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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lbgcolor=#1353b4><colcolor=#fff> 영국 윈저 왕조 제4대 국왕
엘리자베스 2세 Elizabeth II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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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출생 | 1926년 4월 21일 | ||
잉글랜드 런던 웨스트민스터 메이페어 브루턴 거리 17번지 | |||
사망 | 2022년 9월 8일 (향년 96세) | ||
스코틀랜드 애버딘셔 밸모럴 성 | |||
묘소 | 잉글랜드 버크셔 윈저 성 세인트 조지 예배당 | ||
재위기간 | 영국 및 영연방 왕국 여왕 | ||
1952년 2월 6일 ~ 2022년 9월 8일 | |||
영연방 수장[1] | |||
1952년 2월 6일 ~ 2022년 9월 8일 | |||
서명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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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lbgcolor=#1353b4><colcolor=#fff> 가문 | 윈저 가문 | |
이름 |
엘리자베스 알렉산드라 메리 (Elizabeth Alexandra Mary) |
||
아버지 | 조지 6세 | ||
어머니 | 레이디 엘리자베스 보우스라이언 | ||
형제자매 | 여동생 마거릿 | ||
배우자 | 에든버러 공작 필립 (1947년 결혼 / 2021년 사별) | ||
자녀 | 장남 찰스 3세, 장녀 앤, 차남 앤드루, 삼남 에드워드 | ||
종교 |
성공회 (
잉글랜드 국교회)[2] 장로회 ( 스코틀랜드 국민교회)[3] |
||
신체 | 163cm, O형( Rh-) | ||
군사 경력 | |||
복무 | 영국 육군 | ||
1945년 ~ 1952년 | |||
최종 계급 | 대위[4] (영국 육군) | ||
주요 보직 | 보급수송장교 | ||
참전 | 제2차 세계 대전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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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식 초상화[5] |
[clearfix]
1. 개요
영국과 영연방 왕국 윈저 왕조의 제4대 국왕.25세인 1952년 2월 6일 즉위하여 2022년 9월 8일 96세로 타계할 때 까지 70년 214일간 재위한 군주이며, 영국 역사상 가장 오랜 기간 재위한 국왕이자 전 세계 역사상 가장 장기간 재위한 여왕이다.
2. 서론
1952년 2월 6일 아버지이자 선왕인 조지 6세가 사망함에 따라 25세의 나이로 여왕의 자리에 올랐다. 빅토리아 여왕 이후로 최초로 맞이하는 여왕에 영국 국민은 대체로 환호하는 반응을 보였다.[6] 왕위에 올랐을 당시에는 이미 현대적 입헌군주제가 자리 잡은 상태였기 때문에 정치적인 실권은 없었다. 그러나 엘리자베스 2세는 자신의 영향력을 통해 영국을 위해 힘쓰려는 모습을 보였으며, 일례로 탈식민화가 진행되며 영국의 권위가 실추되던 때 영연방을 지키기 위해 1953년 11월부터 6개월간 소속 국가들을 방문하였다. 조부 조지 5세가 테크의 메리와 함께 인도 황제로서 즉위한 델리 더바 행사가 1911년에 있은 후 다시 한 번 인도를 방문하였으며, 그 결실이 열매를 맺어 1977년 여왕 즉위 25주년에는 영국 연방의 35개국 지도자들이 축하 연회에 참석하는 영국의 권위를 회복시킨 결과를 낳았다.그러나 그런 그녀조차도 다이애나 스펜서 사건으로 대표되는 자식들의 가정사는 오점으로 남게 되었다. 장남 찰스 3세는 부인을 두고 카밀라 파커 보울스와 불륜을 저질렀다. 이런 와중 다이애나가 찰스와 이혼한 뒤 파파라치에게 쫓기다가 교통사고로 사망하는 사건이 일어나자 자연스레 그 비난은 찰스와 엘리자베스 2세로 향했다.[7] 이후 2005년에 카밀라와 재혼하였다.
그렇지만 엘리자베스 2세는 공주 시절부터 2차 세계 대전에 운전병으로 참전하여 성실히 복무하고 윈저 성 대화재 당시 복구 비용으로 세금이 쓰이는 데에 국민적 질타가 커지자 스스로 왕실의 면세 특권을 폐지하는 등 스스로 노블레스 오블리주를 적극적으로 실천하려는 모습을 자주 보여 전 세계적 존경과 경의를 받아왔다. 생존 당시 현직인 국가원수 중 가장 고령이었음에도 불구하고 사망하기 이틀 전까지 총리 임명과 같은 공식 일정을 소화해 내며 의무를 성실히 수행했다.
이렇듯 대영제국의 명멸을 지켜보며 영국과 영연방 왕국의 존립을 위해[8] 평생을 바친 끝에 2022년 9월 8일, 엘리자베스 2세는 70년에 달하는 재위 끝에 향년 96세의 나이로 밸모럴 성에서 사망하였다. 왕실은 관습에 따라 여왕의 부고 소식을 버킹엄궁 대문에 걸어 알렸으며 영국은 10일간의 추모 기간을 가졌다. 전 세계의 국가 정상들과 기업, 유명 인사와 수많은 대중들의 추모가 이어졌다.
3. 작위
<rowcolor=#fff> 영국에서의 문장[9] | 스코틀랜드에서의 문장 |
<bgcolor=#00247D> | |
<rowcolor=#fff> 국가에 상관 없이 쓰는 여왕의 깃발[10] | 모노그램[11] |
- 요크의 엘리자베스 공녀 전하 Her Royal Highness Princess Elizabeth of York (1926년 4월 21일 ~ 1936년 12월 11일)
- 엘리자베스 공주 전하 Her Royal Highness The Princess Elizabeth (1936년 12월 11일 ~ 1947년 11월 20일)[12]
- 에든버러 공작부인 엘리자베스 공주 전하 Her Royal Highness The Princess Elizabeth, Duchess of Edinburgh (1947년 11월 20일 ~ 1952년 2월 6일)[13]
- 메리오너스 백작부인 Countess of Merioneth (1947년 11월 20일 ~ 1952년 2월 6일)
- 그리니치 남작부인 Baroness Greenwich (1947년 11월 20일 ~ 1952년 2월 6일)
- 여왕 폐하 Her Majesty The Queen (1952년 2월 6일 ~ 2022년 9월 8일)
하느님의 은총으로
그레이트브리튼,
아일랜드와
영국 자치령의 여왕,
신앙의 수호자이신 엘리자베스 2세 Elizabeth the Second, by the Grace of God, of Great Britain, Ireland and the British Dominions beyond the Seas Queen, Defender of the Faith 왕위 계승 직후 여왕인 모든 나라에서 썼던 칭호
|
하느님의 은총으로
그레이트브리튼 북아일랜드 연합 왕국[14]과
다른 왕국과
영
토[15]의 여왕,
영연방의 수장[16],
신앙의 수호자이신 엘리자베스 2세 여왕 폐하 Her Majesty Elizabeth the Second, By the Grace of God of the United Kingdom of Great Britain and Northern Ireland and of Her Other Realms and Territories Queen, Head of the Commonwealth, Defender of the Faith |
캐나다 기사단장,
오스트레일리아 기사단장,
뉴질랜드 기사단장,
바베이도스 기사단장,
파푸아뉴기니 밸러 기사단장, 캐나다 무공 기사단장,
캐나다 경찰 메리트 기사단장, 뉴질랜드 여왕 공로 기사단장, 뉴질랜드 메리트 기사단장, 바베이도스 성 앤드루 기사단장, 파푸아뉴기니 로거후 기사단장, 파푸아뉴기니
멜라네시아의 별 기사단장 Sovereign of the Order of Canada, Sovereign of the Order of Australia, Sovereign of the Order of New Zealand, Sovereign of the Order of Barbados, Sovereign of the Order of Valour, Sovereign of the Order of Military Merit, Sovereign of the Order of Merit of the Police Forces, Sovereign of the Queen's Service Order, Sovereign of the New Zealand Order of Merit, Sovereign of the Order of St. Andrew, Sovereign of the Order of Logohu, Sovereign of the Order of the Star of Melanesia 즉위 이후 영연방 왕국들이 새로 사용할 훈장을 제정하면서[18] 덧붙여진 기사단장으로서의 칭호
|
더불어 영연방의 수장이라는 지위를 가지고 있다. 부왕인 조지 6세 재위 기간 중에 영연방에 영국 왕이 국가원수가 아닌 나라도 회원이 될 수 있게 바뀌었고, 그래서 '왕'과 별개로 '영연방의 수장'이라는 직함을 추가했는데, 이후 엘리자베스 2세가 왕위를 계승하면서 이 직위도 이어받았다.[20]
3.1. 호칭 논란
즉위 초 엘리자베스 2세라는 호칭에 대해 스코틀랜드에서 상당한 논란이 있었다. 엘리자베스 2세인 이유는 엘리자베스 1세가 있었기 때문인데 엘리자베스 1세 시기는 아직 연합왕국이 형성되기 이전이었다. 그래서 잉글랜드 입장에선 엘리자베스 2세지만 스코틀랜드 입장에선 그냥 엘리자베스였다.나라에 따라 관행에 차이가 있지만 영국( 스코틀랜드 포함)을 포함한 대부분의 경우 1세는 나중에 2세가 등장하면 '~세'를 표기하는 게 일반적이다. 따라서 만약 엘리자베스 2세가 스코틀랜드에서의 이름을 따로 쓸 경우 엘리자베스 1세라고 적기보다는 그냥 엘리자베스라고 적게 된다. 그러나 동일 군주가 여러 칭호를 사용하면서 넘버링을 여러 개 가지고 있어서 이들을 모두 합칭하는 경우가 있을 수 있는데, 이 경우에는 1세라는 표기를 쓸 수 있다. 이 경우 엘리자베스 2세 겸 1세(Elizabeth II and I)라고 쓰는 것이다. 잉글랜드와 스코틀랜드가 별개의 국가인데 국왕만 같았던( 동군연합) 시기에는 잉글랜드와 잉글랜드 제임스 1세=스코틀랜드 제임스 6세처럼 스코틀랜드의 넘버링을 구분했었다. 이후 잉글랜드와 스코틀랜드가 한 나라가 되고서부터는 계속 잉글랜드의 넘버링만 사용되었다.
