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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lbgcolor=#50c0e8><colcolor=#ffffff> 미래의 러시아 초대 대표 알렉세이 나발니 Алексей Навальный | Alexei Navalny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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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본명 | 알렉세이 아나톨리예비치 나발니 |
Алексе́й Анато́льевич Нава́льный (키릴 문자)[1] | |
Alexei Anatolievich Navalny (로마자) | |
출생 | 1976년 6월 4일 |
소련
러시아 SFSR
모스크바주 오딘초보구 부틴 (現 러시아 연방 모스크바주 오딘초보구 부틴) |
|
사망 | 2024년 2월 16일 (향년 47세) |
러시아 연방 야말로-네네츠 자치구 하르프 제3교도소 | |
국적 |
[[러시아| ]][[틀:국기| ]][[틀:국기| ]] |
학력 |
러시아 민족우호 대학교 (
법학 /
학사) 러시아 정부 산하 경제 대학교 ( 법학 / 석사) 예일 대학교 로스쿨 ( 법학 / 비학위 펠로우십 과정) |
부모 |
아버지 아나톨리 이바노비치 나발니 어머니 류드밀라 이바노브나 나발나야 |
형제 | 남동생 올레크 나발니 |
배우자 | 율리야 나발나야[2] |
자녀 |
장녀 다리야 나발나야[3] 장남 자하르 나발니[4] |
직업 | 정치인, 변호사, 인터넷 방송인 |
종교 | 러시아 정교회 |
신체 | 190cm[5], 80kg |
최종 당적 |
|
경력 |
야블로코 모스크바지부 참모장[6] 야블로코 모스크바지부 부국장 유스 퍼블릭 체임버 창립자 DA!–민주적 대안 창립자 민족 러시아 해방 운동 공동대표 키로프주 주지사 고문[7] 반부패 재단 창립자 러시아 야당 조정위원회 위원[8] 러시아 야당 조정위원회 의장[9] 인민동맹 대표 나발니 본부 지도자 미래의 러시아 대표 |
상훈 |
2021년
사하로프상 2021년 자유의 기사상 2010년 예일 월드 펠로우 2024년 드레스덴 평화상 |
서명 | |
플랫폼 현황 | |
플랫폼 | | [16] |
SNS | | | | |
[clearfix]
1. 개요
러시아의 변호사, 정치인.러시아 내 반 푸틴 세력을 상징하던 대표적인 인물 중 한 명으로 블라디미르 푸틴의 독재와 부정, 침략전쟁을 비판했으며, 이로 인해 숱한 정치적 탄압은 물론 독살 미수 사건 등 러시아 정부 관계자로 추정되는 세력으로부터 암살 위협을 받았다. 그는 마지막으로 체포된 뒤 시베리아 야말로-네네츠 자치구 하르프의 제3교도소(IK-3)에 수감되었으며 #[17], 재판이 진행 중이던 2024년 2월 16일 옥중에서 의문사했다.[18]
2. 생애
자세한 내용은 알렉세이 나발니/생애 문서 참고하십시오.3. 다른 야당과의 관계
3.1. 러시아 연방 공산당과의 관계
그닥 사이가 좋은 편은 아니지만 푸틴 반대 활동시 제한적으로 나발니 측과 연대가 이루어지고 있었다. 한마디로 일종의 오월동주.주로 소련 해체 이후 혼란기에서 복고주의를 주장하던 기성 세력은 푸틴, 나발니 둘다에게 적대적이다. 한편 그러면서도 푸틴이 추구하는 강한 국가와 대외관, 관습적 문화를 선호하는 중진 세력은 강한 중앙 정부·크림반도 합병·반(反)동성애 등에 대해 지지하기도 하였다. 실제로 러시아 공산당에서는 나발니를 반동분자 비슷하게 인식하고 있으며 나발니나 푸틴이나 둘다 자본주의자니 나발니 말고 공산당을 지지하라는 입장이다.
예를 들면 2021년 1월 나발니의 푸틴 별장 영상 공개 후 "우리 당의 크라스노다르 주 의원이 먼저 폭로했을 때는 언론들이 아무도 보도하지 않았으면서 나발니가 공개하니 모두 앞다투어 보도하고 있다. 그리고 저길 어떻게 들어갔냐?"고 의문을 제기하면서 나발니를 푸틴과 짜고치는 프락치라는 의견를 제기했다. 나발니가 여러가지 사건에 연루되어 있음에도 자유롭게 해외로 출국하고 있다며 러시아 사법당국이 나발니를 비호하고 있다는 주장은 덤이다.
