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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2년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원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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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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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2년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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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2. 러시아 책임론
2.1. 러시아 제국주의
2.1.1. 블라디미르 푸틴의 비대한 정치적 야망
2.2. 푸틴의 마초적인 남성성2.3. 돈바스 전쟁2.4. 우크라이나의 천연자원
3. 제1세계 책임론
3.1. 북대서양 조약 기구(NATO)의 동진
3.1.1. 주장측
3.1.1.1. 독일 재통일 과정에서의 서방측의 발언3.1.1.2. 러시아 피포위 의식 자극3.1.1.3. 우크라이나 NATO 가입 문제
3.1.2. 반박측
3.1.2.1. 동독에 한정된 발언이자 주권 침해의 소지3.1.2.2. 러시아가 자초한 측면3.1.2.3. 우크라이나 주권 침해3.1.2.4. 현실성이 없었던 우크라이나의 나토가입 문제
3.2. 미국의 글로벌 패권 유지
3.2.1. 반박
3.3. 우크라이나의 나치화
3.3.1. 반박
3.4. 우크라이나 외교 정책 실패
4. 중립적 시선
4.1. 지정학적 원인
4.1.1. 러시아의 지정학적 취약점4.1.2. 우크라이나의 지정학적 중요성
4.2. 러시아 우크라이나의 민족 정체성 갈등4.3. 서방의 낮은 개입 가능성4.4. 민스크 협정의 위반4.5. 러시아의 사정
4.5.1. 러시아의 인구문제4.5.2. 러시아의 실존적 위기
4.6. 크림반도의 물 공급선 확보 문제4.7. 미국의 개입 회피
4.7.1. 반박
5. 기타
5.1. 클린턴 전 미국 대통령의 반응5.2. 러시아의 반응

[clearfix]

1. 개요

2022년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의 원인을 정리한 문서이다.

2. 러시아 책임론

2.1. 러시아 제국주의

현대 국제 사회의 국가들 입장에서는 러시아가 과거 자신의 영향권이었다가 떨어져 나간 주변 국가들에게 다시 영향력을 확대하려는 것은 러시아 제국 소련이 누렸던 역사적 과거 영역을 회복하려는 명백한 팽창주의로 해석된다. 대표적으로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은 우크라이나가 독립국이라는 사실을 부인해 왔다. 이러한 인식은 푸틴이 빅토르 야누코비치 우크라이나 전 대통령과의 회담에서 고의로 4시간 지각한 사례[1] 혹은 그가 2005년 쓴 글에서도 드러난다. # # #

러시아가 우크라이나를 어떻게 생각해 왔는지는 2022년 2월 21일 저녁 푸틴 대통령의 대국민 연설에서 드러난다. 해당 연설에서 푸틴은 우크라이나를 가리켜 볼셰비키 정책의 결과로 생겨난 국가, 꼭두각시 정권이 이끄는 식민지라 지칭하고 우크라이나인을 가리켜 러시아인이라고 부르면서 우크라이나 국가 자체를 부정하는 가치관을 드러냈다.[2][3] # # #

역사적으로 우크라이나의 모태인 키예프 루스는 러시아와 벨라루스까지 세 동슬라브 국가 역사의 시작이기도 하다. 그래서 우크라이나라는 영토는 러시아인들에게는 특별한 의미를 지니는 지역이다. 러시아는 우크라이나에 위치했던 키예프 루스를 자신들의 뿌리로 여기고,[4] 때문에 우크라이나에게 느끼는 감정 또한 미국 영국, 프랑스 캐나다, 독일 오스트리아의 관계와 같은 형제국에 가깝다. 극우파는 아예 우크라이나를 러시아에서 떨어져나간 지역이니 다시 병합하거나 최소한 보호국으로 삼아야 한다고 본다. 이런 이유로 러시아인러시아와 우크라이나는 같은 국가며, 우크라이나는 러시아의 불가분의 변경 지역 ' 소러시아'[5]라고 주장한다.[6]

하지만 이런 인식과는 다르게 소련 해체 이후 러시아 체첸 사태 등 국내 정치의 불안정은 물론이고 모라토리움을 선언해야 했을 정도로 극심한 경제적인 위기로 인해 주변을 신경 쓸 여력이 전무했고, 이로 인해서 동유럽에서의 막강했던 영향력을 순식간에 상실했다. 특히 이때의 충격과 누적된 러시아의 환경문제로 인해 러시아는 이미 상당히 심각한 수준의 인구감소를 겪고 있으며, 대규모의 노동이민을 받지 못하는 한 국내의 산업기반을 유지할 수 없을 정도로 상황이 심각하다.

러시아의 영향력에서 멀어진 에스토니아 라트비아 등지에 거주하는 러시아인 인구 상당수가 해당국들의 반러 정책으로 인해 하루아침에 무국적자로 전락하였다.[7] 이때 러시아가 느낀 치욕감은 현재의 푸틴이 정권을 잡게 된 원동력이 되었다.[8]

반러 진영 일각에서는 에스토니아와 라트비아 일대에 무국적자로 전락한 러시아인들이 소련 당국에서 현지인 동화 및 독립 가능성 말살을 목적 삼아서 정책적으로 이주시킨 주민들이었으므로 국적을 박탈당해도 할 말 없다는 식의 주장을 하는 경우도 있으나, 에스토니아와 라트비아는 2차대전 전후하여 독일인 인구가 전부 추방당한데다가 에스토니아와 라트비아의 출산율이 낮아서 인력 보충이 쉽지 않아 데려온 인구이고, 이들 중에서는 러시아인만 있는 것이 아니라 우크라이나인 벨라루스인, 그리고 소수의 고려인을 포함해 그야말로 소련 각지에서 온 사람들이 포함되어 있었다. 다만 이들이 대부분 러시아어는 할 줄 알면서 에스토니아어나 라트비아어 같은 현지어는 못하기 때문에, 자연히 러시아어 화자를 불편하게 만드는 국가 정책에 대해 러시아인을 중심으로 똘똘 뭉치다보니 대충 퉁쳐서 러시아인 여론으로 묶이는 것이다.

우크라이나 내에서도 우크라이나어를 유일한 공용어로 지정하여 러시아어의 지배적 위치를 끌어내리는 등 러시아의 헤게모니를 약화시켰기 때문에 러시아와 관계가 악화되었다. 러시아계가 아닌 그냥 우크라이나 민족 정체성을 가진 사람 중에서도 제1언어가 러시아어인 인구가 꽤 있기 때문에[9] 이런 사람들 중에서도 일부는 친러 성향에 동참하게 되었다. 러시아 여론 또한 오히려 소련 붕괴 이후 잃어버린 영토 및 그곳에 마련된 각종 자산들을 마땅히 회복하려는 것에 불과한 '정당한 권리 행사'로 여긴다. 러시아의 이러한 가치관은 지위 고하를 막론한 상당수의 러시아 국민들이 광범위하게 공유하고 있다.

그리고 푸틴 정권은 러시아 국민의 기대에 부응해 경제를 회복시키는 한편 이웃나라들에 대한 영향력을 예전 수준으로 회복하기 위해 노력을 기울여왔다. 이는 중앙아시아에서는 꽤 성과를 보았는데, 대부분의 국가가 복지 붕괴 등 소련 해체의 부작용을 러시아보다 강하게 앓고 있었고 지하자원을 기반으로 한 독재자나 소수의 재벌들이 지배하는 상태라 구워삶기가 쉬웠기 때문이다.

당장 친러 중앙아시아 국들의 주 외화 수입원 중 하나가 러시아에 이주노동자로 나간 자국민들의 송금이다. 석유 수출로 러시아 경제가 회복되면서 중앙아시아 지역 내에서는 러시아의 영향력이 막강해졌다. 사실, 우크라이나도 지난 100년간 역사적 수탈과 피해로 인해 심각한 인구감소 추세를 현재진행형으로 맞이하고 있고, 러시아와 서방 양쪽 사이에 낀 지정학적 문제로 자국 경제가 너무 좋지 않아 청년들의 인력유출이 큰 나라이기 때문에 러시아도 우크라이나 동부의 젊은이들이 언어의 부담없이 돈 벌러 갈 수 있는 나라로 적지 않은 젊은이들이 떠났으며 그로 인해 러시아로부터 완전히 분리되기 어려운 환경이었다.

하지만, 정작 가장 중요한 구 바르샤바 조약 기구(WTO)의 일원이나 소비에트 연방 소속 독립국, 즉 우크라이나를 포함한 발트 3국 등은 예전부터 러시아에게 오랫동안 핍박을 받아 온 역사 때문에 반러 감정이 매우 강하고, 그만큼 러시아의 영향력도 벨라루스, 우크라이나 분리주의 지역들[10], 일부 구소련 미승인국[11]들을 제외하고는 별 성과가 없는 상황이다. 게다가 이전 공산권 국가였던 폴란드, 체코, 슬로바키아, 발트 3국 동유럽 국가들이 미국, 영국, 유럽연합(EU) 등 서방 세계와 더 가까이 지내면서 러시아와 더 멀어졌다.[12]

구 공산권 국가들이어서 러시아와 친해보일 것 같지만 사실 언급된 국가들은 역사적, 종교적으로 러시아와 공통점이 거의 없다. 폴란드야 말할 것도 없고, 체코와 슬로바키아의 경우 오랜 세월 합스부르크 제국의 영토였기에 종교, 문화적으로 중유럽, 특히 서게르만족의 영향을 강하게 받았으며 오스트리아-헝가리 제국이 해체되기 직전까지 제국이라는 틀 안에서 자신들의 권리를 신장시키고자 하였는데, 이는 독립했을 시 러시아의 간섭을 걱정해서였다. 발트 3국 역시 독일 기사단국 시절부터 게르만족의 영향을 강하게 받았고, 1917년의 러시아 혁명 시기와 1991년 소련 해체 등 러시아가 혼란스럽던 때에 독립을 선포했을 정도로 독립 의지가 강하다. 오죽했으면 독립하고자 2차 대전 도중엔 그 악명 높은 나치 독일과 손을 잡았을 정도였다. 이는 스테판 반데라를 중심으로 하는 우크라이나 민족주의자들 일부에게도 해당된다.

또한 서방 세력에게는 우크라이나는 단순히 러시아와의 경계에 있는 국가이고 경제적으로는 큰 이점이 없는 동유럽 국가들 중 하나이지만 러시아 입장에서는 동유럽 국가 중 몇 안 되는 NATO 비회원국이자, 지금까지 흑해로 가는 항구가 있는 만큼 매우 중요한 군사적 요충지이고, 서방 세력과의 최전선이자 대규모 곡창지대이기까지 한 우크라이나를 절대로 포기할 수 없다. 결국 그나마 남은 러시아의 동유럽 내 영향권 때문에 러시아는 우크라이나에 신경 쓸 수밖에 없다.[13]

그래서 중유럽 폴란드, 체코, 헝가리 그리고 동유럽 발트 3국 같은 애초에 '남'인 나라들과는 무게감이 전혀 다르다. 이러한 민족주의적인 감정은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개입이 큰 지지를 얻게한다.

이에 더해, 동부 우크라이나의 친러 지역인 도네츠크와 루간스크의 분리주의자들은 러시아에 직접 도움을 청하였으며, 러시아도 이에 호응해 이 지역들의 기업 재건, 10만 명의 인력 파견 등의 원조를 제공하고, 이미 러시아에 점령된 동우크라이나 문제에 대한 해결 방안을 키예프 당국이 내놓아야 한다고 말하며 우크라이나 전역을 삼키려는 야욕을 보였다. 두 지역의 분리주의자들은 러시아의 이와 같은 공언을 이미 성공으로 간주하고 있다고 한다. 게다가 이 지역들은 이들에 의해 이미 루블 통용권이 되었다.[14]

2.1.1. 블라디미르 푸틴의 비대한 정치적 야망

현 러시아의 대통령인 블라디미르 푸틴은 실로비키의 실세로서, 슬라브 민족주의 국가주의, 전체주의를 주요 정치적 구심점으로 잡고 있다. 이에 따라 푸틴 집권기의 러시아는 정치적 위기를 극복하거나 전환점이 필요할 때마다 구소련 시절부터 이어진 군사력을 통해 실력을 행사해 왔으며,[15] 유엔 안전보장이사회 상임이사국에 포함된 국가에 한때 제 2세계의 중심축이었던 군사력의 상당부분을 온존하고 있기에 이에 대해 국제사회가 적극적으로 개입하기가 어려웠다.

그 결과 1999년 이후 푸틴이 집권한 러시아는 자국과 영토를 접한 지역에 대해선 별 다른 명분이 없는 상황에서도 자국의 요구가 받아들여질 때까지 각종 첩보 공작과 무력행사를 멈추지 않았고, 무려 거의 20년 넘게 체첸 전쟁의 마무리, 남오세티야 전쟁, 크림 반도 합병, 돈바스 전쟁 등을 통해 꾸준한 성공을 이루기까지 했다. 이런 연속적인 군사적 성과에 고무된 결과 러시아는 언제든지 자국 내 정치적 목적을 달성하기 위해 군사적 행동에 들어가는 걸 서슴지 않았고, 러시아가 워낙 기본 국력이 막강한 국가이기에 전쟁에 따른 리스크가 적었으므로 민족주의와 대 러시아주의에 고무된 국민들의 지지를 받을 수 있었다.

그러나 러시아는 영국과 아르헨티나 모두에게 변방이고 인구가 적었던 포클랜드에서 벌어진 두 나라의 전면전과 프랑스와 미국의 제1차 인도차이나 전쟁, 베트남 전쟁과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규모가 큰 우크라이나 전 지역을 불바다로 만들어 버렸고 결국 이로 인해 오히려 러시아 내부에서도 반전 여론이 일어나게 되었다. 그리고, 2022년 9월을 기준으로 현재 러시아가 점령하고 장악한 우크라이나의 지역에서도 러시아군에 저항하는 우크라이나 시민들의 움직임이 거센 상황까지 오게 되었다.

하지만, 경제 및 민심, 그리고 외교적 고립은 이미 러시아가 고려하는 것이 아니다. 각종 외신 및 정보를 종합해 보면 푸틴 휘하 러시아 지도부의 목적은 실로비키 수장인 푸틴의 정치적 이미지를 위한 우크라이나의 완벽한 복속과 괴뢰정부화 또는 사실상 다음 번 성공적인 침공을 위한 현 우크라이나 군사력 및 외교력의 원천적 무력화뿐이다. 알자지라 방송은 코로나바이러스감염증-19 유행으로 인한 지지율 하락을 러시아가 군사행동에 들어간 배경의 하나라고 보도했으며, 미국 외교전문지 포린폴리시(FP)는 푸틴이 국제법에 신경쓰지 않은 지 꽤 됐다며 그가 진심으로 고민하고 염두에 두는 것은 러시아 내 자신의 이미지뿐이라고 언급했다. # # 러시아의 야권 지도자 알렉세이 나발니는 러시아의 내부 문제에 대한 관심을 외부로 돌리기 위해서 우크라이나를 침공한 것이라고 주장했다. 이 주장의 내용은 아르헨티나가 포클랜드를 침공한 이유와 같다.

현 시점에서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의 가장 큰 동기이자 원동력은 오직 블라디미르 푸틴으로서, 자신의 정치적 성공을 달성하기 전까지는 무슨 일이 있어도 전쟁을 지속하겠다는 의지를 멈추지 않고 있다.

2.2. 푸틴의 마초적인 남성성

주요 7개국 정상회담(G7)의 서방 정상들은 ‘해로운 남성성’(toxic masculinity)이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의 주요 원인이라 보며 #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의 '마초 근성'을 잇따라 비판하고 나섰다.

설명을 보충하자면 위에서 언급된 대로 푸틴은 정권을 잡은 이후 주요 정치적인 위기를 군사적 행동으로 반복적으로 극복해왔다. 이 성공이 누적된 결과 러시아의 군사적 행동은 정치적 야망으로 설명되기 어려운 영역에 들어갔으며, 사실상 가능한 대부분 외교적 행동을 '사나이답게' 군사적 행동으로 해결하는 위대한 러시아 부활 & 정복군주로서 비대한 야심을 가지게 되었다. 즉 강대국 정치인으로서 정치적 위기를 극복하기 위해 어쩔 수 없이 군사력을 쓰는 게 아니라 강한 러시아를 지배하는 푸틴 자신을 과시하기 위해 고르디우스의 매듭마냥 툭 하면 상대적 약소국을 향해 군사적 행동을 반복하는 것을 선호하고 있다.

때문에 보리스 존슨 영국 총리는 독일 ZDF 방송에 출연하여 양성평등 교육의 중요성 등을 주제로 얘기하던 중 여성이 더 많은 권력을 잡아야 한다며 만약 푸틴이 여자였다면 그런 정신 나간, 남성성만 과시하려는 침략 전쟁은 하지 않았을 것이라고 발언하며 러시아가 우크라이나에서 하는 행위야말로 '해로운 남성성'의 완벽한 예시라고 비꼬았다. # 서방 정상이 푸틴 대통령이 남성 우월주의라고 공개 비판하는 것은 처음이 아닌데 독일에서 G7 정상회의 도중에서도 정상들이 단체 사진을 촬영하는 자리에서도 쥐스탱 트뤼도 캐나다 총리도 푸틴 대통령을 겨냥했다.

2.3. 돈바스 전쟁

돈바스 전쟁은 2014년 돈바스 반군 및 러시아 군과 우크라이나 군 간에 발발한 전쟁이다. 이 전쟁은 2022년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의 정치적 구도나 원인 측면에서 전체적으로 궤를 같이한다는 점에서 돈바스 전쟁의 원인을 살펴보는 것이 중요하다.

새로운 정책을 떠맡은 주역은 콘스탄틴 말로페예프Konstantin Malofeev가 발탁한 러시아군 정보총국GRU 대령 이고르 기르킨Igor Girkin이었다. 러시아에서 "정교회 올리가르히"로 알려진 말로페예프는 반동성애 활동가이자 노골적인 러시아 제국주의자였다. 그가 보기에 "우크라이나는 러시아의 일부다. 나는 우크라이나인을 도저히 비러시아인이라고 생각할 수 없다." 러시아는 유럽으로부터 우크라이나를 구해야 했다. 그렇지 않으면 우크라이나 시민들은 "전통적인 우크라이나 사회에 하나의 규범으로 남색을 확산시켜야 했을 것"이기 때문이다. 사실을 어떻게 해석하더라도 이것은 진실이 아니다. 말로페예프는 러시아 정책의 방향성을 표현한 셈이었다. 유럽을 문명의 적으로 묘사하고, 동성애는 전쟁으로, 우크라이나는 전장으로 묘사하는 정책이었다.

말로페예프가 채용한 기르킨은 비정규전 경험이 있었다. 그는 유고슬라비아 전쟁에서 러시아 지원병으로 세르비아 편에서 싸우면서 종족 청소와 대량 강간이 벌어진, 유엔이 선포한 "안전지대"와 보스니아 소도시들에서 교전에 참여했다. 또한 러시아가 트란스니스트리아와 체첸에서 벌인 전쟁에도 참전했으며, 파시스트 알렉산드르 프로하노프가 편집장인 언론에 이 경험들에 관해 글을 쓴 바 있었다. 기르킨은 2014년 1월 22일부터 2월 4일까지 키예프에 체류했으며, 이후 크렘린에 우크라이나를 침공해서 분할하자고 권고한 것으로 보인다.
티머시 스나이더, 『가짜 민주주의가 온다』(유강은 옮김), 서울 : 부키, 2019. p 184-185
러시아는 '독립국' 우크라이나를 말살하는 것으로 외교 정책을 변경했다. 우선 유로마이단 혁명을 전후하여 대대적으로 유로마이단을 네오나치 세력이 주도했고, 우크라이나 동남부에서 러시아인가 공격받고 있다는 식으로 선전했다.[16] 특히 러시아는 우크라이나의 극소수인 네오나치 세력이 유로마이단 참여자 전체와 과도정부 그 자체인 것처럼 선전하였다. 크림 반도를 점령한 러시아는 우크라이나 동부에도 병력과 요원을 파견하여 반란을 대대적으로 선동했고, 그 결과 2014년 4월부터 반란이 발발, 도네츠크 인민공화국 루간스크 인민공화국이 생겨났다.

우크라이나는 당연히 말만 반군이지 러시아 정규군이나 다름없는 반란군의 진압을 시도했고,[17] 실제로 러시아군이 더 깊이 개입한 2014년 8월 전까지 '반군'을 전멸 직전으로 몰아붙였다. 우크라이나의 네오나치가 러시아인을 학살하고 있다고 선전하던 러시아는 8월에 아예 대놓고 병력을 파견하여 우크라이나군을 패배시켰다.[18][19]

아래 주장처럼 우크라이나가 러시아와의 갈등을 국내 정치에 악용했다는 주장도 있다. 2021년 봄 우크라이나가 돈바스 일대에 병력을 증원한 것을 그 근거로 들고 있다.
먼저, 우크라이나는 다양한 국내적·대외적 효과를 염두에 두고 의도적으로 해당 지역 내에서 군사적 긴장을 고조시켰다. 첫째, 당시 젤렌스키 정부는 취임 3년차에 접어들면서 지지율이 크게 하락한 가운데, 국정운영 동력 확보와 재선 잠재력 확대를 위한 수단으로서 강력한 反러 노선 구사에 대한 필요성을 느끼고 있었다. 이에 따라 초기의 유화 정책을 전환하여 포로센코 시기와 마찬가지로 자국 내 親러 세력과 러시아를 겨냥해 돈바스 지역 대치 전선에 병력과 무기를 대폭 증강함으로써 해당 지역 내 긴장을 급격히 고조시켰다.
『바이든 정부출범 이후 미러관계』: - INSS 연구보고서 2021-16. 장세호, 국가안보전략연구원, p 39 #
그러나 이것은 사태의 선후관계를 잘못 파악한 것에서 비롯된 오해다. 우크라이나가 병력을 증원한 이유는 러시아가 우크라이나 국경에 병력을 배치하여 침공 위기를 조성했기 때문이다. 러시아는 그해 2월 21일 '대규모 훈련'을 명목 삼아 3천의 공수군 병력을 배치한 것을 시작으로 대규모의 병력을 집결했다. # 러시아의 병력 배치는 시간이 갈수록 불어나 그해 4월 우크라이나 당국의 추정에 따르면 국경 인근의 보로네시에 배치된 러시아군만 4만명이었고, 크림 반도에 배치된 병력도 4만에 달했다. # 러시아군의 우크라이나 국경 집결은 우크라이나뿐만 아니라 서방과 러시아측 소스에서도 확인된다.[20] 여기에다 보로네시에 야전병원 및 장거리 통신시설을 건설하고 러시아 전역에서 대량의 군사장비를 우크라이나 국경으로 수송하는 등 #[21] 단순 군사 훈련(러시아의 주장)이 아닌 전면 침공 준비의 구체적인 징후가 명백히 나타났다. 당시 러시아의 병력 배치를 두고 조 바이든과 보리스 존슨, EU 지도부, 독일 국방장관 등이 한소리했을 정도로 침공 위기가 가시화된 상태에서 우크라이나는 대비 차 돈바스에 추가로 병력을 배치한 것이다. # #

또한 2019년 4월 24일부터 러시아는 조지아 압하지야 남오세티야처럼 돈바스에서도 자국 여권을 남발하는 정책을 펼쳤다. # #[22] 러시아는 타국 국민에게 여권을 발급하는 것이 노골적인 주권 침해 행위인 것을 알면서도 감행한 것이다.[23] 이후 러시아는 돈바스 거주 러시아 시민을 보호해야 한다는 선전을 일삼았고, 우크라이나를 탈나치화하겠다는 일방적 주장과 함께 2022년 전면 침공의 명분 중 하나로 삼았다. 우크라이나 입장에서는 대화하려 해도 러시아가 자기 주권을 전혀 존중하지 않고 돈바스와 크림반도를 병합하기 위한 정책을 멈추지 않으니,[24] 전보다도 더욱 강경해질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2.4. 우크라이나의 천연자원

일각에서는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략의 배경에는 우크라이나의 방대한 천연자원이 있다는 주장을 펴기도 한다.

포린폴리시에 따르면 우크라이나에는 생각보다 상당한 양의 천연자원들이 있는데, 유럽에서 현재까지 확인된 최대규모의 채굴가능한 형태의 희토류가 매장되어 있고, 약 1.1조에서 5조 세제곱미터 정도의 천연가스가 있는데 이는 유럽에선 러시아 다음으로 많은 양이다. 그 외에도 핵심금속 120개 품목 중 117개가 채굴가능한 상태로 있으며 그 가치는 약 3조에서 11조 달러 정도로 추산되는데다 게르마늄, 갈륨, 철, 망간, 티타늄 등은 전세계 채굴량 10위 안에 들 정도로 생산량도 제법 준수하다. 또한 우크라이나는 러시아와 더불어서 전세계 밀수출의 20-30%를 차지한다. 더 무서운 것은 우크라이나는 여러 이유로 인해서 아직 각종 농업, 광업, 공업 생산인프라가 완벽히 갖추어지지 않았고 대부분의 자원들이 아직 제대로 개발되지 않았다는 점이다. 그런데도 이미 전세계 자원시장에서 존재감을 내비칠 정도로 축복받은 땅이다.

특히 희토류와 천연가스는 러시아 입장에서는 더욱 귀중한데, 우크라이나를 만약 본래 작전대로 속전속결로 밀어붙였으면 명실상부 유럽 최대의 천연가스 보유자가 되어 러시아에 대한 서방의 의존도를 더욱 공고히 할 수 있으며 희토류는, 비록 위 기사에서 확실히 나오진 않았지만, 사실상 러시아를 포함한 전 유럽에서 제일 많이 묻혀있다 한 내용을 보면 러시아의 희토류 수출비중이 전세계의 16% 정도이기에 이를 배 가까이 획기적으로 올릴 수 있는 기회이기도 하다. 한마디로 러시아 입장에서는 제대로 개발만 한다면 리튬, 티타늄, 망간, 철, 석유, 석탄, 천연가스, 밀 등 식량, 에너지, 산업용 금속, 희토류 시장에서의 영향력을 크게 증가시켜 서구세계에 대한 영향력 증대와 더불어 러시아 시장 확대라는 정치적, 경제적 이득을 동시에 잡는 게 가능했던 셈.

실제로 우크라이나의 자원 다수가 현재 러시아에 점령됐거나 집중 공격을 받는 동부 지역과 흑해에 매장돼 있었는데 우크라이나의 원유 절반 가까이와 천연가스 72%, 석탄 대부분이 우크라이나 동부와 남부 해안선에 있으며, 세계적으로 수요가 몰리는 희토류 등 광물자원도 도네츠크주 등 러시아가 공략 중인 지역에서 생산중이였다. 이에 포린폴리시는 우크라이나 동부와 남부 해안선 장악이라는 러시아의 목표가 우연이 아니라고 지적하며 크림반도 강제합병과 이번 침공으로 남부 해안선 일대를 장악하면서 천연가스 등 우크라이나의 연안에 매장된 대규모 탄화수소 자원의 약 80%를 지배하게 됐다고 평했다. #

3. 제1세계 책임론

3.1. 북대서양 조약 기구(NATO)의 동진

냉전시대 소련과 유럽 내 공산권 국가들에게 대항하기 위해 창설된 NATO가 소련 붕괴 이후에도 줄곧 러시아를 압박하는 전략을 취해왔고 이 때문에 서방에 대한 신뢰가 무너지고 안보적 위협을 느낀 러시아가 우크라이나를 침공하게 되었다는 주장이다.

3.1.1. 주장측

3.1.1.1. 독일 재통일 과정에서의 서방측의 발언
양(兩)진영이 맺은 어느 협정‧조약에도 이런 문구가 명문화하지 않은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미 언론의 분석, 미하일 고르바초프 소련 서기장과 제임스 베이커 미 국무장관 등 당시 국가 지도자들의 증언을 보면 서방 측은 “통독 후 나토는 러시아 쪽으로 1인치도 확장하지 않겠다”는 발언을 했다.
<조선일보>“美, 1인치도 나토 확장 안 한다던 30년 전 약속 어겼다” 푸틴 주장의 진실은…

1989년 동유럽에서 민주화 혁명이 불타오르고 베를린 장벽이 붕괴하면서 공산주의가 붕괴되었고, 독일 숙원이었던 통일을 이루고자 하고 있었다. 이때 소련은 독일의 통일에 미온적이었는데, 미국 제임스 베이커 국무장관은 소련 미하일 고르바초프 서기장에게 소련이 독일의 통일을 설득하는 과정에서 NATO를 1인치도 확장하지 않겠다고 발언했다. 하지만 이것은 독일 동유럽 해당 국가들의 주권을 강대국이 침해하는 것이었고, 통일의 당사자인 서독 헬무트 콜 총리가 이 약속에 간접적으로 불만을 표출한 탓에 조약이나 어떠한 형태의 서면 문서로도 작성되지 않고 구두 약속으로만 그쳤다.

이 구두 합의는 2000년대 들어 러시아가 1990년 독일 재통일 당시 미국과 소련 대통령 간에 이런 구두 약속이 있었다고 주장하면서 대중들에게 알려지게 되었다.

서방에서 반드시 지켜야만 하는 법적 효력이 있는 약속을 한 것은 아니다. 그러나 서방에서는 소련 쪽으로 확장하지 않겠다고 약속하는 발언을 한 것은 명백한 사실인 것이다.

서방과 소련은 독일 통일에 합의했지만, 여전히 동독 지역엔 소련군이 있었고 소련의 광범위한 법적 이해관계가 존재했다. 서방으로선, 독일 통일 이후에도 NATO가 위협이 되지 않는다고 소련을 안심시켜야 했다. 이에 당시 서독은 동유럽의 변화와 독일 통일 과정은 결코 소련의 안보 이익을 해치는 방향으로 이뤄지지 않을 것이며, NATO는 동쪽 소련 국경 쪽으로 영토를 확장하는 가능성을 배제해야 한다고 하거나 미국도 소련에게 자신들이 NATO 일원인 독일에 미군을 배치하더라도, NATO 관할권은 동쪽으로 1인치도 확장하지 않을 것이며, 본국은 일방적인 이익을 취할 생각이 없다고 말했다.

미국 조지 워싱턴 대학교의 미 국가기록 분석에 따르면, 당시 서방 세계의 지도자들은 소련의 안보 우려를 불식시키기 위해 비슷한 발언들을 쏟아냈다. 그때는 소련 해체 전이었지만, 서방 지도자들은 이미 중‧동부 유럽 국가들의 NATO 가입을 고려했고, 이를 배제하기로 했다. 부시 대통령은 몰타에서 고르바초프를 만나 “(무너진) 베를린 장벽 위에서 기뻐 날뛰지 않았다”며 소련의 이익을 해치지 않겠다고 약속했다. 소련이 해체된 뒤에도, 당시 영국의 총리였던 존 메이저는 자신들은 NATO의 확장을 거론하지 않는다고 말했다.

그러나 베이커 국무장관의 '1인치 발언'은 미국 내에서도 큰 파장을 일으켰다. 이 발언은 통독(統獨) 이후에도 NATO의 관할권이 ‘동독 지역’에는 미치지 않는다고 해석될 수 있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이후 베이커는 5월 모스크바에서 소련군이 동독에서 철수하는 동안 NATO는 그 지역으로 진출하지 않겠다고 슬쩍 바꿨다.

