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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1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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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KST )
1998년 1999년 2000년 2001년 2002년 2003년 2004년
연대
1980년대 1990년대 2000년대 2010년대 2020년대
세기
19세기 20세기 21세기 22세기 23세기
밀레니엄
제2천년기 제3천년기 제4천년기
세계 각 지역의 표기
서기 2001년
대한민국 83년
단기 4334년
불기 2545년
간지 경진년 ~ 신사
주체 90년
대만 민국 90년
일본 헤이세이 13년
( 황기 2661년)
이슬람력 1421년 ~ 1422년
히브리력 5761년 ~ 5762년
페르시아력 1379년 ~ 1380년
에티오피아력 1993년 ~ 1994년
로마 숫자 MMI

1. 개요2. 설명
2.1. 기후2.2. 미국을 강타한 9.11 테러2.3. 클린턴 시대의 마지막, 부시 행정부 출범2.4. IMF 시대의 마지막/ 외환위기를 졸업하다2.5. 대한민국의 하늘 관문, 김포에서 인천으로2.6. 월드컵을 앞둔 한일, 역사와 신사참배로 갈등의 기로에 서다2.7. 정부 vs 재벌언론2.8. 고속도로 노선체계 개편
3. 사건
3.1. 실제
3.1.1. 1월3.1.2. 2월3.1.3. 3월3.1.4. 4월3.1.5. 5월3.1.6. 6월3.1.7. 7월3.1.8. 8월3.1.9. 9월3.1.10. 10월3.1.11. 11월3.1.12. 12월
3.2. 가상
4. 탄생5. 사망6. 데뷔
6.1. 가수
6.1.1. 한국6.1.2. 해외
6.2. 스포츠6.3. 배우6.4. 만화계6.5. 예능인
7. 은퇴
7.1. 스포츠
8. 해체
8.1. 음악 그룹
9. 히트작
9.1. 가요9.2. 영화9.3. 드라마/시트콤9.4. 개그 코너9.5. 애니메이션9.6. 게임
10. 유행어11. 최초
11.1. 방송 프로그램 및 코너
11.1.1. 텔레비전11.1.2. 라디오
11.2. 인터넷 웹사이트
12. 출시 상품
12.1. 자동차12.2. 식음료12.3. 생활용품12.4. 화장품
13. 관련 문헌14. 달력

1. 개요

2001년은 21세기 제3천년기의 첫번째 해이며( 새롭게 시작하자! 21세기(2001년 뉴스)) 월요일로 시작하는 평년이다. 그리고 2000년대의 두 번째 해이기도 하다.

2. 설명

KBS 일요스페셜: 영상실록 2001

그 유명한 9.11 테러가 일어난 해이다. 빌 클린턴 시대가 이 해를 끝으로 막을 내리고, 조지 W. 부시 행정부가 출범한 시기이자 미국 1극의 세계체제가 하늘에서 땅으로 떨어지기 시작한 시발점이다. 이를 계기로 조지 W. 부시 행정부는 " 테러와의 전쟁"을 선포하며 중동 미국-아프가니스탄 전쟁을 벌여 새로운 전쟁의 시대를 예고했다. 당시 역사/문명학자들 사이에선 헌팅턴 교수의 '문명 충돌론'이 힘을 얻기도 했으며, 에드워드 사이드나 하랄트 뮐러 같은 학자들이 '오리엔탈리즘'이나 '문명 공존론' 등으로 반박하기도 했다.

한국은 조중동, 국민일보, 한국일보 등 주요 언론사들의 세무조사 문제로 정부와 이들 언론사 간의 신경전과 갈등이 촉발되었던 해였다. 이들 언론사들은 정부의 세무조사를 부정적으로 여기며 조사를 거부하려고 시도했고, 하반기엔 '이용호 게이트'까지 터져 김대중 대통령은 레임덕 상태로 돌입했다. 또 공동여당인 자민련이 국회에서 임동원 통일부장관 해임결의안에 찬성해 그토록 유지했던 DJP연합에도 균열이 생겼다.

