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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수정 시각 : 2021-06-20 19:05:37

내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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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KM 소총으로 무장하여 전쟁터로 가고 있는 남수단[1] (수단 내전) 시리아 정부군과 교전 중인 시리아 반군. ( 시리아 내전)
"모든 전쟁은 내전이다. 왜냐하면 모든 인류는 형제이기 때문이다."
프랑수아 페늘롱[2]
"어째서 이토록 야만적(uncivil)인 전쟁을 내전(civil war)이라고 부르는가?"
엘리자베스 핏치[3]

1. 설명2. 역사상의 유명 내전 일람 (시기순↓)3. 가공의 내전4. 게임 용어

1. 설명

내전()은 한 나라 또는 공동체의 내부에서 벌어지는 전쟁을 말한다.

영어로는 '시빌 워(civil war)' 라고 부르며, ' 시민 전쟁', '시민끼리 하는 전쟁'이라는 의미가 된다. 정권(헤게모니)을 잡은 쪽에서는 '반란군에 의한 내란(內亂, rebellion)'이라고 격하하는 것이 일반적이다. 주권과 영토를 걸고 국가끼리 싸우는 일반적인 전쟁과는 달리, 국가 내부적으로 국민 파벌끼리 주도권을 차지하기 위해 정치성을 띄는 것이 특징이다. 일단 전쟁인 만큼 무력은 당연히 개입된다. 수습에 실패할 경우엔 1국가 다체제가 들어서거나[4] 아예 삼국지처럼 국가가 쪼개지는 사태도 발생한다. 국가가 아예 해체되어버리는 후자의 경우, 내전이 아닌 그냥 전쟁이나 국제전으로 간주되기도 한다. 유고슬라비아 내전이 바로 그런 예 중의 하나다.

과거에는 지배 계층끼리의 헤게모니 투쟁형 내전(예: 장미전쟁, 전국시대 등)이 많았기 때문에 외침에 비해서 오히려 피해가 적을 수 있었다. 외침은 지배 계급(군인)과 징병된 일부 민간인만의 것으로 끝나는 것이 아니라 민간인에 대한 약탈, 방화, 학살 등을 수반하는 반면, 이러한 내전은 일단 권력을 잡으면 자신에게 세금과 충성을 바칠 백성들은 곧 그들의 재산이었기 때문에 민간인들을 함부로 대할 수 없었기 때문이다. 물론 백기, 항우, 조조같은 학살자들도 있기는 했지만...

그러나 현대에는 일반 전쟁에 비해 그 피해가 훨씬 더 심각하다. 내전이 어느 한쪽의 승리나 평화적으로 종결되어도, 이미 스스로의 국력을 타인이 아닌 자신들의 손에 의해 잔뜩 소모시킨 관계로 주변의 멀쩡한 국가들의 위협이 도사리고 있다. 외전이였다면 우리가 많이 피를 본 만큼 적국도 피를 많이 봤으니 더 이상 최악의 사태는 일어나지 않겠지만[5][6] 내전이었다면 스스로의 힘을 약화시킨 셈이니 옆에 있던 멀쩡한 국가가 '어익후 감사' 하면서 달려들수도 있다. 이는 무력적 개입일 수도 있고, 아니면 전후 복구에 이런저런 개입을 함으로서 문화적/경제적으로 자국에 종속시키는 사회적 개입일 수도 있다. 어느 쪽이건 국가의 입장에서는 썩 좋지 않은 셈. 더불어 전쟁의 양상도 전쟁 지역과 후방 지역이 비교적 명확히 구분되어, 주로 전쟁 지역에서 수탈과 파괴가 발생하는 외전과 달리[7] 내전의 경우 전쟁 전에는 (예비) 적군과 아군이 같은 국가에서 혼재되는 경우가 대부분이라[8] 전쟁 지역과 후방 지역이 불명확한 경우가 대다수라 전국토에서 전투가 벌어지고, 이에 따라 피해도 전 국토적으로 발생하고 후유증도 오래 남는 경우가 대다수이다.

