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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수정 시각 : 2024-11-18 23:11:26

상트페테르부르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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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2. 명칭3. 역사
3.1. 과거3.2. 도시 건설과 수도 이전3.3. 소련 시기와 현대
4. 지리5. 기후6. 인구와 주거7. 교육8. 교통
8.1. 철도8.2. 시내 교통8.3. 항공8.4. 타 지역 이동
9. 치안10. 마트
10.1. 고급 마트10.2. 대형마트
11. 관광 명소12. 정치13. 스포츠14. 예술15. 여담16. 출신 인물17. 대중매체에서18. 관련 문서19. 둘러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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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러시아 북서 연방관구에 속하는 연방시.[2] 러시아 제국의 수도였으며 현 러시아에서도 모스크바에 이은 제2의 도시이다. 구 제국 열강 시기의 유산으로 오늘날까지도 러시아를 대표하는 관광도시로 유명하다.[3]

2. 명칭

언어별 명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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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iki style="margin: -6px -1px -11px"
러시아어 Санкт-Петербу́рг(산크트페테르부르크)
핀란드어 Pietari(피에타리)
에스토니아어 Peterburi(페테르부리)
영어 Saint Petersburg( 세인트피터즈버그)[4] }}}}}}

소련 시기에 쓰이던 레닌그라드(Ленинград, Leningrad)라는 명칭으로도 잘 알려져있다.

상트페테르부르크라는 이름은 베드로의 도시라는 의미이다. '베드로'의 다른 표기가 피터(영어)· 페터(독일어)· 표트르(러시아어)인 걸 생각해 보면, 사실상 이 새로운 수도에 표트르 1세 본인의 이름을 붙인 셈이다.[5] 스웨덴어 상크트(sankt)[6] 독일어 페터스부르크(Petersburg)가 합쳐진 조어이다. 러시아어로 이름을 짓는다면 스뱌토페트로그라드(Свято‑Петроград)[7]로 쓸 수도 있는데, 수도의 이름을 자국어가 아닌 외국어로 붙였다는 점에서 표트르 대제가 얼마나 서유럽을 동경했고, 러시아를 이와 같이 개혁하고 싶어했는 지 드러냈다고 볼 수 있다.[8] 강세에 따른 발음은 [ˌsankt pʲɪtʲɪrˈburk\]에 가까우며[9] 문화어 표기도 이와 유사한 싼크뜨 - 뻬쩨르부르그다.

1914년 제1차 세계 대전이 발발하자 독일 제국에 대한 반감으로 독일어식 명칭이었던 상트페테르부르크는 페트로그라드(' 베드로의 도시')로 개칭되었다.[10] 다만 이 명칭은 그렇게 오래 쓰이지 않았고, 불과 10년 뒤인 1924년 소련 국부 블라디미르 레닌이 사망하자 페트로그라드는 그의 이름을 따 레닌그라드('레닌의 도시')로 개칭되었다.[11] 나치 독일 레닌그라드 공방전에서 승리하여 레닌그라드를 점령하고 나면 도시의 이름을 ' 아돌프의 도시'라는 뜻의 '아돌프스부르크(Adolfsburg)'로 바꿀 계획이었으나 레닌그라드는 수백만 명의 희생으로 끝내 그 이름을 지켜냈다.

이후 1991년 소련이 해체되고 러시아 연방이 수립되면서 원래 이름인 '상트페테르부르크'라는 이름을 되찾았다. 이때, 이름을 아예 러시아어식 이름으로 바꾸자는 주장도 있었다고 한다. '성 베드로의 도시'라는 원래 뜻을 살려 '스뱌토페트로그라드'로 바꾸자는 의견과 도시를 가로지르는 네바 강에서 이름을 따 '네보그라드'로 바꾸자는 의견이 꽤나 힘을 얻었던 모양. 하지만 결국 옛 명칭인 상트페테르부르크로 결정되었다.

다만 소련의 이미지가 강하게 박혀 있는 중년 세대에게는 아직도 레닌그라드라는 이름이 더 익숙한 듯하다. 박노자의 고향도 이곳인데, 그도 이곳을 레닌그라드라는 이름이 더 익숙한지 아니면 의식적으로인지 그렇게 부른다. 사실 세대를 막론하고 상트페테르부르크와 레닌그라드가 별개의 도시라고 생각하는 경우가 적지 않다. 레닌그라드라는 이름은 상트페테르부르크를 둘러싸고 있는 행정구역인 레닌그라드 주(Ленинградская область)에 아직 남아 있다.[12] 모스크바에도 이곳으로 오는 열차가 발착하는 역의 이름은 여전히 상트페테르부르크가 아닌 레닌그라드 역이다. 풀코보 국제공항 IATA 코드도 LED로, 레닌그라드 시절의 것을 그대로 사용하고 있다. 풀코보 공항을 비롯한 많은 곳에서 레닌그라드 시절의 흔적을 찾을 수 있다.

20세기 초에 태어나 소련 해체 시점까지 살았던 노인들은 ''나는 상트페테르부르크에 태어나 페트로그라드에서 자랐고, 죽을 때까지 레닌그라드에서 살 줄 알았는데 다시 상트페테르부르크에서 눈을 감게 되었다"라는 농담을 즐겼다. 1914년 6월 이전에 태어나 1991년 12월 이후에 임종했다면 상트페테르부르크에서 태어나 페트로그라드와 레닌그라드를 거쳐 다시 상트페테르부르크에서 임종하게 된 것이다. 다만 이 시기(1910년대)에 상트페테르부르크에서 태어난 사람들은 1940년대 레닌그라드 포위전 때 상당 수가 사망했고, 인류의 평균 수명이 70대에 진입한 것은 비교적 최근의 일이기 때문에[13] 1990년대까지 살아남아 소련 붕괴를 겪은 이들은 그리 많지 않다.