미국 정치권에선 부시 대통령이 집권한 후 8년 만에 공화당 집권 시대가 다시 열렸으며, 클린턴 때와 다르다는 'ABC(Anything but Clinton)' 정책을 밀고자 했다. 그러나 부시는 전년도 대선 후유증에 클린턴 시대의 그늘 속에서 힘들어하다 전술한 테러와의 전쟁으로 국면전환을 마련했으며, 경제계에선 세계구급 분식회계 사건이 터져서 굉장히 큰 이슈가 되기도 했다.

그리고 그 해에 '정보통신망 이용촉진 등에 관한 법률'이 '정보통신망 이용촉진 및 정보보호 등에 관한 법률'로 개정되고 인터넷 내용등급제를 실시한 때를 전후하여 인터넷 상에서는 공권력에 의한 사이트 폐쇄가 자행되기도 했는데, 미술교사인 김인규 씨의 온라인 누드사진 전시회 폐쇄를 비롯해 자퇴생 커뮤니티 '아이노스쿨'과 동성애자 커뮤니티 ' 이반시티', 동성애자 카페 '보헤미안73'과 '81CLUB' 강제 폐쇄, 엑스존 사건이 대표적인 예이다.

방송기술 면에서도 변혁이 일어난 해이기도 한데, 2001년은 한국에 HD 방송이 개시된 첫 해라는 것이다. 그 첫 타자는 바로 SBS였다. 하지만 이 해는 HD 방송의 첫 해여서 그 비율이 극히 낮았다.[1]

대중가요계에서는 빛보다 어둠이 더 컸던 해인데, 이미 전년도부터 mp3 등 디지털 음악시장은 성장한 반면, 기존 음반시장은 침체기였기 때문이다. 여름에는 MBC <시사매거진 2580>이 연예계 노예계약 파문을 보도하면서 한국연예제작자협회 회원들이 MBC 출연을 거부해 파문을 일으켰으며, 그룹 걸프렌드의 매니저가 대리녹음 사실을 폭로하면서 그동안 곪아 왔던 가수들의 립싱크 문제가 크게 떠올랐다. 이를 계기로 그해 9월 1일부터 MBC <생방송 음악캠프>가 전곡 라이브 체제로 전환하고 타 프로그램들도 라이브 비율을 늘리게 되었다. 또한 1세대 아이돌로서 엄청난 인기를 끌었던 H.O.T.는 2월에 공식적으로 해체 선언을 하면서 수많은 팬들과 국민들에게 큰 충격을 안겨주면서 한동안 사회적으로도 큰 이슈가 될 정도였다. 반면 또 다른 1세대 아이돌인 god는 지난해인 2000년에 발표하여 대히트한 거짓말에 이어 이 해에도 정규 4집의 타이틀곡 '길'을 대히트 시키면서 최전성기를 이어가고 각종 가요 프로그램 1위와 지상파 3사 가요대상 그랜드슬램 골든디스크 시상식 대상을 받으면서 2001년 가요계의 진정한 승리자가 되었다. 한편 KBS2 뮤직뱅크는 2001년 8월 9일 방송분부터 순위제가 중단되었다.

제7차 교육과정 중학교 과정이 시작한 첫 해로 그때 중학교로 입학한 1988년생(빠른 89년생 포함)들은 1년 선배[2]들과 다르게 누런 종이의 흑백 교과서 대신에 코팅된 컬러 교과서로 공부하게 되었으나 중학교 의무교육의 혜택은 받지 않았다.[3] 또한 제7차 교육과정 초등학교 과정이 3~4학년으로 확대되면서 1991년 3월생~1992년 3월생이 제7차 교육과정의 혜택을 받게 되었다.

일본 중학교 과정 역사 교과서 왜곡 문제로 한국과 일본 관계가 악화일로를 걸었던 때였는데, 이게 특히 문제가 된 것은 바로 다음 해에 이들 두 국가에서 공동개최되는 월드컵 때문이었다. 이에 국제 사회에서는 많은 우려를 보였던 부분이었는데 한국과 일본의 입장에서는 우려와는 관계 없이 매우 민감한 부분이라 양보할 수 있는 부분이 아니었다. 엎친 데 덮친 격으로 당시 일본 수상 고이즈미 준이치로 야스쿠니 신사 참배로 또 한 번 덤으로 악화일로를 걸었으며 3차까지 갔던 문화개방 정책도 잠시 중단되기에 이른다.