영국 정부와 왕실은 스코틀랜드에서는 잉글랜드나 그 이외 지역과 다른 문장(royal coat of arms)과 다른 모토(royal motto)를 사용하고, 왕관을 그릴 때도 잉글랜드의 성 에드워드 왕관 대신 스코틀랜드 왕관을 그리며, 왕세자의 대표 칭호도 프린스 오브 웨일스 대신 로스시 공작(Duke of Rothesay)을 사용한다. 비록 잉글랜드의 상징들이 대표로 쓰이더라도 스코틀랜드 내부에서는 스코틀랜드만의 상징들을 쓰게 하여 스코틀랜드만의 오랜 전통을 유지해 온 것이다. 하지만 왕의 이름에 붙는 넘버링의 경우 스코틀랜드만의 독자성을 인정받지 못하고 윌리엄 4세 시대부터 잉글랜드의 넘버링으로 강제 통일 당하니 스코틀랜드 민족주의자들로서는 불만을 품을 수밖에 없었다.
엘리자베스 2세라는 이름에 격분한 스코틀랜드 민족주의자들은 공공연히 엘리자베스 2세를 부정하며 무려 1707년 연합왕국 결성 당시의 연합법까지 들먹이며 법원에 소송까지 냈으나 법원은 국왕 명칭 결정은 국왕 특권이라는 논리로 소송을 기각하여 법적 논쟁은 마무리되었다. 하지만 이후에도 스코틀랜드에서의 반발은 계속되어, 공보물이나 공공시설물에 표기된 엘리자베스 2세 표기에서 2세 부분을 훼손하는 일이 자주 벌어졌다.[21]
한편 엘리자베스 여왕 즉위 당시의 영국 총리였던 윈스턴 처칠[22]은 잉글랜드와 스코틀랜드의 넘버링이 일치하지 않을 경우 어느 쪽을 채택할 것인지 타협책을 제시했다. 향후의 국왕들은 잉글랜드와 스코틀랜드 양국 각각의 기준으로 ~세 부분이 서로 일치하지 않을 경우 둘 중 숫자가 높은 쪽을 선택하게끔 한 것이다. 이 원칙에 따르면 엘리자베스 2세뿐만 아니라 그 동안 그냥 잉글랜드의 넘버링을 따르고 스코틀랜드의 것은 무시했던 윌리엄 4세, 에드워드 7세, 에드워드 8세의 넘버링까지 합리화되었다. 윌리엄 4세, 에드워드 7세, 에드워드 8세 역시 잉글랜드 쪽의 숫자가 크기 때문이다.[23] 나머지 역대 영국 국왕들은 잉글랜드를 기준으로 하든 스코틀랜드로 기준으로 하든 넘버링이 우연히 일치하거나[24] 양국 간에 동군연합이 성립(1603년)되기 이전에 양국에서 따로 모시던 군주들이므로 문제되지 않는다.[25]
타협책도 나온 데다가 무한정 이 문제만 붙잡고 있을 순 없기 때문에 시간이 지나면서 스코틀랜드인들의 반발은 일단 잠잠해졌다. 하지만 그 이후로 지금까지도 수시로 엘리자베스 2세를 스코틀랜드에서는 그냥 엘리자베스 여왕으로 불려야 한다는 주장이 나오고는 한다. 더불어서 여왕을 부른 폐하에 해당하는 용어가 현재는 Your Majesty(2인칭)과 Her(남자일 때는 His) Majesty(3인칭)라고 하고 있는데 이건 헨리 8세 때 확립된 잉글랜드의 관습이고[26], 스코틀랜드는 줄곧 Your/His/Her Grace라고 했으므로 스코틀랜드에서는 이 관습대로 Your/Her Grace라고 불려야 한다는 주장도 있다.[27] 물론 왕실은 계속 그 요구에 대해 계속 답을 하지 않고 기존 관례를 쓰고 있다.
2014년에 스코틀랜드 분리독립 투표가 가결됐으면 다시 이 이야기가 거론되었을 것이다. 투표에서 찬성(스코틀랜드 독립)이 다수로 결정되면 엘리자베스 2세를 여왕으로 하는 입헌군주국으로서 독립할 예정이었다. 독립하게 됐으면 엘리자베스 2세는 스코틀랜드에서 별도의 호칭을 쓰게 될 테니까 스코틀랜드에서는 엘리자베스 여왕으로 불려야 한다는 주장이 나왔을 것이다. 하지만 독립이 부결돼서 그 문제는 따로 논의되지 않았다.
웨일스는 잉글랜드에 병합된 지 오래라 왕의 호칭에서 따로 언급되지 않는다. 대신 프린스 오브 웨일스가 잉글랜드 왕세자의 칭호로 쓰인다. 잉글랜드 왕은 아일랜드 왕의 칭호도 같이 썼으나 아일랜드만의 넘버링은 따로 없었다. 스코틀랜드는 완전한 독립국으로서 잉글랜드와 동군연합이 되었기에 넘버링을 따로 썼으나 아일랜드는 잉글랜드가 국외에 따로 지배하고 있는 영토에 가까웠기 때문에 잉글랜드 넘버링을 그대로 쓴 것이다. 한때 영국과 동군연합이었던 하노버 선제후국의 경우 1692년 공국에서 승격되었는데, 상위 작위로 승격하면 넘버링을 리셋하는 경우가 많은 유럽의 관례를 따랐는데 게오르크 1세가 2대 선제후였으므로 영국의 넘버링과 일치했으며, 1815년 하노버 왕국으로 승격된 후에도 그냥 영국과 넘버링을 똑같이 썼다. 그리고 오늘날 영국에서 독립해서 영국과 동군연합을 이루는 나라들은 영국에서 쓰는 넘버링을 그대로 쓴다. 결국 영국 왕의 넘버링은 잉글랜드와 스코틀랜드의 불일치만이 문제가 되고, 다른 곳에서는 별 문제가 없다.
4. 재위 국가
일반적으로는 영국 여왕이라고 부르지만 1952년 즉위한 이래 영국 이외에도 호주, 캐나다, 뉴질랜드, 파키스탄, 남아프리카 연방 등 32개 영연방 왕국들의 군주직을 겸하였다. 그리고 2022년까지도 영국, 호주, 캐나다 등 15개국의 여왕이었으며 재위 중 공화제로 전환한 다른 17개국의 여왕이기도 하였다.[28] 이 때문에 엘리자베스 2세는 역사상 왕의 칭호를 가장 많이 가졌던 군주였다. 여왕이 역대 재위하였던 국가는 다음과 같다.
