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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수정 시각 : 2024-10-29 22:20:08

바그너 그룹 반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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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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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첨자1] 파일:우크라이나 원형 국기.png : 우크라군의 승리, 파일:러시아 원형 국기.svg : 러시아군/친러반군의 승리 [첨자2] 파일:ongo.png : 진행중, 파일:우크라이나 원형 국기.png : 우크라군의 승리, 파일:러시아 원형 국기.svg : 러시아군의 승리 [첨자3] 파일:우크라이나 원형 국기.png : 우크라군의 공격, 파일:모호 아이콘.svg : 공격주체 미상, 그 외 각주 참조 [BLR] 벨라루스 파르티잔 공격 [A] 러시아의 동남부 우크라이나 병합 이후 러시아 연방에 편입된 군민정청 [A] [B] 러시아의 동남부 우크라이나 병합 당시 독립적인 주로서 러시아 연방에 편입되지 않은 군민정청 [B]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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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ff 바그너 그룹 반란
Wagner Group rebellion
Мятеж Пригожина[]
프리고진의 난이라는 뜻이다.]}}}
파일:바그너 그룹 반란.svg
기간
2023년 6월 23일 ~ 2023년 6월 24일
장소

[[러시아|]][[틀:국기|]][[틀:국기|]] 로스토프나도누, 보로네시, 모스크바, 리페츠크[2], 툴라
원인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 러시아 국방부 바그너 그룹 간 갈등 격화
교전 국가 및 세력
바그너 그룹
반란 가담 러시아 연방군[3]
반란 가담 러시아 국가근위대[4]

[[러시아|]][[틀:국기|]][[틀:국기|]]
· 러시아 연방군
· 러시아 국가근위대
· 러시아 연방보안국
· 러시아 경찰
지지 의사 표명 국가 및 세력
러시아 의용군단
자유 러시아 군단

[[튀르키예|]][[틀:국기|]][[틀:국기|]][5]

[[북한|]][[틀:국기|]][[틀:국기|]][6]

[[체첸 공화국|]][[틀:국기|]][[틀:국기|]][7]
지휘관
예브게니 프리고진
드미트리 웃킨
알렉산드르 쿠즈네초프

[[러시아|]][[틀:국기|]][[틀:국기|]]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틀:국기|]][[틀:국기|]] 세르게이 쇼이구

[[러시아|]][[틀:국기|]][[틀:국기|]] 발레리 게라시모프

[[러시아|]][[틀:국기|]][[틀:국기|]] 유누스베크 예브쿠로프

[[러시아|]][[틀:국기|]][[틀:국기|]] 압티 알라우디노프[8]

[[러시아|]][[틀:국기|]][[틀:국기|]] 자인디 진기예프[9]
병력
약 8,000명(텔레그래프 보도)
~ 25,000명(프리고진 주장)
미상
피해규모
바그너 그룹 30명 사망
(프리고진의 주장)[10]
바그너 그룹 트럭 3대[11]
러시아 군용기 1기 격추
러시아군 헬기 6기 격추[12]
러시아 항공우주군 12명 사망[13]
결과
양측 합의에 따른 반란 종결
바그너 그룹 러시아 정부 간 협상 타결
영향
바그너 그룹 중 미가담자, 러시아 연방 국방부와 계약[14]
예브게니 프리고진 벨라루스 망명
그룹 내 핵심 인물들의 비행기 추락사

블라디미르 푸틴 대통령의 권위 실추
일시적인 러시아군 전선 약화


[clearfix]

1. 개요

바그너 그룹 반란 전개
2023년 6월 24일부터 6월 25일까지 벌어진 러시아의 민간군사기업이자 2022년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에서, 러시아 연방군과 함께 공격의 주축을 맡고 있는 바그너 그룹 대표 예브게니 프리고진이 주도하여 일으킨 무장 반란이다. 러시아 정부 측에서는 조국을 배반한 무장 반란으로 간주하였다. 러시아 연방 건국 이후 최초로 일어난 러시아 대통령 러시아 연방 정부에 대한 대규모 군사 반란이며[15] 알려진 정보들에 따르면 바그너 그룹은 로스토프나도누 보로네시주로 진출하고서는, 수도 모스크바로 진군을 시도하였다.

그러나 벨라루스 알렉산드르 루카셴코 대통령이 러시아 푸틴 대통령의 동의 아래 프리고진과 협상을 진행했고, 그 결과 대규모 유혈충돌 없이 프리고진이 협상을 받아들여 바그너 그룹은 전선으로 돌아가라는 명령을 전달받았고, 프리고진 본인은 면책 약속을 받고서 벨라루스로 망명길에 오르게 된다.

