다.

홍콩 국가보안법 이전에는 정치권 진입에는 제한이 있을지언정 관련 사회운동 자체를 처벌하지는 않았으나, 국가보안법이 도입되면서 홍콩 독립운동은 완전히 불법화되었고 현지에서 이러한 견해를 보이는 것 자체만으로도 처벌될 수 있게 되었다.

2. 운동 성격

'홍콩 자치운동'(Hong Kong Autonomy Movement)과는 비슷한 점이 있지만 명백히 다르다. 홍콩 자치운동은 홍콩이 중국의 일부분으로 남는 것은 인정하되, 현재 홍콩 자치정부가 일정하게 받고 있는 중앙인민정부의 간섭을 거부하고, 중국 대륙과는 다른 체제[5]를 인정받는 홍콩인에 의한 자치를 요구하는 운동이다.

애초에 특별행정구라는 제도가 일국양제에 의거한 고도의 자치를 보장하기 위한 것이지만, 홍콩 자치운동의 지지자들이 주장하는 것은 일국양제를 넘어 도시국가 수준의 자치권을 요구하는 것으로, 정확하지는 않지만 덴마크 - 그린란드 관계를 중국-홍콩에 적용하자는 취지로 보면 된다.

반면 홍콩 독립운동은 홍콩이 중국의 일개 지역임을 거부하고, 중국과 동등한 주권을 인정받는 별개의 국가가 되어야 한다는 운동이다. 홍콩 우산 시위가 사실상 실패로 끝나면서 학생운동권을 중심으로 비슷한 주장이 꽤 나오고 있다.

홍콩 독립을 위해 목소리를 높이는 이들은 애초에 1949년에 건국된 중화인민공화국이 홍콩 주민의 운명을 좌지우지할 권리가 없다고 주장한다. 애초에 홍콩 청나라 영국 아편전쟁의 결과로 1842년 영구 할양+평화적 합의에 의해 추가 조차된 지역이다.

그리고 합의의 당사자인 청나라는 1912년에 멸망했고, 청나라의 지위는 현재의 대만 정부, 즉 중화민국 정부가 승계했다. 중화인민공화국 정부는 홍콩의 역사에서 중요한 변환점인, 아편전쟁, 청나라 멸망, 2차 세계대전 당시 일본 점령 시기 등에 존재하지도 않는 나라였다.

따라서 홍콩 주민들이 스스로 중화인민공화국의 일원이 될지, 청나라를 계승한 중화민국(대만)의 일원이 될지, 영국의 식민지로 남을지, 아니면 완전 독립 국가를 건설할지, 스스로 선택할 수 있는 권리가 주어져야 한다는 논리다.

알다시피 베이징에서 통용되는 표준 중국어와 홍콩에서 제1언어로 통용되는 광동어는 서로 의사소통이 불가능할정도로 완전히 다른 언어다. 즉, 베이징을 수도로 하는 중화인민공화국과는 이질적인 문화와 언어를 배경으로 가지고 있다.

중국의 정치지형 변화의 진원지를 꼽자면 대부분 광둥성을 꼽는다. 본토의 독립운동들은 반국가분열법으로 때려잡을 수 있게 자국 경찰을 대기시키고 있고 타이완 섬도 이를 명분으로 쳐들어 가는 게 가능하다.

문제는 중국의 국제 지위가 예전과 달리 매우 높아져 그럴 경우 천안문 사태 이상의 국격 손실 및 유엔 차원에서 발동될 경제, 군사적 제재로 인한 경제난 심화가 뻔하고 현재 공산당은 경제 불안으로 지위가 많이 손상된 데다 인민들도 의식이 깨어 버려서 이전처럼 언제까지나 윽박지를 수도 없는 노릇이기 때문이다.

원래 소수파였으나 중국의 미국, 영국과의 충돌 및 패권국으로 가려는 경향이 강해지고 여기에 남중국해 판결 패소와 경제 불안 등으로 어느 정도 공산당의 헤게모니가 약해지기 시작하자 기성 야당인 민주파의 지지를 갉아먹으며 주류 정치세력으로 급부상하고 있다.

남중국해 판결로 중국 공산당은 상당한 국제지위 타격을 입었고, 그간 중국이 무서워 찍소리도 못했던 필리핀 등이 제 목소리를 내기 시작했고 싱가포르와 인도네시아도 항행자유 보장을 외치며 중국 불법조업 어선 단속 등 강경한 행동들을 하기 시작하였으며, 2015년부터 시작된 경제 불안이 공산당 체제를 위협하고 있기 때문에, 이를 틈타 독립 주장을 펴는 것이다.

한편 중화민국 휘하에 들어가자는 의견은 '독립운동'이라고 보기 어렵다. 또한 도로 영국으로 돌아가자 등의 소수의견도 존재한다. 이를 엄밀하게 '독립운동'이라고 할 수는 없으나, 중국이 독립을 절대 용납하지 않을 것이기에 영국의 힘을 빌려 다시 영국 식민지가 된 후 영국에서 독립하는 방식으로 독립을 쟁취하자는 의견은 존재하는데[6] 이것은 '독립운동'으로 볼 수 있을 것이다.
글로리아 훙은 약간 생각이 달랐다. 홍콩인에게 아무런 결정권도 없었던 식민지 시절은 “단지 영국에 잠시 빌렸던 시간일 뿐”이라고 했다. 훙은 “영국의 통치 시절을 그리워할 게 아니라 중국의 신식민지가 되어 가는 현실을 타파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

반면 위의 학생의 말처럼 영국으로 복귀해도 자결권이 없는 식민지 홍콩의 운명은 같다면서 영국 복귀주장을 비판하는 독립파 지지 홍콩인들도 있다. 그래서 영국 완전 복귀의 대안으로 영연방 왕국에 가맹하자는 의견도 존재한다.

호주나 캐나다처럼 주권을 가지는 독립운동에 해당하면서도 영국령 홍콩 시절과의 연속성을 높일 수 있고, 영국과 국가원수를 공유함으로써 영국과의 연계를 강화할 수 있다는 장점이 있다. 물론 현실성의 문제가 지적될 수 있을 것이나, 어차피 홍콩의 주권국가화 자체가 제3차 세계 대전이 일어나지 않는 이상 현실성은 다 거기서 거기긴 하다.

3. 관련 기사들

“홍콩 사람 역시 중국인이어야 하지만, 나는 그냥 홍콩인으로 남고 싶다 ... 지금보다는 그때가 더 좋았을 것 같다 ... 지금의 홍콩이 암울하기 때문.” 서울신문
"( 2008 베이징 올림픽을 보며) 중국이 위대하다고 느꼈다. 만약 그 때 나에게 중국인이냐고 물었다면 나는 ‘그렇다’고 대답했을 것. ... 지금은 내가 중국인이라고 말하고 싶지 않다. 그것은 매우 부정적인 느낌을 준다 100번을 물어봐도 같은 대답을 할 것"
헤럴드 로이터 통신
According to a University of Hong Kong survey released on Tuesday that polled 120 youths, only 3 percent of those aged between 18 to 29 identify themselves as "broadly Chinese". The figure stood at 31 percent when the regular half-yearly survey started 20 years ago. In interviews with 10 Hong Kong youths born in 1997 including Chau, all of them, including an immigrant from mainland China, told Reuters they primarily identify themselves as "Hong Kongers" and their loyalty lies with the city.
화요일에 120명의 청년을 대상으로 시행한 홍콩대학의 설문에 의하면, 18세 이상 29세 이하의 청년들 중에서는 오직 3%만이 "광의적 의미의 중국인"으로 규정했다. 20년 전 31%가 중국인이라고 답한 것과는 차이가 많다. 1997년생 홍콩 청년 10명과의 인터뷰에서, 중국 대륙 출신들을 포함하여 전원이 자신들을 홍콩인으로만 규정하고 (국가가 아닌) 홍콩에 충성한다고 답했다.
로이터 통신

4. 홍콩의 법적 지위

현재 홍콩은 스스로 주권을 가진 독립국이 아니라 중화인민공화국 특별행정구이며 2047년까지 영국령 당시 경제 및 정치 체제 유지가 보장된다. 다만 기본법 개정으로 기간 연장이 가능하며 이와 별개로 중국식 사회주의 체제는 중영공동선언에 의거 영구히 적용되지 않는다.