▲ 1952년 즉위 당시 엘리자베스 2세의 통치 영역 ■ 영국 ■ 영연방 왕국 ( 대영제국 자치령) ■ 대영제국 보호령[29] ▲엘리자베스 2세가 임기 중 국왕으로 재위하였던 국가들 ■ 엘리자베스 2세가 2022년 9월 8일까지 재위했던 국가 ■ 과거 영연방 왕국이었던 국가[30] |
||||
국가 | 즉위년일 | 퇴위년일 | 재위기간 | 비고 |
<colbgcolor=#c2e68b,#4f7419> 영국 | 1952.2.6. | 2022.9.8. | 70년 214일 | |
캐나다 | 1952.2.6. | 2022.9.8. | 70년 214일 | |
호주 | 1952.2.6. | 2022.9.8. | 70년 214일 | |
뉴질랜드 | 1952.2.6. | 2022.9.8. | 70년 214일 | |
파키스탄 | 1952.2.6. | 1956.3.23. | 4년 48일 | 헌법 개정 |
남아프리카 연방 | 1952.2.6. | 1961.5.31. | 9년 118일 | 국민 투표 |
실론 | 1952.2.6. | 1972.5.22. | 20년 112일 | 헌법 개정 |
가나 | 1957.3.6. | 1960.7.1. | 3년 119일 | 국민 투표 |
나이지리아 | 1960.10.1. | 1963.10.1. | 3년 | 헌법 개정 |
시에라리온 | 1961.4.27. | 1971.4.19. | 9년 360일 | 헌법 개정 |
탕가니카 | 1961.12.9. | 1962.12.9. | 1년 | 헌법 개정 |
자메이카 | 1962.8.6. | 2022.9.8. | 60년 33일 | |
트리니다드 토바고 | 1962.8.31. | 1976.10.26. | 14년 61일 | 헌법 개정 |
우간다 | 1962.10.9. | 1963.10.9. | 1년 | 헌법 개정 |
케냐 | 1963.12.12. | 1964.12.12. | 1년 | 헌법 개정 |
말라위 | 1964.7.6. | 1966.7.6. | 2년 | 헌법 개정 |
몰타 | 1964.9.21. | 1974.12.13. | 10년 86일 | 헌법 개정 |
감비아 | 1965.2.18. | 1970.4.24. | 5년 67일 | 국민 투표 |
가이아나 | 1966.5.26. | 1970.2.23. | 3년 275일 | 헌법 개정 |
바베이도스 | 1966.11.30. | 2021.11.30. | 55년 | 헌법 개정 |
모리셔스 | 1968.3.12. | 1992.3.12. | 24년 | 헌법 개정 |
피지 | 1970.10.10. | 1987.9.28. | 16년 358일 | 군사 쿠데타 |
바하마 | 1973.7.10. | 2022.9.8. | 49년 60일 | |
그레나다 | 1974.2.7. | 2022.9.8. | 48년 213일 | |
파푸아뉴기니 | 1975.9.16. | 2022.9.8. | 46년 357일 | |
솔로몬 제도 | 1978.7.7. | 2022.9.8. | 44년 63일 | |
투발루 | 1978.10.1. | 2022.9.8. | 43년 342일 | |
세인트루시아 | 1979.2.22. | 2022.9.8. | 43년 198일 | |
세인트빈센트그레나딘 | 1979.10.27. | 2022.9.8. | 42년 316일 | |
벨리즈 | 1981.9.21. | 2022.9.8. | 40년 352일 | |
앤티가 바부다 | 1981.11.1. | 2022.9.8. | 40년 311일 | |
세인트키츠 네비스 | 1983.9.19. | 2022.9.8. | 38년 354일 |
위 표에서 헌법 개정은 따로 국민 투표도 없었고 군사 쿠데타도 없이 이뤄진 것만 한정한 것이다.[31]
그리하여 여왕은 2022년 9월 8일까지 3개 이상의 국가의 수장[32]인 유일한 사람이었다.[33] 또한, 재위기간 중 약 42년[34] 동안은 세계에서 가장 넓은 영토를 거느리는 국가원수이었으며, 재위 기간 내내 가장 넓은 영토와 많은 인구를 거느리는 군주이기도 했다. 1952년 2월 6일 즉위 당시 그녀가 거느리는 면적은 약 30,100,000km²에 달하여 당대 소련, 심지어 전성기 몽골 제국보다도 넓었고[35], 인구는 약 192,000,000명에 달해 당해 년도 미국보다도 많았다. 또한 2022년 9월 8일 사망 당시에도 거느렸던 면적과 인구는 여전히 상당했는데, 면적은 18,800,000km² 정도로 러시아보다 더 넓었고, 인구는 135,000,000명으로 일본보다 많았다.
5. 생애
자세한 내용은 엘리자베스 2세/생애 문서 참고하십시오.6. 장수
향년 96세, 재위 기간은 70년 214일로, 영국 역사상 가장 장수한 군주이자 가장 재위기간이 긴 군주로 유명하다.재위 기간 동안 총 15명의 영국 총리를 승인하면서 가장 많은 총리를 승인한 국왕이기도 하다. 또 21세기 군주 중 가장 오랜 기간 재위한 국왕이다. 또한 유럽 역사상 두 번째로 오래 재위하였고[36], 전 세계에서 여성 군주로는 가장 오랜 기간 재위하였다.
여왕 즉위 후 거쳐간 영국 총리가 윈스턴 처칠부터 리즈 트러스까지 15명에 달하며,[37] 그 중 엘리자베스 여왕보다 먼저 태어난 총리는 8명이다.[38] 특히, 토니 블레어는 여왕의 재위 기간 중 태어나 총리가 된 첫 사례이고 이후 고든 브라운 총리를 제외하고는 다 재위 기간 중 태어났다.
오랜 기간 왕위에 있을 수 있었던 이유는 25세의 젊은 나이에 왕위에 올라 96세까지 장수했으며, 정치체제가 입헌군주제[39]이므로 정치적으로도 논란이 될 일이 없었다.
한때 즉위 60주년 되는 해인 2012년에 찰스 왕세자에게 양위할 것이라는 소문이 있었으나, 여왕 본인은 그럴 생각이 전혀 없다고 한다. 전임 국왕이 사망해야 후임자에게 왕위가 승계되는 영국 왕실의 전통도 있거니와, 여왕의 큰아버지 에드워드 8세가 남동생 조지 6세에게 양위한 것이 '국왕으로서의 책무를 저버린 행위'라고 비판받는 것을 누구보다도 가장 가까이에서 지켜본 사람이기 때문이다. 2012년 6월 4일, 데이비드 캐머런 영국 총리는 "여왕이 퇴위한다거나 찰스를 건너뛰어 윌리엄 왕자가 즉위하는 것은 불가능하다"고 밝혔다. #
2013년 11월에 열리는 영연방 정상회의에 불참하고 찰스 왕세자 부부를 대신 보내기로 해 왕위 승계를 위한 수순 밟기에 들어간 것이 아니냐는 분석이 나오기도 했다. 1971년의 첫 회의를 제외하면, 여왕이 영연방 정상회의에 불참한 적이 없었던 것도 이러한 주장을 나오게 하는 데 한 몫 했었다.
2015년 9월 9일 17시 30분이 경과함에 따라 고조할머니 빅토리아 여왕의 재위 63년 216일 16시간 30분을 경신했다. 엘리자베스 2세 여왕은 이 날을 기념하는 특별한 행사 없이 에든버러 인근에서 열린 열차 노선 개통식에 참석한 후 왕세손 부부와 저녁 만찬을 가졌고, 데이비드 캐머런 총리는 "여왕이 지난 63년 간 끊임없이 변화하는 버팀목이 되어줬다"는 성명을 발표했다.
한편, 2015년 1월 23일 사우디아라비아의 압둘라 빈 압둘아지즈 알사우드 국왕이 향년 90세(1924년생)로 사망하고, 2016년 10월 13일 태국 국왕 푸미폰 아둔야뎃이 재위 70년 126일로 사망함에 따라 2016년 이후 기준으로 생존한 군주 가운데 최고령이자 오래 재위한 군주가 되었다.
2017년 2월 6일 재위 65주년 사파이어 주빌리를 맞았다. 서구권 군주 가운데서는 기존의 최장수한 빌헬름 1세의 만 90세를 넘겨 최장수 군주가 되었으며,[40] 프란츠 요제프 1세(만 68년 재위)를 제끼고 2020년 1월 27일부로 근대 이래 가장 오래 재위한 서구의 (대국) 군주이기도 하다. 금연, 저녁 식사시 탄수화물 자제, 하루 식사를 네 끼로 나눠 소식하는 것 등을 장수의 요인으로 꼽았다.
