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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가주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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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2. 해석3. 국가별 사례4. 오해5. 철학적 입지6. 관련 문서

1. 개요

/ Statism

국가를 가장 우선적인 사회 조직으로 규정하고 국가 권력에 사회 전반에 걸친 광범위한 통제력을 부여할 것을 주장하는 이념이다. 다른 이름으로는 국가통제주의라고 불리기도 한다.

국가주의를 정의할 때 말하는 국가란 정치적 공동체로서의 국가인 State를 말하며, 막스 베버는 국가를 특정 지리적 영역 내에서 무력의 사용권에 대한 합법성을 독점한 강제적인 정치 조직으로, 국가주의는 이 조직에 가장 우선적인 주권을 부여하는 이념으로 정의한다.[1][2]

경제적 맥락에서 국가(통제)주의는 시장주의와 반대되는 의미라 사용되는 경우가 있는데, 이 경우 국가주의는 케인스주의를 의미한다. #[3] 극단화된 형태의 국가통제주의에는 스탈린주의 파시즘 같은 전체주의 이념들이 있다. 반대되는 이념으로는 개인주의, 자유지상주의, 반국가주의, 아나키즘 등이 있다.

2. 해석

넓은 의미에서 본다면 우파적 사회정책(동성결혼 반대, 징병제 찬성[4] 등)은 물론, 좌파적 경제정책(부의 재분배) 역시 복지를 위해 국가의 존재를 전제하고, 제도의 역할을 개인보다 중요하게 여긴다는 점에서 국가주의와 통할 수 있다.[5] 물론, 경제 정책의 방향성과 정치적 성향은 얼마든지 따로 놀 수 있는데, 역사적으로 실재한 공산국가들만 봐도 국가를 중시한다는 면에서 진정한 좌우합작이 이루어진다. 국가주의 비판 논리는 아나키즘이나 자유지상주의 정치철학의 산물이지, 정치에서 좌우의 대립과는 관계가 없는 개념이다. 애초에 국가(state)가 존재한다면 국가주의(statism)는 존재할 수 밖에 없다. 사실 이런 오해가 발생하는 것은 자주 국가와 정부를 동일한 것으로서 오인 하는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좌우 정치세력모두 자신의 뜻을 관철하지 못하는 정부를 비판할 수는 있지만, 결국에는 국가 권력을 해체하는 것이 아니라 자신의 정부를 세우는 것이 목적이다. 사회주의 좌익들의 지배 체제 비판도 결국에는 자신들의 독재정권( 프롤레타리아 독재)을 세우는 것이 목적이지 국가 자체를 비판하는 것과는 무관한 것이다. 이 때문에 아나키스트들이 다른 사회주의자들을 국가사회주의자(State socialist)라고 부르는 것이다. 물론 우익 세력에서도 보수혁명론자 처럼 정부를 극도로 비난하는 세력이 존재하기도 하지만 이들 역시 국가 권력 자체에는 의문을 제기하지 않고 자신들의 독재정권을 세우고자 하는 자들이다.

좁은 의미에서(그리고 일반적으로 통하는 의미에서)의 국가주의는 국가를 가장 우월한 공동체로 여기며 개개인의 이익보다 국가의 공공선을 우선시하는 사상을 의미한다. '국가가 있어야 국민이 있다', '국가가 당신을 위해 무엇을 해 줄 것인가를 생각하기 전에, 당신이 국가를 위해 무엇을 할 수 있는지를 생각해 보아야 한다'( 존 F. 케네디) 이는 국가주의적 사고를 잘 보여주는 문장이다. 정확히는 인용된 발언의 의도는 전형적인 국가주의와는 어느 정도 거리가 있는 편이나, 한국에선 유독 이 쪽으로 왜곡되어 인용된다.[6] 또한 국가가 있어야 국민이 있다는 말 역시도 개인을 탄압하는 말로 왜곡되는 경우가 많은데, 본래 의미는 '자연 상태에서의 개인은 자유를 누리지 못한다'라는 공화주의적 자유관과 연결해서 봐야 할 말이다. 이런 자유관을 가진 사람으로는 장 자크 루소를 꼽을 수 있는데, 자연 그대로 그 어떤 간섭도 배제된 경우라면 '약자가 자유 의지를 가진 강자에게 예속되어'[7] 자유를 누리지 못하게 되는데, 이게 도대체 어딜봐서 자유냐라는 공화주의자 입장의 지적이다. 그렇기에 공화주의, 국가주의에서는 '개인의 자유를 위해' 국가를 중시하는 것이다. 즉 인용한 말을 풀어 쓰자면 '국가가 있어야 개인이 자유를 누릴 수 있다'가 될 것이다.