따라서 특별행정구 자체는 어떤 식으로든 영구하다. 영국령 당시에도 영국의 직할령이라는 형식 자체는 식민지 기간 종료 이전까지 영구했다. 단지 세부적으로 왕실 직할령에서 왕령식민지, 그리고 다시 직할 속령등으로 지위가 변했었고, 이때 홍콩 정부의 대표자는 엄연히 영국 본토에서 온 총독이었다.

'홍콩은 홍콩 사람이 다스린다'는 항인치항(港人治港) 원칙에 따라서 홍콩 현지인이 행정장관을 하고 있는 현재가 어찌 보면 가장 자치적인 셈이다. 홍콩은 물론 공산당 하에 있는 중국대륙 법조계도 이렇게 해석하며, 중국대륙과 홍콩, 마카오의 현지인들도 다들 자동연장이라고 본다.

5. 독립 주장의 원인

5.1. 반분열국가법 개정

2009년 중화인민공화국의 입법부 기능을 하는 전국인민대표대회에서는 홍콩 기본법을 개정하려면 3년 전까지 중국 전인대의 승인을 얻으라는 법안을 통과시켰는데 이게 홍콩 독립운동의 시발점이 된 반분열국가법 홍콩조항 개정 사건이다.

중국공산당 입장에서는 물론 2044년 쯤 형식적 절차를 거쳐 승인해 줄 것이지만 어쨌든 중국 정부의 위에서부터 결정이므로 실질적인 항인치항(港人治港, 홍콩인에 의한 홍콩 통치) 원칙의 손상은 불가피해 이것도 문제가 많다. 그래서 이를 불안해 하는 홍콩 주민들이 반발을 시작한 것이다.

2047년 이후 중국 공산당이 본토에서 내려보낸 생소한 본토 공산당원이 홍콩 특별행정구의 리더가 되진 않아도 이미 렁춘잉처럼 공산당 방침을 충실히 따르는 인물이 홍콩 정치인 중에서도 충분히 많아서 일국양제는 껍데기만 남고 실질적 요소는 사라질 가능성이 높기 때문이다.

5.2. 불완전한 민주주의

아울러 중국은 공산당 독재에 불안요소가 될 것을 우려해서인지 홍콩에 완전한 민주주의를 시행하지 않고 있다. 표면적으로는 홍콩의 의회인 입법회의 의원들을 직선으로 뽑고 있지만 입법회 선거 제도 자체에 민의가 왜곡될 수 있을 정도의 문제점...이 아니라 대놓고 부정선거다. 이른바 친중파 정당들에는 보정의석이라는 게 있어서, 홍콩의 민주파 정당들은 15만 표당 1석인 반면 친중파 정당은 9만 표당 1석씩 받는다. 보정의석을 통해 표의 등가성을 대놓고 깨버리는게 부정선거가 아니면 뭔가?

홍콩의 수반인 행정장관은 아직도 간선으로 뽑는데 역시 간선 과정에서 민의 왜곡의 문제점이 있다. 이러한 문제점은 친중파에 유리하게 작용하고 있고 실제로 역대 행정장관은 모두 친중파 정치인이었으며 입법회도 항상 과반수를 차지하고 있다.

홍콩의 민주파는 행정장관 직선제와 입법회 선거 제도 개혁을 끊임없이 요구하고 있지만 중앙정부는 이에 대해 묵묵부답으로 일관하거나, 2017년에 행정장관 직선제를 실시하기로 약속했지만 "후보로 등록하려면 중앙정부의 허가를 받아야 한다"는 식의 눈가리고 아웅으로 맞서고 있다.

5.3. 일국양제 훼손 시도

중앙정부의 간섭과 민주주의 침해는 시진핑 정권이 들어서면서 더 강해졌다. 아예 "애국자가 홍콩을 다스려야 한다"는 식의 태도를 보여 일국양제를 존중하지 않기도 하고, 홍콩의 반공산당 인사에 대한 탄압이나 언론 자유 침해도 공공연하게 행해지게 되었다. 그러나 이에 대해 친중파가 대세를 이루는 홍콩 행정부는 제대로 반발하지 못하고 있다.

5.4. 본토와 홍콩 양 측 주민간의 정서 차이

정치적인 이유뿐만 있는 것은 아니다. 일단 오랫동안 공산주의 체제와 자본주의 체제라는 환경의 차이가 있기에 본토 중국인들과 홍콩인들의 인식 차이는 상당히 크며, 홍콩의 경제 발전이 본토에 비해 일렀기에 경제력도 차이가 크다.

홍콩 반환 이후 본토 중국인들이나 그 자본이 홍콩으로 많이 유입되었는데 몇몇 본토 중국인들의 원정출산[7], 본토 중국인 유입에 따른 일자리 불안이나 본토 중국인 자본 유입에 따른 부동산 가격 폭등 등이 발생해 홍콩인들의 본토 중국인에 대한 피해의식이 생겼다.

5.5. 학생운동권의 홍콩 내셔널리즘 대두

현재 홍콩 내 대학의 학생운동권에서 '홍콩의 완전독립'을 목표로 내건 세력이 존재한다. 이른바 '본토주의'라고 칭하는데, 현재 본토주의를 강령으로 내건 정당의 창당은 대부분 젊은 층이 주도하고 있다. 이들은 홍콩인 독자 정체성을 표출하는 일이 강해서 중국인임을 거부하고 홍콩 내셔널리즘을 주장한다.

실제로 1997년 홍콩 반환 이후 20년간 홍콩인의 중국인 정체성은 약화되었으며, 특히 젊은 층인 20대 사이에서는 자신을 중국인으로 생각하는 비율이 3%대에 불과하다는 홍콩대 조사 결과가 보도되기도 했다. #

홍콩인 학생들 중에 한국 대만의 민주화 운동 역사를 부러워하는 경우가 많다. 홍콩의 학생운동가인 조슈아 웡[8]의 경우, 독립은 지지하지 않지만 박근혜 퇴진 운동에 큰 감명을 얻었다며 한국, 일본, 대만 등의 민주주의 국가가 홍콩 사회문제에 관심을 가져 줄 것을 호소하기도 했다. #

이들 중 더 나아가 한국과 대만이 "주권"을 가지고 있는 것 또한 부러워하는 경우가 많다고 한다. 홍콩이 민주주의를 쟁취하지 못하는 이유는 주권이 없고 90년대 이전에는 영국에, 이후에는 중국에 종속되어 있기 때문이라는 것.

따라서 홍콩이 민주주의를 쟁취하기 위해서는 국가주의적 관점에서는 홍콩이 독립된 주권을 가지고 새 독립국가를 건설해야 하며, 민족주의적 관점에서는 중국(및 영국)과는 분리된 홍콩 민족의 독자 정체성을 가질 필요가 있다는 것이다.