긴 이름 때문에 흔히 현지인들 사이에서는 페테르부르크, 혹은 더 줄여서 피테르(Питер), 또는 머릿글자만 따서 에스페베(СПб)라고 줄여 부르기도 한다.[14]

3. 역사

3.1. 과거

표트르 대제가 도시를 건설하기 전에는 사람이 별로 살지 않는 네바강 하류 삼각주지대였다. 페테르부르크 건설 이전 상트페테르부르크를 포함한 네바강 삼각주 일대는 중세 이조라(Ижора)[15]로 불리던 지역이었으며, 원주민은 노브고로드 공국 조공을 바치던 이조라인[16]이었다. 리보니아 기사단, 덴마크, 스웨덴 등 발트해의 패권을 노리던 서유럽 국가들이 이조라를 노렸으나, 당시 이 지역에서 종주권을 행사하던 노브고로드 공화국은 수세기에 걸친 이들의 공격을 성공적으로 방어해냈다.

15세기 말 러시아의 패권을 잡은 모스크바 대공국 노브고로드 공화국을 정복하면서 이조라는 모스크바 대공국의 영토가 되었다. 모스크바 대공국의 후신 루스 차르국 16세기 후반 리보니아 일대의 패권을 두고 폴란드-리투아니아, 스웨덴 등이 엮인 리보니아 전쟁에서 쓴 맛을 보면서 이조라를 잠시 스웨덴에게 양도했으나 1595년 테우시나 조약으로 돌려받았다.

하지만 스웨덴은 핀란드 에스토니아의 육로 연결을 위해 이조라를 계속해서 노렸다. 17세기 혼란 시대로 인해 루스 차르국이 만신창이가 되자 기회를 살린 스웨덴 국왕 구스타브 2세 아돌프 1617년 미하일 로마노프와 스톨보바 조약을 체결하여 이조라를 얻어내는 데 성공했다. 이 지역을 루터교화시키려던 스웨덴은 개종시 세금 감면 및 병역 면제 등을 제시하고 자국 영토 내 루터교를 믿는 에스토니아인 핀란드인을 이조라로 이주시켰다. 그 결과 대북방전쟁 직전인 1695년에 이르면 이조라의 루터교회 신자는 잉그리아 인구의 74%를 차지하기에 이르렀다. 발트해로 통하는 유일한 출구인 이조라를 상실한 루스 차르국은 이후 이조라의 탈환을 목표로 하였다.

3.2. 도시 건설과 수도 이전

마침내 대북방전쟁 때 이 지역을 점령한 표트르 1세 서구화 정책의 일환으로 서유럽과 통하는 창구인 이조라 지방으로의 천도를 결정, 네바강 기슭의 스웨덴 성형 요새인 뉘엔스칸스(Nyenskans)[17] 근처 삼각주 늪지대를 매립해 1703년 5월 27일 도시를 건설했다. 말은 간단하지만 근대적 토목기술이 없던 당시에 삼각주나 늪지대 위에 도시를 세우려는 것은 미친 짓이었고, 실제로 엄청나게 많은 사람들이 저 매립 작업에 희생되었다. 일명 '뼈 위에 세워진 도시'.[18]

9년 간의 작업 끝에 도시의 건설이 어느 정도 완료된 1712년 표트르 1세는 정식으로 이 도시로 천도한 뒤 '상트페테르부르크'라는 이름을 붙였다. 이후 러시아 제국의 황제들은 새로운 수도 상트페테르부르크를 계속해서 발전시켜 나갔다. 특히 귀족 문화 옹호자였던 예카테리나 2세 시대에는 러시아 제국 각지에서 모인 귀족들과 장사하러 온 독일인 네덜란드인, 귀족들의 프랑스어 교사로 온 프랑스인, 스웨덴 점령 시절 정착했던 잉그리아 핀인 등이 모이며 국제도시로 변모하였다. 러시아 제국의 수도인 만큼 상트페테르부르크에선 격동의 사건 또한 여러 차례 일어났다. 1825년 데카브리스트의 난, 러시아 혁명의 시발점이 된 1905년 피의 일요일 사건, 군주제를 무너트리고 인류 최초의 사회주의 국가의 건설을 알린 러시아 혁명 2월 혁명 10월 혁명이 시작된 곳 또한 수도 상트페테르부르크였다. 18~19세기에 러시아 제국으로서 굵직한 사건은 거의 모두 상트페테르부르크에서 일어났다고 할 수 있다.

3.3. 소련 시기와 현대

러시아 제국의 수도로서의 상트페테르부르크의 역사는 제1차 세계 대전 직후 러시아 제국의 소멸과 함께 격동을 맞게 된다.

이 시기에 상트페테르부르크의 지위에 큰 영향을 준 것은 1917년에 핀란드 대공국으로서의 역사를 마감하고 독립한 것이다. 이에 따라 핀란드와 매우 가까운 상트페테르부르크는 국경 지역이 되었다.[19] 러시아 내전 당시 발트해의 제해권을 장악한 외국 함대의 수도 공략을 우려한 소비에트 당국이 1918년 수도를 200여 년 만에 모스크바로 다시 옮겼고 상트페테르부르크는 수도의 지위를 상실하였다.

소련 시기에 위에서 다루었듯 레닌그라드[20]로 이름이 바뀌었고 수도에서도 내려왔지만 레닌그라드는 소련 제2의 도시로 기능하였다. 독소전쟁 당시에는 독일군 북부집단군의 주요목표[21] 독일군은 북쪽에서 내려오는 핀란드군과 협공하여 레닌그라드를 900일 가까이 포위하였다. 끝끝내 레닌그라드는 함락되지 않았고, 독소전쟁 당시의 영웅적인 사투를 인정받아 레닌그라드는 1945년 종전 직후 영웅 도시로 지정된 최초 4개의 도시[22] 중 하나가 되었다. 소련에서는 이 도시를 기려 레닌그라드 수방메달[23] 레닌그라드 250주년기념메달을 만들었다.

전쟁 이후 상트페테르부르크는 성공하였으며 전쟁을 피해 도시를 떠났던 주민들이 돌아오고 이후 소련 인구가 크게 늘고 도시로 인구가 유입되면서 소련 해체 직전에는 인구가 500만 명에 달하게 되었다.