이후로도 베이커는 2014년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 뒤 가진 인터뷰에서 1인치 발언은 잠시 운을 뗀 정도였는데, 러시아가 협상 과정에서 나온 얘기를 근거로 삼는 게 말이 되느냐고 반박하거나 당시 국가안보위원회(NSC)에서 소련‧동부 유럽 담당 국장이었던 콘돌리자 라이스 전 국무장관은 언론에 그때는 소련의 붕괴나 WTO 해체 이런 것이 모두 불분명한 시점이라, NATO 확장은 1990~1991년 의제에는 있지도 않았다고 주장하나 이 주장은 공개된 당시의 미 외교‧안보 기록과는 맞지 않는다.

당연히 러시아는 이를 ‘독일의 동쪽’으로는 NATO가 동진하지 않는다는 것으로 해석했는데 당시 미국 중앙정보국(CIA) 국장이었던 로버트 게이츠도 회고록에 서방 지도자들이 계속 ‘동진 안 한다’고 발언했기 때문에, 고르바초프와 소련 수뇌부는 'NATO 확장은 없을 것이라고 믿게끔' 됐다고 썼다.

당시 1990년 2월, 독일 통일의 최종 지위를 합의하기에 앞서 제임스 베이커 미 국무장관은 NATO의 관할권은 동쪽으로 1인치도 나가지 않을 것이라고 했고, 고르바초프 소련 서기장은 NATO의 확장이 수용 불가라는 것은 말할 필요도 없다고 했다.

실제로 박근혜 정부 시기 외교대사였던 박노벽 전 대사도 러시아측의 의견에 대해 모스크바 부임 시기 독일, 미국 대사들에게 직접 물어서 확인하자 이들이 펄쩍 뛰며 "서면 약속이 아니며, 법적 구속력이 있게 이야기한게 아니다.", "그때 하나의 그 당시 정책이고 정책은 얼마든지 바뀔 수 있다."는 반응을 해왔다고 밝혔다. 한마디로 지키지 않아도 된다는 약속이라 안지켜도 문제가 없다는 것이지 NATO 동진을 하지 않겠다는 약속하는 발언 자체가 있었다는 것은 서방측 외교관들도 인지하고 있다. (삼프로:25:20부분)

즉, 서방 측에서는 NATO의 확장에 관련하여 발언들을 실제로 쏟아냈다. 때문에 NATO 확장에 대해서는 러시아도 오류가 있지만 서방 측에도 오류가 있는 건 매한가지다.
3.1.1.2. 러시아 피포위 의식 자극
23. NATO welcomes Ukraine’s and Georgia’s Euro-Atlantic aspirations for membership in NATO. We agreed today that these countries will become members of NATO.
NATO는 우크라이나와 조지아의 NATO 가입을 위한 유로 대서양 열망을 환영합니다. 우리는 오늘 이들 국가가 NATO의 일원이 될것이라는 것에 합의했습니다.
Bucharest Summit Declaration. 03 Apr. 2008 . #
"조지아와 우크라이나에 NATO 예비회원국 지위를 부여하는 것은 유럽과 러시아 간 세력 균형에 올바른 답이 될 수 없다."
- 프랑수아 피용 프랑스 총리, 2008년 부쿠레슈티 NATO 정상회담 중
"탈냉전 이후 미국 정책 중 가장 치명적인 실수(the most fateful error of American policy in the entire post-cold-war era)"
조지 F. 캐넌[25] #
서방측에선 막을 수 있었던 전쟁을 막지 못한 거예요
위베르 베드린, 프랑스 전 외무부 장관 (출처:JTBC. <12:28>)
우크라이나 사태에 관해 뉴욕타임스에 기고한 글에서 미어샤이머는 러시아에 대한 미국의 정면 대응은 ‘큰 실수(big mistake)’라고 지적했다. 러시아의 사활적 이해가 걸린 지정학적 문제를 버락 오바마 미 대통령이 국제법적 시각에서 접근하는 것은 국제정치의 현실을 외면한 잘못된 정책이란 것이다.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 입장에선 어떤 대가를 치르더라도 강공(强攻) 이외에 다른 선택지가 없다는 것이다. 푸틴의 강수(强手)에 맞대응하기보다는 우크라이나에 대한 러시아의 전략적 이익을 인정해주고, 우크라이나를 동·서 진영의 중립적 완충지대로 유지하는 편이 현명한 선택이란 충고다. 위기 상황에서 득세하기 마련인 명분론과는 거리가 먼 주장이다. #

소련의 붕괴 이후, 1993년부터 독일의 구 동독 지역에 NATO군이 주둔하게 되었고, 폴란드, 체코, 헝가리, 발트 3국을 시작으로 동유럽 국가들이 NATO에 가입하기 시작했다. 이에 러시아가 냉전시대의 유산인 NATO에 의해 포위되고 있는 형세로 나아가면서 러시아의 안보적 불안을 자극했다는 주장이다. 이 주장은 현실주의 관점에서 본다면 지극히 규범적인 주장이다. 세상 그 어떤 나라도 자국 국경에 인접한 국가가 비우호적이거나 자기의 적국이라 판단되는 나라에 우호적인 나라가 되길 원하지 않는다. 이는 미국, 영국, 프랑스 등도 마찬가지다.

소련의 존재가 NATO의 존재 이유[26]였는데 정작 소련이 해체된 이후로도 NATO는 도리어 더 크게 팽창하면서 결국 러시아의 의구심과 경계를 초래했다. 급기야 NATO는 2008년에 조지아와 함께 우크라이나를 NATO 회원국으로 최종 가입시키기로 약속[27]하며 러시아의 코앞까지 오게 된다.

때문에 이미 예전부터 미국의 정책결정자들과 전문가들도 줄곧 NATO의 확대 정책이 러시아의 반발과 갈등을 일으킬 것이라고 예견하고 이를 경고해왔던 사안이다. 그럼에도 이를 무시하고 NATO 확대를 강행해댄 것이 갈등을 야기한 것이다.

냉전시대의 미국측 전략가였던 조지 캐넌 또한 NATO의 동진 정책은 러시아를 자극하는 것임을 인정하면서 1997년에 <뉴욕타임스>에 보낸 "치명적 실수(A Fateful Error)"란 제목의 기고문에서 러시아를 견제하기 위한 NATO 확장 정책이 미국의 실수라고 하며 이런 결정은 러시아의 민족주의적이고 반서구적이며 군국주의적 경향을 더 부추길 것이고 러시아 민주주의 발전에 부정적인 영향을 미칠 걸로 예상되며 냉전의 분위기를 되돌려놓고 러시아의 외교 정책이 우리가 원하지 않는 방향으로 이뤄지도록 할 것이라고 설명하며. # NATO를 확대할 그 어떠한 이유도 없다고 지적했다.

2008년 당시 러시아 주재 미국 대사였던 윌리엄 번스 우크라이나와 조지아의 NATO 가입은 러시아를 자극하고 있다고 지적했었으며 국제학계의 거장인 존 미어샤이머는 과거 버락 오마바의 외교정책에 대해 틀렸다고 지적하며 러시아의 사활적 이해가 걸린 지정학적 문제를 국제법적 시각에서 접근하는 것은 국제정치의 현실을 외면한 잘못된 정책이라고 비판했다. # 이처럼 미국측 전문가들조차도 러시아에게 우크라이나는 포기할 수 없는 곳이며 러시아가 강경하게 나올 수밖에 없다는 것을 인정했다.

역사적 사례로 봤을 때 반대로 미국의 앞마당인 쿠바, 그레나다에서 쿠바 미사일 위기, 피그만 침공, 그레나다 침공이 벌어졌던 당시 미국이 얼마나 필사적이었는지 상기해 보면 러시아가 이토록 예민하게 반응하는 것을 이해할 수 있다. 실제 미국 일간 뉴욕타임스(NYT)는 “우크라이나 위기가 여러가지 측면에서 62년 쿠바 미사일 사태와 닮아있다”고 소개하며 두 위기가 흡사한 것은 우크라이나와 쿠바의 지정학적 위치 때문으로 미국의 코앞에 대량살상용 공격무기를 배치된 쿠바의 사례와 NATO가 우크라이나를 회원국으로 받아들일 경우 러시아는 턱밑에 자신들을 겨냥한 서방의 첨단 공격무기를 맞닥뜨려야 하는 상황임을 비교해 언급했다 #

현재 동유럽 국가들은 모두 EU NATO 회원국들이며, 핀란드 스웨덴은 중립국을 표방하지만 미국, 영국, 프랑스 등과 가까운 사실상 서방 국가이다.
북대서양 조약 기구와 러시아는 유럽에서 공동의 포괄적 평화에 기여하기 위해 노력한다. (중략)
모든 국가의 주권, 독립 및 영토 보전과 자국의 안보, 국경의 불가침성 및 인민의 자결권을 보장하기 위한 수단을 선택할 고유 권리를 존중한다.
상대방 및 그 어떠한 다른 국가, 그 주권, 영토 보전 또는 정치적 독립에 대한 위협이나 무력 사용을 자제한다.
- 1997년 프랑스 파리에서 맺어진 나토-러시아 건국 의정서(Founding Act)
이에 과거 모스크바의 불안을 잠재우기 위해 NATO와 러시아가 합의를 맺었었다. 일명 NATO-러시아 건국 의정서라고 하는 것으로, 강제성은 없는 의정서이지만 그 내용 중에는 상대가 자신의 영토와 국경을 지키기 위한 수단을 선택하는 것을 존중한다는 내용이 있다.

그러나 미국은 2008년 부쿠레슈티 NATO 정상회담 우크라이나와 조지아의 NATO 가입 자격을 일방적으로 확대하려 했다. 그러나 두 국가의 가입이 불필요하게 러시아를 자극하는 결과를 초래할 것이라는 프랑스 독일[28]의 반대[29]로 인해 부쿠레슈티 정상회의에서 채택된 선언문에는 '우크라이나와 조지아의 NATO 가입 의지를 지지하고 앞으로 논의해보자'라는 내용이 담기면서 러시아의 불안감이 심화되었다.[30]

이어진 2008년의 남오세티야 전쟁에서 러시아는 자국의 자국민 보호를 이유[31]로 참전하여 조지아의 수도를 점령하기 직전까지 갔으나 NATO의 연합함대가 흑해로 집결해 전쟁을 종결하도록 러시아를 압박했다. 러시아의 위기 의식은 여기서 초래되었다.

또한 1990년도와 2000년도 NATO 확장은 러시아의 위협 자체가 없었던 시기임에도 일방적으로 확장이 이루어졌다. 즉 러시아는 유럽을 위협하지도 않고 가만히 있었는데 유럽에서 러시아를 핑계로 NATO를 대규모로 확장해버린 것이다.

결국 구소련 붕괴 이후 현재까지 러시아-NATO 관계는 기대와 배신의 역사를 반복하면서 오늘날의 적대 관계로 굳어졌다. 러시아는 소련 말기 고르바초프가 그랬던 것처럼 서방의 경제적 지원을 얻기 위해 서방과 협력하려 했으나 도리어 무시를 당했으며, NATO의 확대로 안보 불안을 느끼며 실망하는 과정을 수차례 경험했다. 먼저 초대 대통령 보리스 옐친 시기인 1998년 3월 NATO에 상주대표부를 개설하여 NATO와 분쟁예방, 군축, 핵안전이슈 등 세계 안보문제에 대한 협의체제를 구축했다.3) 그러나 1999년 소련 붕괴 이후 최초로 동유럽국가인 헝가리, 폴란드, 체코가 NATO에 가입했으며, 코소보 사태가 발생했을 때 NATO는 일방적으로 군사개입을 했다. 게다가 NATO 창설 50주년을 기하여 정립된 NATO 신전략개념에서 회원국 영토 밖에서의 인도적 개입을 정당화했다. 이는 NATO 활동범위가 구소련 및 기타 지역으로 확대될 수 있음을 의미하였기에 러시아는 거세게 반발하며 NATO 대표부를 철수시켰다. # 이후로도 NATO는 자신들에게 아무런 위협도 되지 않는 리비아를 일방적으로 공격, 대대적인 폭격을 실행하면서 NATO가 회원국들의 방어만을 위한 집단이라는 자신들의 주장이 거짓임을 드러냈다.[32] 이런 상황에서 러시아가 방어 동맹의 선을 한참 넘어 적극적인 군사적 개입을 시작하게 된 NATO를 신뢰해야하는 이유는 전혀 없는 것이다.
우크라이나는 러시아가 (나토) 확대에 반대하고 있음에도 불구, 20일 나토 가입의사를 처음으로 명백히 밝혔다.

겐나디 우도벤코 우크라이나 외무장관[33] 시기 은 브뤼셀에서 열린 한 회의에서 『우크라이나는 동구권으로 확대를 추구하고 있는 나토와 이에 반대하는 러시아의 사이에 끼어있는 불안정한 상황에서 나토 가입을 가장 중요한 전략적 목표로 삼고있다』고 밝혔다.
[우크라이나] 나토 가입의사 밝혀 - 입력 1997.03.21. 11:15
심지어 일각에서는 우크라이나는 NATO 가입 의사가 없었다며 러시아의 공격으로 우크라이나가 NATO 가입 추진을 했다고 주장하기까지 한다. 그러나 이는 틀린 주장으로 우크라이나는 이미 훨씬 이전인 1997년경부터 러시아와 원만한 외교관계를 한다며 평가받던 시기에서도 우크라이나의 가장 중요한 전략적 목표는 NATO 가입이라며 강경하게 NATO 가입을 주장해댔다. #1 #2
3.1.1.3. 우크라이나 NATO 가입 문제
—러시아가 우크라이나에 집착하는 이유는 국경을 맞대고 있다는 이유 때문입니까.

“러시아는 나폴레옹 때도 점령당하고 히틀러에게도 점령당한 기억이 있습니다. 이런 기억이 주는 영토에 대한 불안감을 미국 등 서방이 이해 못하는 측면이 있습니다. NATO가 자신의 국경 가까이 다가오는 상황을 러시아 국민들은 불안하게 느끼는 겁니다. 브레진스키도 예견했지만 폴란드가 NATO에 들어가면서 러시아인들의 그런 불안은 더 커졌습니다. 우크라이나가 없는 러시아는 그냥 동북쪽의 변방국가로 남을 수밖에 없습니다. 러시아로서는 우크라이나의 EU 가입을 가만히 지켜볼 수는 없었을 겁니다. 더더욱이나 우크라이나가 NATO에 들어가는 것은 도저히 방관할 수 없습니다.”
전문가 인터뷰 許勝澈 前 대사가 말하는 ‘우크라이나 사태와 한반도’ #
서방에도 추파를 던지고, 모스크바의 당근도 받으려는 우크라이나

우크라이나의 친러시아 정부가 수도 키예프를 계속 지배하는 한 러시아는 자국의 완충지대가 손상되거나 북유럽평원을 지키지 못할 거라는 걱정은 하지 않아도 된다. 러시아는 우크라이나가 유럽연합이나 NATO에 가입하지 않을 것이며 부동항인 크림 반도의 세바스토폴항의 임대차 계약을 지키겠다는 약속을 하는 등 신중한 중립국의 행보만 보인다면 우크라이나를 용인할 수 있다. 러시아 입장에서는 러시아에 에너지를 의존하고 있으면서도 중립적 행보의 폭을 점차 넓혀가는 우크라이나가 괘씸하더라도 그 정도는 봐줄 수 있다. 그런데 만약 우크라이나에 친서방 정부가 들어서고 NATO와 유럽연합이라는 서방의 양대 기구에 가입하려는 야심을 품고 러시아 선박의 흑해 항구 입항에 반대한다면? 한 술 더 떠 우크라이나가 NATO의 군함을 받아들이는 날이 온다면? 물론 이는 현재로서는 어불성설에 가깝다.
지리의힘(원제: Prisoners of Geography) 137page 中 - 팀 마샬[34]
Before the invasion, when they had surrounded Ukraine, it might have been possible [to avoid war]. If [Ukrainian president Volodymyr] Zelensky could have been made to promise that his country will not join nato, or made to grant a high degree of autonomy to the two enclaves in the east. I understand this would be hard to do—perhaps an American leader could have done it. But of course [Zelensky] would refuse.[35]
아베 신조 일본 총리. (이코노미스트) Abe Shinzo in his own words

동유럽의 NATO 가입 중에서도 특히 우크라이나의 NATO 가입 문제는 러시아에게 더욱 민감한 사안이다. 우크라이나의 국경으로부터 모스크바까지의 직선거리는 약 500km 정도에 불과하다.[36] 또한 독일에서 우크라이나까지만 이어지는 카르파티아 산맥은 러시아와 유럽의 길목에 위치해 방어하기 유리한 지형을 조성하고 있는데, 우크라이나에서 모스크바까지는 넓은 평야 지형으로 이루어져 있어서 러시아의 수비가 어렵다.

만약 NATO가 우크라이나를 회원국으로 받아들일 경우 러시아는 국경에서 직접적으로 NATO군과 맞닥뜨려야 하기 때문에, 모스크바가 중요한 러시아로서는 국가의 사활을 걸고 절대로 양보할 수 없는 안보적 필수 사항이다.

(매일경제)'러시아 급소' 노리는 美…우크라이나와 밀착

이 때문에 러시아는 1999년, 2004년에 있었던 NATO의 1차, 2차 확대 이후 NATO의 동진에 대해 줄곧 문제를 제기해왔으며 특히 과거 소련의 일원에다 러시아와 국경을 마주하고 있는 조지아와 우크라이나의 NATO 가입에 대해서 더 예민하게 반응해왔다. 2008년 NATO가 문호개방정책에 따라 조지아와 함께 우크라이나의 NATO 가입을 논할 때 러시아에서 거세게 반발했다. 이후 2021년 12월 러시아가 NATO 측과 미국에 보낸 서한에서도 러시아는 분명 우크라이나의 NATO 가입 문제를 가장 심각한 문제로 거론했다.

일각에선 서방 역시 러시아의 이러한 우려를 알기 때문에 현실적으로 우크라이나가 NATO에 가입할 가능성이 없다고 하지만, 이미 우크라이나는 2005년 NATO와 합동군사훈련을 시작하면서 # 조지아와 함께 NATO 가입 의사 의도를 대놓고 드러냈다. 2006년 NATO와 파트너십 협정을 맺고, 2008년 환영의 의사를 밝힌데 이어 2020년 심도 있는 양자 관계를 의미하는 “확대된 기회의 파트너(Enhanced Opportunities Partner: EOP)” 지위도 인정받는 등 NATO와의 관계가 발전되고 있다. 이후 젤렌스키는 2021년 4월 6일 옌스 스톨텐베르그 NATO 사무총장과의 전화 통화에서 NATO는 돈바스 전쟁을 끝낼 유일한 길이라며 NATO 가입을 위한 사전 단계인 '회원국 자격 행동 계획(MAP)' 프로그램 참여가 러시아에 확실한 신호가 될 것 #이라고 쐐기를 박아버린다.

특히 2014년 크림 위기 이후 NATO는 우크라이나군과 대규모 합동훈련을 진행하며 우크라이나에게 군수물자, 무기를 지원하고 서방의 군사고문과 교관 등 지원단을 파견하여 우크라이나 정부군을 훈련시킨다. 이에 대해 국제정치학자 존 미어샤이머(John Mearsheimer) 교수는 우크라이나가 법률상NATO 회원국은 아니지만 사실상 NATO 회원국이나 마찬가지였다고 평가했다. # # 그동안 우크라이나는 자국에 미군 기지 설치를 적극 추진했으며 특히 크림 반도 사태 이후 자국내 미군 기지 유치를 미국을 설득하였다.

뉴욕타임스(NYT)는 8일(현지시간) 옛 소련에 맞서기 위해 미국 주도로 만들어진 동맹인 NATO가 우크라이나 사태로 오랜 딜레마에 빠졌다고 전했다. 우크라이나는 1991년 소련 해체와 함께 독립한 뒤 NATO 가입을 지속적으로 요구해왔고, 2008년 루마니아 부쿠레슈티에서 열린 NATO 회담에서 NATO 가입 약속을 받았다. 하지만 NATO는 가입 방법과 시기를 밝히지 않았고 이 애매한 가입 허가가 오랜 기간 갈등을 불러왔다는 것이다. # 이것 때문에 2021년 4월 젤렌스키 대통령도 CNN과 인터뷰중 미국측의 우크라이나의 NATO 가입에 대한 애매모호한 태도를 지적하기도 했다. 러시아와 대치중인 우크라이나 전선을 방문하는 와중에 미국 CNN 방송과 인터뷰를 하던 도중 우크라이나는 더 많은 무기와 돈이 필요하고 특히 NATO 가입을 위한 더 많은 지원이 필요하다면서 만일 미국이 우크라이나의 NATO 가입을 원하면 이에 대해 분명히 얘기하고 그것을 실행해야 한다. 말로만 해서는 안 된다고 강조하였다. #

2019년도에 집권한 우크라이나에 집권한 젤렌스키 정권은 헌법 명시돼서 헌법을 준수해야한다는 의무심으로 추진한게 아니라 젤렌스키를 포함하여 적극적인 NATO 가입론자들이였다. 취임이후 한달만에 EU와 NATO 가입을 향한 우크라이나의 전략적 노선을 재확인하며 우크라이나는 반드시 NATO에 가입할 것이라고 주장했다. #

미국에서는 미국의 우크라이나와 조지아의 NATO 가입 독려가 러시아를 자극할 것임을 명확하게 인지하고 있었다. 미국내 러시아에 대한 강경 성향의 전문가도 당시 우크라이나, 조지아 NATO 가입은 러시아를 자극할 것임을 조언하며 우려를 표했었지만 # 그러나 미국의 정치인들은 이를 무시했다. 가장 대표적인게 바로 조지 W. 부시 미국 대통령.

우크라이나를 지지하면서도 우크라이나의 끝없는 NATO 가입 시도가 전쟁의 원인임을 지적받고 있다. 영국 이코노미스트지와의 인터뷰에서 여러 사안들에 대해 본인의 의견을 밝히며 아베 신조 일본 총리는 러시아를 비난하며 러시아에 대해 강경 대응을 지지하면서도 볼로디미르 젤렌스키 우크라이나 대통령이 NATO에 가입하지 않는다고 약속하거나 동쪽 돈바스에 고도의 자치권을 보장했으면 전쟁을 피할 수 있었을 것이라고 말했다. #

결국 러시아가 우크라이나의 NATO 가입에 대해 분명하게 레드 라인을 긋고 오래전부터 경고를 했는데도 미국은 계속해서 이를 무시해왔다. 급기야 2021년 11월 토니 블링컨 미국 국무장관과 디미트로 쿨레바 우크라이나 외교장관이 '미국-우크라이나 전략적 파트너십 헌장'을 체결했다. 이 헌장은 2008년 부쿠레슈티 NATO 정상회의를 언급하면서 우크라이나의 NATO 가입에 대한 미국의 약속을 재천명했다. 이에 러시아는 심각하게 경고[37]를 했지만 미국은 또 무시해버린다.

이러한 행보에 대해 미국에서는 주권, 기본적 권리를 주장하는데 정작 미국도 자신의 안보, 생존의 문제에 대해서는 똑같이 예민하게 대응하며 가차없이 단호하게 행동한다. 이라크에서 솔레이마니 불법 살해[38], 미국이 팔레스타인에게 요구한 팔레스타인의 안보 주권 포기[39]와 팔레스타인의 비무장 요구[40], 쿠바의 미사일 사태, 니카라과 사건, 서반구 국가들에 대한 미국의 일방적인 외교 정책 노선인 먼로 독트린이 바로 그것이다.[41][42] 때문에 미어샤이머는“미국이 서반구에 하는 외교정책은 오늘날 러시아의 우크라이나에 대한 외교 정책과 다르지 않다.” #고 까버렸다.

3.1.2. 반박측

"당초 이전(李佺)을 압송해 간 도사 구시백(具峕伯)이 무겁고 큰 칼을 씌워 가지고 말을 태워 달려가 편석(片石) 냉돌(冷突)에 들여 두었으며, 별장과 본읍 수령이 음식과 구료(救療)하는 등의 일에 대해 전교가 없었다는 이유로 대부분 신중히 하지 않아 마침내 이 지경에 이른 것이다. 구시백과 별장 이응성(李應星), 교동 현감(喬桐縣監) 황정열(黃廷說)을 모두 붙잡아다 엄히 국문한 다음 죄를 정하고, 경기 감사 노직(盧稷) 역시 살리지 못하였으니, 아울러 추고하라. 상사(喪事)는 특별히 후하게 살펴서 하라고 하라."

이미 죽이도록 해 놓고 또 그 죽인 사람을 죄주었으니, 이게 사람을 찔러 죽여 놓고 ‘내가 죽인 것이 아니라 칼이 죽인 것이다.’라는 것과 무엇이 다르겠는가.[43]
조선왕조실록 광해군일기 中
흔히 러시아 옹호자들은 "NATO 때문에 침공하지 않을 수 없었다"라고 하지만, 실상 NATO의 확장은 과거 러시아의 압제적 행보에서 기인한다. 다시 말해 침공의 원인을 NATO로 돌리더라도 NATO 확장의 원인은 러시아이기에 결국 우크라이나 침공의 가장 큰 원인은 러시아로 환원된다.

즉, 비유하자면 사람을 절벽에서 밀어서 떨어져 죽게 만들고 "내가 안 했어요. 중력이 그렇게 만든 거예요." 라며 같잖은 변명을 늘어놓는 것이 러빠들이 주장하는 NATO 책임론의 실상이다.
3.1.2.1. 동독에 한정된 발언이자 주권 침해의 소지
러시아측은 계속하여 1990년 2월 제임스 베이커 국무장관의 ‘1인치’ 발언이 동유럽 국가들의 추후 NATO가맹 금지를 공개적으로 약속한 것이라 주장하지만, 미국의 입장은 일관적으로 “당시 NATO의 관할권 문제는 구 동독 지역에 관해서만 논의되었지, 동유럽은 논의대상조차 아니었다”는 것이다.

곡해에 지친 나머지 2014년엔 베이커 전 국무장관 본인이 동유럽은 논의되지 않았다고 직접적으로 밝혔다. # 또한 1인치 발언이 나왔던 회담의 문맥은 논의가 구 동독 지역에 한정되어 있었다는 것을 보여준다. P.47 베이커 장관은 동맹에 소속된 통일독일, 동맹에 소속되지 않아 핵개발 또한 미국의 간섭 없이 추진 가능한 독일 두 가지 방안 중 어느 것을 선호하는지 물었고, 전자를 설명하며 NATO가 현 관할지역(서독)에서 1인치도 동쪽으로(구 동독 지역으로) 확대하지 않는 상황을 가정한 것이다.

고르바초프는 확답을 피하며 “미군의 존재가 독일 국방군의 재림을 막을 수 있다. 이를 위해서는 독일이 유럽 기반 조직체에 소속되도록 보장하는 것이 중요하다. 모스크바에 가서 논의해 보겠다, 확답은 재촉하지 마시라.” 라고 답변하였다. P.8 최하단부터 통일 독일의 폭주를 막기 위한 미군 및 NATO의 독일 억제방안이 해당 1인치 발언의 주제였음을 고르바초프도 분명히 인지한 것이다.

해당 회담에서 오히려 베이커 장관은 “우리와 대화해본 모든 동유럽 국가들은 미국이 유럽에 계속 남아있길 희망한다고 밝혔다”, “통일 독일에서 NATO 병력이 현재의 위치에만 주둔한다는 것을 동유럽 국가들에게 분명히 하는 것이 중요하다” 등 오히려 동유럽 국가들의 자결권을 중시하는 발언을 하였다. P.6

1990년 6월 고르바초프 마거릿 대처 영국 총리와 가졌던 정상회담에서 모든 유럽 국가가 NATO와 WTO 중 원하는 곳에 자유롭게 가맹하는 개혁방안을 제안하였다. NATO로부터 동유럽 국가들을 가맹시키지 않겠다는 약속을 받았더라면 애초에 나올 수가 없는 제안이다.

정황상으로 보더라도 러시아측이 주장하는 구두합의의 존재 가능성은 거의 없다. P.416 한쪽 당사자는 일관적으로 존재를 부정하고, 물증은 커녕 심증조차 존재하지 않는 상황에, 러시아의 일방적인 주장만을 수용하여 서방을 비난하는 것은 유죄추정의 원칙의 전형적인 예시이다.
기자: 현재 우크라이나 사태와 관련한 핵심 문제 가운데 하나는 NATO의 동진 팽창입니다. 서방 협력국들이 동유럽 내 미래 계획을 수립할 때 귀하를 기만했다고는 느끼지 않는가요? 귀하에게 제시한 약속, 특히 NATO가 동쪽으로 팽창하지 않는다는 제임스 베이커 미국 국무장관의 약속을 법적으로 명문화해줄 것을 왜 주장하지 않았나요?

고르바초프: 당시 ‘NATO 팽창’ 문제는 전혀 논의되지 않았고 제기되지도 않았습니다. 전적인 책임을 지고 말하는 것입니다. 심지어 1991년 바르샤바 조약기구 해체 이후에도 이 문제를 제기한 동유럽 국가는 단 하나도 없었습니다. 서방 지도자들도 이 문제를 제기하지 않았습니다.
- 미하일 고르바초프 전 소련 공산당 서기장과 Russia포커스의 인터뷰 내용. 출처 원문 출처
2014년 10월 당시 소련의 서기장이자 협상 당사자인 고르바초프는 인터뷰에서 당시 논의된 1인치도 확장하기 않겠다는 것은 "동독에 NATO 군사력을 추가 배치하지 않도록 하는 것과 관련된 것"이라고 말하면서 "이는 그동안 계속 준수돼 왔다"라는 입장을 밝혔다.

설령 동유럽으로 NATO를 확장하지 않겠다는 약속이 사실이더라도 문제는 있다. NATO 가입 제한 약속 자체가 해당 동유럽 국가들의 주권을 침해하는 국제법에 반하는 내용이며, 강대국들이 약소국들의 운명을 결정하던 제국주의 식민지배 및 이를 답습하여 소련이 동유럽을 위성국가로 만들어 직간접 지배했던 지난 냉전시기 적폐마지막 잔재였을 뿐이다. 동유럽 NATO 가입 금지 약속을 강요했던 것 자체가 어떤 식으로든 계속해서 동유럽 약소국들의 운명을 지배하려는 구 소련의 야욕에서 비롯된 것이다.[44]

애초에 NATO 동진을 하지 않겠다는 약속이 나온 것 자체가 소련이 독일 통일을 반대했기 때문이다. 독일 통일을 실현시키기 위해 미국 서방은 소련에게 NATO 동진을 하지 않겠다는 약속을 한 것이었다.

사실 소련 독일의 통일을 반대한 것 역시 독일의 주권을 명백히 침해한 것이지만 냉전 시절 주변 동유럽 위성국들을 지배해오던 소련은 이런 행위를 너무나 당연하게 생각했다.[45] NATO 동진에 관한 약속에 대해 당사국 독일 헬무트 콜 총리는 이를 반대했지만, 독일 통일을 위해 어쩔 수 없이 이를 묵인했다.