프리고진은 블라디미르 푸틴 대통령이 아니라 그 밑의 러시아 연방 국방부 관료인 세르게이 쇼이구 국방장관, 발레리 게라시모프 총참모장 등 군부를 축출하기 위한 '정의의 행진'[16]이라고 밝혔으며 러시아 군 수뇌부인 쇼이구와 게라시모프 등을 '처리'시킬 것을 천명했으나, 푸틴 대통령이 (당연하게도) 반란을 지지하지 않자 블라디미르 푸틴 대통령의 축출로 목표를 확대한 상태라는 주장도 잠깐 나왔었다. 그러나 푸틴 대통령과 프리고진이 협상을 타결하게 되면서 이 주장은 사실이 아닌 것으로 밝혀지게 되었다.

2. 배경

바그너 그룹 반란을 일으킨 명목상의 이유는 ' 러시아 연방군이 바그너 그룹의 기지에 미사일을 발사하여 2,000여 명의 용병들이 사망했으므로 이를 규탄하고 군부의 폭정을 몰아내기 위해서'이다.

바그너 그룹은 러시아 상트페테르부르크 본부를 두고 있는 민간군사기업(PMC)으로 2013년 창설되어 아프리카, 시리아, 그리고 우크라이나 등지에서 활동하고 있었다.

2022년 3월 바그너 그룹이 참전한 이후 죄수나 은퇴한 예비역들을 모집해 규모가 거대해진 바그너 그룹은 바흐무트 전투 등에서 인명을 경시하고도 대규모 돌격 공격을 감행해서 전쟁에서 성과를 거두었다. 이를 통해 러시아 내 지지와 지원[17]을 받게 되었다. 이처럼 그동안 바그너 그룹은 전쟁을 일으킨 블라디미르 푸틴 정권의 무장친위대서의 역할을 수행하였다.

그러나 푸틴의 총애로 군부의 실권을 쥐어온 세르게이 쇼이구 국방장관과 바그너 그룹의 대표인 예브게니 프리고진 간에 갈등이 생기기 시작한다. 자세한 내막은 알 길이 없어 '이런 이유 때문'이라고 말하기는 어려우나, 바그너 그룹이 바흐무트 지역에서의 성과를 거둔 것에 대한 군부의 과도한 견제가 원인이 된 것으로 보인다.

바흐무트에서의 전투가 지속되는 와중 프리고진은 여러 차례 러시아 항공우주군의 지원 부재와 러시아 국방부 측의 포탄을 충분히 지급하지 않는 등의 문제로 전투에 차질을 빚고 있다고 고충을 토로했었다. 2023년 5월 초 프리고진은 바그너 그룹의 혈투를 강조함에 이어 바흐무트 전투의 승전에서 누가 더 공을 많이 세웠느냐부터 시작해 바그너 그룹의 지휘권 문제도 불거졌다.

그러나 2023년 5월 말 바그너 그룹이 바흐무트를 철수하는 길목에 러시아 육군 제72차량화소총여단이 지뢰를 설치하는 등 러시아군과 바그너 그룹 사이의 관계는 사이가 좋지 않았다. 프리고진은 바그너 그룹을 자신의 영향력 아래에 두길 원했고, 러시아군과 그 수뇌부인 세르게이 쇼이구, 발레리 게라시모프등을 계속해서 비난했다. 그러자 러시아 국방부는 바그너 그룹을 자국군 아래로 두기 위해 6월 말까지 모든 의용군에 러시아 국방부와 계약을 맺을 것을 요구했으나, 프리고진은 이에 불복하였고 국방부와 계약을 맺더라도 자신의 입맛대로 할 것을 요구하며 알력다툼을 벌였다.

결국 프리고진은 "러시아 국방부가 민간인을 학살한다", "러시아가 일으킨 ' 특수군사작전'이 잘못되었다"는 등의 과거에는 상상하지도 못할 비난을 군부에게 퍼부었고, 이에 러시아 국방부는 카디로비치들과 정식 계약을 맺는 등 바그너 그룹을 토사구팽하려는 움직임을 보이게 된다.[18] 결국 참다 못한 프리고진은 '쇼이구와 게라시모프의 축출'을 명분으로 무력 행동을 시작하게 됐다.

