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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오세티야 전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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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오세티야 전쟁
Вооружённый конфликт в Южной Осетии
რუსეთ-საქართველოს ომი
Russo-Georgian War
파일:663452342364646.jpg
조지아 국경을 넘어 진격하는 러시아 연방군 소속 T-72B
날짜
2008년 8월 8일 ~ 2008년 8월 12일
장소
조지아 북부[1]
교전국

[[러시아|]][[틀:국기|]][[틀:국기|]]

[[남오세티야|]][[틀:국기|]][[틀:국기|]]

[[압하지야|]][[틀:국기|]][[틀:국기|]]

[[조지아|]][[틀:국기|]][[틀:국기|]]
지원국

[[미국|]][[틀:국기|]][[틀:국기|]]

[[이스라엘|]][[틀:국기|]][[틀:국기|]]

[[우크라이나|]][[틀:국기|]][[틀:국기|]]
지휘관
파일:러시아 국기.svg 드미트리 메드베데프
파일:러시아 국기.svg 블라디미르 푸틴
파일:러시아 국기.svg 아나톨리 세르듀코프
파일:러시아 국기.svg 마라트 쿨라흐메토프
파일:남오세티야 국기.svg 에두아르트 코코이티
파일:조지아 국기.svg 미헤일 사카슈빌리
파일:조지아 국기.svg 다비트 케세라슈빌리
전력

[[러시아|]][[틀:국기|]][[틀:국기|]] 70,000명

[[남오세티야|]][[틀:국기|]][[틀:국기|]]
- 병력 3,000명
- 평화 유지군 1개 대대

[[조지아|]][[틀:국기|]][[틀:국기|]]
- 병력 10,000여 명
- 경찰 810명
피해 규모

[[러시아|]][[틀:국기|]][[틀:국기|]]
- 67명 전사
- 283명 부상
- 1명 실종
- 12명 포로
- 4대의 전차 상실
- 1대의 폭격기 격추

[[남오세티야|]][[틀:국기|]][[틀:국기|]]
- 87명 전사
- 69명 부상
- 27명 포로
- 민간인 162명 사망
- 민간인 225명 부상

[[조지아|]][[틀:국기|]][[틀:국기|]]
- 180명 전사
- 1,174명 부상
- 4명 실종
- 49명 포로
- 민간인 224명 사망
- 민간인 547명 부상
- 전차 20대 상실, 65대 피탈
- 장갑차 20대 상실, 15대 피탈
- 자주포 2대 상실, 8대 피탈
- 대공미사일 체계 8개 상실 및 피탈
- 공격기 3대, 수송기 2대, 헬기 3대 격추
- MCRC 상실
- 해군 전력 전멸
- 다수의 군수 물자 및 미국 지원품 상실
결과
러시아, 남오세티야, 압하지야의 승리
영향
러시아-조지아 관계 악화로 인한 외교 관계 단절
조지아의 독립 국가 연합 탈퇴 및 친서방 외교 전향
압하지야, 남오세티아의 완전한 독립

1. 개요2. 배경3. 전개4. 각군의 실태
4.1. 차포 떼고 선공을 한 조지아군
5. 결과
5.1. 조지아의 피해5.2. 무기 압수
6. 후폭풍
6.1. 한국에 끼친 영향
7. 미헤일 사카슈빌리의 거취
7.1. 긍정론7.2. 부정론
8. 이후9. 여담10. 관련 문서11. 둘러보기

[clearfix]

1. 개요

파일:attachment/south-ossetia-war-1.jpg
사람 아기 불곰을 때렸고, 어미 불곰이 그를 박살 냈다.
사람은 미국, NATO, 유럽 연합을 불러보지만 아무도 오지 않았다.
파일:attachment/54164_600.jpg
"...어디 원하는 만큼 「 엉클 샘」을 외쳐보시지."[2]
2008년 8월 8일[3] 미헤일 사카슈빌리 정부하에 친서방 행보를 보이기 시작한 조지아가 러시아가 지원하는 미승인국 남오세티야[4]를 '수복'하기 위해 공격하자 남오세티야를 지원하는 러시아가 군사적으로 전면 개입하면서 발발한 전쟁이다. 같은 해 8월 12일 나흘 만에 러시아의 일방적인 승리로 종료되었다.

이 전쟁 당시에는 조지아의 나라 이름이 러시아어식 명칭인 '그루지야(Грузия)'로 한국을 비롯해 국제적으로 알려져 있었고 또한 대한민국의 공식 표기법이 그리하였기 때문에 그 당시의 언론 보도 등은 그루지야로 검색해야 찾아볼 수 있다. 전쟁이 끝나고 다음 해인 2009년 그루지야 외무부에서 명칭을 영어식인 조지아로 써달라고 부탁하였고 이후부터 조지아로 불리게 되었다. 참고로 조지아어로는 둘 다 아니고 '사카르트벨로(საქართველო)'라고 부른다.

러시아는 소련 붕괴 이후 1990년대 내내 지속된 정치, 경제, 사회 전반의 혼란과 국방력 약화에 시달리다가 2000년대 고유가 시대에 힘입어 국력을 회복하는 추세였는데, 남오세티야 전쟁은 이러한 러시아의 부활을 알리는 동시에 신냉전의 시작을 알리는 사건이 되었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2. 배경

원래 남오세티야[5] 소련의 일부였던 그루지야 SSR 내의 자치주(AO)였으며 자치 정부가 존재하였다. 그러나 1980년대 말 그루지야 SSR에서 내셔널리즘이 부흥하고 1990년 11월 14일 그루지야 SSR이 조지아 공화국으로서 독립을 선포하자, 남오세티야 AO는 남오세티야 소비에트 민주 공화국(South Ossetian Soviet Democratic Republic)으로 독립을 선언하고 소련 잔류 의지를 표명했으며 이에 조지아는 남오세티야의 자치권을 박탈했다. 남오세티야 일대가 무정부 상태에 접어들자 조지아 정부가 군을 파견했고 1991년 이후 1년간 내전이 벌어졌다. 이를 1991~1992년 남오세티야 전쟁으로 부르기도 한다.

양측은 러시아가 개입한 3자 합의에 의해서 츠힌발리 지역을 공동으로 관리하기로 해 겨우 정전에 합의하게 되고, 이로 인해 남오세티야와 러시아의 밀월 관계가 시작된다. 감사후르디아를 몰아내고 집권한 전(前) 소련 외무 장관 에두아르드 셰바르드나제 조지아 대통령은 사실상 분리 독립 한 압하지야와 남오세티야에 대한 영토 주권을 수복하기 위해 러시아에 접근했지만 러시아는 이들 지역의 소수 민족에 동정적이었던 데다 이들을 장기말로 삼아 장기적으로 캅카스 지역에 대한 영향력을 회복하려고 했기 때문에 허사였다. 이에 셰바르드나제는 점차 서방과 협력을 추구하게 된다.[6]

이후 21세기 들어 고유가 영향으로 부활에 성공한 러시아와 그와 대치한 미국 유럽 연합 사이에서 전개된 파워 게임이 촉발되게 된다. 2003년, 장미 혁명으로 셰바르드나제를 몰아내고 정권을 잡은 미헤일 사카슈빌리는 미국에서 변호사로 일한 적도 있는 친미파에다 반러 민족주의자로서, EU에게 조지아의 NATO 가맹 합의를 이끌어내고 미국에게는 거액의 군사 원조를 받아내는 데 성공한다. 또한 카스피해와 중앙아시아로부터 생산되는 원유 천연가스의 주요 수송로라는 지리점 이점을 활용하여 러시아에 대한 에너지 의존도를 낮추기 위해 아제르바이잔 바쿠(Baku), 조지아 트빌리시(Tbilisi), 터키 제이한(Ceyhan)을 잇는 BTC 파이프라인을 건설했다.

그리고 2006년, 남오세티야 공화국의 국민 투표[7]에서 잠재되어 있던 문제가 터진다. 선거 결과는 반대 60표(0.12%)로 독립파의 압승으로 끝났지만 조지아 정부는 이를 '러시아에 의한 강제 병합 음모'라 비난하면서 군사적 긴장이 고조된다. 2008년 8월 1일 츠힌발리 도로 주변을 순찰하던 조지아 경찰 트럭이 IED에 피해를 입어 5명이 부상당했다. 조지아군이 보복으로 저격 공격을 하여 남오세티아 병력 4명을 사살했다. 이에 남오세티야군은 국경에 인접한 조지아 마을에 포격을 가했다. 양측은 포격을 주고 받아 사상자가 많이 나왔다. 이로 인해 조지아군은 남오세티야를 진압하기 위해 자치주로 진공을 결정했다.

2008년 2월 17일, 코소보 세르비아로부터 독립을 선언해 버리자 미국 영국, 독일, 프랑스 등 서방 20개국이 코소보의 독립을 곧바로 공식적으로 인정해 코소보는 일방적으로 세르비아에서 독립해서 나오게 된다. 이에 남오세티야와 압하지야는 코소보의 독립 선언 직후 자신들도 러시아와 유엔에 독립 승인을 요구하겠다고 밝혔다. 러시아 또한 서방의 일방적인 코소보 독립 추진에 반발한 상태였는데 2008년 2월 15일 외부무 성명에 서방에 의해 코소보의 일방적 독립이 인정된다면 조지아 내 두 공화국에 대한 러시아의 태도가 바뀌게 될 것이라고 경고했다.