NATO의 동진 약속은 당시 조지 H. W. 부시 미국 대통령과 고르바초프 소련 대통령 사이에 구두 약속으로 그쳤을 뿐, 조약은 물론이고 어떠한 형태로도 문서화되지 못했으며, 2006년 블라디미르 푸틴이 1990년 조지 H. W. 부시와 미하일 고르바초프 사이에 이런 약속이 있었다고 언급하기 전에는 일반에게 알려지지도 않았다. 왜냐하면 이는 명백히 동유럽 국가들의 주권을 침해하는 내용이었기 때문이다. 이후 1990년대 동유럽 국가들이 NATO 가입 의사를 밝혔을 때, 러시아의 보리스 옐친 대통령은 이에 대해 반대하는 의견이었지만, 약속 위반이라는 표현을 사용하지는 않았다.
3.1.2.2. 러시아가 자초한 측면
NATO 동진의 가장 큰 원동력은 동유럽이 러시아에게 받는 위협과 그로 인한 적개심이다. 폴란드 발트 3국 등 동유럽 국가들의 NATO 가입은 미국 서유럽 국가들의 강요가 아니라, 모두 자신들이 스스로 원해서 이루어졌다.[46] 이들 국가는 역사적으로 러시아의 지배와 영향력이 매우 폭력적이고 압제적이었던 것으로 기억하고 있다.

러시아에 의하여 무려 다섯 번이나 지도에서 사라질 뻔했던 폴란드나 마찬가지로 자신들의 의사와는 무관하게 소련에게 점령당하면서 그들에게 핍박받은 기억을 지니고 있는 발트 3국은 말할 것도 없고, 헝가리 혁명 당시 소련이 공산블록을 유지하기 위해서 멋대로 탱크를 투입하여 시민들에게 유혈진압을 가한 헝가리, 프라하 시민들을 유혈진압한 프라하의 봄 때 마찬가지로 억울하게 피해를 당한 체코 슬로바키아 등 동유럽 국가들의 러시아의 팽창주의로 인한 피해 사례는 셀 수 없이 많다. 그리고 이들 국가 모두 냉전 이후 미국, 영국, EU 등 서방 세력과 점점 가까워지면서 반러 정책을 고수하고 있다.

만약에 러시아 제국이나 소련 시절 러시아의 지배가 보다 관대하고, 스스로 말하듯 동유럽의 보호자 역할에 충실했다면 러시아가 이렇게까지 미움을 받지는 않았을 것이다. NATO의 동진으로 인해 러시아가 안보위기를 느끼는 것은 당연하지만, 이는 애시당초 러시아의 지나친 패권주의가 자초한 일에 불과하다.

러시아는 소련이 무너진 뒤에도 1992년에 트란스니스트리아 전쟁과 압하지야 전쟁에, 1993년엔 나고르노카라바흐 전쟁에 개입하여 한때 자신들의 영역이었던 몰도바, 조지아, 아제르바이잔을 공격하였다. 러시아는 소련 해체를 통해 맞이한 주변국들과의 관계를 개선한 기회를 스스로 걷어차버린 것이다. 특히 몰도바와 조지아는 러시아군에게 직접적으로 공습과 포격을 당하면서 영토까지 강탈당했다. 그리고 2008년의 남오세티야 전쟁에서도 조지아는 러시아에 의해 분리독립 세력인 남오세티야를 사실상 강탈당했다.[47] 이미 소련이 무너져 러시아가 두 나라의 내전에 관여할 권리가 사라졌는데도 만행을 저질렀다.

또한, 힘의 논리인 현실주의 시각에서 볼 때도 러시아 동유럽에서 영향력을 상실한 것은 러시아가 그만큼 약해졌음을 의미한다. 만약 러시아가 과거 소련 시절과 같이 기갑전력으로 밀고 들어가서 폴란드 체코슬로바키아, 발트 3국 등을 강제로 복종시킬 수 있었다면, 현재처럼 우크라이나 국경까지 몰리는 처참한 지경에 빠지지는 않았을 것이다. 하지만 러시아는 그런 군사행동을 실행할 능력도, 의지도 더 이상 없으며, 그저 NATO가 동진하지 않겠다는 구두 약속에만 매달려야 하는 지경에 빠진 것이다. 그리고, 그 나약함의 결과물인 동유럽의 안보위기를 감내해야 하는 것 뿐이다.

러시아는 알렉산드르 두긴의 사상을 바탕으로 우크라이나를 침공하면서 이런 힘에서 밀린다는 인식에서 벗어나고 동유럽에 다시 한번 공포를 심으려고 하였지만, 실시간으로 더 큰 반발과 실패만 겪고 있는 중이다. 그리고 서방 세계와 새롭게 NATO에 합류하려는 동유럽은 강제 복종을 목적으로 하는 군사 행동이 다시 한번 현실이 될 수 있음을 절감하고 국방비를 대폭 늘리는 중이다. 또한 독일도 노동당 슐츠 정권이 들어서고 다시금 재무장을 선언하였다.

또한 위에서 언급된 NATO 러시아 간 건국 의정서에는 '상대방 및 그 어떠한 다른 국가, 그 주권, 영토 보전 또는 정치적 독립에 대한 위협이나 무력 사용을 자제한다'는 내용 또한 있다. 하지만 러시아는 친러 성향이었던 남오세티야의 분리독립을 지지하고 조지아 NATO 가입을 압박하는 등 먼저 적대적으로 나왔다.

더불어 러시아 조지아를 무력화시킨 후 조지아가 항복하겠다는 의사를 계속해서 보였음에도, 러시아는 공격 종료를 발표만 했을 뿐, 실제로는 공격을 지속하였으며, 미국이 개입 선언을 한 뒤에서야 프랑스가 내놓은 최종 평화안에 서명했다.

또한 해당 의정서가 유로- 대서양 지역의 지속적이고 포용적인 평화를 목적으로 한다는 것을 감안했을 때, 자국의 평화유지군이 선공당한 러시아가 억울한 측면은 있겠지만 자국의 영토가 침범당한 것도 아닌 러시아 조지아 점령할 단계까지 가던 것을 막았다고 이를 온전히 서방의 잘못이라고 몰아갈 수는 없는 일이다.

또한 의정서에는 본 의정서의 이행에 있어서, NATO와 러시아는 국제법 및 국제기구가 부과하는 의무를 준수한다는 조항 또한 존재한다. 러시아가 국제법을 위반하면서 우크라이나를 침공하는 행위까지 의정서가 정당화되진 않는다는 뜻이다.[48]

해당 의정서엔 더 직접적으로 본 의정서는 NATO 러시아가 상호의 독립적인 의사결정 및 행동에 거부권을 행사할 권리를 부여하지 않는다는 조항까지 존재한다.[49] 애초에 폴란드 NATO 가맹에 대한 러시아의 반발을 공식적으로 잠재우는 것을 주목적으로 삼고 체결된 의정서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빌 클린턴 미 대통령은 러시아의 '목소리'를 인정한 것일 뿐이고 거부권까지 준 것은 아니라고 밝혔다. #
3.1.2.3. 우크라이나 주권 침해
Собственно, как уже сказал, в результате большевистской политики и возникла советская Украина, которую и в наши дни можно с полным основанием назвать «Украина имени Владимира Ильича Ленина». Он её автор и архитектор....(중략) А сейчас «благодарные потомки» посносили на Украине памятники Ленину. Это у них декоммунизацией называется. Вы хотите декоммунизацию? Ну что же, нас это вполне устраивает. Но не нужно, что называется, останавливаться на полпути. Мы готовы показать вам, что значит для Украины настоящая декоммунизация.
제가 말한대로, 사실 소비에트 우크라이나 볼셰비키 정책의 결과로 생겨났습니다. 오늘날 우리는 이 나라를 "블라디미르 일리치 레닌 명의의 우크라이나"라고 부를 수도 있습니다. 레닌은 우크라이나의 작가이자 설계자입니다...(중략) 그리고 지금 그 "유쾌한 후손"들은 우크라이나에서 레닌의 동상을 철거하고 있지요. 이것이 바로 그들이 말하는 탈공산화입니다. 탈공산화를 원합니까? 뭐, 우리에겐 아주 딱 맞는 일인 것 같습니다. 하지만 그들이 말했듯, 중도에 멈출 필요는 없습니다. 우리는 당신들에게 우크라이나의 진정한 탈공산화가 무슨 뜻인지 보여줄 준비가 되어 있습니다.[해설]
2022년 2월 21일 블라디미르 푸틴의 대국민 연설 중 일부 #

동유럽 NATO 가입은 미국, 서유럽 국가들의 강요에 의해 이루어진 것이 아니라 동유럽 국가들이 러시아의 군사적 팽창 야욕에 위기를 느껴 자발적으로 선택한 일이다. 오히려 서유럽 미국 동유럽의 잇따른 NATO 가입에 러시아가 자극을 받을까봐 동유럽 NATO 가입에 조심스런 행보를 보였다.

하지만 많은 동유럽 국가들은 러시아의 위협으로부터 보호받기 위해 NATO에 가입을 받아달라며 아우성쳤고 많은 동유럽 국가들이 2000년대 이후에야 가까스로 NATO에 가입할 수 있었다. 우크라이나 역시 자발적으로 NATO 가입을 간절히 원하고 있지만 러시아의 반대로 지금까지 가입이 이루어지지 않고 있다.

실제 러시아는 우크라이나가 원래 러시아와 같은 민족이라느니 하면서 이쪽에서 자신들의 군사적 행동에 대한 정당성을 찾으려 하고 있다. 물론 우크라이나인들은 키이우가 모스크바 대공국 역사보다 훨씬 오래되었다며 조롱으로 반박하는 상황.[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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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owcolor=#ffffff> 우크라이나인의 반박

다만 서방 국가들도 타국에 대한 주권 침해 행위를 하지 않은 것은 아니기 때문에 강경하게 대응하기에는 무리가 있다는 시각도 있다. 가령 미국의 경우 그레나다 파나마를 침공한 역사가 있다. 쿠바 미사일 위기 역시 자국 턱 밑에 미사일 기지가 생긴다는 것이 꺼림칙하긴 하겠지만 결과적으론 쿠바에 대한 주권 침해인 것은 사실이다. 그나마 그때는 영토 침탈은 하지 않았지만 캘리포니아 공화국과 같은 사례는 크림반도 병합과 과정상으로도 거의 동일하다(전략적으로 매우 중요한 거점인 점, 주민들이 미합중국에 가입 요청을 하자 단 하루 뒤에 받아준 점 등).

역사적으로 많은 강대국에게는 완충 지대가 존재했다. 가령 전간기 벨기에 추축국 연합국의 완충지대로 존재했다. 제국주의 열강으로서 패권 다툼을 해 보았던 영국이나 프랑스, 독일, 미국과 같은 국가들도 이러한 역사를 가지고 있으므로, 설사 러시아의 주장이 도덕적으로는 정당하지 않을지라도 열강들이 3차 세계대전을 불사하면서까지 우크라이나를 도와주기에는 명분과 실리가 부족하다.

그러나 위의 논리를 확대해서 서방도 주권 침해를 했기에 비판의 정당성이 떨어진다고 주장하는 것은 남이 잘못했으니 내 잘못은 문제가 아니라는 피장파장의 오류에 불과할뿐더러, 냉전 하에 묵인되었던 제국주의적 행보들의 되풀이를 용인하는 것 밖에 되지 않는다.

애초에 당시 타국의 주권 침해를 했던 것은 미국만이 아니며 소련도 똑같았다. 동유럽에 군사적 위협을 가하며 공산주의 쿠데타를 일으켜 위성국가화한 것부터 시작해서 1953년 동독 봉기, 헝가리 혁명, 체코슬로바키아 프라하의 봄 등 반소 민주화 봉기가 일어났을 때마다 소련은 탱크 밀고 쳐들어와 수많은 동유럽 시민들을 학살했다. 소련군정[52] 시기 북한에서도 주민들의 신의주 반공학생사건이라는 반소 봉기를 탱크, 심지어 항공기까지 동원해서 진압하여 적어도 23명의 사망자가 발생하기도 했다. 평양시, 함흥시에서도 학생이나 종교인의 시위가 진압당했다. # 내로남불은 오히려 러시아도 만만치 않은 것이다.

러시아는 신속한 크림 반도의 합병 우크라이나 분리주의 세력의 조장, 그리고 돈바스 전쟁의 개입을 통해, 단순히 우크라이나를 완충지대로 넣으려는 것 이상으로 우크라이나 전체를 러시아의 세력권으로 장악하려는 위기 상황을 만들고 있다. 이는 명백히 평화를 위협하는 팽창주의적인 행보이며, 우크라이나 입장에선 주권 침해를 넘어 영토 침탈 위협까지 느낄 수밖에 없다.

2022년 2월 21일 저녁 대국민 연설에서 블라디미르 푸틴은 우크라이나를 가리켜 처음부터 러시아에 의해 만들어진 국가, 꼭두각시 정권이 이끄는 식민지라고 하며 우크라이나 국가의 존재 자체를 부정하였다. 즉, 우크라이나를 주권국가로 상대하는 게 아닌만큼 공격하더라도 언제까지나 러시아 내의 내전 상황이므로 미국, 영국, EU 등 국제사회가 개입할 권리가 없다고 주장한 것이다.[53] #

무엇보다도 우크라이나 NATO 가입 결정은 우크라이나 헌법[54]에도 명시되어 있을만큼 우크라이나 국민이 결정한 사안이고, 이에 대해 타국이 군사적 위협을 가하면서 저지하려는 것 자체가 명백한 주권 침해이다. 러시아가 어떤 변명, 핑계를 들고 나오던지 다른 나라인 우크라이나의 주권을 침해하는 침략행위를 절대 정당화할 수는 없다.

애초에 한국에선 우크라이나 침공 전까지 러시아에 대한 호감과 유로마이단 사태에 대한 부정적인 시각이 이상하게 팽배해 있어서 우크라이나의 반러 정책을 그냥 우크라이나가 바보라서 그런다고 아는 경우가 상당히 많은데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내정간섭은 실상 매우 심각한 문제다.

2004년 친러 성향의 대통령이던 레오니드 쿠치마는 집권 연장을 위해 개헌을 시도했으나, 쿠치마 반대파인 탐사보도 언론인 '헤오르히 곤가제'가 머리없는 시체로 발견되면서 곤경에 처했다. 쿠치마는 살해지시를 내린 적이 없다고 부인했고 실제로 증거는 발견되지 않았으나 곤가제에게 '대응'하라는 쿠치마의 지시가 공개되면서 정치생명 자체는 끝장났다. 쿠치마는 후임으로 야누코비치를 밀었고 러시아가 이를 적극적으로 지원했다. 당시 유력주자였던 친서방 정치인 빅토르 유셴코는 SBU 국장과 식사를 한 후 다이옥신 중독으로 사경을 헤맸고 얼굴이 일그러졌다.

러시아는 이 당시 우크라이나 GDP의 1%에 달하는 6억 달러를 야누코비치의 선거자금으로 지원했으며, 드미트리 메드베데프가 선거지원책임자로 활동했고 아예 키이우 시내의 호텔 하나에 '러시아 하우스'라는 사무실을 내고 선거운동본부를 꾸렸다. 1차 선거 전날에는 무려 푸틴이 친히 우크라이나로 와서 야누코비치 띄워주는 언플을 엄청 했는데도 1차 투표에서 유센코가 이겨서 결선투표에 들어갔다. 그래서 러시아가 뭘 했는가 하니, 러시아 공산당에게 압력을 넣어 탈락한 우크라이나 공산당 대선후보에게 야누코비치 지지 선언을 하도록 협박했다.[55] 친러 지역에서는 갑자기 유령 명부가 대거 추가돼서, 1차 투표에서 투표율 70%였던 친러지역들은 2차 투표에서 무려 96.7%의 투표율을 보였다. 전자화되지 않은 우크라이나 선거시스템을 악용해 친러 지역에서 투표한 후 키이우에서 다시 투표하려다 걸린 사람만 수백명이 넘어간다. 이렇게 러시아가 대놓고 조작한 선거에서 야누코비치가 이겼지만 너무 노골적인 부정선거라서 무효로 돌아갔고 재선거에서는 유센코가 이겼다. 그리고 우크라이나가 자꾸 말을 안듣자 러시아는 잠가라 밸브로 대응했다.

2014년 유로마이단 사태 당시에도 러시아는 우크라이나의 내정에 대놓고 개입했다. 러시아는 2013년 우크라이나에게 EU와 협정을 맺으면 우크라이나는 가혹한 대가를 치르게 될 것이라고 협박했다. 대표적으로 우크라이나의 객차 열차 수입과 로셴 초콜릿 수입을 금지한 게 있는데, 로셴은 후일 우크라이나의 대표적인 반러 정치인이 되는 페트로 포로셴코의 회사였다. 로셴은 큰 타격을 받았고, 이 일로 원래 친서방 성향이던 포로셴코가 아예 극 혐러 성향으로 돌아서버리는 나비효과를 가져오게 된다. 8월에는 더 나아가 아예 양국간 교역을 중단해버렸다. 결국 우크라이나는 이에 굴복하고 EU와의 협력 협정을 중단한다. 당시 리그베다 위키에서도 그렇고 그 내용을 그대로 이어받은 나무위키에서도 그렇고 러시아가 내민 조건이 더 좋았고 EU는 강도높은 개혁을 요구했다는 식으로 러시아 중심적 시각으로 내용을 써놨는데 협정중단의 주 원인은 우크라이나가 에너지 가격 상승 및 러시아와의 교역 중단으로 입을 손해 1600억 달러를 보전해달라고 요구했기 때문이다. 0 하나 잘못 쓴게 아니라 진짜 1600억 달라고 했다. 대놓고 파토내겠다는 심산이고 실제로 파토났다. 그 후 러시아가 슬그머니 150억 달러 차관 지원 및 가스요금 인하라는 조건을 제시하자 우크라이나인 누구나 협상이 왜 파토났는지 알게되었다. 물론 러시아가 내세웠던 조건이 더 좋았던 건 맞는데, 문제는 그게 노예계약으로 가는 지름길이라는 거였다.
3.1.2.4. 현실성이 없었던 우크라이나의 나토가입 문제
러시아를 옹호하는 측의 주장은, 결국에는 우크라이나의 나토가입을 막으려면 어쩔 수 없었다는 주장이다. 그러나 우크라를 침공하기 전, 국제사회 그 누구도 우크라이나의 나토가입이 일어날 것이라고 생각하지 않았다. 러시아 측은 우크라이나가 오랫동안 나토가입을 추진한 것을 원인으로 이야기하지만, 반대로 이야기하자면 그렇게 오랜 기간동안 추진했음에도 나토가입이 이루어지지 않았다는 사실이다. 우크라이나는 부패의 정도, 그리고 크름반도 및 돈바스 지역에서의 분쟁을 겪고 있기에 나토가입 조건을 만족하지 못했으며 전쟁 전 회원국 자격행동 계획(MAP)조차 부여받지 못했다. # 북마케도니아가 이 회원국 자격행동 계획 요건을 만족하고 나서 나토를 가입하는데 20년이나 걸렸다는 점을 고려하면, 우크라의 나토가입이 러시아가 전쟁을 일으키도록 강요할 정도로 당면한 문제가 아니었다는 것이다.

실지로 젤렌스키 본인 스스로도 나토 가입은 먼 꿈일지 모른다며 불가능한 일일 수 있음을 시사했고, 계속되는 위기속에 국민투표를 통해서 나토가입을 철회할 수 있다고 밝히기도 했다. # 이러한 상황에서 러시아가 나토불가입을 요구했다면 충분히 우크라 입장에서는 받아들일 수 있었다. 실제로 전쟁 전 그러한 협상이 러시아 실무진과 우크라 사이에 오갔고, 나토불가입을 합의하였지만 푸틴이 영토할양이 없다고 거부하고 침공했다는 보도가 로이터에서 나오기도 했었다. # 실지로 이후 전쟁중에도 러시아는 단순히 나토 불가입이 아니라 영토할양, 우크라의 비무장화 및 비나치화라는 조건을 계속해서 요구하고 있으며, 이건 러시아의 목적이 고작 우크라의 나토 불가입이 아닌 사실상의 우크라의 식민지화라는 반증이다.

3.2. 미국의 글로벌 패권 유지

-미국은 왜 강공 일변도로 나갈까.

“이처럼 러시아와 군사적 대립각을 세움으로써 확보할 수 있는 전략적 수익이 지대하기 때문에 워싱턴은 크레믈과 우크라이나를 둘러싼 유럽의 안보문제에 타협할 생각이 전혀 없다. EU에 대한 통제권 확보, 나토(NATO·북대서양조약기구)의 결집력 강화, 유럽에서 미국의 지도력 제고, LNG 수출시장의 확대, 군산복합체에 활로 제공 등 다양한 지정학적·지경학적 이익 확보라는 측면에서 러시아를 주적화해 유럽에서 일정수준 안보적 긴장 고조를 항구화하는 것이 워싱턴에게 필요하고 중요하다. 러시아 역시 과거처럼 일방적으로 밀리고 호락호락 당할 수 없다. 푸틴 시대 힘을 회복하고 전열을 재정비한 러시아는 자국의 배타적 세력권을 수호하고 전통적 영향권을 복구하기 위해 그 어떤 대가라도 치를 것이며, 미국 및 나토와의 군사대결도 불사하겠다는 강한 결기를 드러내고 있다. 2008년 조지아전쟁, 2014년 크림반도 병합, 2015년 시리아 내전개입, 2022년 우크라이나 전면 침공 등에서 그런 의지를 확인할 수 있다. 구조적으로 미·러의 타협이 어렵기 때문에 현재 미국의 절대적 영향력 하에 있는 우크라이나와 러시아 사이의 휴전협상이 쉽지 않을 것임을 추론할 수 있는 핵심 포인트다.”
“우크라, 패권다툼에 어리석게 휘말려 전장화… 韓 반면교사 삼아야” [특파원+]
러시아로서는 안보등을 이유로 미국에게 일정 부분을 양보할 것을 요구하나 미국도 자신들의 이득을 포기할 생각이 없기 때문에 근본적인 문제해결은 어렵다.
카프카스 지역으로 향하는 NATO와 EU의 영향력은 상당한 수준에 있다. 우크라이나와 함께 조지아는 미국이 유라시아 주변부로 동진하는 출구가 될 수 있다. 흑해와 카스피 해 지역에 있는 우크라이나와 조지아에 대한 주변 강대국들의 지정학적 행위는 러시아의 안보에 중요한 위협이 된다. 우크라이나와 조지아는 미국의 지정전략과 러시아의 안보전략이 충돌될 수 있는 지정학적 공간이다. 미국과 러시아가 조지아를 향해 추진하는 지정전략은 당연한 것일 수 있다. 문제는 방어적 수준에서 지정전략을 구사하는 러시아의 영향력이 어디까지 미칠 수 있느냐는 것이다. 러시아는 중동부 유럽을 상실했고, 흑해와 가스피해까지 상실될 위험에 처해 있다. 러시아는 자신의 안보라인을 더 이상 축소시킬 수 없다. 자신의 영토 공간까지 넘겨 줄 수 없기 때문이다. 러시아의 안보 방어선이 우크라이나와 조지아를 감싸면서 그려지고 있다. 더 좁게는 크림반도를 포함하는 흑해와 카스피 해가 최후의 방어선이 된다. 러시아가 더 이상 더 양보할 공간은 없다. 조지아에 미국의 지정전략이 투사된다면, 카프카스 지역이 위태롭게 된다. 조지아가 관리 하고 있는 남카프카스 지역으로 유럽식 민주주의가 이식된다면, 그 다음으로 북카프카스 지역에 영향력이 미치게 된다. 러시아에게 최악의 상황이 만들어지는 것이다.[“카프카스]

미국은 우크라이나를 최대한 이용하면서 전략적 이득을 보는데에 열중하고 있다. 실제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NATO 가입 불허 요구를 거부하면서도 NATO 군사개입이 없을 것이라며 사실상 우크라이나에 지원군은 없을 것이라고 대놓고 떠벌린게 대표적. 이러한 미국의 행보에 대해 돕기로 결정했으면 아주 확실하게 우크라이나 지킬 것을 천명해 힘으로 러시아의 침공 자체를 차단할 수 있도록 하던가, 제대로 안 도와줄거면 차라리 러시아에게 외교적으로 양보를 하고 갈등이 발생하는 것 자체를 피했었어야 했다는 것이다.

사실상 미국은 경쟁자인 러시아에게 순순히 양보해 러시아가 이득보게 하는 것은 싫고 그렇다고 우크라이나를 제대로 보호하는 것도 미국에게는 그렇게까지 큰 이득이 되진 않는다고 생각해 우크라이나를 적당히 지원하면서 관전하는 것을 택한 것이다.

이러한 미국의 애매한 도와주기[57]를 하며 자국의 이득 챙기기에 열중해서 미국 자국의 글로벌 패권 유지와 지정학적 이익을 위해 우크라이나를 이용해 먹었다는 비판이 나오는 것이다.

결국 우크라이나는 미국과 러시아라는 고래가 싸우는 것에 사이에 끼어있는 입장에서 피해를 본 것이다.

러시아가 먼저 시작한 것이라는 일각의 주장과 달리 미국은 계속해서 러시아를 군사적으로 위협하는 행위를 서슴치 않고 저질러왔다. 결정적으로 미국은 소련 해체 이후 러시아가 쇠퇴했던 상황에서도 끊임없이 구암 창립 지원등으로 러시아를 공격적으로 견제하며 압박해가는데 급기야 2002년 6월 미국은 1972년 소련과 합의한 대탄도미사일(ABM) 조약을 일방적으로 파기했으며 1987년 체결했던 중거리핵전력(INF) 조약의 탈퇴, 2007년 1월 부시 행정부는 유럽 미사일 방어체제를 공식화하고 폴란드와 체코에 대탄도 미사일과 레이더 시스템 구축 계획을 추진, 2009년 9월 오바마 행정부의 회원국 전체를 포괄하는 미사일 방어 프로그램으로 유럽에서의 단계적 적응적 등을 저질렀으며 2019년 미국은 러시아와의 군비경쟁을 제한하는 '중거리핵전력조약(INF)'을 일방적으로 파기해버린다. #

이에 미국은 뻔뻔하게도 러시아를 트집거리로 운운하며 러시아가 조약을 위반했다는 핑계를 댔지만 미국의 진짜 탈퇴 이유는 중국이 무제한 개발·배치하고 있는 중·단거리 미사일에 대처하기 위해 러시아와 체결했던 조약에서 탈퇴하기로 한 것이다. 즉 미국은 러시아 탓을 핑계로 들지만 이는 미국의 거짓말로 진짜 이유는 중국 때문이였다. 실제로 미국은 INF 조약 폐기 후 하루 만에 아시아에 중거리 미사일을 배치할 의향을 표명하였고, 2주 만에 순항미사일을 시험발사해댄다. 즉 러시아를 핑계로 운운했지만 진실은 중국이 제약 없이 중거리 미사일 전력을 강화하고 있는데, 미국은 러시아와의 INF 조약으로 인해 지상 발사 중거리 미사일을 생산조차 하지 못하고 있다는 우려 때문에 일을 저지른 것이다. (출처 동아일보)

대표적인 반러 국가기구인 구암만해도 미국의 적극적 후원아래 결성된 집단이다. #, # 황당하게도 구암이 형성된 1997년도는 러시아는 국외에서 적극적 활동은 커녕 경제 개혁 실패로 1990년도 내내 실패한 국가의 대명사로 국가 혼란 상태였다.
그러나 다른 한편 국제정치와 안보 전문가들 가운데에는 이번 사태가 옛 소련과 서구사이 완충지대 역할을 했던 동구권 국가들에 대한 나토 가입을 유인 내지 방관한 미국과 나토 동맹국의 안이한 정책에 기인한다는 분석도 있다. 뉴욕타임스의 국제전문 대기자인 토마스 프리드먼(Thomas Friedman)은 이번 전쟁의 일차적인 책임은 푸틴에게 있지만, 냉전 이후 나토의 존속을 우려하는 러시아에게 위협이 되는 확장정책을 취하지 않을 것이라고 약속한 미국과 서방의 책임도 크다는 점을 당시 미국 고위 관료들의 말을 빌려 증언하고 있다. 프리드먼과의 인터뷰에서 냉전 시기 미국 봉쇄정책의 틀을 세운 조지 케난(George Kennan)은 1990년대 후반과 2000년대 초 폴란드, 헝가리, 체코, 루마니아와 발틱 3국에 대한 나토의 동유럽 확장을 치명적 실수라고 비판하기도 하였다. 미국이 이들 구소련 위성국가에 특별한 안보 이익도 없는 상황에서 러시아의 위협인식과 반감만 사는 나토 확장은 미국 건국의 선조들이 무덤에서 돌아누울 만한 무책임한 정책이었다는 주장이다.
우크라이나 사태와 미중 관계 및 한반도
미국은 냉전 이후로도 NATO에 대해 경계심[58]을 품고 있는 러시아에 대해 NATO 확장 정책을 펼쳐대며 러시아를 끊임없이 자극한다. 미국은 이러면서 NATO는 러시아에게 결코 위협이 되지 않는다고 우겼으나 애초 러시아는 소련의 후신인 국가이며 NATO는 과거 소련을 견제하기 위한 강력한 군사기구였기에 당사자들인 미국과 NATO 회원국들이 하는 뻔한 거짓 주장이 됐다.

3.2.1. 반박

러시아에게 양보 해야했다는 주장은 러시아가 전쟁을 원하지 않았다는 전제가 있어야 성립할 수 있으나, 드러난 현실은 전혀 그렇지 않다.[59] 조지아, 크림반도, 돈바스에서 이미 세번이나 양보했는데도 결국 우크라이나의 주권까지 양보하면 무슨 결과가 나올지 뻔하지 않는가? 이미 2015년부터 러시아에서 국경을 넘고 정부의 명령을 받은 무장세력이 우크라이나 점령을 목표로 사실상의 전쟁을 했었다.[60] 이 상황에서 양보를 한다는 것 자체가 정말로 어리석은 행동이다.[61]

대화와 양보를 거부한건 우크라이나와 미국이 아닌 러시아였다. 전쟁 전까지 젤렌스키의 목표는 대화를 통해 평화 협정을 정착시키고 동부에서의 분쟁을 종식시키는 것이였으며, 그 전에도 수많은 평화 회담이 여러번 타결된 바 있었으나 정작 그 협정들은 친러 반군의 도발로 상당수가 24시간을 못 버텼다. 오죽하면 휴전을 가장 많이 한 분쟁이라는 평가를 들었다. 게다가 러시아는 무늬만 반군인 러시아군을 분쟁지역에 투입시키면서도 정작 협정의 당사자로는 나서지 않으면서 민스크 협정따윈 자기한테 구속력이 없다며 무시하고 제맘대로 병력을 파견했고, 심지어 1차 민스크 협정이 체결된 지 반년도 지나지 않아 요충지 점령을 목적으로 전면적인 공세를 펼쳐 우크라이나군을 공격했다. 당연히 분쟁지역 주민들도 평화협정 같은 건 아무도 안 믿는다. 이런 친러 반군과 러시아를 상대로 무슨 대화가 가능하겠는가?