또한 프리고진은 "애초에 우크라이나를 침공할 이유가 없었다."는 발언도 했는데, 이는 군의 반전 여론을 이용하려는 움직임으로 볼 수 있다. 실제로 러시아군의 전투 의욕이 저하되어 반란 실행이 가능했다는 점에서 정말로 우크라이나 전쟁의 종료와 정권 장악 2가지 다 목표일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실제로 우크라이나 전선의 러시아군이 모두 프리고진의 편을 들게 된다면 러시아 정부 입장에서 프리고진은 무시할 수 없는 상태가 된다. 프리고진이 장악하고 있는 로스토프 주에서 프리고진이 웅거하면서 이 곳을 거점으로 러시아 정부에 위협을 가할 가능성도 상당하다.[19] 바그너 그룹은 러시아의 사주를 받고 각종 분쟁에 참여하여 이권을 얻어 자금이 부유한 상태로 정부의 지원 없이도 싸울 만한 군자금을 가지고 있다.[20] 또한 그 치열한 바흐무트 전투에서 승리할 정도로 역전(歷戰)의 용사 베테랑들이라 숫자는 적어도 전투력도 상당하다.

2023년 6월 초 제2대 도네츠크 인민공화국 국방장관 이고르 기르킨은 자신의 텔레그램을 통해 예브게니 프리고진이 반란을 계획하고 있다고 밝혔으나 예브게니 프리고진은 이를 부인했다.

3. 경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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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1. 전황 요약

4. 전망

미국 전쟁연구소(ISW)는 해당 반란에 대해 "성공할 가능성이 낮다"며 프리고진이 "(러시아의 전력/푸틴의 입장을) 엄청나게 오산했을 수 있다"고 분석했다. # 러시아 정규군 장성 중 대표적 중도파이자 프리고진과 사적으로도 친분이 깊은 세르게이 수로비킨 대장이 바그너 그룹보다 푸틴 정권을 지지하는 기조를 보이면서 '비교적 영입하기 쉬운 이조차 영입하지 못한 시점에서, 중도파조차 푸틴 정권을 지지하는 스탠스로 돌아설 가능성이 크다.'라고 본 것이다. 프리고진이 러시아 정규군 내 장교들의 지지를 얻어 이를 통해 반란을 진행시키고 있으나, 푸틴이 확고하게 러시아 연방 국방부를 지지하고 있는 이상 바그너 그룹의 반란이 실패할 가능성이 크다고 관측했다. #

카네기국제평화재단 선임연구원 타티야나 스타노바야는 이번 반란이 푸틴에게 타격이 될 것으로 전망하면서도 이번 반란은 곧 바그너의 해체로 이어질 것이라며 "프리고진의 끝이자 바그너의 끝"이라고 해석하였다. #

미합중국 육군의 퇴역 소령 Mike Lyons는 CNN과의 인터뷰에서 "(반란 이후의 바그너 그룹이) 러시아군에 동화돼 다시 전선에 보내질 것 같지는 않으며, 이것이 문제가 될 것 같다."고 전망했다. #

4.1. 2022년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에 미치는 영향

알렉산드르 루카셴코의 주재로 블라디미르 푸틴 예브게니 프리고진 간의 협정이 이루어짐으로써 바그너 그룹이 다시 우크라이나 전선으로 복귀할 것으로 보인다. 우크라이나 입장에선 바그너 그룹이 전선에서 이탈했고 그들이 복귀하기 전에 조금이라도 더 영토를 수복하는 것이 최선이다.[21]

우크라이나 입장에서는 이 분열되었으나 24시간 만에 봉합되어 좋다 말았다. 다만 'Clash Report'라는 언론사에 의하면 여러 방면으로의 공세를 개시하며 혼란해진 시점을 최대한 이용하려는 모습을 보이기는 했다.

5. 평가

반란을 자신의 중재를 통해 종결시키며 양측에 대한 영향력을 과시한 벨라루스 대통령 알렉산드르 루카셴코와, 러시아의 내부 분열이라는 호재를 얻은 우크라이나 대통령 볼로디미르 젤렌스키[22] 외에는 모두가 손해만 본 실패한 반란으로 평가되고 있다.

프리고진이 왜 돌연 항복했는지에 대해 왈가왈부가 많으나, 사실 고작 2만5천여 병력으로 천만 인구가 밀집한 모스크바를 점령하는 건 불가능에 가깝다. 심지어 서방측 일각의 주장과 달리 푸틴은 이번 반란에 강경하게 나설 준비를 했기 때문에, 섣불리 모스크바에 공세를 가했다간 오히려 러시아군과 모스크바 방어군에 포위당해 몰살당하는 상황이 됐을 것이다.[23] 이번 협상의 주체가 알렉산드르 루카셴코 벨라루스 대통령이며 푸틴과 프리고진 모두 협상안에 동의해 하루만에 반란이 평화롭게 종결되면서 묻혔을 뿐, 러시아 정부 입장에선 여차하면 바그너 그룹을 강경진압할 준비도 충분히 해뒀던 셈이다.[24]
It has also been assessed that the mercenary force had only 8,000 fighters rather than the 25,000 claimed and faced likely defeat in any attempt to take the Russian capital.
또한 용병 부대는 25,000명이 아닌 8,000명에 불과한 것으로 평가되며 러시아 수도를 점령하려는 시도에서 패배할 가능성이 높습니다.
(텔레그래프) Russian agents’ threat to family made Prigozhin call off Moscow advance
게다가 프리고진은 본인에겐 죽기를 각오하고 절대 항복하지 않는 25,000명의 바그너 병력이 있다고 주장했지만 실제로 드러난 동원 병력의 규모는 대략 8,000명으로 물론 적은 규모는 아니지만 프리고진 본인이 주장했던 것에 비해 1/3의 규모에 불과했다. 한술 더 떠서, 프리고진의 반란에 동참한 군부 장성은 아무도 없었다.