2007년에는 똑같이 장수 중인 남편 필립 공과의 결혼 60주년 기념행사가 있었는데, 영국 군주정 역사에서 가장 긴 결혼생활이라는 기록을 세웠다. 2011년 6월 10일에는 필립 공의 90세 생일이 있었다. 결혼 50주년과 60주년 때와는 달리, 2017년에 맞은 결혼 70주년은 가족과 친구들만 참석하는 조촐한 축하 행사만 거행되었다.
2010년 12월, 첫 손주이자 앤 공주의 아들 피터 필립스의 부인 어텀 필립스가 사반나 필립스를 출산해 첫 증손주를 보게 되었다.[41] 2013년 7월 22일, 캐서린이 왕위 계승 서열 3위인 조지 왕자를 순산함에 따라 3대 뒤에 왕이 될 증손주까지 보게 되었다. 왕위를 계승할 직계증손이 태어난 것은 빅토리아 여왕 재위중에 태어난 에드워드 8세 이후 119년만의 일이다.[42] 2015년 5월 2일에는 캐서린이 샬럿 공주를 순산함에 따라, 외동딸 앤 공주 이후 65년 만의 직계 공주도 보게 되었다.
2021년 여름에는 엘리자베스 2세가 즉위식 때 심었던 나무가 먼저 죽어버렸다.
7. 가족 관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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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owcolor=#fff> 2007년 가족 사진 | |||
(뒷줄 왼쪽부터) 앤드루 왕자, 프린세스 로열 앤, 에드워드 왕자, 찰스 3세, 본인, 필립 공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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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owcolor=#fff> 손주 7명, 부군과 촬영한 사진[43] | |||
(뒷줄 왼쪽부터) 해리 왕자, 윌리엄 왕자, 피터 필립스, 요크의 베아트리스 공녀, 요크의 유지니 공녀, 필립 공, 본인 손을 잡고 있는 루이즈 마운트배튼윈저, 자라 틴달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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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owcolor=#fff> 손주 2명, 증손주 8명과 촬영한 사진[44] | |||
(뒷줄 왼쪽부터) 손녀 루이즈, 손자 제임스, 증손녀 레이나, 증손자 조지, 증손녀 샬럿, 증손녀 아일라, 증손자 루이, 증손녀 미아가 안고 있는 증손자 루카스, 본인, 증손녀 사반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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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1. 조상
본인 | 부모 | 조부모 | 증조부모 |
엘리자베스 2세 (Elizabeth II) |
<colbgcolor=#fff3e4,#331c00>
조지 6세 (George VI) |
<colbgcolor=#ffffe4,#323300>
조지 5세 (George V)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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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드워드 7세 (Edward VII)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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덴마크의 알렉산드라 공주 (Princess Alexandra of Denmark)[45]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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테크의 메리 공녀 (Princess Mary of Teck)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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테크 공작 프란츠 (Francis, Duke of Teck)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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케임브리지의 메리 애들레이드 공녀 (Princess Mary Adelaide of Cambridge)[46]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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엘리자베스 보우스라이언 (Elizabeth Bowes-Lyon)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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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4대 스트래스모킹혼 백작 클로드 보우스라이언 (Claude Bowes-Lyon, 14th Earl of Strathmore and Kinghorne)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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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3대 스트래스모킹혼 백작 클로드 보우스라이언 (Claude Bowes-Lyon, 13th Earl of Strathmore and Kinghorne)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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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란시스 도라 스미스 (Francis Dora Smith)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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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실리아 니나 캐번디시벤팅크 (Cecilia Nina Cavendish-Bentinck)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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찰스 캐번디시벤팅크 (Charles Cavendish-Bentinck)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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캐롤라이나 버나비 (Carolina Burnaby) |
7.2. 자녀
자녀 | 이름 | 출생 | 배우자/자녀 |
1남 |
찰스 3세 (Charles III) |
1948년 11월 14일 |
슬하 2남[47] |
카밀라 파커 보울스 | |||
1녀 |
프린세스 로열 앤 (Anne, Princess Royal) |
1950년 8월 15일 |
슬하 1남 1녀[48] |
티머시 로런스 | |||
2남 |
요크 공작 앤드루 왕자 (Prince Andrew, Duke of York) |
1960년 2월 19일 |
슬하 2녀[49] |
3남 |
에든버러 공작 에드워드 왕자 (Prince Edward, Duke of Edinburgh) |
1964년 3월 10일 |
소피 리스존스 슬하 1남 1녀[50] |
8. 창작물
자세한 내용은 엘리자베스 2세/기타 창작물 문서 참고하십시오.9. 여담
- 어릴 때부터 조용하고 평범한 삶을 꿈꿨다고 하며 가정교사에게 "나중에 시골에서 말을 키우면서 사는 게 꿈이에요."라고 말한 적도 있다. 이와 같이 평범한 삶을 꿈 꾼 이유는 자신이 직계가 아니고, 백부인 에드워드 8세가 정상적으로 결혼하여 자녀를 낳았다면 그의 자녀들이 서열의 뒤를 이었을 것이기 때문이다. 인생에서 가장 행복한 순간은 필립 공과 몰타에서 보냈던 신혼 생활이라고 회고하기도 했다.[51]
- 젊은 시절 필름 카메라를 가지고 홈비디오를 촬영하는 것을 즐기는 얼리 어답터였다. 덕분에 찰스 3세와 앤 공주의 어린시절 모습부터 엘리자베스 보우스라이언과 마거릿 공주, 필립 마운트배튼이 밸모럴 성에서 함께 휴가를 즐기는 모습, 대관식 당일 버킹엄 궁전 내부 모습까지 희귀한 영상들을 많이 남겼다. 이 당시 여왕이 직접 촬영한 영상을 토대로 제작된 다큐멘터리까지 있을 정도. # 아들 찰스 3세는 후일 "부모님은 항상 카메라를 들고 무언가를 찍으시는 것을 좋아하셨다"라고 회고했다. 1950년대 당시 가정에 필름 카메라 보급률이 낮았던 점을 감안하면, 상당히 앞서나갔던 셈이다.
- 가장 잘하는 요리는 팬케이크였다고 한다. 제2차 세계 대전 당시 폭격으로 인해 집을 잃은 사람들을 윈저 성에 초대해 공주들이 직접 음식을 대접하는 행사가 열렸는데, 이때 윈저 성의 요리사로부터 직접 팬케이크 레시피를 배웠다고 한다. 국왕이 된 후인 1959년에 미국 아이젠하워 대통령이 밸모럴 성에 방문했을 때 여왕이 직접 팬케이크를 만들어줬는데, 팬케이크 맛에 반한 아이젠하워가 레시피까지 물었다고 한다. 이에 여왕이 몇 달 뒤에 자필로 레시피를 세세하게 적어 보냈다고 한다.
- 엘리자베스 보우스라이언처럼 고령임에도 불구하고 꾸준히 음주를 즐겼는데, 하루에 4잔의 칵테일을 마시는 것이 루틴이었다. 매일 점심 식사 전에는 레몬과 얼음을 곁들인 듀보네 칵테일을, 점심 식사 때는 와인을 한잔 마셨다. 밤에는 드라이 마티니를 마셨으며, 잠들기 전에는 블랑저나 랑송과 같은 프랑스산 샴페인을 마시며 잠에 들었다고 한다.
- 왕실 친척들에게 정이 많다는 평이 따른다. 윈저 왕조의 방계인 글로스터 공작가[52]와 켄트 공작가[53]의 사촌들이 바라는 건 웬만해선 뭐든지 들어주려고 했으며, 논란을 일으키는 친척들도 묵묵히 지원하며 감싸주는 편이다. 오죽하면 본인의 첫째인 찰스 왕세자와 둘째 앤 공주는 뒷전이라 비난도 많이 받았을 정도. 엘리자베스 2세는 첫째와 둘째를 낳은 지 얼마 안 되어 어린 나이에 즉위해, 첫째와 둘째는 많이 보살펴주지 못했다. 반대로 즉위한 이후에 낳은 늦둥이인 앤드루 왕자와 에드워드 왕자는 엄청나게 예뻐했다.
- 자신의 흑역사로 애버밴 참사 당시 해롤드 윌슨 총리의 조언대로 참사현장을 방문하는 것을 거부했었던 것으로 꼽는다고 한다. 당시 책임의 소재는 물론 전국석탄청 쪽에 있었지만 국가의 상징으로서 국민들의 아픔을 위로해주어야 하는 직무를 소홀히 했다고 여당인 노동당과 국민들의 비난을 받았었다.