일반적인 국가간의 전쟁의 경우 기본적으로 전후 책임을 상층부에 전가하기도 쉽고, 유럽을 비롯한 다양한 곳에서 옛날 전쟁은 귀족들만 하던 하나의 '특권'이던 시절 형성된 관습법적 문화의 영향도 있어서 2차대전 당시 동부전선 같은 예외적으로 이데올로기가 과잉된 전쟁들 빼곤 나름 상호간 최소한 포로나 민간인 대우에 관해 암묵적인 상호존중이 생기기 마련이다. 당장 인류 최대, 최악의 전쟁이었던 2차대전만 해도 나치스의 인종 이념에 따라 서부전선에선 그래도 비교적 통상적인 전쟁의 규율의 지켜지는 편이었다.[9] 또 전쟁 중이나 전쟁에서 승리하면 내적 단합을 꾀하기도 쉽다.[10] 반면 근현대의 내전의 경우 주로 이데올로기적, 국가 내 다른 민족간 적대적인 감정이 이미 사회 내에서 팽창할 만큼 부풀어있고, 근본적으로 서로 타협할 수 없는 '같은 나라를 어떻게 다스릴 것인가'라는 근본적인 문제를 두고 일어나기 때문에 더욱더 무차별적이고 참혹해지기 쉽다. 이미 기존에 존재하던 사회적 분열을 자양분 삼아 터지기 때문에, 평소에는 미치광이 극단주의자로 몰릴 법한 특정 정파적 광신도들이 갑자기 힘을 얻으면서 일상적 차원에서 완장질 하나에 상대편 지지자로 의심받아 후방 테러의 타겟들이 우후죽순으로 생기고, 내전 발발 이전엔 어쨌든 서로 이웃간이었던 사람들이기 때문에 이런 소위 '내부의 적 색출'이 극단화되기 마련이다. 어느 한쪽의 일방적인 승리던, 끝 안 나는 소모전 끝에 타협이던 정식 국가 분열이던 간에 이렇게 평소엔 이웃, 친구, 친지였던 사람들이 정치적 이데올로기 때문에 서로 살해하고, 박해하고, 밀고했던 경험은 심각한 사회적 불신을 초래해 전쟁이 끝나도 정상적인 사회 재건을 장기적으로 힘들게 한다. 러시아부터 스페인, 그리스, 한반도, 중남미까지 20세기의 각종 민족 내 내전들은 전부 예외 없이 전쟁 자체의 파괴뿐만 아니라 이런 식으로 극심한 집단적 트라우마에 기반한 사회적 불신과 국가 분열, 독재와 정치적 테러 같은 불운한 결과를 낳았다.

또한, 타국과의 싸움이라면 차라리 종전 후 보상을 요구할 길이라도 있지, 내전은 말 그대로 적도 국민 아군도 국민이기에 그 어느 누구에게도 보상을 요구하기가 힘들다. 똑같이 망했는데 뭘 어떻게 털어먹겠나.[11] 오히려 무리해서 털어먹으려 들다간 외부의 위협과 손잡거나, 이렇게 망한 거 우리만이라도 잘 살아보자며 2차, 3차 내전이 일어날지도 모른다.

유형은 아래와 같이 크게 3가지 형태로 나뉜다.

어느 쪽이든 성공시키면 혁명으로 미화하기 바쁘고, 이 와중 상대편은 누가 봐도 '자국인 동포'지만 이들을 비인간화, 악마화 하기 위해 상대편을 지지하는 열강의 꼭두각시라 욕하며 자신들은 독립운동한다고 포장하기 마련이다. 또한 내전이 끝나면 사회 안정을 위해 강력한 독재자의 출현이 뒤따르거나, 반대로 극심한 혼란 속에 국가 수반이 암살당하는 경우가 매우 많다.

내전의 필수요소 중 하나가 무력 사용이기에, 처음에는 온건하던 시민운동도 일단 무력만 개입되기 시작하면 내전으로 비화되는 경우가 많다. 그래서 폭력적 시민운동은 대다수 국가에서 불법으로 규정하고 처절한 응징을 가한다. 사실 폭력적인 시민운동도 손 쓰지 못할 정도의 정부는 이미 막장이라고 봐야 한다. 역으로 내전을 종결하는 평화 협상을 진행할 때, 향후 평화적인 시민운동 및 정치정당으로서의 위치를 보장하는 대가로 무장을 해제하고 교전을 멈추게 하는 형태로 협상을 진행할 때도 많다.

흔히 식민지를 경험한 나라들은 기껏 독립을 이루기 무섭게 힘의 공백과 노선 갈등이 생겨 내전을 치르고는 한다.[15]

다만 내전의 수습이 성공적이면 '비 온 뒤에 땅이 굳는다'는 표현처럼 국가 정체성이 더욱 확실해지는 효과도 있고, 구습이 많이 정리되고 진전된 시대로 도래하기도 한다. 경제가 발전한 송나라를 낳은 오대십국시대나 한반도의 통일을 확고하게 한 고려를 낳은 후삼국시대 등이 있다. 메이지 유신을 성공하게 한 일본 무진전쟁과 노예제와 같은 구습을 철폐했을 뿐만 아니라 사회 통합을 이루고 연방의 결속을 굳건히 하여 훗날 초강대국으로 성장할 발판을 마련한 미국의 남북전쟁도 대표적인 사례이다. 다만 이렇게 내전이 결과는 좋았다로 끝나려면 몇 가지 조건이 필요한데, 무진전쟁이나 남북전쟁 같은 경우 외세의 직접적인 개입이 거의 없었고 순수한 정치적 갈등으로 민족, 종교적 갈등이 아니었다.[16][17]