만약 모스크바 방어군을 격퇴하고 진입한다고 해도 그걸로 끝나는 것이 아니다. 쿠데타를 성공하려면 가능하면 푸틴이나, 그게 불가능하다면 최소한 쇼이구나 게라시모프 같은 국방부의 핵심요인들을 특수부대를 보내 생포하고, 방송국을 점거해 프로파간다 방송을 송출하며, 두마의회를 소집하여 쿠데타의 정권성을 확보해야 한다. 이 모두 쉬운 일이 아니며, 이러한 것을 실현시키려면 최소한 모스크바 지도를 가지고 작전계획을 면밀히 세웠어야 할터인데, 초기 목표가 로스토프에서 쇼이구를 붙잡는 것이었으니, 모스크바 함락작전을 세우지는 않았을 것이다. 거기다 쇼이구를 붙잡는데 실패한 시점에서 바그너 그룹이 주장을 밀어붙일 레버리지가 없었으며 푸틴 본인은 이미 모스크바 밖으로 도주한 상황이라는 정황이 있었으며, 설령 아니더라도 기습이 아니니 충분히 도주할 시간이 있었다. 푸틴을 생포하지 않으면 이괄의 난과 같은 상황일 것이다.

설령 상술한 모든 일들을 천운이 따라줘서 성공적으로 해낸다고 하더라도 그걸로 끝난 것은 아니다. 우크라이나에 있는 러시아 군대는 일개 용병집단의 수장 프리고진의 통수권을 인정하지 않고 진압하려고 할 것이고 그 과정에서 국민적인 지지를 얻게 된다면, 마치 혼노지의 변을 진압한 도요토미 히데요시처럼 러시아의 정권을 장악할 수 있다는 계산이 설 것이다. 이렇게 되면 프리고진의 목은 탐스러운 트로피에 지나지 않게 된다.

프리고진이 모스크바 근교까지 진격하고서 허무하게 항복한 이유는 선술했듯 그를 지지하는 세력이 아무도 없어서[25] 최악의 상황에서는 러시아군과 모스크바 방어군에 앞뒤로 포위당해 전멸할 가능성이 훨씬 높았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로스토프나도누에 가만히 앉아서 우크라이나를 공격하는 러시아군의 숨통을 틀어쥐고 있어봤자, 정작 우크라이나에 좋은 일을 해주면 역으로 러시아 내부에서 자신의 입지가 마하의 속도로 0으로 수렴하는 꼴이기에[26] 결국 이번 반란은 '푸틴이 내 억울함을 이해해주고 날 지지해줄 것이다'라는 희망회로 이외엔 어떠한 가망성도 없던 반란이었다. 즉, 초장에 푸틴의 지지를 얻는데 실패한 시점에서 이미 성공 가능성이 사라졌던 반란인 셈이다.

심지어 루카센코도 자신이 프리고진과 통화하면서 프리고진에게 이번 반란의 여파가 벨라루스로 확산되는 것을 방지하기 위해 정 필요하다면 벨라루스군도 모스크바로 파견돼서 반란으로부터 모스크바를 방어할 수 있다는 입장 #을 전달했다고 공개했다.

이렇듯 너무 전개가 황당하다 보니 러시아군의 내부 단속을 위한 푸틴의 자작극 음모론 등이 돌아다니기도 하지만, 이 반란 사태로 러시아 공군의 군용기 몇 기가 격추되었다는 점, 실제로 모스크바 인근에서 바그너 그룹의 진격을 막기 위한 조치가 벌어졌다는 점, 푸틴의 위신이 그야말로 땅바닥으로 떨어졌다는 점을 고려하면 가능성이 극히 낮다. 만약에 자작극이었다면 적어도 푸틴이 주도적으로 나서서 사건을 해결하면서 위신에 손상을 받지 않는 방식으로 이루어져야 했을 것이나, 결과적으로는 루카셴코의 중재로 해결된 모양이 되었기 때문에 푸틴은 전혀 이득을 본 것이 없기 때문이다. 특히 푸틴이 스트롱맨 이미지로 권좌에 오른 권위주의 독재체제의 지도자인 점을 감안하면 이미지를 깎아먹는 것은 그 무엇보다도 큰 손해다.