웃기는 것은 끔찍한 전쟁을 막겠다며 나온 "러시아와 타협"이 정작 전쟁 혹은 러시아와 먼 국가들일수록 인기있다는 점이다. 왜냐면 앞선 지정학적 요소를 고려해봤을 때 자기 주권이 걸린 문제가 아니기 때문이다.

3.3. 우크라이나의 나치화

하지만 영웅은 다시 골칫거리가 됐다. 이들은 반정부 시위대가 지난달 16일 우크라이나 정부와 타협, 관공서 점거를 풀며 물러나기 시작하자 '대화는 곧 투항'이라며 소총을 들고 거리로 나서 우크라이나를 아수라장으로 만들었다. 이들이 촉발한 과격 시위는 경찰과의 무력 충돌로 이어져 18일부터 20일까지 총 100여명의 사상자를 냈다. 유혈사태는 결과적으로 야누코비치의 퇴진을 불러왔지만, 러시아의 군사개입 명분을 만들어주고 말았다. 라이트섹터에 대한 국민 여론도 순식간에 돌아섰다.
(조선일보)[우크라이나 사태] 反러 시위 선봉에 섰던 우크라이나 극우집단, 다시 골칫거리로 # @
하지만 이러한 설명 속에는 한 가지 빠진 부분이 있는데, 그것은 친러 정권을 축출하고 현재 우크라이나의 권력을 장악한 이들이 과연 누구인가의 문제다. 10년 전 오렌지 혁명 당시에도 러시아는 반러·친서방 정권의 출현에 직면했지만 우크라이나 사태에 직접 개입하는 식의 무리수는 두지 않았다. 그러던 러시아가 이번에는 도대체 어떠한 이유로 저런 행보를 보이는 것일까.

러시아가 보여주는 대응의 차이는 2004년에는 그 세가 미미했으나 지금은 우크라이나 사태의 주역 중 하나로 등장한 한 정당의 존재로 설명된다. 주지하듯 크림 합병까지 숨가쁘게 이어지는 러시아 측의 격렬한 반응은, 러시아어 사용자가 우크라이나 인구의 상당수를 차지하는 현실에도 불구하고 러시아어의 공용어 지위를 박탈한 포고령을 계기로 촉발됐다. 이 조치를 이끈 주역은 ‘전 우크라이나 자유연합’이라는 정당이었다.
(중앙선데이 칼럼)“우크라이나 극우 파시즘이 러시아의 개입 불러”

우크라이나의 주권에 대해 현재 가해지는 러시아의 위협과 폭력이 정당화돼서는 결코 안 될 것이다. 하지만 러시아가 우크라이나 사태에서 보여주고 있는 과격한 대응은 이들의 존재를 빼고는 온전히 설명할 수 없다. <출처>
2014년 우크라이나의 유로마이단 시위(유럽통합을 지지한 대규모 시민혁명), 돈바스 전쟁 발발, 러시아의 크림반도 합병 이후 페트로 포로셴코 당시 우크라이나 대통령은 2015년 5월 ‘비공산화’법을 공포했다. 이 법에 따르면, 공산주의 사상을 장려한 자는 징역에 처하고 소비에트 상징물을 금하며 나치와 협력한 반유대주의 집단은 ‘독립 전사’로 승격된다. 또한 유대인 학살에 참여한 민병대가 소속된 우크라이나 민족주의자 조직(Organization of Ukrainian Nationalist, 이하 OUN) 및 OUN의 부대이자 10만 명 이상의 폴란드인 학살 등을 주도한 우크라이나 반란군(Ukrainian Insurgent Army, 이하 UPA)이 ‘독립 전사’에 포함됐다. 이로써 이들은 모두 매년 10월 14일(2014년 포로셴코 당시 대통령이 제정한 우크라이나 수호자의 날-역주)에 국가적으로 추모하는 대상이 됐다. 또한 OUN과 UPA의 수장이자 제3제국의 조력자였던 스테판 반데라를 추모하는 횃불 행진이 매해 1월 1일마다 키예프에서 진행된다. SS 기갑사단 ‘다스라이히’의 엠블럼을 차용한 네오나치 민병대 조직 ‘아조프 대대’가 2014년 5월 우크라이나 군대에 통합된 것도 빼놓을 수 없다.
(르몽드 디플로마티크)우크라이나 사태의 불편한 진실

살펴보면 우크라이나 내부의 극우 문제는 꽤나 심각한 편이다. 2014년 러시아의 크림 반도 합병에 맞섰던 민병대 출신들이 화살을 집시에게 돌리고 수도 키이우에서는 지난 4월 ‘C14’라는 극우 단체가 천막촌에 불을 지르고 폭력을 행사해 집시들을 내쫓는등 이후 집시 거주촌 공격이 잇따랐는데 극우 단체들은 이들이 절도와 구걸을 하며 도시를 더럽혔다고 주장했다. <뉴욕 타임스>는 우크라이나 정부가 폭력을 수수방관해왔다고 지적했다. ‘C14’는 철거 폭력 장면을 사진과 동영상으로 버젓이 인터넷에 올렸고 지난달에는 다른 극우 단체 회원들이 집시 남성을 살해했고 이들은 집시 추적 장면을 ‘집시 사냥’이라는 제목의 동영상으로 인터넷에 올리기도 했지만 정부가 미온적이었는데 이유로 극우 인사들이 ‘전쟁 영웅’이라는 점과 정치적 이용 가치가 있다는 점이 꼽혔다. 이후 우크라이나 정부는 유엔 등이 항의 후 집시 거주촌 폭력 사건 관련자에게 가택연금 처분을 내렸다. (출처)

우크라이나는 정부차원에서 수십개에 달하는 우크라이나 민족주의자들의 캠프를 지원하였다. 우크라이나 측은 자금 지원은 외국인 혐오나 인종차별 성향이 있는지 여부를 조사한 후 이뤄진다고 주장하나 정작 특정 단체의 활동에 대해 분석하고 있지는 않는다고 스스로도 시인했으며 실제 이들 중 일부는 자신들과 대립하는 상대방에 대해 인간이라고 보질 않으며, 10대들에게 총기를 줘가면서 사람을 쏴죽이는 교육을 시켜댔다. <출처:뉴시스>

영국 일간지인 가디언은 친러 야누코비치 정권에 대한 반정부 시위가 한창이던 지난해 1월 “(친서방) 시위대의 중심에는 극우민족주의자와 파시스트들이 있다”고 지적했다. 2차 대전 당시 나치 친위대가 우크라이나 서부 지역에서 우크라이나인으로 구성된 ‘갈리시아 사단’을 운영했고 이들이 반공과 반유대주의를 표방했다는 역사를 더듬은 것이다. 이곳에선 1920년대에 극우주의자들을 중심으로 ‘우크라이나 민족주의자 기구’가 결성되기도 했다. 그 흐름은 현재 극우정당인 ‘스보보다’가 잇고 있다. 10% 안팎의 지지를 얻는 스보보다는 지난해 2월 친서방 임시정부 구성 뒤 부총리와 교육·농업·환경부 장관직을 차지할 만큼 영향력을 확대했다. #

중도 성향의 젤렌스키가 대통령에 당선된 이후에도 우크라이나 극우들의 거센 반발로 인해서 국가간 합의안 실행에도 고생할 정도였다. 우크라이나와 러시아, 분리독립파는 이 달 앞서 분쟁 지역에서 중화기 부대를 모두 철수시키고 나중에 이 지역의 지방선거를 실시하는 잠정적 합의안에 서명했다. 하지만 철수는 이뤄지지 못했는데 양측이 모두 포격을 계속한데다 우크라이나 강경파들이 해당 지역에서 철수는 있을 수 없다며 반대했기 때문이다. (뉴시스)

아조프 연대는 명백히 나치즘과 파시즘이 내부에 있는 집단으로 이러한 전쟁범죄를 저지른 집단을 정규군화하는 사례들은 매우 드물었다. 특히 유럽내에서는 전례를 찾기 힘든 일이다. 때문에 군에 신나치 조직을 둔 국가는 우크라이나가 전세계에서 유일하다는 지적까지도 나왔다. (출처) 미국과 캐나다는 지난 2015년 자국군이 아조프 연대를 지원하거나 훈련하지 않을 것이라 밝혔지만, 미국은 국방부의 압력을 못 이기고 그다음 해에 금지령을 해제한 것이며 페이스북도 지난 2016년 아조프 연대를 ‘위험조직’으로 지정하며 2019년엔 미국 백인우월주의 테러단체 KKK와 마찬가지로 이들에 대한 칭찬이나 지지까지 금지했다. # 즉 어디까지나 러시아에 맞서는 존재로 이들의 과거 악행들에 대해 눈을 감거나 무시하고 외면하면서 지지하는 것에 가깝다. #

게다가 극우세력의 분포가 줄었다는 주장에도 여전히 극우세력이 연대 내에서 비중이 있는데다 애초 뿌리부터가 극우 백인우월주의인지라 "사상이 여전하다"는 비판이 제기되고 있다. # 그리고 아조프 연대들 스스로도 논란이 된 주제에 나치의 상징물들을 계속 가지고 있으려고 하는등 나치 상징물 등에 집착하는 면모들을 계속해서 보이고 있다. #

스테판 반데라 숭배는 우크라이나 민족주의 세력내에서 결코 무시할 수 없는 비중을 차지하는 주류중 하나이다. 빅토르 유셴코는 스테판 반데라를 우크라이나 영웅으로 추앙하고자 시도했었으며 이후 키이우의 '모스크바' 거리는 나치에 협력한 우크라이나 반란군 지도자 '스페판 반데라' 이름으로 바꼈다. (출처) 아예 다른 사람도 아닌, 현직 외교 고위관계자중 하나인 주독 우크라이나 대사가 우크라이나 민족주의자 스테판 반데라(1909∼1959)가 유대인과 폴란드인을 대량 학살했다는 사실을 부정하며 # 노골적으로 옹호 발언을 하기도 했다. 이러한 만행에 분노한 이스라엘과 폴란드에서 해당 인물을 성토했고 견디지 못한[62] 우크라이나에서 주독 우크라이나 대사를 수도 키이우로 불러들였다. 해당 인물은 과거 2015년 4월 27일 트위터 계정을 통해 자신이 뭔헨에 방문했을 때 스테판 반데라을 우리( 우크라이나)의 영웅이라고 칭하며 헌화했던 과거도 있었다. 이후로도 우크라이나 의회에서 스테판 반데라 탄생 기념일에 SNS에다 우크라이나 총사령관 발레리 잘루즈니 스테판 반데라의 초상화와 함께 사진을 찍었던 것을 올려 거센 비판이 일어난 후에 해당 글을 SNS에서 삭제했다.

3.3.1. 반박

2022년 2월 24일, 러시아 대통령 블라디미르 푸틴은 개전을 알리는 연설에서 우크라이나를 가리켜 네오나치가 권력을 장악한 국가로, 즉 나치화된 국가로 언급했다.[63] 또한 그리고 개전으로부터 1년이 지난 후의 국정 연설에서도 우크라이나를 네오 나치 정권이라고 언급하며, 이 정권의 위협을 제거하기 위해 침공을 결행했다고 언급했다.[6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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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별 군사작전의 목표는 8년간 우크라이나 정권으로부터 학대와 학살을 겪어온 사람들을 보호하는 것입니다. 이를 위해 우리는 우크라이나의 비군사화와 비나치화를 달성하고 러시아 국민을 포함한 민간인들을 대상으로 수많은 유혈 범죄를 저지른 자들에게 법적 책임을 물을 것입니다.
(중략)
존경하는 장병 여러분! 여러분의 아버지와 조부, 증조부가 우리의 공통의 고국을 지키며 나치와 싸웠던 것은 오늘날 네오나치들이 우크라이나에서 권력을 장악하도록 하기 위해서가 아니었습니다. 여러분이 충성을 맹세한 대상은 우크라이나 민족이지, 우크라이나를 약탈하고 민족을 우롱하는 반민족적 무리들이 아닙니다.
블라디미르 푸틴(주한러시아대사관 譯). (2022). 러시아 연방 대통령 말씀, 2022년 2월 24일( #)
1년 전, 우리의 역사적 땅에 사는 사람들을 보호하고, 국가의 안보를 보장하고, 2014년 쿠데타 이후 우크라이나에 등장한 네오 나치 정권으로부터의 위협을 제거하기 위해 특별 군사 작전 실시 결정이 내려졌습니다. 그리고 우리는 한 걸음 씩, 신중하고 일관되게 우리 앞에 놓인 과제를 해결할 것입니다.
블라디미르 푸틴(주한러시아대사관 譯). (2023).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 국정 연설 요약문( #

그러나 우크라이나의 총선( 최고 라다), 지선 결과를 모두 종합하여 보면 우크라이나 정계에 극우 정당을 포함한 전반적인 극우파 세력이 미치는 영향이 확고히 낮음을 알 수 있다. 지지율이 낮은 것은 물론이고, 의석을 획득한 숫자가 아주 적어서 우크라이나 정계에 어떤 유의미한 영향을 미치는 것이 불가능할 정도이다. 즉 우크라이나의 극우파는 시끄러운 소수인 것이다.
스톡홀름 동유럽 연구 센터(SCEEUS)의 분석가인 암드레아스 움란트는 독일의 소리(DW)와의 인터뷰에서 "(나치즘과) 우크라이나와의 비교는 잘못된 것"이라고 말했다. 움란트는 우크라이나에 극우 단체가 있지만 많은 유럽 국가에 비해 상대적으로 약하다고 말했다.
However, the comparison with Ukraine is wrong, Andreas Umland, an analyst at the Stockholm Center for Eastern European Studies (SCEEUS), told DW: "This talk of Nazism in Ukraine is completely out of place," he said. …… While there are far-right groups in Ukraine, Umland said, they are relatively weak compared to those in many European countries.
- 독일의 소리(DW), Do Vladimir Putin's justifications for going to war against Ukraine add up?, 2월 25일자.
이경원. [사실은] 나치가 우크라이나를 점령했다는 푸틴, 사실은?(SBS 뉴스, 기사작성일자 2022.03.20 09:02)( #)
2014년 유로마이단 이래 치러진 2014년, 2019년 총선에서 우크라이나의 극우정당 스보보다의 지지율과 득표율, 원내 의석수는 지극히 낮았다. 2014년 총선 이전 여론조사 결과에서 최소치와 최대치를 제외하면 스보보다 지지율은 적게는 3%(고르셰닌 학회, 10월 12~21일 조사)( #)에서 많게는 7.1%(KIIS, 2월 28일~3월 3일 조사)( #)에 달했다.( #) 이 총선에서 스보보다의 비례대표제 득표율은 4.7%, 소선거구 득표율은 2.4%였다. 스보보다의 지지율과 득표율, 원내 의석수는 2019년 총선에서 더욱 크게 줄어들었다. 2019년 총선 이전 여론조사 역시 최소치와 최대치를 제외하면 스보보다 지지율은 적게는 0.8%(CSEP, 7월 5일~7월 10일)( #)에서 많게는 2.9%(인포사피엔스, 7월 19일~7월 15일 조사)( #)에 달했다. 이 총선에서 스보보다의 비례대표제 득표율은 2.2%, 소선거구 득표율은 3.2%였다. 결과적으로 스보보다는 2014년과 2019년 각각 6석, 1석을 획득하였으며, 이는 전체 의석 대비 각각 1.3%, 0.2%에 해당한다. 이것은 우크라이나의 극우파가 정치에 미치는 영향력이 매우 작다는 것을 보여준다. 오히려 친러 정당인 인생을 위한 야권연단이 2019년 총선에서 비례대표제 득표율 13.1%, 소선거구 득표율 7.0%로 43석을 차지해 최대 야당으로 떠올랐다.

지선 결과를 보아도 스보보다는 서부 지역의 기반만 유지하는 지역 군소정당에 머무르며 그 지지세도 지속적으로 약해지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우크라이나의 지선을 설명하려면 약간 설명이 필요한데, 본 문단은 가독성을 위해 해당 설명을 접기 처리 하였다. 우크라이나 중앙선거관리위원회(ЦВК)의 2020년도 보고서(Центральної виборчої комісії за 2020 рік)( #) 및 우크라이나 최고 라다 웹사이트에 게시된 2020년 지선 결과 요약 자료( #)를 토대로 작성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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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년 우크라이나 지선은 총 1,577개 지방의회의 의원을 선출한다. 선출하는 의석수는 총 43,122개로 그 중 25,852개는 비례대표제로, 17,270개는 다수투표제로 선출한다. 그 내용을 표로 정리하면 다음과 같다.
2020년 지선에서 선출하는 우크라이나 지방의회의 수와 종류, 의석수 및 선출 방식
종류 의회의 수(의석수) 비례대표제를 적용하는 의회의 수(의석수) 다수투표제를 적용하는 의회의 수(의석수)
주의회(Обласна рада, Oblast Council) 22(1,660) 22(1,660) 0
군의회(Районна рада, Raion Council)[65] 119(5,366) 119(5,366) 0
시의회(Міська рада, City Council) 370(11,244) 348(10,760) 22(484)
구의회(Районна у місті рада, Urban district Council) 15(562) 15(562) 0
읍의회(Селищна рада, Settlement council)[66] 431(10,284) 217(5,642) 211(4,642)
면의회(Сільська рада, Rural Council)[67] 620(14,006) 71(1,862) 552(12,144)
저 43,122개 의석이 모두 선출된 것은 아니며 투표 당시와 그 후의 문제로 인해 최종적으로는 총 의석수보다 약간 적은 42,988석이 선출되었다. 2020년 우크라이나 지선은 또한 읍장, 면장 및 시장까지 총 1,421명의 지자체장을 선출한다. 단, 한국의 도지사에 대응하는 주지사(Голови обласних державних адміністрацій)는 관선이다. 그 내용을 표로 정리하면 다음과 같다. 우크라이나의 시(міська громада), 읍(селищна громада), 면(сільська громада)은 모두 흐로마다로서 동등한 지위임에 유의하라.
2020년 지선에서 선출하는 우크라이나 지자체장의 종류 및 선출 방식
종류 지자체장의 수 선출 방식비고
시장(міський голова) 370 36명은 결선투표 시행, 나머지는 단순 다수투표제
읍장(селищний голова) 431 단순 다수투표제
면장(Сільський голова) 620 단순 다수투표제
총계 1,421

그리고 다음 접기는 2020년 지선으로 구성된 광역의회[68]의 스보보다 의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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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2020년 지선으로 구성된 광역의회의 스보보다 의석 ||
빈니차주 0/84
볼린주 7/64
드니프로페트로우스크주 0/120
지토미르주 0/64
자카르파탸주 0/64
자포리자주 0/84
이바노프란키우스크주 18/84
키이우(시) 0/120
키이우주 0/84
키로보흐라드주 0/64
르비우주 6/84
미콜라이우주 0/64
오데사주 0/84
폴타바주 0/64
리우네주 6/64
수미주 0/64
테르노필주 13/64
하르키우주 0/120
헤르손주 0/64
흐멜니츠키주 13/64
체르카시주 0/64
체르니우치주 0/64
체르니히우주 0/64
총계 63/1780(전체의 3.54%)[69]

2020년 지선에서 스보보다가 광역의회에서 차지한 비중은 3.5%에 불과하며 이는 다른 유럽과 러시아의 극우 정당에 비해서도 낮은 수준이다. 2020년 우크라이나 지선 당시 스보보다가 2개 주( 이바노프란키우스크주, 흐멜니츠키주)에서 제1당이 된 것은 2002년 프랑스 대선처럼 표가 분산되어 각각 전체 의석의 21.4%, 20.3%만 차지했는데도 어부지리로 제1당이 된 것이며, 우크라이나의 극우 지지세가 다른 나라에 비해 높아서 제1당이 된 것이 아니다. 실제로 저 2개 주의회는 우크라이나에서도 제1당의 비중이 낮은 편이다. 다음 접기는 2020년 지선으로 구성된 광역의회 제1당 의석 비중이며 볼드체는 스보보다가 제1당인 주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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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2020년 지선으로 구성된 광역의회 제1당 의석 비중(%) ||
빈니차주 47.6%
하르키우주 38.3%
볼린주 34.4%
르비우주 33.3%
키이우주 29.8%
체르니히우주 29.7%
미콜라이우주 28.1%
체르카시주 28.1%
자포리자주 27.4%
테르노필 26.6%
키이우(시) 25.8%
수미주 25%
키로보흐라드주 23.4%
헤르손주 23.4%
드니프로페트로우스크주 25%
리우네주 21.9%
오데사주 21.4%
이바노프란키우스크 21.4%
흐멜니츠키주 20.3%
폴타바주 19.0%
체르니우치주 18.8%
자카르파탸주 18.8%
지토미르주 17.2%

스보보다가 차지한 의석 비중이 총선보다 지선에서 좀 더 크긴 하지만, 지방선거는 원래 '군소정당'이 더 유리한 선거이다. 그래서 스보보다뿐만 아니라 다른 성향의 군소정당과 무소속 의원도 더 늘었다. 2019년 총선 성적표를 보면 상위 5개 정당( 인민의 종, 야권연단, 바트키우시치나, 유럽연대, 목소리)의 원내 의석수는 합계 348석으로 77.3%에 달했다.( #) 반면에 2020년 지선 성적표를 보면 상위 5개 정당(인민의 종, 바트키우시치나, 야권연단, 미래를 위하여(За майбутнє), 유럽연대)의 광역의회 의석은 총 1,193석으로 68.6%에 그쳤다.( #) 전체 지방의회 의석으로 범위를 확대할 경우, 지선의 상위 5개 정당의 의석수 합계는 23,305석[70]으로 실제 선출된 42,988석의 54.2%밖에 되지 않았다.[71] 그러므로 스보보다의 비중이 광역의회를 비롯한 지방의회에서 좀 더 높은 것, 그리고 2개 주에서 무의미한 수준의 제1당이 된 것은 놀라운 일이 아니다. 오히려 2020년 지선에서 스보보다가 거둔 성적표는 참패에 가깝다. 다음 접기는 5년 전인 2015년 당시 지선으로 구성된 광역의회의 스보보다 의석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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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2015년 지선으로 구성된 광역의회의 스보보다 의석 ||
이바노프란키우스크주 16/84
키이우(시) 14/120
테르노필주 13/64
르비우주 12/84
흐멜니츠키주 10/84
리우네주 8/64
폴타바주 7/84
볼린주 7/64
체르카시주 7/84
키이우주 7/84
빈니차주 6/84
수미주 5/64
지토미르주 5/64
키로보흐라드주 4/64
체르니우치주 4/64
자카르파탸주 0/64
자포리자주 0/64
드니프로페트로우스크주 0/120
미콜라이우주 0/64
오데사주 0/84
하르키우주 0/120
헤르손주 0/64
체르니히우주 0/64
총계 125/1820(전체의 6.87%)

즉 2015년 지선 결과와 2020년 지선 결과를 비교해서 스보보다가 광역의회에서 차지하는 비중은 6.9%에서 3.5%로 줄었고, 절대 의석수도 125석에서 63석으로 줄었으며, 당선자를 배출한 주의회가 15개에서 6개로 줄었다. 전체 지방의회 의석을 비교해도 스보보다의 약세가 확연하다. 2015년 지선에서 스보보다는 주의회, 군의회, 시의회, 구의회를 합쳐 총 1,530석을 차지했고 이는 전체 29,155석의 5.3%에 해당한다.[72] 반면에 2020년 지선에서 스보보다는 894석을 차지했고 이는 실제 선출된 전체 42,988석의 2.08%에 해당한다.[73] 투표로 선출되는 절대 의석수가 1.47배 늘어난 반면 스보보다의 절대 의석수는 58.4%로 줄어든 것이다.

지선의 일부로서 치러지는 지자체장 선거 결과를 볼 때도 스보보다의 약세는 확연하다. 총 1,421명의 지자체장을 선출한 이 선거에서 스보보다는 20명[74]을 당선시켰다. 구체적으로 볼린주 3명, 지토미르주 1명, 이바노프란키우스크주 6명, 르비우주 3명, 수미주 1명, 테르노필주 4명, 흐멜니츠키주 2명이다. 지자체장의 총 숫자가 1,421명이므로, 이는 전체의 1.4%에 해당한다. 따라서 2020년 우크라이나 지선에서 스보보다가 거둔 성적표를 요약한다면:
비교하자면 2024년 현재 독일 연방의회에서 극우정당인 AfD는 736석 중 78석을 차지하여 의석 비중이 10.6%에 달한다. 또한 러시아의 극우정당 러시아 자유민주당( # # # #)은 2021년 러시아 총선에서 450석 중 21석을 차지하여 비중이 4.7%에, 2024년 현재 러시아 지방의회 의석 3,908석 중 239석을 차지하여 비중이 6.1%에 달했다.( #) 결국 우크라이나의 극우정당이 정치에 미치는 영향력은 절대적으로나 상대적으로나(유럽 기준) 매우 작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우크라이나 민족주의의 기원을 스테판 반데라에 두는 것도 문제다. 이런 시각은 우크라이나 민족이라는 관념이 반데라같은 나치 집단의 산물이라는 잘못된 전제에서 비롯된 것이다. 하지만 우크라이나 민족은 키예프 루스의 붕괴 이래 러시아와 뚜렷이 구분되는 역사적 발전과정을 거쳤으며, 러시아, 폴란드, 오스만, 타타르 등과 교류하거나 투쟁하는 과정을 거쳐 독자적인 민족의식을 형성해갔다. 19세기에는 서유럽의 영향을 받아 성직자와 코사크, 지식인을 위주로 우크라이나 민족주의가 확산되었고, 그 결실이 러시아 제국 오스트리아-헝가리가 붕괴한 후에 수립된 우크라이나 인민 공화국 서우크라이나 인민 공화국인 것이다. 즉 반데라는 우크라이나 민족주의의 사상적 사생아라면 모를까 기원이나 주류는 결코 될 수 없다.

애초에 현대 우크라이나 민족주의 세력은 정신적으로나 인적으로나 소련 시기 반체제 민족주의 세력인 우크라이나 인민운동(Народний Рух України, 약칭 루흐)의 후신이지, 대전 말기 나치와의 반목과 소련의 토벌전으로 완전히 작살나서 서방으로 쫓겨난 반데라주의 세력이 아니다. 소련 말기 합법적으로 활동한 루흐는 우크라이나인들의 지지를 받아 우크라이나 SSR을 이끄는 주요 세력이 됐고, 8월 쿠데타 이후 우크라이나 독립을 이끌어내며 소련 해체에 큰 영향을 준 단체이다. 이 루흐의 주요 정책중 하나가 반유대주의 반대와 유대인 보호, 소수민족 보호 정책이다. 오늘날 일어나는 문제라면 러시아라는 거대한 적수 때문에 두 세력이 전술적 제휴를 하는 것이지, 현대 우크라이나 민족주의 세력을 두고 바로 그 나치 세력이라고 주장하는 러시아의 비난은 번지수를 잘못 찾아도 한참 잘못 찾았다. 당장 발트 3국도 소련에 점령되었다가 어쩔 수 없이 나치 독일과 손을 잡은 이력이 있는데 그러면 이 나라들도 네오나치가 되는가?

아조프 연대의 전쟁범죄와 정규군화를 우크라이나의 나치화라고 주장하는 것도 문제다. 정규군화 전 아조프 연대가 인권유린과 약탈을 저지른 것은 사실이지만 러시아군이나 친러 반군처럼 아예 초법적인 처형이나 학살을 저지른 적은 없다. 그리고 아조프 연대의 극우 성향은 우크라이나 정규군에 편입되면서 오히려 희석되었다. # # 만일 아조프 연대가 지금도 네오나치 세력이라면, 유대인의 명령을 듣는 네오나치 군대(...)가 되어 버린다.

우크라이나가 나치라는 러시아의 주장을 두고 미국의 홀로코스트 사학자 티머시 스나이더는 다음과 같이 분석한 바 있다.
러시아의 돈바스 개입은 "러시아의 봄(Russian Spring)"이라고 불렸다... 두긴에 따르면, 유대 혈통의 외교관은 "더러운 돼지"였고, 유대 혈통의 우크라이나 정치인은 "시체를 파먹는 악귀"이자 "후레자식'이었다. 알렉산드르 프로하노프 역시 3월 24일 러시아 텔레비전에서 예벨리나 자캄스카야(Evelina Zakamskaia)와 이야기하면서 러시아가 우크라이나를 침공한 이유를 우크라이나의 유대인과 홀로코스트 탓으로 돌렸다.

이런 사고는 스키조파시즘(schizofascism; 정신 분열 파시즘)이라고 부를 법한 새로운 종류의 파시즘이었다. 실제 파시스트들이 자신들의 적을 "파시스트"라고 부르고, 홀로코스트들을 유대인 탓으로 돌리며, 제2차 세계 대전을 더 많은 폭력을 행사하기 위한 논거로 들이대는 것이다. 러시아는 순결하기 때문에 러시아인은 절대 파시스트가 될 수 없다고 여기는 러시아의 영원의 정치학에서 자연스럽게 도출되는 다음 단계였다. 제2차 세계 대전 중에 소련의 선전은 적을 "파시스트"와 동일시했다... 전쟁이 끝난 뒤, 스탈린은 소련보다는 러시아의 민족적 승리를 찬양했다. 이런 태도에는 "파시스트"라는 적이 자본가보다는 외부자라는 의미가 담겨 있었고, 따라서 더욱 항구적인 충돌이 예상되었다... 브레즈네프는 "파시즘"이라는 단어의 의미를 결정적으로 바꾸었다... "파시즘"은 제2차 세계 대전으로 대표되는 서구의 영원한 위협을 의미했다.

그리하여 2010년대의 지도자들과 선전가들을 비롯해 1970년대에 교육을 받은 러시아인들은 "파시스트"는 "반러시아"를 의미한다고 배웠다... 그리하여 두긴 같은 파시스트는 파시즘의 언어로 파시즘의 승리를 찬양하면서도 자신들의 적수들을 "파시스트"라고 비난할 수 있었다...

고문인 글라지예프처럼 푸틴 또한 러시아의 침공에 저항하는 우크라이나인들을 파시스트로 규정했다. 3월 18일 푸틴은 러시아가 이웃 나라를 침공하면서 야기한 혼돈에 관해 말하면서 "민족주의자, 네오나치, 러시아 혐오자(Russophobe), 반유대주의자 등이 이 쿠데타를 일으켰다"고 주장했다...(이후 내용 생략)

-티머시 스나이더, 『가짜 민주주의가 온다』(유강은 옮김), 서울 : 부키, 2019.
사실상 러시아에서 '나치'의 진정한 의미는 러시아의 적이라는 이야기다. 이렇게 나치=러시아의 적이라는 공식을 머리에 박아버렸으므로, 러시아에 적대하는 모든 세력을 나치라고 주장하고 그 나치에 우크라이나도 포함되는 것은 결코 이상한 일도, 주의깊게 들을 말도 아닌 것이다.