반면, 21세기 이후 유입된 신진 세력들은 전통적 마르크스-레닌주의에서 벗어난 최신 유럽식 사회민주주의에도 전향적이다. 이는 중립적 외교관과 보다 자유주의적인 문화관을 지지한다. #
예를 들어 실제로 2020년 하바롭스크 시위에서는 나발니 측과 공산당, 러시아 자유민주당 세력까지 가세했다.
2021년 러시아 국가두마 선거에서 나발니의 정당인 미래의 러시아는 통합 러시아 후보들을 낙선시키기 위해 지지자들에게 러시아 연방 공산당 후보들에게 전략 투표할 것을 호소했다. #
4. 논란
그는 러시아 내부에서는 푸틴의 독재를 공격하는 혁명가적인 인물이나, 외국인에 대해서는 제노포비아적 입장을 가지고 있는 국수주의자 혹은 극우라는 지적이 있다. 캅카스인들을 대상으로 한 무료급식 중단 캠페인에 관여, 캅카스계 군인을 바퀴벌레에 비유하는 발언 등으로 비난받았다. 본래 나발니는 러시아의 친서구, 자유주의 성향 정당인 야블로코당 소속이었으나 이런 성향의 발언 때문에 2007년 야블로코당에서 출당 당했다.2007년 나발니가 자신의 옛 유튜브 채널에 올린 영상.[19] 치과의사로 분장해 외국인 노동자들을 뽑아야 할 충치에 비유하며 그들의 추방을 요구했다. "러시아인들의 뿌리가 러시아에서 사라지지 않도록 민족주의자가 되라"는게 나발니의 말. 이런 주장은 화이트 제노사이드와 통한다.
나발니의 구금과 함께 민주화 운동가로서 관심이 쏠린 시점에서 더 뉴요커지는 이러한 나발니의 내셔널리즘을 경계하는 칼럼을 실었다. 전반적인 논조는 그는 자유민주주의의 영웅 넬슨 만델라가 아니라 배타적 내셔널리즘에 찌든 (로힝야족을 탄압하는) 아웅 산 수 치이기 때문에 무조건적인 미화는 자제해야 한다는 평.[20]
그리고 앰네스티의 양심수 목록에서도 제외되었다. # 러시아의 상황이 상황인지라 얼마 뒤 다시 재지정되긴 하였지만, 엠네스티는 여전히 해당 발언에 대해 용납할 수 없다는 입장을 견지 중이다. #
또한 나발니는 크림반도가 우크라이나가 아닌 러시아의 영토라고 인정한다. 2014년 인터뷰에서 '크림 반도는 러시아의 일부로 남을 것이며, 결코 가까운 시일내에 우크라이나의 일부가 되지 않을 것' 이라고 말했으며, 대통령이 된다면 크림 반도를 우크라이나에게 돌려줄 것이냐는 질문에도 부정적으로 대답했다. # 다만 2023년 7월에 올라온 그의 유튜브 채널에 올라온 영상에는 러시아 지도 사진에 크림 반도가 빠져있다. #
한편 논란이 되는 것은 그가 공개한 푸틴의 비자금과 비밀 궁전에 대한 것이다. 물론 진위여부에 대한 문제는 아니고. 푸틴이 거대한 규모의 부정부패를 저지른 것은 모두가 알지만, 대체 어떻게 나발니는 제 마당 들여다보듯 푸틴 궁전의 설계도며 내부 구조 같은 것들을 꿰고 있으며 어떻게 그 근처까지 침입할 수 있었느냐에 대한 의문이 제기된 것이다. 이것이 가능하려면 상당한 수준의 뒷배가 버텨줘야 하는데, 적어도 러시아의 신흥 재벌인 올리가르히 혹은 실로비키 세력과 결탁하고 있다는 의혹들이 제기되고 있는 것은 사실이다.