교수신문이 선정한 2001년 올해의 사자성어는 ' 오리무중(五里霧中)'이었으며, 일본한자능력검정협회가 선정한 2001년 올해의 한자는 '(싸움 전)'이었다.

국제연합에서는 이 해를 '세계 자원봉사자의 해'와 '세계 인종주의, 인종차별, 외국인 혐오, 기타 불관용 반대 운동의 해', 'UN 문명간 대화의 해'로 지정했다.

미국 MLB에선 창단 4시즌째를 맞은 젊은 팀 애리조나 다이아몬드백스가 강호 뉴욕 양키스의 WS 4연패 시도를 막아 처음으로 트로피를 거머쥐었으며[4], 일본 NPB에선 도쿄 야쿠르트 스왈로즈가 2001년 일본시리즈에서 우승컵을 들어올렸다.[5]

또한 게임 및 e스포츠계에서도 하나의 터닝 포인트적인 해로 평가 받는데 온게임넷 스타리그 2001 한빛소프트배 온게임넷 스타리그를 기점으로 하여 본격적으로 처음 생방송을 시작하고 이 대회에서 임요환이 처음으로 로열로더 우승을 하면서 그는 게임계 최대의 스타가 된다. 또한 온게임넷 스타리그도 그 다음 시즌인 2001 코카콜라배 온게임넷 스타리그 임진록 결승전 대박 흥행까지 이어지면서 최대의 스타크래프트 메이저 대회로 평가받게 된다.

이 해는 21세기에서 처음으로 윤달이 끼는 해였다. 2001년의 윤달은 4월로, 4월 24일부터 5월 22일까지가 평달 4월이고 5월 23일부터 6월 20일까지가 윤달 4월이었다.

주말 공휴일이 이틀밖에 안 되었다. 설날은 1월 23일(화)~25일(목)이었고, 샌드위치 데이까지 쉬면 1월 21일부터 25일까지 5일을 쉴 수 있었다. 어린이날은 토요일이었다. 추석은 9월 30일(일)부터 10월 2일(화)까지였는데, 10월 3일(수)이 개천절이어서 1일 연휴가 생겼다. 만약 이 것이 현재 대체 휴일 제도가 있을 때 왔다면 10월 4일(목), 10월 9일(화)도 쉬게 되었고 10월 5일(금), 10월 8일(월)도 샌드위치 데이가 되어, 9월 29일부터 10월 9일까지 11일 쉴 수 있었을 것이다.

1960년 이후 연도 중에서 황사일수가 27일로 가장 많았던 해이다.

2.1. 기후

21세기 시작부터 한파가 찾아와 철원은 공식적으로 -29.2 ˚C라는 역대 최저기온을 세웠으며 서울도 1월 15일 -18.6 ˚C로 21세기 역대 최저기온을 기록했다. 이 여파로 2~3월 평균기온은 비교적 쌀쌀했다. 그러나 4~5월에는 이상 고온이 찾아왔고 4월 초에 서울에서 일평균기온 20도, 최고기온 28도를 넘었다. 6~7월에는 대체로 평범하거나 조금 높았다. 한편 2001년 7월 15일에 서울에서 273.4 mm라는 집중호우가 쏟아져서 상가와 주거지, 그리고 도로와 지하시설에서 침수가 이어졌다. 그 중에서 피해가 컸던 곳은 신림시장와 고속터미널역이었으며 특히 신림시장의 경우에는 차량들이 건물 사이로 서로 엉켰다.

