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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공산당의 파벌 | ||
단파 (공산주의 청년단) |
태자당 내 습가군 |
상하이방 |
후진타오 리커창 원자바오 후춘화 |
시진핑 왕치산 천민얼 |
장쩌민 주룽지 우방궈 자칭린 장더장 |
中国共产主义青年团 (中国共青团, 共青团) | |
슬로건 | |
<colbgcolor=#f5f5f5,#2d2f34><colcolor=#DE2910> 영문 명칭 | Communist Youth League of China |
한글 명칭 | 중국 공산주의 청년단 |
창단일 | 1920년 5월 ([age(1920-05-01)]주년) |
제1서기 | 친이즈 (秦宜智) |
이념 |
신시대 중국특색 사회주의 패권주의(사실상) 국수주의(사실상) |
정치적 스펙트럼 | 혼합정치 |
단원 수 | 81,246,000명 |
조직가 | 중국 공청단이여, 영광 있으라! (光荣啊!中国共青团) |
기관지 | 중국청년보 (中国青年报) |
단기 | |
공식 홈페이지 |
[clearfix]
1. 개요
중국공산당이 운영하는 청년조직. 약칭은 중국공청단(中国共青团) 또는 공청단(共青团)이다.
2. 상세
일당제 국가인 중국 특성상 공청단에 소속되면 중국공산당 입당이 수월해지는 데다 중국공산당의 인재풀 역할을 하고 있기 때문에 상당히 큰 영향력을 가지고 있는데 이는 구 소련의 콤소몰과 비슷하다. 14세 이하 유소년 조직인 중국소년선봉대(中国少年先锋队)의 활동을 주관하기도 한다.[1] 2021년부터 전파공정의 4각편대 중 마지막 조직, 즉 댓글부대에 중요한 역할을 하고 있다.[2] 시진핑 정권 들어서 공청단의 입지가 퇴조되어 후술할 사건들에 대해 "무리수를 두어가며 똥꼬쇼 하는 거 아니냐"는 반응도 있기도 하며 2021년 하순 들어서 이를 의식했는지 애국심으로 돈벌이를 하는 풍토에 대해 비판하는 내용을 발표하기도 했다.1920년 5월 “중국사회주의청년단(中国社会主义青年团)”이라는 명칭으로 설립되었다. 1922년 5월 5일 중국 사회주의 청년단 제1차 전국대표대회가 광저우에서 중국공산당의 지도하에 개최[3]되었고 이 때 정식 조직으로 출범하였다. 1925년에 열린 제3회 전국대표대회에서 “공산주의청년당(中国共产主义青年团)”으로 개명되었다. 중일전쟁(1937~1945) 이후 사회·정치적 변화를 반영해 1949년 4월 “중국신민주주의청년당(中国新民主主义青年团)”으로 개칭되었다. 1957년 중국신민주청년당, 중국사회청년단과 중국공산주의청년단이 통합되었고, 다시 중국공산주의청년단을 통합된 조직의 명칭으로 내걸었다. 문화대혁명 당시 수정주의 분쇄를 이유로 공청단의 활동이 중지되고 공청단 내 중앙 위원회는 해산되었다가 1976년 이후 서서히 활동이 재개되기 시작했다.
중국공산당 내부에 공청단 출신의 고위 인사들이 많아지면서 이들 인사에게 단파(团派, 퇀파이)라는 별명이 붙여졌다. 단파의대표적인 인물로는 후야오방 전 중국공산당 총서기와 후진타오 전 중화인민공화국 주석, 리커창 전 중화인민공화국 국무원 총리가 있다.
공청단은 14세에서 28세의 젊은이들로 구성되었으며 28세가 된 회원은 간부직을 맡지 않는 한 조직을 떠나야 한다. 공청단의 조직 체계는 중국공산당의 조직체계를 그대로 본딴 것이며 리더인 제1서기는 중국공산당 내 핵심 기구인 중앙위원회의 회원이다.
조직 내 핵심 기구는 전국대표대회와 중앙위원회이며 중앙위원회 회원은 전국대표대회에서 선출된다. 5년마다 전국대표대회가 개최되지만 특별한 상황에서는 개최 날짜를 조정할 수 있다. 중앙위원회는 전국대표대회에서 결정된 사항을 집행하고 조직 전체를 관리한다. 위원회 회의는 매년 열린다. 중앙위원회 이외에도 총무위원회가 있으며 사무 업무를 담당하며 31개 성(省)의 기초단체들을 관리한다.
2006년 공청단 중앙위원회 자료에 따르면 회원의 49.9%는 학생이며 2007년 기준 공청단 회원은 7,300만 명에 이른다. 즉, 웬만한 중국 대학생들은 공청단에 소속되는 경우가 많다는 뜻이다. 2016년 조사에 따르면 한국의 대학교에 유학 온 중국인 학생들의 70%가 청년단, 5%가 공산당 소속이라고 한다. 그러니까 적어도 약 5만명의 청년단이 한국에서 활동하고 있다고 보면 된다. 물론 대중적인 조직인 만큼 실제로는 이름만 올려놓는 경우가 많다.(...) 출세를 바라는 엘리트들이야 열심히 활동하겠지만 너무 거대한 조직이기 때문에 공청단 활동에 열심히 참여한다고 해도 눈에 뛸 정도로 출세할 수 있는 사람은 한정적이기 때문에 현생을 사는 것이다.