- 치세 동안 크리스마스 정기 메시지를 제외하고 대국민 메시지를 총 다섯 번 내었다. 첫번째 메시지는 1991년 2월 24일 영국군을 비롯한 다국적군이 걸프전에서 사막의 기병도라는 작전명 아래 지상작전을 실시하였을 때, 두번째 메시지는 1997년 9월 4일 다이애나 스펜서의 죽음으로 왕실의 미지근한 반응에 국민들로부터 공분을 사고 토니 블레어 총리가 스펜서 가족장을 왕실장으로 전환하여 진행할 것을 설득한 이후, 세번째 메시지는 2002년 4월 8일 어머니 엘리자베스 보우스라이언이 별세하고 난 이후, 4번째 메시지는 2012년 7월 4일 다이아몬드 주빌리를 기념하여, 마지막 메시지는 2020년 4월 6일 코로나 펜데믹 발생으로 영국 정부가 봉쇄를 선언한 이후 코로나 바이러스로 고통받는 국민들을 위로하기 위해 냈었다.
- 인터넷이 아직 보편화되지 않은 시절인 1976년 3월 26일에는 이메일을 최초로 보낸 군주로 기록됐으며, 2014년 10월 24일에는 트위터에 생애 첫 트윗을 올렸다. #
- 견과류를 매우 좋아한다. 2013년 12월 13일경 영국 언론지 now의 불법 도청 사건에 대한 재판이 열린 적이 있었다. 이 때 법정에 증거자료로 제출된 이메일 내용에 적혀 있던 일화가 있다. 왕실 직원들이 여왕을 위해 준비한 땅콩, 아몬드, 캐슈넛 등의 견과류를 항상 궁전 복도에 놓아두는데, 순찰 중인 경찰들이 너무 많이 집어먹어서 여왕이 화가 났다고 한다. 여왕은 그릇에 줄을 그어서 표시한 후 내 땅콩에서 그 끈적거리는 손을 치우라는 메모를 남겼다고 한다.[54] 또 초콜릿도 좋아해서, 주변 사람이 말리지 않으면 한 접시 정도는 다 먹을 수 있다고 한다.
- 정치적 행보를 보이지 않지만, 딱 한 번 영국 총리에게 화를 낸 적이 있다. 1978년 루마니아의 독재자 니콜라에 차우셰스쿠가 영국을 방문했을 때, 당시 총리였던 제임스 캘러헌과 외무장관이었던 데이비드 오언은 차우셰스쿠를 좋은 공산주의자라 얘기하며 엘리자베스 2세에게 버킹엄 궁전으로 초대해 줄 것을 요청하였고 여왕도 이를 승인하였다. 문제는 차우셰스쿠가 영국 방문 직전 방문한 프랑스에서 터졌는데, 차우셰스쿠와 그 일행이 도청장치가 있는지 확인한답시고 영빈관의 전깃줄과 전화선을 까 뒤집는 것도 모자라 각종 공예품을 절도했던 것이다. 당연히 어처구니가 없었던 발레리 지스카르데스탱 프랑스 대통령이 미리 엘리자베스 2세에게 이를 귀띔해 주었고, 여왕은 궁전의 관리인들에게 미리 주의를 주어 루마니아 사절단의 도벽에 대한 피해를 최소화 할 수 있었다. 하지만 차우셰스쿠는 이것 이외에도 "도청장치를 두려워한다"는 명목으로 아침 일찍 궁전 잔디밭에서 회의를 한다든가, 여왕과 악수한 직후 바로 면전에서 손을 소독하는 등의 결례를 저질렀다. 일단 앞에서는 아무 말을 하지 않았지만, 차우셰스쿠가 귀국하자마자 폭발한 여왕은 제임스 캘러헌 총리와 오언 외무장관을 호출한 뒤 "어떻게 초대해도 저런 인간을 초대할 생각을 할 수 있습니까?"라며 매우 강하게 질책했다고 한다. 이는 현재까지 엘리자베스 2세가 보인 전례없는 총리와 장관에 대한 분노 표출이자 문책이었는데, 즉위 직후부터 가급적이면 총리와 내각의 정책에 대해 언급을 사양하며 정치적 행보를 최소화했던 엘리자베스 2세가 이처럼 총리에게 화낸 것은 그때가 유일했다고 하며 참고로 캘러헌 총리와 여왕의 나이차는 15살 차이이다. 그 정도 나이차라면 아무리 주군인 여왕이라도 총리에게 화를 내기는 힘들었을텐데 그만큼 크게 분노했을 정도로 차우셰스쿠가 얼마나 답이 없었는지를 보여준다.[55]
- 엘리자베스 2세에게는 여권이 없다. 이는 영국과 영연방 왕국의 모든 여권은 국왕의 이름으로 발행되기 때문이다.
- 애완견은 원래는 코기를 키우다가 하나 둘 세상을 떠나면서 입양을 하지 않았다. 도기(dorgi)종 애완견인 '벌컨(Vulcan)이 무지개 다리를 건너면서 '캔디'라는 이름을 가진 도기종 애완견 1마리만 남게 됐었는데, 2021년 3월 필립 공이 세상이 떠나기 전 '퍼거스(Fergus)'[56] 라는 도기와 '믹(Muick)' 라는 코기를 분양받았다고 한다. 필립 공이 사망한 이후 앤드루 왕자, 베아트리스 공녀, 유지니 공녀가 몇 마리의 코기들을 여왕에게 선물하기도 했다. 여왕이 사망한 이후, 앤드루 왕자가 선물한 믹(Muich)과 샌디(Sandy)라는 코기는 앤드루 왕자와 사라 퍼거슨이 키우기로 했다. 이 두 마리의 코기들은 여왕의 장례식에서 잠깐 밖으로 나와 여왕의 마지막 길을 배웅하기도 했다.
- 과거 자신의 사유 재산을 대중에 공개하지 않으려고 관련 법안의 초안을 수정하기 위해 대정부 로비를 벌여 이에 성공했다. # 찰스 왕세자와 같이 1천 건이 넘는 법안을 의회보다 먼저 받아보고 '검열'한 것으로 밝혀졌다. #
- 남편 필립 공의 장례식 때 직계 자손들이 남편의 관을 따라 행진하는 동안 차를 타고와서[57] 세인트 조지 성당에서 기다렸는데 "마스크를 쓰고 홀로 앉아있는 모습이 배우자를 먼저 보낸 이의 슬픔을 여실히 보여준다"는 평이 많았다.
-
말(馬)을 매우 좋아하는 것으로도 유명하다. 무려 4세부터 선물받아서 승마를 시작하였으며, 아침식사 때는 영국 경마 신문지인 레이싱 포스트(Racing Post)를 항상 끼는 것은 유명한 일화이다. 또
경마 매니아로도 유명하고 경마 마주로도 유명한데, 실제로 보라색/빨간색/검은색 색상의 왕가의 승부복이 따로 있을 정도로 애착이 대단하고, 심지어 왕가의 이름을 단 G1 대회에 직접 모습을 드러내기도 한다. 안타깝게도 지금은 고령 및 코로나 시국 등 건강 문제로 인하여 못하고 있다. 그녀도 사람인지라 그녀가 소유하고 있는 말이 G1에서 이긴다면 엄청나게 환호하기도 하며[58], 말을 다루는 능력도 심상치 않은 것인지 직접 고삐를 당길 수 있을 정도로 팔 힘도 강했다고 한다. 영국 5대 클래식[59] 중
엡섬 더비를 제외하고[60] 다 우승 경력이 있으며 영국 및 유럽 주요 대회 우승 경력도 있다. 종마에서도 여왕의 소유마들이 크게 활약하였다.
엘리자베스 2세 여왕 역대 주요 수요마 거기에 사망 이틀 전에도 현역마 중 월드클래스인
플라이트라인에 대한 정보를 수집하며 다녔다고 한다. 여왕 사후 손녀
레이디 루이즈 마운트배튼윈저와 증손녀
웨일스의 샬럿 공녀는 생전 말을 좋아했던 여왕을 기리기 위해 말과 관련된 악세사리를 착용하고 장례식에 참석했으며, 여왕의 말인 엠마는 장례식에서 잠깐 밖으로 나와 여왕의 마지막 길을 배웅하기도 했다.
경마 마주로서도 큰 성공을 거두었고, 로열 애스콧, 브리티시 챔피언스 데이 등 수많은 경마 대회를 후원하며 경마에 공헌한 경력이 인정되어 2021년에 설립된 브리티시 챔피언스 시리즈 명예의 전당(영국 경마 명예의 전당)에 특별 기여자 자격으로 헌액되었다.