반란이 이렇게 어처구니 없게 시작되고 황당하게 끝난 것은 애초 이번 반란이 프리고진 자신이 바그너 그룹의 통제권을 뺏기지 않기 위해 도박을 한 것에 가깝다. # 한국에선 '요리사'나 '동화작가' 정도의 경력만 주로 부각됐는데, 실제로 그는 전과가 상당한 범죄자 출신 인물이다. 물론 국가 지도자들 중 범죄자 아닌 사람만 있는건 아니지만, 프리고진의 죄질은 '절도'나 '강도' 등이고, 구속기간도 10년 이상도 있는 등, 상당히 죄질이 나빴다. 죄질만 보고 사람을 100% 판단할 수 있는 것은 아니지만, 절도 경력 등에서 보이듯 상당히 충동적인 인물이었음을 짐작할 수 있다.[27]

한편으로는 옛부터 모스크바등의 핵심지역이 산이 없는 평야지대 위주의 국토가 형성되어 있는 러시아의 지정학적인 취약점이 다시 한번 드러나게 된 계기가 되었다.[28]

이 사건의 최대 피해자는 결국 반란의 당사자들인 예브게니 프리고진 블라디미르 푸틴이라는 것이 공통된 평가이다.

실패한 반란의 주모자가 된 프리고진은 수십년간 쌓아온 모든 것을 잃었다. 우선 바그너 그룹도 반란 실패로 당연하게 날려먹었는데 이제 프리고진에게 남은 바그너 그룹은 프리고진과 함께 한 배에 올라탄 처지가 된 소수의 바그너 그룹 지도부들 뿐이다. 수만명에 달하는 바그너 그룹은 벨라루스로 데려갈 수도 없으니 그대로 러시아에 낙동강 오리알로 남겨져 푸틴의 처분을 기다려야만 하는 상태. 프리고진의 재산도 이후 러시아 정부가 프리고진의 재산을 압류하고 은행 계좌를 동결한다면 지난 30년의 사업 영광은 끝나게 된다 (kbs) 결국 바그너 그룹내에서도 점차 이런건 배신이며 무모하고 몰상식한 짓이었다며 프리고진을 비난하며 등을 돌렸으며 바그너 그룹을 옹호해온 전쟁 지지자들도 반란 실패 이후 프리고진에게 싸늘해졌다. #

반란을 일단은 막아낸 푸틴도 극심한 손해를 본 것은 마찬가지다. 상황 자체가 기르던 개에게 물린 모양 빠지는 상황임은 차치하고서라도, 반란군이 로스토프에서 모스크바까지 속전속결로 올라올 수 있었던 것은 대부분의 병력이 우크라이나와의 최전선에 몰린 공백을 틈탄 요행이지만, 러시아군 대부분이 적극적인 저지 행동을 취하지 않고 소극적으로 관망했기 때문이다. 물론 프리고진 역시도 동조세력을 얻지 못하고 모스크바 코앞에서 자멸했지만, 푸틴에게 있어서는 이 상황 자체가 리더십의 균열을 암시하는 것이기 때문. 특히 진압 과정에서도 푸틴 자신이 주도적으로 진행하면서 이미지 손실을 최소화하지 못했고, 루카셴코의 중재를 통해 해결된 모양새가 된 탓에 푸틴의 이미지는 치명적인 손상을 입었다. 전형적인 친푸틴 인사인 블라디미르 솔로비요프의 방송에서 등장하는 선전가들조차 대놓고 푸틴을 비판할 정도이다. # 즉, 가시적으로 드러날 정도로 푸틴의 리더십이 큰 타격을 입었다는 이야기이다. 미국의 외교전문매체 포린폴리시에서는 아예 대놓고 ’푸틴의 종말의 시작‘이라고 주장할 정도이며 영국의 더 가디언에서는 스스로의 욕망 때문에 파멸하고 있을 뿐이라고 촌평했다. # 친러 성향의 도널드 트럼프 전 대통령도 다소 약해졌다고 말했다. #

프리고진의 비난 대상이 된 쇼이구도 크게 타격을 받았다. 프리고진의 반란에 공감할 수는 없지만 국방부의 개혁이 필요하다며 국방부에 대한 프리고진의 저항은 지지한다는 반응이 나오기도 했다. # 무엇보다도 이번 반란 대처에 실패하면서 정부와 군 내에서 신뢰를 잃었다. #

이후 러시아 최대 독립언론 '메두쟈'에서 크렘린 소식통등을 취재해 협상 막후 과정들을 보도했다. # 당시 초기부터 러시아 정부는 협상하려고 했는데 프리고진이 말이 안되는 요구들[29] 을 해대며 잘 진행이 안되자 결국 러시아 정부도 강경하게 나섰고 이후 프리고진 스스로도 본인이 용인받을 선을 이미 한참 넘었음을 깨닫고, 러시아군의 방어선에 가까워짐에도 어떤 세력도 프리고진에 동참하지 않았다. 결국 러시아 정부는 프리고진의 셈법이 바뀜을 알고 유혈진압없이 끝내기로 해 협상에 보증을 해줄 입지가 있는 루카셴코의 동의하에 그를 활용했다는 것이다.