국가주의는 지역내에서 최고 통지 기관으로서 국가를 인정하고 그것이 사회와 경제 전반에 통제력을 행사하는 것이 옳다는 믿음 자체를 의미한다. 따라서 국가를 부정하거나 국가에서 멀어지길 바라는 이데올로기를 제외 한다면, 대부분의 사상은 큰정부를 지지하는가 작은 정부를 지지하는가의 차이가 있을 수는 있지만[8], 국가주의라는 딱지를 피할 수 없다.[9] 국가주의 이데올로기와 반 또는 비국가주의 이데올로기의 차이는 법에대한 입장에서도 나오는데, 반 혹은 비국가주의자들은 합법성이 행위의 정당함을 판단하는 기준이 되지 못한다고 생각한다. 법은 그저 국가의 강제력(즉 국가주의)에 불과하기 때문이다.
국가주의와 반대되는 이념은 개인주의, 자유지상주의, 아나키즘 등이 있다. 자유지상주의자들은 모든 정부 개입을 국가주의적 행위로 보는 경우가 많으며, 아나키스트들은 아나키즘과 대비되는 의미에서 국가의 존재를 인정하는 이념 전반을 국가주의로 지칭한다.

3. 국가별 사례

3.1. 대한민국

조선 500년을 거치며 한국인들의 사상에 뿌리내린 성리학적 윤리관부터가 국가가 국민 위에 있고 국민은 국가의 존립을 위해 모든 걸 바치며 충성해야 한다는 국가 주도의 위계질서를 옹호하는 경향이 있다.[10] 대신 그 국민의 범주에는 부자나 귀족, 심지어 왕과 왕족조차 포함될 정도로 어찌 보면 극단 중의 극단적 국가주의였기 때문에, 그 반대급부로 백성을 쓸데없이 수탈하면 안 된다는 절대적인 대원칙이 지배층의 탐욕을 제어하는 강력한 족쇄가 되었다. 수탈이 없었을 리는 없으나 다른 국가에 비해 정말 낮은 수준의 세율과 비교적 평등한 축에 속하는 불법에 대한 처벌, 엄청나게 견고하지만 비교적 적은 수준의 차별 등이 특징적이었다.

다만 그렇다고 해서 조선 백성이 다른 나라 백성보다 살기 좋았다거나 조선 지배층이 더 착했다는 의미는 아니며, 한반도의 높은 인구부양력[11]과 전 구성원의 행동적 차원의 참여가 전제되어야만 생존이 가능한 비교적 가난한 나라라는 점이 합쳐져 그 이외의 생존수단이 존재하지 않았기에 절대적으로 견고하고 경직된 신분제, 그러나 낮은 수준의 차별과 수탈, 국가위기상황시 피지배층의 희생에 절대적으로 의존하고 무력해보이는 지배층 등의 특징을 가지게 된 것이다. 물론 국가가 쇠퇴하기 시작하면서 피지배층의 희생만 남고 지배층까지 포함하는 강력한 국가주의는 무색해졌다. 구한말에 이르러서는 이것이 극으로 치달아, 백성들은 농민운동과 의병을 일으키며 나라를 지키려 싸운 반면, 주요 지배층은 싸울 의지를 잃어버린 채 을사조약 체결과 경술국치 등에 앞장서서 나라의 주권을 포기하고 자기 안위나 챙겼다.

이론적으로 보면 고전적 자유주의는 국가주의와 대립한다. 국가의 역할을 가능한 최소화하는 작은 정부를 추구하고, 개인이나 단체의 자유를 보장하자는 것이 자유주의적 국가관이기 때문이다. 주사파, 신세대 여성주의라 자칭하는 래디컬 페미니즘을 옹호하는 일부 좌파 계열에서 국가주의를 주장하기도 한다. 왜냐면 국가의 개입 없이 개인의 노력만으로 이들이 지향하는 가치에 도달하기란 어려우며, 국가의 적극적인 개입과 통제만이 해답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반면 리버럴 페미니즘 계열에서는 국가의 개입 자체는 인정하되 개인의 노력과 인식 변화도 중시한다.

한국 사회는 전통적으로 국가주의적 성향이 강했고 여러 정치 사상의 기반이 희박해서 온갖것들이 짬뽕되어 있기 때문에 논리적으로 국가주의와 적대적이어야 할 사상들도 융합되는 경우가 많다. 좌익의 경우 한국의 과거 운동권인 PD 마르크스-레닌주의에, NL은 좌파 민족주의에 각기 기반을 두고 있기 때문에 둘 모두 국가주의(statism)로부터 자유로울 수 없었다. 1990년대 후반 ~ 2000년대 초반 사이부터 '우리 안의 파시즘' 담론이 불거질 적 국가주의에 대한 비판도 존재했는데, 이런 담론을 주도했던 터전이 계간 <당대비평>이며 2001년 임지현 교수가 낸 <이념의 속살>과 박노자 교수의 <당신들의 대한민국>, 2002년 문부식의 <잃어버린 기억을 찾아서>가 그 예다.