이 전쟁의 책임이 누구에게 있냐에 대해서 당사자인 조지아와 남오세티야의 의견은 당연하게도 상반된다. 남오세티야가 조지아를 상대로 독립을 요구하고 일어났고 조지아는 그런 독립 요구를 받아들이고 있지 않기 때문이다. 역사적으로 보면 현재의 남오세티야가 있는 남캅카스는 원래 오세트인들의 땅이 아닌 조지아인들의 땅으로, 17세기에 캅카스 북쪽에서 넘어온 오세트인들을 당시 조지아인들이 세운 카틀리 왕국의 국왕이 남캅카스 일대에 거주하도록 허락한 것이 남오세티야의 시초이다.[8] 오세트인들은 역사적으로 이 지역에 국가를 세운 적이 없으며, 이들이 조지아 북부에 정착해 들어온 것은 약 300여 년 정도이다. 조지아 입장에서는 지금의 남오세티야 지역은 고대부터 역사적으로 이어져 온 조지아의 영토이다.[9] 국제법상으로 보면 남오세티야는 미승인 국가[10]이며 조지아 입장에선 분리주의 단체에 불과하다. 또한 남오세티야가 선제적으로 조지아인 마을을 폭격하거나 조지아군을 상대로 먼저 피해를 입힌 점 역시 고려해야 한다. 하지만 조지아-러시아-남오세티야 간의 평화 유지군에 의해 공동 관리 되던 남오세티야의 수도인 츠힌발리를 선제공격한 것은 앞선 도발과는 양상 자체가 다르기 때문에 전쟁 책임을 남오세티야만의 것으로 볼 수는 없다.

그러나 오세트인의 입장에서는 전혀 다르다. 엄연히 남오세티야 지역은 소련 시절부터 오세트인 자치주가 있었고, 조지아가 이를 일방적으로 해산시킨 것이기 때문에 조지아가 책임이 없다고 볼 수 없다. 또한 해당 지역은 엄연히 오세트인이 다수이며 이것도 오세트인의 강점이 아니라 엄연히 허가받고 들어와서 사는 것이고 자치주 역시 누가 외압을 줘서 만든 게 아니라 조지아가 스스로 줬다가, 갑자기 조지아 내 민족주의가 발흥해 조지아어를 남오세티야 자치주 공용어로 지정하는 것을 반대했다고 자치권을 없애는 행위를 한 것이 시작이었기 때문이다.

이와는 별개로, 양국 분쟁의 평화 유지군[11]의 역할을 맡은 러시아가 남오세티아를 편들며 참전한 것이 정당한지에 대해서는 논란이 존재한다. 당시 러시아의 참전 과정을 보면, 조지아가 러시아 평화 유지군이 주둔하고 있는 츠힌발리를 침공하면서 러시아군을 선제적으로 공격했으며 단순히 남오세티야 진압에서 끝나지 않고 러시아계 민간인, 오세트인, 친러 성향 민간인에게도 공격을 가하는 등[12] 상당히 무리한 공세를 한 덕에 서방에서도 조지아를 지원할 수 없었다. 이러한 상황에서 러시아는 조지아의 행동을 침략으로 규정하고 자국민 생명 보호를 이유로 참전한 것이다. 여기까지만 보면 러시아의 참전에 문제가 없어 보인다. 그러나 진짜 문제는 이 러시아 자국민의 범위가 어디까지냐는 것이다.

위 문단에서 설명하는 러시아 자국민의 범위가 논란이 되는 이유는, 2002년 남오세티야와 압하지야[13]를 대상으로 자국을 떠나지 않고도 편리하게 시민권을 취득하고 이중 국적을 허용하는 법안을 통과시키고 남오세티야의 인구의 약 90%가 이 법안을 통해 러시아 시민권을 획득했다는 것이다. 즉 이 모든 것이 러시아의 계획이라면, 러시아가 보호하고자 하는 자국민이 애초에 남오세티야 거주민일 가능성이 높다는 것이다. 설령 이런 뒷사정이 없더라도 자국민 보호를 이유로 타국을 침범하는 행동이 정당한지에 대해선 논란이 있고, 러시아가 평화 유지군이긴 했으나 해당 평화 유지군 협정에서 러시아에 무력 사용을 허용하는 권한을 부여하고 있지 않는 문제가 있다.[14] 즉, 이런 제반 사정들을 고려할 때 러시아가 결백하다고 보기는 어렵다는 것이다. 그러나 조지아의 군사 행동은 남오세티야 자치 정부를 향한 시점에서 이미 협정 위반을 한 상태였고, 여기서 끝나지 않고 엄연히 조약하에 합법적으로 들어와 있던 러시아군을 공격하는 행위까지 벌였기에 충분히 정당하다는 반론도 있다.

3. 전개

파일:600px-2008_South_Ossetia_war_en.svg.png
파일:r9fvu2H83urhfixD7.gif
2008년 초에 있었던 조지아군과 USEUCOM(미-유럽군) 합동의 <Immediate Response 2008>에 심기가 불편해진 러시아는 4월에 MiG-29로 월경한 조지아군의 UAV를 격추시키더니, 7월에 조지아 국경 부근에서 <Caucasus Frontier 2008>이라는 군사 훈련을 강행, 게다가 훈련 종료 후에도 병력을 철수시키지 않아 양측은 일촉즉발의 위기에 빠진다. 서로가 군사 행동을 계속 경고하는 과정에서 접경 지역에서는 남오세티야 무장 조직의 도발과 조지아 정부군의 반격이 지속, 확대되었다. 그러나 서방 정부들 사이에는 곧 닥쳐올 2008 베이징 올림픽을 앞두고 어느 쪽도 본격적 충돌은 원하지 않을 것이라는 낙관론이 우세했다. 그러나 그 섣부른 기대는 결국 최악의 형태로 무너지게 된다.

파일:attachment/osetia_war1.jpg
베이징 올림픽 개회식장[15]에서 블라디미르 푸틴 당시 러시아 총리[16] 조지 W. 부시 미국 대통령에게 전쟁이 시작되었음을 알리는 사진. 푸틴과 부시의 가장 유명한 사진 중에 하나이다.

2008 베이징 올림픽이 개최되는 8월 8일, 조지아군의 포격이 시작되어 평화 유지군[17]으로 있던 러시아군 18명이 사망하고 35명이 부상을 입었다. 러시아군은 바로 제58군 예하 제135 독립 차량화 소총병 연대를 선봉으로 반격을 시작했고, 러시아군과 조지아군은 남오세티야 수도 츠힌발리 시내로 진군, 본격 충돌이 시작되었다. 올림픽 개회식장에서 푸틴은 부시에게 직접 전쟁이 시작되었음을 알렸다.

전쟁의 결과는 러시아군의 참전을 예상 못 했던 조지아의 참패였다. 전쟁 당시 러시아가 투입한 병력 수는 7만 9천 명으로[18] 주둔 중이었던 조지아군과 별 차이가 나지 않았지만[19] 압도적인 차이의 공중·기갑·해상 전력으로 10일, 츠힌발리 근교를 완전히 장악했고 여세를 몰아 조지아 국경을 월경, 12일에는 거점 도시 고리(Gori)[20]에 제76근위 공중 강습 사단을 투입해 점령하여 후퇴하는 조지아군의 허리를 끊어버렸다. 동시에 압하지야 방면으로도 러시아군의 대규모 공세가 시작되어서 결국 조지아군은 이렇다 할 저항도 하지 못하고 패퇴하게 된다.


(연령 제한 영상) 8월 11일에 촬영된 영상. 영상에서 보이는 군 병력들은 남오세티야군 병력들이고 전사한 시신과 상실된 전차들은 조지아군의 것이다. 남오세티야군은 러시아군의 지원에 힘입어 조지아군을 격퇴할 수 있었다.

인터넷 역시 공격 대상이 되었는데, 전쟁 초기부터 조지아의 인터넷망에 러시아군의 사이버 부대의 소행으로 보이는 대대적인 해킹과 디도스 공격이 시작되어 조지아의 전국적인 인터넷 네트워크망이 마비가 되어버렸다. 또한 이렇다 할 공중 전력은 이스라엘에서 개량 사업을 받았던 Su-25 몇 대가 전부였던 조지아군은 개전 초기부터 러시아군이 제공권을 장악하면서 지상 부대는 일방적인 학살을 당했다. 인터넷에 떠도는 관련 사진을 보면 아예 러시아측 공격 헬기가 유유히 날아다니며 기총 소사를 퍼부었는지 조지아군의 상실된 경장갑차나 군용차는 대부분 지붕에 구멍이 뚫려 있고 내부는 피범벅이다. 러시아군은 자국의 Su-25 Mi-24를 동원하여 조지아군의 기갑 부대를 섬멸하기 시작했으며, Tu-22M으로 수도 트빌리시의 대통령궁과 주요 군사 지역과 공군 기지를 폭격하다 보니 조지아 내각은 한곳에서 전투 지휘를 못 하고 소련 시절 건설되었던 여러 벙커들을 전전해야 했다.

다만 조지아는 당시 NATO 회원국이 아님에도 파격적으로 NATO의 항공 감시 정보 처리소에서 러시아 공군을 감시할 수 있었으며, 우크라이나 이스라엘 등에서 상당한 양의 방공 무기들을 제공받아 만만한 상대가 아니었다. 특히 조지아 방공망은 러시아의 Tu-22M을 격추하는 성과를 올리기도 했다. 그러나 이에 뚜껑이 열린 러시아군은 Tu-160을 발진시켜 미사일 단 두 발로 조지아군의 중앙 방공망이 소재한 기지를 말 그대로 증발시켜 버림으로써 개전 2일 만에 조지아 방공망을 마비시켰다. 결국 제공권은 물론이고 러시아 흑해 함대가 해상 봉쇄를 가해 제해권까지 장악하면서 조지아군은 모든 면에서 불리한 상황에 처한다.

특히 러시아군은 조지아의 수도 트빌리시로 향하는 고속도로를 장악했고, 조지아군은 사용할 수 있던 모든 해상 전력인 미사일 고속정 5척이 해상 봉쇄를 뚫기 위해 접근하다가 북해 함대 소속 나누추카급 초계함에 2대가 격파당하고 퇴각하고 만다. 결국 미군 원조 물자 야적장이 있던 군항 포티(Poti)시를 러시아 해군 보병대에 의해 점령당하자 조지아군은 전쟁 수행 능력을 완전히 상실해 버렸고 프랑스 대통령 니콜라 사르코지가 제안한 화평 교섭에 나올 수밖에 없었다.