5.6. 서방 국가와의 연계 가능성과 그에 따른 기대

홍콩이 독립을 시도할 경우 티베트와 위구르와 달리 이론적으로는 서방 국가의 지원을 받을 수 있는데, 예상되는 지원국의 경우 과거 종주국 영국, 그리고 그 동맹국인 미국을 뽑을 수 있다. 그리고 국제 도시이자 아시아의 무역, 물류 허브답게 열강의 이권이 모두 모여 있어 중국이 자기네 국력만 믿고 때려잡지도 못 한다.

그에 비하면 티베트 위구르는 사실상 혼자인 내륙의 낙후 지역들이다. 티베트 독립운동의 지원을 일본 우익세력이 자처하기도 하나, 소수 민간인의 지원일 뿐이라 큰 힘이 되지는 못한다. 티베트 망명정부가 소재한 인도는 아직 중국에 대등하게 맞서기에는 부족하다.[9]

그리고 위구르의 경우 튀르크인들의 대부를 자처하는 튀르키예의 민간에서 지지가 높긴 하나 튀르키예도 중국에 맞서기는 부족하고, 위구르 독립운동이 IS 등 이슬람 테러리즘 세력과도 엮여 서방의 시선도 좋지 않다. 체첸 반러 세력과의 연계 방법이 있지만 그러기에는 너무 거리가 멀고 중국과 동반자로 나가는 러시아가 버티고 있어 이도 어렵다.

6. 대내외 반응

6.1. 중화인민공화국

하나의 중국을 깨트리는 매국노로 보며 극도로 적대시한다. 민주파한테도 압박을 가하는 공산당인데 분리주의자들의 경우에는 더 이상의 자세한 설명은 생략한다. 중국 본토 내부의 미디어에서는 거의 대부분 매국노 취급하고 있다. 하나의 중국을 깨버리기 때문이다.

단 민주파도 국민당 계통 같은 범람연맹이나 중국의 정통성을 인정하는 집단이라면 베이징의 입맛에 맞기 때문에 좋아하고 정 민주파가 집권한다면 차라리 얘네가 집권하도록 공작하기도 한다.

중국공산당 측에서는 홍콩의 민주화 열망을 '홍콩독립분자의 국가분열시도'로 여론조작하는 것으로 보이며 이 때문에 본토인들이 홍콩의 민주파 정치인 혹은 지지자들을 독립분자라는 식으로 오해하여 갈등을 일으키기도 한다.

6.2. 대만 정치권

일단 범람연맹 범록연맹 둘 다 홍콩 내부의 민주화에 대한 지지를 밝힌 바 있다. 그러나 그것이 독립운동 지지로 확대해석하는 것은 잘못된 해석이다.

마잉주 전 총통도 홍콩 우산 시위를 지지했고, 2016년 대만 대선에 나온 주리룬 중국국민당 전 대표 및 훙슈주 현 대표는 홍콩 민주화 움직임에 대해서는 적극적으로 연대한다고 밝힌 바 있다.

범록연맹의 경우, 차이잉원 홍콩 우산 시위 현장을 방문한 적은 있지만, 그것만으로 민주진보당이 홍콩 독립운동 세력과 연계한다는 증거가 되지는 못한다. 다만 시대역량의 경우에는 확실히 연대의사를 밝힌 바 있다.

6.2.1. 타이완 독립운동

홍콩 독립운동의 든든한 아군으로, 홍콩과 대만 양 측의 독립운동 지지자들이 연대하려는 모습을 보이고 있다. 물론 양측은 스스로가 '중국[10]'에 속하지 않는다는 입장을 취하고 있으므로 중국이라는 공동의 적을 가진 대등한 '국가' 대 '국가'로서 연대하는 것이다.

6.3. 중국 민주화 세력

홍콩의 민주파 및 그 지지자들이 중국 민주화 세력과 연계하고 서로 지지하기도 하지만 민주파들도 홍콩 자체의 독립을 지지하지는 않는다. 물론 민주파와 독립운동 세력은 모두 중앙인민정부의 홍콩 정치 간섭 및 일국양제/민주주의 훼손 시도에는 반대하기 때문에 독립운동 사안 외에는 협력하는 모습도 나타난다. 중국 민주화 세력들은 중국 본토가 민주화되어 민주 홍콩, 마카오, 대만과 함께 하나된 민주주의 중국을 이루는 것이 목표지 중국과 홍콩을 분리시키려는 것이 아니다.

이 때문에 홍콩 독립운동 지지자들은 중국 민주화 세력들 역시 적대시한다. 최근 들어 학생운동권 진영에서 천안문 사태 추모제 등 중국 민주화 운동에 참석하는 것에 대해 집단적으로 거부의사를 밝혀서 갈등을 일으키기도 했다.

표면적으로는 홍콩 내부의 정치 문제에 집중하기 위해서라지만 속내는 "역겨운 ' 남의 나라'의 정치 문제에 관여하기 싫다"이다. 해외 및 홍콩, 대만에 망명중인 중국 민주화 지도자는 이에 홍콩 학생운동권을 " 역사를 무시하는 것들", 홍콩 학생운동권은 중국 민주화 지도자들에게 "지나(支那)[11]에게 다 대주는 창녀와도 같은 존재들"이라는 원색적인 비난을 퍼부었다.

이는 결국 홍콩 독립파에게 있어 최대의 관심사는 '홍콩의 독립'이며, 따라서 그들의 눈에 비친 중국은 '다른 나라', 그것도 '얼른 홍콩에서 떠나야 할 지배자, 압제자들의 국가'라는 맥락에서부터 접근해야 할 문제이다. 따라서 홍콩 독립파의 입장에서 그 지배국가의 정치체제가 독재냐, 민주적이냐는 부차적, 지엽적인 문제에 불과하며 민주화 운동 세력이라 해도 그들이 중국의 일부임을 자처하는 이상 홍콩 독립파의 입장에서는 그저 '적의 일부분'으로 여기게 될 뿐이다. 다른 국가의 예를 들어 비교해보자면, 북아일랜드 독립운동이 왕성하던 시절의 영국은 분명 당대 기준으로 세계에서 손꼽히는 민주국가였지만 그것이 IRA에게는 별로 중요한 문제가 아니었던 것을 생각하면 간단하다.

물론 중국의 민주화 운동이든 홍콩 독립운동이든 (더 나아가 홍콩 민주화 운동 세력이나 대만의 범록연맹, 심지어 범람연맹 중 반중 성향을 가진 일부까지) 모두 베이징 중화인민공화국 정부라는 공동의 적을 두고 있으니 이를 전제로 한 연대, 말하자면 공동전선은 가능하지 않겠느냐는 주장은 가능할 수도 있다. 하지만 이런 연대에도 최소한의 공감대, 역시 말하자면 '서로의 존재 의의를 부정하지 않고, 서로의 핵심적 목표에 반대하지 않을 것' 정도의 공감대는 필요하다. 이 역시 실제 역사의 사례를 예시로 들어보자면, 1921년 소련( 코민테른)이 주최한 극동피압박민족대회에 참석한 여운형 레닌과의 회담에서 "당신은 일본의 혁명[12]을 위해 목숨을 걸고 투쟁할 수 있느냐?" 라는 질문을 받고 "할 수 있다" 고 대답했다는 사례가 있다. 이것은 같은 회담에 동석했던 일본공산당 대표 가타야마 센이 먼저 "당신은 조선 독립을 위해 목숨을 걸고 투쟁할 수 있느냐?" 라는 질문을 받았을 때 "할 수 있다"고 대답했었고, 당시 일본 공산당의 공식적인 당론 자체가 (자치권 확대 같은 것이 아니라) '조선의 독립 지지'였기 때문에 가능했던 일이다. 그러니까 중국 민주화 운동 세력이 홍콩 독립운동 세력과 연대하려면 "우리는 홍콩의 독립 또한 지지한다"거나, 이렇게까지는 하기 힘들더라도 최소한 "(우리들 자신이 홍콩의 독립을 지지하는 것은 아니지만) 홍콩의 운명은 홍콩 시민 스스로 결정해야 한다. 만약 홍콩 시민들이 독립을 원한다면 그들은 독립할 권리가 있고, 홍콩 시민의 권리가 하나의 중국과 같은 개념보다 우선시되어야 한다" 정도의 입장은 취해야 한다는 것.