- 닌텐도 Wii을 좋아하며 플레이하는 걸 즐겼다고 한다. 손자며느리 캐서린 미들턴이 손자 윌리엄에게 선물한 Wii을 좋아해서 결국 여왕의 소유가 되었다고 한다. 특히 볼링을 좋아하며 매우 잘 한다고 한다.
- 부군 필립 공이 컴퓨터로 편지를 쓰고, 연설문 원고를 작성할 때 인터넷과 이메일을 사용했던 것과는 달리 오랜기간동안 전자기기 대신 종이와 펜을 고집했다고 한다. 그러나 손주들과 문자를 주고 받기 위해 핸드폰을 구매했으며, 2005년에는 아들 앤드루 왕자의 제안을 받고 아이팟을 구매하기도 했다.
- 좋아하는 영화는 플래시 고든이다.
- 윌리엄 왕세자는 어린시절 할머니(granny) 발음이 안돼서 개리(Gary)라 불렀고 웨일스의 조지 공자, 웨일스의 샬럿 공녀, 웨일스의 루이 공자는 유아기때 증조할머니를 갠갠(Gan-Gan)이라 불렀다 한다.
- 한국의 축구 커뮤니티에서는 밈으로도 유명한데, 박지성을 찬양하는 만화책 '꿈을 향해 뛰어라'에서 그녀가 박지성을 보고 "나의 기사로 삼고 싶다."라고 언급했다는 내용을 넣었기 때문이다. 이 말은 2000년대 말에 인터넷에서 한 블로거가 지어낸 말을 작가가 사실인 줄 알고 인용한 것이다. 이것이 발굴되고 나서는 오글거린다는 이유로 축구 커뮤니티에서 밈으로 사용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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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위시기 | 제2차 엘리자베스 시대 · 사건 일람 | ||
생애 | 생애 · 사망 | ||
가족관계 | 아버지 조지 6세 · 어머니 엘리자베스 보우스라이언 · 배우자 필립 마운트배튼 · 동생 마거릿 공주 · 장남 찰스 3세 · 장녀 프린세스 로열 앤 · 차남 요크 공작 앤드루 왕자 · 3남 에든버러 공작 에드워드 왕자 | ||
기타 | 퀸 엘리자베스 · 퀸 엘리자베스 제도 · 퀸 엘리자베스 2세 파크 · RMS 퀸 엘리자베스 2 · 엘리자베스 여왕배 · 기타 창작물 · 더 크라운 ( 엘리자베스 2세(더 크라운)) · 벤틀리 스테이트 리무진 · 영국 왕실과 정부의 전용기 · God Save the Queen |
[1]
영연방의 수장은 세습직이라고 규정된 바가 없다. 그러나
조지 6세의 사망과 동시에 자동적으로 직책을 계승했고, 사망할 때까지 유지했다.
[2]
영국 국왕은
잉글랜드 국교회의 최고통치자(Supreme Governor of the Church of England)직을 겸하며 신앙의 수호자(Defender of the Faith/Fidei Defensor)라는 호칭이 부여된다. 다만 잉글랜드 성공회일 뿐, 전세계
성공회 전체의 지도자는 아니다.
[3]
영국 국왕은 잉글랜드에서는 성공회 신자로, 스코틀랜드에서는 장로회 신자로서의 정체성을 가지며,
빅토리아 여왕 시대부터 왕족이
밸모럴 성에 거주할 때는
크래디 커크에서 예배하는 전통이 시작되었다.
#
[4]
원칙적으로 국왕에게는 원수 계급이 주어져야 하지만, 여왕이라 부여받지는 못했다. 대신 국서인
필립 마운트배튼이 원수 계급을 수여받았다.
[5]
1953년
대관식 당시 제작된 공식 초상화로 엘리자베스 2세의 재위 기간동안
영국과
영연방 왕국의 주요 학교와 공공기관, 해외 대사관 등에 걸려있었다.
[6]
고조할머니
빅토리아 여왕의 사망 이후 51년 만에 여왕으로 즉위하였으며, 따라서
대영제국의 상징인
빅토리아 여왕 치세를 직접 경험했던 노인들의 향수를 불러일으킨 것 또한 한 몫 했다.
[7]
이 당시가 왕실 폐지론이 가장 많은 지지를 받던 때였다. 특히 당사자인 찰스 3세는 이 때 많은 비호감을 쌓았고 사건 당시는 물론 즉위 이후에도 아들인 윌리엄보다 지지를 받지 못하고 있다.
[8]
이미 그녀의 재임 중 공화정으로 전환한 국가가 16개국에 달했다. 그나마 영연방의 형태로 공동체를 유지하는 것으로 영국과의 유대를 유지할 수 있었다.
[9]
영국 여왕으로서 쓰는 문장이다. 전통에 따라
스코틀랜드에서는 위와 디자인이 다른 문장을 사용한다. 또 영국 이외에 엘리자베스가 여왕으로 있는 나라(영연방 왕국)에서 쓰는 문장은 나라마다 다르다. 영연방 왕국의 서로 다른 국장들이 곧 엘리자베스 2세의 국장이므로 이들을 참고하면 된다.
[10]
여왕으로 있는 모든 나라에서 사용 가능한 여왕으로서 쓰는 깃발이다. 영연방의 원수이긴 하지만 영연방 원수 자격으로 쓰는 깃발은 따로 정하고 있지 않다. 엘리자베스 2세가 사용하는 다른 깃발들은 영문
위키백과의
해당 항목에서 볼 수 있다.
[11]
Elizabeth Regina II(엘리자베스 여왕 2세라는 의미의 약어이다.)
[12]
아버지의 즉위로 인해 자동적으로 작위가 바뀌었다.
[13]
필립 마운트배튼과 결혼하면서 작위가 바뀌었다. 즉위 후에는 에든버러 공작부인 칭호를 더 이상 사용하지 않게 되었지만, 남편이 여전히 에든버러 공작이었기 때문에 2021년 4월 9일
필립 공이 사망하기 전까지 작위는 계속 보유하고 있었다.
[14]
1927년 이래 '연합왕국(the United Kingdom)'이 칭호에서 빠진 지 26년 만에 정식 국호가 칭호에 돌아왔다. 이는
아일랜드 섬의 대부분이
아일랜드 자유국으로 분리되었고,
북아일랜드만 영국 본국에 남았기 때문이다. 칭호를 재정하면서 뒤에
북아일랜드 따라왔다.
[15]
자치령(Dominion)이란 표현이 이때부터 칭호에서 빠졌으나, 아직 남아있던 자치령들에 대해서 왕의 지위가 상실된 것은 아니다. 1956년 공화국 성립 전의
파키스탄 자치령 등이 있다.
[16]
영연방 수장이라는 지위 자체는 선왕
조지 6세 때 신설됐지만 국왕의 공식 칭호에 추가된 것은 이때부터다.
[17]
영국 외에 엘리자베스 2세가 여왕으로 군림했던 14개국에서는 각각 별도의 칭호가 정해져 있었다. 영국 이외의 다른 나라들의 칭호 및 쓰지 않는 과거의 칭호들은
영어 위키백과에 있는
해당 문서를 참고할 것. 1953년 이후 엘리자베스 2세가 국가원수로 있는 국가들은 각각 별도의 칭호를 제정해서 사용하고 있으나 영국의 칭호와 형태가 대동소이하다.
[18]
훈장 등의 서훈은 현대에도 국가원수의 전속적 권한으로 여겨진다. 즉 왕국의 훈장 제도는 예나제나 왕을 주군으로 한다.
[19]
Lord의 여성형은 Lady이지만, Lady라고 하면 영주보다는 영주의 부인으로 해석될 위험이 있어서 남성형 Lord of Mann을 쓴다. 다만
빅토리아 여왕 때는 그냥 Lady of Mann을 썼다.
[20]
왕위와 달리 영연방 수장직은
세습직이라고 규정된 바가 없다. 영연방의 수장이라는 직위가 생겼을 당시에는
영국이 그래도 강대국이고 영연방이 영국 왕과 영국을 중심으로 뭉쳐 있는 조직이라는 성격이 강했지만, 지금은 회원국들 사이에 평등한 조직으로 변모했다. 단적인 예로 영연방은 원래 정식 명칭이 British Commonwealth of Nations였지만 지금은 Commonwealth of Nations로 바뀌었다는 점을 들 수 있다.