러시아 해군의 시점에서 촬영된 당시 해전 영상. 심지어 함대공 미사일을 발사해 경비정에 불과한 조지아군 함정을 격파하는 데 성공했다. 애당초 조지아 해군 소속 함정들은 대부분 고속정 수준의 소형 함정들뿐이라서 상대가 될 수 없었다.[21]


포티시를 점령한 러시아군. 원조 물자 야적장에 있던 험비들도 노획하는 모습을 볼 수 있다.

14일에 조인된 교섭으로 조지아는 남오세티야 압하지야를 둘 다 잃어버리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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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평 교섭 이후로도 남오세티야와 압하지야군을 앞세운 러시아군의 진격은 계속되었고 사실상의 전투 종결은 미국 정부 특사인 콘돌리자 라이스 국무 장관이 트빌리시에 도착한 16일이 되어서였다. 당시 러시아군은 트빌리시 55km 앞까지 진군한 상태였고 조지아 점령을 눈앞에 두고 있었다.[22]

결국 미국 정부에서 조지아에 개입할 것을 선언하였고[23] 이를 예상 못 한 러시아는 내정 간섭이라며 크게 반발한다. 이후 미 해군 제6함대와 NATO 혼성 함대가 흑해로 들어와 당시 포티 항구를 봉쇄하던 러시아 흑해 함대와 대치하는 상황에 이르자 자칫 미국과의 전면전이 발발할 것을 두려워한 러시아 정부가 프랑스의 화평 교섭을 받아들이게 되었고, 군대를 조지아에서 철수시키며 종전을 선언한다.

4. 각군의 실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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츠힌발리의 평화 유지군 본부 앞에 버려진 후 전소된 조지아군의 T-72 SIM-1 전차.[24]

러시아는 비록 전쟁에서는 이겼지만, 군 내부의 고질적인 장교단과 군장비 정비의 부실함이 푸틴 집권 이후에도 여전히 심각하다는 것을 보여주었다.

러시아 공군의 경우 압도적인 항공 전력을 가지고도 개전 후 철도망 마비조차 확실히 하지 못한다거나, 개전 하루 만에 Tu-22M 1기와 Su-25 3기[25]를 손실하였다. 이후 조지아 공군은 러시아 공군의 Su-24 2기와 Su-25 1기, 그리고 Mi-24 1기를 추가로 격추했다고 밝혔고 러시아는 이를 부인했다.

그나마 통신 시설은 제대로 작살을 내놓아서 체면은 살렸다.[26] 덤으로 조지아의 요충지 고리시에 일부 러시아군이 진입한 것이 함락된 것으로 잘못 전파되어, 조지아 사령부가 수도 방위를 위해 주력 부대를 재배치하는 틈을 노려 주력군에게 공습으로 막대한 타격을 입히기까지 했다.

소련군에서 알짜 전력을 물려받은 러시아군이 저런 상태였음을 감안하면, 그보다 훨씬 곁다리 전력을 물려받은 조지아군은 더 막장임을 상식적으로도 알 수 있다. 조지아군은 총병력 3만 7천 명에 공군은 요격기가 한 대도 없고, 그나마 지상 공격기인 Su-25가 20대 미만이 있었으나, 제공권이 없는 상태에서 공격기가 출동해 봐야 도대체 무엇을 할 수 있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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별안간 러시아군 전차의 주포 속으로 굴러들어 간 조지아군 전차에서 병사가 뒤를 돌아보며 외친다: "살려줘!"
한마디로 말해서, 조지아군은 맨땅을 들이받는 천하의 무뇌 짓을 자행한 것이었다.

조지아군은 초반에 비교적 선전을 했다고는 하나, 거점 도시들을 무기력하게 내주고 보급이 끊기면서 근 2년간 서방화된 군대의 역량을 정상적으로 펼치지 못하였다. 그러나 흑해 해전에서 보여주듯 적군인 러시아군마저 놀랄 정도의 뛰어난 함대 기동을 선보이며 비록 군 장비는 열세일지 몰라도 군인들의 역량은 그렇지 않다는 걸 보여주기도 했으나 러시아의 함대공 미사일에 하나둘씩 격침당했다.[27]

4.1. 차포 떼고 선공을 한 조지아군

조지아군은 2007년부터 미국으로부터 일부 부대를 시작으로 무기 및 군사 훈련 지원을 받으며 동구권에서 서구권으로 체계를 개편하는 시발점에 있었다. 문제는 그 서구화된 1선 군대는 다 이라크에 가 있었다는 것이다.

사카슈빌리 정권의 친서방 정책과 이에 대한 서방권의 화답은 결코 공짜가 아니었다. 사카슈빌리의 조지아 정부는 서방 세계의 우호도도 쌓고 더 많은 지원도 이끌어내기 위해 이라크 전쟁 이후 치안이 혼란에 빠진 이라크에 재건 지원단으로 자국군을 파병한다.[28] 이 파병 규모는 초창기에는 800여 명이었으나 2007년에 규모가 급격히 확대되어 1개 여단 총 2천여 명에 달했고 이는 이라크 파병국 중 전쟁 주도국인 미국과 영국의 뒤를 잇는 3위에 해당되는 규모이며 조지아 지상군 전투 부대의 20~25%를 차지하는 엄청난 수준이었다.

사카슈빌리나 조지아군 수뇌부가 러시아와의 전면 전쟁을 전혀 예상하지 못했고 때문에 이런 대규모 병력을 이라크에 파병한 것이지만, 하필 그 시점에 전쟁이 터졌다. 개전 직후인 8월 9일 조지아 정부는 급히 이라크 파병 부대에게 본국 귀환 명령을 내렸으나, 애시당초 조지아 같은 소국에는 타국에 있는 자국군을 급히 본국으로 소환할 수단이 철저히 부족했다. 육로는 당연히 불가능, 항공로의 경우 이라크와의 거리는 그나마 가까운 편이었지만 수송기가 없었다. 자국 국적 민항사라도 있으면 여객기라도 징발했겠지만 역시 없었다. 급히 다른 국적 민항사들에 전세기 임대를 요청했지만 자기 나라도 아닌 남의 나라 정부의 군사 목적 전세기 임대를 흔쾌히 수락할 항공사는 없다. 더군다나 조지아의 제공권을 바로 러시아가 쥔 상황에서 병력을 여객기로 나르다가는 러시아 전투기에 격추당할 뿐이었다.

그나마 개전 초기 일부 선두 부대가 (격추시켰다간 자칫 잘못하면 3차 대전 찍어야 하는) 미군 수송기로 급히 본국으로 귀환하여 이라크 파병군용 사막색 위장복을 갈아입지도 못한 채 전선으로 향했지만 미국도 러시아와의 전면전을 각오할 순 없었던지라 수송기 지원은 극히 제한적이었고, 전면적인 철수 지원은 종전 후에나 이뤄졌다.

결국 예상 못 한 일이긴 하지만 하필 주력이 이역만리 파병을 가서 자국 방위에 커다란 구멍이 뚫린 데다, 기대했던 나토 가입은커녕 전쟁 기간 동안 나토나 미국의 도움을 제대로 받지 못한 조지아는 이라크 파병군을 정식으로 철군시킨다. 그러나 그렇다고 약소국의 입장에서 미국과의 협력 관계를 아주 포기할 수 없었던지라, 이듬해에 병력 규모를 줄인 8백여 명 선으로 아프가니스탄에 ISAF로 파병한다.

5. 결과

압도적인 전력으로 승리한 러시아는 예전의 명예를 어느 정도 되찾으면서, 남오세티야의 모든 영역을 신속하게 접수하였다.

이 전쟁으로 남오세티야와 압하지아 공화국이 완전히 독립했고 조지아는 즉각 러시아와의 외교 관계를 단절했다.

그러나 국제적으로 저 두 나라를 독립국으로 인정한 것은 러시아와 친러 국가인 니카라과, 베네수엘라, 나우루, 시리아 5개국뿐이다. 바누아투는 압하지야만 승인하고 남오세티야는 승인하지 않은 상태였다. 그나마도 바누아투는 나중에 압하지야 승인을 취소했다. 투발루는 한동안 압하지야와 남오세티야를 승인했다가 나중에 철회했다. 블라디캅카스 쪽 국경도 폐쇄됐다가 2010년대 중반부터 다시 열렸다.

5.1. 조지아의 피해

ShKH vz.77 Dana 자주포도 2문이 격파되었으며 2문은 러시아군에 노획되었다. 2S7 피온 자주포 6문도 노획되었으며 120mm 박격포를 포함한 20여 문의 포병 장비들이 러시아군에 노획되었다. Buk 대공 미사일 발사 차량 2기와 탄약 장전 차량 1기가 노획되었고 9K33 오사 대공 미사일 발사 차량도 5기가 노획되었다. 또한, 1728정에 달하는 소화기들이 러시아군 수중에 떨어졌다.

미국은 조지아군 재건을 위해 3억 달러를 투입한다고 밝혔으나, 여전히 약속을 지키지 않고 있어서 조지아군은 여전히 무력한 상황이다. 미국도 그 직후 서브프라임 모기지 사태로 경제적으로 여유가 없어진 데다가 러시아와의 불필요한 외교 마찰을 피할 필요성도 있었다.

또한 기세등등해진 러시아는 조지아에 최신 무기를 제공한 이스라엘 우크라이나를 압박하여 군수 물자 수출을 전면 막아버린다.[29]

조지아 정부는 무리하게 군사 도발을 강행하는 바람에 대박 대신 쪽박을 차게 된다. 블라디미르 푸틴의 외유와 메드베데프의 휴가라는 러시아의 정치적 공백을 노려서 병력을 동원했다고는 하나, 러시아 흑해 함대가 해안을 완전히 봉쇄한 상황에서 장기전에 돌입하는 것은 한계가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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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련제 SSh-68 헬멧에 AKM으로 무장하고 러시아군의 폭격을 피해 이동하는 조지아 예비군. 조잡해 보이는 건 이들이 예비군이기 때문에 어쩔 수 없던 부분. 여느 나라들이 그렇듯 예비군들은 창고에 있던 구형 장구류를 지급 받는다.[30] 그래도 전선에서 러시아군과 싸웠던 현역들은 최소 AK-74를 지급받았다. 정예화된 몇몇 여단은 부시마스터제 M4가 제식 화기일 정도. 게다가 중국제, 우크라이나제 방탄복과 자국에서 생산한 전투 조끼를 지급받았고 00년대 미군에게서 지원받았던 PASGT 방탄모를 착용하여 겉으로 보기에는 상당히 서구화되어 있었다.