근데 문제는 저런 공감대가 형성되기는 지극히 어렵다는 것이다. 상기된 한국 독립운동 세력(여운형)과 일본 공산당(및 당시의 반 군국주의 좌파) 사이에 공감대가 형성되기 쉬웠던 이유는 간단하다. 한국과 일본 사이에는 '전통적인 민족주의( 내셔널리즘)적 공감대'가 원래 없었기 때문이다. 그러니까 일본 공산당의 입장에서는 "원래 다른 나라니까 독립을 인정하면 된다" 라고 간단히 말할 수 있었던 것. 하지만 홍콩 독립운동의 경우 범 중국 내셔널리즘은 강력하고, 이에 맞설 기반이 될 홍콩 내셔널리즘은 미약하다. 특히 동아시아 지역 특유의 내셔널리즘 감수성까지 생각하면 중국의 민주화 인사들 중에서도 "나는 물론 홍콩 시민들의 정치적 자유를 지지하지만, 그래도 홍콩은 당연히 중국과 한 나라여야 한다. 독립 주장은 잘못된 것이다" 라고 생각하는 이들이 오히려 다수라고 해도 전혀 이상할 것이 없어보인다. 게다가 중국 정부의 태도 역시 분리 독립을 지향하는 정치적 운동에 대해서는 지극히 강경하다. 원래 중국 민주화 운동이 탄압을 받고 있기는 하지만, 이들이 홍콩 독립을 지지할 경우 그 탄압이 더욱 지독해질 것이다. 하다못해 홍콩 민주화 운동 내에서 독립파가 다수냐 하면 그것도 아닌 것이, 홍콩 시민 가운데 민주파를 지지하는 이들의 비율은 상당하지만 그중 본토파는 소수파이고, 본토파 중에서도 직접적으로 홍콩 독립을 주장하는 이는 더욱 소수파이다.

결국 중국 민주화 운동의 입장에서 홍콩 독립운동은 딱히 공감할 유인도 적고, 이들과 연대했을 때 얻을 손해는 크지만 이익은 적은 상대에 불과한 것. 그러니까 중국 민주화 운동에서는 굳이 이들의 존재의의를 인정하고 연대를 시도할 이유가 없는 것. 그러니 홍콩 독립 운동측에서는 그 반작용으로 '민주화니 뭐니 해봤자 니들도 별 차이 없는 중국인이다, 압제자 예비군이다' 식의 반응을 보이게 되는 것이다.

홍콩 내셔널리즘 부분과 동일하게 이 부분 역시 홍콩 독립파의 "홍콩인"으로서의 정체성을 인지하고 그들의 주장을 해석하면 논리적으로 도출될 수 있는 결론 중 하나다.

6.4. 홍콩

홍콩 민주파 정당들이 모조리 홍콩의 독립에 찬성한다고 보기 쉬운데 이들은 단지 일국양제와 항인치항(港人治港)의 원칙 아래 중앙인민정부의 홍콩 정치에 대한 간섭을 최소화할 것을 요구할 것일 뿐이며, 대부분은 중화인민공화국의 홍콩에 대한 주권 자체는 '존중'하는 편이다. 물론 중화민국을 지지하는 민국파 세력도 있지만 이들은 분리주의자들이라고 보기 어렵다.[13]

홍콩의 정계는 생각보다 복잡하다. 그래서 독립파는 주류가 아닌 민주파 중에서도 과격한 주장을 하는 극소수에 가깝다. 그래서 아예 독립운동에 호의적인 정치인들을 민주파로 분류하지 않고 따로 독립파 혹은 본토파로 분류하기도 한다.

또한 폭력 시위 등으로 대륙에서 홍콩에 대한 인식을 나쁘게 만드는 일부 독립운동 세력이 문제 집단으로 찍혀버린 것도 사실이다. "민주주의 확대가 독립을 의미하진 않는다"는 게 일반적인 민주파의 견해로 범람연맹 계통과 자치운동 지지자 둘 다 여기 동의한다.
홍콩인들에게 필요한 것은 민주화된 중국이 아닌, 홍콩을 도시국가(City-State)로 만들어, 영국의 문화를 바탕으로, 중화의 문명을 부활시키는 것이다.
- 천윈(Horace Chin)[14]

홍콩 우산 시위 이전에는 직접적인 독립주장보다는 천윈처럼 덴마크- 그린란드 관계처럼 홍콩을 도시-국가 개념으로 개편하자고 주장하는 자치운동가들이 주를 이루었다.

홍콩 정계는 홍콩 독립주장에 회의적이다. 렁춘잉 행정장관은 분리주의 세력에 대해서는 엄단하겠다고 엄포를 놓은 바 있고, 민주파 정치인들 중에서도 회의적인 시각으로 바라보고 있다. 사실 홍콩 기본법에 의거 '홍콩 독립운동'은 홍콩 내에서 불법이다.[15] 하지만 분리주의자들은 '중국이 만든' 홍콩 기본법 자체를 인정하지 않고 있다.

기성세대 홍콩인의 경우 홍콩의 분리독립에 부정적인 반면 신세대 홍콩인들이 조금 더 적극적이다. 청년층에서는 자신의 정체성을 중국인으로 규정하는 비율이 3.1%에 불과한 반면 기성세대로 올라갈수록 그 비율이 늘어난다.

홍콩의 분리주의 세력들은 아직까지 주류 정치세력이라고 보기에는 어렵다. 홍콩 정계는 친중 성향의 보수파가 꽉 쥐고 있고, 민주파는 아직 일국양제 준수, 민주주의 지향 및 항인치항 정도에서만 머물고 있고, 중앙인민정부의 간섭은 심해지고 있다. 어찌 보면 이들의 미래는 암울해 보일 수 있다.

하지만 만일 베이징, 홍콩 양측 정부가 홍콩 내의 반본토 정서를 수수방관하거나, 강경하게 탄압하려 할 경우, 타이완 독립운동 세력처럼 홍콩의 메인스트림으로 자리잡을 가능성이 크다. 관련 기사

물론 아직까지 일국양제 체제는 일단 제대로 돌아가는 편이며, 당장 독립파는 극소수이고 자치 운동가들이 대부분이다. 우산 시위를 이끌은 주요 운동가 중 하나인 조슈아 웡의 경우도 독립이라기 보단 자치권의 확대 및 민주주의 보장을 주장하는 쪽에 가깝고[16] 우산 혁명에 참가한 중국국민당계 민주파는 당연히 홍콩은 "중국"의 일원이라고 인정한다.

어떤 이는 홍콩의 독립 주장을 스코틀랜드 독립운동, 카탈루냐 독립운동, 타이완 독립운동, 분리주의 독립운동과 비슷한 성격이라고 주장했다.

6.4.1. 여론조사

홍콩인들의 민주주의에 대한 지지와 중국 중앙정부에 대한 반대는 확고한 편이지만, 대만과 대조적으로 독립운동에 대한 지지는 비교적 적은 편이다.