국민이라는 낱말의 경우, 국가의 개념을 전제하고 있어서 '국가주의적 사고의 반영'이라고 주장하는 경우도 있으나, 국민을 뜻하는 원어에는 그런 의미가 없다. 어디까지나 번역하면서 생겨난 의미. 반대의 사례로 " 인민"이라는 표현은 원래 "People"이라는, " 사람", 그 자체로서의 백성을 뜻하는 표현에 대한 번역어였지만, 윗동네에서 워낙 해괴하게 쓰는 바람에 대중적으로 사용하기에는 애매한 표현이 되었다. 실제로 PD, NL, IST 등 각종 운동 단체들도 현재는 인민이란 말은 거의 안 쓰고, 대신 민중[12], 대중, 평범한 시민들 이런 말을 주로 쓴다. 대놓고 인민이란 말을 쓰는 집단은 스탈린주의 매니아 잔존집단인 노사과연 정도이다.

한국은 물론 북한 특유의 표준어 지상주의도 중앙집권적 국가주의와 무관하지 않다. 2022년 기준으로는 덜해졌지만 한동안 대한민국 국군에서 강요하던 다나까체 역시 다양한 방언형 경어체를 인정하지 않는 표준어 강제로 해석할 수 있다.

4. 오해

오해하면 안되는게 국내에서는 국가주의(statism)를 곧 국민주의 내지 국수주의(ultranationalism)와 연관시키는 경향이 있다는 것이다. 그러나 이는 서구권 사상을 한문으로 번역하다 보니 생긴 오해라고 할 수 있다. statism에서 말하는 국가(state)는 nation을 말하는 것이 아니기 때문에 statism 자체를 파시즘으로 간주하는 것은 매우 무리가 있다.

한국에서 "내셔널리즘"이나 "민족주의"를 얘기한다고 항상 나치나 파시스트를 떠올리는 것은 아니지만, 정작 "국가주의"를 말하면 나치나 파시스트를 더 자주 떠올리게 된 이유는 일본 제국 시절에 사용하던 잘못된 번역 용례의 탓이 크다. 일본 제국은 국가(state)와 민족(ethno-nation)이 거의 일체에 가까운 국가였고, 지금도 야마토 민족의 비율이 90프로가 넘어가는데다가 일본의 근대 네이션 빌딩 자체가 천황을 신격화하여 '국가를 운영하는 엘리트'들이 주도하는 '위로부터의 민족주의'였기 때문에 과거 일본 제국은 "국가주의"와 "민족주의"를 모두 비슷하게 nationalism의 의미로 종종 사용해왔고, 현대 일본에서조차도 "국가주의", "민족주의", "내셔널리즘"이 유사한 의미로 쓰이곤 한다. 그러나 한국의 경우 (한민족의 비율이 90프로가 넘어가긴 하지만) 한반도 분단으로 인해 (statism의 의미로든 state-based nationalism/patriotism의 의미로든) '국가주의'와 '민족주의'([ethnic] nationalism)개념이 일본과 달리 구별되는 이념이기 때문에 혼동의 여지가 있다.[13]

주로 파시즘에서 말하는 국가주의는 이 문서에서 다루는 국가주의(statism)이 아니라, 오히려 민족주의나 내셔널리즘([ethnic] nationalism)을 의미하는데, 문제는 일본 제국시절에 국가사회주의 독일 노동자당, 국가 파시스트당, 독일 국가인민당, 이런식으로 극우세력에서 사용되는 의미의 Nation을 "국가"라고도 자주 번역하였기 때문에, 한국에서 "국가주의"라는 용어는 "민족주의"라는 용어에 비해 더 나쁜 뉘앙스를 가지는 경우가 많다. 그러나 이는 위에서 설명했듯이 일제가 자기들 멋대로 오역한 개념에 가깝고, 서구권에서는 보통 나치즘이나 파시즘을 연상케 하는 뉘앙스의 개념은 민족주의(ethnic nationalism)이며, 국가주의(statism)는 경제 개입주의나 민족주의 여부와 무관하게 국가의 간섭 등 파시즘과 무관한 뉘앙스에서 쓰이는 경우가 많다. 예시를 들자면, 가령 구미권에서 딱히 내셔널리즘 성향이 없는 사회민주주의 정부가 들어섰을 때, 사회 복지 확충을 위해 국가가 경제 개입을 늘리려고 하거나 하는 경우에도 이에 반대하는 고전적 자유주의 자유지상주의 성향 사람들이 이를 국가주의(statism)라고 표현한다. 이와 비슷하게 케인스 경제학은 '국가주의'로 지칭되며, 신자유주의는 '시장주의'로 지칭된다. #

한국인들이 흔히 국가주의 하면 떠올리는 Nationalsozialistische Deutsche Arbeiterpartei은 "국가사회주의 독일 노동자당"이 아니라 "민족사회주의 독일 노동자당"으로 번역하는게 더 정확한 의미이지만[14], 국내에서 전자가 워낙 많이 사용되어 왔기 때문에 전자의 의미로 계속 쓰고 있는 것에 가깝다. Partito Nazionale Fascista도 이와 비슷한데, 파시즘이 에스닉 내셔널리즘적 성격이 두드러지는 이념이라는 점을 감안했을때 이를 직역하면 "국가 파시스트당"이 아니라 "민족 파시스트당"의 의미에 더 가깝다.