게다가 미국의 군사 지원은 그 전해인 2007년에 막 시작된 상태였고 사실 조지아군의 전력으로 러시아군을 상대한다는 것은 애초부터 한계가 있었다. 특히 조지아군은 서방식 무기로 서방식 훈련을 받았으나, 정작 혼란스러운 전투에서 조지아군 보병들의 손에 들린 것은 그들이 원래 사용하던 AK 소총이었다.

막스 포펜케르[31]가 IAA 포럼에서 밝힌바에 의하면 조지아군이 사용한 AR-15 총기가 아니라 탄창과 탄약이 문제였다고 한다. 라시아군이 노획하여 분석해보니 이상할 정도로 가벼운 출처 불명의 탄창과 터키에서 수입한 5.56mm 총알의 조합 때문에 총기의 신뢰성이 바닥을 첬다고... 그래서 그런지 아래 항목에 서술된 것 처럼 러시아군이 탄창은 노획안하고 버리고 갔다고 한다. 아마도 조지아군이 부족한 예산으로 급하게 무장을 NATO식 표준으로 바꾸면서 문제가 발생한것으로 보인다.

총리를 비롯한 내각 총사퇴로 국내 불만을 겨우 무마시킴으로써 사카슈빌리는 2013년까지 정권을 지킬 수 있었으나 러시아는 현재도 군사적 압력을 계속하고 있으며, 남오세티야에 주둔군을 배치하고 있는 상황이다.

5.2. 무기 압수

전쟁에서 승리한 러시아는 종전 협상이 끝나 조지아에서 철군하기 전에 조지아의 남은 가용 전력을 최대한 제거하기 위하여 사용 가능한 무기들을 모조리 압수하였다. 살아남은 T-72는 물론이고 Su-25와 각종 군사 장비, 러시아군에게 많은 피해를 입힌 BUK-M1, OSA까지 몽땅 압류했다. 또한 미군과 조지아군의 합동 훈련 때 사용된 많은 양의 미군 장비들이 포티 항구에 집결해 있었는데 진입한 러시아군은 이 물자들을 싹 다 노획해 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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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군 험비를 노획한 러시아군. 다른 미제 장비들은 말 그대로 미군이 조지아군에 지원한 장비였지만, 이 험비는 미군 소속으로 합동훈련 종료 후 귀환을 위해 항구에서 선적을 기다리다가 노획된 것이다. 당연히 미국은 반환을 요구했지만 러시아는 교전 상대국에 있던 군사 장비를 압수한 것이라고 주장하면서 그 요구를 거부했다. 미국 입장으로서는 어이가 없었겠지만 전투함이나 최첨단 스텔스기, 미사일도 아니고 일개 험비에 불과했던지라 그냥 반환 요구 및 항의 몇 번 하고 포기했다. 그도 그럴 것이, 미국한테선 험비가 그렇게 중요한 것도 아니며 러시아 입장에서도 그냥 노획한 적성 장비 그 이상 그 이하도 아니다.[32]

아무튼 덕분에 러시아군은 미제 군수품으로 잔치를 벌였다. 러시아군은 미제 헬멧과 미제 BDU 군복으로 갈아입고 전차(우크라이나에서 구입한 T-72) 등 가져갈 수 있는 모든 차량을 싹쓸이했다. 또한 서방제로 개량된 각종 전자 장비를 압류함으로써 상당한 이득을 챙기게 되었다.

해군의 경우 전쟁 전에는 어느 정도 모습을 갖추고 있었으나, 종전 후 러시아가 쓸만한 함선들은 전부 폭파시켜 전술적 의미의 해군을 아예 없애버렸다. 이 영향으로 조지아 해군은 아예 해안 경비대에 통합되었고 현재까지도 병력 531명에 소형 경비정 몇 대 정도가 전부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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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스라엘제 방공 미사일 시스템인 파이썬이나 Derby을 장착한 SPYDER 방공 체계도 노획했다. M16 소총, M4 카빈 소총도 대량으로 노획해서 일부는 노획 전시회로, 나머지는 전부 불태워서 폐기했다. 상술한 문제 때문인지 M4 탄창류 같은 건 포장 박스만 까 보고 그냥 내무실에 버리고 갔다. 대신 소련제 군장이나 총기는 죄다 탈탈 털어 간 듯.


조지아군 주둔지에서 발견된 성조기를 불태우는 러시아군 병사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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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일부 주둔지엔 " Ancle(Uncle) Sam thenks(thanks) for uniform for russian airborn(airborne)"[33]라고 낙서까지 하고 떠났다. 또한 개전 초기 제공권과 제해권이 완전히 장악당하자 러시아군은 일방적으로 조지아군을 몰살시켰고, 조지아군은 가진 자산을 모두 버리고 퇴각하기 시작했다. 심지어 은행까지 털었다고 한다.

괴멸당하기 전 신속하게 퇴각함으로써 조지아군은 병력 손실을 최대한 막아 냈으나 러시아군의 공습으로 주요 군사 시설이 모두 상실되었고, 위에 서술했듯 갖가지 장비들이 모조리 상실당하거나 강탈당함으로써 사실상 무장 해제 당한 셈이다. 특히 조지아군은 퇴각하면서 무기를 길가에 버리고 떠나기도 했다. 이때 약 80대 정도 있던 조지아군의 T-72 전차 중 상실된 것은 20대가량이나 나머지 차량은 버려져서 러시아군은 약 60여 대의 T-72를 획득했다. 그중 40여 대는 지금 당장이라도 사용을 할 수 있을 정도로 상태가 A급이었다.

6. 후폭풍

사실 남오세티야 전쟁은 병사 몇 명이 죽고 다치니 하는 것보다, 전쟁을 전후하여 벌어진 정치적 여파가 훨씬 컸다. 때문에 전쟁은 신냉전의 전초전이라고 할 수 있다.

소련 붕괴 이후에도 러시아를 견제하는 미국의 주된 전략 중 하나는 러시아로부터 독립한 나라들에게 "너네 이제 한물간 러시아랑 놀지 말고 우리 미국 편 해라!"라며 대놓고 추파를 던지는 것이었다. 즉, 러시아가 예전 자기네 땅이었던 곳에 대한 영향력을 찾아서 미래에 다시 강대국이 되어서 미국을 위협하는 것을 막는 것이다. 이를 위해서 미국은 러시아로부터 독립한 나라들에게 막대한 양의 경제적 지원은 물론이고 러시아로부터 스스로를 방어를 할 수 있도록 군사 부분에서도 상당한 지원을 해준다.

조지아군과 미군이 합동 훈련을 한 것과 미군 군사 고문단이 조지아군을 훈련시킨 것을 그 예로 들 수 있겠다. 조지아는 그런 대(對)러시아 포위망의 일부로서, 미국은 장기적으로 해당 국가들에 미군 기지를 건설해서 유사시 러시아군의 도발까지 막겠다는 전략을 가지고 있었다. 러시아가 이전같이 미국을 위협할 거대한 가상 적국으로 되돌아가는 것을 막아내고자 하는 의도가 있었던 것이다.

그러나 이 전쟁은 주변국에 이러한 정책을 펼치던 미국과 유럽 국가들에게 강력한 메시지를 던진 셈이 되었다. 이 전쟁이 일어난 직후 러시아 국방 장관의 발언에서 여실히 드러나는데, TV에서 대략 "주변국들이 우리한테 어떤 대우를 받을 것인가는 그들한테 달려 있다."는 연설을 한다. 즉, 이전 독립국들에 대한 일종의 경고 메시지로서, 이 발언을 간단하게 요약하자면, "니네들도 조지아와 같은 꼴 나기 싫으면 우리 러시아한테 알아서 기어라." 라는 뜻이다. 러시아와 가까운 중부 유럽, 동유럽, 구소련권 국가들을 향한 외교적 수사를 시전했다.

그리고, 러시아는 남오세티야 압하지야 공화국을 완전히 친러 세력으로 굳히는 데 성공하면서 장부상으로도 이득이 남는 전쟁을 했다. 그러나 사카슈빌리 정권을 전복시키지는 않았는데, 러시아가 조지아의 내정에 개입하는 것은 국제적인 비난을 살 수밖에 없고, 괴뢰 정권을 세웠다가는 자칫하면 조지아의 민족주의를 자극해서 소련-아프가니스탄 전쟁과 같이 죽기 살기로 싸우는 장기전의 수렁에 빠질 수도 있기 때문이다. 조지아 정부가 캄보디아 크메르 루주 정부처럼 자국민도 외면한 쓰레기 정부였다면 베트남처럼 접수하고 난 뒤 괴뢰 정권을 세울 수도 있었겠지만, 조지아는 여러 나라와 국경을 맞대고 있어서 아프가니스탄이나 이라크가 될 공산이 컸고, 사카슈빌리 정권 자체도 그럭저럭 평이 나쁘지는 않았기에 선택권이 없었다.

그러나 러시아군은 조지아군을 상대로 승전했는데도 불구하고, 많은 전술적 단점을 보인 58군 사령관을 해임해 버렸다.

아무튼 정리하자면, 러시아군은 차질을 빚기도 했지만 조지아를 완전히 떡실신을 시킴으로써 정치적·전략적으로 많은 이득을 얻게 되었다. 미군이 이라크에서 우수한 전술과 역량으로 이라크군을 압도하면서 관광을 태웠지만, 잘못된 전략으로 베트남 전쟁 시즌 2를 찍은 것과는 대조적인 셈이다.

하지만 러시아가 이득만 얻은 것은 결코 아니다. 러시아는 전쟁이 시작되기 전, 조지아의 주요 수출품인 생수 와인 수입에 제재를 가했고, 전쟁이 터진 이후 압하지야 남오세티야의 독립을 승인했다.