7월에 강력한 폭우가 덮친 뒤로 8월에는 짧지만 강한 폭염이 왔다. 그리고 9~10월에는 이상 고온으로 따뜻했다. 이후 11월에는 평년 수준의 기온이 찾아오나 싶더니 12월에는 한파가 찾아와서 대체로 쌀쌀했다.[6]

서울 기준 월별 평균기온은 다음과 같다.
연 최저기온 연 최고기온 연교차
-18.6 °C(0115) 35.3 °C(0817) 53.9 °C

2.2. 미국을 강타한 9.11 테러

9.11 테러가 발생하기 전 세계무역센터의 모습 (2001년 5월 29일 영상)[7]
2001년은 21세기의 첫 해이며, 동시에 9.11 테러라는 역대급 세계구 사건이 일어나면서 세계정세의 큰 전환점을 맞은 시기이기도 했다. 제1차 세계 대전이 20세기를 열었다면, 9.11 테러와 함께 21세기가 열렸다는 평가도 있을 정도로 9.11의 여파가 바꿔놓은 세계 정세는 현재까지도 진행형이다. 미국은 9.11 이후 테러와의 전쟁을 시작하며 2번의 전쟁을 일으켰고, 탈레반 정권과 후세인 정권을 무너뜨리며 아랍권에 지각변동을 가져왔다. 그러나 미국이 실패했던 과거의 베트남 전쟁과 마찬가지로 민간 정부 수립 이후에도 내전이 지속되며 아랍권은 혼란에 빠졌고, 이는 현재까지도 이어지고 있다. 2021년에는 미국이 아프간전에서 발을 빼면서 다시 탈레반이 아프간에 재집권하는 등, 혼란스러운 상황은 지금도 진행 중.

9.11은 1991년 소련 붕괴 이후 비교적 이전의 시대보다 혼란이 적었던 국제정세에 또 다른 분쟁의 시발점을 심어준 사건이며, 20세기의 냉전 이후 발발한 새로운 세계갈등의 근본이라고 할 수 있다. 9.11 이후 세계정세에 남아있던 20세기의 잔재는 미국이 일으킨 두 번의 전쟁으로 발생한 탈레반 / 후세인 정권 붕괴 이후인 2003년 이후 완전히 청산되었고, 아랍권의 내전이 벌이지기 시작한 2004년부터 세계는 현재까지도 외교적 혼란과 격동의 시기를 지나가고 있다.

2.3. 클린턴 시대의 마지막, 부시 행정부 출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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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1년은 빌 클린턴이 집권했던 마지막 해이자 부시 행정부로 이어지는 해였다.[8] 클린턴은 퇴임전 부시 새 행정부에게 안정적이고 평화로운 정권이양을 약속했다. 클린턴은 1기 행정부 시절에 인플레이션 효과를 축소시키고, 1994년 이른바 클린턴 노믹스를 통해 대대적인 경제정책을 펼쳤다. 이러한 리더십으로 재선에 성공하여 2001년까지 8년간 집권했으며 클린턴이 미국을 통치하던 시기인 1993년부터 2001년까지를 미국인들은 아직도 그리워 하고 있다. 그리고 집권말 클린턴은 현직 대통령으로서 2001년 1월 12일경, 서면발표를 통해 노근리에서 민간인들이 희생된 사실에 미국인을 대표하여 유감을 표하기도 했고, 발표가 끝난 직후 김대중 대통령에게 전화를 걸어 동일하게 유감을 표했다. 해당 뉴스


클린턴은 현지시간 2001년 1월 18일경, 백악관에서 고별연설을 발표했는데 이날 유례없는 경제호황을 누린것에 대해 깊게 강조했다. 당시 뉴스 다음날인 1월 19일경, 르윈스키 성추문 사건에 대한 수사가 무죄로 종결됨으로서 빌 클린턴 미국 대통령은 부시 당선자에게 순조롭게 백악관 자리를 넘겨줄 수 있게 되었다. 해당 뉴스

2001년 1월 20일, 안정적인 1990년대를 이끌었던 빌 클린턴 행정부 시대는 후임 부시 대통령 취임식을 끝으로 완전히 막을 내려 동시에 부시의 시대가 개막되었다. 당시 미국인들은 떠나는 클린턴을 보고 매우 아쉬워했으며 깊은 여운을 한동안 계속 느끼고 있었다. 후임 부시 대통령은 9.11 테러 전까지는 전년도 대선 후유증을 비롯한 빌 클린턴 시대의 그늘속에서 별다른 영향력을 발휘하지 못하고 있었지만 9.11 테러로 인해 새로운 국면전환과 행정부의 영향력이 생기기 시작하여 클린턴 시대의 그늘 속에서 벗어났다. 사실상 부시는 9.11 테러로 시작되었다고 봐도 무방하다.