마지막으로, 설령 우크라이나가 정말로 나치화되었다고 할지라도, 그것은 근본적으로 우크라이나의 내정이다. 러시아가 내세운 우크라이나 나치즘, 우크라이나 극우민족주의의 부상도 전부 우크라이나의 내정이다. 이런 나치화 자체만으로도 명분이 있다는 러시아의 스탠스에 근본적인 문제가 있다. 왜냐하면 우크라이나는 러시아를 상대로 선제공격을 한 사실이 없으며 그런 징후도 없었기 때문다. 게다가 나치화가 명분이 된다면 앞으로도 나치화되었다는 이유만으로도 다른 나라를 침공할 여지가 생기고 마는 것이다.[75] 즉 우크라이나가 네오나치 세력이 되었다는 러시아의 주장이 사실이라 하더라도 그것은 침공의 근거가 될 수 없는 것이다. 예를 들어 프랑스 대선에서 마린 르펜이 당선되거나, 독일 총선을 AfD가 석권한다고 하여도 그것을 개전사유로 드는 것은 문제가 될 수밖에 없다.(르펜이나 AfD가 선제공격이라도 하지 않는 이상) 그러므로 러시아가 우크라이나의 나치화를 개전사유로 내세운 것 자체가 잘못된 것이라고 할 수 있다.

3.4. 우크라이나 외교 정책 실패

우크라이나의 외교 정책이 문제인 것이 어중간한 중립이라는 명목하에 국력에 맞지 않는 어중간한 정치적 자세를 취해온 것이다. 사실 이 문제는 우크라이나의 지리적인 문제와도 연관되어 있다. 일단 우크라이나는 여타 유럽 국가들과는 카르파티아 산맥 등으로 막혀있지만 아시아와는 탁 트인 평야 지대로 연결되어 있어서 아시아 방향에서의 침공에 매우 취약했다.[76] 그리고 우크라이나의 지정학적인 약점은 우크라이나가 러시아의 위협에는 취약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유럽 쪽에서 신속한 지원을 기대하기 힘든 바로 오늘날의 신냉전 상황에서 우크라이나 전쟁 위기로 그대로 연결되었다.

그렇다고 우크라이나 NATO를 앞세운 미국 - 영국 - EU 러시아 사이에서 일방적으로 휘둘리기만 한 것은 아니다. 우크라이나 역시 러시아 NATO 사이에서 친서방과 친러를 오가는 외교정책을 펼쳤다. 러시아에게는 물론이고, 미국 - 영국 - EU 등과 같은 서방 세력에게서도 신뢰를 잃은 상황에서 유로마이단 사태가 터져 반러 정권이 들어서자, 러시아는 서방 세력이 우크라이나를 지켜주지 않을 것으로 판단하고 침공하게 된 것이다.

우크라이나의 외교정책은 지리적 문제뿐만 아니라 독립 이후 정착된 우크라이나의 정치문화와도 관련이 있다. 독립 이후 우크라이나의 경제 및 외교노선을 둘러싼 동서 간의 극한 대립이 벌어져 타협이 없는 극단적인 정치문화가 정착되었고, 여기에 꼴에 대통령이라는 레오니드 쿠치마 빅토르 야누코비치는 국민들을 중재하고 국론을 결집하기는커녕 부패한 권력자로 타락하고 각각 부정선거와 유혈진압을 저질렀다가 죄다 혁명으로 교체되었다.[77] 특히 유로마이단 이후로는 상대적으로 친러 성향이 강한 돈바스의 일부 지역이 러시아군과 친러 반군에 점령되다 보니, 남은 우크라이나 정부의 통제 지역은 러시아의 침략으로 반러감정이 자극되어 야권 블록 같은 극소수를 제외하면 반러 일변도로 변했다. 문제는 이런 내분이 찻잔 속의 태풍으로 그치면 좋았을 텐데, 우크라이나의 대외정책까지 영향을 미쳤다는 점이다.

독립 초기( 레오니드 크라우추크 집권기) 우크라이나는 친서방 외교노선을 추진했고, 이것은 2대인 레오니드 쿠치마 정권에서도 NATO 가입을 추진하는 등 변함없이 이어졌다. 그러나 권위주의가 노골화되어 국민의 저항이 심해지고 집권 2기 중간에 카세트 스캔들[78]이 터져 국내외의 비난을 받자 난처해진 쿠치마는 아예 친러로 외교노선을 틀어버렸다. 즉 대통령 개인이 정권이 처한 난국을 돌파하겠답시고 외교노선을 급격히 틀어버린 것이다. 그럭저럭 우호적으로 유지되던 서방과의 관계가 박살날 위기에 처하자 분노한 국민들이 대대적인 시위를 일으켰고[79] 이것이 바로 오렌지 혁명이다.

그러면 오렌지 혁명이 끝나고 유시첸코가 집권했으니 다시 친서방으로 노선을 수정하려고 했다. 그러나 우크라이나가 친서방과 친러로 나뉘어 갈등하는 것을 본 러시아는 우크라이나의 내분을 개입의 지렛대로 삼는 한편, 크림반도의 흑해 해군기지 연장 및 우크라이나가 달달하게 받던 천연가스 통관료를 문제삼아 우크라이나측과 충돌을 일으켰다.[80] 쿠치마 집권기에 시작한 친서방-친러간 대립은 유시첸코 정권에서 극한 대립으로 발전했고 유시첸코는 친러파 빅토르 야누코비치를 총리로 임명하는 등 어떻게든 두 세력을 중재하려 했지만 2008년 세계 경제위기로 우크라이나 경제가 문자 그대로 개박살이 나버리면서 국정동력을 완전히 상실했다. 유시첸코는 2010년 대선에 출마했지만 5% 득표에 그치면서 맥없이 패배한다. 그리고 유시첸코의 뒤를 이어 집권한게 그 빅토르 야누코비치였다.

야누코비치 정권기에 우크라이나의 외교는 또다시 친러로 바뀐다. 하지만 최대 1,000억 달러를 빼돌린[81] 야누코비치 일당의 극악한 부패와 권위주의, 지나친 친러 정책, 그리고 결정적으로 2013년 EU와의 협정을 의도적으로 파탄낸 짓은 국민들의 분노를 샀다. 그해 말 야누코비치 정권은 시위대를 상대로 초법적인 살육을 벌여가며 시위를 진압하려 시도했으나 오히려 참담하게 실패하고 이듬해 2월 러시아로 빤스런을 떠나야 했다. 이것이 유로마이단이다. 그리고 유로마이단 이후에 들어선 페트로 포로셴코 정권은 또다시 친서방으로 바뀐다. 그리고 이 노선은 오늘날 볼로디미르 젤렌스키 정권도 계승했다.

정리하자면 우크라이나는 지난 30년간 편바꾸기를 무려 4번이나 했다. 쿠치마 재임기에 한번, 유시첸코 재임기에 한번, 야누코비치 재임기에 한번, 포로셴코 재임기에 한번. 그렇다보니 러시아는 우크라이나를 힘들게 어르고 달래서 자기편으로 끌어들이느니 아예 침략해서 먹어버리는 게 더 쉽겠다는 판단을 내려 돈바스 전쟁을 일으켰다. 서방은 서방대로 도대체 우크라이나를 도와줘야할지 말아야할지 고민해서 굉장히 소극적인 태도로 일관했고, 2022년 러시아가 전면적으로 침공하기 직전까지 물자지원을 제외하면 군사 개입을 매우 꺼리거나 외면했다. 특히 도널드 트럼프 정권은 이 분쟁에 끼어들어 숟가락을 얹고 자기 정치적, 경제적 이득만 따먹는 쪽이지 우크라이나의 주권이나 이익을 지켜줄 생각이 전혀 없었고 그런 이유로 돈바스 전쟁에서도 무기판매를 제외하곤 별다른 반응을 보이지 않았다.

서방과 러시아 사이에서 와리가리한 것은 우크라이나 정부뿐만이 아니다. 우크라이나의 여론도 친러와 친서방 중 어디를 선택할지를 두고 국론 분열을 빚었다. 유시첸코와 야누코비치 재임기 우크라이나에서 NATO 가입에 관한 찬성률은 반대율과 비등하거나 오히려 낮았고, 포로셴코가 집권한 후에야 찬성률이 반대율보다 높아지게 되었다.[8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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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2년부터 2013년까지 우크라이나 국민들을 대상으로 한 NATO 가입 설문조사. # 2013년까지만 해도 우크라이나 내에서 반대가 압도적으로 높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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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년부터 2019년까지 우크라이나 국민들을 대상으로 한 NATO 가입 설문조사. # 2014년 크림위기를 기점으로 지지여론이 반대여론을 압도하였다.

NATO 가입을 두고 국론이 결집되지 못한 이유 중 하나는 우크라이나의 민족구성도 있다. 우크라이나는 수도 키이우를 따라 남쪽으로 흐르는 드니프로 강을 가운데로 동서가 지리적으로 나뉘는데, 서부 우크라이나는 러시아계 우크라이나인이 5% 대에 불과한 우크라이나인 강세지역이고 공업지대인 동부 우크라이나는 국경 지대로 가면 갈수록 러시아계가 늘어난다. 특히 러시아와 인접한 돈바스 지역은 러시아계 비율이 거의 25% 대에 이르고, 크림반도는 아예 러시아계가 과반이다. 국토 전체를 볼 경우 17%의 러시아계가 있지만 이들이 동남부에 집중되어 있기 때문에 정치적으로나 외교적으로나 충분히 문제가 되고 있었고, 이 때문에 항상 친러 정치 세력으로 인한 정치적 갈등이 있었다. 우크라이나 내부에서는 싸운다는 의지가 있는 듯 하나 정작 NATO 가입이나 EU 가입에 대해서 확실히 국론 결집을 하지 못하고 반복적으로 자기들이 러시아에 맞서 싸우겠으니 미국, 영국, EU가 지원해 달라, 러시아가 개입하면 군사 개입을 해 달라고 애걸했던 것이다.

오늘날 우크라이나가 처한 상황은 강대국과 이웃한 다른 약소국들과 대비된다. 당장 NATO가 군사 개입을 하지 않는다고 언급하는 이유는 우크라이나가 북대서양 조약기구 비회원국이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중국에는 항상 강경론을 고수하며 전 세계에 반도체를 공급하는 TSMC을 포함한 각종 IT, 전자산업이나 대만의 경제 구조를 지탱해 주는 화교 자본을 보유하고 있는 대만, 터키와 이스라엘과 미국 내 유대계 자본이라는 빽이 있는 아제르바이잔[83]과 달리 우크라이나에 투자된 자본이 상대적으로 적기 때문이다.

냉전 시기 북유럽 국가 중 유일하게 소련[84] 국경[85]을 맞댄 핀란드 역시 소련과의 충돌로 2번의 전쟁까지 치렀고 안보 위기에 처할 뻔 했지만 유호 파시키비 총리의 외교 전략으로 소련을 자극하지 않으면서 미국, 영국, 프랑스, 서독과 협력하고 같은 북유럽 국가들[86]과 연대하는 방식으로 국가를 지켰다.

비슷하게 소련 해체 후 NATO와 러시아, 이란, 아르메니아 사이에 낑겨있는 신세가 되어버린 아제르바이잔 나고르노카라바흐 전쟁 때 털리고 나서는 터키[87][88]와 이스라엘[89]이라는 자기 편을 확실히 만들어 놓았다. 결국 2020년 아르메니아-아제르바이잔 전쟁에서는 나고르노카라바흐의 대부분을 아제르바이잔의 영토로 만들었다.

터키와 이스라엘이 대놓고 아제르바이잔을 감싸고 지지하다 보니 미국은 아제르바이잔 편을 들거나 침묵하고 있는 수밖에 없었다.[90] 그러나 우크라이나는 미국 - 영국 - EU와 러시아 사이에서 애매한 자세를 취했고 정권이 바뀔 때마다 친러 - 친서방으로의 변동이 매우 심했기 때문에 어느 쪽의 확실한 도움을 받지 못하는 상황에 처하게 되었다.

이렇게 우크라이나를 이끌었던 거의 모든 지도자들이 대외정책에서 죽을 쑤고 크림반도와 돈바스 등 군사경제적으로 중요한 요충지가 하나하나씩 넘어가다보니, 우크라이나 국민들은 동서 할 것 없이 자국 정치인들에 대한 멸시와 냉소가 가득하다. 레오니드 쿠치마 대통령 실각 후 집권한 빅토르 유시첸코 대통령, 율리야 티모셴코 총리 등 민족주의 세력은 약속했던 부패척결 등이 수포로 돌아갔을 뿐만 아니라 2008년 경제위기의 직격탄을 맞아 지지를 상실했다. 그 반발로 당선된 빅토르 야누코비치는 가혹한 독재정치[91]와 지나친 부패,[92] 선을 넘은 친러 정책으로[93]으로 우크라이나 민족주의를 자극하고는 실각하자 러시아로 도망가 나라를 팔아먹은 매국노가 되었다. 이런 지경이니 정치권은 국민들로부터 완전히 신뢰를 잃었다.

결국 유로마이단 혁명이 터졌고[94] 다된 밥에 재가 뿌려지게 된 러시아는 크림 반도를 무력으로 합병하고 뒤이어 동부 우크라이나에 무력개입했다. 2014년 5월 25일 대선에 당선된 # 무소속 페트로 포로셴코도 해결책을 제대로 제시하지 못했고 정치권에 대한 불신은 더욱 깊어졌다.

인민의 종을 만들어 출마한 볼로디미르 젤렌스키가 당선된 것 역시 이와 무관하지 않다. 조롱과 멸시, 블랙 코미디 등을 가득 담은 표를 행사한 것이다.

4. 중립적 시선

중립적 시선 항목에서는 러시아, 우크라이나, 서방 어느 쪽에 책임을 묻는 서술보다는 양쪽이 모두 이견 없이 받아들일 수 있는 정설, 사실에 가까운 것들을 서술한다.

4.1. 지정학적 원인

4.1.1. 러시아의 지정학적 취약점

러시아는 태평양과 북극해 말고는 영토 내에 이렇다 할 자연 방벽이 없다. 역사상 아시아(몽골)와 중동, 유럽에서 오는 침략 세력에 취약할 수밖에 없었다. 스티븐 코트킨 프린스턴대 역사학 교수는 러시아의 지배층은 자연히 ‘방어적 공격성(defensive aggressiveness)’을 띠게 됐다고 밝혔다. ‘선제적 공격’으로 영토를 더 확장해야, 이전에 확보한 것을 안전히 지킬 수 있다는 생각이 지배하게 됐다.
지구 육지 11% 차지한 러시아는 왜 계속 ‘땅’을 탐낼까… 지도에 답이 있다
블라디미르 푸틴은 스스로를 일컬어 러시아 정교회의 열렬한 후원자이면서 신심이 깊은 사람이라고 말한다. 이 말이 사실이라면 그는 매일 밤 잠들기 전, 신에게 이렇게 물을지도 모른다.

"신이시여, 어찌하여 우크라이나에 산맥을 펼쳐두지 않으셨나이까?"

만약 신이 우크라이나에 산악지대를 펼쳐두었다면 건너편 세력들이 북유럽평원이라는 드넓은 평지를 넘어 그처럼 꾸준히 러시아 땅을 침략하고픈 유혹을 느낄 일도 없었을 것이다. 이런 상황에서는 푸틴이라도 달리 선택할 게 없다. 서쪽으로 펼쳐진 평지를 관리하는 정도밖에는, 그리고 이런 사정은 크고 작든 간에 어느 나라도 예외일 수 없다. <지리적 특징>은 지도자들에게 훨씬 적은 선택지만 주고 이를 조정하고 관리할 여지 또한 생각보다 훨씬 적게 남겨둔다. 아테네 제국이나 페르시아 제국, 바빌로니아, 혹은 그 전 시대를 거슬러 올라가도 사정은 마찬가지다. 자신의 백성을 보호하는 지도자의 사명은 고지대를 찾아내는 것이었다.
지리의 힘 팀 마샬, 서문. 우리 삶의 모든 것은 지리에서 시작되었다! 中 page 8.
러시아는 지정학적으로도 불안전한데 특히 자연 방벽이 없어서 외부 세력의 공격에 취약하다.[95][96] 쿠만, 페체네그 등 튀르크계 제민족과 몽골이 유럽으로 진출할 때는 항상 러시아 서부를 지나쳤고, 그 과정에서 숱한 파괴와 학살이 자행되었다.

‘지리의 저주’[97]라는 책을 쓴 팀 마셜이 “러시아 정교 신자라는 푸틴은 ‘왜 우크라이나 동쪽에 산맥을 놓지 않으셨냐’고 매일 밤 기도할지도 모른다”고 농담했을 정도로[98], 러시아의 인구와 농업, 공업이 밀집해 있는 핵심지역은 평원이다.

결국 러시아로선 어떻게 해서든 서쪽에서 오는 침략 세력과 모스크바 간 거리를 최대한 확대해 침략군의 보급선이 길어지고 러시아군의 공격에 취약하게끔 만들어야 한다. 실제로 영국을 제외한 유럽 거의 대부분을 지배했던 나폴레옹, 히틀러조차도 러시아의 이 전략에 참혹한 패배를 겪으면서 러시아의 이 전략이 효과적임을 명백하게 입증해주었다.

이런 상황에서 바로 코앞인 우크라이나에 아주 잠깐이라도 친러시아 정권의 확보가 보장되지 않은 결과, 우크라이나가 '사사로운' 자국의 이익을 위해 외부세력과 손잡는 순간 러시아 측 입장에선 그 즉시 타타르의 멍에 이전으로 돌아가는 수준의 지리적 치명타를 입으며 역대급 위기감을 느끼게 된다.

4.1.2. 우크라이나의 지정학적 중요성

우크라이나는 땅이 넓고 비옥해 유라시아의 대표적인 곡창지대로 꼽힌다. 하지만 동시에 강대국들의 화약고라는 숙명을 안고 있다. 유럽 열강이 동방으로 진출하는 교두보였고, 러시아엔 흑해와 지중해로 나가는 유일한 출구였다. #
“우크라이나를 잃으면 우리는 머리를 잃는다(если мы потеряем Украину, то потеряем голову).”
블라디미르 레닌

우크라이나는 유럽인에게는 동방 진출을 위한 ‘길목’이었고, 아시아의 유목민에겐 유럽을 향한 ‘통로’였으며, 러시아인에겐 바다를 향한 ‘출구’였다. 그래서 우크라이나는 13세기 몽골 침입 이후부터 소련이 해체될 때까지 오랜 기간 동안 주변 강대국의 분할 지배를 받아왔다(출처:Ukraine & Belaru, “동”과 “서” 사이에서: 슬라브 형제국 우크라이나와 벨라루시의 국가발전전략 # #).

이후에도 서구 열강들은 우크라이나를 동방 진출의 교두보로, 러시아는 흑해를 거쳐서 지중해로 나갈 수 있는 유일한 출구로 봤다. 이 때문에 대북방전쟁, 나폴레옹 전쟁, 크림 전쟁, 제1차 세계 대전, 제2차 세계 대전의 전장이 돼 '강대국의 화약고'로 불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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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럽의 지형도를 보면 알 수 있는데, 동서로 뻗은 유럽 대륙의 북쪽 지역은 프랑스까지 대부분 평지지만, 남부는 카르파티아 산맥, 알프스산맥 등이 가로막는 자연국경이 있으며, 해상작전을 수행할 수 있는 북쪽 발트해에는 발트 3국, 남쪽 흑해에는 그리스와 터키가 있다. 발트 3국과 튀르키예가 NATO에 가입할 수 있었던 건 이런 지정학적 사정 때문이며, NATO와 러시아의 대치구도가 심화될 경우 양쪽이 모두 원하는 완충지대는 결국 벨라루스와 우크라이나라는 두 평지로 이루어진 나라인 것이다. NATO 역시 라스푸티차 때문에 연중 내내 군사작전을 벌이지 못하는 자연완충지대로서 우크라이나를 두고 싶기 때문에 계속 우크라이나의 NATO 가입 요청을 외면해왔다.

따라서 과거 러시아 제국부터 소련에 이르기까지 우크라이나를 중시했으며, 이후 지금의 러시아 연방 또한 옛 소련 영토 중에서도 유독 우크라이나에 집착하는 것 또한 이 때문이다.

요약하면 우크라이나의 지정학적 상황은 바둑의 꽃놀이패[99]와 같다고 할 수 있다.
미국의 전략가 즈비그니에프 브레진스키 전 백악관 국가안보보좌관은 <거대한 체스판>에서 우크라이나는 러시아 부활의 전제 조건이라며 이를 반드시 막아야 한다고 주장했다. 반면 저명한 국제정치학자 존 미어샤이머 시카고대 교수는 ‘우크라이나를 무장시키지 말라’(<뉴욕 타임스>)는 기고에서 우크라이나를 NATO 영역에서 제외한다는 보장이 없는 한 러시아는 내전 개입을 중단하지 않을 것이며, 핵무기 사용도 배제하지 않을 것이라고 경고했다. #
반면 러시아에게 우크라이나 문제는 사활적이다. 유럽 평원은 프랑스부터 러시아까지 좁고 길게 걸쳐 있다. 자연 장애물이 없는 순수한 평원으로 여기에 걸쳐 있는 모든 나라는 서로가 서로에 노출돼 있다. 자국의 핵심부를 잠재적 침략 세력으로부터 가급적 멀리 떨어뜨려 놓아야 한다. 잠재적 적국이 공격해 올 때 1차 방어선 구실을 할 완충지대가 절대적으로 중요하다. 러시아 입장에서 우크라이나가 NATO에 가입한다는 것은 완충지대가 적성지대로 바뀜을 의미한다. 순망치한. 우크라이나는 러시아에게 입술, 그것도 매우 두꺼운 입술이다. (출처)

나토 막으려 우크라 먹겠다는 푸틴…'동진 저지선' 지정학 비극

미국 외교의 거두 즈비그니에프 브레진스키는 저서 『거대한 체스판』에서 “우크라이나를 잃은 러시아는 유럽에서 멀어져, 더 아시아에 가까운 나라가 된다”며 “러시아가 유럽의 일부인지, 아니면 유라시아의 추방자인지 결정하는 축이 바로 우크라이나”라고 설명하기도 했다. 러시아측 인사인 알렉산드르 두긴 또한 1997년 『지정학의 기초』를 통해 러시아에게 우크라이나가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이러한 우크라이나의 지정학적인 위치는 러시아가 우크라이나를 집어삼키려고 폭주하는 반면 미국, 영국, EU 등 서방권은 영 시원찮은 반응을 보이는 원인이기도 하다.

4.2. 러시아 우크라이나의 민족 정체성 갈등

러시아와 우크라이나의 서로에 대한 인식 차이에서 비롯된 갈등이다. 러시아와 우크라이나가 역사적, 문화적, 민족적 언어적으로 밀접한 관계가 있기 때문에 러시아는 우크라이나를 우리로 보고 영향력을 행사하려는 반면, 우크라이나(특히 서부지역에서)는 그러한 역사 속에서도 차이점을 인식하고 러시아의 영향권으로부터 벗어나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러시아와 우크라이나의 역사에 대해서 본 항목에서는 최대한 간략하게 서술하지만, 다음의 문서에서 보다 많은 양을 다루고 있다.
파일:상세 내용 아이콘.svg   자세한 내용은 러시아-우크라이나 관계 문서
2번 문단을
부분을
참고하십시오.
파일:상세 내용 아이콘.svg   자세한 내용은 카자크 문서
3.1번 문단을
부분을
참고하십시오.
파일:상세 내용 아이콘.svg   자세한 내용은 우크라이나/역사 문서
번 문단을
부분을
참고하십시오.
파일:상세 내용 아이콘.svg   자세한 내용은 몽골-타타르의 멍에 문서
번 문단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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러시아, 우크라이나, 벨라루스는 9세기부터 13세기까지 존재한 키예프 루스의 틀 내에서 같은 문화[100]를 공유했지만, 거대한 국토, 키예프 루스의 쇠퇴, 다른 루스 지역의 성장, 각 공국과 이민족 간의 접촉으로 인해 키예프 루스가 멸망하기 전부터 이미 정치적 통일성과 언어적 동질성이 점점 사라져가고 12/13세기에 우크라이나어와 다른 동슬라브 제어를 구분짓는 언어적 분화가 점진적으로 일어나고 있었다.[101]

사실 키예프 루스라는 정치체는 몽골이 침략하기 전에 이미 거의 형해화된 상태였다. 11세기에 쿠만족의 침략으로 오늘날 우크라이나 지역 대부분이 초토화되었고, 12/13세기 초에도 키예프 루스는 여러 공국들로 분열되어 내란을 겪고 있었고 그 도시들은 초토화되었다. 중간에 루스 공국들이 블라디미르 2세 모노마흐 치세(1113–1125)에 재통합되는 일도 있었지만, 모노마흐가 죽자 각 공국들은 다시 키예프 대공 자리를 놓고 내전을 벌였다. 흔히 루스의 쇠퇴와 분열의 원인으로 지목되는 13세기 몽골의 침략은 단지 쇠퇴와 분열에 쐐기를 박았을 뿐이다.

13세기 몽골의 침입으로 이미 이름밖에 남아있지 않던 키예프 루스는 완전히 공중분해되었고, 그 빈자리는 몽골 세력과 이미 성장한 여러 루스계 공국들이 차지했다. 우크라이나 일대의 루스인(우크라이나인의 조상)과 러시아 서부 일대의 루스인(러시아인의 조상)도 각각 갈리치아-볼히니아 모스크바 대공국으로 나뉘어 서로 다른 역사적 길을 걷게 된다.

우크라이나 민족주의 역사학자인 미하일로 흐루셰우스키는 키예프 루스와 모스크바 대공국 사이에 연관성이 없다고 말한다. 키예프 루스의 진정한 후계자는 우크라이나인 뿐이며 따라서 러시아와 우크라이나는 별개라는 것이다.[102]

14세기 우크라이나 일대는 몽골 세력(킵차크 칸국)을 몰아낸 리투아니아 대공국(이후 폴란드-리투아니아)에게 18세기까지 지배를 받았는데, 이때 우크라이나어에 폴란드어 등 서슬라브 제어의 단어 및 문법이 유입되어 기존의 언어적 차이가 더더욱 벌어졌다. 이후 1648년 우크라이나인의 뿌리로 여겨지는 자포리자 코자키의 코사크 헤트만(지도자) 보흐단 흐멜니츠키 폴란드-리투아니아에 대항해 반란을 일으켰고 이 과정에서 루스 차르국(모스크바 대공국의 후신)에 신종을 대가로 지원을 받았다. 반란에 성공하여 드니프로 강 동쪽(우크라이나 동부)를 차지한 코사크는 루스 차르국으로부터 예상과 달리 우크라이나어 사용을 억압하는 등 억압적인 통치를 받았고, 이에 대항해 이반 마제파를 중심으로 반란을 일으키고 대북방전쟁을 이용해 스웨덴 국왕 칼 12세와 손잡았으나 폴타바 전투에서 표트르 1세에게 패퇴하고 자치권을 박탈당했다.

이후 18세기 말, 러시아 제국 폴란드 분할을 통해 폴란드 왕국 관할의 우크라이나 중부 지방까지 갖게 됨으로써 우크라이나 서부 지역 일부[103]를 제외한 전 우크라이나가 러시아 제국의 소러시아 관구라는 이름의 직할령으로 편입된다. 러시아 제국 하에서 우크라이나 문화에 대한 탄압이 이루어졌기 때문에, 그때까지 러시아가 지배한적 없던 갈리치아 일대에서는 우크라이나 민족주의가 성장했고 이것이 오늘날 우크라이나 동서부의 성향 차이로 나타난다.

1917년 러시아 제국이 붕괴되자 우크라이나 지역에선 우크라이나 인민 공화국이 독립을 선포하였으나, 소비에트 러시아의 침공을 받아 1921년 멸망하고 그 자리에는 소비에트 연방의 구성국인 소비에트 우크라이나가 세워진다. 1920년대에는 소련이 연방 내 소수민족의 문화를 장려하는 정책을 펼침으로써 우크라이나 문화가 부흥했으나, 이는 1930년대 말 스탈린이 정권을 잡고 러시아화를 추구함으로써 중지되었다. 흐루쇼프 정권기에는 정치적으로는 상대적으로 자유로워졌지만 문화 및 언어적으로는 러시아화가 가속화되면서 오히려 우크라이나어가 열세에 처하게 되었다.

1991년 소련의 붕괴되면서 우크라이나는 러시아로부터 재분리되었다. 여기서 러시아와 우크라이나의 정체성 갈등이 불거진다. 우크라이나는 위에 서술한 역사적 사실들을 토대로 우크라이나와 러시아의 차별성을 강조하고 독자적 정체성을 추구하는 반면, 러시아는 소련 해체 이후에도 범슬라브 공동체를 형성하고 그것을 러시아의 정체성의 기반으로 삼고자 하였다.

러시아가 범슬라브 공동체라는 새로운 정체성을 추구하는 데에는 러시아가 민족국가를 일찍이 형성하지 못한 역사적 배경이 있다. 러시아는 모스크바 공국부터 러시아 제국까지 4세기 동안 약 570배의 영토 확장을 이루었다. 지리적 장벽을 초월하고 다양한 민족을 규합하는 확장 때문에 러시아 제국은 무엇이 진정한 러시아인지에 대한 정립이 이뤄지지 못했다. 또한, 다른 제국과는 달리 인접한 식민지들은 중앙에 직접 편입하여 통치하였기 때문에 민족국가와 제국주의가 융합하여 성장하였다. 이 시기 러시아 제국은 민족주의보다 차르와 러시아 종교에 대한 충성심을 기반으로 하였다. 소련이 세워진 후에도 중앙으로의 일원화를 통한 사회주의 통일문화를 통해 러시아는 유지되었다.[104]

이런 역사적 배경에서 볼 때, 본국과 식민지가 명확히 구분되던 서양 열강에 비해, 러시아의 제국적 중앙의 해체는 상상하기 어렵다. 러시아 자체가 민족적 개념으로 정의되기 어렵다는 것이다. 이에 반해 우크라이나는 러시아에서 벗어나 독립을 달성한 후 국가적 정체성이 민족 언어적 정체성으로 대체되었다. 그렇게 민족 언어적 정체성을 형성하는 과정에서 우크라이나 대기근과 같은 사건들이 재조명되어 우크라이나의 과거 소련 소속되었던 시절을 부정적으로 보게 되었고 러시아와 동떨어진 우크라이나 서부 민족적 기원설을 받아들이기 시작하며 러시아에 대한 부정적인 인식이 증가하였다. 실제로 옐친은 소련 해체 이후 독립국가연합을 창설하고 여기에 폴란드와 불가리아를 초대하려는 등 범슬라브 공동체를 추구하는 행보를 보였으나, 우크라이나는 독립국가연합을 유럽과 시장경제에 통합되기 위한 과도기적 단계로 여겼다. 우크라이나의 이러한 행보는 러시아가 추구하는 새로운 슬라브 민족 공동체의 정체성에 큰 손상을 주었다.