다만 그와 별개로 미국이나 호주에서 유학생들이 공산당에 우호적인 성향을 보인다며 말이 많기는 하지만 이건 당연할 수밖에 없는데 애초에 중국에서도 자식들을 물가가 비싸서 월세와 용돈도 많이 주어야 하는[4] 서구권으로 유학보낼 정도라면 출신 성분이 최소한 중산층 이상일 텐데 이 사람들은 현 중국 체제에서 이득을 보는 계층이다 보니 자연스레 공산당에 우호적인 사람들의 비율이 높아질 수밖에 없기는 하다. 애초에 정부에 불만을 가질 정도로 가난한 사람들은 장학금 받을 정도로 성적이 뛰어나지 않으면 가는 것이 불가능하니 당연할 수밖에 없기는 하다.
3. 구성
중국 공산주의 청년단 제1서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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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3대 | 제14대 | 제15대 | 제16대 | |
저우치앙 | 후춘화 | 루하오 | 친이즈 | |
제17대 | 제18대 | |||
허준커 | 아동 | }}}}}}}}}}}}}}} |
中国共产主义青年团ㆍ中國共產主義青年團, ( 영어)Communist Youth League of China; Communist Youth League[5]
중국공산당은 청소년을 대상으로 한 예비당원 제도로 "중국공산주의청년단"(공청단)을 운영하는데 이곳에서부터 경력을 쌓아서 당관료로 진입한 사람들이다. 주로 각급 학교에서 품행이 단정하고 성적이 좋고 당성[6]이 건전한 모범생들을 공청단에 입단시키는데 이런 사람들이 성인이 되어 공산당으로 진입해 활동하면서 거대 파벌을 이루는 것이다.
해당 파벌의 수장은 전 국가주석인 후진타오. '중국공산당에서 젊은이들 중에서 명석한 사람들을 모아서 지도하며 차세대 지도자로 키워나가는 곳'이라고 하지만 실제 공청단은 문화대혁명을 겪은 젊은 공산당원 엘리트들의 일부로서 해외 유학 등을 통해 견문을 넓힌 사람들이 많이 포진한다. 당시 해외 유학을 가려면 이공계가 더 수월했는지 공청단 핵심인원 대부분이 공학도나 과학도 출신이다. 사실 문화대혁명 당시 인문학ㆍ 사회과학 분야는 극심한 탄압을 받았다. 뭐든지 마오 주석 찬양만 했으니 이공계와 다르게 발달할 틈이 없었다. 개방 후에도 중국은 인문학ㆍ사회과학 수준은 이때의 여파로 인해 얕은 편이다. 특히나 세계적인 수준인 이공계에 비하면 학문이 발달할 기반조차 없다고 보는 게 옳다. 이들은 외국에서 견문을 넓힌 탓인지 외국 문물에 대해 상당히 개방적이었으며 중국 개혁의 필요성을 실감한 세대라고 볼 수 있다. 1980년대에는 자신들의 전문 분야인 이공계와 해외 유학 경험을 통해 외교에도 활약했으며 1990년대부터 중국의 개방이 시작되면서 급상승세를 타기 시작했다. 그리고 2000년대 초반 공청단의 수장이었던 후진타오가 중국의 지도자가 되면서 당 내에서 그 위세를 떨치기 시작했다.
중국공산당의 파벌 중에서 가장 규모가 큰 세력이다. 3대 파벌 중에 들어가기 쉬운 곳이 있겠냐마는 아무래도 이공계 출신 해외 유학파들에게 좋은 대우를 해준다고 한다. 그리고 3대 파벌 중 유일하게 당내 정식 단체이다. 따라서 공청단과 태자당에 양다리를 걸치고 있는 사람들도 꽤 있다. 물론 양다리는 보통 파벌싸움 때는 태자당 편을 들며 공청단 소속 이유는 순전히 당내 활동 때문일 경우가 많다.
중국 내외의 분석가들은 시진핑 이후 차기 대권 계승자로 공청단의 후춘화를 꼽고 있다. 태자당이었던 시진핑 이후는 공청단이 몫인데 그 중 가장 두각을 나타내는 사람이 후춘화라는 것이다. 기사 후진타오 역시 후춘화를 시진핑의 다음 후계자로 밀고 있다. 해당 기사 이 때문에 종신집권을 추진하는 시진핑과 충돌할 가능성이 매우 크다고 할 수 있다. 만약 시진핑의 정적 숙청이 지금보다도 더욱 극에 달한다면 시진핑의 숙청 대상이 될 수도 있는 이들이라고 볼 수 있다.