4. 지리

파일:attachment/상트페테르부르크/saintpetersburgcannel.jpg 파일:attachment/상트페테르부르크/saintpetersburgcannel2.jpg

5. 기후

상트페테르부르크의 겨울

쾨펜의 기후 구분[26] 상으로는 냉대 습윤 기후(Dfb)에 속한다. 온난하고 습도가 높은 여름과 길고 추운 겨울이 특징이다. 7월의 평균 기온은 18.8 °C, 2월의 평균 기온은 −5.8 °C. 연 평균 기온은 5.7℃로 라선시와 비슷하다. 그래도 북위 60º에 가까운 위도를 감안하면 상당히 높은 편인데, 같은 위도의 시베리아와 비교하면 넘사벽으로 기온이 높고, 위도가 훨씬 낮은 극동 블라디보스토크보다도 겨울철에 훨씬 따뜻한 편[27]이며, 위도가 약간 낮은 모스크바와 비교해도 겨울철 평균기온이 높다. 다만 같은 위도의 스칸디나비아 핀란드보다는 추운 편이다. 러시아에서는 온화한 편이라지만, 북쪽 도시다 보니 최저 기온의 기록은 −35.9 °C( 1883년)에 이르고, 도시에 흐르는 네바강도 겨울에 대부분 얼어붙을 정도이다. 그리고 도시 외곽은 더 춥다. 다만 겨울철에 이상고온 현상이 나타나면 영상권의 포근한 날씨가 이어지기도 하며, 실제로 2011년 12월의 이상고온때는 대한민국 서울보다도 평균기온이 높았다. 여름철은 대체로 지내기 좋은 쾌적한 기온 분포를 보이지만, 가끔 폭염 현상이 나타나기도 하며, 러시아를 강타한 2010년 대폭염때는 37°C까지 기온이 오르기도 했다.

지리적으로는 북유럽에 속하며 고위도 지방임에도 불구하고 기후가 온화한 편이다. 훨씬 위도가 낮은 대한민국의 영서지방과 비슷한 수준이다. 혹은 미국의 오대호지방 남부 정도의 기후와도 비슷하다고 할 수 있다. 물론 서울, 도쿄 보다는 훨씬 춥고 실제로 한국인, 일본인들이 이곳의 겨울은 춥다고 느낀다. 하지만 시베리아의 혹독한 겨울을 생각한다면... 아니 시베리아 까지 가지 않아도 모스크바만 하더라도 이곳보다 훨씬 춥다.

6. 인구와 주거

20세기 초/중반에는 인구수의 급격한 변화가 여러 번 있었다. 러시아 제국 말기에는 수도이자 명실상부한 제1의 도시였다.[28] 1916년에 2,400,000명이었던 인구 러시아 혁명 적백내전을 거치면서 불과 4년 후인 1920년에는 740,000명 미만으로 떨어졌다. 이후 인구가 늘어 1941년~ 1943년 3,000,000명에 이르렀으나 독소전쟁으로 인한 차출/인명피해가 있었고, 그리고 특히 레닌그라드 공방전에서 많은 수가 굶어죽거나 피난을 갔기 때문에 인구는 60만 명 이하로 다시 격감했다.

종전 후 다른 지역으로부터의 이주자로 인해 인구가 늘어났고 1950년대 말에는 전쟁 전 인구를 회복했다. 소련 붕괴 직전인 1989년에는 5,000,000명을 넘기도 했다. 그러다 1990년대 소련 붕괴 직후 러시아의 인구가 줄어들면서 상트페테르부르크의 인구도 같이 줄어들었다가 2008년 457만 명으로 저점을 찍고 2013년 5,000,000명을 회복하고 매년 증가하고 있다. 2019년 기준으로 5,380,000명이 거주한다.

도심지 주민 대부분은 아파트에 거주한다. 상트페테르부르크의 아파트 거주는 역사가 좀 길다. 20세기 초부터 1990년대에 이르기까지, 소련 정부는 주택 건설을 국유화했고 주민들이 공동거주 아파트에서 살도록 강제했었다. 1930년대에는 68%의 주민들이 그런 아파트에서 거주했다. 레닌그라드 당시에는 소련에서 공동아파트가 가장 많은 도시였다. 1950년대 들어서 공동아파트의 숫자가 크게 줄고 흐루숍카가 대거 건설되면서 주거 방식에 변화가 생겼지만 아파트라는 건 마찬가지이며, 현재에도 저소득층은 공동아파트(스딸린까, 흐루숍까 등)에서 사는 경우가 꽤 있다.

제2의 도시치고는 초고층 건물이 없어서 전체적으로 나지막한 도시 경관을 보이는데, 도심지의 높은 빌딩을 규제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와 함께 상트페테르부르크의 도심지의 역사적 건축물들은 주로 18세기, 19세기 건축물로 이루어져 있으며, 현대적 건축물이 가득한 모스크바와는 달리 근대 건축물들이 잘 보존되어 있다. 상트페테르부르크가 수도에서 밀려난 것이 역사적인 건축물의 보존에는 상당히 많은 보탬이 되었는데, 그 이유는 공산정권의 업적을 과시하기 위한 현대 건축물들은 주로 수도인 모스크바에 건설되곤 했기 때문이다.[29] 여기에 더해 모스크바의 인구가 1950년대 들어서도 계속해서 늘어나고 덕택에 공동아파트로도 주거수요를 감당하기 힘들어질 지경이 되자 도심 중심지의 목조건물을 대거 철거하거나 재개발해서 그 자리를 고층아파트로 채웠다. 반면 상트페테르부르크는 보존된 건축물 덕에 유네스코 세계유산으로 지정되어 있다. 36개의 역사적인 건축물과 4,000여개의 역사적 문화적 기념물의 가치를 인정받았기 때문이다. 하지만 가즈프롬이 상트페테르부르크에 400m가 넘는 마천루(일명 라흐타 센터) 건설을 추진 중이다. 상트페테르부르크 시 당국과 시민들은 격렬하게 반대했고 크렘린도 반대 의견을 내비쳤으며, 유네스코는 "초고층 빌딩 건립시 상트페테르부르크의 세계문화유산 등재를 취소할 수도 있다."고 경고했다. 결국 가즈프롬은 건설 장소를 원래 예정했던 상트페테르부르크 중심부에서 시 외곽으로 위치를 변경할 수 밖에 없었다.