그리고 푸틴의 정책 외에 따로 러시아에서 검증된 새로운 정치, 경제정책이 없는 상황에서 나발니가 극적으로 푸틴을 몰아낸다고 쳐도, 과연 그가 만든 사회구조를 개편할 수 있을지에 대한 의구심이 드는 것도 사실이다. 사실 특별한 정치적 비전 없이 정치생활 초반에는 신자유주의적 경제정책을 외치다, 이후 대중의 지지를 받기 위해 복지 시스템 확충을 주장하는 등 입장을 계속 선회해온 데다
국내의 대표적인 러시아 전문가인 류한수 상명대 교수는 나발니를 미국/서유럽의 기준에서 보자면 전형적인 극우라고 평가하면서, 모든 언론이 통제되는 상황에서 과감하게 푸틴 정권의 비리를 폭로하면서 독재 체제를 정면으로 공격하는 것은 대단한 일이지만, 과연 미국과 서유럽 미디어들이 보도했던 것처럼 유의미한 민주주의 투사였는지는 의문이라고 이야기했다.
서울대 이문영 교수 또한 비슷한 평가를 내렸지만, 정작 러시아출신의 방송인 일리야는 나발니를 러시아의 김대중이라고 평가했다.
5. 호모포비아?
한국 인터넷에서는 위의 광고 중간에 게이를 추가해 나발니를 호모포비아로 조작한 짤방이 돌아다니고 있다. 그러나 사실 '알렉세이 나발니는 크세니야 소브착[22]과 함께 푸틴 정권의 반동성애 정책을 반대하는 몇 안되는 러시아 정치인이다. 서유럽 처럼 LGBT에 대한 지지를 표명하는건 절대 아니지만 러시아에서는 이 정도로 의사 표현하는 것도 드문 만큼 러시아 기준으로는 진보적인 편이긴 하다.사실 나발니 역시 2000년대 후반, 2010년대 초반까지는 LGBT에 대해 썩 긍정적인 편은 아니었지만 그 이후에는 러시아의 반동성애 정책을 비판적으로 보고 있다. # 여당 통합 러시아 주도로 시행된 동성애 선전금지법을 반대하며 러시아 선관위의 불허로 대선에 출마하지 못했던 2018년 러시아 대통령 선거에서는 동성애 선전금지법 폐지와 투표를 통한 동성 시민결합 제도 도입에 찬성했다. # 동성결혼 반대 입장에 대해서는 반대해도 괜찮지만 그 결론은 투표를 통해 결정되어야 한다고 주장한다. #
6. 소속 정당
소속 | 기간 | 비고 |
|
2000 - 2007 | 입당 |
[[무소속(정치)| 무소속 ]]
|
2007 - 2013 | 제명 |
|
2013 | 선거연대를 위한 입당 |
[[무소속(정치)| 무소속 ]]
|
2013 | 탈당 |
2013 - 2014 | 입당 | |
2014 - 2018 | 당명 변경 | |
|
2018 - 2024 |
당명 변경 사망 |
7. 선거 이력
연도 | 선거 | 선거구 | 소속 정당 | 득표율 (득표수) | 당선 여부 | 비고 |
2013 | 2013년 모스크바 시장 선거 | 모스크바 |
|
632,697표 (27.24%) | 낙선 (2위) | [23] |
8. 여담
- 부차 학살에서 '일리야 나발니'라는 사람이 살해된 것으로 확인되었는데, 이 사람은 나발니의 먼 친척인 것으로 밝혀졌다. 참고로 나발니의 부친은 우크라이나 출신이다. 지역 주민들은 러시아군이 알렉세이 나발니와 똑같은 성을 가지고 있었기 때문에 살해했다고 증언하였다. #
- 한국 한정으로 이 사람의 이름을 니발니라고 잘못 말하는 경우가 있다. 한글 모아쓰기의 특성상 '나'와 '니'가 주의깊게 보지 않으면 비슷하게 보이는 영향으로 보인다.