6.5. 대한민국

2020년 현재 대한민국의 일반 국민들은 다른 서방세계 국가들이나 국민들에 비해 홍콩 독립운동에 대해 우호적인 성향을 보이고 있다. 이는 원래 5.18 민주화운동 6.10 민주 항쟁등 여러 격렬한 민주화 운동 경험이 있기 때문으로 볼 수 있어, 홍콩의 민주주의 운동에 꽤나 동정적인 경향이 있다.

2019년 홍콩 민주화 운동으로 홍콩과 중국의 관계에 관심을 가지는 사람들이 늘어나는데, 기존부터 역사 문제로 얽혀 가지고 있던 반중 감정, 중국에 대한 견제 심리를 떠올리면서 자연스레 관심을 보이게 되는 것이다.

또한 과거에 많은 한국인들이 홍콩의 경제 발전을 동경하기도 했고, 과거 홍콩 영화에 대한 애호 등 홍콩에 우호적인 감정을 지니고 있는 것도 한 몫 하고 있다. 그리고 홍콩 반환 이후 친중파들의 문제들로 인해 지지하는 사람들도 있다.

2010년대 중반부터 모종의 이유로 혐중 반중 감정이 극심해짐에 따라 반중을 위한 목적으로 지지하는 사람들도 늘고 있으며, 2019년 홍콩 민주화 운동의 영향으로 인해 지금은 외려 좌우를 막론하고 여러 한국인들이 홍콩의 민주화를 더 지지하는 상황이다.

그러나 본 문서에서 계속 강조하여 설명하고 있는 것처럼, 홍콩 민주화 운동에 대한 지지와 홍콩 독립운동에 대한 지지는 구별되어야 한다. 그리고 한국의 여론에서 좌우를 막론하고 '홍콩 민주화 운동에 대한 지지가 높다'고 말할 수는 있지만 이것을 '홍콩 독립운동에 대한 지지가 높다'로 받아들이는 것은 잘못된 이해이다. 오히려 이 둘을 명확히 구별하지 못하고 '대충 비슷한 것' 정도로 여기는 이들의 비율도 적지 않다. 예를 들어 홍콩 민주화 운동의 기세가 높던 당시, 외교적 충돌을 우려하여 당시의 여당 제1야당이 모두 공식적으로는 침묵을 유지하던 상황에서 윤상현의원이나 이준석 대표등 일부 정치인이 개별적으로 홍콩 민주화 운동에 대한 지지를 표시한 것을 '홍콩 독립운동을 지지했다'고 잘못 해석하는 이들이 종종 나올 정도이다. 하지만 저 두 정치인의 당시 발언들을 보면 홍콩 민주화 운동에 대한 지지는 쉽게 찾을 수 있지만 홍콩 독립 자체에 대한 지지는 찾아보기 힘들다. 요컨데 두 운동을 구별하지 못하고 민주화운동 지지는 곧 독립운동 지지라고 착각하는 이들이 드물지 않게 등장한다는 것.

사실 이는 하나의 중국 문제, 즉 중국 내셔널리즘과 그 영향권에 속한 국가(중국 정부의 입장에 따르면 '국가 및 지역')의 문제를 잘 알지 못하는 이들이 쉽게 저지르는 실수 중 하나이다. 다른 예로 쯔위 청천백일기 논란 당시에도 이 사건이 '쯔위가 대만 독립론을 지지한다는 것과는 별개의 문제'임을 인지하지 못하는 이들은 적지 않게 나왔던 것. 말하자면 강대국인 중국이 하나의 중국 논리를 자국, 당사국, 주변국과 전 세계에까지 강요하는 상황에서 '현 중국 정부와 그 입장, 그들의 체제에 반대하는' 이들과 '하나의 중국이라는 개념 자체에 반대하고, 소위 중화민족이라 불리는 집단이 여러 개의 국가로 나뉘어질 수도 있다고 주장하는' 이들은 분명 서로 다른 종류의 주장을 하고 있는 것이다. 단지 북경의 중국 정부와 적대적인 관계라는 특성상 이들이 한 진영을 이룬 것처럼 보이는 것 뿐이다. 그런데 여기서 후자를 지칭하는 '독립론'의 개념을 함부로 전자에까지 확대하여 적용하는 실수를 하는 이들이 자주 나온다는 것.

6.6. 베트남

국가주의적인 베트남인들은 홍콩 독립운동에 호의적인 경향을 보이기도 한다. 베트남은 중국과 역사적으로 상당한 대립 관계에 있었기에 반중 감정이 심하며, 홍콩 및 광둥성이 같은 남월의 통치 영역이었기 때문에 원래 월족이던 홍콩인, 광동인, 광시 좡족 자치구, 하이난성에 사는 주민에게 일부 베트남인은 묘한 동질감을 갖고 친척 민족 정도로 보기도 한다.[17] 심지어 몇몇 극단적인 베트남 국수주의자들은 춘추전국시대 월나라도 베트남계 국가이며 따라서 월왕 구천 역시 베트남계 인물이라고 주장한다. 왜냐하면 나라 이름이 월(Viet)[18]이라서(...) 그러나 춘추시대의 월나라와 현재의 베트남은 국명을 제외하고 아무런 관련이 없다. 애초에 월이라는 명칭은 중원에서 장강 이남의 이민족을 통칭하는 말이었고, 조타가 남월을 건국하면서 명칭을 차용한 것에 불과하다.

베트남 국가주의자들은 베트남이 군대를 보내 홍콩을 해방시켜서 독립시키고 옛 고토를 회복하고 더 나아가 양쯔강 이남을 분할하여 중국을 분열 축소시켜야 한다는 대월민족주의까지 주장한다.[19][20] 2014년 남중국해 분쟁 및 우산 혁명으로 중국이 홍콩 및 베트남과 심하게 대립했을 때 이런 주장이 많았다. 문제는 베트남이 중국의 침공을 이겨낸 적은 꽤 있어도 공격적으로 중국의 정치에 개입할 만한 국력이 없다는 것이며, 한국이나 일본, 대만, 홍콩 등과는 달리 베트남은 스스로도 민주주의를 추구하는 나라가 아닌지라 중국 공산당에 개입할 명분도 없다는 것(...).

홍콩은 원래 난링산맥·우이산맥 이남에 위치하기 때문에 이북의 한족과는 혈통 상 차이가 있다고 보는 의견도 있으나, 문제는 홍콩 같은 해안가 대도시는 근대 이후 이북의 한족이 대규모로 이주하여 인구 구성이 크게 바뀌었기에 현재 유전적 차이를 따지는 건 의미가 없다. 작은 어촌에 불과했고 인구도 얼마 없던 홍콩이 불과 100년도 안 돼서 인구 몇백만의 대도시로 성장한 것은 그곳 원주민들이 아이를 엄청나게 많이 낳아서가 아니라, 그만큼 유입 인구가 많았기 때문이다. 이는 마카오도 마찬가지이고, 중국 공산당에 의해 경제 개방의 기수로 선정된 광저우시, 선전시 등의 다른 난링산맥·우이산맥 이남의 해안가 대도시도 마찬가지이다.

6.7. 서방 국가

서방 국가들은 이 문제에 대해 중국 홍콩 내부 문제로 여기고 대체로 무관심하다. 홍콩 우산 시위 당시에도 미국은 " 일국양제를 토대로 한 홍콩인의 홍콩인에 의한 통치와 직접선거를 지지한다"라는 논평을 냈으며, 일국양제 문제에 합법적으로 개입이 가능한 유일한 국가인 영국도 직접적인 간섭은 하지 않고 있다.