7. 교육

8. 교통

8.1. 철도

러시아 북부의 여러 노선들이 모이는 러시아 철도의 중심지이기도 하다. 참고로 상트페테르부르크에는 상트페테르부르크 역이 없고 대신 목적지 방향 이름을 딴 역들이 있다[30] 정작 이 도시의 (옛) 이름을 딴 레닌그라드 역은 모스크바에 있다. 상트페테르부르크의 주요 철도역은 다음과 같다.

8.2. 시내 교통

상트페테르부르크 지하철이 있다. 다만 웬만한 곳에서는 조금만 걸으면 지하철역이 있는 모스크바 지하철과는 달리 역간 간격도 넓을뿐더러 도시 전체를 커버하기에는 선로가 무리가 있다.[32] 지하철이 뚫리지 않은 곳에서도 무궤도전차와 일반 버스를 통해 관광지로 접근할 수 있으니 배낭여행객들이 있다면 참고하도록 하자. 버스의 경우 얀덱스 지도가 구글 지도보다 정확한 편이다. 길찾기기능 뿐만 아니라 한국의 지도 서비스처럼 도착시간 및 배차간격도 제공해주므로 여행 시 버스를 이용할 일이 있으면 얀덱스 지도를 통해 확인하는 것을 추천한다.

트램도 있으나 중심가로 들어가는 노선이 제한적이고 교통정체에 발이 묶이는 경우가 잦으니 별로 추천하지 않는다. 마르시루트카(Маршрутка)라고 불리는 소형 버스도 있는데 이는 일반 관광객이라면 이용할 일이 거의 없다.( 여름궁전이 위치한 페테르고프로 가기 위해서 탈 수도 있다.)

8.3. 항공

풀코보 국제공항이 있으며, 여기서 세계 각지를 연결한다. 대한항공은 이 공항에 계절편으로 취항한다. 대한항공 계절편 외 인천공항에서 상트페테르부르크로 가는 가장 보편적인 방법은 아에로플로트 SU251편이나 대한항공 KE923편 타고 셰레메티예보 국제공항(SVO)로 향한 후 경유를 하는 방법이다. 아에로플로트를 타면 짐이 자동으로 연계되어 풀코보 국제공항(LED)에서 찾으면 되지만, 대한항공을 이용할 경우 짐을 셰레메티예보에서 찾고 다시 부쳐야 하는 불편이 있으니 주의하자.[33] 이외에는 에어 아스타나, 터키항공, 핀에어 등을 타고 상트페테르부르크로 향할 수 있다. 최근에는 핀에어를 타고 헬싱키 - 상트페테르부르크 - 탈린을 1바퀴 도는 루트가 대세가 되었다.

성수기 기준으로 모스크바로 입국을 하게되면 각종 중국에서 오는 항공편들이 인천에서 오는 항공편들과 비슷한 시간대에 도착하므로 중국인 인파에 끼어 경유편을 놓치고 시간을 허비하는 경우가 굉장히 잦다. 성수기에 여행을 한다면, 총 여정은 좀 더 길어지겠지만, 가격도 더 저렴하고 풀코보 국제공항에서 입국심사를 진행해 결국 더 수월히 상트페테르부르크로 향할 수 있다.

8.4. 타 지역 이동

모스크바로부터는 북서쪽으로 700km 정도 떨어져 있다. 러시아 땅 크기를 생각하면 멀리 떨어지지는 않은 편으로, 모스크바까지는 차로는 10시간, 고속철도 삽산을 이용해 4시간 정도 혹은 야간 침대열차를 이용해 이동할 수 있다.

북유럽 핀란드, 에스토니아와의 지리적 거리가 매우 가깝다. 시내 중심에서 두 나라 국경까지의 거리는 150km 정도인데, 외곽 지대의 경우 국경과 100km도 떨어져 있지 않은 곳도 있다. 특히 핀란드의 수도 헬싱키는 같은 러시아의 모스크바보다도 가까워서 차도로 6 ~ 7시간이면 간다. 고속철 ' 알레그로'가 개통된 이후 상트페테르부르크와 헬싱키를 3시간 30분만에 오갈 수 있기 때문에 인적 교류가 크게 늘어났으며, 상트페테르부르크 사람들의 십중팔구는 다 한번씩은 핀란드에 다녀왔다고 말하는 정도였다. 반대로 헬싱키 사람들 중에서도 상트페테르부르크에 다녀온 사람의 비율이 증가했다. 그래서 한국에서도 기존의 상트페테르부르크 대한항공 직항노선 뿐 아니라 핀에어를 이용하여 헬싱키에 도착한 후 고속철을 타고 헬싱키와 탈린(헬싱키와 탈린의 거리도 매우 가까운 편이다. 배타고 2시간 거리), 상트페테르부르크를 동시에 여행하는 관광객들이 늘어났다. 다만 인천 - 헬싱키 노선 개통 이후 인천 - 헬싱키에 비해 상당히 비싸기 때문에 인천 - 상트페테르부르크 노선이 승객 감소로 피를 보고 있는 중이었다.

그러나 2022년 우크라이나 전쟁으로 러시아와 핀란드, 에스토니아 국경은 폐쇄되었다. 핀란드의 나토 가입으로 양국은 완전히 적대관계로 돌아섰고, 알레그로조차도 언제 재개통될지 모르는 상황이다.

9. 치안

러시아가 혼란스러웠던 2000년대 초중반에는 치안 상황이 심각했었는데, 요즘은 상당히 많이 나아졌다. 시의 범죄율은 러시아의 전반적인 치안상황과 연관이 깊다. 1980년대 말 ~ 1990년대 초에 범죄율이 치솟았는데, 이는 페레스트로이카라는 변혁을 겪으면서 러시아 전반에 사회적 혼란이 있었기 때문이다. 당시 상트페테르부르크에는 행정력이 무력해진 틈을 타서 레드 마피아들이 판치고 다녔다. 1990년대 후반에만 해도 부시장인 미하일 마네비치, 국회부의장 갈리나 스타로보이토바 등이 살해당하는 등 우리로서는 상상하기 힘든 치안상황이었다. 그러다 보니 러시아 내에서도 상트페테르부르크는 범죄의 도시로 인식이 되어 버렸다. 최근에는 구 소련 공화국 출신 외국인들이 불법적으로 체류하면서 범죄를 저질러서 외국인에 의한 범죄가 늘어나는 중이며, 인종차별에 의한 범죄까지 증가 추세였다.