애초에 국가주의(statism) 자체에는 "국익을 위해 희생하라" 혹은 "우리 나라가 가장 위대하다" 같은 의미는 없다. 그건 내셔널리즘이나 국수주의(Ultranationalism), 말그대로 극단적 내셔널리즘이라는 의미라고 불리는 것이다. 영어로 국가주의(statism) 내셔널리즘을 구글링해 보면, 내셔널리즘은 극우파들이 자국 깃발을 들고 시위하는 모습이 나오고, 국가주의의 경우 특정한 부류의 사람들이 만든 듯한 짤방이 나오는 것을 볼 수 있다.

이런 명칭의 혼동 문제 때문에 statism을 아예 국가통제주의(國家統制主義)라고 좀더 노골적인 용어로써 번역하는 경우도 있다.[15] 다른 방식으로 이해하기 쉽게 표현하자면 8values에서 두번째 축이 얼만큼 내셔널리스트적인가[16], 세번째 축은 얼만큼 국가주의적(statism)인가를[17] 표현한다.

미국의 아나키스트 벤자민 터커는 다음 말로 국가주의(Statism)를 비판하는데, 이 발언이 한국에서 내셔널리즘의 번역어로 오용되곤 하는 국가주의와 어떻게 따른지 유심히 생각해 보자.
"개인에게 스스로를 통치할 권리가 있다면, 모든 외부의 정부는 폭정이다."[18]
벤자민 터커[19]
이탈리아의 에리코 말라테스타라는 아나키스트는 국가주의에 대해 다음과 같이 언급한다.
필자를 포함한 아나키스트들은 국가(State)라는 말을 사용해 왔고, 여전히 정치, 입법, 사법, 군대 및 금용을 통해 자신을 관리하는 기관을 가르키기 위해 국가라는 말을 사용하고 있으며, 민중에게서 그들의 행통에 대한 자율권, 개인 안전에 대한 책임을 위임이나 강탈을 통해 빼앗아 모든 사람들에게 적용되는 법을 제정하고 필요한 경우 집단적 무력을 사용하여 사람들에게 강요할 권한을 가진 기관을 뜻하는 의미에서 국가라는 말을 사용하고 있다.

이런 의미에서 국가라는 말은 통치를 의미하거나 다른 식으로 표현하자면, 비인격적 추상적 표현들이 정부에 의해 의인화 되는 것이다...[20]

그러나 이 말에는 다른 의미들이 있으며, 그 중 일부는 오해를 불러일으키기도 한다. 특히 불행한 사회적 상황으로인해 정치과학적 언어의 미묘한 차이에 익숙해질 기회를 갖지 못한 사람들에 의해 사용되거나, 혹은 나쁜 정치적 신념을 가진 세력이 이해가 아닌 혼란을 조장하기 위해 사용할때 이 문제가 악화된다.

따라서 국가라는 말은 자주 특정한 집단의 사람들이 특정한 지역에 모여 그 집단의 구성원들이 그룹화된 방식이나 그들 사이의 관계와 상관없이 사회적 단위라고 불리는 것을 구성한 상태를 의미한다. 이것은 또한 단순히 사회와 동어어로서 사용된다. 따라서 국가라는 말에 주어진 이런 의미들 때문에 아나키스트의 반대파들은 아나키스트들이 모든 사회적 유대와 인간의 협업을 파괴하고 모든 사람들이 야만적인 상태에서 사는 것보다 더욱 나쁜, 모든 인간이 고립된 사회를 원한다고 믿거나 믿는 척을 한다.

국가라는 말은 또한 지방이나 집단의 권위와 대립하는 중앙 권위로서, 한 나라의 최고 행정 기관을 의미하기도 한다. 이런 이유로 어떤 이들은 아나키스트들이 정부의 원칙은 그대로 두고 단지 지역 분권화를 원한다고 믿는다. 따라서 그들은 아나키즘을 지역주의(cantonalism)나 공동체주의(communalism)와 혼동한다.[21]