- 2023년 3월 제95회 아카데미 시상식에서 <나발니>(Navalny, 2022)가 장편 다큐멘터리상을 수상했다. #
- 수감 생활과 관련하여 시베리아의 영하 32℃의 극한에 고생하고 있음을 토로했는데, 최소한 10분 정도는 느긋하게 도시락 라면을 먹고 싶다고 밝혔다. 시간 제한 때문에 국물 마시다 혀를 데였다고 한다. #
- 나발니 사망 이후 아직까지 정확한 사망 이유가 밝혀지지 않았는데, 러시아 언론도 나발니의 죽음을 일기예보 직전 딱 한 번 10초정도 지나가는 형식으로 보도한 것으로 드러났다. #
- 감옥에서 사망하기 5개월 전 저널리스트 일리야 크라실시크에게 보낸 편지에서 " 한국과 대만이 독재에서 민주주의로 전환할 수 있었다면 러시아도 가능할 것이다"고 한국의 민주화를 언급했다. #
- 사망하기 4년 전에 서방이 아무것도 하지 않는다는 비판 인터뷰를 가진적 있다. #
- 러시아의 반 푸틴 진영에서 갑자기 프랭크 시나트라의 1969년 곡, My Way가 상징적으로 사용되기 시작했는데, 이는 알렉세이 나발니의 장례식에서 해당 곡이 연주되었기 때문이다.
[1]
강세를 적용한 발음은 [ɐlʲɪkˈsʲej ɐnɐˈtolʲjɪvʲɪtɕ nɐˈvalʲnɨj\](알릭셰이 아나톨리비치 나발느이)이다.
러시아어 표기법상에서는 ль, мь, нь(l', m', n')이 자음 앞이나 어말에 오는 경우에는 ь(мягкий знак)를 반영하여 적지 않기 때문에 같은 ль도 표기상에서는 '아나톨리예비치'와 '나발니'로 표기가 갈린다.
[2]
Юлия Навальная, 1976년 출생, 2000년 혼인. 혼전성은 '아브로시모바(Абросимова)'.
인스타그램
[3]
Дарья, 2001년 출생.
인스타그램
[4]
Захар, 2008년 출생.
[5]
https://www.celebheights.com/s/Alexei-Navalny-52534.html
[6]
2004년
4월 12일 ~
2007년
2월 22일
[7]
2009년
5월 4일 ~
9월 11일
[8]
2012년
10월 22일 ~
2013년
10월 19일
[9]
2012년
10월 27일 ~
11월 24일
[러시아어명]
Алексе́й Нава́льный
[기준]
2024년 02월 17일
[기준]
2023년 06월 28일
[러시아어명칭]
Нава́льный LIVE
[기준]
2024년 02월 17일
[기준]
2023년 06월 28일
[16]
라이브 방송과 뉴스 위주의 '나발니 라이브' 채널. 원래 나발니가 주도해서 진행했지만 그가 체포되어 수감되면서 미래의 러시아 및 나발니의 여러 관계자가 대신해서 운영하고 있다.
[17]
소련 시절 노동교화소(
굴라크)의 일부로 설립된 교도소로, 극심한 추위와 가혹한 환경으로 악명 높다. 하술하듯 나발니는 모스크바 동부의 제6교도소에 수감되어 있다가 2023년 12월에 제3교도소로 이감되었다(
정치 활동 문단 참고).
[18]
타살 의혹이 제기되고 시신의 행방을 알 수 없는 등, 그의 죽음을 둘러싼 의혹이 제기되었다.
[19]
참고로 НАРОД라고 나오는 로고는 나발니가 속해있는 러시아 국민해방운동의 로고이다.
[20]
다만 아웅 산 수 치의 경우 로힝야족 탄압의 실제 주체는 군부였으며, 그녀는 군부를 통제하지 못했기 때문에 억울한 면이 있다.
[21]
보리스 넴초프같은 반푸틴 인사가 친서방,
친미 성향 매국노로 단단히 낙인 찍혀서 비호감을 가진 사람이 너무 많아 정치적 목소리를 내기 어려워진 것을 보면, 설령 그가 국수주의 성향을 가지지 않았더라도
러시아의 현실 특성상 어쩔 수 없이 국수주의 성향을 어느 정도 어필해야 할 필요가 있다.
[22]
2018년 러시아 대통령 선거에 출마한 전직
앵커 겸 셀럽 출신 정치인. 사실 러시아 국민들 사이에는 이 쪽이 진짜 푸틴이 만든 어용 야권 정치인이라는 생각이 강하다. 크세니야의 아버지가 푸틴의 정치적 스승에 가까웠던 인물이기 때문.
[23]
인민자유당과의 선거 연대를 통한 출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