러시아 우크라이나우리로 보지만 우크라이나(특히 서부)에서는 러시아를 으로 보는 것이다.[105] 러시아는 소련 시절에 니키타 흐루쇼프가 페레야슬라프 조약 체결 300주년을 기념하며 친선의 표시로 러시아 소비에트 공화국에 속했던 크림 반도를 우크라이나 소비에트 공화국에 그냥 넘기는 행위 등을 할 정도였으나 우크라이나는 소련 해체 이후부터는 러시아와 철저하게 거리를 두고 EU에 동조하고 있으며 이러한 우크라이나를 러시아의 일부분으로 보는 입장에서 받아들이지 못한다.[106]

4.3. 서방의 낮은 개입 가능성

미국, 영국, EU등 서방에 입장에서는 우크라이나가 지나치게 러시아와 가깝고 지형적으로도 방어 거점으로 삼을만한 산악 지형이 거의 없다시피 하고, 대부분이 평야이기 때문에 군사적으로 지켜주기 어려운 환경이다. 동유럽에 여러 나라가 있기 때문에 러시아에 대한 방파제로 쓸 나라가 우크라이나만 있는 것도 아니다. NATO의 가장 강력한 방패는 폴란드이며, 우크라이나 뒤에 있는 체코, 슬로바키아, 헝가리, 크로아티아, 루마니아, 발트3국도 러시아에 적대적이다. 즉 우크라이나에 파병을 한다는 건 러시아에 대한 방파제 수준을 넘어 러시아에 대한 공성추 실로비키 정권 머리에 총부리를 들이미는 것에 가까워서 러시아 정부를 지나칠 정도로 자극해 버린다.

러시아가 흑해를 장악해 봐야 흑해는 보스포루스 해협[107] 외에는 차단되어 있는 내해에 불과하고, 미국, 영국, EU 튀르키예 그리스를 이용해 러시아 함대를 견제할 수 있다. 설령 보스포루스 해협이 러시아에 의해 뚫렸다고 해도 이탈리아, 프랑스, 스페인, 몰타 등의 견제를 받을 수밖에 없다.

결국 미국, 영국, EU는 우크라이나-러시아 간 전쟁에 개입시에 가질 수 있는 리스크[108]를 감수할 확률이 낮다. 실제로도 전쟁이 발발한 이후로도 대 러시아 경제 제재나 대규모 군수 물자 지원, 심지어 정보자산 지원과 '자발적인' 의용군 파병 등은 다 해줘도 공식적인 군사적 행동은 어느 나라도 하지 않고 있다. 이런 맥락에서 러시아는 서방의 적극적 개입 가능성을 낮게 보고 대담한 정책을 펼치게 되었다.

4.4. 민스크 협정의 위반

서방국가들 특히 유럽에서는 러시아와 우크라이나간의 갈등이 심각해지자 이대로는 최악의 결과로 흘러갈 수 있다는 것을 인정, 대화와 협정으로 이 사안을 해결해야만 한다고 의견을 모은다. 미국도 이에 동의, 협정을 중재하는 프랑스, 독일을 격려하고 지지 메세지를 보내며 러시아에게도 사태 악화를 피해 평화 협정을 응할 것을 요청 하였다.

결국 갈등이 더 커지는 것을 막기 위해 2014년 9월 5일 독일, 프랑스, 우크라이나, 러시아 4개국의 조율 하에 우크라이나와 친러 반군 사이의 민스크 협정이 체결된다. 이것을 1차 민스크 협정이라 부르기도 한다. 그러나 어렵게 평화 협정이 체결됐지만 러시아와 우크라이나 양측 모두가 민스크 협정을 위반했다.

러시아측은 2015년 1월 전면적인 대공세를 벌여 요충지인 도네츠크 공항을 함락하고 우크라이나군의 교두보이자 요충지인 데발체베에서 우크라이나군 6천여 명의 포위섬멸을 시도함에 따라 기존의 민스크 협정은 거의 무효화되기에 이른다. 반군 지도부는 우크라이나군에 공세를 벌이면서 전황이 유리하게 전개되자 민스크 협정을 존중할 생각이 없다고 공공연히 언급했다.[109]

우크라이나측은 젤렌스키가 반군 장악지역에 특별 지위를 부여하는 조항을 비롯하여 민스크 협정의 요구사항과 실행에 필요한 모든 조치들을 이행할 준비가 되어 있다고 천명했으면서 자국 국민들의 반발을 우려해 반군 장악지역에서의 국경통제권 환수 시기를 제2차 민스크 협정에 제시된 선거 후가 아닌 이전으로 변경하여 발표하는등 ' 러시아'의 동의 없이 일방적으로 내용을 부분 수정하는 편법을 동원했다. #

이에 2015년 2월 12일 기존의 협정을 개정한 2차 민스크 협정에서 휴전에 관한 세부조건을 구체적으로 명시를 하고 조율을 했지만 몇년간 협상만 지지부진하게 이어지다가 실행되지도 못했다. 게다가 2차 민스크 협정은 반군의 배후인 러시아를 협정 당사자로 포함시키지 않음으로써 러시아에게 어떠한 구속력도 미치지 못한데다[110], 1차 민스크 협정 이후 반군이 새로 점령한 500km²의 영역에 대해서는 전혀 언급하지 않았으므로 우크라이나측에게는 지극히 굴욕적인 협정으로 받아들여졌다. 결국 2차 민스크 협정에 대한 보강이 필요하다는 논의가 나오는 와중에 2022년 전쟁이 터지면서 끝내 무산된다.

4.5. 러시아의 사정

소련 시절이나 지금의 러시아나 모두 모스크바에 상당수 역량이 집중되어 있다 보니 모스크바를 필사적으로 방어하려고 한다. 문제는 그 모스크바가 서방 진영에 너무 가까운 위치에 있다는 것이다. 다시 말해 한 나라의 수도가 적성세력에 너무나 근거리에 있는 것. 북한에서 가까운 위치에 있는 서울과 공통점이 있기도 하지만 그나마 자연장벽이나[111] 동맹국 등의[112] 여러가지 변수가 있는 서울과 비교해도 러시아의 모스크바는 지나칠 정도로 지정학적으로 불리하다.

그래서 흐루쇼프가 베를린을 노렸듯 미국, 영국, 프랑스 등은 모스크바를 노렸다.[113] 이것은 미국이 유럽 정세에서 빠지지 못하도록 협박한 것이기도 한데, 수도를 잃고 삼류 개발도상국으로 전락한 소련 혹은 러시아가 자신들의 영향력 상실과 미국의 영향력 극대화를 마냥 보고 있을 리 없으니 미국에 선제 핵 타격을 가할 가능성이 커지기 때문이다.

그런데 우크라이나의 수도 키이우와 러시아의 수도 모스크바의 직선거리는 약 750km 내외이며, 우크라이나 최북단 기준으로는 약 500km 내외에 불과하다. 만약 우크라이나가 성능 좋은 단거리 탄도 미사일이나 순항 미사일만 도입해도 즉각 모스크바에 직접 타격을 가하는 게 가능하며, 여기에 핵탄두를 장비할 시 너무나도 간단하게 러시아에 대한 비례억지전략이 성립되어 버린다.

가까운 중국을 예로 들어보자. 여태까지 중국은 한국의 미사일, 해상, 항공 전력이 강화된다 싶으면 극심하게 반발했다. 이는 THAAD 배치 이후 중국이 경제적 타격, 대외 신용도 타격을 무시하면서 보복을 한 것에서도 알 수 있다.[114] 이는 중국의 수도인 베이징이 한국과 가깝기 때문이다.[115] 베이징과 서울 간 직선거리는 약 950km이다. 한국이 BGM-109 토마호크 순항 미사일만 도입해도 베이징, 상하이, 난징, 쑤저우, 항저우 등 주요 도시를 파괴할 수 있기 때문에 중국이 히스테리를 부리는 것이다.[116][117]

또한 지상군 배치에서도 문제가 생긴다. 우크라이나 전까지는 카르파티아 산맥이 있어 지상군의 이동 경로가 좁게 형성되어 있으나, 우크라이나부터는 모스크바까지 평야 지형으로 이루어져 있어서 수비하는 입장에서는 방어선을 마련하기가 껄끄러워진다.[118] 폴란드가 한국과 비슷하게 육군 위주로 편성하는 것도 이 때문인데, 벨라루스의 평야 지대를 넘어온 러시아의 기갑 전력을 막는 선봉장이기 때문이다. 그런데 이를 정 반대로 말하자면 우크라이나에 서방 세력이 직접적 파병을 한다는 건 사실상 외국군이 러시아 수도 코 앞에 병력을 전진 배치하는, 사실상 러시아에 대한 선전포고급 비상사태와 다를 바 없다.

이 모든게 종합된 결과 우크라이나가 강성 반러 정권이 들어선 뒤 대규모 군사력을 확보할 경우 냉전시대 쿠바 미사일 위기와는 정 반대로 서방 진영이 러시아의 급소를 확실히 쥐게 된다.[119] 이 경우 국수주의와 소련 부활을 지지 기반으로 삼는 실로비키가 중심인 현 러시아 정부 입장에선 우크라이나라는 총부리를 겨눈 서방 진영에게 대단한 위협을 받게 된다.[120]

또한 흑해에 대한 영향력 약화도 큰 문제가 된다. 흑해는 러시아의 지중해 진출의 유일한 출구로서 유럽 열강으로의 국제적 지위 확보에 기여한 중요한 전략적 통로였다. 그러나 소련 해체 이후 흑해 함대는 분할되었고, 그 모항인 세바스토폴 군사 기지와 크림 반도는 우크라이나에 귀속되었다. 이런 상황에서 우크라이나의 서방화는 흑해에 대한 러시아의 접근을 제한하면서 제해권 장악을 어렵게 하고, 러시아 해군력의 대(對)유럽 투사(投射) 능력을 저하시킨다. 또 제2의 황금바다로 불리는 카스피해 연안지역에 대한 통제권을 약화시켜 에너지 자원 개발과 파이프 라인 건설을 둘러싼 열강들 간의 경쟁에서 러시아의 경제적 이권도 현저히 침식시킨다. #

결국 현 시점의 러시아는 반 러시아 성향 우크라이나 정권을 방치시 극도로 치명적인 지정학적 피해를 입게 되며, 명분과 무관하게 대규모 전쟁을 감행하더라도 우크라이나를 차지하거나 친러 정권으로 바꿔야 하는 절박한 이유가 있는 셈이다. 또한 우크라이나 영토 전역이 NATO EU의 세력권으로 완전히 들어간다면, 러시아는 서방 세력과 완충 지대 없이 국경을 맞대게 된다. 발트3국이나 폴란드의 사례에서 보듯, 우크라이나에 서방의 군대와 최신식 무기가 배치될 수도 있다. 그리고 우크라이나와 모스크바까지 평야 지대가 펼쳐져 있어서, 방어가 굉장히 어렵다.[121] 따라서 러시아에서는 완충 지대 확보와 모스크바 방어를 위한 충분한 거리를 확보하기 위한 목적까지 달성하기 위해 침공을 감행한 것이다.

4.5.1. 러시아의 인구문제

현재 러시아는 인구문제를 겪고 있다. 러시아의 진짜 재앙 옐친 시절의 경제난으로 치명적인 인구 감소를 겪던 러시아는 푸틴의 집권 이후 인구가 일시적으로 회복되었다. 그러나 그러한 효과는 일시적이었고 이내 러시아는 다시 사망률이 출생률을 상회하는 현상을 겪고 만다. 러시아의 인구는 치명적인 인구 감소를 겪고 있으며, 이에 따라 2030년까지 인구가 550만 명 감소할 예정이다.

러시아도 이를 모르는 것은 아니므로 출산 장려정책 및 이민 정책을 펴고 있다. 러시아 정부는 '어머니 자금(Mother Capital)'이란 제도를 마련해서 둘째를 출산한 가정에는 주택구매, 아이 교육 등에 사용할 수 있도록 러시아인 평균 연 수입의 1.5배에 달하는 25만루블(약 472만원)의 보조금을 지원하며 출생률 높이기에 매진했다. 또한 구소련 국가로부터 이민을 적극적으로 장려하여 구소련 당시 러시아 SFSR 외의 다른 SSR로 퍼져나갔던 러시아계 주민들을 본토로 이주시키려고 노력하고 있다. #[122] 그럼에도 불구하고 러시아 인구의 암울한 전망에서 보듯이 인구문제의 해결은 요원한 실정이다. #

이에, 일본의 경제지 니혼게이자이신문에서는 러시아가 인구 확보를 목적으로 전쟁을 일으킨 것이 아닌가 하는 추측성 보도를 하였다. 실제로 러시아는 전쟁 중에도 '러시아로의 인도적인 피난'을 받아 시베리아 등 인구 부족 지역으로 피난민들을 정착시키려 하고 있다. 더하여, 러시아에서는 러시아의 동남부 우크라이나 병합을 통해 260만명의 인구를 확보했다고 대대적으로 홍보하고 있다.

문제는 인구감소가 러시아만의 문제가 아니라 침공당한 우크라이나 쪽도 심각한 문제라는 것이다. 우크라이나 역시 소련 붕괴 이후 후유증으로 1991년 당시 5,200만명이던 인구가 30여년 후 2022년 전쟁 직전에는 3,700만명 수준까지 엄청나게 감소했으며 설상가상으로 러시아의 침공으로 인한 인구유출로 막대한 피해를 입은 상황이다. 즉 우크라이나에 러시아가 막대한 피해를 강요하는 상황에서 설령 러시아가 우크라이나를 얻는다고 해도 근본적인 문제가 해결이 안 될 가능성이 높고 우크라이나 전역을 장악한다는 당초의 전쟁 목표도 실패한 상황이니 러시아에겐 최악의 자충수라는 결론 밖에 나오지 않는 것이다.

4.5.2. 러시아의 실존적 위기

러시아는 변방에 있는 취약 지역들의 허점을 모두 메울 만한 힘이 없으므로 우선순위를 정해야 한다. 러시아가 생존을 위해 시도할 조치들을 우선순위대로 나열해 보겠다. "러시아가 가장 신경을 써야할 지역은 우크라이나다."
* 우크라이나는 러시아 밀 곡창지대에서 단연 가장 생산성이 높은 지역(이 지역내에서 최남단이고 강수량도 일정하다)을 점유하고 있다. 러시아는 인력과 자본 부족현상이 심해짐에 따라 최저 비용으로 최고의 생산성을 보이는 영토들을 장악하는 일이 앞으로 점점 더 중요해진다.
* 몰도바와 함께 우크라이나는 베사라비아 협곡을 점유하고 있다. 이 지역을 장악하면 러시아의 핵심 영토를 노리는 터키의 준동을 막게 된다.
* 우크라이나는 러시아 외의 지역들 가운데 러시아 민족 인구가 가장 많다.(크리미아 반도를 우크라이나의 일부가 아니라 러시아의 일부로 봐도 그렇다.) 우크라이나의 인구를 러시아 체제에 통합하면 러시아의 멸망을 몇년 더 지연시킬 수 있다.
* 우크라이나 동부 지역의 산업 기반은 러시아와 인접해 있다. 이 지역을 통합하면 러시아 경제 전체의 목숨을 조금 더 연장하는데 도움이 된다.
* 우크라이나 기간 시설은 러시아가 유럽에 수출하는 석유와 천연가스의 거의 절반을 운송하기 때문에 우크라이나가 지닌 에네저 운송 역량은 재정적인 소득 못지않게 정치적 지렛대로서의 가치가 있다.
* 우크라이나 국경은 모스크바에서 겨우 300마일 떨어져 있는 확 트인 평원이므로 우크라이나는 적어도 완충 지대로서의 가치가 있다.
* 구소련 지역에서 유일하게 항행 가능한 드네프르 강은 우크라이나 영토를 관통해 남쪽으로 흐르며, 우크라이나가 흑해 지역, 마르마라해 지역, 그리고 그 너머의 세상과 경제적으로 통합될 수 있게 한다. 드네프르 강 덕분에 우크라이나는 유목민의 땅에서 가장 자본이 풍부한 지역이 될 잠재력을 지니고 있으며, 모스크바로부터 독립해 독자적으로 운명을 개척할 역량이 있는 유일한 지역이다. 러시아는 절대 그런 일이 일어나도록 내버려두지 않는다.
* 크리미아 반도는 드네프르 강 입구에 위치해 있고 유일하게 얼지 않는 러시아 해군기지 세바스토폴이 있다. 크리미아 반도와 세바스토폴이 러시아 수중에 있는 한 우크라이나는 경제적인 독립을 꾀하지 못하고 해상 세력들- 특히 터키-은 흑해를 장악하지 못한다. 중앙 유라시아 국경지역들을 재장악하려는 러시아의 노력은 2014년초 크리미아 반도에서 시작되었다. 그러나 러시아는 거기서 멈추지 않는다.

어떤 형태로든 우크라이나가 독립하면 러시아에게는 위협이 된다.
『21세기 미국의 패권과 지정학』 - 피터 자이한 지음, 홍지수 번역 - p267~p269

미국 출신의 지정학 전략가는 피터 자이한은 러시아는 현재 심각한 위기에 내몰렸으며 때문에 러시아에게 있어 우크라이나는 러시아에게 있어 생존을 위해 결코 포기할 수 없는 지역임을 지적했다.

4.6. 크림반도의 물 공급선 확보 문제

크림반도 크림 칸국이 멸망한 1783년부터 러시아 영토였지만, 소련 시절인 1954년 행정 구역 변경으로 우크라이나 영토가 되었다. 2014년에 크림반도를 러시아 영토로 합병했지만, 우크라이나는 이에 대한 보복으로 크림 반도에 물을 공급하는 북 크림 운하에 모래 주머니를 쌓아, 공급을 차단했다. 크림반도는 조금씩 사막화가 진행되고 있었기 때문에 담수를 공급할 유일한 경로인 드니프로강에 대한 접근이 차단될 경우 어려움을 겪을 수 있었다. 그러므로 러시아는 크림반도의 안정적인 물 공급선 확보를 위해서도 침공을 단행했다.

2022년 6월, 러시아는 그동안 우크라이나가 2014년 합병 조치 이후에 차단하고 있던, 크림반도을 공급하는 북 크림 운하 주변 지대를 군사적으로 확보하고, 운하를 재개통했다. # 러시아 측의 입장에서 본다면, 우크라이나 침공의 중대 목표 중 하나를 달성한 것으로 평가된다.

4.7. 미국의 개입 회피

미국은 멀리 있는 폭군( 소련)을 없애자고 현지( 우크라이나)의 독재자를 내세우지도 않을 것이고 인종적 증오에 뒷받침된 자기파괴적인 민족주의를 지원하지도 않을 것이다.
조지 H. W. 부시 1991년 소련 해체 직전 행한 연설에서
미국의 의도에 반해 (소련 해체와 함께) 독립한 우크라이나는 즉시 서방의 위협이 됐습니다. 1,900개의 핵탄두와 2,500개의 전술 핵무기를 보유한 핵강국이었기 때문입니다. 미사일 개발 능력도 탁월해서 1962년 쿠바에 배치됐던 소련 미사일이 모두 우크라이나에서 생산됐을 정도였습니다. 당시 우크라이나는 중국, 프랑스, 영국을 넘어서는 3번째 핵보유국이었는데, 이 때문에 미국은 내부적으로 불안정한 우크라이나의 핵무기가 당시 미국의 안보에 가장 큰 위협이라고 봤습니다. 이런 이유로 우크라이나의 핵을 제거하거나 러시아로 옮기자는 데에 러시아와 미국의 이해가 모처럼 일치하게 된 거죠. 미국은 차라리 러시아가 핵을 갖고 있는 게 낫다고 판단했습니다. 그러던 1992년 5월, 우크라이나와 러시아가 크림반도를 두고 충돌합니다. 크림 반도 세바스토폴의 러시아 흑해함대 문제로 양측의 긴장이 고조되기 시작했고, 심각한 안보위기를 느낀 우크라이나는 핵 미사일을 포기하는 대가로 경제 지원, 공식 영토 확정, 안보 보장 등을 요구하게 됩니다.

이후 1994년 12월, 헝가리 부다페스트에서 러시아, 영국, 미국과 우크라이나가 이른바 ' 부다페스트 양해각서'를 체결합니다. 핵을 포기하는 대신 이들이 우크라이나의 안전을 보장한다는 내용이었습니다. 그런데 문제는 이게 ' 양해각서'였을 뿐 구속력 있는 ' 협정'이 아니었다는 점이었습니다. 만약 '안전보장 협정'이었다면 러시아가 이를 어기면서까지 2014년에 크림 반도를 침공하긴 어려웠을 겁니다. 미국과 러시아의 압박이 거센 상황에서 여기에 서명 안 하면 국제적으로 고립되고, 경제지원도 받을 수 없었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핵위험이 사라진 우크라이나는 이제 더이상 미국의 중요 관심사가 아니었습니다. 별다른 안전보장 장치 없이 러시아와 서방 사이에 어정쩡하게 놓이게 된 우크라이나는 국내 정치적으로도 혼란을 겪었고, 점점 러시아가 눈독들이기 좋은 상황으로 빠져 늘어갔습니다.[1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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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크라이나는 러시아인 인구가 상당히 많은 데다[124] 우크라이나인 중에서 과거 같은 소련인이자 동슬라브 계통인 러시아인, 벨라루스인과 결혼한 사람이 많다는 점 역시 간과할 수 없다.[125] 지리적인 이유( 서로 국경을 상당 부분 맞대고 있다.)까지 겹쳐서 반러 정권이 마냥 안정적으로 유지되기도 힘들다. 미국이 제스처만 열심히 취하고 적극적인 지원은 이런저런 핑계를 대고 최대한 회피하려 하는 이 상황은 우크라이나(친서방파) 입장에서는 그야말로 복장 터지는 상황이다. #1 #2
파일:나토-우크라이나 관계.jpg [126]
군인 금발 소녀를 사이에 두고 있다.
NATO : 걱정 마, 내가 에 있잖아.
장피에르 부대변인은 브리핑 당시 ‘우크라이나의 나토 가입을 지지하느냐’는 질문에 “그렇다(yes)”고 답했지만, 이후 백악관은 홈페이지에 올린 문답자료에서 이 부분을 삭제했습니다.

이와 관련해 백악관 측은 장피에르 부대변인이 “잘못 말한 것으로, 미국의 공식적인 정책을 반영하지 않는다”고 해명했습니다.
출처

발트 3국이 순조롭게 NATO에 가입한 것과 다르게 미국은 우크라이나의 NATO 가입은 이런저런 이유로 거부하는 상황이다. 발트 3국은 근대 이래 러시아 제국, 그리고 소련의 핵심적인 전략적 요충지로 미국은 러시아의 반발을 무시하고 이 지역을 과감하게 NATO로 편입시켰다. 그러나 우크라이나의 경우 그와는 다르게, 아무리 우크라이나가 애걸복걸하고 유럽에서 이를 지지하더라도 무시로 일관하고 있는 상황이다.

이해하기 쉽게 말하자면, 도널드 트럼프 정권 초기까지 미국은 친중 국가 파키스탄에조차 우크라이나보다 훨씬 더 많은 금액을 원조하는 상황이었다.[127] 이 2억 5,000만 달러가 유럽 국가 예산으로 얼마나 적은 돈이냐면, 우크라이나와 인구 규모가 비슷한 폴란드 정부 지출 3,972억 즈워티(약 1,103억 달러) #의 0.227%에 달하는 금액이며, 미국이 이스라엘에 원조하는 군사원조 금액은 1년에 38억 달러 정도에 달하는데, #[128] 상식대로 따진다면 가내수공업으로 까삼 로켓 만드는 하마스를 상대하는 이스라엘보다 세계 군사력 2위 러시아를 상대해야 하는 우크라이나에 더 많은 원조 액수가 가야 한다. 그러나 미국이 우크라이나에 군사원조로 지불하는 금액은 이스라엘의 그것에 15분의 1도 안 되는 수준에다가, 그마저도 매년 지불되는 것이 아니다. 심지어 무기 지원도 형편없었다. 우크라이나는 러시아의 미사일, 전투기를 제압할 첨단 방공망을 미국에 요청했지만 미국은 우크라이나군에 대한 불신과 러시아의 눈치를 보다 야투경, 방호복, 재블린 같은 것만 지원해줬고, 결국 우크라이나는 방공망을 현대화할 시기를 놓쳤다. # 결론적으로 미국과 우크라이나의 우호관계는 말하자면 중국과 파키스탄의 반어법적인 우호관계와 비슷하다.[129] 한쪽은 강대국이 자신들을 일방적으로 도와주길 기대하지만, 강대국 입장에서는 굳이 약소국 국민들의 소원을 들어줄 이유가 없는 것이다. 다만 젤렌스키 대통령 이전의 정부가 친러 성향을 지녔고, 정치인들도 친러 성향들이 많았으며 결정적으로 전쟁이 발발하자 우크라이나의 정치인들이 자산을 챙겨 해외로 도피하는 모습을 보았을 때, 미국의 무기 지원은 그 당시 기준으로는 우크라이나 내부 사정에 의해 러시아로 흘러들어갈 가능성이 매우 높았다. 미국이 이걸 모르지는 않았을 것이고 이것이 미국이 지원을 꺼린 이유 중 하나일 것이다.

이를 두고 볼로디미르 젤렌스키 우크라이나 대통령은 미국을 비롯한 서방이 러시아에 대한 구체적인 제재나 우크라이나에 대한 실질적인 지원이 미비하고 오히려 불안만 가중시켜 우크라이나의 상황만 어렵게 만든다며 이례적으로 목소리를 높여 비판하였다.
볼로디미르 젤렌스키 우크라이나 대통령이 2022년 2월 19일(현지시간)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 가능성에 대한 서방의 대응이 부족하다고 강도 높게 비판하며 즉각적인 제재를 촉구했다.

조 바이든 대통령을 비롯한 미국 인사들이 매일같이 침공 가능성을 경고하는 것과 관련, 젤린스키 대통령은 이러한 행위가 외국인 투자와 우크라이나 환율을 불안하게 하고 자국민들을 공포에 떨게 한다고 비판했다.

우크라이나의 북대서양조약기구(NATO·나토) 가입에 대한 러시아의 반대와 관련해서는 나토 가입 의사를 재확인하면서 서방이 주저하고 있다고 강조했다.
APTN에 따르면 젤렌스키 대통령은 "파트너들의 지지가 있든 없든 우리는 조국을 지킬 것"이라면서 "(무기·장비 등) 지원에 대해 감사하지만, 이는 우크라이나가 독촉하거나 구걸해야 하는 기부가 아님을 모두가 이해해야 한다"고 밝혔다.

이어 "이는 우크라이나가 머리를 조아려야 할 게 아니다"라면서 "우크라이나가 (크림 반도 합병 이후) 8년간 방패막이 역할을 해온 유럽과 국제 안보를 위한 여러분의 기여"라고 주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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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을 중심으로 체결한 부다페스트 안전 보장 각서로 보장한 우크라이나의 독립을 지켜주지 않는다면, 미국이 원하는 국제질서의 흠이 되며 또한 미국은 상호방위조약을 맺은 아프가니스탄 2021년에 손절한 적이 있던지라, 미국을 비롯한 서방의 약조의 신뢰도가 떨어져서 이후 조약을 맺을 때 불리해질 수도 있다"며, 미국이 우크라이나 방위에 손을 쓸 것이라 기대하기도 한다. 그러나 미국이 칠레에서 아우구스토 피노체트 쿠데타를 후원해서 멀쩡하게 잘 돌아가던 칠레의 민주주의 정권 하나를 박살내고도 중국하고 계속 친하게 지냈던 사례 혹은 국제적인 반대가 많았으나 깡으로 밀어붙였던 2003년 이라크 전쟁의 사례에서 보듯 미국 역시 국제 사회의 평판을 무시하는 결정을 내릴 때가 많았다. 결국 미국은 외교적으로는 이런저런 제스처만 열심히 취할 뿐이지 군사적으로는 중국-대만과는 다르게 직접적인 군사 행동에 나서지는 않고 있다. 현재 조 바이든 정권은 일단 82 공수사단을 폴란드 방면에 추가 파병하여 러시아에게 미국이 군사적 지원을 할 것이라는 듯한 제스처를 취하고 있으나, 실제로 전쟁이 발발했을 때 미군이 우크라이나로 돌입할지는 미지수이다.
미국이 의도적으로 러시아의 힘을 빼는 우크라이나 침공을 묵인한다는 주장도 있다. 물론 이 과정에서 우크라이나인들이 얼마나 희생될지는 모르지만 일단 대러제재와 우크라이나군에 대한 지원만 잘 이어가면 최소한의 명분은 유지하는 셈이니 미국으로서는 나쁠 게 없다. 실제로 미국의 외교 정책은 이미 오바마 행정부 말기 시절부터 러시아 외에도 벨라루스와 우크라이나, 그리고 중앙아시아 5개국의 경제를 통째로 모두 약화시키는 방향[130]으로 진행되어 왔던 바 있다. 그리고 현재 미국의 대비도 언제까지나 NATO 회원국에 대한 침략이 시작될 때 대비한 것 뿐이지 우크라이나에 대한 직접적인 군사적 지원 가능성은 아예 없다고 못을 박아놓은 상태이므로, 우크라이나 전역을 러시아가 점령하는 최악의 사태가 벌어지더라도 무기 및 물자지원과 대 러시아 경제제재를 넘어선 서방의 직접적인 개입 가능성은 없다.

이와 관련해서 미국 하원 외교 위원회의 마이클 맥콜 의원은 미국의 아프가니스탄 철수가 러시아를 대담하게 행동하게 만든 계기였다고 평가했다. # 또한 미국 정부 스스로가 군사적 옵션은 없다고 했는데, 이 때문에 미국 정부는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에 대한 억지력을 상실했고, 이는 러시아가 침공을 결심하는 계기가 됐다는 비판이 있다. 최소한 군사적 옵션을 실제로 실행하지는 않더라도 러시아를 압박할 수 있는 옵션으로 남겨놨다면 러시아가 침공을 쉽게 결정하지는 못했을 것이라는 요지의 비판이다. 더 나아가서 미국의 이와 같은 소극적인 모습이 중국을 자극하거나 유럽 전체 안보를 흔들리게 만드는 등 또 다른 외교적 위기를 자초할 수도 있다는 비판도 있다. #


결국 유럽과 미국은 NATO 회원국에만 병력을 투입했고, 대통령이 직접 군대를 파견하지 않겠다고 발표한 상태라 사실상 우크라이나 혼자서 러시아의 침공을 막아야 하는 상황이 나오게 되었다. 비록 명분이 없고 NATO 회원국이 아니라는 이유로 인해 도와주지 않고 있지만 NATO 가입을 철저히 막은 건 일부 유럽 국가들과 미국이었으며, 이런 식으로 러시아와 중국 둘 다 방치한다면 결국 패권 경쟁 및 신냉전에서 큰 타격을 입을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특히 러시아의 야심으로 인해 우크라이나 외에도 더 침공할 가능성이 있다고 미국이 공식적으로 언급함에 따라 우크라이나를 더더욱 지켜야 할 명분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도와주지 않고 있기에 유럽은 물론 미국도 너무나 무능하게 대처 중이라 보아도 무방하다. #

현재 러시아가 말도 안 되는 이유를 들어 침공했고 아예 친러 정부 설립 및 탈나치화[131]를 위해 노력 중이라는 터무니없는 주장만 하고 있는 상태이며 주변 국가들도 비슷한 명분을 만들어 침공할 여지도 있다. #

이미 아프가니스탄 사태만 해도 미국의 위상에 치명타를 입혔는데 우크라이나 사태마저 해결하긴 커녕 방관만 한다면 러시아와 중국이 더더욱 날뛰어도 소극적으로 대처한다는 인식이 당연히 생길 수밖에 없다. 가뜩이나 우크라이나는 민주주의 국가인 반면 러시아는 말로만 민주주의 국가인 독재 국가다. 자유 민주주의의 수호자로서 미국의 위상을 다시 올리겠다던 조 바이든 행정부의 주장들 역시 힘을 잃게 될 가능성이 높다.