미하일 바쿠닌은 고전 마르크스주의를 비판하기 위해 작성한 Statism and anarchy라는 글에서 자유는 자유를 통해서만 탄생할 수 있다고 주장하면서 앞의 논리를 다음과 같은 말로 비판한다. "사람들이 몽둥이로 맞고 있을 때, 그 몽둥이가 “민중의 지팡이”라고 불린다고 해서 행복해 하진 않을 것이다" 이말은 노암 촘스키가 권위주의 좌익 세력을 비판하면서 수십년 전부터 입에 달고 사는 말인데다가 여러 상황에 적용될 수 있는 적절한 표현(정치에서 좌우 가릴것 없이)이라, 서구권에서는 바쿠닌의 어록 중에서 가장 잘 알려져 있다.
"좌파가 인간을 그저 환경을 반영하기만 하는 역사의 산물이라고 규정하게 된 것은 커다란 비극이자 재앙입니다. 그런 결론을 바탕으로 그들은 사람들을 자신이 원하는 방향으로 몰아세우는데 모든 도덕적 장벽을 없애 버렸습니다. 인간에겐 내적 본성 같은 것은 없고, 인간의 내면엔 자유에 대한 강렬한 본능이 없으며, 자유, 창의성, 자신이 통제하는 환경에서의 생산활동 같은 것들이 그들이 원하는 근본적 본능 같은 것들이 아니라면... 당연히 사람들에게 그런 환경을 제공해야 할 도덕적 이유 또한 존재하지 않았던 것입니다. 그때 그들은 민중을 그저 그들이 해야 한다고 생각하는 일들에 강제로 몰아세우기만 하면 되는 것이었습니다... 바쿠닌은 19세기 후반에 마르크스와 함께 이것에 대하여 논쟁했습니다. 그때는 레닌주의가 등장하기 전이었지만, 새로운 계급이 등장하여 특권을 장악하는 두 가지 방향을 정확히 예견했습니다. 한쪽은 노동 계급의 투쟁이 그들이 권력을 장악할 기회라고 생각하는 이들이 나타날 것이라는 생각이었는데, 그는 그들이 인류 역사상 유례가 없는 폭정을 펼치는 붉은 공화국을 만들어낼 것이라는 것이었습니다. 또 다른 한쪽은 자신이 그러한 방법으로는 권력을 얻어내지 못할 것이라고 생각하는 이들이 있을 것이며, 국가자본주의에 귀의해서 지배계급의 충성스러운 종이 되어 국가자본주의 체제의 관리자나 이데올로그가 될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바쿠닌은 그들을 "민중의 지팡이로 민중을 때리는 자"라고 표현했습니다. 다른 식으로 표현하자면, 그들은 민주주의라는 말을 할 것이지만, "민주주의라는 이름이 붙은 몽둥이로" 진짜 민중을 때려눕히는 자인 것입니다..."
미하일 바쿠닌 #

문제는 한국에서는 자신이 아나키스트라고 자칭하는 사람들조차도 국가주의와 내셔널리즘을 구분 못하기 때문에, 국가주의적 발언을 남발하기도 한다. 사실 한국 이념계가 이렇게 개막장이기 때문에 박노자 같은 소련을 옹호하는 레닌주의자가 아나키스트를 자칭하고 다녔음에도 누구도 반박하지 않았던 것. 실제로 블라디미르 레닌 안티내셔널리스트이다. 그러나 레닌은 내셔널리즘을 반대한 것이지, 경제/사회 등등에서 매우 강력한 권위주의적인 국가주의자(statist)였다. 국가주의를 내셔널리즘으로 해석한다면 레닌은 반국가주의자(anti-nationalist)가 맞지만, 아나키스트들은 내셔널리즘 뿐 아니라 statism을 반대한다는 의미에서도 반국가주의자(anti-statist)이다.

이는 한국어 화자들 사이에서 '국가통제주의'(statism)와 '국가 기반 내셔널리즘'(state-based nationalism/patriotism)을 엄격하게 구분하지 않고 둘 다 '국가주의'라고 지칭하는 문제에서 비롯된다. 예시를 들자면 다음과 같은 사례들이 있다.
이 문서에서 다루는 국가주의는 내셔널리즘적 의미의 국가주의(state-based nationalism/patriotism)가 아니라 국가통제주의의 의미에서 국가주의(statism)에 대해 다루고 있다. 따라서 혼동의 여지 없도록.

5. 철학적 입지

사실 국가를 우선시하는 사상 그 자체로 국가주의를 정의하자면, 20세기 이후의 파시즘이나 경찰국가주의 등 뿐만이 아니라, 사회계약론 중 홉스의 입장이나, 왕권신수설 등 전근대적 전제군주제를 옹호하는 사상 역시 이 범주에 포함된다고도 해석될 수 있다. 동양의 유가적, 노자[23] 또는 법가적 통치 이념 역시 국가에 상당한 비중을 두기 때문에, 이 쪽으로 어쨋든 이 주장에 따분류할 수도 있다. 즉 넓게 잡으면 한도 끝도 없다. 애초에 국가라는 존재 자체가 없었던 경우는 인류 역사상 멀디먼 구석기 시대에서나 가능했기 때문에 집단이 생기고 국가가 생기면서부턴 국가라는 존재 자체를 부정한다는 생각 자체도 못 하는 경우[24]가 많아지게 되었다. 현재만 봐도 이 지구상에서 국가라는 이름으로 차지되어지지 않은 땅이자 육지는 남극 대륙뿐이다. 심지어는 이조차도 영국, 프랑스, 호주, 뉴질랜드, 노르웨이, 칠레 아르헨티나의 총 7개국이 영유권 주장을 하고 있는 실정이다.