최근 치안 관리와 이라크 레반트 이슬람국가 테러 위협을 이유로 시내 주변에 2인 1조로 순찰하는 경찰들을 흔히 볼 수 있다. 다만 관광객들을 상대로 하는 소매치기 같은 경범죄는 상당히 빈번하게 일어난다. 그 예로는 관광객에게 짧은 영어 중국어를 구사하며 길들인 비둘기를 쥐어주며 핸드폰을 달라하여 사진을 찍어준뒤, 말도 안되는 가격을 요구하는 사례가 있다. [34] 건장한 청년 여럿이서 같이 있는 경우도 있기에 걸렸다면 최대한 맞춰주거나, 아예 무시하자. 이 사람들은 영어로 한다고 될 사람들이 아니니 그냥 Не надо(니 나다/필요없어요.)만 열심히 외치면 알아서 포기할 것이다. 가끔씩 핸드폰을 뺏어 강제로 사진을 찍는 경우도 있는데, 이럴 땐 강하게 항의해야 한다. 애초에 러시아인들은 처음 보는 사람에게는 말도 잘 안 걸고 마음 열고 친해지는 것도 오래 걸리는 사람들이다. 따라서 한국인들에게 말을 거는 건 대부분 뭔가 불순한 의도가 있는 것이다. 드물게 한국에 관심이 많아 직접 말 거는 경우도 있다고는 하다.

2017년에 센나야 광장 근처 지하철 역에서 알 카에다에 가담한 키르기스스탄 남성에 의한 폭탄 테러가 발생했다. 2017년 12월 27일 다에쉬에 의한 수퍼마켓 테러가 발생하면서 14명이 부상당했다. #

이런저런 크고 작은 테러 사건들이 많아서 중동 계열의 남성이 묵직한 가방을 가지고 지하철에 탑승하면 탑승객들의 경계의 시선을 볼 수 있다.

10. 마트

크고 작은 마트들이 굉장히 많이 분포해있다. 한국의 편의점보다도 더 촘촘히 마트들이 분포된 경우가 잦다. 그리고 인건비가 낮다 보니 (시급 - 1,500 ~ 2,000원), 많은 곳들이 24시간 영업을 한다.

10.1. 고급 마트

파일:азвука вкуса московский проспект.jpg

Азбука Вкуса (아즈부카 브쿠사) - 한국의 롯데 프리미엄 마트, 신세계그룹 푸드마켓을 생각하면 된다. 자국산 제품보다 한국이나, 일본, 미국, 유럽 선진국에서 수입해온 물건들이 더 많다. 새우깡이나 신라면 등 한국 제품들을 쉽게 볼 수 있다. 가격대가 상당히 높지만, 한국의 물가에 익숙해져 있다면 그렇게 비싸지는 않다.[35]
파일:вкус вилл.png
Вкус Вилл (브쿠스 빌) - 유기농 제품들을 많이 팔고, 질 좋은 수입제 식료품등을 판다. 기본적으로 화학재료나 설탕들이 들어가지 않은 제품들이 많고, 착즙쥬스, 과일, 농산품 등이 좋다. 이 마트도 가격대가 비싼 편이다.

10.2. 대형마트

파일:перекрёсток.jpg

페레크료스토크(перекрёсток)

사거리, 교차로라는 뜻의 이름을 가진 녹색의 대형마트가 상당히 많은 수의 점포가 있어 어디서나 쉽게 찾아볼 수 있다는 게 최대 장점.대형마트라고 하기엔 점포규모가 작은 경우가 많고 따라서 제품의 종류가 한정되어있다. 회원카드로 할인이 가능하나 할인율이 좋지도 나쁘지도 않다. 이마트, 롯데마트보단 GS슈퍼, 롯데슈퍼 느낌을 생각하면 된다.
파일:лента.jpg

렌타(лента)

리본이라는 뜻을 가진 노란색,푸른색의 대형마트. 여러 마트 중 규모나 가격면에서 가장 훌륭하다. 회원카드로 받을 수 있는 할인율이 상당히 높다.물건들의 품질도 좋다. 다만 폐례크료스토크(перекрёсток)에 비해서 점포수가 적은 편이다.
파일:PRISMA.jpg

프리즈마(PRISMA)

핀란드계 기업에서 운영하며, 다른 두 마트보다 비싸고 근소하게 고급스럽다는 이미지가 있다. 수입품의 비율이 높다.

11. 관광 명소

유네스코 세계유산
파일:유네스코 세계유산 로고(흰 배경).svg
이름 한국어 상트페테르부르크 역사 지구와 관련 기념물군
러시아어 Исторический центр Санкт-Петербурга
и связанные с ним группы памятников
영어 Historic Centre of Saint Petersburg
and Related Groups of Monuments
프랑스어 Centre historique de Saint-Pétersbourg
et ensembles monumentaux annexes
국가·위치 러시아 상트페테르부르크
등재유형 문화유산
등재연도 1990년
등재기준 (i)[36], (ii)[37], (iv)[38], (vi)[39]
지정번호 540

상트페테르부르크는 러시아 제국 시대의 옛 수도로써, 현대적인 느낌이 강한 모스크바와는 분위기가 매우 다르다. 런던, 파리와 어깨를 나란히 할 근대 열강 고도(古都)인지라, 모스크바보다 볼거리가 많고 관광업이 훨씬 발달하여 러시아인은 지금도 상트페테르부르크를 '문화수도'로 여긴다고 한다. 북유럽 베네치아라는 이명이 있을만큼 수많은 운하로 이어져있으며 19세기 제정 시대의 분위기가 잘 보존되어 있다.

[clearfix]

12. 정치

부시장을 지냈던 블라디미르 푸틴 드미트리 메드베데프를 비롯해 현재 러시아 중앙 정계를 주도하는 정치인들 상당수가 상트페테르부르크 출신이다. 상트페테르부르크 시장을 역임했던 발렌티나 마트비옌코[45]는 현재 러시아 상원의장에 재임 중이다. 이들을 '피제르츠'라고 부른다. 푸틴이 나온 직장인 구 KGB와 현 FSB 출신도 정권의 실세인데 이들은 ' 실로비키'라고 부른다.