[21]
엘리자베스 2세를 상징하는 로열 사이퍼(royal cipher: 왕의 이름을 딴 모노그램)는 왕관 그림 밑에 EIIR라는 문자가 붙는 형태다(왕관은 스코틀랜드 이외 지역에서는 성 에드워드 왕관, 스코틀랜드에서는 스코틀랜드 왕관 그림을 사용함). EIIR은
라틴어 Elizabeth II Regina를 줄인 것으로 엘리자베스 2세 여왕(영어로는 Queen Elizabeth II)이라는 뜻이다. 이 모노그램은 각종 공문서나 공공시설에 사용되는데, 스코틀랜드 버전(스코틀랜드 왕관 밑에 EIIR이 적혀 있는 버전)의 로열 사이퍼가 부착돼 있는 걸 보고 격분한 일부 스코틀랜드인들이 강제로 II(=2세) 부분을 떼어버린 것이다. 그래서 스코틀랜드에서는 우체통 등 공공시설물이나 각종 공문서에 스코틀랜드 왕관만 사용하고 EIIR은 아예 생략하는 경우가 많다고 한다.
[22]
제2차 세계 대전 직후 치러진 총선에서
보수당이 패배하여 총리직에서 물러났었으나 그다음에 치러진 총선에서 보수당이 승리하여 총리직에 복귀했다. 그 후
조지 6세가 사망하면서 처칠은 조지 6세의 마지막 총리, 엘리자베스 2세의 첫 총리로 기록되었다.
[23]
윌리엄 4세는 스코틀랜드 넘버링으로 따지면 윌리엄 3세가 돼야 한다. 그리고 에드워드 7세와 에드워드 8세는 스코틀랜드 넘버링으로 따지면 각각 에드워드 1세, 에드워드 2세로 불리는 게 맞다. 하지만 윌리엄 4세, 에드워드 7세, 에드워드 8세는 스코틀랜드의 넘버링을 따른 별도의 호칭을 쓰지 않았다.
[24]
찰스와 앤이라는 이름의 왕은 동군연합 성립(1603) 후에 처음 왕의 이름으로 사용됐기 때문에 양국의 넘버링이 일치한다. 조지와 빅토리아라는 이름의 왕은 양국의 합병(1707) 후에 처음 등장했다. 양국이 합병된 후에는 잉글랜드 국왕, 스코틀랜드 국왕 같은 칭호를 따로 안 썼기 때문에 넘버링 문제가 아예 생겨날 수가 없다. 그리고 메리의 경우 동군연합 성립 전에 잉글랜드와 스코틀랜드 양국에 각각 1명씩 있었기 때문에(
블러디 메리/
메리 스튜어트) 동군연합 이후에 등장한 메리 여왕은 잉글랜드·스코틀랜드 양국에서 모두
메리 2세라 역시 넘버링이 동일하다.
[25]
예를 들어 동군연합 이전 잉글랜드의 국왕이었던
윌리엄 1세와 스코틀랜드의 윌리엄 1세는 다른 사람, 다른 시기, 다른 나라의 통치자였으므로 넘버링 불일치를 따질 필요 자체가 없다.
[26]
헨리 8세 때 마련한 규칙은 호칭을 Majesty=왕과 왕후, Highness=왕자와 공주 등 왕족, Grace=왕족이 아닌 고위 귀족용으로 고정한 것이다. 이 규칙을 마련하기 전에는 Majesty, Highness, Grace가 구분 없이 혼용됐다고 한다. 하지만 스코틀랜드는 독립국이던 시절 국왕에게 Grace라고 불렀다.
[27]
이쪽은 엘리자베스 2세 여왕을
스코틀랜드에서 그냥 엘리자베스라고 부르는 것보다 받아들여지기 힘들다. 다른 왕족, 고위 귀족에게 적용되는 체계와 충돌하기 때문인데, 가령 Your/His Grace는 현재 영국
공작에 대한 경칭으로 쓰이고 있다. 따라서 스코틀랜드에서는 따로 왕족, 귀족들 호칭도 다른 방식으로 변경해야 하는데 이게 쉬운 일은 아닐 것이다. 더구나
영국 해군 함선들의 접두어인 HMS(His/Her Majesty's Ship)까지 바꾸거나 이중으로 적용해야 한다.
[28]
이 17개국은 영국에서 독립할 땐 영국과 군주를 공유하는
왕국이었다가 이후
국민투표·
헌법 개정이나
쿠데타 등에 의해
공화국으로 바뀐 경우이다. 엘리자베스 2세 임기 중 마지막으로 공화국으로 전환한 국가는
2021년의
바베이도스였다. 또한
동파키스탄이었던
방글라데시까지 별도로 계산할 경우 18개국이 된다.
[29]
분홍색과 적갈색의 빗금은 당시 자치령 국가들의 보호령이며, 각각
남서아프리카 (
남아프리카 연방의 보호령),
파푸아뉴기니 (
호주의 보호령)의 두 국가이다.
[30]
2022년 9월 8일을 기준으로 과거 영연방 왕국이었던 국가는 위의 지도와 같이 총 34개국이지만, 본문에서는 인도와 아일랜드 두 국가가 빠진 32개국이 나타나 있다. 이는 인도 자치령은 1950년에, 아일랜드 자유국은 1949년에 완전히 공화제로 전환하였기 때문으로, 이에 따라 1952년 즉위한 엘리자베스 2세는 위 두 국가의 여왕으로 재위하지는 못하였다. 마찬가지로 보호령에서 바로 공화제로 독립한 국가들 또한 위 지도에 나타나지 않는다. 대표적으로 잠비아, 보츠와나 등이 이에 해당한다. [31] 대한민국의 현행 헌법은 헌법 개정 시 최종적으로 국민투표를 거치게 돼 있으나, 헌법 개정 절차는 나라마다 다 다르며 단순히 의회의 의결로 변경할 수 있는 나라도 많다. 영국처럼 아예 헌법을 일반 법률이나 관습법과 분리하지 않는 불문헌법인 나라도 있다. [32] 2개 국가의 수장인 사람으로는 프랑스 대통령이자 안도라의 공동 대공인 에마뉘엘 마크롱이 있다. [33] 여왕이 사망한 이후에는 찰스 3세로 넘어갔다. [34] 1952년 2월 6일 (즉위) ~ 1963년 10월 1일 ( 나이지리아 공화제 전환), 1991년 12월 26일 ( 소련 해체) ~ 2022년 9월 8일 (사망) [35] 몽골 제국의 최대 영역은 학자에 따라 다르지만 보편적으로 Taagepera Rein의 1997년 논문에 따라 23,500,000km² ( 1294년) ~ 24,000,000km² ( 1309년) 정도로 추산한다. [36] 유럽 역사상 가장 오래 재위한 인물은 영국의 라이벌인 프랑스의 루이 14세로, 무려 72년 3개월 동안 재위하였다. [37] 해럴드 윌슨 총리가 67, 69대 총리로 2번 역임했으므로 대수로 치면 16대가 된다. [38] 윈스턴 처칠, 앤서니 이든, 해럴드 맥밀런, 알렉 더글러스 흄, 해럴드 윌슨, 에드워드 히스, 제임스 캘러헌, 마거릿 대처 [39] 영국은 입헌군주제를 처음 만든 국가다. [40] 북구까지 포함하면 스웨덴의 구스타프 5세가 92세로 최장수했었고, 지금은 엘리자베스 2세가 넘었다. 여담으로 퇴임한 군주 가운데서 최장수한 이는 앙리 대공의 아버지이자 룩셈부르크 전 대공인 장이다. 필립 공과 동갑으로 98세까지 살고 2019년에 사망했다. [41] 버킹엄 궁전이 어텀의 임신을 발표할 때 '여왕은 자신이 증조할머니가 된다는 사실에 기뻐하고 있다'고 밝혔다. [42] 여담으로 캐서린이 출산 예정일을 넘겼는데도 출산 소식이 없자 "아들이든 딸이든 상관없으니 내가 휴가 떠날 23일 전에만 태어났으면 좋겠다"고 답했고 공교롭게도 휴가 하루 전날 태어났다. [43] 2007년 촬영했다. [44] 2022년 여름 밸모럴성에서 찍었다. [45] 크리스티안 9세의 장녀다. [46] 조지 3세의 손녀다. [47] 웨일스 공 윌리엄, 서식스 공작 해리 왕자 [48] 피터 필립스, 자라 틴달 [49] 요크의 베아트리스 공녀, 요크의 유지니 공녀 [50] 레이디 루이즈 마운트배튼윈저, 웨식스 백작 제임스 마운트배튼윈저 [51] 당시 엘리자베스는 일반적인 해군의 아내의 삶을 살았다. 다른 장교 부인들과 어울려서 살롱에도 가고 차를 마시며 수다를 떨기도 하고, 직접 현금을 가지고 다니며 계산까지 했다고 한다. 다만 돈 계산이 익숙지 않았는지 엘리자베스의 행동이 다소 굼떴다고 한다. 운전사 없이 직접 승용차 운전을 하고 다니기도 했으며, 보트를 타거나 해안가를 산책하고, 일광욕을 즐기고 피크닉을 하며 많은 시간을 보냈다고 한다. [52] 조지 5세의 3남 헨리 왕자의 가문. [53] 조지 5세의 4남 조지 왕자의 가문. 엘리자베스 2세 여왕의 숙부 쪽 자손 가계이다. [54] 영문 표현 중 Sticky finger(hand)는 도벽이 있는, 내지는 슬쩍하길 좋아하는 이를 일컫을 때 쓰는 표현이다. 즉 여왕의 입장에서 본다면 "내꺼 훔치지 마라!"란 경고를 낸 것이라고 볼 수도 있다. [55] 이렇게 무례함과 결례를 벌인 차우셰스쿠는 국민들이 혁명을 일으켜 끔살된 반면 여왕은 천수를 누리다 영면하였으니 사필귀정이라 하겠다. [56] 제1차 세계 대전 중 전사한 여왕의 외삼촌 퍼거스 보우스라이언의 이름으로부터 따왔다고 한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심장병으로 같은 해인 생후 5개월 만에 무지개 다리를 건넜다. [57] 이때 여왕과 같이 차에 타고 있던 여성이 영국에서 화제가 됐는데, 해당 인물은 여왕의 개인 비서인 수잔 허시(Susan hussey) 여사다. [58] 대표적인 사례로는 2013년 애스콧 골드 컵(G1)에서 소유마가 우승했었을 때로 당시 카메라에 포착되었던 걸로 유명하다. [59] 2000 기니 스테이크스, 1000 기니 스테이크스, 더비 스테이크스(엡섬 더비), 오크스 스테이크스(엡섬 오크스), 세인트 레저 스테이크스 [60] 애당초 원조 더비인 해당 경주는 윈스턴 처칠이 한 나라의 재상이 되는 것보다도 우승 트로피를 쟁취하기 힘들다고 말한 경주로 역대 영국 왕실 소유마 중에서도 더비마가 탄생하지 못했을 정도다.