이후 루카센코는 공개석상에서 자신의 협상 관여 과정을 설명, 당시 푸틴이 바그너그룹에 대해 잔인한 결정을 내렸다는 것을 알게 돼서 푸틴에게 서두르지 말자고 설득했으며 프리고진과도 통화하며 프리고진에게 모스크바로 진입하려는 순간 벌레처럼 짓밟힐 거라고 경고하며 바그너 그룹의 모스크바 진입을 말리며 바그너 그룹의 명분인 국방부장관과 참모총장을 푸틴이 넘겨줄리가 있겠냐며 프리고진도 푸틴을 잘 알고있지 않냐고 설득한게 성공했다고 밝혔다.

예브게니 프리고진은 당초 우크라이나 접경에 덫을 치고 러시아군 수뇌부를 생포할 계획이었으나, 이런 계획이 사전에 들통나면서 모스크바 진격이라는 '플랜 B'를 강구할 수밖에 없었다. #

러시아 독립 여론조사기관 레바다센터가 프리고진 반란 직후인 지난 25일부터 28일까지 수행한 여론조사에서 프리고진에 대한 지지율이 29%로 곤두박질쳤다고 보도했다. 푸틴의 지지율은 큰 변화가 없으나 지역 정치인들의 말을 인용해 크렘린궁이 전날인 29일 공유한 내부 보고서를 보면 푸틴 대통령에 대한 대중의 신뢰도가 지역별로 9∼14% 포인트 떨어졌다고 전했다. #

반란에 연루된 것으로 추정되는 고위직을 색출해내려 하는 가운데 세르게이 쇼이구 국방장관 등 군 수뇌부에 반대하는 움직임도 일어나면서 내분이 확산됐다. #

푸틴의 행동도 다른 모습을 보여주고 있으며, 측근들에게 휘둘릴 가능성이 있다. # 대표적인 예가 8세 아이를 크렘린궁에 초청한 것이다. #

그럼에도 프리고진은 텔레그램 등지에서 여전히 인기가 높다. # 푸틴은 지금도 스마트폰을 쓰지 않아서 SNS의 위력을 간과하고 있다. 그리고 상트페테르부르크의 한 쇼핑몰 주차장에서 바그너그룹 지지자들이 모였다. #

러시아 반체제 인사 미하일 호도르코프스키는 반란 당시푸틴 대통령 전용기인 일류신(IL)-96기가 지난달 24일 오후 2시16분 모스크바에서 출발했고 오후 2시39분 발다이와 가까운 트베리시(市) 서쪽에서 추적이 끊겼다고 설명했다. # 푸틴 대통령이 모스크바를 떠났었다는 정보를 지인 중 한명으로부터 얻었다고 밝혔다.

레오니드 카신스키 벨라루스 국방장관 보좌관은 바그너그룹이 아직 자국에 들어오지 않았다고 밝혔다. #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이 6월 말 바그너그룹 용병들을 만나 러시아 정규군에 편입할 것을 제안했었다. #

결국 프리고진은 자가용 항공기로 모스크바에서 상트페테르부르크로 가는 도중 추락하여 사망하였다. 반란이 실패한 시점에서 러시아에 얼씬도 안하고, 아프리카와 같이 푸틴의 손이 안 닿는 곳에서 경호를 철저히 하고 머물러야 목숨을 구할 것이라는 평이 많았는데, 왜 러시아에서 활동하였는지는 의문. 처벌하지 않는다는 푸틴의 약속을 믿었거나, 아니면 푸틴도 자신을 죽일 수 없다고 오판한 것으로 보인다. 프리고진의 죽음은 사실상 '반란을 일으킨다면 어설프게 타협하지 말고 끝까지 가야한다.'는 것[30]을 보여준 사례다. 자세한 내용은 바그너 그룹 전용기 추락 사고 문서 참조

6. 입장

6.1. 파일:바그너 그룹 깃발.svg 바그너 그룹

6.2. 러시아

6.3. 우크라이나

6.3.1. 러시아 의용군단

6.3.2. 자유 러시아 군단

6.3.3. 칼리노우스키 연대

6.3.4. 조지아 민족군단

6.4. 친우크라이나 국가

어느 한쪽을 지지하지 않고 사태를 주시하였다.