4.7.1. 반박

동아시아 국가 국민들 입장에서는 젤렌스키의 이러한 하소연이 이해가 되지 않을 수도 있는데, 이는 미국의 대외 정책이 지역마다 다 다르기 때문이다.[132] 미국은 동아시아 기준으로는 자유와 민주주의를 보호해주는 정의의 세력일 수는 있다.[133] 하지만 이 점 하나만 가지고 미국이 세계 모든 지역에서 다 한미관계 같은 모습을 보일 것이라 생각하기는 어렵다.[134][135]

'미국이 손해를 보니 우크라이나를 적극 지원해야 한다'는 전제도 오류인 게, 냉정하게 말하자면 미국 입장에서는 러시아를 확실하게 견제하기 위해서라면 우크라이나가 시리아 레바논처럼 돼서 러시아를 수렁에 빠뜨리는 게 유리하다. 우크라이나 동부는 러시아계 주민들이 살고 있어 우크라이나와 러시아 입장에서만 중요하지 미국 입장에선 중요하지도 않으며 우크라이나의 지리적 위치[136] 때문에 서방이 러시아로부터 우크라이나를 방어하기 어렵다. 우크라이나 경제나 사회가 안정화되어봤자, 미국 입장에서 손해가 되었으면 손해가 되었지 전혀 이익이 되지 못한다. 그러므로 미국은 우크라이나가 완전 멸망당하지 않을 정도로만 지원하는 척 생색만 내고 그 이상의 지원은 하지 않는 것이다.[137] 러시아는 핵무기 보유국이기에 만약 미국과 전쟁이 벌어지면 공멸이라는 것을 어느 정도 알고 있다.[138]
사실, 미국은 이번 사태를 통해 얻는 것이 많다. 독립적으로 움직이던 독일, 프랑스 등을 비롯한 유럽 동맹국들이 결집했다. 러시아를 확실히 적으로 만들면서 국내 정치적으로도 상당한 이득을 얻을 수 있다. 끝내 우크라이나를 지켜내지 못하더라도 실질적 손해는 없다. 오히려 미국 입장에서는 이 위기가 적당히 유지되면 이를 활용할 여지가 많아진다. 마찬가지로 러시아 입장에서도 큰 손해는 없다. 러시아 세력권을 인정받을 기회를 호시탐탐 노리다가 이번에 미국이 제공해준 빌미를 제대로 낚아 챈 셈이 됐다. 결과적으로 지금까지 러시아와 미국은 잃은 것이 없다. 다만 사태가 장기화되면 러시아는 국외는 물론 국내 여론도 나빠지고 경제제재로 더 큰 어려움을 겪게 될 것이다. 이 때문에 러시아는 어떤 식으로든 최대한 빨리 사태를 정리하려고 할 것이다. 중요한 점은 미국의 자유주의 국제질서의 복원 노력과 러시아의 지정학적인 현실주의가 충돌하고 있다는 점이다.

신범식 서울대 정치외교학부 교수와 경향신문의 인터뷰 #

그리고 사실 미국 정부가 적극 개입하고 싶어도 우크라이나 개입에 대한 여론이 심각하게 안 좋다.[139] # 이 같은 결과는 동맹 규합, 러시아 제재 등 우크라이나 사태 전반에 걸쳐 주도적 역할을 하고 있는 조 바이든 대통령에게 상당한 부담으로 작용하고 있다. 우크라이나는 미국의 동맹국도, 이웃 나라도 아니다.[140] 우크라이나 내 주둔한 미군이 없어 전쟁이 발발하면 자동 개입하는 이른바 '전선협력관계' 같은 ‘ 인계철선(引繼鐵線ㆍtripwire)’이 작동하지 않는다. 또한, 우크라이나가 석유 매장량이 많은 미국의 주요 무역 파트너인 것도 아니다. # 게다가 미국은 2021년 아프가니스탄 철수 후 개입에 신중한 상태이다. 인권 못지 않게 국익 또한 고려하겠다는 것을 이미 아프가니스탄 철수에서 보여준 것이다.

미국은 자신들이 철군한 후 아프가니스탄이 탈레반에 의해 다시 장악될 것이라는 것과 탈레반에 의해 아프가니스탄이 다시 생지옥이 될 것이라는 것을 알고 있었고 그로 인해 동맹국을 버렸다면서 비난받을 것도 알고 있었다. 그럼에도 어쩔 수 없이 철수한 것이다. 즉, 미국도 현재는 대규모 파병을 벌일 수 있는 시기가 아니라는 것.

그렇지만 미국이 이득을 보기에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을 방조 내지는 유도했다는 식의 서술은 지나치게 결과론적인 비약일 수도 있다. NATO 가입은 미국의 의지만으로 결정되는 것도 아니며 타국의 사례를 볼 때 수년에서 십수년이 걸리는 복잡한 절차이다.[141] 이 과정에서 기존 회원국들의 만장일치를 요구하지만 헝가리와 같이 현 대러 제재마저 반대하는 친러성향의 회원국들도 있으며 반러성향임에도 우크라이나의 NATO 가입에 대해 반대하는 회원국들도 있는 상황이다.

우크라이나의 NATO 가입 문제는 2002년 처음 공식화된 이후 정권에 따라 좌초와 재개를 반복했으며 2014년 유로마이단 사태 이후 가입 시도가 재개되자 크림 반도를 점령당하고 내전이 일어나 현재까지 분쟁 중인 지역으로 가입에 어려움을 겪은 것[142]이지 단순히 의도적으로 배제했다고 보기엔 무리가 있다.

그리고, 우크라이나는 가입 조건도 충족되지 않았다. 우크라이나가 내부의 부패 문제, 러시아와 영토 분쟁 등으로 NATO 가입을 위한 모든 기준을 아직 만족하지 못했으며 또한 후보 국가의 영토 분쟁은 NATO 가입에 가장 큰 걸림돌이다. #

또한 NATO의 군사 개입과 러시아와의 직접적인 충돌은 양쪽 모두와 비유럽 국가들에게까지 파멸적인 결과를 불러올 것이 자명하다. 냉전 시대부터 핵무력을 가진 2강은 직접충돌을 피해왔던 선례가 있다. 그러므로 예상치 못한 러시아의 초강수를 미국이 유도하여 의도적으로 방치된 우크라이나와 싸움을 붙여서 국력을 소진시킨다는 서술은, 이번 분쟁이 결과적으로 러시아의 손해와 미국의 이익으로 귀결될 수 있으나, 음모론적인 발상에 가깝다. 게다가, 미국이 러시아를 견제하는 것은 냉전시기부터 항상 국익의 최우선으로 유지되었던 상황이다.

5. 기타

5.1. 클린턴 전 미국 대통령의 반응

미국의 빌 클린턴 전 대통령은 1990년대 재임 시절 우크라이나에 핵무기를 포기하도록 설득한 데 대해 후회감을 표시했다.

1993~2001년 미 대통령을 지낸 클린턴은 최근 아일랜드 RTE 방송과의 인터뷰에서, 우크라이나가 여전히 핵을 보유하고 있었으면 러시아가 우크라이나를 침공하지 못했을 것이라고 밝혔다.

그는 “그들(우크라이나)이 핵무기 포기에 동의하도록 설득했기 때문에 개인적인 책임을 느낀다”면서 “우크라이나가 계속 핵무기를 가지고 있었다면 러시아가 이 같은 어리석고 위험한 일을 하지 못했을 것”이라고 말했다.

클린턴 전 대통령은 보리스 옐친 전 러시아 대통령, 레오니트 크라프추크 전 우크라이나 대통령 등과 함께 우크라이나의 핵포기 협정인 부다페스트 양해각서 체결을 주도했다.

1994년 체결된 이 양해각서는 옛 소련에서 독립한 우크라이나·카자흐스탄·벨라루스가 핵확산금지조약(NPT)에 가입하고 핵무기를 포기하는 대가로 주권과 안보, 영토적 통합성을 보장받는 내용을 담고 있다.

미국·러시아·영국이 이 협정에 서명했다.[143][144][145]

5.2. 러시아의 반응

존경하는 한국 기자 여러분!
오늘 이 자리는 아주 의미있는 자리입니다. 이번 회견을 계기로 한국매체들이, 또한 한국매체를 통해서 한국국민이 안보문제, 우크라이나 사태에 대한 러시아 입장을 알게 되고 이해할 기회가 생길 것이기 때문입니다. 현재 한국매체들이 우크라이나 사태를 완전히 서방시각에서만 보도해서 큰 그림을 객관적으로 평가하기가 어렵습니다. 그래서 오늘 이 자리가 더욱 더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유럽대서양권과 우크라이나에서 벌어지고 있는 국제적 사건들에는 역사적인 뿌리와 근본적인 원인이 있습니다. 이들을 모르고 이해하지 않으면 현재 상태를 객관적으로, 또한 잘 평가하기가 어려울 것입니다.

(중략)

구체적으로 말씀드리겠습니다. 1980년대 말과 1990년대 초에 우리는 나토의 군사적 관할권이 오데르강 동쪽으로 1인치도 더 확장하지 않을 것이라는 약속을 받았습니다. 그러나 사실상 우리는 다섯 차례에 걸친 나토의 확장의 파도를 목격했습니다. 나토의 문건에서는 우리 나라가 유럽대서양 안보의 주요 위협이라고 직접적이고 공식적으로 선언합니다.

(중략)

이제는 우크라이나가 나토회원국이며 현대적 공격 시스템 포함한 대량의 무기를 가지며 크림반도에서 작전을 시작한다는 시나리오를 상상해봅시다. 크림반도는 러시아 주권 하에 있는 영토입니다. 그럼 러시아가 나토와 전쟁을 벌여야 합니까? 이러한 시나리오를 생각한 사람이 있을까 싶습니다. 없는 것 같습니다.

2021년 3월 우크라이나는 새로운 군사전략을 채택했습니다. 이 문서는 사실상 러시아와의 대치에 관한 내용이 전부이고, 우리나라와의 갈등에 다른 국가들을 끌어들이는 것을 목표로 하고 있습니다. 우리는 우크라이나가 자체 핵무기를 만들 거라는 말이 있었다는 사실을 알고 있습니다. 이것은 허세가 아닙니다. 우크라이나는 실제로 소련때부터 남아 있는 핵기술을 보유하고 있습니다. 우크라이나에게 대량살상무기가 생긴다면 전 세계, 유럽, 특히 우리 러시아에게 있어 상황은 완전히 본질적으로 바뀔 것입니다. 우리는 이 실제적 위험에 대응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중략)

이제 우크라이나에 대해서 말씀드리겠습니다. 우리에게 우크라이나는 단순한 이웃 국가가 아닙니다. 우크라이나는 우리의 역사, 문화, 정신적 공간, 혈연관계의 불가분한 부분입니다.

러시아는 소련 붕괴 이후 발생한 새로운 지정학적 현실을 인식하고 새로운 독립 국가들을 인정했습니다. 러시아도 당시 어려운 상황이었음에도 불구하고 우크라이나를 포함한 CIS 파트너 국가들을 도왔습니다. 1991년부터 2013년까지의 기간동안 우크라이나의 예산상 총 이익은 2500억 달러 가량입니다.

동시에 우크라이나 정부는 러시아와의 관계에서 모든 권리와 이점을 가지면서 아무런 책임도 지지 않으려고 했습니다. 파트너십이라기 보다는 부양에 가까웠고, 우크라이나 당국은 때때로 몹시 예의없이 이를 요구했습니다. 에너지 수송과 관련한 끝없는 협박과 저속한 가스 도난만 봐도 그렇습니다. 우크라이나는 러시아와의 대화를 서방과의 거래를 위한 구실로 이용했고, 우크라이나에 대한 러시아의 영향력이 커질 것이라며 러시아와의 관계를 가지고 서방을 협박했습니다.

우크라이나는 첫 단계부터 우리를 묶어주는 모든 것을 부정함으로써 국가를 세우기 시작했고, 우크라이나에 살고 있는 수백만명의 사람들, 모든 세대들의 인식과 역사적 기억을 왜곡하려고 했습니다. 우크라이나 사회가 극단적인 민족주의의 확산에 부딪치고, 그것이 급격하게 폭력적인 루소포비아와 네오나치즘의 형태를 띠게 된 것은 놀라운 일이 아닙니다. 비영리재단과 정보기관의 넓은 네트워크를 이용하여 우크라이나에 자신의 협력자를 늘리고 그 대표들을 권력층으로 진출시켜온 외부 세력들도 자신의 역할을 했습니다.

(중략)

하지만 러시아는 현대 우크라이나의 영토에서 기인하는 지속적 위협 속에서 스스로를 안전하다고 느끼고, 발전하고, 존재할 수 없습니다. 기억하시겠지만, 2000 ~ 2005년 러시아는 캅카스 테러리스트들에게 군사적 반격을 가하여 우리 국가의 완전성을 수호하고 러시아를 지켰습니다. 2014년에는 크림반도와 세바스토폴 주민들을 지원했습니다. 2015년에는 테러리스트들이 시리아에서 러시아로 침투하는 것을 확실히 막기 위해 군대를 투입했습니다. 우리 자신을 보호할 다른 방법이 우리에게는 없었습니다. 지금도 똑같은 일이 일어나고 있습니다. 우리가 사용해야만 하는 방법 외에 러시아와 우리 국민들을 지키기 위한 다른 어떤 방법도 남아있지 않습니다.

따라서 유엔 헌장 7장 51조에 의거하여 러시아 연방 의회 상원의 승인을 받아 올해 2월 22일 연방의회가 비준한 도네츠크 인민공화국 및 루간스크 인민공화국과의 우호 및 공조에 관한 조약 이행을 위해 러시아대통령이 특별 군사작전 수행을 결정했습니다.

특별 군사작전의 목표는 8년간 우크라이나 정권으로부터 학대와 학살을 겪어온 사람들을 보호하는 것입니다. 이를 위해 우리는 우크라이나의 비군사화와 비나치화를 달성하려고 합니다. 우크라이나 영토 점령은 우리의 계획에 포함되어 있지 않습니다. (중략) 이 특별군사작전 내에 러시아군은 우크라이나 민간인들과 투쟁을 벌이지 않고 민간시설을 공격하지 않습니다. 초정밀 무기를 사용하여 군사 시설만 공격합니다.

(중략)

거듭 말씀드리겠지만 러시아군대는 우크라이나 민족과 싸우는 것이 아닙니다. 러시아인5명 중 한명이 우크라이나에 친척을 두고 있습니다. 러시아와 우크라이나 국민들 사이에는 강한 친선 관계가 있습니다. 우리의 유일한 적은 범죄적 우크라이나 정권과 권력을 장악한 나치세력입니다.
2월 28일 안드레이 쿨릭 주한 러시아 대사의 기자회견 모두발언 중 일부.