오히려 분리주의자들의 영국 재편입 요구에 주홍콩 영국총영사는 "홍콩은 중국령"이라고 밝힌 바 있다. 반중 성향을 가진 서방 국가 시민의 경우 홍콩을 식민지로 간주하여 홍콩 독립운동을 응원하는 경우도 있고, 한국 및 일본에서도 그러한 시각을 보이는 사람이 있다.

한편 미국이 대중국 포위망을 만드는 과정에서 홍콩 독립을 지원하려는 의사가 있어 보인다는 음모론이 있다. 세부적으로는, 우산혁명 이후 미국 중국 견제가 더 심해졌고, 이에 따라 공산당의 입지를 약화하고 있는 현재의 경제난이 미국 탓이라는 음모론과 함께, 본토 중국인들 사이에 홍콩 대만 독립파의 배후가 미국이라는 음모론이 돌고 있다. 독립한 홍콩 정부가 중국에 우호적일 리 없어 중국에 맞설 만한 유일한 나라인 미국, 혹은 미국의 동맹국인 일본 대한민국과 협력할 것이 뻔하기 때문이다.

다른 서구권 국가들은 개입의 명분이 약할 수 있어도 영국은 분명히 개입할 권리가 있다. 영국은 중영공동선언에 의해 홍콩 민주주의 문제에 관해서는 수단에 관계없이 개입할 명분이 있다. 이건 중국 측에서도 조약을 체결함으로서 인정을 한 사안이기 때문에 토를 달 수 없다.

7. 주의할 점

일단 공산당에 대해 비판적 시각을 가진 사람들도 생각보다 다양한 의견을 갖고 있다. 간단하게 보면 홍콩의 자치권 보장 및 민주주의 보장을 지지하는 사람들도 있고 중화민국의 정통성을 인정하는 범람연맹 성향의 사람들도 있다.[21]

따라서 홍콩 우산 시위 등을 지지한다며 발언을 하더라도 홍콩 독립론자라는 보장이 없는 보통의 홍콩인들 앞에서 아무 생각 없이 "홍콩의 독립을 지지합니다"라고 하면 안 된다. 발언을 해야 하거든 크게 모난 데 없이 "홍콩의 자유와 민주주의를 지지합니다" 같이 적절한 필터링을 거쳐 발언하는 것이 좋다.

일단 홍콩에서 분리독립 얘기를 안 하는 것이 좋다. 왜냐하면 대부분의 홍콩인들이 독립운동을 지지하지 않고 있고 그들은 여전히 본인들을 중화인, 홍콩인으로 규정하는 성향이 강하다. 그래서 중공을 비판하는 것 혹은 대만에 있는 중화민국을 지지하는 것을 넘어 독립운동을 이야기하는 것은 논란을 일으킬 수 있다.

특히 범람연맹 지지자들이 민주파의 과반 이상이며 이들은 민주화를 지지하지 중국의 분열을 싫어하며 홍콩 독립 운동에 대해 반대한다. 이들도 중공 반대하면서 중공 중화인민공화국의 정통성을 부정하는 모습을 보여준다.

그리고 이들은 자신을 중국인[22], 홍콩인으로 규정하며 쑨원에 대한 존경심도 강하고, 대만 범람연맹과 같이 중화민국을 정통성이 있는 중국으로 인정하며 문화대혁명에 대해 비판적이고 천안문 6.4 항쟁을 지지하는 모습을 보인다.

그리고 홍콩에서는 국민당 정부 이후 망명한 사람들과 그 후손들이 많고 대한민국 임시정부와 같이 제2차 세계 대전에 참가한 중화민국군 참전용사들도 많이 있으며 이들은 범람연맹과 같은 시각을 보여주고 있다.

중화권에 대한 지식이 부족한 대부분의 한국인들이 홍콩의 민주화는 사실상 물 건너간 상황이라고 하는데 좀 더 정확히 말하면 홍콩은 독립국이 아니므로 홍콩 혼자 민주화가 되는 것은 불가능하다. 중국이 민주화되어야 그에 속한 홍콩과 마카오도 저절로 민주화되는 것이다. 중국이 바뀌어야 하는데 홍콩은 어디까지 영감만 제공해줄 뿐이고 결국 중국의 체제가 바뀌는 건 중국 대륙 인민들이 스스로 해내야 하는 몫이다. 북한의 민주화 역시 남한이나 미국 등이 개입할 여지가 있지만 결국 북한인들이 스스로 해결해야 하는 것과 같다. 다른 독재국가들도 마찬가지.

최근 중국 대륙에서도 허난성에서 뱅크런에 항의하는 시위가 대규모로 벌어지기도 하고 상하이 봉쇄에 시달려온 상하이나 봉쇄 위협을 가한 톈진 등 봉쇄 대도시들에서 봉쇄 해제 시위가 나는 등 대륙에서도 인민들이 하나씩 들고 일어나기 시작했는데 이는 홍콩에서 깊은 인상을 받아 본받은 것이다.[23]

앞으로도 제로 코로나를 혼자 고집하는 중국의 특성상 이미 홍콩에서의 일을 봐버린 인민들이 이를 본받아 계속 항의시위를 할 것이 뻔하며 이후에는 중국이 바뀌지 않는단 보장이 없다.

물론 이러한 걸 우려해 그동안 언론통제로 홍콩에서 시위가 나면 보도를 안해 눈을 가렸지만 인터넷의 발달로 그것조차 한계가 있다. 당장 제로 코로나에 비판적인 베이징, 상하이 등에서도 항의 시위가 있었다. 그리고 공산당 전당대회 시기 동안 대학가에서 시위가 있었다.

베이징만 해도 베이징 대학생들이 봉쇄 위협이 가해지자 반대시위를 벌였고 상하이는 중국이 언론을 통제해 한국에 보도가 안 전해져서 그렇지 여러 마을에서 공안과 시민들이 충돌했다. 4월의 소리(四月之聲) 등 웨이보를 통해 상하이 시민들의 목소리가 전해지던 것들도 있었으며 이들은 중국 정부가 삭제해도 꾸준히 재업로드했다.

억압적 제로 코로나에 대한 반발은 현재진행형이다. 이제는 광둥성, 푸젠성, 저장성, 장쑤성, 상하이 등 제로 코로나 정책의 피해를 받는데다 전통적으로 북방 지역에 대한 경쟁심이 강한 지역 + 중국에서 부유한 지역 외에도 베이징이나 심지어 최초 코로나 발병지 후베이성 우한을 포함한 내륙 지역에서도 반발이 심해지고 있다.

홍콩이 혼자서 민주화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결국 홍콩이 완전한 민주주의 사회를 갖추기 위해서는 중국 대륙의 민주화를 응원해야 하는 것이다. 당장 영국조차도 중국과의 외교관계가 악화된 상태에서도 독립에 대해서 부정하고 있는 상황이다.

홍콩의 마지막 총독 크리스 패튼 남작도 홍콩의 민주화 운동에 대해 긍정적으로 보고 홍콩 보안법에 대해 비판적인 시각을 보여주고 있지만 홍콩은 나라가 아니다라고 홍콩 독립에 대해 일축했다. 그리고 보리스 존슨 총리 프리티 파텔 내무장관 홍콩인에 대한 영국 국적 부여 선에서 끝냈다.

암튼 이렇게 중국이 민감한 상황에서 홍콩 독립운동이나 시위는 언급하지 않는 것이 좋다. 당사자들도 심지어 중국에 대해 부정적인 대만에서도 홍콩을 자치 지역으로 간주한다. 사실 영국령 홍콩 시절에도 홍콩인 중화민국 국적자로 간주했었다.