바꿔 말하면 민족 갈등과 종교 갈등이 관련된 내전의 경우 국가를 말아먹는 1등 테크이기도 하며, 대표적 예시로 나라를 아예 완전히 공중분해시킨 유고슬라비아 내전, 육지는 북두의 권으로 바다는 원피스로 만든 소말리아 내전, 그에 못지않게 나라를 막장으로 만든 콩고 내전, 시리아 내전이 있다. 스페인, 그리스, 미국처럼 어쨌든 결과론적으로만 보면 내전의 상처를 잘 극복하고 재건과 국가 발전에 성공한 경우도 하나같이 예외 없이 내전에 관련된 역사적 문제와 정치적 의미는 화목한 대화를 순식간에 얼어붙게 만들 만한 파급력을 가진 집단적 트라우마와 지금까지 짙은 그림자를 드리우는 기나긴 정치적 악영향을 낳는다. 다른 나라랑 비교하면 그래도 양차대전도 비껴갔고, 비교적 평온한 20세기 근대사를 보낸 아일랜드만 하더라도 사실 정책상으론 거의 차이가 없는 피어너 팔, 피너 게일 특유의 양당제가 다른 문제가 아니라 아일랜드 내전 당시 누구 편을 들었냐 이런 역사적 문제 하나에서 기원했을 만큼, 거의 100년 가까이 나라의 정치 지형을 주도하는 짙은 역사적 암운을 제공했다.

또한 이권을 노리는 외부 강대국들이 내전에 은근슬쩍 발을 담궈 고래 싸움에 새우등 터지는 경우도 많다. 이는 종종 강대국끼리의 대리전으로 비화되고는 한다. 한 마디로 집안 싸움에 이웃집 깡패들이 개입하는 꼴. 6.25 전쟁의 경우 그 정도가 너무 심해 국제전인지 내전인지 여전히 학계에서 논란이 되고 있다. 북한이 사전에 중국, 소련의 지원 동의를 얻어 전쟁을 도발했다는 점까지는 내전의 범위지만, 이후 UN군 개입 명분으로 중공군이 인해전술로 직접 전쟁에 참여한 점, 전쟁 이후에도 여전히 두 체제가 대립 중이라는 점에서 대한민국 내에서는 이를 내전으로 받아들이기를 꺼리고 있다. 다만 이후에 통일이 되고 다시 상당한 시간이 지나면 그 시대의 한국(?)인들은 한국전쟁을 내전으로 인식하게 될 것이다.

사실 내전이냐 국제전이냐를 구분하는 것은 간단한 문제가 아닌데 특히 분리독립을 목표로 하여 소수민족이 일으킨 내전의 경우 그 국가의 다수/주류 민족의 입장에서는 내전 또는 반란에 불과하지만 소수/비주류 민족의 분리독립파들의 입장에서는 그들을 같은 국민으로 생각하지 않으니 내전이란 말은 가당치도 않고 독립운동 내지는 자기 고향을 강점한 외세 또는 적국에 대항한 전쟁으로 볼 수도 있다는 것이다. 예를 들어 팔레스타인에서 터진 무력충돌 같은 경우 이스라엘 입장에서는 자기 나라 내의 내전 또는 반란을 '진압'한 것으로 보겠지만 팔레스타인 입장에서는 '적국' 이스라엘과 전쟁을 한 것으로 볼 수 있다는 것. 특히 상술한 6.25 전쟁이나 유고 내전과 같이 내전의 결과 실제로 나라가 분단되거나 분열되었다면 더욱 내전인지 국제전인지 논란이 생길수 있다.

미국에서는 남북전쟁을 'American Civil War' 또는 'The Civil War'[18]라고 쓴다. 이러한 언어문화에 밝지 못한 일부 번역서에서는 '시민 전쟁', '미국 내전'이라고 직역해 버려 독자들이 모르는 또다른 내전이라 오해할 여지를 만드는 때도 있다. 영국에서는 'The Civil War'이라 하면 곧 ' 잉글랜드 내전'(The English Civil War)을 의미한다. 러시아 적백내전은 Гражданская война в России(Russian Civil War)으로 표기한다.