그리고 이 두 가지는 러시아가 조지아 내정에 개입하고 간섭하기 위한 유일하고 가장 확실한 히든카드였다. 한마디로 "조지아, 너네 말야. 우리 러시아 말 잘 들어라. 그러면 우리가 너희 와인과[34] 생수도 많이 사주고 남오세티야와 압하지야도 독립하지 못하도록 영향력을 행사해 줄게." 라면서 조지아를 상대로 유화책을 사용하면서 어르고 달래고 압박을 했는데, 이 전쟁으로 인해서 남오세티야와 압하지야가 완전히 독립해 버렸다. 그 결과, 러시아는 조지아에 내정 간섭을 하고 정치에 개입할 여지가 아예 없어져 버렸다. 게다가 전쟁까지 치르면서 조지아를 멸망의 위기로 몰아넣었기에, 조지아는 러시아에게 완전히 적대적으로 돌아설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조지아는 경제 구조상 러시아에 의존적일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특히 조지아는 러시아 제국 시절부터 소련까지 약 300년간 지배를 받았던 나라다. 무엇보다 조지아의 주변에서 무언가를 팔면 제값을 주고 사 갈 만큼 부자 나라가 러시아밖에 없는 점도 한몫했다. 그렇기 때문에 국가 전략 면에서 러시아를 완전히 벗어날 수가 없다.

게다가 러시아에 대한 무역은 수출 시장 기준이라서 어떻게든 대체가 가능한 것도 아니다. 러시아도 이 사실을 잘 알기 때문에 남오세티야 탈환을 넘어서 조지아 전체를 뭉개버리려는 치명타를 가하는 총력전으로 강행 돌파 한 것이다.

6.1. 한국에 끼친 영향

이 전쟁에 대해, 2년 뒤 한반도에서 벌어진 연평도 포격전을 거론하기도 한다. 실제로, 당시 미국은 남한이 북한의 포격을 일방적으로, 그것도 민간인이 사는 지역에까지 대놓고 얻어맞은 사건임에도 불구하고 대대적인 보복을 불허하고, 그렇다고 적극 개입하여 북한을 응징하지도 않았다.

이후에는 여러 가지로 지원도 많이 해주고 조지 워싱턴함을 서해에 투입하는 등 무력 시위도 몇 차례 도와줬지만 조지아도 전쟁이 끝난 뒤에는 여러모로 도와준 만큼 달라진 것은 없다는 것이다. 북한의 배후에 중국이 있다는 점은 고려해야겠지만....

하지만 연평도 포격 사태는 북한이 사카슈빌리처럼 대책 없는 전면전을 강요해 온 게 아니라 쌍방 포격만으로 끝났고, 남한의 피해가 적어서 전면전으로 확대될 여지 자체가 거의 없었기에 불발된 것뿐이다. 전쟁은 결코 장난이 아니며, 시작하기는 쉬워도 언제 끝날지는 아무도 모른다.[35]

그리고, 경제 규모가 큰 나라가 전면전을 벌일수록 세계에 미치는 후유증도 커진다. 미국이나 한국이나 장기적으로 보면, 현재 상황에서의 전면전 돌입은 결코 현명한 처사가 아니었기에 이해 관계가 맞아떨어져서 단순 교전 정도로 끝났다고 보면 될 것이다. 애초에 교전국의 경제 규모와 충돌의 강도 자체가 다른데 말이다. 전쟁이 일어나도 기껏해야 지역 경제에 영향을 미치는 수준의 소국에 불과한 조지아와 2015년 기준 세계 경제 11위인 한국[36]의 사례를 1:1로 비교할 수는 없다. 그리고 애초에 미국과 조지아는 확고한 동맹도 아니었으며 미국에게 있어 조지아는 없어선 안 될 정도로 중요한 동맹도 아니었다. 애초부터 조지아는 미국의 군사 동맹국도 아니고 단지 "친해지려는" 단계에 불과했다.

2013년 김정은이 핵 실험과 미사일 발사, 그리고 전쟁 위협 발언을 쏟아놓은 2013년 북한의 전쟁 위협 당시 주한 미군은 첨단 전력을 끌고 와서 무력시위까지 벌이며 북한을 압박했고, 결국 김정은은 공언과 달리 후속 국지전을 벌이지 못하고 꼬리를 내렸다. 이후 그나마 서부전선 포격 사건을 벌였으나 한미 공군이 F-15 등 전투기로 합동 무력시위를 벌이고 미국 공군 공중 급유기까지 군산공항에 끌고 왔을 정도였으며, 주한 미군 MLRS가 급히 통일대교를 건너 사격 태세를 유지했다. 그만큼 남한은 미국의 중요한 동맹국이다.

그리고 러시아 중국 태평양 진출을 저지해야 하는 미국 입장에서 튀르키예와 함께 지정학적으로 중요한 우방국이 바로 한국이다. 한미 상호 간에는 엄연한 "상호 방위 조약"이 있다.[37] 하지만 조지아의 경우에는 이미 남오세티야에 주둔한 러시아군 평화 유지군들을 선제 포격 한 시점에서부터 미국 및 나토가 개입할 명분 자체가 없었다.

7. 미헤일 사카슈빌리의 거취

이 전쟁은 사실 조지아 대통령 사카슈빌리가 자신의 정치적 위기를 모면하기 위한 도박이었다. 배경 설명에는 안 나와있지만 2007년 사카슈빌리에 반대하는 대규모 반정부 시위가 일어나 정치적 위기에 처했고 지지율은 땅에 떨어져 있었다. 2008년 1월에 간신히 재선되기는 했지만 사카슈빌리는 뭔가 돌파구가 필요했던 것이다. 그가 저렇게 남오세티야를 대놓고 공격할 수 있었던 배경은 바로 미국을 믿었기 때문이었고, 러시아가 미국 눈치를 봐서 조지아에 손을 못 대거나 아니면 미국이나 나토가 러시아군을 막아줄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미국과 유일하게 맞장 뜰 수 있는 상호 확증 파괴가 가능한 핵전력을 보유한 러시아를 건드린다는 것은 미국이 할 이유도 없었고, 조지아가 털리는 것을 모르는 척 하는 것이 미국 입장에서는 최선이었다.[38] 즉, 전면전을 피할 수 없는 상황이 아니라면 동맹도 아닌 일개 우방국 정도는 손해 보는 것을 감수한다는 것이다.

7.1. 긍정론

비록 조지아 측은 전쟁에서 완패를 했지만 사카슈빌리 조지아 대통령은 친러파에게 쫓겨나기는커녕, 오히려 이전보다 더욱 강하게 친미 정책을 펼쳤고, 거기에다 러시아와의 관계도 단절되었다. 게다가 BTC 파이프라인의 완공으로 인해 러시아에 대한 경제적 종속도 많이 완화되었다. 사카슈빌리 대통령이 친러파에게 쫓겨나지 않고 오히려 더욱 강하게 친미 정책을 펼칠 수 있게 된 원인은 다음과 같다.

7.2. 부정론

하지만 전후 조지아에서는 반정부 시위가 격하게 일어났고 야당과 정부 간에 충돌이 심해졌다는 것을 생각해 보면 반드시 위의 경우처럼 긍정적인 점만 생각해 볼 수는 없다. 게다가 2013년 5월 치러진 총선에서 야당이었던 친러시아 정당 '그루지야의 꿈'이 승리한 데 이어, 10월에 치러진 대선에서 '그루지야의 꿈' 소속 마르그벨라시빌리가 당선되었다. 과거 소련 위성국들도 친러파로 돌아선 상황에서, 조지아도 다시 친러파로 돌아설 확률이 높아졌다.

2013년부터는 이원 집정부제를 실시할 것이라 하며, 이바시빌리시가 선거에서 이기긴 했지만 첫 방문국은 미국이 될 것이라 한다. 또한 벨라루스 알렉산드르 루카셴코가 조지아가 다시 CIS에 들 수 있을 것이라는 식으로 한 말에 신중치 못한 발언이라고 일축했다. 반드시 친러가 될 것이라고 확신할 수는 없는 노릇. 다음 행보를 지켜봐야 할 듯하다.

그런데 조지아/경제 문서를 참고하면 알겠지만 조지아가 수출을 가장 많이 하는 나라가 바로 러시아이다. 그만큼 러시아가 싫어도 경제적으로 러시아를 벗어나지 못하는 현실상 조지아가 강력한 반러 국가로 버틸 수는 없는 상황이다.

친서방 성향의 러시아의 남오세티야에 대한 개입을 비판하며 인정하지 않는 반러 성향의 야당조차도 사카슈빌리를 매우 싫어하며 무능함을 비판한다. 살로메 주라비슈빌리 등 야권 정치인들조차도 러시아의 책임과 함께 조지아(정확히는 당시 정권을 잡은 사카슈빌리 정부)의 책임도 언급하며 당시 정권을 거머쥔 미헤일 사카슈빌리를 성토했을 정도. 실제로 러시아를 자주 도발해대서 사카슈빌리는 서방 세계에게도 ‘통제 불능 인물’로 찍힌 상태였다. # 살로메 주라비슈빌리는 대통령이 된 후에 러시아 제재 동참을 거부하는 것에 대해 왜 러시아 제재 동참을 안 하냐고 의회에게 닦달할 정도인데[40] 이런 인물도 남오세티야 전쟁에서만큼은 조지아의 책임을 일부 시인할 정도였다. 결국 사카슈빌리가 얼마나 무책임했는지 알 수 있는 부분.

사카슈빌리 전 대통령은 부패 혐의를 받고 있으며 우크라이나로 튀어서 오데사 주지사가 되었다. 당시 우크라이나 대통령 페트로 포로셴코가 대학 시절 친구였다. 아니나 다를까 사카슈빌리는 현재 조지아에서 매국노, 파시스트 등등 온갖 욕을 들어먹고 있는 중이다.