2007년 모스크바에 집중된 국가기관을 분산한다는 취지로 러시아 헌법재판소를 모스크바에서 상트페테르부르크로 이전했다.

상트페테르부르크의 구의회 의원 4명이 국가두마에 푸틴 탄핵을 요청했다. #

13. 스포츠

14. 예술

로스토프 대마초 퀄리티가 끝내주지
얼마나 큰지 보면 정신이 나갈걸
모스크바 하면 코카인이지
첼랴빈스크에선 그냥 쩔어 살게 될 거야

하지만 피테르에선 마셔야지
피테르에선 마셔야지
피테르에선 리터 단위로 마셔야지

(중략)

이렇게 개판 5분 전이지만
난 그래도 우리나라가 진심으로 좋아
진짜로 이 노래는 관광에 대한 거니까
이 예술작품은 너희 관광객들에게 선사하는 거야

정말로 가사 꼴이 이렇다. 지역을 관리하는 입장에서는 확실히 뒷목을 잡을 만 하지만, 상트페테르부르크의 당시 관광개발위원회장 빅토르 코노노프는 "레닌그라드의 노래를 어떻게 평가하든, 가사를 곧이곧대로 받아들이지 않아도, 일단 들어보면 이곳의 뭐가 그렇게 잘났는지 보고 싶어지게 될 것이다" 라며 오히려 이 곡을 칭찬했다.


이들의 또다른 대표곡 중 하나인 '혈액형(Группа Крови)'. 키노 동명의 곡과 연관이 있다. 내용은 다른 사람이 키노 노래를 쓰레기라며 꺼버리라고 하자, 노래의 화자는 "닥쳐, 이 노래 내가 좋아한단 말야!"로 화답하는 내용이다.

15. 여담


근대와 현대로 이어지는 역사를 보여주며 러시아 제국, 소비에트 연방, 그리고 현재 러시아 연방 국기가 게양됐고, 푸틴 대통령이 참석했다. 우크라이나 전쟁 중 상황이 계속 악화되며 옅어지는 지지를 러시아 역사 속 위대한 순간을 보여주며 민족주의를 자극하여 결속을 강화하려는 것으로 보인다. 그도 그럴 것이 현대 러시아 연방은 소련을 계승한 국가로, 러시아 제국이 아니라 러시아 SFSR의 후신이며 제국 시대의 귀족 및 왕족의 계급, 가문, 권위 등을 현대에도 인정하지 않고 부정하고 있기에 제국기를 공식적으로 것을 이유가 딱히 없고, 덤으로 푸틴 대통령 역시 반공주의자인지라 소련기 역시 공식 석상에서 걸 이유가 없다. 종합해봤을 때 이는 푸틴의 정치적 성향인 대러시아주의와 민족주의, 팽창주의 등에 기반하는 것으로, 소련 및 제국 시절의 국가의 이념이 아니라 가졌던 국제적 영향력과 지위를 그리워하는 국민 및 지도부의 성향에 기반한 정책의 일종으로 볼 수 있다.
한편 마지막 차르 니콜라이 2세 블라디미르 레닌이 이 장면을 봤다면 실로 엄청난 충격을 받을만한 행사이기도 하다.

16. 출신 인물

17. 대중매체에서

18. 관련 문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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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owcolor=#fff> 문화유산
1990년

상트페테르부르크 역사 지구와 관련 기념물군
Исторический центр Санкт-Петербурга
и связанные с ним группы памятников
1990년