한국인 등 외국인들이 홍콩 야권 세력에게 성원을 보내고 싶으면 할 말은 "홍콩의 민주주의와 일국양제를 지지한다"지 홍콩 '독립'을 지지한다는건 오히려 안하느니 못할 소리가 될 수가 있다. 차라리 중국의 민주화 홍콩의 민주화 운동을 지지한다고 해야한다.

정작 홍콩 내에서는 홍콩 독립 운동이 광동인만의 홍콩을 만든자는 순혈주의 논란이 있으며 이는 한족 홍콩인 입장에서도지지 받지 못 하고 있다. 왜냐하면 홍콩은 국제도시이고, 광둥성 외에도 푸젠성 등 타지 출신 한족 홍콩인들도 많다. 그리고 이들 중 일부는 제노포비아 논란도 있다.

8. 만약 실제로 독립한다면 일어날 일

중공 정권이 건재한 현재로서는 실현 가능성이 매우 희박하다. 하지만 독립자체가 완전히 불가능한 것은 아니다. 가능한 시나리오는 여러개가 있는데 그 중 하나는 홍콩이 국민투표를 통한 영국으로의 재합병 선언이다.[24]

이 시나리오와 비슷한 사례가 2014년 크림 합병이 있었다. 당시 러시아의 막가파 적인 병합추진에 서방은 무기력하게 보고만 있었다. 엄중하다며 위협을 했지만 미국이나 러시아 모두 전쟁을 감수할 수 없었기 때문에 결국 크림은 러시아에 병합되었다.

하지만 이는 역으로 생각한다면 만약 홍콩이 영국으로의 재병합을 선언 시 중국이 대응을 생각해 볼 수 있다. 아무리 하나의 중국을 기치로 내건다고 하더라도 중국의 입장에서 전쟁을 감수하기가 어려울 것이다.

중국은 주변이 적국이다. 대만, 한국, 부탄, 일본, 싱가포르, 인도, 베트남은 전통적인 적국이고, 네팔 라오스, 미얀마, 몽골, 중앙아시아 국가들 역시 중국과 관계가 좋지 않으며 러시아 북한도 중국과 신뢰하는 관계를 갖고 있지는 않다.

결국 크림의 사례처럼 홍콩은 영국령에 다시 편입될 것이고 중국의 강력대응은 그저 말로만 끝날 것이다. 단지 러시아와는 달리 영국은 그런 투표를 밀어붙일 가능성이 매우 낮을 뿐이다.

9. 기타

ATV가 경영난 등 위기에 빠져 홍콩 정부의 지상파 TV 면허 말소 조치로 2016년 4월 1일을 끝으로 폐국할 때의 일이다. 방송 종료 시한인 4월 1일-2일 자정이 가까워올 때 ATV의 광동어 채널인 ATV Home(本港台)에서는 ATV의 미인대회 미스 아시아 수상자 중 몇몇이 모인 Miss Asia 25th 葡萄牙瑰麗巡迴(2013년 본방)의 재방송을 하고 있었는데, 일행 중 한 명인 캔디 로(羅霖, Candy Lo (1991년 미스 아시아 우승자))이 이런 말을 꺼냈다.

都應該都獨立 (다른 일행: 對)
독립해야 한다 (동의한다)
特別是經濟獨立 (다른 일행: 對)
특히 경제적으로 독립해야 한다 (동의한다)
해당 프로그램 전체 (투두 링크. 문제의 독립(?) 발언은 38:16.)

이 말이 나온 직후 마침 자정이 딱 되어 ATV의 방송이 끊겼다. 이 때문에 온갖 음모론 개드립이 쏟아져 나왔다고 한다. 일각에서는 캔디 로가 한 관련 발언 등을 가지고 음모론적 주장을 하기도 했다. 물론 저 방송은 한국의 미수다처럼 미녀들이 서로 이야기를 하는 성향의 방송이었으므로 정치적인 홍콩 독립운동과는 연관이 있다고 보기 힘들다. 저 독립 이야기도 생활 이야기를 하며 나온 것이다. 결정적으로 중국 본토인 참가자와 함께 있을 때 한 발언이므로 홍콩 독립운동과 관련되었을 가능성은 사실상 제로다. 결론은 문맥을 무시한 인용의 대표적인 사례. 오히려 2016년 4월 2일 폐국하면서도 고별 프로그램 하나 제대로 만들지 못하고 2013년 프로를 재방송하다가 이런 일이 생겼으니 ATV로서는 정말로 서글픈 일이다.