6.4.1. 미국

6.4.2. 영국

6.4.3. EU NATO

6.4.4. 대한민국

6.5. 친러시아 국가

친러 국가들조차 북한 등을 제외하고 대부분 블라디미르 푸틴 대통령을 강력하게 지지하지 않고, "러시아 내부 문제"라는 입장을 밝히거나 애매모호한 스탠스를 취하고 있다.

6.5.1. 벨라루스

6.5.2. 중국

6.5.3. 이란

6.5.4. 카자흐스탄

6.5.5. 북한

6.6. 기타 국가

6.6.1. 튀르키예

NATO 국가이면서 이번 반란에선 러시아를 지지했다.

6.7. 기타

7. 같이 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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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전 우크라이나 침공,( 바흐무트 전투 · 솔레다르 전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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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 MBC에서 반란군이 진입에 성공했다고 보도했다. # [3] 제2근위루간스크-세베로도네츠크군단의 차량이 목격된 것으로 보아 일부가 가담한 것으로 추정된다. 제98근위공수사단 산하 제217근위공수연대가 반란에 동참했다는 정보도 있었으나 사실이 아닌 것으로 판명되었다. [4] OMON 일부가 가담했다. [5] 출처 : #. [6] 출처 : #. [7] 출처 : #. [8] 아흐마트 스페츠나츠 사령관. [9] 제78특수차량화연대 [10] 출처: 요약문. 음성 버전 [11] 바그너 그룹이 공개한 6월 24일 M4 고속도로 공습 피해 사진에서 확인된 피해, 출처: #. [12] 출처: #. [13] 출처: #, #. 사망자가 최대 20명에 달한다는 주장도 있다 #. [14] 바그너 그룹 인원들 중 프리고진의 반란에 가담하지 않은 자들만 국방부와 계약하게 된다. # [15] 그 이전에 러시아 지역에서 일어난 반란중 8월 쿠데타 소련 말기에 발생한 쿠데타이다. 1993년 러시아 헌정위기는 친위 쿠데타였으며, 나머지 쿠데타 시도는 모의 단계에서 실패하였다. [16] 본인의 텔레그램 계정에 음성 성명 등을 통해 쿠데타가 아니라는 주장을 반복하였다. [17] PMC로서는 거의 전례가 없는 전차와 장갑차, 항공기 등도 지원받을 정도였다. [18] 간간히 람잔 카디로프가 프리고진의 국방부에 대한 불만에 동참하기도 했지만, 카디로비치 바그너 그룹이 처한 입장은 너무나도 달랐다. 카디로비치는 수장 람잔 카디로프부터가 체첸 공화국 수반으로 오래 전부터 러시아 지배층의 중심에 들어가있던 사람이었다. 반면 프리고진은 막대한 재산을 가진 올리가르히이자 민간군사기업 바그너 그룹의 대표였을 뿐 러시아 정계, 군부에 제대로 진입하지도 못한 자였다. 애초 자수성가한 프리고진과 달리 람잔 카디로프는 아버지부터가 이미 체첸의 거물급 인사였던 아흐마트 카디로프였다. [19] 러시아 정부에 실질적인 위협을 가하려면 모스크바에 진입해야 한다. 이러한 상황이면 정부는 계엄령을 내려서 즉각 대응에 나설 것이다. 만에 하나 로스토프에 머무르기만 한다면 이미 반란을 일으킨 이상 자멸하게 될 것이다. [20] 바그너 그룹은 신속지원군을 지원해 수단의 금광 채굴권을 차지한후 금을 채굴, 밀매하여 부를 축적하고 있다. # [21] 다만, 수장인 프리고진은 바그너 그룹에서 쫓겨난 셈이고 세르게이 쇼이구가 바그너 그룹 견제를 위해 만든 PMC '애국자들'이 있는 만큼 이중 대부분을 애국자들로 흡수할 가능성이 높아 큰 전력 감소까진 안 날 가능성이 높다. 다만 소속이 바뀌니만큼 최소 며칠은 소속 정리로 시간이 끌릴 가능성이 높다. [22] 물론 우크라이나 입장에서는 최대한 반란이 장기전으로 흘러 러시아와 바그너가 양패구상하여 이득을 얻는 상황이 최선이었으나, 단 하루 만에 반란이 끝났으니 큰 이득은 보지 못하게 되었다. 