2.4. IMF 시대의 마지막/ 외환위기를 졸업하다

파일:01D37278-E969-42ED-A2E8-52CF270788D2.jpg
3월 9일 MBC 뉴스데스크
지난 1997년 11월 21일, 국가의 외환보유고가 탕진되어 국가의 자금이 부족한 상황에 이르자 이를 해결하기 위해 정부가 늑장대처로 IMF에 구제금융을 신청한다. 이후 여러 기업의 법정관리 및 파산/최종부도 처리가 진행되어[9] 국가 경제 위기와 더불어 사회전반적으로 힘들고 어려워 모두에게 피해가 갔던 IMF 외환위기는 금모으기 운동을 비롯한 국민들의 부지런한 태도로 195억 달러를 조기에 상환하여 2001년 8월 23일, 대한민국의 IMF 체제는 단 3년 9개월 만에 공식적으로 막을 내렸다. 이로써 한국은 경제주권을 완전히 되찾게 되었다.
당시 KBS 9 뉴스
그러나 외환위기가 완전히 끝난 줄만 알았던 이 해 9월 이후에도 미국에서 발생한 9.11 테러 등으로 국내까지 영향을 미치면서 경제 불황은 여전해 카드대란 직전[10]까지 한동안 외환위기의 그늘에서 벗어나지 못했다. 이후 2002년 연중에 카드대란 사태를 시작으로 새로운 21세기의 경제위기가 시작되어 이는 조지 W. 부시 대통령의 무리한 경제 정책으로 발생한 2008년 대침체까지 이어진다.

2.5. 대한민국의 하늘 관문, 김포에서 인천으로


2001년 3월 29일, 인천국제공항이 개항했다. 기존의 김포국제공항이 1990년대 이미 수용능력이 한계에 이르자 1992년 공사에 착공했던 것이 9년만에 완공된 것으로, 인천공항이 개항하면서 대한민국 항공업계는 동아시아 허브 중심지로서의 역할도 할 수 있게 되었다. 현재 인천국제공항은 세계 공항 순위에서 늘 1~2위를 다투며 여러 환승객들이 오가는 항공계의 허브 공항으로 제 역할을 다하고 있다.

기존 김포공항은 국내선 전노선과 국제선 일부 노선만이 남겨지게 되었고 나머지 국제선 노선들은 영종도로 이전하게 되었다. 그리고 국제노선상에서도 김포가 아닌 인천행으로 변경되었다.

2.6. 월드컵을 앞둔 한일, 역사와 신사참배로 갈등의 기로에 서다

이 해는 한일관계가 우여곡절을 겪었던 해였다. 바로 한일월드컵이 1년 앞으로 다가왔는데 한일간 정치사회적 문제로 월드컵 공조에도 빨간불이 켜져서 양국간의 긴장감과 대립각이 심하였던 때였다.

이 해 4월에는 일본 문부과학성이 왜곡된 역사교과서 검정을 통과시키면서 한국내 반일여론과 정부의 강경대응 천명이 더해지면서 한일관계가 결빙되었다. 그리고 8월 13일에는 고이즈미 준이치로가 총리 신분으로 야스쿠니 신사 본전을 참배하면서 월드컵을 1년 앞두고 한일간 정치사회적인 갈등이 벌어졌다.

결국 대한민국 정부가 이에 대한 대응의 조치로 일부 일본문화 개방조치를 보류 및 중단하였고 주일대사를 소환하는 등 강경대응을 취하기도 했다.