위 유튜브 영상의 대화를 모두 옮기면 다음과 같다.
(普通話) 女孩的夢想真的是這樣
(중국 본토인이 표준중국어로) 여자의 꿈은 정말 그래요
幸福簡單的家庭,簡單的生活,(然後) 開開心心地過日子就好
행복하고 소박한 가정, 심플한 생활, (그리고) 즐겁게 살아간다면 그걸로 좋아요
人生就是要開心
인생은 즐거워야 해요
(羅霖(粵語)) 但我要加一句話
(캔디 로가 광동어로) 하지만 제가 한 마디만 더할게요
當然每個人都希望有個美好的家庭
당연히 누구나 모두 아름다운 가정을 바라죠
但我覺得女人在每個階段
하지만 제 생각에 여자는 모든 단계에 있어서
都應該要獨立 (對)
독립적이어야 해요 (맞아요)
特別是經濟獨立 (對)
특히 경제적으로 독립되어야 하죠 (맞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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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담으로, 홍콩 독립이 아니라 광동어 사용 지역을 한 덩어리로 해서 독립국을 세우자는 주장을 하는 운동이 존재한다. 이들이 주장하는 국가의 이름은 대월민국(大粤民國, Republic of Cantonia)이다. 중화권에서는 류중징(劉仲敬)[34]을 비롯한 일부 인사들이 중국이 하나의 나라로 존재해서는 안 되며 과거 춘추전국시대 비슷하게 제하(諸夏)로 재분할돼서 각각 민주화돼야 한다는 주장을 펴는데, 대월민국 구상은 이런 관점을 광동어권에 적용한 독립 운동이다. 다만 일반적으로 홍콩은 오랜 영국령 시기를 거치면서 독자적 정체성이 성립되었기 때문에 대월민국 독립론자들은 대월민국에 홍콩을 포함시키지 않고 홍콩이 대월민국과 별도의 우호적인 독립국이 되는 것을 지지하는 게 일반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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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이 깃발을 용사기(龍獅旗: 용과 사자의 깃발)라고 부른다. 영국령 홍콩 시절 깃발에서 유니언 잭과 문장 뒤에 있던 흰색 배경을 제거하고 방패에 우횡서로 香港이라는 글자를 덧붙인 형태이다. [2] 홍콩의 면적 싱가포르보다 조금 넓고 인구는 조금 많다. [3] 다만 싱가포르는 자발적 의지가 아닌, 원 소속국인 말레이시아에서 인종갈등 및 국가 안정을 빌미로 추방된 후 건국을 '강요받은' 나라이므로, 홍콩과는 사정이 많이 다르다. 싱가포르의 국부 리콴유조차 "싱가포르는 인프라가 열악하고 땅도 너무 좁아 독립을 원치 않았다"고 술회했을 정도다. [4] 싱가포르의 선례라든지, 요즘 영연방 국가들의 입헌군주제에 대한 회의적인 입장으로 봐선 공화국으로 갈 수도 있겠지만, 영국을 확실하게 우군으로 끌어들이기 위해 입헌군주제를 받아들일 가능성도 크다. [5] 예: 다당제, 직접민주주의, 언론의 자유 [6] 홍콩 독립운동 단체 중 하나인 귀영독립연맹의 주장이다. [7] 홍콩은 미국처럼 홍콩에서 태어난 사람에게 무조건 거주권을 준다. [8] 2014년 홍콩 우산 혁명으로 유명한 학생운동단체 '학민사조'의 멤버이자, 2019년 홍콩 민주화 운동의 주역이다. 현재 데모시스토의 대표다. [9] 사실 티베트는 그나마 나은 편이다. 일본을 제외한 해외에서도 어느 정도 잘 알려져 있기 때문. 진짜 문제는 위구르로, 독립운동이 거의 테러리즘에 가깝고 무엇보다 이슬람교를 숭배하기 때문에 서방 세력의 지원은 거의 없다고 봐도 무방하다. 일본 극우들이 가끔 지원해줄 정도. [10] 중화인민공화국이 됐든 중화민국이 됐든 [11] 중국에 대한 비칭으로 중국인에게는 상당한 모욕이다. 일본에서는 인종차별의 여지가 있다며 금지어로 지정됨. [12] 당시 군주제+파시즘 체제이던 일본 정부의 타도 및 무산계급 혁명 [13] 하나의 중국 문서 참조. 중국국민당과 공산당 둘 다 하나의 중국에 동의하며 당연히 홍콩 범람연맹은 홍콩을 "중국"의 일원이라고 한다. 당장 92공식 하에서는 중화민국도 결국 중국의 한 체제일 뿐이다. 대륙에서는 중국 공산당에 밀려나긴 했지만 어쨌든 현 신중국의 전신은 엄연히 1911년 신해혁명으로 만든 중화민국이 맞다. 홍콩 내 국민당 및 친민당계는 단지 "중국"을 아직도 중화민국으로 볼 뿐이며, 중국국민당이 더 낫다고 본 현 베이징 정부는 독립운동 세력보다는 하나의 중국을 지지하는 국민당을 맘에 들어한다. [14] 또는 호레이스 친. 1961년생. 본명은 친완칸(陳云根). 객가 출신이라 陳을 Chin으로 쓴다. 중국공산당의 원로 정치인이었던 천윈(陳雲, 1905~1995)과는 동명이인. [15] 제1조 1항, 홍콩은 중화인민공화국의 분리할 수 없는 일부분이다. [16] 다만 주민투표를 통해 '홍콩의 독립을 포함한' 홍콩의 미래를 결정하자고 제안한 바 있다. [17] 중월전쟁 이후 베트남 화교들이 많이 간데가 홍콩인 점도 있다. [18] 원래 나라 이름, 민족 이름으로 쓰는 越과 粤은 같은 글자이다. [19] 국내의 간도회복 동북 3성 독립 지원 주장과 판박이라고도 볼 수 있다. 두 국가 모두 제3의 세력의 지원 없이는 중국을 상대로 그럴 역량이 없다는 점에서도 동일하고. 다만 그만큼 동아시아 국가들이 중국을 최대 위협으로 느끼고 있다는 반증이라고 볼 수는 있다. 단적인 예로 한국이 일본과 아무리 사이가 나빠도, 혐일 성향을 가진 자들을 제외하면 일본에 쳐들어가자거나 일본을 분열시키자고 주장하는 사람은 거의 없으니. 일본을 공격한다 [20] 물론 광시 좡족 지치구, 광둥성 정도야 옛 남월과 연관성이 있지만, 푸젠성 등지는 무리다. 전한대에는 한나라와 별개의 제후국으로 존속해 있었지만 민월과 동월이라는 명칭으로 남월과 다른 국가가 형성되어 있었기 때문에 고대 베트남과의 연관성은 없다. 고대에 오스트로아시아, 오스트로네시아인들이 양쯔강 일대에서 살았다는 설이 있지만 거의 기원전 6000년전의 일로 까마득히 먼 옛날이다. 당시 월이라는 명칭 자체가 중국 양자강 이남에 살던 종족들을 싸잡아서 부르는 명칭이었기 때문이었다. [21] 범록연맹에 더 가까운 친대파와도 차이가 있다. [22] 넓은 범위의 중화권 주민 [23] 상하이 봉쇄는 대규모 시위 등 반발만 불러오고 오미크론 하위 변이들의 재유행이 계속되어 실패로 끝났다고 보면 된다. 실제로 시진핑의 3연임도 상하이 봉쇄 실패로 흠이 생겼다. 상하이 봉쇄 때 중국을 떠난 중국 부호들이 많아 경제적 손실까지 입었다. [24] 중공이 당장 망한다고 해도, 양안통일을 원하는 대만 범람연맹 그리고 국민당 홍콩을 자국령으로 간주할 가능성이 높다. [25] 다만 캐나다의 프랑스어판 처럼 명목상 용도로 광동어판, 표준중국어판이 나올 수도 있다. [26] 성방(城邦)은 한국 한자어의 시국(市國), 즉 도시국가에 해당되는 단어이다. [27] 오리지널인 광동어판 외에도 다른 홍콩 현지어인 영어판, 홍콩수어판도 있고, 한국어판 등 외국어로 된 버전도 나와 있다. 여러 언어판을 섞어서 만든 버전. [28] 싱가포르 남중국해를 두고 한참이나 멀리 떨어져 있기라도 하지, 홍콩은 아예 중국과 국경을 맞대고 있다. [29] 아니면 아이슬란드, 파나마 코스타리카처럼 국방을 미국에 위임할 가능성도 있다. [30] 다만, 홍콩의 면적 문제가 있어서 이런 경우라면 공군의 주둔이 어려워진다. 이미 주둔하고 있는 중국 인민해방군 주홍콩부대마저도 홍콩 시내에는 꼴랑 무장헬기 12대만 주둔해있고 전투기 수송기들은 홍콩 밖으로 쫓겨나서 본토에 있는 주변 위성도시에서 셋방살이하는 판국인데, 미래의 홍콩군이건 외국 공군이건 간에 홍콩이 독립한다면 짤없이 대만 등 남의 나라에다가 공군 기지를 차릴 수밖에 없다. 아니면 홍콩 국제공항을 간척하는 방식으로 확장해서 공군기지를 차리는 방법이 있긴 하다. [31] 국영은행이지만 중앙은행은 아니다. 중국의 중앙은행은 중국인민은행이다. [32] 중국은행 홍콩 지점은 중국과 홍콩의 법률의 차이때문에, 본토에 있는 본점과는 별개의 법인으로 독립되어있다. 그래서 만일 홍콩이 독립하게 될 경우, 독립에 대한 승인 논의와 연계해서 중국은행의 홍콩 법인을 독립국 홍콩 정부에 인수하는 방법을 생각해볼 수도 있다. 인수 후에 명칭만 중국과 관계없는 것으로 바꾸면, 독립 직후에 바로 정상 운영을 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이 방법을 쓰면 별도의 중앙은행을 설립하는 것에 비해 돈이 덜 들기도 하다. [33] 단 마카오는 특별행정구이기 때문에 마카오 ID 소지자에 한해선 현재와 마찬가지로 수월하게 통과할 수 있을 것이다. [34] 중화인민공화국 출신의 의사(醫師) 겸 역사가인데 현재는 미국에 이민 가서 중국을 해체하고 여러 개의 국가로 독립해야 한다는 주장을 하는 인물이다. 본인의 출신지인 쓰촨성의 경우 대촉민국(大蜀民國·Republic of Basuria: Basuria는 파촉(巴蜀)을 라틴어화한 표기)이라는 이름의 나라로 독립해야 한다는 주장을 하고 있으며 본인을 대촉민국 임시총통으로 자임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