국가주의에 대해 좀더 철학적으로 깊게 들어가자면 사실상 아나키즘적 정치관, 그리고 실존주의적 인간관의 대척점에 있는 모든 관념들이라고 볼 수도 있다. 즉, 개별체의 존재와 특성보다 보편화된 공동체의 규범을 중시하는 관점이라고 정리할 수 있다. 물론, 국가주의의 협의, 그리고 이 사상의 이름 자체가 "국가"주의인 것으로 알 수 있듯이, 보편화된 공동체의 가장 일반적인 표상이 국가에 의한 지배 체제이다. 물론, 넓은 의미에서 보면 국가뿐만이 아닌 작은 공동체, 종교 교단, 군벌, 심지어는 구체적인 조직이 아닌, 형이상학적인 이상이나 규범까지도 개체의 존재보다 우선시되는 보편적 존재로 작용할 여지가 있으며, 이러한 것들을 지나치게 중시하는 경향 그 자체를 국가주의적인 태도로 해석할 수도 있다. 철학사를 살펴 보면 쉽게 알 수 있겠지만, 일체의 형이상학적 담론 그 자체가 결국은 이러한 넓은 의미의 국가주의와 연결되기 쉬운 편이다. 예컨대, 플라톤의 이데아론은 결국 철인에 의한 "통치"와, 그 통치의 구조를 정당화하며, 성리학적 관념론도 결국은 형이상학적인 만물의 이치를 "깨우친 사람"이 깨우치치 못한 사람을 통치해야 한다는 담론으로 연결되는 것을 확인할 수 있다. 심지어 자연주의적이라고 오독되기도 하는 노자의 사상 역시 결국은 자연계와 천지 만물을 관통하는 "도(道)"에 따르는 통치를 통해 천하를 다스리는 것이 세상에 유익하다는 판단을 내린다. 또한, 전 시대의 형이상학에 대한 비판 때문에 흔히 실존주의로 해석되기도 하는 하이데거의 존재론 역시 결국 "존재자(das Seinde)"보다 조금 더 초월적인 "존재(das Sein)"를 중요시하는 형이상학적 담론의 연장선상에 있다고 볼 수 있는데, 이를 보면 그가 왜 게르만 민족주의와 나치즘을 옹호했는지 알 수 있을 것이다. 물론 초월적, 보편적 규범의 선천성을 인정하는 기독교적 사유에 대해서는? 더 이상의 자세한 설명은 생략한다.[25]

공산주의를 실존했던 공산국가나 경제적 관점만을 들어 이론적으로 국가주의라고 이해하는 것은 어폐가 있다. 물론 현실사회주의를 비롯한 다양한 공산주의 정책을 시행한 국가가 국가주의적 면모를 보인 건 부정할 수 없지만, 이론적으로 카를 마르크스가 지향했던 공산주의는 사회적으로 아나키즘과 유사하다. 본래 마르크스주의 이론에서 사회주의 혁명은 유물론적 분석에 의하면 사회주의 혁명은 자본주의가 가장 발달한 곳에서 가능한 것이다. 자본주의가 발달해야 노동계급이 형성되고 자원을 둘러싼 투쟁이 가속화되어 계급의식이 형성되며 궁극적으로 프롤레타리아 혁명이 이루어질 수 있다는 것이다. 물론 생산력이 뒷받침 되어야 분배도 가능할 것이다. 당시 러시아 제국은 반대로 유럽에서 가장 후진적인 국가였기에, 레닌은 이런 이론과 현실의 모순을 타파하기 위해 제국주의론을 주창한다. 말하자면 제국주의는 자본주의의 최종단계이기 때문에 프롤레타리아 혁명이 가능하다는 것이다. 이에 대하여 프레디 펄만이라는 아나키스트는 제국주의가 비교적 최근의 현상이라는 주장은 과거에 존재한 여러 제국들의 패권에 의한 제국주의가 존재했음을 언급하지 않는 왜곡행위이며 이를 통해 혁명적 좌파 민족주의자라고 자칭하는 이들이 그들의 민족주의가 나치와 파시즘과는 관련이 없고 해방의 힘이라고 주장하며, 내셔널리즘을 전파하는 수단이 되고 있다고 비판했다.[26] 어쨋든 이 주장에 따라 레닌주의자들은 제국의 식민지 세력을 지원했는데 이건 좌익 내셔널리즘이라는 혼종의 기원이 된다. 이후 혁명을 통해 권력을 장악 했지만 말로는 마르크스의 원래 주장과의 모순을 가릴 수 있었지만, 후진국의 현실을 가릴수는 없었기에 자칭 사회주의 국가의 지도층은 후진국을 산업화 시키기 위해 인민을 갈아넣으며 개발 독재를 펼쳤다. 이는 자본주의 진영의 개발독재자들과 별반 다르지 않았고 권위주의 체제의 비효율성과 부패가 축적되어 결국 그러다가 망한 것이다.[27]

레닌주의자들은 모든 문제를 스탈린에게 넘기면서 정신승리 하지만 바쿠닌과 마르크스가 싸운후에 맑시즘과 아나키즘이 결별한 이유가 바쿠닌이 마르크스를 국가주의자라고 결론 내렸기 때문이다. 하나의 당이 국가의 절대권력을 장악하고 경제를 통제하며 부르주아 문화[28]를 억제해야 한다고 주장하는 사상이 어떻게 국가주의가 아니라고 할 수 있는지 생각해보자. 이는 개인의 일탈(스탈린)의 문제가 아니라 중앙 권력을 절대화하는 이데올로기의 필연적인 결과다. 촘스키는 초기 마르크스주의가 이데올로기적으로 일관되지 않으며 반국가주의와 국가주의 사이의 대립이라고 존재한다고 주장했다. 이러한 긴장에서 전자는 로자 룩셈부르크를 거쳐 "좌파 공산주의"로, 후자는 레닌을 거쳐 레닌주의로 분열됐다고 주장한다.[29]