8. 이후

아직도 소련 시절의 역량을 가지고 있는 러시아의 국력과 갈등에 대한 강경한 행동, 서방의 방관은 러시아 인접 국가에 커다란 영향을 미쳤다. 2009년 9월 버락 오바마 정권이 동유럽[41] MD를 포기하면서[42] NATO의 안전 보장에 대한 동유럽 국가들의 의심은 더욱 강해졌고, 폴란드, 체코, 슬로바키아, 헝가리는 러시아의 군사적 위협에 대응해 기존의 4개국 연합체인 비셰그라드 그룹을 실질적인 군사 동맹으로 개편, 유사시 폴란드 지휘하의 통합군을 결성하기로 했다.

전쟁에서도 쪽박을 차고, 나아가 이 여파로 해외 자본들도 무수히 나가면서 조지아는 경제까지도 우거지상이 된 건 당연했다. 그런 조지아에게 모처럼 돈되는 소식이 바로 이웃 아제르바이잔을 통하여 오게 되는데, 바로 BTK(Baku-Tbilisi-Kars) 철도 공사. 전쟁 패배 여파로 공사비가 없다고 하소연하자, 아제르바이잔은 5억 달러를 싼 이자와 같이 우선 빌려주고 부족하면 추가로 빌려준다고 했을 때 사카슈빌리는 모처럼 작게나마 웃었을지도 모른다. 현재 조지아는 이 공사를 착실하게 진행하면서 전쟁 여파로 BTC(Baku-Tbilisi-Ceyhan) 파이프라인까지 작살나는 거 아닌가 하는 불안감도 없앨 수 있었다. 이후 차츰 안정을 찾으면서 조지아 경제는 조금씩이나마 회복세를 찾고 있다.

그리고 이 선택은 아제르바이잔에게도 신의 한 수가 되었는데, 2020년 아르메니아-아제르바이잔 전쟁에서 러시아가 아르메니아로 군수 물자를 보내려고 했지만 조지아가 아제르바이잔의 편을 들어 러시아 수송 차량의 통행을 금지했다. 결국 집단안보조약기구와 러시아는 아르메니아 본토가 공격당하면 참전하는 것으로 노선을 바꾸었다. 사실, 내륙국이던 아르메니아는 조지아의 항구를 가로채기를 시도하다가 걸려 조지아의 분노를 얻어냈고 조지아와 갈등을 빚어왔던 외교 문제도 있었기에 아제르바이잔을 편들었던 것이었다. 마찬가지로 친러 분리주의 세력과 내전을 거치면서 드네스트르강 동안이 미승인국 트란스니스트리아로 독립하는 것을 막지 못한 몰도바 돈바스에 친러 괴뢰 정부 도네츠크 인민공화국, 루한스크 인민공화국, 크림 공화국이 건설된 우크라이나 역시 이 나라들과 관계를 유지한 아르메니아에게 분노해 2020년 아르메니아-아제르바이잔 전쟁에서 아제르바이잔을 편들었다.[43]

2010년 3월 15일, 조지아의 한 방송사가 뉴스에서 러시아가 기습 공격을 가해 대통령이 사망했다는 뻥을 치는 바람에 국민들이 혼란에 빠지고, 사카슈빌리 대통령이 직접 성명서를 발표하고 나서야 혼란이 수습되는 촌극이 빚어졌다. 방송사는 정국 혼란이 전쟁으로 발전할 수도 있다는 뜻의 경고를 보내고자 했다는 해명을 했지만, 전후 2년 만에 이런 뻥 포를 쏘는 건 제정신인 사람이 할 짓은 아닐 듯.

그리고 사카슈빌리는 2013년에 권력 남용과 사기 혐의로 기소되었고, 3선에 실패한 후 우크라이나로 망명한다. 유로마이단으로 출범한 페트로 포로셴코 정권의 조언자가 되었으며, 2015년 5월 29일 아예 우크라이나 시민권을 취득해 바로 다음 날 오데사 주지사로 발령받았다. 이후 그는 오데사주에서 강력한 반부패 개혁 드라이브를 걸며 인기를 얻었고, 포로셴코 대통령을 능가하는 40%대의 높은 지지율을 가진 주요 정치인으로 이름을 올렸다. 2015년 12월 16일에는 우크라이나 정부 개혁 위원회 회의에서 부패를 척결하지 못하는 아바코프 내무 장관의 무능을 질타하다가 분노한 내무 장관이 사카슈빌리를 향해 컵을 던지면서 조지아로 돌아가라며 고함을 지르는 해프닝이 일어나기도 했다.

결국 이듬해 사카슈빌리는 부패로 인해 주지사 직무 수행이 불가능하다며 사퇴했고 반정부 활동까지 하고 있다. 포로셴코는 그의 우크라 국적을 박탈해 주지사 임명 당시 조지아 국적을 포기한 사카슈빌리는 공식적으로 무국적자가 되었다. 2017년에는 부패 척결, 선거법 개정, 심지어 포로셴코 탄핵 운동까지 하고 있으며 우크라이나 검찰이 러시아로 망명한 친러 독재자 빅토르 야누코비치 전 대통령에게 자금 지원을 받고 정권 찬탈을 꾸몄다는 심히 무리수인 혐의로 사카슈빌리를 체포하려다 지지지들이 연행 차량 차문을 뜯고 그를 구출하기까지 했다. 하지만 우크라이나 정부가 사카슈빌리의 국적을 박탈하면서 무국적자가 되었고 이에 네덜란드에 체류 허가를 신청했다.

딕 체니 도널드 럼즈펠드는 이 전쟁이 일어나자 러시아와 싸우자는 전쟁 구상을 했다가 주변의 만류로 못 했다. 자기가 직접 싸우는 건 아니니 큰소리는 맘대로 칠 수 있지 한국에서는 딕 체니의 구상에 대한 옹호론도 나오곤 했으나, 미군이 최강이기는 하지만 최강이라고 해서 만사형통은 아니며, 당시 이라크와 아프간에서 각각 이라크 전쟁 미국-아프가니스탄 전쟁 때문에 고전하고 있던 미군이 또다시 러시아를 적으로 놓는다는 것은 당시에도 현재도 거의 불가능했다. 미국의 항공 모함 전대가 러시아의 연못이나 다름없는 흑해 앞바다까지 들어와서 남오세티아를 지원하는 것은 러시아와 전면전을 각오하지 않고서는 불가능한 일이다. 거기다 2008년 당시에는 서브프라임 모기지 사태로 미국 경제도 엉망이었는데, 이라크와 아프간에서 대규모로 전비를 쓰는 미군이 또다시 대규모로 러시아와 대결한다는 것은 경제 붕괴를 각오하지 않고는 불가능한 일. 특히 체니와 같은 네오콘이나 미군 만능론자들의 '러시아의 전력이 약화되었기 때문에 미군이 조지아를 도와 나서면 러시아가 호락호락 물러날 것'이라는 생각은 미군 만능에 젖은 모험주의적 망상에 가깝다. 1962년 쿠바 위기 때만도 당시 소련의 전력은 미국에 한참 못 미쳤지만 소련은 절대로 호락호락 물러서지는 않았고 전 세계는 핵전쟁 일보 직전까지 갔다.

더군다나 남오세티야 전쟁의 발발 자체는 조지아가 남오세티야에 평화 유지군으로 주둔하던 러시아군을 공격하여 벌어진 일인 데다 조지아에 주둔 중인 미군 부대도 없었기에, 이에 미국이 끼어든다면 또 명분이 없는 전쟁으로 변해 베트남 전쟁보다 더 심한 수준의 반전주의 물결이 미국 전역에 몰아칠 수도 있는 일이다.

톰 클랜시는 이미 2001년 고스트 리콘을 통해 이 전쟁을 예언했다. 그의 이름을 딴 게임 고스트 리콘에 남오세티야 전쟁을 모티브로 한 시나리오로 게임이 진행된다.

이 전쟁이 전혀 엉뚱한 소재로 화제가 되기도 했는데 조지아와 러시아 양쪽 다 맥도날드가 진출해 있는 나라였기 때문이다.[44] "세계는 평평하다"로 유명한 미국의 유명 저널리스트 토머스 프리드먼(Thomas L. Friedman)은 자신의 1999년 저서 '렉서스와 올리브나무'에서 "맥도날드가 진출해 있는 나라 사이에는 전쟁이 발생하지 않는다."라는 자본주의에 의한 평화 이론을 주장하였다. 하지만 현실은 아시발꿈. 이 불안정한 세계에서 이 주장은 이미 여러 번 빗나가는데 바로 이 책 나오던 1999년만 해도 코소보 전쟁 카길 전쟁이 벌어졌기 때문이다. 그나마 카길 전쟁에서는 인도[45] 파키스탄[46]의 맥도날드가 공격당하는 일은 없었지만 코소보 전쟁 당시에는 이미 맥도날드가 진출한 신유고 연방( 세르비아 몬테네그로)[47] 미국 NATO 같은 맥도날드가 예전에 진출한 나라들에게 신나게 폭격당하는 과정에서 실제로 세르비아 맥도날드 가게들이 불바다가 되고 부서지는 일이 벌어졌다. 이 때문에 맥도날드 세르비아 지점에서는 "우리도 폭격 맞습니다. 맥도날드라고 NATO나 미군이 공습 안 하는 게 아닙니다."라고 하소연하는 걸개를 달기도 했다. 중국 대사관 오폭 때도 중국인들이 중국에서 사업하는 맥도날드 몇몇 지점을 박살 내버리기도 했다. 결국 맥도날드가 미국의 상징적인 프랜차이즈라서 반미 시위라도 벌어지면 심심하면 항상 부서지는 셈이다. 이 이론은 빗나가가는 데에도 유구한 역사가 있는데 미국, 독일 간의 두 차례의 세계 대전으로 인해 대서양을 경계로 분할되어 버린 머크 그룹(독일)과 MSD(미국)이라든가 유명 음료수 환타의 눈물 나는 탄생 비화라든가 하는 것들은 자본주의 기반의 다국적 기업의 존재가 전쟁을 막는 데 딱히 대단한 기여를 하지 못했다는 대표적인 사례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그 와중에 세르비아 맥도날드 지점들도 폭격을 당했으니 당시에도 뭔 헛소리냐는 비아냥을 듣던 터였다. 당시 시점으로 이 이론이 빗나간 가장 최근의 전쟁이 남오세티야 전쟁이었고, 이후 2014년 사실상 러시아 우크라이나의 무장 충돌의 시작이었던 돈바스 내전이 발발하며 갱신되었고, 이후 2022년에는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이 일어나면서 또 갱신된다. 그리고 2022년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 개시 후 얼마 지나지 않아 맥도날드는 푸시킨 광장에 개점한 지 32년만에 러시아에서 철수했다.