2.7. 정부 vs 재벌언론

김대중 정부 들어서 국내 언론사에 대한 본격적인 세무조사를 천명하자 이에 재벌급 언론들이 반발하고 나서면서 정부와 언론간의 갈등이 격화되었던 시기였다. 조선, 동아, 중앙일보 등의 대형급 언론들은 정부의 이같은 행위를 맹렬히 비난하였지만[11] 그 동안 족벌 언론들의 이익에 불신을 드러낸 여론상에서는 오히려 정부의 대응에 호의적인 반응을 보였다.

2.8. 고속도로 노선체계 개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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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1년은 경부고속도로 개통 이후 대한민국 고속도로 역사에서 가장 중요한 해라고 볼 수 있다.

우선 고속도로 노선체계를 전면 개편하는 대통령령 17228호가 2001년 5월 24일 공포, 동년 8월 25일 시행됨으로서 현재의 노선 체계가 완전히 정착되었다. 이전에는 노선 지정 순서대로 경부고속도로 1번, 경인고속도로 2번, 호남고속도로 3번....의 방식으로 지정하였으나, 신규 노선이 계속 개통하면서 번호가 30번에 가까울 정도로 복잡해졌다. 이에 2001년을 기점으로 동서축-남북축, 간선-지선-순환선으로 각각 분류하여 보다 쉽게 노선을 파악하고 신규 노선 개통 시에도 체계적으로 노선을 부여할 수 있도록 하였다.

한편 2001년에 굵직한 고속도로들이 많이 개통하면서 주요 간선망이 완성되었으며, 90년대 자가용 보급으로 포화 상태에 이르렀던 정체 현상이 많이 완화되었다. 이 해에 전 구간 개통된 고속도로만 봐도 무려 6곳에 이른다.
그 외 익산장수고속도로 장수JC- 장수IC, 중부내륙고속도로 김천- 상주, 수도권제1순환고속도로 일산- 자유로, 제2경인고속도로 석수- 삼막 등도 개통하였다. 여담이지만 인천국제공항고속도로의 경우 2000년 11월에 개통되었으나, 2001년 3월 개장한 인천국제공항과 함께 대한민국의 관문과도 같은 중요한 역할을 본격적으로 시작하게 되었다.

3. 사건

3.1. 실제

3.1.1. 1월

3.1.2. 2월

3.1.3. 3월

3.1.4. 4월

3.1.5. 5월

3.1.6. 6월

3.1.7. 7월

3.1.8. 8월

3.1.9. 9월

3.1.10. 10월

3.1.11. 11월

3.1.12. 12월

3.2. 가상

4. 탄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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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 사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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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 데뷔