마르크스가 최종적으로 지향한 공산주의를 이룩한 국가는 전무한 셈. 사람들이 공산주의를 자본주의와 대비하여 경제적으로만 계급, 평등을 해석하니 나오는 오류 중 하나. 공산국가 권력자 중 마르크스의 사상을 제대로 이해한 사람이 드물지도 모른다. 경제적으로 봐도 이러한 국가의 경제정책은 엄격한 마르크스주의적 관점에서 보면 국가자본주의라고 비판할 수도 있다.[30][31] 거대 자본가의 "사유"가 정부와 당의 "국유"로 전환되었을 뿐, 민중은 여전히 공산주의적 삶을 누리지 못한다는 게 포인트. 진정한 사회주의를 실현하기 위해서는 노동자 평의회에 의해 노동자 민중이 경제를 비롯한 사회 운영을 총괄해야 한다는 입장이다.

철학적으로 국가주의는 자유지상주의적 철학과 상극으로 여겨진다. 자유지상주의자들은 statism이나 statist라는 용어를 부정적으로 많이 사용하는데 좁은 의미의 국가주의 뿐 아니라, 케인스주의 경제정책이나 혐오발언 규제 등 논쟁의 여지가 있는 부분까지 statism이나 statist라고 부르며 비난하기도 한다.