레니 할린 감독이 조지아의 시각에서 본 영화 '파이브 데이즈 오브 워(5일 전쟁)'를 제작했고, 러시아에선 러시아 시각으로 본 풍자 로봇 영화 '어거스트 에이트'를 제작했다. 둘 다 시가전을 비롯 전반적인 전투 고증 자체가 잘되어 있다. 파이브 데이즈 오브 워는 조지아인 전쟁 기자가 러시아에게 침공당하는 남오세티야에서 살아남기, 어거스트 에이트는 디셉티콘같이 표현된 조지아군으로부터 아이를 지키려는 엄마의 모습을 그리고 있다. 재밌는 건 양측 영화 모두 '우린 싸우고 싶지 않았다.', '알고 보면 너희들도 사실은 좋은 사람들이었을 텐데.' 같은 심리가 반영되어 있어서, 주인공의 편을 들어주는 적군이[48] 등장한다는 점이다.[49]

전쟁 후 조지아는 EU 가입에 사활을 걸고 있다. 사실 조지아는 그전부터 EU 가입을 추진해 왔지만 논의는 흐지부지했던 상황이었다. 그러나 전쟁 이후, 조지아는 서방을 향해 NATO와 EU의 회원국이 되어야 자국의 안정을 보장받을 수 있다는 점을 홍보했고 EU 역시 러시아에 대한 경계심이 높아졌기 때문에 조지아와 EU는 점점 더 가까워지고 있다. 하지만 조지아는 동유럽에서도 가장 동쪽 끝에 위치해 있는 지리적 약점을 가지고 있으며[50] 경제 수준도 동유럽 국가들 중 하위권에 머무르고 있기 때문에 EU 가입이 그렇게 쉽지 않은 상황. 일단 2014년, 조지아는 EU 가입을 위한 첫 단계인 포괄 협정을 서명했다.

2019년 6월 20일에 러시아의 세르게이 보로실로프 하원 의원이 조지아를 방문하자 1만 명이 시위를 했다. #

2022년 2월, 2022년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이 발발하면서 전 세계적으로 러시아에 대한 제재에 들어간 가운데, 조지아 정부가 제재에 동참하지 않겠단 성명을 밝히자 수도 트빌리시에서 반러 시위가 일어났다. 이후 조지아 민족군단 1991~1992년 남오세티야 전쟁에 우크라이나가 그 당시 그루지야를 지원하였던 은혜를 갚기 위해 우크라이나 전쟁에 참여하여 우크라이나군을 지원하고 있다.

2022년 3월, ICC에서 전쟁 범죄 혐의를 받는 남오세티야인 3명에 대한 체포 영장을 청구했다. #

2022년 3월 31일 남오세티야 당국은 러시아에 편입하겠다는 의사를 공식적으로 표명했다. # 이에 대해 러시아는 법적 장애물이 없다고 밝히며 사실상 국민 투표가 통과되는 대로 합병하겠다는 의사를 밝혔다. 이에 대해 조지아 정부는 용납할 수 없다는 입장을 표명했다. #

9. 여담

개막일에 올림픽 휴전을 위반했으니 IOC의 뚜껑이 열린 건 당연지사. 그나마 러시아는 먼저 공격받아서 반격한 것뿐이라는 식으로 언플해서 참작을 받았지만 조지아는 선빵을 날린 쪽이어서 무사히 넘어가기는 어려웠다. 그나마 엄중 경고로 넘어갔기에 양국 모두 2010 밴쿠버 동계올림픽에 나설 수 있었다.

전쟁 발발 직후, 속보를 본 미국인이 인터넷에 올린 한 질문 글이 화제가 되기도 했다. 요약하자면 "나 조지아에 살고 있는데 러시아 놈들이 쳐들어왔다면서? 그런데 왜 탱크도 안 보이고 총성도 안 들리지?"라고 질문을 한 것. 이것은 영문 철자로 조지아의 국명과(Georgia) 조지아주는 (State of Georgia) 철자가 동일하기에 생긴 해프닝이다. 그러니까 저 미국인은 조지아를 국가가 아닌 자신이 사는 조지아주로 착각한 것이다. 비슷한 일이 2021년 미국 국회의사당 점거 폭동에서도 있었는데, 트럼프 지지자 중 하나가 조지아 주기 대신 조지아 국기를 들고 온 것(...)이다. 자기네 주기도 몰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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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년: 조지아로 진격하는 러시아군 전차의 행렬
2022년: 조지아로 탈출하는 러시아 차량의 행렬
2022년 러시아에서 동원령이 내려지자 러시아군이 조지아로 진격하던 그 장소에서 14년 뒤 전쟁터에 끌려가지 않으려고 강제 징집을 피하기 위해서 조지아로 탈출하는 러시아인들이 늘어났는데, 무려 20만 명이 넘는다고 한다. # 사실 조지아 정부에서는 반러 국가인데도 오히려 러시아인들이 피난을 와도 받아주는 편이긴 한데, 조지아인들이 좋아서 피난을 받아준다기보다는 러시아인들이 피난할 때 가져온 돈을 조지아에서 소비를 많이 해주면서 돈을 벌 수 있는 전쟁특수를 노리는 부분이 더 크다. #