[1] 전통적으로 러시아 사회에서는 상급자가 고의로 지각하여 하급자를 기다리게 하는 일이 권위를 과시하는 수단 중 하나였다. 그리고 러시아는 아직도 이 '일부러 지각해서 권위를 과시하는 문화'가 남아있는 국가이기도 하다. [2] 즉, 러시아는 '독립국 우크라이나' 자체를 부정하고, 대등한 독립국으로서 외교 관계를 갖고 교류할 의지 자체가 없었던 것이다. [3] 비슷하게 푸틴은 발트 3국 관련해서도 “역사적 거스름돈” 운운하며 비하했던 전적이 있다. [4] 완전한 동일선상에서의 비교는 곤란하지만, 한민족들이 고대 만주에 있었던 고조선, 부여, 고구려, 발해를 비록 현대에는 다른 나라 영토가 됐음에도 자신들의 뿌리 중 하나로 여기는 것과 얼추 비슷하다. [5] 이는 역사왜곡이기도 한데, 소러시아라는 명칭은 현대 '러시아'라는 국가로부터 비롯된 것이 아니라 러시아와 우크라이나의 공통조상 루스인들로부터 비롯된 것이기 때문. 자세한 것은 소러시아 문서 참조. [6] 그리고 이것이 우크라이나가 러시아에 학을 떼는 이유이기도 하다. 러시아가 우크라이나를 러시아의 변경으로 규정을 해버리니 러시아 말을 들으면 우크라이나는 영원히 러시아의 동생, 부하 내지는 2인자로 남을 수밖에 없는 처지다. 말로는 잘 대해주었으며 앞으로도 잘 대해주겠다고 공언하는데 실제로 대우가 좋았는지는 차치해도 언제나 러시아를 상위로, 우크라이나를 하위로 두는 이 관계를 언제까지고 좋아할 우크라이나인이 대체 얼마나 될 지... 어느 학자는 언뜻 보기에는 굉장히 가까워보여도 실은 누구보다 먼 양국간의 관계가 바로 러시아측의 일방적인 관계설정에서 비롯되었다고 보기도 한다. [7] 자세한 내용은 러시아계 라트비아인, 러시아계 에스토니아인 문서 등을 참조. 해당국 입장에서는 민족문화 보존 및 국가성 강화를 위해 일정부분 차별과 동화정책을 펼 수밖에 없었다고 주장한다. [8] 에스토니아와 라트비아 일대의 러시아인 대부분은 제2차 세계 대전 후 소련 당국에서 현지인 동화 및 독립가능성 말살을 목적삼아 정책적으로 이주시킨 주민들이었다. 애초에 이주민의 민족 구성이 어떻게 되었건간에, 보다 장기간 소련 시민으로 살아와서 소련 체제에 익숙하거나 친화적인 사람들을 2차대전 후에야 점령한 나라에 정책적으로 이주시킨 것, 그리고 이주민 대다수가 러시아인이었다는 것 자체가 독립 예방 및 민족 동화의 의도가 다분했음을 보여준다. 당장 에스토니아에 머무른 체첸인이라는 조하르 두다예프 공군 소장도 출신 민족을 충성심이 입증된 오세트인이라고 속여서 출세한 처지다. [9] 친러는 아니지만 대통령 볼로디미르 젤렌스키도 러시아어가 제1언어고 우크라이나어는 원어민 입장에서는 서툴다. [10] 노보로시야 도네츠크- 루간스크 [11] 트란스니스트리아, 남오세티야, 압하지야 [12] 폴란드, 체코는 헝가리 등과 함께 북대서양 조약 기구(NATO)에 동구권으로서 제일 먼저 가입을 했고 발트 3국과 슬로바키아가 그 뒤를 이었다. [13] 러시아가 현재 이웃한 나라들 가운데 러시아에 우호적인 감정을 가진 나라는 없다고 해도 무방하다. 그나마 최근 튀르키예가 러시아에 가까워지고 있기는 하지만 엄연한 NATO 소속인 데다가 둘 사이에서 줄타기를 하고 있기에 러시아의 우방이라 보기 어렵다. 솔직히 저 둘끼리도 워낙에 해묵은 감정이 있어서 마냥 친하게 지내는 것도 어렵고. [14] 출처: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 준비에 대한 독일 측 보도 [15] 실제로 전쟁을 일으켜서 애국심을 고취하는 방식으로 한몫 챙기려던 나라가 이전에도 또 있었는데, 그건 바로 포클랜드 전쟁을 일으켰던 아르헨티나였다. 그러나 전쟁에서 귀신같이 패하고 자국의 독재 정권마저 무너지게 되는 결과를 초래했다. 또한 나치 독일 역시 계속된 외교적 위기에서 서유럽 국가들이 계속 자신들의 요구에 굴복하자 이에 자신감을 가지고 제2차 세계 대전을 일으키고 말았다. 제2차 세계 대전 역시 독소전쟁 이전까지는 자신들이 계속 이기니 그에 대한 광기와 국민들의 지지도가 광신도 수준까지 치솟았다. 물론 결과적으는 독소전쟁 미국의 참전으로 독일도 결국 파멸하고 만다. [16] 실상은 친러 반군에 가담한 네오나치 세력도 적지 않았다. 자칭 도네츠크 인민 주지사 '파벨 구바레프'는 네오나치 성향의 '러시아 민족 연합'에 가입하여 군사훈련을 받았으며, 마찬가지로 돈바스에 병력을 파견한 '유라시아 청년 연합'은 러시아의 네오 파시스트 알렉산드르 두긴이 지도자인 파시스트 단체였다. [17] 우크라이나측은 이 진압작전을 '대테러 작전'이라고 불렀다. 대테러 작전은 2018년 2월 20일 명칭이 변경된다. # [18] 이 과정에서 우크라이나군에게 철수로를 보장했다가 공격하여 전멸시킨 일로바이스크 전투가 발발했다. [19] 2014년부터 이어진 이 전쟁의 실상이 '내전'이 아닌 이유다. 애초에 돈바스의 친러 반군은 말이 좋아 우크라이나 내 친러 반군 세력이지, 러시아가 훈련시키고 무장시키며 지도부도 러시아인인 그냥 '러시아군'이나 다름없는데, 한술 더 떠 러시아 본토에서 아주 대놓고 병력을 파견하여 우크라이나군과 전투를 벌였기 때문이다. [20] 4월 8일 영국 제인스는 우크라이나 국경으로 차출된 러시아 중부군구 소속 14개 부대를 식별했다. 동 기관에 따르면 2014년 크림 반도 점령 이래 가장 거대한 동원이다. # 10일 러시아 국영언론사 타스통신은 남부군구 소속 30개 BTG 1만 5천명이 크림반도와 돈바스 국경지대가 포함된 지역에서 군사훈련했다고 보도했다. # [21] 심지어 시베리아에서도 장비가 수송되었다. [22] 이 정책으로 돈바스 주민 72~80만 명(전전 인구의 18~20%)이 러시아 여권을 획득했다. [23] 특히 러시아가 돈바스 전쟁에 개입하고 있다는 것을 감안하면 단순히 주권 침해가 아니라 우크라이나 동부 병합을 위한 정책이기도 하다. 실제로 러시아는 우크라이나 동부를 완전히 병합했고 그것으로도 모자라 우크라이나 전역을 침략했다. [24] 우크라이나 내에서 크림 반도와 돈바스 수복은 모두 의견이 일치하는 사안이다. 정파별로 방법론의 차이는 있지만. [25] 미국의 20세기 대 공산진영 정책인 봉쇄정책의 설계자중 1인이다. [26] 공산주의 국가들의 군사적 팽창에 위협을 느낀 미국과 서유럽 국가들 간에는 이에 대응할 수 있는 군사동맹체의 필요성이 제기됐고 그 결과 1949년, 12개 나라가 북대서양 조약(NAT)에 서명하면서 NATO가 출범한 것이다. # [27] 유례가 없는 파격적인 NATO 가입인데, 존 R. 데니 교수는 조지아와 우크라이나는 NATO 동맹 74년의 역사상 조건 없이 NATO 최종 가입을 약속받은 둘뿐인 국가라고 지적했다. At a previous NATO summit—Bucharest in 2008—Ukraine and Georgia became the only two countries in the alliance’s 74-year history to be promised eventual membership, without conditions. # [28] 프랑스 독일 미국, 영국과는 달리 러시아에 대해 다소 온건한 시선을 갖고 있다. 물론 이것은 러시아가 좋아서가 아니라 이들 국가들이 러시아산 천연가스에 많은 의존을 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독일 재통일 협상 과정에서 소련의 협조를 얻기 위해 서방 협상가들이 어떠한 방식으로든 소련의 안보를 보장하겠다고 제안했음은 분명한 사실이고, 그 내용 중에 동독의 군대 배치 등의 사항은 아예 성문화되기도 하였다. 출처1 출처2 이 외에도 서유럽 국가들은 대체로 러시아를 자극할 경우 러시아의 호전성만 커질 것이라는 것을 경험적으로 체득하였다. 무엇보다 냉전 종식 이후 강력한 군사력을 자랑하는 미국이나 도버 해협을 두고 떨어져 강건너 불구경을 할 수 있는 영국과 달리 서유럽 국가들은 러시아와 육로로 이어진데다가 대대적인 군축을 단행하고 경제 및 복지에만 집중해 왔기 때문에 군사력이 이전보다 크게 약화된 터라 러시아와 대립하는 것이 결코 반갑지 않은 상황이다 보니 협상으로 러시아의 호전성을 누그러뜨리는 것이 매우 중요하다. 이 때문에 서유럽 국가들은 냉전 종식 이후 NATO, EU에 가입한 폴란드, 발트 3국 등 이른바 ' 친미 성향의 동유럽' 국가들이랑 미국, 영국과 적지 않은 의견 불일치 내지는 갈등을 겪고 있다. [29] 참고로 프랑스, 독일의 반대는 NATO 내부의 헝가리, 베네룩스 3국, 이탈리아의 지지를 얻었다. [30] 실제로 가입을 위한 절차에 착수하지는 않았으나 우크라이나의 NATO 가입 자체는 약속한 것이다. [31] 당시 조지아와 남오세티야 간의 평화유지군으로 주둔하던 러시아군이 조지아군에 의해 사망한 것도 이유 중에 하나이다. [32] NATO의 리비아 공습은 국제법상으로는 논란의 여지가 있지만 그나마 논의중인 국제사회의 보호책임 개념으로 접근한 것이라서 비판을 받지만 # 일단 비판도 나왔지만 리비아 개입 옹호도 상당히 나왔다. # 그러나 NATO 측의 NATO는 회원국들의 방어만을 위한 집단이라는 주장은 리비아가 NATO 회원국들을 위협하는 상황이 아닌 전적으로 리비아 내부의 내전임에도 NATO가 리비아 내전에 개입해 리비아를 공격한 것이기에 스스로 이를 어긴 것이다. [33] 1990년도 외무장관으로 한국에선 당시 김영삼 대통령 재임기였다. [34] 영국 파이낸셜 타임스의 특파원, 스카이뉴스의 외교 부분 에디터, BBC기자를 역임한 국제문제전문 저널리스트 [35] 조선일보의 경제 전문 온라인 매체인 조선비즈 기사 아베 “尹대통령 한일 협력 중요성 이해…관계 개선 기회 있어” 기사 부분에서 아베 신조가 “볼로디미르 젤렌스키 우크라이나 대통령이 북대서양조약기구(NATO·나토)에 가입하지 않는다고 약속하거나 동쪽 돈바스에 고도의 자치권을 보장했으면 전쟁을 피할 수 있었을 것”이라고 주장한 것의 인용 출처가 바로 이것이다. [36] 때문에 박용민 국립외교원 경력교수 #는 러시아를 비난하면서도 이 점을 지적하며 전쟁을 할 때와 안 할 때의 비용을 비교하면 압도적으로 전쟁 비용이 크지만, 지금 행동하는 비용과 러시아 우크라이나의 국경 인근 도시 우크라이나 하르키우에 NATO의 미사일이 배치되고 나서 행동할 비용을 비교한다면 셈법은 달라진다고 거론한다. [37] 세르게이 라브로프 러시아 외교장관은 "끓는 점에 도달했다"고 경고했고 우크라이나의 NATO 가입 포기를 서면으로 약속할 것을 요구했다. [38] 타국의 주권보다 자국민과 자국의 이익을 우선하는 미국 정부의 시각을 드러낸다. 이라크 총리가 주권침해라고 비판하고 유엔 조사관도 불법이라고 지적하자 미국은 반박하며 해외 미국인을 보호하기 위한 결정적 방어조치를 한 것임을 강변했다. #, # [39] 미국에서 이스라엘과 함께 구상한 중동평화계획에서 제시됐다. 중동평화계획에 의하면 팔레스타인은 국가를 수립하나 대신 팔레스타인이 독자적으로 운용하는 군대와 무장조직을 가질 수 없으며 이스라엘의 안보에 영향을 줄 수 있는 안보 및 정보 조약을 체결할 수 없도록 금지한다 # [40] 미국 대통령 버락 오바마가 제시했으며 버락 오바마는“새로운 팔레스타인 국가는 비무장이어야 하며, 9월 유엔총회에서 독립국가로 국제사회의 승인을 얻으려는 시도를 중지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 이스라엘의 네타나후 또한 팔레스타인이 비무장 국가 창설한다면 팔레스타인 국가 수립을 받아들일 여지가 있다고 주장했다. # [41] 러시아가 미국이 베네수엘라 정치에 외부개입을 하는 것에 비판하자 미국은 즉각 “이곳은 우리의 반구(半球, hemisphere)”라고 주장하면서 “러시아가 참견할 곳이 아니다”라며 러시아에게 빠지라고 반박했다. [42] CNN과 인터뷰에서 “트럼프 대통령은 많은 권위주의 정권과 가까운 유대를 맺고 있는데 마두로만 반대하는 이유가 뭐냐”는 지적에“베네수엘라는 우리의 반구에 있는 나라이기 때문”이라고 했다. # 즉 남미는 서반구에 속한, 미국의 영역이기에 미국의 뜻에 따라야 한다는 것이다. [43] 상황은 다르나 이 말로 러시아의 논리는 바로 논파당한다. [44] 물론 이는 미국도 다르진 않아서, 명분만 기다리고 있다가 뭔가 명분이 생겼다 싶으면 약소국들을 침공하며 소련의 패권 범위내였던 국가들의 패권을 뺏어서 자신의 것으로 삼아왔고(물론 그 대상국들이 모두 냉전기 친소련 노선을 타며 장기독재를 하다 타국을 침공해도 미국이 가만있을 것이라는 오판을 한 멍청이들이 통치하던 국가들 뿐이었고, 그중 걸프전의 경우엔 이라크가 쿠웨이트를 침공했다가 미국의 정면 침공이라는 반격을 받은 특이케이스이기도 하다), 이처럼 이전 냉전의 잔재들이 러시아 뿐만이 아닌 양 사이드 전부에서 없어지지 않고 계속되다가 다시금 냉전을 일으킨 상황에서, 이전 냉전시기 적폐의 잔재라는 이유로 지난일 취급, 혹은 이전 냉전때 이후로 남아있을 리가 없는 것 취급하는 것은 바람직하지 못하며, 앞으로는 두 냉전의 잔재들이 더는 남지 않도록 철저하게 준비하여 이번 냉전이 끝나는 대로 바로 잔재 척결사업에 착수할 수 있도록 유도하는 것이야말로 바람직한 자세다. [45] 다만 당시 독일은 통일 이후와는 달리 제2차 세계대전 패전의 여파로 외교적 자결권이 반쯤 제거된 상태였다는 점은 감안해야 한다. 당장 베를린은 통일 시점까지 동서독의 영토가 아닌 연합군 점령지역이었기 때문이다. 이 때문에 독일이 통일하기 위해서는 동서독의 합의뿐만 아니라 미국, 영국, 프랑스, 소련의 동의를 받아야만 했다. 그래서 2+4회담이 개최되어 독일 통일 문제에 대한 최종 해결 조약인 2+4조약이 명문화된 것이었다. 즉 독일의 통일은 단순히 동독+서독의 통일이 아닌 동독+서독+미·영·프 치하의 서베를린+소련 치하의 동베를린의 통일이었던 것이다. 따라서 소련의 독일 통일 반대 시도를 마냥 독일의 주권을 침해한 것으로 해석하는 것은 다소 무리가 있을 수 있다. [46] 심지어 폴란드, 체코, 헝가리는 WTO 회원국, 발트 3국 같은 경우는 아예 대놓고 소련의 일부였음에도 소련이 붕괴되면서 제일 먼저 앞다투어 NATO에 가입한 동구권 국가들이었다. [47] 남오세티야 전쟁 문서의 배경 문단 말미를 참고. [48] In implementing the provisions in this Act, NATO and Russia will observe in good faith their obligations under international law and international instruments. [49] Provisions of this Act do not provide NATO or Russia, in any way, with a right of veto over the actions of the other nor do they infringe upon or restrict the rights of NATO or Russia to independent decision-making and action. [해설] 그러니까 러시아 제국 소련 시절 러시아의 일부로서 자주권이 없는 우크라이나의 상태로 돌아가자는 뜻이다. 한마디로 침략당하기 싫으면 알아서 나라를 러시아에 바치라는 소리고, 대러 제재를 주도하는 미국과 영국, 동유럽 국가들에게 우크라이나는 러시아의 일부니까 간섭하지 말라고 선언한 것이다. [51] 하지만 결국 반박이라 볼 수 없는 그냥 조롱에 불과한 면도 있다. 애초에 러시아의 역사는 모스크바에서 시작된게 아니라 벨리키 노브고로드와 키예프에서 시작된 것이기 때문이다. 한양 평양보다 더 나중에 지어진 도시라고 대한민국의 역사가 북한보다 짧은 게 아닌 것과 같다. [52] 문서를 보면 알겠지만 조선인은 일제강점기 때부터 노예 생활을 했으니 계속 노예로 살아도 좋다는 소련군 대령의 발언에서 짐작할 수 있듯 당시의 한반도는 살만한 곳이 못 되었다. 저 때의 비극이 희화화되기도 하였지만 당사자는 있는 것은 공포, 불안, 분개, 낙심 뿐이었다고 언급한다. [53] 러시아의 미국, 서유럽을 탓하는 논리와 행보는 민족 개념 대신 이념의 논리가 뒷받침되는 것을 빼면 6.25 전쟁 때의 항미원조를 외치던 중국의 행보와 유사한데, 한국에는 70여 년이 넘은 지금도 그로 인한 후유증이 남아 있는 형국이다. 심지어는 중화 패권주의의 그 중국조차도 마오쩌둥이 한국전쟁의 전황이 생각보다 잘 풀리자 잠깐이나마 한반도에 자기들 입맛에 맞는 허수아비 정권을 새로 내세울 생각을 하거나 시진핑이 미중정상회담에서 도널드 트럼프 전 미국 대통령에게 한반도 중국의 일부라고 비밀리에 말한 적은 있으나, 이렇게 공개석상에서, 그것도 국민들 다 보는 앞에서 국가원수가 직접 대놓고 국가적 주권을 무시하는 발언을 한 사례는 없다. [54] 2019년 발효된 개정 헌법에 따라 EU NATO 가입을 추구한다는 내용이 헌법 전문과 3개 조항에 담겨있다. [55] 협박 자체는 안먹혔다. [“카프카스] 지역의 학적체계와 담론:역사, 문화, 그리고 지정학 중 [57] 지원 자체는 미국이 가장 많지만 현재 미국이 도와주는 정도로는 우크라이나가 러시아를 상대로 결정적인 승기를 잡기는 어렵다. 우크라이나에서 미국의 도움에 고맙다면서도 지원을 더 크게 늘려달라고 몇개월째 계속 독촉하는 것이 이것 때문이다. [58] 당연한게 러시아는 소련만큼의 국력을 보유하지도 않았으며, NATO는 소련시절보다 훨씬 더 강력해진 상태이다. 결정적으로 NATO는 냉전 종식이후로도 계속해서 러시아를 견제하고 끊임없이 압박을 가해왔다. [59] 당장 이 항목에 상술된 문항들만 읽어봐도 러시아가 우크라이나를 침공할 구실은 많다. 여기에 우크라이나가 서방측에 합류해 서방이 우크라이나에 군사기지를 건설하여 러시아를 건재하는 상황이 되는 것은 진짜로 러시아로서는 생각할 수도, 용납할 수도 없는 처사이다. [60] 그래서 서방에서 우크라이나 침공이 2022년의 전쟁이 아닌 2014년 돈바스 전쟁을 가리킨다. [61] 더구나 러시아에게 우크라이나가 넘어간다면 발트 3국등 다른 러시아 인접국들도 러시아의 위협에 더욱 취약해진다. [62] 이스라엘은 물론이거니와 현재 우크라이나의 최우방 국가인 폴란드조차도 우크라이나 대사의 해당 발언에 그냥 넘어가지 않고 분노한 것이라서 우크라이나로서도 어쩔 수가 없었다. [63] 블라디미르 푸틴( 주한러시아대사관 譯). (2022). 러시아 연방 대통령 말씀, 2022년 2월 24일( #) [64] 블라디미르 푸틴(주한러시아대사관 譯). (2023).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 국정 연설 요약문( #) [65] 우크라이나는 주(область)의 하위 행정구역으로 군(Район)을 둔다. 2020년 행정구역 대개편의 결과 군의 개수가 490개에서 136개로 줄었다. [66] 읍은 селищна громада를 한국 실정을 고려하여 번역한 것이다. 우크라이나의 행정구역 흐로마다(громада)는 우크라이나 지방자치의 기본단위로 영어의 municipality, 한국의 구(區)~읍(邑)/면(面)/동(洞)과 유사하다. 원 의미는 '공동체(community)'. 흐로마다의 하위 행정구역은 스타로스틴스키 오크루흐(Старостинський округ)로 이는 한국의 리(里)와 유사하다. [67] 면은 сільська громада를 한국 실정을 고려하여 번역한 것이다. [68] 22개 주의회(Обласна рада) 및 키이우 시의회(Київська міська рада)를 가리킨다. 22개 주의회 및 키이우 시의회라고만 부르면 번거롭고 가독성을 방해하므로 본문단은 한국의 실정을 감안해 광역의회로 간단히 언급한다. 키이우 시의회 선거 결과를 주의회 선거 결과와 묶는 이유는, 키이우시 키이우주에 속하지 않고 다른 주와 동급인 특별시(Міста зі спеціальним статусом, City with special status)에 해당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보통 지선 결과를 언급할 때는 22개 주의회 선거와 키이우 시의회의 선거 결과를 함께 묶어서 계산하는(1,660+120=1,780) 편이다. [69] 스보보다의 의석은 동맹인 심치신 팀(Команда Симчишина)이 흐멜니츠키주에서 획득한 의석수 13석을 합한 것임. [70] 인민의 종 6,479석, 바트키우시치나 4,486석, 야권연단 4,259석, 미래를 위하여 4,135석, 유럽연대 3,946석 [71] 우크라이나 최고 라다 웹사이트. 2020년 지방의회에 진출한 각 정당별 지방의회 의석수( #) [72] 우크라이나 최고 라다 웹사이트. 2015년 지방의회에 진출한 각 정당별 지방의회 의석수( #) [73] 우크라이나 최고 라다 웹사이트. 2020년 지방의회에 진출한 각 정당별 지방의회 의석수( #) [74] 우크라이나 최고 라다 웹사이트. 2020년 지방선거에 지자체장을 배출한 각 정당별 지자체장 수( #) [75] 이건 정말로 심각한 문제인데, 결국 러시아는 자기 마음대로 나치화를 정의하여 이 전쟁과 똑같은 침공을 할 수 있다는 것이다. [76] 역대 드니프로 강 일대를 중심으로 삼았던 부족들이나 국가들은 국력이 강성할 때는 초르노젬, 그리고 흑해와 연계된 드니프로 강의 수운 덕분에 이런저런 덕을 봤지만 다른 한편으로 국가가 기울 때는 급속도로 무너져내리는 특성이 있었다. 흑해 방향으로 진출했다가 훈족의 공격으로 무너졌던 고트족, 몽골 제국의 침략으로 무너진 키예프 공국, 크림 칸국의 공격으로 흔들린 리투아니아 대공국 등이 그 예시이다. [77] 쿠치마는 나라를 안정시킨 공로로 그래도 국내에 남을 수 있었지만 야누코비치는 러시아가 우크라이나를 멸망시키지 않는 한 귀국은 꿈도 못 꾸게 되었다. [78] 2000년 가을 쿠치마 정권의 부패문제를 조사하던 기자 헤오르히 곤가제(Георгій Ґонґадзе)가 납치되어 목없는 시체로 발견된 사건이다. 당시 비밀리에 녹취된 카세트에 곤가제 제거를 명령하는 쿠치마의 음성이 발견되어 큰 논란이 있었다. [79] 물론 이유가 이거 하나뿐만은 아니다. 정적인 빅토르 유셴코 암살 시도, 부정부패 등 쿠치마는 국민들로부터 꾸준히 비호감 스탯을 쌓고 있었고(...) 그 분노가 2004년 말 시위로 크게 폭발한 것이니까. [80] 밀농사와 중공업로 유명한 우크라이나지만, 러시아가 유럽연합에게 공급하는 천연가스의 통관료도 주요 수입원 중 하나이다. 우크라이나는 통관료를 올리라고, 러시아는 낮추라고 서로를 압박했다. 2008년 말 유럽 전역을 강타했던 천연가스 동결 사태의 원인은 우크라이나와 러시아의 천연가스 공급 관련 분쟁이었다. [81] 2013년 우크라이나 GDP가 1,900억 달러였다. [82] 다만 2019년 헌법 개정을 통해서 “우크라이나 민족의 유럽정체성과 우크라이나의 대 유럽, 대 유로/대서양 통합정책의 불가역성 확인” 및 “우크라이나의 EU 및 NATO 정회원국 지위 획득 전략 이행”을 헌법 전문에 명시하였다. # 법률적으로 우크라이나 중앙정부 차원에서 친서방적인 정책을 실시해야한다고 못박아놓은 것이다. [83] 당장 터키와 아제르바이잔을 이어주는 BTK 파이프라인에 대해 아르메니아가 견제하자 유대계 미국인들이 반발한 적이 있다. [84] 혹은 러시아 [85] 노르웨이도 러시아와 국경을 공유하지만 러시아와의 국경 지역은 인구 희박 지역에 해당돼서 핀란드와 사정이 다르다. [86] 스웨덴, 노르웨이, 덴마크, 아이슬란드. [87] 아제르바이잔에게 터키는 최대 동맹이며 캐나다 입장에서의 미국, 영국, 프랑스와 비슷하다. [88] 터키의 에르도안 대통령이 말로만 이스라엘을 비판하는 척 하는 이유도 이와 동일하다. 아제르바이잔이 아르메니아와 전쟁을 벌여야 한다면 누군가는 아제르바이잔을 도와야 할 텐데 그 역할을 해야 할 나라가 바로 이스라엘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이스라엘 입장에서 터키는 수자원 곡물 등 식량을 공급하는 국가라 이스라엘도 터키와의 관계가 악화되면 불리하다. [89] 이스라엘이 아제르바이잔 편을 들고 석유를 구입하고 아르메니아인 대학살에 대해 노코멘트로 일관하는 대신 아제르바이잔은 이스라엘의 군수 물자를 구입한다. [90] 하지만 미국은 당시 야권인 민주당을 중심으로 아르메니아를 지지하라는 성토가 있었고 대부분 서방 국가들은 아르메니아를 지지하거나 최소한 아르메니아에 동정적이었다. 아제르바이잔을 지지하거나 우호적 중립을 지킨 서방 국가들은 당사자인 터키, 한국, 알바니아, 헝가리, 싱가포르, 이스라엘, 우크라이나에 그쳤다. [91] 친서방파의 영수인 율리야 티모셴코를 감옥에 넣어버렸다. [92] 2013년 부패지수​(PCI)에서 조사대상국 177개국 중 144위를 기록했다. [93] 예를 들어 유럽연합과의 협력 협정을 의도적으로 파토내버렸다. 전술했듯이 야누코비치는 에너지 가격 상승 및 러시아와의 교역 중단으로 입을 손해 1600억 달러를 보전해달라고 요구하여 협상을 파토냈는데, 정작 러시아가 제시한 150억 달러 차관 지원 및 가스요금 인하는 좋다고 받아들였다. # # # [94] 이 혁명을 자유당이나 프라비 섹토르 같은 과격 극우민족파가 주도하여 평화적 시위를 폭력사태로 변질시켰다는 주장이 있으나 #, 실제 시위를 주도한 것은 정치성향을 불문한 우크라이나의 모든 반(反) 야누코비치 정당과 우크라이나 민중이었다. 당장 존엄 혁명(Revolution of Dignity)의 영어 위키백과 항목 #을 봐도 좌우익 성향의 정당은 물론이고 소수민족, 페미니즘 정당, 심지어 소련-아프가니스탄 전쟁 참전자들까지 참여했음을 알 수 있다. 또한 폭력행위는 2013년 11월 30일 베르쿠트가 시위대를 공격, 79명 이상의 부상자를 내면서 먼저 저질렀고 이것이 우크라이나 전국에 생중계되었다. # # # 시위가 잠시 잠잠해지자 이듬해 1월 16일 야누코비치는 다시 반민주적인 법안인 반시위법(Anti-protest laws)을 제정했는데, 이 법안은 시위를 소급 적용하여 아예 범죄로 규정하고 무력 사용을 합법화하면서, 막연하게 규정된 '극단주의'를 금지하고 표현과 집회의 자유를 제한하는, 딱 보기에도 제정신이 아닌 법안이었다. 이것이 우크라이나인이 다시 격렬한 시위를 일으키는 배경이 된다. 1월 22일에는 시위자 2명이 사살되고 2월 18일 끝내 경찰이 집단발포하여 시위 참가자 23명을 살해하면서(경찰 사망자 1명 제외) 시위는 무장투쟁이 포함된 혁명으로 발전했다. 즉 상상을 초월하는 당국의 폭력에 시위가 자연스레 혁명으로 발전한 것이지, 극우파는 시위의 주도자가 아니었을뿐만 아니라 애초에 주도 세력이 될 수도 없었다. [95] 모스크바와 러시아 최대 도시인 상트페테르부르크는 모두 평야지역이라 장애물이 없고 서방 진영의 전력이 가까이 있다. [96] 예를 들어 한국 같은 경우 한반도 동쪽은 산악지역이라 사실상 진군이 불가능한 수준이고 또, 수도 서울은 사방팔방이 산으로 둘러싸여 있어서 북한에서 장사정포를 쏜다고 해도 고각도로 발사해야 해서(낮은 각도로는 쏴봤자 산에 전부 걸리므로) 사정거리 면에서 꽤나 손해를 볼 수밖에 없다. 그 외에도 서울은 상술했다시피 산에 둘러싸여 있기 때문에 공격하기에는 매우 불리하고 반대로 수비에는 매우 유리한 지형이다. 여기에 박정희 정권 당시, 6.25 전쟁의 쓰라린 경험을 교훈 삼아 도시 일부를 요새화 하는 등의 노력도 기울였다. [97] 공식 번역본은 지리의 힘으로 나왔지만 원제는 Prisoners of Geography이다. [98] 참 러시아 입장으로서도 얄궂은 게 그 혹독한 시베리아와 험지는 별 의미도 없는 동쪽에 위치해 있다. 여기에 바다로 나갈 수 있는 길은 흑해, 북해인데 여기는 각각 튀르키예와 스웨덴과 핀란드, 특히 덴마크가 그 길을 가로막고 있다. 즉 영해라고 할 만한 곳이 아니란 얘기. [99] 꽃놀이패는 한쪽은 이겨도 져도 그만이지만 다른 쪽은 반드시 이겨야 하는, 일방적인 형세를 가리키는 바둑 용어이다. [100] 같은 '정교회' 문화권이라고 보기에는 어폐가 있다. 비록 동로마 제국을 통해 키예프 루스가 정교회를 받아들였다고는 하나 정교회의 영향력은 제한적이었고, 실제로는 슬라브 신화 등의 이교 문화가 여전히 활발하게 유지되고 있었다. 심지어 루스계 종족만 분포했던것도 아니다. 오늘날 러시아 서부 지역의 비슬라브계 토착민은 게르만계의 바이킹과 우랄어족에 속하는 핀계 민족이 있었고, 심지어 몽골이 침략하여 쓸어버리기 전까지는 현지 튀르크 제민족의 영향력도 만만치 않았다. 역사서에 등장하는 네임드 부족인 쿠만 페체네그가 오늘날 러시아 서부에서 활동했고 불가르도 러시아와 우크라이나를 경유해서 발칸반도로 이주했다. 반면에 후대에 등장한 모스크바 공국은 기독교 신앙이 사회에 더욱 깊숙히 침투하여 진정으로 기독교 국가라고 할만했다. [101] 특히 고대 동슬라브어의 모음체계가 점진적으로 변모하여 근대 우크라이나어에서 관찰할 수 있는 특징 또는 그 특징의 전조가 이 시기에 생겨났다. 고대 동슬라브어의 중모음 'e'와 'o'는 뒤에 자음 또는 약한 yer 모음이 올 경우 장음화 및 고모음화 현상이 일어나게 되었다(약한 yer 모음은 훗날 우크라이나어에서 완전히 사라짐). 예를 들어 '고양이'를 뜻하는 고대 동슬라브어 котъ/kɔtə/는 우크라이나어 кіт/kʰitʰ/로, '화덕'을 뜻하는 고대 동슬라브어 печь/pʲɛtʃʲə/는 піч/pʰitʃʰ/로 변했다. # 13세기에는 고대 동슬라브어 자음 г의 발음이 /g/에서 /ɣ/로 바뀐 것으로 추정되고, /ɣ/는 근대 우크라이나어의 /ɦ/로 다시 바뀌었다. 13/14세기에는 고대 동슬라브어 모음 и/i/와 ы/ɨ/가 и로 합쳐졌다(/ɪ/와 /e/ 사이의 변이음으로 실현됨). [102] 물론 이것은 어디까지나 흐루셰우스키 자신의 주장일 뿐이다. 당장 고대 고조선의 중심지가 평양 일대라는 이유만으로 한국은 후계자가 아니라는 것과 비슷한 논리다. 흐루셰우스키는 민족 역사서를 저술하고 우크라이나 인민 공화국 건국을 주도한 업적으로 우크라이나의 국부로 추앙받지만, 이 사실과는 별개로 역사학자로서는 강력히 비판받고 있다. 프랑스 혁명에 대한 쥘 미슐레의 해석이 오늘날 많은 비판을 받고 수정되었듯이, 흐루셰우스키가 존경받는 역사학자란 것과 별개로 이것은 당연한 것이다. 애초에 1세기 전 사람이다. [103] 르비우를 중심으로 한 갈리치아의 3주( 르비우주, 테르노필주, 이바노프란키우스크주) 및 자카르파탸주, 체르니우치주의 서남부 5주. [104] 양승함, "러시아의 정체성 논쟁과 러시아 연방의 장래", 한국정치학회보 제26집 제2호, 한국정치학회, 1993, pp.304~307 [105] 이는 2021년 7월 12일 푸틴이 작성한 논술 On the Historical Unity of Russians and Ukrainians에서 극명히 드러난다. 이 논술에서 푸틴은 러시아와 우크라이나, 벨라루스 모두 동슬라브족에 속하는 공통적인 민족이라고 주장하면서 우크라이나라는 독립적인 국가의 존재 자체를 부정한다. [106] 다만 러시아라도 세대에 따라서 이런 동질성을 어떻게 받아들이는지가 다르다. 기성세대는 무력을 사용해서라도 우크라이나를 러시아에 귀속시켜야 된다고 여기지만, 젊은 세대는 왜 형제국을 침략하냐고 크게 반발하는 중이다. 실제로 2022년 우크라이나-러시아 전쟁이 발발하자 러시아 곳곳에서 젊은 세대가 중심이 되어서 반전시위를 벌이기 시작했다. 그러나 현재는 러시아 정부의 압도적인 무력에 밀려 흔적조차 찾아보기 힘든 실정이다. [107] 그 좁은 출구도 NATO 회원국인 튀르키예가 장악하고 있다. [108] 핵전쟁, 세계대전 [109] 예를 들어 도네츠크 인민공화국 지도자 알렉산드르 자하르첸코는 "더 이상 휴전협상을 하지 않을 것"이며, 그의 병력이 "도네츠크 주(region)의 경계선까지 공격할 것"이라고 주장했다. # [110] 즉 러시아는 본 협정에 구속되지 않은채 반군 지원은 물론이고 자국군 파병도 제마음대로 할 수 있었다. [111] 일단 서울의 경우 비록 휴전선과 가깝다고는 하지만 그 중간에 방어선을 칠 곳도 꽤나 많으며 특히 서울 그 자체가 요새로써 기능에 매우 충실하다. 만약 북한에서 장사정포를 쏜다고 해도 거의 대부분이 서울을 둘러싼 산에 막힐 거라는 말이 나올 정도. 거기다 한반도 동북부는 산맥이 척추처럼 늘어져 있어서 특히 차량으로는 강원도를 돌파하거나 우회하기가 쉽지 않다. 거기다 한강까지 있으므로 설령 서울 북쪽을 포기하는 일이 벌어지더라도 한강을 사이에 두고 남쪽에 방어진을 쌓는다면 시가전이 된다는 점도 있어서 통과하기가 결코 쉽지 않다. 반면 프랑스 파리부터 모스크바까지 이런 지형적인 방어물이 사실상 없다시피하다. [112] 서울의 경우 일단 제 1 적성세력인 북한의 체급을 넘는 여러 동맹국의 지원이 빠른 시간 내에 올 수밖에 없는 지정학적 조건을 가지고 있다. 하지만 모스크바는 있지도 않는 외계인이 도와주지 않는 이상 그냥 모스크바로 쏟아지는 서방세계 전체의 공격을 러시아 체급과 자신보다 군사적으로 저열한 코맹맹이 동맹국만으로 버텨야 한다. [113] 이것을 상징하는 말이 프랑스 비례억지전략 영국의 모스크바 기준이다. [114] 비단 한국뿐 아니라 일본 해상자위대, 항공자위대의 전력이 강화될 때도 중국은 히스테리적 반응을 나타냈으며 미 해군 제7함대 서해에 올 때도 같은 모습을 보였다. [115] 만약 한반도가 남한 주도 아래 자유민주 통일화가 된다면 당장 신의주는 지정학적으로 매우 중요한 한반도 최북단 지역이 된다. 베이징과의 거리가 얼마 안되기 때문. [116] 중국의 공포는 결국 한국이 사정거리 1,500km에 달하는 현무 III 순항 미사일(현무 III-C)을 개발, 배치하면서 현실화하였다. [117] 반대로 한국 역시 중국군이 한반도로 쳐들어오면 현무 미사일을 있는 대로 날려서 설령 한국이 박살나는 한이 있더라도 중국도 베이징과 상하이 등 연안 도시들과 산샤댐 같은 국가중요시설들을 같이 박살내겠다는, 이른바 고슴도치전략을 수립하고 있다. [118] 다만 이는 공격자의 입장에서도 매우 까다로운 지형이 되는데 전차와 같은 기갑차량이 그대로 노출되는 최악의 상황이 되기 때문이다. 실제로 우크라이나가 개전 초기, 이러한 지형 조건을 이용해 러시아의 기갑부대를 격파시켰다. [119] 당시 소련은 튀르키예에 IRBM을 배치한 미국의 결정에 대응해 쿠바에 미사일 기지를 세웠는데, 튀르키예보다 더 가까운 우크라이나가 적성 세력으로 넘어가는 것은 절대 묵과할 수가 없다. [120] "그냥 현실을 인정하고 서방과 우크라이나와 적당히 타협하면 안될까?" 싶지만 이 경우 실로비키 파벌은 20년간 유지해온 러시아 헤게모니의 재붕괴, 지금껏 소련에 대한 향수로 유지해온 지지층의 와해, 완전히 박살나버린 러시아 국민들의 자존심 등이 종합되면서 즉각 정권을 강제 포기해야 할 정도의 심각한 정치적 피해를 입게 된다. [121] 적백내전 당시 브랑겔과 데니킨의 백군이 캅카스에서 치고 올라오며 우크라이나를 장악하고 파죽지세로 모스크바의 60여 km 남쪽까지 진격한 적이 있다. 이처럼 우크라이나를 가지고 있지 않다면 모스크바는 전시에 위험해진다. [122] 소련 붕괴로 인해 러시아 주변의 SSR로 이주한 이들 러시아인의 처지는 크게 악화되었다. 에스토니아와 라트비아는 러시아인에 대한 동화정책을 추진했고 자국어를 못하는 러시아인은 무국적자로 간주했다. 중앙아시아(카자흐스탄 제외)와 캅카스 3국, 몰도바의 러시아인은 경제붕괴와 민족분규로 거주지가 헬게이트가 되자 살기 위해서라도 러시아로 피신했다. 우크라이나와 벨라루스는 그래도 같은 루스계 국가라고 대부분의 러시아인이 남았지만 우크라이나마저 2014년 돈바스 전쟁 발발로 러시아계가 집중 거주하는 돈바스에 헬게이트가 열려 수십만 명이 러시아로 피난한 상황이다. [123] 다만 열강들이 강제로 핵을 포기시켰다는 식의 주장은 사실과 약간 거리가 있다. 부다페스트 안전 보장 각서 문서의 핵을 포기한 이유 참조. [124] 1989년 기준 1200만여 명, 2001년 통계 기준으로 8,334,100명인데, # 현재 새로 통계가 나오고 있지는 않지만, 크림반도 도네츠크, 루간스크 문제 등으로 과거에 비하면 대폭 감소했음이 분명한 현재도 상당수가 남아있다. [125] 러시아 제국과 소련 시절의 통혼 혼혈의 영향으로 러시아인들 중 우크라이나인 친척이 없는 사람이나, 우크라이나인 중 러시아인 친척이 없는 경우가 오히려 더 드문 편이기도 하다. [126] 2021년 12월 3일 레바논 언론지에서 나온 만평이다. [127] 2018년 파키스탄에 대한 원조금 총 8억 달러 삭감, 중단했던 우크라이나 군사비 원조 재개 2억 5천만 달러 책정 [128] 아이언돔 문서를 참고하면 아시다시피 실질적으로는 이보다도 더 많은 액수로 볼 수 있다. [129] 이는 터키, 이란과의 우호관계도 마찬가지다. 세르비아도 있지만 북한 문제에 대해서는 중국과 정반대 노선이라는 점이 차이다. [130] 2014년 말 유가 폭락으로 인해 공통적으로 진행되었던 러시아, 우크라이나, 벨라루스 3국의 경제 악화, 중앙아시아 3개국 경제의 악화 [131] 국내에는 이 탈나치화가 무슨 의미인지 여러 해석이 분분한데, 실제로 우크라이나 정부 내에는 과거 프라비 섹토르나 아조프 연대 같은 네오나치 집단이 존재한다. 프라비 섹토르는 덩치가 커지자 통제 불능으로 날뛰다가 숙청되었지만, 아조프 대대는 여전히 존재하며 아예 우크라 내무부 휘하 정식 특수부대가 된 상태다. 가장 유명한 아조프 대대 외에도 여러 네오나치 의용군도 받아들여야 하는 게 지금 우크라이나 국가 상황을 여실히 보여준다. [132] 그 폐급 바보 대통령이라고 욕을 먹는 조지 W. 부시도 알바니아와 코소보에서는 동상이 세워질 정도로 존중받는 위인이며, 다른 한편으로 한국에서 평판이 좋은 버락 오바마는 남미에서 멀쩡하게 잘 굴러가던 브라질 경제를 별 다른 잘못도 없는데 괜히 박살내버린 악마로 재평가받는 상황이다. [133] 한국도 마찬가지지만 일본에 있어서도, 특히 대만 역시 미국의 존재감은 중요하다. [134] 한국은 러시아와 중국의 태평양 진출을 견제하기 위해서 반드시 필요한 지정학적 위치에 있는 것은 물론, 만일 한반도에서 자유민주주의적 통일이 일어나면 역으로 러시아와 중국을 견제하는 교두보가 되는데다 이북 지역, 예를 들어 원산이나, 특히 나선특별시와 신의주 같은, 미국이 상당히 관심을 둘 지역이 많다. 특히 나선과 신의주는 각각 러시아와 중국을 견제하기에 천혜의 입지에 위치한 요충지이다. 즉 미국의 안보 목적을 위해서도 지정학적 가치가 높다. [135] 여기에 한국은 전세계적으로도 알아주는 공업국인 데다 미국에게 있어서도 무시 못할 교역국이기도 하다. 반도체와 자동차와 같은 공업력을 가지고 있는 데다 미국 제품의 시장으로서도 상당한 위력을 갖고 있다. 정서적으로도, 반미성향을 갖는 계층도 일부 있기는 하나 대부분이 한미관계의 중요성을 인식하고 있는데다 반미성향이 있던 일부 운동권 출신들 역시 한미관계의 필요성은 부인하지 않고 있기에 동맹국으로서의 위치도 중요하다. [136] 동쪽으로는 평야 지대로 뚫려 연결되어 있지만, 서쪽으로는 카르파티아 산맥 등으로 교통이 불편하다. [137] 이는 대만에 대해서도 비슷하게 나타난다. 미국은 대만을 겉으로는 국가라고 말하고 다니지만 실제로는 대만과 수교를 재개하려고 하지 않으며 오히려 대만의 독립을 지지하지 않는다고 말한다거나 하나의 중국 원칙을 폐기하는데에 소극적인 면모를 보인다. [138] 러시아는 미국보다 더 많은 핵무기를 가지고 있으며 이는 러시아의 군사력이 아무리 미국보다 낮더리도 무시할 수 없다. [139] 더욱이 이번 2022년 중간선거를 통해 근소하나마 하원을 차지한 공화당은 새 회기 때 우크라이나 지원을 축소하고 국내 경제 회생에 전력하겠다고 공언한 바 있다. [140] 애시당초 러시아와 바로 이웃 나라인데 미국과 동맹을 맺었다간 러시아가 가만있지 않는다. [141] NATO 가입은 현 NATO 회원국 만장일치여야 승인이 된다. 당장 이번 우크라이나 전쟁으로 위협을 느낀 핀란드와 스웨덴이 중립국 입장을 철회하고 NATO에 가입하려 했을 때 튀르키예가 반대해서 (스웨덴의 쿠르드 지원을 빌미로) 지체된 일이 있다. [142] 영토 분쟁으로 자동개입 조항 적용의 문제가 있다. [143] 클린턴, ‘우크라이나에 핵 포기 설득’ 후회 kbs [144] 클린턴 전 美대통령이 상기한 '우크라 핵포기비핵화례와 북한 연합뉴스 [145] 클린턴 “우크라 핵무기 남겼더라면···” 과거 ‘핵포기 설득’ 후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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