2. 역사상의 유명 내전 일람 (시기순↓)

현재진행형은 볼드체로 표기.

3. 가공의 내전

4. 게임 용어

주로 게임 커뮤니티에서 사용되는 용어로, 크게는 사이트 내부나 작게는 길드, 현실 친구 등의 모임원끼리 시합을 벌이는 것을 '내전'이라고 말한다.


[1] 남수단이 독립하고 나서 정부군이 됐으나 내전 중에는 반군이었다. [2] 17~18세기 프랑스 가톨릭 대주교이자 신학자이다. 자세한 내용은 이곳으로. [3] 원문은 "Why do they call them civil wars when they always are so extraordinarily uncivil?"로, 'civil'의 다른 의미인 '정중한, 교양 있는, 예의 바른'을 들고 와 'uncivil(야만적)'이라 비꼰 언어유희. 여기서 말하는 내전은 미국에서 내전의 대명사로 사용되는 남북전쟁(The civil war)이다. 문명 5/시나리오/남북전쟁의 연구 '군사 과학'의 인용구로서는 "아무리 좋게 포장해도 남북전쟁은 야만적인 전쟁이었습니다."라고 번역하였다. [4] 예를 들어 보스니아 헤르체고비나가 여기에 해당된다. 다만 중화인민공화국 홍콩, 마카오도 1국가 다체제이지만, 이것은 오히려 쪼개져 있던 것을 합치는 과정에서 국가만 합쳐놓고 각자의 체제를 유지한 것이라서 내전과는 무관하다. [5] 사실 반드시 그렇다고는 할 수 없다. 어느 시대, 어느 나라라도 '적국' 이 하나만 있는 경우는 예외라고 해도 좋을 만큼 드물기 때문. 굳이 적국이었던 나라가 아니더라도 중립국, 심지어 이전까지 동맹을 맺었던 국가가 '어이쿠 감사' 하며 두 나라를 모조리 집어삼킬 수도 있다. 물론 그런 나라들끼리의 외교전이나 내부 정치 상황 등으로 인해 어찌어찌 무사히 넘어갈수도 있겠지만. [6] 또한 외전이 없었더라면 이후의 사태가 일어나지 않았거나 그 피해가 적어진다는 것은 if를 논하기 이전에 상식적으로 당연한 이야기이다. 똑같은 사태에 직면하더라도 국력이 멀쩡한 상황이냐 소모된 상황이냐는 분명 차이가 크기 때문. 특히 임진왜란 병자호란의 경우 국력 소모도 국력 소모였지만, 그 소모로 인해 정기적으로 실시하던 여진족에 대한 예방 전쟁을 벌이지 못하게 되어 여진족이 더 쉽게 강성해지면서 결과적으로 병자호란이 일어났다고 봐도 될 정도이다. [7] 이런 후방 지역의 상대적 안정 때문에 일어난 촌극이 1차대전 이후 독일에서 유행한 괴소문인 배후중상설이다. [8] 특히 남북전쟁 같은 지역적 내전이 아닌 이념적, 민족적 이유로 벌어지는 내전이 더 심하다. [9] 법학자 카를 슈미트는 이를 두고 "독일은 동방에서는 차별적인 (discriminatory) 전쟁을, 서방에선 차별하지 않는 전쟁을 치렀다"고 표현했다. [10] 물론 명분이 있고없고와 무리하지 않냐에 따라서 다르다. 가령 2차대전을 사례로 들면 이탈리아의 경우에는 워낙에 무솔리니가 전쟁 전쟁 해서 이탈리아군의 사기가 그리 높지 않았다. 반면 일본에게 먼저 선빵맞은 미국은 선빵맞은 분노로 일본을 조져야 한다는 여론으로 일치단결되었다. [11] 한 쪽이 완전히 패배해서 하나로 통합된 경우는 당연한 것이고, 아예 나라 자체가 둘로 나뉜 경우라고 해도 한 쪽이 독립했다는 얘기는 다른 한 쪽이 이를 무력으로 제압할 충분한 능력이 없었음을 의미하므로 보상이 이루어질 가능성이 별로 없다. 물론 독립한 쪽도 독립 그 자체가 보상이다. [12] ex: 스페인 내전, 국공내전, 그리스 내전, 중동 국가들의 종파 갈등 내전, (내전으로의 성격을 인정할 경우) 한국전과 베트남 전쟁. [13] ex: 장미전쟁, 카다피 축출 후 현 리비아 내전. [14] ex. 