물론, 일반적인 조지아 국민들의 러시아 피난민들에 대한 감정은 매우 나빠서 수도 트빌리시 곳곳에 "러시아로 당장 돌아가라!"(Go Back to The Russia Immediately!), "러시아인들이여, 당신들을 환영하지 않는다."(Russians, You Are Not Welcomes.), 침략국 출신 시민권자들이여, 조지아 영토에서 떠나라!(Citizens from the aggressor countries must leave Georgia immediately.) 같은 낙서들이 수없이 많다. 하지만, 러시아인들이 전쟁을 피하고 조지아로 이민을 와서 눌러앉아 지내는 경우도 많아진 모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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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남오세티야, 압하지야를 넘어 트빌리시 인근 시다카르틀리주 고리까지 점령당하기도 했다. [2] 막강한 군사력을 자랑하는 러시아에 처참히 패배한 조지아가 절박하게 허공을 향해 도와달라고 외치지만 이에 가만히 주시하고 있던 러시아가 이것을 차갑게 비웃으면서 응대하는 내용. 조지아의 NATO 가입이 긍정적이라는 선언문(부쿠레슈티 나토 정상 선언문)의 채택을 주도한 미국(엉클 샘), 이에 미국의 도움을 기대한 조지아, 그리고 나토를 경계하는 러시아로 당시 세 나라 간의 관계 양상을 보여준다. [3] 2008 베이징 올림픽 개막일이다. 백악관도 아니고 국내 시찰 상황도 아닌, 전 세계 평화의 제전이라는 올림픽 개막식장에서 조지 W. 부시 미국 대통령이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총리(당시)의 통보를 받았다. 흥미롭게도 이후 러시아는 14년 뒤 이번엔 우크라이나를 침략하는데 그때도 2022 베이징 동계올림픽과 관련되어 있다. [4] 1990년 남오세티야 소비에트 민주 공화국으로 조지아에서 독립했고 소련 붕괴 직후 조지아를 상대로 독립 전쟁을 벌였다가 러시아의 개입으로 평화 유지군이 설치되면서 휴전 상태가 되었다. [5] 조지아인이 아닌 소수 민족 오세트인이 인구 대부분을 차지하고 있다. [6] 의외로 감사후르디아 집권기에는 별로 사이가 안 좋았다. 감사후르디아 정부가 민주주의나 인권 같은 가치와는 거리가 멀었기 때문이다. [7] 질문은 남오세티야 공화국은 독립 국가로서 현재의 지위를 유지하고 국제 사회의 인정을 받아야 하는가?였다. [8] Ossetian Question 1994, p. 39. [9] 그러나 이같은 논리를 적용하면, 코소보는 현재는 알바니아 계 주민이 다수지만 역시 본래 그 땅의 주인이었던 세르비아의 영유권 주장이 타당하게 되고 미국 등 서방이 코소보의 독립을 지원하고 승인한 것은 부당하다. [10] 2008년 8월 1일, 인근 미승인 국가 3개국만이 남오세티야를 승인했다. 물론 타국의 승인이 필요적 국가 성립의 요건은 아니라는 것은 고려하자. [11] 유엔 소속은 아니고, 단순 러시아-조지아의 협정하에서 파견된 군대였다. [12] 참고로, 민간인을 향한 공격은 국제 형사 범죄법에 위배되는 전쟁 범죄이다. 그래서 현지 군인이 우발적인 민간인 학살을 할 경우 보통 정부는 해당 군인에 징계를 내리나, 조지아는 이를 제대로 통제하지 못하였다. [13] 남오세티야와 마찬가지로 조지아로부터 독립한 미승인국이다. 압하지야는 남오세티야 전쟁이 아닌, 1992년에 일어난 압하지야 전쟁으로 생겨난 나라이나 남오세티야 전쟁 때 남오세티야 측에 서서 군을 파견하고 이로 인해 러시아로부터 국가로 승인받는다. [14] Russian Federation: Legal Aspects of War in Georgia, The Law Library of Congress, Global Legal Research Center, # [15] 원래 올림픽의 취지는 이 시기만큼은 싸우지 말자는 것이고, 지금도 대회마다 정도의 차이는 있으나 대개 국제적 평화주의라는 대원칙이 겉으로라도 지켜지는 성향이 있다. 따라서 이러한 올림픽의 개회식 때 푸틴이 조지아 침공을 시작하고 그것을 (보는 눈이 많은 가운데) 적성국가의 수장에게 통보함으로써 대놓고 올림픽 정신에 반기를 든 것이다. [16] 이 시기는 푸틴이 전쟁 개시로부터 딱 3개월 전인 2008년 5월에 임기가 만료되어서 대통령직에서 내려와서 총리가 된 상태였는데(이 당시 대통령은 드미트리 메드베데프) 말인즉 러시아도 정권 교체가 일어난 지 얼마 안 돼서 전쟁 같은 걸 바로 결정할 수가 없는 혼란스러운 시기여야 정상일 텐데 정권 교체 3개월 만에 바로 전쟁을 개시함으로 인해, 메드베데프가 아니라 푸틴이 실세임이 드러난 것이다. 물론 푸틴과 메드베데프는 어차피 같은 정치적 서클에 속하는 동료이기 때문에 메드베데프의 대통령 취임이 정권 교체는 아니라고 볼 수도 있다. 그러나 "정권 교체"라는 개념의 사전적 정의로 접근해 보면 전임 국가수반의 임기가 종료되고 후임 국가수반이 취임하는 것 자체가 정권 교체이기 때문에, 이러한 관점으로 보면 제대로 된 민주주의 국가라면 설사 후임자가 전임자와 같은 정치적 서클에 속하는 동료 관계라고 하더라도, 일단 후임자에게 국가수반의 자리가 인계가 되었고 그로부터 3개월밖에 경과하지 않은 시점에서 무려 전쟁을 함부로 결정하기가 어려워야 정상이기에, 그런 시기에 러시아가 조지아를 상대로 전쟁을 즉각 개시했다는 것이, 메드베데프는 어디까지나 3선 연임을 금지하는 러시아 헌법을 비껴가기 위해 푸틴이 세운 대리인일 뿐, 진짜 실세는 푸틴이라는 증거인 것은 맞다. [17] 덕분에 전쟁 초기에는 러시아군들이 눈에 아주 잘 띄는 흰색, 파랑색 UN군 방탄모를 착용하고 작전 뛰는 모습을 심심치 않게 볼 수 있었다. [18] 러시아군 7만과 남오세티야군 9천 명. [19] 심지어 당시 예비역으로 돌려져 있던 T-62도 나타났다. [20] 강철의 대원수의 고향이기도 하지만, 조지아 국토의 정확히 한가운데 있으며 교통의 요충지라는 것이 이 전쟁에서 더 중요하다. 고리가 함락된 이후 조지아는 국토를 분단당했다. [21] 실제로 함대공 미사일은 소형 함정에 대해 굉장히 효과적인 타격 수단이 된다. [22] 위 사진을 보면 기념 촬영을 하는 러시아군 중 철모를 쓰고 있는 건 단 1명뿐이라는 것을 알 수 있다. 최전선에서 철모를 쓰지 않는 것은 자살이나 다름없는 위험한 행위인데 러시아군 병사들이 기념 촬영을 대놓고 하면서도 생명의 위협을 느끼지 못할 정도로 조지아군은 형편없었고 반격할 수도 없었다는 것. [23] 이때 미국 정가에선 여전히 네오콘의 힘이 강했던 것도 있지만 조지아 전체가 러시아로 넘어가는 것은 러시아가 미국의 동맹인 유럽 국가들의 안보를 위협하는 것이라서 미국 입장에서도 결코 용인할 수 없었던 일이었다. [24] 러시아군의 T-72라고 알려졌지만 사실 조지아군 소속이다. [25] 한 기는 아군 맨패즈의 오인 사격. [26] 단순 군 시설을 박살 낸 것으로 끝난 것이 아니라 민간 통신망(전화, 인터넷 등)을 사이버전으로 마비시켜 조지아 수뇌부가 전선이 어떻게 돌아가는지 모르게 했다. [27] 소형 함정이라 기동력이 좋은 대공 미사일을 쏜 것으로 추정된다. [28] 이 행위는 조지아와 함께 미국의 지지를 받으며 나토를 들어가길 원했던 우크라이나도 똑같이 한다. 우크라이나는 1천 6백여 명을 파병했다. [29] 이스라엘은 러시아의 압박에도 아랑곳하지 않았으나 이 일로 분노한 러시아가 이스라엘과 대립하던 하마스 측에 최신 무기를 제공했고, 이에 이스라엘이 항의하자 이전에 이스라엘이 그랬듯 러시아는 무시했다. 결국 이스라엘은 두 손 들고 러시아 인근 국가들에 대한 무기 수출을 전면 중단했다. 그래서 우크라이나가 이란 드론 테러에 공격받았음에도 러시아와의 관계 때문에 우크라이나에 아이언 돔을 제공하지 않았다. [30] 전면전에 대비해 예비군용 신품을 산더미처럼 쌓아놓고 있는 대한민국 국군이 매우 예외적인 케이스이다. [31] (Max Popenker, 1973~) 러시아 총기 전문가. Modern Firearms의 운영자다. Forgotten Weapons에서 러시아/소련 총기를 리뷰할 때 자주 합방한다. [32] 체첸 전쟁에서 체첸 반군이 험비를 사용했기 때문에 러시아에선 그때 노획한 험비도 있어서 험비 자체는 크게 의미가 없었다. 게다가 험비도 아프간이나 이라크에서 수도 없이 터져나간 물건이기에 러시아군이 마음만 먹으면 입수하기는 어렵지 않을 터이니 더욱이나. [33] 러시아 군인이 철자를 잘못 적었다. 번역하면 '미국님들 러시아 공수 부대에 옷 줘서 고마워요' 정도. [34] 조지아는 러시아를 비롯한 구소련권, 동유럽에서는 아주 유명한 와인 생산지로 유명하며, 러시아가 조지아산 와인 수입 제재를 실시하자 조지아와 러시아 양국에서 난리가 났다고 할 정도로 조지아의 중요한 수출 품목이기도 하다. [35] 예시로 제1차 세계 대전, 베트남 전쟁, 이라크 전쟁이 있다. 제1차 세계 대전은 프랑스와 독일의 국지전에 이 나라가 끼고 저 나라가 끼고 해서 유럽 전체의 전쟁이 되어버렸고, 베트남전은 압도적인 화력으로 1년 안에 끝내버릴 것이라 추측했으나 게릴라와 공산군의 끝없는 공세로 지연전이 되어 결국 미군이 패배했다. 이라크전은... 말할 것도 없는 세계 최악의 적을 향한 전쟁의 시작을 알리는 작은 시작점이 되어버렸다. [36] 여기서 조지아를 초박살 낸 러시아의 경제가 12위다. 하지만 러시아의 경우 여전히 산업 구조가 지극히 2차 산업에 기초해 있으므로 세계적인 경제적 영향으로 보자면 한국이 그 러시아보다도 영향이 크다. 정치적으로 보자면 러시아의 파급력이 더 클 수 있어도, 영국, 호주 등에 다음가는 미국의 우방국인 한국의 전쟁의 파급력 역시 전혀 무시할 수 없다. [37] 다만, 미국이 이러한 조약을 일방적으로 무시한 전력이 있기는 하다. [38] 미국이 러시아 정도 국가가 아닌 애매한 국가였다면, 명분이고 뭐고 개입했을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지만, 상대는 세계 군사력 2위 국가인 러시아다. 러시아를 상대로 명분도 없이 전쟁에 들어가는 것은 러시아에게 출구 전략도 없이 제3차 세계 대전 시작하자고 말하는 것이나 다름없는 상황이 될 수도 있다. 조지아는 나토 가입국은커녕 미국의 동맹국도 아니었고, 우방국이라기도 살짝 애매한, 말 그대로 이제 막 친해지려는 단계인 나라인데, 미국이 자국의 목숨까지 걸고서 지켜줄 만한 명분도 의리도 없는 게 어찌 보면 당연하다. [39] 개혁·개방 정책의 한 예로 조지아에 우호적이고 경제적으로 도움을 줄 수 있을 거라 예상되는 국가에게 파격적인 비자법을 제정했다. 한국 국민 역시 이 법의 혜택을 받아 조지아에 360일 무비자로 입국 및 체류할 수 있다. 말이 1년 중 360일 무비자 체류이지, 이 정도면 사실상 비자 전면 폐지라 보아도 무방할 정도다. EU 솅겐 조약에 의해 2014년 9월 1일부터 90일 무비자 바뀌었다. [40] 조지아는 내각 책임제라서 총리가 운영 실권을 쥐고 있다. 결국 화가 난 여당에서 주라비슈빌리의 러시아 제재 동참 촉구에 대해 또 불구덩이에 조지아를 밀어 넣을 거냐며 반발했다. [41] 체코와 폴란드 [42] 하지만 도널드 트럼프 정권이 다시 부활시켰다. [43] 아제르바이잔은 이후 2022년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이 터지자 우크라이나에 인도적 지원 뿐 아니라 항공폭탄, 박격포와 개인화기 등 무기까지 지원해 주었다. [44] 조지아와 러시아에는 각각 1999년 1990년에 맥도날드가 진출하였다. 특히 1990년에 개점한 푸시킨 광장점은 냉전의 종식을 알리는 상징 중 하나였다. [45] 1996년 개점. [46] 1998년 개점. [47] 서방과 사이가 나쁘지 않던 유고슬라비아 사회주의 연방공화국(구유고 연방) 시절인 1988년에 이미 베오그라드에 문을 열었다. [48] 파이브 데이즈 오브 워에서는 주인공을 죽음의 위기에서 구해주는 남오셰티야 민병대 소년, 어거스트 에이트에서는 간절히 도움 요청 하는 주인공을 위해 차를 몰고 적진으로 달려가는 조지아군. [49] 사실 우리도 싸우기 싫었지만 어쩔수 없었으며 무고한 국민들은 해할 생각이 없다고 주장하는것은 전형적인 프로파간다 레퍼토리이기는 하다 [50] 캅카스 문서를 보면 알겠지만 조지아가 있는 캅카스 지역은 동유럽이 아니라 서아시아로 여겨지기도 할 정도로 유럽에서 변두리에 속하는 지역이다. 이곳 출신인 스탈린 같은 경우 일본 대사를 만난 자리에서 본인을 아시아인이라 할 정도다. [51] 남오세티야 전쟁은 남오세티야 압하지야, 우크라이나 전쟁은 크림 공화국, 도네츠크 인민공화국 루간스크 인민공화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