키지 포고스트
Кижский погост
1990년

모스크바의 크렘린 궁전 붉은 광장
Московский Кремль и Красная Площадь
1992년

노브고로드 역사 기념물군과 주변 건축물
Исторические памятники
Великого Новгорода и окрестносте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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Церковь Вознесения в Коломенско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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쿠로니아 모래톱
Куршская кос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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Цитадель, Старый горо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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Киево-Печерская лавр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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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찬 칼라
Ичан-Кал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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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Алекса́ндр Дми́триевич Бегло́в [2] 모스크바 세바스토폴과 더불어 러시아에 3곳뿐인 연방시 중 하나다. [3] 심지어 수도 모스크바보다 더 발달해 있다. 오랫동안 모스크바 지하철 러시아어 안내만 있었지만 상트페테르부르크 지하철 영어 안내도 예전부터 있었다. 그러다 2017년 기준으로 2018 러시아 월드컵 개최 준비를 계기로 모스크바에도 영어 안내를 만들었다. [4] 탬파베이 레이스의 홈구장 트로피카나 필드가 있는 플로리다주의 도시 세인트피터즈버그와 똑같은 이름인데 이쪽은 St. Petersburg, FL(혹은 축약되지 않은 형태인 Florida)로 표기하여 St. Petersburg, Russia와 구분된다. 여기서 한단계 더 나아가 완전 축약형인 St. Pete.은 오직 미국 세인트피터즈버그만을 지칭한다. 이 도시의 이름의 유래도 러시아의 상트페테르부르크이다. 물론 이건 플로리다에서나 그런거고, 전세계 어딜 가나 러시아의 상트페테르부르크가 훨씬 유명하기 때문에 일반적으로 플로리다를 뒤에 붙이지 않고 세인트피터즈버그라고 하면 러시아의 상트페테르부르크를 뜻한다. [5] 서구문명에서는 흔한 사례인데, 고대 이집트 람세스 2세가 건설한 피람세스, 알렉산드로스 대왕 알렉산드리아, 프랑수아 1세가 재설계한 프랑스 최대의 항구도시 가운데 하나인 프란시스코폴리스, 스탈린의 이름을 가져다 붙인 스탈린그라드 등. 다만 이들 도시 중에서 그 이름이 후대까지 유지된 경우는 상트페테르부르크, 알렉산드리아 등 그렇게 많지는 않다. [6] 핀란드의 미켈리(Mikkeli)를 스웨덴어로 상트미셸(S:t Michel, 본래 형태는 Sankt Michel), 카리나(Kaarina)를 상크트카린스(S:t Karins)라 부르는 데에서 스웨덴어를 차용했다는 사실을 알 수 있다. 표트르 대제가 대북방전쟁을 치렀을 당시 스웨덴은 프랑스와 더불어 유럽의 군사 강국이었다. 러시아 입장에서 가장 가까운 유럽 국가였던 스웨덴은 표트르 대제에게 선망의 대상이었고, 군제 개혁을 할때 스웨덴의 군사 전술을 카피해서 폴타바 전투에서 그대로 스웨덴군에게 사용했다. [7] 러시아어 인명 표트르(Пётр / Pjótr)는 다른 격 형태에서는 강세가 뒷 음절로 옮겨가기 때문에 페트르-(Петр-)의 꼴로 바뀌게 된다. 대표적으로 페트로그라드(Петрогра́д / Petrográd)나 페트로프(Петро́в / Petróv) 같은 표현이 있다. [8] 비유하면 조선 국왕 중국을 본받기 위해 수도 '한성'을 한국식 한자어 발음이 아닌 중국어 발음인 '한청'을 그대로 쓰는 것과 비슷하다. 다만 어디까지나 비유로 한자문화권에서는 한자식 표기를 차용하지 발음까지 따라하는 경우는 없었다. [9] 상트에서와 같은 연구개 비음이 존재하지 않는다. [10] -burg( 부르크)로 끝나는 지명은 독일어권에서 많이 붙이는 이름 중 하나이다. 이름 뿐 아니라 상트페테르부르크에는 독일을 비롯한 서유럽식 건물이 많다. [11] 레닌의 후계자인 스탈린의 이름을 본뜬 스탈린그라드도 있었으나 1953년 스탈린이 죽고 그의 지위까지 격하되면서 일찍이 소련 시절인 1961년 지금의 볼고그라드로 지명이 바뀌었다. [12] 비슷한 사례로 우랄 산맥의 도시 스베르들롭스크도 소련 붕괴 후 원래 이름인 ' 예카테린부르크'로 돌아갔지만, 예카테린부르크가 속한 주의 이름은 소련 시대 이름인 스베르들롭스크 주로 남아 있다. 그러나 예카테린부르크와는 달리 상트페테르부르크 시는 레닌그라드 주에 속하지 않는 독립된 행정구역이다. [13] 국가별 평균 수명 순위를 참고하면 러시아의 평균 수명은 66세(남성 59세, 여성 73세)로 지금도 70세를 넘지 못한다. [14] 러시아는 러시아어 자체가 좀 단어 길이가 길어서 각종 단어들을 두문자어로 줄여쓰는 용법이 흔히 쓰인다. 예를 들면 미국은 세셰아·스샤(США), 모스크바의 국영 백화점은 (ГУМ)이라고 줄여 부른다. 비슷하게 수도를 두문자어로 줄이는 예로는 울란바토르가 있는데, 몽골인들은 울란바토르를 종종 오베(УБ)로 줄여쓴다. [15] 스웨덴어로 잉에르만란드(Ingermanland), 핀란드어로 잉케리(Inkeri) [16] 핀란드인, 카렐인의 근연민족이다. [17] 상트페테르부르크의 시작인 페트로파블롭스크 요새와는 거리가 있다. 현재 스몰니 수도원 건너편에 있었다. [18] 다만 수십만 명이 죽었다느니 하는 말은 상당한 과장이다. 이전 역사가들이나 당대인들의 증언에서는 수많은 사람들이 희생되었다는 기록이 있지만 공식 기록이나 구체적인 수치 자료는 존재하지 않는다. 전근대의 대규모 공사이니만큼 많은 사람이 죽었긴 했겠지만 반대로 전근대의 평균치를 넘어서는 수준은 아니었다고 할 수 있다. [19] 핀란드-소련의 국경도시 테리요키(Terijoki, 현재 상트페테르부르크 시의 일부인 젤레노고르스크)와 페테르부르크는 불과 50km도 안 되는 거리였다. 서울- 판문점 거리와 비슷하다. 1940년대 겨울전쟁- 계속전쟁으로 핀란드의 일부 영토가 소련에 할양되면서 상트페테르부르크로부터의 국경선은 150km로 멀어졌다. [20] 아직도 많은 이들이 레닌그라드로 아는 경우가 많다. 