결국 2022년 10월 23일, 시진핑이 3연임에 성공하고 가장 중요한 7인의 정치국 상무위원을 전부 자신의 가신그룹인 시자쥔(習家軍)으로 채우는 데 성공하여 크게 몰락하게 되었다. # 리커창, 왕양은 20차 당대회를 끝으로 은퇴했으며 차기 대권주자로 뽑혔던 후춘화는 정치국 상무위원은 물론 중앙정치국 위원에도 이름을 올리지 못하면서 몰락했다는 평.
4. 사건사고
2020년 2월 17일, 미국-중국 무역 전쟁, 2019년 홍콩 민주화 운동, 코로나바이러스감염증-19 등 중국 국내외 위태로운 분위기를 쇄신하기 위해 모에 캐릭터를 출시하였지만 정작 중국 인민들한테 반발 여론만 얻어맞고 결국 하루만에 해당 캐릭터 사용을 철회하기로 했다. 원본 기사, 한국 기사
2020년 10월 25일, 중국정부와 공청단이 6.25 전쟁을 북한의 남침이 아닌 남북한 간 내전이고 항미원조전쟁이라는 개드립을 쳤다. #[7]
2020년 11월 5월, 중앙위원회가 샤이닝니키와 관련된 중국의 한복 왜곡 논란에 관련된 칼럼을 올려 중국의 ' 한복공정'이 중국 정부가 직접 손을 대고 있는 국가적 문화 약탈일 가능성이 높아졌다. # 당시에는 공산당에서 직접적으로 지시를 내린 것이라기보다는 중국 네티즌의 우발적이고 감정적인 대응으로 보거나 과도한 충성경쟁 또는 자부심 심어주기가 만들어낸 촌극 정도로 보는 시각도 있었지만 JTBC 탐사보도팀의 취재 결과 중국공산당의 인재양성소로서 이른바 ‘꼬마 공산당’이라고 불리는 공청단이 문화전쟁 최전선에 나서고 있는 정황이 보도되었다. 결국 이런 행보 때문에 시진핑 체제 하에서 공청단이 몰락하자 출세길이 막힌 유학생들이 세계 여기저기서 시진핑을 비난하는 대자보를 내걸고 있긴 하지만 그동안 쌓아올린 악명이 어디 가지는 않아서 좋은 시선이 따라주진 않는다.
JTBC 310 중계석 유튜브
5. 관련 문서
[1]
이렇게 하면 메리트만 있는 것 같아 보이지만 지역개발사업에도 공청단 단원들이 투입되기 때문에 당사자 입장에서는 잘못 걸리면
시골이나 낙후지역에서 노가다해야 한다는 디메리트도 있기는 한다. 그래도
문화대혁명 때처럼 무조건 강제로 내보내지는 것은 아니고 고생 좀 하다 가면
출세에 도움이 되기는 하지만. 그래서인지
CCTV에서 만든 다큐멘터리에서 명문대학을 나와 엘리트 코스를 밟을 수 있었는데 그걸 차버리고
쓰촨성의 벽지 촌장으로 내려간 젊은 관료 같은 케이스를 엄청 띄워주는 걸 볼 수 있다.
[2]
중국이 여론몰이 '4각편대'로 이용하는 관영매체,
외교공관,
인플루언서,
댓글부대가 고도의 협력체계를 활용해 중국에 유리한
뉴스를 만들고 전파하는 과정에서 공청단이 그들 명의의
SNS 계정으로
메시지를 띄우면
애국주의적
감수성이 강한 중국 젊은이들에게 급속히 전파되는 패턴을 볼 수 있다.
[3]
제1차 전국대표대회가 개최된 곳은 현재 광저우 퇀이다 기념광장(广州团一大纪念广场)라는 홍색관광지로 개발되어 있으며 광저우 지하철 6호선
퇀이다광창역 바로 옆에 있다.
[4]
물론 중국도 대도시는 월세가 소득대비로 비싸고, 대도시 집값은 웬만한 서구권 국가보다도 비싸기로 악명이 높지만 일단 공산품과 먹는 물가는 싸기는 하다.
[5]
그러나 이는 공식적 조직으로서의 중국공산주의청년단을 말하는 것이고, 중국공산당 내 분파를 가리킬 때는 단파(团派)라고 한다. 영어로는 음을 그대로 읽은 Tuanpai 혹은 Youth League Faction.
[6]
한국식으로 표현하면 특정 당에 대한 충성심이 투철한
[7]
사실 이게 단발성 병크는 아닌데 중국 정부는 이게 공식 입장이고 근 70여 년 내내 항미원조 드립을 치고 있다. 2021년에는
장진호 전투를 중국에서 영화화하면서 이 문제가 또 수면 위로 떠올랐다.
[8]
다만 북한의 청맹은 근로단체로서 중화전국청년연합회와 격이 일치한다. 중화전국청년연합회는 공청단 외에 중화전국학생연합회와 중국청년기업가협회 등이 합쳐진 조직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