아프리카 국가들의 내전, 유고 전쟁. [15] 멀리 갈 것도 없이 가장 대표적 사례가 한반도다. [16] 그래서 무진전쟁과 남북전쟁의 당사자들은 너 죽고 나 살자 식으로 끝장을 보기 보다는 어느 정도 자제한 편으로, 무진전쟁에서 도쿠가와 요시노부는 에도 성이 포위되자 큰 무력 충돌 없이 무혈로 성문을 열고 신정부군에 항복했고, 남북전쟁에서도 남부는 북부와 협상의 여지를 남겨놓기 위해 워싱턴 D.C.를 함락시킬 기회가 여러 번 있었는데도 그렇게 하지 않았고, 북부도 전쟁에서 승리한 후에도 남부에 대해 상당히 관대한 전후 처리를 했다. 다만 링컨 대통령이 남부 출신에 의해 암살당하자 빡친 북부가 남부에 군정을 실시했으나 10여년 후 해제했다. [17] 그리고 '같은 미국인들끼리 화해'란 명제 아래 지금까진 미국 외에선 주목을 잘 못 받았던 이슈가 있다. 이렇게 패배한 남부를 어물쩡 다시 받아들이던 과정에서 막상 전쟁의 목적이었던 해방 노예 흑인들의 민권은 다시 개판이 되어, 결국 20세기 내내 미국 사회를 뒤흔든 인종 문제의 씨앗을 낳았다는 점에서 순전 백인들과 연방 정부만의 입장인 '그 이후 남부와 북부는 화해해서 세계최강 미합중국을 만들어냈습니다'란 식의 역사 해석은 현대 와서 심각한 도전을 받고 있다. 2020년 현대까지 와서 미국에서 가장 사람들 골치 썩이게 하는 사회 문제가 인종 갈등임을 생각하면 남북전쟁이 전적으로 좋은 쪽으로만 끝났다는 것도 한물 간 관점이다. 물론 긍정적인 효과가 없던 것도 아니었지만[32] 기존에 주장하던 만큼은 아니라는 것 [18] 특정한 내전을 가리키는 것이므로 The가 반드시 들어가야 남북전쟁임을 알 수 있다. [19] 스카이 월에 의해 북도, 서도, 동도로 분단되었다가 중반부터 전쟁이 발발하였다. [20] 가넬( 레인저)과 베디르( 다크나이트)가 벌인 내전. 결국 이 사건을 계기로 실비아의 자손들은 둘로 완전히 갈라섰고, 베디르의 자손들은 새로운 힘의 원천을 찾아 카마실브 사원 바깥 세상으로 떠났다. [21] 올레이 제국의 지배를 받던 퍼렐던이 반란을 일으킨 전쟁이다. 퍼렐던 측이 승리하여 퍼렐던은 독립한다. [22] 1편의 무대가 되는 퍼렐던에서 케일런 국왕 사후 일어난 내전이다. [23] 3편의 무대가 되는 올레이 제국의 내전이다. [24] 본래 이너스피어의 두 가문인 항성 합중국의 다비온 가문과 라이란 연방의 스타이너 가문의 지도자가 서로 결혼을 맺음으로 인하여 연방공화국이 탄생했으나, 그 자녀 중 둘째이자 장녀인 캐서린 스타이너-다비온이 야욕을 드러내며 어머니이자 당시 연방공화국의 지도자였던 멜리사 스타이너를 암살하고 나라를 찢어먹는 등 사고를 쳤다. 이로 인하여 장남 빅터 스타이너-다비온과 삼남 피터 스타이너-다비온을 중심으로 캐서린에 대항하여 3062년부터 3067년까지 두 국가로 도로 찢어지며 내전이 발생했다. 이쪽도 집안 싸움이기는 한데 그 규모가 엄청 커진 경우이다. [25] 파파 스머프가 재료를 구하러 잠시 떠난 사이 자칭 왕이 된 스머프와 반란 스머프들의 전쟁을 벌였다. [26] 말이 좋아 1대1이지 지지세력이 개입하는 순간 내전이 된다. [27] 해머펠의 지배 세력인 라 가다와 나토탐부간에 벌어진 전쟁이다. [28] 탈모어의 집권과 알드메리 자치령의 재독립은 대전쟁이 발발하기 180여년 전에 벌어진 일이다. 따라서 대전쟁은 사실상 독립국들끼리의 전쟁이지 내전은 아니다. [29] 조선군과 명군이 참전하기 전까지. [30] 섭정왕 측과 공주 측의 전쟁이다. 이쪽은 특이한 점이 집안 싸움이라는 것. [31] 앞의 다크 엘프와의 내전과는 다르게 하이 엘프 쪽이 반란군에 가깝다. 티리온 참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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