6. 관련 문서



[1] Cudworth, Erika (2007). The Modern State: Theories and Ideologies: p. 95 [2] Salmon, Trevor C. (2008). Issues in international relations. Taylor & Francis US p. 54 [3] 한국으로 치면 주요 양당 중 더불어민주당의 경제정책이 좀 더 국가주의적이고, 국민의힘의 경제정책이 좀 더 시장주의적이다. [4] 다만 모든 우파가 징병제를 찬성하는 건 아니다. 모병제는 어찌보면 국방산업을 민영화하는 것과 비슷한 것으로 볼 수 있고, 시장경제와 개인의 자유의사를 중시한다는 자유(지상)주의 우파 입장이라면 더더욱 징병제는 달갑지 않은 문제다. 론폴만 하더라도 징병제를 대차게 깐다. [5] 이 사상들은 기존 국가 체제 및 소유와 지배의 관계를 인정하는 선에서 진보적인 방법론을 도입하자는 사상이기 때문에 국가체제의 존재를 중시하는 경향이 강하다. 카를 마르크스고타 강령 비판에서 사민주의적 방법론을 비판한 것도 이러한 맥락 때문이다. [6] 케네디는 재임 시절 세계시민적인 의식을 여러번 비췄었다. 반기문 전 UN사무총장도 국내언론 사설에서 어릴적 케네디와 만났던 기억을 떠올리며 그의 세계시민주의적인 사고를 회고했을 정도. 케네디의 해당 발언은 시민 개개인이 국가나 세계에 큰 영향을 줄 수 있을 만큼 강한 권리와 자유를 가졌다는 데에 강조점을 둔다. 즉 국가에 맹목적으로 충성하라는 게 아니라 국가가 올바른 길로 갈 수 있게 적극 개입하라는 뜻으로도 해석이 가능하다. [7] 이를테면 충분한 법이 갖추어지지 않는다면, 노동자는 고용주에게 예속되어 제대로 된 자유를 누리지 못할 것이다. [8] 즉 시민 자유와 대립하여, 국가 권력(국가주의)을 얼마만큼 허용하는가? [9] 우익 자유지상주의 사상 중의 최소국가주의(minimal statism) 역시 질서의 중재자로서 최소 국가를 인정하기 때문에 엄격하게 말하자만 국가주의라고할 수 있다. [10] 오해하면 안되는게, 성리학에서는 기본적으로 백성이야말로 나라의 근본이라 가르친다. 이런 식의 위계질서 옹호는 성리학 때문이라기보단 중국에서 유래된 관료질서에 따른 한중일의 공통적인 문화라 봐야하며, 사실 조선은 순수 유학으로만 나라를 통치했다기보단 법과 군주, 질서를 중시하는 법가사상의 영향도 꽤 받았다. [11] 쌀을 재배하는 동아시아 문화권 국가들은 높은 인구 부양력을 보유했다. [12] 하지만 항목 보면 알 수 있듯이, 비판이 있는 조어이다. [13] 반북 성향의 브라이언 마이어스 교수도 이를 지적한 바 있다. # 다만 마이어스 교수도 국가주의(statism)를 내셔널리즘(state-based nationalism/patriotism)과 혼동해서 사용하는 경향이 있는데 이는 후술한다. [14] 사실 Volk가 아닌 Nation이 사용되었기 때문에 "국민사회주의 독일 노동자당"이 더 정확한 의미이다. 다만 나치즘 자체가 독일식 '(종족)민족주의'에 기반한 사상이기에 민족으로 번역하는 것도 틀린 것은 아니다. 확실한 건 State가 아니기 때문에 "국가사회주의 독일 노동자당"은 분명 잘못된 번역이다. [15] 다만 국가통제주의가 자주 쓰이는 번역은 아니다. [16] 왼쪽에 가까울 수록 내셔널리스트 오론쪽에 가까울 수록 국제주의자 [17] 왼쪽으로 향할수록 친아나키즘, 오른쪽으로 향할수록 전체주의 경향 [18] 개인만이 그 자신의 주권자(자기소유권)라는 도덕적 입장에 따라 국가주의를 비판하는 문장이다. [19] state Socialism and Anarchism: How Far They Agree, and Wherin They Differ, p.28 [20] 진짜 민중의 권리를 대변하지 않고 정부에서 만들어낸 허위 민중의 형상에 진짜 민중을 끼워 맞추고 우겨 넣는다는 의미다. [21] https://theanarchistlibrary.org/library/errico-malatesta-anarchy [22] 해당 기사에서 주장하는 국가주의는 김병준이 말하는 의미의 국가주의인 statism과 연관이 없고 state-based nationalism이나 patriotism을 말한다. 즉, 문재인 정부는 state-based nationalism이나 patriotism이 아니므로 국가주의가 아니라는 말인데, 김병준이 말하는 국가주의는 statism, 즉 국가통제주의를 의미함으로, 해당 기사는 말도 안되는 주장이다. [23] 흔히 도가의 신비주의적 이미지 때문에 잊혀지기도 하지만, 도가 중 노자의 사상은 상당히 교묘한 통치술에 기반한 정치철학을 포함한다. 다만 도가 중에서도 장자의 노선은 노자와는 전혀 다른, 아나키스트에 가까운 쪽이다. 애초에 도가라는 분류 자체가 제자백가를 연구하는 후세인들이 멋대로 묶은 기준에 가깝다. 다만 노자를 전형적인 국가주의자라고 보기는 애매한 게, 국가와 치자의 존재는 인정하되 그 사실을 국민이 느끼지 않는, 즉 개인의 권리를 침해하지 않는 국가를 지향했다는 점에서 자유지상주의자와 닮은 점도 많다고 볼 수 있다. 다만 노자식의 통치술로 인해 피통치자가 통치자의 존재를 못 느낀다고 해서 피통치자의 권리가 침해되지 않는다고 단정짓기도 힘들며, 오히려 피통치자가 자발적으로 통치자에게 복종하고 착취당하는 체제가 안정적으로 형성된다고 볼 수도 있다. 이러한 면에서 노자식 통치는 포퓰리즘적 국가권력을 논한다고도 할 수 있다. [24] 이러한 인식을 지적한 문장을 마르크스의 자본에서 인용하자면, "어떤 인간이 왕이라는 것은 다만 다른 인간들이 신하로서 그를 상대해 주기 때문이다. 심지어 그들은 그가 왕이기 때문에 자기들이 신하가 아니면 안 된다고까지 믿고 있다." [25] 다만, 기독교적 사유 내에서도 보편성보다 개별성과 실존을 더 중시하는 사고방식은 늘 존재해왔으나, 이단으로 몰려 배척받은 경우가 많다. 대표적으로, 오컴의 윌리엄 등이 주장한 유명론이나, 흔히 범신론으로 이해되는 바뤼흐 스피노자의 존재론이 이러한 경향을 보인다. 또한, 실존주의적 사상 중에도 유신론적 전제를 통해 실존의 중요성과 자유를 논하는 사상들이 존재한다. 즉, 기독교와 국가주의의 연관성에 의문을 품으려면 기독교적 사고방식이 늘 국가주의적, 형이상학적 담론으로 통하지만은 않을 수도 있다는 것에 유념해야 한다. [26] https://theanarchistlibrary.org/library/fredy-perlman-the-continuing-appeal-of-nationalism [27] 이 때문에 사회주의자들 중에 "국가자본주의 이론"을 언급하는 자들이 존재하는 것이다. [28] 물론 대중은 사회주의를 이해할 만큼 똑똑하지 않고 부르주아 구조가 만들어낸 허위의식에 홀려있기 때문에 무엇이 해로운가를 결정하는 것은 전위대의 독단적인 권위다. [29] Chomsky, 2005, pp182-184 [30] Tony Cliff, State Capitalism in Russia. 1974. 영국의 국제사회주의 계통에 몸담은 양반이다. 참고로 위 책은 국내의 다함께에서 '소련은 과연 사회주의였는가'라는 제목으로 한역본을 냈다. [31] 토니 클리프의 이러한 입장을 계승한 국제 공산주의 조직이 바로 국제 사회주의자 경향(IST)이며 한국의 노동자연대(구 다함께)가 이 IST에 소속되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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