중장년층에게는 오히려 길고 발음하기 어려운 현 이름보다 이 이름으로 말하면 훨씬 쉽게 알아듣는다. 심지어 현 세대들에게도 레닌그라드 명칭의 인지도가 매우 높다. [21] 개전 직전 바르바로사 작전의 작전 계획을 짜던 중 2개의 주요목표 중 하나로 키예프를 우선시 할 것인지 모스크바를 우선시 할 것인지에 대해 독일군 사령부는 갈등이 심했으나 레닌그라드만큼은 모든 참모진이 동일했다. [22] 나머지 3개는 스탈린그라드, 세바스토폴, 오데사. [23] 2차 대전 당시 레닌그라드 공방전을 기념하는 차원에서 만든 메달. [24] 러시아는 역사적으로 다른 나라 해역을 거치지 않고도 대양으로 나갈 수 있는 부동항을 갖기를 원했다. 러시아가 보유한 항구도시는 다른 곳도 모두 이런 식이다. 흑해 보스포루스 해협 지브롤터 해협, 수에즈 운하를 통과해야 대양으로 나갈 수 있으며 북극해 북해로 나가는 방향 외에는 연중 얼어있으므로 역시 반쪽짜리 바다. 블라디보스토크가 있는 동해 역시 대한해협이나 쓰가루 해협 등 해협을 통과해야 대양으로 나갈 수 있다. [25] 이 해협에 대한 통과세를 받아먹었기 때문에 30년 전쟁 시기쯤 덴마크 왕실 재산은 전 유럽에서 손꼽힐 정도로 많았다. 지금은 이 해협을 통과하는 대신에 독일 북부의 발트해와 북해를 연결하는 킬 운하로 빠지면 거리도 단축되고 더 안전하게 지나갈 수 있어 운하를 주로 이용한다. [26] 기후 구분법을 창시한 블라디미르 쾨펜도 이곳 출생이다. 다만 20세부터 독일로 이주해 활동했고 말년은 오스트리아 그라츠에서 보냈으므로 독일 기후학자라 해도 틀린 소리는 아니다.( 출처) [27] 강원도 전방, 평양 일대와 겨울철 평균 기온이 비슷한데, 물론 이 정도면 한반도 중남부 지방 출신이나 일본인, 서유럽인에게는 상당히 춥게 느껴지는 기온이긴 하다. [28] 1912년 기준 인구 상트페테르부르크 2,035,600명, 모스크바 1,617,700명. [29] 공산당이 과거에 정교회 성당이라는 이유로 모스크바의 구세주 그리스도 대성당을 완전히 박살낸 것을 보면 상트페테르부르크에 있는 많은 성당이 파괴됐을지도 모른다. [30] 이 도시 뿐만 아닌 러시아 문화권에서 기차역 이름을 붙일 때 행해지는 일종의 관습이다. 시베리아 횡단철도의 시작역인 야로슬라블역 또한 원래는 모스크바 근처의 도시 이름이다. 야로슬라블로 가는 역이라는 의미에서 그런 역명을 지었다. 러시아 뿐만 아니라 과거 유럽에서는 흔한 네이밍 방식이었다. 프랑스 파리 리옹역, 베를린 안할터역 등이 그 예다. 개통 당시의 종착역 방향으로 역이름을 짓는다. [31] 다만 발트3국행은 열차보다는 버스가 더 효율이 좋다. 실제로 발티스키 역은 발트3국으로 가는 버스들의 시종착 지점이기도 하다. [32] 주요 관광지와 지하철 노선의 이동동선 차이가 나서 숙소 위치에 따라 이용할 일이 없을 수도 있다. [33] 출입국 심사는 동일하게 모스크바에서 한다. [34] 경험한 바로는 1,000루블을 요구하였다. 한국돈으로 약 15,000원이 살짝 넘어가는 수준이다. 흥정하여 500루블까지 깎을 수 있는 등 적당히 상대해 보자. [35] 러시아 기준으로는 좀 사는 사람들만 갈 수 있다. 그만큼 타 마트들에 비해 2~3배 비싸다. [36] 인간의 창의성으로 빚어진 걸작을 대표할 것 [37] 오랜 세월에 걸쳐 또는 세계의 일정 문화권 내에서 건축이나 기술 발전, 기념물 제작, 도시 계획이나 조경 디자인에 있어 인간 가치의 중요한 교환을 반영 [38] 인류 역사에 있어 중요 단계를 예증하는 건물, 건축이나 기술의 총체, 경관 유형의 대표적 사례일 것 [39] 사건이나 실존하는 전통, 사상이나 신조, 보편적 중요성이 탁월한 예술 및 문학작품과 직접 또는 가시적으로 연관될 것 [40] 러시아는 물론이고 유럽 전체에서 가장 높은 마천루다. 462m. [41] 파베르제의 달걀 컬랙션으로 유명하다. [42] 상트페테르부르크 근처의 도시 페테르고프에 있다. [43] 상트페테르부르크 근처의 도시 차르스코예 셀로(푸시킨)에 있다. [44] 핀란드만의 코틀린 섬에 위치한 곳. 상트페테르부르크 서쪽으로 약 30km 떨어져있다. 러시아 해군 발트함대의 군항이 위치한 것과 해군 교회로 쓰이는 성 니콜라이 교회가 유명하다. 소련 초기 정권에 대하여 수병들이 일으킨 크론시타트 반란이 일어난 곳이기도 하다. [45] 출생지는 우크라이나지만 소련 시절부터 상트페테르부르크에서 정치 활동을 했다. [46] 디나모 상트페테르부르크도 있었으나 2018년에 소치 연고지 이전을 했다. [47] UEFA 명칭은 '크레톱스키 스타디움'. FIFA 주관 대회에서는 '상트페테르부르크 스타디움'이라는 명칭이 사용되었다. [48] 다만 2022년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의 영향으로 UEFA에서 결승전 개최지를 프랑스 생드니 스타드 드 프랑스로 변경했다. [49] 그 시절에는 도시 이름이 레닌그라드여서 레닌그라드 라이브 공연으로 명명되었다. [50] 1980년대 말 글라스노스트 & 페레스트로이카 이후에는 멜로지야 등을 통해 앨범을 발매하는 등 언더그라운드에서 벗어나기도 했다. [51] 다만 2008년에 잠시 해체했다가 2010년 재결성된 전력이 있다. [52] 무역 중심도시로서 소득 수준이 상당히 높았다. [53] 알다시피 제주도와 상트페테르부르크는 모두 각 나라에서 가장 대표적인 관광지이다. [54] 러시아 락의 대부라고 불리는 음악가로 밴드 아크바리움(Akvarium)의 리더 [55] 러시아 락의 전설들 중 하나인 밴드 ' 아우크치온'의 리더 [56] 당시 지리적 특성으로 인해 레닌그라드는 "서방을 보는 창"이라는 별명으로 여러가지 문물을 접할 수 있는 도시로 유명했다. 그래서 외국 음악을 접하기 쉬운 도시였고, 소련 시절 3대 락클럽인 레닌그라드 락 클럽이 위치해 있었다(당시 VIA라고 불리던 당국 통제를 받던 밴드 외에는 공식 장소에서 공연을 하는 게 상당히 힘들었는데 이 곳은 언더그라운드 락 밴드들도 활동할 수 있는 곳이었다). [57] 소련 카자흐 SSR 크즐오르다 출신이라는 얘기가 많이 돌아다니지만 실제로 그의 아버지가 크즐오르다 출신이다. [58] 상트페테르부르크 영주권자 [59] 형인 아르까지는 조지아 바투미에서 태어났지만, 이후 레닌그라드로 이주하게 되고, 보리스는 아예 태어날때부터 죽을때까지 여기에 있었다. 물론, 이들 형제들도 레닌그라드 공방전에서 자유롭지 못했다. 형은 아버지랑 탈출에 성공했지만, 아버지를 잃었으며 보리스는 레닌그라드에 머물렀고, 첫 소설을 적을 당시 근처 폴코보 천문대의 프로그래머로 일했다. 여튼, 이 형제들의 소설은 러시아 인들에게 인정받았으며, 이들이 오랫동안 상트 페테르부르크에서 활동하였고, 또한 창작을 하였기 때문에, 그 후 시의회에서 만장 일치로 이 형제의 이름을 딴 공원을 조성하는 안이 통과되었다. [60] 상트페테르부르크의 소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