6.1. 가수

6.1.1. 한국

6.1.2. 해외

6.2. 스포츠

6.3. 배우

6.4. 만화계

6.5. 예능인

7. 은퇴

7.1. 스포츠

8. 해체

8.1. 음악 그룹

9. 히트작

9.1. 가요

9.2. 영화

9.3. 드라마/시트콤

9.4. 개그 코너

9.5. 애니메이션

9.6. 게임

10. 유행어

11. 최초

11.1. 방송 프로그램 및 코너

11.1.1. 텔레비전

11.1.2. 라디오

11.2. 인터넷 웹사이트

12. 출시 상품

12.1. 자동차

12.2. 식음료

12.3. 생활용품

12.4. 화장품

13. 관련 문헌

14. 달력

1월 2월 3월
1 2 3 4 5 6 1 2 3 1 2 3
7 8 9 10 11 12 13 4 5 6 7 8 9 10 4 5 6 7 8 9 10
14 15 16 17 18 19 20 11 12 13 14 15 16 17 11 12 13 14 15 16 17
21 22 23 24 25 26 27 18 19 20 21 22 23 24 18 19 20 21 22 23 24
28 29 30 31 25 26 27 28 25 26 27 28 29 30 31
4월 5월 6월
1 2 3 4 5 6 7 1 2 3 4 5 1 2
8 9 10 11 12 13 14 6 7 8 9 10 11 12 3 4 5 6 7 8 9
15 16 17 18 19 20 21 13 14 15 16 17 18 19 10 11 12 13 14 15 16
22 23 24 25 26 27 28 20 21 22 23 24 25 26 17 18 19 20 21 22 23
29 30 27 28 29 30 31 24 25 26 27 28 29 30
7월 8월 9월
1 2 3 4 5 6 7 1 2 3 4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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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사실 극히 낮았다고 하기에도 민망할 정도로 HD를 도입한 프로그램이 별로 없었다. 그래봐야 이 해 9월부터 KBS의 열린음악회, 연말에 생방송 음악캠프 인기가요의 HD 시험방송이 있었다. [2] 1987년 3월생~ 1988년 2월생 [3] 중학교 의무교육은 1989년생 2008학번 세대부터 시행됨. [4] 참고로 이때 우승을 차지한 김병현 2004년 보스턴 레드삭스에서 낀 반지와 더불어 까지 한국인 최초이자 유일한 우승반지 보유자이다. [5] 참고로 도쿄 야쿠르트 스왈로즈는 이 해를 마지막으로 19년 간 우승 한 번 해보지도 못하고 있다가 2021년 일본시리즈에서 20년 만에 우승을 거머쥐었다. [6] 이러한 추위는 다음해 1월 초까지 이어졌지만 1월 중순에 초이상 고온과 폭우가 왔다. [7] 여담으로 이 영상 29초에 세계 무역 센터를 지나가는 새가 비행기 같다는 댓글이 많다. [8] 만약 선거인단으로 이기는 제도가 없었다면 앨 고어가 되는 것이다. 실제 득표수는 고어가 부시보다 더 많았기 때문. [9] 이 해 5월에 IMF의 영향으로 동아그룹이 최종 해체되었다. [10] 2002년 3월까지 [11] 특히 동아일보는 친 정권성향이 남아있었으나, 김병관 회장의 아내가 자살하는 사건이 터지면서 급격히 우경화된다. [12] 횡계- 강릉 구간이 선형 개량되어 기존 2차선 도로는 456번 지방도로 격하되었다. [13] 죽령터널이 이 해 완공되었다. [14] 현재의 남해고속도로 본선 구간 [15] 사고 다발로 유명한 그 터널이 있는 고속도로 맞다. [16] 가장 큰 소방관의 인명피해가 발생했던 사건이다. 불이 난 벽돌주택 안으로 소방관이 들어갔지만, 건물 지붕부터 벽체가 통째로 무너지면서 소방관을 덮쳐 인명피해가 커졌다. [17] 법인 전환은 2002년 4월 17일 [18] 본래는 8월 15일에 참배하기로 하였는데 주변국의 반발을 의식하여 이 날 참배를 하였다고 한다. 그러나 2006년 8월 15일에는 기어이 당일에 야스쿠니 신사에 참배했다. [19] 1998년 10월 인천에서 아시아 여자보디빌딩 선수권대회가 열렸으나 개최 3년만에 아시아남자-여자보디빌딩 합쳐서 한국에 통합 아시아 보디빌딩 선수권대회가 열렸다. [20] 2009년에 컴백 콘서트를 열려고 했지만 리허설 도중 사망했다. [21] 실사영화판에서는 개봉일인 2012년에 맞추어 1997년으로 수정되었다. [22] 당시 아틸라 현지 연도 기준으로 1978년. [23] 당시 도마뱀나라 현지 연도 기준으로 1965년. [24] 2000년 11월에 일본에서 먼저 데뷔했다. [25] 그러나 멤버 전원이 이미 1996년에 H.O.T.로 데뷔했다. [26] 마스터 P의 아들로, 2010년부터 노 리미트 포에버 CEO로 재직중. [27] 2001년 서울가요대상 대상 수상곡 [28] 김광석의 노래를 리메이크 했다. [29] 2001년 KBS 가요대상 대상/MBC 최고인기가요상/SBS 가요대전 대상/골든디스크 대상 수상곡 [30] 최지우 특유의 혀 짧은 발음을 과장해서 '실땅님'이라고 부르는 것이 유행했다. [31] 동산C&G로부터 인수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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