2022년 9월 8일을 기준으로 과거 영연방 왕국이었던 국가는 위의 지도와 같이 총 34개국이지만, 본문에서는 인도와 아일랜드 두 국가가 빠진 32개국이 나타나 있다. 이는 인도 자치령은 1950년에, 아일랜드 자유국은 1949년에 완전히 공화제로 전환하였기 때문으로, 이에 따라 1952년 즉위한 엘리자베스 2세는 위 두 국가의 여왕으로 재위하지는 못하였다. 마찬가지로 보호령에서 바로 공화제로 독립한 국가들 또한 위 지도에 나타나지 않는다. 대표적으로 잠비아, 보츠와나 등이 이에 해당한다. [31] 대한민국의 현행 헌법은 헌법 개정 시 최종적으로 국민투표를 거치게 돼 있으나, 헌법 개정 절차는 나라마다 다 다르며 단순히 의회의 의결로 변경할 수 있는 나라도 많다. 영국처럼 아예 헌법을 일반 법률이나 관습법과 분리하지 않는 불문헌법인 나라도 있다. [32] 2개 국가의 수장인 사람으로는 프랑스 대통령이자 안도라의 공동 대공인 에마뉘엘 마크롱이 있다. [33] 여왕이 사망한 이후에는 찰스 3세로 넘어갔다. [34] 1952년 2월 6일 (즉위) ~ 1963년 10월 1일 ( 나이지리아 공화제 전환), 1991년 12월 26일 ( 소련 해체) ~ 2022년 9월 8일 (사망) [35] 몽골 제국의 최대 영역은 학자에 따라 다르지만 보편적으로 Taagepera Rein의 1997년 논문에 따라 23,500,000km² ( 1294년) ~ 24,000,000km² ( 1309년) 정도로 추산한다. [36] 유럽 역사상 가장 오래 재위한 인물은 영국의 라이벌인 프랑스의 루이 14세로, 무려 72년 3개월 동안 재위하였다. [37] 해럴드 윌슨 총리가 67, 69대 총리로 2번 역임했으므로 대수로 치면 16대가 된다. [38] 윈스턴 처칠, 앤서니 이든, 해럴드 맥밀런, 알렉 더글러스 흄, 해럴드 윌슨, 에드워드 히스, 제임스 캘러헌, 마거릿 대처 [39] 영국은 입헌군주제를 처음 만든 국가다. [40] 북구까지 포함하면 스웨덴의 구스타프 5세가 92세로 최장수했었고, 지금은 엘리자베스 2세가 넘었다. 여담으로 퇴임한 군주 가운데서 최장수한 이는 앙리 대공의 아버지이자 룩셈부르크 전 대공인 장이다. 필립 공과 동갑으로 98세까지 살고 2019년에 사망했다. [41] 버킹엄 궁전이 어텀의 임신을 발표할 때 '여왕은 자신이 증조할머니가 된다는 사실에 기뻐하고 있다'고 밝혔다. [42] 여담으로 캐서린이 출산 예정일을 넘겼는데도 출산 소식이 없자 "아들이든 딸이든 상관없으니 내가 휴가 떠날 23일 전에만 태어났으면 좋겠다"고 답했고 공교롭게도 휴가 하루 전날 태어났다. [43] 2007년 촬영했다. [44] 2022년 여름 밸모럴성에서 찍었다. [45] 크리스티안 9세의 장녀다. [46] 조지 3세의 손녀다. [47] 웨일스 공 윌리엄, 서식스 공작 해리 왕자 [48] 피터 필립스, 자라 틴달 [49] 요크의 베아트리스 공녀, 요크의 유지니 공녀 [50] 레이디 루이즈 마운트배튼윈저, 웨식스 백작 제임스 마운트배튼윈저 [51] 당시 엘리자베스는 일반적인 해군의 아내의 삶을 살았다. 다른 장교 부인들과 어울려서 살롱에도 가고 차를 마시며 수다를 떨기도 하고, 직접 현금을 가지고 다니며 계산까지 했다고 한다. 다만 돈 계산이 익숙지 않았는지 엘리자베스의 행동이 다소 굼떴다고 한다. 운전사 없이 직접 승용차 운전을 하고 다니기도 했으며, 보트를 타거나 해안가를 산책하고, 일광욕을 즐기고 피크닉을 하며 많은 시간을 보냈다고 한다. [52] 조지 5세의 3남 헨리 왕자의 가문. [53] 조지 5세의 4남 조지 왕자의 가문. 엘리자베스 2세 여왕의 숙부 쪽 자손 가계이다. [54] 영문 표현 중 Sticky finger(hand)는 도벽이 있는, 내지는 슬쩍하길 좋아하는 이를 일컫을 때 쓰는 표현이다. 즉 여왕의 입장에서 본다면 "내꺼 훔치지 마라!"란 경고를 낸 것이라고 볼 수도 있다. [55] 이렇게 무례함과 결례를 벌인 차우셰스쿠는 국민들이 혁명을 일으켜 끔살된 반면 여왕은 천수를 누리다 영면하였으니 사필귀정이라 하겠다. [56] 제1차 세계 대전 중 전사한 여왕의 외삼촌 퍼거스 보우스라이언의 이름으로부터 따왔다고 한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심장병으로 같은 해인 생후 5개월 만에 무지개 다리를 건넜다. [57] 이때 여왕과 같이 차에 타고 있던 여성이 영국에서 화제가 됐는데, 해당 인물은 여왕의 개인 비서인 수잔 허시(Susan hussey) 여사다. [58] 대표적인 사례로는 2013년 애스콧 골드 컵(G1)에서 소유마가 우승했었을 때로 당시 카메라에 포착되었던 걸로 유명하다. [59] 2000 기니 스테이크스, 1000 기니 스테이크스, 더비 스테이크스(엡섬 더비), 오크스 스테이크스(엡섬 오크스), 세인트 레저 스테이크스 [60] 애당초 원조 더비인 해당 경주는 윈스턴 처칠이 한 나라의 재상이 되는 것보다도 우승 트로피를 쟁취하기 힘들다고 말한 경주로 역대 영국 왕실 소유마 중에서도 더비마가 탄생하지 못했을 정도다.