다만 지휘체계 혼란이 일어났기 때문에 소폭의 이득은 보았다. [23] 후에 밝혀지길 정작 모스크바로 진군하던 규모가 고작 8000여명이란게 밝혀지면서 애당초 모스크바 수비군만으로 몰살이 가능했을 확률도 있었다. [24] 다만 강경진압이라고 표현하기에는 대규모 야전군이 집결하는 모양은 아니었으며, 공세를 취하기 보다는 중요 길목 곳곳에 바리케이드를 치고 기관총을 배치하며 방어 위주의 시가전을 준비하고 있었다. 핵심 기갑전력 상당수가 우크라이나 전쟁에 투입되었고, 또 바그너 그룹이 2만 5천 병력이라고 선전하던만큼 무장상태에서 바그너 그룹보다 우위라는 확신을 할 수 없었던 것으로 보인다. 실지로 중간에 바그너 그룹을 급습한 헬기전력이 격추당하는 등, 만만치 않은 무장상태와 훈련도가 있었다는 것을 보여주었다. [25] 특히 반란에 가장 큰 힘이 되어줘야만 하는 러시아 군부가 이번 반란에 전혀 호응하지 않았다. 일개 병사들의 일탈 외엔 러시아 고위 장교들은 끝까지 푸틴을 지지했다. [26] 당장 프리고진 및 바그너 그룹이 러시아 내의 주요 세력으로 우뚝 발돋움한 계기가 바로 우-러 전쟁의 성과였다. 근데 정작 자신이 우크라이나 공세를 담당하는 러시아군의 숨통을 틀어쥐면 결국 자신이 이긴 솔레다르, 바흐무트 등지가 재점령당할 가능성도 충분히 높고, 그럼 결국 프리고진 휘하 병사들은 그냥 개죽음만 했던 셈이 된다. 거기다 시간이 지날수록 그러한 프리고진의 행태를 러시아 정부가 적나라하게 언론으로 퍼날라 그의 지지도를 깎아버렸을 것이다. [27] 무엇보다도 프리고진이란 작자는 무일푼 잡범에서 핫도그 장사로 떼돈을 벌고, 다른 곳도 아닌 수도에 고급 레스토랑을 차리고 러시아 정부와 급식 계약을 맺고 용병으로서도 악명을 떨치는 등등 성공가도만을 달려왔다. 그야말로 분에 넘치는 성공에 그 충동적인 성격까지 더해 눈이 멀었다고 볼 수 있다. [28] 북한산이라는 존재가 천연 방어막을 형성하고 있는 서울과 비교하면 이게 얼마나 서울이 가진 큰 이점인지를 알게 된다. 정치 중심지인 강북을 잃는 최악의 상황에서도 밑에는 한강이 있다. 말 그대로 산 넘어 강. 또 규모는 작을지언정 한강을 넘으면 관악산과 청계산이 적을 반겨주고 있다. 까놓고 말해 주요 도로 몇 개만 마비시켜 두면 산 때문에 지상군의 진격을 그대로 멈추게 할 수 있는 게 서울의 지형이다. 이마저도 불안하여 아예 서울을 빙 두른 경기도 곳곳을 도시화하여 시가전 위협지대를 곳곳에 박아놓은건 덤이다. [29] He wanted Shoigu gone, autonomy over Wagner’s affairs, and more funding. 쇼이구를 내쫓고 바그너 그룹의 업무 자율성과 더 많은 자금을 요구했다. 물론 반란를 일으킨 시점에서 이미 러시아에서 프리고진이 있을 자리는 사라졌기에 소 잃고 외양간 고치기에 불과한 헛된 요구였다. [30] 봉건시대에서의 군주나 현대의 독재자를 비롯한 지도자들은 자기를 위협할 만한 세력을 가장 위험시했기 때문에, 옛날부터 반란을 일으키고도 실패한 이들은 대다수가 비참한 최후를 보였다. [31] 세르게이 수로비킨 대장은 러시아 연방군 장성 중 예브게니 프리고진과의 친분으로 유명했다. [32] 한국 시간 6월 24일 오후 3시. [33] 얼마나 급박했는지, 백악관 근처의 맥도날드 지점들은 한 밤 중에 주문이 쏟아져 매출이 일시적으로 급등했다. # 공무원들이 밤 새도록 백악관에서 사태를 분석한다고 햄버거 세트를 대량으로 싸들고 왔기 때문. # [34] 영국 정부 비상대책위원회의 또 다른 명칭이다. [35] 러시아에서는 1980년대 소련 때부터 쿠데타 발발, 서기장·대통령의 서거·실각 등 정치적 격변이 발생했을 때 라디오나 TV 채널 등에서 이 곡이나 발레 영상을 재생하는 게 전통이다. 링크 1991년, 8월 쿠데타 당시 연방 방송에서 이 곡과 발레 영상을 사흘 동안 반복재생했다. 기사, 번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